사회민주주의:집중이슈 모아서 인쇄 준비: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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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동당 경험을 계급투쟁적 맥락 속에서 돌아보기

김인식

이번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서 주요 쟁점 중 하나가 민주노총 “정치 방침”이었다. 그 이면에는 민주노동당에 대한 엇갈린 평가가 깔려 있다. 한편에서는 민주노동당이 실패한 실험이었다고 단정한다. 그 반대편에서는 민주노동당의 영광을 그리워하며 ‘어게인 민주노동당’(“진보대통합”)의 주술(呪術)을 건다. 두 평가 모두 일면적이다. 

우경적인 한국 공식 정치 지형에서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 왼쪽에서 민주노동당이 건설된 것은 역사적 진보였다. 그러므로 좌파는 이 실험을 지지하며 새롭게 정치화하는 선진 노동자들과 관계 맺기를 시도하는 것이 지혜로운 전술이었을 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의식이 갑자기 비약하지 않으므로, 노동자 계급이 일단 떨쳐 일어나면 자신의 전통적 조직에서 자동으로 벗어나 혁명적으로 바뀔 거라고 기대하는 것은 환상이다. 

그와 동시에, 민주노동당은 개혁주의 정당이었다. 개혁주의는 자본주의 체제가 제공할 수 있고 지배계급이 양보할 태세가 돼 있는 것에 의해 제한을 받는다. 아무리 좌파적 개혁주의일지라도 이런 개혁주의의 한계 때문에 노동자 대중의 변화 염원을 한동안 효과적으로 표현하다가 갑자기 지지를 잃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의 부침은 이를 보여 준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민주노동당의 등장 배경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에 창당됐다. 더 거슬러 가면 1999년 8월 창당 발기인대회가 실질적 창당이었다. 

민주노동당은 당시 국제적 규모로 등장한 급진좌파 운동의 일부였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중반에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와 전쟁에 반대하는 운동이 분출했다. 이 운동들의 정치적 표현은 급진좌파였다.(급진좌파는 사회민주주의 좌파에서 혁명적 좌파까지 아우르는 국제 운동의 용어다.)

주요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집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시장에 굴복하고 미국의 ‘테러와의 전쟁’을 지지하자, 대중의 환멸이 커졌다. 이런 환멸은 두 가지 결과를 낳았다. 한편에서는 우파나 극우파 정당들이 성과를 거뒀다. 그 반대편에서는 노동자 계급의 일부가 더한층 왼쪽으로 이동했다.

이로 인해 생겨난 정치적 공백을 메우려고 급진좌파 정당들이 등장했다. 영국의 ‘리스펙트’, 스코틀랜드사회당, 독일의 ‘노동과 사회 정의를 위한 선거 대안’(이후 민주사회당과 통합해 좌파당이 됐다), 포르투갈의 ‘좌파블록’,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 이탈리아의 재건공산당, 브라질의 ‘사회주의와자유당’ 등등. 이 정당들의 프로젝트는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 왼쪽에서 전쟁과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정치 대안을 건설하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은 김대중 · 노무현 정부의 배신과 개혁 파탄으로 생겨난 왼쪽 공백을 메우기 위해 등장한 한국판 급진좌파 정당이라 할 수 있었다. 김대중은 36년 동안 지속된 일당독재에 대한 대중적 반감 덕분에 당선했지만, 그 정부는 자본가 계급을 위한 정책을 추진했다. 이것은 노무현 정부까지도 지속된 과정이었다. 이로 인해 그 왼쪽에서 노동자 정치 세력화를 위한 공간이 열렸다.

민주노동당 등장의 직접적 계기들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 1996년 12월부터 1997년 1월에 이르는 민주노총의 파업이었다. 이 파업 이후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국민승리21’을 결성해 그해 12월 대선에 권영길 민주노총 위원장을 후보로 출마시켰다. 권 후보는 30만 표를 득표했다. 

둘째, 1997년 11월 금융 공황과 IMF 관리 체제 도입은 파업 못지 않게 노동자 대중의 정치적 각성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여기에 2000년대 들어 새로 부활한 저항 운동 — 호텔롯데 · 사회보험 노동조합과 국민 · 주택은행 파업을 비롯한 노동자 투쟁, 미군 장갑차에 의한 두 중학생 압사 사건 항의 운동,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 반신자유주의 운동 등 — 은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의 왼쪽 공간을 메울 필요성과 압력을 창출했다. 

민주노동당이 이 공간을 부분적으로 메웠다. 혁명적 강령에 근거해서 그런 게 아니라 개혁주의적 강령에 근거해서 그럴 수 있었다. 

민주노동당은 어떤 정당이었는가?

민주노동당은 의회를 통해 민주 · 사회 개혁을 법제화하고자 하는 노동자들의 자연스러운 염원을 표현한 것이자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의 공식 정치 참여 염원을 표현한 것이었다. 

요컨대, 민주노동당은 노동조합 상근 간부층을 매개로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조직적 · 재정적 지원에 결정적으로 의존했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은 대의원대회를 통해 민주노동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결정했다. 당시 구체적 맥락에서 “배타적 지지” 방침은 조직 노동자들 대부분이 더는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에 정치적으로 의탁하지 않고 자체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결심을 반영한 것이었다.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압도 다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었다. 선거 자금의 상당 부분도 민주노총이 댔다. 민주노총은 2004년 총선 기금으로 20억 원가량을 마련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동당의 투표 기반도 압도적으로 노동자 계급이었다. 민주노동당은 주로 노동자 계급 밀집 지구에서 많은 표를 얻었다. 2000년 총선 때 울산과 창원에서 30퍼센트가 넘게 득표했다. 2002년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노총 조합원 가운데 72.2퍼센트가 민주노동당에 투표했다. 2004년 총선에서 지역구 당선자(권영길 · 조승수)가 나온 곳도 노동자 도시인 창원과 울산이었다. 

민주노동당 내 포퓰리스트들은 당의 노동자 계급적 성격을 벗어 던지고 싶어 했다. 당명에서 “노동”을 빼고 싶어 했다. 중간계급의 마음에 들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었다. 이 때문에 민주노동당 안에서는 노동자 정당이냐 국민 정당이냐는 논쟁이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사회적 급진화와 정치 운동의 성장, 여전한 산업 전투성의 압력 때문에 포퓰리스트들의 국민 정당화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이렇듯 민주노동당이 과거의 진보 정당들(민중당 등)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점은 당의 사회적 구성과 기반이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주노동당은 자본주의 체제에 결박돼 있었다. 당의 핵심 지도부는 자본주의 체제가 본질적으로 신성불가침 하다는 점을 인정했다. 2005년 심상정 의원은 “민주노동당은 반기업 정당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또, 당 지도자들은 의회 민주주의가 노동자 계급이 자기 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수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민주노동당은 노동자 계급 조직의 지원을 받는 친(親)자본주의 정당이었다.

변화하는 계급세력균형과 민주노동당의 부침 

일부 좌파들은 이데올로기적 잣대만으로 민주노동당을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이탈리아의 마르크스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는 “한 당의 역사를 쓰는 것은 특정 각도에서 계급투쟁의 역사를 쓰는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민주노동당의 성쇠를 올바르게 분석하려면 해당 시기 계급세력균형을 이해해야 한다. 

2000년 창당부터 대략 2004년까지 민주노동당은 현란한 속도로 발전했다. 1997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30만 표를 얻었다. 2000년 창당 직후 총선 득표율은 1.18퍼센트였다.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1백34만 표(8.1퍼센트)를 획득했다. 2002년 대선에서 권영길 후보는 97만 표(3.9퍼센트)를 득표했다. 2004년 총선에서 2백77만 표(13퍼센트)를 득표해 마침내 10명의 국회의원이 탄생했다. 창당 4년 만에 제3당으로 원내에 진입한 것이다.

민주노동당 당원 수도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1999년에 7천6명 → 2000년 1만 1천69명 → 2001년 1만 6천4백95명 → 2002년 2만 4천6백82명 → 2003년 3만 4천9백40명 → 2004년 5월 5만 2천4백99명. 창당 4년 만에 4배로 성장한 것이다. 

이 시기 민주노동당의 성장은 한층 심화하는 대중의 급진화를 반영한 것이었다. 대중 급진화의 원동력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2000년대 들어 호텔롯데와 사회보험 노동자들을 필두로 한국통신과 국민 · 주택은행 노동자들이 파업했다. 2001년 초에 비록 대우자동차 파업이 패배를 겪긴 했지만, 노동자 운동은 자신감과 사기가 심각하게 꺾일 만한 결정적 대패배를 경험하지 않았다. 2003년 10월 ‘열사 정국’에서 노동자 투쟁이 절정에 이르렀다. 여기에 더해 2004년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 민주당의 노무현 탄핵에 반대하는 거대한 항의 운동이 일어났다. 

건재한 노동자 운동과 대중의 급진화 덕분에  “진보 정당에 대한 시각 변화”가 나타났다. 수십만 명이 거리로 나온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 같은 대중 투쟁이 사회 이데올로기를 왼쪽으로 이동시켰고, 민주노동당에 대한 지지가 늘어났던 것이다. 

그러나 성장의 속도만큼 빠르게 위기가 찾아 왔다. 민주노동당 위기의 근저에는 바뀐 계급투쟁 상태가 있었다. 2004년 4 · 15 총선을 전후해 투쟁 수준은 매우 높았다. 그 덕분에 민주노동당은 기대 이상의 의석을 확보했다. 

총선 뒤에도 민주노동당은 대중 투쟁을 고무하는 방향으로 대응했다. 2004년 6월 김선일 피살 국면과 그해 말 국가보안법 반대 투쟁에서 그랬다.

그러나 2005년부터 노무현 정부의 개혁 배신으로 노동자 대중은 환멸을 느끼며 사기 저하를 겪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안에서도 대중 투쟁으로는 안 된다는 잘못된 교훈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는 대중 투쟁이 아닌 다른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이제 당 지도부는 ‘데모하는 정당’, ‘반대만 하는 정당’, ‘운동권 사회단체’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2006년 지방선거 뒤에 열린 당대회는 중소기업 육성론을 당의 핵심 사업으로 결정했다. 당의 주요 정책이 부유세 같은 계급 간 분배 정책에서 중소기업 육성론으로 예리하게 이동한 것이었다.

그리고 당내 최대 평등파 그룹이었던 ‘전진’이 사회연대전략을 제출했다. 정규직이 사용자들에 먼저 양보하자는 양보 정책이었다. 바로 직전 지방선거에서 ‘전진’ 소속의 서울시장 후보가 ‘사회주의’를 선전한 것을 떠올려 보면 그 변화는 꽤 심각했다. 

그러나 대중 투쟁보다 의회 활동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내달을수록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더욱 심화했다. 

당 위기의 원인과 해법을 둘러싼 논쟁도 격화됐다.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에 대한 태도, 북한 문제, 노동조합 관료주의 문제 등이 뜨거운 쟁점이었다. 이것들은 민주노동당의 아킬레스 건이라 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온건한 노동 일간지인 <매일노동뉴스> 기자조차 민주노동당 의원단이 “열린우리당보다 딱 한 뼘 더 나가 있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보통 냉전 우파인 한나라당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반대해 온 데 비해 자유주의 정치 세력에 대해서는 독립적이지 못한 태도를 자주 보인 것이다.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노무현 정부의 성공이 민주노동당에 도움이 된다고 공공연하게 주장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노무현 정부가 민주노동당에 연정을 제안한 것에 대해 비록 조건부였지만 지지 입장을 밝히기도 했다. 

열린우리당으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일관되게 유지하지 못해 지지층이 이탈하기 시작했다.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열린우리당과의 공조를 통해 기성 정치 체제에서의 위상을 강화하고 싶어 했지만, 민주노동당의 기반인 노동자 계급 속에서는 위상이 약화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북한 문제로 말할 것 같으면, 민주노동당이 친북 정당으로 비쳐지는 것은 분명 마이너스 효과를 낼 것이었다. 국정원이 2006년 10월에 ‘일심회’ 사건을 터뜨린 것은 바로 이 점을 노린 것이었다. 당내 평등파 계열이 ‘일심회’ 사건 관련자들을 방어하지 않으면서 민주노동당은 한층 곤경에 빠졌다. 2005년 북핵 실험을 놓고도 평등파는 양비론적 입장을 폈다. 반면, 자주파는 북핵 실험을 ‘북한의 자위권’이라는 식으로 대응해 사태를 악화시켰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비리와 투쟁 회피 · 배신이 잇따랐다. 노동조합 관료주의 문제는 민주노동당의 물질적 토대와 관련 있기 때문에 진정한 아킬레스 건이었다. 2005년 민주노총의 사회적 교섭을 둘러싼 논쟁이 첨예하게 벌어질 때 민주노동당 지도부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게다가 2005년 10 · 26 울산북구 재선거에 비정규직 확대에 합의한 전력이 있는 노조 지도자를 국회의원 후보로 내세웠다가 패배했다. 

민주노동당 분열의 진정한 원인 

내연화돼 있던 위기가 실망스러운 대선 결과(권영길 후보는 3퍼센트를 획득했다)를 계기로 폭발했다. 마침내 2008년 2월 분당했다.

민주노동당의 위기와 분열은 단순히 실망스러운 대선 결과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었다. 몇 년 간 부상한 반신자유주의 운동이 계급투쟁의 충분한 발전으로 이어지지 못한 현실과 관련 있었다. 

2007년 한미FTA 반대 운동과 이랜드 노동자 투쟁들에 노동조합의 참가와 연대가 상당히 존재했음에도 정부와 사용자를 굴복시키기에는 미흡했다. 이 투쟁이 정치(전全 계급적) 투쟁으로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07년 대선에서 노무현에 환멸을 느낀 사람들 중 상당수는 민주노동당 지지로 나아가지 않았다. 오히려 문국현이 민주노동당의 잠재적 기반을 잠식했다.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대선 성적에 책임 지고 사퇴한 뒤 심상정 비대위가 등장했다. 심 비대위는 “민주노총당, 친북당, 운동권당”에서 벗어나자는 혁신안을 제출했다. 

심 비대위의 “민주노총당” 극복 안은 정치와 경제의 분업, 즉 파업이나 임금 인상 등 경제적 쟁점들은 주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다루고, 주로 선거 문제로 여겨지는 정치적 쟁점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소속 의원들이 다루자는 발상이었다. 민주노동당의 본질이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므로 심 비대위의 혁신안은 민주노동당을 좀 더 그 본질에 어울리게 만들자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정경 분리는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 · 부문주의적 약점을 더한층 두드러지게 만들 것이었다. 

심 비대위의 ‘일심회’ 관련자 제명 기도도 부르주아 민주주의에 걸맞는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정당 만들기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그와 동시에, 득표에 도움이 안 되는 민주노동당의 ‘친북’ 이미지를 제거하겠다는 선거주의의 발로이기도 했다. 

심 비대위의 우경적 프로젝트는 대의원대회에서 패배했다. ‘다함께’(‘노동자연대’의 전신)는 심 비대위의 우경화 기도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그리하여 본질적으로 개혁주의인 두 개의 진보 정당이 생겨났다.

민주노동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전술

지금까지 논의한 바로 그 이유로 사회주의자들은 민주노동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야 했다.

안타깝게도, 대다수 급진좌파들은 민주노동당에 비타협주의적 태도를 취했다. 예컨대, 옛 사회당의 지도자들은 민주노동당을 “가짜 노동당”이라고 규정하며 흔히 종파적인 태도를 취했다.

이런 방식으로는 개혁주의자들과 그들이 노동자 계급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1백 년도 더 넘는 역사적 교훈 하나는 사회민주주의의 영향력을 무시하는 것은 크나큰 오류라는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주의자들을 지지하는 노동자 대중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기 위한 전술들을 끊임없이 모색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혁명가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지하고 있는 노동자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공동전선 전술들을 발전시켰다.

‘다함께’는 민주노동당에 대해서는 입당 전술을 사용했다. 민주노동당 전체를 견인할 수 있다거나 당 기구를 장악해 혁명적 목적에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가 아니었다. 당내 일부 좌파는 그럴 수 있다고 착각했다가 그럴 수 없는 현실에 부딪히자 실의와 낙담에 빠지기도 했다. 

‘다함께’가 입당 전술을 사용한 것은, 선진 노동자들의 정치화가 민주노동당으로 수렴되는 상황과 접점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민주노동당 바깥에서 그 당의 영향력과 오류를 지적하는 것보다 당 안에서 선진 노동자들의 동료로서 그런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개혁주의에 대처하는 데서 더 효과적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다함께’는 이 쉽지 않은 과제를 수행하면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 계급의 의식에 어떻게 관여할 수 있는지를 배울 수 있었다. 

‘다함께’가 입당 전술을 사용했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에 용해된 것도 아니었다. 무엇보다, 독자적인 조직과 정치(간행물, 모임 등)를 통해 민주노동당 지도부가 잘한 것에 대해서는 지지를, 잘못한 것에 대해서는 비판을 숨기지 않았다. 

입력 2014-12-2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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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모임의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 제안에 대해

김인식

지난해 12월 진보적 지식인들이 주축이 돼 국민모임(정식 명칭은 ‘국민의 눈물을 닦아 줄 수 있는 새로운 정치세력의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을 결성했다.

아직 구체적 창당 계획이 발표되지 않았는데도 국민모임에 참여 의사를 밝힌 노동계 인사들이 적잖다고 한다. 노동 · 정치 · 연대 내에서도 국민모임과 함께 창당하자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노동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나경채 후보도 국민모임과 함께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국민모임이 제안하는 신당이 전투적 선진 노동자들에게 최선의 정치적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진 출처 <참세상>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중적 분노만큼이나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한 냉소가 강한 반면, 진보 정당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그 대안이 못 되고 있는 현실과 관계있는 듯하다.

국민모임은 강한 어조로 새정치연합을 비판한다. 김세균 국민모임 공동대표는 새정치연합이 “야당이라기보다는 제2여당” 구실을 하고 있다고 비판한다(<프레시안> 2015년 1월 21일 자). 국민모임이 주최하는 전국 순회 국민대토론회 제목도 “야권 교체 없이 정권 교체 없다”이다.

그런데 “분산되고 분열된 진보 정당”은 새정치연합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므로(‘국민모임의 105인 선언문’ 중), 국민모임은 “새로운 진보적 대중 정치를 복원”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새로운 진보 정당의 성격 

국민모임이 추진하는 신당의 성격, 특히 기반과 강령 등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주요 국민모임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대체로 영국 노동당 같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모델로 삼는 듯하다. 김세균 공동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영국에선 과거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였다가 노동당이 생겨났고, 그 노동당이 자유당을 대체해 보수당-노동당 양당 체제 속에서 집권도 했다. 우리 또한 진보적 신당이 올라와 새정치연합을 대체하는 영국 모델[노동당]로 갔으면 한다.”(<프레시안> 2015년 1월 21일 자)

2000년대에 줄곧 민주노동당을 사회민주주의적이라고 비판했던 김세균 교수가 “영국 모델”을 말하는 것에 놀랄 사람들도 있겠다. 갑작스러운 변화는 아니다. 이미 2010년 김 교수는 PD 좌파가 국민승리21에서 분리하지 말았어야 했다고 말한 바 있다. “좌파가 계속 남아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민주노동당 운동에 참여해야 했다고 생각한다.”(<레디앙> 2010년 7월 3일 자) 이것은 정치연대 → 노동자의힘 →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준비모임(사노준) → 사회주의노동자정당건설공동실천위원회(사노위) →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로까지 이어지는 PD 좌파 부활의 기원을 부정하는 발언이었다.

정동영 전 통일부장관도 김 교수와 비슷한 전망을 제시했다. “영국에 노조를 기반한 노동당이 출연하면서 자유당의 힘이 약해져 제1야당이 노동당으로 바뀌었다.”(<폴리뉴스>, 2015년 1월 20일 자)

물론 국민모임이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단순 재연하려는 것은 아니다. 서구식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핵심 기반으로 삼는 데 반해, 국민모임은 노동조합 지도자들뿐 아니라 진보적 지식인들과 심지어 일부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까지 기반으로 삼고자 한다.(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은 과거 민주노동당에는 없었던 기반이다.)

정종권 <레디앙> 편집장은 새로운 진보 정당의 기반을 이렇게 특정했다. “새정치연합을 이탈한 진보세력들, 국민모임 등의 재야와 사회운동의 진보인사들, 노동 중심의 진보 정당을 추진하고 있는 노동 · 정치 · 연대 그리고 사민주의 지향의 정의당, 보다 좌파적인 노동당이 하나의 큰 울타리를 짓고 연합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레디앙> 2015년 1월 15일 자)

이를 통해 새정치연합 바깥에서 신흥국형 또는 한국형 개혁주의 정당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새로운 진보 정당이 끌어들이고자 하는 기반들을 보면 대략 그 정당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 있다.

김세균 공동대표는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N 분의 1로 참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정동영의 정치적 상징성이 만만치 않아 그의 바람대로 될 것 같지는 않다.

민주노총은 다양한 정치 세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단일한 지지 정당 방침(“정치 방침”)을 채택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할 뿐 아니라, 무엇보다 그런 시도가 노동조합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람직하지도 않다. 그래서 국민모임은 노동 · 정치 · 연대에 구애를 보내고 있다.

정의당은 서구식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선호한다. 천호선 대표는 정의당이 “과거 운동권 이념을 완전히 털어버린 정당”이라고 강조한다. 노회찬 전 의원도 “탈운동권 진보”를 주장한다. “정치와 정당은 선거에 나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다.(《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 비아북, 182∼185쪽)

반면, 노동당은 진보 재편을 놓고 그 내부가 심각하게 분열해 있다. 그래서 하나의 당으로 진보 재편 과정에 참여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이렇듯 국민모임이 구상하는 신당은 전망이 아직 유동적이고, 잠재적인 정치적 스펙트럼도 넓다. 실제로 ‘국민모임의 105인 선언문’은 “뜻있는 모든 정치인”에게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당적, 계파와 소속을 넘어 연대하고 단결”해 “새로운 정치 세력”을 건설하자고 제안한다. 그래서 이 정당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가령, 2000년대 민주노동당 같은)에는 못 미치는 중도 주류 개혁주의 정당이 될 공산이 크다.

공식 정치를 군부 독재 정권의 잔당들과 자유주의적 부르주아(즉, 노골적으로 친자본주의적인) 정당이 지배해 온 한국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정치 프로젝트에도 얼마간 진보성이 있음을 인정할 수 있다. 또, 새정치연합이 대중적 불신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 당 왼쪽에서 진보 정치 세력이 성장할 공간이 형성될 수 있다.

올바른 전술

그러나 한국의 노동자 계급이 이런 종류의 정당을 처음 경험하는 것도 아니다. 먼저 일국적 수준에서 봐도, 국민승리21이 발족한 1997년 이래 거의 18년 동안 경험했다. 민주노동당은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으로 출발했지만, 당 역사의 후반부로 갈수록 좌파성이 약해지고 점점 더 개혁주의적인 본질을 드러냈다.

그다음 세계적 수준에서도, 적어도 선진 자본주의 세계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잇달아 집권하기 시작한 1997년 이래로 지난 18년 사이에 배신을 거듭했다. 바로 이 때문에, 유럽의 광장 점거 운동에서 나타났듯이, 급진화한 서구 청년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에 커다란 반감을 나타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노동자들의 충성도도 역사상 최저 수준이다. 그래서 그리스 같은 곳에서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렇듯 1990년대 후반 이후의 바뀐 국제적 · 국내적 정세를 보면, 국민모임이 주도할 신당의 진보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금세 큰 실망을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의 전투적인 선진 노동자들에게 국민모임이 제안하는 신당이 최선의 정치적 대안이기에는 너무도 미흡하다. 이들은 더 나은(더 투쟁적이고 더 좌파적인) 대안을 바랄 자격과 필요가 있다.

특히, 세계경제는 1930년대 대불황 이래 가장 심각하고 오래 지속되는 위기를 겪고 있다. 박근혜 정권은 노동자 계급에 그 책임을 떠넘기려고 전방위적으로 신자유주의 공세 — 공무원연금 개악, 노동시장 구조 개악, 비정규직 확대 등등 — 를 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과 정의당까지 참여하는 신당이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에 진지하게 반대할지 의문이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금으로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에 더 신경 써야 한다. 민주노총 선거에서 좌파 지도부가 당선한 것은 노동자 계급이 좌경화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중요한 지표다.

즉, 우리는 계급투쟁의 침체 국면이 아니라 노동자 투쟁이 큰 규모로 분출할 가능성이 작지 않은 시기에 살고 있다. 박근혜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도 먼저 계급투쟁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자 연대를 가로막는 각종 분열 이데올로기와 다계급적 민중주의 정치를 반대하고 반자본주의적 · 반제국주의적 대안을 발전시키는 것이 관건이다.

물론 국민모임이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진보 정당에 초좌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을 것이다. 선거에서 더 좌파적인 대중 정당이 부재한 가운데 신당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등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신당에 (비판적) 투표를 해야 한다.

또한, 특정 쟁점을 놓고 신당의 좌파 계열과 공동전선을 구축할 줄도 알아야 한다. 정의당 지도부가 “탈운동권 진보”를 주장하며 정당과 운동을 예리하게 분리시키고 있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을 세력도 그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공동전선을 형성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선진 노동자들이 투표를 넘어 신당에 참여하는 수준으로까지 지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선진 노동자들은 대중 투쟁을 바탕으로 신당보다는 더 좌파적이고 투쟁적인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

 

입력 2015-01-2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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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

김인식

6월 4일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등 4개 진보세력 대표들이 9월까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반새누리당-비새정치연합’을 기치로 걸고 이렇게 결의했다. “양당이 결코 대변하지 않은 국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해 진보적 정권교체로 나아가겠습니다.”

ⓒ사진 출처 노동당

연말정산, 성완종 게이트, 당청 분열, 무능하고 무책임한 메르스 대응 등에서 드러나듯이 박근혜 정권은 심각한 정치 위기를 겪고 있다. 정치 위기의 근저에는 경제 위기, 동아시아에서의 미중 간 긴장 고조와 한국 지배계급의 딜레마, 아래로부터의 저항 등이 놓여 있다. 지배계급조차 박근혜 정권의 문제 해결 능력을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로부터 반사이익도 못 누릴 정도로 불신과 냉소의 대상이 됐다. 새정치연합은 새누리당과 각을 세우지만, 그 당의 주된 기반이 (비록 비주류일지라도) 자본가 계급이기 때문에 노자 대립에서 흔히 자본가 계급을 지지하곤 했다. 문재인은 대표 취임 직후 대한상의 회장 박용만을 만나 “[새정치연합은] 반기업 정당이 아니다” 하고 말했다. 그는 새누리당과 야합해 공무원연금을 대폭 삭감함으로써 이 말을 증명했다.

노동운동 안에는 이런 상황을 돌파하려는 두 가지 흐름이 존재한다. 하나는 민주노총 총파업과 정치적 항의 운동 등으로 대표되는 (계급)투쟁을 강조하는 흐름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주의 정당을 재건해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에서 정권을 교체하자(“정치적 대응”)는 흐름이다.

‘노동자연대’는 개혁주의 정당 재건론에 종파적으로 대하지 않으면서도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고무하는 것을 크게 강조해 왔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지금으로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에 더 신경 써야 한다. … 박근혜 정권의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도 먼저 계급투쟁에서 찾아야 한다. 노동자 연대를 가로막는 각종 분열 이데올로기와 다계급적 민중주의 정치를 반대하고 반자본주의적 · 반제국주의적 대안을 발전시키는 것이 관건이다.”(김인식, ‘국민모임의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 제안에 대해’, <노동자 연대> 142호)

그러나 “지배 계급과 노동자 계급이 서로 상대를 제압하지 못하고 오히려 서로 피해를 보는 지루한 전투들을 수행해야 하는 상황에선 중간계급의 일부를 기반으로 하는 정치적 흐름이 성장할 수 있다. 평범한 사람들의 견해와 바람을 대변한다며 계급을 가로질러 국민적 또는 민중적으로 단결하자고 제안하는 포퓰리즘 경향이다.”(최일붕, ‘[2014년]상반기 투쟁을 돌아보며 주의할 것들’, <노동자 연대> 137호)

노동운동 안에서 전개되는 상황을 보면 이 예측이 맞아떨어지는 듯하다. 네 진보 정치 세력들의 새 정당 건설 선언이 최신 사례다. 계급투쟁보다 “정치”적 대응을 통해 현 상황을 돌파하려면 분열돼 있는 진보 정치 세력이 결집해야 한다는 생각이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의 바탕이다.

새 정당의 기반과 강령

현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기반은 네 세력이다 — 국민모임, 노동당(내 진보결집 지지 세력),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1) 국민모임: 지난해 12월에 출범한 국민모임은 진보적 지식인(김세균 교수로 대표되는)과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정동영으로 대표되는)의 결합체였다. 국민모임은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가세로 진보적 지식인들로만 한정돼 있었으면 얻지 못했을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었다.

그와 동시에, 국민모임은 상이한 전망을 놓고 그 내부에서 갈등을 겪었다. 새정치연합에서 이탈한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이 대부분 노동자 진보 정당 건설 프로젝트를 반대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새정치연합과 진보 정당 사이의 ‘오솔길’을 찾았다. 4월 재보선에서 정동영이 패배한 뒤 이들은 대부분 국민모임에서 철수한 듯하다(<레디앙> 2015년 6월 4일 자). 그 결과 이제 국민모임은 진보적 지식인들과 진보적 문화예술인들의 그룹이 된 것 같다.

(2) 노동당: 노동당은 한국 판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노동당은 당의 전망을 놓고 갈등이 증폭되고 있다. 나경채 대표와 김종철 전 부대표가 주도하는 ‘진보결집 전국당원모임’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지지한다. 옛 사회당 계열과 진보신당 독자파 출신이 연합한 ‘신좌파당원회의’는 노동당 독자 노선을 옹호한다. ‘당의 미래’는 선 노동당 강화 후 진보 정치 연대연합을 주장하는데, 현 시점에서는 노동당 독자 노선을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2012년 진보신당과 사회당의 통합 이후 노동당은 정치적으로 이질적인 그룹들이 당내 상시 분파로 존재해 거의 사사건건 갈등을 빚어 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2년 대선이었다. 노동당(당시 당명은 진보신당) 대표단과 전국위원회는 김소연 후보를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옛 사회당 계열은 이 결정에 반발했다. 김순자 후보가 노동당을 탈당해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김종철 전 노동당 부대표는 이런 노동당의 상태를 “늪”으로 묘사했다.(<레디앙> 2015년 1월 15일 자)

그러나 이런 갈등이 정치적 좌우 대립에서 비롯한 것인지는 불분명하다. 대립 쟁점이 압도적으로 정당 통합이냐 독자 노선이냐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가령 진보결집 쪽과 독자 노선 쪽 둘 다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입장을 공개적으로 내놓지 않았다. 노동당의 공식 입장도 공무원연금 개악에 두루뭉술한 태도를 취할 뿐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당 내부의 복잡한 역학力學 관계 때문에 노동당은 단일한 입장과 세력으로 진보 정치 재편 과정에 참여하지는 못할 것 같다. 6월 28일로 예정돼 있는 당대회가 당의 진로에서 중요한 분수령이 될 것으로 예측된다.

(3) 노동·정치·연대: 2012년 통합진보당이 분열하면서 민주노총은 더는 특정 정당에 대한 배타적 지지 방침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 그런 시도를 하는 것 자체가 노동조합을 분열시킬 위험이 있으므로 바람직하지도 않다.

‘노동자연대’는 이런 현실을 감안해 민주노총이 ‘진보/좌파 다원주의’ 정치 방침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민주노총의 투표 방침은 각 선거의 구체적인 조건을 따져 결정돼야 할 것이다.)

이런 민주노총 사정 때문에 주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결성한 정치 단체가 노동·정치·연대다.(‘노동자연대’도 이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초대를 받아 논의에 참여했다.) 노동·정치·연대는 2012년 통합진보당 부정 선거 사태 이후 분열하고 약화된 진보 정당을 재편·복구하기 위한 프로젝트다. 노동·정치·연대는 새 정당이 노동조합 기반을 확보하는 데 중요한 통로가 될 듯하다.

(4) 정의당: 새정치연합에 대한 환멸 증대,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의 이탈로 인한 국민모임의 위상 약화, 노동당의 내분, 노동·정치·연대의 노동조합 대표성 불충분 등 때문에 정의당이 진보 정치 재편에서 주도권을 쥐게 될 것 같다.

정의당은 서구식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향한다. 천호선 정의당 대표는 “대한민국 원내정당 사상 최초로 사회민주주의를 천명하고 실천하는 정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참세상> 2015년 1월 15일 자).

정의당 지도부는 정당과 운동을 예리하게 분리시킨다. 천호선 대표는 “탈운동권 진보”가 “진보 정치의 현대화”라고 말했다. 노회찬 전 의원은 “정치와 정당은 선거에 나가 권력을 추구”하는 것이라며, 이를 두고 “진보의 세속화”라고 불렀다. 심상정 의원은 “헌법 안의 진보”를 주장했다.

전형적인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근접해 가고 있는 셈이다. 영국 노동당도 언제나 계급투쟁과 “정치 행동”(노동당에 투표하기)을 대립시켰다. 그래서인지 이번 4자 공동 선언에서 애초 노동당이 제안한 “운동 정당 지향” 문구가 최종 빠졌다.

또, 노동당이 애초 제안한 “사회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이상과 원칙 계승” 문구도 최종 빠졌고, “무상보육·무상의료·무상교육” 요구는 그보다 더 모호한 “공공보육·공공의료·공공교육” 요구로 대체됐다.

한편, 4자 대표자들은 옛 진보당의 신당 참여를 배제했다. 2012년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 이후, 한국의 특수한 정치 상황을 반영한 스탈린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동거가 결정적으로 끝났음을 재확인하는 결정인 듯하다.

새 정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전술

새 정당의 전망은 아직 유동적이고 강령이 확정된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현재 진보 정치의 세력 관계상 향후 재편될 진보 정치는 사회민주주의가 유력할 것 같다. 즉, 2000년대 민주노동당 같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에는 못 미칠 개연성이 크다.

군부독재 정권의 후예들과 자유주의적 부르주아 정당이 지배해 온 한국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이런 정치 프로젝트에도 진보성이 얼마간 있다.

그럼에도 새 정당의 진보성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금세 실망을 낳을 것이다. 무엇보다, 오늘날 한국의 전투적이거나 선진적인 노동자들에게 새 정당이 최선의 정치적 대안이기에는 많이 불충분하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새 정당에 참여하는 것은 선진 노동자들과의 접점을 잃을 수 있다. 또, 글머리에서 언급했듯이 ‘노동자연대’는 현 시기 우선순위를 계급투쟁에 맞추고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연대’는 새 정당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며 따라서 노동·정치·연대에서도 탈퇴하겠다고 노동·정치·연대 지도부에 알렸다.

물론 훨씬 더 광범한 노동자 대중은 대안 부재 때문에 선거에서 새 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그래서 새 정당에 초좌파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스스로를 있으나마나 한 조직으로 만들 것이다. 일부 좌파들은 개혁주의 정당을 폭로하는 것을 거의 유일한 대응책으로 내놓는다. 그러나 이런 방식만으로는 개혁주의 정치가 노동자 대중에 미치는 영향력에 제대로 대처할 수가 없다.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주의 정치를 지지하는 노동자 대중을 우리 편으로 끌어오기 위한 전술들, 특히 공동전선을 구축할 줄 알아야 한다. 정의당 지도부가 정당과 운동을 예리하게 분리시키고 있지만, 이에 동의하지 않을 세력도 새 정당 안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들과 공동전선을 맺을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선거에서 더 좌파적인 대중 정당이 부재한 가운데 새 정당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등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새 정당에 (비판적) 투표를 해야 할 것 같다.

입력 2015-06-0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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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당대회에 부쳐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정의당과 통합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다

김문성

6월 4일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등 4자 대표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했다. 총선 준비를 위해 9월쯤에는 “구체적 성과”를 내겠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민주노총 전 위원장들 일부와 공공부문 노조 전현직 대표자 일부, 지식인, 예술인, 법률가 등도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이에 관한 <노동자 연대> 입장은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를 보시오.)

그런데 진보 재결집 논의가 진전될수록 노동당 안에서는 이 문제를 두고 갈등이 커지고 있다.

5월 23일 3차 전국위원회에서 독자파 전국위원들은 진보결집기획단 활동을 사실상 정지시키기로 결정했다. 나경채 대표가 서울 관악을 보궐선거에서 일방적으로 국민모임 정동영과 단일화해 사퇴하는 등 당론과 절차를 어기며 진보 재결집을 추구한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이 때문에 나경채 대표는 6월 28일 당대회에 당원총투표 안건을 대의원 현장 발의로 냈다.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한다”를 총투표로 결정하자는 것이다.

합당과 해산을 포함한 당의 진로를 결정하는 문제이므로 당원총투표를 통해 가능한 한 많은 당원들을 토론에 끌어들이고 결정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더 민주적으로 보인다.

한편, 진보 재결집을 적극 추진해 온 것은 나경채 대표, 김종철·강상구 전 부대표 등이 중심인 ‘진보결집 전국당원모임’이다. 반면, 사회당계와 옛 진보신당 독자파 일부가 모인 신좌파당원회의는 좌파정당 독자 노선을 주장한다. 연합보다 노동당 강화가 우선이라는 ‘당의 미래’도 지금의 진보 재결집 논의에는 비판적이다. ‘무지개사회주의자연대’는 아직 공식 입장이 없다.

사실 ‘노동당’ 전체의 정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의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노동당은 정의당의 온건한 개혁주의를 비판하며 좌파 정당을 표방해 왔다.

그런데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노동당 진보결집파의 최근 행보를 보건대, 진보 재결집 정당이 정의당보다 더 왼쪽 정당이 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통합 대 독자’ 갈등은 기본으로 오른쪽으로 향하는 통합 움직임에 합류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다.

따라서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주류 개혁주의 세력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통합에 참여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므로 그 통합에 반대하는 것이 옳다.

현재 통합에 반대하는 쪽은 좌파 독자성과 ‘운동 정당’의 기치를 유지하며 기회를 엿보자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결집파인 김종철·장석준 전 부대표 등은 노동당과 정의당의 강령이 별 차이 없다고 반론을 편다. 이대로 가면 노동당의 약화가 되돌릴 수 없어져서 오히려 좌파에 불리해진다고도 주장한다.

그러나 주류 사회민주주의 수준인 정의당 강령이나 4자 대표 공동선언이 “노동당은 위기의 시대를 넘어설 사회주의 대전환을 위해 탄생했다”고 규정한 노동당 강령에 못 미치는 것은 자명하다. 정치적 차이를 흐리는 방식으로 통합 참여를 정당화하려는 것은 솔직하지 못한 자세다. 이런 태도는 진보 재결집이 진보정치를 더 우경화시키는 데 일조할 거라는 의심을 키울 수 있다.

권태훈 부대표가 <레디앙> 릴레이 기고에서 다룬 ‘노동당 위기론’이 더 솔직한 진보결집파의 논거로 보인다.

한때 1만여 명을 훨씬 넘던 노동당의 당권자 수는 2010년 이후 감소하기 시작해 통합진보당 창당 직후인 2012년 초에 약 6천6백 명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후 사회당과 통합한 2012년 4월 후 당권자 7천7백여 명으로 반등했다. 그런데 올해 초 당대표 선거에서 당권자 수는 5천5백60명이었다. ‘노동당’ 체제에서도 당원 감소세가 멈추지 않은 것이다. 그것도 20~30대 청년 당원이 많이 줄었다고 한다.

운영되는 지역 당원협의회가 62곳뿐이고, 그나마 상근자는 4.5명에 불과하다. 김종철 전 부대표는 ‘중앙당 적자가 매달 7백만 원이고 중앙당 상근자에게 최저임금 수준밖에 줄 수 없어 대신 근무시간을 줄였다’고 밝혔다.(6월 22일 당대회 쟁점 끝장토론)

결국 현 상태로는 노동당이 차기 총선과 대선에서 유의미한 진보정치세력으로서 구실을 하기 힘들다는 위기감이 진보 재결집론에 깔린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권태훈 부대표는 진보 분열이 위기의 큰 원인이고, 이런 분립 상태가 지속되면 정의당으로 표 쏠림 현상이 생겨 노동당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장석준 전 부대표가 진보 재결집을 통해서 “노동당 강령의 메시지가 드디어 그 수신자에 가 닿기 시작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진보정치 재결집: 소망과 현실

새누리당 정권이 고통전가 정책을 쉼 없이 밀어붙이고, 새정치민주연합이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정책을 고수하는 상황에서 정의당 등 진보결집 정당이 새정치연합을 대체하겠다는 것은 쉽지는 않아도 좋은 일일 것이다.

그러나 급진좌파가 이 당에 꼭 포함돼야 하느냐 하는 것은 별개 문제다. 왜냐하면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이 추구하는 정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와 가까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는 당면한 정세에 대한 좌파의 과제와 연결되는 문제다.

우선, 현 국내외 정치·경제 상황은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 같지 않다.

민주노동당 창당 시기는 1997년 한국 경제 공황과 부르주아 자유주의 세력의 집권 이후 노동운동의 정치적 각성이 최초로 주류 정당들에게서 독립적인 노동자 진보정당으로 이어지던 때였다. 이런 때는 좌파가 (독자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이런 노동계급 정치의식의 이동에 함께하며 단결과 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미덕일 수 있었다.

그러나 진보정치 통합 노력은 두 차례나 분열을 겪었다.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적 갈등의 고조와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의 심화는 노동운동 안에서 결정적인 정치적 분화를 낳았다. 그것이 2008년 민주노동당의 분열, 특히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의 근본 배경이 됐다.

결국 사회민주주의 경향과 스탈린주의 경향이 분리했다(노동당, 정의당 vs 옛 진보당). 개혁주의 경향도 좌우로 분화했다(노동당 vs 정의당). 더 급진적인 좌파들은 지금의 진보 재결집 논의에서는 빠져 있다. 이런 분열·분화 상태가 현재 한국이 처한 경제적·지정학적 위기 속에서 쉽게 해소되지는 못할 것이다.

둘째로, 관악을 재선거에서 국민모임 정동영이 큰 표차로 낙선한 것이나 노동당 당세가 약해진 것 등 때문에 지금 4자 통합 협상은 정의당이 주도할 공산이 큰 게 사실이다. 노동당 내 독자파들도 재결집의 핵심이 정의당과 노동당의 통합 문제라고 보고 있다.(당대회 끝장 토론 중)

정의당은 내부에 이질적인 경향들이 존재하긴 하지만, 최근 당 강령 개정을 봐도 대체로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해 왔다고 볼 수 있다. 진보당 ‘내란 음모’ 사건 때 “헌법 내 진보”론을 설파하기도 했던 정의당 심상정 전 대표는 6월 24일 <레디앙> 인터뷰에서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1989년 독일사회민주당의 강령)처럼 낡은 이념과 과감한 단절을 통해 진보정치의 가치와 정통성을 계승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베르크 강령(1959)은 “노동계급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도날드 서순, 《사회주의 100년: 20세기 서유럽의 좌파》, 이 책은 장석준 노동당 전 부대표가 추천한 책이기도 하다.) 도날드 서순은 유럽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1960년대에 자본주의 폐지라는 목표를 단념했다”고 주장하는데, 그 상징적 출발점 중 하나로 1959년 발표된 고데스베르크 강령을 꼽는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자본주의 반대를 포기한다는 것은 현대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냉전적 반공주의를 적극 수용하는 것을 함축하는 것이었다. 반공주의와 사회민주주의의 결합은 사회민주주의가 더 노골적으로 자본주의 폐지나 계급투쟁을 기각하고 부르주아 민주주의 정치 체제 안에서의 선거적 ‘변화’ 추구에 머물겠다는 것을 뜻했다. 즉, 노동계급 투쟁의 분출을 대할 때나, 제국주의 간 지정학적 경쟁에서 궁극적으로 자국 지배계급을 편든다는 뜻이었다.

오늘날 유럽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개혁 없는 개혁주의’ 단계를 지나 ‘개혁을 빼앗는 개혁주의’가 돼 있다.

이 때문에 옛 민주노동당의 창당 강령은 “사회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자고 했던 것이다. 또 유럽에서 시리자 같은 좌파 개혁주의가 부상하는 맥락이기도 하다.

“위기의 시대에 사회주의 대전환”을 추구하는 노동당의 지향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지향보다 왼쪽이다. 천호선, 심상정 등 정의당 지도부가 올 초 백령도 해병대와 천안함 위령탑을 방문해 “튼튼한 안보”를 주문한 것도 노동당의 “평화주의”와 정치적 차이가 있다.

따라서 급진좌파라면, 지금의 위기 국면에서 온건한 개혁주의 정당에 합류해 정치적으로 우경화할 게 아니라 다가올 격변에 대비해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 맞다.

당장 박근혜는 더 쉬운 해고와 더 낮은 임금을 위해 노동계급 전반의 조건을 악화시킬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급진적 대안을 내놓고 대중투쟁을 건설하는 데 직접 헌신할 ‘운동정당’이 더 중요하다.

주류 사회민주주의적 관점에서 공무원연금 삭감을 사실상 지지하는 태도를 취한 정의당과 ‘조직’을 합쳐서는 이런 과제 수행이 더 어려워질 것이다. 정의당은 ‘현대화’와 ‘진보의 세속화’, ‘생활진보’의 이름으로 ‘운동권 정당’과 결별해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군부대를 방문해 “튼튼한 안보”를 말하는 것도 그 일환이다.

따라서 노동당이 독자적인 급진좌파 정당으로 남아 있으면서도, 노동자 투쟁, 민주주의, 세월호 등을 놓고 공동전선 방식으로 단결과 협력을 꾀하는 게 전체 노동운동에도 이로울 것이다.

입력 2015-06-2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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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당대회 이후

좌파 정당으로 남는 것이 노동자 투쟁에 더 낫다

김문성

6월 28일 노동당 당대회에서 진보결집파가 내놓은 당원총투표 안건이 부결됐다. 이 안에 재석 대의원 2백84명 중 1백18명(41.5퍼센트)이 찬성했다.

이로써 국민모임,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등 4자 대표의 “공동선언에 기초하여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추진”하는 과정이 주춤하게 됐다.

결과가 이렇게 나온 것은 노동당 대의원들에게 진보 재결집 정당이 현재의 정의당보다 더 왼쪽의 정당으로 될 것처럼 보이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관련 기사인 151호 온라인 기사 ‘노동당 당대회에 부쳐 ─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정의당과 통합하는 것은 오른쪽으로의 이동이다’를 참조하시오.)

노동당 자체의 정치 노선은 주류 사회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의당보다 왼쪽에 있는 좌파적 개혁주의라 할 수 있다. ‘통합 대 독자’ 갈등이 오른쪽으로 향하는 통합 움직임에 합류할 것인가 말 것인가라는 성격을 띨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물론 가장 중대한 문제인 당의 통합 문제를 다루는 것이므로 일반으로 당원 전체의 토론과 총투표로 결정하는 것이 더 폭넓은 의견 수렴 방식일 것이다.

그러나 나경채 대표 등이 내놓은 총투표 안은 당원들에게 통합 여부의 결정권을 주는 안이 아니었다.(결정권은 당대회에 있었다.) 이미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 추진”에 대표자 간 합의까지 한 마당이었다.

따라서 우경적 통합 결정을 위해 당대회를 무력화하려고 총투표를 이용하는 것 아니냐는 반대파의 의심을 풀 수 없었다. 결집파 지지 대의원들의 일부도 총투표 안건의 취지를 이해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4자 통합보다 좌파적 정당으로서 투쟁 건설에 초점을 둔 총투표 반대 발언이 더 지지를 얻었던 이유다.

이런 불신에는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정의당 천호선 대표가 한 언론 인터뷰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천호선 대표는 “통합 신당은 두 자릿수 지지율이 가능할 것으로 본다. … 이렇게 진보정당이 기반을 다진 후 … 2017년 대선에서 정권교체를 위한 야당 연합 … 정권교체 후에는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4자 통합에 반대하는 쪽이 경계해 온 우경 노선이다.

천호선 대표를 당대회에 초청한 나경채 대표 등 결집파 지도자들은 이날 자신들을 더 곤혹스럽게 한 천 대표의 인터뷰 내용을 누구도 나서서 비판하지 않았다.

△노동당 2015 정기 당대회에서 4자 통합을 위한 안건이 부결됐다. 그러나 노동당 내 논쟁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사진 출처 노동당

4자 통합은 우경화

어쩌면 천 대표의 인터뷰는 노동당 내 좌파를 4자 통합 주도자들이 반기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마치 2011년 진보대통합 논의 때 진보신당 좌파들의 합류를 꺼린 옛 민주노동당 당권파가 9월 진보신당 당대회를 앞두고 자극적인 발언을 쏟아낸 일을 떠올리게 한다.

심상정 전 정의당 원내대표는 천호선과 대조적으로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함께하자며 옛 진보신당 당원들에게 공개 사과를 했다(<레디앙>, 6.24). 그럼에도 독일 사민당의 고데스부르크 강령(실천은 물론이고 말에서조차 자본주의 변혁과 계급투쟁을 포기하고 반공주의를 표방한 강령)을 새 ‘이정표’로 내세워 급진좌파 정당인 노동당과의 차이를 분명히 하는 걸 잊지 않았다. 천호선, 심상정 두 지도자는 이미 ‘헌법 내 진보론’이나 ‘튼튼한 안보’론으로 좌파와 선을 그은 바 있다.

따라서 급진좌파의 일부인 노동당이 앞으로 우경화하지 않는 한, 4자 통합에 참여할 명분은 갈수록 더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동당 내부에서 제동이 걸린 당대회 결과 때문에 진보 재결집 운동의 주도권은 지금보다 더 정의당 지도부에 쏠릴 것이다. 그래서 노동당 분열 위기는 여전하다고 볼 수 있다.(이 글을 쓴 직후, 예상대로 통합을 추진했던 나경채 대표와 권태훈·김윤희 부대표가 사퇴했다.)

다급해진 나머지, 노동·정치·연대와 연계된 민주노총의 중앙파·국민파 지도자들이 통합 정당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경화한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의당과의 통합 때문에 좌파 정당인 노동당이 분열하는 것은 (선거적 성과는 거둘지 몰라도)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이미 2012년, 통합진보당이 총선에서 역대 최고 성과를 거뒀지만, 경제적·지정학적 위기가 강요한 정치적 분화 탓에 다시금 분열로 이어진 것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은 좌파가 반자본주의·반제국주의 정치를 날카롭게 벼리며 기층에서 투쟁 건설에 기여하면서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노동당도 우경적 4자 통합에 합류하기보다 ‘운동 정당’으로 남아 노동자 투쟁, 각종 삭감, 세월호 등 여러 쟁점에서 공동전선 방식으로 단결을 추구하는 게 전체 노동운동에 이로울 것이다.

입력 2015-07-0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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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좌파 개혁주의의 위기와 모순

김문성

진보재결집을 둘러싼 노동당 논쟁은 노동당 당세 약화가 그 배경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신당과 사회당 합당 이후로만 따져도 당권자가 2천 명 넘게 줄었다. 20~30대 청년 당원들이 그 상당수를 차지한다. 당권자 감소 때문에 재정적으로도 어려워졌다.

권태훈 부대표 등은 이것이 진보의 분립·분열로 말미암은 위기의 일부라고 진단한다. 진보 재결집론은 이런 위기의 돌파구로 제안된 것이다.

그러나 좌파가 더 성장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려면, 노동자 투쟁 수준이 전반적으로 더 높아져야 한다. 돌아보면, 옛 민주노동당의 등장과 성공의 배경에는 1997년 연초 민주노총 파업과 그해 말 경제공황의 후폭풍에 맞서는 만만찮은 투쟁들이 있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성장도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지금 같은 위기의 시대에는 좌파가 아래로부터의 노동운동을 고무하는 일이 중요하다. ⓒ이미진

근본적으로 노동계급 투쟁만이 이 사회의 지배자들인 자본가들의 이윤에 주된 위협을 가할 수 있다. 노동자들은 경제투쟁일지라도 이윤 창출을 멈추는 투쟁에 참여해 노동 ‘계급’으로서 힘과 연대를 자각할 때 의식과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역사적으로 이런 배경에서 각종 정치·사회 운동들이 활성화되곤 했다. 수동적으로 사회 상층부가 제공하는 개혁을 선물 받는 것은 계급의 정치의식 향상과 별 연관이 없다.

요컨대, 핵심 과제는 계급투쟁을 활성화하는 데 좌파가 기여할 수 있느냐다.

경제와 지정학의 위기 시대에 계급 간 양극화는 노동운동 안에서도 좌우 정치 양극화를 낳는다. 개혁주의는 체제의 번영을 전제로 개혁을 제공하겠다는 전략이므로 체제의 위기 때는 개혁주의 운동 자체가 지배계급을 도와야 한다는 압력과 기층의 압력 사이에서 동요하는 위기를 겪다가 좌우로 분열하곤 한다.

최근 유럽에서 주류 개혁주의가 심각한 배신을 저지르며 우경화한 것, 이를 비판하며 좌파 개혁주의가 부상하는 것이 그 사례다. 또, 10여년 만에 민주노총에 좌파 지도부가 등장한 것이나, 4·24 총파업 직후에 노동운동의 우파 지도자들이 연이어 배신 행위들을 저지른 것도 이런 운동 내 좌우 양극화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좌파 개혁주의는 기층의 전투적 압력을 더 많이 수용하는 개혁주의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좌파 개혁주의가 좋은 구실을 하기도 하지만, 그 역시 일관되지 않고 기층의 압력 변동에 따라 동요한다는 뜻이다. 한편에선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하고 우경적 4자 통합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지역 연대, 세월호, 최저임금 등에서 기여를 하기도 한다.

그런데 전국적 계급 세력균형이 바뀌려면, 기층의 전투성이 노동운동 상층의 보수성에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 결국 좌파의 좌파인 급진 좌파의 임무가 매우 중요하다.  노동계급이 사회 전체에 그래야 하듯이 급진 좌파도 자신의 세력과 유용성을 노동계급 대중에게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2013년 초에 보건노조, 그해 중반에는 전교조, 그해 말에는 철도노조가 전체 운동에 부양력을 제공했다. 그래서 민주노총에 10여년 만에 좌파 지도부가 조합원 직선으로 당선한 것이나, 이 집행부가 총파업을 조직하겠다고 했을 때 기대와 지지를 많이 받은 것도 방증이 될 수 있다.

포섭된 노동?

그러나 이런 조직 노동운동의 힘을 고무해야 한다는 점에서 노동당의 좌파 개혁주의 정치는 약점을 보여 왔다. 노동당은 주로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을 “포섭된 노동”(옛 진보신당)이라고 평가절하하고, “불안정 노동”(옛 사회당)을 새로운 주체로 부각시켰다. 특히, 경제투쟁(주로 임금과 노동조건을 둘러싼 단위 작업장별 투쟁)을 ‘집단 이기주의’라며 폄하해 왔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 좌파 지도부의 등장을 기층 투쟁 활성화에 이용하는 것에도 별 의욕을 안 보였다. 투쟁의 선봉에 서야 할 조직 노동계급의 노동조건 방어에도 뜨듯미지근했다.

일부는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노동운동보다 급진적 사회운동을 더 가치 있게 보기도 한다. 이는 장점도 있지만 약점이 더 크다. 생산 현장에 기반한 노동운동과 유리된 사회운동은 사회적 뿌리가 얕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대체로 급속히 떠올랐다가 급속히 가라앉곤 한다. 그러면 일부는 우경화해 노골적인 사회연대전략(국민연금하나로) 같은 포퓰리즘으로 가기도 한다.

요컨대, 노동운동의 급진화를 요구하면서도 그 급진화에 꼭 필요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흔히 취하는 투쟁 형태(경제투쟁)에는 거리를 두는 모순이 노동당 정치의 약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약점 때문에 노동운동 안에 더 넓게 뿌리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고, 현재 정치화 수준과 더불어 당세 위기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를 들면, 민주노총 4·24 총파업 지지 논평에서 파업 요구의 하나인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는 언급도 하지 않았다. 노동당 공식 논평에서 박근혜의 ‘공공부문 정상화’에 대한 폭로나 반대를 보기 힘들었다. 공공부문은 대표적인 ‘정규직 고임금 직장’으로 찍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또 다른 사례로, 전통적으로 노동시간 단축을 중요 의제로 삼아 온 노동당이 현대차·기아차 노동자들의 노동시간 단축 투쟁과 그 쟁점에 무관심한 것도 같은 맥락인 듯하다. 이 투쟁들은 공장 안 모든 노동자를 위한 투쟁이며, 각 부품업체 노동자들에게도 큰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 실제로 현대차 현장 투사들과 조합원들은 2013년 봄 비공인 파업을 벌이며 투쟁의 잠재력을 보여 줬다.

또한 앞서 언급한 이 노동자 부분들은 모두 지배자들이 노동계급 전체의 노동조건을 악화시키기 위해 제압해야 할 중요한 고지로 보는 부분들이다. 좌파가 이 노동자들의 투쟁을 외면해서는 다른 투쟁에도 도움되기 어려운 까닭이다. 노동자 투쟁이 아니어도 말이다. 예를 들어, 민주노총 4월 총파업이 정말로 성공적이었다면, 세월호 투쟁에도 힘이 됐을 것이다.

공상적 사회주의

정규직 노동조합의 경제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하며 열악한 비정규직 투쟁이어야만 더 급진적이라는 식으로 보는 것은 장점보다 약점이 많다. 이것은 과학적 전략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도덕주의, 즉 이성과 선한 의지를 앞세워 사회 구성원의 조화와 설득을 추구한 공상적 사회주의(특히, 1858년의 ‘참 사회주의’)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런 정치는 전략, 계급투쟁 등을 경시하는 2000년대 초·중반 자율주의 정치의 유산일 수도 있다.

이런 도덕주의는 노동운동의 약점을 노동자 대중의 현재 의식 수준에서 찾는 데서 주로 비롯하는데, 이런 이데올로기주의적 접근법으로는 ‘이기적인’ 경제투쟁보다는 이데올로기 투쟁(교육과 선전, 선거)을 더 중시하게 된다.

정규직이나 기존의 조직 노동자들의 의식을 낮춰 보는 외관상의 급진성은 실제로는 기회주의를 낳기도 한다. 상층 지도자들의 투쟁 회피주의(관료주의)와 대중의 후진적 의식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노동운동을 이데올로기주의의 잣대로 바라보면, 노동운동 안에서 상층과 기층의 이해관계가 꽤 다른 현상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계급 간 중재자를 추구하는 노동운동의 상층 개혁주의 지도층의 입맛에 딱 맞는 사회연대전략(국민연금하나로, 건강보험하나로, 보편증세론 등)을 옛 진보신당 출신 지도자들 일부가 지지하고 사회당 계열이 분명하게 반대하지 않은 것도 그 사례다.(사회당은 과거에 사회연대전략을 비판했다.)

결국 노동당 정치의 수동적 급진성도 경제 침체기 당의 어려움을 가중시켰을 것이다.

수동적 급진성에는 물론 노동당의 다양한 정치적 구성도 한몫했을 것이다. 옛 진보신당 지도부는 무지개연합 식의 진보 재구성을 표방해 왔다. 그러나 다양성의 공존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로 반드시 진보적 구실을 하는 것은 아니다. 한편에서는 자율주의 관성이, 한편에서는 이른바 ‘당적 질서’가 작동한다. 그 결과, 이질적 구성은 시너지 효과보다는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일종의 정치적 “늪”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노동당 내 논쟁은 민주적 토론을 통한 결정과 상호 승복보다는 종종 상호 불신 속에서 징계로 해결되곤 한다. 2012년 대선에서 김순자 후보 지지 당원이 제명된 것이나 지난해 7·30 재보선에서 노동당·진보당의 단일후보가 된 김종철 전 부대표가 징계를 받은 것이 그 사례다.

반제국주의

끝으로, 노동당의 좌파 개혁주의가 제국주의 문제에 큰 의욕이 없는 것도 특별히 지적할 문제다. 최근 강상구 대변인은 <레디앙> 기고에서 이렇게 반성한다.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 문제[에서] … 진보정당은 2009년 이후 단 한 번도 주요 행위자가 되어 본 적이 없고, 그럴 만한 행위자들을 조직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그는 북한의 핵무장이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의 일차 원인인 듯이 주장하고(미·중간 제국주의 갈등이 더 선차적 원인이다), 따라서 그 해법도 비핵선언과 남북 적대 청산으로 “한미동맹의 근거를 자연스럽게 소멸”시키자고 주장한다.

이런 공상적 개혁주의의 관점으로는 박근혜 정부와 한미동맹에 일관되게 맞설 수가 없다. 사회당 경향도 제국주의 문제에서는 더 나은 것이 없어 보인다. 여기서도 도덕주의와 평화주의가 현존 제국주의 질서에 대한 과학적이고 혁명적인 이해에 방해가 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제국주의 체제에 대한 총체적 이해와 전략이 부실하면, 한반도를 둘러싼 제국주의 간 갈등 속에서 좌파는 끊임없이 진영 논리 그리고/또는 자국 지배계급 지지 압력 사이에서 동요하며 길을 잃을 수 있다.

입력 2015-07-0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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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사회주의자들의 토론

혁명가들은 좌파적 개혁주의와 어떻게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김종환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발제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 중앙위원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발제했다.

“오늘날 유럽 좌파는 역사적으로 새 국면에 진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주로 유럽 얘기를 할 테지만, 그 이론적·전략적 함의는 유럽이 아닌 곳에서 활동하는 좌파들에게도 큽니다.

“새 국면의 배경은 자본주의가 심대한 경제 위기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는 금융 불안정과 저성장이 계속될 것이라면서 ‘장기 불황’이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미국 오바마 정부의 수석 경제자문이기도 했던 로렌스 서머스도 바로 어제 <파이낸셜 타임스>에 글을 써, ‘저성장과 금융 불안정 때문에 그리스 위기와 중국 증시 폭락 같은 것이 일어나는 현실을 어찌해야 하는가’ 하고 걱정했습니다.

“지배계급은 경제 위기에 대응해 신자유주의를 더욱 밀어붙이는 방법을 택했고, 긴축은 그 결과물입니다. 긴축은 거대한 저항을 낳았는데, 특히 그리스와 스페인에서는 격렬한 저항 속에서 급진좌파가 떠올랐습니다.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의 부상은 국제적으로 혁명적 좌파와 급진좌파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특히 시리자는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한다는 점에서 영향이 더 컸습니다. 또한 긴축 반대 운동이 어려움에 처해 있어 국제 좌파들이 이들의 선거 승리에 온 신경을 집중하는 면도 있습니다.

“시리자와 포데모스는 역사가 사뭇 다릅니다. 그리스에서는 전통적으로 공산당의 영향력이 강했고, 시리자는 원래 공산당에서 분화해 나온 조직입니다. 스페인에서는 2011년 인디그나도스 운동[‘분노한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광장 점거 운동을 가리킨다]으로 표출된 광범한 분노와 기성 정치권에 대한 환멸이 젊은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빠르게 결집하면서 포데모스가 성장했습니다. 그러니까 시리자는 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를 표방하는 반면 포데모스는 다양한 포스트마르크스주의 흐름을 강조한다는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 두 정당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공통점이 있습니다. 스타시스 쿠벨라키스는 저와 토론하면서 그 공통 이데올로기를 ‘좌파적 유럽주의’라고 불렀습니다. 유럽의 틀 안에서 긴축을 중단시키고 각국의 주권을 회복한다는 것이 ‘좌파적 유럽주의’의 핵심 내용입니다.

“시리자는 유럽연합 내부의 갈등을 이용해 적절히 타협하면 유럽연합의 틀 안에서 [시리자의 2015년 총선 공약이었던] 테살로니키 강령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시리자는 선거 프로젝트로서는 큰 성공을 거뒀습니다. 올해 1월 총선에서 승리했고, 1주일 전 국민투표에서도 크게 승리했습니다.

‘좌파적 유럽주의’의 한계

“그러나 시리자의 한계는 선거 후에 극명히 드러났습니다. 두 차례의 결정적 계기가 있었습니다. 첫째, 2월 20일 시리자는 추가 구제금융은 없을 것이라던 자신의 공약을 내던지고 전임 정부의 [긴축] 양해각서와 협상을 계승하기로 했습니다. 둘째, 7월 13일 시리자는 유럽연합에 굴복했습니다.

“유럽연합은 시리자에 한 치도 양보하지 않으려 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 줬습니다. 부채 탕감 반대, 국제 기구 감시 하에 진행되는 민영화 유지, 선출된 정부의 결정을 재정위원회가 뒤집을 수 있도록 하는 재정 협정(그리스뿐 아니라 유럽연합 소속 거의 모든 국가가 참여하고 있습니다) 유지 등에서 유럽연합은 조금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의 하나는 독일 지배계급이 양보하는 것을 병적일 정도로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독일 지배자들은 그리스에서 긴축의 고삐를 조금이라도 늦추면 독일의 경제 모델이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걱정합니다.

“긴축 반대 세력이 성장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이유도 있습니다. 독일 총리 메르켈은 “내가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에게 보여 줘야 한다”고 했습니다. 즉, 그리스인들이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에 감히 도전했으므로 그 대가를 치른다는 사실을 만천하에 드러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들로 ‘좌파적 유럽주의’는 그 한계를 드러냈습니다. 유럽연합이라는 틀은 치명적 함정이라는 사실이 시리자와 시리자에 투표한 그리스인들에게 드러났습니다.

“‘좌파적 유럽주의’가 개혁주의의 최신 버전이라는 점에서, 그 내부 모순이 드러난 것은 중요합니다. 지난 10~15년 동안 [유럽] 개혁주의 진영에서는 양극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면서 ‘사회적 자유주의’로 나아간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좌파적 유럽주의’를 채택한 급진좌파들이었습니다.

“우리는 급진좌파 정당들과 어떻게 관계 맺어야 할까요? 먼저, 우리가 이미 취한 태도를 돌아봅시다. 우리는 급진좌파의 부상을 반겼고 그들이 대표하는 광범한 운동의 일부가 되려 했습니다. 우리는 종파적으로 굴지 않으려 했고, 이는 옳았습니다. 동시에, 우리는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려 했습니다.

“이를 현실에서 구현하는 방법은 다양했고 단일한 공식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독일의 《마르크스21》 동지들은 디링케(좌파당)에 참여하고, 스페인의 ‘엔루차’ 동지들은 포데모스나 카탈루냐 민중연합후보(CUP)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동지들은 [시리자가 아니라] 더 작은 세력인 안타르시아에 속해 있습니다.

“우리가 커다란 급진좌파 단체 안에 속해 있든, 더 작은 연합단체에 속해 있든, 독립적 조직으로 있든, 세 가지가 중요합니다. 첫째, 이데올로기의 명료함[뚜렷하고 분명함], 둘째, 정치적 응집력, 셋째, 독자적으로 운동에 개입하는 능력.

“이 세 가지 조건이 충족되면 광범한 운동을 대변하는 모종의 급진좌파 정당에 속하지 않더라도 운동에 개입할 수 있습니다. 바로 SEK에게서 배워야 하는 점입니다.

“SEK는 시리자에 참가하지 않기로 했고, 이 때문에 국제적으로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그러나 SEK는 시리자에 들어가면 독립적으로 운동에 개입하기가 힘들다고 보아 그런 결정을 했습니다. 지금 시리자 좌파인 ‘좌파연대’(Left Platform)가 얼마나 무능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지를 보면 SEK가 옳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SEK는 또한 혼자서는 그리스의 세력관계를 바꾸기가 버겁다는 것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안타르시아라는 더 넓은 반자본주의 좌파연합체를 결성했습니다. 안타르시아에는 공산당에서 분화한 신좌파조류(NAR)라는 정치단체 등 다양한 단체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SEK는 안타르시아를 통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습니다. 단적으로 안타르시아는 정부의 국민투표 실시 발표 몇 시간 만에 반대표를 찍자고 주장하는 ‘오히’[OXI, ‘반대’라는 그리스어 낱말] 리플릿을 뿌리며 선동했습니다. 정작 국민투표 실시를 선언한 시리자 자신은 국민투표를 놓고 분열했습니다.

“안타르시아는 매우 효과적으로 반대표를 주장했습니다. 7월 5일 저녁, 반대 운동 측의 압도적 승리를 축하하는 시위가 신타그마 광장에서 벌어졌는데, 안타르시아가 깃발을 들고 입장하자 엄청난 환호가 쏟아졌습니다. 광장에 모인 사람들의 압도 다수가 시리자 지지자였는데도 말입니다.

“안타르시아의 구실이 어찌나 컸던지 시리자 사무총장조차 시리자 기관지에서 ‘안타르시아는 ‘오히’ 운동에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결코 다른[SEK 등 안타르시아 소속] 좌파들에 우호적인 인물이 아니었지만 안타르시아의 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시리자 지도부와 ‘좌파연대’가 위기를 겪는 지금 안타르시아는 노동자 운동에 더 넓은 뿌리를 내릴 기회를 갖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쓰라린 방어적 투쟁이 계속될 것이고, 7월 15일 총파업은 그 시작입니다.

“SEK가 안타르시아를 결성하고 성공적으로 개입할 수 있었던 것은 SEK 동지들이 격렬한 논쟁을 통해 세 가지 조건(이데올로기의 명료함, 정치적 응집력, 독립적으로 운동에 개입하는 능력)을 지켜 냈기 때문입니다.

논쟁에 개입하기

“제가 이 점을 강조하는 이유는 광범한 운동에 속하고, 커다란 정당에 속하고, 게다가 그 정당이 선거에서 많은 표를 받으면 마치 자신이 몹시 중요해진 것처럼 착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서 독립적 세력으로 활동하지 않고, 거기서 만난 사람들을 당면 문제에 관한 전술들뿐 아니라 우리의 정치 일반으로도 가까워지도록 설득하려 하지 않으면 커다란 어려움에 처하게 됩니다. 효과적으로 개입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조직적으로 녹아들 수 있습니다.

“지금은 국제 좌파들 사이에 혼란이 많은 시기입니다. 이 혼란은 [1999년] 시애틀 시위나 [2011년] 아랍 혁명 등 여러 투쟁에도 불구하고 신자유주의 공격이 그치지 않고 여전히 운동의 돌파구가 생기지 않은 상황을 반영합니다.

“국제적으로 운동이 전진하지 못하면서 갖가지 내향적 논쟁과 조직 분열 등이 벌어졌고 우리 SWP도 힘든 시기를 보냈습니다. 이런 환경에서 이데올로기의 명료함, 정치적 응집력, 특히 독립적으로 개입하는 능력을 지켜 내는 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교조적으로 굴자는 것이 아닙니다. 현재 좌파 안에는 아주 중요한 논쟁들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특히, 새로운 좌파 정당 건설에 대해, 오늘날 노동계급의 상태와 잠재력에 대해, 여성해방과 페미니즘 등에 대해 말입니다.

“우리는 분명한 목적을 갖고 그 논쟁에 개입해야 합니다. 자유주의적 학자들처럼 ‘이것도 저것도 모두 소중한 입장들이고 사상은 다양할수록 좋기 마련’이라는 태도를 취해서는 안 됩니다. 개입의 목적은 우리의 정치 전통을 계발하고 더 풍부하게 하는 것입니다.

“과거에 했던 주장을 되풀이하기만 해서도 안 되지만, 그 주장이 이론과 실천의 면에서 아주 소중한 자산이라는 것을 재발견하려고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을 현실에 적용해서 더 풍부하게 발전시켜야 하지만(특히 여성 차별과 해방에 관한 이론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학계 등에서 유행하는 이론을 그대로 가져다 쓸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고유한 전통을 계승·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론 자체가 최종 목표인 것은 아닙니다. 이론은 우리가 정치적으로 더 확실하고 분명해지는 데 기여하기 위한 것이고, 정치적 명확성은 다시 우리의 개입 능력을 높이기 위한 것입니다.

“지금은 아주 흥분되는 일도 일어나지만, 또한 끔찍한 일도 벌어지는 시기입니다. 그리스 국민투표를 둘러싼 환희가 불과 1주일 만에 굴욕감으로 바뀐 것이 대표 사례입니다. 이런 시기일수록 우리는 신속하게 대응할 능력을 갖춰야 하고, 또 급변하는 현실을 이론적으로 이해할 능력도 갖춰야 합니다.

“그런 점에서 SEK 동지들의 경험에서 정치적 교훈을 이끌어 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청중 토론

△7월 5일 반대(OXI) 측의 승리를 축하하는 시위에 참가한 안타르시아와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 활동가들. ⓒ사진 출처 그리스 <노동자 연대>

이어서 청중 토론이 진행됐다. 청중 토론에서는 영국과 독일뿐 아니라 한국, 아일랜드, 스페인, 덴마크, 네덜란드, 폴란드, 체코 등지에서 온 사회주의자들이 자국의 경험을 들어 주장했다.

독일 《마르크스21》 활동가들은 좌파당 안에서 시리자 문제로 일어난 논쟁을 소개했다. 지금까지 좌파당 의원들은 독일이 다른 나라에 강요하는 긴축에 당론으로 반대했는데, 2월 20일 합의에 대해서는 처음으로 다수가 찬성표를 던졌다. 그 이유는 치프라스가 직접 전화를 걸어 자신이 이끌어 낸 합의를 지원해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었다.

《마르크스21》 동지들은 시리자 정부가 아니라 긴축을 반대하는 그리스 노동자들에게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합의안 반대를 주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심지어 《마르크스21》 측의 한 동지도 시리자에 연대해야 한다는 압력 때문에 반대표를 던지지 못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로부터 독일의 사회주의자들은 “트로이카가 시리자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시리자 정부가 광범한 좌파 진영에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 혁명가들에게까지 우경적 압력을 가하는 연쇄 고리’가 있다면서 혁명가들이 그런 압력에 잘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독일 사회주의자들은 시리자 중앙위원회가 4월 이래 소집된 적이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시리자 의원단이 기층 지지자들과 단절돼 있다고 지적했는데, 인상적인 주장이었다.

유럽연합에 대한 인상적 주장들도 많았는데 대부분 캘리니코스가 정리 연설에서 다뤄, 따로 소개하지는 않겠다. 그리고 (한국) 노동자연대의 최일붕 동지와 기자 자신도 발언했는데, 기사 말미에 소개하겠다.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정리 연설

마지막으로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정리 연설이 있었다.

“독일의 한 동지가 레닌이 1915년에 ‘유럽합중국’ 개념을 비판하며 쓴 글을 소개했습니다. 이 글은 매우 유용한 글입니다. 당시 카우츠키뿐 아니라 트로츠키도 유럽합중국 개념을 지지했는데 레닌은 오히려 비판했습니다. 핵심은 자본주의의 불균등 발전 때문에 유럽 국가들을 한데 묶은 유럽합중국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유럽연합의 구조적 특징도 레닌이 말한 불균등 발전을 보입니다. 유럽연합 안에서 독일은 수출이 증대해 경제가 성장했지만 지중해 연안의 남유럽 나라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불균등 발전이 유럽연합의 핵심적 특징이고, 일각에서 얘기되는 ‘통일 유럽’이나 추상적인 ‘범(汎)유럽 연대’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유럽연합 잔류를 묻는 국민투표가 치러지는 것에 대한 토론도 있었습니다. 물론 영국의 국민투표는 우리가 요구해서 치러지는 것은 아닙니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하더라도 유럽연합 반대 목소리는 주로 좌파들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영국의 국민투표를 유럽연합에 대한 좌파적 비판을 재건할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우리는 민족주의나 중국 등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지 않으면서도, 국제주의 관점으로 유럽연합을 반대하는 주장을 개진해야 합니다.

“극좌뿐 아니라 극우도 신자유주의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좌파가 충분히 강력하지 못하면 극우가 성장할 것입니다.

“그리스 SEK에게서 배우자는 것이 그들의 전술을 그대로 따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보다는 혁명적 좌파가 [급진좌파 정당으로부터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한다는 것이 다른 단체들과는 일절 함께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더 큰 개혁주의 단체 안에서 활동할 때는 그저 독자적 조직을 유지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독립적으로 주도성을 발휘해 [운동과 이슈에] 개입할 능력을 가져야 하고 또 주도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정치적 독립성

“SEK는 단지 이론적으로 올바른 분석을 제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맹렬하게 싸우고 운동을 건설했습니다. 그 결과, 운동 안에서 시리자가 절대적 지지를 누리는 가운데서도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습니다.

“예컨대 2012년 이후에는 그리스 노동자들이 시리자의 집권을 기다리며 노동자 투쟁이 다소 잠잠해졌습니다. 그러는 동안에도 SEK는 파시즘과 인종차별 문제를 놓고 운동을 건설했습니다. 당시 공산당(KKE)과 시리자 모두 크게 열의를 보이지 않았는데도 말입니다. SEK는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운동’(KEERFA)이라는 공동전선을 [2009년] 결성했고, 성공적으로 대중 운동을 건설하면서 영향력을 키웠습니다.

“시리자는 국제적으로 많은 좌파들을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습니다. 우리[영국 SWP]도 약 3년 전 미국의 국제사회주의단체(ISO)나 오스트레일리아의 ‘사회주의적대안’(Socialist Alternative)과 시리자를 두고서 논쟁을 벌였습니다.

“제 생각에 그 논쟁들은 ‘오늘날의 상황에서 레닌주의 조직을 건설하는 것이 맞는가’ 하는 문제와 연결돼 있습니다. 범좌파 정당을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로, 레닌주의 정당 건설 노력을 청산하는 입장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SWP 안에서 문제가 터지게 된 구체적 계기를 사소하게 여길 생각은 없지만, 그럼에도 당시 SWP를 공격했던 사람들의 상당수가 시리자 지지자였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당시 어느 회의에서 SEK의 파노스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지금 SWP에 대한 공격의 더 광범한 맥락을 놓쳐서는 안 된다. 바로 진정한 레닌주의 조직을 건설하려는 노력에 대한 공격이다.’

“시리자가 좌파들을 끌어당기는 현상의 흔적은 우리 경향 안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독일 동지들이 주최한 ‘맑시즘2015’에서 [시리자를 지지하는] <자코뱅> 편집자가 연설하고, 또 청중이 그에게 열렬히 환호한 것도 그런 인력(引力)을 보여 준다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시리자가 좌파에 끼친 영향은 광범합니다. 우리가 그런 영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의 분석이 옳았음이 이제 현실에서 입증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리자 논쟁에는 더 중요한 함의도 있습니다. 오늘날 여러 경향이 함께해야 하고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는 그중 하나일 뿐이라는 주장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조직이 실천에서 가장 효과적으로 개입할 수 있음을 보이려 합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마르크스주의 이론도 갈고 닦습니다.

“오늘날 그리스에서 전개되는 상황과 SEK가 거기서 하는 구실은 실로 중요합니다. 우리가 어디에 있든지 그리스 동지들의 경험에서 올바른 교훈을 이끌어 내어 정치적으로 더 명확해질 수 있어야 합니다.”

한국 사회주의자들의 기여

직장과 캠퍼스에서 정치적 핵심조직을 형성해야 한다

노동자연대 운영위원 최일붕 동지는 국제주의적 관점으로 볼 때 결코 제국주의 문제를 간과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긴축만이 유일한 관심사여서는 안 된다는 함의였다.] 그는 제국주의 국가에서는 대외정책이 국내 정치의 연장인 성격이 강하지만,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한국 같은 곳에서는 그 반대인 경우가 흔해, 제국주의 간 갈등이 국내 정치에 영향을 끼친다며 통합진보당 강제 해산을 그 사례로 들었다.

최일붕 동지는 제국주의 갈등이 고조됨에 따라 진영논리가 부활하는 조짐도 보인다고 지적했다. 중국 차악론이나 마오쩌둥 시대에 대한 착각이 있어 중국 국가의 성격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고, 이에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국가자본주의론을 통해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원칙을 방어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이와 함께, 최일붕 동지는 현재 국면에서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 운동의 기층에 뿌리를 내리는 데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노동자들에게 신문을 판매하고 적절한 주장을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매우 부족하다고 힘주어 말했다. 회원들이 투쟁 속에서 단련되고, 규율을 익히고, 전투적 노동자들 사이에서 신뢰도 얻어야 하는데, 이런 일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고,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지금부터 현장과 캠퍼스에서 전투 능력을 갖춘 조직을 건설하는 데 힘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그는 사회주의자들이 다른 사람들을 설득해 그들을 회원으로 가입시키고, 그래서 단체가 성장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면 선전주의로 빠질 위험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는 일부 사회주의자들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언급하지 않고 자기들이 사회주의자 의원을 보유하고 있고 청년들을 많이 가입시키고 있다고 자랑하는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었다.

훈련

최일붕 동지는 사람들을 가입시키는 것뿐 아니라 회원들을 훈련시키는 데에도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면서 10여 년 전에 크리스 하먼이 거리 시위 참가는 좋은 일이지만, 거리 시위를 통해서는 전술을 교육·훈련받을 수 있는 지속적 조직을 건설할 수 없다고 말한 것을 인용했다. 진짜 사회주의자가 되려면 치열한 전투에 직접 뛰어들어 경험을 쌓고 단련돼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2년 전 SWP 위기 때 SWP의 많은 학생 당원들이 흔들렸지만 대학 점거 투쟁에 참여해서 승리를 거둔 일부 학생 당원들은 굳건했는데, 바로 그런 훈련을 받은 덕분이라고 주장했다.

기자인 나도 사회주의자들이 노동자 운동에 개입할 때 만만찮은 어려움이 뒤따르므로 인내심을 갖고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노동자연대의 경험을 들어 설명했다. 초기에 경험 부족으로 조직노동자 운동 담당자들이 잇따라 고배를 든 사례, 단체가 조직노동자 운동 쪽으로 역량을 기울이는 것에 반대한 한 지도적 회원이 거의 모든 조직노동자 회원의 반대로 철저히 패배한 사례 등을 소개했다.

그러나 노동자연대는 조직노동자 운동의 기층에 뿌리내리는 것이 시급하다고 판단했고, 그런 분석에 따라 시행착오와 내부 반발을 뚫고 수년에 걸쳐 노력을 기울인 결과, 2013년 전교조 투쟁과 철도 파업, 2015년 공무원노조의 연금 투쟁 때 투쟁의 한가운데에서 영향력을 키울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국 사회주의자들은 단지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올바른 정책의 필요성뿐 아니라 오늘날 조직노동자 운동의 개혁주의(노조 관료가 대표하는)가 제기하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들을 강조하고 싶었다. 특히 노조 지도자들의 집회·시위 선호(파업보다)와 그저 경고성의 형식적인 하루 파업을 넘어설 중기적 대안을 강조하고 논의하고자 했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자 운동 기층에 뿌리를 내려야한다. 7월 4일 민주노총 2차 총파업을 지지하는 전국 현장 활동가들 기자회견. ⓒ이미진

입력 2015-07-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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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추진 중인 ‘노동자 정치 세력화’, 어떻게 볼 것인가?

김인식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진보결집+ 등 4조직 대표자들이 올 11월에 새로운 대중적 진보 정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해 ‘진보혁신과 결집을 위한 연석회의’(이하 4자 연석회의)를 구성했다.

4자 연석회의는 “보수정치 독점 구조의 혁파”를 포부로 밝혔다. 대중적 불신과 혐오의 대상인 양당 체제의 혁파는 진보성을 띠는 정치 프로젝트다.

△9월 2일 ‘진보혁신과 결집을 위한 연석회의’의 구성을 알리는 정의당,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진보결집+ 4조직의 기자회견. ⓒ<참세상>

오랫동안 한국 정치 체제를 지배해 온 자본가 양당 체제를 무너뜨리는 것은 만만찮은 과제일 것이다. 그러나 새정치연합이 워낙 꾀죄죄해, 그 당 왼쪽에서 진보 정치 세력이 성장할 공간이 다소 형성될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 위기 때문에 개혁의 여지가 남아 있지 않아 한국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물론 자본주의 경제 상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경제 상태가 나빠,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개혁을 제공하지 못하거나(개혁 없는 개혁주의) 심지어 도로 빼앗으려 하면서(개혁을 빼앗는 개혁주의)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노동계급의 충성심을 크게 잃었다. 청년들의 광장 점거 운동에서 “정당 반대”가 유력한 정서로 떠오른 배경 중에는 이러한 사회민주주의의 위기가 있었다.

그러나 노동자 운동의 유력한 이데올로기로서 개혁주의가 죽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영국 노동당 내 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긴축 반대 정서에 힘입어 결국 당수로 선출된 데서 보듯이, 심지어 서구에서도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생명력은 질기다. 개혁주의가 자본주의 사회에서 겪는 노동계급의 모순된 일상 경험을 바탕으로 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투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노동조합의 협상이나 “국회 대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때문에 정치 경향으로서 개혁주의는 계속 존속할 수 있다. 2000년에 작고한 팔레스타인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이렇게 말했다. “노동자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한,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한 자신감이 없을 때, 노동당은 결정적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게다가 한국은 아직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집권을 경험하지 못했다. 시리자의 경우에서 보듯이, 개혁주의 정당의 모순은 집권 때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노동계급은 아직 집권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배신 같은 것을 경험하지 못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성장할 가능성을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점진적 사회 개혁 전략과 달리, 그 당의 성장은 점진적이지 않을 수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8년에 분당했지만, 당 역사의 전반부는 눈부시게 성장했다. 창당 4년 만에 국회의원 10명을 보유한 제3당이 됐다. 군부독재가 몰락한 1974년에 창당한 그리스 사회당(PASOK)도 7년 만인 1981년에 집권했다.

△2004년 민주노동당 총진군대회. 민주노동당은 2004년 노무현 탄핵 반대 거리 항의 운동을 배경으로 제3당으로 부상했다.

물론 현재 많은 선진 노동자들이 진보 정당들의 지리멸렬한 상태에 실망하고 있다. 그러나 역사적·국제적·국내적 경험을 종합해 봤을 때, 이로부터 곧장 개혁주의 정당은 성장 가망이 없다고 전망해서는 안 된다. 그랬다가는 노동계급의 의식 흐름에 둔감해질 수 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개혁주의 정당의 최신 상태와 계급투쟁 등을 예의 주시하며 설득력 있는 전술들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새 정당, 진전이지만 문제점도 발생시킬 것이다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같은 경제적 기초뿐 아니라 정치적 기초 위에서도 스스로 조직할 필요가 있다. 그래서 기존의 자본가 정당들에 맞서 대중적 진보 정당이 등장하는 것은 진전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경험에서 봤듯이, 노동자 정당이 건설된다 해서 노동계급의 정치적 독립이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강령에서 “사적 소유권 제한”, “생산수단 사회화”를 표방해 자본가 정당들과는 다른 좌파 개혁주의 정당임을 선언했다. 그러나 그 당의 지도부와 의원단은 노무현 정부/열린우리당과의 “개혁 공조”를 중시했다.

4자 연석회의가 추진하는 새 정당은 그나마 민주노동당보다 우경적인 개혁주의 정당이 될 것 같다. 정의당은 통합보다는 정의당으로의 “수혈”을 원한다. 반면, 나머지 단체들은 통합을 선호한다. 그래서 아직 당명, 지도 체제, 강령 등이 확정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새 정당은 정의당의 재창당 형식을 취할 것 같다. 4자 연석회의 내 저울추가 정의당으로 크게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향한다. 사회민주주의는 당의 사회적 구성, 재정, 투표 기반은 노동계급적인 반면, 당의 지도부와 정책들은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고자 하는 정당이다. 이를 두고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자본주의적 노동자 당”이라고 했다. 이와 비슷하게,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헌법 안의 진보”라고 불렀다.

이런 모순된 성격 때문에 노-자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문제들에서 정의당은 흔히 이율배반적 태도를 취한다. 예를 들어 심상정 대표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일방적 추진은 반대했다. 확실하게 자본가 계급의 편을 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모순의 실천적 결론은 사회적 타협 — 계급 평화 — 을 옹호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의당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여야 야합과 공무원노동조합 집행부의 배신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라고 두둔했다.

좌파 포퓰리즘

한편, 김세균 국민모임 대표는 이런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한국 상황을 가미한 개혁주의 정당을 만들고 싶어 한다. 그는 “기본 모순”(노-자 모순)보다 “주요 모순”(독점 재벌 대 압도적 다수의 국민 대중)을 우선 해결하는 반신자유주의 범진보연합전선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진보정치의 과제와 방향’, <레디앙>, 2015년 7월 21일) 기본 모순과 주요 모순의 (마오쩌둥식) 구분이 쓸데없는 현학일 뿐임에 대해서는 이 자리에서 논할 여유가 없다.

김 대표는 스탈린주의의 인민전선(“반파쇼 범민주연합전선”)을 논거로 댔다. 그가 정동영 등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치인들과 함께 국민모임을 만든 것은 이런 노선을 실천에 옮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주요 모순을 우선 해결하자는 주장의 실천적 함의는 “소수 독점 재벌”에 맞선 계급연합이다. 계급연합은 두 가지 형태를 취한다. 먼저, 사회적 리버럴(진보적 자유주의)까지 포함하는 계급연합 정당을 만든다. 그리고 부르주아 자유주의 정당인 새정치연합과 연립정부를 구성한다. 김세균 대표는 연립정부 참여 문제를 “전략적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전술적 선택의 문제”라며 그 가능성을 열어 놓았다.

그러나 신자유주의를 극복하기 전에는 자본주의를 문제 삼지 말자는 단계론은 자본주의의 지배적 형태가 신자유주의인 오늘날 공상적이다.

무엇보다 이런 포퓰리즘(좌파적일지라도)은 계급을 가로지르는 계급 협력주의 전략이기 때문에 노-자 기본 모순에 의한 투쟁을 약화시킨다. 재벌은 공중에 붕 떠 있는 존재가 아니라 유기적인 한국 자본주의 구조의 정점일 뿐이다. 그러므로 재벌 문제를 해결하려면 현재의 경제적·정치적 지배 구조를 해체시켜야 한다. 이것은 “국민 대중”의 문제가 아니라 노동자 계급과 자본가 계급의 계급투쟁 문제로서, 반자본주의 혁명의 성공에 조금 못 미치는 수위의 계급투쟁이 전개돼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그런 수위의 계급투쟁 속에서 왜 노동계급과 대중이 재벌 문제 해결에서 멈춰야 하는가? 이게 현학이 아니면 무엇인가.

계급투쟁보다 선거적 해법 중시하기

4자 연석회의의 기본 문제의식은 통합한 진보 정당이 주도력을 발휘할 때 노동계급의 현안과 사회·경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에게 계급투쟁은 문제 해결의 열쇠가 아니고, 기본 동력으로도 감안되지 않는다. 4자 연석회의의 진단은 투쟁과 ‘정치’를 분리시키고는 선거에서 답을 찾는 개혁주의 실천을 강화하는 것으로 이어진다. 정의당 지도부가 그 전형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원내정당화 전략”(심상정), “진보의 세속화”(노회찬), “진보의 현대화”(천호선)라는 이름으로 운동과 정치를 날카롭게 분리시키고 있다.

그래서 “조직된 노동자들”의 “정치적 실천, 계급적 책무”가 “노동정치의 복원과 진보정치의 혁신과 결집”이라고 주장했다.(김영훈·신승철 민주노총 전 위원장 등, ‘노동정치의 복원과 진보정치의 결집에 함께할 것을 제안합니다’, 2015년 6월 25일) 나경채 전 노동당 대표도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의 “무기력”을 넘어서기 위해 “진보정치 결집 기획”이 필요하다고 말했다.(≪오늘보다≫, 제2호, 2015년 3월)

현재 노동자 투쟁은 결코 침체 상태가 아니지만, 충분히 강력하게 발전한 상태도 아니다. 대다수 노동자들은 지배자들의 노동자 조건 공격을 반대한다. 그중 전투적 부문은 투쟁하고 있지만 그 투쟁들은 곧잘 차질을 빚고 있다. 그러나 노동자들의 저항으로 박근혜도 정치적 타격을 받았었다.

이런 사태전개는 제도권 정치 내 진보 정당의 취약성 문제와 그다지 관계가 없다. 핵심 문제는 노동조합 상층 지도자들의 보수적이고 소심한 대응이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이 더한층 전진하지 못한 진정한 이유도 노동계급이 자신의 경제적 힘을 사용하며 정치적 항의 운동에 동참하도록 소명하지 않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하고 지나치게 온건한 방침이었다.

나경채 전 대표는 정의당의 우경화를 막기 위해 진보 결집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 주장에 고개가 갸우뚱해진다. 지난 6월 노동당 당대회를 앞두고, 천호선 전 정의당 대표는 2017년 대선에서 “정권 교체 후에는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도 나 전 대표를 비롯한 진보결집+ 성원들은 정의당의 우경 노선에 대해 공개적으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통합 논의를 하는 마당에 공개적 비판이 공연히 긴장을 부를까 봐 꺼렸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진보결집+가 사회연대전략을 2016년 총선의 주요 공약으로 제안한 것을 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다. 사회연대전략은 정규직 고소득 조직 노동자들이 국가와 기업주에 양보해 노동계급 내 격차를 완화하자는 정규직 양보론이자 노-자 간 사회적 타협론이다.

그래서 진보결집+의 진정한 동기는 노동당으로는 3년 연속 예정돼 있는 선거를 치를 수 없다는 초조감인 것 같다. 진보결집+ 리더들의 대부분은 과거 민주노동당 시절 사회주의 강령을 지지하고 “사회운동적 정당”을 주창했는데, 지난 10년 새 꽤 많이 오른쪽으로 이동한 듯하다.

사회주의자들이 새 정당에 참여해야 할까?

김세균 대표는 “진보좌파 세력”이 새 정당에 참여해 “전선운동의 급진화 등을 위해 노력”하라고 촉구했다. 이를 “거부하는 좌파에겐 희망이 없다”고도 했다. 과연 그럴까?

신자유주의 공세를 저지할 수 있는 기본적인 동력은 계급투쟁에 있다. 사회주의자들은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을 고무하는 것을 크게 강조한다. 그것이 선거에도 더 도움이 된다. 1997년 12월 대선에서 일당국가가 완전히 무너진 것은 1996년 12월부터 1997년 1월까지 전개된 민주노총 파업(과 IMF 금융 공황)이 낳은 정치적 각성의 효과였다. 또, 2004년 3월 일어난 노무현 탄핵 반대 거리 항의 운동이 당시의 정치적 지형을 왼쪽으로 이동시킨 덕분에 그 직후 치른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은 일약 3당으로 부상했다.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곧 개혁주의 정당을 종파적으로 대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전투적이고 선진적인 노동자들에게 새 정당은 크게 미흡할 것 같다. 예를 들어, 정의당 의원들이 공무원연금 “개혁”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지 않은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현재 통합이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방향도 아니다.(물론 개혁주의 정당은 지배계급과 노동계급의 이해 충돌을 ‘국민’의 이름으로 조화시키려 할 것이고, 그래서 개혁주의적 본질은 바뀌지 않은 채로 지그재그 할 수 있다.) 이 점은 노동정치연대 소속 공공부문 ‘중앙파’ 활동가들의 조직인 ‘공공운수현장조직(준)’이 다음과 같이 “대책 없는 투쟁 만능주의”를 비판하는 데서도 드러난다.

“당위적인 총파업을 외친다고 투쟁 전선이 회복되는 것은 아니다. … 노동자 대중의 ‘정치 투쟁 의식’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업장 담장을 넘는 의식화의 장이 필요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공간이다.”(<레디앙>, 2015년 8월 28일자)

따라서 선진 노동자들이나 급진적 청년들이 투표를 넘어 새 정당에 입당하는 수준으로까지 지지할 이유는 없어 보인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도 입당 전술을 취할 이유는 없다. 그보다는 특정 쟁점을 놓고 새 정당의 좌파 계열과 공동전선을 구축하는 것이 더 나을 것이다.

물론 더 넓은 범위의 노동자들은 정치 대안 부재 때문에 선거에서 새 정당을 지지할 수 있다. 선거에서 더 좌파적인 대중 정당이 부재한 가운데 새 정당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등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사회주의자들은 당연히 새 정당에 투표하라고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환상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10가지 태도

①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조직 노동자들과 연계돼 있으므로 조직된 자본과 연계된 순전한 부르주아 정당보다 어느 경우에든 더 낫다.

② 투쟁 없이 진보 없다. 노동자들과 천대받는 사람들이 획득할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이든 투쟁으로 쟁취해야 한다.

③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부르주아 정당과 싸우려 하지 않을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선거에서든 다른 어느 전선에서든 부르주아 정당을 이기기가 더 어려워진다.

④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타협하고 얼버무리고 발뺌할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투표하는 사람들의 투지는 약화된다.

⑤ 사회민주주의 정당 지지자들의 투지가 약화될수록 사용자들, 국가 관료들, 우파들의 기가 살아나고 그 세력이 강화된다.

⑥ 선거로 선출된 의회의 권력은 선거로 선출되지 않은 기업주, 국가 관료, 경찰 수뇌부, 사법부, 주류 언론 등의 권력에 의해 줄곧 좌절을 맛보게 된다.

⑦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가 기업주, 국가 관료, 경찰 수뇌부, 사법부, 주류 언론 등에게 ‘공정’하려 애쓰면 애쓸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는 그들의 포로가 된다.

⑧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가 그런 권력자들의 포로가 되면 될수록 사회민주주의 정당 정부는 자신에게 투표한 사람들을 공격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다음번 선거에서는 거의 패배하게 된다.

⑨ 이런 악순환은 20세기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역사가 입증해 준다.

⑩ 결론을 맺자면 이렇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투표하라. 그러나 투쟁 수위가 내려가지 않도록 아래로부터 저항을 건설해, 사회 상층부의 권력자들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만큼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라. 그리고 마침내 이 자들의 지긋지긋한 독재를 끝장낼 혁명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

민주노총의 정치/선거 방침에 대해

2012년 통합진보당이 분열하면서 특정 정당에 대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은 소멸됐다. 그 여파로 12월 대선에서도 민주노총은 선거 방침을 내놓지 못했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이 문제를 논의할 때 먼저, 정치 방침과 선거 방침을 구별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복수의 진보 정당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특정 정당 지지 방침 문제는 까다롭고 분열적 긴장을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옛 통진당 계열 노동조합 활동가들은 배타적 지지 방침을 부활시키자고 한다. 이를 통해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을 하자는 것이다. 이들이 여전히 인민전선(전략적 야권연대)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은 노동자 정당을 만들어 부르주아 야당과 계급 협력을 하자는 노선이다. 현 시점에서 배타적 지지 방침 부활은 진보 정당들이 분화한 역사적 맥락을 무시하는 추상적인 입장이다. 그리고 선거 실리를 위해 노동조합을 분열시키고 투쟁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발상이다.

그렇다고 민주노총이 아무 정치 방침도 채택하지 않으면 자본가 정당들, 특히 새정치연합이 그 틈을 비집고 노동조합 속으로 파고들 수 있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은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같은 부르주아 정당을 배제한 진보 정치 세력들을 지지한다는 진보/좌파 다원주의 정치 방침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민주노총은 2014년 지방선거 대응 방침으로 통합진보당, 정의당, 노동당,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노동정치연대, 녹색당을 “노동정치세력”으로 확정한 바 있다.)

한편, 시점상 선거를 앞둔 시기에는 노동자들을 최대한 정치적으로 단결시킬 수 있는 선거 방침이 더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민주노총은 같은 선거구에서 노동자 정당 후보들이 서로 경쟁하지 않도록 후보 단일화를 권유해야 한다. 경쟁은 노동자 유권자들에게 분열로 비쳐 실망과 환멸을 자아내 투표 동기를 부여하지 못할 것이다.

또, 민주노총은 노동자 밀집 지역이나 노동자 정치 활동이 활발했던 지역, 진보 정치에 정치적 상징성이 큰 지역(이른바 “전략 지역”)을 선정해 투표 지침을 제시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 지지 후보에 대한 민주노총의 정치적 기준을 세워야 한다. 민주노총 조합원 출신이라는 이유가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기준일 수는 없다. 배신의 전력을 공개 반성하지 않는 우파적 노동조합 관료도 그 조건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조합과 유기적 연관을 맺고 있을 뿐 아니라, “노동개혁” 반대, 기성 자본가 정당으로부터의 독립성 유지 같은 정치적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누구를 지지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야권연대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다. NL식 또는 정의당식 전략적 야권연대는 선거 실리는 줄지 몰라도 계급투쟁의 발목을 잡는 구실을 하기 때문에 반대해야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경우에도 야권연대를 해서는 안 된다고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예를 들어, “(1) 어쩔 수 없는 경우에, (2) 공동 집권을 목표로 하지 않고, (3) 그저 특정 선거구(들)에 한정해, (4) 후보 단일화 수준의 제휴를 하면서, (5) 정치적 비판을 삼가지 않는”(2014년 11월 6일 노동자연대 성명, http://wspaper.org/article/15085) 야권연대는 정당한 전술이라 할 수 있다.

끝으로, 정당 투표 문제가 남아 있다. 진보 정당이 복수로 존재하기 때문에 정당 투표도 진보/좌파 다원주의에 근거해 그 정당들 중에서 투표하도록 하는 게 좋을 것이다.

4자 통합과 진보대통합

옛 통진당 세력은 진보대통합을 요구한다. 반면, 4자 연석회의는 이들을 배제했다. 두 가지 쟁점이 이들 사이에 놓여 있다 —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와 북한 문제.

통합진보당 선거 부정 사태 당시 NL계는 그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자신들은 선거 부정을 하지 않았다며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많은 언론이 지켜보는 중앙위원회 회의장에서 집단 폭력을 행사해 의사 진행을 가로막았다. 이 문제에 대한 반성적 성찰 없이 과연 진보대통합이 될 수 있을까.

북한 문제는 훨씬 더 근본적이다. 2000년대 동안 사회민주주의와 스탈린주의가 한 정당 안에서 동거했다. 민주노동당은 스탈린주의자들이 대거 입당한 2004년부터 스탈린주의자들이 주도하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는 모순이 있었다. 그만큼 동거는 불안정했다. 2005년 북한 핵실험 이후 북한 문제가 민주노동당 안에서 뜨거운 감자가 됐다. 민주노동당의 가장 주된 분당 이유 하나도 북한 문제였다.

그 뒤 통합진보당으로 재통합했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긴장이 고조되고 그에 따라 남북 관계가 경색되면서 피할 수 없게 된 북한에 대한 태도 문제가 근저에 있었다. 분당 후 정의당의 행보가 이를 보여 준다. 지금 정의당은 냉전 시기 서구의 반공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연상시키는 행보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정의당 지도부는 천안함 위령탑을 참배했고, 심상정 대표는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건을 두고 북한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라고 규탄하는 한편 박근혜 정부의 안보 무능을 질타했다. <동아일보>는 정의당 지도부의 천안함 위령탑 참배를 두고 “종북과 선 긋기”라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진보대통합이 가능한 유일한 방식은 (선거법 문제가 있으므로)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정당을 만들되, 그 내부는 정치적·조직적으로(즉, 강령상으로나 규율상으로) 느슨한 공동전선적 운영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북한 문제에 대한 자신들의 강령을 연합 정당에 강요하지 말고, 각자의 강령으로 활동하는 모델이다.

이참에 옛 통진당 계열도 다른 세력을 끌어들여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를 포기하고 자신들의 합법 정당을 만드는 게 좋을 것이다. ‘남들 끌어들여 정당 만들기’는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의 분당을 겪으며 파산했다. 많은 좌파들이 그 경험에 진저리를 쳤다. 국제적으로 스탈린주의 세력은 국가 탄압에 맞서 합법적인 정당과 전선체 두 날개로 대응해 왔는데, 옛 통진당 계열도 이 경험을 진지하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입력 2015-09-1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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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①

스웨덴 복지국가는 건재한가?

장호종

넉넉한 노령연금, 보육비 지원과 별도로 지급되는 아동수당, 최장 3백 일 동안 임금의 80퍼센트를 지급하는 실업수당(자녀가 있을 경우 4백50일), 주 5일 근로제에 더해 연간 5주의 유급휴가, 임금의 90퍼센트를 보장하는 관대한 유급 병가, 질병으로 인한 소득 감소를 벌충하는 상병수당, 4백80일의 유급 출산 휴가, 자녀 1명당 연간 1백20일의 자녀병상휴가, 무상교육과 사실상 무상의료(연간 진료비 상한선 50만 원), 가족이 병을 앓을 경우 지급되는 가족간병수당, 기타 등등. 

오늘날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처럼 관대한 스웨덴의 복지 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진보진영 내에서 ‘스웨덴 모델’이 주목받는 핵심 이유다.

1990년대에 스웨덴이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복지가 대폭 삭감되자, 특히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복지병’이 스웨덴 경제 위기를 낳았다며 자국에서 시행하는 복지 삭감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스웨덴이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높은 경제 성장율을 기록한다는 점은 복지와 성장이 반비례 관계가 아님을 보여 주는 반증 사례가 되고 있다. 일부 개혁주의 지식인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분배를 통한 성장론’ 혹은 ‘소득 주도 성장론’ 등을 경제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의 처지를 개선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소득 주도 성장론’에 비판적인 까닭에 대해서는 <노동자 연대> 131호에 실린 ‘소득 주도 성장론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 ‘전후 장기호황이 소득 주도 성장 덕분이었는가?’를 보시오.)

성장과 분배

스웨덴은 심지어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 속에도 높은 경제 성장율을 유지하고 1990년대에 삭감된 복지 혜택을 일부 회복시켰다. 그러자 스웨덴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붙잡은 모델로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그런데 국내 일부 개혁주의 지식인들은 스웨덴 복지 제도를 소개하고 운동의 요구로 제시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스웨덴 사민당의 정책 일반을 오늘날 한국의 진보진영이 따라야 할 ‘모델’로 삼자고 제안한다. 복지 제도가 한 나라의 재정 정책이나 조세 제도, 노동 정책 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단순히 복지 제도만 따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연대 임금 정책 등 제2차세계대전 이후의 ‘스웨덴 모델’에 대해서는 다음 연재 기사에서 자세히 다룰 것이다.)

특히 계급투쟁보다는 개혁주의 정당의 집권을 사회 개혁의 주요 동력으로 여기는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1970년대와 1990년대 스웨덴에서 시행된 대대적인 복지 삭감에 대해 비판을 아낀다. “당시 정치, 경제, 인구 등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였을 뿐] 근본적 후퇴로 비판하는 건 적절치 않다.”(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 

그러다 보니, 스웨덴에서 우파가 집권해 시행한 복지 ‘개혁’도 비판하기 어려워 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각종 제도의 ‘경로 의존성’ 때문에 우파 정부라도 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우파 정부 하에서도]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과 복지 혜택의 수준이 수시로 조정되었을 뿐 … 실질적인 복지제도의 변화는 거의 없었다.”(신광영 중앙대학교 교수) 

물론 스웨덴 복지국가의 후퇴를 ‘근본적 후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선진국들에 견줘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애당초 스웨덴 복지국가가 여타의 자본주의 국가와 근본에서 다른 사회였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전성기인 전후 20년은 영국 등 다른 유럽 복지국가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미국에서조차 복지 지출이 늘었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국가자본주의적 성장 전략을 추구했고 복지 지출을 늘리면서도 꾸준히 성장을 이어갔다. 

또 개혁주의 정치인들이나 국가 관료의 입장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변화는 거의 없었다”는 평가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1960~70년대 스웨덴 노동자들의 처지와 1990~2010년대 스웨덴 노동자들의 처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후 스웨덴 모델의 입안자로 평가되는 루돌프 마이드너조차 1998년에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스웨덴 모델은 그 목표나 응용 모두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일부 개혁주의 지식인들은 스웨덴 정부의 복지 지출 규모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을 주요 논거로 삼아 스웨덴 복지국가가 건재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똑같은 돈을 쓰면서도 얼마나 복지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미국의 의료 체계가 잘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스웨덴은 지난 20년 사이에 복지 지출 규모가 줄어든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다. 스웨덴 정부의 복지 지출 규모는 1990년대 세계 1위에서 현재 5위로 떨어졌다.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정부의 복지 삭감 노력에도 실업 때문에 복지 지출 총량은 오히려 늘어 왔다.)

노르웨이 노동운동가인 아스비예른 발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가 유람선의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 그 유람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스웨덴을 세계에서 소득불평등이 가장 빠르게 커지는 나라라고 지목했다.

스웨덴은 OECD 나라들 중 불평등이 가장 빠르게 커지고 있다.

스웨덴의 복지 제도가 실제로 후퇴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단지 “개량주의”라는 낙인을 찍기 위한 트집 잡기가 아니다. 오건호나 신광영 류의 관점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데에서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복지 축소에 맞선 스웨덴 노동자들의 저항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비록 지금은 그 저항이 주로 선거를 통해 수동적으로 표현되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1980년대에 추진한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1991년 선거에서 패배했고 2006년과 2010년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2014년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득표는 역대 최악의 참패를 기록한 2010년에 비해 고작 0.3퍼센트(의석 수로는 1석) 늘어나는 데 그쳤다. 1990~2000년대에 사민당을 비판하면서도 연정에 참가해 ‘꼬마 사민당’이라 비판받아 온 좌파당조차 이번에는 정부에 참여하지 않았다. 우파 정당들이 잃은 표는 대부분 파시스트 정당인 민주당이 가져가 최초로 원내 3당의 지위에 올랐다(12.86퍼센트). 스웨덴은 2011년 현재 이민자 비율이 27퍼센트나 되는데, 이들에 대한 차별이 강화돼 2013년에는 스톡홀름에서 소요가 일어나기도 했다. 

△2013년 스톡홀름에서 벌어진 이민자 소요 사태는 복지의 낙원으로 알려진 스웨덴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출처 Telefonkiosk/위키피디아

이런 상황에서 사민당은 물론이고 우파 정당들의 복지 삭감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스웨덴의 노동자들에게는 저항하지 말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

또 다른 해악은 결국 경제 위기 상황에서 복지와 노동조건 후퇴는 “불가피한 조처”라는 국내 지배자들의 공격에 문을 열어 주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을 통해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정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노동자들을 수동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사실 이 점이야말로 스웨덴 노동자들 뿐 아니라 유럽의 노동자들이 반세기 가까이 겪은 커다란 난점이었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인 조직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당연히 곳곳에서 저항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주류 개혁주의 정당과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투쟁을 배신하거나 자기제한적 전술로 패배를 자초하면서 노동자 투쟁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 건설도 힘을 얻기 어렵다.

반면, 지난 10년 사이에 계급투쟁 수준이 가장 높았던 그리스에서는 시리자라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리스 노동자들은 그 시리자조차 배신하는 것을 보며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섰지만 말이다. 

다음 호에서는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성을 자랑하던 스웨덴의 노동조합이 왜 이처럼 무기력해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스웨덴의 복지 후퇴

공공서비스 민영화

1988년 세계 최초의 철도 수직분할(시설유지업무 분리). 항공(1992), 통신(1993), 전화와 체신(1993), 전기(1996) 민영화. 국영기업 70개 가운데 35개를 민영화. 방위산업체, 제약회사, 철강, 에너지, 가스, 물 등 거의 전 부문에 걸친 민영화.

연금개악

소득비례연금은 전액 고용주가 부담하던 것을 노동자들도 보험료로 임금의 9.25퍼센트를 내도록 했다. 기초연금도 전액 고용주 부담이던 것을 조세로 부담하기로 했다.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으로 1980년 말에는 10퍼센트 정도이던 민간 연금 보험 가입 비율이 최근 20퍼센트 정도로 늘었다. 

실업수당

사민당이 실업수당의 임금 대체율을 85퍼센트에서 75퍼센트로 낮춘 데 이어 2007년 보수연정은 이를 65퍼센트 수준으로 낮췄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대기기간을 5일에서 7일로 늘렸고, 2005년 13.5퍼센트였던 노동자들의 실업보험 부담 비율을 30퍼센트로 인상했다. 물가상승율에 연동해서 지급하던 자녀수당과 실업수당은 물가상승율보다 낮게 증가하도록 책정됐다. 2006년 이후 병가수당의 자격요건이 대폭 강화돼 외상이나 암 등 ‘검증 가능한’ 환자만 질병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노인 간병

노인 간병은 스웨덴 공공부문의 중심적인 영역이었지만 1992년 보수당 정부는 외부 민간 기관에게 외주화하거나 민간 기관이 직접 담당하도록 했다. 또 의료재정 부담을 줄인다며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간병인들이 담당하는 사회서비스로 바꿨다. 그 결과 병상은 크게 줄어 1988년에 인구 1천 명당 병상이 12개였던 것이 1998년에는 4개로 줄어들었다. 사설기관의 전체 간병인력은 꾸준히 줄고 있다. 

의료

1984년에 사적 의료보험이 도입돼 2014년 현재 전체 의료비 중에서 사적으로 부담하는 의료비는 19퍼센트를 차지한다. 1985년에서 2005년 사이에 스웨덴의 의료비 중 공공기금 의존율은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낮아졌다. 1971년 전면 국유화된 약국은 2006년에 다시 민영화됐다. 보수당은 1991년 사립병원 설립을 허용해 현재 1차 의료기관의 25퍼센트가량이 민간의료기관이다. 사민당이 1994년에 이를 금지했지만 이 사립병원들은 남아 있다. 1994년의 의료기관 통폐합 등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의사의 30퍼센트 이상이 줄어들었다. 2008년 이후 다시 고용을 늘리려 했지만 인력 양성 기간이 길어 현재 환자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2000년의 통계를 보면 안과 환자의 80퍼센트가 3달 이상을 기다려야 진료를 받을 수 있다). 

교육

1988년 사민당이 사립학교 설립을 허용한 데 이어 보수연정은 학교 재정의 15퍼센트를 등록금으로 걷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조세

1991년과 1994년 조세 개혁으로 노동소득에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자본소득에는 비례세율을 적용했다. 간접세를 대폭 인상했다(모든 상품과 서비스에 23.46퍼센트). 이는 1969년에 도입한 고용주세 등 자본가들에 대한 과세를 완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1969년 이전의 조세제도도 “진보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GNP에서 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950년 21퍼센트에서 1975년 41퍼센트로 크게 늘었지만 조세액 중 법인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오히려 12퍼센트에서 3퍼센트로 감소했다. 2004년 사민당 페르손 정부는 상속세, 증여세, 부유세도 폐지했다.

<참고자료>

최연혁 외, 《주요국의 사회보장제도 – 스웨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2

양재진 외, 《복지국가의 조세와 정치》, 집문당, 2015

신광영,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한울 아카데미,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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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비예른 발,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부글북스, 2012 등

입력 2015-10-0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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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의 양면성을 알아야 한다

차승일

몇 달 전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중앙위원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영국 정치 상황을 분석하며 이렇게 썼다. “영국 국가의 위기로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틈새가 생길 수 있고, 그 덕에 [영국 급진좌파가] 질적 전진을 이룰 수 있다. [영국 총리] 데이비드 캐머런은 영국 자본주의를 격랑 속으로 밀어 넣고 있다. 좌파는 이것이 창출할 기회를 잡을 태세가 돼 있어야 한다.”

대다수 좌파들은 그런 틈새가 노동당 안에서 일어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9월 12일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당내 좌파인 제러미 코빈이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다. 코빈의 승리는 난민과 이민자에 대한 대중적 연대 물결 속에서 일어났다.

불과 넉 달 전에 치러진 영국 총선에서 노동당이 참패하고, 스코틀랜드에서는 스코틀랜드국민당(SNP)이 대중의 긴축 반대 정서의 수혜자가 되고, 잉글랜드에서는 긴축 찬성·이민 반대 세력인 영국독립당이 약진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코빈의 승리는 천지개벽까지는 아니어도 꽤나 큰 반전임이 틀림없다. 이런 변화는 어떻게 가능했을까?

일부 좌파의 견해와 달리, 코빈의 승리는 유럽 전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정치 변화에서 영국이 비켜 서 있지 않음을 보여 준다. 경제 위기와 긴축, 기성 정치권의 부패와 혼란은 유럽 곳곳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현상이고, 이는 정치 양극화를 낳고 있다. 유럽의 정치 양극화는 한편으로는 그리스 시리자와 스페인 포데모스 같은 급진좌파의 성장으로 나타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국민당이나 프랑스 국민전선 같은 극우·파시즘의 성장으로 나타난다. 

시리자 순간

이런 기본적 동역학은 신노동당*의 기획자이자 코빈을 비난하는 피터 맨덜슨도 인정하는 바다. “방식과 강도는 다르지만 우리[영국]도 나름의 ‘시리자 순간’을 경험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비교는 한 가지 문제를 제기한다. 시리자나 포데모스는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도전하며 성장했다. 그래서 그리스의 중도좌파 사회당(PASOK)은 긴축재정 정책을 시행하다가 이제는 사실상 붕괴해 버렸다. 불과 몇 달 전에만 해도 영국에서는 노동당이 그리스 사회당처럼 되고 있다는, 즉 몰락하고 있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나 이제 영국 급진좌파의 도전은 노동당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영국 노동당 당원은 5월 20만 명 이하에서 9월 중순 34만 2천 명으로 급증했다.

신노동당

1994년 노동당 대표가 된 토니 블레어가 주창한 노선으로, 좌파가 신자유주의를 기꺼이 수용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앤서니 기든스는 ‘제3의 길’을 주장하며 신노동당 노선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 ‘제3의 길’에 대한 상세한 분석과 비판은 알렉스 캘리니코스, 《제3의 길’은 없다: 반자본주의적 비판》(인간사랑, 2008년)을 참고하시오.

예비내각 (Shadow Cabinet) 

내각책임제하에서 야당이 차기 집권을 대비해 미리 꾸리는 내각.

역설이게도, 코빈은 노동당을 잘 이끌겠다는 선거운동을 했는데도 노동당이 아닌 대안으로 비쳐졌다. 이런 역설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세 요인이 중요하다. 첫째, 코빈이라는 인물의 독특함이다. (물론 개인의 중요성을 과장하지 말아야 한다.) 코빈은 1983년 처음으로 하원의원으로 당선했는데, 당시는 토니 벤이 이끈 ‘벤 좌파 운동’이 시들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코빈은 그 뒤로 계속 노동당 안에서 주변적인 인물이었다. 그는 지역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기층 운동들을 잘 대변하는 훌륭한 아웃사이더 정치인으로 살아 왔다. 겸손하고, 정직하고, 도덕적으로 흠 잡을 데 없고, 정치적으로 견실한 그의 개성은 그의 매력을 더해 줬다. 

둘째, 노동당 자체의 성격이다. 신노동당 시절에 노동당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게다가 올해 5월 총선에서 참패했다. 그럼에도 노동당은 적어도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는 지지층을 유지했다. 많은 노동자들이 보기에 노동당은 아무리 꼴보기 싫어도 보수당의 공격을 (어느 정도는) 저지할 방패막이었던 것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노동당의 영향력도 건재하다. 여기에 빼놓을 수 없는 요인이 지역위원회들의 구실이다. 코빈이 속한 지역위원회를 포함해 노동당의 많은 지역위원회들은 노동자들에게 중요한 쟁점을 둘러싼 운동에 기여해 왔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노동당이 집권한 지자체들이 긴축을 시행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노동당 지역위원회들이 그 문제를 놓고 반대 운동을 벌이고 논쟁을 벌이는 다소 복잡한 그림이 그려지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하고 제국주의 전쟁을 벌여 온 노동당에서 긴축 반대 운동과 반전 운동을 대변해 온 코빈이 당 대표로 당선했다. 노동자들이 개혁주의를 간단히 뛰어넘을 수 없음을 보여 준다.ⓒ사진 출처 Lee Nichols(플리커)

셋째, 노동당의 구조가 변하고 있다. 노동당 내 권력 구조는 코빈 리더십의 앞날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므로 좀 더 자세하게 살펴봐야 한다. 1918년 이후 노동당 안에는 세 권력 중심이 있었다. 의원단, 노동조합 지도자들, 지역위원회가 그것이다. 노동당 역사를 보면 지역위원회는 노동당 좌파 운동들 ─ 1930년대 사회주의자동맹의 운동, 1950년대 어나이린 베번이 이끈 운동,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토니 벤이 이끈 운동 ─ 의 주요 기반이었다. 그러나 노동당 좌파 운동들은 의원단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장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선거가 가하는 압력을 받으며 국가기구와 밀착돼 중도를 향하는 집단인 의원단과, 노동과 자본 사이를 중재하는 사회계층인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당 내 권력 구조에서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구실을 하는 두 축으로, 노동당의 친자본주의적 성격을 확고히 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한다. 토니 클리프와 도니 글룩스타인은 《마르크스주의에서 본 영국 노동당의 역사: 희망과 배신의 100년》(책갈피, 2008년)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노동당은 ‘자본주의적 노동자 정당’이다. … 노동조합 의식과 의회 개혁주의는 노동당 정치의 핵심이다. 노동당은 의회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애쓰는 노조 관료들의 정치적 표현체이다. 노조 관료는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에서 중재하는 집단이다. 노동당도 생산 현장의 직접 투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중재하는 집단이기는 마찬가지다. 게다가 노동당 지도자들은 때때로 국가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나 노조 간부들은 결코 기업을 운영할 수 없다.”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의 벤(토니 벤) 좌파 운동이 실패한 배경에는 영국 노동계급의 패배와 신자유주의의 승리가 있었다. 1994년 노동당 대표가 된 토니 블레어는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를 조화시키려 했다.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블레어는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를 끊어, 노동당을 미국 민주당 식의 ‘정상적’ 중도좌파 부르주아 정당으로 변모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블레어는 그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노동조합

얄궂게도 노동당과 노동조합의 관계를 끊겠다는 노동당 우파의 목표는 블레어 시절과 선을 긋겠다던 에드 밀리밴드가 2010년 노동당 대표가 된 뒤에 진전을 이뤘다. 벤 좌파 운동이 달성한 노동당 민주화 조처의 하나는 당대표 선출 방식 변화였다. 그 전에는 의원들이 당대표를 선출했지만 이제 의원단·노동조합·지역위원회의 대표로 이뤄진 선거인단이 당대표를 선출하게 됐다. 하지만 무슨 조홧속인지, 이 방식은 당내 좌파가 아니라, 당내 온건 좌파(닐 키녹과 에드 밀리밴드)나 심지어 당내 우파(존 스미스와 토니 블레어나 고든 브라운)가 당대표로 선출되는 데 일조했다.

그래도 블레어는 이 방식을 ‘1당원 1투표제’로 바꾸기를 바랐다. 2010년 에드 밀리밴드는 노동조합의 지지를 얻어 블레어 지지자인 자기 형 데이비드 밀리밴드를 꺾고 노동당 대표로 당선했다. 그는 보수당의 집요한 공격을 받으며 노동당 우파에 굴복했다. 그래서 당원, 노동당에 가맹한 노동조합의 조합원, ‘명부 등록 지지자’(일정액을 납부하면 될 수 있다)의 투표로 당대표를 선출하도록 바뀌었다.

‘1당원 1투표제’ 방식은 어찌 보면 시대 변화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신자유주의 시기를 거치며 주류 정당들의 사회적 기반이 허물어지고 사회가 더 원자화된 변화 말이다. 블레어 시기를 지나며 노동당의 지역위원회도 변화를 겪어, 좌파들이나 그보다는 덜 좌파적이지만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당원이 줄고 꽤 잘사는 중간계급 신노동당 지지자들이 늘었다. 그러나 세상사가 항상 자기 뜻대로만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 코빈의 당대표 당선에서 드러났다.

코빈은 당원의 49.59퍼센트, ‘명부 등록 지지자’의 83.76퍼센트, 노동조합원의 57.61퍼센트의 지지를 얻어 전체 59.5퍼센트의 득표율로 1위를 차지했다. 이 결과를 ‘명부 등록 지지자’의 새로운 유입 덕분이라고만 설명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당원들만 투표할 수 있었더라도 코빈이 승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즉, 노동당 당원 구성 자체에 변화가 있었던 것이다. 5월 총선 패배 이후 가입한 신규 당원들이 그 변화였다.

그럼에도 노동당이 노동계급에 내린 뿌리가 한창때보다 훨씬 약해졌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1952년 노동당 당원은 1백만 명이 넘어 지금 당원 수의 거의 세 배였다. 그러나 노동당은 그 사회적 기반이 아무리 약해졌어도 때를 잘 만나면 광범한 저항 물결을 탈 수도 있음을 코빈의 승리가 보여 준다. 코빈 자신도 인정하듯이, 코빈의 선거운동은 그가 대변했던 여러 대중운동으로부터 큰 힘을 얻었다. 긴축 반대 민중의회와 전쟁저지연합이 대표적이다.

물론 코빈이 출마하지 않았더라도 강경 블레어 지지자들은 승리할 수 없었다. 코빈의 지지율이 급등하는 것을 보며 애가 탄 토니 블레어 등이 나서 코빈에게 맹공을 퍼부었지만 역효과만 일으켰다. 블레어 지지자 리즈 켄들은 치욕스럽게도 4.5퍼센트밖에 득표하지 못했다. 

압도적 승리로 당대표가 됐어도 코빈의 처지는 그리 녹록하지 않다. 기존의 노동당 내 권력 구조가 흔들리고는 있어도 무너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코빈이 앞으로 맞닥뜨릴 적수는 세 유형이 있다. 의원단, 영국 국가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하는 보수당과 언론, 믿기 힘든 동맹인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그들이다. 코빈이 승리하자, 노동당 의원단 성원들은 (요청도 하기 전에) 예비내각*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거부 선언을 했고, 어떤 의원들은 예비내각의 직책을 맡으면서도 코빈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반응을 보면, 그들이 당내 민주적 절차를 얼마나 무시하는지를 알 수 있다. 의원단이 앞으로 “책임성” 문제를 제기하며 코빈을 괴롭히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코빈이 맞닥뜨릴 둘째 적수는 보수당과 언론이다. 영국 언론계는, 여전히 보수당 친화적인 대기업들의 입김이 세다. 그런 언론이 30여 년 전 토니 벤에게 했던 것처럼 코빈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갖 악선동을 할 것임은 자명하다.

현 영국 총리이자 보수당 지도자인 데이비드 캐머런이 앞으로 코빈을 어떻게 대할지는 친기업적 유력 일간지 <파이낸셜 타임스>가 잘 지적했다. “우선은 코빈이 노동당 대표가 된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이 나라[영국]에 만연한 반정치 정서와 의회의 한심한 모습이 그 결과를 낳았음을 인정해야 한다. 코빈의 점잖은 성품을 보건대 개인사를 문제 삼으며 그를 공격하는 것은 대중의 반감을 살 것이다.

“그 대신 캐머런은 … 코빈의 정치를 겨냥해 공격할 계획이다. 즉, 영국의 ‘안보’와 가족의 안녕 문제를 집중 제기하며 공격할 것이다.”

영국 국가에 대한 코빈의 태도도 도마 위에 오를 것이다. 코빈은 노동당 대표가 되면서 차기 총리가 될 수 있는 위치를 점하게 됐다. 코빈은 영국 왕실을 어떻게 보느냐는 문제제기에 직면할 것이다. 1924년 처음 집권했을 때 노동당은 기존 질서를 위협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했다. 코빈은 공화주의자이고 사회주의자이며 반제국주의자이므로 이 문제는 큰 문제다. 

이런 세력들에 맞서려면 코빈은 의회 바깥 세력에 기댈 수밖에 없다. 그 세력의 하나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다. 많은 주요 노동조합이 코빈의 당대표 선거운동을 지원했다. 그 노동조합들이 코빈을 지지하는 데는 크게 두 요인이 작용했다. 첫째,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당 의원단이 조직 노동계급을 깔보며 관심을 두지 않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그래서 코빈을 지지하면 의원단의 관심을 다시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봤음 직하다. 둘째, 정치적 이유로 코빈을 지지한 노동조합 지도자도 있다. 유나이트(UNITE: 운수일반노동조합과 통합 기계공전자노조의 통합 노조로 영국 최대의 노동조합)의 사무총장 렌 맥클러스키는 신노동당을 지워 버리고 좌파적 노동당을 “되찾자”고 공공연히 주장하는 인물이다. 맥클러스키에게 코빈의 당대표 선거 출마는 자신의 프로젝트를 가동할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지지는 코빈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장애물이 될 수도 있다. 앞에서 살펴봤듯이 노조 관료는 노동당의 의회 개혁주의를 떠받치는 결정적 사회계층이다. 그들도 선거에서 거두는 성적을 기준으로 코빈을 판단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2020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승리해 보수당이 지금 추진하고 있는 노동악법들을 폐기하기를 바란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코빈에게 온건화 압박을 가하고 있음은 벌써부터 감지된다. 맥클러스키가 코빈에게 좌파 인사인 존 맥도넬을 예비내각의 재무장관으로 임명하지 말라고 요구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다행히도 코빈은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코빈의 승리가 주로 노조 지도자들의 지지 덕분은 아니었으므로 그는 자신의 노선을 고수할 수 있다. 그러나 코빈이 실제로 그러려면 그를 지지했던 운동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른다. 

첫째, 1970년대 말 토니 벤 주변에 모였던 활동가들은 결국 패배했다. 대처 치하에서 노동운동이 패배를 겪으며 노동당 좌파가 점차 줄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도 남아 있던 노동당 좌파 활동가들이 코빈을 도왔지만, 의원단에 대적하려면 코빈은 노동당 신입 당원들과 지지자로 등록한 많은 사람들이 활동적 당원이 되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코빈을 지지하며 온라인으로 가입한 사람들을 노동당의 일상에 꼬박꼬박 참석하도록 설득하는 것은 만만찮은 문제다.

이 문제는 또 다른 어려움을 제기한다. 바로 이 잠재적 활동가들을 어떻게 실질적 활동가로 변모시킬 것이냐는 문제이다. 벤 좌파 운동의 약점 하나는 그들이 주로 당내 투쟁에 매몰됐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노동당 바깥에서 노동자들이 패배를 겪는 문제를 등한시했다. 토니 클리프는 이 모순은 “정치적 상승, 산업적 하락”이라는 말로 요약했다. 이 모순은 결국 노동당 좌파의 패배로 해소됐다. 물론 사람들이 코빈을 지지하게 된 요인은 그가 대변한 더 광범한 대의였다. 간략히 말해, 긴축재정, 전쟁, 인종차별 반대라는 대의였다. 코빈이 지지자들을 계속 규합하려면 이런 대의에 입각한 운동을 지속시켜야 한다. 그러면 코빈은 노동당 우파와 계속 충돌할 수밖에 없다. 

셋째, 노동당은 근본적으로 선거를 위한 정당이라는 점이다. 다른 말로 해서, 노동당은 선거에 출마해 승리하려고 존재한다. 코빈은 근본적으로 이 기준에 따라 평가받을 것이다. 어느 노동당 우파 인사는 노골적으로 이렇게 말했다. “코빈이 내년 스코틀랜드 총선에서 노동당에 새 숨결을 불어넣을 수 있다면, 웨일스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고 잉글랜드 지방선거에서 노동당의 입지를 강화한다면, 그는 다음 총선까지 우리를 이끌 자격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지 못하면, 우리 당은 행동해야만 한다.”

선거가 가하는 압박은 노동당 좌파 활동가들의 네트워크를 넓히고 사회운동을 지속시키는 데에 계속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 효과는 벌써부터 나타난다. 코빈은 노동당 우파 인사들을 예비내각에 끌어들이려 하면서 유럽연합 탈퇴 찬성 입장에서 후퇴했다. 즉, 총리 캐머런이 “노동자 권리를 공격하는 개혁”을 하지 않으면 유럽연합 탈퇴 입장을 노동당 당론으로 결정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코빈이 이런 타협의 길을 걷는다면 과거 노동당 좌파 운동이 처했던 상황에 놓일 것이다.

선거에서 코빈의 리더십이 어떤 운명에 처할 것이냐는 긴축이 아닌 다른 경제적 대안을 제시해 대중의 상상력을 사로잡을 수 있느냐 없느냐와 긴밀히 연결돼 있다. 그가 주장하는 몇몇 정책들, 즉 철도 재국유화와 기업 탈세 단속은 인기가 좋다. 그런데 그의 핵심 거시경제 정책은 이른바 ‘민중의 양적완화’이다. 영국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이 지자체 등 여러 기관의 채권과 자산을 매입하고, 그 기관들은 이렇게 해서 마련한 돈으로 생산적 투자를 한다는 구상이다.

우파들도 이 정책을 비판하지만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마이클 로버츠도 이 정책을 비판한다. 경제에 돈을 주입하면, 기본적으로 낮은 이윤율 때문에 발생한 경기 침체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양적완화의 기본적 구상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영국 경제의 상당 부분이 투자를 기피하는 사기업의 손에 넘어가게 된다는 것이 마이클 로버츠 비판의 요지이다.

민중의 양적 완화

이런 논란을 보면 코빈의 정책이 개혁주의적이라는 사실이 밝히 드러난다. 사실, 코빈의 승리는 지난 몇 년 동안 유럽에서 일어난 새 개혁주의 부흥 물결의 일부로 봐야 한다. 이 새 개혁주의는 여러 면에서 기존 사회민주주의와 다르다. 그러나 새 개혁주의는 기존의 자본주의 권력 구조에 정면으로 도전하지 않은 채로 긴축재정 정책을 중단하고, 경제를 성장시키고, 불평등을 완화하려 한다.

새 개혁주의는 유럽의 동쪽 끝에서 혹독한 시험을 치르고 있다. 바로 그리스의 시리자다. 긴축에 반대하며 집권한 뒤 시리자는 자신이 유럽연합과 항구적 대결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있음을 깨달았다. 7월 5일 그리스에서 실시된 국민투표에서 62퍼센트가 유럽연합이 요구한 긴축을 거부했다. 그러나 시리자 대표이자 그리스 총리인 치프라스는 겨우 1주일 만에 3차 구제금융 양해각서에 서명하며 그전보다 더 혹독한 긴축을 수용했다. 이 문제를 놓고 시리자는 분열했고 치프라스는 9월 20일 조기총선을 실시했다. 그 결과 그는 다시 총리가 됐지만, 사실 이 과정에서 유럽연합이 얻은 것이 더 크다.(이 비극에 대해서는 <노동자연대> 웹사이트에 실린 ‘[그리스] 시리자는 왜 긴축에 굴복했는가?’를 참고하시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많은 급진좌파들의 기이한 기억상실증이다. 불과 몇 달 전에만 해도 많은 좌파들은 ‘각국의 시리자’를 건설하기를 바랐다. 그러려면 원조 시리자에서 일어난 일을 곱씹어 봐야 한다. 

또, 그 일이 각국 좌파에 함의하는 바는 무엇일지도 따져봐야 한다. 이에 대한 견해는 제각각이다. 리오 패니치와 슬라보예 지젝 같은 좌파 학자들은 치프라스를 옹호한다. 그 근거는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논란을 보면 좌파의 전진이 평탄한 상승 곡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논쟁과 갈등과 심지어는 분열을 수반하는 양극화 과정일 것임을 알 수 있다.

자본이 가하는 압박을 받으며 개혁주의 정부들이 자기 정책을 뒤집은 일은 많다. 대표적 사례가 1960년대 중반과 1970년대 중반 영국의 해럴드 윌슨 노동당 정부와 1980년대 초 프랑스의 프랑수아 미테랑 사회당 정부이다. 개혁주의 정부를 순치시키는 데 흔히 이용되는 방법이 자본을 해외로 빼돌려 환율 위기를 일으키는 것이다. 물론 그리스는 자체 통화가 없다. 그래서 새로운 방식이 이용된다. 바로 유럽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을 제한해 예금 대량 인출 사태를 일으키고 대출을 중단해 전체 은행 시스템을 정지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7월 초 그리스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것은 어떤 면에서는 환율 위기를 일으키는 것보다 더 강력한 수단이다. 왜냐하면 국민 개개인에게 직접 타격을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에 대항할 방법은 있었다. 예금 인출 제한 조처에도 불구하고 그리스 대중은 7월 5일 국민투표에서 반대표를 찍었다. 국민투표 당시 그리스 재무장관 바루파키스는 장관직을 내놓으며 사실 ‘플랜B’를 준비하는 팀을 꾸렸었다고 밝혔다. ‘플랜B’는 “유럽중앙은행의 난폭한 행동의 결과 은행들이 문을 닫은 상황에서 숨 쉴 구멍을 만들기 위해 대체 은행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총리 치프라스는 바루파키스에게 ‘플랜B’를 실행할 권한을 결코 주지 않았다. 문제는 기술적 수단이 부족했던 것이 아니라 굴복이 아닌 대안을 추구하는 정치적 의지가 부족했던 것이다. 굴복이 아닌 대안을 계속 추구하려면 국민투표에서 표현된 그리스 대중의 긴축 거부 의사를 훨씬 더 크고 오래 지속되는 대중 운동으로 전환시켰어야 한다.

시리자는 새로운 종류의 반자본주의 정당을 표방했다. 그러나 현실에서 치프라스는 그리스 사회당이 20년에 걸쳐서 한 일을 불과 6개월 만에 재현했다. 바로 좌파 개혁주의에서 사회민주주의로 변모하는 것 말이다. 그리스 사회당은 그 변모 과정에서 그리스 노동계급을 위한 정치적·사회적 개혁을 어느 정도 달성했다. 그러나 시리자 정부는 실질적인 개혁은 하나도 이루지 못했고 이제는 더 혹독한 긴축 정책을 시행해야 하는 처지다.

2기 시리자 정부의 앞날은 순탄치 않을 것이다. 치프라스는 조기총선을 위한 선거운동 과정에서 우파 정당인 신민당에 화력을 집중했다. 신민당은 7월 5일 국민투표 때 찬성 운동을 벌이다 참패하고 혼란을 겪고 있었다. 9월 20일 총선 투표율은 역대 최저였고 시리자는 30만 표를 잃었다. 그중 절반 정도는 민중연합(Popular Unity)으로 갔다. 민중연합은 시리자 좌파였던 좌파연대(Left Platform)가 시리자를 탈당해 8월에 창당한 정당이다. 민중연합을 포함해 시리자 바깥의 좌파는 모두 합쳐 9.46퍼센트를 득표했다. 이것은 치프라스가 유럽연합과 맺은 악마와의 계약에 맞서 저항을 벌이는 데서 좋은 출발점이 될 것이다.

민중연합

몇몇 급진좌파들은 슬그머니 민중연합 지지로 옮겨갔다. 그러나 전 에너지부 장관 파나기오티스 라파자니스 등 민중연합 지도자들은 1기 시리자 정부에 있을 때 새 정당을 설립하기 위한 초석을 놓지 않았다. 치프라스가 국민투표 결과를 어기려 할 때 그들은 장관직을 내놓으며 공개적으로 반대 운동을 벌이기보다는 의회 내 수단(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하는 것)에만 의존해 대응하면서 치프라스가 자신들을 해임하기를 기다렸다. 

민중연합은 옳게도 그리스가 유로존을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시리자의 문제는 시리자 지도자들이 유로존 탈퇴를 거부한 것 이상의 문제다. 심지어 민중연합의 어느 지지자조차 이렇게 말했다. “시리자의 문제적 측면들 ─ 관료적 정치문화와 강령의 개혁주의적 성격 ─ 이 민중연합 안에서 재현되고 있다.”

시리자가 실패한 원인을 더 깊이 파고들어야 한다. 그리스 경험에서 배울 수 있는 주요 교훈 하나는 언론 노출과 의원직 확보라는 거품에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새 좌파의 힘은 사회운동에서 나온다. 그리스에서 반긴축 좌파를 다시 건설하는 데서든, 영국에서 코빈의 리더십을 계속 유지시키는 데서든, 출발점은 의회가 아니라 거리와 일터여야 한다.

△그리스 민중연합 “시리자의 문제적 측면들이 민중연합 안에서 재현되고 있다.” ⓒ사진 출처 그리스 민중연합

마지막으로, 사회주의자들은 어떻게, 그리고 무엇보다 어디에서 조직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다. 과거에 혁명적 좌파였던 사람들도 노동당 입당 물결에 휩쓸리고 있다. 지금 영국 분위기는 2012년 5월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가 약진했을 때를 연상시킨다. 당시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SEK)은 시리자에 가입하지 않고 반자본주의 좌파연합 안타르시아를 건설해 선거에 독자 출마했다고 해서 많은 좌파들의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선택이 옳았다. 안타르시아가 독자적으로 존재한다고 해서 ‘고립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7월 5일 국민투표 때 반대표 던지기 운동을 일으키는 데서 안타르시아가 큰 구실을 해 시리자 사무총장이 사실상 감사 인사를 할 정도였다. 그리고 안타르시아는 시리자로부터 독립적으로 있었던 덕분에 치프라스의 배신에 즉각 대응할 수 있었다. 반면 좌파연대는 주저하고 얼버무리다가 초기 대응을 잘하지 못했다.

시리자는 자본주의 권력 구조와 정면 대결하는 과정에서 굴복했다. 코빈은 그 자본주의 권력 구조와의 대결을 이제 막 시작했다. 좌파는 우파에 맞서 코빈을 계속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독자적 조직을 유지하면서 그래야 한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의 개혁주의 비판은 그리스에서 다시 한 번 타당성이 입증됐다. 우파와 맞서 투쟁하는 데서, 그리고 코빈이 우파에 타협하며 스스로 몰락하지 않도록 경고하는 데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중요한 무기가 될 것이다.

 

* 이 글은 다음의 논문을 많이 참고해서 썼다. Alex Callinicos, ‘Two faces of reformism’, International Socialism 148(Autumn 2015).

입력 2015-10-2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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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②

스웨덴 모델 1 - 살쮀바덴 협약과 계급타협 전략(1)

장호종

‘스웨덴 모델’ 하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바로 살쮀바덴 협약이다. “1938년의 살쮀바덴 협약을 통해 제도적으로 정착되어 1960년대 말까지 유지된 스웨덴 특유의 … 협조주의적 노사관계는 스웨덴 모델 전체를 떠받치는 기둥 역할을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신정완)

표1. 노동자 1천 명당 노동손실일수(출처 : 신정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사평 아카데미, 2012)
나라 1900 ~ 1913 1919 ~ 1938 1946 ~ 1976
스웨덴 1286 1440 43
영국 460 1066 213
프랑스 309 404 566
이탈리아 293 126 631
독일 489 875 31(서독)

살쮀바덴 협약은 1938년 스웨덴 노총(LO)과 스웨덴사용자연합(SAF)이 체결한 협약이다. 그 핵심 내용은 노사 중앙조직들이 임금 협상 구조를 중앙 집중화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분쟁 조정권한을 대폭 강화해 파업이나 직장폐쇄 같은 쟁의를 억제한다. 비록 강제 조항을 포함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 협약이 끼친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당시 주요 제조업 노동자들이 대부분 LO 산하에 조직돼 있고 소수의 재벌 가문이 스웨덴 경제 전체를 주도했기 때문이다. <표 1>에서 보듯이 당시 스웨덴은 유럽 전체에서도 전투적 노동자 투쟁이 빈번하게 벌어지던 곳이었다. 그러나 살쮀바덴 협약 체결 직후 그 빈도가 급격히 줄어든다. 

△1938년 살쮀바덴 협약에 서명하는 스웨덴 노총과 스웨덴사용자연합 대표. ⓒ스웨덴 노동운동 아카이브 도서관

한국의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그동안 기업별 노조 체계가 가진 약점들을 지적하며 산별노조나 지역노조 등을 건설하려 애써 왔다. 기업별 노조 체계 하에서는 소규모 사업장에 고용된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고 정작 노조를 만들어도 고용주들이 무시하기 일쑤다. 경험이 일천하고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임금이나 단체협상에서도 불리한 처지에 놓이기 쉽다. 자본들 사이의 하청 구조 같은 위계체계 때문에 하위 기업주들의 임금 지불 능력이 낮고,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도 공세적으로 싸우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이 때문에 노조 조직률을 높이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때로는 대공장(예컨대 현대차 등)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전체 노동자들의 이익을 저버리고 자기 노동조합의 단기적 이익만을 추구한 결과, 오히려 노동계급 전체의 단결을 해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수많은 투사들이 실천으로 입증했듯이 이런 어려움 때문에 노동자들이 자신의 고용주에 맞서 싸우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결코 아니다. 거꾸로 산별노조나 지역노조 등이 오늘날 노동자 투쟁이 겪는 어려움을 자동으로 해결해 주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앞으로 다룰 스웨덴 노동자들의 경험은 이런 구조가 노동조합 관료의 통제력을 강화함으로써 노동자 투쟁에 보수적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따라서 근본적인 문제는 노동조합 구조보다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좌파든 우파든) 싸우려 하지 않을 때 기층의 노동자들이 이를 어떻게 극복하고 투쟁에 나서 마침내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인가에 있다.(이와 관련해 더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면 <노동자 연대> 149호에 실린 ‘노조 관료주의와 현장 조합원 운동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과 대안’을 보시오.)

그럼에도 공장이나 기업의 담장을 넘어 더 광범한 노조로 단결하는 것이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것은 대체로 사실이다. 특히 비정규직이 늘어나고 실직자도 늘어나는 오늘날과 같은 상황에서 스웨덴 LO처럼 민주노총이 거의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과 조건에 대해 사용자 대표단과 협상을 벌일 수 있다면 앞서 언급한 기업별 노조 체계의 약점이 많이 보완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점에서 국내의 많은 학자들과 노동운동 활동가들은 스웨덴의 살쮀바덴 협약이 노동조합의 힘을 키우는 커다란 계기가 됐다고 평가한다.

물론 살쮀바덴 협약이 스웨덴 모델의 ‘기둥’으로 평가되는 이유는 단지 상층 중앙 교섭 구조의 이점 때문만은 아니다. 살쮀바덴 협약은 정부가 노동자들의 생활조건이나 경제에 영향을 끼치는 정책을 결정할 때 노동조합을 중요한 논의 파트너로 참가시키는 구실을 했다. 정부가 어떤 정책을 추진하든 노사 간의 합의가 그 실질적 시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구실을 하게 됐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살쮀바덴 협약은 (형식적으로는 정부가 배제돼 있지만) 오늘날 많은 개혁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사회적 합의’의 원조 격이라 할 만하다.

훗날 스웨덴 모델의 핵심으로 자리잡게 되는 연대임금정책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실업정책)이 도입된 것이나, 연금 · 아동수당 등 보편적 복지제도들이 자리잡게 된 것도 개별 기업이나 산업을 뛰어넘는 합의 구조 덕분이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스웨덴 모델의 기둥

그러나 당시 일관되게 상층 단일 교섭 구조를 추구한 것은 LO가 아니라 SAF였다. 앞서 언급했듯이 살쮀바덴 협약 이전에 스웨덴에서는 노동자들의 전투적 행동이 끊이지 않았다. 따라서 살쮀바덴 협약은 노동자들의 투쟁이 낳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런 점 때문에 신광영 교수는 “살트셰바덴[살쮀바덴] 협약은 자본과 노동의 타협을 통해 양자가 이익을 누릴 수 있다는 정합게임의 가능성을 인정한 긍정적인 계급타협이었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앞으로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실제 협약의 내용은 사용자들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내용으로 일관하고 있[다.]”(안재흥)

스웨덴 자본가들은 당시 상대적으로 온건한 부위였던 금속노조가 사용자 측(VF)과 체결하던 단일 교섭 구조를 본떠 스웨덴 전체에 적용하려 애썼다. 노동조합 지도부의 권한이 강할수록 기층 노동자들의 파업을 억제하기 쉽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파업을 불사하는 전투적 교섭 방식에 바탕을 두고 높은 임금을 획득해 온 건설 부문 노동자들의 존재는 임금인상 요구를 자제하는 입장을 취해 온 금속노조 지도부의 노선을 정당화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었다. 1926년 LO 총회에서 금속노조 스톡홀름 지부는 LO 전체 차원에서 ‘연대의 원칙에 기초한 임금정책’을 시행할 것을 LO 지도부에 건의했는데, 그 실제 의도는 건설부문의 높은 임금상승을 차단하는 데 있었다.”(신정완)

요컨대 노동계급 전체와 자본가 계급이 ‘상생’했다기보다는 노동조합 내 보수적인 부문 특히, 금속노조와 LO 등 상층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자본가들의 이해관계가 일치한 것이다. 비록 그것이 영원히 지속될 수는 없는 것일지라도 말이다.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된 과정은 단순하지는 않다. 그러나 큰 틀에서 보면 온건한 개혁주의 전략을 채택한 LO 지도부와 사민당이 기층 노동자들의 전투성을 서서히 압도해 가는 과정이 제2차세계대전 전까지 진행됐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가장 전투적이었던 건설노조 등의 반발 때문에 LO 지도부는 1920년대까지도 이런 계급타협 전략을 노골적으로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LO 지도부가 이미 1900년대부터 이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었다는 사실은 비교적 분명하다.

서유럽의 다른 선진국에서 대개 노동조합이 자신들의 정당을 건설한 과정과 달리, 스웨덴에서는 사민당이 LO 건설에서 주도적인 구실을 했다. 1898년에 창립한 LO는 수년 후 사민당과 형식적으로 분리됐지만, 실제로는 대단히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리고 상층의 분업(당은 정치투쟁, 노조는 경제투쟁을 전담)에도 불구하고 기층의 조직은 거의 한몸이나 다름없었다.

스웨덴 사민당은 1900년대 이전부터 매우 온건했고, 1918년 가을에 사민당의 핵심 지도자 묄러가 당 이론지에 1917년 러시아 혁명을 혹독히 비판하는 글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사민당 지도자들은 현존 국가를 전복하지 않고 오히려 강화해 시장의 문제를 바로잡으면 사회주의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겼다.(심지어 이들은 ‘사회’라는 단어와 ‘국가’라는 단어를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사민당 지도부의 이런 노선은 LO 내에서도 개혁주의를 강화하는 구실을 했다. 그럼에도 LO 지도부가 기층 노동자들의 전투적 행동을 어느 정도 통제할 수 있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특히 당시 유럽의 혁명적 분위기 덕분에 LO 내에서도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이 적잖은 지지를 받고 있었다.

예컨대 1902년에 사민당 지도부가 보통선거권을 요구하는 정치 파업을 제안하자, 이를 둘러싸고 LO 지도부 좌우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다. 반면 사민당 당원(이자 LO 조합원)들은 압도적 찬성으로 이를 가결시키고 파업에 돌입했다. 파업으로 선거권을 즉각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이틀 동안 벌어진 파업은 스웨덴 사회를 뒤흔들었다. 당시 운수노조 위원장이던 찰스 린들리는 회고록에서 당시 분위기를 이렇게 묘사했다. “당시에는 총파업으로 보통선거권을 쟁취할 수 있다는 거의 무한한 믿음이 있었다.”

이 파업을 계기로 스웨덴 자본가들은 SAF를 창설하고 직장폐쇄를 무기로 반격에 나섰다. 반면, LO 지도부는 정치 파업이 자본가들을 단결시키고 노조를 위기에 빠뜨렸다고 여기며 기층의 행동을 억제하기 시작했다. 이런 분위기 탓에 1904년에 다시 부쳐진 총파업 찬반 투표는 부결됐다. 당시 노동조합의 태도를 보며, 사민당 당원의 61.8퍼센트는 정치 파업에 나설 경우 노동조합이 자신들을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안재흥)

1906년 LO 지도부는 대규모 파업은 ‘최후의 투쟁수단’이며 ‘사용자 측의 무자비한 공격’에 대한 방어적 목적에만 사용돼야 한다는 안을 통과시켰다. 사민당 지도부도 이듬해 당대회를 열어 이 안을 승인했다. 같은 해 12월 LO는 SAF와의 협상에서 ‘노동의 자유’ 조항(실제로는 고용주에게 해고의 권리를 보장하는 조항)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1909년에 다시 총파업에 돌입했다. 1908년에 시작된 경제 위기 탓에 노동자들의 생활 수준이 하락했다. 그래서 임금 인상이 핵심 요구였다. 7월에 벌어진 소규모 파업들에 자본가들이 직장폐쇄로 대응했고 LO 지도부는 기층의 압력에 떠밀려 총파업을 선언할 수밖에 없었다. LO 지도부는 산하 노조 지도부와의 상의도 없이 단지 총파업을 ‘선언’했을 뿐이었지만 해당 조합원 50만 명 중에 30만 명이 즉각 파업에 나섰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파업은 처참하게 패배했고, LO의 조합원 수는 1년 만에 3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1909년 파업의 패배를 두고 기층의 과도한 전투성이 노조를 위기에 빠뜨렸다는 식으로 평가한다. 당시 스웨덴에서도 1909년 파업의 패배 이후 LO 내 계급 협력 노선을 추구하는 우파의 입지가 강화됐다.

그러나 이 파업의 패배는 예정된 것이 아니었다. 영국의 사회주의자 토니 클리프는 여러 나라에서 벌어진 대중파업의 경험을 비교 분석한 논문에서 스웨덴의 1909년 파업을 “관료적 대중파업의 극단적 사례”라고 평가한 바 있다.

“파업은 매우 단단히 위로부터 통제됐다. 지도부의 핵심 목표는 질서를 지키는 것이었다. 노조 사무총장은 파업 위원회가 ‘특별 경찰들’을 선발해 경찰의 지시에 성실하게 따르도록 지시했다. 이 아이디어는 내무부 장관이 노총 위원장에게 제안한 것이었다! 결과는 완벽한 질서였다. 심지어 당국은 평상시보다 파업 기간에 더 질서가 잘 지켜졌다고 발표할 수 있었다. 파업은 전혀 흔들림이 없었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 파업은 한 달 동안이나 이어졌지만 임금은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노조 지도자들은 ‘사실상 무조건 항복’했고 파업은 완전히 실패했다.”(토니 클리프, ‘대중파업의 패턴들’)

LO 지도부는 이 파업을 단지 정부 개입을 이끌어내려는 수단으로만 활용하려 했다. LO 지도부는 정부 내 자유주의자들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동자들의 파업을 제한하려 했지만 정작 자유주의자들은 이 파업을 지지하지 않았다. LO 지도부는 무역에 차질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철도, 병원, 가스 수송, 청소 등 핵심 공공부문을 파업에서 제외시켰다. 가장 전투적이었던 항만노조는 1906년 LO 지도부의 ‘12월 합의’에 반발해 LO의 계획에 협조하지 않고 있었다.

요컨대, 기층의 잠재력을 끌어올리기는커녕 파업의 ‘경제적 효과를 최소화’하려 한 LO 지도부의 자기제한적인 전술이 패배를 자초한 것이다. LO 지도부는 이 패배 이후 더욱 우경화했다.

그러나 스웨덴도 1917년 러시아 혁명의 여파에서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1917년 무렵 LO의 조직률은 1909년 수준을 회복한다.

“1917년과 1918년은 스웨덴 역사상 가장 극적인 해였다. 식량 부족과 러시아 혁명의 열기가 확산되면서 파업, 시위, 소요가 전국을 휩쓰는 와중에 보수주의자들이 보통선거권 요구를 받아들였고, 최초로 사민당이 내각에 참여했다. 사민당 내부에서 혁명에 동조하는 집단이 등장했고, 사민당 노선에 반대해 사회민주주의 좌파당을 건설했다. LO는 파업에 의존하지 않고 러시아 혁명의 효과로 자본가들과 정부로부터 중요한 사회조직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신광영)

혁명의 파고가 낮아지고 1920년대 대공황이 찾아오자 LO 지도부는 다시 자본가들과의 협력에 나선다. 이제 정부에 입각한 사민당은 노동자 파업에 더욱 적대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집권으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다음 호에서 계속) 

입력 2015-11-1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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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정의당 출범을 앞두고

김인식

정의당·노동정치연대·진보결집+·국민모임이 통합한 정의당이 11월 22일 출범할 예정이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 이후 사분오열해 ‘각개 기어가기’를 하던 진보 정치 세력들이 처음으로 (대통합이 아니라 부분적 통합일지라도) 통합한다.

정의당은 노동정치연대·진보결집+·국민모임을 통해 각각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지역 정치 활동가, 진보 지식인 기반을 보강할 수 있게 됐다.(통합 정당의 성격과 전망에 대해서는 필자가 <노동자 연대> 157호에 쓴 ‘현재 추진 중인 노동자 정치 세력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참조하시오.)

△11월 3일 통합 선언을 위한 국회 기자회견. ⓒ사진 출처 정의당

당명에서 드러나듯이, 정의당이 통합을 주도했다. 정의당을 제외한 나머지 세력은 정의당 당명을 한사코 피하고자 했다. 자신들의 행보가 정의당에 ‘수혈’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비칠 것을 우려해서였다.

그래서 당명이 통합 과정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으로 떠올랐다. 진보정당의 당명은 흔히 그 당의 정치 노선과 지향을 표현하므로 매우 민감한 문제다. 민주노동당 창당 과정에서도 당명 제정 문제로 긴장이 날카롭게 고조됐었다. 결국 당명은 정의당으로 낙착됐다.(노동정치연대·진보결집+·국민모임이 유사 정당 당명을 아예 배제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은 다소 강경한 자세였던 것 같다.)

모순

새누리-새정치, 기존의 자본가 정당들에 맞서 대중적 진보 정당이 등장하는 것은 전진이다. 부르주아 양당 체제에 대한 대중적 불신에 더해, 통합 효과 덕분에 내년 총선에서 통합 정의당이 진보 정치 세력 중 가장 전진할 것 같다.

선거에서 통합 정의당이 새누리당이나 새정치연합 등 노골적인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사회주의자들은 이 정당에 투표하라고 대중에게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개혁주의적 환상을 경계하면서 말이다.

통합 정의당은 파업과 시위 같은 국회 밖 대중 투쟁이 결국 국회 등 기성 정치 제도들을 통한 사회 개혁에 종속돼야 한다고 믿는 개혁주의 정당이다. 그래서 피지배자들의 저항과 연대의식을 확산하는 데 어느 정도 일조하지만, 결국 자본주의 체제를 유지하려 한다.

그런 만큼 그 당 안에는 모순이 존재한다. 심상정·노회찬 등 주요 리더들은 운동과 정치를 날카롭게 분리시킨다. 반면, 통합 정의당이 “제도 정당”이자 “사회운동적 정당”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는 세력도 존재한다.

사회주의자들은 통합 정의당의 개혁주의적 전략을 놓고 논쟁을 하면서도, 특정 쟁점을 놓고 통합 정의당 내 좌파와 공동전선을 구축할 줄도 알아야 한다.(혁명가들과 좌파의 정치 전망에 대해서는 필자가 <노동자 연대> 157호에 쓴 ‘현재 추진 중인 노동자 정치 세력화, 어떻게 볼 것인가?’를 참조하시오.)

민주노총의 총선 대응 방침에 대해

 

최근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총선 대응 방침을 논의하는 중이다. 그중에 ‘선거연합 정당’도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정당법의 제약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하나의 정당이지만, 그 내부에서는 참여한 정치 세력들의 정치적 독자성을 보장하는 방안이다.

‘노동자연대’는 진보/좌파 진영의 정치적 단결을 이룰 방안으로 느슨한 ‘연합 정당’ 모델을 전부터 제안해 왔다. 진보/좌파 세력들이 각개약진을 해서는 부르주아 양당 구조 밖에서 진보적 정치 대안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는 게 만만찮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범한 진보/좌파 세력이, 단체만이 아니라 개인들도 참여하는 되도록 광범한 연합체를 제안했다.

광범하다는 것은 또한 정치적 이질성이 존재한다는 뜻이다. 정치적으로 이질적인 세력과 개인 들이 단결을 이루려면 조직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느슨한 연합체, 즉 전선체적 조직 모델이 유용하다. 이런 조직 구조는 상이한 경향이 숨쉬고 공존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할 수 있다.

반대로, 각 구성 성분의 정치적 독립성과 독자적 행동을 완전히 보장하지 않고 상이한 정치 경향들이 상대 경향들에게 자신의 강령과 노선을 따를 것을 강요하면 끊임없이 긴장이 생겨날 것이다.

안타깝게도, 내년 총선 전에 ‘선거연합 정당’이 성사될 가망성은 낮아 보인다. 진보대통합을 주장하는 옛 진보당 세력은 찬성하겠지만, 통합 정의당은 “과거 통합진보당의 주도 세력[과의 통합]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심상정 정의당 대표의 말) 여전히 남아 있는 통합진보당 분열의 감정적 앙금에 더해, 총선에서 득표에 도움이 안 될 거라는 현실적 계산 때문인 듯하다.

이 때문에 통합 정의당은 옛 진보당 세력으로부터 제공받을 수 있는 기층 조직력보다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몇몇 정치인들을 전면에 포진시키는 공중전에 의지해 총선을 치르려 할 것 같다. 통합 정의당이 비례대표 의석수 문제와 직결돼 있는 선거구 획정 협상에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도 그래서일 것이다.(그렇다고 통합 정의당의 지역구 당선 가망이 없다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녹록치 않을지라도 몇몇 지역에서는 당선 가능성도 있다.)

노동당은 방금 전에 진보 통합 문제를 놓고 분열했기 때문에, 그리고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는 개혁주의 정치 세력과의 분립에 주력할 것이기 때문에 ‘선거연합 정당’ 방안에 호의적이지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선거연합 정당’은 온건 개혁주의 정당으로부터 좌파들의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하면서 최대한 광범한 진보성향의 정치적 단결을 이룰 수 있는 유력한 방안이다. 민주노총 정치위에서 ‘선거연합 정당’ 논의가 잘되기를 바란다.

입력 2015-11-1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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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정의당 성장의 역설

김인식

지난해 노동자들은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어느 정도는 저항했다. 민주노총 지도부 선거에서 좌파인 한상균 후보가 당선한 것은 노동자들이 저항할 의사가 있음을 보여 준 것이었다. 또, 4월과 9월에 하루 행동 수준에서 더 나아가지 못했어도 파업을 했다. 11월 민중총궐기에는 대부분이 노동자와 좌파인 10만 명이 참가했다. 지난해 노동자 저항의 절정이었다.

물론 노동계급의 투쟁 수위는 박근혜 정권과 사용자들의 맹공격에 필적할 만한 수준에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공무원연금 문제 같은 일부 전투들에서는 패배하기도 했다. 핵심 문제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거듭 소심하게 뒤로 물러섰다는 점이다. 그들은 행동 수위를 제약한 뒤, 패배하면 투쟁 동력이 없었다거나 행동은 별 효과를 못 낸다고 말했다. 단연 공무원노조 이충재 전 위원장이 대표적이었다.

그럼에도 2013년 박근혜 정권 취임 초기 노동자들이 보인 낙담·사기저하·우울·무력감·두려움 등을 떠올려 보면, 노동자들의 투쟁 자신감이 조금씩, 불균등하게나마 되살아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다 경제 상황의 악화와 친일 외교 행각 등이 겹치면서 (처음에는) 철옹성처럼 보였던 박근혜 정권에 틈이 보이기 시작했다.

노동자 저항 덕분에 개혁주의 정당이 소생하다

조금씩 회복되는 노동자들의 자신감 덕분에 통합 정의당 같은 정치적 개혁주의가 소생했다. 이 말이 당장 이번 총선에서 통합 정의당의 의석 증가로 나타날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은 아니다. 선거법과 선거 정치 지형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으므로 지나치게 단순한 전망은 피해야 한다.

그러나 확실히 지난해는 2012년과는 다른 정치적 공기가 감돌았다. 2012년 통합진보당 분열 이후 진보 정당들은 ‘각개 기어가기’를 했다. 진보 정치가 실패했다는 말이 유행어였다. 그러나 지금 민주노총 안에서는 ‘노동개혁’ 저지 같은 노동자 운동의 핵심 의제를 부각시키는 데 총선을 이용해야(기다려야) 한다는 (잘못된) 기류가 형성돼 있다. 노동자들의 염원을 개혁주의 정당으로 표현하는 정당의 시즌이 시작된 것이다. 이런 상황에 힘입어 공식 정치 영역에서 통합 정의당이 성장했다. <노동자 연대>는 이미 일찌감치 이런 상황 전개의 가능성을 예측하는 기사를 실은 바 있다.(최일붕, ‘[2014년]상반기 투쟁을 돌아보며 주의할 것들’, <노동자 연대> 137호와 김인식,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에 대해’, <노동자 연대> 150호를 보시오.)

△통합 정의당은 노동자 투쟁의 수혜를 입고 있다. 2015년 2차 민중총궐기. ⓒ이미진

현재 통합 정의당의 당원은 3만 명이 넘는다. 2012년 12월 창당 때(7천여 명)의 네 배로 늘었다. 노골적인 자본주의 정당들만이 공식 정치를 반세기 이상 지배해 온 나라에서 이는 적은 숫자가 아니다. 현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20세기 전반에 독일·영국 등에서 고전적 사회민주주의가 누린 광범한 노동계급의 정치적 충성을 — 독일 사회민주당은 “국가 안의 국가”로 널리 인식됐다 — 더는 받지 못한다. 장기간에 걸쳐 노동계급 기반이 상당히 침식돼 온 것이다.(그렇다고 해서 고전적 사회민주주의가 완전히 무의미해졌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당원 수를 분석할 때는 이런 국제적·역사적 추세를 고려해야 한다.

특히, 공공노조·화섬노조·사무금융노조 지도자들 상당수가 통합 정의당을 지지한다. 이들이 정의당의 의회 지도부와 조직 노동계급을 연결시키는 구실을 할 것이다.

이런 현실을 봤을 때, 일부 좌파가 의회주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종국적 파산”을 선언한 것은 개혁주의의 생명력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소치이자, 실천적 함의로는 개혁주의 세력과의 공동전선을 기각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그저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노동자 대중 외부에서 주입하는 사상이 아니다. 이런저런 개혁주의는 피착취·피억압 집단이 고통에 맞서 행동에 나설 때 보이는 자연스러운 첫 반응이다. 피착취·피억압 집단의 성원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나고 자란 기존 사회 말고는 알지 못한다. 당연하게, 기존 방식으로 조직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빨간 안경을 쓰고 자란 사람이 분홍빛 이미지 말고는 상상할 수 없듯이 말이다.

자연스러운 첫 반응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썼듯이,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또, 그람시가 지적했듯이 어떤 사회의 “상식”은 지배적인 사상을 당연시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거의 언제나 그 사회의 주요 특징이 지속될 것이라고 가정하고서 자신들의 최초 요구를 제기한다. 그래서 봉건 사회에서 농민 반란은 흔히 나쁜 영주나 왕을 착한 영주나 왕으로 바꿔 달라고 요구했다. 1905년 러시아 혁명은 정교회 사제가 이끈 행렬이 경찰 간부와 공장주의 ‘학정’을 해결해 달라고 차르에 청원하면서 시작됐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조합의 협상이나 국회에 압력을 가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사람들이 협상을 조직하거나 압력을 가하는 방식에 기대를 걸 때 정치 운동으로서의 개혁주의가 떠오른다. 이렇듯 개혁주의 정당의 성장은 노동계급의 의식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 있다.

2000년에 작고한 팔레스타인 출신 마르크스주의자 토니 클리프가 지적했듯이, “노동자들이 더 나은 세계를 만들고자 하는 한, 그러나 스스로 그렇게 할 수 있을 만한 자신감이 없을 때, 노동당은 결정적인 영향력을 계속 유지할 것이다.”

이 말을 지금 우리 현실에 맞게 번안하면 이럴 것이다.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저항할 만큼 자신감이 자라기 시작했지만, 진정하고 실질적인 총파업을 통해 박근혜 정권의 공세를 좌절시킬 만큼 자신감이 충만하지는 않는 상황에서 통합 정의당 같은 개혁주의 정당이 떠오르고 있다.

이것이 통합 정의당의 패러독스(역설)이다. 통합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운동과 정치를 예리하게 분리시키고자 한다. 노회찬 전 대표는 이를 “진보의 세속화”이자 “진보 정치의 혁신”이라고 했다. 그런 통합 정의당이 노동자 투쟁의 수혜를 입을 수 있고 실제 입고 있다.

물론 지난해 하반기 민주노총 하루 파업과 민중총궐기 등 노동자 투쟁이 부상하자 통합 정의당은 전보다 좀 더 적극성을 발휘해 그 운동들에 참가했다. 그러나 그때조차 노동자 파업을 통해 ‘노동개혁’을 저지하자고는 주장하지 않았다. 과연 노동자 투쟁보다 의회 활동에 무게중심을 두는 개혁주의 정당인 것이다. 그렇다 할지라도 공식 정치 영역에서 통합 정의당의 부상 조짐은 단지 의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한 것이 아니다. 공식 정치가 다시 한 번 변화의 문턱에 들어서기 시작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도 있다. 2012년 말 박근혜가 이긴 뒤 많은 사람들이 얼마나 사기가 저하됐는지를 떠올려 보라.

민주노총의 총선 방침에 대해

진보 정치 세력이 통합 정의당과 진보당 계승 세력으로 분리돼 있기 때문에, 진보 유권자의 표가 온전히 통합 정의당으로 몰리지는 않을 수 있다.(두 세력은 같은 선거구에서 경쟁하지 않도록 후보를 단일화하는 게 좋을 것이다.)

지난해 말 민주노총은 표 결집을 최대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선거연합정당 안을 제시했다. 이것은 ‘노동자연대’가 오래 전에 제안한 전선체적 연합정당 방안과 매우 흡사하다. 현재의 구체적 한국 상황에서는 지지할 만한 방안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연대’의 강조점이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에서 범좌파 정당 건설 쪽으로 이동한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자본가 양당 체제 왼쪽에서 개혁주의 정당이 성장할 수 있는 것도 선거주의적 접근이 아니라 계급투쟁의 논리였다.

그런데 통합 정의당은 방금 전에 4자 통합을 마친 터라 민주노총의 제안을 거절했다. 반면, 진보당 계승 세력은 매우 적극적이었다. 특히, 정치적·시민적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또한 단일한 이념에 기초한 단일한 세력이 집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가정도 깔려 있다.(특히, 신석진·김정엽 등이 쓴 《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 — 반성과 성찰의 기록》(생각비행)에서 이런 생각을 발견할 수 있다.)

민주노총 중집 성원의 다수는 통합 정의당이 빠진 채 진보당 계승 세력이 주도하는 선거연합정당을 추진하면 노동조합이 분열될 수 있음을 우려해 결국 선거연합정당 안을 폐기했다. 정당 지지 문제로 노동조합이 분열해 단결력과 투쟁력이 약화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못하다.

현재 민주노총 중집은 선거연합정당의 대안으로 ‘총선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민주노총 요구, 민중총궐기 11대 요구에 동의하고 박근혜 정권의 반민중적 공세에 대한 공동 투쟁 조직화에 동의하는 정당, 정치조직, 사회운동조직”과 함께 ‘총선공동투쟁본부’를 구성하겠다는 것이다.

총선공동투쟁본부를 통해 지역 선거구에서 후보를 조정해 ‘민중단일후보’로 출마하고, 총선공동투쟁본부 참여 진보 정당들을 정당 투표 지지 대상으로 한다는 구상이다. 진보/좌파 다원주의에 입각하되, 진보 세력들이 최대한 후보를 단일화하자는 안이다. 민주노총이 그 내부에 다양한 정치 세력들이 공존하는 현실을 고려한 고육책으로 보인다.

물론 박근혜 정권이 노동 개악 2대 지침을 강행한 지금, 총선을 기다리기보다 투쟁을 확대하는 것이 이후 선거 돌파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박근혜에 맞설 수 있는 조직 노동계급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줄 때 다른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사람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 그렇지 않고 총선 때까지 기다려 ‘노동개혁’을 저지하자는 선거주의적 접근은 오히려 선거 승리 가망성을 적게 만들 것이다.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좌파적 개혁주의의 부상

2008년 경제 공황 이후 지속된 경제 침체 시기에 국제적으로 좌파 개혁주의에 대한 광범한 지지 추세를 목격할 수 있었다. 그전에도 독일의 좌파당(디링케), 프랑스의 반자본주의신당(과 그 뒤 좌파전선), 포르투갈의 좌파블록, 덴마크의 적록동맹, 한국의 민주노동당이 급진좌파 정당을 형성한 바 있다.

경제 위기 이후 유럽의 우파 정부는 열정적으로, 그리고 개혁주의 정부는 악어의 눈물을 흘리며 긴축을 추진했다. 이 때문에 기성 정치에 대한 환멸이 커졌다. 환멸은 하나의 방향을 향하지는 않았다. 정치적으로 무관심해지거나, 우익 포퓰리스트 정당이나 파시스트 정당을 지지하기도 하지만 일부는 더 급진적인 방향을 향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급진좌파가 재림했다. 보수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수용하면서 당원 수와 유권자 기반이 감소했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들은 정치의 이런 점진적인 공동화(空洞化)를 메우고자 했다.

△영국에서 변화 염원의 구심이 된 노동당 대표 제러미 코빈(가운데 노란 셔츠) ⓒ출처 lewishamdremer (플리커)

그리스에서는 2015년 초 시리자가 총선에서 급진적인 반긴축 강령을 내세워 집권했다. 시리자는 그리스의 커다란 공산주의 운동이 분열하면서 등장했다. 스페인의 새로운 급진좌파 정당인 포데모스는 지난해 12월 총선에서 21퍼센트(약 5백 20만 표)를 획득해 69석을 차지했다. 포데모스는 ‘분노한 사람들’ 운동 같은 사회 운동 속에서 등장해 기성 정치 체제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고 공산당이 주도하는 좌파연합과 경합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했는데, 1년 전에만 해도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남아공에서는 경제자유투사당이 2014년 총선에서 1백만 표를 넘게 득표해 (4백 석 중) 25석을 차지했다.

계급투쟁

이런 사태 전개의 핵심 추동력은 새로운 투쟁과 운동의 발전이었다. 그런 투쟁과 운동 덕분에 더 많은 노동자들과 청년들이 대안을 위해 저항하고 투쟁할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이렇듯 계급투쟁 수준이 높으면 좌파의 공간이 확대되고 우파의 공간이 압착된다.

물론 국제적 정당 스펙트럼을 따르자면 통합 정의당은 결코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이 아니다. 통합 정의당 지도부 자신도 서구식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그 당의 강령도 “한국 자본주의의 민주적 개혁”을 표방한다. 그래서 통합 정의당은 과거 민주노동당보다는 정책과 실천 모두에서 주류 사회민주의 정당에 더 가깝다.

예컨대, 정의당 지도부는 안보 문제에서 냉전 시기 서구의 반공주의적 사회민주주의를 연상시키는 행보를 해 왔다. 지난해 1월 정의당 지도부는 천안함 위령탑을 참배했다. <동아일보>는 이를 두고 “종북과 선 긋기”라고 보도했다. 심상정 대표는 지난해 8월 비무장지대 지뢰 폭발 사고를 두고 북한의 반인도적 전쟁범죄라고 규탄하고, 박근혜 정부의 안보 무능을 질타했다. 올해 1월 북 핵실험에 대해서도 정부의 “안보 무능”을 비판하는 것으로 대응했다. 물론 그 당은 평화주의도 설파한다. 둘 사이에 모순이 있다. 그러나 정의당 지도부는 자신들이 집권하면 국가를 강화하겠다고 시사하고 있다.

노자 대립에서도, 정의당 지도부는 자본가 계급과 노동자 계급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가령, 정의당 지도부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지지하면서도 일방적 추진은 반대했다. 확실하게 자본가 계급의 편을 든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확실하게 노동계급의 이익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런 모순의 실천적 결론은 사회적 타협 — 계급 평화 — 을 옹호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의당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여야 야합과 공무원노동조합 집행부의 배신이라고 비판하지 않고 “사회적 합의”라고 두둔했다.

그러나 보수 정당과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주류 양당 정치를 지배해 온 유럽과 달리, 한국의 양당 정치는 두 자본가 정당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통합 정의당이 새누리당이나 더민주당 등 부르주아 정당과 맞붙는다면 사회주의자들은 환상을 갖지 말고 통합 정의당에 투표하라고 대중에 말해야 할 것이다. 물론 통합 정의당의 온건함 때문에 선진적인 노동자들이 투표를 넘어 그 당에 입당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입력 2016-01-2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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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울산 선거와 노동자 후보 단일화

지난해 경제 위기 고통전가, ‘노동개혁’ 등을 강행하려는 박근혜 정부와 싸우면서 자신감을 어느 정도 회복함과 동시에 한계도 느낀 노동자들은 올해 총선에서 자신들의 요구와 압력이 반영되길 바란다.

지난주 진보 단일화를 위한 경남 창원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는 투표율이 70퍼센트가 넘었다. 많은 조합원들이 노동자 후보의 국회 진출에 관심과 열의를 보인 것이다.(이 투표에서는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선출됐다.)

당연히 현대자동차 등 민주노총의 주요 제조업 작업장이 밀집된 울산도 관심의 대상이다. 울산의 북구와 동구는 10여 년 전부터 노동운동이 국회의원과 구청장 선거에서 당선자를 냈던 노동자 정치의 1번지 같은 곳이다. 그래서 울산 북구와 동구는 경남 창원성산과 함께 (지역구 당선을 목표로 하는) 민주노총의 전략 선거구다.

현재 울산 동구에는 김종훈, 이갑용 후보가, 북구에는 윤종오, 조승수 후보가 예비후보로 출마했다. 과거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해당 지역구에서 공직에 당선한 적이 있는 후보들이다. 이들은 민주노총의 요구로 단일화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울산에서 좀 더 좌파적이고 노동자 운동의 스피커 구실을 좀 더 잘 할 후보가 새누리당을 떨어뜨리고 국회의원이 되면 노동운동을 고무할 것이다.

울산 동구

울산 동구는 “현대왕국”으로 불리던 곳으로 그룹 회장인 정몽준이 과거 내리 5선을 했던 곳이다. 현대중공업 사측이 선거 때 공장은 물론 직원 사옥에서까지 진보 후보들의 선거운동을 방해한 것은 유명하다. 지금도 그의 측근인 새누리당 안효대가 지역구 국회의원이다. 이곳에서는 새누리당의 영남 패권뿐 아니라 대기업 현중의 영향력에도 맞서 싸워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비하면 새누리당과 진보정치 후보 간에 국회의원 표차도 줄어 왔고, 최근의 두 차례(2011, 2014년) 구청장 선거에서는 잇따라 진보 후보들의 득표가 더 많았다.

옛 진보당 울산 계열의 단체 ‘민주와 노동’ 대표인 김종훈 후보는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동구청장을 지냈다. 김 후보는 “조선산업 발전과 노동자 고용안정으로 지역경제를 살리겠다”고 강조한다. 쉬운해고금지법, 사내유보금으로 고용보장, 체불임금 국가책임화 등의 노동자 권리 보장 정책과 친환경 선박 개발, 해양플랜트 사업에 대한 국가 지원 등 조선산업에 대한 범국가적 지원 확대를 공약으로 내놓았다.

민주노총과 현대중공업노조 위원장 출신인 이갑용 후보는 현재 노동당 울산시당 위원장이다. 이 후보도 2002년에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구청장에 당선했다. 당시 중앙정부와 울산시(새누리당)의 전국공무원노조 징계 명령을 거부했다가 부당하게 구청장 직을 사실상 박탈당했다. 이갑용 후보는 “28년 재벌정치 바꿉시다!”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현대중공업의 정몽준 같은 대자본가에게 세금을 많이 거둬 노동자들의 복지와 고용에 쓰자고 강조한다. 노동당은 자본에 보유세를 매겨 기본소득, 임금 인상 등에 사용하자는 공약을 내놓았다.

구체적 공약을 보면, 김종훈 후보가 노동자 고용안정을 주장하면서도 이를 기업경제 살리기와 절충하려는 면이 있는 반면, 이갑용 후보는 좀 더 좌파적으로 재벌에 맞선 노동자·민중의 저항과 투쟁을 강조한다.

이런 차이는 아마도 이 후보가 현대중공업의 새 민주파 집행부 지지 성향 활동가들에게 상대적으로 더 많이 지지 받는 분위기와 관계 있을 듯하다. 현재 이 후보의 선대본부장, 후원회장이 모두 현중 활동가 출신이다(선대본부장은 10년 만의 민주파 위원장이었던 정병모 전 위원장).

두 후보는 2월 23일 큰 틀에서 단일화 방식에 사실상 합의한 것으로 보인다. 동구 지역 민주노총 노조들과 현대중공업노조의 조합원 총투표 방식을 기본으로 할 듯하다.

지역 내 가장 영향력 있는 노조인 현대중공업노조는 노보 등을 통해서 단일화를 강력하게 촉구한 바 있고, 민주노총 울산본부는 민주노총 소속이 아닌 현대중공업노조도 총투표에 함께할 대상으로 꼽았다.

울산 북구

울산 북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한 ‘민주와 노동’ 윤종오 후보는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조합원(활동가) 출신이다. 북구에서 구의원, 시의원, 구청장을 지냈다. 윤 후보는 이제 울산의 첫 노동자 국회의원이 되겠다며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윤 후보는 동구 김종훈 후보와 함께 ‘쉬운해고금지법’을 공동 공약으로 내세웠다. 또한 기업주들의 “황제 임금”을 깎고 노동자들의 임금을 늘리는 최고임금제와 최저임금 현실화 등을 공약으로 발표했다.

북구에서 구청장, 국회의원에 당선한 바 있고, 현재 정의당 정책위원회 의장인 조승수 후보는 아직 구체적인 공약을 발표하지 않았다. 정의당 자체는 법인세, 사내유보금 등에 과세해 평균임금 월 3백만 원 사회를 만들자는 공약을 내놨다. 조 후보 본인은 그동안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의 경제적 양보를 주 내용으로 하는) 사회연대전략 등 온건 개혁주의 정책에 힘을 실어 왔다.

북구 지역은 진보 후보들 간에 단일화 방식 차이가 더 뜨거운 쟁점이었다. 민주노총 조합원 총투표 방식(윤종오)과 안심번호 전화 여론조사 방식(조승수)이 대립했다. 최신 소식을 보건대, 두 방안을 혼합하는 것으로 양측 의견이 접근한 듯 보인다.

애초에 조 후보가 안심번호 여론조사 방식 1백 퍼센트를 고집하며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의견 반영을 배제하려 한 것은 잘못이었다. 노동운동 기반 진보 정치인이 선진 노동자들의 여론을, 개인에 대한 유불리만 따져 ‘신 포도’처럼 대하는 것은 옳지 않다.(이 점에서 같은 당 노회찬 후보와 비교된다.)

완주

조만간 울산의 두 선거구에서 단일화 방식이 최종 합의될 것으로 보인다. 온건한 사회적 합의 추구보다는 대중 투쟁을 강조하는 좀 더 좌파적인 후보가 민주노총 단일후보가 돼야 한다.

이런 후보가 총선 본선에서도 경제·안보 위기를 빌미로 우파 결집을 추구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에 맞서 일관된 대변자 구실을 하며 노동자들의 사기를 올릴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래로부터 노동자 수만 명의 투표와 지지로 선출된 “민중단일후보”는 후보 사퇴의 의미를 함축하는 야권후보 단일화에 결코 응하지 말아야 한다.

입력 2016-02-2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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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민중단일후보”의 야권연대 문제에 대해

경남 창원성산에서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민주노총 후보”로 결정되고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노동운동 안에서도 이 지역에서의 야권 단일화에 관심이 커졌다. 아래에서 자세히 설명되겠지만, 우리는 노회찬 후보가 더민주당 후보에게 양보해 후보 사퇴를 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노회찬 후보는 창원 지역 민주노총 총투표 이후, “진보 대단결로 새누리당 일당 지배를 끝장내라는 것”으로 받아들이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시민들이 원하는 [야권] 단일화의 방향으로 갈 것으로 확신한다”고도 했다.

창원성산은 옛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의 지역구로 이곳에서 권 대표는 두 번이나 당선했다. 이곳은 울산 북구, 동구와 함께 ‘노동정치 일번지’로 불리고 “영남진보벨트’의 핵심 지역이다. 이런 지역에서 민주적으로 조합원들에 의해 선출된 후보가 후보 사퇴/양보를 함축하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거론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민주주의

민주노총은 이미 창원성산, 울산북구, 울산동구, 세 곳을 이번 총선의 전략선거구로 삼았다. 반드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를 세워 당선시키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야권연대는 ‘민주노총후보 선출 방침’에서 배제하기로 했다.

그러나 이 방침에 따라 선출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가 나중에 더민주당 후보 등과 개별 단일화 교섭을 하는 것은 명시적으로 금지되지 않아 모종의 여지를 남겼다. 이 때문에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든 총선공투본 안에서는 이것이 논쟁점이기도 하다.

물론 정의당이 야권연대를 하려 한다는 이유로 정의당을 총선공투본과 공동대응에서 배제하자는 주장은 일종의 ‘세컨더리(2차) 보이콧’으로, 그릇된 강요다. 게다가 이미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공투본의 방침을 받아들여 조합원 총투표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로 선출된 마당이다.

그러나 바로 마찬가지 이유로, 아래로부터 대중적 총의를 모아 선출된 단일 후보가 야권 단일화에 응하는 것도 무책임하고 비민주적인 처사다. 민주적으로 형성된 대중의 의사를 소수 집단이 멋대로 왜곡해 버리는 것이다. 단일 후보 선출을 위해 적게는 1만여 명(창원 1만 5천여 명 투표)에서 많게는 수만여 명에 이르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후보 선출 투표에 참가했거나 참가할 예정이다.

수만 명이 노동계급의 요구와 투쟁을 대변하고 당선하라고 뽑은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가 친기성체제인 민주당 계열 후보들에게 양보하고 사퇴하는 결정을 해서는 안 된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한 ‘노동개혁’에 맞서 선봉에서 싸우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대의와 요구를 더민주당이나 그 계열 후보들이 결코 제대로 대변할 수 없으므로, ‘단일화 논의’는 절차뿐 아니라 그 계급적/사회적 내용도 비민주적인 것이다.

불가피한 타협이냐, 배신적 타협이냐

물론 창원에서는 (울산 북구와 동구도 마찬가지겠지만) 지역 특성상 새누리당 후보의 고정표가 만만치 않아서 민주노총 조합원 일부도 야권 단일화를 바랄 수 있다. 게다가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의 지지도가 민주당 계열 후보를 월등히 앞서므로 실용주의적으로 볼 때는 문제 되지 않는 듯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당선 가능성이 높을수록 단일화 압력이 더 클 수 있다.

그러나 총투표 같은 절차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 선출하는 것의 정치적 의의는 그런 실용주의적 압력과 유혹에서 벗어나 민주적 총의로 계급적 대의와 투쟁을 대변할 후보를 세우려 한 것이다. 당연히 수만 명이 민주적으로 뽑은 것은 완주할 후보인 것이다. 언제든 묻지도 않고 더민주당 따위에 후보 자리를 양보할 후보라면 조합원들이 뭐하러 수만 명이나 투표에 참가하겠는가.

수만 노동대중을 조종할 생각일랑 아예 하지 말아야 한다. 게다가 더민주당은 그 당에 대한 양보를 수만 노동자들이 너그러이 양해해 줄 만한 진보성이 더는 없는 명백한 기성체제 정당이 돼 있다.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는 민주당 계열과 계급 기반, 그에 기초한 정치적 지향과 정책들이 모두 다르다.

창원성산과 울산(북구/동구) 같은 곳에서 “반새누리” 단일화 요구는 민주당 계열 후보에게 사퇴하라고 주장하는 셈인데, 이런 주장을 노동운동이 수용한다면,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나 진보정당 후보들의 지지율이 더 낮은 선거구에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우리 후보들에게 ‘반새누리’를 위한 사퇴를 요구할 때 노동운동이 전국적 차원에서 일관된 대처를 하기가 어려워진다.

이렇게 되면, 그 출발점이 무엇이었든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좌파들이 전국적 후보 조정 방식을 통한 단일화나 또는 전략적 야권연대 기조에 대한 일관된 비판을 하기가 어려워진다. 노동정치 일반의 우경화가 뒤따를 것이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선출된 단일 후보가 민주당 계열과의 야권 단일화 논의에 참가하게 되면 선출에 참여한 노동자 운동과 조직들 안에서 반드시 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단일화 제안 자체가 후보 사퇴 문제를 함축하기 때문이다.(후보 사퇴 문제를 총투표에 붙일 수도 없다.)

따라서, 총투표로 선출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는 야권 후보 단일화에 아예 응하지 않고 완주해야 한다.

물론 선거 면에서는 그 중요도가 덜해서 총투표에 의한 선출(election) 방식이 아니라 각 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한 회의에 의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 선정(selection) 방식을 채택하는 곳들도 있을 수 있다. 이런 선거구에서는 후보 선정 기준 등 협의 과정에서 야권연대와 관련된 불가피한 경우들을 미리 상정해 집단으로 결정한다면, 여지를 둘 수 있을 것이다. 후보를 선정한 사람들 간의 합의니 말이다.(총투표 방식의 선출과는 이 점에서 다르다.)

이럴 때, 전술적 야권연대를 고려해 볼 수 있는 경우로 노동자연대는 이미 5가지 기준을 제시한 바 있다. “(1) 어쩔 수 없는 경우에, (2) 공동 집권을 목표로 하지 않고, (3) 그저 특정 선거구(들)에 한정해, (4) 후보 단일화 수준의 제휴를 하면서, (5) 정치적 비판을 삼가지 않는 것”이 그것이다. 이를 통해 투쟁의 전진을 위한 불가피한 타협이냐 아니면 불필요한 배신적 타협이냐를 구분할 수 있다.

한마디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는 완주를 기본으로 하고, 그 예외적 경우를 토론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입력 2016-02-2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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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사회민주주의 분석

차승일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마이클 로버츠가 “장기 불황”이라고 부른 세계경제 위기는 전 세계에서 정치적 양극화와 불안정을 낳고 있다. 그 정치 위기로 특히 유럽의 많은 나라에서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제도권 정치 질서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서는 40여 년 동안 우파 정당인 신민당과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이 분점하던 양당 구도가 해체되고,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가 집권했다. 이 과정에서 사회당은 완전히 몰락해 버렸다.

△그리스 시리자는 노동자들의 강력한 긴축 중단 염원에 힘입어 집권했지만, 지금은 혹독한 긴축을 추진하고 있다. 시리자 대표이자 총리인 알렉시스 치프라스(왼쪽)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장클로드 융커(오른쪽). ⓒ사진 출처 유럽연합

그리스보다 정도는 덜하지만 스페인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프랑코의 군부독재가 끝나고부터 지금까지 약 40년 동안 전통적 우파 정당인 국민당과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사회당이 득세했다. 그러나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인 포데모스(‘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가 급성장하며 스페인에서도 양당 구도가 무너졌다. 2015년 12월 20일 실시된 총선 결과, 어느 정당도 의석을 절반 이상 획득하지 못하고 연립정부 구성도 난항을 겪으면서, 현재 스페인은 두 달 넘도록 정부도 구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프랑스 사회당은 현재 미국 주도의 시리아 폭격에 동참하고 국가 비상사태를 거듭 연장하며 민주적 권리를 제약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전혀 좌파답지도 노동자 정당답지도 못하다.(2012년 대선에서는 정치 양극화의 수혜를 입어 승리해 17년 만에 집권할 수 있었다.)

영국에서는 ‘변방 좌파’ 제러미 코빈이 노동당 당대표로 선출됐다. 코빈이 당대표로 당선되기 불과 넉 달 전에만 해도 영국 노동당은 총선에서 참패하는 등 거의 산송장 신세였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코빈의 당선을 ‘천지개벽’에 비유했다. (이런 정치 위기 속에서 유럽 전역에서 극우와 파시즘도 성장하고 있는데, 이 글에서는 다루지 않는다. <노동자 연대> 웹사이트 상단의 ‘파시즘과 인종차별’란에 실린 기사들을 참고하시오.)

개혁주의의 성장

한국도 이런 흐름에서 비켜서 있지 않다. 여전히 오른쪽으로 치우쳐 있지만 말이다. <노동자 연대> 166호에 실린 기사, ‘통합 정의당 성장의 역설’에서 지적했듯이, “통합 정의당 같은 정치적 개혁주의가 소생”하고 있다.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13년에는 노동자들이 “낙담·사기저하·우울·무력감·두려움”을 내비쳤다면, 2015년에는 약점도 있었지만 파업과 대규모 거리 시위 등 노동자 투쟁이 일어나며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는 덕분이다.

이처럼 개혁주의가 성장하는 것은 투쟁의 성장으로 대중 의식이 좌경화하는 상황을 반영한다. 따라서 급진 좌파는 개혁주의의 성장을 환영해야 한다. 물론 무비판적이고 맹목적으로 환영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지난 1백50여 년의 세계 노동운동의 역사가 보여 주듯이, 사회민주주의(좌파적 버전이든 우파적 버전이든)는 노동계급을 제대로 대변하지 못한다. 좌파적인 유형인데도 그리스 시리자가 노동자들의 강력한 긴축 중단 염원에 힘입어 집권한 지 채 반 년도 안 돼 더 혹독한 긴축을 시행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사회민주주의 한계의 최신 사례일 뿐이다.

그러나 개혁주의는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개혁주의가 단지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개혁주의는 무엇이고 마르크스주의자는 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이 문제에 있어서, 격변의 시대를 먼저 산 혁명가들의 주장과 실천은 많은 영감과 힌트를 줄 것이다. 그래서 사회민주주의에 관한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과 실천을 살펴보고자 한다.

마르크스와 엥겔스

반(反)자본주의적 투쟁의 시초는 자본주의의 태동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봉건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부르주아지(그리고 그 이데올로그들)는 봉건제에 맞서는 투쟁에 다른 사회집단도 끌어들여야 했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부르주아 혁명인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의 구호는 추상적인 자유·평등·우애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구호가 부르주아들끼리의 자유·평등·우애를 뜻할 뿐임은 곧 드러났다. 자본주의의 부조리에 항의하는 운동은 바로 프랑스 대혁명 속에서 시작됐다. 예를 들어, 역사상 최초의 혁명적 사회주의 단체인 그라쿠스 바뵈프가 이끈 ‘평등파의 음모’의 활동이 있다. (바뵈프에 관해서는 핼 드레이퍼 지음, 최일붕 옮김, 《사회주의의 두 가지 전통》(노동자연대 2014), ‘옮긴이의 머리말’을 참고하시오.)

카를 마르크스와 프리드리히 엥겔스가 정치 활동을 시작할 무렵은 근대 노동운동이 태동하던 때였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그때까지만 해도 서로 별개인 사상으로 받아들여지던 사회주의와 혁명을 결합시켰고, 노동계급을 사회주의 혁명의 중심 세력으로 봤다. 그러나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개혁주의에 관해 체계적으로 논의하지는 않았다. 그들이 1848년에 쓴 《공산당 선언》의 5분의 2를 다른 사회주의 이론을 다루는 데 할애했음을 고려하면 의아하게 보일 수 있다. 심지어 《공산당 선언》에는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와 타협할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부정하는 듯한 구절도 있다.

《공산당 선언》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이렇게 개혁주의를 배제한 채 세 단계의 전망을 제시했다: 노동자들은 초기에는 “전국적으로 흩어져 있고 자신들끼리의 경쟁으로 분열돼 있는 오합지졸 같은 대중을 이룬다.” 그러다가 노동조합과 정치조직을 만든다. 마침내 계급 전쟁이 “일어나 공공연한 혁명으로 이어지고 … 혁명에서 부르주아지가 폭력적으로 타도돼 프롤레타리아 지배의 토대가 놓인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공산당 선언》에서 비판하는 다른 사회주의 경향들은 노동계급이 발전함에 따라 간단히 사라질 것이다.

매우 압축적으로 요약한 이 진술을 보며 마르크스와 엥겔스가 일종의 숙명론에 빠져 있었다고 단언하면 안 된다. 그들은 사회주의에 이르는 불가피하고 단선적인 길이 있다고 주장한 적이 결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주장은, 혁명이 궤도에 오르면 노동계급 내부에 존재하는 경쟁적 조류에 대해서는 별로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만약 계급투쟁에 해로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노동계급 외부에 존재하는 위험일 것이다.

개혁주의가 노동계급 외부에 존재하는 것이라면,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전체와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은 이럴 것이다. “공산주의자는 노동계급의 정당에 대립하는 별도의 정당을 만들지 않는다. 공산주의자는 프롤레타리아 전체의 이해와는 다른 별도의 이해관계를 갖지 않는다. … 공산주의자는 현재의 계급 투쟁에서, 그리고 우리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는 역사적 운동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실제의 관계들을 일반적 용어로 표현할 뿐이다.”(《공산당 선언》)

이 진술에는 노동계급의 정당은 결국 혁명이라는 목표를 채택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다. 물론 이런 요약은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사상을 지나치게 단순하게 만들 위험이 있다. 또,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고타 강령 비판》 같은 글에서 개혁주의 사상을 강력하게 비판했다.

그럼에도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개혁주의를 체계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았고, 《공산당 선언》에서 개진한 입장을 생애 말까지 버리지 않았다. 그래서 1867년 영국에서 숙련 남성 노동자들에게 투표권이 보장되고 1871년 독일에서 남성들을 대상으로 보통선거권이 실시되면서 개혁주의로의 통로가 체계적으로 마련되기 시작한 뒤로도 개혁주의를 풍부하게 분석하지는 않았다.

로자 룩셈부르크의 《개혁이냐 혁명이냐》

노동운동 내 개혁주의로 향하는 흐름을 처음 심각하게 포착해 낸 사람은 독일 사회민주당(SPD) 급진파의 리더 로자 룩셈부르크였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공식적으로는 혁명에 헌신한다고 했지만, 중간파 카를 카우츠키의 지도 아래 실천에서는 혁명적이지 않았다. 카우츠키는 《공산당 선언》을 완전히 기계적으로 이해해, 사회주의자는 혁명을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정당은 혁명적 당이지만 혁명을 일으키는 정당은 아니다. 우리의 목표가 혁명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음을 우리는 안다. 우리의 적대자들에게 혁명을 막을 힘이 없는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혁명을 창조할 힘이 없음도 우리는 안다. 혁명을 일으키거나 혁명을 위한 길을 닦는 것은 우리의 과업이 아니다.”(《권력으로 가는 길》)

독일 사회민주당에서 득세했던 또 다른 세력은 에두아르트 베른슈타인이 이끈 수정주의 파였다. 베른슈타인은 혁명에 헌신한다는 말조차 과도하다고 보아 완전히 개혁주의적인 강령을 제시했다. 그는 신용의 확장 덕분에 자본의 순환이 빨라져 자본주의에서 더는 위기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보통선거권이 확장되고 노동조합이 발전하면서, 혁명이 일어나지 않아도 사회주의가 도래할 수 있다고도 주장했다. 룩셈부르크는 1899년에 쓴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 베른슈타인의 전망을 낱낱이 파헤쳐 비판했다.

쟁점은 어떻게 사회 변혁을 이룰 것인가, 즉 아래로부터의 대중 행동을 일으킬 것이냐 아니면 선거나 교섭에 기댈 것이냐였다. 룩셈부르크는 두 전략이 본질적으로 양립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치권력 장악과 사회혁명에 반대하며 그 대신에 개혁 입법을 택하는 사람은 사실 같은 목표를 이루는 더 평온하고 안정적이지만 느린 길을 선택한 것이 아니다. 그는 전혀 다른 목표를 지향한다. 그는 새로운 사회 질서를 수립한다는 입장이 아니라, 낡은 질서의 겉모습을 수정한다는 입장을 택한 것이다.”(《개혁이냐 혁명이냐》)

룩셈부르크가 개혁주의의 본질을 식별해 낸 것은 커다란 성과였지만, 그녀도 마르크스·엥겔스처럼 개혁주의를 노동계급 정치에 침투해 들어오는 외부적 존재로 여겼다. 예를 들어, 룩셈부르크는 베른슈타인의 수정주의를 이렇게 분석했다. “베른슈타인이 공들여 세운 [독일 사회민주]당 내 기회주의적 이론은 우리 당으로 유입된 프티부르주아적 요소들의 우위를 확고히 해 주고 우리 당의 정책과 목표를 프티부르주아적으로 바꾸려는 무의식적 노력일 뿐이다.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문제, 최종 목표와 운동이라는 문제는 기본적으로 노동운동의 프티부르주아적 성격이냐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이냐는 문제를 다른 형태로 제기한 것일 뿐이다.” (《개혁이냐 혁명이냐》)

운동의 “프롤레타리아적 성격”이 유지되는 한, 그 운동으로부터 흘러나오고 그 운동에 조응하는 정치 강령도 혁명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프롤레타리아가 혁명적이지 않다면 어쩔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레닌의 ‘노동계 귀족’ 이론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개혁주의가 차르 왕정의 혹독한 탄압 속에 있는 러시아에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룩셈부르크의 선구적 연구를 바탕으로 보여 줬다. 그러나 레닌은 한 걸음 더 나아갔다. 레닌은 노동계급 일반이 혁명적 마르크스주의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줬다. 레닌은 이렇게 주장했다. “진정으로 혁명적인 이론을 따르며, 진정으로 혁명적이고 자발적으로 각성하고 있는 계급에 의존하는 러시아 혁명가들이 마침내, 정말로 마침내! 그들의 막대한 힘을 모두 갖추고 온전히 성장할 수 있는 때가 왔다.”(《무엇을 할 것인가?》)

혁명가들이 노동계급에 “의존”하는 것이라면 혁명가와 노동계급은 동의어가 될 수 없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혁명가와 노동계급은 구분되지 않는다며 레닌을 비판했다. 혁명가들이 노동계급을 ‘외부로부터 밀어 움직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것 아니냐는 그들의 비판에 레닌은 이렇게 답했다. “그런 ‘외부로부터 밀어 움직이기’가 너무 많았던 적은 별로 없었다. 오히려 지금까지는 너무 없었다 … 혁명에 전념하는 우리는 ‘밀어 움직이기’ 활동을 지금까지 한 것보다 백 곱절은 더 강력하게 펼쳐야 하고 또 그럴 것이다.”

레닌은 그래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우리는 노동자들에게 사회민주주의 의식이 존재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회민주주의[오늘날의 용어법으로는 혁명적] 의식은 외부에서 노동자들에게 도입돼야 할 것이다. 모든 나라의 역사는 노동계급 자신의 노력만으로는 노동조합 의식을 발전시킬 뿐이라는 것을 보여 준다. … 하지만 사회주의 이론은 유산계급의 교육받은 대변자들, 즉 지식인들이 일구어 낸 철학, 역사, 경제 이론들에서 나온 것이다.”

《무엇을 할 것인가?》만 보면 레닌은 개혁주의와 혁명적 사회주의가 모두 노동계급 외부에서 오는 것으로 본 듯하다. “노동자 대중 자신이 운동 과정 속에서 체계적으로 발전시키는 독립적 이데올로기는 없다. 오로지 부르주아적 이데올리기냐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냐는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러나 레닌이 주장하는 방식은 항상 유연했고, 그래서 나중에 레닌은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개진한 주장을 많이 버렸다. 그러나 나중까지도 유지한 생각이 있었는데, 바로 역사의 발전만으로 노동계급이 저절로 개혁주의를 거부하고 혁명적 사상을 지지하게 되는 일은 없으리라는 것이다.

제1차세계대전이 터지자 레닌의 사상은 한층 더 발전했다. 당시 제2인터내셔널에 소속된 대다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껍데기로만 갖고 있던 혁명적 입장조차 내던지고 각자 자국 지배계급이 벌이는 전쟁을 지지했다.

△1910년 제2인터내셔널 대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들. 

개혁주의의 뿌리는 깊었고, 설명이 필요했다. 레닌은 ‘노동계 귀족’이라는 소수 특권층이 존재하고, 그들이 노동계급 속에서 개혁주의를 부추긴다고 주장했다.(로자 룩셈부르크도 1906년에 쓴 《대중파업》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관료주의”에 젖어들고 “조직의 중요성을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했었다.) 레닌은, 지배계급이 제국주의 정책으로 얻는 ‘초과이윤’을 이용해 노동계급의 일부와 노동계 관료들을 매수한 결과 ‘노동계 귀족’이 생겨났다고 봤던 것이다.

레닌의 ‘노동계 귀족’ 이론은 개혁주의가 노동계급 내부에서 발전하는 것임을 함축하고 있었다는 점에서는 일보전진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람시와 트로츠키의 계승

안토니오 그람시와 레온 트로츠키도 ‘노동계 귀족’ 이론을 받아들였다. 그람시는 1926년 발표한 ‘리옹 테제’에서 이탈리아에는 개혁주의의 성장을 촉진하는 요인이 두 가지 있다고 주장했다. 하나는 “프티부르주아지와 농민이 대거 노동계급으로 바뀜에 따라 프롤레타리아 안에서 새 이데올로기 경향이 확산되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본주의가 제국주의 단계로 발전함에 따라 … 노동계 귀족이 형성”되는 것이었다.

트로츠키는 《러시아 혁명사》에서 ‘노동계 귀족’ 이론을 원용했다. 이는 주목할 만한 시도였다. 왜냐하면 차르 치하의 러시아에서는 개혁주의를 포함한 반정부 세력이 모두 혹독하게 탄압당했고, 그래서 노동계급 내에 특권층이 서서히 생겨날 기회가 없었고,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교섭을 담당하는 노동계 관료가 성장할 기회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1917년 2월 혁명 뒤 수도 페트로그라드에서 노동자와 병사들이 직접 선출한 대표자로 구성된 소비에트가 설립됐는데, 그 대표자들은 대부분 개혁주의자(멘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였다. 이처럼 2월 혁명 직후 러시아에서 개혁주의가 득세한 이유를 트로츠키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편으로는 자본의 관료들 다른 한편으로는 노동계 관료들, 즉 새 중간계층 [때문이다.] … 혁명의 성격과 그로부터 생겨난 권력의 성격은 서로 모순되는데, 이는 혁명적 대중과 … 부르주아지 사이에 놓인 새 프티부르주아지라는 칸막이벽이 가진 모순된 성격으로 설명할 수 있다.”

즉, 아래로부터의 혁명적 격변이 일어난 와중에도 “노동계 관료들, 즉 새 중간계층”이 불쑥 튀어나와 사태 변화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것이다.

“모순된 의식”

‘노동계 귀족’ 이론은 지배계급과 대중 사이를 중재하는 노동계 관료에 초점을 맞춘다는 강점이 있지만 한계도 있다. 첫째, 이 이론은 노동계 관료와 고임금 노동자를 똑같이 취급하는 경향이 있다. 역사를 보면, 고임금 노동자들은 투쟁과 강력한 노동조합 조직을 통해 그런 성과를 쟁취했다. 고임금 노동자들은 대중의 급진화를 가로막는 장벽이 되기는커녕, 어떤 상황에서는 대중의 급진화를 촉진하기도 했다. 노동자 혁명 물결이 가장 크게 일었던 1917~24년, 비교적 처지가 나았던 숙련 금속노동자들은 거듭 투쟁의 선봉에 섰고, 공산당들이 창립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둘째, ‘노동계 귀족’ 이론은 왜 노동자들이 개혁주의 지도자들을 선택하고 때로는 지도자들의 배신을 꾹 참는 것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노조 관료들이 배신하는 것이 받아들여진다는 말은 아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투쟁을 패배로 이끄는 것에 대한 평조합원들의 분노가 폭발한 사례는 무궁무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그런 상황을 교묘히 빠져나가는 일이 많은 것은 개혁주의 사상이 ‘노동계 귀족’에 한정되지 않고 노동계급 내 곳곳에 스며들어 있기 때문이다.

셋째, 제1차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역사를 보면, 개혁주의를 제국주의(덕분에 얻은 초과이윤)와 연결시키는 것은 틀렸다. 제3세계에서 일어난 혁명들도 이러저러한 유형의 개혁주의로 빗나갔기 때문이다. 1979년 이란, 1990~93년 남아프리카공화국, 1998년 인도네시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요약하면 이렇다: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혁주의에 관해 여러 핵심 주장을 내놓았다. 룩셈부르크는 개혁주의의 방법과 혁명적 정치의 방법이 서로 다른 목표를 향하는 것임을 보여 줬다. ‘노동계 귀족’ 이론은 노동계 관료들이 개혁주의를 부추기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을 보여 줬다. 이런 통찰들을 바탕으로 고전 마르크스주의는 개혁주의의 본질을 인식했을 뿐 아니라,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개혁주의에 대응해 채택해야 할 전술을 개발했다.(이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살펴보겠다.) 그럼에도 문제는 남는다. 개혁주의의 생명력이 질긴 것을 보면 개혁주의는 단지 노동계급 외부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요소가 아니다. 또한 ‘노동계 귀족’ 이론의 가정과 달리 개혁주의는 선진국은 물론 개발도상국에도 광범하게 퍼져 있다. 그러므로 주장을 더 발전시켜야 한다. 다행히 마르크스주의의 무기고에는 이를 도울 도구가 있다.

지배적 사상과 실제의 현실

개혁주의를 노동계급 외부 세력이나 노동계급 내 부패한 일부 소수의 탓으로 돌릴 수 없다면, 개혁주의는 노동계급 자체 안에서 발전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결론지을 수밖에 없다. 끊임없이 존재하지만 끊임없이 변하며 상호작용하는 두 가지 요인이 여기에 관여한다. 첫째, 마르크스가 “지배적 사상은 지배적인 물질적 관계를 이상화된 형태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하고 지적한 것이다. 언론과 교육 등 수많은 설득 수단을 통해 자본주의가 최선의 사회 형태이고, 노동자는 힘이 없을 수밖에 없고, 실업은 없애지 못하는 일이고, 이민자들이 만악의 근원이라는 따위의 생각이 퍼진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다른 지적도 했다. “인간의 의식이 그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그의 의식을 결정한다.” 노동자들이 자본주의에서 “사회적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은 착취, 소외, 차별, 생산량 증가 압박, 일자리 지키기 투쟁 등을 겪는다는 뜻이다. 집단행동을 벌이며 단결하고 크고 작은 규모로 저항해서 얻은 성과, 그런 스스로의 행동을 통해 배운 교훈도 마찬가지로 의식에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지배적 사상과 실제의 현실이 모순적으로 상호작용하면서 노동자의 다수가 개혁주의적 관념을 지속시키는 상황이 전개된다. 그러나 둘 사이의 균형은 사람들마다 다양하다. 그 결과 노동자의 다수는 개혁주의적이지만 소수는 완전히 혁명적이고 또 다른 소수는 완전히 반동적인 상황이 생겨난다.

지배적 사상과 실제 현실의 모순된 상호작용은 초보적 개혁주의 의식이 생겨나는 배경일 뿐, 완연히 발전해 조직적 형태를 갖춘 개혁주의를 다룰 때는 추가적인 분석이 필요하다. 첫째, 개혁주의 정당과 노동조합을 구분해야 한다. 노동조합은 경제적 문제를 둘러싸고 직접적 계급투쟁을 벌이지만 다루는 쟁점이 협소하기 쉽다. 개혁주의 정당은 득표를 늘리는 데 주력하며 대중의 수동성을 부추기지만 전국가적이고 일반적인 정치 사상을 다룬다.

둘째, 개혁주의 조직에는 지도자들도 있고 기층 당원이나 조합원도 있다. 그리고 그 둘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둘 사이의 균형은 안정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중요한 파업이 승리하거나 위기 때문에 대중이 자본주의 친화적 이데올로기를 의심하는 때에는 지배적 사상의 설득력이 전보다 약해질 수 있다. 그러면 노동자들이 노조 관료의 영향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투쟁할 가능성이 커질 수 있고, 그런 투쟁이 일어나면 대중의 의식이 크게 바뀔 수 있다.

개혁주의와 관계 맺기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개혁주의의 뿌리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동시에, 개혁주의에 대응할 실천 방법도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룩셈부르크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을 분석하며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보수적 타성에 맞설 힘을 발견해 냈다.

1906년 출판된 《대중 파업》에서 룩셈부르크는 노동자들이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통해 어떻게 스스로 변하는지를 강조했다. 대중 파업은 자본주의 친화적 사상뿐 아니라 노동계 관료들의 압박을 중화시키는 강력한 해독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룩셈부르크는 대중 행동을 강조했고, 경제적 개선을 바라는 제한된 투쟁이 어떻게 정치 권력에 도전하는 투쟁으로 고양될 수 있는지를 강조했다.

룩셈부르크는 대중 행동을 크게 강조하면서도, 혁명적 정당의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을 무시하지 않았다. 그러나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그런 리더십을 발휘하길 바랐다. 1918년 독일 혁명으로 그런 바람이 틀렸음이 드러난다.

아래로부터의 투쟁에 밀려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개혁주의적 입장을 버릴 가능성이 없지 않다고 해도, 룩셈부르크는 그 가능성을 너무 크게 봤다. 그러나 개혁주의 정당 지도자들과 노동조합 관료는 그 사회적 역할 덕분에 착취를 겪지 않으며 지배계급과 대중 사이에서 중재자 구실을 하고, 실제 현실이 지배적 사상과 충돌하며 빚는 모순된 상호작용의 영향을 크게 받지 않는다.

△다른 곳보다 정치 지형이 오른쪽으로 기울어 있지만, 한국에서도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조금씩 살아나며 개혁주의 정당인 정의당이 성장하고 있다. ⓒ이미진

독일 사회민주당 지도자들을 혁명의 대의 쪽으로 설득하기를 바란 점은 틀렸지만, 룩셈부르크가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하고, 대중에게 스스로 변화되고 지배 이데올로기로부터 단절할 능력이 있음을 강조한 것은 매우 중요했다. 개혁주의 지도자들과 달리, 노동자들은 개혁주의적 방식에 기대어 얻을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그러나 노동자 다수가 이 점을 깨닫는 것은 혁명가들의 설교나 소수 혁명가들의 행동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룩셈부르크는 개혁주의를 뛰어넘는 데서 노동자 대중이 스스로 행동에 나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문제와 관련해, 레닌은 룩셈부르크와는 다른 곳에 강조점을 뒀다. 앞서 살펴봤듯이, 《무엇을 할 것인가?》에서 레닌이 개진한 주장은 노동자 정당에서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와 사회주의적 이데올로기 중 어느 하나가 득세할 수 있음을 함축했다. 노동자 정당에서 부르주아적 이데올로기가 득세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1903년 레닌은 멘셰비키와 갈라서고 볼셰비키당을 건설했다. 당시만 해도 레닌은 이런 분열이 러시아에서만 필요한 일이라고 봤다. 그러나 제1차세계대전를 거치며 레닌은 같은 접근법이 국제적 수준에서도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그래서 레닌은 공산주의인터내셔널(코민테른)을 창립하며 강력한 가입 조건을 제시했다. 그중 제2항은 이렇다. “공산주의인터내셔널에 가입하기를 바라는 조직은 모두 노동계급 운동의 책임 있는 직책에서 개혁주의적이고 ‘중간주의적’인 인사를 배제하고 … 공산주의자로 대체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공산주의인터내셔널

이 조항은 당시 상황에 대한 매우 낙관적인 평가를 바탕으로 했다. 제2인터내셔널이 대표한 개혁주의는 완전히 파산했고, 공산주의인터내셔널이 “세계 곳곳에서 계급의식적인 노동자 압도 다수의 공감을 얻고 있으며 매일매일 더 강력해지고 있다”는 평가였다.

“계급의식적 노동자 압도 다수가” 러시아 혁명에 “공감”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 노동자들이 즉시 개혁주의 조직과 결별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각국에서 신생 공산당이 성장했음에도 세계 혁명은 불발로 끝났다.

그렇다고 당시의 지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개혁주의로부터 조직적으로 분리하는 것을 재고한 것은 아니다. 1924년 트로츠키는 이렇게 지적했다. “혁명이 대성공을 거뒀음에도 [계급]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면, 그것은 당이 결여됐기 때문이다. … 당 없이, 당과 거리를 두고, 당을 제쳐두고, 당이 아닌 대용품을 가지고서 프롤레타리아 혁명은 승리할 수 없다.”(《10월의 교훈》)

하지만 혁명적 정당을 창당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역설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혁명가들이 개혁주의로부터 분리하는 것과 혁명가들이 개혁주의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과 관계 맺는 것이 둘 다 중요하다. 레닌은 두 가지 실천이 절대적으로 연결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레닌은 우선 이렇게 주장했다.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옛 사회의 세력과 전통에 맞서려면 … 가장 엄격한 민주집중제와 규율이 필요하다. … 투쟁으로 단련된 강철처럼 단단한 당이 없으면 … 투쟁은 성공할 수 없다.” 그러고 나서 레닌은 ‘공동전선’ 전술들을 강조했다. 혁명가들이 당면 투쟁에서 개혁주의자들과 함께 활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두 가지 주장을 종합해 레닌은 이렇게 결론지었다. 혁명적 정당이 없으면, “승리를 향한 전진을 단 한 걸음도 내디딜 수 없다. 그러나 [혁명적 정당이 있어도] 승리는 꽤나 멀리 떨어져 있다. … 승리하려면 대중이 몸소 정치적 경험을 해야만 한다. 이것이 모든 위대한 혁명의 근본 법칙이다.”(《좌익 공산주의: 유치증》)

레닌과 마찬가지로 트로츠키도 개혁주의로부터 분리하는 것, 개혁주의와 관계 맺는 것 둘 다 핵심적으로 중요하다고 여겼다.

그람시는 이렇게 주장했다: 공산당을 건설해 “노동계급의 선진적 부위를 규합”하는 것은 “근본적 과제”이다. 그러나 “그 당이 혁명적 기구임을 ‘자처’하는 것과 계급을 이끌 능력이 있느냐 여부는 직결돼 있는 것이 아니다. … 대중 속에서 활동한 결과로서만 그 당은 대중에게 ‘우리의’ 당이라는 인정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역사의 검증

일상적 시기에 노동계급 다수는 개혁주의를 받아들이고, 혁명가는 소수다. 그래서 혁명가들은 일종의 딜레마를 겪는다. 한편으로, 사회를 아래로부터 변혁하려면 대중 정당이 필요하다. 그러려면 혁명적이지 않은 사람들도 최대한 설득해야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 과정에서 혁명적 정당의 필요성을 희생시키면 혁명 프로젝트는 재앙으로 끝나고 만다. 이런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 고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내놓은 처방은 세 단계로 이뤄져 있다. 첫째, 개혁주의 문제를 엄격하게 인식하기. 둘째, 개혁주의와 조직적으로 분리하기. 셋째, 공동전선 전술.

여기서도 역사가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1910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대표자 8백87명이 모여 제2인터내셔널 대회를 열었다. 독일,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덴마크, 러시아 등지에서 온 대표자들은 유럽 전역의 노동자 수백만 명을 대표했다. 대표자들은 임박한 제국주의 전쟁에 반대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실제로 전쟁이 일어나자 결의문은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유럽이 애국주의 광풍에 빠진 전쟁 초기, 오로지 극소수 혁명가들만이 원칙을 지키며 시류를 거슬렀다. 러시아에서는 레닌이, 독일에서는 룩셈부르크와 카를 리프크네히트가 전쟁에 반대했다. 국가 이익 논리를 받아들이지 않은 결과는 혹독했다. 국가 탄압, 대중의 조롱, 물리적 폭력이 뒤따랐다. 레닌은 망명을 갈 수밖에 없었고,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는 수감됐다. 그들의 주장은 옳았지만 어느 곳에서나 혁명가는 줄어들었다. 1917년 2월 혁명이 일어나기 단 몇 주 전에만 해도 레닌은 자신의 생애에는 혁명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런 상황을 두고 한 말이었다. 제국주의 전쟁을 끝냈을 뿐 아니라 전 세계를 사회주의 혁명의 문턱까지 이끌고 간 출발점은 소수의 혁명가들이 혁명적 정치를 확고히 지킨 것이었다.

△1917년 러시아 소비에트 대회.

이처럼 운명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길을 연 것은 러시아의 볼셰비키당이었다. 볼셰비키당은 러시아를 전쟁에서 끄집어냈고 노동자 국가를 세워 전 세계를 고무했다. 하지만 극심한 후퇴에서 승리로 나아가는 길은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앞에서 말했듯이 1917년 2월 페트로그라드 소비에트에서 볼셰비키 소속 대표자는 전체 1천 명 중 60명밖에 안 됐다. 그럼에도 1917년 10월 볼셰비키당은 러시아 노동계급에게 혁명의 필요성을 설득해 냈다. 볼셰비키당이 러시아 노동계급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당의 규모보다는 원칙 있는 정치적 주장과 개입주의적 조직으로서 풍부한 경험을 쌓아 얻은 원숙함 덕분이었다.

원칙과 원숙함

차르 왕정을 타도한(1917년 2월) 직후 대중의 일반적 정서는 사소한 차이는 덮어 두고 단결하자는 것이었다. 볼셰비키당은 이를 거슬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룩셈부르크가 《개혁이냐 혁명이냐》에서 지적한 것, 즉 개혁주의와 혁명적 정치는 목표가 다르다는 것이 드러났다. 멘셰비키당과 사회혁명당은 전쟁을 지속하고 토지 개혁을 미루고 자본주의를 지속시키자고 했다. 레닌의 ‘4월 테제’를 채택한 뒤의 볼셰비키당은 “빵, 평화, 토지”를 기치로 내걸었다.

그러나 원칙만으로는 부족했다. 전술들이 필요했다. 1917년 7월 페트로그라드의 급진적 노동자들은 봉기를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당시 러시아 노동자의 다수는 개혁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상태였다. 혁명 상황에서 노동자의 선진적 부위와 후진적 부위가 이렇게 어긋나는 것은 치명적 결과를 낳을 수도 있었다. 이를 막기 위해 레닌은 고군분투했다. 이 과정에서 경험이 풍부하고 비교적 일관성을 갖춘 조직인 볼셰비키당이 중요했다. 1917년 8월 말 코르닐로프 장군이 반혁명적 쿠데타를 일으켰을 때 볼셰비키당은 공동전선 전술을 적용해 멘셰비키·사회혁명당과 함께 쿠데타에 맞서 싸웠고, 성공했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 볼셰비키당은 소비에트에서 다수파가 됐다.

제1차세계대전의 공포가 모두에게 확실해지면서 유럽의 다른 나라들에서도 국제주의 원칙을 올곧게 지키고 있던 혁명가들의 영향력이 커졌다. 독일 사회민주당이 독일 제국주의를 지지한 뒤 룩셈부르크는 독일 사회민주당이 혁명적 정당이 될 수 있다는 자신의 헛된 바람을 접고 ‘스파르타쿠스동맹’이라는 혁명적 정당의 중핵을 건설했다. 1918년 11월 독일 혁명이 일어난 뒤 스파르타쿠스동맹은 빠르게 성장했다. 1918년 12월 독일 노동자 평의회 대회가 열렸다. 하지만 볼셰비키당과 달리 스파르타쿠스동맹은 미숙한 신생 정당이었던 나머지, 개혁주의적 다수를 자신들의 입장 쪽으로 설득할 수 있는 목소리를 갖지 못했다. 노동자 평의회 대표자 4백5명 중 스파르타쿠스동맹 소속 대표자는 10명뿐이었고, 그조차 스파르타쿠스동맹의 이름을 걸고 당선된 사람들이 아니었다.

볼셰비키당과 스파르타쿠스동맹

하지만 스파르타쿠스동맹은 이런 문제를 극복할 가능성이 있었다. 독일 혁명이 사그라진 1924년까지 몇 차례 기회가 있었다. 스파르타쿠스동맹이 규모가 작은 것도 중요한 문제였지만 더 치명적인 문제는 경험 부족이었다. 러시아 볼셰비키당은 민주집중제를 바탕으로 십수 년에 걸쳐 일관된 조직을 건설하려 애썼다. 볼셰비키당은 불법, 반합법 등 여러 조건에서 활동하며 노동계급을 지도하려고 애썼다. 1905년 혁명처럼 투쟁이 대규모로 분출하는 시기도 겪었고 그 직후 찾아온 극심한 패배기도 겪었다.

독일 혁명이 일어난 뒤, 경험은 적지만 매우 열정적인 투사들이 스파르타쿠스동맹에 대거 가입했다. 그들은 독일에서 사회주의를 최대한 빨리 건설하고 싶어 했지만, 정치적 경험도 일천하고 자신들의 사상을 어떻게 실천에 적용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들은 룩셈부르크의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룩셈부르크의 동료인 리프크네히트는 성마르고 경험 없는 소수 혁명가들의 압력에 휩쓸렸고,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1919년 1월에 일어난 설익은 봉기에 끌려들어갔다. 이 봉기는 쉽게 고립돼 패배했고 그 뒤 룩셈부르크와 리프크네히트 둘 다 살해됐다.

원숙함은 단지 오래 활동했다고 갖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트로츠키가 《10월의 교훈》에서 강하게 주장했듯이, 혁명적 조직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보수성’은 상황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 1917년 10월 봉기를 성사시키기 위해 레닌은 볼셰비키당의 경험 많은 선임 당원들과 투쟁을 벌여야 했다. 볼셰비키당은 갖췄지만 스파르타쿠스 동맹은 갖추지 못한 것은 물리적 활동 시간이 아니었다. 혁명가들이 당으로 조직돼 개혁주의적 다수를 설득하고 투쟁을 전진시키며 쌓은 조직적 원숙함이 부족했던 것이다.

결론

20세기 혁명가들의 성공과 실패 경험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지침이 된다. 그 경험을 돌이켜볼 때, 개혁주의적 운동들에 녹아들거나 노동조합에서 자신의 사회주의적 신념을 감추는 혁명가들은 완전히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반대로, 혁명만 되뇌며 개혁주의적 운동에 팔짱 끼고 있는 혁명가들도 완전히 잘못된 길로 들어선 것이다. 개혁주의 조직이 대중의 개혁주의적 의식을 만든 것이 아니다. 반대로, 대중의 개혁주의적 의식이 개혁주의 조직을 만든 것이다. 그리고 대중의 개혁주의적 의식은 자본주의 하에서 그들이 겪는 여러 경험과 투쟁에서 비롯한다.

룩셈부르크가 보여 줬듯이, 개혁주의는 체제를 조금 손질할 뿐이지 체제를 폐지하지 못한다.

그렇다고 해서 혁명가들이 옆에 서서 설교나 하고 혁명적 상황이 도래하기를 앉아서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개혁주의 사상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하는 기회는 계속해서 발생했다. 현재도 중요한 투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다. 그 투쟁의 결과는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 그 결과는 계급투쟁이 얼마나 발전하느냐, 혁명가들이 정치적으로 얼마나 명확하냐, 혁명적 당이 얼마나 노력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입력 2016-02-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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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정의당 비례후보 앞순위에 좌파적 노동운동 리더가 선출돼야 한다

2014년 헌법재판소는 현행 선거구 제도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농촌 선거구가 너무 작아서 도시 인구가 상대적으로 덜 대표되므로 현 제도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이런 제도가 헌재 위헌 판결 때까지 유지된 것은 지역 몰표에 크게 의존해 온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 현행 제도를 선호해 온 탓이다. 한국은 ‘계급 투표’가 더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비례대표제의 비중도 매우 작다. 2002년부터 부분 도입된 정당 비례대표제는 부족하나마 진보정당의 의회 진출에 도움이 돼 왔다. 2004년 총선에는 민주노동당 의원 10명 중 8명이, 2012년 총선에서는 통합진보당 13명 중 6명이 비례대표였다.(그 명단이 분열의 씨앗이 됐지만 말이다.)

즉, 현행 선거제도는 도시 노동계급의 정치적 의사를 ‘과소대표’(그 실제 비중보다 적게 대표)한다. 노동계급에게 더 비민주적인 것이다. 게다가 여야는 비례대표제도 약화시키려 한다. 헌재가 정한 선거구 협상 기한을 어기면서도 여야는 비례대표 의원수를 줄이는 것에는 미리 합의를 해 놓은 상태다.

투쟁 스피커

이런 불리한 조건 속에서 ‘통합 정의당’은 복수의 비례대표 당선을 기대하고 있다. 최근 박근혜의 폭주와 옛 민주당 세력의 지리멸렬, 노동자 투쟁의 부분적 회복 조짐 속에서 정의당이 세를 늘렸다. 지난해 말에는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더하기(+), 국민모임 등과 통합도 했다.

물론 옛 진보당 계열들의 지역기반도 만만치 않다. 그러나 이들은 이번 총선 대응 문제를 놓고 서로 나뉜 듯하다. 일부는 울산 등지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는 데 반해, 일부는 민중정치연합(가)을 새로 만들었다. 민중정치연합이 정당비례 득표에서 옛 지지율을 회복할지는 미지수다.

이렇게 봤을 때, 최소 3석이라도 당선 가능한 비례후보를 공천할 수 있는 것은 현재로서는 정의당인 셈이다. 이런 조건에서 당선 가능 범위의 정의당 비례후보로 노동운동을 더 좌파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노동운동가 후보가 선출돼야 한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 공공서비스 민영화 등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의 스피커 구실을 할 인사가 좋을 것이다. 사회적 합의보다는 노동자 투쟁을 옹호하며 현장에서 싸우는 노동자들을 격려하는 좌파 정치인이 반드시 필요하다.

4자 통합으로 정의당의 노동운동 기반은 더 강화됐다. 그에 걸맞는 의원을 배출해야 한다. ⓒ사진 출처 정의당

그렇게 되면 노동자 운동이 자신감을 회복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단선적이거나 자동은 아니겠지만) 선진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계발되고 노동운동이 더 정치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전략 공천

아쉽게도 정의당 내 기대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지난 전국위원회에서는 지도부가 전략공천 필요성을 제기한 듯하다. 국민의당이라는 경쟁자가 하나 더 생기고, 비례의원 정수가 줄면서 정의당의 비례득표 목표에 장애물이 생긴 상황 때문일 것이다. 물론 전략 후보로서 앞서 언급된 그런 구실을 할 수 있는 노동계 활동가를 추대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문제는 안팎으로 거론되는 유력한 전략 후보가 <디펜스21+> 김종대 전 편집장이라는 것이다. 김종대 씨는 정의당 예비내각의 국방부 예비장관으로 영입됐다. 김 예비장관은 박근혜 정부를 ‘안보 무능’ 논리로 비판한다. 안보 무능/유능 논리는 미국의 민주당 우파와 공화당이 버니 샌더스를 공격할 때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것으로, 애국주의 프레임을 지배계급 정치인들과 공유하는 것으로 직결된다.

이는 사실상 국가 강화를 강조하는 관점으로, 노동자 운동에 하등 도움될 것이 없다. 군비 대신 평화와 복지 투자를 늘리라는 요구에도 해롭다.

이런 지나치게 온건한 인사보다는 좌파적 노동운동 출신자가 정의당을 대표하는 의원이 돼야 한다.

입력 2016-02-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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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민주노총의 총선 대응 기구

총선공투본 출범을 앞두고

2월 18일 ‘(가칭) 노동자·농민·빈민 살리기 박근혜 정권 심판 2016 총선공동투쟁본부’(총선공투본)가 출범한다. 총선공투본에는 “민주노총 요구, 민중총궐기 12대 요구에 동의하고 박근혜 정권의 반민중적 공세에 대한 공동 투쟁 조직화에 동의하는 정당, 정치조직, 사회운동조직”이 참여하고 있다. 민주노총과 정당 · 노동단체들을 비롯해 20곳이 넘는 주요 노동자·민중 운동 단체들이 포함돼 있다.

총선공투본은 민주노총이 제안한 것으로, “민중 주도로 반노동, 반민생, 반민주 세력 심판”이 목표다. 이를 위해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이 총선 공동 투쟁을 하자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사회운동 조직인 민주노총이 제안하고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맞서 각개 대응하지 말고 공동 대응하자는 것이므로, 총선공투본의 취지는 좋은 것이다.

또, 총선공투본은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투쟁의 결실을 총선에 적용해 보자는 구상이다. 지난해 민중총궐기는 아쉽게도 파업과 연결되지 못했지만 박근혜 정권 치하에서 노동자들이 주도한 최대 규모의 정치적 항의 운동이었다. 그 민중총궐기를 함께 건설한 노동자·민중 운동 단체들이 이번 총선에서도 공동 대응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주요 계획도 “대중 투쟁과 후보 전술을 결합”하는 것이다. 즉, 2월 27일 4차 민중총궐기와 3월 26일 (가칭) 총선 대응 총궐기 투쟁이 한 축이고, 다른 한 축은 민중 단일 후보를 통한 선거 돌파다. 투쟁과 선거의 결합은 전통적으로 좌파 개혁주의적 착상이라 할 수 있는데, 대중 동원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온건한 선거중심주의에 비해 지지할 만하다.

민중 단일 후보는 민중총궐기 12대 요구와 총선공투본 공약에 동의하는 총선공투본 참여 단체 소속 후보로 한정하기로 결정했다. 부르주아 야당 후보는 민중 단일 후보가 될 수 없다는 뜻이다. 또, 총선공투본이 중앙 수준에서 범야권연대를 제안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한편 정의당·민중정치연합·노동당 등 노동자 운동 내 복수의 정당들이 존재하는 정치 현실을 고려할 때, 후보 조정을 통해 민중 단일 후보를 선정하자는 것은 현명한 생각이다. 같은 선거구에서 진보 · 좌파 후보들이 단일화를 하지 못해 서로 경쟁하다가 부패하고 우익적인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를 얻는 것은 많은 노동자들에게 정치적 환멸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노총은 창원성산, 울산북구, 울산동구를 ‘전략 지역구’로 선정했다. 그런데 이 지역구들은 모두 복수의 진보 · 좌파 후보들이 출마한다. 창원성산에서는 노회찬(정의당)과 손석형(무소속) 후보가, 울산북구에서는 윤종오(무소속)와 조승수(정의당) 후보가, 울산동구에서는 이갑용(노동당)과 김종훈(무소속) 후보가 경합하고 있다. 정치적 상징성이 큰 노동자 밀집 지구인 이곳들에서 진보 · 좌파 후보들이 새누리당을 꺾고 선거 돌파를 해 준다면 많은 노동자들이 정치적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사기도 오를 것이다. 민중 단일 후보 구상은 이런 노동자들의 기대와 염원에 부응하는 방안이다.(창원성산은 두 후보가 조합원 총투표를 통한 후보 단일화에 합의해 조합원 총투표를 치러 노회찬 후보가 민중 단일 후보로 선출됐다.)

야권연대

그런데 총선공투본의 민중 단일 후보 전술 논의는 야권연대 문제가 제기되면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총선공투본이 선정한 민중 단일 후보가 더민주당 같은 부르주아 야당 후보와 추가 단일화를 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이를테면 창원이나 울산에서 민중 단일 후보가 새누리당과 일대일 대결 구도를 만들기 위해 더민주당 후보 등과 단일화를 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그러나 창원이나 울산처럼 조합원 총투표로 선출된 민중 단일 후보는 야권 후보 단일화에 아예 응하지 않고 완주해야 한다.

총투표에 의한 선출이 아니라 각 단체 대표자들의 회의에 의해 민중 단일 후보를 선정한 곳들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런 곳들에서는 후보 선정 기준 등 협의 과정에서 야권연대와 관련된 불가피한 경우들을 미리 상정해 집단으로 결정한다면, 여지를 둘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이렇게 생각한다: “민중단일후보”의 야권연대 문제에 대해’를 읽으시오.)

물론 총선공투본 소속 단체들 사이에 야권연대를 둘러싸고 이견이 있다. 가령 통합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야권의 분열로 집권당의 압승과 장기 집권을 허용하는 일이 있어선 안 될 것”이라며, ‘범야권 전략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단기적 후보 연대가 아닌 향후 공동정부 구성까지 염두에 둔 제안이다. 그래서 통합 정의당에게 야권연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반대로 그 어떤 경우에도 야권연대를 해서는 안 되고 민중 단일 후보는 완주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좌파들이 있다. 이들은 사실상 야권연대를 지향하는 세력과는 총선공투본을 함께할 수 없다는 태도다.

반면, 노동자연대는 전략적이고 무비판적인 야권연대를 반대하지만, 불가피한 타협이 있을 수도 있음을 이해한다. 타협이 어쩔 수 없는 경우에도 공동 집권을 목표로 하지 않고, 특정 선거구(들)에 한정해, 후보 단일화 수준의 제휴를 하면서, 정치적 비판을 삼가지 말아야 한다.

야권연대를 둘러싼 이견이 사소한 문제는 아니지만, 그로 인해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맞서 노동자·민중 운동 진영이 공동 대응하자는 총선공투본의 목표가 무색해지지 않기를 바란다.

입력 2016-02-2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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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 전략적 야권연대는 노동계급의 발목을 잡을 뿐

김문성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1월 26일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범야권 전략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다. 정의당은 “연립정부 구성을 전제로 한 정권교체 연합을 구성”(1월 20일 심상정 대표 신년 기자회견 질의응답)해 총선에 임하자고 주장한다. ‘전략적 야권연대’를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심상정 대표가 이런 제안을 한 까닭은 “야권의 분열로 집권당의 압승과 장기 집권을 허용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데], … 후보 조정만을 위한 연대는 ... [단순한 이합집산으로만 보여] … 승리를 담보하기 어렵다 생각”하기 때문이다.

사실 2014년 지방선거 성공 이후 각종 재·보선에서 야권의 성적표는 좋지 않았다. 2014년 7·30 재보선이 대표 사례다. 지방선거에서 야권이 근소하게 이긴 데다가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치러진 선거인데도 야권이 대참패를 당했다.

범야권 전략협의체를 중심에 놓으면 오히려 개혁주의 정치의 운신 폭이 좁아진다. ⓒ사진 출처 정의당

이것이 대중이 전반적으로 우경화했고 그래서 박근혜 정부의 입지가 탄탄하다는 표시였을까? 그 뒤 전개된 상황을 보면, 그렇게 보기는 어려울 듯하다. 측근 부패, 세월호 시행령, 노동개악 반대 투쟁, 여권 내분 등으로 박근혜 정부는 거듭 (지지율 추락을 포함한) 정치 위기를 겪었다. 국정수행 지지도에서 부정적 답변이 절반을 넘은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무지막지한 공세를 펴면서도 “노동개혁” 문제에 1년 넘게 묶여 있다.

오히려 최근의 선거 결과는 박근혜에 맞설 정치적 수단으로서 현재의 제1야당을 사람들이 영 못마땅해 하는 현실을 보여 줬다.

민주당 세력은 박근혜에 맞서는 모양새를 취해 선거에서 반사이익을 얻어 보려고 했다가도 박근혜가 ‘한국 자본주의의의 이익을 해칠 텐가’ 하고 협박하면 금세 꼬리 내리는 일을 반복해 왔다.

이는 민주당이 비주류일지라도(이 때문에 포퓰리즘적 언사를 빈번히 발하기도 하지만) 지배계급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민주당 자체는 한국 자본주의가 직면한 경제·안보 위기 앞에서 (아무리 미워도) 박근혜 정부와 계급적 성격이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없다.

따라서 노동운동은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과 연립정부를 목표로 하는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해서는 안 된다. 스탈린주의는 인민전선 전략 때문에, 사회민주주의는 노골적인 위로부터의 개혁 노선 때문에 이런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곤 한다.

그러나 노골적 자본주의 정당과의 전략적 연대는 노동운동의 정치적 독립성을 크게 훼손시킨다. 계급을 초월한 동맹을 유지하려면 노동운동은 자본가들을 불편하게 만들 계급투쟁 방식의 저항을 포기하라는 압력을 받게 된다.

정치 활동의 주 무대가 국회와 부르주아 언론 노출로 옮겨지면 이른바 ‘국정 운영’ 경험, 언론을 다루는 수단과 노하우를 훨씬 많이 가진 기성 정치인들에게로 주도권이 넘어갈 공산이 커진다.

이런 상황은 노동자들이 경제적 힘을 사용해 투쟁하며 계급의식을 발전시키는 데 해가 된다.

배신적 타협과 불가피한 타협의 구분

 

심상정 대표는 신년 기자회견에서 다음처럼 고충을 털어놨다. “진보정치는 선거 때만 되면 언제나 두 가지 상반된 요구에 직면해 왔습니다. 하나는 … 진보정치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는 일입니다. 다른 하나는 선거에서 표출된 국민들의 명령을 따르는 일입니다.” 야권연대 요구를 “국민의 명령”이라고 과장하는 것은 전략적 야권연대를 정당화하려는 용어법일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소선거구제 아래서 지역구 당선이 유력한 진보 후보들조차 민주당 등과 후보 단일화 압력에 시달린다는 사실을 무시할 순 없다. 노동계 후보 간에도 단일화가 쟁점이 된다. 한쪽 후보가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경우다.

후자의 이유로 분열했던 창원 성산(2012년 총선), 울산 동구(2014년 구청장 선거) 모두 각각 낙선한 두 진보 후보의 표를 더하면 당선한 새누리당보다 많았다. 이런 경우 양측의 분열이 노동자들의 사기와 정치의식 고양에 도움이 됐는지 의문이다.

그 점에서 야권연대를 원칙으로 거부하는 것은 불필요하게 경직된 태도일 것이다. 우리는 전술에서 불가피한 타협과 불필요한 타협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노동자연대는 다음과 같은 전술적 야권연대 방침을 내놓은 바 있다.

“(1) 어쩔 수 없는 경우에, (2) 공동 집권을 목표로 하지 않고, (3) 그저 특정 선거구(들)에 한정해, (4) 후보 단일화 수준의 제휴를 하면서, (5) 정치적 비판을 삼가지 않는 것은 완전히 정당한 사회주의적 전술이다.”(노동자연대 성명 2014.11.6)

총선에서 (1)을 부연하면, “각별히 반동적인 우파 후보의 당선이 유력한 조건에서 노동자들이 진보/개혁파로 여기는 후보가 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선진 노동자들 사이에서도 단일화 압력이 생길 경우”(같은 글)라고 할 수 있다.

다행히도 창원 성산에서는 민주노총과 지역 진보단체들, 노회찬, 손석형 두 후보가 신속히 합의해 민주노총 창원 조합원들의 총투표가 진행되고 있다. 울산 북구(윤종오, 조승수)와 동구(김종훈, 이갑용)는 설 연휴 전후로 단일화 절차에 관한 협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민중단일후보 선출 후 이 후보들이 새누리당 후보들과 박빙일 때 더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는 문제는 남는다. 이 문제를 회피하는 방식으로 선출된 단일후보에게 일방적 행동의 여지를 줘서는 안 된다.

이 경우, 투쟁의 전진을 위해 불가피한 타협이냐, 배신적 타협이냐가 중요한 기준일 것이다. 대중이 단결해서 자력으로 싸우는 과정이 가장 효과적으로 계급의식과 자신감을 고양시키기 때문이다. 이런 기준에서 볼 때, 선출된 “민주노총후보/민중단일후보”는 완주를 기본으로 하고, 예외적 경우를 토론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이렇게 생각한다: “민중단일후보”의 야권연대 문제에 대해’를 읽으시오.

입력 2016-02-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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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야권연대의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

민중주의란 무엇인가?

최일붕

총선이 다가오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략적 야권연대는 ‘민중주의’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 집권 전략이다. 민중주의는 국민 가운데 한줌밖에 안 되는 반민주적·비애국적 무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계급을 초월하여 단결해, 그 반동적 극소수를 권좌에서 몰아내자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반동적 극소수’로 지목되는 집단은 독재 잔당과 ‘공안세력’, 냉전주의자, 재벌 등이다. 민중주의자가 즐겨 내놓는 구호는 “각계각층이 단결”, “국민과 함께하는” 등이다.

민중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어의 순화어 중 하나다. 다른 순화어는 ‘대중영합주의’이다. 대중영합주의는 최상위 엘리트 계층의 정치인이 마치 자신은 엘리트층의 정치인이 아닌 양, 심지어 엘리트층에 반대하는 체하면서 대중에게 영합하는 꼼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뉘앙스를 고려해 민중주의와 대중영합주의를 구별하기로 한다. 즉, 민중주의는 진보 성향이고, 대중영합주의는 보수 성향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경제 위기와 긴축 재정을 틈타 우익 대중영합주의 정당이 등장해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 네덜란드의 자유당, 덴마크의 국민당 등이 그것이다. 이 당들의 핵심 정책은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로, 이 점에선 파시스트 정당과 유사하다. 그러나 우익 대중영합주의는 파시즘과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파시즘이 의회 민주주의와 모든 노동자 단체를 분쇄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주의는 제3세계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글의 관심사는 우익 포퓰리즘이 아니다. ‘진보’와 민족 자주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종류의 포퓰리즘이 우리의 관심사다.(‘진보적’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민중주의를 의미하는 말이 돼 버린 듯하다.)

민중주의는 외세의 지배와, 그와 결탁한 한줌의 부패한 기득권층의 지배를 경험한 신흥국의 노동운동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일제 식민지, 외세(미국과 소련)에 의한 민족 분단과 전쟁, 외세(미국)가 후원한 독재 정권과 재벌의 지배 등 한국 현대사의 특성들 때문에 한국 민중과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 속에는 민중주의적 경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민중주의는 흔히 진보적 민족주의 경향을 띤다. 진보적 민족주의의 핵심 강령은 남북한 화해 협력과 궁극적 통일이다.

2월 27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 파업 투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미진

민중주의의 순차적 물결

민중주의 운동의 성격과 형태, 생존 능력은 시기와 조건에 따라 매우 달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와 미국에서 민중주의 운동은 아예 농민에 기반을 뒀다. 제정 러시아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나로드니키로 불렸고, 테러리즘 전략과 선거 전략을 결합해 추구했다.

미국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경제 정책 ― 특히 곡물 가격 문제와 재벌(conglomerate, 거대복합기업) 개혁 문제, 은행 규제 문제를 놓고 수립되는 ― 에 영향을 미치려 애썼고, 민중당(이하 서양사학계에서 통용되는 인민당으로 표기)을 창립해 지역에 따라 민주당이나 공화당과 제휴했다. 1894년 철도 파업 이후, 인민당의 일부는 파업 투쟁으로 등장한 노동운동가들과 연계하고 나중엔 다른 사회주의자들과도 연계해 미국 사회당을 창당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민중주의는 제1차세계대전을 앞뒤로 해서 일어난 거대한 노동계급 투쟁, 특히 러시아 혁명과 서구 혁명에 밀려 완전히 주변화됐다.

1930년대 대불황기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시기

민중주의의 두 번째 물결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었다. 유럽의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민중주의는 민중전선(인민전선)이라는 가장 완성된 형태로 등장했다.

민중전선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전략이다. 이 전략은 드러내놓고 친자본주의적인 정당과 선거로 연립정부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민중전선은 선거라는 면에서 보면 흔히 성공적인 방침일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정당과의 협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한은 노동자 운동을 고무하는 효과도 낸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수위가 자본가들의 우려를 자아낼 수준으로 상승할 것 같으면 민중전선은 노동자 운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낸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국면에서 일어난 사회보험노조와 롯데호텔 노조 파업이 NL계열의 싸늘한 냉대를 받은 것이라든지, 이듬해 단병호 위원장이 7월로 예정된 민주노총 파업을 취소한 것, 그리고 최근에 다수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총선을 의식해 새정치연합-더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공조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현장조합원들은 동원 해제 상태에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의 집권 초기처럼 꽤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페론은 주요 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강압적으로 노동조합을 국가에 통합시켰고,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찬양하면서, 파시스트 전범들의 아르헨티나 이주를 환영하는 등 모순투성이 정책들을 펼쳤다.

한편,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집권 중이던 1938년 멕시코혁명당을 설립해, 멕시코 혁명(1910~1920)의 유산을 이어받는 정당임을 표방했고, 집권당으로서 트로츠키의 망명을 허용하는 등 매우 좌파적인 자세를 취했다. 트로츠키의 망명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국가들도 거부하고 있었다.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아들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는 1988년 당(멕시코혁명당의 후신인 제도혁명당)을 탈당해 야당인 새로운 민중주의 정당 민주혁명당 PRD를 설립했는데, 이 당은 이후 멕시코판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됐다.

1949년부터 1979년까지

민중주의가 가장 성공적이던 시기는 민족 해방 혁명이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중국 혁명부터 쿠바 혁명과 베트남 혁명을 거쳐 니카라과 혁명과 이란 혁명에 이르는 1949년부터 1979년까지가 그랬다. (중국 혁명에 대해서는 이번 호에 실린 이정구의 ‘1949년 중국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었나?’를 보라.)

이 혁명들에서 노동계급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던 건 이란 혁명밖에 없었다. 이란 혁명에서도 민중주의는 초기에 노동자 운동을 자극했지만, 노동자 운동이 ‘쇼라’라는 민주적 노동자 권력 기관을 창출하며 이슬람 성직자(물라)들의 주도권을 침해하는 듯하자, 물라들은 노동운동을 억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아예 분쇄하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1994년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는 최근의 민중주의 물결의 효시를 나타낸다. 사파티스타는 혁명적인 민중주의 세력이었다. 같은 해 남아공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이하 ANC)가 선거로 집권한 것도 민중주의의 쇄도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지난 20여 년간의 ANC 집권은 혁명적인 종류의 민중주의조차 그 계급 협력주의로 인해 결국에는 개혁주의의 성격을 띠게 됨을 잘 보여 준다.

3년 전 작고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현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도 최근 민중주의 물결의 일부라 할 수 있고, 스페인 포데모스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의 주요 간부들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근거한 민중주의를 지지한다.

오큐파이(점거하라) 운동도 민중주의의 최근 사례다. 오클랜드의 오큐파이는 달랐지만 말이다. 거기서는 부두 노동자 등 조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오큐파이 운동이 벌어졌다.

우고 차베스에 환호하는 베네수엘라 노동자와 청년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말을 유행시켰지만 차베스 사후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 출처 Bernardo Londoy (플리커)


노동자 운동 안의 민중주의

한국 민중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자민통’ 계열(이하 자민통계), 참여연대 등 진보적 NGO들 그리고 정의당 등이다. 물론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기도 하다. 스탈린주의 운동인 자민통계는 좌파적 민족주의 경향의 일부 ― 핵심적 일부 ― 이지만, 좌파적 민족주의자가 모두 자민통계인 것은 아니다.(자민통계의 민중주의적 성격은 김인식의 글 ‘민중연합당 창당에 부쳐’를, 정의당의 민중주의적 성격은 장호종의 글 ‘정의당 총선 공약 분석: 노동자와 중소기업, 두 마리 토끼 좇기’를 보라.)

민주노총 내 국민파·전국회의·중앙파 등도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민중주의적 경향을 띤다.

노동운동 내의 민중주의는 남아공이나 브라질, 멕시코 등의 다른 신흥공업국에서처럼 중간계급과 ― 때로는 지배계급 일부와도 ― 계급 연합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물론 노동계급은 중간계급의 일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간계급 가운데 특히 영세 소농이나 영세 노점상, 철거민, 빈민 등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흔히 노동자의 가족일 뿐 아니라, 그들의 일부는 얼마 전까지 노동자였다가 실직한 사람이거나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처지이기가 쉽다.

그러나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이 아니다. 전통적 중간계급의 전형은 소자영업자인데, 이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자본가 구실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 구실을 하는 이중적 처지에 있다. 스스로 자산을 소유하므로 자본가들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일하므로 노동계급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모순 때문에 구 중간계급은 양대 계급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유동적이다. 오락가락과 유동성이 중간계급의 핵심 특징이다.

중간계급에는 이른바 ‘신중간계급’이 포함된다. 이 집단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등장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자본가가 직접 사업장을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본가는 자기 대신 사업장을 운영할 특별한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사업장 내에 경영직·관리직 등 관료층이 형성됐다.

이 관료층의 최상층은 자본가 계급과 뒤섞이게 된다. 반면 관료층의 최하층은 겉보기로는 노동계급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 계층에는 매우 모순된 처지에 있는 각양각색의 인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창출하고 체제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산적 구실을 하기도 하고, 노동자들을 더 심하게 쥐어짜고 단속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이 집단도 양대 계급 중 어느 한쪽으로 이끌린다. 노동자 투쟁이 강력할수록 이 계층 하층의 일부 사람들은 노동자 편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엥겔스는 1848년 혁명 중에 프랑스 “중간계급이 견해가 엄청나게 자주 바뀐다”면서 이렇게 썼다:

“프티부르주아지는 중재자 구실을 하며 비참한 역할을 했다. … 그들과 임시정부는 몹시 갈팡질팡했다. 만사가 조용하면 할수록 정부와 프티부르주아지는 대 부르주아지 쪽으로 더욱 기울었다. 반면 상황이 격동하면 격동할수록 그들은 노동자 편을 들었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관계 문제가 진정한 쟁점이다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일자리도 불안정해지고 복지 혜택도 감축된다. 게다가 노동자의 이웃 주민으로서 그들의 환경도 파괴를 당한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일부도 자본주의의 일부 효과들에 적개심을 품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간계급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승진, 창업, 귀농,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서 그냥 뿔뿔이 낙오하기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간계급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 미칠 일부 영향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거나 우려한다. 왜냐하면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중간계급의 이익이 일부 상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임금이 상승한다거나, 노동조건 악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진다거나 하는 개혁이 자영업 계층에는 불리한 조건이 된다. 그래서 중간계급은 보수적이기가 쉽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의 더 많은 부분을 끌어당길 방안은 계급투쟁 역량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 이해관계를 확고하게 추구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중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확연하게 준별되며 심지어 충돌한다. 민중주의자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고집하지 말고 중간계급의 이해관계와 조율하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운동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지난해 봄 전면에 불거진 공무원연금 방어 문제를 회피하고 대신에 그 문제를 공적연금 강화 문제로 치환하려 했다.

결국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이 부각되고 노동계급이 운동을 주도하면 민중이 내적으로 분열될 것이고, 운동 쪽으로 포섭될 잠재력이 있는 다른 사회세력을 내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오히려 노동계급이 민중 운동에서 주도권을 발휘할수록 민중도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중간계급으로서는 사회적 권력과 집단적 힘과 규율을 갖춘 동맹을 갖게 된 셈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민중주의적 방식이야말로 민중을 이루는 계급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에 결국엔 민중을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민중주의자가 그리는 단결한 민중이라는 이미지는 이상화된 것일 뿐이다.

10면에 실린 김하영의 글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는 노조운동가들 민중주의의 이러한 약점을 잘 보여 준다.

민중주의냐, 노동자주의냐?

민중주의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서도 민중 운동이 계급투쟁으로 분화되지 못한 낮은 단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 측에서 말한다면, 노동계급 의식 발전의 초보적 국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로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파업 투쟁으로 자본주의 이윤 자체를 공격할 의지 수준으로는 상승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전자를 보지 못하고 후자만 본다면 노동운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얻을 것이다. 후자를 보지 못하고 전자만 본다면 민중주의(그리고 그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적 귀결인 개혁주의)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다.

사실,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은 노동조합 쟁점들을 다룰 땐 흔히 ‘노동자주의적으로’(즉,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전통에 따라) 사고하고, 사회적·국가적 쟁점들을 다룰 땐 민중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중을 이루는 다른 사회계급들과 최소공배수적으로 계급 이해관계를 융합한다는 발상에 해당한다. 가령 공무원연금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듯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들 가운데는 공적연금 강화라는 민중주의자들의 대안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민중주의적 노동운동가들은 또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민주노총 총파업을 직결시키는 방안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총파업은 노동자들에 의한 계급 고유의 투쟁 방법이다.

사실, 자민통계는 지난해 초부터 민중총궐기를 추진했지만, 상반기 내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4월 말 선제 파업과 이후의 공무원연금 투쟁 때문에 그 안(案)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투쟁이 패배하고 7월 15일 민주노총 2차 파업이 존재감 없이 끝나자 민중총궐기안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자들이] 계속 회피하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 민주노총의 부족한 동력과 사회적 고립을 볼 때 이 투쟁[민주노총 총파업]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총궐기로 “저들[지배자들]이 결코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저항운동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2차 민중총궐기를 위한 토론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살인 진압 규탄과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해 민주세력을 모아 내는 외연 확대를 기조로 범국민대회로 열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노동개혁’ 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며 민주노총에 기조 변경을 강력히(그러나 헛되이) 요구했다.

 

혁명적 오솔길

 

그런데 대다수 노동운동가들이 노조 쟁점들은 노동조합주의적으로 사고하고(때로 전투적일지라도), 더 폭넓은 정치 문제는 민중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식의 의식을 갖는 경향은 정치 투쟁과 경제투쟁의 역할 분담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개혁주의 정당이 성장하기 쉽다. 개혁주의 정당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형식적 원리에 순응해,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직접적 생활조건의 문제들을 다루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개혁 입법 활동을 하는 식의 분업을 당연시한다.

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정치 운동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특히 파업 투쟁으로부터 나오는)을 사용하는 것을 선택 사항에서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민주노총 파업이 동원되는 게 어불성설로 취급되는 분위기를 설명해 준다.

이런 정서가 보편화되면 범좌파 개혁정당이 대세가 된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로 가느다랗게나마 급진적 조류가 노동계급과 청년·학생 속에 형성될 수 있다.

특히, 노동자들이 민중주의를 학습한 효과로서 계급 의식이 향상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이 점은 엥겔스가 미국 인민당의 일부 투사들이 철도 파업 투사들과 만나며 사회주의 운동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것을 흐뭇하게 보며 지적한 점이기도 하다.

민중주의의 진화 속에서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조류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신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중주의의 일정한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위에서 인용한 논평가처럼 기회주의적으로 그에 끌리지 말고 그보다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전망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추천 소책자

북한 국가자본주의의 형성과 위기

한국 노동운동의 문제들

2015년 민주노총 투쟁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김하영, 최일붕 지음 | 노동자연대

100페이지, 3000원

입력 2016-03-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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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총선 비례 경선에서 너무 온건한 후보가 뽑혀서는 안 된다

김문성

‘노동악법, 테러방지법 등을 통과시키려고 석 달째 임시국회를 되풀이해 연다. 적을 반복해서 압박하고 여야 간 타협 시도 자체를 탐탁치 않게 본다. 자신의 방향에 걸림돌이 되면 과거 측근조차 가차없이 내몰고는 ‘선거 심판’을 호소한다.’

이처럼 박근혜의 통치 스타일은 호전적이다. 자기 계급의 이익을 위해서는 비난도 감수하고 박해와 협박을 서슴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 아래서 노동운동에 좀 더 좌파적인 지도부가 등장하기 시작한 배경이다. 민주노총을 포함해 전교조, 현대차, 기아차 등 주요 노조들에서 최근 상대적 좌파가 지도부로 선출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 반작용으로 정치를 소위 ‘본연의 것’, 즉 타협과 중재(설득과 선의의 경쟁)의 세계로 돌려놓자는 주장도 강화돼 왔다(의회주의를 ‘회복’하자는 주장).

최근 노동/진보 정치 안에서 이런 주장을 가장 분명하게 내놓는 인물 하나가 정의당 부설 미래정치센터 조성주 소장(이하 존칭 생략)인 듯하다. 조성주는 지난해 정의당 대표 경선에 출마해서도 <한겨레>, <경향>, <프레시안> 등 온건 진보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런 조성주가 최근 정의당 비례 일반명부에 출마했다. 이번 출마 선언문에서도 그는 매우 온건한 개혁주의 주장을 반복한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의 정치’는 증오를 동원하는 손쉬운 정치일 뿐”이며 … 우리의 진짜 적은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이 아닙니다. … 내일이면 계약이 종료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생계를 두고 벌이는 전쟁 … 두 평짜리 고시원에서 살아가며, 수백 대 일의 취업경쟁에 지쳐 결국 ‘지옥’이라는 말로 냉소하고 있는 청년의 전쟁”이 “진짜 전쟁[입니다.]”

이것은 기업주들을 위해 각종 악법의 제정을 추진하는 새누리당과, 비정규직 노동자와 미취업 청년의 고통스런 삶이 서로 별개라는 말처럼도 들린다. 좌파와 친노 정치인들을 겨냥해 ‘싸가지 없는 증오 마케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던 강준만 전북대 교수의 주장을 떠올리게도 한다.(강준만과 조성주는 공교롭게도 각자의 최근 저서에서 미국판 사회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는 사울 알린스키의 《급진주의자를 위한 규칙》을 극찬했다.)

증오

물론 조성주가 서민의 고통에 대한 책임이 새누리당 정권에 전혀 없다고 주장할 만큼 지각이 없는 인물은 아니다. 그의 괴상한 강조는 ‘대결’ 정치를 ‘의회를 매개로 한 타협 시스템으로 바꾸자’는 주류 개혁주의 전략을 강조하는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그렇더라도 조성주의 강조가 옳은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노동법 개악,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대응, 위안부 합의, 민주주의 후퇴 등 박근혜 정부의 악행은 수백만 대중에게 실제로 ‘증오’를 유발했고, ‘심판’의 욕구를 자아냈다.

그러므로 ‘증오’와 ‘심판’을 (의회주의) 정치의 장에서 삭제하자는 조성주의 주장은 의회 정치가 대중을 대변하는 데서 아래로부터의 정당한 불만과 분노를 부당하게 걸러내자는 제안으로 들린다. 매우 엘리트주의적인 의회주의인 셈이다. 아마 이것이 조성주 식 ‘책임 정치’일 것이다.

물론 노동/진보 정치가 데마고기 방식으로 이런 분노를 반영하려 해서는 안 될 것이다. 대중의 분노는 당연히 효과적인 전략과 실천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야말로 조성주가 거부하는 종류의 정치 아닌가.

우선, 박근혜 정부 자신이 마치 전쟁에 임하는 것과 같은 자세로 통치 행위들을 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이데올로기가 냉전적 반공주의 같은 것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집권과 통치의 기본 동력은 경제·안보 위기에서 비롯하는 한국 자본가 계급의 호전성에서 나온다.

이런 배경에 박근혜 개인의 유신 친화적 통치 스타일까지 더해져 박근혜 정부는 경쟁국 북한뿐 아니라 국내의 적인 노동자 투쟁에 훨씬 더 냉소적이며 잔혹하게 대한다. 테러방지법 제정이나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악 과정에서 보듯이, 박근혜는 법안 내용의 부차적 수정조차 굴욕으로 여긴다. 그를 정부 수장으로 세운 자본가 계급이 노동계급을 더 쥐어짜 수익성 위기에 대처하려 하고, 정부는 이를 수월하게 집행하려고 민주적 권리들을 침해해 가며 저항을 약화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이데올로기

이런 체제 위기와 계급투쟁의 맥락을 무시하고 “전쟁 같은 현실을 바꾸기 위한 대안들이 경쟁[하고] … 진보와 보수, 여야가 함께하는 ‘변화의 정치’”를 꿈꾸는 것이야말로 ‘공상’일 뿐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이 노동계급의 요구에 타협적으로 나오게 하려면 오히려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힘을 보여 줘야 한다. ‘개혁을 하지 않으면 혁명이 기다린다’는 유명한 말을 연상시키는 두려움 말이다.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 원칙이 오히려 현실적인 이유다. 상대가 실탄을 쓰는 전쟁을 하겠다는데, 우리가 비비탄 들고 서바이벌 게임을 준비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의회주의의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서라도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강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수단을 거부하는 조성주의 ‘공상적’ 개혁 전략은 너무 온건해 노동자들과 청년들의 (지금 시기에 더욱 필요한) 계급의식과 정치의식 발전에 도움이 안 된다.

조성주는 지난해 <주간경향>과의 인터뷰에서 “이데올로기 없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주장했다. 체제를 한번에 바꾸려 하지 말고 ‘조금씩 고쳐 가자’는 뜻에서 한 말이다. 그것이 “실리”라는 것이다. 이런 생각 자체도 특정 이데올로기에서 비롯한 것임을 고려하면, 그는 이데올로기 일반이 아니라 다른 특정한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는 셈이다. 즉, 조성주가 거부하는 이데올로기는 체제 변혁을 목표로 하는 거대 담론, 즉 사회 변혁적 전망이고, 그가 지지하는 이데올로기는 바로 그런 원대한 전망을 거부하는 정치적 실용주의인 것이다.

노동 기반

이런 실용주의에서는 계급 분석이나 계급 의식 발전을 위한 원칙과 계급 투쟁 등은 중요하지 않다. 지난해 7월 그는 <레디앙>과의 인터뷰에서도 “민주노총의 조직적 기반을 가져서 진보정당이 강해졌나?” 하며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사실 이런 취급은 얼핏 모순처럼 보이기도 한다. 현실에서 ‘조금씩 고쳐가는’ 실천을 일상으로 하는 가장 대표적 개혁 운동이 바로 노동조합 운동이니 말이다. 이 때문에 조직 노동운동의 상층 전임(협상을 전담하는) 지도부는 사회민주주의의 정당의 물질적 토대이다. 정의당의 당원 구성을 봐도 “전체 당원 3만 2천여 명에서 노동자 당원은 2만여 명이며 그중 조직 노동자는 약 1만 명”이다.

그런데 조성주는 “[조직 노동과의 연계 자체를] 폄하하고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직된 연계를 해야 하고 강화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같은 인터뷰에서 그는 “경남 창원이나 울산 같은 경우에는 … 권영길 후보가 재선도 되고 진보정당이 상당한 지지율을 얻기도 했던 거 아닌가?” 하는 기자의 질문에 “그럼 서울이나 수도권은? 노동 기반이라는 것이 서울에선 작동 안 한다”고 답한다(위의 <레디앙> 인터뷰). ‘노동 기반’의 의의를 사회 변화의 중심 주체로서가 아니라 득표 기반에서 찾는 것이다.

그러나 조성주는 아래로부터의 계급투쟁 전략과 투쟁이 노동/진보 정치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반대한다. 그에게는 지배계급의 계급투쟁에 맞서 노동계급이 파업으로 기업 이윤에 실질적인 타격을 주며 기존 국가를 겨냥해 사회 변혁의 전망을 만들어 간다는 전략은 애초에 고려 대상이 아니다. 그래서 그는 복지 증대를 하자며 노동계급에게도 증세 부담을 지우는 보편 증세나 고용보험료 인상 같은 소위 사회연대전략을 지지한다.

따라서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서 조성주 후보가 다득표를 해 당선권에 들어가는 것은 노동자 투쟁의 활성화에 큰 도움이 안 될 것이다. 투쟁과 거리를 두는 종류의 온건한 개혁주의는 노동자 운동에 큰 영감을 주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안보?

또한 이 점에서, 정의당 예비내각 김종대 후보가 부각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못하다. 김종대 후보는 박근혜 정부의 ‘가짜 안보’에 대비되는 ‘진짜 안보’를 주장한다. 이는 노동/진보 정치의 기본인 ‘군축을 통한 복지 확대’ 주장과도 정면 배치된다. 국가 안보를 빙자해 노동운동을 마녀사냥하는 것에 제대로 대응하기도 어렵다.

최근의 동아시아 역내 군사적 긴장 고조 국면에서 노동/진보 정치다운 대안을 내놓는 것에도 어려움을 줄 것이다. 김종대의 최근 저서 《위기의 장군들》을 보면, 군부에 대한 비판이 내부 알력 다툼을 다루는 것에 그치고, 좌파적 가치나 급진성은 찾을 수 없다.

정당은 강령과 정책, 그 기반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어느 인물을 통해 대변하느냐도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이 점에서, 투쟁적 스피커 구실을 할 수 있는 좌파적 노동운동가 출신자가 정의당을 대표하는 국회의원이 돼야 한다. 그것이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입력 2016-03-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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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 정의당 비례후보 투표 결과

아쉬운 노동운동 홀대

4월 총선에 나갈 정의당 비례대표 후보 선출이 끝났다. 관심을 모은 일반명부에서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단장(예비내각 국방부장관)이 1위를 차지해 비례 2번 후보가 됐다. 정의당은 투표는 1인 1표로 하지만 순위 배정시에는 여성, 일반 등 각 명부 내 득표순으로 배정한다.

진보성이 두드러지지 않는 안보 전문가가 당선 유력권에 든 반면, 유일한 민주노총 지도자 출신 후보로 노동운동의 정치적/좌파적 대변을 우선과제로 내건 양경규 후보는 비례 경쟁명부 맨 마지막인 10번 후보가 됐다. 전체 득표는 5위이므로 정의당의 비례대표 경선제도에 문제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노동운동을 대표한 후보가 이렇게 홀대받은 것은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염원이 정의당 내에서 충분히 반영·대변되지 못하다는 뜻으로, 크게 아쉽다.

지난해 정의당이 크게 성장한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 덕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의 공세를 막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그런 투쟁의 좌파적 스피커 구실을 하겠다는 후보가 당선권에서 밀린 것이다.

일반명부에서 양경규 후보보다 앞선 후보들이 더 좌파적인 가치를 대변했거나 (꼭 노동운동 출신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부각한 것이 아니라는 점에서도 아쉽다.

김종대 후보의 “진짜 안보” 담론은 군 부패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을 빼면, 군비 축소와 복지 증대를 추구해 온 진보의 가치와 적잖이 어긋난다. 특히, 전략적 야권연대를 통해 더민주당과 연립정부를 세우길 원하는 당 지도부의 희망에 부합한다.

비례 4번인 윤소하 후보에 대해서는 솔직히 우리가 잘 모른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은 점은 알 수 있다. 그리고 비례 6번이 된 조성주 후보는 대놓고 진보 정치의 우경화를 재촉해 왔고,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거리를 두는 온건 개혁주의적 주장을 대변해 왔다.

정의당은 사회 변화의 진정한 동력인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계속 홀대해선 안 된다. 그런 기회주의로는 선거적 성공은 일시 거둘 수 있어도 경제·안보 위기의 시대에 개혁을 쟁취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2016년 3월 12일

김문성(〈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을 대변하여)

입력 2016-03-1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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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총선 공약 분석

노동자와 중소기업, 두 마리 토끼 좇기

장호종

총선이 한 달밖에 안 남았지만 각 정당의 공약에 대한 언론의 관심은 예년보다 매우 낮다. 기본적으로는 주류 양당에 대한 불신이 극도로 커졌기 때문일 것이다. 기성 정당들만 보면 언론이 보도할 만한 공약이 없는 것도 이런 분위기에 한몫했다. 새누리당은 기업 특혜와 저질 일자리 양산을 일자리 대책이라고 내놓았다. 복지 공약은 고작 일곱 쪽이고, 그마저 대부분 이미 시행중인 정책들이다. 더민주당도 지난 총선보다 크게 후퇴했다. 2월 18일까지 발표한 공약에서는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등 기존에 내놓았던 의미 있는 개혁 공약은 그림자도 찾아보기 어렵다. 비정규직 대책도 전혀 없다.

이와 대조적으로, 현재 가장 큰 진보정당인 정의당은 진보 염원 대중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총선 공약을 발표하고 있다. 아직 모두 발표되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발표된 ‘정의로운 경제’, ‘대한민국의 5대 기득권 해체’, ‘정의로운 주거’ 공약은 대체로 지지할 만하다.

정의당의 총선 공약 중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노동 공약이다. 정의당은 오는 3월 3일 노동선거대책본부 출범을 시작으로 자당의 노동자 기반을 확대하고 노동 중심 의제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정의당 당원 3만 2천여 명 중 노동자 당원은 2만여 명이고 그중 조직 노동자도 1만 명이나 된다.

△2016년 2월 17일 정의당의 '정의로운 경제론' 발표 ⓒ정의당

정의당은 먼저 박근혜 정부의 양대지침 등 노동개악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여기에 더해  2020년까지 월급 3백만 원 달성 및 비정규직-여성 차별 금지, 노동인권 강화, 연차휴가 확대와 노동안전 강화, 노동조합 결성의 자유와 대등한 노사관계 구축 등을 5대 노동공약으로 제시했다.

비정규직 대책으로는 기간제 사용 사유를 엄격히 제한하고 기간도 1년으로 제한, 파견법의 단계적 폐지,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등 비정규직 양산 규제 정책을 제시했다. 노동시간 단축, 공공 사회서비스 산업 전면 확대 등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대폭 늘리는 대안도 내놨다.

비정규직뿐 아니라 모든 노동자들의 조건을 개선하는 공약도 제시했다. 해고 규제 강화, 최저임금 1만 원, 연간 유급휴가 30일 보장, 5시 퇴근제, 1년 미만 퇴직자에게도 퇴직금 지급, 자발적 실업자에게도 실업급여 지급, 아르바이트 특수고용에 고용보험과 산재보험 확대 등.

사상 최악의 실업난에 놓여 있는 청년들을 위해 ‘청년디딤돌 급여’ 정책도 내놓았다. 15~34세 청년 중 필요한 사람에게 월 50만 원, 연간 최대 5백40만 원을 지급한다는 계획이다. 공공기관과 대기업은 해마다 정원의 5퍼센트 이상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하고 일정 비율은 고졸 이하, 전문대 졸업생, 지방대 졸업자 들에게 할당하도록 했다. 그중 30퍼센트 이상은 여성에게 할당하도록 했다.

반값 임대주택을 늘리고 소득 하위 20퍼센트에게 매달 20만 원씩 주거비 지원을 하도록 하는 ‘서민주거안정’ 대책도 눈여겨볼 만하다. 건설 노동자들의 임금과 교육훈련 수당을 보장하도록 한 ‘공정임금제’를 건축 관련 정책에 포함시킨 것도 눈에 띈다.

‘대한민국의 5대 기득권 해체’ 공약에서는 국회의원 세비와 고위 공직자 보수를 최저임금의 5배 이하로 제한하도록 했다. 기업주 · 부자 들에 대한 세금 특혜를 대폭 줄이고, 범죄를 저지르고도 쉽게 빠져나가거나 ‘황제 노역’, ‘황제 면회’ 등 특혜를 누리는 것을 원천 금지하겠다고 밝혔다. 공공기업과 대기업 임원·CEO에게 임금상한제를 적용해 최저임금의 30배를 넘지 못하도록 하겠다는 공약도 지지받을 듯하다.

다만 노동운동 내 쟁점들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 않은 것은 아쉽다. 예컨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확대는 ‘임금 등 노동조건 후퇴 없는’이라는 단서를 붙여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새로운 일자리를 위한다면서 기존 노동자들에게 임금 삭감 등 노동조건 악화를 강요하는 결과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쉬움

‘정의로운 조세개혁’도 법인세·상속세·부동산세·금융소득세 강화 등 대체로는 노동자들에게 이로운 정책들이다. 다만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정책으로 ‘보편적 증세’냐 ‘부유세’냐는 논쟁이 있는만큼 사회복지세, 탄소세 등 신규 세제의 부과 대상을 분명히 밝히지 않은 점은 아쉽다.

반값 임대주택 등 주거안정 정책에 국민연금 기금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도 쟁점이다. 물론 연기금을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해 기업주 · 부자 들만 배불리는 것보다는 나은 대책이다. 그러나 국민연금 기금의 절반은 노동자들이 낸 보험료로 이뤄진 것이라 세금을 거둬 재정을 투입하는 것보다는 불공정하다. 또, 정부가 국민연금 ‘지급 보증 명문화’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먹튀’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아쉬움을 넘어 다소 우려스러운 공약도 없지 않다. 예컨대 ‘재벌규제 – 중소기업 육성’ 정책은 정의당의 외연 확대와 득표에는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자신의 노동 · 청년 정책과 모순을 일으킬 수 있다.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그곳에 고용된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에 이용될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반면, 대기업의 이윤 중 일부를 중소기업에게 나눠 주는 ‘초과이익공유제’는 자칫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임금 인상 요구를 자제하라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보다는 ‘공공서비스 전면 확대’ 정책을 일관되게 밀어붙여 양질의 공공일자리 창출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수많은 노동자·청년을 하나로 단결시킬 수 있는 대안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정의당은 ‘소득 주도 성장전략’을 채택했는데 이 점에 관해서는 정의당 내에 동상이몽이 있는 듯하다. 어떤 사람들은 경제 성장을 위해서라도 노동자들의 ‘소득을 늘려야 한다’는 데 강조점을 두지만, 다른 사람들은 “시장분배의 정상화” 즉, 자본주의 시장 논리를 정당화하고 그럴듯한 성장전략을 내놓아야 한다는 데 강조점을 두는 듯 느껴진다. 소득 주도 성장론은 이런 차이를 봉합하는 데에는 효과적인 구호일지 몰라도 후자, 즉 성장에 강조점을 둘 경우 다른 정책들과 모순을 일으킬 수 있다. 자본주의에서는 대중의 소비보다 자본가들의 투자가 경제 성장에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친다. 그런데 지금처럼 세계경제 전체의 이윤율이 낮은 상황에서 자본가들의 투자를 유도하려면 모종의 기업 지원 정책으로 이끌리기 쉽다. 그것이 세금 혜택이든, 규제 완화든, 임금 억제든 노동자들에게 해롭기는 마찬가지다. (소득 주도 성장론에 대한 더 자세한 분석은 본지 131호 ‘소득 주도 성장론이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이유’를 보시오.)

대외정책 등 정의당이 내놓을 나머지 공약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다루겠다.

입력 2016-03-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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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 북구·동구 후보 단일화에 대해

1. 전략선거구에서 선거 돌파의 의미

민주노총이 창원 성산과 함께 4월 총선의 전략 선거구로 선정한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민중단일후보/민주노총후보”가 곧 선출될 예정이다.

울산 동구에서는 이갑용·김종훈 두 후보가 3월 10~11일에 현대중공업노조 조합원들을 대상으로 모바일(ARS) 설문조사를 진행해 그 결과를 수용하기로 했다. 북구에서는 3월 12~13일 민주노총 북구 소재 노동조합의 조합원 전원을 대상으로 모바일(ARS) 총투표를 한다.

적게는 1만 2천여 명에서 많게는 3만여 명이 후보 결정 과정에 참가하는 것이다. 법적·기술적 문제, 후보간 유불리 등으로 인한 상당한 진통 끝에 네 후보와 민주노총 울산본부, 현대중공업노조가 합의한 후보 단일화 룰이다.

두 선거구는 창원 성산과 함께 새누리당이 강세인 영남 지역이지만, 동시에 중요한 공업도시이자 노동자 밀집 거주지로 노동자 정치 운동의 중요한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곳들에서 진보 정당들이 수차례 구청장, 지방의원,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물론 근래 치른 선거들에서는 성적이 기대에 못 미쳤다. 민주노총은 이 노동자 지구들에서 진보정치 세력이 직접 새누리당과 겨뤄 꺾겠다는 구상이다. 이것이 바로 전략 선거구 선정의 의미다.(현재 민주노총의 전략 선거구는 이 세 곳과 권영국 변호사가 출마한 경주를 포함한 네 곳이다.)

전략 선거구에서 노동/진보 정치세력이 선거적 돌파를 하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첫째, 노동자들이 직접 “민중단일후보/민주노총후보”를 선출하는 과정에 참가해 단결의 정서를 만들 수 있다.

둘째, 이런 정서 속에서 선출된 ‘민중 단일 후보’들이 새누리당을 꺾고 승리하면 총선 이후 “노동개혁” 공세에 맞서 투쟁에 나서야 하는 노동자들의 사기에 좋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셋째, 예비경선에서 노동자들에 의해 선출된 후보들은 노동자 투쟁의 대의와 요구를 대변하는 스피커 구실을 더 열심히 해야 한다는 압력을 받을 것이다.

넷째, 민주노총이 이 과정을 능동적으로 조직함으로써 민주노총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이는 데도 좋을 것이다.(이 점에서 정의당의 야권연대 ‘전략’을 둘러싼 이견과 내부 논쟁 때문에 총선공투본이 (정의당의 노회찬 후보가 포함된다는 이유로) 전략 후보를 선정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쉽다.)

이 선거구들에서, 노동자 투쟁을 지지·지원하고 요구와 대의를 대변하는 데 큰 열의가 있는 투쟁적인 후보가 단일 후보가 돼서 본선에서 당선하길 바란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과 고통전가, 반민주 공세에 맞서려면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이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이다.

2. 울산 북구: 윤종오 vs 조승수

울산 북구에서는 무소속(민주와 노동) 윤종오 후보와 정의당 조승수 후보가 겨루고 있다.

무소속 윤종오 후보는 옛 민주노동당과 진보당 시절, 시의원과 북구청장을 지냈다. 구청장 시절 초등학교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해 지지를 받았다. 당시 윤 후보는 “무상급식은 포퓰리즘”이라며 예산 지원을 거부한 새누리당 소속 울산시장 박맹우와 갈등을 빚었다. 윤종오 후보는 총선 공약으로 초중고 친환경 무상급식을 법으로 실시하는 정책을 내놓았다.

노동자 후보임을 강조하면서 윤 후보는 구청장 시절 구청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 공무원노조 가입 독려 등을 성과로 강조한다. 입법 공약으로는 쉬운해고 금지법,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법 등의 제정도 말하고 있다. 지역적으로는 노후한 핵발전소 폐쇄와 신규 건설 금지가 두드러진다.

다만, 윤 후보가 속한 ‘민주와 노동’(구 진보당 울산계열 단체)은 전략적으로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정의당 조승수 후보도 마찬가지다. 다행히 현재 울산 북구에서는 더민주당 후보가 사실상 출마를 접어 이 문제가 쟁점이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정의당 조승수 후보는 비정규직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도록 비정규직 사용 사유제한과 파견법 단계적 폐지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놓았다. 노동자들에게 필요한 공약들이다.

조 후보는 노동시간 연간 1천8백 시간 제한제 공약을 내놓고, 이를 위해 노사정 협의기구와 소득보전기금을 설치하자고 주장한다. 1년에 2천5백 시간을 넘게 일하는 노동자들이 현대차 공장에서만 수천 명인 상황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꼭 필요한 요구다. 이는 투쟁에 잘만 활용되면 일자리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런 점 때문에 민주노총은 이미 2012년 총선을 앞두고 1천8백 시간 상한제 법제화 요구를 내놓은 바 있다.

물론 노동시간 단축 요구는 늘 사용자들과 정부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혀 왔다. 또한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줄어든 노동시간이 임금 감소로 이어지지 않도록 시간당 임금을 올리는 것도 사용자들은 반대한다.

따라서 임금 감소 없는 노동시간 단축을 이루려면, 사회적(노사정) 합의 형식보다는 대중 투쟁 건설에 강조점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소득 보전은 시간당 임금 인상을 포함해야 한다. 그러므로 조 후보의 공약은 노동시간 단축을 이루기에는 다소 부족한 것이다.

조 후보는 평소에도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의 투쟁 자제와 경제적 양보를 포함하는) 사회연대전략에 근거한 온건한 사회적 합의를 추구해 왔다.(그는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에서도 최저임금위원회의 위원을 공익적 인물로 교체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이런 점 때문에 노동운동을 대변하겠다는 점을 상대적으로 더 부각시키는 윤종오 후보에 비해 조승수 후보가 덜 투쟁적이고 더 온건해 보인다.

한편, 조 후보가 단일화를 앞두고 현대차 조합원들에게 뿌린 홍보물에는 윤종오 후보를 겨냥해 “통합진보당 출신 무소속 국회의원은 … 당선된다 해도 국회에서 제대로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할 수 없[다]”는 문구가 포함돼 있다. 이것은 박근혜 정부의 진보당 마녀사냥에 은근히 영합하는 기회주의적 언사로 보인다. 이는 2008년 분당 직전에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민주노동당을 “종북주의”로 낙인 찍은 조 후보의 옛 전력을 떠오르게 한다.

3. 울산 동구: 이갑용 vs 김종훈

울산 동구에는 노동당 이갑용, 무소속(민주와 노동) 김종훈 후보가 10일과 11일 조합원 모바일 투표를 기다리고 있다.

노동당 이갑용 후보는 이 지역의 가장 중요한 사업장인 현대중공업노조의 전 위원장으로서 골리앗 투쟁 등 전투적 투쟁들을 이끌었고, 그것을 인정받아 그 뒤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다. 2000년 총선에는 민주노동당 후보로 나가 동구에서 제왕처럼 군림하던 정몽준에 맞서 약 3만 표를 얻으며 선전했다.(이는 정몽준이 울산 동구에서 5선을 하는 동안 가장 많은 2위 득표 성적이다.) 2년 후 구청장 선거에서는 여유 있게 당선했다.

이갑용 후보는 구청장 시절에 동구청 공무원들에게 신생 전국공무원노조 가입을 독려했고, 2004년 연가 파업을 옹호했다. 이 파업에 대한 중앙 정부의 징계 명령을 거부해 직무정지와 사실상 구청장직 박탈을 당하는 처지가 됐다.

이갑용 후보는 이번에도 “재벌에 맞선 노동자 정치”를 내세우며, 재벌세를 걷어 노동자 복지를 늘리고 기업살인법을 제정하는 등 대기업에게 책임을 묻는 정치, 노동개악 저지 등의 투쟁에 함께하겠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후보는 좌파답게 비정규직 투쟁 등에도 함께해 왔다.

현중노조 모바일 투표를 앞둔 3월 9일 현중 조합 활동가 2백29명이 이갑용 후보 지지 선언을 발표했다. 적지 않은 규모다. 이들은 이갑용 후보가 비교적 일관되게 자신의 투쟁 경력과 지향을 연결시키려 하는 점을 높게 산 듯하다.

무소속 김종훈 후보도 2011년부터 2014년까지 동구청장을 지냈다. 당시 북구청장이던 윤종오 후보와 함께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현하려고 울산시와 갈등을 마다하지 않았다. 지역 내 우파 세력의 반발에도 비정규노동센터를 건립하기도 했다. 김 후보는 구청 소속 비정규직의 무기계약직 전환을 자신의 성과로 내세운다. 김종훈 후보가 노동공약으로 강조하는 법안들은 이갑용 후보와 대동소이하다.

다만, 김종훈 후보는 “노동자 정치”를 강조하는 이갑용 후보와 달리 반새누리 단결을 강조한다. 더민주당을 포함한 반새누리 야권연대는 김종훈 후보가 대표로 있는 ‘민주와 노동’의 기본 입장에 포함된다.

이런 입장이 정책에 반영될 수 있는 게 실제적인 문제다. 김종훈 후보가 이갑용 후보에 비해 울산 동구의 경제(산업) 살리기를 강조하는 것이 한 사례일 수 있다. 김 후보가 강조하는 관광산업 육성이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임을 모르지 않지만, 이런 점이 노동자 투쟁 지지 입장과 모순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둘째, 박근혜 정부의 독주에 맞서는 것은 중요하지만, 동구에 더민주당 후보가 여럿 예비후보로 출마한 상황에서 전략적 야권연대 고려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래로부터의 진보단일화 후 야권단일화를 추진할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울산 동구에서 더민주당 후보에게 “민중단일후보/민주노총후보”가 후보 자리를 양보할 가능성은 없다. 하지만 그 대신에 단일후보를 지지하고 단일후보 선출 과정에 참가한 1만 수천 조합원들 사이에서 갈등과 분열을 낳을 수 있다.(이 입장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은 <노동자 연대>, 167호 ‘이렇게 생각한다: “민중단일후보”의 야권연대 문제에 대해’를 참고하시오.)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노동자 투쟁의 좌파적 스피커 구실을 상대적으로 더 잘할 수 있는 후보가 당선되는 데 이 글이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문성(<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을 대변해)

입력 2016-03-1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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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

김하영

우리 나라 운동에서 전통적으로 강력한 민중주의는 “각계·각층”의 동맹을 중시하고, 노동자들이 계급 고유의 이해관계를 내세우는 것을 그런 동맹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연히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사상은 노동계급이 약화됐고 따라서 예전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고 여기는, 매우 다양한 경향들과 잘 맞물린다. ‘민주노총은 조직률이 매우 낮아 계급 대표성이 없는 데다 대공장·공공부문 조합원이 다수이므로, 조합원들의 요구를 앞세웠다가는 지배자들의 귀족노조 고립 프레임에 말려든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를 “독재 회귀” 심지어 “파시즘”이라고 보는 것도 계급을 가로지르는 동맹을 정당화하는 근거다.

이런 민중주의가 2015년 투쟁에 미친 좋지 않은 영향을 잘 보여 준 대표적 사례가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태도였다. 노동운동 안에는 공무원연금 방어를 꺼리는 견해가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민주노총이 그런 걸 방어해서 지지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동자연대를 비롯한 일부 좌파들의 주장으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4·24 총파업의 주요 요구로 포함됐지만,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은 그것을 ‘공적연금 강화’로 대체하거나, ‘최저임금 1만 원’ 같은 요구를 제기하는 데 강조점을 뒀다. 이것은 자기 조합원들의 조건보다 미조직 노동자들과 전국민의 조건을 더 배려함으로써 국민적(또는 민중의) 지지를 얻겠다는 민중주의적 발상이었다.

△ 2015년 9월 23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실질적인 파업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사진 조승진

물론 ‘공적연금 강화’나 ‘최저임금 1만 원’은 중요한 요구다. 노동자연대는 이 요구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가하기’ 공격의 최전선으로 삼고 있었고, 이를 지렛대로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같은 더 광범한 공격을 추진하려는 상황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를 사실상 회피하는 태도는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와 연금행동 정용건 집행위원장 등의 ‘공적연금 강화’론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사실상 용인하는 배신으로 나타났고, 이는 상반기 노동자 투쟁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에 그들은 공무원연금 삭감분을 국민연금 강화에 사용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합의라며 정당화했는데, 국민연금 강화는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우리의 경고가 결국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노동뉴스>는 “공무원연금 삭감분을 공적연금 강화에 사용하겠다는 전제로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얻어 낸 정부는 이후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정부의 태도를 “먹튀”라고 요약하고 2015년 노동뉴스 16위로 뽑았다.

민중주의의 논리는 공공부문 정상화나 노동시장 구조 개악 반대 운동에도 적용됐다.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 안에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내세워서는 안 되고 ‘공공적’, 즉 국민적 요구에 헌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노선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 철도노조 김영훈 위원장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수용했다. 5월 말 공무원연금 개악 이후 상반기 노동자 투쟁의 상승세가 꺾였다면, 주요 공공기관들의 임금피크제 협상과 수용은 9~10월 공공부문 투쟁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문제에서는 사실상 비정규직 관련 쟁점만 부각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다수 지도자들이 이 쟁점으로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더민주당 등 주류 야당과도 협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규직·조직 노동자들에게 해당하는 쟁점은 지키고자 아등바등할수록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또는 노동계급의 분절화를 악화시켜 노동운동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가령, ‘쉬운 해고? 비정규직은 이미 손쉽게 해고되고 있다. 통상임금 정상화? 비정규직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는 식의 주장들을 흔히 듣다 보면, 조건 악화에 맞선 싸움이 정당한지 헛갈릴 지경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쌓아 온 임금과 고용조건 지키기에 연연하는 ‘반대 투쟁, 저지 투쟁’을 할수록 고립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운동 우파부터 좌파까지 공유하고 있다.

민중의 호민관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민중의 호민관’, ‘조직 노동자만이 아닌 계급 전체를 위한 투쟁’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정서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선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타나는 효과는 투쟁에 나설 잠재력이 있는 조직 노동자들의 동원을 회피하는 것임을 날카롭게 직시해야 한다.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을 전투적으로 벌이면서 다른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고무해야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중주의자들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 방어를 위해 나서는 것 자체를 해롭다고 보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노총의 총파업 성사에 큰 열의가 없었다. 그들은 그 대신에 ‘민주노총이 제대로 되지도 않는 총파업을 하기보다 전략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과 이를 통한 의식과 조직의 성장 대신 ‘위로부터의’ 개혁을 제안하는 셈이다.

계급 정치를 일관되게 추구하지 않은 다른 대표적 사례는 총파업을 민중총궐기로 대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민중총궐기가 중요한 전진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나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민통 계열은 2015년 초부터 11월 민중대회를 적극 추진했고, 이를 세력 회복과 총선으로 가는 디딤돌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한상균 집행부도 7월 이후 민주노총 내에서 총파업 회의론이 강화되면서 점점 더 민중총궐기에 의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5년 초 민주노총 임원 선거 직후에는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신임 임원진이 ‘총파업 투쟁’을 가장 주되게 표방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고 당선했다는 점을 자타가 인정했다. 그래서 선거에서 ‘준비된 투쟁’을 주장했던 상대편(국민파-중앙파-전국회의 연합선본)도 초기 몇 달 동안은 총파업을 공공연히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다 공무원연금 개악 이후, 4·24 총파업을 전후해 상승하던 기세가 꺾이고 7·15 파업이 급조돼 미미한 수준에 그치자, 총파업이 효과 없고 소모적이라는 종래의 주장이 확산됐다.

총파업 할 역량이 안 된다거나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총파업 같은 전통적 투쟁 방법이 이제 낡았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가령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김태현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외쳤지만 위력적이지는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의 투쟁 형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적 투쟁이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선도차 역할을 담당했던 … 그 시절의 향수에 기반하고 있다. …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자본이 초국적화되고 고용이 분절되며 파편화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전투적 투쟁이 쉽게 전면화되기는 어렵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총파업 투쟁을 외치기보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비정규직 투쟁의 근거지 구실을 전략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력 약화, 법제도적 제약, 비정규직 노조의 취약성 등으로 파업이 가능한 조직들이 제한돼 있다는 것도 총파업이 불가능한 이유로 언급되는 요인들이다.

사회적 연대

그러면서 흔히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 하나는 범국민적 또는 ‘사회적 연대’ 투쟁이다. 1~2년 전부터 사용되는 “국민파업”이라는 용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이런 투쟁은 ‘파업이 가능한 노동자+파업이 불가능한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농민+빈민+자영업자+학생+여성 등등’이 모두 광범하게 연대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지만, 계급의 경계와 파업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문제점도 동시에 안고 있다.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공장, 병원, 학교, 교통·통신 체계 등을 멈출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가졌다는 데 있다. 자영업자나 학생 몇만 명이 일을 안 하거나 수업에 안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효과를 내지는 못하며, 또한 노동자들 역시 집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는 이런 효과를 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투쟁이 “정치” 투쟁(반박근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보다 우월하고, 노동자 일부가 아니라 전체, 더 나아가 민중까지 포괄하는 투쟁이므로 민주노총만의 총파업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지난해 있었던 세 차례의 총파업보다 11월 14일 총궐기가 훨씬 더 위력적이지 않았느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맞선 투쟁의 시동을 걸고, 노사정 야합에 항의한 9·23 총파업 같은 투쟁들이 있었기에 11월 14일까지 분위기가 뜨면서 총궐기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조직됐던 것이다. 오히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총궐기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총파업으로 나아가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 뒤에도 가두 시위에만 힘을 실은 결과 노동자 투쟁은 더 이룰 수도 있었던 전진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전진해야 박근혜의 ‘노동개혁’을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민중총궐기와 직결시켜 총파업을 조직했다면 어땠을까? 노동계급이 경제적·집단적인 힘을 사용해 실질적인 파업에 돌입했다면, 이윤을 위협하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박근혜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에 확실한 제동을 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박근혜를 한 방 먹이고 싶은 더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얻었을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노동자들 자신이 계급투쟁의 역량을 십분 발휘했을 때 연대도 확대되고 중간계급들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노동자들이 투쟁 수위를 낮춰야 연대가 확대되는 게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2013년 철도 파업 당시 ‘필공’ 파업을 해 국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철도파업이 지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철도 노동자들이 굳건히 장기간의 파업을 이어갔기 때문에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물론 필공이 아닌 전면 파업을 했더라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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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최일붕 지음 | 노동자연대

100페이지, 3000원

입력 2016-03-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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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 울산 동구·북구, 경남 창원 성산, 경북 경주

민주노총 전략 선거구들의 후보 진용이 최종 갖춰지다

김문성

민주노총이 4월 총선 전략 선거구로 선정한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민중단일후보/민주노총후보”가 선출됐다.

이로써 민주노총이 전략선거구로 선정한 네 곳(위 두 곳에 경남 창원성산과 경북 경주가 있다) 모두 노동계 단일 후보가 결정됐다. 울산 북구의 윤종오 후보(무소속, “민주와 노동”), 울산 동구의 김종훈 후보(무소속, “민주와 노동”), 창원성산의 노회찬 후보(정의당), 경북 경주의 권영국 후보(무소속, 시민혁명당)가 그들이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울산 북구 윤종오 후보, 울산 동구 김종훈 후보, 창원성산 노회찬 후보, 경북 경주 권영국 후보. 

네 후보 모두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으며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강요하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을 심판하겠다고 하고 있다.

노회찬 후보는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재치있는 언변으로 노동계급의 마음을 잘 대변한 것으로 유명하다. 노 후보는 당면한 “노동개혁”에 맞서 정리해고제한법을 제1호 공약으로 제시했다. 그는 삼성그룹과 검찰의 유착을 폭로했다가 정치 보복성 판결로 의원직을 뺏긴 바 있다. 이번에 창원에서 새누리당을 꺾고 정치적 ‘복권’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각각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북구청장, 동구청장을 지냈던 윤종오 후보와 김종훈 후보는 재임시 새누리당 소속의 울산시장과 충돌을 불사하며 친환경 무상급식을 실시했다. 이런 복지는 노동자들의 임금을 간접 지원하는 것으로, 지역 노동자들의 폭넓은 지지를 받았다. 새누리당의 색깔론 공격에도 불구하고 두 후보가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이유다. 두 후보는 쉬운해고금지법, 비정규직의 정규직전환법 등을 공약으로 내놓고 박근혜의 “노동개혁” 저지 투쟁의 대변자가 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권영국 후보는 용산참사의 실질 책임자인 새누리당 김석기 후보를 정조준해 떨어뜨리겠다고 말했다. 초대 민주노총 법률원장을 지낸 그는 용산참사, 각종 주요 노동사건의 변호를 맡았고, 쌍용차 대한문 농성 연대, 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등 운동 건설에도 직접 나선 “거리의 변호사”로 유명하다.

이 지역들 모두 새누리당이 강세인 영남 지역이지만, 동시에 노동자 밀집 거주지이기도 하다. 특히 창원과 울산은 중요한 공업도시로 노동자 정치 운동의 중요한 근거지이기도 하다. 이곳들에서는 노동계 후보들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 새누리당을 긴장시키고 있다.

민주노총 전략선거구들에서 노동자들이 수만 명씩 단일후보 선출에 참가하거나 지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은 노동계 후보가 새누리당의 콧대를 꺾고 노동자 투쟁이 전진하는 데 보탬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일 것이다.

따라서 최근 서로 우경화 경쟁을 벌이는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과의 야권연대보다는, 오히려 이 당들을 비판하며 노동계급의 투지에 더 강력히 호소해 계급투표 응집력을 높이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거운동일 것이다.

이를 통해 이 네 후보들이 선전하고 당선하는 것은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일 수 있고, 총선 이후에도 계속될 “노동 개혁” 공세에 맞설 현장 투쟁 건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입력 2016-03-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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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주류 야당들의 우클릭과 새로운 사회민주주의 정당

김문성

안철수는 최근 이렇게 말했다. “낡은 보수와 낡은 진보가 대립하면서 공생하는 이 구조를 깨지 않고는 … 국민 편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 정권교체의 희망도 찾을 수 없다.”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의 ‘보수적 중도층’을 자신의 대권 도전 기반으로 삼겠다는 뜻이다. 최근 안철수가 더민주당의 야권 통합/연대 제안을 거절한 것은 정당 정치에 대한 철학이라기보다는 이런 ‘보수적 중도층’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더민주당을 “낡은 진보”라고 지칭한 것이다.

안철수는 “경제는 진보, 안보는 보수”를 표방했고, 국회의장 직권상정까지 동원한 박근혜의 테러방지법 통과 시도에 ‘여야 모두 문제다’ 하며 양비론을 펴 사실상 새누리당을 도왔다.

더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의 일부는 안철수의 탈당으로 더민주당이 ‘야성’을 강화할 거라 기대했음직도 하다. 실제로 안철수 탈당 직후 오히려 더민주당의 지지율이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기대는 유지되지 못했다. 사실 표를 늘리려고 양 날개 전략을 펴 온 문재인도 무게중심은 오른쪽 날개 강화에 있었기 때문이다.

문재인은 자서전 《문재인의 운명》에서 훌륭한 인재라고 극찬했던 한미FTA 협상 책임자 김현종(최근 미국의 기업을 위해 한국 정부의 규제 도입을 막으려고 노력한 것이 폭로됨)을 비롯해 제주 강정마을 진압 책임자였던 전 인천경찰청장 윤종기, 삼성전자 경영진 출신 양향자 등을 총선 전략 공천 후보로 영입했다. 수권 정당의 면모를 보이겠다는 계산이다.

가장 상징적인 조처는 문재인이 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전략적 야권연대 협의체에 합의하고는 바로 김종인을 영입해 전권을 맡긴 일이다. 김종인은 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중용됐고, 2012년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 공신의 일원인 보수적 인물이다.

김종인은 테러방지법을 막으려는 필리버스터를 “이념 전쟁”이라며 중단시켰고 다른 날도 아닌 삼일절에 “[위안부 협상은] 일단 국가 간 협상을 했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고 말했다.

인천 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이 거세게 반대한 윤종기 등을 전략 공천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김종인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국민적 공분을 의식해 유가족 지지 차원에서 영입한 박주민 변호사에 대해서는 선거구를 뺑뺑이 돌리며 공천을 미루고 있다. 이런 푸대접에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SNS에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뜻인가 … 왜 이렇게 항상 우리의 가슴에 비수만 꽂는가” 하는 분노의 말을 남겼다. 정청래 낙천도 보수층을 의식한 “정치적 참수”로 볼 수 있다.

결국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보수적 중도층’을 새누리당에게서 빼앗아오는 경쟁을 하고 있는 셈이다. 이런 행보는 2012년 대선 패배 후 민주당 지도부가 내린 결론에서 시작된다. 그들은 진보 정당과의 야권연대 때문에 “중원”, 즉 보수적 중도층을 새누리당에 빼앗겨 패했다고 평가했다.

정의당

한편, 정의당은 더민주당의 우클릭으로 야권연대가 난관에 봉착하자 반발하고 있다. 정의당은 일찌감치 더민주당, 국민의당과 연립정부를 목표로 한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해 왔다. 이제 정의당은 반새누리 야권연대가 사실상 무산된 책임이 더민주당에 있다고 비판하면서 독자 완주를 공언하고, 수도권에서 지역구 독자 출마도 더 늘리겠다고 했다.

정의당이 독자 완주하면서 더민주당을 분명하게 비판하고, 노동계급을 비롯한 피지배계급들의 진보적 유권자층의 표를 결집시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그 당의 선거 목표 성취에도 이로울 것이다.

지난주 여론조사에서 정의당의 서울 지역 정당 지지율은 국민의당을 앞질러 12.8퍼센트로 치솟았다. 그동안 야당에 대한 대중의 불만은 집권 우파의 독주를 막는 데 너무 무능하고 물렁하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민주당의 우클릭은 공식 정치 지형의 우경화를 재촉할 수 있다. 이는 새누리당과 우익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줄 것이다.

이런 상황은 계속되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국제적으로 전개되는 주류 정치 우경화 현상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현재 경제·안보 위기 때문에, 한국 자본가 계급에 기반을 둔 친자본주의 정당으로서 더민주당이나 국민의당도 이 흐름에서 벗어날 순 없는 것이다.

국제적으로는 이런 주류 정치의 우경화는 대중의 정치적 무관심이나 우익 포퓰리즘 정당 지지로 이어지기도 했지만, 급진적인 방향, 즉 노동자 운동이나 사회운동의 성장, 사회운동으로 새로운 청년층의 유입, 좌파 개혁주의 정당의 성장 등을 불러 오기도 했다. 영국, 그리스, 스페인 등지에서 최근 좌파 개혁주의 정당들이 부상했다.

물론 정의당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아니라 주류 개혁주의 정당이다. 그래도 국제 운동의 경험을 일반화해 보면, 정의당의 좌파들이 고통 전가와 긴축 정책을 반대하고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는 것이 중장기적으로 자신들의 선거적 성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입력 2016-03-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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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전략선거구의 야권 후보 단일화 문제에 대해

“민중단일후보”의 야권연대 문제에 대해 / ― 민주노총 전략선거구를 중심으로

민주노총 전략선거구인 20대 총선 경남 창원성산에 “민중단일후보/민주노총후보”로 출마한 노회찬 후보가 3월 22일 더민주당 허성무 후보와 단일화하기로 했다는 요지의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두 후보는 3월 24~25일 후보 등록 마감 전까지 단일화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이 기자회견에는 문재인 더민주당 전 대표와 김재명 민주노총 경남본부장이 함께했다. 언론 보도를 보면, 문재인이 양 후보의 단일화 합의에 중개자 구실을 했다고 한다. 애초 더민주당 허성무 후보는 “[노회찬 후보는] 분열과 패배의 아이콘으로 각인돼 있다”는 비판을 했었다.

민주노총 경남본부와 노회찬 후보가 ‘후보 사퇴 가능성’을 포함하는 야권단일화에 합의한 것은 애초의 선거방침 취지에 어긋나는 것일 뿐 아니라 투표에 참가한 (1만 5천여 명이나 되는) 조합원 대중의 선택과 결정을 무시한 처사다.

그렇지 않아도, 조합원 모바일 투표로 울산 동구의 민중단일후보 선출을 주도한 현대중공업노조는 선출된 무소속 김종훈 후보에게 더민주당과는 단일화를 해서는 안 된다고 공식 통보했다. 현중노조가 옳다.

후보 단일화가 본선에서 당선 가능성을 높일 수는 있어도 애초에 민주노총 전략선거구를 지정하고 단일후보 선출과정에 조합원 대중이 참가한 취지에는 결코 부합하지 않는다. 민주노총의 전략선거구 방침은 노동운동과 진보·좌파 진영이 단결해 정치적 존재감을 과시하고 향후 투쟁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이런 상황을 우려해 지난 2월에 <노동자 연대>는 사설, “이렇게 생각한다―“민중단일후보”의 야권연대 문제에 대해”를 발표했다.)

계급 투표

새누리당이 강세인 지역 특성상, 일부에서는 야권 후보 단일화를 요구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계 후보가 단일 후보가 될 가능성이 더 높을 것이다. 더민주당 허성무 후보가 비교적 개혁적 후보로 보일 법한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김두관 경남도지사 시절 정무부지사를 지낸 허성무는 현 경남도지사 홍준표의 무상급식 중단이나 진주의료원 폐쇄에 반대하는 운동을 지지했다

이런 조건에서는 후보 단일화를 해서라도 당선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더 낫다고 여길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실용주의의 유혹을 이겨 내고, 후보 단일화가 총선 이후 노동자 투쟁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물어야 한다. 대중 투쟁의 뒷받침 없이는 공식 정치 영역에서의 활동만 갖고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반민주 공세를 막기 어렵다는 것이 거듭 확인돼 왔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략선거구로 선정된 경남 창원 등 네 곳은 공단이자 노동자 밀집지구다. 특히 창원성산은 두 번이나 노동자 국회의원을 배출할 정도로 노동운동과 민주노총의 영향력이 센 곳이다. 이런 곳에서는 더더욱 선거운동이 노동자 투쟁을 고무하는 것과 연결돼야 하지 않겠는가.

더민주당의 우클릭

전국적 야권연대로 치른 19대 국회에서도 더민주당은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노골적인 친자본주의 정당의 한계를 거듭 보여 왔다. 경제·안보 위기로 그런 기성 정당 운신의 폭이 좁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더민주당은 보수적 중도층을 득표 기반으로 확보하려고 우클릭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던 정의당마저 서울시당, 인천시당, 강원도당 등이 야권연대를 하지 않고 독자 완주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정의당의 지지율은 확연한 상승세를 탔다. 야권 지지층의 불만은 더민주당이 박근혜 독주에 전혀 제동 구실을 못한 것에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여당에서 ‘팽’당한 인물이 더민주당의 주인 노릇을 하는 상황에 환멸을 느끼고 있다.

문재인이 직접 나서 창원성산의 후보 단일화 논의의 물꼬를 트고, 울산에서 더민주당이 먼저 후보 단일화를 공개 제안한 것은 이런 분위기를 의식한 것이다. 우클릭 하면서도 득표 확대를 위해서는 양 날개 책략을 포기하지는 않겠다는 것이다. 어차피 더민주당의 당선이 불가능한 지역에서 양보하면서, 수도권에서 양보를 얻겠다는 계산에서 나온 책략일 것이다.

요컨대, 더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는 선거적 실리는 있을지언정 노동자 투쟁(과 대의)을 고무·촉진하거나 노동/진보·좌파 정치세력의 차별적인 대안적 전망을 제시하기에는 부적절할 것이다. 민주노총 전략선거구의 노회찬 후보가 더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 합의를 한 것은 아쉽다. 그보다는 주류 정치의 계급적 한계를 폭로하며 계급 투표를 더 관철시키려고 노력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민중단일후보/민주노총후보”들도 더민주당과의 후보 단일화를 꾀하다 노동자 지지층을 분열시키거나 실망시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김문성(〈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을 대변하여)

입력 2016-03-2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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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정의당 비례후보 투표 결과

아쉬운 노동운동 홀대

노동운동 홀대로 드러난 정의당 비례대표 투표 결과는 큰 아쉬움을 남겼다.

‘안보 전문가’ 김종대 정의당 국방개혁기획단장(예비내각 국방부장관)이 1위를 차지해 당선 유력권인 비례 2번 후보가 됐다.

반면, 유일한 민주노총 지도자 출신 후보로 노동운동의 정치적·좌파적 대변을 우선과제로 내건 양경규 후보는 경쟁 명부의 맨 마지막인 10번이 됐다.

양경규 후보보다 앞선 일반명부 후보들이 더 좌파적인 가치를 대변하거나 (꼭 노동운동 출신자가 아니더라도) 특별히 노동운동의 중요성을 부각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더욱 아쉽다.

김종대 후보의 “진짜 안보” 담론은 군 부패 문제를 건드린다는 점을 빼면, 군비 축소와 복지 증대를 추구해 온 진보의 가치와 상당히 어긋난다. 그는 김대중 정부의 통일·안보 분야 각료를 지낸 인사들의 추천을 선거 홍보에 이용했다.

비례 4번인 윤소하 후보는 전남 목포를 중심으로 수십 년 동안 무상급식 실시 등 꾸준히 진보적 지역 운동을 해 왔다. 그러나 특별히 더 좌파적 가치나 노동자 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기보다는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의 상생 보장’ 같은 온건한 포퓰리즘(민중주의) 공약들을 내놓았다.

비례 6번이 된 조성주 후보는 그동안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거리를 두는 주장을 대변하면서, 대놓고 진보 정치의 온건화를 재촉해 왔다. 그는 비정규직을 위해 정규직이 세금, 임금 등 노동조건에서 사측과 정부에 양보하라는 사회연대전략을 일관되게 지지한다.

이런 후보들이 노동운동의 정치적 대변을 강조한 양경규 후보에게 적게는 수백 표에서 많게는 2천7백여 표나 앞선 것이다. 이는 노동자 운동의 정치적 염원이 정의당 내에서 충분히 반영·대변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정의당 미래정치센터가 당원 1천8백96명을 대상으로 한 ‘당원 정치의식 설문조사’를 보면, 정의당의 우선과제로 ‘노동자의 이해를 더 분명하게 대변해야 한다’고 답한 당원이 20.2퍼센트다(복수 응답). 이 비율은 전체 당원 3만여 명 중 조직노동자 1만여 명을 포함해 노동자 당원이 2만여 명인 당원 구성에 비하면 꽤 낮은 편이다.

정의당 내부에서도 당이 노동운동과 진보정치를 분리시키고, 운동과 투쟁으로 뒷받침되지 못하고 전문가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하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박성식, “당원의 집안 걱정, 정의당의 정치학”, <레디앙> 2016년 3월 11일)

이런 현상은 정의당 주요 정치인들의 노선과 관련이 있다. 예컨대, 핵심 지도자인 심상정 대표는 그동안 “헌법 내 진보”, “안보”, “사회적 합의”처럼 기성체제와의 타협을 중시하는 가치(부르주아적 명망)를 강조해 왔다. 아마도 핵심 리더의 이런 온건한 개혁주의 정치가 좌파적 노동운동 지도자보다 안보 전문가가 갑절이나 많은 지지를 받은 데 영향을 미친 중요한 요인이 됐을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난해 정의당이 크게 성장한 것은 노동자들의 저항 덕분이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노동자 투쟁이 박근혜의 공세를 막는 데에 가장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런 투쟁의 좌파적 스피커 구실을 하겠다는 후보가 당선 가능권에서 밀려난 것은 아쉬울 수밖에 없다.

정의당은 사회 변화의 진정한 동력인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홀대해선 안 된다. 그런 엘리트주의로는 선거적 성공은 일시 거둘 수 있어도 경제·안보 위기의 시대에 개혁을 쟁취하기는 더 어려워질 것이다.

2016년 3월 16일

김문성(〈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을 대변하여)

입력 2016-03-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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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전달체계 확립

공공의료 확대가 대안이다

장호종

정의당은 의료 공공성 확대 정책의 핵심 과제로 ‘의료전달체계 구축’을 꼽았는데 여기에는 지지할 만한 부분도 있지만 우려스러운 부분도 많다.

의료전달체계란 1차(동네 의원) - 2차(지역 병원) - 3차(대학병원 등 초대형 병원) 의료 기관의 분업과 협력을 뜻한다. 이 체계는 보건의료 자원을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 고안된 것이다. 한마디로 심장 수술 전문가가 하루종일 감기 환자를 보는 것은 비효율이라는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그래서 기본 교육을 이수한 의사들이 동네 의원에서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을 보고, 증세가 심해지거나 진단과 치료가 어려운 병들은 상급(2~3차) 의료기관에서 전문적인 진료를 받도록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이런 체계는 나름으로 합리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이런 체계가 잘 작동되지 않는다. 병원이건 의원이건 거의 대부분 민간이 운영하다 보니 서로 가능한 한 많은 환자를 진료하려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환자들 입장에서 보면 동네 의원에서 ‘풋내기’ 의사에게 진료받기보다 설비가 잘 갖춰진 병원에서 경험 많은 전문의에게 진찰을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다 보니 대형병원에는 환자가 지나치게 많이 몰리고 동네 의원들은 경영난을 겪거나 불필요한 비보험 진료를 남발하곤 한다. 시장 논리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

정부는 의료인 양성에서 병원 설립까지를 모조리 민간에 맡겨 둔 채 의료전달체계의 효율성을 갖추려다 보니 ‘가격’을 올려 문턱을 높이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통제해 왔다. 즉, 가벼운 증세로 대형병원을 찾으면 진료비를 더 많이 내도록 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아프고 가난한 이들에게 벌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부자들이야 진료비 몇 만 원이 무슨 문제겠는가.

가장 효과적인 대안은 정부가 의료체계 전체를 통제하는 것이다.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나라들처럼 말이다. 그러려면 공공병원을 대폭 늘리고 도산하는 병원들을 정부가 인수해 운영해야 한다. 수익성에 끌려다니지 않아야만 의료전달체계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다.

그런데 앞서 지적했듯이 정의당은 미미한 수준의 공공의료기관 확대 계획을 내놓고, 1차 의료기관의 진료 수준을 개선해 사람들을 동네 의원으로 유도한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물론 이는 진료비를 인상해 환자들을 동네 의원으로 내모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정책이다. 그러나 민간 의원들에 그 역할을 맡기려다 보니 수가 인상(“충분한 설명과 적정 진료가 가능한 수가제도”)을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문제다.

물론 필요한 진료를 확대하려면 일부 수가를 인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얼마 전 확대 시행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 같은 제도를 위해 건강보험 재정을 지출하는 것을 두고 뭐라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 같은 체계에서는 수가 인상이 진료의 질 향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보장이 없다. 진보적 보건의료단체들이 수가 인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까닭이다. 경험상 수가 인상은 진료의 질을 높이지는 못하고 병원비만 인상시켜 왔기 때문이다.

정의당은 “수도권 대형병원 신 · 증설 억제” 정책도 내놓았다. ‘지역적 균형’을 위해서 내놓은 정책인데, 기존 대형병원들의 경쟁을 일부 완화하는 효과는 있겠지만, 이것이 수익성 추구를 약화시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 병원들이 한국 전체를 두고 경쟁을 벌여야 하는 처지에 있다는 점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또, 수도권에 대형병원을 못 짓게 한다고 해서 민간 자본이 지방에 병원을 세우려 할지도 미지수다. 충분한 이윤을 보장받을 수 없다면 자본가들은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이런 조처는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기는커녕 불편함만 가중시킬 수도 있다. 

입력 2016-04-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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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 총선

진보·좌파 후보와 정당들이 지지를 얻다

20대 총선 여론조사 대부분에서 새누리당의 정당지지도가 하락했다. 지난 3년간 박근혜 정부의 반노동·반민주 행태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빚어낸 정치 위기 덕분에 보수 지지층에 균열이 생긴 것이다. 물론 공천 과정에서 여권 내에 자중지란이 일어나 ‘배신과 복수’의 막장 드라마를 연출한 것도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런 상황 때문에 새누리당 후보들의 ‘진박’ 마케팅은 점차 ‘사죄·읍소 마케팅’으로 바뀌고 있다.

‘중도 보수층’에 경쟁적 구애를 하면서 전통적 야당 지지층에게서 볼멘소리를 듣던 더민주당과 국민의당도 부분적 반사이익을 얻는 듯 보인다.

물론 접전인 곳이 많아 최종 선거 결과를 미리 점치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몇 달 전 새누리당이 1백80석 운운하던 일을 떠올리면 지금은 그런 언사들이 허세처럼 느껴진다. 반박근혜 야권 지지층이 조금이나마 안도감을 느끼는 이유다.

이런 배경 속에서 진보·좌파 정치세력이 제한된 범위이지만 전진을 하는 듯하다. 지난 2년간 박근혜 정부의 지지율이 떨어진 것과, 노동운동과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이 부분적으로 도전한 것이 진보·좌파 정치세력에 큰 도움이 됐다. 물론 주류 정치권에 대한 환멸도 영향을 끼친 듯하다. 박근혜 정부 심판 투표가 진보·좌파 지지로 표현되는 것은 좋은 일이다.

만약에 새누리당의 당선자수가 19대보다 줄고, 울산, 창원 등 민주노총 전략 선거구에서 당선자가 여럿 생기고 진보·좌파의 득표가 늘어나면, 이후에 투쟁이 일어나기도 한결 쉬워질 것이다.

이 점이 중요한 것은 경제 위기 때문에 총선 이후에도 ‘노동개혁’ 저지 투쟁 등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민주노총도 총선을 발판으로 향후 투쟁을 건설하겠다는 계획이다.

진보·좌파 정당과 후보들의 선전을 바란다. 투표 그 자체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지지한, 박근혜 심판과 “노동개혁” 반대를 내건 후보들의 선전은 대중 투쟁 건설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투쟁의 대의가 전국적 지지를 받는다는 느낌(자신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전략 후보들의 지지율이 높아지다

울산의 북구와 동구, 경남 창원성산에서 노동정치 1번지 선거구다운 저력이 나타나고 있다.

경남 창원 성산 노회찬 후보의 당선을 바란다. ⓒ사진 출처 노회찬 후보 페이스북.

울산 북구의 무소속 윤종오 후보는 울산 지역 언론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47.7퍼센트(새누리당 후보는 33.7퍼센트)로 월등한 우위를 보여 줬다. 동구의 김종훈 후보도 터줏대감인 새누리당 후보와 오차 범위 안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과거와 비교하면 이 자체가 선전이다.) 창원성산의 노회찬 후보도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 현역 의원을 앞서고 있다.

울산 북구·동구에서 민주노총 전략 후보들의 당선을 바란다 비정규직 노동자 투쟁에 함께할 것을 다짐한 울산 민주노총 전략 후보들.(앞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울산 동구 김종훈 후보, 네 번째가 북구 윤종오 후보, 가운데는 민주노총 지지 후보인 울산 중구 노동당 이향희 후보) ⓒ사진 출처 김종훈 후보 페이스북.

곤경에 처한 새누리당은 특히 울산에서 색깔론을 총동원하고 있다. 윤종오, 김종훈 두 후보가 과거 진보당 소속으로 구청장에 출마했던 사실을 문제 삼는 것이다. TV토론에서 ‘선거사무소 개소식에서 애국가를 불렀냐’는 식의 유치찬란한 공격을 퍼붓고 있다.

탄압도 벌어졌다. 4월 7일 선거와 무관한 북구 지역 시민단체 사무실 2곳을 검찰이 압수수색했다. 윤종오 후보의 ‘유사’ 선거사무소로 쓰여 선거법 위반이라는 혐의다. 민주노총 울산본부와 금속노조 울산지부 등이 즉각 항의 성명을 내어 “표적 수사”, “정치 공작”이라고 규탄했다.

이는 누가 봐도 새누리당 후보 윤두환의 지지율이 추락하는 상황을 만회하려는 정치 탄압이다. 윤두환이 국회의원일 때, 보좌관 월급을 가로챘다는 의혹이 터져 곤경에 처했기 때문이다.

더 근본적으로, 노동운동의 선거 도전과 선전이 노동자들의 사기를 높여 총선 이후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에 걸림돌이 될까 봐 두려운 것이다.

세 후보는 이런 치졸한 공격에 맞서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선 노동자 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있다. 계급 투표로 이 후보들이 당선하기를 바란다.

진보·좌파 정치세력들의 공약

민주노총은 이번 총선에 노동운동과 진보·좌파가 공동으로 대응하자고 제안해 총선공투본을 꾸렸다.

총선공투본은 ‘노동개혁’ 반대, 재벌의 사회·경제적 책임 전면화, 노동중심 진보정치 재건을 위한 발판 마련 등을 목표로 구성됐다.

이런 목표들에 동의해 여러 정치·사회단체들은 물론이고,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등의 진보·좌파 정당들도 참여했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노총이 지지하는 전략 후보는 6명이다. 앞서 다룬 세 후보 외에도 경북 경주 무소속 권영국 후보, 부산진을 무소속 김재하 후보(민주노총 부산본부장), 대구 달성군 무소속 조정훈 후보(민주노총 대구본부 수석부본부장) 등이 그들이다.(애초 전략 후보 중 하나로 대전 동구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던 이대식 민주노총 대전본부장은 유감스럽게도 4월 8일 더민주당 후보와 단일화하고 사퇴했다.)

당선이 현실적 목표는 아니지만, 새누리당 강세 지역에서 박근혜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노동운동의 대의를 대변하는 세 전략후보들의 헌신도 훌륭하다. 이 후보들이 모두 선전해 새누리당에 향후 노동자 투쟁의 경고장을 제대로 보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들을 포함해 민주노총 후보 23명과 민주노총 지지 후보 28명, 그리고 전국 곳곳에서 진보·좌파 정당 네 곳과 무소속 진보·좌파 후보들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선전

이런 후보들에게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중적 반감과 주류 야당들에 대한 실망은 기회가 되고 있다. 특히, 정의당이 많은 수혜를 얻고 있다. 지난 2년간 세월호 운동과 노동운동의 도전과 일부 좌파와의 통합 이후 당원도 늘고 지지율이 올랐다.

특히 “노동개혁”과 테러방지법 등 민주적 권리 침해에 반대하는 등 운동의 요구를 대변해 지지율이 확연히 상승세를 탔다. 정의당은 평균 3백만 원 월급 시대를 만들겠다며 임금과 복지 향상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지역구에선 심상정 대표(경기 일산 고양갑)와 노회찬 전 대표(경남 창원성산)가 당선이 유력하다. 비례에선 당초 2~3명이 목표였는데, 지금은 4~5명으로 기대치가 올랐다.

비례 2명을 포함해 총 11명이 출마한 노동당은 기본소득 30만 원 지급, 최저임금 1만 원 인상 같은 핵심 정책을 부각시키고 있다. 노동당은 이를 위해 재벌 증세를 하자고 주장한다. 세월호 참사 직후 “가만히 있으라” 행진을 주도해 운동 건설에 일조한 용혜인 씨와 알바노조 초대위원장이기도 한 구교현 당 대표가 비례 후보로 나섰다.

진보당을 주도한 자민통계 일부는 총선을 앞두고 민중연합당을 건설했다. 민중연합당의 창당과 총선 출마는 박근혜의 종북몰이 마녀사냥이 제대로 안 먹혔음을 보여 주는 반증이기도 하다. 지역 활동 경험이 많은 민중연합당은 서울, 경기, 광주, 전남에 지역 후보가 많이 출마했다.

녹색당도 정당지지율 면에서 비교적 선전하는 듯하다. 김진숙 씨 같은 좌파적 노동운동가의 지지를 받기도 했다. 녹색당은 기본소득과 탈핵화 등을 부각시키고 있다. 기후정의운동에 앞장섰던 이유진 후보(서울 동작갑), 밀양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의 이계삼(비례) 후보 등이 주요 후보다.

이 정당들은 모두 민주노총의 총선 요구안을 지지했다. 민주노총 후보, 지지 후보를 포함해 네 정당 모두의 선전을 바란다.

아쉬움

물론 이 정당들이 노동계급의 진보·좌파적 가치를 대변하는 데서 아쉬움도 있다.

정의당 지도자들 일부는 태극기와 애국심 마케팅을 펴는 등 보수층을 지나치게 염두에 둔 선거운동을 펼쳤다. 이런 태도는 자칫 우파에게 자신을 심어줄 수 있다. 또한 인천에서 제주 강정마을 진압을 지휘한 윤종기와 단일화 경선을 하는 등 진보의 가치 기준에 어긋나는 후보 단일화를 추구한 것도 문제적이다.

민중연합당은 이주민, 성소수자 등 사회적 소수자 차별 극복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사회운동이 줄곧 요구해 온 차별금지법, 고용허가제 폐지 등이 빠져 있다. 역사적으로 스탈린주의 정당들은 이 쟁점들에서 약점을 보여 왔는데(가령 프랑스 공산당이 “위대한 프랑스” 운운하며 식민 정책과 이주자 차별을 정당화한 사례나 성소수자를 천대한 전통), 그런 전통과 연관이 없기를 바란다.

좌파적 개혁정당인 노동당의 경우, 이주민 공약에서(나쁘진 않지만) 고용허가제 폐지 문제 등을 누락시켜, 이 쟁점에서 주류 사민주의를 추구하는 정의당(고용허가제 폐지를 공약함)보다 취약한 것은 놀랍고 아쉽다.

녹색당의 기본소득 공약은 노동자들, 특히 청년 노동계급이 좋아할 만하지만, 이를 위한 재원 확보를 위해 보편 증세를 해야 한다는 공약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다.

※ 온라인 기사 ‘좌파는 정의당에 투표하지 말아야 하는가?’도 함께 읽어 보십시오. 

입력 2016-04-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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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파는 정의당에 투표하지 말아야 하는가?

노동운동 좌파의 일각에선 정의당에 대한 노동자연대의 관심과 개입, 지지 표명을 못마땅해 하기도 한다. 좌파도 아닌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좌파가 지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이 나라 노동자 대중의 정서와 의식을 무시하는 추상적 관점의 발로다. 투표로 세상을 바꿀 수 없음을 아는 우리 좌파들은 추상적 원칙보다는 선거에서 무엇이 노동자들의 의식과 향후 투쟁에 도움이 될까를 살펴 입장을 내놓아야 한다. 레닌이 말했듯이 우리는 "머릿속 청사진에 따라 그려낸 인간 재료가 아니라 우리 앞에 놓여진 구체적인 인간 재료, 동시에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물려준 인간 재료"와 관계를 맺을 수 있어야 한다.(《좌익 공산주의-유치증》)

정의당 핵심 지도자들의 이데올로기가 서유럽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과 유사한 것은 사실이다. 이 노선은 ‘계급에서 국민(민중)으로’, ‘체제 내 개혁’, ‘자국의 안보 지지’ 등의 특징을 보여 왔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지도자들이 집권 후에는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등(‘사회적 자유주의’) 노동계급을 배신한 것도 사실이다.

이런 이념 지향을 변호할 좌파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운동과 밀접하게 연관된 개혁주의 정당에 대해 판단할 때는 계급 기반과 강령, 구체적 계급 갈등 속에서의 구체적 실천 등을 종합해서 봐야 한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노동조합운동의 상층·전임 지도자들을 매개로 노동자 운동과 연관을 맺는다.

지난 2년간 세월호 투쟁과 노동자 투쟁 속에서 노동자와 청년·학생들은 자신들의 진보 염원을 정치적으로 표현할 수단으로서 정의당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정의당은 지난해 국회 안에서는 유일하게 박근혜의 ‘노동개혁’에 반대한 정당이었고, 민주노총의 총파업, 총궐기 투쟁을 지지하고 당원들을 동원해 참여해 왔다.

그래서 지난해 중반부터 급속히 늘어난 정의당 당원에는 조직 노동자들과 청년이 큰 비중을 차지한 것이다. 경남 창원성산 민주노총전략후보 선출을 위한 민주노총 경선에서도 정의당 노회찬 후보가 근소하게 앞설 수 있었던 배경이다. 개혁 염원 대중을 설득하려는 좌파라면 국회에서 주류 정당들만 날뛰는 꼴을 보고 싶어하지 않는 노동자들의 심정에도 공감할 줄 알아야 한다.

물론 정의당 지도자들 일부가 선거에서 태극기 마케팅을 하고 지방경찰청장 출신 더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하는 것은 메스꺼운 일들이다.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면서도 그 당 지도자들이 민주노총에게 사회적 합의주의를 주문해 온 것도 문제다. 노동자연대는 이런 일들에 대한 비판을 유보한 적이 없다.

노동자연대는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에서도 그 당의 좌파를 지지했고 온건 개혁주의 후보들이 유리하게 된 경선 결과를 비판했다. 개혁주의 정당이 노동운동과 맺는 모순된 관계 때문에 단지 정의당의 우경화만 폭로하려고 하면 안 되고, 당내 좌파들을 지지하는 등 개입해서 우경화를 막으려고 하는 것이 노동운동 전체에도 이로울 것이다.

물론 정의당의 이런 온건함 때문에 더 전투적인 노동자들은 노동당 등에도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러나 좌파는 정의당도 총선 지지 정당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 이것은 정의당의 부상을 통해 진보 염원을 현실화해 보려는 노동자들과의 소통과 연대를 위함이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의 선전은 적지 않은 조직 노동자들에게 박근혜와 맞서 싸울 자신감을 줄 것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은 노동계급 자신의 의식과 조직 성장의 산물이다. 그 안에서 분투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2016년 4월 9일
김문성(〈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팀을 대변하여)

입력 2016-04-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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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보건의료 정책 평가

진정성 없는 더민주당, 좀 더 분발해야 할 정의당

장호종

새누리당의 보건의료 공약을 평가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을 듯하다. 박근혜 정부가 잘 보여 줬듯이, 그런 약속한 적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거나 지키지도 않고 지켰다고 우길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굳이 의미 있는 공약을 찾아내라면 대학병원까지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확대한 정책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는 이미 법 제정 등이 완료돼 기정사실화된 것을 공약에 포함시킨 것일 뿐이다. 그나마 지난해 메르스 사태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진지하게 논의도 하지 않던 제도를 부랴부랴 만든 것이라 여기저기 구멍이 많다.(이에 대해서는 <노동자 연대> 169호 온라인 기사 ‘간호간병 통합서비스 확대 실시 - 병원 노동자 노동조건 개선 함께 이뤄져야’를 보시오.)

오히려 새누리당은 선거 직후에라도 19대 국회를 다시 열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을 강행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뿐 아니라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민영화하는 지렛대로 쓰일 악법이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해부터 이 법 통과를 그토록 강조하는 까닭이다.

ⓒ조승진

그런데 더민주당은 “의료영리화”를 막겠다면서도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고 있다. 총선 공약에서도 “정부가 추진하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서 보건의료 분야 등 공공성이 강조되는 분야는 대상에서 제외”하겠다고만 밝혔다. 물론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보건의료를 제외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으므로 합의가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 등으로(심지어 법 취지와 상반되는) 의료 민영화를 추진해 온 박근혜 정부의 스타일을 고려하면 여야 합의로 일단 통과시킨 뒤 꼼수를 쓰려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게다가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의료뿐 아니라 교육, 운수 등 공공서비스에 포괄적으로 악영향을 줄 수 있는 법이다. 따라서 더민주당의 조건부 통과 입장은 뻔히 알면서 뒤통수 맞는 시늉하기로 끝날 공산이 크다. 이들에게 의존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더민주당 2018년까지 “모든 병원에서 간병서비스 제공을 의무화”하겠다고 했는데, 이를 위해 필요한 재정 규모나 인력 충원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고 있다. 무엇보다 전 건강보험공단 이사장 김종대를 보건 특보로 임명한 것에서 보듯 더민주당의 의료 공공성 확대 공약은 일관성이 없다. 김종대는 이명박 정부 시절 인수위에 참가해 각종 의료 민영화 정책을 입안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한국 보건의료의 민낯

한편, 진보·좌파정당인 정의당은 “메르스 참사로 드러난 대한민국 보건의료의 민낯”을 뜯어고치겠다며 크게 세 가지 공약을 제시했다.

첫째, 의료 공공성 확대다. 이는 당연하고도 절박한 요구다. 민간병원 위주의 의료 체계 하에서는 돈벌이를 위한 과잉진료가 판을 치는 한편, 정작 필요한 사람들은 의료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건강보험 제도가 있다지만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는 비보험(비급여) 진료를 근본에서 막을 길이 없다. 많이 개선됐다지만 여전히 병원비에 주저앉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따라서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영리병원 허용 등 모든 의료영리화 정책을 중단”하고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을 강화하고 공공의료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정의당의 공약은 지지할 만하다. 보건의료 인력을 OECD 평균 수준으로 늘리고 “공공보건의료에 종사할 수 있는 인력을 양성”하도록 한 정책도 꼭 필요한 일이다. 정의당은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원청, 발주처가 재해 및 재난의 실질적인 책임을 질 수 있도록 하는 기업살인법”도 추진하려 한다.

△민간 병원 중심의 의료 체계를 공공병원 중심 체계로 바꿔야 한다. ⓒ사진 출처 정의당

다만, ”공공의료 인프라 구축”이 단지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으로 제한된 것은 아쉽다. 진보적 보건의료 운동의 오래된 요구는 공공의료기관을 대폭 확충해 민간병원 중심의 체계를 장차 공적 의료체계로 바꾸자는 것이었다.

정의당의 이번 총선 공약은 ‘민간의료기관의 공공성 강화’에 머무는 듯하다. 옛 민주노동당이 ‘도시형 보건지소 확충’ 등 급진적 개혁 과제를 제시했던 것에 견줘 후퇴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는 공공병상 비율을 현재의 11퍼센트에서 30퍼센트로 늘리겠다는 노동당의 공약이 더 진보적이다.

둘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및 건강불평등 해소’다. 1인당 진료비를 연간 1백만 원으로 제한하고(나머지는 정부가 지원), 15세 이하 아동 입원비를 1백 퍼센트 보장하겠다고 한다. 이 점에서도 정의당의 공약이 더민주당의 공약보다 낫다. 하지만 수많은 진보 염원 대중이 지지해 온 ‘무상의료’에 미치지 못하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

셋째 공약은 ‘공정한 보험료 체계’다. 핵심은 지역 가입자들의 과도한 부담을 덜고, 고소득자들의 보험료를 인상하는 것이다. 기업주가 보험료의 절반을 부담하도록 한 직장 가입자와 달리 지역 가입자들은 보험료를 온전히 자기가 내도록 돼 있다. 이는 경제가 호황이던 시절 기업주들이 더 많은 노동자들을 고용하려고 받아들인 조처였다. 게다가 지역 가입자들의 경우 소득이 제대로 파악되지 않다보니(이는 정부의 의도적 책임 방기 탓이다) 재산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한다. 그래서 일부 노동자들의 경우, 퇴직 후 소득이 전혀 없는데도 집과 차가 있다는 이유로 고액의 보험료를 내기도 한다. 반면, 금융소득 등에는 보험료가 거의 부과되지 않고, 의사·변호사 등 일부 고소득 자영업자들은 이명박처럼 직장 가입자로 위장해 소액의 보험료만 내기도 한다. 따라서 이런 보험료 체계는 크게 개선될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이 일관되게 노동자 서민에게 이익이 되려면 단지 부과 대상을 바꾸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현행 건강보험 제도의 상당 부분을 뜯어고쳐야 하는데 정의당이 그런 대안을 내놓지 못한 것은 아쉽다.

소득 중심의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 대해

 

정의당의 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에는 몇 가지 약점이 있다. 먼저 보험료 부과 대상을 ‘소득’으로만 일원화하려다 보면 심각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 재산은 보험료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는데 평범한 사람들의 아파트 한 채와 기업주·부자들의 재산(수백 채의 고가 주택, 수만 평의 땅 등)에는 질적인 차이가 있다. 전자의 경우 부과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옳지만 이를 위해 후자에 면제 혜택을 주는 것은 문제다. 이 점에서 보면 더민주당이 1가구 1주택의 경우 보험료 부과를 면제하겠다고 한 방식이 좀더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렇더라도 지방 소도시의 작은 아파트 한 채와 서울 한강변의 대궐 같은 빌라 사이의 차이를 반영하지는 못하겠지만 말이다.

다음으로 정의당이 추진하는 부과체계 개편에 따르면, 소득 상위 16.7퍼센트는 건강보험료가 6만 8천 원가량 오른다. 그런데 이 중에는 진짜 부자들도 있지만 그들과는 질적으로 다른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들도 포함될 듯하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15년 4사분기를 기준으로 상위 10퍼센트에 속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1천20만 원인데, 최상위로 갈수록 소득이 월등히 높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대기업에서 일하는 정규직 노동자 중 일부도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또, 상위 10퍼센트 이하 20퍼센트 이상에 속하는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7백만 원가량 되는데 여기에는 어지간한 맞벌이 가구도 상당수 포함될 것이다. 이들에게 “고소득자”, “무임승차”라는 딱지를 붙여 보험료를 더 내라고 하는 것은 그다지 공정해 보이지 않는다.

보험료 상한제(소득 상한제) 덕분에 연봉이 수십억 원씩 하는 대기업 CEO들은 특혜를 누리고 있고, 기업주들의 보험료 부담은 여전히 OECD 최하위 수준인데 그 책임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정부의 지원을 늘리고 소득 상한제를 폐지하는 등 기업주·부자 들의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 옳다.

입력 2016-04-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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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 평가 논쟁

20대 총선에서 노동계급은 답보했는가?

김문성

박근혜는 총선 직후, “어려움이 있지만 노동개혁이 꼭 이루어져야 한다는 신념 하에 … 적극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기 위해 …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다.” 경제 위기 때문에 자본가들을 위한 노동개혁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런 식의 막무가내 화법이, 총선 참패로 만천하에 확인된 정치 위기에 대한 박근혜식 대처법일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의 “노동개혁” 호소는 총선 참패 전과 총선 후의 맥락이 같지는 않다. 당장 악법들 통과에 나서야 할 새누리당 의석 수가 과반이 안 될 뿐 아니라, 그에 대한 대중의 반감과 분노도 더 분명하다. 박근혜가 총선 참패 결과를 인정하지 않으려 하자, 선거 일주일 뒤 여론조사에서는 박근혜의 국정수행 지지도와 새누리당 지지율이 모두 취임 이래 최저로 떨어졌다.

총선에서 의미 있는 진전을 이룬 조직 노동계급의 자신감도 좀 더 고무될 것으로 보는 것이 마땅한 이유다. 20대 총선은 명백한 박근혜 정부 심판 선거였고, 지난 3년 동안 박근혜에 맞서 가장 치열하게 싸우며 분노를 결집해 온 것이 바로 노동운동이기 때문이다.

박근혜 정부의 참패에 영향을 미친 요인들을 추리자면, 대체로 박정희 향수를 무색하게 만든 경제 불황, 박근혜의 불통 통치 스타일,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그의 사악함, 노동계급에 경제 위기 고통을 전가하려는 “노동개혁” 시도 등일 것이다.

노동자 투쟁은 이 요인들에 직접·간접으로 영향을 미치며 박근혜에 불리한 요인들이 숙성하는 데에, 특히 노동계급의 정치적 표현 욕구에 영향을 미쳤다. 여론조사는 늘 부정확성을 안고 있지만 지지율 곡선의 상향, 하향 추세를 비교 검토함으로써 시간적 추세를 보는 데는 유용할 수 있다. 여러 기관의 박근혜 국정수행 지지도 조사 추이가 그렇다. 취임 후 첫 위기를 겪은 것은 바로 민영화에 반대하는 철도노조 파업 때였다. 그다음이 세월호 참사 때였고, ‘성완종 리스트’로 널리 알려진 청와대 측근들의 부패 의혹 파동과 공천 파동 등으로 이어졌다.

즉, 박근혜 정치 위기의 진행 방향은 박근혜 지지층 밖에서 시작돼 안으로 번지는 식이었다. 따라서 노동자 투쟁을 유일하거나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보지 않는다 해도 박근혜 심판 정서의 확산에서 주요한 요인이었음을 추론할 수 있다. 노동자 투쟁 외의 요인으로는 단연 세월호 참사를 들 수 있다.

노동계급 정치세력의 재가동

박근혜 지지 하락은 전국적 현상이었다. 총선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단지 수도권에서만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니다. 텃밭인 영남의 핵심 도시들에서도 큰 타격을 입었다. “진박”을 대거 공천한 대구에서 전체 의석의 3분의 1(4석)을, 울산에서는 절반(3석)을 잃었다. 부산에서도 3분의 1 의석(6석)이 더민주당(5석)과 무소속이다. 정당 득표를 봐도 새누리당은 2014년 지방선거보다 대구에서 14만 표, 부산에서 27만 표, 울산에서 8만 표가 줄었다.(세 곳 모두 투표자 수는 늘었다.) 부산과 울산에서 새누리당 정당 득표는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을 합친 것보다도 적다.

따라서 “영남 노동벨트”(특히, 울산과 창원)에서 민주노총 전략후보들이 큰 다수 득표로 당선하고 경주 등지에서 예상보다 선전한 것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진이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전국적 박근혜 심판이라는 맥락 속에서 이뤄졌음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영남 노동벨트에서 새누리당 후보는 모두 득표가 줄었고, 민주노총 전략 후보들의 표는 비약적으로 늘었다. 울산 북구의 윤종오 당선인은 자신이 출마해 낙선한 2014년 지방선거(북구청장)보다 이번에 2만 2천여 표를 더 얻었다. 2년 전 새정치민주연합 후보의 표는 9천4백여 표였고, 이번에 새누리당 표는 그때보다 5백 표 줄었고, 투표자 수는 1만 2천여 명 늘었다. 대강 말해, 윤 당선인이 이 표들을 모두 흡수한 셈이다.

울산 동구의 김종훈 당선인도 자신이 동구청장으로 출마해 4천 표차로 낙선한 2014년 선거보다 이번에 2만 표를 더 얻었다. 2년 전 노동당 후보는 4천3백 표 정도를 얻었고, 이번 선거 투표자 수는 그때보다 8천여 명 늘었고, 새누리당 후보는 이번에 7천 표 줄었다(민주당 계열의 야당 표는 2년 전과 비슷함). 그러므로 김종훈 당선인도 대강 말해 이들을 모두 가져온 것이다.

한마디로 울산에선 노동계 후보에게 대단한 표 집중이 일어난 것이다.

경남 창원성산의 노회찬 당선인은 2012년 총선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얻은 표를 더한 것보다 7천 표를 더 얻었다. 2012년총선에는 자본주의 야당(국민의당) 후보가 없었는데, 이번에 국민의당 후보가 1만 표가량 득표했고, 새누리당 강기윤의 표가 4천 표 준 것을 고려하면, 늘어난 투표자(약 1만 4천 표)의 대다수를 노회찬 당선인이 흡수했음이 분명하다.

덧붙여, 정의당 심상정 대표가 당선한 경기 고양시 덕양구도 서울로 출퇴근하는 노동자들(주로 사무직인 조직 노동자들이 많이 거주함)이 많은 선거구다. 금속노조 실세 출신인 심 대표 자신도 민주노총 상근간부층 기반을 많이 확보하고 있고, 선거운동에서 ‘노동개악’ 저지를 강조했다. 심 대표는 더민주당과 후보 단일화를 하지 않고도 야권단일후보였던 4년 전보다 표가 늘어(2만 7천 표). 새누리당을 크게 눌렀다.

민주노총 전략후보들뿐 아니라 진보·좌파 정당과 후보들 수십 명도 박근혜의 ‘노동개악’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걸고 지지를 모았다. 그 결과, 민주노총이 정당투표 지지 정당으로 공지한 진보·좌파 정당 4당은 합쳐서 2백13만 표나 얻어 냈다. 이는 지금과 같은 4개 진보 · 좌파 정당 구도로 치른 2014년 지방선거에서 네 당 광역비례 득표의 총합(2백23만 표)애 근접한 수치다.

욕심에 못 미칠 수도 있고, 그새 유권자가 늘어 득표율로 치면 조금 더 낮아진 걸로 나타나 아쉬울 수도 있다. 정치 경험이 적은 청년들이 특히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아닌 총선이라는 점(전국적 성격이 더 강하다), 지난 2~3년간 진보·좌파 정치의 인지도와 관심도가 낮아져 올해 초에만 해도 여론조사에서 지지율이 5퍼센트 미만에 불과했음을 감안해야 한다.

그 점에서 결과를 선거 전 현실적 예상치와 비교해야지, 선거 전에는 기대도 안 하다가 ‘교섭단체도 못 됐느니’ 하는 비현실적이거나 과도한 기준을 들이밀며 냉소하는 것은 옳지도, 솔직하지도 않은 태도다. 그렇게 조직 노동계급의 아래로부터의 투쟁 능력도, 정치적 표현 능력도 평가절하하는 태도가 도대체 무엇에 보탬이 될까 하는 점에도 생각이 미쳐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곳곳에서 노동자들의 계급 투표가 위력을 발휘했다. 노동운동은 고립돼 있기는커녕 (당선한 영남 노동벨트 전략 후보들처럼) 일정한 조건이 되면 지역구 선거에서도 막강한 흡인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줬다.

따라서 이번 총선에 ‘노동자 정치가 부재’했다거나 ‘진보가 실패했다’고 보는 것은 억지로 현실에 눈 감지 않고서는 내놓기 힘든 ‘분석’일 것이다.

주류 야당

이렇게 전체 그림을 그리면, 더민주당이 정당 득표에서 3등을 하고 전통적 지역 기반이던 호남에서 참패를 당하고도 국회 1당이 되는 역설적 어부지리를 얻고, 호남 밖 지역구에서는 단 두 석밖에 건지지 못한 국민의당이 정당 득표에서는 2위를 한 또 다른 역설을 해석하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다. 많은 유권자들이 지역구에서 반박근혜 심판 투표를 했고(당선 가능한 비새누리 후보에게 표 몰아주기), 적잖은 야권지지층에서 (호남과 정당득표에서) 더민주당에게 불신을 나타냈다. 두 부르주아 야당이 총선에서 우클릭 경쟁을 했지만, 선거 결과를 전반적인 사회 보수화의 결과처럼 보거나, ‘보수 양당 체제가 보수 3당체제로 바뀌었을 뿐’이라는 식의 현상적인 분석은 진정한 객관적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두 부르주아 야당은 질질 끄는 세계경제 위기 속에서 진행되는 국제적인 주류 정치 우경화 흐름에 영합하겠지만, 그 과정이 직선이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적인 야권 지지층의 기대와, 지배계급에게서 수권 능력을 인정받으려는 우클릭 압력 사이에서(특히, 대선을 염두에 두고 눈치 보기를 하면서) 때때로 모순과 균열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의 수위가 좀 더 올라가고 그에 따라 정치적으로 더 전진하려는 시도가 진행된다면 이런 모순과 균열은 아마도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문제의 근원이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의 확산과 심판 정서가 커져 온 것에 있고 그 때문에 결국 보수층에도 균열이 생겨 새누리당 지지층의 일부 이탈을 막지 못했다는 점에 비춰 보면, 국민의당 지지표에 새누리당 지지층이 얼마나 옮겨갔나 하는 따위의 물음은 부차적인 쟁점이다.

또한 이런 관점에서 보면, 당선권에서 경쟁할 수준까지는 못 됐던 진보 · 좌파 후보들의 지지율이 기대에 못 미쳤던 것도 설명할 수 있다. 소선거구제와 승자독식 제도 때문에, 야권단일화가 없어도 투표 때는 양강으로 투표가 몰리는 효과가 나는 것이다.

종합하면, 이번 총선은 박근혜 정부의 사악한 통치 행태가 전국적 규모로 노동자 대중의 다수에게 거부당한 선거였다. 조직노동자 투쟁의 요구와 대의를 정치적으로 표현하려 했던 민주노총, 피억압 대중을 대변하려 한 진보·좌파 정치세력들의 단결된 선거 도전은 박근혜를 향한 대중적 분노의 주요한(유일한 것은 아니지만) 구성요소였다.

정의당

한편, 진보·좌파 진영의 일부는 이번에 노동계급이 선거에서 전진하는 과정에서 큰 수혜를 입은 세력이 정의당인 점을 문제 삼는다. 정의당의 강령이나 야권연대 시도, 친노 참여계를 포함하고 있다는 점 등. 물론 정치적 경험이 충분하지 않아서 조급한 경향이 있는 일부 좌파적 청년들이나 산업현장에서의 충돌 문제에 더 전투적인 노동자들이 개혁주의가 노골적인 정의당이 진보 ·좌파 정치 당선자의 다수를 차지한 것에 불만을 가질 수도 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정의당의 강령과 지도자들이 지지하는 이데올로기가 주류 사회민주주의인 것은 사실이다. 그 당 내에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더민주당과의 통합을 주장하는 경향도 있다. 안보 정책에서도 충분하게 진보적이지 않다. 또한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보다는 제도권 ‘정치’를 더 강조한다.

그럼에도 이 당의 주요 계급 기반은 노동계급에 있다. 이 당의 리더십 배경, 당원 구성 등이 모두 그렇다. 이 당의 지도자들은 또한, 자신들이 더 안정적인 성장 기반을 갖추려면 조직 노동운동의 물질적 · 정치적 지지를 충분히 받아야 함을 이해한다.(참여계 리더들의 영향력이 최근에 두드러지지 않는 것도 이와 연관 있다고 볼 수 있다.) 노회찬 전 당대표가 경남 창원성산에 출마해 민주노총 전략 후보 경선까지 치르면서 노동자들에게 지지를 받으려 한 것도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의당이 조직 노동자들에게서 더 많은 지지를 받는 것은 노동자들의 정치의식이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에 기초해 평가해야 한다. 그렇게 볼 때, 정의당이 약진한 것은 앞서 살펴 봤듯이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진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물론 노동자 투쟁이 아직 충분하게 고양되지 못한 상황이라 정의당 안에서도 좌파가 약진하거나, 정의당보다 더 급진적인 좌파정당들도 함께 성장하는 수준에까지는 아직 이르지 못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정당득표에서 정의당이 크게 앞선 것은 상대적으로 당선가능성이 더 높은 당으로 표가 몰린 결과로 해석된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에서 박근혜와 집권여당의 사악한 대응을 지켜보며 치를 떨고, ‘노동개혁’ 같은 박근혜의 친기업 정책으로는 좋은 일자리를 보장받기 어렵다고 본 청년들도 급진화의 첫 표현으로 정의당에 투표했을 것이다. 정치와 투쟁 경험이 아직 부족한 새세대 진보 청년들에게는 그나마 언론 등에서 다뤄지고 유명 인사도 있는 정의당에게 표를 던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정리하면, 노동계급의 정서가 다시 활성화하면서 주류 개혁주의 정치가 일차적인 수혜자가 된 상황으로 볼 수 있다. <노동자 연대>는 이런 계급세력 관계 분석에 기초해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의 선거적 성공을 예측한 것이다.

따라서 대중의 실천과 의식을 그 흐름과 맥락 속에서 파악하지 않고서 지도자들의 온건한 이데올로기만 보고서 평가하려는 것은 잘못이다. 대중 투쟁으로써 지금보다 대중의 자신감과 의식이 전진할 때, 정치 지형도 더 한층 좌경화될 수 있다. 그러려면, 노동자들이 이번 총선으로 고무된 것을 이용해 더 투쟁에 나서도록 독려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좌파적인 관점일 것이다.

기회주의

노동자들이 반기는 선거 결과를 어둡게 평가하고 정의당의 약진을 노동계급의 정치와 무관한 것으로 보는 이들은 이런 일을 잘 할 수가 없을 것이다. 초좌파적이거나 아니면 기회주의적인 언사로 (진보 · 좌파 정당 가운데 가장 많은 정당득표를 한) 정의당의 약진과 “영남 벨트” 조직 노동자들의 계급 투표 등을 무시함으로써 결국은 노동계급의 정치적 전진까지도 없던 일 취급하기 때문이다.(왜 전진인가 하는 점은 앞에서 다뤘으므로 다시 다루진 않겠다.)

이런 평가들에 따르면, 박근혜가 참패했지만, 야당은 우경화해서 어부지리를 얻은 것이고, 정의당의 득표도 민주당과 야권연대에 집착해 얻은 성과니 좌파적 결과라고 보기 힘들며, 나머지 좌파 정당들은 득표가 적었으니 노동 · 진보 정치가 전진한 것도 아니라는 식이다. 비관적 전망에 기회주의적이거나 아니면 종파적인 태도까지 더해,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이룬 노동 정치의 전진마저 없는 일처럼 취급하는 것이다.

이런 평가들을 읽다 보면, 과연 이번 총선이 우파가 패배한 선거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다. 우리가 서로 다른 세상에서 선거를 치른 것인가? 도대체 이런 평가로 지금 새누리당 안에서 내분 조짐이 생기고, 박근혜 지지율이 레임덕 수준으로 떨어지고, 우파 언론들이 청와대에 불만을 쏟아내는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까? 또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 집회의 활기(일주일 전 집회와 비교하면 더욱더 두드러진)를 이해할 수 있겠는가. 어떤 이들은 이 집회 참가자들이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몫으로 당선한 박주민 당선인에게 박수를 보낸 것조차 훈계하려고 한다.

요컨대, 이들의 선거 평가는, 정당 지도자들의 면면만 보고, 투표에 참가한 대중의 시각, 감정, 바람은 별로 고려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오만한 관점 때문에 이들은 개혁주의자들이 이끄는 운동 속에서 끈기 있게 그 대중과 대화하고 그들을 설득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는다. 급진적이고 초좌파적인 언사로 포장하지만, 사실은 기회주의적 회피에 불과한 이유다. 

입력 2016-04-23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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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비례대표 국회의원 당선인(이정미·김종대·추혜선·윤소하)

정선영

이정미 당선인

이정미 국회의원 당선인은 대학 2학년 때 중퇴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을 하다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대변인, 정의당 대변인, 부대표 등을 역임했다.

이 당선인은 자민통 계열의 인천연합 경향으로 알려져 있는데, 최근에는 주로 정의당 지도부의 입장을 대변하며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으로서의 성격을 강화해 왔다.

이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국민의당 후보가 그를 “공산주의자”라고 비난한 것에 대해 자신은 공산주의자가 아니고 민주주의와 인권이 지켜지지 않는 북한에 비판적이라는 취지의 답변을 했다.

이정미 당선인은 국회에서 제1호 법안으로 생활동반자법을 발의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법은 성소수자 커플이나 동거인 등도 가족으로 인정하게 하는 법안이다.

정의당 일각에서는 정의당이 노동운동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 당선인은 자신도 “사회운동을 노동운동으로 시작했다”며 노동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정당”이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추혜선 당선인

추혜선 당선인은 KBS노조와 SBS노조 간사를 거쳐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20년간 언론개혁 운동을 해 왔다. 그래서 언론계 노조들과 시민사회단체 내에서 발이 넓은 활동가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추 당선인은 박근혜 정부의 양심적 언론인에 대한 탄압에 맞서며 언론개혁에 앞장서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특히 1호 법안으로 정보통신인권법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정보기관이 테러방지법을 이용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에 제동을 걸겠다는 것이다.

방송 · 통신 · ICT 분야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도급과 재하도급 등 고용불안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래서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가 크다. 정의당 내 비례후보 경선 과정에서 희망연대노조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 명이 추 당선인을 지지하며 정의당에 집단 입당하기도 했다.

그런 기대와 요구를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회 김진혁 교육위원은 이렇게 표현했다. “방송통신 쪽에 비정규직들이 많은데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계약이 1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원청의 갑질에 반대하고 고용을 보장할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윤소하 당선인

윤소하 당선인은 목포와 호남 지역에서 30년간 활동했다. 광주 · 전남 진보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고, 현재 정의당 전남도당위원장이다.

윤 당선인은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활동하며 진보정치의 기반을 일궈 온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2010년 목포에서는 주민 1만 4백80명에게 서명을 받아 전국 최초로 주민발의 학교 무상급식조례를 제정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목포 8개 선거구 중 4곳에서 진보 후보가 당선되고 그 여세로 비례의원까지 당선했다. 이 과정을 주도한 윤 당선인은 당시의 성공 사례를 꾸준한 실천으로 진보 · 좌파 정치를 지역에서 뿌리내리게 한 대표적 성과로 꼽는다.

윤 당선인은 이번 총선에서 농민, 청년, 비정규직, 중소상인을 위한 법률 제정을 공약했다. 특히 식량자급률 목표치 법제화, 공익 농민 기본소득 지급 등 농민 공약을 강조했다. 원하청연대보증법을 도입해 원청 기업도 하청 노동자의 임금 체불에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도 공약했다. ‘단가 후려치기 방지법’ 제정 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상생을 도모하겠다고도 밝혔다.

김종대 당선인

김영익

김종대 당선인은 오랫동안 안보 전문지 편집장을 맡아 온 국방 · 안보 전문가다. 1992년부터 군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비서관,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하에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이런 배경 때문인지 김 당선인은 여러 시민단체들과도 연을 맺는 한편, 군 장성 35명을 만나고 취재해 《서해전쟁》 같은 책을 낼 정도로 군부에도 발이 넓다.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임동원, 이종석 등 남북화해협력 정책의 주요 이데올로그들이자 전직 정부 고위 관리 출신들이 그를 지지했다.

김 당선인은 그동안 여러 책과 글을 내면서 사드 배치, 북한 ‘위협’ 과장, 한미 동맹 일변도의 외교 등 박근혜 정부의 외교 · 안보 정책을 계속 비판해 왔다. 무기 도입 비리 등 군부 내 부정부패 문제도 분석하고 폭로해 왔다. 이런 점들이 그가 비례 상위 순번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정의당 지도부는 지난해 8월 정의당이 국가 안보 문제에도 관심이 있음을 보여 줘 외연을 넓히기 위해 김 당선인을 영입했다.

그러나 김 당선인이 박근혜 정부의 “가짜 안보”와 다른 “진짜 안보”를 강조하고 ‘노무현의 자주국방론에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있다’고 주장하는 건 우려가 되는 지점이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자국 안보 지지’를 강조하고 이 방면에서 유능함을 입증하려 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음을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제국주의적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자국 지배계급을 편드는 쪽으로 나아가는 문제이다.

노무현의 자주국방론이 현실에서는 친미로 기울고 대대적 군비 확충으로 나아갔음을 감안할 때, 김 당선인이 의정 활동에서 자주국방론의 한계를 근본에서 극복할지도 두고 볼 일이다.

입력 2016-04-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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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심상정 당선인

진보적 ‘국가’를 추구하는 사회민주주의 정치인

장호종

심상정 당선인은 노회찬 당선인과 함께 진보·좌파 정당 소속으로는 최초로 3선 국회의원이 됐다. 심 당선인은 1980년대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래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하기까지 전노협, 금속연맹 등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왔다.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까지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지냈다.

심 당선인은 한국 노동자 정당의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의원 활동 초기에 국회 재경위원회와 운영위원회에서 활동하며 그동안 상당 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던 정부 예결산, 재정 운용, 각종 통상 협정 등을 폭로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이런 기여는 진보적 복지 정책을 입안하는 데서도 긴요한 것들이었다. 그의 보좌관이었던 오건호 씨는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재정 문제를 다룬 책을 펴냈고, 노동운동 내에서 복지·재정 전문가로 자리매김했다.(물론 오건호의 주장과 실천에는 약점과 비판할 점이 없지 않다.)

심 당선인은 19대 국회에서도 부르주아 정치인들의 위선을 들춰내며 노동자들의 심정을 대변하는 연설로 인기를 얻었다.

한편, 2007년 대선 직후 민주노동당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심 당선인은 당 혁신 방안으로 네 가지를 제기한 바 있다. ‘민주노총 당’, ‘운동권 당’, ‘종북당’, ‘반대 정당’ 이미지를 버리겠다는 것이었다. 2013에 펴낸 책(《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 2013)에서도 이 문제의식은 지속되고 있다.

물론 노동운동에 기반을 둔 진보 정치인으로서 심 당선인은 ‘노동’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복지국가 논의에서도 노동시장에서의 분배(임금)를 빼놓고 재분배(복지)만 얘기하는 것에는 한계가 명백하다고 지적한다.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시민으로 에두르는 것도 적절치 않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민주노총 당’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심 당선인의 주장이 단순히 노동 기반을 축소시키자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민주노총의 입장에 '끌려다니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라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사회민주주의가 정치와 경제의 분업을 특징으로 하는 것과 관계 있는 견해다. 노동조합은 어쨌든 노동자들의 이익을 지키는 것을 최우선 임무로 할 수밖에 없지만 정당은 (노동자 정당일지라도) 그럴 수만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이는 심 당선인이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가 노동자 정당이 단지 노동자들의 이익을 옹호할 뿐 아니라,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상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심 당선인이 진보·좌파 정당이 ‘종북당’ 이미지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기한 것도 사실 진정한 쟁점은 한국 국가에 대해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이다.

심 당선인은 현재 진보·좌파 정당의 지도자들 중 한국 국가에 대한 존중과 충성 입장을 가장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헌법 내 진보”론이 바로 그것이다.

“기본적으로 정치라는 행위가 국민국가라는 공동체 안에서 기능하는 것이라면, 그 공동체의 가장 기본 의식으로서의 애국심을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 5월의 광주 시민들도 6월 항쟁에 참여한 시민들도 모두 자발적으로 애국가를 불렀습니다. 어릴 때 학교 운동장에서 애국가를 부르면서 행복했던 추억이 꽤 있습니다.”(앞의 책)

박근혜 정부를 ‘안보 무능’ 정부라고 비판하는 것이나 이번 총선 홍보물에 실린 그의 군복 입은 사진도 그 연장선이다. 앞서 인용한 책에는 북한 비판은 있어도 미국·일본·남한 국가의 대북 압박 문제는 한마디 언급도 없다.

지난해 공무원연금 개악 당시에도 정의당은 여야가 합의한 개악안을 지지했는데, ‘국익’을 고려하면 정부재정 적자를 줄이는 것도 중요한 과제이기 때문이었다. “[공무원연금 개악으로 생길] 재정 절감분은 향후 70년간 총 3백33조 원에 달할 전망으로 기금 불안정성 문제 역시 상당 부분 해소[됐다].”(정의당 정책위원회)

러시아의 혁명가 레닌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자본주의적 노동자 정당’이라고 했는데 심 당선자가 추구하는 길이 어떤 모순에 놓일지를 잘 보여 준다. 자본주의 체제는 노동자 착취에 기반하고 있으므로 자본주의 국가의 이익은 근본적으로 노동자들의 이익과 충돌한다는 점에서 오는 모순이다. 심 당선인이 모델로 제시하는 전후 서구 복지국가들의 경험에서 이런 모순이 비교적 두드러져 보이지 않았던 것은 장기 호황 덕분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서구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은 신자유주의 정책을 추진해 환멸을 자아내는 것을 보면, 그 길을 그대로 좇는 것은 사회 개혁을 이루는 길이 아니다.

심 당선인이 지향하는 사회민주주의가 스웨덴 같은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해서라도 그것을 가능케 한 노동자 투쟁을 고무할 좌파적 방향에서 멀어져서는 안 된다.

입력 2016-04-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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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오·김종훈·노회찬 당선인

계급투표에 힘입어 당선한 민주노총 전략후보들

김문성

노동자 투쟁을 위한 우렁찬 스피커가 되기를 바란다

공직 선거에서 진보·좌파 정치인들이 처음 전국적 주목을 받은 것은 1998년이다. 그해 지방선거에서 무소속 김창현, 조승수 후보가 각각 울산 동구청장, 북구청장에 당선했다. “IMF 위기” 한복판에서 정리해고 등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이 곳곳에서 치열할 때였다.

민주노동당이 생겨서 치른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도 울산 북구와 동구, 경남 창원은(경남 거제를 포함해) 노동계의 핵심 선거구들이었다. 특징은 제조업 노동운동이 강력한 곳들이라는 점이다. 첫 지역구 국회의원도 이곳에서 나왔다.(울산 북구, 경남 창원을) 창원에서 민주노동당 권영길 전 대표는 노동계 최초로 지역구 재선을 이뤘다. 이곳들이 “영남 노동(진보)벨트”로 불리게 된 이유다.

그래도 이 세 곳에서 동시에 노동계 국회의원이 나온 적은 없었다. 울산 동구에서 노동계 인사들은 구청장은 여러 번 했지만 국회의원은 하지 못했다. 따라서 이 세 곳의 동시 당선은 상당히 의미 있는 진전이다.

민주노총이 결정적 구실을 했다는 점이 더 상징적이다. 민주노총은 세 선거구에서 진보·좌파 후보들의 단일화를 이뤄냈고, 계급투표를 적극 조직했다. 민주노총과 금속노조의 적극적 지지 속에서 세 당선자 모두 새누리당이 조장한 색깔론을 가뿐하게 이겨 냈다.

세 후보 모두 역대 최대인 5만~6만여 표를 얻었고, 새누리당 현역 의원보다 1만~2만여 표를 더 받았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과 함께 경제 위기 고통전가 반대에 앞장선 조직 노동계급이 공식 정치에도 일정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다. 이런 상징성 때문에 검찰은 투표 다음 날 울산 북구 당선자를 압수수색하는 등 두 당선자를 겨냥한 선거법 위반 수사를 시작했다.

세 당선자 모두 월등한 지지로 더민주당 후보가 사퇴하는 단일화를 했다. 이런 당선 과정이 대선을 앞두고 전략적 야권연대(연립정부 추구)로 이어져서는 곤란하다. 전략적 야권연대 노선은 투쟁을 자제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질 것이므로 진보·좌파 정치의 소생을 가능케 한 노동운동을 약화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의원직을 이용해 투쟁을 지원하고 연결하며, 그 요구와 대의를 대변하는 스피커 구실을 제대로 해야 한다.

△18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열린 20대 총선 전략후보 당선자 3인 합동 기자회견에서 정의당 노회찬 당선자(창원 성산), 최종진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무소속 윤종오(울산 북구), 김종훈(울산 동구) 당선자가 함께 손을 잡고 있다. ⓒ이미진

울산 북구 윤종오 당선인

윤종오 당선인은 2002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북구 구의원을 하기 시작해 울산시의원, 울산 북구청장 등을 두루 거치며 노동계 정치인으로 성장해 왔다. 이번 총선에서는 울산 북구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모바일 경선에서 정의당 조승수 후보를 누르고 단일후보가 됐다.

윤 당선인은 1987년 대투쟁 때부터 노동운동에 참여한 현대자동차 노동자다. 1997년 개악 노동법 날치기 저지 민주노총 파업 때는 현대차노조 조직실장으로서 매일 집회 사회를 봤다.

윤 당선인은 울산 동구에서 당선한 김종훈 당선인과 함께 지방의원으로서 정부의 공무원노조 탄압과 울산 건설플랜트 투쟁 탄압 등에 반대하는 입장을 냈다.

2010년 북구청장이 된 뒤에는 구청 소속 공무원들에게 공무원노조 가입을 독려하고 구청 비정규직들의 정규직 부분 전환 등을 이뤘다. 새누리당 출신 울산시장의 압력을 이겨 내고 초등학교 친환경 무상급식 실시를 관철해 냈다. 초중고 전면 실시를 못한 아쉬움을 초중고 무상급식법을 제정해 풀겠다고 공약했다. 울산의 현안인 월성 핵발전소 가동 중단 등 탈핵 입장도 분명하다.

윤 당선인은 노동자 국회의원임을 내세우며 노동 공약을 강조했고, 현대차노조와도 노동법 개악 저지 협약을 맺었다.

울산 동구 김종훈 당선인

김종훈 당선인은 2002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울산 동구 구의원을 하기 시작해 울산시의원을 거쳐 동구청장을 지냈다. 김 당선인도 이 시절에 진보 정치인다운 행보로 지지를 넓혀 왔다.

김 당선인은 울산대 학생운동가 시절, 현대중공업의 1989년 1백28일 파업에 연대 활동을 벌이다가 구속되기도 했다.

정부의 공무원노조 탄압과 건설플랜트 파업 탄압을 반대했음은 물론이고 미국의 이라크 침략 전쟁과 한국 정부의 파병에도 반대했다. 2003년 이라크 전쟁 개전 직전, 김 당선인은 이라크로 가서 전쟁 반대 활동을 벌이는 ‘인간 방패’ 활동을 민주노동당 이영순 전 의원 등과 함께 구상했었다고 한다. 구의원 시절에는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박일수 열사 투쟁 지원 과정에서 사측으로부터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

동구청장 시절에는 직접 관내를 돌며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기동 행정’을 펼쳐 주목을 받았다. 당시 북구청장(윤종오)과 연합하고 울산시와의 충돌을 불사해 초등학교 고학년 친환경 무상급식을 관철시켰다. 비정규노동센터도 설립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현대중공업노조가 주도한 노동후보 단일화(노동당 이갑용 후보와 경선)를 거친 김 당선인은 노동개악 저지 등 노동정치 실천을 강조해 왔다.

경남 창원성산 노회찬 당선인

진보·좌파 정치인으로는 첫 3선 의원이 된(심상정 정의당 대표와 함께) 노회찬 당선자는 대표적인 진보 정치인이다.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과 대변인 등을 지냈고, 진보신당 당대표와 정의당 당대표를 지냈다. 2010년에는 진보신당 소속으로 서울시장 선거에서 유일한 진보 후보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무소속 손석형 후보와 창원 민주노총 조합원 경선을 해 단일후보가 됐다.

노 당선인은 촌철살인이 담긴 재치 있는 언변으로 노동계급의 마음을 잘 대변한 것으로 유명하다. 민주노동당 의원 시절, 이라크 파병 반대, 한미FTA 반대 등에 앞장섰다. 2005년에는 삼성그룹과 검찰의 유착 사실이 적나라하게 담긴 ‘X파일’을 폭로했다. 이에 대한 정치 보복성 판결로 결국 2012년 재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원직을 빼앗겼다.

그러나 이번에 노 당선인은 노동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노동정치 1번지를 새누리당에게서 탈환함으로써 정치적 복권을 이뤄냈다. 이 성과를 이어 노동 정치가 전진하려면,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대응한 투쟁들이 더 활성화돼야 한다.

그런데 노 당선인은 최근 이런 방향과 배치되는 “진보정치의 세속화”를 주장해 왔다. 이상과 원칙만 앞세우지 말고 타협을 중시하는 개혁주의(‘현실주의’)를 솔직하게 추구하자는 것이다. 그가 ‘전략적 야권연대’ 노선 등에 이견이 없는 것도 그런 맥락일 것이다.

그러나 계급간 타협을 앞세울수록 (경제 위기 시대에는 더더욱) 노동정치는 운신의 폭이 좁아진다. 그런 정치는 노회찬 의원을 만들어 준 노동자들의 바람에 제대로 부합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버니 샌더스의 돌풍은 진보·좌파 정치가 의회 바깥의 운동과 적극 융합할 때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입력 2016-04-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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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결과가 보여 준 것

박근혜 정부의 참패, 노동계급(그리고 정의당)의 전진

김인식 (노동자연대 운영위원)

새누리당이 완패했다. 그동안 박근혜는 노동개혁 법안, 서비스산업 활성화 법안, 사이버 안보 법안들을 통과시키지 못하는 국회를 비난하며 국회 심판을 부르짖었다. 그러나 개표 결과가 명명백백하게 보여 주듯이, 정작 심판 당한 것은 박근혜 정부 자신이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이 일어났던 2004년 총선 이후 처음으로 제1당의 지위를 잃었다. 또, 2000년 총선 이후 16년 만에 여소야대 국회가 됐다. 지금 패닉 상태에 빠져 있는 새누리당을 보며 수많은 노동자들과 청년·학생·서민들이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있을 것이다.

당초 새누리당은 야권 분열 상황을 감안해 최대치 목표를 1백80석 달성으로 잡았다. 각종 여론조사 기관들도 새누리당이 분열한 야당들을 꺾고 2017년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높일 거라고 예측했다. 이 기대와 예측들은 모두 보기 좋게 빗나갔다.

새누리당의 정당 득표는 2012년 총선에 비해 무려 2백만 표 가까이 줄었다. 2012년 총선에서 새누리당은 9백82만 표를 얻은 데 반해, 이번 총선에서는 7백96만 표를 얻었다.

△고개숙인 새누리당 ⓒ제공 <민중의 소리>

새누리당의 절대 아성으로 불리던 서울 강남, 성남 분당, 영남이 흔들린 것도 의미심장하다. 서울 강남 3구 선거구 8곳 중 3곳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했다. 성남 분당구의 선거구 2곳에서도 새누리당이 패배했다. 대구에서는 야당과 야당 성향 무소속이 당선했고, 부산·울산·경남에서도 11명의 야권 후보가 당선했다.

새누리당의 주요 지지층 사이에서 이반이 일어난 것이다. 총선·대선에서 지배계급과 우파가 모두 일치 단결해 박근혜를 밀어줬던 2012년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철옹성 같던 박근혜의 우파적 기반에도 틈이 벌어졌다.

새누리당의 참패는 주로 박근혜 정부의 우파적 경제 정책에 대한 불만 때문인 듯하다. 가계 부채는 계속 기록을 경신하고, 청년 실업률은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하며, 소득 불평등도 OECD 최고 수준에 이르는 등 서민 경제에 대한 불만이 광범하게 존재한다.

새누리당의 패배는 경제에 대한 불만이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 안보 우려를 뒷전으로 밀어 냈음을 보여 준다. “새누리당의 형편없는 성적은 유권자들이 이전만큼 국가 안보 쟁점에 흔들리지 않음을 보여 준다.”(<뉴욕타임스>)

과거 선거 때 남북 대치 국면이 형성되면 우파는 대북 강경책을 펼쳐 흔히 선거를 자신들에게 유리하게 만들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북 제재와 개성공단 폐쇄 등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은 — 여론조사에서는 높은 지지를 받았지만 — 실제 선거에서는 대중의 표심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보다는 먹고사는 문제에 관한 불만과 불안감이 선거를 지배했다. 북한이나 ‘북풍’, ‘종북’ 이데올로기 등은 주요 선거 의제가 되지 못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박근혜 정부의 경제 정책에 따른 대중의 불만으로부터 반사이익을 거뒀다. 더민주당은 1백23석을 얻어 제1당이 됐다. 국민의당은 38석을 얻었다.

더민주당을 이끈 김종인은 보수적인 인물이다. 1980년 전두환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다. 노태우 정부에서도 중용됐다. 그리고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승리의 공신이기도 했다. 그런 그가 ‘경제 민주화’를 내세우며 박근혜 정부의 재벌 위주 경제 정책을 비판했다. 이런 포퓰리즘이 땅콩 회항, 롯데가(家) 경영권 분쟁 사태, 재벌 3세들의 슈퍼 갑질, 천문학적 사내유보금 등 재벌에 대한 국민적 반감과 맞물려 다소 이득을 본 듯하다.

그러나 더민주당은 제1당이 되기는 했지만 정당 득표 수(6백만여 표)2012년 총선(771만 표)보다 오히려 170만 표가량 줄었다. 3당이 된 국민의당의 득표 수(635만여 표)보다도 적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에 대한 지지가 크게 줄어든 덕분에 제1당이 됐다.

소프트웨어 사업가에서 정치인으로 변신한 억만장자 안철수는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의 ‘보수적 중도층’을 공략했다. 이를 통해 제3당으로 오를 수 있었다. 국민의당은 호남 지역에서 더민주당의 지위를 대체했지만, 수도권에서는 달랑 2석만 얻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의 계급적 성격을 봤을 때, 16년 만에 여소야대가 됐다고 해서 국회에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된다. 2004년 총선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의 전신)이 노무현 탄핵 반대 운동의 역풍을 맞으며 열린우리당이 단독으로 과반을 확보했지만, 그들은 개혁을 제공하지 않았다. 노무현 정부는 이라크에 파병했고 한미FTA 협상을 강행했다. 진정한 변화는 이들 자본주의 야당들로부터 독립적인,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진보·좌파 정당들의 성적

진보·좌파로 말하면, 사표 논리·압박에도 불구하고 꽤 좋은 성적을 거뒀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분열’로 새누리당이 대승할지 모른다는 커다란 위기감 때문에 야권 성향의 유권자들은 진보·좌파 후보들보다는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에 투표했다. 그 바람에 진보·좌파 정당들이 크게 압착을 당했다. 우리 진영은 모두 8석을 확보했다. 정의당이 6석을, 울산연합 계열(무소속)이 2석을 얻었다.

이를 두고 중도진보계 언론 <한겨레>는 ‘진보 정당의 위축이 두드러진다’거나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고 평가한다. 진보·좌파의 주장이 비현실적이라고 보고 선거 때마다 주로 민주당 내 ‘개혁파’를 지지해 온 <한겨레>답다. 또 다른 중도진보계 언론 <경항신문>도 그 비슷하게 평가한다. 그러나 진보·좌파 진영 일각에서도 진보·좌파 4당(정의당, 녹색당, 민중연합당, 노동당)의 의석 수와 정당 지지율이 2012년에 비해 적거나 낮다며 “저조한 성적”이라는 자학적 평가가 나온다.(상자 기사를 참조하시오.)

 울산·창원에서 노동자들에 의한 선거 돌파 지난 3년간 노동자들이 저항한 덕분이자 이후 또 다른 저항을 고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울산 동구 김종훈 당선인(왼쪽 두번째)과 울산 북구 윤종오 당선인(왼쪽 세번째). ⓒ제공 민주노총 울산본부

그러나 한국의 선거제도는 승자 독식 제도여서 의석 수의 변화만으로 평가하면 진보·좌파 정당의 지지 증감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그보다는 정당 득표 절대 수를 보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게 지지 추세를 확인할 수 있다.

진보·좌파 4당이 얻은 정당 득표 수는 2백13만 표가량이다. 지난 2014년 지방선거 때 네 정당이 얻은 광역 비례 정당 득표 합계(2백23만여 표)와 대략 비슷하다. 당시 지방선거에 이번 총선과 비슷하게 정의당, 진보당, 녹색당, 노동당이 출마했기 때문에 2012년 총선보다 비교하기가 더 적절하다. 이번 총선에서 더민주당이 우클릭 하고, 국민의당이 새누리당과 더민주당 사이에서 보수적 중도층에 구애하는 등 주류 정당들이 우경화하는 속에서도 2백만 명이 넘는 보통 사람들이 자본주의 야당이 아닌 진보·좌파 정당들을 지지했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진보·좌파 정당들은 두 자본주의 야당보다 훨씬 더 진보적이거나 좌파적인 개혁 공약들을 제시했다.

진보·좌파 4당 중 정의당의 성장이 특히 눈에 띈다. 1백72만 표(득표율 7.23퍼센트)를 획득했다. 2014년 지방선거(82만 표)와 비교해 2년 만에 곱절로 정당 득표가 늘었다. 게다가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이 야합해 비례대표 의석을 줄인 상황에서 정의당은 비례대표 4석과 지역구 2석을 합해 6석을 얻었다. 정의당의 지지 증대는 이미 지난해부터 정의당의 성장 가능성을 내다본 <노동자 연대> 신문의 분석이 옳았음을 보여 준다.

정의당에 투표한 층의 성격은 단순하지 않을 것이다. 새롭게 급진화하는 청년·대학생들이 정의당에 꽤 투표했을 수 있다. 투쟁성이 약화된 조직 노동자들은 투쟁이 버거우니 선거를 통해서 박근혜의 공격을 막아 보자는 생각에서 정의당에 투표했을 수 있다. 다른 한편, 새로 조직된 노동자 부문들(케이블·통신, 택배, 학교비정규직 등등)은 정의당에 투표하는 게 그 나름의 급진화와 투쟁성의 발로일 수 있다.

정의당의 성장 정의당은 2년 만에 곱절로 정당 득표가 늘었다. 정의당 노회찬 당선인. ⓒ출처 노회찬 페이스북

정의당의 강령은 서구의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비슷하다. 그래서 정의당은 “한국 자본주의의 민주적 개혁”을 표방한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 정당들에 맞서 정의당 같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지지해야 한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가 지닌 부족함을 모르는 척하는 기회주의적 처신을 할 수는 없으므로 혁명적 비판을 유보해서도 안 된다.

가령 지난해 봄 정의당 지도부는 공무원연금 개악과 국민연금 개선을 맞바꾸려는 — 그러나 실상 국민연금 개선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위한 미끼였을 뿐이다 —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야합을 공공연히 찬성하다가 국회 표결 때는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의 반발을 의식해 기권했다. ‘계급보다 국민(민중)을’ 의식하는 정의당의 개혁주의 노선에서 비롯한 사건이었다.

또, 북한 핵실험 직후인 지난 1월 8일 박근혜 정부의 대북 강경책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한 북한 핵실험 규탄 국회 결의안에 정의당 의원들은 찬성했다. 정의당 지도자들은 자본주의 국가의 외교·안보 정책에서 유능함을 입증하고 싶어 한다. 이런 태도는 지정학적 위기 상황에서 자국 안보(즉, 자국 지배계급)를 지지하는 쪽으로 나아갈 위험이 있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 일부 지도자의 ‘태극기 마케팅’은 그런 경향이 발전할 조짐을 얼핏 보여 줬다.

또, 인천에서는 제주 강정 마을 진압을 현장 지휘한 경찰 간부 윤종기와 단일화를 했다.

정의당은 국회 내에서 유일하게 ‘노동개혁’을 반대하는 정당이지만, 그 당 지도자들은 민주노총에 사회적 합의(즉, 조합원들의 이익을 일부 배신하는 타협)를 주문한다. 이것은 특히, 노동자 투쟁보다 국회 내 협상, 자본주의 야당 의원들과의 공조를 중시하며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 위험이 있다.

<노동자 연대>는 정의당이 순전한 자본주의 정당보다 어느 경우에든 더 낫다고 보지만, 정의당의 이런 문제점들에 대한 비판을 유보하지 않는다.

녹색당은 18만 2천여 표(0.76퍼센트)를 얻어 지난 지방선거(17만 표) 때보다 약간 더 얻었다. 그런데 변홍철 후보는 대구 달서갑 지역구에서 30퍼센트를 득표했으므로 이 당의 미래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2014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당이 97만 표를 얻었는데, 그 당권파의 정당인 민중연합당은 14만 5천여 표(0.61퍼센트)를 획득했다. ‘민주노동당보다 더 커서 돌아왔다’는 선전이 허언(虛言)으로 드러난 득표다.

노동당은 지난 지방선거(26만 표)보다 적게 얻었다(9만 1천여 표, 0.38퍼센트). 아마도 지난해 연말의 분당 후유증 때문일 것이다. 그럼에도 울산 중구에 출마한 이향희 후보가 20.5퍼센트를 얻어, 가능성이 아예 없지 않음을 보여 준다.

진보·좌파 정당들의 절대 득표 수를 봤을 때, <민중의 소리>가 진보·좌파 정당들이 분열해 지난 총선에 비해 의석 수가 줄었다고 평가하는 것은 극히 피상적이다. <민중의 소리>는 특히, 진보당에 대한 종북 공세에 대처하지 못해 진보·좌파 정당들의 지지가 과거에 비해 감소했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아전인수일 뿐이다. 울산 북구와 동구에서 새누리당 후보들은 김종훈·윤종오 후보가 통합진보당 출신이라는 점을 물고 늘어지며 집요하게 ‘종북 좌파’라고 비난했으나, 노동자들에게 거의 먹히지 않았다. ‘종북 마녀사냥’의 효과를 부풀리는 것은 현실과 맞지 않는다.

한편, 이런 피상적 평가는 이번 선거에서 민주노총의 구실을 거의 무시하는 것이기도 하다. 민주노총은 이번 선거에서 6곳의 전략 지역을 선정했다(창원 성산, 울산 북구, 울산 동구, 경주, 부산 진을). 이 중 3곳에서 민주노총 후보가 당선했다. 창원 성산, 울산 북구, 울산 동구. 민주노총이 총선공투본을 구성해 울산과 창원 같은 중요한 선거구에서 노동자 후보를 단일화할 수 있는 모멘텀을 만들었다.(이 총선공투본의 추진력은 박근혜 정권의 공세에 파업과 민중총궐기 등으로 맞선 지난해 민주노총 노동자 저항이었다.) 그 덕분에 이 지역들에서 노동자 후보 대 자본가 후보의 대결 구도를 형성하고 노동자들의 계급 투표를 이끌어낼 수 있었다. 2012년 총선에 비해 울산 북구에서는 1만 9천 표를, 동구에서는 1만 7천 표를 더 얻었다. 울산 중구의 이향희 후보도 2012년 4천2백 표에서 2만 2천 표로 지지가 늘었다.

이 기세에 눌려 이 지역의 새누리당 자본가 후보들조차 ‘노동개혁’을 반대한다고 말을 할 지경이었다. ‘조직 노동자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거나 ‘조직 노동자들의 단결력이 신자유주의로 분절됐다’는 일부 민중주의자들의 주장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민주노총 전략 선거구의 등뼈는 모두 민주노총 금속노조였다. 울산 북구와 동구는 각각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노조가 주축이었고, 창원과 경주도 각각 금속노조 경남과 금속노조 경주지회가 뒷받침을 해 주었다. 경주에 단기필마로 출마한 권영국 후보는 15.9퍼센트를 얻었다. 이것도 조직 노동자들(특히 금속노조)의 지지 덕분이었다. 투쟁에서뿐 아니라 ‘정치’ 영역에서도 금속노조가 가장 선진 부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금속노조 지도부는 금속노조 정치실천단을 조직해 버스 투어를 했다.)

진보·좌파의 전망

노동자 운동과 진보·좌파 운동 안에서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전망 논의가 곧 있을 것 같다. 민주노총은 지난해 12월 선거연합정당 안을 제안한 바 있다(최종 좌절됐지만). 모든 진보·좌파 정치 세력을 아우르는 선거 연합 정당을 구성하자는 안이었다. 이번에 당선한 전략 후보들을 중심으로 민주노총이 연합 정당을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정의당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비효과적인 재구성으로 끝나기 쉬울 것이다.

지난해 <노동자 연대>는 계급투쟁과 그 속에서 근본적 사회변혁 조직 건설하기에 우선순위를 두면서도, 민주노총의 선거연합당 제안을 지지한 바 있다. 이후 민주노총 논의에서도 우리는 앞서 언급한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면서 범진보·좌파 연합당 제안을 지지할 것이다.

이때 범진보·좌파 연합당 문제가 자민통계의 계급연합주의적 상설연대체 구축 시도로 변질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를 위해 범진보·좌파 연합당은 자본주의 야당 세력을 제외한 진보·좌파 진영으로만 한정해야 한다는 점, 자본주의 야당과 공동 집권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 참여 단체들의 독자성을 보장하는 느슨한 공동 운영 방식으로 할 것 등을 주장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선거 패배로 박근혜의 노동개악 등 각종 개악 계획이 물 건너가고 집권당의 내년 대선 경쟁도 난망해질 거라는 관측이 많다. 그러나 이는 섣부른 낙관이다. 오히려 세계 자본가들의 유력 신문 <파이낸셜 타임스>의 전망이 더 정확하다:

“선거 패배는 박근혜 대통령에게 커다란 타격이다. 그는 자신의 경제 의제를 더 강하게 추진할 방법을 찾을 것이다. 선거 결과는 박근혜의 권위주의적 정치 스타일에 대중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음을 보여 주지만, 그의 스타일은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경제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자본가들이 ‘강한’ 정부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박근혜는 조기 레임덕을 방지하고 선거 참패의 기억을 지우기 위해 며칠 안에 다른 쟁점으로 대중의 시선을 돌리려 할 것이다. 오래지 않아 ‘노동개혁’ 법안 통과도 추진할 것이다. 그러므로 새누리당의 패배로 각종 개악이, 특히 노동개악이 물 건너갔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섣부르다. 특히, 새누리당은 무소속과 국민의당과 더민주당의 일부를 끌어들여 ‘노동개혁’ 법안을 추진할 수 있다.

물론 노동자 계급과 청년·학생들은 박근혜의 패배에 고무돼 투쟁에 나설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투쟁과 근본적 사회변혁 조직의 건설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진보·좌파의 성적이 저조하다고?

중도진보계 언론들인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진보·좌파 정당들의 성적표를 박하게 평하는 기사들을 실었다.

“진보 정당은 이번 선거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표를 받아들었[다.]”(<한겨레>, 이재훈 기자)

“정의당 6석 초라한 성적표”(<경향신문>, 조미덥 기자)

안타깝게도, 진보·좌파 진영 내에서도 우리 진영의 성적이 저조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중의 소리>와 <레디앙>에서 이런 평가들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이 완전히 잘못된 평가임을 앞에서 지적했다. 덧붙이자면, 이런 보도는 지난 몇 년 동안 급변해 온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이번 선거 결과를 분석하지 않고 그저 최종 결과만을 떼어내어 보는 실용주의적 견해이다.

2012년 진보당 경선 부정 사건과 뒤이은 당권파 지지자들의 중앙위원회 폭력 사태로 진보당이 분당하자 ‘진보 정치가 실패했다’는 말이 유행했다. ‘바닥을 긁다 못해 지하를 뚫고 내려가고 있다’는 자조 섞인 농담의 대상이 되던 진보·좌파 진영이 지난 3년간 노동자 투쟁의 제한적 회복과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덕분에 소생하기 시작했다. 모두 2백만 표가 넘는 정당 득표에 국회 의석도 8석이 됐다. 이 선거 결과를 지난 4년 동안 진보·좌파 진영이 겪은 정치적 굴곡을 고려하지 않고 2012년 통합진보당의 13석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추상적 관점일 뿐이다.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펴자는 말이 아니다. 진보·좌파의 화살표가 성장 방향을 가리키는지 퇴보 방향을 가리키는지를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올바른 전망과 전술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진보·좌파 8명이 당선한 것은 진보·좌파가 전진하기 시작했음을 보여 주는 징표다. 이 중 3명이 민주노총 전략 후보다. 울산과 창원에서 이룩한 노동자들의 선거 돌파는 매우 중요한 정치적 함의가 있다. <한겨레>는 이 점을 단신 보도만 했을 뿐, 그 정치적 의미를 진지하게 분석하지 않았다. 그 정치적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중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울산과 창원에서 노동자들에 의한 선거 돌파는 지난 3년간 노동자들이 저항한 덕분이자 이후 또 다른 노동자 저항을 고무할 수 있다.

또, 진보·좌파 안에는 대공장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협소한 경제적 이익’에만 매달리는 부문주의에 빠져 있다는 비난이 꽤 있었다. 울산과 창원의 선거 돌파는 조직 노동자들이 (공식)정치 문제에도 나서는 의식이 있음을 보여 줬다.

한편, 진보·좌파의 성장을 정의당이 주도하고 있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정의당의 좌파에게까지 그 기회가 온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고 정의당의 좌파들이 상실감을 느끼고 조바심을 내며 정의당의 선거 성적에 인색한 평가를 내리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정의당이 잘 되면 그 다음에는 정의당의 좌파에게도 차례가 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좀 더 길게 내다보며 정의당의 부상을 가능케 한 노동계급의 투쟁에 기여하는 게 바람직한 자세다. 

입력 2016-04-1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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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심을 갖고 정의당 지지자들과 관계 맺을 줄 알아야 한다

최일붕

노동자연대는 진보·좌파 후보면 누구든, 진보·좌파 정당이면 어느 당이든 좋다고 일찍부터 공언했었다. 우리는 내놓고 자본주의를 옹호하는 ‘부르주아’(자본주의적) 정당보다는 자본주의를 전면 거부하거나 적어도 자본주의에 결함이 있다고 말하는 정당이 낫다고 언제나 주장했다. 그렇다면, 정의당은 더민주당과 다를 바 없는 “부르주아 정당”, 즉 단순한 자본주의 정당인가?

핵심 당 지도자들이 포함된 정의당 소속 당선인들의 정치적 배경과 공약(아래에서 <노동자 연대> 신문 김문성·김영익·이정원·장호종·정선영 기자들의 기사를 요약함) 그리고 당원의 사회적 구성을 보면, 왜 일반적인 유권자들은 정의당을 자유주의가 아니라 진보파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지를 쉽사리 알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좌파가 보기에 정의당이 아무리 온건해도(국제적 라벨을 붙이자면 중도좌파), 정치적 경험이 있는 유권자나 숱한 전투를 치러 본 민주노총 조합원이라면 더민주당 지지자와 정의당 지지자를 구별할 것이다. 도로의 중앙선은 자의적으로 긋는 게 아니다. 좌와 우의 한가운데에 긋는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6년 한국의 정치 지형 속에 정의당을 자리매김해야 하는 것이다.

아래에 요약한 정의당 소속 당선인들의 정치적 배경과 당의 공약 그리고 당원의 사회적 구성을 보면, 정의당이 단순한 자본주의 정당이 아님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사회민주주의 정당에 대한 레닌의 정식화)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정의당 소속 총선 당선인들의 정치적 배경

심상정 상임대표이자 당선인(이하 직함과 존칭 모두 생략)은 1980년대 노동운동에 뛰어든 이래 2004년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하기까지 전노협, 금속연맹 등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아 왔다. 국회의원이 되기 직전까지 금속노조 사무처장을 지냈다.

심상정은 노동자 정당이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또한 현재 진보·좌파 정당의 지도자들 중 남한 국가에 대한 존중과 충성 입장(“헌법 내 진보”)을 가장 선명하게 밝히고 있다. 박근혜 정부를 ‘안보 무능’ 정부라고 비판하는 것이나 이번 총선 홍보물에 실린 그의 군복 입은 사진도 그 연장선이다. 그의 저서《실패로부터 배운다는 것》(웅진지식하우스, 2013)에는 북한 비판은 있어도 미국·일본·남한 국가의 대북 압박 문제에 대한 언급은 한마디도 없다.

노회찬은 민주노동당의 사무총장과 대변인 등을 지냈고, 진보신당 당대표를 지냈다. 민주노동당 의원 시절 그는 이라크 파병 반대, 한미FTA 반대 운동 등을 적극 지지했다. 2005년에는 삼성그룹과 검찰의 유착 사실이 담긴 ‘X파일’을 폭로했다. 이에 대한 정치 보복성 판결로 결국 2012년 재선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의원직을 빼앗겼다. 그러나 이번에 그는 노동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창원 성산에서 당선돼, 정치적 ‘복권’을 이뤄 냈다.

그러나 근래 노회찬은 아래로부터의 운동과 제도권 정치 활동을 예리하게 분리시키고 후자를 강조하는 “진보정치의 세속화”를 주장해 왔다.

이정미는 대학을 중퇴하고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이후 노동운동, 통일운동 등을 하다 민주노동당에 입당해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과 대변인 등을 역임했다. 그는 인천연합 계열 신주류(新主流)로, 계파가 전혀 다른 심상정을 지지하고 있다.

정의당 일각에서는 정의당이 노동운동과 거리를 둬야 한다는 의견도 있지만 이정미는 자신도 “사회운동을 노동운동으로 시작했다”며 노동자들이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찾아갈 수 있는 정당”이 되게 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제1호 법안으로 생활동반자법안을 발의하겠다고 공약했는데, 이 법안은 성소수자 커플이나 동거인 등도 가족으로 인정하게 하는 법안이다.

김종대는 오랫동안 안보 전문지 편집장을 맡아 온 국방·안보 전문가다. 1992년부터 군 출신 민주당 국회의원들의 비서관·보좌관으로 일했다. 그리고 노무현 정부 하에서 청와대 국방보좌관실 행정관, 국방부 장관 정책보좌관 등을 역임했다.

이런 배경 덕분에 정의당 비례대표 경선 과정에서 임동원·이종석 등 남북화해협력 정책의 주요 입안자들이자 전직 정부 고위 관리 출신자들이 그를 지지했다. 또, 군 장성 35명을 만나고 취재해 《서해전쟁》 같은 책을 낼 정도로 군부 안에 발이 넓다. 무기 도입 비리 등 군부 내 부정부패 문제도 분석하고 폭로할 수 있었다.

그는 여러 시민단체들과도 연을 맺는 한편, 사드 배치, 북한 ‘위협’ 과장, 한미동맹 일변도 외교 등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계속 비판해 왔다. 특히, 사드 배치를 비롯한 한국의 미국 MD(미사일 방어 체계) 협력을 반대한다는 점에서 가장 분명하게 더민주당 정치인들과 구분된다.

이런 점들이 그가 비례 상위 순번이 되는 데 큰 도움이 됐을 것이다. 그러나 불길하게도 그는 박근혜 정부의 “가짜 안보”와는 다른 “진짜 안보”를 강조하고 ‘노무현의 자주국방론에 자신의 손때가 묻어 있다’고 자랑한다. 하지만 노무현의 자주국방론이 현실에서는 친미로 기울고 대대적 군비 확충으로 나아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리고 사회민주주의 정치인이 ‘자국 안보 지지’를 강조하고 이 방면에서 유능함을 입증하려 하는 것은 여러 문제를 낳을 수 있음을 역사에서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동북아시아 불안정과 갈등이 커지는 상황에서 자국 국가를 지지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은 우려 사항이다.

추혜선은 KBS노조와 SBS노조 간사를 거쳐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을 역임하며 20년간 언론계 노조들과 시민사회단체 내에서 기반을 닦았다. 방송·통신·ICT 분야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집중되는 도급과 재하도급 등 고용불안의 근본 원인을 제거”하겠다는 공약을 내놓았다. 그래서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기대가 크다. 정의당 내 비례후보 경선 과정에서 희망연대노조 케이블 비정규직 노동자 수백 명이 그를 지지하는 뜻으로 정의당에 집단 입당하기도 했다. 그런 기대와 요구를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비정규직지회의 한 간부는 이렇게 표현했다. “방송통신 쪽에 비정규직들이 많은데 사각지대에 놓여 있습니다. 계약이 1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습니다. 원청의 갑질에 반대하고 고용을 보장할 수 있게 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추혜선은 또한 정보기관이 테러방지법을 이용해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을 견제하고자 20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정보통신인권법안을 발의하겠다고 밝혔다.

윤소하는 광주·전남 진보연대 공동대표를 역임했는데, 2010년 목포 주민 1만 4백80명의 서명을 받아 전국 최초로 주민발의 학교 무상급식조례를 제정했다. 이번 총선에서 청년, 비정규직, 농민, 중소상인을 위한 법률 제정을 공약했다. 원하청연대보증법을 도입해 원청 기업도 하청 노동자의 임금 체불에 책임을 지게 하겠다고도 공약했다. ‘단가 후려치기 방지법’ 제정 등으로 비정규직 노동자와 중소기업의 상생을 도모하겠다고도 밝혔다.

정의당의 공약은 더민주당보다 왼쪽에 있다

단순 자본주의 정당 더민주당은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정부와 기업뿐 아니라 노동자도 “양보·희생”하라고 주문하며 물타기를 하고 있다. 그 당은 ‘노동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는다. 통상임금·노동시간 관련 법 개악에 대해서도 여당과 “큰 틀의 합의”를 한 상태다. 파견법 개정도 논의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반면, “자본주의적 노동자당” 정의당은 기본적으로 민주노총이 제시한 총선요구안을 지지하며 더민주당과 분명한 차이를 보여 준다. 정의당은 “박근혜 정부와 반대로!”라는 구호를 내걸고 노동개악 저지를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고, 2대 지침 폐기를 주장한다. 특히 저임금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저임금 1만 원, 공기업·대기업 임원 연봉 상한제, 성별 임금 격차 해소, 비정규직 사회보험료 지원 확대 등의 공약을 내놨다. 또,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과 처우 개선, ‘5시 칼퇴근 법’, 연간 1천8백 시간으로의 노동시간 상한제 등 노동시간 단축도 제시했다.

노동기본권 확대를 위한 공약들로, 가사노동자를 포함해 모든 노동자들에게 근로기준법 적용, 공무원·교원의 노동기본권과 정치적 자유, 이주노동자 고용허가제 폐지, 단체협약의 효력 확장, 공격적 직장폐쇄와 파업에 대한 손배·가압류 금지 등을 내놓고 있다.

반면, 정부와 사용자들의 임금 공격이 강화되는 상황에서 정의당은 임금체계 개악 저지를 분명히 하지 않고 있다. 이는 주로 대기업·공공부문 정규직의 임금을 적극 방어하고 나서길 꺼리기 때문인 듯하다. 노동시간 단축 공약에 임금 삭감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하지 않은 것도 이와 관련이 있는 듯하다.

또, 정의당은 ‘초과이익공유제’를 제안하고 있는데, 이는 대기업의 이윤 일부를 중소기업과 공유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정의당의 민중주의 이데올로기를 반영하는 공약이다. 그러나 기업 간 이윤 배분을 조정한다 해도 자동으로 하청 노동자의 처우를 개선하지는 못한다. 오히려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을 반대하는 효과를 낼 위험이 있다.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인상이 하청기업에 나눠 줄 ‘초과 이익’을 줄인다면서 말이다.

지난해 심상정은 정부의 노동개악 추진에 들러리 구실을 한 노사정위를 비판하면서도, “비정규직과 청년들, 시민사회계까지 두루 포함한” 국회 내 사회적 논의기구를 제안한 바 있다. 1980~90년대 내내 유럽, 특히 독일에서 ‘사회적 대타협’ 요구는 거듭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 요구를 억눌렀다.

정의당 당원의 사회적 구성

정의당의 당원은 현재 약 3만 5천 명이고, 그 가운데 민주노총 조합원이 1만 명, 다른 노동자들이 1만 몇천 명가량 된다. 노동자가 다수다. 이 규모는 창당한 지 3년반밖에 안 된 당치고는 적지 않은 규모다. 그러나 사회민주주의 정당에 진성 당원은 큰 의미가 없다.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에 정당투표를 한 유권자들은 약 1백72만 명이나 된다.

역사적으로도, 진성 당원 면에서는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이 진배없는 경우가 적잖이 있었어도 투표로 말할 것 같으면 얘기가 크게 달랐다. 트로츠키는 1930년경 나치당 지지 증대가 경고음을 울리는데도 공산당 KPD가 활동적 당원 수를 기준으로 자신이 사회민주당 SPD와 엇비슷한 세력이라며 자기 만족에 빠져 있음을 비판하면서, 선거에서는 SPD가 당원의 열 곱절쯤 되는 지지를 얻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실제로 거의 그렇게 됐다.) 현재 그리스에서도 공산당이 시리자보다 작업장과 캠퍼스에서 더 많이, 더 잘 조직하고 있지만, 우리가 지난해 보았듯이 선거 득표에서는 시리자가 공산당을 압도한다.

사회민주주의는, 특히 그 주류는 일상적으로 ‘공중전’(공식 정치권)에 우선순위를 부여하는 나머지, 노동자들과 평당원들을 수동적인 채로 놔 둔다. 평소에 정치는 사회민주주의 의원과 당료가 한다. 평당원은 투표장에 나가는 것만이 독려되고, 그가 선거 운동까지 한다면 그는 대단한 열성 당원인 것이다. 물론 간혹 대중 집회에 참가할 것이 독려되고, 훨씬 드물게는 시한부 파업에 참가할 것이 요구되지만, 그뿐이다. 그걸 넘어 아래로부터의 자력 해방을 지향한 노동계급의 자력 활동은 금기에 해당한다.

정의당 등장의 구체적 맥락

이렇듯 정의당은 일부 노동운동가들을 포함해 급진적 변화를 바라는 사람들의 열망을 반영하면서도, 아래로부터의 변화를 일관되게 추구하지는 않는다. 이 점에서 앞서 언급된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라는 정식이 잘 들어맞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진정한 쟁점은 오늘날 한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이런 정당의 등장을 어떻게 볼 것이냐는 것이다.

서유럽과 달리, 단순 자본주의 정당들만이 설치던 한국의 정치 지형 속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전진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고무하는 효과를 낸다. 그래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 일어나는 데에 긍정적인 효과를 낸다. 노동자들의 의식은 살아 본 경험, 조직해 본 경험, 특히 투쟁해 본 경험에 의해 변한다. 비록 환상에 의해 촉진돼 싸우는 것일지라도 그 환상을 깨뜨리는 것은 (유일한 수단은 아니어도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서) 아래로부터의 투쟁이다. 그리고 투쟁이 클수록, 또 승리로 끝날수록 노동자들의 의식, 특히 자신감에 미치는 효과는 크다.

계급투쟁에서 자신감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사람들이 자신감이 없으면 지배자들이 ‘종북’ 속죄양을 만들어 만악의 근원인 양 책임 전가하고 상이한 노동자 집단들과 부문들을 서로 이간시켜 각개격파하는 것에 직면해서도 귀가 얇아진다.

자신감

우리가 노동자들과 차별받는 다른 사람들의 투표 대상에 정의당도 포함시킨 것은 그 당의 온건함과 개혁주의를 몰라서가 아니다. 심지어 그 당 안에는 참여계 같은 사회자유주의자들도 있다. 하지만 좌파들도 있다. 일부 노동자 당원은 자신의 노동조합을 통해 정의당과 연계돼 있다. 중요한 점은, 우리가 정의당에 투표한 노동자·청년·대학생들과 ‘노동개혁’과 구조조정에 맞서, 또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을 위해 함께 싸워야 한다는 점이다. 정의당을 더민주당 2중대쯤으로 매도하는 것은 이 사람들에게 ‘당신과 관계 맺을 필요가 없다’고 오만하게 말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사회주의(아래로부터의 노동자 권력)가 정치적으로 가장 선진적인 노동자들만으로 구축되지 않는다는 점도 생각해야 한다. 미래에 밑에서부터 솟아나올 사회주의의 시초는 레닌 말대로(《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 “가상적인 인간 재료로 구축되지 않는다. 또는 우리가 특별히 준비한 인간 재료로 구축되지도 않는다. 자본주의가 우리에게 물려준 인간 재료로 구축하는 것이다.” 정의당에 투표한 노동자·청년·대학생의 상당 부분은 그 나름으로 새롭게 급진화돼, 그 정치적 표현으로서 투표 행위를 한 것이다. 사회주의자는 이들과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맺으며

의회와 선거, 투표 문제는 원칙 문제가 아니라 전술 문제다. 물론 전술은 속임수가 아니기에 원칙과 단절되지 않고 접점이 있다. 그 접점은 바로 노동계급의 자체 활동(궁극적으로 자력 해방)이다. 특정 전술을 통해 노동자들 스스로 행동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 사회주의적 전술들 일반을 꿰뚫는 공통의 가닥인 것이다. 이런 가닥을 잡고 있는 한에서 전술은 융통성 있어야 한다.

신축적인 전술 운용에 가장 해로운 것은 레닌이 지적했듯이, “[혁명가들이] 객관적 현실을 자신의 희망과, 자신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태도와 혼동하는 것이다. 이것이 그들의 가장 위험한 실수다.”

노동자연대는 자신의 주장과 실천, 독자적 조직을 숨기지 않고 정의당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므로, 전술의 신축성을 발휘하면서도 그럴 수 있다. 정의당이 성장할수록 사회주의자들의 조직을 만만찮게 구축할 과제는 더욱 막중해질 것이다. 하지만 둘의 성장이 상충하지만은 않는다. 오히려 만만찮은 사회주의적 조직이 건설되기 위해서라도 정의당 성장의 동력이 되는 소수 대중의 급진화 흐름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입력 2016-04-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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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을 아는 기초 이론

사회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최일붕

개혁이냐 혁명이냐는 유의미한 물음이다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가 정상이라고 믿으며 자랐다. 우리가 자란 사회는 근본적 사회변혁을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을 비현실적인 이상주의자이거나 아니면 ‘극단적인’ 사람들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 특히, 노동계급이 자본주의 시스템을 붕괴시키거나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의회를 통한 개혁만을 바라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자본주의 종식과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는 소수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관념들을 다 받아들이는 노동자도 소수다. 대다수 노동자는 자본주의의 관념들 중 일부는 받아들이고 일부는 받아들이지 않는다.(이에 관해서는 <노동자 연대> 지난호에 실린 ‘언론은 사람들의 생각을 좌지우지하는가?’라는 기사를 보라.)

심각한 위기의 시기에는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이 훨씬 더 중요해진다. 물론 많은 좌파들이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논쟁은 케케묵은 것이라고 일축한다. 새 시대의 좌파는 그런 따분한 토론을 ‘넘어서야 한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등장한 지 반년도 채 안 돼 EU에 굴복한 사실을 보면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는 물음이 케케묵기는커녕 여전히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왜 의미가 있는가? 먼저, 진정한 쟁점은 개혁 ― ‘노동개혁’ 같은 사이비 개혁이 아니라 착취와 차별을 경감케 하는 진정한 개혁 ― 을 위해 투쟁해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역사상 마르크스와 레닌, 트로츠키 등 모든 훌륭한 혁명가는 개혁을 위해 투쟁했다. 그러므로 진짜 이슈는 과연 개혁 운동만으로 충분한가, 그리고 어떻게, 어떤 전망 속에서 개혁 운동을 해야 하는가 하는 점이다. 사회민주주의자는 개혁 운동에 한정하는 반면, 혁명가는 개혁 운동을 혁명 운동 건설의 일부로, 또 혁명 운동으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로 본다.

△노회찬 후보 선거 사무소 개소식에 참석한 노회찬(맨 왼쪽), 심상정(가운데), 이정미(맨 오른쪽) 국회의원 당선자들. ⓒ사진 출처 노회찬 블로그

사회민주주의의 좌파와 우파

사회민주주의에는 크게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고 다른 하나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다.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의 원리·원칙을 지지하고 그에 근거하지만 다양한 법률과 정책을 통해 시스템의 운영을 개선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노동계급의 권익을 보호하고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만들려 한다. 전통적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대표적 사례이지만, 정의당도 이 범주에 속한다.(정의당의 개혁주의는 또한 민중주의적이기도 하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는 자본주의를 점진적으로 개혁해 사회주의로 변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또한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는 대중운동과 노동조합을 동원해 자신들의 계획을 뒷받침하도록 보완한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의 사례는 제1차세계대전 전의 독일 사회민주당, 1970~73년 칠레 아옌데의 민중연합 정부, 영국 노동당 좌파의 토니 벤(1925~2014)과 제러미 코빈(1949~, 현 당대표), 그리스의 시리자, 스페인의 포데모스, 그리고 우리 나라의 옛 민주노동당과 현 노동당 등이다.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는 주류 사회민주주의보다 훨씬 급진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부르주아 정치인들과 미디어는 좌파적 사회민주주의를 터무니없고 웃긴다며 평소에 개무시하다가 특정 시기에 좌파적 사회민주주의가 떠오르면 “빨갱이”라며 극단주의 세력 취급을 한다.

그러나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와 주류 사회민주주의는 둘 다 사회민주주의로서 공통점이 크게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원칙 문제인데, 둘 다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과 활동이 아니라 자신들이 민중을 대리한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둘째, 전략 문제인데, 둘 다 기존 국가 기구(의회, 행정부, 공무원 조직, 지방자치단체 등)를 활용해 개혁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특히 의회의 구실을 강조한다.(정의당이 왜 의원내각제를 지지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들은 변화를 위해 대중 시위 등을 압박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점이 주류 측과 좀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러시아 혁명은 오늘날과 무관한 과거사가 아니다

△러시아 혁명으로 폭넓은 개혁이 이뤄지다.

혁명기에는 사람들의 사상이 급변한다. 그런 때는 노동자들이 시스템의 본질적 모순들을 깨닫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리고 사회주의자들이 자본주의 시스템은 온전히 제거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훨씬 쉬워진다. 이윤으로 돌아가고 점점 더 많은 부를 축적하도록 설계된 시스템은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말이다.

1917년 10월 혁명에 뒤이어 러시아 여성들은 선거권, 이혼권, 낙태권 등을 얻었다. 성소수자들도 자유로운 성애의 권리가 확립됐고, 서자나 사생아도 적자와 동등한 권리를 얻었다. 이러한 평등은 당시 세계 어느 나라보다 훨씬 더 나아간 것이었고, 훨씬 더 폭넓은 것이었다. 오늘날에도, 서유럽에서조차 이런 권리들은 다 인정받지는 못하고 있다.


사회민주주의의 한계와 사회주의적 대안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들은 사회민주주의 전략에 대해 비판적이다. 이것이 우리가 개혁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는 각각의 개혁과 개혁 운동을 지지하지만, 개혁 운동 전반을 아우르는 사회민주주의 전략은 지지할 수 없다. 그 전략이 성공할 수 없음을 역사적 경험과 분석을 통해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의 진정한 권력이 의회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진정한 권력은 대기업과 은행의 임원회의 그리고 정부 각료회의, 경찰 간부회의 등에 있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부(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부인 경우에는 특히 더)를 길들이기 위해 경제의 목을 조르는 수법을 쓴다. 언론과 사법부가 이를 거들 것이다.

최선의 기대치는 자본주의 호황기에 약간의 개선을 얻어 내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호황을 누릴 때는 ― 가령 선진 산업경제의 경우 제2차세계대전 이후 1970년대 초까지, 한국 경제의 경우 1980년대와 90년대 전반부 ― 노동자들이 조금 싸우면 사용자들과 정부로부터 어느 정도 양보를 얻어 낼 수가 있었다. 북유럽의 복지국가는 바로 이렇게(경제 성장 + 노동자 투쟁) 성취된 것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위기에 시달리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세계경제 차원에서는 1970년대 초부터, 그리고 한국경제 차원에서는 1990년대 말부터 위기가 풍토병처럼 빈번히 급습해 시스템에 기능장애를 초래했다. 경제 위기 시기에 기업주들은 노동자를 공격해 이윤을 되찾으려 애쓴다. 지금 같은 시기가 그런 시기인데, 이런 때는 가장 좌파적인 사회민주주의자들도 얼마 안 되는 개혁조차 성취하기가 불가능하거나 매우 어렵다.

위기 시기의 사회민주주의 실험은 1973년 칠레의 경우처럼 분쇄당하는 비극을 경험할 수도 있다. 하지만 더 흔한 경험은 시리자의 경우처럼 시스템과 협력하라는 압력을 받고 이 압력에 굴복하는 것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흔히 사회민주주의자들은 자신을 지지해 준 운동에 제동을 거는 구실을 한다.

이런 우울한 상황이 전개되지 않도록 할 방도는 사회의 진정한 권력이 있는 곳, 진정한 권력의 소재지를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 위기 시대에는, 지대한 영향을 미칠 개혁은 혁명적 투쟁으로만 가능했다.

그렇다고 해서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들이 개혁을 위한 투쟁에 관여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우리에게는 개혁을 쟁취하기 위한 진정으로 현실적인 전망이 있다. 가령 박근혜의 ‘노동개혁’에 맞서 의회주의자들은 차기 국회에 기대를 거는 게 ‘현실적인’ 것이라고 보지만, 우리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이야말로 현실적이라고 본다. 내놓고 자본주의를 지키면서도 노동자의 권익을 옹호한다고 모순되게 행동하는 중도계 정치인들에게 기대를 거는 게 현실적인가? 아니면, 지배자들이 ‘노동개혁’을 추진하는 바로 그 목적 자체 ― 즉, 이윤 ― 를 공격하는 게 더 현실적인가?

물론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라고 해서 선거나 의회를 기피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마치 “까마귀 가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는 식이어선 안 된다. 또는 이솝 우화의 여우처럼 따먹지 못한 포도를 신 포도로 치부해서도 안 된다. 그러나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가 선거에 참여할 때는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을 돕기 위한 것이어야 한다. 노동자들의 정치적·경제적 투쟁이 지상군이라면, 사회주의자 의원들의 역할은 공습을 하는 공군인 것이다.

요컨대 근본적 사회변혁 지지자들은 세 가지 영역에서 활동해야 한다. 첫째, 노동조합 영역에서 현장조합원들의 능동성과 투쟁성이 최대한 발현되도록 하는 방향으로 분투한다. 둘째, 정치적 항의 운동이나 방어 운동을 구축하기 위해 다른 좌파 단체들과 협약을 맺고 공동 활동을 해야 한다. 셋째, 만일 선거와 의회 참여가 역량상 가능하다면 그것을 이용해 반자본주의적 폭로 활동을 수행하고 노동자 투쟁을 선동해야 한다.

입력 2016-04-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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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도 쓸모 있겠지만 사회주의당은 훨씬 쓸모 있다

최일붕

20세기 노동운동을 지배한 조류는 노동자 정당이 선거로 국가 공직들을 장악해 그 집행권을 지렛대로 삼아 개혁들을 추진하고자 했던 조류였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하 사회당)과 공산당이 이런 조류를 대표했다. 특히, 사회당들은 1980년대 이후 국가 개입을 더 줄이고 시장경제를 더 늘리는 정책을 시행해 왔고, 더는 사회주의라는 말도 입에 올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

사회당과 공산당에게 사회주의는 의원들과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협력해서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것을 뜻할 뿐이다. 때때로 대규모 거리 시위가 호소되기도 하고, 심지어 시한부의 상징적 파업이 선거를 위해 이용되기도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 스스로 권력을 행사하는 데까지 나아가는 건 끔찍이도 두려워한다. 미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핼 드레이퍼는 이런 사회주의를 “위로부터의 사회주의”라고 부르면서, 마르크스와 레닌·트로츠키 등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와 대조했다.

위로부터의 사회주의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평소에 수동적인 채로 남아 있다가 몇 년마다 한 번씩 사회당이나 공산당에 투표하고 이따금 거리 집회에 나오는 것 정도가 요구된다. 파업은 한 사업장이나 부문에 국한되고, 사실 어느 수위를 넘지 않는 한 신경쓰지도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는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혁명을 지지한다. 그래서 혁명기에 직장과 노동자 거주지역에서 선출된 대표자들로 이뤄진 노동자 지방정부들이 창설되는 것을 지지한다. 그 노동자 지방정부들은 기존의 자본주의 중앙정부와 실세를 놓고 겨루게 될 것이다.

그런 전면적인 상황은 마치 무에서 유가 창조되고 메시아가 도래하듯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다. 부분적인 투쟁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일반적인 조건이 되는 것이다. 이 ‘연결’과 ‘보편화’ 과정은 결코 자동적이지 않다. 인간 주체의 행위가 개입돼야 한다. 즉,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사회주의자들은 이런 상황의 도래를 위한 지난한 정치 운동과 조직을 평상시에 건설해야 한다.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지지하므로 혁명적 정당(이하 사회주의당)과 그 당원들은 수동적이지 않고 능동적이다. 사회주의당은 지지자들에게 노동계급 투쟁의 범위를 확대하고 투쟁 수위를 높이기 위해 능동적으로 노력하라고 요구한다. 당원들에게는 어느 정도의 헌신성과 적극성을 요구한다. 당원들이 최소한의 당비나 내고 정치 활동은 거의 안 하는 채로 살아가지 말라고 말이다.

노동계급 의식의 불균등함

사회주의당과 달리 개혁주의 정당은 국가를 중립적 기구로 여긴다. 그래서 자기가 그걸 인수해 운영하면 노동자 등 억압받는 사람들에게 유리하도록 운영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촉망받으며 등장한 그리스 시리자 정부가 자기 지지자들을 배신하고 긴축 정책을 시행하고 있음이 반증하지만 이런 착각은 일찍이 1871년 마르크스가 파리 코뮌을 찬양하면서 논박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국가(행정부, 사법부, 입법부, 경찰, 군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등)는 자본가 계급이 자기의 지배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하는 무기다. 또한 자본가 계급의 정치조직들 가운데 가장 효과적인 정치조직이다.

이 지배계급 정치조직과 투쟁해야 한다는 점이 바로 사회주의당을 건설해야 하는 근본적인 이유다. 물론 ‘자율적 사회운동’론자들의 멋진 상상처럼 차별받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두 단결해, 국가를 있으나 마나 한 걸로 만드는 상황이 가능하다면, 굳이 사회주의당이 필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자발적 단결은 기껏해야 일시적일 뿐, 결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차별받는 다른 사람들도 그렇지만 노동자들의 의식도 불균등하기 때문이다.

대중적 노동운동이 전개되면 노동자들 가운데도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을 품고 이윤이 아니라 인간의 필요에 따라 운영되는 사회를 염원하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특히, 기업주들과 정부가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자들에게 떠넘기는 것에 굴복하지 않고 저항하면 이런 노동자들은 좀 더 늘어날 수 있다.

하지만 소수 노동자들은 여전히 주류 언론이 하는 주장들을 대부분 받아들인다. 그들은 자본주의가 그래도 가장 효율적인 자원 분배 체제이고, 평등은 불가능하고, 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노동운동과 관련된 지배자들의 거짓말을 대부분 받아들인다. 가령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단결할 수 없다는 등의 거짓말들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이 두 상반된 세계관 가운데 어느 것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지배계급의 일부 견해들은 거부하고 다른 견해들은 받아들인다. 그들은 기존 사회의 근간은 받아들이면서도 그 최악의 결과들은 완화하고 싶어 한다.

사회주의당은 바로 이러한 불균등한 노동자 의식 때문에 필요하다. 사회주의당이 혁명적 정당이라 해서 혁명적 시기가 도래했을 때야 비로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노동계급 투쟁이 훨씬 낮은 수위에 머물러 있을 때도 사회주의자들이 일정한 영향을 미칠 수 있으려면 그들 자신의 조직이 반드시 필요하다. 노동자들 가운데 선진적인 소수가 평소에 조직돼 있지 않으면 노동자들 사이에서 만연한 뒤범벅된 생각들과 대결할 수 없다. 사회주의당은 노동조합 안에서, 정치운동 속에서, 작업장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의견이나 전술을 주장할 수 있게 해 주어, 우리가 더 효과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 해 준다.

노동계급 속의 사회주의자들 사회주의자들의 조직된 개입은 계급투쟁 결과에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사진 이미진

파리 코뮌의 경험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 가능성을 보여 준다 1871년 파리코뮌 참가자들이 놓은 바리케이드. 

노동자 계급 의식의 불균등함 때문에 당은 계급을 대표할 수 없다

선진 노동자의 정당인 사회주의당과 달리 진보정당은 노동운동을 고스란히 정당으로 표현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평균적인 대다수 노동자들을 대변하려 한다. 진보정당은 노동계급을 대표하려 한다.

그러한 방식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가는 서구의 사회민주주의 정당(영국 노동당, 프랑스 사회당, 독일 사회민주당 등)이나 공산당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정당들은 노동계급의 평균적인 의식을 준거로 삼아 노동계급을 대표하려 하고, 결국 지배자들의 견해들을 대부분 거부해 온 노동자들뿐 아니라 그 견해들을 대부분 받아들이는 노동자들도 대표한다. 그래서 언제나 사회당과 공산당은, 인종차별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난민을 옹호하는 노동자들뿐 아니라 인종차별을 용인하고 난민을 배격하는 노동자들도 포용했다. 서구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인종(특히 무슬림 이민자) 차별과 난민 문제인데도 말이다.

노동계급을 대표해 그 불균등한 의식을 구현하므로 진보정당은 노동자들의 투쟁성과 능동성을 대표하지 않고 오히려 노동자들의 수동성을 대표하게 된다. 덕분에 진보정당은 대규모 조직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바로 그런 수동성 때문에 시간이 갈수록 ‘추수주의’, 즉 노동운동 내의 통념에 영합하고 그 꽁무니를 좇게 될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당과 그 당원은 능동적이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사회주의가 노동계급의 자력 해방이기 때문이다.

개혁주의와 단절함

사회주의당은 진보정당과 달리 노동조합 지도자들로부터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에서 착취 조건을 놓고 협상하는 노동운동 내 특수층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노조 운동의 지도층이라는 동류의식에 철저한 데다 투쟁보다 협상을 우선시하므로 노동운동 내 보수층을 이룬다. 진보정당은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주요 기반으로 하는 정당이다. 그래서 진보정당은 본질적으로 개혁주의 성향을 보일 수밖에 없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는 정치 투쟁과 경제 투쟁의 분리로 나타난다. 노동계 지도자들은 정/경 역할분담을 한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이 먹고사는 문제들에 집중하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개혁입법을 위한 제도정치권 내 투쟁에 집중하는 식으로 말이다. 지배계급 자신은 둘을 분리시키지 않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두 투쟁이 별개라는 생각은 노동계급의 경제적 능력(특히 파업을 통해 발휘되는)을 정치 문제 해결에 사용할 기회를 놓치게 만든다.

우리 나라의 경우, 노동계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는 민중주의적 전통과 융합된다. 민중주의는 반동적인 극소수 엘리트층에 대항해 나머지 국민(“민중”)이 계급을 초월해 단결하자는 사상이다. 재벌개혁과 사회연대전략을 추구하는 게 대표적 사례다. 하지만 자본주의 야당과 연립정부를 세울 목적으로 전략적 연대를 하는 것도 또 하나의 사례다.

진보정당 추진자들은 민중주의를 받아들인다. 이와 달리 사회주의당은 결코 어떤 시기에도 계급 분단을 흐리는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친중간계급적 사상에 맞서 의식적인 투쟁을 한다.

이를 위해 사회주의당은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급 투쟁의 역사를 알리고 그 교훈을 습득하도록 한다. 혁명적 전통과 교훈, 마르크스주의 사상을 중요하게 여긴다. 트로츠키는 이를 두고 “계급의 기억”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노동운동사는 거의 다 숨겨져 있다. 학교와 미디어에서는 이런 것을 배울 수 없다. 특히 노동자들의 승리에 대해서는 그렇다. 배울 때조차도 왜곡되게 배운다.

사회주의당의 활동 방법은 민주집중제다

위에서 우리는 사회주의당의 노동자 당원들은 최소 당비나 내고 활동은 거의 안 하는 진보정당 노동자 당원들과 다르다고 했다. 그저 정치 토론을 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정치 활동을 하는, 말 그대로 활동가들은 자기들의 집단적 결정이 실천에서 효과를 내도록 해야 한다. 그러려면 민주집중제라는 방법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

△노동자를 조직하는 신문 노동자 신문은 운동 속에서 사회주의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의견이나 전술을 주장하는 데 필요한 수단이다. ⓒ이미진

민주집중이라는 말은 모순된 용어처럼 들린다. 그리고 민주집중제를 채택하면 반드시 서열과 엘리트주의를 수반한다는 주장도 자주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주장들은 오해에서 비롯한 것이다. 집중은 리더십, 즉 ‘지도’를 뜻하는 말인데, 진정한 사회주의적 지도는 자본주의에서 통용되는 엘리트적 지도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사회주의당이 말하는 지도는 당원들이 당 안팎에서 자신의 견해와 전술을 위해 분투하는 것을 말한다. 즉,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평소에 받아들이는 지배계급의 견해들을 논박하고, 크고 작은 투쟁들이 어떻게 전진할 수 있는가에 관한 의견을 내놓고 능동적으로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리더십은 민주적 토론의 논리적 결과다. 당 내에서 쟁점들이 토의되고 때로는 그것을 둘러싼 논쟁이 이뤄진다. 그러나 일단 결정이 나면 누구나, 또 논쟁 과정에서 어떤 입장을 취했든, 그 결정에 승복하고 그에 따라 활동해야 한다.

반면 진보정당은 민주와 집중이 완전히 따로 논다. 진보정당에서도 토론과 논쟁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토론과 논쟁의 결과는 당원 개인들에게 아무런 구속력도 없다. 말과 행동이 일치할 수 없고 각자가 제멋대로 행동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당의 의원들과 관료들이 진정한 권한을 갖게 된다.

짧은 맺음말

노동계급 투쟁은 여전히 사회의 진보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노동계급 투쟁은 사회주의당이 있든 없든 관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사회주의자들의 조직된 개입은 결과에 엄청난 차이를 가져올 수 있다. 노동계급 속에 뿌리내린 사회주의당은 그러한 개입과 궁극적 성공의 핵심 요인이 될 수 있다. 철저한 사회 변화를 원하는 사람들이 사회주의당의 일부여야 하는 이유다.

사회주의 정당의 통상적인 이미지는 스탈린주의에 의해 왜곡돼 왔다. 오늘날 우리는 사회주의당이 여전히 가장 민주적이고, 노동자들에게 가장 활짝 열려 있고,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노동계급을 성공적으로 이끌 수 있는 수단이 되도록 애써야 한다.

입력 2016-06-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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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통합당 안(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최일붕

4년 전 총선과 그 8개월 뒤 치러진 대선에서 적잖은 노동자들이 박근혜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물론 다수는 아마도 문재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박근혜에게 투표한 노동자들은 경제 회복을 바라고 그랬을 것이다.

박근혜의 대선 승리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다소 떨어뜨렸던 듯하다. 그리고 당시에 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의 연립정부를 염두에 두고 우경화했던 것도 거기에 다소 일조했을 것이다.

그람시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잡는 데서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의 ‘시민사회’가 하는 구실을 지적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이던 시절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도 “노동운동이 개혁주의 사상과 더 중요하게는 그 사상이 표현하는 체제 논리를 수용하면, 자본주의가 가하는 사회적 압력에 취약해진다”고 강조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자꾸 양보하면 “좌파 전체를 약화시킨다”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경고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11월 코빈은 파리 참사를 명분으로 한 서방의 시리아 공세나 개입을 유엔의 합법성 부여를 전제로 양해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지속가능  단결해서 얻은 진보·좌파의 총선 성과는 의미있고 중요하다. 이 성과를 이어가려면, 지속가능한 방식이 필요하다. ⓒ사진 이미진

박근혜 정부 등장 후 노동자 운동 내 이데올로기 투쟁의 세력균형은 좌파에 현저하게 불리했다. 분절화와 부문주의로 노동자들은 단결할 수 없으므로 싸울 수 없다던가,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다던가, 진보정당이 재건되는 게 노동운동 재기의 선결 조건이라든가 하는 등의 주장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려 전진을 가로막고 있었다.

노동자연대는 소규모였어도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우리 몫을 하려 애썼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사상과 투쟁했다.

또,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안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좌파적인 집행부가 등장케 하는 데 일조했다.

이 사상 투쟁과 정치 운동은 서로 결합돼 다소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적어도 민주노총 좌파가 대세에 영합하는 것을 어느 정도 견제했던 듯하다.

물론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더라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반동적 사상을 크게 밀어 내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두세 차례의 민주노총 하루 파업과 여러 차례의 소규모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고, 여기에 노동자연대의 기여도 일부 있었다.

한편 세월호 참사는 광범한 대중에게 큰 심리적 충격을 줬지만, 그에 대한 항의 운동이 노동운동 내에 미친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반동적 사상을 밀어 낼 만큼 강력하고 급진적이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은 증대시켰겠지만 말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조건들

그러므로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가 참패한 원인은 주로 경제를 못 살린 것에 대한 심판을 받은 것과, 부차적으로 노동자 저항들과 세월호 항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박근혜 참패보다 정말 더 중요한 점은 적잖은 노동자들이 박근혜 심판에서 더 나아가, 진보 측에 투표해 여덟 명을 당선케 한 것이다.

이는 주로 자본주의 야당들이 박근혜 정부에 너무 타협적이었던 것에 대한 불신을 표명한 것일 뿐 아니라, 진보·좌파 정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노동자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진보 투표는 정의당과 부울경연합의 의회 진입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정의당과 부울경연합이 모두 포함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합하는 정당을 설립한다는 생각은, 일단은 괜찮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당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정의당계와 자민통계는 과거에 두 차례나 분열한 경험이 있다(2008년 초와 2012년 여름). 노동자연대는 그 원인이 매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국주의 체제의 동아시아 내 갈등 문제와 북한 사회 성격 문제라는 근본적인 문제 말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으면 깊어졌지 말이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강력한 조건이 붙어야 한다.

첫째, 정규적인 일상 활동을 공유하는 통상적인 정당이 아니라 선거연합 성격의 정당이어야 한다. 그런 정당이 어떤 모습일지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주도로 형성된 총선공투본을 정당 형태로 발전시킨 모습을 상상하면 이럭저럭 비슷할 것 같다. 명칭은 예컨대 ○○당(정의당), ○○당(진보연대), ○○당(**당) 하는 식이면 될 것이다.

둘째, 정의당과 자민통계 그리고 둘의 완충지대 격인 제3세력을 다 당 중앙에 포함해야 하지, 이 가운데 하나만 포함하는 연합이라면 불안정할 것이다.

(노동자연대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 그 제3세력에 포함되려 애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정의당과 자민통계의 합법 전술용 정당은 집권해 개혁 입법으로 사회를 개혁할 목적으로 선거에서의 승리에 맞춰진 정치 조직이다. 유권자 영합주의의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의원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의원단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내 사회주의자들의 처지는 녹록하지 않다. 이때 의회 밖에서 벌어지는 운동만이 사회주의자들이 당내 우파의 압력을 버텨 내고 원칙을 고수할 힘을 줄 텐데, 이 점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정견을 내놓으면서 독자적 조직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당직선거나 공직선거 등을 둘러싼 갈등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선거연합당은 대선을 앞두고 더민주당(물론 국민의당도) 같은 자본주의 정당과 연립 협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 정의당 못지않게 자민통계도 부르주아 정당과 연립하기를 갈망한다. 선거연합당의 목적은 선거에 대처하는 것이다. 진보·좌파 측의 단일 후보를 선출 또는 선정해 그 후보가 선거 운동을 이용해 기존 체제를 비판하고 노동자 투쟁을 찬양·고무하게끔 해야 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과 협약을 맺는다면 그 정당은 기존 체제를 좌파적 견지에서 비판하지도 못하고, 또 노동자 투쟁을 확실하게 지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정치 조직이라면 도대체 뭐에 쓸 것인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부터 독자 후보의 사퇴 불가를 분명히 못박자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주장이 두 가지 점에서 부적당하다고 본다. 첫째, 이 문제를 지금부터 확실히 하자고 강조하는 건 선거 전술에서 후보 거취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좌파의 선거 참여는 후보 개인 중심의 활동이기보다는, 후보 주위에 결집한 선거 운동과 그 선거 운동을 지지하는 훨씬 더 폭넓은 대중 운동이 돼야 한다.

둘째, 아무리 대선이 1년반밖에 안 남았다고 해도 후보 거취 문제를 지금부터 확정해 두겠다는 건 새 연합체에 참여할 세력의 폭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효과를 낸다. 계급 투쟁의 수위와 부르주아 야당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나중에 투표 방침을 정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참여를 주저하도록 만들 수 있다.)

투 트랙 전략 자민통계의 ‘상설연대체+진보대통합당’ 구상은 인민전선 전략의 양대 축이다. ⓒ사진 출처 참세상

더 중요한 게 있다

자민통계와 정의당, 그리고 다른 진보·좌파 단체들이 연합할 수 있는 더 중요한 틀은 제한된 구체적 이슈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공동전선들이다. 이것이 선거연합당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뒤따른다. 자민통계는 진정한 공동전선을 우회해 언제나 민중전선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는 이를 민중총궐기 준비 단계에서 보았다. 물론 민중총궐기는 실제로는 압도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 총궐기였고(전체 참가자 9만 명 가운데 7~8만 명), 노동자들의 거리 항의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중총궐기를 제안하고 계획한 노조 지도자들과 노조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노동자 운동을 중간계급들이나 심지어 자본주의 정당과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는 경향이 있다. 즉, 인민전선으로 연결시키려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민중주의자들, 특히 자민통계가 말하는 ‘상설연대체’는 그들이 추진하는 진보통합정당과 한 짝을 이루어 인민전선 전략에 이바지하도록 구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보통합정당 대신에 사안별 공동전선을 대안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경제적·정치적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에게는 민주노총에 기반을 둔 정당이라는 아이디어가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비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당 설립을 추구하기보다는, 지금으로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이 걸린 당면 투쟁을 더 신경써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때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결집체를 구축할 수 있다.

입력 2016-06-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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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정치 방침과 진보대통합당 안에 대해

김인식

총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 문제가 민주노총 상층 간부들의 제일가는 관심사가 됐다. 내년이 대선이기 때문에 이 논의는 곧 일선 활동가들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에서 주요 쟁점은 새 노동자 정당 건설 문제다. 부울경연합을 필두로 해 자민통계가 일제히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 안(案)을 주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울산에서 두 명의 노동자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에 크게 고무돼 ‘민주노총당’을 만들자고 촉구하고 있다.

우선순위 선거연합이나 진보대통합당 등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대중투쟁 건설에 도움이 되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사진 이미진

그러므로 많은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게 진보대통합당 안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진보대통합당이 정계 진출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통합진보당이 분열한 뒤로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게는 마땅한 정치적 표현체가 없었다.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이 정의당으로 가긴 하지만, 이 당은 과거 민주노동당만큼 민주노총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신승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전현직 민주노총 간부들 일부가 진보대통합당 건설 활동에 나서고 있다. 박유기 현대차 지부장도 최근 울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비슷한 생각을 말했다. “노동자가 후보 단일화의 여세를 몰아 진보정당 단일화도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민통계의 프로젝트

개혁주의적인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일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진보대통합당 안은 본질적으로 자민통계의 프로젝트다.

진보대통합당과 상설연대체는 자민통계의 핵심 전략을 이룬다. 자민통계는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정당을 건설하지 않고 진보대통합당이나 전선체 안에서 움직이는 것(또는 전선체로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오랜 스탈린주의 전통이 있다. 이때 합법적 진보대통합당이 제도권 정치를 맡고, 상설연대체가 대중 투쟁을 담당한다. 이 프로젝트가 가리키는 전략적 방향은 인민전선이다.

인민전선 전략의 뼈대는 노동계급만으로는 신자유주의와 냉전 수구 반통일 세력에 맞설 수 없으므로 중간계급과 (심지어 부르주아지 일부와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자본주의 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전략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각각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에게 상당한 선거적 실리를 안겨 줬다. 그러나 기본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계급 간 동맹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의 힘을 약화시킨다. 정치 동맹자들이 곧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중연합당은 자본주의 야당과 체계적으로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진할 수 없었다. 더민주당 등 자본주의 야당이 선거적 실익이 없다는 계산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부 선거구들에서 민중연합당 후보가 자진 사퇴하는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가 있었다.)

그렇다고 자민통계가 인민전선 전략을 폐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인민전선은 자민통계의 역사적 전통이다. 전통은 물질적 토대가 변하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여기에 울산의 선거적 성공이 자민통계로 하여금 내년 대선에서 인민전선(연립 정부)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 것 같다.

진보대통합당은 인민전선을 실현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자민통계가 총선 직후 신속하게 ‘어게인 민주노동당’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권오길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민주노총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과거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는 달라진 형편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이 직면한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들었다. 반면, 현재 민주노총은 진보대통합당 건설을 주도할 힘이 1990년대 후반 같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여타의 정치 세력들이 연합해 상시적인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 진보대통합당의 발상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의 강력한 근거는 울산의 경험이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모든 정파가 총단결하고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선거 운동을 해 계급 투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노동자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분명 통쾌한 일이었다. 또, 계급과 정치 성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일부 좌파의 주장이 틀렸음도 보여 줬다.

그러나 울산의 경험을 곧장 전국화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울산의 경험을 이치에 맞지 않게 억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울산의 승리를 “진보당의 정치적 복권”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물론 당선한 두 후보는 진보당 출신이다. 그러나 결정적 승인(勝因)은 그들이 노동자 후보이자 진보·좌파의 단일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진보당의 계승 세력으로 여겨진 민중연합당의 전국 득표는 극히 저조했다. 진보대통합당 안 — 진보당도 진보대통합당을 표방했다 — 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무리하게 갖다 붙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과잉 일반화 울산의 승리를 "진보당의 복권"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사진 출처 민중연합당

정의당의 기본 성장 전략

정의당은 지난해 말 민주노총의 선거연합당 제안조차 내키지 않아 한 바 있어,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정의당 지도부가 진보대통합당 안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에 당선한 진보 국회의원 8명 중 6명이 정의당 소속이다. 원내에서 정의당이 다수인 것이다. 크게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할 법하다.

둘째,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진보대통합당보다는 더민주당과의 야권연대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물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 둘이 길항관계인 것은 전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의당 지도부는 야권연대를 적극 제안했지만, 더민주당이 우클릭 하면서 이 제안을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정의당의] 지역구 의석은 최소화됐다.”(정의당 중앙당 20대 총선 평가기획팀이 제출한 ‘정의당 20대 총선 평가’에서)

여기서 정의당 지도부가 내린 결론은 “힘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야권연대 전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민주당 등으로부터 선거구 양보를 이끌어 내려면 지역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의당의 수도권 지지율은 10퍼센트를 상회한다. 따라서 전략적 야권연대는 여전히 정의당의 핵심 성장 전략이다.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내년 대선에서도 더민주당 등과 연립 정부를 수립하고 싶어 한다.

셋째, 정의당 안에는 스탈린주의 세력과의 합당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존재한다.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간 갈등과 북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두 정치 세력의 날카로운 차이점이 드러났다. 북한의 핵실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서해 NLL 인근 해상사격훈련, DMZ 목함지뢰 폭발 등에 대해 정의당은 북한을 강경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해 왔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내 노동·좌파 계열도 진보대통합당 안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 내심으로는 부울경연합이 정의당에 입당해 그 당 안에서 노동·좌파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정의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닌가?

자민통계가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정의당을 노동자 정당으로 보지 않고 있음을 함축한다.(일부 급진좌파도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주의적 노동자당 정의당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바라는 것이지, 노동 기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조승진

정의당이 노동계급과 맺고 있는 조직적·전통적·이데올로기적 연계가 과거 민주노동당만큼 밀접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당의 당원과 투표 기반은 주로 노동계급이다. 정의당 당원 3만 명 중 2만 명이 노동자다.(그중 민주노총 조합원이 1만 명이다.)

물론 지난해 11월 정의당에 합류한 노동계 리더 출신자 하나가 당의 비례 후보 경선에서 후순위에 배정돼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를 두고 정의당이 ‘노동을 홀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작 비례 후보 경선 때는 노동계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반면, <노동자 연대>는 당시 노동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 소속 정의당 당원이 1만 명이라 해도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의 1.25퍼센트밖에 안 된다. 즉, 정의당의 조직 노동자 기반은 아직 미약하다. 정의당이 성장하려면 조직 노동자 운동을 훨씬 더 중시해야 한다. 그 점에서 정의당의 비례 후보 결정은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의당이 노동자 정당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심상정·노회찬·이정미 의원 등은 모두 노동운동 출신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지도부와 정책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해서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헌법 안의 진보”), 그 당은 레닌이 말한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적 정경 분업 원칙 — 파업이나 임금 인상 등 경제적 쟁점들은 주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다루고, 주로 선거 문제로 여겨지는 정치적 쟁점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소속 의원들이 다루자는 것 — 에 따라 민주노총과 역할 분담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 민주노총과의 단절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심상정 의원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 극복’론이다. 그러나 이런 정경 분리는 정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을 사용하는 것을 삼감으로써,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부문주의적 약점을 강화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반면, 자민통계는 민주노총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현실에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을 부활시켜 진보대통합당을 만들려는 것으로 나타난다. 당이 계급을 대표하고, 따라서 대중 운동은 정당의 전달 벨트일 뿐이라는 스탈린주의적 당 개념을 보여 준다.

이런 당 개념 때문에 자민통계는 자신들 밖에 있는 노동계급 조직과 운동에 흔히 종파적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자민통계 활동가들은 ‘정의당에 민중성과 투쟁성이 부재하다’고 비판한다. 이 말을 선거 결과와 결부시키면 정의당의 득표는 정치적 의미가 없음을 함축한다. 뒤집어 말하면 울산의 결과만이 ‘민중적’이고 ‘투쟁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의당의 전진을 부정하는 것이자 무엇보다, 정의당에 투표한 노동자 대중을 무시하는 종파주의다. 이런 태도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진지하게 공동 행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에는 분열 요인들이 많다

물론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좌파의 단결을 바랄 것이다. 선거에서 노동자 정당들이 분열하는 바람에 자본주의 정당들이 표를 가져가는 것을 막고 노동자들의 정치 진출을 이루고자 하는 정서는 정당하다. 2012년 총선 때 경남 창원을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각각 따로 출마하는 바람에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해 노동자들이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 연대>는 지난해 말 민주노총이 선거연합당을 제안하기 전부터 이미 그런 대응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이번 호에 실린 최일붕의 ‘진보대통합당 안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기사를 보시오.)

선거연합당처럼 선거에서의 공동 대응 수준을 넘어 진보대통합당 안은 상시적인 정당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는 단결 촉진이 아니라 많은 분열 요인들을 안고 있다. 노동자 운동 안에 중요한 정치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은 이런 차이를 애써 간과하고 강령적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민통계의 역사적 전통을 봐도 그들은 서로 동의하는 구체적 요구 중심으로 투쟁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주로 자신들의 강령을 채택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의 문제점은 과거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인 진보당의 분열이 보여 줬다. 갈등을 촉발시킨 날카로운 쟁점들 — 각각 일심회 당원 제명 기도와 경선 부정 문제 — 이면에는 원칙과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 차이가 좁혀졌다는 증거는 없다. 따라서 북한 문제, 계급투쟁 문제,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와 연립 정부 문제 등이 불거지면 진보대통합당은 또다시 쓰라린 분열을 겪을 수 있다.

자민통계는 주로 패권주의를 중심으로 지난 시기의 분열을 평가하는 듯하다.(2012년 진보당 경선부정과 중앙위 폭력 사태가 성찰 항목에서 빠져 있다!) 자민통계는 패권주의를 자신들이 운동의 다수파라는 ‘숙명’에서 비롯하는 문제로 사고하는 듯하다. 그래서 조직 운영 방식 문제에 골몰한다.(《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에서도 이런 기술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층 노동자 운동에서 자민통계는 다수파가 아니다.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수준에서는 근소하게 다수일지 몰라도, 일선 활동가와 현장조합원 수준에서는 결코 다수파가 아니다. 2014년 12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좌파인 한상균 후보가 이긴 일이 이를 입증한다. 총선에서도 자민통이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게 아니다. 정의당이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자민통계의 다수성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좌파가 다수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패권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세력이 동의하지 않고 반대하는 것을 자민통계가 자주 무리하게 추진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사례를 봐도, 민주노총에 특정 정당 지지 방침을 채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정치적 쟁점을 회피하는 것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세월호 참사, 여성·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속죄양 삼기 등에 반대하고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안에는 정치적 차이들이 존재한다. 계급의식이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안에 복수의 진보·좌파 정당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조합 쟁점으로 행동 통일을 이루되, 정치적으로는 먼저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코드가 맞을 때 비로소 공동 행동을 하는 방식이어야지, 그러지 않고 ‘진보 정당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은 커다란 분열을 낳고 원한만 깊어지게 할 것이다. 그리 되면 조직 노동자 운동이 약화될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진보대통합당에 참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보다는 선거연합정당이 선거 시기에 노동계급의 단결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진보·좌파 다원주의에 입각하면서도, 사안별로 괜찮은 입장을 취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신축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한 정당이나 개인, 운동이 언제나 올바른 입장을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설연대체와 공동전선

사회주의자들은 자민통계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상설연대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대중 운동이 활성화돼 계급의식이 고양되는 특정 시기에는 포괄적 쟁점들을 아우르는 상설연대체가 그 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

게다가 자민통계의 상설연대체는 자본주의 정당과의 동맹을 지향한다. 이 때문에 2005∼06년에 격론이 벌어졌고, 민주노총이 최종 불참을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한국진보연대다.

자본주의 야당들과의 동맹 정책 때문이 아니어도 상설연대체에 좌파와 민주노총이 참여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각 단체의 당면 전망과 중장기 전략, 강조점, 정치 문화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민통계가 아니라 민주노총이 주도한다고 해도 이 점은 별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 2013년 민주노총이 발의한 ‘민중의힘’은 그 뒤 일어난 운동들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해 해산될 운명에 처해 있다.

따라서 실효성도 없는 상설연대체가 아니라 제한된 특정 쟁점들을 중심으로 공동 행동을 할 수 있는 사안별 연대체가 단결에 이롭다. 실제 투쟁 경험들을 봐도 어지간한 대중 행동은 — 2008년 촛불, 용산 참사, 세월호 등 — 사안별 연대체가 주도했다.

도시 노동계급 한국 사회 변혁의 운명은 도시에 달려 있다. ⓒ사진 이미진

노농빈 동맹이냐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냐

자민통계가 말로라도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노동 중심 진보대통합’) 한국에서 계급투쟁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자민통계는 노동계급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각계각층”을 아우를 것을 강조한다. 중간계층들이 포함된 노농빈(노동자·농민·빈민) 동맹이다.

노농빈 동맹은 자민통계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성격과 변혁 목표와 관련 있다. 자민통계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먼 미래의 문제이고, 당면 과제는 각계각층을 결집해 박근혜 정권과 냉전 우파를 물리치고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다. 즉, 민족주의·민주주의 변혁이 당면 과제인 것이고 그 주체는 노농빈 동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농빈 동맹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전략이다. 한국은 대규모 도시화와 프롤레타리아화를 겪었다. 경제활동인구 중 노동계급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경제활동인구 2천6백95만 5천 명 중 임금 노동자는 71.4퍼센트인 1천9백23만 3천 명이다.(2016년 3월 통계청 자료)

반면,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로 농민 계층은 극도로 수축됐다. 2015년 12월 농민 인구는 2백60만 명으로, 경제활동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된다.(2015 농림어업총조사) 특히 고령화가 심화됐다. 70대 이상이 17퍼센트로 가장 많고, 고령 인구(65세 이상)가 38.4퍼센트다.

빈민은 대부분 도시 노동계급의 일부이며 조직된 빈민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거나 정의당 친화적이다.

요컨대, 한국 사회 변혁의 운명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 달려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노총이 비할 데 없이 감수성 있게 대처해야 하는 차별 문제는 여성·성소수자·이주민 차별 문제다. 이들에 대한 차별이 지배계급의 분열 지배 전략에서도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입력 2016-06-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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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당대표 경선

좌파는 왜 제러미 코빈을 지지해야 하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난해 여름에 이어] 올해 여름에도 영국 노동당 당대표 경선이 치러진다. 그리고 이번에도 제러미 코빈이 선두를 달리고 있다.

그러나 두 경선의 공통점은 이것이 전부이다. 지난해와 달리 올해 당대표 경선은 노동당 의원단(PLP)이 코빈을 당대표에서 밀어내려고 격렬하게 공격한 결과로 치러지는 것이다.

코빈에 대한 지지가 훨씬 더 크다는 것도 차이점이다. 지난해 코빈의 선거 유세에 모인 사람들의 규모가 인상적이었다면, 올해는 입이 떡 벌어질 정도이다.

△8월 15일 런던에서 열린 코빈의 선거 유세에 모인 지지자들. ⓒ사진 출처 Steve Eason (플리커)

잉글랜드 북부 도시 리버풀, 헐, 리즈에서 각각 1만 명, 3천 명, 2천 명이 모였고, 잉글랜드 남서부 콘월 주의 여러 도시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이를 보면, 런던에 사는 유복한 자유주의자들이나 코빈을 지지한다는 말이 틀렸음을 알 수 있다.

노동당 좌파 성향의 저널리스트 오언 존스는 코빈 선거 유세의 의미를 깎아내리려 애썼다. 오언은 이렇게 썼다. “1983년 총선을 앞두고 마이클 풋[1980~83년 노동당 당대표]은 전국에서 대규모 집회를 개최했지만 총선 결과는 노동당에 재앙이었다.”

1980~81년 겨울 실업률 증가에 항의해 리버풀과 글래스고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에서 마이클 풋이 연설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는 조직 노동계급이 여전히 강력했던 도시에서 노동당의 대표로서, 그것도 지위가 확고한 당대표로서 연설했다. 1983년 총선에서 노동당이 큰 낭패를 본 것은 파업이 연이어 패배하고 노동당 우파가 이탈해 나간 결과였다.

전례 없는

노동당 좌파의 지도자로서, 당내 경선에서 맹렬한 공격에 시달리며 의원단의 다수가 등을 돌린 코빈의 선거 유세에 그만한 규모의 사람들이 모인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코빈의 선거 유세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참가하고 지난 1년간 노동당 당원이 증가한 것을 보면, 좌파적이면서도 진정으로 대중적인 운동이 코빈 주위로 모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노동당 의원단이 지지하는 후보 오언 스미스가 당원 구성 변화를 의식해 외견상 좌파적인 강령으로 선거운동을 하는 것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노동당 우파 성향의 의원 한 명은 <파이낸셜 타임스>에 이렇게 말했다. “약간 참담한 심정이지만, 당대표 후보로 온건 좌파 성향의 인물을 내세워야 한다는 점을 인정한다.”

정말 전례가 없는 일이 지금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1백 년 동안 노동당 내 권력 구조는 세 가지 기둥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의원단, 노동당 가맹 노동조합 지도자들, 지역위원회(CLP)의 기층 당원들이 그것이다. 그중 구심 구실을 해 온 것은 여러모로 노동조합들이다. 더 정확히 말해 그 노동조합들을 좌지우지하는 상근 간부층이라는 관료였다.

노동조합 관료의 구실은 자신들이 대표하는 노동자들의 착취 조건을 놓고 자본과 협상을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조합 관료의 목표는 노동자 투쟁을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본과 타협을 이루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조합 관료는 노동당을 포함한 노동운동 내에서 근본적으로 보수적인 세력이다.

지역위원회를 기반으로 한 [노동당] 좌파의 운동은 1920년대, 1930년대, 1950년대, 1970년대 말에 성장했다. 그때마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당대회에서 블록투표권[조합원 수에 비례하는 표를 노조 지도부에게 주는 것]을 행사해 노동당 좌파들을 패퇴시켰다.

본질적으로 노동당은 의원단과 노동조합 관료의 우파적 동맹에 의해 좌지우지돼 왔다.

그래서 노동당이 진정한 반자본주의 정당이었던 적은 없다. 오히려 노동당은 러시아 혁명가 블라디미르 레닌이 ‘자본주의적 노동자 정당’이라고 부른 정당으로, 즉 본질적으로는 노동자 투쟁에서 생겨나지만 노동자 투쟁을 기존 체제 안에 묶어 두려 애쓰는 정당으로 보는 것이 옳다.

그러나 이제 이 메커니즘이 망가지고 있다. 얄궂게도 그 이유의 하나는 노동당 우파의 지나친 자신감이다.

신노동당 시절(1994~2010년), 노동당 우파는 노동조합과의 연계를 끊어 노동당을 보통의 ’중도좌파’ 정당으로 변모시키려 애썼다.

[1994~2007년 노동당 대표이자 1997~2007년 영국 총리를 지낸] 토니 블레어는 이 목표를 성취하지 못했다. 에드 밀리밴드가 2010년에 노동당 대표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어느 정도는 노동조합의 지지 덕분이었다. 부분적으로 그 때문에 에드 밀리밴드는 노동당 우파의 핵심 요구 하나를 양보한다.

그 뒤로 노동당 대표는 평당원, 노동당에 가맹한 노동조합의 조합원, ‘명부 등록 지지자’[일정액을 납부하면 될 수 있다]의 1인 1표제로 선출하도록 바뀌었다. 노동조합의 블록투표라는 완충장치가 사라진 덕분에 지난해 당대표 경선은 영국 사회에 널리 퍼진 정치적 급진화 정서에 더 민감해질 수 있었다.

긴축과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운동은 코빈의 출마에서 그 표현을 찾았다.

당시 코빈은 신노동당계 후보들을 압도했고, 이번에도 오언 스미스를 압도할 것으로 보인다.

코빈이 승리한다면 노동당 내 권력 구조가 재편될 것이다. 평당원의 지지를 받는 당대표 코빈과 그에게 매우 적대적인 의원단이 맞서는 식으로 말이다.

지금까지 대다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코빈을 지지해 왔다. 바로 그 덕분에 코빈은 6월 23일에 치러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노동당 예비내각의 장관들이 줄줄이 사퇴하는 상황에서도 지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내 갈등이 첨예해지면서 상황이 매우 불안정해졌고, 이를 보며 코빈을 지지하던 사람들 일부가 겁을 집어먹고 있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인물이 오언 존스이다.

오언 존스는 노동당 우파를 편들지 않지만 코빈 진영이 실수를 저지르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노동당의 지지율이 ‘궤멸적’인 상황에 잘 대처하지 못한다고도 비판했다.

코빈의 앞날

이 비판은 좌파들 사이에서 광범한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이에 오언 존스는 자기 페이스북에 이렇게 답변했다. “나는 침묵하기보다는 그런 말을 했다는 이유로 내게 쏟아지는 비난을 감수하겠다. 반면 좌파들은 이 문제들을 해결도 하지 않은 채 그냥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다.”

이 말은 몹시 불쾌한 비유이기도 하지만 틀린 비유이기도 하다.

코빈과 좌파가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노동당 우파가 그들을 절벽 아래로 떠밀려 애쓰고 있는 형세이기 때문이다.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로 보수당이 혼란에 빠진 때에 노동당 예비내각에서 사퇴하며 코빈에 대한 적대를 시작한 것은 바로 힐러리 벤, 엔절러 이글 등 노동당 우파였다. 그래도 코빈을 당대표 자리에서 밀어내지 못하자 그들은 코빈의 대항마로 오언 스미스를 지지하고 나섰다.

지금은 급진좌파가 모두 코빈을 지지해야 하는 때이고, 사람들이 오언 존스에게 ‘당신은 어느 편에 서 있느냐’고 묻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도 오언 존스가 스스로 밝힌 고민은 한 가지 중요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바로 노동당이 근본으로는 선거에서 승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정당이라는 점이다. 이는 당내 우파든 좌파든 모두 받아들이는 생각이다.

코빈의 스승인 토니 벤[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 노동당 좌파 운동을 이끈 인물]은 의회민주주의 옹호자였다. 토니 벤은 영국을 경제적으로 변모시키고 영국을 유럽연합과 북대서양조약기구 NATO로부터 독립적으로 만들기 위해 의회민주주의의 힘이 확대되기를 원했다.

더 간단히 말해, 노동당 좌파는 선거에서 승리해 사회주의를 이루고자 한다. 그러므로 노동당 좌파에게도 선거와 지지율은 중요하다.

현재 노동당 지지율이 여론조사에서 낮게 나타나는 것은 보수당이 테러사 메이를 당대표로 내세워 단기적 수혜를 입고 있는 것과 [코빈에 대한] 노동당 의원단의 ‘쿠데타’가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이 결합된 결과일 수 있다. 그러나 사정이 그럴지라도 다음 몇 달 동안 노동당 지지율을 회복하지 못하면, 코빈은 오언 스미스를 격퇴하고 당대표가 되더라도 점증하는 압박에 직면할 것이다. 지금까지는 대체로 코빈을 지지했던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점점 초조해져서 그에게 당내 우파와 타협하라고 촉구하기 시작할 수 있다. [실제로, 이 글이 쓰이고서 영국에서 셋째로 큰 노조 GMB 사무총장은 “현실을 직시하자”며 스미스 지지로 돌아섰다. 그의 행동은 불과 두 달 전 GMB 대의원대회가 “분명하고 모호하지 않게” 코빈을 지지하기로 표결한 것에 반하는 것이었다. 한편, 가장 큰 두 노조인 유나이트와 유니슨을 포함한 대다수 노조는 코빈 지지를 선언했다.]

이는 노동당 좌파의 구상, 즉 코빈과 존 맥도넬이 주장하듯이 노동당을 사회운동으로 탈바꿈시키는 동시에 선거에서도 승리하는 정당으로 만들고 싶어 하는 구상에 내재된 긴장을 보여 준다.

대중 투쟁의 리듬이나 필요는 선거의 리듬이나 필요와 달라서, 그 둘은 꽤 어긋날 수도 있고 심지어는 서로 충돌할 수도 있다.

바로 이 때문에 사회주의노동자당 SWP는 노동당 바깥에 있으면서 대중 투쟁 건설에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우리가 보기에 선거는 계급투쟁이 일어나는 여러 전선의 하나일 뿐이고, 가장 중요한 전선도 아니다.

우리는 대중운동을 건설하고 그에 대한 지지를 조직한다. 우리는 그런 대중운동을 통해 대중이 스스로 삶을 직접 통제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코빈 주위에 결집한 운동이 이 목표의 성취에 일조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우리는 노동당 우파에 맞서 코빈을 확고히 지지한다.

좌파는 모두 코빈이 오언 스미스를 물리칠 수 있도록 더 넓은 노동운동 안에서 코빈 지지 운동을 벌여야 한다.

코빈이 확실한 승리를 거둔다면, 영국 좌파가 더 투쟁적이고 원칙적인 기초 위에 서도록 할 진정한 기회가 올 것이다.

그러나 이 기회를 붙잡는 과정에서 좌파(노동당 안에 있는 좌파든 바깥에 있는 좌파든)는 모두 쉽지 않은 전략적·전술적 선택의 기로에 설 것이다.

판돈이 매우 크다.

입력 2016-08-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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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이렇게 생각한다 ― 정의당 당명 개정

노동 친화적이고 정치적으로 선명한 당명을 채택하길 바란다

[프랑스혁명으로] … 지금 처음으로 햇빛이, 이성의 왕국이 나타났다. 이제부터는 미신과 편견, 특권, 압제가 영원한 진리와 영원한 정의, 자연에 기초한 평등, 양도할 수 없는 인권으로 대체되지 않으면 안 되었다. …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이 이성의 왕국이 이상화된 부르주아지의 왕국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영원한 정의가 부르주아의 정의로 실현되었다는 것, 평등이 결국 법 앞에서의 부르주아적 평등이 되어 버렸다는 것, 부르주아적 소유권이 가장 중요한 인간의 권리 중 하나로 선언되었다는 것, 이성의 통치와 루소의 사회계약이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공화국으로 실현되고 그렇게밖에 실현될 수 없었다는 것 등을 알고 있다. 

-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공상에서 과학으로 — 사회주의의 발전≫ 중에서

정의당이 당명 개정을 추진한다. 이는 지난해 노동·정치·연대, 진보결집더하기(+), 국민모임 등과 통합하면서 합의한 바에 따른 것이다. 지난해 11월 22일 4자 통합 당대회에서 총선이 끝나고 6개월 이내에 새 당명을 당원 총투표로 정하기로 했다.

9월 12일부터 별도로 개설한 “당명 제안·추천 게시판”에서 제한없이 추천을 받고 이 중 추천이 많은 5개를 9월 25일 당대회에서 1개로 압축해 당원 총투표에 붙여 결정한다.

나경채 공동대표를 위원장으로 한 당명개정위원회가 전국의 당원들을 만나며 의견을 들었는데, 정의당 당명을 고수하자는 입장부터 노동 중심성과 진보적 지향성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당명을 바꿔야 한다는 의견까지 다양했다고 한다. 이 후자 쪽 의견은 영남 노동벨트의 노동자 당원들 정서에 가깝다고 한다.

우리는 정의당의 새 당명이 노동자 운동과 좌파적 지향성을 분명히 드러내는 것으로 결정되길 바란다. 참여당계 정의당 당원들은 대체로 노동 중심성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은 정의당의 오른쪽 경향을 나타낸다.

그러나 정의당이 성장한 계기는 세월호 참사가 청년 세대에 준 정신적 충격과 함께, 박근혜 집권 3년여간 쌓여 온 분노, 그리고 노동자들의 노동개악 저지 투쟁이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1년 즈음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 투쟁이 떠오른 이면에는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분노와 저항이 있었다. 또한 비록 파업과 결합되지 못하긴 했지만 11월에 민주노총 노동자들 주도로 민중총궐기가 크게 일어났다.

정의당이 노동자 투쟁과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 등을 지지하고 이 투쟁을 대변하려 한 것이 올해 초 청년과 조직 노동자들 사이에서 지지가 늘어난 배경이다.

노동운동에서 지지 기반을 강화하려 노력한 덕분에 정의당은 노회찬 원내대표가 경남 창원에서 민주노총 전략후보로 당선했고, 국민의당이 반새누리 비민주 성향의 표를 일부 가져가는 악재 속에서도 1백70만 표가 넘는 정당비례 득표를 했다.

이는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조사에서 조합원 42퍼센트가 이번 총선에서 정의당에게 투표했다는 결과가 나온 것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된다.

물론 정의당 지도자들은 사회민주주의를 추구하므로(국제적으로 보면 중도좌파) 정의당이 일관되게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을 추구하는 정당은 아니다.

그럼에도 새누리당의 참패와 정의당과 울산 노동자들의 총선 성과가 노동자 투쟁에 어느 만큼의 자신감을 줬듯이, 노골적인 자본주의적 정당들이 판치는 공식 정치에서 정의당이 노동자 친화적인 우군의 모습을 더 강화하는 것은 노동자 투쟁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정의당이 노동자들 속에서 더 많은 지지를 받으려면, 더 노동자 투쟁 친화적이고 공공연한 자본주의 야당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노선을 향해야 할 것이다.

이런 정치적 방향에 걸맞은 당명이 채택되길 바란다. 총선을 치르면서 정의당이라는 당명이 대중에 널리 알려져 그 당명을 선호하는 당원들도 있겠지만, 선거적 실리보다는 노동자 운동의 이익이라는 면에서 길게 볼 줄 알아야 한다. 또한 통합의 조건으로 당명을 개정하기로 합의한 만큼 정의당이 성장의 토대로 삼을 사회 세력과 과감한 사회 개혁 의지가 잘 드러나는 당명으로 바꾸기를 바란다.

입력 2016-09-1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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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제러미 코빈의 대표 연임 성공

우파와의 ‘타협’이 아니라 투쟁을 건설하는 발판이 돼야 한다

김종환

지난 9월 24일, 노동당 우파의 탄핵 시도로 시작된 영국 노동당 당대표 경선에서 제러미 코빈은 지난해보다도 더 높은 62퍼센트 득표율로 연임을 확정 지었다. 노동당 우파는 당 중앙집행위원회(NEC)를 통해, 올해 1월 이후 입당한 13만 명(대부분 코빈 지지자들)뿐 아니라 각종 구실을 들어 추가적으로 수만 명의 투표권을 박탈했지만 코빈을 대표직에서 쫓아내는 데 실패한 것이다.

코빈의 압도적 승리는 긴축과 인종차별, 전쟁에 대한 광범한 반감이 매우 크다는 것을 보여 줄 뿐 아니라 그런 반감을 좌파적 대안으로 결집시킬 수 있음을 보여 준다.

△코빈의 경선 승리 소식에 기뻐하는 지지자들. ⓒNeil Terry

코빈의 연임 확정으로 노동당 내 좌파는 더더욱 활력을 얻은 듯하다. 노동당 예비내각의 재무장관이자 코빈의 오른팔로 불리는 존 맥도널은 경선 직후 다음과 같이 말했다. “노동당에서는 더는 우리의 비전을 어떻게 표현할지 망설일 필요가 없다. 사회주의라고 당당하게 말하면 된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코빈의 승리라는 고무적인 소식을 이용해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다. 이번 경선 과정에서 코빈은 가는 곳마다 수많은 지지자들을 끌어 모았다. 그 사람들이 거리 시위와 작업장 행동에도 참여하도록 이끄는 것이 중요하다.

당장 10월 2일 보수당 당대회장 앞에서 벌어질 규탄 시위와 10월 8일 ‘인종차별에 맞서 일어서자’(Stand Up to Racism) 주최 집회(코빈도 연사로 참가한다)가 있다. 또한 노동당 지역구에서 벌어지는 긴축 반대 투쟁들도 있다.

노동자들은 파업과 시위에 참가할 때 인종차별적 생각이 아니라 급진적 생각으로 더 이끌리기 쉽다. 그래서 혁명적 좌파인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노동당 바깥에서 독자적인 조직을 유지하면서도 코빈의 승리를 축하하고 코빈을 지지하는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건설하고 있다.

반면, 코빈 등 노동당 좌파가 원내 정치를 의식해 당 내부 단결에 골몰하는 것은 이런 자신감과 열기를 식히는 데 일조할 공산이 크다. 단적으로, 노동당 의원단에서 압도 다수인 우파를 포용해야 한다는 압력이 큰데 그들은 코빈 지지자들이 원하는 것과 정확히 반대되는 것―더 많은 긴축과 전쟁, 난민 규제―을 원한다.

노동당 우파만 문제가 아니다. 코빈을 지지했던 예비내각의 국방장관은 최근 핵잠수함 트라이던트 업그레이드에 막대한 비용을 지출하는 것을 지지하고 이것이 “당론”이라고 발언했다. <가디언>은 노동당의 단결을 도모하기 위해 코빈 자신이 이런 타협을 택한 것이라고 보도했는데, 만일 사실이라면 큰 후퇴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코빈이 높은 지지를 누린 것은 선명한 좌파적 주장을 개진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기성 정치권에 맞서 싸울 수 있다는 기대감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이다. 코빈과 노동당 좌파가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코빈 지지자들이 바라는 사회 변화를 일관되게 추구하려면 원내 정치보다 거리와 작업장의 운동을 우선시해야 한다.

입력 2016-09-2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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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 당 대표 재선거 ― 동학과 전망

마크 L 토마스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 활동가)

영국의 올해 여름은 노동당 대표직을 놓고 격렬한 전투로 점철됐다. 노동당 의원단(PLP) 다수는 제러미 코빈을 맹공격하는 데 브렉시트 투표 결과를 활용하기로 도박을 걸었다. 코빈이 보수당의 [영국의 EU] 잔류파와 함께 [잔류 지지] 투표를 독려하는 것을 거부했을 뿐 아니라 완전히 정당한 유럽연합 비판 입장도 거둬들이지 않았으니(올바른 행동이었다), 유럽연합 잔류 문제에 열성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는 구실이었다. 애초 그들은 당원 투표라는 모험을 감수하지 않고 코빈이 사퇴하도록 압력을 넣었다. 하지만 노동당 의원 2백30명 중 1백72명의 불신임 투표로도, 예비내각 성원들의 연이은 사퇴로도, 노동당 의원단 회의에서 코빈에게 빗발친 (한 보고서에 따르면 “코빈의 인간성을 무너뜨리기 위해” 계획된) 모욕으로도 코빈을 물러나게 만들 수 없었다.

거대한 대중이 즉각적으로 코빈을 방어하려고 모인 것은 코빈의 결의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코빈은 그에게 혹독했다는 노동당 의원단 회의 후 국회에서 나와 곧바로 국회 앞 광장에 모여 있던 5천 명이 넘는 대중(집회가 불과 24시간 전에 호소됐는 데도 결집한 사람들이었다)에게 연설하러 갈 수 있었다. 대중은 노동당 의원단의 계략을 매우 경멸하며 코빈에 대한 지지를 보여 줬다.

△코빈은 평범한 사람들의 지지에 힘입어 당내 우파에 도전하고 있다. 리즈에서 지지자들과 만나는 코빈. ⓒ<소셜리스트 워커>

이후 몇 주 동안 이런 패턴이 반복됐다. 노동당 의원단이 계략을 부리고 대중매체가 그 계략을 열심히 부풀리면, 거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중집회가 코빈을 방어하는 식이었다.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운동 중 코빈이 연설한 집회 규모도 충분히 인상적이긴 했지만, 이번 여름 집회 규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잉글랜드 북부 도시를 주말에 돌아다니면서 코빈은 리즈에서 2천 명, 헐에서 3천 명, 리버풀 전역에서 5천~1만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참가한 열광적 대중 집회에서 연설했다.

대중집회의 규모는 노동당 열세 지역에서도 인상적이었는데, 밀턴케인스에서 1천5백 명이, 콘월주 레드루스에서는 수천 명이 집회를 벌였다. 노동당 당원 수도 급증했다. 불과 몇 주 만에 10만 명이 노동당에 가입했다. 노동당 당원 수는 이제 55만 명 정도로, 블레어 지도부 시절 1997년 총선에서 승리한 직후 찍었던 정점(40만 5천 명)보다도 높다.

토니 블레어* 시절과 얼마나 많이 달라졌는지 보여 주는 한 가지 사례가 있다.

토니 블레어

1994~2007년 노동당 대표로서 ‘제3의 길’을 주장하며 우경화를 이끌었고,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함께 했다.

노동당 우파들은, 존 스미스 지도부 시절[1992~94년] 처음 사용했고 이후 토니 블레어가 1990년대에 당내 좌파를 성공적으로 격퇴하는 데 이용했던 “1인 1표”라는 무기를 ­버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조합원 수에 비례하는 표를 노조 지도부에게 주던 블록투표제 대신에] “1인 1표”를 도입하자는 요구는 노동당 내 노조 지도자들의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간접적으로나마 노조 지도자들이 반영하던) 계급 정치의 영향력도 약화시키며, 노동당 좌파를 민주주의 반대파인 양 수세로 몰아넣기 위해 고안된 것이었다. 원자화된 새로운 당원들은 1980년대 대처 집권기와 이후 1992년 보수당 존 메이저를 상대로 노동당이 겪은 연이은 선거 패배와 대중매체의 [주장에] 영향을 받았는데, 그 덕에 토니 블레어는 자신의 뜻대로 당을 바꾸고 선거 승리를 위한 길을 닦을 수 있었다.

강행

1인 1표제 요구 전술은 성공한 듯했고 이후 노동당 우파의 단골 전술이 됐다. 그래서 2013년까지만 해도 노동당 우파는 1인 1표제를 활용해 ‘콜린스 개정’을 성공적으로 강행 통과시켰다. ‘콜린스 개정’은 ‘명부등록 지지자’ 자격으로 비당원들에게 당내 투표권을 부여하고, 노동당 연계 노조 소속 당원들에게는 당내 선거에서 투표권을 얻으려면 직접 “사전등록”해야만 하도록 강제하며, 노동당 대표 선거에서도 의원·노조·당원으로 구성된 선거인단이 선출하는 기존 방식을 버리고 1인 1표제를 도입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당규 개정안이었다. 이런 개정을 추진한 데는, 유권자들이 노동당 의원단(과 대중매체)의 영향력에 더 많이 휩쓸릴 것이고 나아가 대표 선출에서 노조 지도자의 영향력은 약화할 것이라는 가정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노동당 좌파가 치명상을 입기는커녕 ‘죽었다 살아난 나사로’처럼 코빈을 중심으로 부활하는 것을 목도한 노동당 우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노동당 우파는 1인 1표제에서 황급히 후퇴해야 했다. 법정에서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까지 당 기구를 움직여 당 대표 선거에서 신입 당원을 배제시켰다. 또한 규정을 바꿔 투표인단 등록비를 3파운드에서 25파운드로 대폭 올렸고, 등록 기간도 이틀로 줄여 버렸다. 또 코빈의 후보 등록 자체를 차단하려다 실패했다.

이 모든 것은 코빈 지지자들을 막말꾼·폭력배·유대인혐오로 모는 끈질긴 비방 운동과 결합됐는데, 가장 최근 있었던 말도 안 되는 주장으로는 트로츠키주의자들이 노동당에 침투했[기 때문에 당이 혼란스럽]다는 것이었다. 마치 코빈에 대한 광범한 지지가 그 때문이기라도 한 듯 말이다.

노동당 우파의 이런 전술은 그들이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증거다. 또 다른 증거는, 노동당 의원단이 당 대표 선거를 피할 수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서 후보로 내세운 (평범하기 그지없는) 오언 스미스가 정작 블레어와 거리를 두려고 한다는 것이다. 또한 스미스는 자신이 사회주의자라고 다소 어설프게 주장하며 코빈의 정책 상당수를 베끼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지난해 코빈의 놀라운 승리를 가능케 한, 해결되지 않은 모순이 분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다른 나라에서는 급진 좌파적 대안에 대한 열망이 그리스의 시리자처럼 주류 사회민주당 바깥의 더 작은 좌파 세력으로 가거나 스페인의 포데모스처럼 완전히 새로운 정당에 갔지만, 영국에서는 껍데기만 남은 듯했던 노동당 내부에 자리잡았다. 당 대표가 의원 80퍼센트의 지지를 잃으면 사퇴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정치인과 논평가들 사이의 상식이다. 그러나 코빈은, 의회주의 정당에서 통상적으로 의원단의 이해관계를 가장 잘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당 대표로 선출되는 것과 다른 경로로 대표가 됐다. 오히려, 코빈은 노동당 의원단이 보수당의 복지 국가 공격과 긴축에 아무런 실질적 반대를 내놓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을 등에 업고 선출된 것이다.

그 때문에, 코빈이 노동당 의원단 내에서 지지가 약해지면 코빈 지지자들은 그를 방어하기 위해 대중집회를 거듭 벌일 수밖에 없다. 노동당 선거구 모임에서, 대중 집회에서, 그리고 거리 시위에서까지 말이다. 그 과정에서 코빈 지지자들은 노동당 우파, 대중매체, 법원 등 지배계급 권력 핵심 방어물 중 적어도 일부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러면서 더 큰 정치적 쟁점이 제기됐고, 노동당 좌파들 사이에서 더 큰 조직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노동당 의원단 다수와 노동조합 관료 다수 사이의 분열이, 현재 노동당 내 세력 관계에서 좌파들이 우세한 데에 (9월 24일 발표될 대표 선거 결과에서 코빈이 승리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 데서도 이를 알 수 있다)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노동당 연계 노조 중 네 군데만이 오언 스미스를 지지한 반면, 코빈은 노조 여덟 군데의 지지를 받았다. 특히 가장 규모가 큰 노조들인 유나이트(UNITE)와 공공서비스노조(UNISON)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코빈을 지지했다.

주요 노조 지도자들이, 노동당 정부가 토니 블레어와 고든 브라운 때보다 코빈 하에서 자신들의 요구에 좀더 우호적이 되길 바라며 코빈을 지지한 것이 코빈에게 큰 보탬이 됐다. 그러나 이 지지는 무조건적이지도 균등하지도 않다. 유나이트 위원장 렌 맥클러스키는 <가디언>에 이렇게 말했다. “나는 코빈이 당 대표가 되더라도 득표력 면에서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코빈은 대안적 조처를 시행할 수 있는 능력을 얻고자 합니다. 그에게 기회가 주어져야 합니다. … 지금 코빈을 제거해야 한다는 발상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맥클러스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장차 바뀌지 않으면 지지를 철회할 수도 있다고도 암시했다. “만약 새 당 대표를 뽑아야 한다면, 총선을 불과 한 달여 남겨 놓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다음 총선까지 2년 남는 시점인] 2018년을 거론하는 것입니다.”

공공서비스노조 사무총장 데이브 프렌티스는 좀 더 직설적이었다. 공공서비스노조 명의로 코빈 지지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프렌티스는 [노동당 우파] 국회의원·지방의원·당 간부들에 대한 “마녀 사냥”[노동당 우파에 대한 코빈 지지자들의 비판을 주류 언론이 매도할 때 사용하는 용어]도 비판하며 전당적 단결을 요구했다. 공공서비스노조 지도부는 실질적으로 우파에게 화해의 손길을 내민 것이자 우파를 공천 탈락 등으로 징계하는 그 어떤 시도에도 반대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노동당 연계 노조 중 각각 셋째와 넷째로 큰 일반노조(GMB), 상업유통노조(USDAW)는 오언 스미스를 지지했는데, 이는 노동당 우파가 노조 관료 중에 여전히 동맹을 두고 있다는 점을 보여 준다. 행여 나중에라도 거대 노조인 유나이트와 공공서비스노조가 코빈에게서 등을 돌리게 된다면 코빈의 입지는 훨씬 더 어려워질 것이다.

구호

노동당 우파는 이렇게 을러댄다. “좌파는 선거에 이길 수 없다”, “제러미 코빈은 마이클 풋*의 재탕이다”, “노동당은 1983년 수준으로 재앙적인 지지나 받던 처지로 돌아가기 직전이다” 등.

마이클 풋

1980~83년 노동당 대표로 당시 언론은 그를 극좌로 묘사했으나 실제로는 주요한 문제에서 번번히 우파와 타협했다.

이들이 간과하는 것은, 약 10년 전부터 노동당 우파 자신도 득표력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내 우파인] 톰 왓슨 같은 사람들이 토니 블레어(이 자는 적어도 2006년부터는 노동당이 표를 잃는 데 기여했다)를 밀어내는 쿠데타를 감행하고는 (토니 블레어와 함께 신노동당 계획의 핵심 설계자였던) 고든 브라운을 다음 당 대표로 추대했던 것이다. 그러나 위기를 막을 수 없기로는 고든도 블레어와 다를 바 없었다. 정말이지, 신노동당 지도부는 이미 2010년에 노동당 지지율을 1983년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1983년 노동당은 8백45만 6천 표(전체의 27.6퍼센트)를 받았는데, 2010년 노동당은 그보다 고작 15만 표 많은 8백60만 6천 표(전체의 29퍼센트)를 받았다. 게다가 1983년을 제외하면 노동당이 1935년 이래 총선에서 1천만 표 이하를 받은 것은, 토니 블레어·고든 브라운·에드 밀리밴드가 지도부로 있던 2005년, 2010년, 2015년뿐이었다. 그 기간에 스코틀랜드 의회 내 노동당 의석 수도 41석에서 1석으로 폭삭 주저앉았다.

그렇다면, 코빈을 지지하며 노동당에 들어온 수십만 명은, 총선 승리를 위해 [노동당 지지 편으로] 설득해야 할 수백만 명과 어떻게 관계 맺을 것인가? 시장에 도전하고, [민영화에 맞서] 재국유화를 제시하고, 이민자를 탓하는 온갖 괴담에 맞서는 등 급진적인 노동당 강령을, 지도부가 앞장서서 효과적으로 제시한다면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 또, 노동당이 대중 정당으로 되살아나면, 오랫동안 노동당이 연계를 맺지 않아 온 지역 공동체와 작업장들에서 이런 주장을 전파할 활동가 네트워크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급진적인 노동당 강령을 지지하게 하려면, ‘시장을 거스를 수는 없다’고 주장하는 지배계급 사상에 도전할 만큼 자신감이 전반적으로 고양되는 것이 사활적이다. 그리고 이는 투쟁 수준에 결정적으로 달려 있다. 고립되어 있고 수동적인 노동자보다 집단적 투쟁에 활발히 참여하는 노동자들이 대중매체가 유포하는 주장을 거부할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이런 지적에 수긍한다면 그런 투쟁을 건설할 필요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노동당이 분열할 수도 있을까? 분명, 코빈에 반대하는 의원들이 당을 쪼개 나갈 것이라는 추측이 많다. 1981년에는 벤 좌파가 반대파를 공천에서 탈락시키겠다고 위협한 데서 분당 움직임이 촉발됐다. 그러나 그러고서도 겨우 의원 28명만이 사회민주당으로 떠났을 뿐이다. 사회민주당은 당시 여론조사에서 놀라운 지지를 얻으며 (옛 자유당과 동맹을 형성한 뒤) 1983년 [총선에서] 거의 8백만 표를 득표했는데도, 결국 노동당을 대체해 제1야당이 되기는커녕 결정적인 돌파구조차 만들지 못했다. 사회민주당을 만들었던 야심 있는 국회의원들은 이후 다시는 장관직을 맡지 못했다.

코빈에 반대하는 의원들의 관점에서 봤을 때 최소한으로 말해도 분당은 상당한 도박일 것이다. 공천 탈락 이야기가 현실이 되면 몇몇 의원들이 분당을 시도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코빈 반대파 의원들이] 코빈에 맞서 소모전을 벌이면서 코빈의 정치를 온건하게 하려 압박하고, 노동당 의원 중 적어도 일부와 동맹을 맺고자 하려 들 것이라는 전망이 더 가능성 있다.

거부

다시 말해, 지난해의 패턴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이다. 코빈에 반발하는 노동당 우파와 의원단 다수가 코빈의 지도를 거부하면서도 코빈을 내쫓을 수는 없는 상황 말이다. 코빈은 노동당 의원단과 협력하려 시도했었다. 지난 12월, 힐러리 벤이 의회에서 시리아 폭격 찬성 연설을 했음에도 예비내각 외무장관에서 파면하지 않기로 한 코빈의 결정은, 대표적 사례이지만 비슷한 사례는 더 많다. 힐러리 벤은 이후 코빈에 충성하기는커녕 코빈에 맞서 예비내각 내에서 반란을 조직하는 데에 그의 지위를 이용했다.

코빈 지지 단체 ‘모멘텀’ 내 다수는, 코빈의 지시를 따르길 거부하는 의원들과 노동당 우파들에 대해 더 분명히 선을 긋는 것을 바라 마지않는다. 그러나 동시에 코빈이 반대파와 단결을 유지해야 한다는 압력도 상당하다. 코빈을 지지하는 일부 노조 관료들도 이런 압력을 보내고 있다.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은 반대파로부터 코빈을 단호하게 방어하는 데서 출발한다. 하지만 계급투쟁 수위가 높아지면 코빈의 지위도 훨씬 강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코빈이 선거를 승리로 이끌 수 있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그러려면 노동당 내부 싸움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더 큰 노동계급 저항을 북돋기 위해 뭉친 사회주의 조직이 필요하다. 그리고 노동당의 오랜 전통이었던 정치와 경제 사이의 분리를 거부하기도 해야 한다. 노동당 좌파도 이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중요하게로는, 노조 관료가 싸우려 하지 않을 때 코빈을 지지하지 않는 관료들뿐 아니라 코빈 측 관료들에도 도전할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혁명가들은 이런 주장을 인종차별 반대, 파업 연대 건설, 전쟁 반대 운동 등에서 새로운 세대의 노동당 좌파들과 함께 행동하면서 참을성 있게 펼쳐야 한다. 또한 혁명적 좌파는, ‘지배계급은 지금도 정치적으로나 언론을 이용해서나 코빈을 이토록 물어뜯는데, 코빈이 총리가 됐을 때는 어떻겠는가?’ 하는 단순명료한 질문 또한 던져야 한다. 여지껏 지배계급은 자신들의 무기 중 극히 일부만 활용해 왔다. 역사를 돌아보면, 지배자들은 개혁적 성향의 노동당 정부가 들어서면 영국 자본주의의 안정성과 수익성에 해를 끼치지 않게 하려고 투자 파업, 통화 위기, 고위 공무원과 사법부의 사보타주, 첩보 기관 등을 이용한 계략을 부렸던 바 있다.

[그런 점에서] 한때는 자율주의자였지만 지금은 코빈 지지자인 폴 메이슨(과거 트로츠키주의자이기도 했다)이 지난달 <가디언>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한 건 실수였다. “[1980년대 초반보다 오늘날] 법치가 강화되었기 때문에 … 노동당 좌파가 홀로 혹은 좌파 민족주의자들과 연립해서 권력을 잡으면 통치하는 데 있어서 국가의 정치적 사보타주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시리자에게 긴축을 수용하도록 한 공격만 봐도 알 수 있듯, 자본주의를 보호하는 방벽은 예나 지금이나 건재하다.

지금은 영국 좌파들에게 흥미진진한 시기다. 그러나 코빈을 중심으로 한 운동은 향후 수개월에서 수년 내에 거듭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 종파주의적이지 않으면서도 독립적인 혁명적 좌파가 그 운동의 궁극적 발전에서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다.

입력 2016-09-2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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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의당 당명 개정 총투표

‘민주사회당’이 새 당명이 되길 바란다

정의당은 9월 25일 임시 당대회에서 결정한 대로 “민주사회당”으로 당명 개정 여부를 10월 6일부터 시행될 당원총투표로 결정한다.

정의당 내에서는 투표 전 열흘 동안 다양한 찬반 운동과 토론이 진행됐다.

당명 개정의 필요성 논거는 두 가지 정도로 요약되는 듯하다. 하나는 절차에 근거한 것이다. 지난해 진보결집+(더하기), 노동·정치·연대, 국민모임 등과 통합 때 당명 개정을 합의했고, 이를 통합당대회에서 결정했으니, 합의를 이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논거는 “정의당”이라는 당명이 불평등과 차별이 심화되는 이 체제에서 나름의 가치도 있으나 다른 한편으로 지향하는 바가 모호해서 더 선명한 이름으로 바꾸는 게 좋겠다는 것이다.

정의당 일각에서는 이번 당명 개정 절차 자체가 비민주적이라고 비판하지만, 당명 개정은 정의당이 노동운동의 좌파 리더들을 포함한 상대적 좌파 세력들과의 통합 과정에서 합의했던 것이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현재 당원 찬반 투표 후보에 오른 대안적 당명 “민주사회당”은 좌파 지식인으로 활동해 온 한신대 노중기 교수가 제안한 것이다. 정의당 좌파 다수의 지지를 받는 듯하다. 당대회 투표에서도 압도적으로 1위를 했다.

노 교수 등 “민주사회당” 지지자들은 정의당이 사회·경제적 민주화를 추구하는 당이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려면 주류 사회민주주의부터 좀 더 좌파적인 민주적 사회주의까지 포괄할 수 있는 “민주사회당” 명이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주류 사회민주주의가 그 본산지인 유럽에서 배신과 타락으로 실패한 마당에 “사회민주주의”(사회민주당)보다는 더 왼쪽의 경향까지 포괄 가능한 ‘민주적 사회주의’가 새 당명과 기조로 좀 더 나은 듯하다. 배신의 전력 때문에 주류 사민주의가 가장 발전한 나라들(영국, 독일, 프랑스 등)에서 주류 사민주의는 약화돼 왔다. 대신에 좌파적 사회민주주의자인 영국 노동당의 코빈, 독일의 좌파당 등이 최근 개가를 올렸고, 스페인과 그리스에서도 기성 사민당의 대안으로 각각 포데모스와 시리자라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좀 더 유력하다.

물론 민주적 사회주의는 혁명적 사회주의가 아니다. 20세기 초 독일 사민당에서 점진적 개혁을 주장한 베른슈타인, 스탈린주의에서 사실상의 사회민주주의로 전환한 유러코뮤니즘 등이 “민주적 사회주의”를 표방했다. 여러 버전의 좌파 개혁주의들도 그런 명칭을 쓴다. 오늘날 구 소련의 관료 독재 체제와 정치형태가 다르다는 점을 보여 주고자 ‘민주주의’를 강조하는 듯하다.

상식의 패권

정의당 우파는 “민주사회당” 명을 부결시키자는 온라인 캠페인을 벌이는 듯하다. 참여계의 일부는 “사회민주당”(당대회에서 2등을 함)을 지지하는 듯하다.

그들은 “민주사회당”이 표방하는 민주적 사회주의는 너무 급진적이고 좌파적이라서 대중적 지지를 받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당명추천게시판에서는 “사회민주당”이 2백4명 추천으로 1등을 했는데, 당대회에서 밀린 것은 좌파들 간의 협잡이며, 비민주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당대회에서 선출된 대의원들에게서 2백2표를 받은 “민주사회당”이 게시판 추천 2백4개보다 지지를 적게 받는 것이라고 볼 아무런 근거가 없다. 그렇게 따진다면, 좌파가 낸 “평등사회당”도 게시판에서 1백60개 추천을 받았지만 당대회에선 30표도 못 받고 꼴찌를 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온라인 게시판은 민주주의의 정확한 구현 장소가 아니다. 온라인이 민주적이라면, 애초에 당대회도 필요 없을 것이다.(이런 온라인 민주주의론을 더 일반화해 적용하면, 물질적 현실에서의 실천과 조직의 중요성이 망각되기 십상인데, 실제로 억압과 저항이 벌어지는 것은 물질적 현실에서다. 온라인은 단지 가상 현실이거나, 물질적 현실의 극히 일부를 재현할 뿐이다. 그래서 온라인 민주주의론은 현실에서 저항을 진전시키는 데에서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민주사회당” 반대론은 좌파 일반에 대한 혐오적 언사들로 이어지기도 한다. 이런 행태는 “민주사회당” 반대론자들이 당 안팎에서 좌파보다 자신들이 더 다수의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착각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는 전통적으로 좌파에 반감을 가져 온 참여계 당원들의 영향도 꽤 있는 듯하다. 참여계 지도자들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가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 등 강성 좌파의 발목잡기 때문이었다고 오랫동안 책임을 전가해 왔다. 그들은 ‘상식’의 정치를 내세우는데, 상식은 입헌주의와 자유주의에 입각한 민주주의관을 넘지 않는다. 또한 상식이 경험주의적 인식에 불과하다는 건 방법론의 입문적 정보이다.

기회

물론 “민주사회당” 반대론자들의 일부는 불평등이 커지는 현실에 반발해 급진화·정치화하는 과정에서 정의당을 생애 최초의 정치적 거처로 삼은 청년들이 포함이 돼 있을 것이다.

이들은 한국에 부르주아 민주주의가 상당히 안착된 상황에서 모종의 좌파 운동과 조직의 경험이 없이 정치 세계로 들어섰기 때문에, (헌법 존중 같은) 자유민주주의적 상식의 영향을 받기가 쉽다. 게다가 개인주의에 더 익숙할 것이다.

이처럼 저항적이지만 진보적 자유주의 수준의 사고에서는 (혁명적 버전이든 좌파개혁주의 버전이든) 자본주의를 넘어서자는 좌파가 비상식적인 집단으로 보이기 쉽다. 일반으로 ‘자율’, ‘개인’, ‘유희’보다 ‘조직’, ‘노동중심성’, ‘계급’을 강조하는 좌파가 ‘꼰대’처럼 여겨질 법도 하다.

그러나 혼란된 세계관의 다른 표현인 상식으로는 경제 위기 상황에서 사회를 조금치도 바꿀 수 없다. 오히려 상식에 도전할 때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이윤 감소에 자본가들과 그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는 상식으로 알 수 없다.

지금 경제 불황, 제국주의 간 군사적 긴장 고조, 기후 변화, 세월호 참사, 지진과 핵발전의 위협, 툭하면 안전사고로 죽는 노동자 등의 사례들에서 보듯, 자본주의의 맹목적 이윤/군사 경쟁 시스템은 인류를 몰상식하게 위협하고 있다.

체제의 이런 위기와 혼돈상을 볼 때, 사회주의를 지향하는 것은 전혀 황당하거나 엉뚱한 일이 아니다. 그렇기는커녕 사회주의적 투쟁은 노동자·민중을 위해서는 아주 필요하고 공공연히 표방돼야 할 일이다. 그러려면 사회주의적 투쟁의 주축이 될 노동계급 투쟁에 대해서도 더 많은 관심과 연대가 조직돼야 한다. 이런 일들이 좌파의 정치적 ‘책임’이다.

이 점에서 “민주사회당”을 지지하는 정의당 좌파의 일부가 민주사회당 명이 꼭 민주적 사회주의를 지칭하는 건 아니라는 식으로 수세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안타깝다.

정의당은 최근 지도부 자신이 금융·공공 파업을 지지하면서 파업의 승리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고 있다. 정의당 내 우파들은 이를 “민주노총에 구걸”한다고 비하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노동자 투쟁이야말로 이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동력이다. 그리고 지금 청년들 사이에서 보듯이, (조직) 노동자 운동은 전혀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과 정의당 지도부와 의원단이 이 투쟁들을 지지하는 일은 정의당 좌파에게 정치적으로 전진할 기회가 될 수 있다. 분명하게 좌파적 비전과 지향성을 내놓고, 새로운 청년 세대들과 인내심 있게 설득과 토론, 논쟁을 해야 한다.

2016년 10월 5일

김문성(〈노동자 연대〉 편집팀을 대변해)

입력 2016-10-0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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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정의당 당명 개정 부결에 부쳐

정의당 당명 개정 당원 투표에서 “민주사회당”으로 당명을 변경하는 안이 부결됐다. 반대가 찬성보다 곱절이나 많았다. 찬성 3천3백59명(30.79퍼센트), 반대 7천5백52명(69.21퍼센트).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은 아무래도 최근 당원이 늘고 지난 총선에서도 선전한 것이 영향을 미친 듯하다. 또, 정의당은 최근 (창당 초기와 달리)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한 노동자 파업 등에도 지지·연대하고 공공연한 자본주의적 야당들과 차별화하려 노력한다. 파업 중인 철도 노동자들도 사이에서도 호감을 얻고 있는 듯하다.

이처럼 정의당이라는 기존 당명으로도 정치적 이득을 얻고 당의 인지도·지지도가 올랐기 때문에, 다수 당원들이 당명을 개정하고 싶어 하지 않은 듯하다.

하지만 선거 논리도 크게 작용한 듯하다. 2018년의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에서, 인지도가 높아진 정의당이라는 당명을 바꾸고 싶지 않았던 듯하다. 이런 당내 다수 정서 때문에 정의당 좌파가 “민주사회당”으로의 당명 개정 운동을 자신있게 펼치지 못했던 듯하다.(그러나 이는 그들의 실책이다.)

그럼에도 정의당의 당명을 더 좌파적인 지향을 담도록 바꾸려 한 시도 자체의 의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경제 위기와 제국주의의 불안정 속에서 한국 국가와 기업인들은 고통전가·친제국주의 정책을 더욱 강도 높게 추진하려고 한다. 이는 더 큰 불평등과 외교적 불안정을 낳을 것이다. 이윤 보전을 위해 비용 절감에 더 목을 매면 세월호 참사 같은 안전 사고 발생 가능성도 더 커질 것이다.

그러므로 앞으로도 노동계급과 천대받는 사회집단들 속에서 주류 사회민주주의보다 더 좌파적인 전망의 필요성은 더 커질 것이다.

정의당의 좌파들은 투표 결과에 실망하기보다, 당 밖에서 벌어지는 노동자들과 천대받는 대중의 투쟁들에 정의당 당원들이 더 밀접한 관계를 맺도록 설득하면서 좌파다운 전망을 꾸준히 제시하기를 바란다.

2016년 10월 13일

노동자연대

입력 2016-10-13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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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당선, 브렉시트, 이탈리아 국민투표…

중도의 몰락이 세상의 종말은 아니다

김종환

11월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하자 자유주의 좌파들은 종말론을 연상시키는 우울한 전망을 쏟아 내고 있다. 이들은 6월 23일 영국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EU) 탈퇴가 승리한 것과 12월 4일 이탈리아 개헌 국민투표에서 총리가 패배해 물러난 것도 동급으로 거론한다.

그러나 세 사건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힐러리의 ‘제3의 길’이 트럼프 당선이라는 ‘투표 반전’을 야기했다. ⓒ사진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투표에는 신자유주의와 제국주의를 강요하는 비민주적 유럽연합에 대한 반감이 강하게 작용했다. 이탈리아 국민투표는 마테오 렌치 정부에 대한 항의 성격이 강했는데 특히 노동조합들은 정부의 노동 개악에 반대해 투쟁을 크게 벌여 왔다.

트럼프 당선은 양상이 좀 다르다. 그는 월스트리트가 보기에도 부정직한 기회주의자이고 그의 당선으로 미국 공식 정치는 오른쪽으로 크게 한발 내딛게 됐다. 부통령으로 당선한 마이크 펜스는 이라크·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한 조지 부시의 이데올로그 중 하나였다. 더욱이 트럼프는 ‘대안 우파’라 불리는, 노골적인 인종차별주의자, 엘리트주의자들을 백악관으로 데리고 간다.

2016년 6월 이후 서방 자본주의 질서를 뒤흔든 세 사건은 공통점도 있다. 바로 신자유주의와 세계경제 위기가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정치를 불안하게 만든 결과라는 점이다.

서방 지배계급은 수십 년 동안 신자유주의를 강요해 왔다. 2007~08년 위기가 터지자 지배자들은 일시적으로 신자유주의 어젠다를 뒤로 미루고 국가 개입에 의존했지만, 체제 붕괴를 피했다는 점이 확실해지자 다시금 신자유주의를 전면에 내세웠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를 관리하는 데서도 그다지 효율적인 요법이 못 된다. 미국, 유로존, 일본, 영국 등 모든 세계 주요 경제는 중앙은행의 양적완화나 초저금리(심지어 마이너스 금리)에 여전히 의존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덕분에 부자는 다시 더욱 부유해졌고 그 대가를 평범한 사람들에게 떠넘길 수 있었다.

지난 몇 달간 투표에서 벌어진 ‘이변’들은, 신자유주의의 희생자들이 기득권층에 그 책임을 물으며 반란 표를 던진 결과다.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가 그랬고(본지 183호 ‘왜 영국은 유럽연합 탈퇴를 택했나’를 참고하시오), 미국 대선도 트럼프가 승리했다기보다는 클린턴이 패배한 선거였다.

트럼프는 미국 중서부 ‘러스트 벨트’* 5개 주에서 이긴 덕분에 당선에 필요한 선거인단을 확보했다. 이 지역에서 민주당 지지자들은 대거 투표를 안 하거나 소수는 제3의 정당에 투표했다. 트럼프가 거기서 백인 노동계급 유권자를 획득한 것이라기보단 민주당이 잃은 것이 더 결정적인 요인이다.

러스트 벨트

미국 중서부와 북동부 일부 지역을 가리키는 말. 자동차 산업과 철강 산업 등 미국 제조업의 중심지였으나 제조업 사양으로 불황에 빠진 지역들이다.

또, 트럼프는 미국 전역에서 비만·당뇨·과음 등으로 기대수명이 줄고 있는 지역들에서 이전 공화당 후보보다 표를 더 많이 받았다. 산업이 빠져 나가고 실업이 치솟은 것이 트럼프 득표의 중요한 요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이탈리아 국민투표에서도 “경제적 불만이 렌치 정권을 끝장내는 데 일정한 구실을 했다. 실업률이 높을수록 1인당 소득이 적을수록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았다.”(<파이낸셜 타임스>)

‘투표 반란’을 야기한 주된 원인으로 ‘제3의 길’을 지목할 수 있다, ‘제3의 길’은 1990년대 당시 영국 총리 토니 블레어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주창한 것으로, 전통적 사회민주주의를 신자유주의와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영국과 이탈리아에서 각각 국민투표를 주도한 캐머런과 렌치는 블레어를 본받으려는 인물들이었고, 힐러리 클린턴은 두 말할 것도 없이 ‘제3의 길’이 처음 생겨날 때부터 함께한 인물이다. 비슷한 노선을 따르는 프랑스 사회당의 대통령 올랑드가 4퍼센트라는 낮은 지지율에 시달리고 그 때문에 차기 대선 출마를 포기한 것도 궤를 같이하는 일이다.

입력 2016-12-23 ⓒ노동자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