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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규제 폐지, 부패, 이윤 체제가 빚어낸 비극

김지윤

4월 16일 돌이킬 수 없는 참사가 벌어졌다. 일어나서는 안 될 비극이었다. 4백76명(현재까지 알려진 탑승자수)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가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하고 말았다.

4월 24일 현재, 사망자는 1백80명이 넘는다. 이제 사망자 수가 실종자 수를 넘었다. 사고 발생 열흘이 넘도록 애타게 기다리는 생존자 소식은 들리지 않고 있다. “수학여행 다녀온다”던 아들, 딸이 차가운 시신으로 돌아온 것을 본 부모들의 충격과 슬픔은 말로 표현조차 하기 어려울 것이다. 기적처럼 차디찬 바닷물에서 나와 살아 돌아오기를 바라는 실종자 가족들은 하루하루를 피가 마르고 심장이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지는 심정으로 보내고 있을 것이다. 

단원고 학생들의 상당수는 학교 인근 시화 · 반월공단 노동자들의 자녀라고 한다. “다음 생에 태어난다면 부잣집에서 태어나고 싶다”던 딸을 잃은 평범한 아버지는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로 딸을 떠나보냈다. “시신을 건질 때마다 게시판에 인상착의를 메이커 같은 상표로 하더라. 우리 애는 내가 돈이 없어 그런 걸 못 사줬다. 그래서 우리애를 못 찾을까 봐 걱정돼 나와 있다”는 한 실종자 어머니의 말은 모두의 가슴을 치게 한다.  

그 어떤 말로도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가슴 사무치는 비통함과 절박함에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이 끔찍한 비극은 대체 왜 벌어졌는가?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운 자들

많은 주류 언론들은 선장과 선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물론, 만일 선장이 승객들한테 제때 대피 안내를 했다면 더 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선원들이 승객들을 대피시킬 책임을 끝까지 지지 않은 것은 자본주의 하에서 소외된 노동을 반영한다. 자기 일에 애착은커녕 입에 풀칠하기 위해 하는 수 없이 해야 하는 처지의 자본주의 임금 노동자들에게 성인(聖人)을 기대할 수는 없다.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마땅히 사고의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이 선장과 선원들을 방패막이 삼아 책임을 피하려 하는 것을 두고 봐서는 안 될 것이다. “늙은 현장 책임자 한 명을 악마로 만든 사이, 정말 나쁜 악마는 숨어서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허핑턴포스트>)

우선, 해운 회사들은 당장 돈이 안 되는 안전 관련 비용은 줄이고 이윤 늘리기에만 골몰해 왔다. 자본주의 경쟁 하에서 해운 회사들에게 우선순위는 이윤이었다. 세월호도 마찬가지였다.

세월호 선사인 청해진해운은 일본에서 18년 된 노후한 배를 사들였다. 오래된 중고 선박 가격은 새 여객선 가격의 10분의 1 정도이기 때문이다. 청해진해운은 객실을 더 늘리는 개조 공사를 해 탑승 인원을 1백17명 늘렸다. 또, 여객보다 더 돈이 되는 화물 운송을 늘리려고 사이드램프를 제거하고 화물 적재 공간을 늘렸다. 개조 후 선박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평형수를 더 많이 넣어야 했지만 오히려 화물을 3배나 과적했다. 선박의 무게 중심이 달라지고 복원력이 부족한 것이 직접적인 침몰 원인이었다는 분석이 설득력 있다. 돈벌이에 눈이 멀어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던 것이다.

최근 전(前) 세월호 항해사는 사측에 세월호의 잦은 엔진 고장을 여러 차례 지적했지만 “잘라버리겠다”는 협박만 돌아왔을 뿐이고, 사측은 땜질식 수리만을 했다고 폭로했다. 전 세월호 항해사들은 ‘불안하고 찜찜한 마음’에 항해사를 그만둬야 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세월호를 사들여 선박 자산가치가 2012년 78억 원대에서 2013년 2백40억 원대로 급증했고, 세월호를 담보로 산업은행으로부터 1백억 원을 대출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정작 선박수리비에 쓸 돈은 줄였다. 청해진해운이 보유 선박들에 지출한 수선비는 2009년 선박 장부가액의 26.29퍼센트였다. 하지만 이 비중은 2011년 10.89퍼센트로 급감하더니 지난해에는 4.81퍼센트로 추락했다.(<국민일보>)

지난해 청해진해운이 안전교육에 지출한 돈은 겨우 54만 원이었다. 반면 접대비로는 6천만 원을 썼다. 인천-제주 운항을 20년 동안 독점한 것도 비리와 국가와의 부패한 유착 덕분이었을 것이다. 

착취 증대와 인건비 절감 동기도 작용했다. 청해진해운은 노동자 절반 이상을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다. 세월호 선박직 15명 중 9명이 계약직이었다. 심지어 세월호 선장도 비정규직이었다. 

반면 청해진해운의 실제 소유주로 알려진 전(前) 세모그룹 회장 유병언 일가의 재산은 밝혀진 것만 4천2백억 원에 이른다. 선박의 안전을 위해 써야 할 돈을 아껴 자신들의 배를 불려온 것이다. 세모그룹은 1990년에 한강 유람선 침몰 사고를 일으켰고, 전두환 정권과 유착해 온갖 특혜를 누린 것으로 유명하다. 

한편, 전(前) 세월호 항해사는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와 교신하는 채널은 끄고 운항하는 것이 관례라고 폭로했다. 이 채널은 해양수산부 · 해경 등에 보고돼, 운항 중 문제가 생기면 만천하에 드러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고가 나더라도 구조보다 회사의 책임을 피하는 것을 우선시한 결과다. 실제로 많은 건설 현장에서도 사고가 일어나도 산재 보고를 피하려고 소방구급대가 아니라 민간병원을 이용하거나 심지어 업체 트럭으로 노동자들을 병원에 옮기다 사망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사람의 목숨보다 회사의 이윤이 더 중요한 것이다.

사고 원인의 하나로 꼽히는 화물 쏠림도 화물 결박을 제대로 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청해진해운뿐 아니라 많은 해운 회사들이 화물 결박 장비들이 비싸다는 이유로 화물을 대충 결박하는 경우가 흔하다.

안전은 뒷전, 규제완화

그래서 세월호는 “언젠가는 사고 났을 배”였다.

안전보다 이윤을 앞세우기는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정부는 내항여객선 안전관리와 안전교육 등을 해운 회사들의 모임인 한국해운조합에게 맡겼다. 검사를 받아야 할 곳이 검사를 하는 어이없는 상황인 것이다. 출항을 취소하거나 미루면 수억 원 손실이 생기는 해운 회사들이 안전 점검을 제대로 할 리가 만무하다. 게다가 해운조합의 이사장은 수십 년째 고위 관료 출신들(‘해수부 마피아’)이 낙하산으로 내려와 맡았다. 이들이 정부와 해운조합의 부패한 유착 관계의 고리라는 주장들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게다가 국내 화물선과 여객선 안전을 인증하는 일도 정부가 아니라 해운사들이 출자해 만들어진 업체인 한국선급이 맡고 있다. 한국선급은 세월호 증축에 ‘적합’ 판정을 내렸다.

지난해 해양수산부가 시행한 선박 안전 점검도 요식절차 수준이었다. 해양수산부 직원 4명이 선박 한 대당 겨우 13분 동안 점검했다. 대체 어떻게 이 시간 동안 구명정, 구명조끼의 정상 작동을 포함해 선박 안전과 관련한 전반 사항을 철저하게 점검할 수 있겠는가.

지난 2월 인천해경 · 항만청 등의 합동 특별점검에서도 세월호는 구명정 · 소방훈련 등 비상훈련 실시 분야에서 황당하게도 ‘양호’ 평가를 받았다. 일부 항목에서 ‘불량’ 평가가 있었지만 3월초 청해진해운이 이를 시정했다는 공문만 해운조합에 보냈을 뿐, 해경은 실제 시정이 이뤄졌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런 와중에 결국 참사가 벌어지고 만 것이다.

이런 허술한 관리감독 하에서 어처구니없게도 해양수산부는 청해진해운에게 2006년, 2008년, 2009년 세 차례나 장관상을 수여했다. 2011년에는 종합우수선사로 선정하기도 했다.

“민간경제 활성화”, “선진화”를 외치던 이명박 정부는 2009년 해상운송사업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기존 20년이던 여객선 선령 제한을 최대 30년으로 변경했다. 연간 2백억 원의 비용 절감 효과가 예상된다는 것이 변경 근거였다. 그 결과, 선령 20년이 넘은 선박은 2008년에 12척이었는데 5년 만에 67척에 달하고 있다. 여객선 3척 가운데 1척이 20년이 넘은 상황이다. ‘해운 회사의 경영 부담을 줄여 준다’며 탑승자들의 위험 부담을 높인 것이다.

2012년 국토해양부가 제출한 용역보고서는 ‘최근 연안에서 발생하는 사고 선박은 15년 이상 된 배들이며 노후 선박은 해상에서 각종 사고를 일으킬 가능성이 높아 개선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개선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3년 전 내항여객선 안전관리를 별도의 조직을 설립해 맡기려는 입법 시도가 있었지만, ‘국제적 추세에 어긋난다’며 정부가 반대해 결국 무산되기도 했다. 

이명박식 선진화의 실체는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일’이었던 것이다.

기업 수익성을 위해서라면 안전 규제도 풀어버리기는 박근혜 정부도 마찬가지다. 이명박과 다른 점이라곤 행정안전부 이름을 안전행정부로 바꾼 것뿐이다. 

지난 2월 19일 박근혜는 “경제 혁신 3개년 계획에 국토 · 해양 · 환경 분야 부처의 노력이 중요하다”며 “규제개혁에 각별히 노력해 달라”고 강조했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컨테이너 안전 검사를 자료 제출로 대체하고, 선장의 안전관리체계 부적합 사항 보고 의무를 면제하는 등 각종 규제를 완화하고 있다. 

물론 박근혜 정부는 이미 영국과 일본 등지에서 대형 참사를 빚은 철도 민영화도 추진하고 있고,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의료 민영화도 추진하고 있다.  

기획재정부의 ‘국가재정운용계획상’을 보면 재난관리 재정 투입 계획은 꾸준히 증가하던 것이 박근혜 정부 들어서 마이너스 4.9퍼센트를 기록했다. 또한 안행부 가용 예산 중 안전 관련 예산은 4퍼센트에 불과하다. 이런 가운데, 안행부 등이 새마을운동 확산 사업에 그간 쏟은 돈은 9백85억 원에 달한다. 

뿐만 아니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가 낸 지난해 보고서를 보면, 전국 해경 출장소 2백41곳 중 연안구조장비를 갖추고 있지 않은 곳은 95곳으로 무려 39퍼센트에 이른다. 그러나 연안구조장비 도입 예산은 2011년 53억 원이던 것이 지난해 23억 원으로 줄었다. 온갖 첨단무기에 쏟는 예산은 늘리면서 구조장비 예산에는 인색했던 것이다. 

무책임과 무능 

ⓒ조승진

박근혜 정부의 무책임성과 무능도 사람들의 분노를 키우고 있다. 탑승자수를 제대로 집계하지 못한 것은 물론이고,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고 발표했다가 황급히 정정했다. 구조 소식에 기뻐하던 가족들에게 이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대책본부만 잔뜩 차려 놓았을 뿐 누구 하나 제대로 책임지는 사람도 없었다. 그 사이 보여 주기식 발표는 계속됐다. 잠수부 5백 명을 투입한다던 해양경찰의 발표와는 달리 첫날 투입된 잠수부는 16명뿐이었다. 심지어 민간 잠수부들을 효과적으로 구조 활동에 투입하지 못하고 있다고 민간 잠수부들이 기자회견을 여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초 신고 시각도 처음 발표와는 달라졌다. 찾을 수 없다던 관제센터 교신 내용을 뒤늦게 발표했지만 진도해상교통관제센터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줄을 이었다. 그래서 지금 “침몰은 선장이 시켰지만 참사는 정부가 만들었다”는 말도 나오고 있다. 정부, 해경, 해수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에 급급하다. 

그런데도 국가안보실장 김장수는 “청와대는 재난 컨트롤타워가 아니다” 하는 뻔뻔한 말을 내뱉었다. 헌법은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지고]” “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대통령중심제 하에서 국가의 지도는 대통령이 맡는데도 말이다. ‘이것이 국가인가’, ‘대한민국이 세월호다’ 하는 분노가 터져 나오는 것이 너무나도 자연스럽다.    

“물 마시고, 잠 자는 것조차 아이들에게 미안하다”며 “제발 우리 아이를 살려 달라”고 목놓아 외치는 실종자 가족들의 절규도 이제 분노로 바뀌고 있다. 정부는 말로만 “총력”을 외치고 주류 언론은 정부 보도 자료를 받아쓰기 하는 상황을 더는 참을 수 없는 실종자 가족들은 “내 아이를 살려내라”, “정부가 살인자다”를 외치며 거리로 나섰다. 물론 이들을 기다린 것은 경찰력이었다. 정부는 위로는커녕 행진 참가자 사진 채증까지 했다. 심지어 이전부터 경찰이 체육관에 사복경찰을 투입했다는 것도 드러났다.  

박근혜가 말한 “안전한 나라”, “국민 행복 시대”야 말로 유언비어였던 셈이다. 박근혜 정부는 유언비어, 음모론 운운하며 사람들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부의 무능과 진실 은폐에 대한 의심과 불만이 증폭되고 있다. 박근혜가 직접 “불신”을 걱정할 수준으로 커지고 있는 것이다.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책임을 물을 것”이라던 박근혜는 정작 이 위기에서 가장 먼저 탈출하려 한다. 선거를 앞두고 초조했던지 새누리당은 슬슬 북한 선동, 정치 선동 등의 얘기를 꺼내고 있다. 사람들의 관심과 분노를 엉뚱한 곳으로 돌려 자신들의 책임에서 탈출하고 싶은 것이다. 

사망자 명단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피해자 가족들의 울음이 가득한 가운데 태연히 응급치료 테이블에서 식사하는 자들이 모인 ‘소시오패스’ 정부는 모두가 비탄에 잠겨 있는 와중에도 주한미군 주둔비용 증액, 수서발 고속철도 매각 방지 법제화 무산, 철도요금 인상, 국회선진화 법안 등을 개악했다. 이런 자들이 선장으로 있는 한국호를 그냥 놔둬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러나 ‘선장’만이 문제가 아니다. 이 자들이 수혜를 보고 평범한 대중은 피해를 보는 체제 자체가 문제다. 사람이 아니라 이윤이 우선하는 이 체제 하에서는 반복되지 말아야 할 참사와 재앙들이 계속되고 있다. 1993년 서해 페리호 참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때 이래 변한 게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이윤 경쟁이 강박처럼 사로잡는 이 체제에서 소모품 취급 받는 노동자들은 자녀들도 수학여행 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하는 천대를 받고 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더 많은 이윤을 차지하려는 지배자들의 욕심은 후쿠시마 핵발전소 폭발이라는 재앙을 몰고 왔다.

세월호 침몰 사고는 이윤 체제에서 득을 보는 자들은 극소수이고, 체제가 낳은 고통을 애먼 다수가 오롯이 짊어진다는 것을 보여 준다. 어쩌면 전쟁 등으로 우리를 더 큰 위험으로 몰고 갈지 모를 이윤 체제의 위험천만한 운항을 멈춰야 한다.

입력 2014-04-2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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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재난에 대처하는 국제 자본가들의 ‘매뉴얼’, 왜 이리 비슷할까

김문성

경제가 어려워지고, 정부는 예산을 삭감한다. 대부분 안전을 위한 비용이 먼저 삭감된다. 민영화도 한다. 기업에 대한 안전 규제 따위가 약화된다. 그러다가 대형 사고가 난다. 피해는 대체로 노동계급이나 빈민에게 집중된다. 정부와 해당 기업은 사고 초기에 사죄, 최선 어쩌고 하지만, 뒤로는 책임 회피와 진실 은폐에 골몰한다. 또한 사고를 또 새로운 돈벌이로 이용하려 한다. 갈수록 피해자들은 사고 전보다 더 어려운 처지로 내몰리고 심지어 매도당한다.

국제적 대형 재난들에서 사고가 일어나고 수습되는 과정까지 이처럼 본질적으로 비슷하다. 그것은 이런 사고들의 근본적 원인이 국가별 특성이 아니라 세계 체제인 자본주의에서 비롯하기 때문이다.

현존하는 최강대국 미국, 그 나라의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를 대형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덮친 2005년 가을로 돌아가 보자.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을 위해 안전 예산을 삭감했고, 뉴올리언스의 제방은 부실해졌다. 뉴올리언스는 바닷가이지만 저지대라서 제방이 매우 중요했다. 

그래서 뉴올리언스 시 당국은 두 해 전 가상 훈련을 해 봤다. 3급 태풍이면 6만 명이 사망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그러나 결과는 대책 마련에 활용되지 않았다. 필요 경비로 추산된 1백40억 달러는 미군이 이라크에서 6주간 쓸 비용과 맞먹었다. 오히려 부시 정부는 전쟁 비용을 충당하려고 홍수 방지 예산마저 삭감해 버렸다.

주민들에게 이런 위험을 경고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재난이 이미 시작됐는데도, 뉴올리언스 시장은 대피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괜스레 재난 위협을 과장해 시의 관광산업을 위태롭게 할까 봐서였다. 당시 한창 돈을 벌고 있던 호텔 사주들은 강제 대피령에 반대했다. 결국 정보를 빨리 알아챈 부자들만 먼저 시를 빠져나갔다.

결국 카트리나가 가상 훈련에서보다 더 약한 태풍이었음에도 수천 명이 죽는 피해가 난 것이다.

당시 수난을 당한 사람들(대부분 흑인 등 가난한 노동계급 사람들이었다)이 겨우 살아나 처음 맞닥뜨린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난리통 속에서도 지배자들은 부자들이 비워둔 집과 관공서, 대형 마트, 호텔 따위를 지키는 것(‘질서 유지’)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공식 구조 구난 시스템은 마비됐고, 집과 거리가 물에 잠긴 상황이었으므로 피난민들이 어떻게든 기초 식량과 물, 필수약품 그리고 휴식을 얻으려고 대형 마트와 빈 공간을 이용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그러나 우파 언론은 흑인들의 약탈과 강간, 살인이 도시에 난무하고 있다며 국가의 구조 책임 회피를 정당화해 줬다.

부시 정부의 연방재난관리청(부시는 9 · 11 테러 후 국토안전보장부를 신설했다. 연방재난관리청은 이 국토안전보장부의 산하 기관이다.)은 정부 안팎의 많은 기관의 수송 관련 도움 제안을 거절했다. 심지어 해군이 병원선을 보내주겠다는 것도 거절했다. 그리고는 부시를 지지한 기업들에게 재난 지역과 바깥을 버스로 오가며 수송하는 사업을 독점적으로 맡겼다. 그런데 이 업체는 트럭 운송 업체였다. 그래서 이 업체는 2차 하청을 주고는 한 일 없이 돈만 벌어갔다.

부시는 뉴올리언스 시장에게 강제 대피령을 내리라는 전화를 했음에도 이 사실을 은폐했다. 사건 초기부터 정부가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있었는데도 구조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 폭로되는 게 더 두려웠던 것이다.

이런 사례들은 널려 있다. 2004년 스리랑카 동부 해안에서 쓰나미가 닥쳐 수십만 명이 죽는 비극이 벌어졌다. 이 재앙은 지역 관광업주들이 지역 어민들을 해안가에서 축출하는 기회로 이용됐다. 대피했던 어민들은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난민수용소에서 사는 신세가 됐다. 구호를 핑계로 미국은 군대를 스리랑카에 들여보냈다.

2007년 12월 충남 태안반도 앞바다에서 유조선과 삼성 소속 선박이 충돌해 기름이 어마어마하게 유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원인 중에는 정부가 기업의 비용 절약을 도우려고 유조선의 선체를 두 겹으로 하도록 의무화하는 조처를 뒤로 미뤄 준 문제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사건 초기에 삼성을 위해 사고 발생과 경위를 숨겨 줬고, 방제에 늑장을 부렸다.

지배자들이 재앙을 지옥으로 만들고 있을 때, 그 반대로 사회적 유대와 자치 능력을 보인 것은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 자신이었다. 이번에도 허둥댄 해경과 달리 진도 인근 섬의 어민들이 사태를 파악한 지 20분 만에 생업을 미루고 구조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세월호 앞에 집결했다.

입력 2014-05-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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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으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김지윤

세월호 선장과 일부 선원들에 대한 검찰의 공소장이 공개됐다.

공소장을 보면, 무리한 증개축으로 선박의 복원성이 떨어졌고, 화물 과적과 이를 위한 평형수 부족, 조타 실수가 겹치면서 결국 침몰이라는 참사가 일어났다. 4월 16일 배가 기울고 몇 분 지나지 않아 선장과 일부 선원들은 침몰을 인지한 듯하다. 배가 완전히 복원력을 상실할 때까지 거의 1시간이 있었지만, 대피 명령을 포함해 어떤 조처도 없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대기방송만 7차례 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들은 자신들의 탈출이 어려워질까 봐 관제센터의 대피 명령과 인근 선박의 구조 협력 교신조차 무시했다. ‘제때 대피 명령만 했더라도’ 하는 원통함이 들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도 청해진해운은 책임을 회피하려고 화물 적재 수치를 조작하느라 바빴다.

해경의 대처는 직무유기에 가깝다. 해경은 탑승 학생이 신고를 했지만, 위도 경도를 묻느라 시간을 허비했을 뿐 아니라 사고를 인지하고도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다. “세월호 인명 탈출은 선장님이 직접 판단해 결정하라”고 말했을 뿐이다.

해경은 스스로 배 밖으로 나오는 사람들을 구조했을 뿐, 선내 구조 활동은 전혀 하지 않았다. 인명 구조 명령권도 발동하지 않았다. 이 명령권을 발동하면 민간 단체들에도 필요 사항들을 요청할 수 있지만 해경은 민간업체 언딘을 중심으로 구조 활동을 펼쳤을 뿐이다. 구조를 위해 달려온 민간 잠수사 수백 명은 제대로 투입하지 않았다. 지휘 체계 혼란 운운하며 말이다. 해경과 언딘의 유착도 계속 밝혀지고 있다.

최근에는 해경과 119의 통화내용이 공개되면서, 고위 관료 ‘의전’ 때문에 구조가 늦어진 것 아니냐는 의혹도 생겨나고 있다.

책임

검찰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의혹은 여전하다. 침몰의 직접적 원인, 제주VTS와의 교신 내용 등에 대한 의혹은 가시지 않고 있다. 게다가 세월호 참사 검경합동수사본부장은 용산 참사 사건을 담당한 부장검사 출신이다. 철거민들에게 모든 죄를 덮어씌우고 경찰과 정부를 철저히 비호했던 자가 고위 국가기관의 책임을 제대로 물으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이제껏 박근혜 정부는 진실 은폐와 통제에만 골몰해 왔다. 경찰은 희생자 가족들을 감시하려 사복 경찰들을 대거 배치했다. 사고 발생 다음날 청와대는 ‘유언비어’ 운운하며 정부 각 부처에 세월호 관련 SNS 대응지침을 내렸다. 홍보수석 이정현은 언론에 “한 번 도와주소” 하며 정부 비판 기사를 입막음하고자 했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내부 상황반을 운영하며 “방송사 조정 통제”와 “방송 오보 적시 대응” 임무를 하달했다고 한다. 최근 주류 언론은 구원파를 연일 조명하며 사안의 본질을 흐리려 한다. 개신교 주류 측의 지지를 얻으려는 속셈이기도 하다.

따라서 세월호 사고 희생자 · 실종자 · 생존자 및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족대책위)가 “정부나 국회 주도가 아닌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추고 ‘충분한 권한을 부여받은 예산, 인력이 보장된 진상조사기구가 필요하다’고 요구하는 것은 일리가 있다.

가족대책위는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고 있다. “왜 그 많은 생명이 손 한 번 제대로 써 보지 못하고 차가운 바다 속으로 사라진 것인지, 정부의 대책본부는 그 시간 무엇을 했는지, 현장에서는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무엇을 했는지” 명확히 밝혀져야 한다. 조사 대상에는 가족대책위의 요구대로 대통령도 포함돼야 한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바탕으로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러면 청해진해운은 물론이고,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해경과 안전행정부, 정부 최고책임자인 박근혜도 응당 책임지게 될 것이다.

유가족들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촛불이 커질 조짐이 보이자, 정부는 “정치적 이용” 운운하며 반격에 나서고 있다. 16일 유가족과의 면담에서도 박근혜는 진상규명 특별법 제정 등에 대해 “직접적인 답변은 피했다.” 따라서 진상규명, 책임자 처벌 등 요구를 실현하려면 강력한 힘이 뒷받침돼야 한다.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촛불의 정당한 분노와 행동은 더 확산돼야 한다.

고질병

한편,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은 삼풍백화점 붕괴와 성수대교 붕괴 등을 떠올렸을 것이다. 위험은 선박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우리 아이들이 죽었지만 내일은 모레는, 당신의 아이들, 당신이 죽을 수도 있습니다” 하는 한 유가족의 발언을 가벼이 들을 수 없는 이유다.

안전 관련 참사가 반복되는 진정한 이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체제가 이윤 경쟁을 동력으로 하여 돌아가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기업들은 들이는 비용은 줄이고 이윤을 늘려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또한 기업들은 국가와 좋은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래야 경쟁업체를 누를 수 있기 때문이다. 국가관료나 정치인들도 특정 자본가들과 유착해서 특혜를 주는 방식으로 이득을 챙긴다. 이 체제에서 부패와 비리가 고질병인 것은 이 때문이다.

한편, 국가는 생산적 자원과 생산 체제를 지배해 권력을 가진 대자본가들의 이해득실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자본가들의 결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수익성인데, 국가는 사회간접자본을 제공하고, 노동자들을 통제하는 등 수익성을 높이도록 돕는다.

국가는 세계 자본주의 국가들 사이에서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해 자국의 이해관계를 더 쉽게 관철시키려 한다. 첨단 무기에 천문학적 돈을 쓰고, 온갖 위험에도 핵무기를 위한 핵발전소를 짓는다. 이런 경쟁 논리 때문에 지진이 빈번함에도 일본 정부는 후쿠시마에 핵발전소를 지었고 이는 결국 재앙으로 이어졌다.

따라서 ‘돈보다 생명’이라는 가치를 실현하려면 정부를 포함한 체제의 우선순위에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과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은 노동자 투쟁이 다수의 안전과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것임을 보여 준다. 터키 노동자들은 최근 일어난 탄광 폭발 사고에 분노해 정부에 항의하는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이윤 체제에서 이윤을 생산하는 노동자들은 체제를 멈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자꾸만 우리를 위험으로 내모는 체제를 멈추려면 이 잠재력을 실현시키려 해야 한다.

입력 2014-05-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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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특별법 요구 단식 농성 중인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실질적 진상규명 위해 수사권과 기소권 반드시 필요”

김지윤

참사가 일어난 지 석 달이 지났습니다. 단식 농성까지 하게 된 심경이 어떠신가요?

△유경근 세월호 참사 가족대책위 대변인 ⓒ이윤선

 우리는 하나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되게 할 것인가.’

단식 농성을 하게 된 것은 국정조사가 컸습니다. 국정조사 시작할 때도 우여곡절을 많이 겪었어요. 왜 우리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심정이 들 정도였죠.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일정도 못 잡고요.

기관보고를 보니까 정부 부처 등 각종 기관들, 청와대까지 다 똑같아요. 시작할 때는 ‘책임이 있다. 큰 책임감을 느낀다’고 하는데 막상 구체적 문제점이 지적되면 ‘쟤네가 문제다’는 식으로 다 떠넘겨요.

그런 불성실하고 무책임한 자세로 기관보고에 임하는 정부 부처나 기관들에 대해서 국회의원들이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뭘 강제할 수 있는 방법도, 더 깊은 수사를 하거나 조사를 할 수 있는 방법도 없고 그냥 호통치다 끝나요. 그걸 보면서 특별법이 이렇게 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여당에서는 진상규명위원회에 조사권만 주는 정도를 얘기하고 있어요. 국정조사도 국회의원이 조사권을 갖고 하는 건데 아무 것도 이뤄진 게 없거든요. 새롭게 밝혀진 것도 거의 없고요. 하물며 민 · 관 진상조사 위원회에 국회의원도 아닌 사람들이 겨우 그 정도의 조사권을 가지고 진상규명을 한다? 실질적인 진상규명이 가능하려면 수사권과 기소권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진상규명을 통해 꼭 밝혀져야 할 부분은 무엇이라 보십니까?

우리가 집중하는 것은 ‘왜’ 라는 겁니다. ‘밝힐 것은 다 밝혔는데 뭘 더 밝히자는 거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 분들 얘기에는 현상만 있어요. 언제 배가 기울기 시작했고, 해경이 언제 도착했고 등등 우리가 다 알고 있는 것들이요.

우린 그걸 밝히자는 게 아니에요. 왜 그런 현상이 일어났느냐, 왜 배가 변침됐고, 왜 선장과 선원들은 급히 탈출했고, 왜 신고를 접수하고도 어느 기관도 신속하게 대응을 못 했는지, 왜 해경은 선장 · 선원만 빼가고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사흘 동안 구조하려는 노력과 시도도 안 했는지, 왜 지금까지 실종자들을 모두 수색 못하고 있는지. 저희는 이걸 밝히고 싶은 거예요.

새누리당은 유가족들이 요구하지도 않은 보상 문제만 부각하려는 것 같습니다.

얼마나 보도들을 이상하게 해놨으면 새누리당, 새정치민주연합이 각자 제출한 법안을 우리가 낸 법안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아요. ‘해명 기자회견 하면 되지 않냐’고도 하는데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은 걸 우리가 왜 해명을 하냐고요.

진상규명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여야가 얘기하는 보상이니 하는 것들은 우리가 받지도 않아요. 혹시라도 이렇게 해서 ‘많이 안겨 주면 얘네들 조용해지려나’ 생각하고 있다면 꿈 깨라고 하세요. 절대 그런 일 없습니다. 각 가정당 1조 원씩 준다고 해도 안 받을 겁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가족을 잃은 슬픔에 피멍이 든 가슴을 부여 잡고 단식 농성에 나섰다 ⓒ이윤선

정부 불신 여부가 유가족과 정치권의 핵심입장 차이라는 주장도 있는데요?

정부를 믿고 못 믿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참사의 원인은 청해진해운이잖아요. 현장 선원들과 유병언까지… 사고의 책임자는 나왔잖아요. 재판도 하고요. 사고의 책임자를 당연히 가려서 처벌해야 한다고 봐요.

하지만 참사의 책임자가 있어요. 사고를 참사로, 재난으로 만든 책임이 있는데 그게 정부 아닙니까! 해경으로부터 시작해 말이죠. 이들은 조사 대상이란 말이에요. 마치 합동수사본부에 수사 대상인 해경이 포함돼 있어서 저게 무슨 수사가 되냐고 한 것과 똑같은 일이에요.

임시국회 때 특별법이 다시 논의가 될 거라는 관측이 많습니다. 반드시 법안에 포함돼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요?

우리는 우리 법안에 대해 설명할 기회도 없어요. 이제껏 발언 기회 30분이 다였어요. 우리는 철저하게 수사권, 기소권을 요구할 것입니다. 청문회 반드시 해야 하고, 위원회의 구성도 객관적이고 합리적으로 돼야 합니다.

인터뷰 · 정리 김지윤

입력 2014-07-1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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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국 민변 세월호 참사 특위 위원장이 말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과 원인 그리고 대책은 무엇인가

녹취 박충범

지금 세월호 특별법 야합에 대한 비난이 엄청나게 일어나고 있는데, 사실 지금까지 유가족들이 싸움을 주도해 왔다. 우리 사회에서 참사의 희생을 겪은 가족들이 싸움을 주도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데 지금 싸움을 가장 원칙적으로 하고 있는 건 유가족들이다. 그래서 나도 부끄럽기도 하고 또 굉장히 놀랍기도 하다. 이번 싸움에서 반드시 이겨야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 않나 싶다.

[내 발표는] 크게 네 부분으로 나눠져 있다. 1) 세월호 참사의 진상: 진상이라기보다는 현상이라고 하면 될 것 같다. 2)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 이것은 배가 침몰하게 된 직접적 원인에 대한 것이다. 3) 세월호 참사의 10대 원인: 침몰을 둘러싼 배경들이 상당히 많다. 우리가 지난 국정감사기관보고 때 89가지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었다. 4) 진상규명 과제와 대책: 현재 특별법에 대해서 여야가 야합을 했는데, 과연 이 야합이 진상을 제대로 밝힐 수 있을지 살펴보겠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세월호 침몰 경위: 여러분들 다 알다시피 세월호는 원래 4월 15일 저녁 6시 30분경에 출발하려고 하다가, 안개가 많이 껴서 지연이 됐다. 그러다가 밤 9시경에 출발하게 됐다. 지금 이것도 의문에 싸여 있다. 가시거리가 1킬로미터 이상 되지 않으면 원래 출항할 수 없도록 돼 있는데, 기상관측소의 자료에 따르면 그때 가시거리가 8백 미터였다고 한다.

그리고 4월 16일에 진도 부근을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변침을 했다. 135도에서 145도로 변침을 시도하던 중에 갑자기 좌현으로 기울었고, 그리고 나서 10시 17분경에 108.1도로 기울어서 완전히 전복됐다.

배가 침몰할 때 8시 52분에 최초 신고 전화가 있었고 8시 55분에 일등항해사가 제주 VTS에 구조 요청을 했다. 그리고 9시 35분경에 해경 123 경비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한다. 그리고 거의 비슷한 시간에 헬기가 도착한다. 9시 30분경에 해경이 도착하긴 했는데, 그로부터 한 40~50분이 지난 10시 17분에 아무도 구조되지 못하고 ‘배가 기울고 있어요’라는 마지막 메시지가 발신된다. 결국은 탑승자 4백76명 중 초기에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을 제외하면 사실상 선내에서 아무도 나오지 못하고 3백4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시간대별 침몰 경과: 시간별로 배가 기울어진 각도를 보자. 8시 52분에 배가 이동을 멈췄다고 한다. 처음에 배가 멈추고 좌현으로 기울었을 때, 기울어진 각도가 얼마였을지는 아직 명확하지 않다. 대체로 25도에서 35도 정도였을 거라고 본다. 그리고 123정이 도착한 9시 35분경에 배의 기울기는 52.9도. 그리고 마지막 문자가 전송됐을 때가 108.1도다.

세월호 선박의 제원: 선박의 제원을 한 번 보자(표1). 여기서 증설 전과 증설 후의 경하중량과 재화중량을 주목해서 봐야 한다. 경하중량은 여객이나 화물을 싣지 않았을 때, 선박 자체의 무게를 말한다. 그런데 이 무게가 증개축을 하면서, 1백87톤이 증가하고 이로 인해서 무게중심이 한 51센티미터 정도 위로 올라가게 된다. 배가 복원하려면 무게중심이 아래에 있어야 하는데 위로 올라가 버린 거다. 그리고 이런 증개축으로 화물과 여객을 실을 수 있는 양이 변했다. 증설 후에는 화물과 여객을 합해서 1천70톤까지만 실으라고 돼 있다.

△ 표1. 세월호 선박의 제원(증개축 전후 비교)

화물과 여객, 평형수, 연료유, 청수(먹는 물), 식량을 다 합친 게 재화중량이다. 그런데 평형수 란을 보면 증설 전에는 출항할 때 3백70톤, 도착할 때 1천23톤, 증설 후에는 출항할 때 1천7백 톤, 도착할 때 2천30톤이다. [증개축을 하고서] 무게중심이 위로 올라오니까 아래에 평형수를 많이 넣을 수밖에 없었던 거다.

평형수를 보면, 출항할 때와 도착할 때가 다르다. 그런데 지금 검찰 공소장에는 이 구분이 없다. 왜 평형수가 이렇게 출항과 도착 때 달라질 수밖에 없을까? 그건 이유가 있다. 출항 때에는 연료유나 청수나 식량 같은 것들이 배 밑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것이 평형수 구실을 한다. 그래서 출항 전후에 평형수가 약 3백 톤 정도 차이가 난다. 연료유는 출항할 때는 5백60톤인데 도착하면 56톤이 된다. 5백 톤 가까이가 소모된다. 이게 소모되니까 [그 무게만큼] 평형수를 채워야 하는데 이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흘수라는 게 있다. 배는 바다에 띄워지면, 어느 선까지 가라앉아야 된다. 이런 흘수는 평형수나 화물을 가지고 조절한다. 만약에 화물을 많이 실으면 흘수선이 높아진다. 그런데 흘수선에 일정하게 잠기는 깊이를 조정하려면 화물 대신에 뭘 빼야 될까? 평형수를 빼야 한다. 예를 들면 화물이 천 톤이 더 실렸으면 밑에 있는 걸 빼야 된다. 그러니까 또 무게중심이 위쪽으로 올라가서 매우 불안한 상태가 되는 거다.

탑승자의 직군별 생존자와 사망자 수: 생존 비율을 살펴보자. 총수는 4백76명인데 구조자는 1백72명으로 생존율이 36퍼센트다. 그런데 선장 등 선박직 승무원은 1백 퍼센트 생존했다. 그리고 단원고 학생들이 23퍼센트, 교사가 21퍼센트 생존했다. 그리고 배 안에 갇혀 있던 서비스직 승무원들은 1백 퍼센트 사망했다. 일반 승객들은 70퍼센트 생존했다. 굉장히 높은데, 이 분들 중에는 [이 항로를] 자주 왕래하는 분들이 많았다. 화물 기사들인데, 이분들은 화물선 아래 쪽에 있어서 상대적으로 탈출하기가 쉬웠고, 배의 특성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대기 명령을 듣지도 않았다.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원인

먼저 검찰 공소장에 기재된 침몰 원인에 대해 검토해 보겠다. 검찰 공소장에 이렇게 돼 있다. ‘증개축으로 복원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다.’ 이건 맞는 얘기일 거다. 그 다음에 ‘세월호 선원들의 교육 훈련이 규정대로 실시되지 않았다’라고도 돼 있다. 만약에 교육 훈련을 제대로 했다면, 자기들 먼저 도망가는 게 아니라 대피시키려고 노력했을 거다. 그 다음에 ‘화물 과적과 고박 불량’ 그리고 ‘선장 및 항해사의 운항 과실(조타 과실로 인한 급변침)’도 있다.

그런데 과연 급변침으로 인해서 침몰이 일어날까? 파도가 칠 때 배가 좌우로 흔들리는 것을 롤링이라고 한다. 일반적으로. 파도가 심하게 치면, [좌우로] 배가 요동을 친다. 그래도 넘어지지 않는다고 한다. 심하면 45도, 더 심하면 60도까지도 배가 파도에 따라서 롤링을 한다. 그래도 침몰하지 않는다고 한다.

보통은 아무리 급선회를 하더라도 자기 배 길이의 4~5배 정도 길이를 따라서 회전을 하게 된다. 운전할 때 한 150킬로미터로 밟다가 확 돌아버리면? 차가 확 뒤집어질 것 같다. 실제로 가끔 넘어지기도 한다. 그런데, 세월호 선박의 최고 속력은 21노트 정도인데, 이건 자동차로 치면 한 37~ 8킬로미터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정도 속도로 배가 정말 기울어질까? 물론 급변침할 때 기울어지는 현상은 발생하지만 자동차를 생각하면 안 된다. 이런 사실들을 보면 배가 130도 돌아도 뒤집어지지 않는다는 거다.

다음으로 화물 과적 문제가 있다. 그런데 과적 그 자체가 아니라 화물을 무리하게 빨리 실으면서 단단하게 규정대로 고박을 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우리가 잘 모르지만 선박의 선체 두께는 10~20밀리미터밖에 안 된다. 배가 흔들리면서 느슨한 고박이 풀려 세월호 하부에 실린 컨테이너 무거운 화물들이 선체를 여러 번 때린다면, 배에 상처가 생길 수 있다. 잠수함 설도 있지만, 이것이 더 합리적 의심이 아닐까.

세월호 참사의 10대 원인

① 돈벌이를 위해 승객 안전을 도외시한 해운사의 선박 운항

정상적으로 한 번 운행할 때 청해진해운의 화물 수임료는 2천6백 만 원이다. 그런데 과적을 하면 최대 7천 만 원의 수임료를 올릴 수 있다. 과적을 할 유혹이 생긴다. 그래서 2013년에 세월호가 들어오고부터 청해진해운의 화물선 매출이 급증한다(표2). 청해진해운이 세월호를 들여오면서 화물에서 어떻게 이익을 추구했는지를 보여 준다.

세월호는 도입 과정에서도 문제가 있었다. 원래 항로의 평균 운송수입률이 25퍼센트 이상이 안되면 선박을 증선해 주면 안된다. 그런데 세월호는 제대로된 자료로 계산해 보면 평균 운송수입률이 24.3퍼센트에 불과하기 때문에 인가 대상이 못 되는 거였다. 그런데 청해진해운은 제출 자료에서 여객 정원하고 재화중량 톤수를 조작해서 평균 운송수입률을 26.9퍼센트로 조작했다. 그래서 운송 면허를 따낸 거다.

② 선원 교육이나 안전 훈련 “0”와 선원들의 무책임

교육은 어땠을까? 청해진해운은 지난해 매출이 3백20억 원인데, 이 중 선원 교육에 쓴 돈은 54만 원이었다. 반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접대비로만 9억 원 넘게 지출했다. 선원 연수원비는 매출액 대비 0.001퍼센트에 불과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외부에서 진행되는 안전교육에 참가하면 발급되는 수료증 발급 수수료였다. 그게 1인당 2천 원인 것이다. 교육 훈련을 한 게 아니라 수료증 주고 말았다는 거다. 형식만 갖췄다는 얘기다. 사실상 선원들에 대한 교육 및 안전훈련 비용은 ‘0’원이었다.

선원들은 왜 이렇게 무책임했을까. 고용형태를 보면 계약직 비율이 76~77퍼센트다. 언제 잘릴지도 모르고, ‘위험하니까 곧 나가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책임 의식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고 할 수 있다. 즉, 책임 있는 선원과 선장을 만들려면 자신의 업무에 대해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근무 조건을 만들어 줘야 되는 거다.

③ 감독기관의 안전관리감독 부재 ─ 민관유착 관행 고착화

선박에 대한 등록 · 면허 · 검사 및 운항과 관련한 주체별 업무를 보자. 해양수산부는 한국선급을 지도 · 감독해야 하고, 해양경찰은 해운조합을 지도 · 감독해야 하고, 해운조합은 해운사를 지도 · 감독해야 하고, 그리고 한국선급은 정부의 선박 검사 업무를 대행한다. 한국선급이 뭐냐 하면 해운사들이 출자해서 만든 사단법인이다. 그러니까 해운사들이 만든 사단법인이 안전 검사를 하고 있는 거다. 그리고 한국해운조합이 안전 관리를 해야 하는데, 해운조합 조합원이 누구인가? 해운사들이다. 해운사들이 가입돼 있는 조합이 해운사를 안전 관리 감독한다? 정말 잘 될거다.

결국은 [해양수산부가 하는] 증선 인가가 부실[해지고], [한국선급이 하는] 복원성 선박 검사도 부실[해진다.]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할 때는, 운항관리규정 심사위원회에 들어가는 해경들을 직전에 제주도 같은 데로 여행을 보낸다. 여행을 갔다 온 사람들이 들어가 있는 심사위원회가 열리고, 복원성에 대한 자료가 제출되지 않은 상태에서 운항관리규정을 승인하게 된다.

해양경찰과 해양수산부가 제대로 관리 · 감독하지 않으면 해운사들이 출자한 한국선급이나 해운사들이 조합원인 한국해운조합을 제대로 관리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해수부 차관이 해운조합 이사장이다. 해수부가 누구를 관리해야 하는가? 해운조합을 관리해야 한다. 그런데 그곳의 이사장으로 가는 거다. 그리고 해수부의 해사기술과장이 한국선급의 본부장으로 간다. 그 다음에 해수부 산하의 해양항만청장이 선박안전구조공단 이사장으로 온다. 해수부 [공무원들이] 감독해야 하는 곳의 이사장으로 다 가버린다. 관리감독이 굉장히 잘 될 거다.

그 결과, 한국선급의 선박 검사 합격률을 한 번 보자. 2009년 검사 선박이 1천6백7대인데, 합격 선박이 1천6백7대이다. 1백 퍼센트 합격률이다. 우리 나라 해운사들이 정말 잘 하고 있나?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나. 한국선박안전기술공단의 선박 검사 내역을 봐도 비슷하다(표3). 사고 건수는 계속 있는데도, 최근 5년간 선박 검사 합격률이 99.98퍼센트이다. 합격률이 이 정도면 사고가 안 나야 할 텐데, 나고 있는 거다.

결국 주무부처와 관료 출신 인물들이 공사나 이런 데 다 들어가 있는 상황. 이게 적폐다. 그런데 이런 걸 누가 하는가? 대통령이 한다. 청와대가 관여한다. 이래 놓고 자기가 적폐를 청산하겠다고 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④ 해경의 초동 대응 부재

초동 대응이 부재했다. 진도 연안 해상교통관제센터(VTS)에서 뭐하고 있었나. 혼자서 신문 보다가 엎드려 자고, 화면을 보질 않았다. 그리고 해경은 선원만 구조하고 10시 17분까지 전혀 퇴선 조치도 안하고 배에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해양 특공대는 출동해야 할 시간에 헬기가 없어서 못갔다고 한다.

⑤ 역량 있는 구조 인력 지원 차단

해경이 외부지원을 배제했다는 의혹도 있다. 119에서 ‘우리가 도와줄까’ 했더니 ‘해경하고 해군이 다 하고 있으니까 올 필요 없다’고 했다. 그리고 국방부 답변서를 보면, “탐색 구조를 주도하고 있는 해경에서 잠수 작업 통제로 해경 잠수팀 우선 입수”, “해경이 현장 접근을 통제하여 잠수 미실시”라고 돼 있다.

⑥ 원칙 없는 정부조직 개편으로 인한 해경과 해양수산부의 부실화

이런 일이 왜 벌어졌을까. 원칙 없는 정부조직 개편으로 해경과 해양수산부가 부실화돼 있었다. 이명박 정부 때 해양수산부 폐지되고 국토해양부로 확 통합시켜 버리지 않았나. 해양부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⑦ 수난구호법 개정에 따른 해양안전업무의 민영화와 위험의 증대

2012년에 수난구호법 개정에 따라 구조업무 자체가 이미 민영화되고 있었다. 이때 민영화의 고리를 해양구조협회라는 데가 담당했다. 근데 해양구조협회의 부총재가 누구였는가? [민간 잠수업체] 언딘이었다. 해양안전업무를 민영화해 버림으로써 해경은 구조작업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스스로 상실해 갔다.

⑧ 정부의 재난대응역량 부재 ─ 시스템의 형식화와 개념없는 인사 정책

박근혜 정부의 대응이 얼마나 형식적이었는가는, 정부가 재난 컨트롤타워라고 하면서 앉혀 놓은 사람들을 보면 알 수 있다. 대부분이 행정직 고위 관료 출신으로 재난 및 현장 전문성이 결여된 사람들이었다. 애초에 재난 컨트롤타워 구실을 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⑨ 청와대와 대통령, 컨트롤타워의 역할과 책임으로부터 도피

그런데 컨트롤타워가 잘 못하고 있으면 누가 해야 하나? 청와대가 해야 한다. 정부조직법 11조 1항에 따르면 ‘대통령은 법령에 따라 모든 중앙행정기관의 장을 지휘 · 감독한다’라고 돼 있다. 이건 법적인 의무이다. 그런데 청와대는 계속 ‘영상 보내라’, ‘구조자 수 보내라’ 하는 식으로 보고만 요구했고, 어떻게 구조하라고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청와대로부터 전화가 많이 와서 해경청장이 전화받으러 가느라고 대책회의를 5분 만에 중단시켜 버렸다는 의혹도 있다. 청와대가 구조를 방해한 거다.

⑩ ‘규제는 암덩어리’ 규제 혁파 등 무제한적 규제 완화 정책으로 인한 안전 장치의 해체

마지막으로 가장 큰 문제는 규제를 암덩어리로 여기며 규제 완화 정책으로 안전 장치를 해체한 사회 · 경제 정책이다. 여기에 근본 원인이 있다. 이명박 정부 때부터 규제 완화 정책이 심하게 이뤄졌다. 박근혜 정권 때는 해양수산부에서 하던 ‘해상교통안전진단 의무화’가 폐지되고, 철도 차량을 정밀 진단하지 않고 보고서 승인만으로도 차량 수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하는 식으로 규제 완화 정책이 시행됐다. 내가 앞서 언급한 일들은 이러한 규제 완화 정책의 영향을 고스란히 다 받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해양수산부는 2013년 3월에 ‘규제 개혁 추진 과제’를 발표해, 안전 관련 규제들을 간소화, 완화, 폐지했다.

진실규명 과제와 대책

기업의 이윤 추구와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 규제 완화로 인한 안전 장치 완화, 재난관리시스템의 형식화와 안전 규제 업무의 민영화, 관피아로 상징되는 감독기관과 피감독기관의 유착 구조, 무책임한 낙하산 인사 정책, 컨트롤타워 역할의 부재. 근본 원인은 여기에 있다.

그런데 진행 중인 수사나 감사의 내용은 뭔가. 유병언 때려죽일 놈, 자질 부족한 선원들 때려죽일 놈, 돈 받아 쳐먹은 몇몇 실무 담당자들, 그리고 구조 안 한 해양경찰 123정. 이것만 지금 줄창 잡고 있다. 이렇게 해서 근본 문제를 제대로 파헤칠 수 있겠나.

대통령이 진도에서 ‘약속 지켜지지 않으면 여기 있는 사람들 다 물러나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세월호 책임지고 물러난 사람 아무도 없다. 5월 19일 담화문에서 최종 책임은 자기한테 있고, 사과한다며, 새로운 대한민국 만들겠다고 했다. 그러더니 청와대 증인 채택도 거부하고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부여하는 게 사법 체계 흔든다며 거부하고, 밀실야합 했다.

유병언 잡는 데 연인원 1백70만 명을 동원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유병언은 악마가 됐다. 정부 정책이나 시스템에 대한 조사 있었나. 지금 검찰이 청와대나 장관들 수사할 수 있겠나. 해경청장 수사할 수 있겠나. 규제완화 정책의 잘못을 지적할 수 있겠나. 대통령에게 엄격하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나. 실효성 있는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해 독립된 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하는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

입력 2014-08-1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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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가 행동으로 이어지다

김지윤

유가족들은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원칙적으로 싸우며 투쟁의 구심을 형성해 왔다.

5월 8일 유가족들은 KBS를 항의방문 했다. “총력 구조” 운운하며 박근혜 정권의 입맛에 맞는 보도를 해 온 ‘기레기’에 대한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항의 시위는 KBS 노동자들의 양심을 건드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KBS 노동자들은 “더는 정권의 하수인으로 살지 않겠다”며 파업에 나섰다.

유가족들은 청와대로 발걸음을 옮겨 농성을 시작했다. 참사 책임의 핵심에 박근혜 정부가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지목한 셈이다.

5월 10일 안산에 2만여 명이 모였다. 참사 희생자들을 향한 추모와 정부를 향한 분노가 행동으로 폭발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것을 보여 준 사건이었다. 서울 도심 집회 규모도 점점 성장했고 갈수록 박근혜 정부로 모든 분노가 모아지고 있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이하 대책회의) 내 온건파 지도자들은 박근혜에게 초점을 맞추는 것에 반대했고 ‘박근혜 퇴진’ 요구를 반대했다.

유가족들은 전국 각지를 돌며 투쟁 지지를 호소했다. 6월부터 유가족들은 국회 앞 농성에 돌입했다. 농성은 광화문으로 진출했고, 이는 운동 참가자들의 투지를 예각화하고 다시 모으는 구실을 했다. 대책회의 내 온건파들과 달리 유가족들은 박근혜 정부를 실제로 압박했다.

7 · 30 재보궐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이기며 운동은 일시적 어려움에 봉착하는 듯했다.

구심점

그러나 8월 ‘유민아빠’ 김영오 씨의 단식이 다시 연대의 초점을 제공했다. 48일간의 단식은 유가족들의 절박함과 정권의 냉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 줬다. 동조 단식자가 3만 명에 이를 정도로 지지가 광범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금속노조가 소속 조합원인 김영오 씨 살리기, 세월호 특별법 제정 등의 요구를 내놓고 파업을 명령했다면 큰 지지를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도통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 원내대표 박영선은 집회 연단에서 기소권은 요구할 수 없다고 당당히 선언하더니 두 번이나 새누리당과 야합을 했다. 진실 규명에 진지하지 않은 집단임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이 시기, 대책회의의 일부 온건 리더들은 새정치연합의 협상을 지나치게 중시해 수사권 · 기소권 요구에서 후퇴하려 하는 등 심각한 약점을 보였다.

다행이게도 유가족들은 야합안을 거부하고 투쟁을 선언했다. 이런 단호한 태도는 운동의 명분과 지지자들의 자신감을 유지하는 데에 결정적인 힘이 됐다. 1차 야합 이후 광화문 농성장을 찾는 사람들은 오히려 늘어났고, 8월 15일 집회에는 5만여 명이 집결했다.

지지 여론은 여전히 광범했지만 박근혜를 물러서게 할 만큼 운동이 강력해지지는 못한 상황이었다. 조직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이 여전히 실종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와중인 9월 국무회의에서 박근혜는 사실상 ‘세월호 정국이 끝났다’며 협상에서 양보하지 말라고 못 박았다. 공교롭게 그 직후 유가족 일부의 취중 폭행 사건이 벌어져 대대적 마녀사냥이 있었다.

이런 상황들이 유가족들을 위축시킨 듯하다. 정기국회를 앞두고 유가족들은 특검 추천권 정도로 요구안을 후퇴시키는 입장을 취했다.

이제는 대책회의 일부 리더들도 특별법 국면을 정리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세월호 특별법이 운동의 대의를 상징하고 단호한 투쟁이 운동 참가자들에게 투지와 자신감을 줬다는 점에 비춰 보면,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입력 2014-10-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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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들이 주된 동력이었지만, 노조 지도자들은 실질적인 힘의 사용을 자제하다

김지윤

희생자의 대부분이 노동계급의 자녀들인데다, 박근혜가 이들을 수장케 했다는 점 때문에 노동계급 다수는 깊은 연민과 분노를 느꼈다.

특히, 희생자 대다수가 고등학생들이었고, 교사들도 함께 희생됐기 때문에 일선 교사들이 받은 충격은 헤아리기 어려웠다.

5월 13일 교사 43명이 박근혜 정부 퇴진 선언을 했고, 전교조 집행부가 주도한 교사 선언에도 1만 6천여 명이 참가했다. 교육부의 징계 협박에도 7월 발표한 ‘박근혜 퇴진 교사 선언’에 1만 2천 명이 넘는 교사들이 동참했다.

기세를 몰아 전교조는 법외노조 조치에 항의하는 조퇴 투쟁을 벌였다.

KBS 새노조와 1노조는 첫 공동파업에 나서 사장 길환영을 해임시켰다. KBS 파업은 노동자들이 세월호 참사 항의와 자신들의 요구를 함께 내놓고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 줬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의료 민영화가 ‘제 2의 세월호 참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7월 2차 파업에서 주요한 요구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내놓았다. ‘생명 · 안전보다 이윤’이라는 체제의 우선순위가 낳은 비극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의료 민영화 반대 투쟁에 지지를 제공했다. 의료 민영화 반대 서명에 하루 만에 60만 명 넘게 동참하기도 했다.

규제 완화에 대한 반감이 커져 한동안 박근혜는 민영화와 규제 완화를 뜻대로 추진하기가 어려웠다.

박근혜 정권에 대한 증폭된 반감과 불만을 모아내야 했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세월호 문제로 적어도 하루파업이라도 명령해 효과적인 투쟁을 이끌어 냈어야 했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는 거듭 소심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개별화된 시민 참가를 내세우며, 투쟁을 주도하는 것을 회피했다.

세월호 참사를 빚은 전반적인 이윤몰이와 규제 완화는 노동자들의 미래를 위협하는 것들이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투쟁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노동자들은 이윤을 생산하므로 이윤 체제를 멈출 힘도 가지고 있다. 이 잠재적인 힘을 실제로 발휘한다면 박근혜를 한 발 물러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동력이 될 것이다. 진실 규명 운동에서 아직 채워지지 않은 부분이 바로 이 점이다.

입력 2014-10-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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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 합의안 재평가? 정직해야 한다

김문성

수사권 · 기소권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 요구에 5백만 명 가까운 사람들이 서명했다. ‘성역 없는 진상 규명으로 죄를 물어 재발을 막아야 한다’, ‘검찰 등 국가기관을 못 믿겠다’, ‘국가가 참사에 가장 큰 책임이 있다’는 광범한 분노를 집약해 대변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책회의의 리더들 다수는 이참에 수사권 · 기소권을 포함하는 특별법 요구를 정리하자고 주장한다.

여야 추가 협상 과정에서 ‘특검 추천 시 유가족 참여 보장’ 등을 요구해, 10월 안에 ‘특별법’을 만들도록 하자는 것이다. 사기저하와 조급함을 드러내는 단견이다.

이런 입장을 정당화하려고 일부 활동가들은 여야가 합의한 자료제출 요구권, 청문회권, 동행명령권 등을 매우 큰 성과라고 부풀린다. 반면에 운동이 수사권과 기소권 등 ‘협소한’ 법 조항에 매몰된 것이 한계였다고 지적한다. 마치 이솝우화에 나오는 ‘여우와 신 포도’처럼 후퇴를 합리화하는 방어기제로 들린다.

그러나 실용주의적인 후퇴를 정당화하려는 정직하지 못한 평가는 운동에 도움이 안 된다.

지금 국정감사 증인으로 채택된 세월호 선장 이준석은 ‘동행명령권’이 발동됐는데도 출석을 거부하고 있다. 백 번 양보해 그런 권한들이 어찌어찌해 효력을 발휘할 수 있다 쳐도, 그 권한을 행사할 특별검사 자리에 믿을 만한 사람이 임명된다는 보장도 거의 없다.

여야는 ‘정치적 중립성 보장이 어려운 인사는 배제한다’고 합의했다. 새누리당은 국정감사에서 대한변협마저 ‘정체성이 의심스럽다’고 험담했다. 특별법 합의에 대비한 포석인 것이다.

입력 2014-10-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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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기존의 진상규명 특별법 요구 기조를 유지해야 하는가

김문성

첫째, 여야는 물론 박근혜 정부까지 진상 규명의 적들끼리 합의한 특별법으로는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이 불가능할 것이 명백하다.

따라서 운동은 철저한 진상 규명 요구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은 설사 훗날 정권이 바뀐 뒤에라도 밝혀질 수 있다. 끈질긴 싸움 끝에 제주 4.3 항쟁,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1980년 광주 학살 등의 진실이 수십 년 뒤에 확인됐듯이 말이다.

둘째, 지금 세월호 참사 국면, 특히 진상규명 국면이 빨리 끝나기를 가장 바라는 사람은 바로 박근혜다. 최종 책임자는 누가 뭐래도 박근혜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는 국회에서 기만적 특별법이 통과되면 유가족과 세월호 운동 지지자들에게 ‘이제 제자리로 돌아가라, 결과를 지켜보며 가만히 있어라’ 하고 대대적으로 떠들어댈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특별법이 끝났다는 인식을 주면, (의도치 않더라도) 정권의 국면 전환을 수용하는것처럼 비쳐 동력 확보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셋째, 애초에 특별법 요구는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서였다. 검찰과 국회, 대통령이 임명하는 특검으로는 진실을 제대로 밝힐 수 없기 때문이다.

여야 야합 과정이나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는 이 주장이 옳았음을 입증해 준 과정이었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정당할 뿐 아니라 필요한 요구를 포기해야 하나?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규명하고 단죄하는 일은 안전 사회를 만드는 첫 걸음이다. 참사의 책임자들은 자본주의 이윤 경쟁 시스템의 수혜자들과 통치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원래 기조를 지켜 원칙 있게 싸우는 것이 의제를 협소화하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체제의 비정한 진실을 낱낱이 밝히기 위해 필수적인 과정이다.

일각에선 국가에 의존하지 말고 대중 스스로 진상 규명 운동에 나서자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법률적 강제권이 없으면 이 참사에 연루된 사회 상층부 인사들을 강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냉정한 현실을 무시해서는 안 된다. 결국 의도치 않게 민감한 쟁점을 회피하는 주장이 될 수 있다.

입력 2014-10-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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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반년

무엇을 남겼고, 무엇을 해야 하는가

김지윤

세월호 참사 반년이 지났다. 그러나 진실 · 책임 규명은 여전히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아직 10명의 실종자가 남아 있다. 실종자 가족의 시계는 여전히 4월 16일에 멈춰 있다.

세월호 참사는 사고 원인부터 구조, 수습 과정까지 이윤 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대중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 줬다.

청해진해운은 비용 절감을 위해 노후한 선박 세월호를 안전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한 비정규직 선원들로 채워 넣었다. 과적도 빈번했다. 이런 ‘시한폭탄’이 버젓이 바다에 떠다닐 수 있었던 것은 기업 이윤을 위한 정부의 규제 완화와, 정부 관료와 기업인 간의 부패한 유착 덕분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구조 과정에서 총체적 무능 · 무책임을 드러냈다. 박근혜 정부는 배에서 스스로 빠져나온 사람을 제외하면 단 한 명의 목숨도 구하지 못했다. 사고 당일 오전 청와대가 승객 다수가 선내에 잔류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는 것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그러나 박근혜가 어떤 조처를 취했는지 여전히 불분명하다.

청와대가 컨트롤 타워 구실을 하지 않은 것이다. 책임 규명 과정에서 청와대를 제대로 조사해야 하는 이유다. 진실 규명에 따라 박근혜 정부에 참사의 실질적 책임을 물어야 할 수 있다. 이미 가족대책위는 5월부터 성역 없는 철저한 조사에 대통령까지 포함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해 왔다. 

잊지 말아야 할 그날 4월 16일 유가족들은 세월호 참사 반년이 된 10월 16일을 1백84번째 4월 16일이라고 불렀다. 정의는 반드시 실행돼야 한다. ⓒ이윤선

사회적 각성

물론 박근혜 정부는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는 것에 혈안이 돼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정부를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음을 잘 알기 때문이다. 구조 첫날부터 해경 인력의 5분의 4가 - 구조가 아니라 - 유가족 감시에 배치됐다. 경찰은 유가족들을 미행하고 사찰했다.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들의 진실 · 책임 규명 요구를 뭉개거나 묵살했다. 10월 6일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알맹이가 없었다. 가족대책위의 지적대로 “검찰이 얼마나 진상 규명에 무능한지 혹은 의지가 없는지에 대한 의혹만 가지게” 했을 뿐이다.

세월호 급변침의 원인,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 유병언 정관계 로비 등등 밝혀야 할 의혹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무엇보다 참사의 책임을 진정 져야 할 고위 인사들은 요리조리 다 빠지고 송사리들만 언론과 사법 권력의 몰매를 맞고 있다.

더군다나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를 마치 경제 위기의 원흉인 양 몰아가며 규제 완화를 확대하고 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낱낱이 들춰내는 것은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자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일이다. 특별법은 이런 염원의 상징이다. 세월호 특별법 서명 운동에 5백 만 명이 가까이 동참했다. 또, 최근에는 작가들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써내려 간 《눈먼 자들의 국가》(문학동네)가 출간 1주일 만에 3만 부가 팔려 나가며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 실로 국민적으로 관심과 지지가 여전한 것이다.

이런 정서는 계기가 생기면 다시 폭발할 가능성이 있다. 국가 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것인 만큼, 지난한 과정을 거칠 수 있고 곡절도 많을 것이다. 조급함 때문에 ‘수사권 · 기소권 보장’ 같은 진실 책임 규명을 위한 필수 장치들을 하나둘 양보하다 보면 오히려 운동의 동력이 약해질 수 있다.

입력 2014-10-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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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반년

수사권·기소권 포함 특별법 요구를 접어서는 안 된다

김문성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의 특별법 야합 이후 세월호 항의 운동은 일시적 소강 상태다.

그동안 고비마다 원칙 있게 분투했던 가족대책위가 안타깝게도 애초의 특별법 요구 기조에서 후퇴했다. 유가족을 무시하고 배신하며 저질러진 두 주류 정당의 야합에 지치고 사기가 떨어진 듯하다.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지겹다는 말은 마세요. 어떻게 자식이 지겨울 수 있습니까?” ⓒ이미진

그런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의 온건파 리더들이 이를 추수하며 투쟁의 정당성과 목표를 손상시키는 것이 진짜 안타깝다.

박근혜 정부가 완강하게 버티고 있으므로 세월호 참사 책임 규명은 단시간에 이뤄지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저러한 우여곡절 속에서 또 격랑의 정국 속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살 사실들이 새롭게 폭로되거나 정권이 무리수를 두는 등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

이때 기회를 잡으려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몇 가지 쟁점에서 분명한 태도가 필요하다.

첫째, 수사권 · 기소권을 가진 독립적 수사기구를 요구해 온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반드시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해야 한다. 운동의 목적과 목표를 분명히 하고 인내심을 갖고 원칙 있게 싸우는 것이야말로 운동의 동력을 유지하고 되살리는 길이다.

둘째, 진상 규명을 방해하는 데서 공범임이 드러난 새정치연합으로부터 독립적 자세를 분명히 해야 한다. 새정치연합 전 원내대표 박영선은 기소권을 요구할 수 없다고 7월부터 말했지만, 대책회의는 공식적으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셋째, 세월호 참사는 국가가 노동계급 사람들의 구조를 외면한 계급 차별 문제이기도 하므로 조직 노동계급 운동이 구심점 구실을 해야 한다. 각종 민영화, 규제 완화 반대 등 안전과 생명을 의제로 한 투쟁들과 연계하는 것도 필요하다.

그래야 책임을 손톱 만큼도 지지 않겠다는 박근혜에게 실질적인 책임을 물을 수 있다.

입력 2014-10-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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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생각한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체제와 부패한 우파 정부가 낳은 비극

세월호 참사는 사고의 원인과 배경, 무능하고 무책임한 구조·수습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자본주의 체제와 맞닿아 있다.

세월호를 운영한 청해진해운은 이윤을 위해 객실을 늘리는 무리한 증축을 했고, 화물 과적을 일삼았다. 이런 요인들 탓에 배의 복원력이 크게 나빠졌다.

직원 안전교육에는 인색한 청해진해운이 접대비에는 아낌없는 돈을 썼다. 청해진해운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윤 경쟁 체제 자체가 이윤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도록 한다. 이 때문에 이 체제에서 정경유착, 부패와 비리는 끊이지 않는다. 이런 체제는 소수 권력자에게는 이득을 보장하지만 다수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안전과 생명의 위협이 된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가 보여 준 비극적 교훈이다.

또한, ‘국가가 국민을 구조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충격과 분노를 불러 일으켰다. 해경은 단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다. 법정에서 밝혀진 사실만 봐도 해경은 퇴선 명령을 하지 않았다. 구조대는 헬기가 없어 배가 가라앉은 뒤에야 도착했다. 서해 해경의 특공대는 민간 어선을 타고 2시간 뒤에 왔고, 해경 특수구조대는 김해공항, 목포공항을 거쳐 신고 5시간이 지나서 현장에 도착했다. 해경은 수색이 용이한 물때에는 정작 잠수를 시도하지 않았고,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주제에 해군, 경찰, 미군의 도움도 죄다 거절했다.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들의 일부로서 안전예산 삭감과 규제완화가 이 비극의 또 다른 배경이 됐다. 세월호 사고 직전에, 박근혜 정부는 예산 절감을 이유로 해양경찰청의 수색구조계(인명구조, 선박 좌초 전복 대처 등을 하던 부서)를 없애버렸다. 안전 장비와 구조 훈련에 돈을 안 쓴 것은 당연했다. 이런 국가에서 설사 사고는 우연이라 해도 참사는 필연이었던 것이다.

생명과 안전을 위한 기업 규제마저 “쳐부술 원수”로 보는 박근혜가 자본가 계급 정치조직의 수장인 상황에서 구조 실패는 국가 시스템상 준비된 무능이었다. 자본의 축적 드라이브와 국가의 무책임 문제인 것이다.

그러므로 세월호는 운 나쁜 사람들의 우연한 불행이 아니다. 현대제철, 현대중공업, 삼성전자 노동자들의 불행이 우연한 사고가 아니듯이 말이다. 

△“이런 나라에서 내 새끼를 낳고 키운 거냐? 대한민국에 대통령이 있느냐?” ⓒ조승진

이런 일들은 자본주의에서 국가 운영 전반과 사회의 우선순위가 기업 이윤 추구에 맞춰져 있기 때문에 벌어진다. 이윤이 영순위인 체제에서 안전을 위한 비용은 낭비로 취급된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선박 안전 등이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는 얘기가 계속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근본적으로 선박 운항이 경쟁 체제이므로 참사 이후에도 안전을 위한 여러 조처들은 여전히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박근혜는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국민 담화에서 “기업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에 큰 피해를 입히면서 탐욕적으로 사익을 추구하여 취득한 이익은 모두 환수 … 문을 닫게 만들겠[다]”고 했다.

지난 4년간(2011년~14년) 산업재해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 수는 7천5백여 명에 달한다. 그러나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내몬 ‘살인기업’이 문을 닫겠구나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날 담화에서 박근혜가 흘린 눈물을 누구도 믿지 않듯이 말이다. 그가 단지 악독한 인물이라서가 아니다. 그가 한국 자본주의의 정치적 수장이어서다.

요컨대, 세월호 참사는 이윤을 가장 앞세우는 자본주의의 우선순위가 낳은 비극이다. 노동계급의 고유의 힘, 즉 이윤 생산을 멈추는 ‘파업’은 일상적 시기에 지배자들을 물러서게 하는 가장 강력한 압박이 될 수 있다. “이윤보다 생명을, 효율보다 안전을 지키는 총파업을 벌이는 것이 노동자의 방식으로 세월호를 기억하는 방법”이라고 한 민주노총의 방침이 말처럼 진행되길 바란다.

입력 2015-04-1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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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규명을 국가에 요구하며 계속 싸우는 것이 왜 중요한가

김문성

우리가 세월호 참사에 관해 밝혀진 부분적 사실들과 정황, 이 사회의 작동 원리들과 결합해 참사의 본질적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해도 법정 기구로 수사하고 그것들을 확정된 진실로 내놓는 것은 여전히 필요하다.

예를 들면, 참사 당일 박근혜의 7시간 실종과 관련해 중대 재난에 대한 정부의 보고 지휘 체계의 책임을 규명해야 한다. 그런데 은폐의 장본인이 박근혜 정부다. ‘숨기려는 자가 범인’이라는 세월호 집회 한 참가자의 팻말이 신랄하게 느껴진다.

따라서 국가를 상대로 진실 규명을 요구하며 싸우는 투쟁이 중요한 이유는 첫째, 이것이 피할 수 없는 전선이기 때문이다. 책임 규명은 조금이라도 참사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믿을 것은 정부가 아니라 부둥킨 우리의 연대  세월호 희생자 가족과 시민들이 뜨겁게 안고 위로와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조승진

둘째, 법정 기관을 통해 진실을 규명하는 과정은 참사의 책임자들에게 강제력을 동원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진실 파헤치기에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셋째, 수사든 조사든 그 결과에 공신력을 부여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은 광주 학살이 전두환 신군부의 짓인 것을 당연히 알았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 을 요구했다. 결국 1988년 국회 청문회, 1995년 전두환 노태우 구속과 유죄 판결로 광주항쟁은 ‘독재 정권의 민중 학살에 맞선 정당한 민중 저항’으로 국가적 차원의 공인을 받았다. 오늘날 우파들은 이를 함부로 뒤집지 못한다.

이 때문에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실 규명 기관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 점에서 정부에 요구하지 말고 대중 스스로 진상 규명에 나서자는 주장은 일면적이다. 폐기가 아니라 문구 수정 등으로 조사위원회를 무력화시킬 정부 시행령안에 대해 타협하자는 운동 내 일각의 태도는 진실 규명을 어렵게 할 뿐이다.

정부 시행령(안) 폐기는 진실 규명을 향한 장도의 첫 발

박근혜가 대통령령인 특별법 시행령(안)을 전격적으로 내놓은 것은 확실히 기습 공격이었다.

그러나 이 기습이 정권이 무리수를 둔 결과가 될 가능성이 조금씩 높아지고 있다.

세월호 항의 운동이 매우 빠르게 복구되고 있다. 4월 4~5일 도보 행진과 마무리 집회에는 수천 명이 참가했다. 최근 여론조사들에서도 정부 시행령(안) 반대와 세월호 온전한 인양 지지가 50~70퍼센트를 넘는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공분은 잠복해 있었을 뿐 사라지지 않은 것이다.

“격랑의 정국 속에서, 사람들의 원성을 살 사실들이 새롭게 폭로되거나 정권이 무리수를 두는 등의 변수가 생길 수 있다. 그러면 세월호 항의 운동은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다”고 한 <노동자 연대>(136호)의 예측이 옳았던 것이다. 이런 전망 속에서 당시 <노동자 연대>는 불필요한 양보를 하지 말고 원칙을 지키며 끈질기게 싸우자고 주장했었다.

지금 4월 총파업을 준비하는 민주노총도 세월호 참사 항의에 힘을 보태고 있다. 전교조는 아예 “공무원연금 개혁 반대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저지를 위해 24일 민주노총의 총파업에 연가 투쟁 형태로 동참하겠다”고 밝혔다.

이명박 자원외교 비리 수사에서 시작한 “부패비리 발본색원” 작업은 김기춘, 허태열 등 친박 핵심 인사들로 불똥이 튀었다. 이런 상황은 박근혜의 고통전가 공세와 세월호 진실 침몰시키기 공세의 동력이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준다.

그러나 박근혜는 정부 시행령(안)을 쉽게 폐기하진 않을 것이다. 또한 우리 편에 유리한 여론과 집회 참가 등 행동 규모 사이에 여전히 격차가 있다.

따라서 요구안 후퇴가 아니라 유리한 요소를 이용해 운동을 강화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세월호 문제가 민주노총의 파업과 연계돼 4·29 재보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박근혜가 피하고 싶은 시나리오다. 이를 통해 세력균형이 우리 편에 유리해지면, 정부 시행령(안) 강행도 어렵겠지만, 설사 이를 통과시켜도 다시 개정하거나 심지어 특별법 자체를 새로 만드는 운동을 자극할 수도 있다. 유가족은 물론 특별조사위 이석태 위원장도 불복종하고 싸우겠다고 투쟁 의지를 천명하고 있다.

입력 2015-04-1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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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학보>의 세월호 운동 비난 칼럼 논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운동은 정치적이면 안 되는가

독자편지 | 양효영ㆍ김승주

5월 4일에 발간된 <이대학보>의 ‘세월호 참사를 추모하는 마음만큼 중요한 것’ 기사가 큰 논란을 일으켰다. 이 기사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에 대한 왜곡과 비방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사의 주된 내용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이 폭력시위로 변질됐고, 그 이유는 “좌파 · 친북 단체”가 “유가족을 앞세워” “‘추모’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혹은 이념적 목표를 달성”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조중동 사설 같은 왜곡 기사가 대학 신문에 버젓이 실린 것이다. 이 기사는 발간되자마자 이화여대 학생들의 공분을 샀다. <이대학보>와 해당 기사를 쓴 박진아 기자는 “하루 새 이대학보를 향해 쏟아진 많은 의견”에 놀라 황급히 사과문을 게재했다.

그러나 이 사과문조차 불충분하고 문제적이다. 박진아 기자는 “제 칼럼은 여러분들이 오해하시는 것처럼 세월호 집회를 폭력시위로 규정하거나 유가족 분들과 집회 자체를 비난하고자 하는 목적이 전혀 아니었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 원문에는 “세월호 참사 추모제가 폭력시위로 변질된 것일까 ... 1년 전 아이를 잃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던 그때의 부모들이 맞을까 ... 아니나 다를까. 폭력시위는 추모제에 참여한 좌파 친북 단체가 세월호 유가족을 앞세워 반정부 구호를 외치며 청와대로 진격을 시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고 버젓이 적혀 있다.

또한 박진아 기자는 사과문에서 “다듬어지지 않은 표현과 경솔한 단어 사용이 오해의 소지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동시에 “세월호 집회를 자신들의 개인적인 목적에 이용하는 일부 단체로 인해, 유가족 분들의 당연하고 정당한 요구까지 빛바래고 힘을 잃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가 들었다”며 자신의 원래 입장에서 조금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박진아 기자는 수많은 이화여대 학생들이 진정으로 분노한 지점에 대해선 전혀 철회하지 않았다. 박진아 기자의 사과문은 지나가는 소나기를 피하고 보자는 심정으로 당장의 비판을 비껴나가려는 얕은 수로 보인다. 유가족과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 참가한 수많은 사람들을 모욕한 박진아 기자는 <이대학보> 부장급 기자라는 자격 없다.

외부세력?

이 기자 개인의 비양심도 분노스럽지만, 이번 <이대학보> 칼럼 논란은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둘러싼 중요한 논쟁거리를 던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은 더 정치적으로 돼선 안 되는가? 정치 단체는 유가족들을 이용해 ‘음흉한’ 이익을 챙기고 있는가?

언제나 국가와 우파들은 자신들을 겨냥한 투쟁의 사회적 지지와 연대가 넓어지는 것을 “불순 세력의 개입”, “외부 세력에 의한 정치적 변질”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렇게 따지면 세월호 참사에 슬픔과 분노를 느껴 집회에 참가하고 거리 행진에 참여한 수많은 이화여대 학생들도 ‘외부세력’이다.

박진아 기자는 시민단체들이 “일반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해 무엇이 진짜고, 무엇이 가짜인지도 구분하기 힘들게”하고 있다고 말한다. 냉정한 판단을 요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집회 참가자들을 주체적 판단도 못하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물론 이 운동의 중심에는 유가족들이 있다. 운동이 지속돼 올 수 있었던 것도 유가족들이 단호하게 진실규명을 요구한 덕분이다. 박진아 기자의 말과 달리 유가족들은 지금껏 앞장서서 정부에게 특별법 제정, 성역 없는 수사 등을 요구해 왔다. 그와 동시에 광범한 ‘외부 세력’의 연대가 유가족들에게 큰 힘이 됐다.

또한 박근혜 정부에게 책임을 묻는 것이 왜 문제일까? 재난·참사 대처의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는 구조를 방기한 책임이 있다. 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는 일을 앞장서서 계속 방해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들을 지지하는 시민들을 ‘외부세력’이라 딱지 붙이면서 동시에 유가족에 대한 탄압도 계속했다. 박근혜는 기소권과 수사권을 보장한 특별법이 통과될 수 없도록 방해했고, 세월호 참사 1주기 직전에 ‘쓰레기 시행령’을 발표해 특별조사위원회의 권한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려 했다. 유가족들이 투쟁에 나서자 배·보상 액수를 슬쩍 언론에 흘려서 유가족들이 돈 때문에 싸우는 비정한 부모처럼 보이게 하려 했던 것도 박근혜 정부였다. 시행령을 폐기하라는 유가족과 집회 참가자에게 물대포를 뿌린 경찰 폭력도 박근혜 정부의 문제다. 박근혜 정부는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쓰레기 시행령’을 통과시켜 그 자신이 진실 은폐의 주범임을 다시금 입증하고 있다.

이런 정부를 상대로 한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 운동이 정치적이지 않을 수 있을까? 오히려 진실을 밝히기 위해선 박근혜 정부와 투쟁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자명해졌다. 정부와 우파가 ‘순수한 추모’를 운운하며 운동이 정부에 책임을 묻는 걸 비난하는 것은 이들의 진실 은폐 시도에 ‘가만히 있으라’는 것밖에 안 된다. 운동이 더 정치적으로 발전해 박근혜 정부에 비타협적인 투쟁을 벌일 때만 우리는 세월호의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

※ 이 글은 노동자연대 이화여대 모임이 5월 7일에 발표한 성명을 일부 손봐서 기고한 것이다.

입력 2015-05-0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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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의 의의와 과제

최영준

세월호 참사는 배 침몰뿐 아니라 구조 실패, 진실 은폐, 여야의 무책임한 합의 등으로 대중적 공분이 컸다. 참사와 그 후속 조처를 보면 이윤 체제의 비극, 한국 자본주의의 관성, 부패한 정부 등의 문제를 보여 준다.

자판기에 깔린 친구를 차마 구하지 못하고 빠져나온 한 단원고 학생은 그 친구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고 했다. 살아남은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평생 남을 상흔이다.

“구조 실패·진실 탄압 주범 박근혜보다 더 질기게 싸우자” 4월 16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 범국민대회. ⓒ조승진

지난해 10월 검찰은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런데 ‘세월호를 무리하게 증 · 개축했고, 과적을 했고, 평형수에 문제가 있었고, 경험 없는 조타수의 실수가 원인이었다’고만 밝혔다. 정확한 사고 발생 시간과 장소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당시 기상 악화 때문에 다른 배들은 출항하지 않았는데 왜 세월호만 출항했는가? 왜 세월호만 국정원에 의무 보고를 했는가? 국정원이 실소유주이고 경영자인가? 이런 의혹들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 사람들이 알고 싶은 건 박근혜의 사생활이 아니라 구조를 위한 골든 타임 동안 박근혜가 왜 아무것도 안 했는지이다.

세월호 참사 이후에도 바뀐 것이 없다. 판교 환풍구 사고, 오룡호 침몰 사고가 벌어졌고 최근 현대제철에서 노동자가 쇳물에 빠져 숨진 일도 있었다. 그리고 사후 대책도 여전히 미흡하다.

지난해 11월 여야 야합으로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반쪽짜리 특별법이 통과됐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으면 제대로 사건을 조사 · 수사해서 책임자를 처벌할 수 없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이런 반쪽짜리 특별법으로 생겨난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권한조차 가로막고 있다.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글을 퍼나르거나 막말을 하던 자들을 여당 몫 특조위원으로 앉히고, 특조위의 조사권(수사권이 아니라)마저 침해하는 “쓰레기 시행령”을 통과시켰다.

이렇게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한사코 막으려는 정부가 이른바 ‘안전’ 대책들을 쏟아 냈다. 그러나 정부가 내놓은 ‘안전대진단과 안전산업 발전 방안’은 오히려 안전 규제를 없애거나 완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안전관리 기술자들이 직접 교육받던 것을 원격 교육으로 전환하거나, 유해화학 물질 설치와 지급 기준을 완화하고, 이명박 정부 하에서도 안전 문제로 반려됐던 수직 증축 리모델링을 허용했다.

330일 제출한 ‘안전혁신마스터플랜’은 더 황당하다. 안보와 안전을 같은 것으로 취급하고, 특수기동구조대를 설치해 테러시 테러로부터 구조한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안전산업 활성화 대책’은 안전 관련 업무를 시장에 맡기겠다는 것이다. 산업자원부는 ‘안전 펀드’를 구성해서 민간보험을 활성화하겠다고 한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는 구조를 민간업체 ‘언딘’에게 넘겨버렸는데, 이런 방식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안전사고를 막기는커녕 제2의 세월호 참사를 일으킬 수 있는 조처들이다. 2014416일을 과거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참사는 과거가 아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의 성과와 쟁점들

처음에는 운동이 나아갈 방향을 둘러싸고 진보진영 내에서도 의견이 분분했다. 추모에 머물러야 하는가, 투쟁을 해야 하는가. 박근혜에게 항의의 초점을 맞춰야 하는가 아닌가 등을 둘러싸고 그랬다. 당시 개혁주의 리더들은 박근혜를 정조준해 투쟁하면 운동이 ‘정치화된다’며 반대했다. 3백 명이 넘는 유가족들의 생각을 정확히 알기도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해 어버이날, KBS 보도국장이 “세월호는 교통사고와 다를 바 없다”는 막말을 하자 유가족들이 분노해 KBS 항의 방문을 했다. 그래도 해결이 안 되니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며 청와대로 향했다. 그날 노숙 농성을 시작한 것이 항의 운동의 시작이었다. 오히려 유가족들이 운동을 ‘정치화’하기 시작한 것이다.

510일 안산에 2만 명이 모였고 이후 8월까지 매주 수천~수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집회에 참가했다. 전교조 교사들은 해고를 각오하고 박근혜 퇴진 성명을 발표했다. 노동자 운동에 관심 있는 사람들도 이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가하기 시작했다.

일련의 항의 과정에서 유가족이 투쟁의 중심에 있었다. 조중동과 새누리당은 위선적이게도 ‘순수성’ 운운하며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을 비난했지만, 이 운동이 정치적으로 발전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정부에 항의하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정치 행위이다.  

왜 정치적 투쟁이 필요한가

지난해 운동의 성과와 쟁점을 정리하자면 이렇다. 첫째,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진 못했지만 세월호 참사는 사고 원인과 수습 과정 모두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우선순위가 노동계급 대중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고 이윤에 있음을 명백히 보여 줬다. 세월호 같은 ‘시한폭탄’이 버젓이 바다를 떠다닐 수 있었던 것은 기업들의 이윤을 위해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그 과정에서 정부 관료와 기업이 여전히 밀접하게 서로 유착돼 있었기 때문이다.

세월호 급변침의 원인,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 유병언 로비 등이 밝혀져야 할 문제로 남아 있다. 참사의 진정한 책임을 져야 할 핵심 관료들은 요리조리 다 빠지고 ‘피라미’라고 할 수 있는 선원들 ― 물론 이들도 처벌받아야 한다 ― 만 뭇매를 맞았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은 이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고 민주주의를 증진시키고자 하는 염원의 상징이 됐다. 이런 뜻을 모은 것이 커다란 성과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포함하는 특별법은 이런 염원의 한 상징이었다. 현재도 이런 관심은 줄어들지 않았다. 지난해 특별법 투쟁에 참가했던 학생들뿐 아니라 새로운 사람들이 시행령 폐기 싸움에 나왔다.

둘째, 박근혜 정부의 총체적 무능, 무책임, 부패가 여실히 드러났다. 사고 당일 오전 청와대는 승객들이 잔류하고 있다는 보고를 받은 후에도 어떠한 조처도 취하지 않았다. 가족대책위가 ‘성역 없는 조사에 대통령도 포함된다’고 주장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세월호국민대책회의’ 안에서 대통령도 조사 대상에 포함시킬 것인지가 논쟁이 됐다. 실현 불가능한 요구를 내놓으면 실망만 할 수 있다는 것이 반대하는 사람들의 주요 논리였다.

하지만 박근혜는 정부 책임자로, 세월호 항의 운동에서 대중적 분노의 상징이고, 무엇보다 박근혜를 조사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 진실을 밝히는 것이 어렵다. “쓰레기 시행령” 추진을 보면 정부가 어떻게 해서든 진실 규명을 막으려 한다는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지난해도 마찬가지였다. 구조 첫날부터 해경 인력의 5분의 4가 구조가 아니라 유가족들을 감시하는 데 배치됐다. 세월호 참사 항의 시위를 진압하려고 2008년 촛불 투쟁보다 8배나 많은 경찰 병력을 투입했다. 결국 진실 규명 싸움은 정부를 상대로 한 투쟁이어야 하고 그런 의미에서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드러난 것이다.

광주 학살은 1980년에 일어났다. 학살 책임자인 전두환은 15년이 지난 1995년에야 처벌받았다. 정부에 줄기차게 진상 규명을 요구하고 운동을 벌인 덕분에 특별법이 제정됐고 1988년에는 청문회를 열 수 있었다. 운동이 전진하려면 정치화돼야 한다. 운동이 정치화되려면 대중 운동이 건설돼야 하고, 시스템에 실질적인 압박을 가할 수 있는 사회세력인 노동계급이 실제로 움직여야 한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은 박근혜에 대한 증폭된 반감과 불만을 모아내는 구실을 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투쟁의 전략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셋째,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은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지만, 박근혜를 실질적으로 물러서게 할 만큼 강력하지는 못했다. 노동자 투쟁의 뒷받침을 충분히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6월 당시 대책회의 내 일부 개혁주의 리더들은 대중 운동을 확대하기보다는 지방선거에서 ‘투표로 심판하기’를 바랐다. 서울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새정치연합 박영선이 ‘수사권 ·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은 가능하지 않다’는 말을 공개적으로 했는데도 ‘세월호국민대책회의’가 이에 대한 비판을 공개적으로 못 하게 해서 논쟁이 벌어졌다. 사람들은 선거에서 새누리당에 항의 투표를 했지만, 대안 부재 때문에 새누리당은 참패를 모면했다. 이에 실망한 일부 개혁주의자들은 수사권 · 기소권을 포함한 특별법 제정은 사실상 가능하지 않다며 유가족들에게 수사권 · 기소권을 포기하라고 설득하는 방식으로 나아갔다.

한편, 일부 좌파들은 박근혜 퇴진을 물신화했다. 이는 굳이 전체 행진 대열에서 소수가 이탈해 청와대로 가는 모습으로 나타났다. 운동이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음에도 항의의 몸짓을 더 극적으로 하고자 굳이 소수의 행동을 벌인 것이다.

하지만 항의 운동이 전진하기 위한 고리는 다른 데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전가에 온 힘을 쏟았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요구로 투쟁을 벌이면서도 세월호 항의 운동도 뒷받침해 준다면 후자도 앞으로 전진할 수 있다. 노동자들의 파업이 항의 운동에 결합됐다면 박근혜는 상당한 위협을 느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당시 민주노총 지도부는 조직적 참가를 제안하지 않고 소극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참가하라’, ‘노동자들이 조끼 입고 집회 참석하면 안 된다’ 는 식이었다.

올해 시행령 폐기 운동은 민주노총의 4 · 24총파업과 맞물려 벌어진 것은 지난해에 견줘 조금 전진한 부분이다. 지난해 유가족 일부는 민주노총을 부담스러워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지난해부터 투쟁을 거치며 유가족들과 많은 사람들의 의식에 변화가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넷째,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은 박근혜의 다른 악행을 뒤로 미루는 효과가 있었다. 지난해 유가족들의 KBS항의 방문은 KBS 노동자들을 자극했다. KBS 노동자들은 박근혜의 낙하산 사장 길환영 사퇴를 요구하며 파업해 승리를 거뒀다. 보건의료 노동자들은 박근혜가 추진하는 의료 민영화가 ‘제 2의 세월호 참사’라면서 생명과 안전을 위한 파업을 했고, 의료 민영화 정책들을 부분적으로 늦췄다. 일부 노동운동가들은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으로 자신들의 투쟁이 묻힌다는 협소한 부문주의적 생각을 하기도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고 동반 상승 작용을 하기도 한다

정부의 분열 시도에 맞서야

마지막으로 유가족, 실종자, 생존자 가족들 사이의 단결이 강해졌다.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로 52명이 사망했다. 사고 당일 옥상이 무너져 내리고 기둥에 금이 가서 물이 새기 시작했는데도 사측은 영업을 계속 하기로 했다. 백화점이 무너지는 와중에도 대피 안내 방송을 하지 않고 자신들만 먼저 대피했다. 그 당시에도 정경유착이 여실히 드러났지만 백화점 사주 1명만 구속되고, 진상조사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정부는 유가족들의 친인척까지 불러내서 ‘빨리 돈 받고 처리하자’, ‘지금 못 받으면 앞으로 못 받는다’며 회유하고, 유가족들을 분열시켰다. 결국 진상 규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했다.

또 한 사례는 2003년에 일어난 대구지하철 참사다. 지하철 1인승무제와 인력 감축으로 역사 안에 사고에 대처할 노동자들이 없었다는 점이 피해가 확대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사고 이후 노동조합과 시민대책위, 유가족들이 안전을 위한 행동에 나섰다. 지하철노조는 파업까지 벌이며 안전 대책을 요구했다. 좌석을 인화성이 적은 물질로 바꾸는 등 성과가 있었지만 더 철저한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못했다. 유가족들이 배보상 문제를 둘러싸고 분열한 것이 한 요인이었다. 정부가 계속 분열을 획책하는 이유다.

다행히도 세월호 유가족들은 놀라운 단결력을 유지하고 있다. 물론 정부는 끊임없이 세월호 유가족들을 분열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유가족들은 과거 경험에서 배워 훨씬 더 뭉쳐 있다. , 유가족들은 ‘우리끼리 하기는 어려운 싸움’이라며 ‘4 · 16연대’라는 진상 규명 기구를 설립하는 데까지 나아갔다. ‘4 · 16 연대’는 유가족과 사회단체가 장기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상설 기구이다.

이 싸움은 단지 1~2년의 싸움이 아니다. 아직 진실 규명을 향해 한 발자국도 안 나아갔다. 앞으로 정부 기관들이 특조위에 자료를 제출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래서 계속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행령 통과 이후의 과제

시행령 폐기 투쟁으로 4월 한 달을 달궜는데 결국 시행령이 국무회의에서 통과됐다. 핵심 쟁점의 하나인 기획조정실장의 업무를 “기획 및 조정”에서 “협의 및 조정”으로 문구만 바꿨는데, 조사의 실권을 박근혜 정부가 가지는 건 바뀌지 않았다. 특조위 재정, 사업비 문제도 여당 추천 위원이 틀어쥐고 있다. 이래서는 제대로 된 독립적 조사를 할 수 없다. 책임을 져야 할 당사자들에게 조사 권한을 준 것으로,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꼴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시행령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발표했다.

시행령 폐기 투쟁은 정세의 초점이었다. 민주노총의 파업, 성완종 게이트와 맞물리면서 정부는 시행령 발표를 3번이나 미뤘다.

이번 시행령 폐기 투쟁은 지난해 운동의 퇴적물 위에서 출발했다고 강조하고 싶다. 처음부터 정부에 항의의 초점이 맞춰졌다. 노동자 투쟁과의 결합도 조금 이뤄졌다. 반갑게도 민주노총 새 집행부는 세월호 진상 규명과 시행령 폐기를 4 · 24파업과 메이데이의 주요 요구에 포함시키고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연대했다. 물론 노동자 투쟁이 충분히 크고 강력하게 벌어지지는 않았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아무런 도움도 안 됐다. 지난해는 이 운동에 개입해서 뒤통수쳤다면 올해는 무위도식이었다. 새정치연합 안에 세월호특위가 구성됐지만 투쟁하는 유가족들을 한 차례도 방문하지 않았다. 물론 4 · 29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참패하자 박근혜는 지금이 적기라고 보고 시행령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다 끝난 것은 아니다. 현재 특조위 위원들이 시행령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개정안을 내놓기로 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럼 어떻게 할 것인가?

한쪽에선 현실을 인정하고 특조위를 활용하자는 쪽과 다른 한쪽에선 이제 특조위로는 진상 규명이 불가능하니 민간 조사위를 꾸리자는 주장이 있다.

악마의 시행령’이라고들 했는데, 이제 와서 그 시행령 하의 특조위를 진상 규명에 활용할 수 있다는 건 논리적 모순이다.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한계가 분명하다는 것을 말해야 한다. 그럼에도 진상과 책임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하려면 국가의 강제력이 필요하다. 특조위가 어떤 방식으로든 활동하면 이를 통해서는 진상 조사가 제대로 될 수 없다는 것이 폭로될 것이다.

따라서 양 편향이 아니라, 한편으로는 국가를 상대로 한 진상 규명 요구를 계속하면서, 그와 더불어 특조위 조사 과정의 문제점을 폭로하고, 제대로 된 특별법 재개정까지 제기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그리고 이 싸움이 안전 사회에 대한 열망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 사회를 새롭게 재편하는 문제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자 투쟁이 중요하다. 대구지하철 참사에서 부분적이나마 과거보다 전진이 있었던 것은 지하철 노동자들이 파업을 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1968년 탄광이 무너지면서 탄광안전법이 신설됐다. 당시 탄광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지역의 다른 노동자들과 시민들이 연대했다. 그 이후로 사망률이 훨씬 줄어들었다.

시행령이 통과돼 한 국면이 일단락됐다. 지난해 특별법 통과 뒤에도 집회의 규모는 줄었다. 관심이 줄어서라기보다 ‘다음에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노동운동의 개입이 아직 모자란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들 안에서도 반응이 같지는 않다. 이 운동의 중요성을 알고 있는 정치적으로 선진적인 소수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제기하고 효과적으로 사람들을 설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 특정한 계기로 사람들이 바뀔 수도 있다.

규제 완화, 인력 감축, 비정규직 차별 반대 투쟁도 세월호 투쟁과 떨어져 있지 않다. 한 예로 ‘작업중지권’은 안전 문제이고 1987년 노동자 투쟁의 성과인데 지금 정부가 되돌리려고 한다. ‘과적 금지’도 화물노동자 자신들의 요구다. 세월호도 선원의 70퍼센트가 계약직이었다.

최근에 철도에서도 계약직이 늘어났다고 한다. 정비 업무가 외주화되면서 사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인력 충원이 중요하다. 병원도 그런 사례다. 따라서 노동자 자신의 요구로 싸우는 것도 세월호 운동과 연결될 수 있다.

과거에 비해 세월호 유가족들과 진보적 세력들이 훨씬 더 유기적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리고 십대 학생들이 희생됐기 때문에 관심이 훨씬 높다. 희생된 아이의 부모들은 대부분 노동자이기도 하다. 사회운동과 노동운동이 사회 전반의 안전 문제와 세월호 진실 규명을 결합시킨다면 더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해 말 <노동자 연대> 신문이 이 싸움이 끝난 게 아니라고 강조했듯이, 앞으로도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유가족들이 계속 진실을 위해 싸울 것이고, 노동자들도 안전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다.  

입력 2015-05-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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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 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

“진상규명될 때까지, 부모의 마음으로 끝까지 할 겁니다”

인터뷰ㆍ정리 김지윤

세월호 참사 4백 일입니다. 그동안 정부의 구조 방기, 특별법 누더기 통과, 최근 경찰의 물대포와 캡사이신 살포 등 참 많은 일을 겪으셨습니다.

참사 1주기 즈음 해서 최루액 대포나 차벽, 행진과 의사표현을 원천적으로 봉쇄 당하는 경험을 하면서 저희 가족들의 생각이 한 단계 변했어요. 이제 인권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어요. 그런 걸 전혀 모르고 살았던 사람들이에요.

그런데 1주기 때 워낙 말도 안 되는 상황들을 맞닥뜨리다 보니까 ‘과연 경찰이 저렇게 막을 만큼 우리가 잘못한 게 있나’, ‘이건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어요. 최루액 대포와 관련해 헌법소원을 내고 교통용 CCTV로 집회를 감시한 서울지방경찰청장을 고발했어요. 앞으로도 부당한 공권력을 경험하면 유가족들은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승진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정치적이라 문제라는 식의 공격이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우리가 진실 규명 운동을 정치적 투쟁에 활용하려는 사람들의 조종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저흰 이 점에서 아주 떳떳합니다. 그런데도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짜 놓은 프레임에 저희를 억지로 끼워 놓고 비난하고 있죠.

생명과 안전에 관한 저희 요구들은 도덕적 · 상식적으로 우위에 있는 것들이거든요. 이걸 무마시키려면 다른 논리가 필요하겠죠.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를 비롯해 저희를 도와주시고 계신 분들에 대한 조사와 수사가 집중적으로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도 그런 취지에서 의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봅니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들을 비난했습니다.

그런 글을 쓴 사람들에게 정말 묻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가 해결되길 원하고 유가족들을 정말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글을 썼다고 하면 ‘대체 이 참사의 해결과 희생자와 실종자들을 위해서 유가족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 하고요. 그런 비난은 순수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말하고 싶어요.

4백 일 동안 유가족들이 한데 뭉쳐 싸워 온 것이 투쟁에 매우 중요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쉬운 과정은 아니었어요. 내부에서 싸움도 많이 했어요. 견해 차이와 방향에 대한 이견이 없을 수 없죠. 희생 학생 가족만 5백 명이고, 일반인 희생자, 생존 학생 가족, 화물 피해 기사들까지 하면 직계 가족들만 1천5백여 명이에요. 3백60가정이 넘고요.

그렇지만 그런 치열한 과정 속에서 결론을 내리면 흡족하지 않더라도 같이 협력하고, 논쟁할 때는 하고 그랬어요. 가족들이 서로 존중하며 지내 온 것이 자랑스럽고 감사합니다.

유가족들 중 희생학생 가족들이 대다수인데, 저희 아이들이 서로 친구였다는 것이 가장 큰 힘이었던 것 같아요. 다른 가족들도 그런 부분을 존중해주고요.

아이들이 희생당할 때 아무것도 하지 못한 부모로서 미안함이 있고, 혹시라도 우리가 잘못 행동해서 아이들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지 않을지, 부끄러운 부모가 되지 않을지 하는 걱정을 모두 해요. 1년 동안 온갖 회유와 와해 시도가 많았음에도 단 한 명도 넘어가지 않았어요. 부모니까 그럴 수 있었어요. 어떻게 내 새끼한테 부끄러운 짓을 할 수 있겠어요.

올해를 잘 해내는 것이 아주 중요하다고 봅니다. 매우 미흡할 것이라 예상되지만 올해부터 진상규명도 시작이 되고, 배상 · 보상도 진행이 될 거예요. 이 과정에서의 대응이 가족협의회의 앞으로의 방향과 미래에 중요하다고 보고 굉장히 많이 고민하고 있어요.

시행령이 통과되고 특조위 활동 기간 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정부와 새누리당 등의 방해가 계속될 듯합니다.

정부와 여당의 움직임은 저희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어요. 양심이 있다면 저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유기준 해수부 장관은 “특조위 지원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 말하면서 “특조위 활동은 1월 1일부터 시작”이라고 한마디를 덧붙이더군요. 매우 이율배반적인 거죠. 이에 관해 여당 의원들이 하는 얘기도 가관이고요.

인양에 대해서도, 정부가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공식 선언 했을 때 저희가 강조한 게 ‘결정은 환영하지만 실제로 인양이 돼야 우린 믿겠다’는 것이었어요. 누군가는 ‘왜 꼬투리를 잡냐’고 말할 수 있지만 저흰 알아요. 9월이면 한다더니 며칠 전에도 또 슬쩍 11월은 돼야 인양할 것이라는 얘기가 나오잖아요? 이렇게 계속 다른 얘기를 흘리는 거죠.

최근 재판 결과가 나왔습니다. 감형을 둘러싸고 비판도 많았고요.

해경 재판은 문제가 있어요. 현장 책임자가 구조에 관련한 책임을 져야 하고 책임이 막중하죠. 목포해경123정장은 법리를 떠나서 저희가 보기에 결과적으로 살인 행위를 한 것이고 마땅히 처벌을 받아야 해요. 하지만 그 사람만 처벌받으면 되나요? 그 사람은 육지로 따지면 파출소장이고 현장 기동대 수준의 책임자일 뿐이에요. 대한민국 경찰이 현장 책임자가 모든 권한을 갖고 있는 게 아니잖아요? 이건 출발부터 잘못된 재판임이 분명합니다.

선원들에 대한 2심이 끝나고 상고를 한다던데, 형량이 줄어든 것은 감정적으로는 불쾌합니다. 그러나 2심 재판은 나름의 의미가 있어요. 검찰은 세월호 침몰 원인의 하나로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급변침을 지적했는데, 1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한 반면, 2심 재판부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어요. 참사의 진상을 더 규명해야 한다는 당위성에 상당히 큰 힘을 부여해 준 부분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 4월 4일~5일 안산-광화문 1박 2일 도보행진 중 딸 예은이의 사진을 바라보는 ‘예은 아빠’ 유경근 씨. ⓒ조승진

5 · 18광주항쟁을 맞이해 유가족들이 광주에 다녀 왔는데, 소감이 궁금합니다.

가기 전과 후가 완전히 달라요. 5 · 18 항쟁이 올해 35주년인데 여전히 루머도 있는 상황이잖아요. 저희 부모들은 항쟁 당시에 초등학생 혹은 중학생이었어요. 대부분 관제 언론이 말하는 것을 듣고 자랐죠. 그래서 출발 전엔 대규모 참가가 논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었어요.

그럼에도 가족 1백여 명 간 이유는 딱 하나예요. 광주 시민들이 저희들을 정말 열성적으로 도와주셨어요. 세월호 참사 재판이 광주에서 열렸는데, 가족들이 내려 갈 때마다 저희를 맞이 해 주시고, 피켓팅도 같이 해 주시고, 기자회견 준비에 도시락 준비까지 1년 동안 변함없이 꾸준히 도와 주셨어요. ‘우리가 상주다’ 하면서 1천 일 순례도 하고 계시고요.

특히 ‘5월 어머니회’[광주항쟁 유가족 모임]분들을 몇 번 만났을 때 다른 어떤 분들이 주시는 힘보다 더 큰 힘을 얻었어요. 그 분들은 자식을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어이없게 잃었는데도 온갖 고초와 탄압, 오해를 받으며 살아 왔던 분들이에요. 저희가 말 꺼내지 않아도 무엇이 제일 억울하고 서러운지를 정말이지 잘 아세요. 두 말 필요 없이 눈물 흘리며 손 맞잡고 “어째쓰까잉” 이 한 마디에 모든 것이 담겨 있죠.

광주에서 ‘5월 어머니회’분들 만나자 마자 눈물을 터뜨렸어요. 동병상련이라고 할까요? 서로 교감이 되니까요. 5 · 18항쟁의 의미를 자세히는 모르더라도 저희와 같은 아픔을 훨씬 이전에 겪고, 아직도 그 아픔을 갖고 계신 분들을 만나는 순간 엄마로서 통한 거죠.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솔직히 고민이 많습니다. 1주년을 많은 시민들과 뜨겁게 보냈는데 그 결과가 시원치 않다는 점 때문에 ‘열심히 해도 뭔가 될까?’ 하는 생각이 들 수 있기 때문이죠.

지난해 여름에 특별법 하나만 두고 싸운 것과는 달리, 올해는 해야 할 일들이 단순하지 않아요.

진상 규명 싸움도 다각도로 해야 해요. 특조위가 조사를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힘도 실어 줘야 하고, 잘못하면 비판도 하고, 필요하면 특조위와도 싸워야 하고 이런 복잡한 상황이 벌어질 수 있어요. 동시에 특조위가 온전히 기능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 다른 대안이 필요한지도 고민이고요.

배상 · 보상의 입장과 방향 등에 대해서 우리 입으로 얘기하지 않을 수 없어요. 그런데 이것이 진상규명에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하는 점이 가장 큰 딜레마에요.

그럼에도 4 · 16 이전과 이후가 달라져야 하는 점 중에 배상 · 보상도 중요한 부분이에요. 과거에는 참사 때마다 배상 · 보상은 문제를 덮어버리고 무마시키고 참사 피해자들을 흩어버리는 데에 활용돼 왔어요. 그렇게 되면 안 된다고 봐요.

셋째로 선체 인양하고 실종자들을 찾아야 해요. 이것 역시 주체가 정부예요. 비판도 하면서 제대로 할 수 있게 공무원들을 격려도 해야 하죠. 현장에서 뛰는 공무원 전체가 다 나쁜 분들은 아니거든요. 문제는 높은 데에 있는 분들, 최종 책임자들이죠. 선체 인양 문제를 정치적으로 판단할 가능성도 경계해야 하고요.

가족들 생계 문제도 있습니다. 맞벌이하면서 겨우겨우 하는 분들은 이미 한계가 지난 지가 오래됐어요. 이렇게 영원히 갈 수는 없어서 부모들이 고민하고 있어요.

지지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전에도 그랬지만 지난 한 달 동안 민주노총을 비롯한 많은 노동자들이 굉장히 뜨겁게 연대해 주셨어요. 사회적으로 민주노총이 과격한 단체라는 둥, 정치 단체라는 둥 삐딱한 시선도 있지만 현장에서 저희가 만난 분들은 저희와 똑같은 엄마고 아빠였어요. 저희 유가족들도 월급 받으며 일하는 노동자였고, 비정규직도 많았죠. 이렇게 같은 부모로서 만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받았어요. 노동자들이 조직적으로 함께해 주신 것은 감사해요.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관련해] 수사 대상에 민주노총이 들어가 있을 걸요? 그런데 오히려 저희에게 그런 것은 신경 쓰지 않는다, 같이 극복하고 위축되지 말자고 말씀해 주시는 것이 감사하죠.

저희는 앞으로도 참사가 해결되고 진상이 규명되고 안전사회가 될 때까지 부모의 마음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할 것입니다. 늘 함께해 주시길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입력 2015-05-23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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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를 다룬 책들 서평

사회의 우선순위 문제 성찰을 촉구하다

김문성

“그때까지만 해도 우리가 세상을 알았나요? 애 키우고 맞벌이하고 내 가정만 챙기면 될 줄 알았지. 나라에 해경 있고 경찰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다 알아서 해 주겠지 하고 살았지.”

  • 금요일엔 돌아오렴 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
  •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생각의 길)
  • 세월호를 기록하다 오준호 (미지북스)
  • 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 박상은 (사회운동)
  • 팽목항에 부는 바람 인문학협동조합 (현실문화)
  •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 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울아카데미)

“TV 자막이 떴어요. ‘전원 구조.’ 그때 부모들은 박수를 치면서 ‘그럼, 그럼, 우리나라가 어떤 나란데, 배 만들어서 수출하는 나란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랬어요. 그 배가 일본에서 가져 온 낡은 배인지도 모르고.”

“나는 이런 나라인 줄 정말 몰랐거든요. … 배를 가라앉혀 놓고는 애들을 건져왔대요. 이 더러운 나라, 이 더러운 나라…”

《금요일엔 돌아오렴》(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창비)에 실린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유가족의 피눈물 나는 말들이다. 4·16세월호참사시민기록위원회 작가기록단 소속 필자 열두 명은 유가족들을 심층 인터뷰해 참사 이후 유가족들의 활동과 심경을 담았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면 꼭 읽어보기를 권한다.

아무리 후회를 해도 돌이킬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용서할 수 없는 것이 있고, 씻기 힘든 분노가 있다. 기업들의 책임과 부패 유착은 물론이고 정부의 구조 실패, 거짓 언론플레이, 진상 규명 방해가 점차 밝혀지면서 이 내려놓을 수 없는 분노는 수백만 대중에게 확산돼 왔다.

세월호 참사 특별법 제정을 찬성하는 서명에 6백만여 명이 참여한 것은 단순히 동정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집권당이 일년 동안 흑색선전을 펼쳤는데도 올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투쟁 때 여전히 여론 다수가 유가족의 요구를 지지했다. 올해는 더 많은 10~20대의 학생, 청년들이 거리 시위에 나와 폴리스라인에 맞섰다. ‘세월호 세대’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이런 연대의 한복판에는 예방적인 안전 조처에서는 물론이고 구조에서조차도 우선순위에서 밀려난 노동계급 사람들 사이의 본능적 연대의식이 있었다. 《금요일엔 돌아오렴》을 보면 작가들이 특별히 의도한 것은 아닐 텐데도 평범한 노동계급의 애환과 비애가 가득하다.

맞벌이를 하느라 (희생된) 애들을 평소에 잘 챙겨주지 못한 일, 갖고 싶은 것들을 충분히 사주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 그런데도 부모를 원망하지 않고 밝게 살았던 아이들에 대한 그리움.

“수학여행 가기 전에 신발 하나 사달라는 거 사줄 걸. 가방만 하나 사줬더니 ‘엄마, 가방이 너무 비싸네? 신발은 갔다 와서 살게’ 하는 아들한테 ‘그래, 새 신발 신고 돌아다니면 발 아플 거야’ 그러면서 신발도 안 사주고 보낸 이 어리석고 답답한 엄마.”

그리움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별이 돼 버린 아이들’. ©조승진

못 믿을 기성 언론

달리 가진 것이 없어 자식이 유일한 ‘재산’이고 삶의 목적인 노동계급 사람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현재의 일상만이 아니라 미래의 일상까지 파괴된 사건이었다.

“출근하기가 싫어요. 회사에 왜 가는지를 모르겠어요. 다영이 학원비라도 보태려고 엄마도 회사를 다녔던 것이고, 나도 애들 위해서 노력했던 건데.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어졌어요. 목표의식이 사라졌어요.”

참사 당일, 언론은 ‘전원구조’ 오보만 한 것이 아니다. 정부가 순전한 엉터리로 대응하는데도 언론은 헬기 수십 대, 함정 수백 대, 잠수인력 수십 명이 동시에 투입돼 있다고 버젓이 보도했다. 언론의 오보에 팽목항 현장에 있던 유가족들이 격분한 것은 당연하다.

“[당일] 저녁 7시쯤에 몇몇 부모들이 돈을 걷어서 어선을 빌렸어요. … 애 아빠가 다녀와서는 ‘구조를 전혀 안 해. 보트 같은 것만 주변을 돌고 있어.’”

“배에는 앙카라는 게 있어요. 그걸로 유리창을 깨면 그 방 아이들은 다 살아서 나올 수 있었던 거예요. … (참사 당일 구조에 나섰던)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갖고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 선원들 중에는 학생들이 유리창을 손톱으로 긁어대고 얼굴을 유리에 대고 숨을 거둬가는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세월호 참사 400일 문화제 검찰이 사고 원인으로 지목한 ‘급변침’은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 결과로 봐야 한다. 이 정부는 직접적 원인도 밝혀내지 못한 것이다. 진상 규명 요구는 여전히 중요하다. ⓒ조승진

참사의 구조적 원인 살펴보기

결국 수많은 사람들의 물음은 “왜?”로 압축된다. ‘왜 이런 사고가 나게 됐지? 왜 구조를 제대로 하지 않았지? 왜 정부는 진상 규명을 방해하지?’ 이것들이 응축돼서 ‘이게 나라야? 도대체 누구를 위한 국가야?’라고 표현됐다. 이중 소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사회 시스템의 문제, 즉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로 의구심을 확대하고 있다.

《4·16세월호 민변의 기록》(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생각의 길),《세월호를 기록하다》(오준호, 미지북스),《대형사고는 어떻게 반복되는가》(박상은, 사회운동) 등은 ‘왜 이런 참사가 벌어졌는가’에 대해 답변해 보려는 진지한 시도다. 세 권 모두 읽어볼 만한 책이다.

《민변의 기록》은 민변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법률지원 특별위원회’를 꾸려 유가족을 지원하면서 파악한 것들을 나름의 틀로 종합 분석해 놓은 책이다. 이 책이 참사의 핵심으로 지적하는 것은 신자유주의 규제 완화와 정부의 무능이다. 안전 규제를 완화하고, 구조 같은 중요한 공공 업무까지 민영화하는 등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공공성을 해체해 온 것이 참사를 낳았다는 것이다.

또한 검찰이 사고 원인이라고 밝힌 ‘급변침’이 실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지적은 침몰의 직접적 원인도 진상 규명 대상이라는 점을 잘 드러낸다. 세월호 인양이 실종자 수색뿐 아니라 진상 규명에도 중요한 이유다.

《세월호를 기록하다》는 승객들을 버리고 탈출한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재판 과정과 기록들을 재구성해 참사 진실에 다가가려 한 수작이다. 작가기록단 소속이기도 한 오준호 작가는 재판 기록으로 참사의 총체적 진실을 다 알 수는 없다는 신중한 태도를 견지한다.

“위법성을 입증할 수 있는 행위만 기소하고 재판부는 검사의 기소가 적법한지 여부만 따지기 때문에 … 지난 이십 년간 대한민국의 모든 정부가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명분으로 … 사고가 일어날 전반적 조건을 숙성시켜 온 이 모든 행위들은 세월호 재판에서 관심조차 받지 못했다.”

결국 그의 결론은 “세월호 사고를 낳은 것은 우리가 ‘정상적인 상태’라고 여긴 바로 그 국가, 그 사회 시스템이다.” 재판 과정에서 드러난 이 시스템 내 구성원들의 무책임과 비겁함은 “평범한 개인들도 자신의 행동으로 구조적 부정의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사회진보연대 박상은 활동가가 쓴 《대형사고는 왜 반복되는가》도 기업의 이윤 추구와 그것을 보장하려는 국가의 조처들이 문제를 낳았다고 지적한다. 이 책의 장점은 제목처럼 풍부한 국내, 해외의 대형사고 사례를 통해 대형 참사가 자본주의의 보편적 현상임을 보여 주는 것에 있다.

그럼에도 이 책들이 내놓은 대안들에는 조금의 아쉬움이 남는다. 요구로 내놓은 안전 규제 강화, 민영화 중단과 원상 회복,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기업살인법 등이 모자라서가 아니다. 이미 국가가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이런저런 조처들을 실행한 것이 문제가 된 터다. 왜 지금껏 국가는 기업의 이윤 추구를 위해 헌신해 왔을까 하는 의문이 여전히 남는 것이다. 그 의문에 대한 해답이 ‘안전사회가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질문에도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쓰디쓴 진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이 기다리던 국가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자본주의 국가에게는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과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 추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미진

누구를 위한 국가인가

세월호 참사가 특정 정권만의 문제일까? 세월호 참사를 인문학적으로 성찰하려는 학자들의 논문집인 《팽목항에 부는 바람》(인문학협동조합, 현실문화)에서 김동춘 교수는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해경이 사기업인 언딘에게 구조를 위탁한 것은 정부의 기능 축소와 민간 위탁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정책의 결과이므로 구조적으로 이 사고는 국가 시스템 전반과 연관되어 있다. 해군의 통영함이 출항하지 못한 것은 해군 비리 문제와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 해경의 비전문가 낙하산 인사도 오래된 관료사회의 문제점이 누적된 것이므로 단순히 박근혜 정권 차원을 떠난 국가 차원의 문제다. 그렇게 본다면 김대중·노무현 정권에서 세월호 사고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대형 참사로 발전했을 가능성이 있다.”

그런데 김 교수는 이런 분석을 “한국 시스템의 한 결과”로 스스로 제한한다. 이는 한국 지배계급의 통치 특성을 “전쟁 정치”로 규정하는 그의 분석이 자본주의 국가 일반과 한국 국가를 예리하게 구분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가 지적한 ‘절반의(또는 반의반의) 인민주권’, ‘안보 국가와 신자유주의 국가의 연속성’은 최근 선진 자본주의 국가에서도 나타나는 현상이다. 보편(자본주의 국가 일반)과 특수(한국 국가)는 구분되지만 별개의 것이 아니다. 특수는 보편이 현실에서 구현되는 형식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찰의 지평을 확대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아 출간된 《세월호가 우리에게 묻다》(서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한울아카데미)에는 대형사고가 반복되는 원인을 다음처럼 분석하는 구절이 있다.

“시스템을 닫힌 체계로 인식하게 되면 기존의 시스템을 그냥 둔 상태에서 … 시스템을 지탱하는 암묵적 가정은 의문시하지 않고 시스템의 목표나 가치 그리고 전략을 그대로 둔 채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 노력을 추가하게 된다.”

이 책을 쓴 연구자들은 사회의 우선순위를 공공성에 둬야 한다고 옳게 주장한다. 그러나 정작 이를 구조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가정에 도전하진 않는다. 앞의 책들처럼 이들이 지적하는 요인들, 즉 기업의 이윤 추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 자체가 사실은 자본주의의 생래적 특징인데도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연구자들의 지적을 급진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다. 그러려면 우리는 더 물어야 한다. 왜 기업들의 이윤 추구가 이 사회와 국가운영의 우선순위가 됐는지 말이다. 사회의 우선순위는 정치, 민주주의, 계급(불평등과 차별)의 문제다. 따라서 이 질문들에 답하려면, (앞서 다룬 온건한 두 책이 회피하는 것과 달리) 자본주의 경제와 정치(특히, 국가)에 대한 총체적인 마르크스주의 분석이 필요하다. 세상을 통찰하려면 현미경도 필요하지만 망원경도 필요하다. 마르크스주의는 둘 모두 해낼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다.

예를 들어,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시대에 한국 자본주의를 위기와 저항 모두에서 구출하려고 등장한 강성 우익 정부다.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모두 ‘적’처럼 여기는 정부가 이윤 우선주의를 문제 삼는 유가족을 적대시하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이다.

실상이 이렇다 보니 웃지 못할 일도 벌어진다. 한 유가족이 너무 경황이 없어서 자기 아들 시신이 나왔다는 방송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체육관 인파에 섞여서 몰래 감시하던 사복경찰이 방송을 듣고 당신 아들 나왔다고 알려주기 전까지!(《금요일엔 돌아오렴》) 참사 당일 진도 현장에 배치된 해경의 5분의 4가 유가족 감시에 배치됐다.

국가의 첫째 임무는 합법으로 폭력을 독점하고서 자본가 계급을 대표해,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계급 지배 질서를 유지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국가를 운영하는 자들은 기업의 이윤 추구가 성공해 자본주의 경제가 성공하는 것이 그것에 기초한 국가가 부강해지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안다.

그들은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예방하고 체제 내로 포섭하려고 통치의 절차상 정당성을 위해 애쓰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다수 대중을 분열시키고 현혹시키는 일들을 매일매일 꾸며 낸다. 사람들은 오직 저항할 때나 격변적 경험 속에서 이를 문득 깨닫게 된다.

“이렇게까지 잔인하게 가족들을 몰아붙일지는 정말 몰랐어요. 우리는 국민도 아닌 것 같아요. 대통령이 국회에 연설하러 왔을 때는 거의 경악 수준이었어요. 엄마들이 새벽같이 올라가서 대통령 눈길 한번 사로잡으려고 살려달라고 그렇게 외치는데 눈길 한번 안 주더라고. 그러면서 웃으면서 지나가더라고. 그게 사람인지요. … 대통령이 그러니 그 밑에 사람들은 어떨까 싶고.” (《금요일엔 돌아오렴》)

유가족을 외면한 박근혜의 눈길과, 국가를 믿고 구조만 기다리던 무고한 목숨들을 가차없이 외면한 이 사회 시스템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자본주의 체제가 문제의 뿌리에 있음을 이해한다면, 자본주의에서 착취받는 노동으로 이윤을 만들어 내는 노동계급이야말로 자본주의 우선순위에 도전하는 주도적 세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으로 발전할 수 있다.

입력 2015-05-23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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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백 일

진상규명, 더디더라도 가능하다

김지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이윤이 우선인 사회를 문제 삼아 왔고, 참사 이후 많은 사람들이 체제와 국가의 정당성에 의문을 품게 만들었다.

현 체제에서 득을 보는 소수 자본가들과 국가 기관장들이 유가족들을 적대시하고 운동을 공격하려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사회의 언론, 교육 등 주요한 선전 수단을 장악한 지배자들은 여러 방법으로 유가족들을 모욕하고 운동을 분열시키려 한다. 박근혜 정부는 박래군 4·16 연대 상임운영위원을 구속하는 등 탄압의 고삐도 늦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참사 이후 5백 일이 지났지만 ‘진상 규명, 책임자 처벌’이라는 지극히 정당한 요구는 쉽게 실현되지 않고 있다. 이런 상황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에게 분노를 자아내는 동시에 갑갑함을 갖게 한다.

△ 세월호 참사 5백 일이 되는 8월 28일 전국 곳곳에서 추모 행사가 열렸다. 경기도 안산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에는 2천여 명이 참석했다. 여기에는 고등학생들도 대거 참가해 잊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다짐했다. ⓒ출처 4·16 연대

그러나 앞서 일어난 여러 사건들은 국가를 상대로 진실을 파헤치는 일이 더딜 수 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님을 보여 준다.

1993년 영국의 19세 흑인 소년 스티븐 로렌스가 버스 정류장에서 인종차별적 백인 청년 5명에게 칼에 찔려 살해됐다. 용의자들은 2주 후에야 체포됐지만 기소되지 않았다. 경찰은 용의자의 가족에게서 뇌물을 받았고, 제대로 된 증거 수집과 조사도 하지 않았다. 유가족들과 이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직접 나서서 증거를 수집하고 집회를 열면서 끈질기게 진상 규명을 요구했다. 19년이 지난 2012년에야 살해 용의자 2명은 종신형이 선고됐다. 이후 <가디언>을 통해 영국의 경찰이 스티븐 로렌스의 친척과 친구들을 감시하고 그들을 불리하게 하는 것들을 찾아내는 작전을 전국적으로 펼쳤다는 것이 폭로됐다. 심지어 경찰은 로렌스 사건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모임에 잠입해 모임의 신뢰도를 떨어뜨릴 수 있는 정보를 수집하려 했다. 만일 유가족들의 끈질긴 노력이 없었다면 끔찍한 인종차별 살인과 부실 수사의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은 가능하지 않았을 것이다.

끈기

1989년 축구팀 리버풀의 팬들을 비롯한 96명이 경기장에서 압사해 영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힐즈버러 참사’의 진실도 2012년에야 제대로 밝혀졌다. 참사 당시 경찰은 사고가 술 취한 훌리건들의 책임이라고 발표하고 언론들은 희생자들을 모욕하는 일에 나섰다. 그러나 결국 2012년 독립조사위원회의 보고서를 통해 사고의 책임이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에 있었고, 경찰이 증거를 조작하기까지 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정부는 공식적으로 이 일을 사과했고, 2014년 시작된 조사 청문회는 지금까지 계속돼 영국 경찰과 정부, 언론의 추악한 민낯을 까발리고 있다. 유가족들이 전국을 돌며 운동을 벌인 노력 덕분이었다. 2010년 이후 영국에서 학생 운동과 긴축 반대 투쟁이 연이어 벌어지면서 정부가 정치적 위기를 겪은 것도 정부를 한 발 물러서게 한 배경이 됐을 것이다.

5·18 광주 항쟁 학살의 책임자 전두환과 노태우를 법정에 세우는 일도 학살 15년이 지나서야 이뤄졌다. 광주 학살의 진실은 물밑에서 퍼져나가 학살 군부 정권에 대한 전국의 대학생 청년들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광주 학살 진실 규명 운동은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도 결국 1995년 전두환·노태우를 구속시켰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망각에 대한 싸움”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국가를 상대로 한 진상 규명 운동이 대체로 긴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진실과 정의가 승리하려면 굳건한 원칙과 넒은 연대가 필요하다. 특히, 원칙 있게 싸우며 대의명분을 축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해 특별법 제정 투쟁에서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이 원칙을 버리며 후퇴한 것이 운동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던 점을 되새겨야 한다. 반쪽짜리 특별법이 제정된 지 1년이 돼 가지만 정부의 방해 공작으로 진실 규명은 한 발짝도 나가지 못했다. 그러나 더디더라도 원칙 있게 정부의 은폐·조작 시도를 폭로하고, 박근혜 정부에 맞서 싸우는 다른 부문과 연대를 구축해야 한다.

따라서 지금은 세월호 참사 진실 은폐의 주범이자 노동시장 구조 개악 등을 밀어붙이는 공동의 적 박근혜에 맞서 차근차근 힘을 모으는 것이 중요하다.

추천 소책자

[2차 개정증보판] 세월호 참사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펴냄, 3,000원, 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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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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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5백 일

안전사회는 어떻게 가능한가?

김지윤

세월호 참사는 이윤 체제의 민낯을 보여 준 비극적 사건이었다. 청해진해운은 더 많은 이윤을 위해 무리한 증축을 하고, 평형수를 빼고, 인건비를 줄이려고 비정규직을 늘렸다. 해운회사들은 이윤 경쟁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점하고, 여러 규제들을 손쉽게 피해가려고 국가 관료들과 부패와 비리 사슬로 유착했다. 덕분에 시한폭탄 같은 세월호는 인천과 제주를 오갔고 무고한 3백4명이 목숨을 잃었다.

세월호의 비상식적 운항은 자본주의 체제가 조직되는 방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는 이윤 경쟁 때문에 ‘더 적은 비용과 더 높은 이윤’이 자본가들의 목표가 된다. 그래서 자본가들은 가능한 임금과 생산 자재 등에 더 적은 돈을 들이려 한다. 그리고 작업장 안전이나 환경보호 규정처럼 이윤에 걸림돌이 되고 자본 축적을 방해하는 요인들은 폐지되거나 완화돼야 한다는 압박을 받는다. 이윤을 위한 축적과 경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기본 동학이므로 이 체제에서 안전 문제는 늘상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현대와 삼성 등 대기업들에서도 빈번히, 커다란 규모로 산업재해가 벌어지는데, 이는 안전 문제가 결코 투자할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통계만 보더라도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 수(1천9백29명)는 이라크전쟁 10년 동안 한 해 평균 사망 군인 수(4백50명)의 4배나 된다(<경향신문>). 민주노총은 은폐된 산재를 포함하면 실제 피해는 10배에 이를 것이라 추측한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오래 전부터 위험이 있을 때 현장 노동자들이 작업을 중지할 권리 보장과 산업 재해 등에 기업에 엄격한 책임을 묻도록 하는 ‘기업살인법’ 제정 등을 요구한 것은 매우 정당하다.

국가의 구실

국가는 자본주의의 이런 야만적 작동이 더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법률을 도입하고, 행정 조처 등을 마련한다. 자본가들의 이윤을 건드리는 저항은 공권력이라는 그럴듯한 이름의 물리력을 행사해 제압한다. 또한 자국의 자본들이 국제적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도록 지정학적 경쟁에도 뛰어들어 군사력 강화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는다.

경제 위기 시대에 한국 자본주의를 구출하려고 등장한 강성 우익 박근혜 정부는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걸림돌이 될 모든 것을 “적”으로 여겼다. 그래서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의 배경으로 규제 완화와 부패·비리를 지목했지만 이윤 경쟁 체제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았다. 규제가 “쳐부수어야 할 원수”라는 박근혜로서는 이윤 우선 관행을 방해하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적대시해야 했다.

물론 대중의 반감을 완전히 거스를 수는 없으므로 “안전”이라는 이름을 우선 내세워 안전 산업을 대책으로 내놓았는데, 그 내용은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통한 새로운 돈벌이 창구 마련으로 채워 넣었다.

박근혜가 하반기 국정과제로 꼽은 “노동개혁” 역시 안전과는 거리가 멀다. 이 공격이 성공하면 노동자들은 위험한 환경을 감수하며 일해야 한다는 압박을 더욱 크게 받을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안전을 위한 점검과 관리 등은 소홀해질 것이다.

대중적 저항으로 이러저러한 안전 관련 규정이 도입되더라도 경제 위기 등으로 경쟁의 압력이 강화되면 국가는 온갖 방안을 강구해 기업의 이윤 축적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애쓴다. 당장에 박근혜 정부는 기업규제완화 특별 조치법으로 각종 안전 관련법들을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 지난해 영국의 보수당도 1987년 프리엔터프라이즈호 침몰 사고 이후 도입된 여러 안전 규제 장치들을 삭제하려 했다.

안전과 자본주의 체제는 궁극적으로 양립할 수 없다. 안전 사회를 향한 염원은 이윤을 우선하는 사회에 대한 근본적 도전과 만나야 한다. 또한 우리를 위험에 내모는 이윤 체제를 마비시킬 고유한 힘을 가진 노동계급의 투쟁에 진지한 관심과 지지를 보내야 한다.

추천 소책자

이주노동자, 일자리를 빼앗는 적인가 함께 싸워야 할 동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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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5-08-2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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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특조위 1차 청문회

박근혜 정부의 철저한 진실 은폐 시도를 재확인하다

김지윤

12월 14~16일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청문회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연 첫 번째 청문회였다. 

여당 추천 위원 5명(이헌, 고영주, 차기환, 황전원, 석동현)은 청문회에 불참했다. 이들은 청문회 전 전원회의에서 특조위가 ‘참사 당일 청와대 대응 조사’를 하기로 결의한 것이 “대통령 사생활 조사”라고 반발하며 사퇴하겠다고까지 했다. 성역 없는 진상 조사가 이뤄지려면 마땅히 최고 책임자인 대통령도 예외일 수 없는데 말이다. 해수부가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 특조위 방해 문건 그대로 행동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는 관심 없고 특조위 무력화에 골몰하고 있음을 스스로 드러내 보인 것이다.

주요 언론들은 청문회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유가족들이 여러 방송국에 문의했지만 여당 추천위원 불참 등을 이유로 요청을 거부했다. 지배자들이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청문회를 방해한다는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너무 보고 싶다" 해경이 왔으니 구조될 거라던 아이들은 진도 앞바다에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세월호 참사의 충격과 고통은 생생하지만 진실은 온전히 드러나지 않았고, 책임을 지는 자들은 아직도 없다. 2014년 4월 16일 무책임했던 박근혜 정부는 여전히 무책임하고 뻔뻔하다. 청문회 사흘 동안 유가족들은 여러 번 오열하고 분통을 터뜨려야 했다. ⓒ이미진

참고인 자리에 앉은 한 유가족은 희생된 아들의 시신 사진을 힘겹게 꺼내며 꼭 진실이 밝혀져야 한다고 흐느꼈다.

목포 상황실이 제출한 교신 녹취록이 조작됐다는 점 등이 처음으로 확인되고, 때때로 특조위원들이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과 추궁은 속이 시원했지만 참사의 근본적 책임과 진실에 다가가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전 해수부 장관 이주영, 전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전 해경 123정장 김경일 등 증인들은 단체 기억상실증에라도 걸린 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답하며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 청와대 대응 관련 질문에는 모두 굳게 입을 닫았다. 한 생존자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위증이다”라고 외치며 자해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참고인으로 증언한 민간 잠수사는 “우리는 뼈에 사무치고 다 기억이 나는데 왜 고위층들은 하나도 기억이 안 난다고 하는지 묻고 싶다”며 분통을 터뜨리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청문회 증인들이 청문회 전에 ‘모범 답변’을 작성해 입을 맞춘 듯한 정황도 드러났다. 22일 특조위 권영빈 진상규명소위원장은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청문회 자료’를 공개했다. “대외비”라고 표지에 적힌 이 문건은 예상 질문과 답변들로 채워져 있다.

앵무새처럼 “기억나지 않는다” 반복한 증인들

참고인으로 참석한 유가족들의 증언은 정부의 구조와 이후 대응이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를 생생하게 드러냈다. 당시 정부는 언론을 통해 잠수사 5백50명, 항공기 32대를 투입했다며 구조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 양 선전했지만 모두 과장이었다. 이마저도 유가족들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하지 않았더라면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시신을 보관할 냉동고조차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고, 제 자식의 시신에 이름을 적어야 하는 기막힌 일도 일어났다. 그러나 이런 일련의 잘못에 대해 책임을 진 사람은 없었다. 이주영은 “자신의 책임”이라고 했지만 법적 처벌은 물론이고 내부적 징계조차 제대로 받은 사람이 없다.

오히려 정부는 선의의 마음으로 한달음에 달려온 민간 잠수사들을 제대로 대우하지 않았다. 일방적으로 잠수 활동 중단을 통보하기도 했다. 해경은 뻔뻔스럽게도 민간 잠수사 죽음의 책임을 동료 잠수사에게 떠넘기려 했다. 이 잠수사는 재판을 통해서야 무죄 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박근혜 정부 지키기 박근혜는 카메라 앞에선 눈물을 흘렸지만 유가족들의 진실 규명 요구는 철저하게 짓밟았다. 청문회 증인석에 선 정부 관계자들은 청와대 지키기 특명이라도 받은 듯이 박근혜 정부와 관련한 질문에는 모르쇠로 일관했다. ⓒ이미진

그런데도 특조위는 증인들에 책임을 물을 마땅한 대응 방안을 마련하지 못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는 특조위의 한계를 절감한 셈이다.

특별조사위원회는 앞으로 피해자들이 신청한 사건을 계속 조사할 예정이다. 특조위는 청문회를 제한 없이 열 수 있고 두 번의 특검을 요청할 수 있지만 앞으로의 활동을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특조위가 참사 당일의 청와대 대응을 조사하기로 의결한 후, 새누리당은 ‘특별법을 개정해 특조위 활동을 재정비해야 한다’며 특조위 해체를 검토하겠다는 엄포까지 늘어놓은 상황이다. 

세월호 참사를 둘러싼 여러 의혹들이 정부를 가리키고 있지만 이 중 어느 것도 속 시원히 밝혀진 것이 없다. 막강한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치부는 물론이고 이윤 중심 체제의 비정함을 드러낼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순순히 밝힐 리 없다. 게다가 청문회 와중에 검찰은 4 · 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에게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진실 규명 운동을 위축시키려는 것이다. 진실을 밝히고, 그 진실을 흔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에 가슴 아파하며 진실 규명에 힘을 보태고자 한 사람들의 몫이다. 따라서 진실 규명 운동 지지자들은 내년에도 진실 은폐 시도에 맞서 투쟁해야 한다. 

입력 2015-12-23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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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특별법 개정 운동에 나서다

김지윤

2월 5일 4 · 16연대와 4 · 16가족협의회는 서울역에서 “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방해 행위 중단 및 성역없는 조사/수사 보장, 특별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고 이를 요구하는 범국민서명운동에 돌입하기로 했다. 또한, 민중총궐기투쟁본부와 여러 시민사회단체들과 함께 2월 27일 범국민대회를 개최해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진실 규명 운동을 유지 · 확대하기로 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한 새로운 서명운동이 시작되다 설 연휴를 앞두고 2월 5일 오전 서울역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방해 행위 중단과 성역없는 조사·수사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 촉구’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미진

4.16연대와 유가족들이 새롭게 범국민서명운동을 시작한 것은 정부의 노골적이고 집요한 방해 행위에 맞서기 위함이다. 그동안 정부는 반쪽짜리 특별법조차 무력화시키려고 온갖 방해를 해왔다. 특히, 특조위 활동기간이 최장 1년 6개월인데 정부는 조사활동의 기본인 예산 지급을 지난해 8월에 해놓고, 제멋대로 2015년 1월 1일을 활동개시라고 우기고 있다. 정부 해석대로라면 특조위의 활동은 오는 6월 30일로 종료되게 된다. 그런데 세월호 인양이 7월 이후에 이뤄질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이렇게 되면 중요한 증거인 세월호를 정밀 조사도 못한 채로 특조위는 활동을 마치게 된다. 게다가 정부는 올해 특조위 예산을 지난해 대비 3분의 1로 줄였다. 따라서 특조위 활동을 온전히 보장하라는 4 · 16연대와 유가족들의 요구는 매우 정당하다.

세월호 참사 서명운동

△서명 운동 동참을 호소하는 유가족들 설 연휴를 앞두고 2월 5일 오전 서울역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노동·사회·시민단체 회원들이 함께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방해 행위 중단과 성역없는 조사·수사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서명’을 받고 있다. 여전히 많은 시민들이 서명 운동에 동참하며 유가족들의 호소에 응답했다. ⓒ이미진

진실 은폐 주범

박근혜 정부의 특조위 활동 방해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14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현 더민주당)이 유가족들의 의사를 거슬러 조사권만을 보장한 반쪽짜리 특별법에 따라 특별조사위원회가 설치됐다. 이후로도 어느 것 하나 순탄하게 흘러오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가 구성되기 전부터 “세금 도둑” 운운하더니 지난해 4월에는 특조위 활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강화하는 쓰레기 시행령을 기어코 통과시켰다. 최근 보수단체 대표에게 유가족 고소를 청탁한 혐의를 받고 있는 해수부 공무원도 정부가 특조위에 파견한 공무원이다.

지난해 말에는 ‘특조위 대응 방침 문건’이 폭로됐다. 이 문건은 해수부가 작성한 것으로 강력하게 의심되는데, 이 문건을 보면 특조위 내 여당 추천 위원들은 특조위가 청와대에 관한 조사 활동을 하려 하면 사퇴도 불사할 것을 요구하는 등 방해 행위를 구체적으로 지시하고 있다. 실제로 여당추천위원들은 이 친절한 ‘가이드 라인’을 충실히 따른 듯하다. 지난해 12월 특조위가 연 1차 청문회 이후에는 증인들의 발언을 미리 짜맞춘 것으로 보이는 “대본”이 폭로되기도 했다.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의 손발을 묶어 흐지부지 활동이 끝나도록 해 정부 차원의 진실 규명 활동을 벌였다는 명분은 쌓고 정작 진실을 은폐하려는 듯하다. 또 이런 과정을 통해 진실 규명 운동의 자신감을 떨어뜨리고 싶을 것이다. 박래군, 김혜진, 최영준, 이태호 등 진실 규명 운동에 앞장선 활동가들을 법정에 세운 것도 이런 계획의 일부라 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진실 규명 운동은 계속된다 2월 5일 서울역 앞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이미진

지금의 상황은 오히려 우리 운동이 처음부터 요구한 기소권과 수사권 보장 요구가 정당했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지난 1차 청문회에서 정부 관련 증인들이 모르쇠로 일관하는데도 어떤 강제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특조위는 태생적으로 권한과 구성에서 한계를 갖고 있는데다가, 여당 추천위원들의 방해, 새누리당의 흠집내기 등으로 말미암아 만족할 만한 활동을 벌이지 못했다. 그러나 정부가 특조위를 타깃으로 삼아 공격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진실 은폐 행위를 폭로하면서 특조위 활동 보장을 요구하는 것은 진상 규명 운동을 방어하는 일이기도 하다.

특히, 정부의 체계적 방해에 맞서 운동이 더한층 강력하게 벌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앞으로 운동이 충분히 성장하면 공식적으로 진실 규명 활동을 위한 권한을 확대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방향으로 운동이 발전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곧 세월호 참사 2주기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파묻으려 지금도 쉴새 없이 방해하고 있다. 이에 맞선 유가족들의 싸움도 본격화하고 있다. ‘특별법 개정 서명’은 그 시작을 알리는 것과 같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진실 규명 운동은 계속돼야 하고, 폭넓은 지지와 연대도 계속돼야 한다.

 세월호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방해 행위 중단과 성역없는 조사/수사 보장,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서명 바로 가기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

명절 앞두고 더 그리운 아들, "영석아 사랑해" 단원고 희생 학생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방해 행위 중단과 성역없는 조사·수사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서명’을 받던 도중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미진

세월호 노란 리본

△"기억해 주세요" 세월호 참사 유가족이 서명에 동참한 시민의 가방에 노란 리본을 달아주고 있다. ⓒ이미진

세월호 진상 규명 서명 운동

△기억과 약속, 다시 싸울 때다 2월 5일 오전 서울역에서 4 · 16연대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에 대한 정부의 방해 행위 중단과 성역없는 조사·수사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서명’ 운동을 진행했다. 참가자들은 귀향길에 오른 시민들을 대상으로 제작한 유인물을 배포하며 서명 운동 동참과 진상 규명 운동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이미진

입력 2016-02-0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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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연대 총회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의 의지를 다지다

김지윤

4 · 16연대 총회가 1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3월 12일 서울 마포아트센터에서 열렸다.

이번 총회는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진실 규명 운동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로 꾸려졌다. 서울뿐 아니라 전라도와 경상도 등 전국 각지에서 운동 지지자들이 모여 총회의 의미를 더했다. 최근 2주기 준비위원회를 꾸린 대학생들도 참가해 힘을 보탰다.

416연대 총회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서 총회에 참석한 유가족들. 이 날 총회에는 유가족들과 전국 각지에서 진실 규명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는 4 · 16연대 회원들, 대학에서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한 모임을 꾸린 학생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참가해 자리를 빛냈다. ⓒ조승진

참가자들이 다 함께 ‘존엄과 안전에 관한 4 · 16인권선언’ 낭독을 마친 후, 4 · 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과 4 · 16연대 고문 이해동 목사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이 날의 자리가 “2주기 이후 함께 가야 할 길을 함께 개척하고 뜻을 모으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또 “1백 번 외쳐도 한 번 보지도 않아 버겁다는 얘기도 많이 듣는다. 그럴 때 이 버거움이 3백4명이 느끼고 겪은 공포와 외로움, 두려움, 서러움만 하겠는가? 그런 생각을 한다. 더는 미안해 하지 않기 위해서, 부끄럽지 않으려고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지키는 자리가 이 암울한 세상에서 희망의 꽃이 피는 자리가 될 것이라 믿는다. 언젠가 꼭 진실을 밝혀질 것이다. 진실이 밝혀질 그날 우리가 덜 부끄럽도록 오늘 하루도 최선을 다하자”고 참가자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 큰 박수를 받았다.

이해동 목사는 “생때 같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측량할 수 있겠냐? 우리 역사에서 억울한 죽음이 계속 있었다. 우리가 아픔을 용기로 바꿔내 앞으로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하자”고 발언했다.

유경근 세월호 참사 피해자 가족

△"서로 격려하며 더 힘을 냅시다" 총회 인사말을 하고 있는 유경근 4 · 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삭발한 머리가 눈에 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3월 7일부터 10일까지 특별법 개정과 특검 의결을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국회 앞 1인 시위에 나섰다. 그는 총회 참가자들에게 아무리 힘들어도 3백4백 희생자들의 고통과 좌절만 하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서로 격려하며 힘을 내자고 호소했다. ⓒ조승진

올해 새로 상임운영위원으로 활동하게 된 4 · 16가족협의회 김종기 사무처장은 “4 · 16연대는 가족협의회와는 형제 같은 단체다. 열심히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4 · 16연대는 2016년 과제를 발표했다. 2주기를 앞두고 박근혜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방해하며 활동 기한을 사실상 축소하고 있다. 애초 새누리당과 민주당이 약속한 특검도 특조위의 의결 요구에도 불구하고 19대 국회에서 다뤄지지 못했다. 이에 대응해 4 · 16연대는 “국정원과 청와대 조사, 특별법 개정과 특검 발동, 세월호 인양과 선체 합동 정밀조사단 준비”를 3대 과제로 설정하고 서명 운동과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또 지역 간담회 등을 통해 운동의 저변을 확대하며 4 · 16연대와 지역 운동들의 연계를 강화할 것임을 알렸다. 동수아빠 정성욱 씨는 “4 · 16연대가 인양을 위한 활동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력히 촉구하기도 했다.

특히 4 · 16연대는 2주기를 앞두고 3월 15일 참사 7백 일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4월 16일까지를 추모의 달로 설정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려 한다. 2주기를 위한 1만 범국민 준비위원을 모집해 운동을 확대하고 4월 9일 참사 2주기 리멤버 콘서트와 전국 동시다발 추모제를 지역에서 열 것을 제안할 계획이다. 4월 16일에는 합동 분향과 안산걷기대회, 범국민추모대회를 진행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을 비롯해 여러 사회 · 노동단체들이 함께 하는 3월 26일 범국민대회에도 적극 참가하기로 결정했다. 한편, 4 · 16연대는 낙선(낙천) 운동을 포함해 4 · 13 총선에 대한 대응도 함께 준비 중이다.

416연대

△세월호 지우기 시도에 맞서자 이 날 총회에서는 지난해의 평가와 더불어 올해 활동에 대한 계획을 공유했다. 배서영 4 · 16연대 사무처장이 2015년 활동에 대한 평가 발제를 하고 있다. ⓒ조승진

곧이어 다짐 문화제가 이어졌다. 사회를 맡은 박진 운영위원은 “진실이 밝혀지는 그 날까지, 안전 사회를 위한 발걸음은 멈추지 않는다. 손잡고 함께 가자”고 호소했다.

4 · 16가족합창단의 공연이 포문을 열었다. 가슴에 달고 나온 노란 리본이 유독 눈에 띄었다. ‘잊지 않겠다’는 가사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아버지와 딸의 대화를 담은 작은 뮤지컬 공연이 이어졌다. 아마도 세월호 참사 이후 유가족들이 겪었을 모습을 떠올리며 객석에 앉은 참가자들은 연신 눈물을 훔쳤다. 참사가 있은 지 2년이 돼 가지만 슬픔과 아픔은 여전히 2014년 4월과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장한나, 우리나라, 성공회대 노래패 애오라지의 공연을 펼쳐졌고 참가자들이 객석에서 일어나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를 함께 부르는 것으로 문화제는 마무리됐다.

416연대 총회

△"절대로 잊지 않을게" 4 · 16가족합창단의 공연이 참가자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조승진

416연대 총회

△"진실을 향한 약속" 총회가 끝난 후 참가자들이 "진실"과 "약속"을 함께 외치고 있다. ⓒ조승진

함께 참가합시다

기억하라! 리멤버 콘서트(가)

- 4월 9일 오후 6시 서울

4월 16일 참사 2주기 관련 일정

- 합동 분향식: 오전 10시 안산 합동분향소

- 안산 걷기대회: 오후 2시 안산

- 범국민 추모대회: 오후 7시 서울

입력 2016-03-1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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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중 4·16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 초청 강연회

“세월호 참사 2주기, 진실 규명을 위해 열정을 갖고 함께 행동합시다”

반갑습니다. 벌써 2주기네요. 아직 많은 것을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이 작업은 앞으로 오랜 기간 동안 우리가 끈질기게 싸우고 또 요구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을 포함해서 많은 시민들이 유가족들과 함께 힘을 보태줄 때, 조금이라도 더 성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이호중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승진

왜 “참사”라 부르는가?

[참사] 당시의 영상이나 여러 언론 보도를 봐서 알겠지만 4월 16일에 해경은 배 밖으로 나와 있는 승객들만 구했고 배 안에 있는 승객은 한 명도 구조하지 못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에 대해서 많은 의문들이 있는데 정말 이해가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해경은 대형 선박의 사고에 대해서 신속하게 구조를 할 수 있는 장비나 인력을 갖고 있지 못했어요. 

생존 학생들이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우리는 구조된 것이 아니라 탈출한 것이다.” 해경이 한 명도 구조를 못 했다는 이야기입니다. 해경은 대형 인명 피해를 유발할 수 있는 사고에 대응한 인명 구조 훈련을 평상시에 한 번도 한 적이 없습니다. 침몰 사고에 대비해서 구조 활동에 즉시 투입될 인력들도 제대로 확보해 놓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된 가장 커다란 배경 중 하나가 해양 구조 업무를 외주화하는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던 거예요. 재난사고에 대비해서 구조에 필요한 장비나 인력을 가지고 있으면서 교육 훈련을 충실히 하는 게 국가의 가장 기본적인 의무라고도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고가 나면 해경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선박들 불러 모으는 거예요. 주위에 있는 어선들, 상선들 불러 모아 배에서 탈출한 사람들 건져 올리는 것만 합니다.

2011년도에 수난구호법을 개정하면서 이런 방식을 좀 더 체계적인 구조로 만들어냅니다. 민간 어선들을 동원하고 이 어선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정착시켰어요. 이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될 때 한 국회의원이 질문을 합니다. “배가 조난이 되면 해경이 가서 구조를 신속하게 해야 하는데 수난구호법을 이렇게 개정해서 민간 선박을 동원하는 시스템을 만들면 이게 가능하겠냐?” 임창수 당시 해경 차장이 이렇게 말합니다. “사고가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민간과의 네트워킹을 잘 만들어 놓으면 예산을 절감할 수 있다.”

이러다 보니 해경은 아주 소수의 인원들만 122 구조대로 남겨 놓고는 평상시에 인명구조에 대비한 훈련도 하지 않고 장비도 갖추고 있지 않았던 거예요.

둘째, 안전 점검이 기업의 손에 넘어가 버렸다는 것이에요. 세월호의 선원들이 이미 여러 차례 ‘배가 위험하다’, ‘매일같이 과적을 해 왔다’라고 했지만 계속 무시됐다고 합니다. 검찰 수사에서도 다 드러났던 대목이죠. 청해진 해운은 과적의 위험성을 잘 알면서도 사실상 아무런 제재도 받지 않고 과적을 일삼았습니다.

이런 일이 가능했던 이유가 있습니다. 선주 회사들이 돈을 내서 운영하는 법인인 한국해운조합이 운항관리자를 둡니다. 그리고 그 운항관리자가 배가 출항을 할 때 배의 안전 점검을 하고 과적을 하지 않았는지 이런 것들을 점검해서 출항해도 좋다고 허가할 수 있는 업무를 담당합니다. 즉, 이 운항관리자들이 한국해운조합 소속인데 한국해운조합이라고 하는 건 선주 회사들이 돈 내서 운영하는 거고 그 돈으로 월급 받는 사람들이 바로 운항관리자들인 거예요. 안전 점검을 하면 선주 회사들을 상대로 해서 결국 싫은 소리를 해야 되는 거잖아요? 세월호 참사 당시에 운항관리자들의 행태를 근원적으로 따지고 들어가면 운항관리자들이 제대로 안전 점검을 할래야 할 수가 없는 그런 구조였던 것이죠. 운항관리자는 출항을 정지시킬 권한이 있지만 그런 권한을 행사할 수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놨던 겁니다. 지금은 이런 비판 때문에 세월호 참사 이후에 정부는 운항관리자들을 선박안전기술공단 소속으로 변경하긴 했습니다. 

세월호가 출항을 할 때 안전 점검 기준으로 만재흘수선[선박이 물에 잠기는 한계선]이 물에 잠겼는지 아닌지만을 판단했어요. 배가 떠난 다음에 선장이 승객 몇 명, 화물트럭 몇 개, 컨테이너 몇 개 이렇게 적어서 운항관리자한테 보내 주면 운항관리자는 거기에 그냥 사인해 출항보고서를 올리는 식으로 일을 했습니다. 실제로는 안전 점검을, 과적을 단속 할래야 할 수 없는 구조에서 일을 했던 것이죠. 만약 운항관리자가 여기에 대해서 문제 제기를 하거나 출항을 정지시켰다면 그 운항관리자가 계속 일을 할 수 없을 거라는 건 분명한 거 아니겠어요?

또 하나는 규제완화 정책입니다. 2009년도 ― 이명박 정부 때 ― 에 선령 제한이 20년에서 30년으로 늘어났죠. 선령 제한이 늘어난 것이 단지 하나만의 문제는 아닐 겁니다. 이런 것들이 안전 점검이 부실하게 되는 사태 등과 연결되면서 결국은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게 됐다는 점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규제완화 정책의 한 부분으로서 선령 제한 문제를 언급할 수 있을 듯합니다.

선박 개조시에 검사를 완화하고, 선장이 안전 검사에 대해서 보고를 해야 될 의무를 면제하는 등으로 안전 점검과 관련된 걸 규제 완화라는 명목으로 하나씩 하나씩 빼는 정책들을 계속 펴 왔어요. 이런 것도 세월호 참사의 배경적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많은 인명이 희생됐기 때문에 참사라고 부르는 건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패악과 모순들, 이런 것이 다 담겨 있기 때문에 우리가 참사라고 이야기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유가족들과 시민의 요구를 외면한 박근혜 정부

2014년에 특별조사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요구하며 몇 가지 원칙들이 있었습니다. 피해자의 참여 보장, 범국민적인 참여 보장, 독립적인 수사권 기소권 보장 등이 큰 원칙이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진상규명 운동이 시작이 됐습니다.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돼야 된다, 이를 위해서 특별검사제,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유가족들은 언제든지 찾아오라.’ 그런데 하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해경이 계속 거짓말을 하고 수색 대책을 내놓지 않으니 참사 며칠 후에 가족들이 대통령을 만나러 가겠다며 팽목항에서부터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진도대교 앞에서 경찰이 유가족들을 막아 섰습니다. 유가족들을 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태도를 상징적으로 보여 주기 시작한 사건이었습니다.

2014년 7월 24일 세월호 참사 1백 일의 행진을 경찰 차벽이 가로막았습니다. 유가족들이 청운동 앞에서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농성을 시작하자 지나가는 시민들이 볼 수 없게끔, 또 가족들이 나오지 못하게끔 경찰 차벽이 꽁꽁 둘러쌌습니다. 9월 2일 유가족들이 6백만 명의 서명을 받은 서명용지를 전달하러 광화문 광장에서 청와대를 향해서 삼보일배를 시작했지만 얼마 못 가 세종대왕상 앞에서 막힙니다.

박근혜의 "진심" 언론 앞에서 눈물을 흘리던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들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 외침에는 경찰력으로 답했다. 정부의 진실 은폐 시도가 강해질수록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유가족들의 비통함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2015년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폐기 4·11 총력행동’ 집회를 마치고 대통령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행진을 하던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경찰 방패에 가로막힌 채 울분을 쏟아내며 힘겹게 저항하고 있다. ⓒ조승진

진실 규명 자체를 방해하는 행태도 드러나기 시작했죠. 국정조사 당시 국회는 청와대에게 1백85건의 자료를 제출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청와대는 딱 세 개, 그것도 별 영양가 없는 문건만 제출합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유가족과의 면담을 끝내 거부하고서는 2014년 9월 16일 국무회의에서 ‘특별법 제정은 국회에서 알아서 할 일이다’고 얘기합니다. 동시에 사법체계 교란 운운하면서 ‘수사권, 기소권이 특별법에 반영돼서는 안 된다’는 식의 청와대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죠.

우여곡절 끝에 2014년 11월에 특별법이 제정됩니다. 수사권, 기소권을 얻어 내지는 못했지만 유가족 추천 3명, 국회 추천 10명(여당·야당 5명씩), 대법원 추천 2명, 대한변협 추천 2명, 이렇게 해서 17명의 위원으로 구성되는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도록 했습니다. 이 법은 2015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는 것으로 됐습니다.

난항을 겪은 특조위 활동

특별조사위원회 위원장은 가족 추천 상임위원-이석태 위원장-이 맡고, 사무처장을 겸하도록 돼 있는 부위원장은 여당 추천 상임위원이 담당하도록 돼 있습니다. 처음에 조대환 변호사가 부위원장으로 왔다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서 7월 즈음에 사퇴를 했고 후임 이헌 변호사도 얼마 전에 사퇴를 했죠.

특조위는 진상규명소위원회, 안전사회소위원회, 피해자지원소위원회로 세 개의 소위원회를 구성하도록 돼 있습니다. 원래는 각 소위원회마다 국(局) 조직을 두도록 요구를 했었어요. 그런데 정부와 시행령 제정 싸움을 하는 과정 속에서 이것이 축소되면서 진상규명소위원회만 국 시스템으로 가고 안전사회소위원회와 피해자지원소위원회에는 과(課)를 두게 되면서 직원 규모가 많이 축소됐습니다.

특조위 조사 권한은 자료 제출 요청, 실지 조사, 동행 명령장 발부, 청문회 실시, 진술 조사입니다. 과거에 진실화해위원회나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같은 위원회들도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갖고 있지는 못했습니다. 당시 위원회가 가지고 있는 권한은 조사 대상자이나 참고인들을 불러서 진술을 들을 수 있는 진술 청취, 현장을 가서 조사를 할 수 있는 실지 조사, 진술 조사를 거부했을 때에 동행명령장 발부 이런 권한들이 다 있었습니다. 과거의 위원회 시스템에서 권한으로 없었던 것이 청문회예요. 국회가 아닌 조사기관에서 청문회를 하는 것은 세월호 참사 특조위가 처음입니다.

지난해 12월 1차 청문회 때 해경 지휘부의 해경 본청 김석균 본청장, 김수현 서해[해경]청장, 김문홍 목포서장과 당시 상황실 근무들을 주로 불러서 증인 심문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불리한 질문에는 ‘모른다’, ‘기억나지 않는다’, 이런 식이었습니다.

특조위는 이 사람들에 대한 조사를 보완해서 특검을 하라는 요구를 2월 중순에 국회에 전달했습니다. 해경 중에서 검찰 조사로 처벌 받은 사람은 목포해경123 정장이 유일한데, 지휘 라인에 있었던 사람들도 해경123 정장과 마찬가지로 지휘부로서의 제대로 된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특조위는 특검을 요청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조사를 거부하면 과태료라든지 경우에 따라서는 형사 처벌까지 받을 수 있는 조항들이 특별법에 있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해 보니까 이 사람들이 출석을 잘 안 해요. 자료 제출 요구를 해도 영양가 있는 자료들은 잘 제출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이걸 강제할 방법이 없는 거예요. 과태료 정도로는 자료 제출을 압박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수사권, 기소권을 요구를 했던 거죠. 예를 들면 수사권을 가지고 있다면 법원의 영장을 발부 받아서 압수 수색을 할 수 있는데 특조위는 그런 권한이 없으니까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료 제출을 안 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어요. 과태료 정도로는 자료 제출을 압박하기는 굉장히 어렵습니다.

출석 진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체포 구속의 권한이 없다 보니까 사람을 찾는 것도 굉장히 커다란 일입니다. 경찰이나 검찰은 통신사실 조회도 해 볼 수 있고 여러 행정상의 데이터들을 조회하는 방법들로 위치를 알아내 체포도 할 수 있지만 우리는 그런 방법이 없어요.

예를 들면 참사 당일 탑승을 했다라고 알려진 2등 항해사 견습생이 있어요. 세월호가 무선으로 통신을 할 수 있는 장비가 두 군데가 있는데, 조타기 앞쪽에 하나가 있고, 뒤 쪽에 또 하나가 있어요. 평상시에 세월호 운항을 할 때에 앞쪽 것은 그 해당 수역의 채널에 맞추게 돼 있어요. 그 당시에는 62번이었습니다. 뒤의 거는 항상 비상 주파수 채널인 16번에 맞춰 놓게 돼 있어요. 그런데 배가 기울어지고 침몰 사고가 났을 때 2등 항해사 견습생이 뒤에 있는 장비를 16번 채널에서 62번 채널로 바꿉니다. 그렇게 되면 16번 채널을 들을 수 없어요. 123 정장이 16번 채널로 세월호를 불렀는데 세월호가 그걸 못 들었다고 했습니다. 이건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거든요. 견습생으로 왔던 이 사람은 출소를 했는데 우리가 이 사람을 찾을 수가 없어요. 굉장히 중요한 인물 중 한 사람인데, 조사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특조위 권한의 여러 한계들을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끝나지 않는, 끝낼 수 없는 싸움 참사가 있은 지 7백 일에 가까운 시간 동안 온갖 어려움이 있었지만 유가족들은 '부모이기 때문에 진실 규명을 절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유가족들이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정부의 숱한 방해에 맞서 "성역없는 조사와 수사 활동 보장"을 요구하고 나섰다. 2월 27일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 ⓒ조승진

특별법 개정 요구가 나온 배경

법에 보면 특별조사위원회는 구성한 날로부터 1년, 그 다음에 6개월 연장 가능, 보고서 작성을 위해 3개월 연장 가능하도록 돼 있어요. 그러면 특조위 활동 시작 시점이 중요하잖아요?

정부는 위원회 구성한 날이 2015년 1월 1일이라고 법 해석을 합니다. 특조위원에 대한 대통령의 임명이 그해 3월 9일이었어요. ‘위원회가 구성된 건 임명장을 받은 날’이라고 해석하면 3월 9일이 될 테고요. 그런데 위원들만 있다고 해서 일을 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잖아요? 돈이 있어야 되고 사람이 있어야 되잖아요. 실제로 정부에서 예산이 나온 게 작년 8월이었어요. 그전에는 예산이 없어서 복사 용지도 위원장님이나 직원들이 개인 돈으로 사서 쓰고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시행령이 5월에 제정이 되고 나서 직원들이 들어오게 된 게 7월 말이었어요. 실질적으로 예산과 인력이 갖춰진 때를 위원회가 구성된 날이라고 법을 해석하면 지난해 8월 즈음에 활동이 시작됐다고 보는 게 맞습니다. 

그런데 ‘위원들의 임기는 1월 1일날 시작된 것으로 본다’라고 하는 조문이 특별법에 부칙으로 들어가 있어요. 정부는 그 조항을 악용해 위원회 활동이 1월 1일부터 시작됐다고 해석을 해요. 그렇게 되면 올해 6월 말에 끝나게 됩니다.

이미 정부는 파견 공무원에 대한 파견 명령을 올해 6월 말까지로 내려 놨습니다. 예산도 6월 말까지만 지급하는 것으로 돼 있어요. 6월말이 지나면 예산도 없고 인력도 없는 사태가 다시 발생하게 되는 거예요.

결국 이걸 타개할 수 있는 방법은 특별법을 개정하는 거예요. 최근 유가족들이 나서서 특별법 개정 서명을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해 유가족들이 1주기를 앞두고 다시 거리로 나섰습니다. 당시 시행령 안 입법 예고를 앞두고 있었는데 특조위를 파견공무원들이 장악하도록 한 시스템 때문이었습니다. 지금 그 여파가 크게 나타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방해 공작도 계속됐죠. 지난해 11월에 드러난 해수부 문건에는 특조위에서 청와대를 조사하는 안건을 의결하면 전원 사퇴를 하고,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는데 여당 쪽 특조위원들이 전부 이 문건대로 움직였습니다. 이런 일들을 겪으며 특조위는 활동해 왔습니다.

여당 쪽 추천위원 석동현 변호사는 총선에 출마하겠다고 지난해 여름에 일찌감치 그만뒀어요. 쭉 회의 안 나오다가 11월에 청와대 조사하는 안건이 상정된 날 회의에 나와서 반대표를 던지고 나갑니다. 이게 여당 위원들의 행태였습니다.

진상규명의 과제

검찰 수사에 의하면 무리한 증톤과 과적으로 복원력이 약화된 상태에서, 조타 미숙으로 대각도 변침[순간적으로 배의 방향을 크게 튼 것]을 했고, 여기다 화물 고박[고정해서 묶는 것]이 부실했기 때문에 화물이 쏠리면서 복원력이 상실돼서 침몰까지 이르게 됐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타 미숙으로 조타기를 끝까지 돌렸다고 하더라도 배가 한 순간에 복원력을 상실하는 사태는 생기지 않는다고 전문가들은 계속 비판해 왔습니다.

공식적으로 정부에서 나온 항적 기록만 해도 세 가지가 있는데 세월호가 어느 항로로 갔는지 아직도 불분명합니다. 소위 급변침을 하기 직전 30초 정도의 항적도 기록이 없어요. CCTV 영상 기록 장치의 문제나 실제로 세월호가 평형수를 얼마나 감축했는지, 화물 적재량이 어느 정도였는지 등 기초적인 사실도 모르는 상황입니다.

해경은 당시 해군 투입도 저지했고, 미군의 지원도 거절했고, 민간 잠수사 잠수도 일단 제지를 했죠. 왜 그랬는지 해명이 필요한 대목입니다. 청문회 때 드러났지만 잠수사 5백 명을 동원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정조기에 두 명이 1조가 돼서 내려가는 정도에 불과했거든요. 그러니까 4월 17일 정도의 상황에서 잠수를 했던 인원은 연인원으로 따졌을 때 하루에 열 명에서 스무 명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해경 123 정장이 왜 선수로 가서 선원들만 구조했던 것인지에 관한 것도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123 정장은 선원인줄 몰랐다고 말하지만 몰랐을 리가 없어요. 모를 수가 없어요. 조타실은 아무나 들어갈 수가 없어요. 그런데 조타실에 있는 사람을 구조했는데 승객인 줄 알았다는 거예요. 상하가 붙은 작업복 입은 사람들이 몇 명 있었어요. 이게 승객들이 입는 옷이 아니잖아요? 선원인줄 몰랐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세월호 내 노트북에서 발견된 ‘국정원 지적 사항’ 문건을 보면 점검 항목이 1백 가지가 넘습니다. 국정원이 유사시에 동원할 수 있는 선박에 대해서 보안 점검 한다고 해서 이런 것까지 다 따지지 않거든요. 세월호가 처음에 한국선급에서 선박 승인을 받을 때 당시 청해진 해운이 검찰에서 조사 받으면서 했던 진술들을 보면 국정원 직원들이 자꾸 와서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 통에 세월호 선박 승인 검사를 받는 과정이 한 달 이상 지연됐다고 말합니다. 갑판 승무원으로 유일하게 생존한 강혜성이라는 사람은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계속 했던 사람인데, 이 사람이 주진우 씨의 방송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한 달에도 몇 번씩 세월호를 방문했었다’라는 이야기를 합니다. 이 정도로 개입을 했다라고 하는 건 뭔가 관계가 분명히 있는데 그게 무엇 때문이고 어떤 관계였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몇 가지 추정이 가능하죠. 일부에서는 뭔가 강정 해군기지 관련해서 위험물들을 운반하는 업무를 세월호가 국정원과 같이 했을 것이다 하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하고요. 일부에서는 국정원이 세월호의 실소유주이기 때문에 그것을 이용해서 정치 자금이나 비자금을 만들어 내려고 하는 통로로 세월호를 활용했던 것이다 그런 의혹들도 제기합니다. 그런데 국정원 조사한다는 게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대통령의 ‘7시간 미스터리’는 재난 대응의 컨트롤 타워가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을 밝히자는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항입니다.

진실 규명 운동의 의미

국민의 안전, 생명을 도외시한 채로 이윤 추구에 혈안이 된 자본의 탐욕이 세월호 참사 한 켠에 있었습니다. 또 생명과 안전을 지켜야 될 본연의 의무를 져버린 국가와 정부의 무능함과 규제 완화 같은 정책들을 통해서 최소한도의 제도적인 장치마저 해체해 버린 사회 시스템, 이런 것들이 결합이 되면서 세월호 참사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본의 탐욕 그리고 그걸 지원하는 국가의 시스템이 만들어 낸 국가 폭력의 사태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진실을 규명한다는 건 단순히 의혹을 해명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세월호 참사를 유발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원인들을 성찰하고 이것의 사회적 실체를 밝히고, 이런 과정을 통해서 비용 ·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시 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사회적 개혁을 추구해야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1993년도에 제정된 ‘기업 활동 규제 완화에 관한 특별 조치법’을 보면 기업의 안전 업무에 관한 규제들을 대폭 완화하면서 안전관리 업무를 대행 기관에게 위탁하는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해요. 세월호의 경우에 안전 점검으로 해운조합에다가 위탁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논리들이 똑같이 다른 모든 사업장 영역들에 다 들어옵니다. 안전관리 업무를 대행 기관에 위탁하면 갑을 관계가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 다음에 하청을 줍니다.

예를 들면 어떤 공장에 노후 시설이라든지 이런 안전 점검을 하는 업무를 을이라고 하는 어떤 회사에다가 자그마한 하청 업체에다가 맡깁니다. 하청업체의 직원들이 안전 검사 업무에서 ‘이 설비가 문제가 많으니까 지금 당장 교체해야 됩니다’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렇게 얘기하는 순간 잘려요. 안전 업무가 비용 절감의 논리 속에 빠지면서 점점 바깥으로 밀려 나가고 사고가 발생하면 원청 업체의 책임은 굉장히 제한적으로 될 수밖에 없는 거죠.

또한, 수난구호법에 의하면 사고가 발생하면 해경이 하는 일은 일단 민간 선박을 불러 모으는 것, 그 다음에는 구난 업체를 선정하는 거예요. 이렇게 보면 [세월호 참사 구조 작업에서] 논란이 된 ‘언딘’이라는 업체가 [정부 기관과] 유착 관계가 있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 구조 구난 업무 자체를 민영화하는 시스템을 계속 가져 온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 보입니다.

안전한 삶은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봐야 합니다. 정부가 안전을 보장해 주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절대로 그렇게 될 수가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무한 경쟁의 시스템 속에서 자본의 탐욕은 점점 더 커질 수밖에 없어요. 그것이 구조화되면서 안전 업무를 계속 외주화·민영화 시스템으로 밀어내는 정책들을 써 왔던 거예요.

신자유주의 시대에 자본의 탐욕을 정부가 뒷받침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여 온 것, 이것을 근원적으로 성찰하지 않으면 안전한 삶은 절대로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유해 화학물질에 대한 알 권리를 보장하라는 요구도 있습니다. 구미, 동탄에서 불산 가스 누출 사고 발생했을 때 지역 주민들 누구도 인근 공장에서 불산 가스를 사용하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 소방서조차도요. 불산 가스 누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초동 대응에서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지하철 노조가 시민 안전위원회를 요구해 온 것이나, 노후 원전 폐쇄와 탈핵 같은 시민사회 운동의 요구들을 안전이라는 가치로 엮어 낼 계기가 세월호 참사라고 생각합니다. 안전업무 외주화 금지, 기업살인법 제정, 규제완화 정책의 폐기, 노동자 안전권 보장, 유해 화학물질의 투명한 공개,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안전관리시스템 ― 이런 것들을 우리가 의제로 설정하면서 세월호 참사를 사회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과제들을 이어 나가야 합니다.

‘안전한 삶’이라는 권리는 우리가 시민 안전에 관한 주권자로서의 주체성을 회복하기 위한 운동이고, ’자본과 정치 권력의 동맹’에 대한 저항의 권리여야 한다는 것을 명확하게 인식하면서 운동의 힘을 모아 나가야 된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기억과 연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활동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 요구 서명은 시작 열흘 만에 6만 명을 훌쩍 넘겼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희생된 3백4명을 여전히 기억하고 유가족들의 고통에 깊은 공감을 하고 있음을 보여 줬다. 2월 5일 귀향 서울역에서 진행된 서명운동에서 한 유가족이 서명 운동에 참가한 시민에게 노란 리본을 달아 주고 있다. ⓒ이미진

국가폭력과 저항

세월호 참사는 국가폭력의 일환입니다. 국가 폭력은 세 가지 측면 ― 구조적 폭력, 물리적 폭력, 상징 폭력 ― 에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의 구조적인 폭력성이 증대되고, 그 폭력에 저항하면 가차없이 물리적인 경찰 폭력이 작용하는 것을 오늘날 목격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의 요구에 대해서 물대포와 차벽으로 응수했던 것도 이런 차원에서 인식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상징 폭력들이 또 작용을 합니다. 한편에서는 종북 매카시즘이 작동하고 있고 한편에서는 개인 삶에 대한 불안정성을 계속 증폭시키죠. ‘법을 잘 지키는 것이 건전한 시민의 삶’인양 하며 시민들의 저항을 억압하는 이데올로기 장치로서 ‘법치’가 작용합니다.

민중총궐기는, 자본의 탐욕과 여기에 동맹한 국가 권력에 맞서 시민들이 연대하고 저항하는 것을 얼마나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억압하는지 보여 줬습니다. 민중총궐기 집회를 처음부터 범죄로 만들었잖아요. 계엄령 바로 아래인 갑호비상령을 발동했어요. 그 다음에 차벽을 온 동네에 다 세우고 물대포를 쏘고요. 영국에서는 물대포가 위험하다며 사용을 불허했는데 한국에서는 안전하다며 계속 쏘아댔습니다. 이것은 안전이라는 가치를 통해서 사회를 변혁하자라고 하는 운동 앞에 놓여 있는 현실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기억합시다. 첫째 세월호 참사는 자본과 국가 권력의 동맹이 시민들의 안전을 얼마나 위협하는지를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둘째, ‘특별법 개정을 통해서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라’, ‘인양 후 선체 조사를 보장하라’, ‘방해 공작을 중단하라’ ― 이런 요구들을 유가족들과 함께 힘을 합쳐 나갑시다. 셋째, 안전권 보장을 위해서 이런 요구를 합시다 ― ‘기업살인법을 제정하자’, ‘노동자 작업 중지권과 같은 안전권을 보장하라’, ‘유해 화학물질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라’, ‘시민들이 안전의 주체가 되는 민주주의 시스템들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자’. 넷째, 그런 요구들을 하는 순간 우리는 경찰 폭력에 직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 집회 시위의 자유, 물포와 차벽을 넘어서는 민주주의를 같이 외쳐 주십시오.

당부의 말

 

특조위 활동이 6월 말에 마무리가 될 수도 있고, 특별법이 개정이 되는 과정들을 거쳐서 기간이 연장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최소한 선체 인양을 한 이후에 선체 조사를 하지 않고서는 진상을 규명하기 어렵다고 주장하고 있고, 이 주장이 특별법 개정에 큰 동력이 되고 있습니다.

4월 총선 후, 6월에 20대 국회가 처음 열리는데 통상적으로 보면 임기가 시작되는 첫 번째 국회에는 국회 원구성하고 끝나요. 그리고 9월 정기국회로 넘어갑니다. 지금 임시 국회는 3월 10일까지로 돼 있어요. 임시국회가 끝나면 19대 국회는 마무리되는 걸로 봐야 합니다. 그때까지 특별법 개정이 안 되면 6월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을 밀어붙여야 하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6월 국회에서 법 개정 의결을 못 하라는 법은 없거든요. 결국은 우리가 2주기 전후로 해서 힘을 모아야죠. 총선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으면 제일 좋고요. 그렇지 못하더라도 2주기를 거치면서 다시 한 번 힘을 모아서 요구하는 과정들이 일단 가장 절실합니다. 

박근혜 정부에서 진상규명이 제대로 이뤄지기는 굉장히 어려울 겁니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의혹을 밝히는 일인데 말입니다. 광주도 진상규명 이야기가 민주화 운동과 결합해 사회적으로 나오기 시작한 게 1988년도 이후잖아요. 세월호 참사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거예요. 그 시간에 진폭이 분명히 있습니다. 운동이 고조되는 시기가 있을 테고 그렇지 못한 시기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진폭 속에서도 이 운동이 생명력을 잃지 않도록 ‘당장 성과를 내진 못하더라도 기억과 연대의 과정들이 쌓이면서 힘들이 내부적으로 축적되고 언젠가는 분명히 외화될 수 있다’ 하는 신념을 가지고 함께했으면 좋겠습니다.

가족들이 인양 과정을 감시하려는 걸 정부가 거부해서 가족들이 [침몰 장소에서 가까운 섬] 동거차도에 천막을 치고 망원경으로 감시하고 있습니다. 밤에만 인양 작업을 하고 아침이 되면 배가 나갑니다. 인양 작업을 하면서 많은 것을 건져 냈을 텐데 어떤 물건들을 발견했는지가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고 있어서 굉장히 우려됩니다. 특조위도 접근을 못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주위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하면 좋을까?’ 하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이게 정말 어려운 문제더라고요. 가족들이 특례 입학과 의사상자를 요구한다는 둥 이런 말도 안 되는 이야기들이 있었잖아요. 그런 왜곡된 생각들을 불식시켜 주는 것들이 중요한 과제인 것 같아요.

피해자에 대한 고정관념이 사회에 있어요. 피해자들은 그냥 슬퍼해야 하고, 정부에서 뭔가 거기에 대해서 보상을 하면 고마워해야 하고, 나서서 권리를 주장하면 안 된다는 것들이죠. 그런 것들을 사회적으로 깨 나가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 같습니다.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우리 사회 고정관념이 있잖아요. 성폭력 피해자가 나서서 피해 상황에 대해서 문제제기를 하고 강하게 대응을 하면 피해자로 사람들이 안 봅니다. 이런 관념들이 우리 사회를 지배해 왔지만 지금은 많이 변했잖아요. 피해자에 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위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학생들의 구실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2주기를 앞두고 ‘세월호를 기억하자, 진실을 규명하자, 특조위 활동을 방해하지 말라’ 어떤 구호든 좋습니다. 우리가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고 함께 같이 행동한다는 구호를 담은 배너로, 노란색으로 대학교 캠퍼스 안팎을 물들이는 일에 대학생들이 나서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어요. 여러분이 열정을 갖고 함께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여 주면 좋겠다는 취지입니다. 학내에서 세월호를 기억하고, 무엇을 할지 같이 고민하고, 작은 거라도 하나씩 해 나가는 것들이 쌓이는 게 결국은 힘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그런 구실을 여러분이 앞장서서 해 줬으면 좋겠다는 걸로 제 이야기는 마무리하겠습니다.

녹취 박충범, 정리 김지윤

입력 2016-03-0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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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진실을 향한 싸움은 계속된다

김지윤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3백4명이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이들의 곁을 떠난 지 7백 일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유가족들의 사무치는 그리움은 더 깊어졌건만 참사의 진상도 책임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2주기를 앞두고 유가족들과 4 · 16연대는 숱한 어려움에도 다시 투쟁을 선포하고 지지와 연대를 호소하고 있다.

정부의 특조위 침몰 시도

4 · 16연대는 특별법 개정 입법 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했다. 개정의 핵심은 기존 특별법이 보장한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활동 기간을 보장하라는 것이다. 박근혜는 올해 6월 30일로 특조위 활동을 종료시키려 한다. 특조위 구성 요건이 명시돼 있지 않다는 점과 독소조항인 특조위 “위원의 임기는 이 법의 시행일[2015년 1월 1일]부터 시작하는 것으로 본다”는 부칙을 악용한 것이다. 조직 활동의 가장 기본이라 할 예산이 2015년 8월에서야 배정돼 9월이 돼서야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었는데 말이다. 전명선 4 · 16가족협의회 위원장의 말대로 정부의 억지가 관철되면 “특조위 활동은 9개월 안팎으로, 반토막 날 상황에 처해 있다.” 이미 올해 특조위 예산은 지난해 대비 3분의 1로 줄어든 상태다.

그래서 4 · 16가족협의회와 4 · 16연대는 법 개정으로 조직 구성 시점을 분명히 해 박근혜 정부가 더는 억지를 부리지 못하도록 하고 세월호 인양 후에 진상규명의 핵심고리라 할 만한 선체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조사기간을 보장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조사방해행위에 대한 사법경찰권한 강화도 법 개정안에 포함시켰다.

2014년 11월 ‘반쪽짜리’ 특별법 통과 이후에도 특조위는 온갖 방해 속에 난항을 겪어 왔다. 특조위는 박근혜 정부의 주요 타깃 중 하나였다. 새누리당 김재원은 특조위를 “세금 도둑”이라 비난했다. 지난해 5월 박근혜는 특조위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강화하는 ‘쓰레기’ 시행령을 기어코 통과시켰다. 연말에는 해수부의 특조위 방해 정황이 담긴 ‘문건’이 폭로됐는데, 특조위 내 여당 추천위원들은 이 ‘지침’대로 사퇴 협박을 일삼으며 특조위를 마비시키고 흠집 내는 데에 열을 올렸다(지난 2월 12일 부위원장 이헌이 사퇴하면서 특조위 내 여당 추천 위원은 한 명도 없는 상태다). 특히 이 자들은 특조위가 1차 청문회 조사 대상으로 참사 당일 청와대 대응을 포함시키기로 의결한 것에 크게 반발해 소란을 피웠다. 여당 추천위원들의 임무가 청와대 보호에 있다는 것을 스스로 드러낸 것이다. 적반하장으로 새누리당은 특조위 활동을 축소시키는 법안 개정에 나설 수 있다고 엄포를 놓았다. 이에 장단 맞춰 지상파 언론들은 반쪽자리 기구라며 청문회 생중계도 거부했다.

아마도 박근혜는 특조위가 비록 제한적이지만 조사권을 활용해 여러 의혹들을 파헤치려 하고 실제로 그중 일부를 밝혀 폭로하면 진상 규명 운동이 힘을 받아 자신에게 정치적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심히 걱정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예 그 가능성을 원천봉쇄하려 든 것이다.  

따라서 이번 특별법 개정 요구는 진상규명 방해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특별법 개정 서명 운동은 시작한 지 열흘 만에 6만 명을 훌쩍 넘기며 “지겹다”는 지배자들의 ‘여론몰이’가 거짓임을 보여 주고 있다.

진실을 침몰하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의 공격은 날이 갈수록 악랄해졌지만 유가족들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운동 참가자들의 분노와 의지는 쉽게 꺾이지 않았다. 2월 27일 범국민대회 거리 행진에 나선 참가자들. ⓒ조승진

성역 없는 조사와 수사 보장하라

박근혜 정부는 독립적 진상규명 기구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것이 “헌법 근간을 흔든다”며 한사코 막으려 했다. 검찰이 한 일은 무엇인가? 2014년 검찰 수사 결과 발표는 “몸통은 빼고 꼬리만 자르기”의 전형을 보여 줬다. 검찰은 권력의 충실한 하수인임을 숨기려 하지도 않았다.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처벌받은 정부 관계자는 목포해경 123정 정장이 유일하다. 마땅히 책임을 져야 할 자들은 영전했다. 학생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은 비정규직 교사들에 대한 순직 인정 요구를 무시한 것과는 딴판이다.

특조위 활동을 올해 6월 30일에 종료시켜 진상규명 활동을 정지시키려는 정부 시도에 항의해, 4 · 16연대는 2월 15일 특조위가 의결한 특별검사안(이는 특별법에 보장된 권한이다)을 국회에서 의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2월 15일 특조위는 ‘특별검사 임명을 위한 국회 의결 요청처리의 건’을 의결한 바 있다. 특조위가 제출한 수사 대상은 검찰 수사에서 형사책임을 면했던 당시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등 해경 간부들이다. 물론 특검은 박근혜가 임명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국회 밖에서 계속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대중적 운동이 필요하다. 

한편, 정부는 제대로 인양 현장을 공개하지는 않으면서 인양 시기에 대한 이런저런 말들을 흘리며 가족들의 애만 태우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들이 수색을 요구할 때는 인양하자더니 미수습자 수습과 진상규명을 위해 인양을 요구하니 모르쇠로 일관해 왔다. 그러다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전후해 항의 운동이 다시 부상하자 마지못해 세월호 인양 요구를 수용했다.

그러나 인양 결정 발표 이후에도 인양 과정은 철저히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다. 심지어 밤중에 몰래 인양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피해자 가족들은 지난해 9월부터 참사 현장 부근 동거차도의 산에 천막을 치고 망원경을 이용해 인양 현장을 감시하고 있다.

조사와 수사를 위해 가장 중요한 증거로 꼽히는 세월호가 온전하게 인양되고 특조위가 이를 제대로 조사할 수 있어야 한다. 세월호 인양은 9명의 미수습자를 수습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최근 <미디어 오늘>은 국정원 직원이 세월호 참사 당일에 청해진 해운 직원들과 일곱 번 통화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 보도를 보면, 뉴스를 보고서야 침몰 소식을 알게 됐다는 국정원의 기존 주장은 거짓일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국정원 실소유주 의혹은 대표적인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였다.

이렇게 의혹이 산적해 있는데도 박근혜 정부가 진상규명 조사 활동을 멋대로 종료시키려는 것을 내버려 둬선 안 된다. 진상을 낱낱이 밝혀 제대로 처벌받게 해야 한다. 2주기를 앞두고 새롭게 시작한 운동에 지지와 연대가 강력하게 모아져야 한다.

입력 2016-03-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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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과 마르크스주의

차승일

꽤나 오래전부터 음모론은 인기가 있었다. 지배자들의 추악한 부패 추문, 심각해지는 불평등,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부조리한 일들이 팽배한 상황을 보면, 음모론의 유행은 이해하기 그리 힘든 현상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본주의 하의 소외(‘따돌림’을 뜻하는 세간의 용어법이 아니라 마르크스주의 방법의 용어로서 소외) 때문에 대다수 사람들은 모종의 알 수 없는 힘의 지배를 받는 느낌을 강하게 갖는다.

물론 지배자들은 실제로 온갖 음모를 꾸미고 조작을 일삼는다. 예컨대 미국 중앙정보국(CIA) 직원이었던 에드워드 스노든은 미국 지배자들이 광범하게 전화 통화 감청 등을 했음을 폭로했다. 음모와 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중요한 결정이 보통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막후에서 내려지는 일이 흔하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모든 일이 투명하게 처리될 수는 없는 법이다.

어떤 음모들은 나중에야 사실로 밝혀지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60년대 중엽 미국이 베트남을 침공하면서 명분으로 삼았던 통킹만 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 권력자들의 비밀 조직이 온갖 악행을 저지른다는 음모론은 그럴 듯해 보이기 쉽다.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극구 방해하며 온갖 수상쩍은 일을 벌이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보면 온갖 음모론을 믿고 싶은 심정이 강하게 들겠지만, 음모론은 운동 건설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 ⓒ사진 출처 해양경찰청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을 극구 방해하며 온갖 수상쩍은 일을 벌이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를 보면, “막후 인물들”이 일부러 세월호를 침몰시킨 것 아니냐는 김어준의 주장, 잠수함이 들이받아 침몰한 것 아니냐는 우리사회연구소 곽동기 상임연구원의 주장, 심지어 미국이 배후에 있는 것 아니냐는 주장들을 믿고 싶은 유혹을 강하게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음모가 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넘어, 어떤 사건을 음모 중심으로 설명하는 음모론은 세계를 이해하고 변화시키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된다. 특히, 인종차별 사상(예컨대 유대인 금융자본설)과 연결된 음모론은 분열을 부추기므로 운동 건설에 해악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마르크스주의와 음모론의 차이를 살펴보며 마르크스주의가 더 유용함을 주장하고자 한다.

마르크스주의와 음모론은 세계관, 방법, 실천 면에서 크게 다음과 같은 차이가 있다.

세계관의 차이

마르크스주의와 음모론은 사회가 누구에 의해 어떻게 운영되는지, 권력자들의 관계는 어떠한지에 관해 서로 매우 다른 관점을 취한다.

대다수 음모론의 핵심에는 극소수 엘리트의 비밀 조직이 사회를 운영하며 중요한 사건들을 일으키고 조종한다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또, 그 소수의 엘리트들이 개인적·?직접적 접촉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며 모든 일에 관여한다고 본다.

예를 들어 ‘유대인 금융자본’설은 유대인들이 세계 주요 은행과 금융기관을 장악해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경제 상황을 조종한다고 주장한다. ‘빌더버그 클럽의 세계 지배설’도 있다. 데이비드 록펠러(로커펠러), 헨리 키신저(키싱어), 조지 소로스, 벤 버냉키, 빌 게이츠 등 세계 유수의 기업인과 정치인들이 해마다 한두 차례 극비 회의를 열어 정치적?·경제적 중요 결정을 내리고 세계를 지배한다는 것이 그 내용이다. ‘빌더버그 클럽’은 최근 영국 BBC나 <가디언>이 회의 참석자 명단을 공개하며 관심을 끌었다.

물론 마르크스주의도 소수인 지배계급이 사회를 지배한다고 본다. 그러나 지배계급이 전체 인구의 1퍼센트밖에 안 된다고 가정해도, 그 수는 한국에서만도 50만 명이 넘는다. 미국에서는 3백23만 명가량 된다. 수십 명 또는 수백 명의 소수가 이 모두의 활동을 감시하며 조종할 수 있고,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일을 일으키며 통제할 수 있다는 음모론의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이 노동계급 착취라는 공통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다고 본다. 지배계급이 공통의 이해관계로 묶여 있음을 이해하면, 몇몇 구체적 인물들이 꾸미는 음모를 밝히는 데 골몰하지 않더라도 기업주와 국가 관료들의 행동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 지배계급은 경쟁적(따라서 강박적) 자본 축적이라는 자본주의의 객관적 논리의 영향을 받아 움직이며 그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다. 그래서 국가는 자국 자본가들의 이익에 호의적으로 반응해 움직이고, 기업주들도 혈연·?지연·?학연 등을 맺어 국가 관료들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다른 한편, 지배계급은 공통의 이해관계를 가지면서도 경쟁적 자본 축적 논리에 따라 서로 분열하고 죽도록 경쟁한다. 이 강박적 경쟁이, 거듭되는 경제 위기와 전쟁의 근저에 있는 동역학이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그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무정부적인 체제이다.

반면 음모론이 가정하는 세계는 입력된 프로그램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같다. 이 세계에서 ‘우연’이라는 요소는 발붙일 곳이 없다. 그래야만 소수 엘리트의 비밀 조직이 바라는 결과가 그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모론을 “세속적 신정론(神正論)”이라고 한 지적은 타당해 보인다.(전상진, 《음모론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2014, 그러나 나는 음모론이 저항 운동에 쓸모가 있을 수 있다는 그의 결론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설명하겠다.)

또한 음모론은 지배계급의 극히 일부만을 문제 삼으므로, 아무리 급진적 버전이어도 체제 전체는 인정하는 보수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방법의 차이

음모론은 비밀 집단의 존재와 행위를 중요하게 보므로, 특별하거나 숨겨진 지식에 의존하고, 감춰진 사실을 들추는 데 치중한다. ‘빌더버그 클럽’의 비밀 회합에 누가 참석했는지,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도와 다른 항적도는 없는지, 레이더 영상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괴물체’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내는 데에만 너무 큰 관심을 기울인다.

그 과정에서 음모론은 자신의 가설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증거를 취사선택하곤 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음모론은 아귀가 딱딱 맞는 듯하지만, 또 다른 증거와 정황을 함께 고려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음모론을 증거를 둘러싸고 반박할 수는 없다. 음모론이 제기한 가설을 반박하는 증거는 (특히 공식적 설명과 비슷한 것이라면) 조작된 것으로 치부할 터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음모론은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물론 《자본론》 등 여러 마르크스주의 문헌은 대다수 사람들이 모르는 정보를 담고 있다. 특히, 주류 언론과 학계가 무시하는 혁명의 역사나 노동자?민중의 투쟁 소식 등은 널리 알려져야 하고, 이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널리 알려져 있고 대중이 이용할 수 있는 사실들에 근거를 두지, 감춰진 사실을 들춰내는 데 골몰하지 않는다. 널리 알려진 사실을 주류의 시각과 달리 해석하고, 그 사실들 사이의 관계를 설명하려 애쓴다. 이 점은 중요하다. 체제에 대한 급진적 비판이 대중에게 영향력을 가지려면 그 비판이 대중의 경험과 연관돼야 하기 때문이다. 사실,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세계) 노동계급의 (역사적) 경험을 일반화한 것이다.

방법 면에서 음모론의 둘째 문제는 공식적 설명에 이견을 제시할 뿐, 대안적 설명을 내놓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컨대 세월호 고의 침몰설을 주장하는 김어준은 최근 자신의 인터넷 방송 앞머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희가 세월호 관련해서 지난 1년 반 가까이 추적을 해 왔는데, 마지막까지 잘 안 풀리는 부분이 이런 거였어요. 항적도를 조작하고 여러 가지 데이터를 조작했는데 결국 왜 했느냐는 거죠. ... 오늘 그 왜에 해당하는 마지막 퍼즐이 풀립니다.” 그러나 허무하게도, 그는 그 방송 말미에서 이렇게 말했다. “왜는 사실 정부가 밝힐 일이에요. 우리는 조사권이 없으니까.”(<김어준의 파파이스> 81회, 2016년 1월 15일)

음모론이 대안적 설명을 내놓지 않는 까닭은 지배계급의 행위에 관한 객관적 논리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모론은 최신의 폭로 자료를 (확증편향적으로) 확보하는 데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지배계급의 주장을 비판하고 논박하는 동시에 대안적 설명을 내놓기 위해 애쓴다. 자본주의의 동역학을 설명한 마르크스의 《자본론》이 대표적 사례다.

이 글의 서두에서 언급한 베트남 전쟁에 대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설명도 있다. 통킹만 사건이 조작이냐 아니냐는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국에서 공산당이 권력을 잡고 북동쪽으로는 북한 정권을 지원하고 남서쪽으로는 북베트남의 공산당을 지원하는 상황, 남베트남에서 베트남 공산당과 연계된 민족해방전선이 성장하는 반면 미국이 지원하는 남베트남 정권은 붕괴가 확실시되는 상황, 베트남 민족해방전선의 성공이 성장하고 있던 인도네시아 공산당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었던 상황, 미국이 이미 1960년대 초부터 병력 1만 명 이상과 많은 무기를 베트남에 투입한 상황을 종합해 보면, 미국 지배자들이 이른바 ‘공산진영’의 확장을 저지하고 자신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베트남을 침공했다는 설명이 가능하다. 또, 1950년대 미국이 한국 전쟁을 비롯한 세계 여러 곳에서 군사력을 사용하며 재미를 봤던 것도 전쟁 결심에 한몫했을 것이다.

음모론이 대안적 설명을 내놓지 못한다는 논의를 확장하면, 음모론은 역사 발전에 관한 일반적 이론이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음모론은 역사를 단지 음모의 연속으로 본다. 그러므로 음모론은 사회와 역사의 변동에서 나타나는 일반적 패턴을 설명하지 못하고, 자본주의 체제와 그 이전 체제가 무엇이 다른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변증법과 유물론을 역사에 접목한 역사유물론으로 인간의 역사를 설명한다.(역사유물론에 관해서는 최일붕, 《마르크스주의의 방법: 소외, 변증법, 역사유물론》, 노동자연대다함께, 2013을 참고하시오.)

실천의 차이

일반적으로 음모론은 사회의 변혁을 위한 실천에 도움이 되는 전략이 없다. 그저 사람들에게 이러저러한 음모가 있음을 알릴 뿐이다.

또한 음모론은 자신의 가설을 입증하고자 한두 가지 사실에만 열중하다가 중요한, 어쩌면 훨씬 더 중요한 또 다른 사실들을 망각하기 십상이다. 그래서 노엄 촘스키는 9·?11 사태를 둘러싼 음모론에 대해 이렇게 지적했다. “음모론은 이상한 것에 우리를 몰두하게 만듦으로써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실제적 탐구와 정치적 행동을 방해할 뿐이다.” (전상진, 《음모론의 시대》, 문학과지성사, 2014에서 인용)

더 나아가 음모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기 시작하면 운동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과 반박은 지배자들의 사주를 받은 것이거나 적어도 지배자들의 음모에 놀아나는 행태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달리 마르크스주의는 지난 1백50년 이상의 노동운동 경험에서 이끌어 낸 계급투쟁 이론과 혁명적 전략이 있다. 예를 들어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파업론’, 레온 트로츠키의 ‘연속혁명론’, 레닌의 ‘혁명적 정당의 구실’, 레닌과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등은 현재의 실천에도 도움이 되는 영감과 조언을 준다.

이 글의 서두에 썼듯이, 여러 음모론이 유행하는 현상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핵심적으로는 소외 때문이다. 또한 지배계급이 여러 음모를 획책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강력한 비밀 결사체의 존재를 가정하기보다는, 지배자들의 음모가 있으리라는 합리적 의심을 자본주의 체제의 동역학과 모순이라는 더 큰 틀 속에 자리매김할 때, 세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어떻게 해야 바꿀 수 있는지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

입력 2016-03-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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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대학 캠퍼스에서 진실 규명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승주(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나는 꿈이 있는데! 살고 싶은데...” 단원고 2학년 6반 고(故) 김동협 학생이 세월호 안에서 찍은 동영상으로 남긴 마지막 말이다. 2년 전 참사만 아니었다면 2백50명 단원고 학생들은 올해 대학에 진학해 새내기가 됐을 것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미래를 그렸을 그 앳된 모습들은 얼마나 찬란하고 아름다웠을까?

“세월호 세대”를 자처하는 많은 대학생들이 활발하게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건설하고 있다. 대학생들은 참사 2주기를 앞두고 학내에서 진실 규명 운동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고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이 펼치고 있다.

인하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신대, 한국외대, 고려대, 부산대, 전남대, 한림대 등 전국 곳곳에서 유가족 또는 특조위원 초청 강연회, 영화 ‘나쁜나라’ 공동체 상영회, 특별법 개정 요구 서명운동, 노란 리본 달기 운동, 릴레이 배너 게시, 학내 단체 공동성명 발표, 2주기 집회 참가단 꾸리기 등이 벌어지고 있다. 간담회 요청이 쇄도해 유가족들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올해 16학번 새내기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남다르게 다가오는 듯하다. 신입생 대부분이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같은 나이다(1997년생). 이들은 동갑내기 친구들이 희생될 때 지켜보며 도와주지 못했다는 미안함을 품고 대학에 입학했다. 미안함을 느껴야 책임자들은 따로 있음에도 말이다. 많은 새내기들이 “참사 당시에는 슬퍼할 수밖에 없었는데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적극적으로 운동에 동참하고 있다. 

△전국 여러 대학의 대학생들은 서명운동과 강연회 등을 열고, 집회에 참여하며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확대하는 데에 열성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416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

연결고리

올해 3월에는 4 · 16연대가 주도해 ‘4 · 16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이하 2주기 대학생 준비위)를 만들었다. 4 · 16연대는 이 기구를 2주기 이후에도 발전시켜 4 · 16연대의 상시적 대학생 부문기구로 만들 계획이다. 현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에는 학생회, 동아리, 소모임, 정당, 단체들 55곳이 모였다(3월 29일 현재). 대부분이 대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인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형제자매들도 2주기 대학생 준비위에 함께 하고 있다.

△3월 26일부터 이틀간 열린 '416대학생 새로배움터'에 참가한 대학생들. 참가자들은 유가족들과의 대화를 나누고 단원고 기억 교실을 방문하며 진실 규명을 위한 손을 놓지 말자는 의지를 다졌다. ⓒ416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

대학생 준비위원회는 4월 9일과 16일, 4 · 16연대의 본대회에 앞서 대학생 사전대회와 행진을 서울 도심에서 진행할 예정이다. 지난 3월 26일에 2주기 대학생 준비위가 주최한 1박 2일 ‘416대학생 새로배움터’ 행사에는 대학생 1백여 명이 참가해 유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뜻 깊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준비위에 함께 하는 세월호 대학 모임들 중 몇 곳은 같은 날 총선투쟁승리 범국민대회에 참가해 4 · 16연대와 함께 ‘세월호 참사 2주기 준비위원’ 모집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유가족들과 함께 거리행진을 했다.   

앞으로도 2주기 대학생 준비위가 대학생들의 운동 참여를 더 고무하는 구실을 하면서 진실 규명 운동 전체에 활력을 불어넣는 능동적 구실을 하길 진심으로 바란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늘 대학생들의 지지와 응원으로부터 큰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실제로 대학생들의 참여는 지난 많은 운동들에서 커다란 활력과 동력이 돼 왔다. 2주기 즈음해 벌어질 집회들이 이후에도 이어질 진상규명 투쟁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수 있도록 대학생들이 적극 동참하자.

△3월 26일 총선투쟁승리 범국민대회에 참가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대학생들이 함께 행진을 하고 있다. ⓒ이미진

입력 2016-03-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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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은폐 시도에도 진실에 한 발짝 접근하다

[서평]세월호, 그날의 기록

김지윤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재판 기록과 공문서,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 참사 당일 1백1분을 추적 · 분석한 책이 새로 발간됐다. 저자들은 진실의 조각을 맞추기 위해 10개월 동안 무려 15만 장에 가까운 기록과 3테라바이트(TB)가 넘는 자료를 분석했다고 한다. 사고 당일의 생생하고 정직한 기록만으로도 사고가 참사가 된 것이 불가항력이 결코 아니었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글쓴이들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일은 작은 손전등 하나로 깊은 바다 속에 가라 앉은 배를 비추는 것과 같”다고 말한다. 단지 방대한 양의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정부의 방해와 부실한 조사들 속에서 진실의 퍼즐을 맞추는 것은 결코 녹록치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제주운항실과 세월호의 마지막 교신 기록 등이 밝혀졌다. 아마도 정부의 집요한 은폐 시도가 아니었다면 더 빨리 밝혀질 수도 있었을 사실들이다.

△진실의 힘 세월호 기록팀, 697쪽, 25,000원, 진실의 힘

“구할 수 있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한 해경의 행태는 어처구니가 없고 이후에도 은폐에만 급급한 모습엔 분통이 터진다. 물이 차오르고 두려움이 커지는 순간에 희생자들은 가족들에게 ‘해경이 자신들을 구할 것’이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애타게 구조를 요청하는 안타까운 손짓과 외침에도 손 한 번 제대로 내밀지 않은 구조 세력에 대한 기록을 보면서 슬픔은 이내 정부를 향한 분노로 바뀌고 만다.

승객들이 수십 번 119에 구조 요청을 했는데도 119의 답변은 해경을 기다리라는 것뿐이었고, 도착한 해경도 구조는커녕 윗선에 보고하는 데에 급급했다. 승객들이 애타게 구조를 기다리고 있던 때에도 당시 구조를 담당했던 해경 123정 정장은 사진을 찍고 있었다. “해경청장 김석균은 아예 ‘상급 부서에 보고하는 것’이 자기 역할이라고 주장할 정도”였다.

제대로 된 지휘 체계와 책임자는 없었다. 123정은 어선들이 세월호에 다가가는 것을 막으며 “접근할 수 없다”고 세월호 가까이로 다가가지 않았다. “너무 멀리 떨어져서 마치 ‘강 건너 불 보듯’하며 소극적으로 임한 것”이다. 심지어 해경은 생존 학생을 건져 올리며 여러 번 욕설까지 내뱉었다는 증언도 이 책을 통해 드러났다.

해경 본청 상황실은 상황 전파도 제대로 않고 상황보고마저 안일하기 짝이 없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누구도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다.

해경 헬기는 세월호 상황도 제대로 모른 채 ‘깜깜이 출동’을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해경이 작성한 첫 번째 녹취록에는 9시 28분에서 9시 32분까지의 헬기 간 교신이 통째로 빠져 있다. 저자들은 교신 기록이 없는 것은 책임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라는 합리적 의심을 제기한다.

그날의 상황 기록을 보노라면 “구조 계획이 없는 구조 세력”이라는 말이 꼭 들어 맞는다. 그러나 두루 알다시피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지고 처벌받은 정부 책임자는 해경 123정 정장뿐이다.

진도VTS관제사가 감사원 조사에서 했던 진술을 통해 승객 퇴선 명령을 하지 않은 이유도 밝혀졌다. 그는 “진도VTS에서 세월호 선장에게 승객을 퇴선시키라고 지시했는데 세월호가 침몰하지 않는 상황이 발생해 그 지시에 따라 퇴선한 사람들이 죽거나 실종됐다고 가정할 때 그때 책임은 누가 지겠나?” 라고 반문한 사실을 인정했다. 즉 나중에 책임질 일이 두려워 책임 회피를 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편 배가 기울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청해진해운이 가장 먼저 한 일은 화물량 조작이었다. 평소보다 화물을 너무 많이 실은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될 것을 걱정한 것이다. 

증폭되는 의혹들

한편, 해경은 세월호 사고 TRS(주파수 공용 무선 통신 시스켐) 녹취록을 3번 작성했다고 한다. 그런데 국회와 감사원, 검찰에 제출할 때마다 교신 내용이 달라졌다. 저자들은 “각 해경 주체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삭제나 수정을 하는 짜깁기 자체가 은폐고 조작이라고 볼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간 국가기관의 조사가 얼마나 부실했는지를 다시금 실감하게 한다.

어디 그뿐인가? 아직 세월호의 침몰 원인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았다. 해경수사본부가 지목하고 검찰이 받아들인 조타수의 대각도 조타 실수 가설은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다. 재판부도 “세월호를 해저에서 인양하여 관련 부품들을 정밀히 조사한다면 사고 원인이나 기계 고장 여부 등이 밝혀질 수도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세월호의 조타기나 프로펠러가 정상적으로 작동했는지에 대해 합리적인 의심이 있다는 2심의 판단을 수긍한다는 것이다.”

특조위 2차 청문회에서 김서중 위원은 "정부가 진실에 들어가기 위해서 충분한 노력을 하지 않고 너무 일찍 결론 내린 것 아니냐?"며 "증거를 파악하기 위해 빨리 선체 인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체 훼손 없는 온전한 세월호 인양과 진실 규명이 떼려야 뗄 수 없는 요구라는 것을 다시금 확인할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라 인천해경의 사고 인지 시점에 대한 증언이 맞지 않는 문제 등 앞뒤가 맞지 않는 조사 결과들이 산적해 있다. 교신 조작 의혹, 123정이 선원들만 구한 이유,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 등도 꼭 밝혀야 할 의혹들이다. 

한편, 세월호가 제주 운항실과 한 마지막 교신이 2년 만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선원들은 1백톤급 해경 경비정으로 승객을 다 구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인식한 상태에서 도주한 듯하다. 저자들은 “승객을 먼저 탈출시키면 자기들은 살아 나올 기회를 놓칠 수도 있으니까”라는 설득력 있는 가설을 제시한다.

 저자들은 세월호 선장이 퇴선 명령을 내리지 않았더라도 당시 목포해양경찰서장 김문홍이 세월호와 직접 교신해 승객들을 비상 대피 장소로 이동시키도록 선장과 선원들에게 지시할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해역 수온은 12.6도였고 “최악의 경우 승객들이 구명조끼를 입은 채 바다에 떠 있기만 해도 최대 6시간까지 버틸 수 있었다”고도 덧붙인다.

결국 “구조할 시간도, 구조할 세력도, 부족하지 않았다.”

진실과 정의를 포기할 수 없다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박근혜 정부는 뻔뻔하게도 유가족들의 절박하고 정당한 요구인 "진실 규명"을 짓밟아 왔다. 애끓는 슬픔 속에서도 유가족들은 진실 규명을 위한 한 길을 걸어오고 있다. 그리고 지난 2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고 함께 외치고 있다. 2015년 4월 2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삭발식을 진행하는 유가족들. ⓒ조승진

진실이 거짓을 이긴다

지난 특조위 1차 청문회에서 김문홍은 “제가 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이것을 다 챙깁니까?” 하고 항변했다. 그러나 이제껏 드러난 자료들을 모아 분석하며 저자들은 하나의 결론에 이르렀다. “구할 수 있었다!” 지금껏 드러난 진상들만 살펴봐도 국가의 무책임이 참사를 만들었다는 결론에 맞닿을 수 있다. 또한 이 책은 단지 참사 당일만이 아니라 그간 계속 제기돼 왔던 선박 규제 완화와 부패 문제를 다루며 어떻게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배”가 탄생했는지를 추적했다. 정부가 참사의 책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다.

박동운 진실의 힘 이사장은 이 책을 펴내며 “’세월호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미 만들어진 기록과 자료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것”이라고 밝힌다. 이 책에서 세월호 참사를 통해 드러난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문제점, 국가의 부패 문제들과 본질이 구체적으로 서술되고 있지는 않지만 그 날의 상황을 생생히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정부의 무책임과 진상 규명의 과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책은 진실을 드러내는 것의 힘을 잘 보여 준다.

정혜신 정신의학 박사는 “진상 규명이야 말로 진정한 치유”라고 지적했다. 꾸준하고 강력한 대중 운동이 진실 은폐의 책임자인 박근혜 정부를 더욱 강력히 압박할 때 아직 저들의 손에 쥐어진 더 많은 진실의 퍼즐들이 맞춰질 것이다. 

입력 2016-03-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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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교과서 활용 금지

여전히 ‘가만히 있으라’는 교육부

서지애 (전교조 조합원, 초등학교 교사)

3월 25일 교육부는 ≪416 교과서≫의 활용을 금지하라는 공문을 시도교육청으로 내려 보냈다. 교육부는 ‘국가기관에 대한 부정적, 비판적 내용을 제시해 학생들의 건전한 국가관을 저해하고, 확인되지 않은 의혹을 교육자료로 사용됨이 부적절하며, 학생 성장 발달단계상 비교육적 표현이 포함되는 등 교육의 중립성을 훼손하는 사안이므로 엄중 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놨다.

그러나 부르주아 민주주의 제도 안에서조차 교사의 교육 전문성과 자율성을 인정하고 있다. 정부의 이번 방침은 헌법 제31조 제4항의 ‘교육의 자주성과 전문성에서 파생되는 교사의 교육의 자유’, 즉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으로, 이것이야 말로 권력을 남용한 정치적 행위이다.

학교에 인력지원도 없이 안전과 관련된 숱한 전시행정을 지시하면서, 정작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정도로 부조리한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 준 세월호 참사를 성찰하는 것마저 막으려는 정부야 말로 반교육적이다. 416교과서 사용 금지는 세월호 참사 지우기의 일환이다. 참으로 비열한 작태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정부의 행태는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학생들은 미성숙해 판단력이 없으니, 세월호 참사와 같은 사회적인 문제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면 안 된다고 정부는 주장한다. 그러나 올바른 정보와 경험을 제공해 학생들의 판단을 돕는 것이 교사들의 할 일 아니겠는가? 더군다나 참사 희생자의 대다수는 즐거운 추억을 꿈꾸며 수학여행 길에 오른 학생들이었다. 정부는 아직도 선내에 대기하라는 방송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던 학생들이 되도록 가르치라고 교사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한편, 교육부는 세월호 침몰 원인을 단순 ‘조타수의 조타 미숙으로 인한 급변침’이라 확정해 발표했다면서, 그 외의 의혹에 대해 교과서에서 언급한 것을 문제 삼았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이 조타 미숙으로 조타기를 끝까지 돌렸다고 하더라도 배가 한 순간에 복원력을 상실하는 사태는 생기지 않는다고 계속 비판해 왔다. 2심법원과 대법원도 이런 지적을 받아들여 조타 미숙 외에 다른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세월호가 왜 침몰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은 것이다.

대법원 판결에 근거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왜 확인되지 않은 주장인가? 확인되지 않은 주장을 확정적으로 발표한 정부야말로 문제이다. 일개 노동자들에게 정부가 져야 할 책임을 모두 덮어씌우려 하는 꼼수도 부족해, 본인들이 그토록 강조하던 법도 무시하며 억측을 부리고 있는 것이다.

전교조 세월호 교과서 발행, 진실 규명 노력이 집대성되다

무고한 생명들이 차가운 바다에서 운명을 달리한 지 벌써 2년이 다 돼 간다. 그동안 세월호를 잊지 않기 위해, 진실을 밝히기 위해 교사들이 해 온 여러 가지 실천과 수업을 모아 재구성한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교과서≫(이하 416교과서)가 최근 발간됐다. 전교조가 기획 · 발행했다.

416교과서의 첫 장을 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돈이라면, 인간의 목숨까지도 가볍게 팔아버리는 신자유주의 세계, 잔인한 폭력이 평화를 갈망하는 이들의 목을 조르는 억압적 세계가 우리 곁에 있다 … (중략) 세월호 참사 후 2년이 흐르면서 어떤 이는 잊자고 한다. 하지만 우리가 잊으면 진실을 밝히지 못하면, 정의를 세우지 못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 (중략) 세월호 참사에 대한 교육적 실천의 첫걸음은 세월호에 대해서 ‘말’하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를 잊으라는 요구에 굴복하지 않는 것이다.”

이 교과서는 단순히 사건을 기록한 일지가 아니다. 경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지배자들의 신자유주의 책략의 종합세트였던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가르치고, 배우고, 토론하는 교사들과 학생들을 위한 길잡이로서 세상에 나왔다.

416교과서는 ‘기억과 공감’, ‘진실 찾기’, ‘정의 세우기’, ‘약속과 실천’ 총 4단원으로 구성돼 있다.

첫 번째 단원 ‘기억과 공감’은 세월호 참사 희생자와 참사에서 살아남은 자, 그리고 유가족들의 고통을 그려내고 있다. 이 교과서를 접하는 사람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삶들이 참사로 인해 송두리째 바뀌는 과정을 생생하게 담아내, 세월호 참사가 결코 당사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을 밝히고 있다. 그렇기에 세월호 참사의 고통을 공감하고, 참사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3월 22일 안산합동분향소에 놓인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 교과서' ⓒ사진 제공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진실 찾기’ 단원은 ‘세월호가 왜 침몰하게 되었는지? 살아남은 자들은 탈출해서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을 뿐, 왜 한 명도 구조하지 않았는지?’와 같은 여러 의혹들을 질문으로 제시하고, 지금까지 밝혀진 것들을 소상히 담고 있다. 특히 세월호의 선령 제한을 완화한 것, 증축과 과적, 평형수 문제, 안전점검 미비 등을 설명한 부분은 이윤을 남기려고 생명, 안전과 관련된 규제를 완화하는 이 사회 체제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승객을 버리고 탈출한 선장, 대피방송을 하지 않은 선원들은 도대체 왜 그랬는지?’, ‘근처에 구조 가능한 대형 선박들이 있었음에도 출동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지?’도 묻고 있다.

이러한 의혹과 관련한 9가지의 사회 구조적 문제들이 ‘정의 세우기’ 단원에 담겨 있다. 규제완화, 안전보다 돈, 부정부패로 인한 운항관리 심사 부실, 간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의 문제, 운항관리사와 해운회사의 이상한 관계, 선원 안전교육 부실, 해경과 구조업체의 유착 관계 의혹, 그리고 해운업 이윤을 내기 위해 여객선을 이용한 수학여행을 권장했던 정부의 행태까지, 자본의 탐욕과 이를 지원하고 수호하는 국가의 구조적 관계를 조목조목 짚어낸 부분이 인상적이다. 참사의 원인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며, 참사의 책임을 회피하는 정부에 정말 분노하지 않을 수 없다.

정의 세우기 단원에는 최근 언론에서 이슈가 된 ‘미소의 여왕’ 이야기가 등장한다. 초등용 교재에 실린 ‘미소의 여왕’ 이야기는 2014년 9월 동시·동화·그림 등 세월호 참사를 추모한 작품을 모아 펴낸 책 ≪세월호 이야기≫(한뼘작가들, 별숲)에서 인용한 것이다. 정부는 이 부분이 “동화 속의 여왕을 통해 대통령이 연상되도록 유도함으로써 대통령 및 정부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조장”한다는 검토 의견을 내놨다.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꼴이다.

미소의 여왕

2014년 5월 19일 박근혜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눈물을 흘리며 “그들을 지켜 주지 못하고, 그 가족들을 지켜 주지 못해 대통령으로서 비애감이 든다. 세월호 참사의 철저한 진상규명이 돼야 된다, 이를 위해서 특별검사제, 특별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최종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유가족들은 언제든지 찾아오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켜진 것은 하나도 없다. 그간 정부는 진상 규명을 호소하는 유가족들을 외면하고 탄압했다. 대통령 본인의 입으로 말한 특검마저도 관철되지 못하고 있다. 대통령의 완강한 반대 속에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 없는 반쪽짜리 특별법이 통과된 것으로도 모자라, 시행령 등을 통과시키며 특조위가 조사권마저 제대로 사용할 수 없도록 온갖 방해공작으로 펴 왔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던지 특별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특조위 활동이 6월에 끝날지도 모른다. 여왕의 눈물이 추악한 ‘검은 눈물’이며, “슬프다”고 말한 그 입 속에서 시커먼 구더기들이 나왔다는 ‘미소 여왕’의 구절이 차라리 미화된 표현이 아닐까? 교과서는 옳게도 ‘사고’와 ‘사건’을 구분하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자본에 의해 의도된 살인을 설명하고 있다.

마지막 단원 ‘약속과 실천’에는 2014년부터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있었던 특별법 제정과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 진상규명을 위한 투쟁의 기록이 담겨 있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포함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지지하는 서명에 순식간에 6백만 명이 모인 일, 생사를 초월한 ‘유민 아빠’ 김영오 씨의 46일 단식 투쟁, 2015년 특별법 시행령 폐기 운동까지 잊을 수 없는 2년의 시간을 돌아보노라면,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것과 앞으로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피해자들은 그저 슬퍼해야 한다는 고정관념도 이 투쟁을 통해 깼다.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이들의 부모들은 부모이기에 도저히 이 투쟁을 그만 둘 수 없다고 했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은 거대한 자본주의 체제의 문제를 건드리는 것이기에 우리의 삶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끈질기게 투쟁해야 한다. 1989년 영국에서 일어난 힐스버러 축구장에서 있었던 참사가 25년만에 진상이 밝혀지기 시작했듯이 말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이해 초등학교 아이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눌지 고민하던 필자에게 이 교과서는 큰 영감을 줬다. 이 교과서가 교육현장에서 널리널리 활용되길 바란다. 초등과 중등의 차이는 크지 않고, 각 단원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를 어떤 자료와 방법으로 접근할지에 대한 고민이 더 중요할 것이다. 물론 학교에서 이 교과서 전체를 다룰 필요는 없고, 교사와 학생들이 상황과 목표에 맞게 발췌해 교과 시간, 창의적 체험활동, 학생 동아리 활동 등에서도 충분히 활용하면 될 것이다.

이 책은 아마 교과서로서는 적어도 국내에서,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최초로 분석하고, 폭로한 교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진실 규명은 세월호 참사를 유발한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원인과 사회적 실체를 밝히는 과정을 통해서 비용 ·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시 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이 교과서가 그런 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때로 대중교육은 숨겨진 진실을 널리 폭로할 수단이 되기 때문에 이 교과서가 진실 규명에 훌륭히 기여하리라 기대한다.

또 세월호 참사는 2주기 운동으로 끝날 일이 아니다. 당장에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한 세월호 특별법을 개정해야 하려면 국회를 움직여야 하고, 세월호의 온전한 선체 인양과 진상 규명을 위한 싸움도 계속돼야 한다. 앞으로의 진상 규명 상황 등에 따라 이 교과서의 일부 내용이 바뀌더라도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내년, 내후년까지 416 교과서가 많은 교사들, 학생들 사이에서 활용되길 바란다.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교과서≫는

http://goo.gl/forms/qPyX2B5Vzh 에서 신청 · 구입할 수 있다.(가격 5,000원 / 문의 02-2670-9434)

입력 2016-03-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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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 음모론 기사를 읽고 나서

더욱 가소로운 세월호 침몰 음모론

최일붕

지난호 <노동자 연대> 신문의 ‘음모론과 마르크스주의’ 기사에서 차승일 기자는 음모론이 마르크스주의와 아무 관계 없음을 논증했다. 음모론은 사회 구조를 계급으로 파악하는 마르크스주의와 본질적으로 다르게 보아, 극소수 엘리트가 사회를 운영하며 중요한 사건들을 은밀하게 일으키고 조종한다는 생각에 근거한다.

그리고 “음모론이 가정하는 세계는 … 기계와 같다. 이 세계에서 ‘우연’이라는 요소는 발붙일 곳이 없다. 그래야만 소수 엘리트의 비밀 조직이 바라는 결과가 그대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배계급보다 그 내부의 극소수 ‘이너 서클’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 이들에 관한 단편적 사실들에서 어떤 결론을 도출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이 ‘구체적’ 사실을 취사선택하면 음모론으로 기울기 십상이다.

그러한 사고에서 계급투쟁은 실종돼 있다.[1] 민중주의자 가운데 일부가 음모론에 친근감을 느낄 만한 까닭이다. 민중주의자 김어준이 이끄는 ‘프로젝트 부’는 김지영 감독이 만들고 있는 세월호 영화를 후원한다.

김지영 감독이 <파파이스>에 출연해 ‘마지막 퍼즐을 맞췄다’고 주장한 내용의 핵심은 ‘앵커(닻)를 이용한 침몰’이다. 영화는 이 가설을 주제로 삼고 있다. 김지영 감독과 김어준은 왜 닻을 내리고 운항했는지는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쉽게 음모론으로 연결된다.

전지윤도 그 음모론에 동의한다.[2] 그러나 세월호 재판 기록을 담은 책 《세월호를 기록하다》의 저자 오준호 씨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김지영 감독을 비판했다. “앵커가 배를 붙잡는 힘인 파주력이 닻줄 길이에 비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닻줄 길이는 300미터보다 훨씬 길어야 했을 것[이다.] … 김지영 감독이 말하는 것처럼 해저 지형도에 맞춰 배가 걸린다는 건 이상하다.”

파파이스

단편적 사실들을 취사 선택해 어떤 결론을 내는 음모론은 진정한 세월호 진실 찾기에 방해만 된다. ⓒ사진 출처 해양경찰청

차승일 기자는 음모론자가 지엽적인 ‘구체적 증거’에 집착한다고 지적한다. “음모론은 비밀 집단의 존재와 행위를 중요하게 보므로, 특별하거나 숨겨진 지식에 의존하고, 감춰진 사실을 들추는 데 치중한다. … 세월호 참사와 관련해서는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도와 다른 항적도는 없는지, 레이더 영상에 잠깐 나타났다가 사라진 ‘괴물체’의 정체는 무엇인지 등을 알아내는 데에만 너무 큰 관심을 기울인다.”

구체적 증거와 구체적 사실에 대한 집착이 만약 편견과 결합되면, “그 과정에서 음모론은 자신의 가설에 부합하느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증거를 취사선택하곤 한다. 그래서 얼핏 보면 음모론은 아귀가 딱딱 맞는 듯하지만, 또 다른 증거와 정황을 함께 고려하면 합리적이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 그러나 음모론을 증거를 둘러싸고 반박할 수는 없다. 음모론이 제기한 가설을 반박하는 증거는 (특히 공식적 설명과 비슷한 것이라면) 조작된 것으로 치부할 터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음모론은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기 십상이다.”

그러나 <뉴스타파> 최기훈 기자는 이런 확증편향을 비판하며 페이스북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월호 사건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는 박수를 보내줘야 한다. [그러나] 이번 파파이스를 보고 든 생각은 자신들이 세운 가설에 부합하는 사실만 취합해서 논리를 만들었다는 것이어서 설득력이 떨어지고 더군다나 가정이나 추론을 은근슬쩍 사실인양 끼워 넣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설명은 음모론과 다르다. 지배자들이 이러저러한 음모를 꾸미는 것은 맞지만, 그들의 배후에 있는 ‘막후 인물들’의 음모에 대해 생각하기보다는 문제의 사건을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모순들이라는 맥락 속에 자리 잡게 할 때 그 진정한 본질을 알 수 있다. 차승일 기자는 그 모순을 이렇게 요약한다.

“지배계급은 경쟁적…자본축적…의 영향을 받[는]다. … 국가는 자국 자본가들의 이익에 호의적으로 반응해 움직이고, 기업주들도 … 국가 관료들에 영향을 미치려 한다. … 다른 한편, 지배계급은 … 서로 분열하고 죽도록 경쟁한다. … 그래서 … 자본주의는 그 누구도 통제하지 못하는 무정부적인 체제이다.”

<노동자 연대> 신문은 이런 근본적인 인식 틀 속에 세월호 참사를 자리매김 했다. 해운기업들의 이윤 경쟁, 신자유주의적 규제 폐지와 완화, 정부(지방정부 포함)와 기업의 부패한 유착, 특히 정부의 “엉망진창 구조”(botched Sewol rescue: 2015년 2월 12일 CNN 보도의 제목) 등이 어우러져 빚어진 참사임을 논증했다.[3]

특히 정부의 대처가 참사의 직접적 원인이었는데, 음모론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를 고의로 침몰케 해 얻을 이익(이런 게 있는가 모르겠다)보다는 볼 손해가 훨씬 컸다는 점에 관해서는 숙고를 하지 않는 듯하다.

차승일 기자에 따르면, 음모론의 근본적 원인은 자본주의적 소외이다. 소외 때문에 사람들은 모종의 알 수 없는 힘의 지배를 받는다고 느낀다.

차기자는 음모론과 관련해 이런 점도 지적했다. “음모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강변하기 시작하면 운동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 자신들에 대한 비판과 반박은 지배자들의 사주를 받은 것이거나 적어도 지배자들의 음모에 놀아나는 행태로 보일 것이기 때문이다.”[4]

[1] Josh Lucker, ‘Class Struggle or Conspiracy?’, 12 October 2012, http://www.marxist.com/class-struggle-or-conspiracy.htm

[2] 전지윤은 1999년 서해교전 직후에도 음모론을 펴다가, 김하영이 제국주의론에 근거해 제기한 논박에 부딪혀 침묵했다. 이후로 그가 단체를 탈퇴하기까지 그는 종종 뒤풀이 자리에서 음모론을 시사해 다른 노동자연대 회원들을 웃기다가 우리가 정색을 하면 음모론을 집어넣었다. 그가 진보당 내 경선부정 사태를 서술하는 방식도 음모론적이었다. 그가 이렇게 음모론을 좋아하는 것이 그가 탈퇴 후 노동자연대를 모략하는 것과 어떤 관계 있는지 숙고해 보는 것도 흥미있는 일이겠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3] 김승주 외 3인의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들이 쓴 소책자는 세월호 참사를 자본 축적의 동역학 등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들 속에 자리매김 하고 고찰한다. (소책자 《세월호 참사, 무엇을 기억하고 무엇을 할 것인가 : 마르크스주의적 분석》)

[4] 전지윤이 진보당 당권파의 당내경선 부정 여부로 나머지 노동자연대 운영위원들과 충돌했을 때 그는 우리를 정의당 대변자들로 매도했다. 이명박 정부와 우파 언론의 음모에 어리석게(물론 의도치 않게) 놀아난 일이었던 것처럼 암시하기도 했다.

입력 2016-03-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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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세월호 참사 2주기

‘세월호 지우기’에 맞서 진실 규명 운동은 계속된다

김지윤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안타깝게도 3백4명의 목숨을 앗아간 끔찍한 참사의 진상과 책임은 아직도 충분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국가 기관들의 무시와 비협조 탓에 열악한 상황에서 조사가 이뤄져 침몰 원인 등에 대해 분명하게 규명되지는 못했지만 진상 규명 과제가 여전히 산적해 있다는 사실만큼은 분명하다.

정부의 집요한 방해와 활동 종료 압박 속에서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2차 청문회가 3월 28일부터 이틀간 열렸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침몰 원인을 적극 규명하기 위해 청해진해운과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집중 신문이 이뤄졌다. 청문회 시작 전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은 “청문회는 … 국가의 책임을 온전히 묻기 위한 자리”라고 의의를 밝혔다.

“아무리 힘들다한들 2년 전 그날 우리 아이들의 고통보다 크겠습니까?” 3월 28일 특조위 2차 청문회에 참석해 눈물을 흘리는 유가족들. 지난 2년간 자식 잃은 비통함에도 진실 규명을 위한 걸음을 멈춘 적이 없는 유가족들은 이 운동의 구심이 돼 왔다. ⓒ이미진

새로운 주장도 제기됐다. 청문회 사전 조사에서 세월호 여객영업부 직원인 강해성은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이 청해진해운의 지시에 따른 것이라는 새로운 증언을 했다. 그리고 조타수 조준기도 유사한 주장을 했다. 그러나 여전히 왜 그런 지시를 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청문회를 통해 2014년 2월에 조타기가 고장났는데도 수리하지 않고 운항을 계속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제주 교통관제센터(VTS) 교신 기록과 정부가 제출한 세월호 항적도의 편집 의혹도 제기됐다. 그래서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이런 조작된 증거를 사실로 인정하고 검찰이 조사를 진행했다”고 지적하며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근본적으로 다시 조사하고 재판을 해야” 하고 “특별검사제(특검)를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실을 침몰시키려 한다

그간 검찰의 조사가 부실했음이 더욱 분명해지고 있는 만큼, 유가족들이 특검 실시를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2014년 정부와 새누리당은 독립된 진상 규명 기구에 기소권과 수사권을 줄 수 없다며 유가족들에게 특검 수용을 압박해 놓고, 막상 특검 실시를 요구하자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유가족들이 삭발도 불사하며 국회 앞 80시간 농성도 벌였지만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은 차갑게 요구를 외면했다. 

박근혜 정부는 올해 6월 30일에 특조위를 문 닫게 할 계획이다. 특조위에 예산이 편성돼 본격적 활동을 시작한 게 사실상 지난해 9월이고 특별법이 보장한 활동 기간이 1년 6개월이지만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월 1일이 활동 개시일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이미 올해 예산과 인력 편성도 이 일정에 맞춰 끝마쳤다. 이렇게 되면 세월호가 인양되는 시점에 특조위가 존재하지 않게 된다.

정부의 공격에 맞서 4·16연대와 유가족들은 지난 2월부터 본격적으로 서명 운동을 조직해 특조위 조사기간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해 결코 물러서지 않겠다는 뜻이다.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은 유가족들의 오랜 요구이지만, 정부는 유가족들의 접근을 철저히 통제하고서 인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정부가 인양 시기를 저울질하는 동안 희생자 가족들의 가슴은 문드러지고 있다. 미수습자들을 찾고, 세월호 침몰 원인을 제대로 조사할 수 있도록 세월호는 온전히 인양돼야 한다.

기억과 약속 3월 26일 ‘총선 투쟁 승리 범국민대회’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준비위원을 모집하고 있다. ⓒ이미진

정치적 초점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지난 2년간 숱한 방해와 공격에 시달렸다. 유가족들이 겪은 수모를 떠올려 보라. 뿐만 아니라 세월호국민대책회의 주요 활동가들이 소환됐고, 박래군 공동운영위원장은 수감이 되기도 했다. 이 운동이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아킬레스건이기 때문에 정부의 공격이 더욱 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정부와 우파의 진실 덮기 공격 못지 않게 거의 국민적이라 할 만큼의 공분도 존재했다. 안전보다 이윤을 내세우고 정부가 각종 규제 완화로 기업들의 돈벌이를 위한 길을 닦아온 것이 참사의 배경으로 지목되면서 대중적 분노가 확대됐다. 그 분노는 2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유가족들은 굳건하게 운동의 구심을 형성했다. 유가족들은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원칙 있게 싸우려 노력했다. 올해에도 유가족들은 더는 박근혜 정부의 공격에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다짐하며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과 특검을 요구하며 투쟁에 나섰다. 서명 운동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를 방문해 간담회와 강연회 등을 통해 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고 운동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이 호소가 광범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도록 진보·좌파 세력들이 적극 노력해야 한다.

특히 올해 4·13총선과 세월호 참사 2주기가 맞물리면서 세월호 참사 쟁점이 정치적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 선거 시기에는 노동자 대중 사이에서 정치적 관심도가 높아지고 다양한 사회적 쟁점들이 정치화된다. 진보·좌파 정당들이 선거 운동을 연단으로 삼아 정부의 진실 은폐 시도를 적극 폭로하며 정치적 관심을 환기시키고 운동에 대한 지지를 모으려 노력한다면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을 성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가 박근혜 정부의 본질을 극적으로 드러낸 사건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정부를 향한 불만을 결집·대변하는 구실을 할 가능성도 있다.

4·16연대와 유가족들은 2주기 이후에도 특조위 종료 시도에 맞서 특별법 개정과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싸울 것이다. 따라서 4월 9일 2주기 콘서트와 16일 범국민 추모문화제가 큰 규모로 치러지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 운동의 건재함을 확인시키고 운동 지지·참가자들의 자신감을 높여 특별법 개정을 위한 앞으로의 투쟁이 커다란 탄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 4월 16일 2주기 집회 이후에도 진실 규명을 위한 투쟁이 계속되고 유지·확대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운동이 세월호 운동의 성장·발전에 중요한 구실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자.

4·16세월호 참사 2주기 특별 콘서트 

<약속콘서트>

일시 : 4월 9일 오후 7시

장소 : 광화문 북단광장

주최 : 4·16연대 / 4·16가족협의회

4·16참사 2년 전국집중 범국민 추모문화제

일시 : 4월 16일 오후 7시

장소 : 광화문 중앙광장(세종대왕상 앞)

주최 : 4·16연대 / 4·16가족협의회

세월호 참사 2주기 준비위원이 됩시다.

참가 방법 : http://416act.net/notice/12102

준비위원 가입비는 2주기 사업과 신문광고 비용으로 사용됩니다.

입력 2016-03-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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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금지하겠다지만, 전교조의 세월호 계기수업 정당하다

서지애 (전교조 조합원)

정부의 ‘가만히 있으라’ 조치가 도를 넘고 있다.

교육부가 3월 25일 계기수업에 대한 지침을 근거로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교과서》(이하 《416교과서》) 사용을 금지하라는 공문을 각 시도교육청에 하달했다. 《416 교과서》를 활용해 계기수업을 할 경우 법과 절차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하겠다고도 덧붙였다. 교육부는 《416 교과서》가 부정적 국가관을 주입하고 사실을 왜곡하는 등 학생 교육에 부적절한 내용이 포함됐다고 주장한다. 진보 교육감들이 교육부의 지시를 따르지 않자 교육부는 4월 3일 시도교육청 7곳의 부교육감을 따로 불러 《416교과서》 사용금지를 압박했다. 이번이 벌써 4번째다. 

교육부의 이런 태도는 비열한 이중 잣대다. 2014년 교육부는 ‘천안함 피격사건 4주기 추모 기간’을 정하고, 관련 계기수업 자료 등을 교육부 웹사이트에서 다운받을 수 있게 해놓고 각 시도교육청에 계기수업 지침을 내렸다. 당시 자료에는 ‘북한 도발에 대비해 군사력을 키워 전쟁을 해야 한다’는 서술이 있어 교육적 논란이 있었지만 교육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교육부는 ‘학교운영위원회와 학교교육과정위원회를 거쳐 학교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교육부 자체 계기수업 지침마저도 어기면서까지 계기수업을 적극 장려했다.

그런데 세월호 계기수업 활동은 금지시키고, 불응하면 엄정대처하겠다고 엄포를 놓고 있는 것이다. 정권의 입맛에 따라 그때그때 달라서야 어디 ‘지침’이라 할 수 있겠는가? 교육의 영역이 전혀 중립적일 수 없음을 교육부가 오히려 몸소 보여 주고 있다.

△전교조는 4일 오전 서울 광화문 세월호 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416참사 2주기 집중 실천 주간을 선포했다. ⓒ출처 <교육희망>

공감마저 금지하려 하는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2년이 됐지만, 여전히 진실은 규명되지 않고 있다. 정부가 주장한 침몰 원인이 대법원에서 기각되고, 또 다른 침몰 원인을 조사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시되기도 했다. 며칠 전에 열린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서는 “대기하라”는 선내 방송이 청해진해운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새로이 제기됐다. 그러나 왜 그런 지시가 내려졌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물론 명확한 부분도 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킨다고 떠벌리는 국가가 구조에 무책임했고, 진실 규명조차 방해한다는 것이 그것이다.

교사들이 이러한 끔찍한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공동수업을 진행해 학생들과 의견을 나누고 진실이 온전히 밝혀지기를 촉구하는 것이 왜 문제인가? 세월호 참사로 인해 목숨을 잃은 희생자, 삶이 송두리째 바뀐 유가족과 생존 학생들에 대한 마음을 공감하는 것조차 막다니, 도대체 교육부는 무엇이 그리도 두려운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부조리한 사회구조와 역사를 되돌아보고, 교훈을 얻는 교육으로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공동수업의 교육적 가치는 충분하다. 교육부는 진실을 알리는 교사 본연의 업무를 도리어 징계 협박으로 억누르려 하지만 행복한 교육과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월호 공동수업은 정당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전교조가 《416 교과서》를 만들고 세월호 공동수업을 하려는 것은 학생들에게 ‘참사를 기억하고 진실을 외면하지 않는 정의감’과, ‘부조리에 대한 건전한 비판 능력’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는 정당한 교육 활동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는 학생 2백50명과 교사 12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기에 학교 현장에 있는 구성원들은 이번 참사를 남의 일로 여길 수 없다. 그러니 어찌 계기수업을 하지 않을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 이후 ‘안전 교과’ 신설을 시도할 정도로 안전교육을 강조하는 정부가 정작 학생들과 교사들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에 대한 성찰마저 막는다는 것은 정말로 앞뒤가 하나도 맞지 않는 일이다.

한편, 교육부의 계기수업 금지 조처는 교사들에게 법(헌법 제31조 제4항)이 부여한 교사의 수업 자율성, 교사의 자주성과 전문성에서 파생되는 교사의 수업권을 침해하는 것이다. 또한 그동안 강조돼 왔던 교육과정 재구성 장려 정책과도 상반되는 조처이다. 교사의 교육활동은 수업뿐 아니라 조회, 종례, 자치활동, 창의적 체험활동 등 학생과 교사가 대면하는 모든 장에서 이뤄지고, 구체적 내용은 교육당국이나 학교 관리자에게 일일이 신고하거나 허가 요청할 사항이 결코 아니다.

따라서 교육부가 징계 엄포를 놓는 것은 정부의 ‘기억 지우기’의 일환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정부의 이런 행태는 “진실을 감추려는 자 범인”이라는 말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만든다.

집단적 준비와 대응

진보 교육감들은 정부의 이러한 조처에 대해 반대하면서 세월호 공동수업은 학교가 자율적으로 결정하라는 입장을 취했다. 현장 교사들이 세월호 공동수업에 나설 수 있는 공간이 좀 더 열린 셈이다. 예컨대 인천교육청은 세월호 추모 주간과 추념의 달을 지정하며 계기수업을 장려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면 경기교육청이 최근 추모의 달 지정을 ‘안전교육 기간’으로 설정하기로 변경하며 학교장 결재가 있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후퇴한 것은 유감스럽다.  

물론, ‘학교의 자율적 결정’은 학교교육과정위원회,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학교장 결재를 받아야 해서 교사들이 공동수업을 하려면 학교의 보수적 관리자나 보수적 학부모의 민원 등의 압력도 이겨내야 한다. 또, 《416 교과서》와 여러 자료들을 수집해 학생들의 정서와 이해 수준에 맞게끔 공동수업을 구성하고 계획하는 일도 3∼4월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교사들에게 만만한 일이 아니다. 때문에 현장 교사들이 더 자신감을 갖고 수월하게 계기수업에 나서도록 고무하려면 집단적인 준비와 대응이 필요하다.

이 점에서 전교조가 정부의 공격에 굴복 않고 맞서 싸우겠다고 선포하며 더 많은 교사들이 계기수업을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을 마련하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전교조는 4월 4일 ‘세월호 참사 2주기 공동수업 및 실천활동 선포’ 기자회견을 열어 교육부가《416 교과서》 사용 금지 결정을 철회할 것을 요구했다. 또한 교사는 침묵하고 굴종하는 정권의 노예가 아니라 ‘진실을 가르치는 자유인’이기에, 징계 협박 따위에 흔들리지 않고, 교실에서 당당히 세월호를 이야기함으로써 학생들과 함께 기억과 진실을 향하는 길을 걷겠다고 선언했다.

또한, 각 시도교육감에게 “교육부의 부당 조치에 응하지 말고 세월호 2주기를 맞아 전개될 다양한 교육활동과 공동수업이 원활히 진행되도록 협조와 시도교육청 자체의 행사 추진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지금까지 7천 부가 배포된 《416교과서》 보급도 확대할 예정이다. 지난주 전교조 본부를 시작으로 워크샵과 연수를 시도 지부가 적극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도 있다. 《416교과서》를 활용한 수업 시연을 선보이고, 수업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며, 교사들의 고민에 대한 토론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전교조 웹사이트 메인화면을 ‘세월호 참사 공동수업’ 페이지로 꾸며 교사들이 쉽게 관련 자료를 얻을 수 있게 하고, 게시판에 계기수업에 대한 고민을 공유해 함께 해결하도록 한다는 방침도 세웠다. 각 학교 학생회 등에서 진행하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실천하는 학생 활동을 지원하면서, 팽목항, 광화문 416 광장 방문, ‘안산 기억저장소- 단원고 기억교실 – 합동분향소’를 방문하는 4 · 16 기억과 약속의 길 걷기 현장 체험학습도 실시하겠다고 밝혔다.

교육부의 《416 교과서》 계기수업 금지 ‘엄포’와 보수적 학교 관리자와 민원에 대응해, 민주노총과 노동운동 · 시민사회 단체들의 연대도 조직하기로 했다. 세월호 공동수업이 학교 안에서만 머무르지 않고 더 커다란 운동으로 확대되기를 바라며 공동수업 활동 사진 4백16장을 모아 신문 전면광고도 낼 계획이다.

앞으로 세월호 공동수업이 전국 곳곳에서 실시된다면 진실을 은폐하려는 정부에 맞서는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힘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다.

전교조 활동가들은 더 많은 교사들이 정부 공격과 관리자의 압박에 위축되지 않고, 세월호 공동수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집단적인 수업 방안을 만드는 등 공동수업 확대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세월호 공동수업은 세월호 진상 규명과 ‘돈보다 생명’이 소중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부가 될 것이다.

‘계기수업 현장 교사 선언’

공연한 선명성 부각보다는 더 많은 교사들이 공동수업에 참여하는 게 중요

 

전교조 일부 좌파 활동가들이 주축이 돼 “세월호 교과서 계기수업 현장 선언”을 조직하고 있다. 공동수업을 시행하는 교사의 실명과 학교명을 밝히는 현장 선언을 조직해 4월 11일 기자회견에서 공개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정부의 탄압과 보수단체의 고발 등을 각오하더라도 세월호 쟁점에 대한 여론 환기, 교사로서 세월호 투쟁에 함께 하는 의미 있는 선언”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선언운동이 효과적인 전술일지 의구심이 든다.

지금 정부의 공격에 맞서는 가장 효과적인 저항은 최대한 많은 교사들이 정부의 엄포와 관리자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전국의 학교 현장에서 계기수업을 실제로 실행해 정부의 계기수업 금지 조처를 무력화하는 일이다.

반갑게도 전교조 집행부는 정부 탄압에 굴하지 않고 계기수업을 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천명했고 교사들에게 계기수업에 적극 나서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세월호 계기수업에 대한 교사들의 관심은 높지만, 실제 이를 실행하기는 만만치 않은 일이기도 하다. 계기수업을 하려고 하면 보수적인 학교 관리자 압박과 일부 학부모의 민원 제기도 감수해야 한다. 최근에는 정부의 부당한 공격과 엄포까지 보태졌다.

따라서 전교조 활동가들은 집행부가 제시한 계기수업 확대를 위한 여러 방안을 활용해 현장 교사들의 계기수업 동참을 끌어내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

그런데 교사 실명 · 학교명 공개 선언은 정부의 추가적 탄압도 감수한다는 자세로 소수의 결의를 부각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광범한 교사들을 동참시키거나 계기수업을 확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수단은 아닐 것이다. 지금 전교조 활동가들이 해야 할 일은 현장 교사들과 함께 계기수업의 의미, 학교 관리자의 압박에 대한 공동 대응 방안, 계기수업에 대한 지역사회의 연대 이끌어내기 등을 토론하며 실제 광범한 공동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정부의 ‘세월호 진실 가리기’를 교사들이 학교 현장에서 무력화할 수 있는 효과적 방법은 더 많은 교사들이 계기수업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 소수의 결의 천명을 우선해 교사 대중과 활동가들을 분리시키는 전술은 공연한 선명성 부각처럼 보인다.

따라서 전교조의 기층 투사들은 더 많은 교사들이 정부의 부당한 압력에 위축되지 않도록 계기수업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설득력 있게 주장하면서 계기수업이 확대되도록 조직에 나서야 한다. 

입력 2016-04-0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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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과 행동의 다짐으로 가득했던 세월호 참사 2주기 콘서트

김지윤

세월호 참사를 여전히 기억하고 행동하겠다고 다짐한 5천여 명이 광화문광장 북단으로 모였다. 4 · 16연대가 세월호 참사 2주기 “다시 봄…기억하라! 행동하라!” 기억과 약속 행동 차원에서 마련한 <약속 콘서트>가 성공적으로 열렸다.

봄이지만 아직 쌀쌀한 날씨인데다 콘서트 하루 전 날 장소가 변경되는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콘서트가 시작되고도 광화문광장을 찾는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특히 10대와 20대 학생 · 청년들이 대규모로 참가한 것이 인상적이었다. 아이들의 손을 잡고 참가한 가족 단위 참가자들도 많았다.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지우려 하지만 여전히 참사를 자신의 일처럼 가슴 아파하며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함께 손잡으려는 참가자들의 뜨거운 연대의 마음이 광화문광장 일대에 가득했다. 참가자들은 성역 없는 진상 조사와 세월호 인양을 한 목소리로 요구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약속콘서트

△세월호 참사 2년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마음이 광화문광장으로 모였다. ⓒ이미진

약속콘서트, 세월호 2주기

△"잊지 않아준 여러분 감사합니다" 약속 콘서트에 참석한 세월호 유가족들 ⓒ이미진

박혜진 전 MBC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콘서트에는 416합창단, 평화의나무 합창단을 비롯해 가수 부활, 한영애, 이승환 씨와 김선우 시인 등이 출연했다.

고(故)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는 연단에서 “2년 전, 1년 전과 도대체 뭐가 바뀌었나요? 왜 저는 여전히 이 나라에서 숨 쉴 수 있게 해달라고 해야 하나요? 다음 주 4월 16일 이 나라를 바꾸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한 약속을 지켜주세요. 6월 세월호 특조위가 가라 앉지 않게, 7월 세월호가 진실과 함께 인양될 수 있게, 함께 하겠다고 행동하겠다고 한 그 약속을 지켜주세요”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가수 이승환 씨는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곡 ‘가만히 있으라’를 부르기도 했다. 그는 “우리가 그 아이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더더욱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일을 방조했던 혹은 날조했던, 이용했던 그 어떤 사람들도 우리가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고 말했다.  

콘서트의 마지막은 뮤지컬 가수 배혜선 씨와 청소년 · 대학생 합창단의 공연으로 꾸며졌다. 합창단원으로 무대에 선 세월호 희생 학생의 친구는 “4월 13일 총선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세월호 2주기, 약속콘서트

△"4월 16일에 잊지 않고 행동하겠다는 그 약속을 지켜주세요" 고 최윤민 학생의 언니 최윤아 씨가 참가자들에게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절절한 호소를 듣던 참가자들의 눈시울도 함께 붉어졌다. ⓒ이미진

한편, 콘서트 전 사전행사로 기억과 약속 동서남북 416걷기 행사도 진행됐다. 유가족, 대학생, 교사, 민주노총 조합원, 지역 세월호 모임 등이 각각 동(신답역), 서(홍대정문), 남(용산역), 북(한성대입구역)에서 출발해 1천여 행진 대열이 콘서트 장소로 모여들었다. 행진대열은 손수 만든 팻말 등을 들고 행진하며 거리의 시민들에게 세월호 참사를 잊지 말고 진실 규명을 위해 함께 행동하자고 호소했다. 마무리 집회에서 한 인하대 16학번 학생은 “대다수의 사람들은 진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집요하게 방해한다고 해서 죽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잊었을 때 묻히는 것입니다.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인양하기 위해 끝까지 싸울 것입니다” 하고 말해 큰 박수를 받았다.

4월 16일 오후 7시에는 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집중 범국민 추모문화제가 열릴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약속콘서트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콘서트 마지막은 대학생들의 공연으로 꾸며졌다. 대학생들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에 맞춰 율동을 선보이고 있다. ⓒ이미진

△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약속콘서트‘에서 공연을 보던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승진

세월호 약속콘서트

△정부는 세월호 참사를 지우려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있다. 약속콘서트는 잊지 않고 진실을 규명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다시금 확인시켜 줬다 ⓒ이미진

△세월호 참사 2주기를 맞아 ‘약속콘서트‘가 열린 9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5천여 명의 시민들이 ‘기억하자 4.16, 투표하자 4.13’ 이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함성을 외치고 있다. ⓒ조승진

세월호 약속 콘서트

△"진실을 인양하자" 세월호에 아직 9명의 미수습자가 있다. 미수습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 보내고, 침몰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 세월호는 온전히 인양돼야 한다. ⓒ이미진

약속콘서트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열린 ‘약속콘서트’에서 한 참가자가 <노동자 연대> 신문을 들고 있다. ⓒ이미진

약속콘서트, 세월호 참사

△‘약속콘서트’가 열린 광화문 광장에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는 그림이 놓여 있다. ⓒ이미진

입력 2016-04-1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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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에서 커져가는추모와 진상규명 목소리

양효영 (노동자연대 이화여대 모임 활동가)

이화여대에서는 2월부터 학내 단체들이 ‘세월호 2주기를 준비하는 이화여대 네트워크’(이하 이화여대 네트워크)를 꾸렸다. 현재 총학생회, 동아리연합회, 노동자연대 이대모임, 사회변혁노동자당 이대분회, 이화여대 청춘의지성, 청년하다 이대지부가 함께하고 있다.

△ 4월 7일 학생들이 줄을 서 참가한 이화여대 서명운동 ⓒ양효영

이화여대 네트워크는 매주 목요일 정문 앞에서 세월호 참사 특별법 개정 서명운동을 벌였다. 서명운동을 통해 매주 학생들의 관심과 지지가 늘어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다. 가장 최근인 4월 7일 하교 시간 서명운동에서 학생들의 반응은 정말로 뜨거웠다. 이화여대 네트워크 학생들은 마이크를 들고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와 1·2차 세월호 청문회에서 드러난 의혹들을 폭로했다. 박근혜가 규제완화와 민영화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점도 지적하며, 세월호 진상규명은 안전사회 건설을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임을 힘주어 말했다.

많은 학생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서명을 하러 와 1시간도 안 돼 2백13명이 서명을 했다. 서명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였다. 서명한 학생이 친구를 데려오고, 한 학생은 수고한다며 음료수를 주고 갔고, 전국철거민연합 소속 노점상인이 수고한다며 간식을 주고 가기도 했다. 결국 준비했던 리플릿과 리본이 동이 나서 계획보다 일찍 마무리했다.

4월로 접어들면서 캠퍼스 내에서 학생들이 다시 세월호를 기억하려는 움직임들이 활발해지고 있다. 2월부터 대학 내에서 꾸준히 세월호 2주기 집회와 특별법 개정 요구를 알리던 노력이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기여했을 것이다. 학생들은 여전히 세월호를 잊지 않았고, 진상규명을 위해 작은 힘이라도 어떻게든 보태고 싶은 마음이 물씬 느껴지는 캠페인이었다. 

입력 2016-04-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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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년

진실과 정의를 위한 싸움을 이어가자

김지윤

2년 전, 3백4명의 생명이 하루 아침에 사라졌고, 고단해도 자식들과 단란한 삶을 꾸려가던 평범한 사람들은 교복 입은 학생들만 봐도 마음이 아리는 고통을 겪고 있다. 계절이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조금치도 사라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져야 할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참사 지우기에 여념이 없다. 2년 전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한 새누리당은 선거가 다가오자 “새누리당을 살려달라”며 읍소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과 유가족들을 모욕한 인사들과 세월호 화물 불량 고박업체의 대표를 공천해 유가족들의 공분을 불러일으켰다.

저들의 뻔뻔함과는 달리 진실 규명을 외치는 유가족들의 절박한 호소에 화답하려는 노력은 전국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2주기를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밀려드는 간담회 요청으로 유가족들과 4·16연대 상임운영위원들은 전국을 누비며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진실을 인양하라" ⓒ이미진

“세월호 세대”들의 움직임도 눈에 띈다. 희생 학생들과 동갑(1997년 생)인 신입생들의 마음가짐도 남다르다. 전국적으로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기 위한 대학모임들이 결성됐고 한신대, 인하대, 이화여대, 부산대 등 여러 대학에서 영화제와 간담회가 뜨거운 호응 속에 열리고 있다. 지난 3월 말 ‘세월호를 기억하는 고대인 모임’이 주최한 유가족 간담회에는 1백10여 명이 참가해 여전히 뜨거운 관심과 지지를 보여 줬다. 뿐만 아니라 전체학생대표자회의에서 “진실과 추모의 길을 함께 걷자”는 결의안을 채택하며 진실 규명 운동에 대한 굳건한 지지를 표명했다.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는 거리 서명운동과 추모 문화제도 전국 각지에서 꾸준히 열리고 있다. 최근 전교조는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교과서》를 발행했다. 전교조는 교육부의 징계 협박에 굴하지 않고 《416교과서》를 활용한 계기수업을 전국적으로 확대시키겠다고 맞서고 있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다시금 진실 규명을 요구하는 광범한 행동이 재개된 것이다.

박근혜의 진실 침몰 시도에 맞서고자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 주고, 운동 참가자들의 자신감을 키우려면 4월 16일 2주기 범국민 추모문화제에 많은 사람들이 대규모로 참가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전국 집중 범국민추모문화제는 세월호 참사의 책임자이자 진실 은폐의 주범인 박근혜 정부를 겨냥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이후 정부의 특조위 활동 종료 시도에 항의하며 특별법 개정과 특검 실시를 위한 투쟁이 분명한 정치적 방향을 갖고 전진할 수 있다.

 

4·16 이후에도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은 계속될 것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두 번의 청문회를 통해 일부 진상규명의 실마리를 제시했다. 특조위는 3월 28~29일 2차 청문회를 통해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진도연안 해상교통관제시스템(VTS) 센터의 교신기록이 편집·조작됐고 해양수산부의 선박자동식별시스템(AIS) 항적자료 상당 부분이 왜곡됐다는 의혹 등을 들춰냈다. 청해진해운이 세월호 운항 승인을 받으려고 해경에 현금 등 향응을 제공한 일이 폭로됐다. 해수부 세월호 인양단장은 인양업체 계약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청해진해운이 선내 대기를 지시했다는 새로운 증언도 확보됐다.

절단

문제는 조사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별법 상 특조위 활동 개시 요건이 모호하다는 점을 이용해 지난해 1월 1일이 특조위 활동 시작일이라 우기며 6월 30일로 종료시키려 한다. 이미 이 계획에 따라 예산과 인력 배치를 끝낸 상황이다.

△참사 2년이 되도 마르지 않는 눈물 ⓒ이미진

또한, 7월 이후에야 세월호가 완전히 인양될 것이라 예상되고 있으니 이대로라면 특조위가 세월호를 직접 조사할 수 없게 된다.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은 침몰 원인 조사와 미수습자 9명 수습을 위해 꼭 이뤄져야 하는데도 최근 해수부는 특조위에 일방적으로 세월호 절단을 통보했다.

2월 15일 특조위는 1차 청문회 결과를 바탕으로 해경 수뇌부에 대한 엄밀한 수사를 위한 특검 실시를 19대 국회에 요청했다. 새누리당은 2014년에는 유가족들에게 기소권과 수사권 대신 특검을 받으라고 강요해 놓고는, 막상 특검요청안이 제출되자 왜 특검이 필요한지 모르겠다며 수용 불가 입장을 내놨다.

더민주당은 법사위에 특검요청안을 첫 안건으로 올렸다가 새누리당이 반발하자 결국 선거법 개정안 논의 뒤로 미뤘고 이 와중에 산회되고 말았다. 더민주당은 2014년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여러 번 유가족의 요구를 묵살하고 뒤통수를 쳤는데 여전히 진실 규명에 진지하게 나서지도, 유가족들의 요구에 귀 기울이지도 않는다. 정부와 주류 정당들이 진상 규명을 외면하는 상황을 그냥 둘 수 없다며 유가족들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해 온 박주민 변호사가 더민주당에 입당해 총선 후보로 나섰지만 총선 이후 더민주당이 성역 없는 조사와 수사를 위해 움직일 것이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민주당은 새누리당에 견주면 부차적일지라도 노골적 친자본주의 정당이라 새누리당이 경제 위기를 앞세워 기업주 살리기 정책을 펴는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반대하지 않아 왔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두고도 더민주당은 비슷한 태도로 일관해 왔다. 따라서 4·16연대는 더민주당에 독립적 태도로 유가족과 함께 4~5월 진실 규명을 위한 특별법 개정 싸움을 이어가야 한다.

또한, 노동개악 저지와 자신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 시기에 집중해 벌어진다면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위기를 증폭시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도 한 발 더 전진할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입력 2016-04-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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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4 · 16연대 상임운영위원 재판 방청기

‘세월호 지우기’ 주범을 폭로하고, 진상규명 운동의 대의를 방어하다

오제하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세인 모임 매듭?노동자연대 연세대모임 활동가)

4월 26일 세월호참사국민대책회의(이하 국민대책회의) 공동운영위원장이자 4 · 16연대 상임운영위원인 최영준 동지의 재판이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렸다. 최영준 동지는 2015년 4, 5월에 열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집회에 참가했는데 검찰은 ‘일반교통방해’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은 ‘의료 민영화 반대’ 집회에 참가한 것도 문제 삼아 기소를 추가했다. 최영준 동지의 법정 투쟁을 응원하기 위해 대학생들을 비롯해 십여 명이 방청석을 채웠다.

최영준 동지는 최후진술을 통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의 대의를 방어하고, 진실을 감추려는 정부와 경찰, 검찰의 역겨운 위선을 폭로했다. 대학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을 건설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최영준 동지의 법정투쟁에서 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었다.

위선자들

최영준 동지는 지난해 ‘쓰레기’ 시행령 폐기 투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며 경찰의 불법 행위엔 눈감은 검사의 위선을 함께 꼬집었다.

“검사는 지난해 4~5월에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 왜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으로 모였고 밤을 새워 농성과 시위를 했는지 전혀 얘기하지 않습니다 … 경찰이 불법적으로 차벽을 세우고 교통 CCTV까지 불법 전용해 집회 참가자들을 감시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음에도 검사는 이런 행위를 처벌하려 하지 않습니다.”

최영준 동지는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가 패배한 것이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운동의 정당성을 입증하고, 감추려는 자들을 심판한 것이라는 말도 빼놓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운동은 이와 같은 참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체제의 문제점을 밝히 드러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고 … 안전과 구조의 대안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찾기 위함입니다.” 최영준 동지는 “(세월호) 생존학생들은 친구들을 구하지 못하고 탈출한 자신을 탓하며 괴로워한다”고 했다. 나는 대학에서 세월호 운동을 건설하면서 생존학생들을 몇 차례 만날 수 있었다. 언제건 찾아오는 끔찍한 기억과 고통 속에서, 아슬아슬하게 평범함을 유지해가는 듯한 모습이 느껴졌다. 내가 다니는 대학의 한 교수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이 “개념 없”었다며 매도했다. 진상을 밝혀 진정한 책임을 묻는 것은 생존 학생들에게 세월호 참사가 결코 그들의 책임이 아님을 확인시켜 줄 것이다.

최영준 동지는 검사의 기소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방해하는 “정치적 행위”이며,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범죄”라고 주장했다. 진정한 책임자들은 법정에 세우지 않고, 부실한 증거로 수사를 종결한 검찰은 참사의 진상을 밝히 드러내려는 사람들을 줄줄이 기소했다. 검사가 내민 “일반도로교통방해”에는 바로 이 점이 숨겨져 있다.

“의료 민영화는 제 2의 세월호”

검사는 무려 2년 전 의료 민영화 반대 기자회견에 참가한 것을 두고 최영준 동지를 집시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했다.

그러나 최영준 동지는 의료민영화를 “제2의 세월호”라 규정하며, “의료 공공성을 파괴하는 정부 정책에 반대한 기자회견”이 정당했음을 주장했다. 의료 민영화 반대를 위한 서명 운동을 하며 만난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병원에서도 돈 때문에 차별을 당해야 하나?”, “기업들이 우리를 환자로 볼까?” 등등. 이런 절절한 목소리들을 청와대에 전달하려 한 것이 해선 안 될 일인가? 검사의 기소는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과 의료민영화 반대 운동을 짓누를 대상으로 볼 뿐임을 확인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최영준 동지는 “올해도 이 싸움(세월호 진상규명)을 이어가는 게 정의”이며 “세월호 진상규명을 방해해 온 자들이 처벌받을 때까지 이 싸움을 멈춰서도 안 될 것”이라며 최후진술을 마쳤다. 진술이 끝나자 방청석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여러 방청자들이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검찰은 최영준 동지에게 징역 1년을 구형했다. 진실 규명을 위해 정의로운 행동에 동참한 것에 징역 1년이라니 기가 차는 일이다!

지배자들은 어떻게든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짓밟으려 하지만 여기에 맞서 싸운 최영준 동지는 무죄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과 책임을 규명해 참사의 책임자이자 감추려는 범인들을 심판대에 세우고, 생명보다 이윤을 중시하는 이 체제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파헤쳐야 한다. 따라서 진상규명 운동도 더욱 가열차게 전진해야 한다. 철저한 진상규명을 이뤄내 책임자들이 처벌받을 때, 이 운동이 완전히 정당하다는 것에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할 것이다. 

최영준 최후 진술문

"세월호 진상 규명 방해야말로 진정한 범죄입니다"

 

저는 지난 모두 진술에서 검사의 기소 내용을 인정할 수 없음을 밝혔습니다. 검사는 2015년 4~5월 유가족들과 함께 세월호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항의 행동을 한 행위를 문제 삼고 있습니다. 하지만 왜 수많은 사람들이 광화문광장에 모였고 밤을 새우며 농성과 시위를 했는지 전혀 얘기하지 않습니다.

유가족을 종북 세력, 자식 팔아 돈 챙기는 파렴치한, 세금 도둑으로 취급하며, ‘세월호는 이제 지겹다’ 등 막말을 했던 새누리당과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던 박근혜 정부가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쓰레기’ 시행령으로 특조위 활동을 무력화하려는 시도에 분노한 유가족과 노동자, 학생들이 항의 행동에 나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해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은 구호가 바로 ‘감추려는 자 범인’이었습니다. 판사님 현실은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집회에 참가한 사람들이 불법을 저지른 게 아니라 물대포와 최루액을 난사하고 집회 시작 전부터 경찰차벽으로 도로를 막은 경찰이 불법 집단이었습니다.

구조에는 그토록 무능한 정부와 경찰이 평화적인 집회를 방해하는 데는 유능했습니다. 무엇보다 검사는 시위대가 도로를 점령해 불법 행위가 벌어진 것처럼 주장했지만 이미 경찰이 불법적으로 차벽을 세웠고 교통 CCTV까지 불법 전용해 집회 참가자들을 감시했습니다. 이 모든 사실이 언론에 폭로됐음에도 검사는 이런 행위에 대해 처벌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는 저에 대한 검사의 기소 명목은 일반도로교통방해지만 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막고 저항의 목소리를 위축시키려는 정치적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검사의 비열한 정치적 행위를 인정할 수 없음을 거듭 밝힙니다.

한편, 이번 4 · 13총선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번 총선 결과는 새누리당의 패배이자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대였습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문화제에는 폭우 속에서도 수많은 시민들이 자리를 지켰고 안산과 광화문 분향소에 수만 명의 인파가 몰렸습니다. 이 자리에서 지난 2년 동안 진상규명을 방해해 온 세력이 이번 총선에서 패배한 것을 자축하고 모두가 진상규명을 위해 함께 싸울 것을 다짐했습니다. 한마디로 이번 총선 결과는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의 정당성이 입증된 것입니다.

저는 진상규명이 단지 죽은 이들의 원혼을 달래기 위함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참사가 나올 수밖에 없는 체제의 문제점을 밝히 드러내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대안을 모색하기 위함이자 이런 참사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안전과 구조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찾기 위함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국가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컨트롤타워가 있었는지 되묻습니다. 그래서 진상규명은 필요합니다. 그리고 진상규명에 따라 책임자가 처벌받아야 합니다.

저는 생존자 학생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생존자 학생들은 친구들을 구하지 못하고 탈출한 자신을 탓합니다. 그 학생들은 평생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것이라며 자신을 자책합니다. 그래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이 필요합니다. 생존 학생들의 책임이 아니라는 점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 그나마 치유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지난 2년 동안 정부와 여당이 이 과정을 철저히 외면하고 일부는 은폐와 훼방 놓기로 일관했다는 것입니다. 특조위가 한 두 차례 청문회를 보면 정말 가관이었습니다. 해수부가 작성한 특조위 조사 방해 문건은 해수부 장차관, 특조위 새누리당 추천 위원, 정부 파견 공무원들이 조사방해를 위해 어떻게 작전을 짜고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는지 여실히 드러냈습니다. 해경은 민간잠수사 죽음의 책임을 동료 잠수사에게 떠넘기려는 수작을 부렸고 위증을 위한 작전이나 짜고 있었으니 정말 분노스럽습니다.

2차 청문회에서는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이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고 VTS관제센터의 교신기록이 편집, 조작됐고 청해진해운이 세월호 운항 승인을 받으려고 해경에 현금 등 향응을 제공한 일이 폭로됐습니다.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진상규명에는 아직 접근을 못했습니다. 또 세월호 선체가 인양돼 이에 대한 정밀조사도 이뤄져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도 유가족들과 416연대, 그리고 수많은 시민들은 특조위 조사기간 보장과 특검 실시를 요구하며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진실이 이럴진대, 검사는 조사를 방해하고 불법을 저질러 온 자들을 기소하고 처벌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진실을 밝히려는 목소리, 유가족과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 이윤 체제가 낳은 참사의 고리를 끊고 안전사회를 위해 이 체제에 저항하는 사람들을 기소하고 처벌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검사의 무미건조한 도로교통방해 기소 명목에는 바로 이 점이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검사가 2014년 8월 19일 의료 민영화 반대 기자회견을 집시법 위반으로 추가 기소한 것에서도 이 점이 드러납니다. 우선 이날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개최한 것은 집회가 아니라 기자회견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는 의료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고 임상시험 규제 완화 등 의료 공공성을 파괴하는 의료 민영화 정책에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습니다. 의료 민영화는 제2의 세월호 입니다.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를 낳은 규제완화와 이윤지상주의가 의료민영화에 그대로 반영돼 있음을 이해하고 순식간에 2백만 명이 의료민영화 반대 서명에 동참했습니다. 이를 청와대에 전달하기 위해 기자회견을 마치고 민원실에 가려는 것을 경찰이 막았습니다. 도로도 아니고 인도로 갔음에도 말입니다. 검사가 제출한 범죄사실을 봐도 시위용품이라곤 기자회견 제목 배너와 서명 용지뿐입니다. 검사는 국민들이 서명한 용지를 한 장이라고 봤을까요? 단언컨대,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니 보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서명에 동참한 사람들은 “병원에서도 돈 때문에 차별을 당해야 하나”, “기업들이 우리를 환자로 볼까”, “부자들만 국민인가!” 등 분노의 목소리를 줄줄이 냈습니다. “어차피 국민의 소리는 듣지도 않겠지”하는 환멸 섞인 의견도 많았습니다. 이런 내용을 전달하려는 것이었고 이를 막고 방해한 것이 바로 경찰이었습니다.

판사님 지난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가 있었습니다. 슬픔에 잠겨 있는 유가족들, 자신의 친구를 잃고 생지옥 같았던 세월호에서 살아남은 생존 학생들, 그날의 참사를 지켜봤던 우리들 모두 2014년 4월 16일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의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철저한 진상규명입니다. 더는 어처구니 없는 참사로 애먼 생명이 희생되지 않는 사회, 이윤이 아니라 안전을 위한 사회로 가기 위한 첫 출발이 바로 세월호 진상규명입니다. 이를 방해하는 행위야 말로 진정한 범죄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년 동안 바로 정부와 새누리당이 세월호 참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방해해왔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니 저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당연하게도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이 싸움을 이어가는 게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또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방해해 온 자들이 처벌받을 때까지 이 싸움을 멈춰서도 안될 것입니다. 만약 이 법정이 진정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원한다면 저에게 무죄를 판결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입력 2016-04-2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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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인터뷰

“지난해보다 더 많은 분들이 지지해 주고 있습니다”

인터뷰 ㆍ 정리 박혜신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세월호 참사 2주기입니다. 주류 언론은 ‘세월호가 잊혀져 간다’고 하지만, 실제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유가족들은 2주기를 앞두고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저를 비롯해 우리 엄마, 아빠들은 매일 대학, 지역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특히 2주기를 앞두고 많은 대학에서 우리를 초청해 줘서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찾아 주는 곳들이 많아 오라는 곳도 다 못 가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첫 번째 돌아온 4월은 ‘평소와 똑같겠거니’, ‘잘 이겨내겠거니’ 생각했지만 사실 많이 힘들었습니다. 정부가 시행령을 발표해 시행령 폐기 싸움을 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정부는 1주기를 앞두고 일방적으로 배 · 보상 문제를 터뜨려 언론 플레이를 했습니다. 절망스러운 마음도 들었지만, 1주기 때도 많은 분들이 우리를 위로해 주고 힘을 줘서 견뎌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시 돌아온 4월을 한 번 경험하고 나니, 두 번째 돌아오는 4월은 겁이 났습니다. ‘시간은 흐르지만 그 흐르는 시간을 이겨낼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데 2주기를 앞두고 잊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고 있음을 보여 주는 분들이 두세 배는 늘어난 것 같습니다. 특히 대학생들은 한 열 배는 늘어난 것 같아요.

걱정을 많이 했는데 기우였고 올해는 행복하고 바쁜 4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많은 분들 덕분에 가족들이 4월을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4월 9일 <약속콘서트>가 끝난 뒤, '세월호를 기억하는 외대학생들' 학생들이 전날 강연 감사 선물을 전달했다. 학생들이 지지 메시지를 적은 종이 비행기를 받고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환히 웃고 있다. ⓒ사진 조승진

△유가족들은 밀려드는 강연 요청으로 눈 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한국외대 학생들과 유경근 집행위원장. ⓒ사진 조승진

정부는 ‘세월호 지우기’에 여념이 없지만, 얼마 전 2차 청문회가 마무리됐습니다. 1차 청문회에 이어 이번 청문회에서도 여러 사실들이 폭로됐는데, 어떻게 보셨는지요.

일종의 양심선언 성격의 증언들이 나오기 시작한 점이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는 데 증언이 핵심적이에요. 여태껏 나오지 않았는데, 2차 청문회 때 증언들이 나왔습니다. 우리가 계속 싸운다면, 이런 진실들이 조금씩 밝혀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청문회에서는 인양과 관련된 내용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정부가 인양을 매우 정치적으로 계산하며 시기와 방식을 조율하고 있음이 청문회에서 드러났습니다. 정부는 중국 상하이 샐비지를 선택해 공기부력 방식으로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했죠. 지난해 8월부터 작업이 시작됐어요. 이게 왜 문제냐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인양 방법은 이미 정부가 2014년 5월 23일에 공식 문서로 확정 지은 방식입니다. 세월호 참사 발생 40일만에 말이죠. 지금 하고 있는 방식 그대로 결정을 해놨었다는 겁니다. 2014년 11월 초에 수중 수색을 중단할 때도 ‘수중 수색 중단에 동의해 주면 즉시 인양하겠다’고 해양수산부(이하 해수부) 장관이 약속했는데, 그로부터 5개월 뒤에 인양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5개월 동안, 해수부가 직접 만든 태스크포스는 공기 부력 방식은 매우 위험하고 불안정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현재 진행하는 방식은 공기부력 방식이죠. 결국 2014년 5월에 이미 정부가 제출한 안대로 추진된 건데, 계속 시간만 끌면서 정치적으로 판단한 것이죠.

청문회를 통해 또 하나 밝혀졌습니다. 정부는 특조위 활동이 끝나고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는 겁니다. 특조위로 하여금 선체 조사를 못하게 하겠다는 거죠. 미수습자를 온전히 수습하고, 선체를 온전히 인양해 정밀 조사를 해야 합니다. 그래야 참사의 진상을 확실히 규명할 수 있습니다. 특조위가 정밀 조사를 해야 하고, 유가족들도 그 과정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정부는 선체 조사 계획은 아무것도 세워놓지 않고 오히려 인양 후 선체를 절단해서 처분할 계획만 세웠다고요. 선체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유가족들의 참여 없이 결정하는 것은 용납할 수 없습니다.

물론 청문회에서 밝혀진 것들에 대한 책임 소재가 명확해져 정식 수사 대상이 되고, 기소되면 좋겠지만 지금 당장 그것을 기대하긴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러나 정부의 방해라는 제한적인 조건에서도 할 수 있는 부분들을 해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 연세대 이과대학 부학장과 은평구갑 후보의 ‘세월호 점령군’ 망언 등 유가족과 세월호 운동을 폄훼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그 사람들은 자기 나름의 확신에서 그랬을 수도 있고, 매우 정치적으로 판단해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우린 그런 사람들은 신경 안 쓰입니다. 법적 처벌이 필요하다면 고소하면 됩니다. 그러지 않는 경우는 무시하면 됩니다.

다행스러운 것은 그런 사람들보다 유가족과 세월호 운동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고 힘 주는 시간도 부족합니다. 주류 언론이 만들어내는 여론은 여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직접 목도하는 현실의 지지와 분위기를 봅시다.

세월호 2주기 이후 앞으로 가족들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가장 중요한 것은 끈질기게 싸우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앞으로도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는 상수입니다. 그것 때문에 힘 빠질 필요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이미 정부의 진실 은폐를 예상하고 제대로 된 특별법과 특조위를 요구해 왔고 그런 점이 입증되고 있습니다.

추가 수사를 해서 기소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그것을 강제할 수 있는 것은 특검입니다. 자신들 입으로 특검을 말해 놓고 특검은 안된다고 하는 상황이지만, 아직 19대 국회가 끝나지 않았고 20대 국회는 곧 시작합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특별법을 개정하고, 특검을 실시해야 합니다. 이게 현실화되려면, 끊임 없이 요구하고 싸우는 게 중요합니다.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고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가요?

‘앞으로 10년, 20년, 30년 어떻게 싸우지?’ 이렇게 생각하면 까마득합니다. 생각을 조금만 바꾸면 10년, 20년, 30년을 싸우는 게 아니라 1분만 더 싸우면 됩니다. 저들이 버티는 것보다 1분만 더 버티면 됩니다. 1분만 더 버티면 밝힐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을 바꾸면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싸움도 긍정적으로 해나갈 수 있습니다.

또한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은 다른 투쟁들과 사회적 연대 속에 자리매김해야 더욱 전진할 수 있습니다. 별개의 사안이 아닙니다. 사건들 자체는 별개의 사건일 수 있지만, 그런 사건들이 왜 일어났을까요? 세월호 참사를 빚어낸 모순과 부조리와 연관이 있습니다. 그 사건에서 피해를 본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습니다. 한결같이 정부의 정치적 의도와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운동을 통해 이루려는 목적은 모든 사람들의 생명, 인권이 존중받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단 한 명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고 책임질 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일맥상통합니다. 같이 싸워야 합니다. 방법은 다양할 수 있지만, 그런 정신과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진실이 드러나는 그 순간까지 진실을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우리가 돼야 합니다. 진실이 드러나는 순간에 모두가 증인이 돼야 합니다. 그러려면 서로 다양한 의견, 생각을 공유하며 행동해 나가야 합니다. 이렇게 끈질기게 싸워나갑시다.

입력 2016-04-1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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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문화제

거센 비바람에도 진실 규명 염원이 광화문으로 모이다

김지윤

세찬 폭우도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향한 염원이 모여드는 것을 막지 못했다. 참사 1백 일에도, 1주기에 이어 세월호 참사 2주기에도 어김없이 비가 쏟아졌다. 그러나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1만 2천 명은 한 마음으로 “기억하자! 행동하자!”를 외쳤고, 문화제가 시작된 이후에도 노란 리본을 달고 문화제에 참가하려고 모여드는 인파로 주변 지하철역이 북적댔다. 정부의 집요한 공격과 주류 언론들의 무시 속에서도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염원한다는 것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특히, 진실 은폐 주범 새누리당과 박근혜가 총선에서 패배한 분위기를 반영하듯이 참가자들의 구호와 무대에 오른 연설자들의 주장에는 힘이 넘쳤다.

이날 하루 동안에만 1만여 명이 분향소를 방문해 추모문화제가 끝날 때까지 분향을 위한 줄이 끝을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안산 합동분향소에도 1만여 명이 다녀갔고, 전국 1백여 곳에서 추모행사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 2년 추모문화제

△"진실을 인양하라!" 바닥에 빗물이 흥건해도 추모문화제 참가자들은 2시간 동안 자리를 지켰다. 지난 2년 동안 정부의 집요한 공격에도 진실과 정의를 향한 굳건하고 뜨거운 지지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 문화제’에 참가한 사람들이 손 팻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조승진

유가족들은 이날 낮에 안산에서 열린 추모문화제와 걷기대회에 참가한 뒤, 추모문화제에 자리했다. 추모문화제 전 전국대학생대회를 열고 도심행진을 하며 문화제에 참가한 대학생들을 비롯해 학생 청소년 청년들의 참가가 두드러졌다. 노동조합 깃발 아래 모인 조직노동자들과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은 물론이고 삼삼오오 지인들과 참가한 시민들도 많았다.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진실을 원하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임을 확인하지 않았는가?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실을 밝히겠다” 하고 말해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세월호의 진실을 밝히는 데 함께하겠다고 약속했던 분들이 그동안 많았다. 저 뒤쪽[청와대]에 있는 분도 예전에 약속은 했었다. 약속을 지키는지 아닌지 우리가 확인해야 한다”며 총선 이후에도 투쟁이 이어져야 한다고 호소했다. 또한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 강제 종료하려 하고 세월호 인양 후 분해하려 한다고 폭로하며 유가족과 특조위가 조사위원으로 참가해 세월호를 정밀조사하고, 드러난 의혹들에 대한 수사를 위해 특별검사제을 실시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태호 4 · 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이번 총선에서 진실이 승리했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와 피해자들을 오만하게 모독했던 자들이 심판당했다”며 이번 총선 결과를 설명했다. 또 당선자 중 1백20명이 세월호 4대 과제 약속에 동의했다고 소개하면서도 6월 특조위 강제종료시도에 맞서 우리가 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자가 연단에 오르자 참가자들이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도 했다. 박주민 당선자는 “세월호 참사는 사람의 생명이나 안전보다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문화, 국민이 위험에 빠졌을 때 제대로 작동하지 않은 국가, ‘기레기’라 불리는 쓰레기 같은 언론, 진실보다 권력자들의 눈치를 보는 수사기관 등 적폐와 병폐가 압축적으로 드러난 참사이다. 이런 문제가 계속된다면 세월호 참사는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보편적인 일이다. 세월호는 세월호 가족만의 일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일”이라고 힘주어 주장했다. 또한 “세월호 참사 정책 과제에 동의한 당선자들의 힘만으로는 안 될 것”이라며 “여러분의 강력한 힘이 다시 한 번 필요하다”고 참가자들에게 진실 규명을 위해 앞으로도 함께 힘을 모으자고 호소했다.

세월호 참사 2년 추모문화제

△"참사의 진실이 드러나는 날 증인으로 함께 해달라"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 문화제’에서 예은 아빠 유경근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조승진

세월호 참사 2년 추모문화제

△20대 국회의원으로 당선한 유가족들의 법률대리인 박주민 당선자가 "아직 진상 규명이 되지 않았다. 특별법을 개정하고 특검을 실시해야 한다"며 "여러분의 힘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조승진

지난해 구속되기도 했던 박래군 4 · 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우리는 지금 416운동을 펼치고 있다.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가자. 세상은 변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변했다. 세월호 운동의 주체는 우리 모두”라며 함께 싸우자고 호소했다.

남지현 학생의 언니 남서현 씨가 무대에 올라 헌법을 낭독하며 추모문화제는 마무리됐다.이날 문화제에는 유로기아와 친구들, 이소선 합창단, 우리나라의 노래 공연이 펼쳐졌고, 송경동 시인의 시낭송도 이어져 2년 전 무고하게 세상을 떠난 3백 4명의 넋을 위로했다. 4 · 16인권선언도 발표됐다. 한편,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노조탄압에 항의하는 노동자들이 한광호 열사의 영정 사진을 안고 추모문화제에 참가하기도 했다.

연신 내린 비로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옷과 신발이 흠뻑 젖었지만 아랑곳 않고 힘차게 “특조위 강제 종료 협박말라”, “미수습자를 가족품으로” 구호를 외쳤다.

이날 추모문화제의 제목은 “내일도 4월 16일입니다”였다. 진실 규명이 되려면 4월 16일 하루가 아니라 앞으로 계속해서 4월 16일처럼 기억하고 행동해야 한다는 뜻을 담은 것이다. 416연대는 2주기 추모문화제 이후에도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에 맞서며 특검 추진과, 세월호 인양 후 유가족과 특조위가 조사위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2년 추모문화제

△2년이 지나도 마르지 않는 눈물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 문화제’에 참가한 한 시민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승진

세월호 참사 2년 추모문화제

△"우리 아들 잘 있니?"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약속·행동 문화제’에 참가한 단원고 희생 학생 고 오영석 군의 어머니 권미화 씨가 하늘을 보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조승진

세월호 참사 2년 추모문화제

△진실을 포기할 수 없다 세월호는 왜 침몰했는지, 왜 3백4명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의혹은 산적해 있고 정부의 진실 은폐 시도는 멈추지 않고 있다. 이날 문화제에서는 4월 16일 이후에도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이 계속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이 거듭 강조됐다. ⓒ조승진

잊지않겠습니다. 잊지않았습니다 16일 오전 안산합동분향소를 찾은 단원고 학생들과 시민들이 분향과 헌화를 하고 있다. 이날 안산에만 1만여 명의 시민들이 분향소를 찾았다. ⓒ이미진 

세월호 참사 2주기인 16일 오전 경기도 안산 단원구 세월호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참사 2년 기억식에 참가한 4천여 명의 시민들이 단원고를 향해 행진을 하고 있다. ⓒ이미진

입력 2016-04-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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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하대에서 교수 학생 공동으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가 열리다?

오선희

4월 14일 낮에 인하대학교에서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우리 시대를 생각하는 인하대 교수 모임’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 공동 주최로 진행됐다.

△인하대 세월호 참사 희생자 추모 행사에서는 교수·학생 공동 결의문을 발표했다. ⓒ사진 제공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 고혁준

몇몇 대학의 교수들이 “세월호 사고 때 개념이 있는 학생들이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을 따르지 않고 탈출했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사람들을 화나게 한 것과 대조적이다. 인하대 교수님들은 지난해 1주기를 앞두고도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강력히 촉구한다’는 제목의 성명을 발표하고, 1주기 추모행사를 열었다. 올해는 1주기 이후 만들어진 인하대 학생들의 모임인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과 공동으로 결의문을 발표했다.

추모 행사는 교수님과 학생의 추모사, 시 창작 학회의 추모 시 낭송, 대학원생의 추모 글 낭독, 노래패 동아리의 노래 '이름을 불러 주세요',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의 율동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등의 순으로 진행됐다.

50여 명이 참가했고 옆에 차려진 부스에서 특별법 개정 서명과 ‘세월호 진실찾기 대학생 선언 지명광고인 모집’에 참여하는 분들도 있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은 16일 전국 대학생 대회와 범국민 추모대회에 참가할 예정이다. 4 · 16 이후에도 학내에서 교수님들과 협력해서 세월호를 함께 기억하고 진실을 밝히기 위한 활동들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에 즈음한 인하대 교수 학생 공동 결의문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만 2년이 되었다. 잊지 않겠다는,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도록 하겠다는 그 많던 약속과 맹세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진실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홉 명의 실종자와 함께 여전히 깊고 검은 바다 속에 잠겨 있다. 온갖 거짓과 변명, 은폐와 조작, 강요된 침묵과 망각만이 통한의 바다 위를 떠돌고 있을 뿐이다.

한 조각의 원인도 밝히지 못하고 꼬리자르기로 끝난 재판, 하나마나 시간만 보낸 국정조사, 수사권도 못 갖춘 채 만신창이 상태로 출범했으나 온갖 방해공작으로 선체 인양 이전에 활동 시한이 종료될 운명에 처한 특별조사위원회, 그리고 희생자 가족들에 대한 말할 수 없는 모욕과 명예훼손, 이제는 잊을 권리도 있다는 당당한 비겁에 이르기까지... 언필칭 민주사회라 일컫는 이 땅에서 진실을 밝혀야 한다는 가장 기본적인 요구가 이처럼 광기어린 방식으로, 또 이처럼 조직적으로 묵살될 수가 있다는 것 자체가 세월호 참사는 단순히 해상교통사고가 아닌 대한민국 현대사가 낳은 또 하나의 중대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반증하고 있다.

온갖 억설과 허위가 진리와 진실을 참칭하고 있는 이 어지러운 세상에서 대학이 이처럼 중대한 동시대의 사건에 침묵하는 것은 진리 탐구의 마지막 보루로서의 자기 존재의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생각하는 인하대 교수 모임’과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에 속한 교수들과 학생들은 이 같은 대학의 사명을 새삼 가슴에 새기면서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이틀 앞둔 오늘, 진실을 갈구하는 희생자 가족들과 아직도 그날을 잊지 않고 있는, 아니 잊지 못하고 있는 양심적인 시민들에게 뜨거운 연대의 마음을 보내면서 다음과 같이 우리의 뜻을 밝히고자 한다.

1.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 진실 규명이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사회로 거듭날 수 있는지 여부를 가리는 결정적인 기준이 되는 사안이라고 생각한다.

2.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특별조사위원회의 성역 없는 자율적 조사활동과 조사기한의 충분한 보장이 진실 규명을 위한 필수적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3.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끝없이 돌이켜보는 일이 우리 자신을 성찰하고 한국현대사에서 반복되어 온 ‘국가가 국민을 버리는 행위’를 종식시키는 가장 강력한 항체가 될 것이라 믿는다.

4. 따라서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단순 사고로 왜곡하고 망각을 강요하거나 반대로 이를 기회주의적인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는 어떠한 시도에도 단호히 반대하며 이를 국가와 사회의 총체적 갱신의 지렛대로 삼는 전사회적 운동으로 발전시킬 것을 제안한다.

5. 우리는 이를 위해 학문공동체인 대학사회에서부터 단순한 기억과 추모를 넘어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고 전사회적으로 공유될 수 있을 때까지 그 진정한 교훈을 묻고 대답하는 이론적 탐구와 실천적 행동들을 조직하고 지속시킬 것을 다짐한다.

2016년 4월 14일

우리시대를 생각하는 인하대 교수 모임 /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

입력 2016-04-1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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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 대학생 대회

대학생 1천여 명이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에 맞서 진실 규명을 외치다

오선희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 ,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4월 16일 오후 3시에 ‘특별법 개정! 진상조사 방해하는 박근혜 정부 규탄! 4 · 16 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 대학생 대회 “외쳐봐! 우리가 더!”’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에서 열렸다. 4 · 16 연대와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 공동 주최로 열린 이날 대회에는 전국에서 모인 대학생 1천여 명이 참가했다. 총학생회와 학생회들이 대거 참가했고, 여러 대학생 정치 단체들도 참가했다. 주최측이 예상한 인원보다 훨씬 많이 참가해서, 미리 준비한 손팻말과 우비가 모자라기도 했다.

올해 대학에 입학한 16학번 학생들이 가장 먼저 무대에 올랐다. 단원고 희생 학생들과 동갑인 이학생들은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에 맞서 기억하고 행동할 것을 다짐했다.

이들 중에는 단원고 희생 학생의 친구도 있었다. 고(故) 이영만 학생의 친구인 한 학생은 이렇게 말했다. “제 친구는 하늘의 별이 됐습니다. 더는 가만히 있지 않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어떤 이는 ‘이제 그만하자’고 하지만 우리는 이제 시작입니다. ‘시간이 흘러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하지만 우리는 다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후 연설자로 무대에 오른 단원고 고(故) 박성빈 학생의 언니인 박가을 씨는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사고 당시 저는 다른 청년들과 마찬가지로 정부가 구해주고 있다는 언론의 보도를 믿었습니다. 바보 같았던 스스로가 부끄럽고 동생에게 미안합니다. 이제는 더는 동생에게 미안해하기만 하지 않으려고 이 자리에 섰습니다. 더는 아파만 할 수 없습니다. 잘못된 것을 고치기 위해 행동으로 보여줍시다. 더 많은 청년들이 지겹고 힘든 일이라고 회피하지 않도록, 아이들 덕분에 안전하고 건강한 나라가 되었다는 인식이 심어지도록, 계속해서 알려주세요. 끝까지 함께해 주세요”

박가을 씨의 발언에 많은 학생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세월호 참사 이전과 이후가 같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대회

△"더는 아파만 할 수 없습니다. 행동으로 보여 줍시다." 희생자 가족인 단원고 2학년1반 고(故) 박성빈양의 언니 박가을씨가 대회에 참가해 “지난 2년 동안 가장 힘들었던 점은 동생에게 미안해 행복해선 안 되고 즐거운 일을 해선 안 된다고 스스로 말한 것이었다”며 대학생들이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끝까지 함께해달라고 호소했다. ⓒ조승진

연단에 선 대학생들은 진실 규명과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해 정부의 진실 은폐 시도를 중단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세인 모임’에서 활동하는 심산하 씨는 세월호 참사 특별법이 개정돼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특별법에 의거해 특별조사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유가족들은 반쪽 짜리도 안 된다고 울분을 토합니다. 수사권과 기소권도 보장되지 않았고, 좁은 업무 권한과 부족한 조사 기간의 문제도 있습니다. 정부는 조직적으로 활동을 방해하고 있습니다. 2차 청문회를 통해 새로운 사실들이 드러났지만, 아직도 밝혀야 할 것이 많습니다. 진실규명을 위해 3차 청문회와 특검, 특별법 개정이 필요합니다.”

양효영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는 진실 은폐 주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민영화와 규제완화, 노동개악을 여전히 밀어붙이며 “생명과 안전보다 이윤이 우선되는 사회를 만들고, 우리 모두를 세월호에 태우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우리에겐 투쟁해야 할 과제가 있음을 힘주어 말했다. “총선에서 박근혜 정부는 완전히 심판 받았습니다. 유가족의 변호사였던 박주민 변호사는 ‘세월호 점령군’이라는 비난 속에서도 당선했습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밝히겠다는 진보 좌파 정당과 후보들이 당선했습니다. 정부는 선거 이후에도 세월호 지우기 지속하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다수당이 된 민주당은 2014년 특별법 제정 때 뒤통수를 친 일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국회 밖에서 독립적이고 강력한 투쟁이 계속 돼야 합니다. 세월호 지우기를 막아내고 이윤보다 안전이 우선인 사회를 함께 만듭시다.”

박세훈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장의 발언이 이어졌다.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사회에서는 세월호같은 끔찍한 참사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순수한 추모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임을 인정하고 함께 해결하기 위해서 함께 나서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를 지우려는 자들을 똑똑히 기억해야 합니다. 문제가 해결되기 위해서는 슬퍼만 해서는 안 됩니다. 유가족들이 더는 억울하지 않을 때까지 옆에 서는 것이 진정한 추모이고 해결 방법입니다. 이윤보다 생명과 안전이 우선인 사회, 국가의 거짓말로부터 국민이 당하지 않는 사회를 위해 끝까지 행동합시다. 사람이 먼저인 사회를 위해 함께 연대합시다. 진실규명을 위해 대학생이 앞장섭시다.”

 대회를 마친 대학생들은 추모문화제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으로 행진했다. “진실을 인양하라!”, “진실 은폐 중단하라!” 등 구호를 외치며 궂은 날씨에도 활기차게 행진하는 대학생들을 향해 시민들의 박수가 쏟아지기도 했다. ‘세월호 세대’라고도 불리는 대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의 중요한 동력이자, 진실 규명 운동에 대한 광범한 연대를 구축하는 데 핵심적 구실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 집회였다.

‘4 · 16 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로 모인 전국 70여개 학생회, 동아리, 소모임, 정당, 단체 등은 2주기 대회 이후에도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위해 함께 행동할 예정이다.

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대회

△누가 잊었다 하는가?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 대학생 대회’를 마친 대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2년 기억. 약속. 행동 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광장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조승진

세월호 2주기 대학생대회 행진

△진실과 정의를 위해 싸우자 ‘4.16 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 대학생 대회’를 마친 대학생들이 ‘세월호 참사 2년 기억. 약속. 행동 문화제’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광장까지 행진을 하고 있다. ⓒ조승진

세월호 2주기 대학생대회 행진

△전국 대학생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은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는데도 1시간 30분 동안 꿋꿋하게 행진을 이어갔다. 이 모습을 본 시민들이 뜨거운 박수로 격려하기도 했다. ⓒ조승진

입력 2016-04-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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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의 선거 패배를 세월호 운동 건설의 기회로

김지윤

이번 20대 총선 결과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누적된 불만이 광범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줬다. 세월호 참사 진실 은폐 세력이 패배한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성역 없는 조사와 책임자 처벌을 위한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었고, 반쪽짜리 특별법으로 탄생한 특조위조차 꼴을 못 보고 그 숨통을 조이려고 쓰레기 시행령을 밀어붙였다. 급기야 오는 6월 30일에 강제로 조기 종료시키려 한다. 정부가 7월에 세월호를 인양하겠다는 것도 사실상 특조위가 조사를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미수습자 9명의 가족들은 하루하루가 피 말리는 시간을 보내는데 아랑곳하지 않는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세월호 화물 부실 고박 업체 대표와 “시체장사” 운운한 자를 공천했다.

“기억하라! 행동하라!” 2015년 세월호 참사 1주기 집회. ⓒ사진 이윤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당선자 선거운동에 발벗고 나섰다. 인형탈을 쓰는 것도 마다 않고 투표를 독려하고 있는 유가족들의 모습. ⓒ사진 출처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페이스북

이번 총선 결과는 이런 불의를 향한 분노가 반영된 것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법률대리인으로 활동해 온 박주민 변호사의 당선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운동에 대한 지지를 확인시켜 줬다. 말없이 선거 운동에 함께 한 유가족들은 박 변호사의 당선을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 유가족과 진실 규명 염원을 올곧게 대변하려면, 박주민 당선자는 장차 더민주당 내부의 압력에도 맞서야 할 것이다. 그래야 국회 바깥 운동의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에 함께해 온 진보·좌파 후보들이 여럿 당선되고 선전한 것은 고무적이다.

박근혜 정부는 총선 패배에서 후유증을 조금이라도 빨리 벗어나려고 안간힘을 쓸 것이다. 따라서 총선 직후 열리는 세월호 참사 2주기 전국집중추모문화제가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를 모아 내는 구실을 해야 한다. 이는 다음 대중 행동을 고무할 수 있을 것이다.

기억을 행동으로

특히 특조위 조기 종료는 명백한 세월호 지우기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6월 특조위 강제 조기종료 시도에 반대하는 힘을 더 키워야 한다. 특조위는 정부의 강제 종료 시도에 굴하지 말고 3차 청문회를 열어 국정원을 포함해 참사에 책임이 있는 국가기관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해야 한다. 특조위의 조사 기간을 충분히 보장하고,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위해 특검을 실시하라는 유가족들과 4·16연대의 요구는 완전히 옳다.

국민의당이 임시 국회를 지금 열어 특별법 개정과 경제 관련 ‘민생 법안’을 처리하자고 제안했다. ‘민생 법안’에는 ‘노동개혁’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도 포함되므로, 의뭉한 제안이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위한 원포인트 임시 국회 개원이 필요하다.

그런데 새누리당의 반대와 지난 2년 동안 유가족들의 요구를 굴절시키거나 외면해 온 더민주당 등을 고려할 때,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에 기댈 수 없다. 특별법 개정과 특검 등을 이루려면 자본주의 야당으로부터 독립된, 강력한 운동을 건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층의 분위기는 여전히 뜨겁다. 4월 9일 약속콘서트에 5천 명가량이 모였고, 대학에서 열리는 유가족 간담회마다 수십~1백 명의 학생들이 참가해 뜨거운 관심을 보여 주고 있다. 대학생 단체들과 학생회들로 이뤄진 세월호 참사 2주기 대학생 준비위원회는 범국민 추모문화제 전에 전국대학생대회를 열고 도심행진을 벌일 계획이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과 형제자매들의 증언을 기록한 《다시 봄이 올 거예요》는 출간 즉시 알라딘 에세이 부문 주간 5위에 올라갔다. 3월 중순 출간된 《세월호, 그날의 기록》은 교보문고 정치사회 분야 월간 종합 5위를 기록했다. ‘지겹다, 잊었다’는 우파들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4·16연대는 4월 16일 2주기 추모문화제를 계기로 6월 말까지 특조위 활동 강제 종료에 맞서 투쟁을 이어갈 예정이다. 그래야 7월 이후 세월호가 인양되더라도 유가족이 참가하는 정밀 조사가 이뤄질 수 있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지속적 지지를 보내 온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투쟁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과 맞물린다면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다. 좌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기억과 추모, 분노의 분위기가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입력 2016-04-1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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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교사들의 세월호 공개수업

“선생님들의 용기가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는 길”

박성환

교육부의 세월호 계기수업 금지 조처와 징계 협박에도, 전교조 교사들의 용기 있는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문제 삼은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 교과서》 주문도 쇄도하면서 벌써 1만 부가량 인쇄했다고 한다.

지난 4월 12일, 경기도 ㅅ 초등학교의 서지애 교사도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고 진실규명을 촉구하는 공개수업을 진행했다.

△세월호 공개 수업에 참여 중인 서지애 교사의 반 학생들 ⓒ제공 <교육희망>

서 교사가 담임을 맡고 있는 6학년 3반 교실은 이미 4월 초부터 진행한 ‘세월호 기억하기’ 행동으로 노란 리본과 아이들이 직접 쓰고 만든 작품들이 가득하다. 지난주 ‘창의적 체험활동’ 시간에 아이들이 직접 만들었다는 나무 모양의 ‘사랑과 보살핌의 손’에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글도 적혀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분들께!

“힘내십시오. 정부는 언젠가 누군가에 의해 진실이 밝혀지고 그것을 반성하게 될 것입니다.”

서 교사는 5교시 국어수업에 22명의 아이들이 함께하는 ‘천개의 바람이 되어’ 리코더 합주로 세월호 공개수업을 시작했다. 서 교사는 《416 교과서》를 기초로 아이들과 세월호의 아픔을 공감하고 진실규명의 필요성에 대해 얘기를 나눴다.

귀를 쫑긋 세우고 서 교사의 설명을 들은 아이들은 “세월호 희생자들의 슬픔을 공감하고 유가족들에게 힘을 주고 싶어요. 진실을 밝히는 것에 당연히 앞장서야 할 정부가 왜 진실을 감추려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특히 선장이 참사의 범인이라고 생각했는데, 더 큰 범인은 따로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모든 일을 볼 때 정부는 ‘생명이 돈보다 중요하다’는 걸 모르는 거 같아요” 하고 말하며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겠다고 했다.

여섯 모둠으로 나뉜 아이들은 며칠 전에 배운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노래에 맞춰 율동을 배우고, 직접 작사한 2절을 발표했다. 아이들의 눈에도 세월호 참사는 분명했다.

“우리는 진실을 밝힐 것이다 / 희망을 놓지 않을 것이다 / 생명은 돈보다 중요하다 /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아이들이 작사한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2절 가사)

서지애 교사에게 세월호 계기수업을 한 이유에 대해 물었다.

“세월호 참사는 언제든 우리 아이들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사건입니다. 정부가 아무리 엄포를 놓더라도 아이들을 위해 꼭 해야만 하는 수업입니다. 진정한 교육은 삶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는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밝혀지지 않는 한, 결코 대한민국은 안전하지 못합니다. 진실이 명백히 밝혀질 때까지 세월호 참사의 아픔을 공감하고 기억하는 것은 필요하며, 이것은 초등학생들도 꼭 알아야 하는 교육이자 활동입니다.”

△계기수업은 학생들에게 참사 유가족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기회를 마련했다. 계기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이 만든 그림 ⓒ제공 서지애 교사

징계 협박

서 교사는 정부의 계기수업 징계 협박도 날카롭게 비판했다.

△세월호 계기수업을 하고 있는 서지애 교사의 모습 ⓒ제공 <교육희망>

“정부는 최근 교육청을 압박해 세월호 계기수업을 한 학교와 교사들을 색출하고 있어요. 그러나 교육 과정을 재구성하고, 학생과 함께 만들어 가는 교육 활동을 하는 것은 교사의 재량권입니다. 최근 독도 교육 계기수업을 하라는 교육부 공문이 내려 왔는데, 정말 가관입니다. 교장의 결재와 교육과정위원회나 학교운영위원회 결재를 받으란 말도 없고, 무조건 시행해 실적을 올리라고 합니다. 정부의 이중성은 정말 혀를 내두를 정도예요. 그러나 진실을 숨기려 할수록, 진실을 찾고 기억하는 사람들은 늘어날 겁니다. 교사들의 세월호 계기수업이 들불처럼 번져, 정부의 정치적 약점을 흔들 것입니다.”

서 교사의 공개수업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 날, 경기교육청에서 조사관이 나왔다.

“교육청에서 조사 나왔는데, 《416 교과서》와의 연관성, 계기수업을 어떤 절차로 했는지 묻더군요. 그래서 저는 ‘교육과정 재구성은 교사의 재량권입니다. 더구나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세월호 계기수업을 자율적으로 하라고 했는데, 뭐 하러 여기까지 조사하러 나오셨나요? 세월호 참사 이후에 교육이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더 많은 고민을 하셔야 하는 분들이 정부의 압박에 굴복해 이렇게 조사 나오고 계기수업을 탄압하는 것은 정말 앞뒤가 안 맞는 일입니다’ 하고 응대했습니다.”

서 교사는 세월호 계기수업을 준비하는 교사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말도 잊지 않았다.

“수업은 교사들의 권한이자, 아이들의 권리입니다. 정부의 압박에도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를 생각한다면 세월호 계기수업이 꼭 필요합니다. 전교조는 정부의 탄압에 맞서 조직적으로 세월호 계기수업 확대를 호소하고 있습니다. 정부의 탄압에 가장 효과적으로 맞서는 것은 세월호 계기수업이 전국적으로 확대되는 것입니다. 선생님들의 용기가 또 다른 세월호 참사를 막는 길입니다.”

입력 2016-04-1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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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년 만에 진실이 밝혀진 영국 힐즈버러 참사

경찰이 무고한 축구팬들을 죽게 만들었다

김종환

영국 힐즈버러 참사는 1989년 4월 축구 경기장에서 96명이 압사당한 사건으로 영국판 ‘세월호 참사’라 불린다. 축구장이 붕괴한 것도, 총기 난사가 벌어진 것도 아닌데 96명이나 사망한 것은 순전히 경찰이 관중을 한 곳으로 무리하게 입장시켜서 생긴 일이었다. 희생자 중 60명은 25세 이하였고 그중 37명은 청소년이었다.

최근 영국 법원은 힐즈버러 참사의 원인이 술 취한 관중 탓이 아니라 당일 현장을 지휘한 경찰에 있다고 판결했다. 유가족들이 27년 동안 줄기차게 주장해 온 진실이 마침내 인정받았다.

진실과 정의의 주역들 4월 26일 법원 앞에서 유가족들이 진실을 인정한 판결을 환영하며 환호하고 있다. 온갖 모욕과 고통 속에서도 투지를 꺾지 않아 온 유가족들은 책임자 처벌을 위한 투쟁을 이어갈 것이라 말한다.  ⓒJoe Giddens/PA

영국판 ‘가만히 있으라’

참사 당일, 힐즈버러 축구 경기장에서는 FA컵 준결승전이 예정돼 있었다. 관중석의 해당 구역이 이미 포화 상태였는데도 경찰은 계속 관중들을 그 구역으로 몰아넣었다. 당시 영국 축구 경기장의 관중석은 하층부가 입석이었고, 축구장 내 난동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내부 이동이 어렵도록 설계됐었기 때문에 관중들은 경찰이 허용하는 곳으로만 들어갈 수 있었다. 또한 출입구의 폭은 고작 77 센티미터였고, 어두워서 앞쪽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현장을 지휘한 경관은 경기 전에 사람들을 최대한 입장시키려고 회전문까지 개방하는 통에 입장 줄이 밀리는데도 계속 우겨 넣었다.(그러나 참사 직후 경찰은 관중들이 억지로 문을 열어젖혔다고 거짓말했다.) 안쪽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압사 직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라운드 쪽 관중들은 뒤에서 밀려드는 관중 때문에, 그라운드와 관중석을 구분하는 철망에 눌려 질식사했다.

심지어 경찰은 압사 공포를 느낀 관중들이 철망을 오르거나 다른 구역으로 벗어나려 하자 이를 제지하며 도로 아수라장으로 밀어 넣었다. 그야말로 영국판 ‘가만히 있으라’였다. 실제로 당일 현장을 지휘한 경관은 훗날 “우리는 관중들의 경기장 난입을 막는 일을 최우선으로 여겼다” 하고 진술했다.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경찰이 당일 경기장 통제소에서 지휘만 제대로 했어도 이런 일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고 울분을 토했다.

사람들이 관중석을 필사적으로 벗어나자 경기 진행은 어려워졌고 경찰은 결국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러나 여전히 관중의 이동을 막는 데 치중했다. 심지어 경찰은 구호에 나서려고 입석 구역을 벗어나려던 관중을 구속하겠다고 위협했다. 구급차 44대가 경기장으로 왔지만 경찰은 오직 한 대만 경기장에 들여 보냈다. 인근 병원에서는 환자들의 규모를 예상하지 못해 이송된 환자도 제대로 처치를 받지 못하는 일이 속출했다. 제대로 된 응급처치만 받았어도 희생자 중 절반가량(41명)은 살 수 있었다고 2012년의 진상조사위원회 보고서는 결론 내렸다. 정부가 ‘긴급 상황’을 선포하지 않아서 잃은 목숨이었다.

어처구니없는, 그러나 예고된 참사

힐즈버러 경기장은 월드컵 8강전이 열릴 정도로 중요한 경기장 중 하나였지만 안전 관리는 형편없었다. 참사 전인 1981년, 1987년, 1988년에도 관중 수십 명이 부상당했다.

경기장 하층부를 입석으로 운영하면서 입장 인원을 확인하는 기본적인 수단도 구비돼 있지 않았다. 이는 명백한 안전 규정 위반이었지만 경기장을 운영하는 구단 측은 비용상의 이유로 이를 무시했다.

당시 힐즈버러를 관할한 시 공무원은 안전 문제를 제기하지 않은 것이 “정치적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참사 3년 전에 안전 사항을 지적하자 경기장 운영자들은 격노하며 운영을 방해하면 시당국을 고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1989년 참사 당시의 모습 경찰이 관중들을 무리하게 입석으로 밀어넣고 탈출마저 제지해 많은 희생자들이 철망에 눌려 질식사했다. 그런데 경찰은 참사를 희생자 책임으로 몰고 모욕했다.  

권력자들은 국민보다 자신의 수족(경찰)을 더 지키려 했다

세월호 참사에서처럼 영국에서도 구조에는 무능한 경찰이 은폐에는 신속했다.

경찰은 참사 발생 2시간 만에 경찰 사진 팀에게 경기장 주변 쓰레기통을 뒤져 술병 사진을 찍으라고 시켰다. ‘술 취한 훌리건들이 무리하게 입장한 탓’으로 몰아가려고 작정한 것이다. 경찰은 10살 아이는 물론 사망자들에게서까지 혈액을 채취해 음주 측정을 했고 사망자 96명에게 전과 기록이 있는지 뒤졌다.

참사 나흘 만에 언론 재벌 루퍼트 머독이 운영하는 보수 신문 <선>은 ‘힐즈버러의 진실’이라는 1면 헤드라인으로 술 취한 관중들이 억지로 출입문을 열어 기어이 사고를 냈다는 경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기사를 실었다. 생존자들이 “쓰러진 관중들의 호주머니를 털고, 오줌을 갈기고, 인공호흡을 하는 경찰들에게 발길질을 했다” 하고 날조했다. 무질서한 대중이라는 편견을 조성하려는 시도였다.

힐즈버러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우리는 훌리건이 아니고, 참사의 책임은 바로 경찰에게 있다’ 하고 거듭 항변했다. 한 유가족은 “숨진 아이 아빠가 술 취한 훌리건이 아니라 한 가정의 건실한 가장이었음을 믿어 달라” 하고 울부짖었다.

후속 조사 과정에서 경찰 고위층은 당일 현장에 있던 경관들의 진술을 일일이 확인하며 “그런 진술은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으니 진상조사위원회에 제출하기 전에 다시 숙고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경찰 한 명은 당일 비번이라 관중으로 경기장에 있었는데, 그는 주변 경찰들이 “내 입에 자신들의 말을 우겨 넣으려 했다”며 진술 강요를 폭로했다. 또한 경찰은 생존자들을 취조하면서 작성한 진술서를 당사자에게 보여 주지도 않고 서명하라고 윽박질렀다. 당시 작성된 ‘생존자 증언’이 수십 년 뒤 공개되자 당사자들이 자기가 한 말과 다르다고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총리였던 마거릿 대처는 생존자와 희생자들을 매정하게 비난하며 경찰을 감쌌다. 참사가 벌어진 힐즈버러를 관할한 남요크셔 경찰이 1984~85년 광원 파업 당시 ‘오그레이브 전투’에 투입돼 파업을 파괴하는 데 주된 공을 세운 바 있기 때문이다. 남요크셔 경찰청장 피터 라이트는 5년 전 ‘오그레이브 전투’를 지휘한 장본인이었다.

보수당 정치인은 TV에 나와서 책임을 희생자들 탓으로 몰아갔다. 또한 경찰에 불리한 증언을 삭제하도록 진상조사위원회에 압력을 넣었다. 보수당 정부가 구성한 진상조사위원회는 1989~90년에 걸쳐 활동했지만 많은 증거를 인정하지 않았고, 경찰과 경기장 운영진을 질책하긴 했지만 어떠한 징계도, 고발 조처도 뒤따르지 않았다. 당일 현장 책임자는 징계 없이 조기 퇴직했고, 경찰 두둔에 앞장서고 진상조사를 훼방한 보수당 정치인과 경찰 간부는 훗날 기사 작위를 받았다.

노동당도 은폐에 가담하다

1997년 노동당은 18년 만에 정권교체를 이뤄 냈다. 그러나 노동당의 집권은 노동자 투쟁이 전진하면서 이뤄냈다기보다 노동당이 우경화해서 지배자들의 환심을 산 덕분이었다. 영국 보수 정치의 거물이자 언론 재벌인 루퍼트 머독은 1997년 선거에서 노동당을 후원했고, 이런 우경화를 이끈 노동당 총리 토니 블레어(사진)는 선거 후 머독의 자녀 중 한 명의 대부(代父)가 됐다.

노동당은 머독의 치부인 힐즈버러 사건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다. 노동당 의원 앤디 번햄은 총리 시절의 블레어가 ‘루퍼트 머독을 건드리게 되니까 힐즈버러 사건을 파고 들지 마라’ 하고 직접 지침을 내렸다고 (2015년에야) 폭로했다.

노동당 집권 후 만들어진 새로운 진상조사위원회의 결론은 대처 정권 하의 진상조사위원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이 진술을 조작했다’는 숱한 증언도 인정하지 않았다.

참사가 벌어진 지 21년, 노동당 집권 12년이 지난 2009년이 돼서야 노동당 정부는 진실 인정을 요구하는 운동의 압력을 받아 수사자료를 공개하라고 남요크셔 경찰청에 지시했다.

“책임자를 처벌하라”

유가족은 이번 재판 결과를 환영하면서도 투쟁은 끝나지 않았다고 밝혔다. 참사 당시 현장을 지휘한 경찰이나, 진상조사를 방해한 경찰 고위층은 아무런 징계도 처벌도 받지 않은 것이다. 참사로 당시 17살이었던 동생을 잃은 슈테판 그레엄은 이렇게 말했다.

“이번 재판은 우리가 그동안 투쟁해 온 것이 정당했음을 완전히 입증했습니다.

“저는 줄곧 관중들이 경찰의 과실치사로 죽었다고 주장했는데 그것이 인정받아서 정말 기쁩니다. 특히 ‘관중들은 이번 참사에 조금도 책임이 없다’고 판사가 분명히 밝힌 것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경찰은 죄없는 사람을 죽여도 감옥에 가지 않는 것이 이 나라의 현실입니다. 따라서 희생자 96명을 위한 정의를 찾으려는 투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입력 2016-04-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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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패배에도 특조위 닫겠다는 박근혜

진실 규명 염원을 모아 항의 운동을 확대?강화해야 한다

김지윤

총선 패배로 타격을 입은 박근혜는 최근 소통 강화 운운하며 언론사 보도국장들과 만나 ‘이번 총선은 정권이 아닌 국회에 대한 심판’이라는 황당한 얘기를 늘어놨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을 종료시키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 번 드러냈다. 법에 명시된 조사 활동 기간을 보장하는 것이 세금 낭비인양 하며 말이다. 취임 후 최저 지지율에서 드러나듯이 정치적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박근혜로서는 정치적 아킬레스건인 세월호 참사 문제에서 더더욱 양보할 수 없다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최근 청와대와 전경련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을 모욕하는 데 앞장서 온 어버이연합과 긴밀한 관계를 맺어 왔다는 폭로가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박근혜는 진실 은폐에만 열심이다. <시사저널>이 2014년 어버이연합이 세월호 참사 관련 반대 집회를 30차례나 열었고 이때마다 일당 2만 원을 주고 탈북민들을 동원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공식 해명 없이 침묵했고, 청와대 행정관 허현준은 <시사저널> 출간 금지 가처분을 내고 민형사상 고소와 손해배상을 제기했다.

진실 은폐에 대한 불만이 증폭하자 정부는 세월호 인양 과정을 유가족들이 바지선에서 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생색을 냈다. 그런데 바지선에서 브리핑을 끝내고는 유가족들을 다른 배에 옮겨 타게 해 멀리서 보도록 했다. 유가족들을 완전히 우롱한 것이다.

세월호 지우기를 멈추지 않는 박근혜 정부의 사악한 태도에 맞서 특조위 강제 종료 저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 유가족과 특조위의 선체 정밀 조사 참여 등 진실 규명 운동의 당면한 과제들을 성취하려면 만만치 않은 힘이 필요하다는 점을 거듭 확인시키고 있다.

밑거름

그런데 유가족과 진실 규명 운동을 제대로 대변한 적 없는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진지하게 이런 과제를 수행하리라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국민의당 전 원내대표 주승용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19대 임시국회 개원의 명분으로 내세웠다가 즉흥적으로 한 말이었다고 말을 슬쩍 바꿨다. 19대 국회에서 다루기 어렵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특조위 활동 보장을 간절히 원하는 유가족과 대중들의 바람은 저들의 안중에 없는 것이다. 친자본주의 정당인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근본에서 반대하지 않는다. 지금 구조조정 필요성이 제기된 상황에서 경제 위기 압력이 더 강해지면 예전과 마찬가지로 박근혜 정부에 타협할 가능성이 높다. 세월호 진실 규명 과제를 결코 부르주아 야당에 의존할 수 없는 이유다.

따라서 친자본주의 정당들의 정략적 움직임에 따라 세월호 진실 규명이 이리저리 휘둘리면 안 된다. 무엇보다 한사코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미루려는 국회를 강제하려면 국회 밖에서 강력한 압력을 형성할 투쟁이 중요하다. 4 · 16연대는 2주기 추모문화제에서 4월 16일은 진실 규명 운동의 시작이고 함께 싸우자고 선언했다. 특별법 개정 서명 운동, 국회 앞 1인 시위 등을 조직하고 있다. 앞으로 4 · 16연대는 대중 투쟁을 건설해 강력한 압력을 형성하겠다는 관점을 갖고 일련의 활동을 배치해야 한다.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와 어버이연합과의 커넥션 등을 폭로하는 규탄 기자회견과 항의 시위 등을 조직해 4월 16일 비바람 속에서도 강력한 투지를 보여 준 노동자 · 학생들의 열기를 모아내야 한다. 그래야 6월 특조위 강제 종료 반대 투쟁을 건설할 수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4 · 16연대가 5월에 강조한 특별법 개정 범국민서명과 전국 간담회 등도 탄력을 받을 수 있다.

특히 특조위 3차 청문회 개최 시점에 진실 규명의 관심과 필요성을 널리 확대하기 위한 대중 집회를 연다면 효과적일 것이다.

이번 노동절 집회에 유가족이 참가해 6월 특조위 강제 종료 반대 투쟁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듯이 5월 동안 민주노총을 비롯해 각계각층의 관심과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또 《416교과서》 발행과 계기 수업으로 탄압이 예고되고 있는 전교조를 방어하며 함께 공동 활동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한편, 박주민 당선자가 2주기 연단에서 “우리가 함께하면 못할 것이 없다. 그 앞에서 꿋꿋하게 걸어가겠다”고 말했듯이 그가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의 최전선에 서도록 요구해야 한다. 박주민 당선자는 더민주당 내 압력에 맞서며 그의 당선을 가능케 한 진실 규명 운동의 염원을 올곧게 대변하려 해야 한다. 또 정의당을 비롯해 노동계 당선자들은 국회에서 특조위 조기 종료 시도를 폭로하고 진실 규명의 필요성을 널리 알려 대중 투쟁 건설에 기여해야 한다.

한편, 특조위 3차 청문회가 열려 진상을 좀 더 들춰낸다면 특조위에 대한 관심과 필요성을 환기시키며 진실 규명 운동에 더욱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세월호 2주기 집회 ⓒ사진 조승진

누구도 예외일 수 없는

2년 전, 단 한 명도 살리지 못한 박근혜 정부는 기업주 살리기에는 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럴수록 ‘안전사회 건설’이라는 진실 규명 운동 요구의 정당성도 더욱 분명해지고 있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 절대 불가를 외친다. 그러면서 임시국회에서 규제프리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같은 돈벌이를 위해 안전은 뒷전에 두는 법안들을 통과시키려 한다. 이런 조처들이 생명과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한다는 것이 세월호 참사로 드러났는데도 말이다.

최근 파장이 일고 있는 ‘살인 가습기 살균제’는 정부의 느슨한 조사와 관리 속에서 기업이 판매에만 혈안이 돼 진실을 은폐하려다 실패한 끔찍한 사건이다. 이는 이윤이 우선한 사회에서 누구나 무차별적으로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뿐만 아니라 정부가 확대를 시도하는 외주화, 규제 완화로 산업재해 위험도 끊이지 않고 있다. 현대중공업에서만 올해 들어 5명의 노동자가 산재로 목숨을 잃었다. 사측이 비용 절감을 이유로 하도급을 확대하며 안전은 뒷전으로 놔둔 사이 노동자들은 억울한 죽음을 맞고 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를 빚은 이윤 경쟁과 구조 민영화, 규제 완화와 부패 등을 낱낱이 밝혀 분명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는 지배자들의 진실 은폐와 책임 회피 속에 가족과 친구의 억울한 죽음을 자신의 탓으로 돌리는 유가족들과 생존학생들의 고통을 끝내는 출발이기도 하다. 또한 이런 과정에서 지금의 위험 천만한 체제의 실체를 드러내고 안전 사회 건설을 위한 투쟁의 동력도 커질 것이다.

구조조정과 노동악법 등 노동자 쥐어짜기에 맞서는 노동자 투쟁이 강력히 벌어져 박근혜의 발목을 잡는다면 진실 규명 방해를 저지하는 데에도 더욱 효과적일 것이다. 민주노총과 좌파들은 두 투쟁이 맞물려 서로를 고무하도록 실질적으로 힘써야 한다. 

입력 2016-04-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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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이제 더 이상 숨죽이지 않을 것입니다”

김승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세월호 참사에는 두 부류의 희생자가 있다. 하나는 하늘의 별이 돼 우리 곁을 떠난 3백4명의 희생자들이고, 나머지는 죽을 때까지 그들을 그리워해야 할 ‘살아 있는’ 희생자들이다.

그중에서도 어린 나이에 감당하기 쉽지 않은 고통을 겪고 있는 단원고등학교 생존 학생들과 유가족 형제자매들의 첫 번째 인터뷰집이 책으로 출간됐다. 이 책은 유가족 어머니, 아버지의 목소리를 담아 세월호 관련 도서 중 가장 많이 판매됐던 《금요일엔 돌아오렴: 240일간의 세월호 유가족 육성기록》(창비)의 후속작이다.

트라우마

“얼굴 한쪽 눈썹 위부터 반대편 광대뼈까지 사선 모양으로 껍데기가 벗겨졌어요. 어디에 쓸린 것 같아요. 얘가, 얘가 죽었는데 딴 게 보이는 게 아니고. 그래서 지현이가 살아 있을 때 다친 게 아니고 차라리 숨이 멎고 난 후 쓸렸으면… 살았을 때 다쳤으면 너무 그냥 상상도 하기 싫고.”(남서현,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 남지현의 언니)

△ 《다시 봄이 올 거예요: 세월호 생존학생과 형제자매 이야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 창비, 1만 5천 원.

“옛날에는 ‘시간이 멈추면 좋겠다, 엄마 아빠 나이 안 먹었으면 좋겠다’ 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나이 먹으면 오빠한테 가는 시간이 가까워지는 거니까 … 두려움보다는 오빠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김채영, 희생 학생 김동영의 동생)

“영화 보면 소원 들어주는 거 있잖아요. 딱 하나만 들어주겠다고 하면, 저는 왜 한 개만 바랄까, 세 개 네 개 백 개가 아니고 왜. 그런데 이제 왜 하나만 말하는지 알게 됐어요. 너무 간절하니까. 딱 한 번만이라도 이뤄졌으면 하는 거. 친구들을 다시 만나는 거.”(반세윤, 생존 학생)

알고 싶은 것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사랑하는 친구와 형제자매를 왜 하루아침에 잃어야 했는지, 책임지는 사람은 왜 아무도 없는지, 왜 피해자들이 오히려 삭발을 하고 도보행진을 하고 최루액을 맞아야 하는지. 알려 달라고 소리치면 돌아오는 대답은 늘 “가만히 있으라”였다.

‘싸이코패스’ 같은 새누리당 정치인들은 틈만 나면 “시체 장사” 같은 망언을 흘리며 진상 조사를 방해했고, ‘무개념’ 언론들은 시도 때도 없이 카메라를 들이 밀었고, ‘아직도 우냐?’, ‘어떻게 웃냐?’ 하는 시선들을 의식해야 했다. 올해 대학교 새내기가 된 생존 학생들은 ‘특례입학’ 논란 속에, ‘친구 팔아 대학 갔다’는 끔찍한 험담도 견뎌야 했다. 그런 고통과 상처 속에서 지난 2년이 흘렀다.

“구조된 게 아니라 살아나온 것”이라고 입을 모아 말하는 생존 학생들의 생생한 경험담은 안타까움과 분노로 읽는 사람의 가슴을 치게 만든다. 참사 당일 해경과 정부의 무능, 무책임함은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다.

“제 발 밑에서 애들이 손을 허우적대는 게 다 느껴졌어요. 50인실에 물이 차는 데 10초도 안 걸렸어요. 애들이 틈 사이로 와 가지고 살려 달라고 소리 지르면서 손 뻗는 걸 다 봤고, 다 느꼈고…”(이시우, 생존 학생)

“헬기에 있던 해경은 헬기 탈 자신 있는 사람 먼저 손들고 나오라고 얘길 했어요. 애들 한 명씩 배에서 나오는 거 보고만 있다가 구명보트에서 “어 나왔다” 이러는 해경도 있고.”

“구명보트에 탈 자리가 없으니까 보트를 잡고 오래요. 무서우니까 절대 보트를 안 놓으려고 했어요. 그런데 보트를 배에 붙일 때 제가 구명보트랑 해경 배 사이에 낀 거예요. 결국 친구들이 배 밀면서 여기 사람 끼었다고 같이 외쳐 주고 어른들이 도와줘서 빠져 나왔어요. 그때도 해경은 안 도와줬어요.”(김희은, 생존 학생)

“정부가 지켜주지 못한 내 친구가 보고 싶습니다”

그런 생존 학생, 형제자매들의 죄책감과 상처가 조금이나마 아무는 순간이 있었다. 바로 다른 생존 학생, 형제자매들과 뜻을 모아 행동에 나섰을 때였다. 희생 학생 남지현 양의 언니인 남서현 씨는 이렇게 말한다. “엉터리 시행령이 나오고 부모님들이 삭발하는 순간 우리(형제자매들)가 모였어요. 각 대학 총학생회에서도 성명서가 나오고 청년들도 내는데 우리 형제자매는 뭐하는 거지? 우리도 뭐라도 해야 한다. 가만히 있을 순 없다. 그런 생각을 했어요.” 생존 학생들도 생애 처음 도보행진에 나서고, 기자회견을 하고, 법정 증인석에 섰다.

“기사랑 악플 보면서 계속 화가 나 있었어요. 그런데 안산에서 서울까지 도보행진을 하면서 화가 조금씩 사그라졌던 것 같아요. 거의 마지막 코스에 진짜 천 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양쪽에 서서 계속 박수 쳐주고 같이 울어 주시고. 가족만큼 울어 주는 분들이 신기했어요. 그때 이후로 악플도 예전보다 신경을 덜 써요. 그게 좀 버틴 계기가 아닌가 싶어요.”(김채영, 희생학생 김동영의 동생)

“도보행진이나 시청 가서 추모제 할 때는 제가 애들을 위해서 이런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가 좋았고 그때만큼은 죄책감이 좀 사라졌어요.”(반세윤, 생존 학생)

△2014년 7월 세월호 생존 학생 도보행진 ⓒ사진 이윤선

이제 4월은 이들에게 따뜻하고 향기로운 봄이 아니다. 시신이 수습됐던 시간이 다가올수록 끔찍했던 팽목항의 악몽이 긴 터널처럼 펼쳐진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들은 다시 ‘봄’을 얘기한다. “정치인들의 임기는 몇 년이지만, 우리의 임기는 죽을 때까지”이기 때문에 진실을 밝혀내고 책임자를 처벌할 ‘그날’은 꼭 온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의 마지막 장 제목은 “우리는 새로운 여행을 시작합니다”이다.

“부모님이 끝이 아니라는 것도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만약에 부모님 세대가 갈 때까지 이 일이 해결이 안 돼도 형제자매들이 할 거라고. 계속 이어질 거라고…”(김채영, 희생 학생 김동영의 동생)

대학생으로서 책을 읽는 동안 마치 주변에 있는 친구, 언니, 동생과 대화를 나누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 마음이 아팠고, 어떤 부분에선 친근한 마음이 들어 빙그레 웃기도 했다. 특히 영어 학원을 다니고 싶다던 동생에게 ‘집안 사정도 모르냐’며 혼을 냈다가 그만 울리고 말았었다는 한 언니의 가슴 아픈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는다. 비행기 표가 비싸서 낡은 배에 아이들을 태워야 했던 것, 수학여행에 입고 갈 옷 하나 제대로 못 사준 것이 일생의 한으로 남아 있는 유가족들, 믿고 의지할 데라곤 가족밖에 없었던 이 평범한 노동계급의 심정을 참사의 주범들인 이 나라 권력자들은 감히 털끝만큼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는 ‘엄마, 아빠’ 못지 않게 열심히 활동하겠다는 생존 학생, 형제자매들이 더는 상처받지 않고 숨죽이지 않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진솔한 이야기들이 널리 읽히고 알려져 더 많은 지지와 응원들이 그들에게 쏟아지기를 바란다.

입력 2016-04-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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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습적 세월호 ‘기억교실’ 이전 시도에 항의하다

박태현 (전교조 안산지회 조합원)

5월 6일 단원고 당국이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이 쓰던 ‘기억교실’을 치우려고 시도해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긴급히 항의하는 일이 벌어졌다. 학교 당국은 '이사 업체 차'를 학교 안으로 들였다가 거센 항의에 밀려 우선 이사 업체 포장 박스를 치웠다.

ⓒ박태현

지난달,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단원고 당국, 경기도 교육청은 세월호 ‘기억교실’을 안산교육청으로 임시 이전한 뒤, 단원고 인근에 416민주시민교육원을 건립해 최종 이전하는 내용의 협약식을 5월 9일 체결하기로 합의했다. 유가족들은 협약식 이후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교실 이전이 진행되기를 바랐다.

그런데 학교 측이 6일부터 8일까지 휴일 기간에 교실을 정리하겠다고 내부적으로 결정하고서 교실 이전에 착수하려 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유가족들이 5일부터 밤샘 대기에 나섰다. 6일 아침에 급히 모인 40~50여명도 함께 학교에 항의했다.

그 과정에서 단원고 행정실장은 유가족들에게 우산으로 삿대질을 하고 경찰을 불렀다. 심지어 '남의 학교에 와서 공사를 방해하냐'고 막말까지 퍼부어 유가족들의 마음에 대못을 박았다.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이 어찌 '남'이란 말인가!

갑작스러운 교실 이전 시도에 대한 항의가 이어지자 유가족들과 단원고 교장 간 협의가 시작됐고, 결국 단원고 당국은 '기억교실'을 이전하려고 준비한 이사 업체 박스들을 치웠다.

교실이 원형 그대로 이전돼야

협의가 끝난 후 단원고 행정실장이 막말에 대한 사과를 하겠다며 유가족들이 모인 자리로 왔다.

그는 삿대질과 '남의 학교'라는 말에 대해 사과를 한다면서도 '앞으로 또 그러실 것이냐?'는 물음에는 '나도 사람이니까 확답을 할 수는 없고 노력하겠다'고 대답해 우리를 분노하게 했다. 또 이사 업체 물품을 당장 빼라는 요구에는 '내일 빼겠다'고 답했다. 항의가 이어지자 결국 행정실장은 답변을 회피하고 도망쳤다.

진상 규명과 책임 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서 교실을 치워야 학교가 “정상화”된다는 주장도 납득하기 쉽지 않은데, 협약식을 불과 3일 앞두고 일방적으로 교실 이전을 추진한 것은 더욱 납득하기 어렵다. 더군다나 겨우 3일 동안 교실을 정리하려 한 계획은 학교 당국이 기억교실의 원형 보전에도 별 관심 없음을 보여 준 것이라 씁쓸하기 그지 없다.

한편, 행정실장은 '[이 날 교실 이전 시도가] 학교 측이 진행했는지, 교육청에서 진행했는지를 답하라'는 한 유가족의 질문에 '같이 진행했다. 연관이 돼 있다'고 답했다. 만일 실제로 이날 이전 시도가 경기도 교육청과의 교감 속에 이뤄진 것이라면 이 또한 문제이다.

'기억교실'은 유가족들에게는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가족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 있는 공간이자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게 만드는 공간이다. 그래서 유가족들은 ‘기억교실’이 추모의 공간이자 새로운 교육이 시작되는 공간이 돼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그런데 지난 2년 동안 경기도 교육청이 “교실은 추모의 공간이 아니”라는 태도로 교실 부족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서 학교 당국과 일부 재학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유가족들은 곤혹을 겪어야 했다. 최근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전교조의 ≪416교과서≫를 사용한 계기수업을 금지하는 교육부의 지시를 일선 학교에 그대로 전달하기도 했다. 이재정 경기 교육감이 진정 진보 교육감이라면 ‘세월호 참사 흔적 지우기 시도에 동조해선 안 된다.   

다행히 이날 기습적인 교실 이전은 막았지만, '기억교실'이 원형 그대로 이전될 때까지 경계를 늦출 수는 없을 듯하다. 416민주시민교육원 건립을 위한 예산이 경기도의회에서 통과되도록 해야 한다.

ⓒ박태현

ⓒ박태현

입력 2016-05-0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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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희생학생 제적 처리 항의 농성 현장 취재

“사망 신고도 못한 우리 아이, 제적 처리로 두 번 죽인 셈”

김지윤

세월호 참사 희생학생들을 제적 처리한 것이 뒤늦게 알려져 공분이 일고 있다. 수십 명의 유가족들이 일방적 제적 처리에 대한 원상 복구와 책임자의 사과를 요구하며 단원고 본관 앞에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제적 처리 사실은 5월 9일 한 유가족이 우연히 희생학생의 생활기록부를 발급받으려다 밝혀졌다. 이제까지 유가족들은 이런 사실에 대해 학교 측으로부터 일언반구 듣지도 못한 상황이었다. 명예졸업식 운운하던 학교 측이 알고 보니 제적처리를 일방적으로 진행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가 이는 것이 당연했다. 유가족들은 “우리가 발견 못했으면 계속 속이지 않았겠느냐?”라며 “학교 측과 경기도교육청이 우리를 기만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더군다나 이날은 단원고 희생학생들이 사용하던 ‘기억교실’을 이전하는 내용의 협약식을 가족협의회와 단원고 당국, 경기도교육청이 체결한 날이었다. 유가족들이 “완전히 속았다”며 협약을 인정할 수 없다고 항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농성장에서 한 어머니는 “정부가 특별 재난 지역으로 선포까지 했는데 일방적 제적 처리를 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젓기도 했다.

희생학생들이 수학여행을 가기 직전까지 머물렀던 곳이자 세월호 참사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기억교실’을 유가족들은 존치하길 원해 왔다. 미수습자 학생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오면 교실에 한 번 앉아 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미수습자 가족들은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유가족들은 눈물을 머금고 교실을 이전하는 내용의 협약을 체결하기로 결정했다.

그런데 협약식을 불과 사흘 앞두고 5월 6일 연휴기간을 틈타 단원고 당국이 유가족들 몰래’ 기억교실’을 정리하려고 이사업체를 부른 것이 알려져 유가족들이 밤샘 대기와 항의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지난 10일에는 일부 재학생 학부모들이 ‘기억교실’로 몰래 들어가 교실을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책걸상 유출을 저지하려던 유가족들이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가기도 했다. 심지어 물리력을 행사한 사람이 재학생 부모가 아니라는 사실도 밝혀졌다.

단원고, 기억교실, 세월호 참사 유가족

△"명예졸업 운운할 땐 언제고 제적 처리냐? 더는 거짓말마라" 경기도교육청 장학관과 단원고 교감 등이 농성장을 방문한 자리에서 거듭 변명을 늘어놓자 유가족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유가족들은 “당신들이 교육자인지 의심스럽다. 부끄럽지 않나? 아이들을 무시해도 이렇게까지 무시할 수 있나”며 항의했다.ⓒ조승진

“이렇게 우릴 속이는 줄 알았다면 교실 이전 협약도 안 했을 것”

유가족들의 항의가 거세지고 경기지역 교사들이 교육청 앞 농성을 시작하는 등 여론이 들끓자, 이재정 교육감은 11일 오후 공식적으로 ‘학적을 원상복구 시키겠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오후 5시 경기도 교육청 장학관과 단원고 양동영 교감 등은 해명과 사과를 하겠다며 농성장을 방문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도 책임자들은 도통 앞뒤가 맞지 않는 변명만을 늘어놓고,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 이토록 무책임한 태도에 유가족들은 “우리 아이들이 그냥 죽었느냐? 수학여행을 떠났다가 차가운 물 속에서 공포에 떨며 죽어갔다. 그걸 생각하면 이렇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며 울분을 터뜨렸다.

담당자들이 ‘네이스(NEIS)행정시스템상 어쩔 수 없었다’는 말을 수차례 반복하자 “우리 아이들을 왜 행정 대상으로밖에 여기지 않느냐”며 여기저기서 오열했다. 많은 유가족들은 아직 희생학생들의 사망신고조차 하지 못 했는데 학교 당국과 교육청은 한 마디 상의도 없이 행정 처리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단원고 농성

△오후 5시 경기도교육청과 단원고 관계자들이 사과를 한다며 학교 본관 앞 세월호 유가족 농성장을 방문했지만 이들은 변명과 책임 떠넘기기로 일관했다. 마이크를 잡은 나경록 장학관은 “공문은 도교육청 교육과정정책과에서 단원고와 회복지원단이 같이 받았는데… 2월에 가족에게 알렸어야 했는데 못 알렸고, 제적 처리한 상황은 당시에 몰라서…”라며 말끝을 흐리며 변명하고 있다. 왼쪽부터 도교육청 김동민 장학관, 양동영 단원고 교감·이득규 교무부장, 안산교육회복지원단 나경록·박헌순 장학관, 고기윤 장학사. ⓒ조승진

단원고 농성

△책임자들이 해명과 사과가 아니라 변명과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자 한 유가족이 참담함을 느끼는 듯 농성장에 앉아있다. 이날 농성장 곳곳에서 항의와 울분이 터져 나왔다. ⓒ조승진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유가족들 앞에 모습을 보인 단원고 정광윤 교장의 태도도 다른 책임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심지어 교장실 안에 숨어 있던 교장을 본지 기자와 한 유가족이 발견해  어쩔 수 없이 교장실 밖으로 나와야 했다. 이 자리에서 정광윤 교장은 자신은 3월에 부임해 인수인계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책임회피로 일관했다. 유가족들의 항의가 거세지자 적반하장으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유가족들은 재학생들 사이에서도 ‘기억교실’ 보존 요구가 엄연히 있는데 이를 무시하는 학교 당국의 태도에 대해서도 꼬집었다. 교장은 자신의 임무가 “단원고 교육 정상화”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 지우기에 동조하며 행정만을 내세우는 책임자들은 유가족들의 말마따나 “교육자로서 자격이 없다.”   

단원고 교장

△경기도교육청 책임자들과 단원고 교감이 유가족들의 항의에 직면한 사이 정광윤 단원고 교장은 행정실 관계자들의 보호속에 교장실에 숨어 앉아 있었다. 정광윤 단원고 교장를 찾아낸 유가족들은 “왜 여기에 앉아 숨어 있냐?”며 밖에 나와서 해명하고 사과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정광윤 단원고 교장은 매우 불편하고 귀찮아 했고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먼저 따로 얘기를 하고 싶다”, “연합뉴스는 와 있나?”등 엉뚱한 말을 하며 밖에 나오길 계속 피했다.  결국 오후 7시가 넘어서야 유가족들 앞에 모습을 보였다. ⓒ조승진

단원고 교장

△"인수인계가 안 되서 몰랐다" 단원고 교장은 제적 처리에 대해 어떻게든 자신의 책임이 아니라는 말만을 반복했다. ⓒ조승진

단원고 농성

세월호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에 못 이겨 농성장 앞에서 유가족들의 질문을 받고 제적처리 등에 대해 해명하고 있는 정광윤 단원고 교장을 유가족들이 분노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다. ⓒ조승진

진상 규명은 뒷전이고 행정 처리만 앞세워

이날 이재정 교육감이 뒤늦게 학적 원상복구를 공식 약속했지만, 이는 의지만 있었다면 얼마든지 희생학생들의 학적을 유지하는 일이 가능했음을 보여 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미 학교 곳곳에서 유가족들이 이재정 교육감을 규탄하는 팻말들이 붙어 있다. 이재정 교육감이 직접 와서 사과해야 한다는 요구도 높다.

또한 경기도교육청과 단원고 당국 모두 충분한 협의 없이 ‘기억교실’을 이전하면 안 된다는 유가족들의 요구에 아직까지 뚜렷한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희생학생들의 모교가 지난 2년간 진상규명에 힘을 보태기는커녕 거듭해서 기억과 흔적을 지우는 일에 앞장선 것에 유가족들은 울분을 삼키며 참아 왔다. 유가족들은 단원고 당국과 경기도교육청은 이번 사태에 사과하고 관련자들을 징계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교실 이전 시기와 방법에 대한 분명한 합의와 약속 이행이 있을 때까지 농성을 유지할 계획이다. 지지와 연대도 호소하고 있다.

학교 당국과 교육청의 이런 어이없고 뻔뻔한 결정은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지우기 시도와 결코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박근혜는 총선 패배 이후에도 특조위 활동 보장에 ‘세금 타령’을 하며 사실상 불가 입장을 밝혔다. 특별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에 부딪혀 농해수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할 뻔했다. 교육부도 전교조가 발행한 ≪416교과서≫ 사용을 금지하는 등 세월호 지우기에 앞장서 왔다.

한편, 이날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이 농성장을 방문했다. 한 유가족은 이석태 위원장에게 조사 사건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서 특조위 활동이 6월로 종료되는 것을 우려한다고 밝히며 3차 청문회가 속히 열리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근혜 정부의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와 세월호 지우기 시도에 맞서는 목소리가 확대돼 단원고 내에서 벌어진 세월호 참사 흔적 지우기 같은 일들이 다시는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단원고 농성

△유가족들은 교실 이전 시기와 방법에 대한 분명한 협의 없이는 농성 중단할 수 없다며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유가족들의 농성을 지지하는 단체와 개인들의 지지방문과 연대 농성도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나고 있다. ⓒ조승진

단원고 농성

△학내 곳곳에 제적처리에 항의하는 손팻말이 붙어 있다. ⓒ조승진

단원고 기억교실

△"기억교실을 지켜야 합니다" 단원고 당국이 지난 5월 6일 세월호 참사 희생 학생들이 쓰던 ‘기억교실’을 치우려는 시도를 세월호 유가족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이 긴급히 항의해 막아낸 이후 세월호 희생 학생 유가족들이 ‘기억의 교실’에 앉아 교실을 지키고 있다.  조승진

 

입력 2016-05-1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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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의 의의와 마르크스주의

박한솔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세월호 참사가 벌어진 지 2년이 지난 지금도 진실 규명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그간 투쟁의 성과로 중요한 진실이 드러나기도 했지만, 여전히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도 있다.

‘왜 침몰했고, 왜 구조하지 않았는가’ 하는 핵심 물음은 충분히 풀리지 않았다. 선원들 재판을 통해서도 직접적인 침몰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국정원과 세월호의 관계를 낱낱이 밝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정부 책임자와 해경 고위 간부들은 모두 처벌을 빠져 나갔다. 현장에 출동한 소형 경비정 정장 한 명만 처벌받았을 뿐이다.

하지만 의혹이 남았다 해서 밝혀진 게 없다거나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참사의 여러 원인들을 관통하는 문제가 이윤 경쟁 체제, 즉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임을 드러난 사실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세월호는 떠다니는 ‘폭탄’이었다. 청해진해운은 그동안 독점해 온 인천-제주 항로에 경쟁업체가 들어오려 하자 2010년 일본에서 18년간 쓴 낡은 배를 구입했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2009년 선박 사용연령 제한 규제를 완화했기에 가능했다. 또 청해진해운은 위험한 증축과 화물 과적을 일삼았다. 이 탓에 애초에 부실했던 배의 복원력이 크게 나빠졌다.

해경이 얼마나 끔찍하게 무능한지는 안전은 안중에도 없었던 구조 체계가 보여 준다. 2012년 정부는 수난구호법 개정에 따라 구조업무를 민영화했다. 그래서 해경은 바다에서 생긴 조난사고 구조가 가장 중요한 업무임에도, 관련 예산을 지속적으로 줄여 왔다. 장비와 예산이 없으니 해경 대원들은 구조를 위한 훈련도 받지 못했다.

수난구호법 개정 당시 해경 차장은 “(안전) 장비를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며 민간업체에 구조 업무를 넘겨 예산을 절감했다. 이처럼 자본주의에서 기업과 정부는 어쩌다 한 번 발생하는 사고 때문에 비용을 들이는 것을 ‘낭비’라고 여긴다. 자본주의 체제와 그 국가의 우선순위는 기업 이윤에 있지, 평범한 다수의 생명과 안전에 있지 않다.

준비가 안 돼 있으니 구조를 위한 결정도 할 수 없었다. 참사 당시 해경이 “나중에 책임질 일이 두려워” 퇴선명령을 내리지 않았다는 사실도 폭로됐다. 뭘 해야 할지 모르는 해경은 골든타임 동안 청와대에 보고하느라 바빴다. 청와대는 골든타임이 끝나가는 내내 보고를 요구하며 구조를 방해했다. 그들도 목숨을 살리는 데 “관심이 없었다.” ‘골든타임’을 죽음의 시간으로 만든 장본인들이다.

운동의 전망

자본 축적 논리는 기업과 국가가 근본으로 벗어날 수 없는 객관적 한계다. 자본주의에서 국가의 위상은 그 국가와 연계를 맺은 자본의 크기와 관련 있다. 그래서 국가는 자국 자본들의 경제성장을 촉진시키고, 이윤율이 떨어지지 않게 노력한다. 국가가 자본에 의존하듯, 자본도 국가에 의존한다. 국가의 도움 없이는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왜 국가 관료와 기업주들이 각종 유착 관계(부패)에 얽혀 있는지도 알 수 있다. 자본가들은 이윤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국가와 좋은 관계를 맺을 필요가 있기에 부패를 합리적 ‘투자’로 본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이런 자본주의적 부패가 드러났다. 과적과 무리한 출항 등은 청해진해운이 인천해경 간부 등에게 뇌물을 준 덕분에 제지를 받지 않았다. 선원 안전교육에는 투자하지 않고 접대비에만 수천만 원을 쓴 덕분이다. 2차 청문회에서는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유착관계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 당일의 기록과 배경 등을 꾸준히 추적해 온 기록들을 종합해 보면, 결국 세월호 참사는 기업의 이윤 논리와 이를 원활히 흘러가도록 정부가 편 민영화와 규제 완화 등 친기업 정책, 국가의 부패 등이 빚어낸 비극이라는 점은 점점 더 분명해 진다.

△2014년 5월 전국교사대회 ⓒ사진 이미진

따라서 세월호 진실 규명 투쟁의 의의를 정확히 규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운동의 전망과도 연결되기 때문이다. 수많은 사람이 여전히 참사의 슬픔을 잊지 않고 거리로 나와 진실 규명을 외치는 데에는 생명보다 이윤을 앞세우는 지금의 사회 운영 방식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자리하고 있었다. 진실 규명 투쟁을 통해 남은 의혹을 철저히 밝히고 운항과 구조, 진실 은폐에 이르기 까지 참사를 둘러싼 구체적 책임을 낱낱이 따져 국가 공인 보고서로 남겨 공개해야 한다. 이런 결론은 더 나은 사회를 위한 투쟁, 특히 책임자 처벌과 안전사회를 위한 각종 기업 규제 법 등을 제정하는 일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투쟁은 단지 의혹들을 푸는 것에 멈추는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음모론으로 파편적 의혹 제기에만 몰두하는 것도, 구조적 진실은 거의 드러났으니 이제 안전사회 건설 캠페인이 더 중요하다는 식 모두 일면적이다.

사악한 박근혜 정부는 진실 규명을 철저히 짓밟는데 몰두해 왔다. 경찰과 검찰을 동원해 운동을 탄압했고, 친자본주의 언론들도 왜곡 · 진실은폐에 가세했다. 경제 위기 시대에 이윤 체제의 문제점이 국가기관의 이름으로 폭로되면 앞으로 ‘친기업·반노동’ 정책 추진의 정당성에 제약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깊이 고려했을 것이다. 일부라도 국가 관료들이 처벌 받으면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현 정권의 정당성에도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경제 위기 고통전가를 위해 일치단결해 박근혜를 지지했던 지배자들이 세월호 지우기에 한 마음이었던 이유일 것이다. 박근혜는 진실 규명이 이뤄지는 것을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세월호 진실 규명 투쟁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

이렇듯, 세월호 참사를 자본주의의 근본 모순들 속에 자리매김할 때, 참사의 성격과 정권의 책임을 더 잘 연결시켜 분석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는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여러 사실들을 꿰어 이 참사의 본질에 접근하도록 하는 훌륭한 도구다. 그러므로 우리의 자본주의 비판이 박근혜 정부의 책임에 면죄부를 준다는 일각의 비판은 황당무계한 것이다.

해악적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세월호 진실 규명이 “단 한 명의 생명도 포기하지 않고 책임질 줄 아는 사회”를 만드는 과정이라고 했다. 유가족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자기 가족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그렇기에 “안전 사회 건설”이 이 운동의 “최종목표”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일각의 음모론은 이러한 운동의 핵심적 의의를 부정하는 것이다. 음모론에 따르면, 세월호 참사는 “알 수 없는” 음모에 의해 그날 세월호를 탄 사람들에게만 닥친 비극일 뿐이다. 일각의 ‘고의침몰설’은 몇 가지 의혹을 빌미로 부분적 사실들을 취사선택해 임의로 사건을 재구성한 후 총체적 진실을 대체하려 한다. 일각의 음모론이야말로 참사를 (희생자들 처지에서는) 우연적 비극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세월호 운동의 의의를 부정할 뿐만 아니라, 이미 확인된 실체적 진실에서도 사람들의 주의를 돌려 버린다.

진실을 밝히려는 의혹 제기와 음모론은 다르다. 의혹은 사전적 의미로 ‘의심하여 수상히 여김’이다. 음모는 ‘나쁜 목적으로 몰래 흉악한 일을 꾸밈’이라는 뜻이다. 《세월호, 그날의 기록》 저자들의 말처럼 세월호 참사는 음모론 없이도 “전체 맥락에서 봤을 때는 해소할 수 있는 부분이 굉장히 많[다.]”

결국 일각의 음모론은 체제를 작동 원리를 규명해 구조적으로 이해하는 일에서 무능함을 입증할 뿐이다. 무엇보다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은 구조적 이해를 통해 진실 규명 운동의 전략을 제시하고 정부를 가장 효과적으로 약화시킬 사회적 힘이 어디에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는 데에 있다. 이는 음모론과 달리 갖는 탁월한 강점이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 대부분은 노동계급의 자녀이거나 노동자들이었다. 자본주의에서 안전 문제는 곧 계급의 문제다. 노동자들은 작업장에서 위험으로부터 자신과 사회를 지켜낼 통제권이 없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손에서 이 사회의 대부분이 만들어지고 운영되기 때문에 노동계급의 안전은 사회 전체의 안전과 결부돼 있다. 그러므로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들 — 인력 충원, 민영화 반대, 비정규직 반대 — 은 사회 전체 안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과제다.

사회의 물자와 재원을 안전에 더 투자하게 하려면 그것들을 손에 쥐고 있는 자본가 계급의 양보를 강제해야 한다. 이윤을 창출하는 노동계급은 안전 강화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일손을 놓고 체제의 작동을 멈출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 노동자들이 고유의 힘과 투쟁 방식으로 가장 효과적으로 지배계급을 압박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런 힘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서 발휘되는 것이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참사 직후부터 전교조를 포함해 많은 노동자들이 유가족과 일체감을 느끼며 운동에 동참해 왔다.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에 노동계급이 참가하는 것도 좋고, 그 투쟁과 맞물려 함께 벌어지는 것도 좋다. 노동계급의 참여는 박근혜 정부의 위기를 심화시켜 투쟁의 전진을 이룰 수 있다.

지난 4월 26일, 1989년 영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힐즈버러 참사’가 “팬들은 잘못이 없다. 오히려 불법적으로 죽음을 당했다”는 판결을 받았다. 27년 만이다. 유가족들과 원칙 있는 좌파들이 전국을 돌며 진실 규명 투쟁을 쉬지 않고 해 온 결과다. 이처럼 진실 규명이 더딜지라도, 유경근 집행위원장의 말처럼 저들보다 “딱 1분만” 더 싸운다는 정신으로 싸운다면 가능하다. 마르크스주의의 통찰은 진실을 향한 투쟁을 멈추지 않고 이어가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입력 2016-04-3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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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 기간 보장 받으려면

기층 운동 건설에 신경써야 한다

김지윤

19대 임시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통과가 사실상 무산될 듯하다. 5월 12일에 열린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농해수위) 마지막 전체회의에서 특별법 개정안은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 속에 법안 소위를 통과되지 못했다. 새누리당 소속 위원들은 뻔뻔하게도 더민주당이 농해수위를 단독개최한 것을 규탄하는 성명까지 발표했다

5월 13일 여야 3당 원내지도부와 만난 자리에서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 기간을 6월 이후로도 보장하는 것에 대해 거부 의사를 분명하게 밝혔다. 박근혜는 “그걸 연장하면 세금도 많이 들어가고 여론도 찬반이 있다”며 “국회에서 협의해서 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4월 27일 언론사 보도국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한 말을 되풀이한 것이다. 총선 패배 후유증에서 벗어나 노동계급을 공격하려는 박근혜는 자신의 아킬레스건인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쟁점이 되는 것을 어떻게든 막으려 한다.

시행령 개정이라는 ‘꼼수’

그러나 세월호 참사 2주기를 계기로 특조위 조기 강제 종료에 대한 반대 여론이 강력해지자 슬그머니 꼼수를 부리고 있다. 해양수산부와 새누리당은 7월 세월호 인양 후 특조위가 선체 조사를 할 수 있도록 시행령을 수정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언론에 흘리고 있다. 그러나 이는 세월호 특조위 활동이 6월 30일에 종료된다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인 데다가 선체 조사로만 활동을 한정한다는 문제점이 명백하다. 시행령 개정 의사 흘리기를 통해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 세력을 교란시키려는 얕은 수작이다.

따라서 유가족들과 4 · 16연대의 요구대로 특별법을 개정해 특조위의 활동을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 특별법 개정안에는 ‘위원회 활동기간 내에 세월호 인양 후 선체에 대한 정밀조사가 완료되지 아니한 경우에는 …활동기간을 세월호 선체인양이 완료되어 위원회의 선체조사가 시작된 날부터 6개월이 되는 날까지로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세월호 침몰의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고, 검찰의 조타 실수로 인한 대각도 변침 주장은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았으므로 가장 중요한 증거인 선체를 특조위와 유가족들이 정밀 조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조사 대상인 해수부가 단독으로 선체를 조사하게 해선 안 된다.

△세월호 참사는 청년들에게 정치적 각성의 계기였다. '세월호 세대'는 2주기 집회에 참가해 운동에 대한 변함 없는 지지를 보여 줬다. 이런 가능성과 잠재력을 운동 건설과 연결해야 한다. 4월 16일 세월호 참사 2주기 추모 문화제에 참가한 대학생들. ⓒ이미진

여소야대

일각에서는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라 특별법 개정이 가능하리라는 낙관적 전망을 갖고 있다. 하지만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을 믿어서는 안 된다. 이미 더민주당은 세월호 참사를 부른 민영화를 확대할 병원 인수 합병안을 새누리당과 야합하려다 보건의료노조를 비롯한 의료 민영화 반대 단체들이 더민주당 당사 안 농성을 벌이자 슬그머니 후퇴했다. 무엇보다 두 자본주의 야당은 2014년에 유가족들의 염원은 반영하지 않은 반쪽짜리 특별법이 통과되도록 야합한 주범들이다. 따라서 4 · 16연대는 자본주의 야당과는 독립적으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진상 규명 활동 보장 요구를 알리고 국회 밖에서 아래로부터의 압력을 형성해야 한다.

박주민 당선자가 20대 국회에서 큰 구실을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들도 꽤 있을 테지만, 더민주당 내의 압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최근 박주민 당선자는 더민주당 내 당선자들을 상대로 법안 개정 동의 서명을 벌였는데 이 과정에서 운동이 요구하는 ‘사법경찰의 권한’에 관한 조항을 개정안에서 삭제했다. 이 조항은 사실상 특조위가 수사권을 갖도록 하자는 것인데, 반쪽짜리 특별법으로 특조위가 이렇다 할만한 활동을 하기 어려웠다는 점을 고려하면 권한 확대를 강력히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일이다. 최근 특조위가 ‘전원 구조’ 오보와 유가족들을 폄훼 보도한 책임을 물으려 MBC 사장 안광한과 전 보도본부장이자 현 대전MBC 사장인 이진숙에 대한 동행명령권을 발동했지만 이들은 몰래 건물을 빠져나가 출석에 불응했다. 이들에 대해 1천만 원 벌금을 물리는 것 외에는 강제 수단이 없는 실정이다. 특조위 권한의 한계가 또 한 번 드러난 것이다.   

특별법 개정이 국회에서 처리돼야 하지만 운동의 시야를 당장의 의회 내 세력관계로 좁혀선 안 된다. 특별법이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되려 해도 국회 밖에 활동의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 국회 밖에서 대중 투쟁을 건설해 국회와 박근혜를 압박할 수 있다는 관점으로 진실 규명 운동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지난 2014년 특별법 제정 운동의 경험을 돌아보자. 2014년 정부와 주류 정당들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생색내기 애도로 끝내려 했다. 당시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특별법을 요구하며 국회 내 농성, 청와대 앞 농성, 거리 항의 시위 등을 하며 여야를 압박했다. 매주 수만 명이 거리 시위에 동참했고 단기간에 6백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특별법 서명에 동참했다. 이런 과정 때문에 여야는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의 가이드 라인 하에서 새누리당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새정치연합은 기소권에 대해 처음부터 요구하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는 수사권마저 포기하며 세 번이나 유가족의 뒤통수를 쳤다. 이런 과정을 겪으며 운동 내 일부 온건파 리더들이 이 과정에서 국회 안 협의에 골몰하다보니 새정치연합(현재 더민주당)과 새누리당이 수용할 만한 수준으로 요구를 후퇴시켜야 한다는 압력에 취약해 졌다. 국회 안 세력 관계를 최우선하다 보면 또 다시 이런 약점에 빠질 우려가 있다. 운동의 무게 중심을 국회 밖 투쟁 건설에 분명히 두는 게 중요한 이유다.

설령 특별법 개정이 난항을 겪더라도 특별법 개정안에 담은 진실 은폐 저항의 의의와 정당성을 옹호하며 원칙있게 싸우려 해야 저항의 불씨를 키울 수 있다. 지난 2년의 운동을 돌아보면 이게 진상 규명 운동을 전진 시키는 데 이로웠다.

정조준

정의당을 포함해 진보 · 좌파 당선자들이 국회의원이라는 신분을 충분히 활용해 운동의 자신감을 불어 넣으려 애써야 한다. 정의당은 가습기 살균제 문제에서도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하며 당장 특별법을 통과시키고 청문회 등을 개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와 주류 정당들의 보여 주기 식 “협치”에 대해서도 비판의 날을 세우고 있다. 정의당은 20대 국회 핵심 과제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꼽고 있기도 하다.

한편, 4 · 16연대는 지금 유가족들이 절실하게 촉구하고 있는 3차 청문회가 정부를 겨냥해 열어야 한다고 특조위에 적극 요구해야 한다. 물론, 특조위가 박근혜 정부를 정조준하려 들면 만만치 않은 공격이 벌어질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청와대 당일 행적을 조사 대상으로 올린 것만으로도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이 전원 사퇴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특조위가 성역 없는 조사를 하려고 해야 청문회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높아질 것이고 특조위 조사기간 보장의 정치적 명분도 더 분명하게 확보할 수 있다. 향후 정부 여당의 방해 공작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기층이 운동 건설에 신경 써야 한다.

참사 2주기 집회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여전히 이 쟁점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크고 유가족들의 호소에 행동으로 응답하려는 지지가 여전하다는 점이 확인됐다. 세월호 참사를 한국전쟁 이후 가장 충격적 사건으로 꼽는 수많은 청년들에게 세월호 참사는 정치적 각성의 계기였다. 박근혜 정부가 진실을 은폐하려 하면 할수록 불만과 분노도 깊어질 것이다. 이윤 중심 체제와 이를 수호하는 국가의 실체를 생생히 보여 줬다는 점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여러 불만들이 모이는 정치적 의제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세월호 참사는 대선 전후에 거듭 정치적 핵심 의제로 부상할 수 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에 진지하게 나선 활동가들은 박근혜 정부와 주류 정당들의 미온적 태도에 대한 폭로를 이어가며 기층의 투지를 유지하려 해야 한다.

최근 진실이 드러나고 있는 살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은 이윤 체제와 국가 기관에 대한 분노를 다시금 자아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줄곧 요구해 온 안전사회 건설의 필요성이 다수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얼마나 절실한 것인지도 분명해 졌다. 운동의 정당성을 널리 알리며 긴 안목으로 집요하고 원칙 있게 투쟁을 건설하려 해야 한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이윤 중심 체제의 문제와 연결하려 해 온 좌파들은 이 체제를 멈출 힘을 갖고 있는 노동계급이 진실 규명에 나설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갖고 설득하려는 활동을 벌여야 한다.  

입력 2016-05-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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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업사이드 다운>

‘뒤집어진 세월호’, 그리고 ‘뒤집어진 세상’

김무석 (‘세월호를 기억하는 건국대 학생들’ 활동가)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앞두고 개봉한 영화 <업사이드 다운>이 상영을 이어가며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 힘을 보태고 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영화 시사회 등에 참석해 지난 2년간의 고통을 전하며 더 많은 사람들이 진실 규명에 함께 할 것을 호소해 왔다. 나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과 함께 영화를 봤다.

△영화 <업사이드 다운> 포스터 

영화는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 속에서 아이를 잃은 네 아버지들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이들은 목놓아 울지 않는다. 다만 참고, 더 참을 수 없을 때 복받치는 서러움과 그리움을 흘린다. 담담하게 흘러가는 이야기들 속에 아픔이 묻어난다.

영화는 65분 정도로 세월호를 다룬 다른 영화보다 호흡이 짧고, 압축적이다. 상영 시간은 짧았지만 세월호와 관련해 짚어야 할 사실들과 비판들은 무엇 하나 놓치지 않았다.

언론은 정부의 목소리만 전했고, 유가족들의 목소리는 전하지 않았다. “전원 구조” 같은 오보를 남발했고, 구조 작업이 진행되지 않고 있는데도 대규모 인력이 구조에 동원되고 있다고 거짓말했다. 김동빈 감독은 왜곡과 받아쓰기로 가득하고, 정부에 대한 비판은 온데간데 없는 언론의 모습을 보며 영화를 만들 마음을 먹었다고 한다.

영화는 침몰의 원인으로 과적과 고박되지 않았던 화물, 빠져 있던 평형수 같은 1차적 요인뿐 아니라, 이명박 정부 때 선박 연령 제한이 풀린 것이나 무분별한 증축을 한 것 등 좀 더 총체적인 요인들도 지적한다. 비정규직과 같은 노동 문제와 세월호 참사를 연결시킨 것도 인상적이다. 알바생으로 승선한 선원들까지 포함하면 선장을 포함해 세월호의 절반이 넘는 선원이 비정규직이었다. 정부와 국가는 아이들을 구조하지 않았다. 민간 잠수사들은 해경이 잠수 활동도 제대로 하지 않았고, 문제가 생기면 민간 잠수사에게 책임을 떠넘겼다고 증언했다. 영화는 이윤을 위해 안전이 희생된 것을 비판하며 인간이 더 우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상영회가 끝나고 김동빈 감독과 예슬이 어머니, 아버지와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졌다. 김동빈 감독은 “업사이드 다운은 영어로 뒤집혔다는 뜻이다. 뒤집어진 세월호를 뜻하기도 하지만, 뒤집어진 것은 단지 세월호가 아니라 이 세상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우리는 세월호를 인양해야 한다. 그러나 인양해야 하는 것은 세월호뿐 아니라 뒤집혀져 있는 이 사회 전체가 아닐까? 나는 제목 <업사이드 다운>을 이 사회도 다시 뒤집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했다.

김동빈 감독은 사회를 바꾸기 위해 힘을 합쳐 단결해야 한다는 메시지도 던졌다. 그는 “미국에서 조직폭력배의 비리를 밝히려던 기자가 살해되자 전국에서 기자들이 모여 희생된 기자가 못다한 취재를 마무리했고, 그 결과 청부살인을 사주한 조직폭력배가 법정에 서고 처벌받았다”는 사례를 소개하며 “한 명을 막을 수는 있어도 모두를 막을 수는 없다”고 말했다.

간담회에 함께 한 예슬이 어머니는 “있지 않고 있어요. 기억하고 있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 가장 먹먹하다며, 아이들의 죽음이 잊혀지지 않고 무의미하게 되지 않길 바란다고 하셨다. 예슬이 아버지는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를 때는 손 한 번만 잡아줘도 힘이 된다며, 어떤 말보다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이 가장 큰 힘이라고 하셨다. 이 글을 읽는 우리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되고, 함께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자.

<업사이드 다운>의 장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해 생각해 볼 만한 것들을 많이 제시한다는 데 있다.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 참사를 생각해보고, 얘기를 나눠 보고, 다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상영관 소식은 영화 배급사인 ‘시네마달’의 웹사이트에서 볼 수 있다.

입력 2016-05-1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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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준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벌금형 선고 규탄

세월호 운동 참가에 불법 딱지를 붙인 재판부

김지윤

5월 19일 최영준 4 · 16연대 상임운영위원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집회 참가에 대해 벌금형을 선고 받았다. 이날 재판부(서울중앙지법 형사3단독 김종복 판사)는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에 대해 일반도로교통방해 혐의를 인정하며 벌금 2백만 원을 선고했다.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은 즉각 항소했다.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은 지난해 4월 11일 광화문에서 열린 세월호 인양과 정부 시행령 폐기를요구하는 집회에 참가했다가 소환됐고, 검찰은 징역 1년을 구형했다. 당시 검찰은 최영준을 비롯해 박래군, 이태호, 김혜진 상임운영위원들에게 소환장을 발부하며 운동 전체를 위축시키려 했다.

판사는 당시 집회가 "신고와 다른 내용"이었다는 점과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이 “동종 범행으로 처벌받은 전력이 있음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일반교통방해 행위를 해 죄질이 가볍지 않다”고 선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오히려 당시 차벽을 쌓아 집회와 교통을 방해한 것은 경찰이었다. 경찰은 교통CCTV를 이용해 집회 참가자들을 불법 채증하고, 소방용 물까지 사용해 물대포를 쏘는 등 온갖 물리력을 사용해 집회 참가자들을 공격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에 대해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무엇보다 ‘쓰레기’ 시행령을 통과시켜 세월호 특조위를 마비시키고 진실을 은폐하려는 시도에 대해 격렬히 저항한 것은 완전히 정당했다. “동종 범행 전력”은 오히려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비롯해 이 사회의 정의를 위한 활동에 헌신해 온 것을 보여 주는 것일 뿐이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 참가에 벌금형을 선고해 불법 딱지를 붙인 재판부는 비판 받아 마땅하다.

“항소해서 싸울 것”

참사 2주기가 지나는 내내 박근혜 정부의 진실 은폐 시도가 계속 되고 있다. 박근혜는 총선 패배 이후에도 특조위 활동을 6월 말로 종료하겠다는 뜻을 두 차례나 밝힌데다가 새누리당은 특별법 개정과 특검 실시에 반대하면서 최근에는 총선에 출마하려고 특조위원에서 사퇴했던 황전원을 다시 특조위원으로 추천했다. 

5월 20일에는 참사 당시 해경이 가장 먼저 현장으로 출동했던 해경123정의 CCTV 본체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드러났다. 그간 유가족들이 수 차례 본체 제출을 요구했지만 해경은 번번이 없다고 발뺌해 왔다. 만일 진실 규명 운동이 이어지지 않았더라면 진실은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을 것이다. 따라서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이 법정에서 주장해 온 대로 진실 은폐 세력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정의이고, 이에 대해 침묵하는 검찰과 사법부는 규탄받아 마땅하다.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은 1심 내내 모두 진술최후 진술을 통해 법정에서도 굽힘 없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지배자들의 위선을 폭로했다.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은 항소심에서도 당당히 싸울 것이라고 의지를 다지고 있다.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의 법정 투쟁에 대한 지지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

입력 2016-05-2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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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규명을 위해 세월호 특별법은 개정돼야 한다

김지윤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 등을 골자로 한 세월호 특별법 개정 과제가 결국 20대 국회로 넘어갔다. 20대 총선에서 박근혜는 패배했지만 박근혜는 경제·안보 위기 대처에 초당적 협력을 하자며 야당의 협조를 유도하고 여권을 단속해 국정 주도권을 잃지 않으려 한다. 20대 국회 개원을 앞두고 “경제 위기와 안보 불안 등 안팎으로 어려움이 많은 시기인 만큼 국회가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헌신해주시기 바란다”고 한 것이 바로 고통전가 공세를 멈추지 않겠다는 뜻이다.

새누리당은 20대 국회 1호 법안으로 청년기본법, 규제개혁특별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노동개혁’ 4법, 사이버테러방지법 등 8개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다. 그러나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은 여간해선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뻔뻔스럽게도 책임자들이 이미 다 중한 처벌을 받았다며 특검의 필요성도 부정하고 있다. 야권의 특별법 개정안 상정도 국회 선진화법을 이용해 막으려 할 것이다.

19대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끝까지 외면했을 뿐만 아니라 새누리당 공천을 받으려고 자진 사퇴한 황전원을 다시 특조위 부위원장으로 앉히는 데에 동의했다. 황전원은 참사 당일 청와대 대응 조사를 특조위가 가결한 것에 반발해 사퇴 협박을 했던 자다.(유가족들은 지난 2월에 특조위 활동 방해 등을 이유로 황전원을 고발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황전원 임명안을 상정하는 데에 찬성했다. 유가족들이 황전원의 특조위 출근을 막는 등 항의가 이어지고, 공천 신청 전력으로 법률이 정한 위원 자격을 상실했다는 논란이 일자 그제서야 문제의 심각성을 몰랐다며 발뺌했다. 그들의 불철저함이 다시금 확인된 셈이다. 더민주당 김종인은 20대 국회 첫날 “경제 성장”과 “안보”를 강조했는데, 각종 노동악법들과 규제 완화 법안들에 대해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원칙적 반대를 하지 않는다. 규제프리존에 대해서도 더민주당은 “독소조항”만을 문제 삼아 왔다.

△울산 현대차 공장에서 열린 세월호 특별법 개정 서명전. 민주노총은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의 중요한 일부다. 세월호 운동과 노동계급 고유의 힘을 연결하는 것은 이 운동의 중요한 과제다.  ⓒ사진 출처 4 · 16연대 

무기 구입엔 5조 원 쓰면서 특조위는 세금 낭비?

한편, 진상 규명 활동에 대한 정부의 집요한 방해는 여전하다. 특조위는 5월 28일 세월호 뱃머리를 들어올리는 ‘선수 들기’ 작업 실지 조사에 나섰지만 조사 전날 해수부가 일정을 연기한다고 급작스럽게 통보했다. 특조위 조사관들이 작업 현장에 접근하는 것도 막았다.

해수부는 법적으로 보장된 조사권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6월 특조위 종료 후 선체 조사 일부 허용’ 안을 던졌다. 7월 인양이 다가올수록 유가족들 사이에서 침몰 원인 규명과 미수습자 수습에 대한 절박함이 커지는 것을 파고들어 올해 내에 세월호 관련 쟁점을 마무리하겠다는 나름의 계산이 깔려 있을 것이다.

해경은 특조위의 교신 내용 자료 제출 요구도 내부 보안 규정을 이유로 거부하고 있다.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4월 16일부터 수색이 종료된 그 해 11월 11일까지의 해경과 군의 교신 내용이 있는 주파수공용통신(TRS) 서버를 해경에 요구하고 있다. 이 자료는 구조에 책임이 있는 이른바 ‘윗선’의 교신 기록으로 아직 공개된 적이 없다. 해경은 기밀 운운하며 특조위가 요구하는 부분만 편집해 제출하겠다고 억지를 부렸다. 해경은 이미 녹취록을 누락 · 변조한 전력이 있다. 이들의 말을 믿을 수 없는 이유다.

해경과 해수부의 작태는 국가 기관이 특조위 조사에 철저히 협조하도록 강제하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 주고 있다.

지금 해수부와 해경 등이 이토록 막무가내로 나가는 것은 박근혜 정부의 조사 방해 의지가 확고하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세금” 타령을 하며 특조위 활동 보장을 거부하고 있다. 그러나 국방부가 최근 발표한 2017~21년 국방중기계획에 따르면 향후 5년간 국방 예산은 2백26조 5천억 원에 달한다. 최우선 추진하겠다는 킬체인과 KAMD 구축에만 7조 9천억 원을 퍼부을 계획이다. 지정학적 불안정성을 심화할 무기 구입에는 아낌없이 ‘세금’을 쓰면서 정작 수백 명이 희생된 참사의 국가 책임을 규명하는 일에는 한 푼도 아깝다는 것이다.

게다가 청해진해운의 뇌물 공여 혐의에 대해서도 줄줄이 무죄 판결이 나오는 상황이다.

성역 없는 조사

따라서 아직 밝혀야 할 진실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려나가야 한다. 검찰이 발표한 침몰 원인이 법원에서 인정되지 않아 공식 침몰 원인 규명은 여전히 중요하다. 특히 구조 실패와 세월호 운항의 책임이 있는 정부에 대한 조사가 필수적이다.

특조위 청문회가 이런 구실을 부분적으로 할 수 있다. 4 · 16연대는 특조위가 법률로 보장된 권한을 최대한 활용해 박근혜 정부와 국정원에 대한 조사를 공표하라고 요구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정부 하에서 핵심 국가기관을 조사하는 것이 매우 어려울 수 있지만 회피하지 않고 오히려 핵심을 두들기며 싸워야 특별법 개정 운동의 정당성(과 이를 막으려는 정부의 본심)을 효과적으로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설령 6월 내에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이 되지 않더라도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이 정치적 명분을 쥐고 이후 투쟁을 건설하는 데에 유리하다. 이런 점에서 6월 청문회 개최가 7월로 미뤄진 것은 아쉽다.

한편 20대 국회가 여소야대라는 점 때문에 특별법 개정이 가능하리라는 낙관도 있다. 하지만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의 행보를 보면 이들을 믿기 힘들다. 4 · 16연대는 6월 8일까지 특별법 개정 범국민 서명을 받아 입법 청원을 하려 한다. 무엇보다 4 · 16연대는 입법 청원 서명 운동을 계기로 특조위 조기 종료에 항의하는 대중 행동을 건설하는 데에 집중해야 한다. ‘6월 특조위 종료 후 선체 조사 일부 허용’ 따위의 해수부 꼼수안에도 분명히 반대해야 한다. 더민주당 등 야당이 선체 조사 허용 운운하며 타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4 · 16연대는 이 꼼수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천명하고 박주민과 진보정당 의원들에게도 분명한 입장을 요구해야 한다. 요컨대 국회에서 실질적인 진전을 위해서는 특별법 개정에 대한 단호한 입장과 국회 밖 대중운동 건설이 중요하다. 4 · 16연대 활동의 강조점은 여기에 있어야 한다.

따라서 6월 25일 ‘세월호 진상 규명, 특별법 개정, 특검 실시 범국민대회’를 규모 있게 치르는 것이 중요하다. 이 시위가 박근혜 정부를 겨냥해 강력한 항의 분위기 속에 치러진다면 하반기 투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편, 국회 내에서의 폭넓은 동의를 운동의 목표로 삼으면 부르주아 정당들도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우리 운동이 요구를 삭감시켜야 한다는 압력이 생길 수 있다.

최근 민주노총은 울산 현대차 공장 등 작업장에서 유가족 간담회를 열고 서명전을 펼치는 등 세월호 특별법 개정 운동의 중요한 일부로 활동하고 있다. 여러 대학 세월호 모임들과 대학생 활동가들은 노동절 집회와 전국 교사대회에 참가해 노동자들의 투쟁 동참을 호소하며 서명 운동을 하는 등 노동자들 속에서 세월호 운동의 지지를 끌어내고자 했다. 이런 활동이 장차 자본가들의 이윤을 공격하고 박근혜 정부에 심대한 타격을 줄 노동계급 고유의 힘이 세월호 투쟁에서도 발휘되게 하려는 노력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

입력 2016-06-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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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종료 위기에 처한 세월호 특조위

아직 밝혀야 할 진실들이 많다

김승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가 실질적으로 활동을 시작한 지 9개월 남짓한 시간이 흘렀다. 유가족들은 특조위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의 손과 발이 되길 바라며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을 위한 특별법 개정 운동을 벌이고 있다. 그동안 특조위가 이룬 성과와 한계를 돌아보면서, 진실 규명 운동이 앞으로 전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본다.

‘반쪽짜리’ 특별법과 ‘쓰레기’ 시행령

유가족들은 기존의 특별검사 제도가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기 때문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독립적인 진실 규명 기구를 요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요구를 지지하며 거리 시위에 동참했다. 그러나 정부의 악랄한 방해와 야당의 배신적 합의,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의 부적절한 타협으로 인해 2014년 11월, 제한적 조사권만 보장하는 ‘반쪽짜리’ 특별법(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만들어졌다.

제한적 조사권 등에 발목 잡힌 특조위마저 닫아 버리려는 박근혜 지난 3월에 열린 세월호 제2차 청문회. ⓒ사진 이미진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반쪽짜리’ 특별법마저 무력화하려 했다. 제한적인 조사일지라도 진실의 실마리를 찾아내면 사람들의 진상 규명 의지를 자극할 수 있으므로, 그 가능성을 원천 봉쇄하고 싶었던 것이다. 특조위 발족을 거듭 방해하던 정부는 급기야 정부가 파견한 고위직 공무원이 특조위의 전체 업무를 총괄하도록 하는 시행령을 내놓았고 유가족과 수많은 사람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2015년 5월, 이것을 통과시켰다.

이로써 특조위는 처음부터 많은 한계를 안고 출발할 수밖에 없었다.

빙산의 일각

특조위는 제한적 조사권에 발목이 잡혀 있다. 선체 조사나 정밀과학 조사, 기록물 관리 등에는 아예 예산이 배정되지도 않았다.

정부의 방해도 끊이지 않아, 해수부가 새누리당 추천 특조위원들에게 ‘특조위가 청와대를 조사하려고 하면 보이콧과 사퇴 협박을 하라’고 지시한 문건이 폭로되기도 했다.

그 결과 특조위가 지금까지 밝혀낸 것은 전체 진상 규명 과제에 비춰보면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물론 아무 성과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특조위는 2차 청문회에서 검찰의 세월호 침몰 원인 분석이 신뢰성 없는 시뮬레이션에 기반했을 밝혀냈다. 특히 가장 중요한 데이터인 AIS 항적도가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경로를 그리고 있음이 드러났다. 목포해경 123정 승조원한테서 자신들이 구조한 사람들이 선원임을 인지하고 있었다는 진술을 확보하기도 했고, 해경이 제출한 VHF(관제센터 통신 채널) 기록과 공용무선망(TRS) 녹취록에 조작과 왜곡 흔적이 있다는 점 등도 알아냈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초입이다. 2015년 7월에 4·16연대와 4·16가족협의회가 발표한 ‘세월호 인양, 진상규명, 안전사회 대안 마련과 추모 지원을 위한 82대 과제’를 보면 진상규명 11개 분야 33개 과제가 제시돼 있는데 이때 의혹으로 제기되었던 무리한 출항의 배경, 사고 시점과 정확한 원인 등은 여전히 제자리에 있다.

특히 ‘세월호 참사를 야기한 구조적 원인’(규제 완화, 정경유착)과 ‘청와대의 부실 대응 및 진상 은폐 시도’ 등 청와대나 해경 최상층부에 대한 성역 없는 조사는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기대에 충분히 부응 못한 특조위

4·16가족협의회는 지난해 7월,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는 특조위를 향해 이렇게 당부했다.

“특별조사위의 활동을 ‘진상은폐위원회’로 변질시키려는 세력과의 싸움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만약 이에 굴복한다면 역사적인 특별조사위는 제 역할을 못한 채 특별법에 의해 보장된 시간만 버리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 특별조사위원회가 정부로부터 독립성을 확보하려면 피해자와 국민의 응원과 지지를 확보해야 합니다.”

유가족 추천 비상임 특조위원인 이호중 교수도 이렇게 말했다.

“특조위 활동 기한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를 특조위가 스스로 입증해야 합니다. 청와대나 국정원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를 시도하는 등 대중들에게 특조위가 아직 해야 할 일이 많다는 것을 보여 줘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특조위에는 이런 마음가짐을 충분히 공유하고 있는 특조위원들이 부족한 듯하다. 여당 추천 특조위원들이 아예 출석을 거부한 2015년 11월 이후, 나머지 특조위 위원들이 지난 7개월 동안 한 일은 두 번의 청문회를 제외하면 약 180여 개의 신청인의 조사 신청에 대한 조사 개시 여부 결정을 한 것이었다.

제24차 위원회에서는 청해진해운이나 한국선급 등에 대한 직권조사 계획을 내놓지 않는 것 때문에(특조위의 조사는 ‘직권사건 조사’와 피해자가 신청할 수 있는 ‘신청사건 조사’로 이뤄진다) “우리가 지금 활동 기간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아직도 계획을 안 세우고 있다면 언제 할 생각이신 거예요, 도대체?” 하고 회의에서 불만을 터트리는 비상임 위원도 있었다. 이런 점을 볼 때 특조위의 성과 부진을 오롯이 정부 방해와 여당 추천 위원들의 탓만도 아닌 것 같다.

 
 
 
 

△ 세월호 진실 찾기는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는 사회를 만드는 출발점. ⓒ사진 이미진

최근 6월 청문회를 제대로 계획하고 추진하지 않는 온건한 특조위원들에 대해서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6월은 정부의 강제 조기 종료 협박에 맞서 특조위의 존재감을 드러내야 할 중요한 시기다. 하지만 아쉽게도 특조위는 6월에 3차 청문회 계획을 내놓지 않고 있다. 청문회를 통해 진실의 실마리라도 들춰내고 운동에 힘을 불어넣기보다는 더민주당의 구실에 기대려 하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진상 규명의 전진을 위해

특별법에 규정된 특조위의 업무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 원인을 제공한 제도에 대한 대책을 수립하며, 재해·재난의 예방 등 안전한 사회 건설을 위한 종합대책 수립이다. 그런데 세월호 참사의 진상과 진정한 책임자를 밝히고 안전한 사회를 건설한다는 것은 자본주의의 동역학과 여기에 연관된 핵심 이해당사자들, 즉 자본과 국가를 조준하는 싸움일 수밖에 없다. 그런 싸움을 우회해서는 참사의 직접적 원인도 제대로 밝혀낼 수가 없다.

실제로 ‘82대 과제’가 제시하고 있는 안전사회 대책 4개 분야 24개 과제를 보면 기업주의 이윤을 위협하고 정부의 공적 투자를 강제해야만 가능한 것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선박 안전의 개선 대책뿐만 아니라 박근혜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의 타당성을 점검하고, 공공부문 민영화의 대책을 강구하며, 안전의 주체로서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할 방안에 대해 촉구하고 있다. 산업재해에 관한 기업의 책임을 강화하기 위한 산업부문별 대책도 마련해야 한다고 돼 있다.

세월호 참사는 무한 이윤 경쟁 체제인 자본주의와 그 체제를 지키고자 하는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 낸 참사다. 그렇기에 진실을 규명한다는 것은 단순히 의혹을 해명한다는 차원을 넘어서 세월호 참사를 유발한 이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들을 파헤치고 그것을 통해서 이윤보다 생명이 우선시 되는 사회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어야 한다.

 

입력 2016-06-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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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각지에서 모인 진실 규명 염원을 담아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하다

김지윤

진실 규명을 위해 특별법을 개정하라 박근혜 정부의 특조위 조기 종료 시도를 막아내고 성역 없는 진상 조사가 되도록 해야 한다. 6월 8일 국회 정문 앞을 가득 메운 유가족들과 기자회견 참가자들. ⓒ이미진

4 · 16가족협의회와 4 · 16연대는 6월 8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 앞에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위한 20대 국회 입법청원 기자회견을 열었다. 뙤약볕 아래에서도 유가족들을 비롯한 2백여 명이 기자회견에 참가했다. 기자회견 장소에는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3백4명의 염원을 담겠다는 취지로 3백4개 봉투에 32만 4천5백62명 서명용지를 나눠 넣어 놓기도 했다.

이번 개정 청원안은 특조위 활동 개시 시점을 사무처를 포함한 조직의 구성을 마치고, 기획재정부가 예산을 배정한 날로 명확히 할 것, 세월호 인양 후 선체 정밀 조사를 특조위 권한으로 명시하며 인양 후 6개월에서 1년까지 활동을 보장할 것, 국가기관의 협조 의무를 명시할 것을 주요한 내용으로 하고 있다. 특조위를 조기 종료시켜 진실 은폐를 밀어 붙이려 하는 정부의 시도를 막아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피해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법률 개정안도 국회에 접수했다. 이 개정안은 희생자 혹은 피해자의 범위를 민간인 잠수사, 희생된 소방공무원 등으로 확대하고 희생된 기간제 교원에 대한 순직인정 등을 요구하는 내용이다.

희생자 3백4명의 염원을 담아 기자회견장에 놓인 3백4개의 봉투들. 전국에서 모인 32만여 명의 서명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열망이 여전히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미진

유경근 4 · 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은 특별법 개정의 필요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얼마 전 구의역에서 우리 아이들과 같은 나이인 한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성역 없는 조사를 통해 책임자를 낱낱이 처벌하는 것이 아니고서는 어느 누가 안심하고 내 가족, 내 아이들과 살아갈 수 있겠는가?”

이태호 4 · 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20대 국회에서 여야가 6월에 이 법안을 처리해 주기를 바란다”고 촉구하고, 세월호 피해와 지원에 관한 특별법 개정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고(故) 김초원, 이지혜 단원고 교사는 끝까지 학생들을 구하려다 목숨을 잃었지만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박근혜 정부는 순직 인정을 거부하고 있다. ‘비정규직은 목숨 앞에서도 차별당해야 하나?’ 하는 울분이 터져 나왔다.

전국 기간제교사협의회 박혜성 교사는 “이미 국가인권위와 대한변호사협회가 기간제 교사를 교육공무원이라고 인정했다. 관행만을 앞세워 순직 인정을 거부하는 인사혁신처와 교육부는 순직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자들”이라 일갈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연세인의 모임 매듭’의 심산하 단장은 자신을 “세월호 세대”라고 소개하며 “20대가 살고 싶은 사회를 만들기를 원한다면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 박병우 대협실장은 “한상균 위원장도 세월호 집회 참가 등을 이유로 수감됐다”며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이 개정되지 않는다면 민주노총은 최선을 다해 투쟁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박성영 4 · 16연대 운영 위원은 “참사 2년이 지났지만 전국 곳곳에서 서명 운동은 계속 활발히 벌어졌다”며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요구가 여전히 뜨겁다고 강조했다.

자발적으로 구조 작업에 나섰지만 제대로 된 대우와 보상도 받지 못한 민간잠수사들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 민간잠수사 김상우 씨는 “그날 해경과 정부가 왜 그토록 구조에 무능했는지 아직도 이해할 수 없다. 20여 년 전 서해 훼리호 침몰 사고로 2백92명이 목숨을 잃었을 때 정부는 다시는 이런 일이 없겠다고 했지만 또 이런 일이 발생했다”고 비판하며 ”민간잠수사들도 진상 규명을 위해 함께 할 것”이라고 밝혔다.

기자회견을 마친 입법청원단은 봉투 3백4개를 나눠 들고 국회로 향했다. 국회 본관 앞 계단에서 전명선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우리 아이들의 비통함과 국민의 염원을 담아 이 자리에 모였다”며 입법청원의 의의를 밝혔다.

진실 규명 운동은 계속 된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유가족뿐 아니라 대학생들과 노동자들, 세월호 운동 지지자들이 함께했다. ⓒ이미진

△20대 국회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 염원 외면 말아야 기자회견이 끝난 후 유가족을 비롯한 기자회견 참가자들이 국회로 서명용지를 전달하러 가고 있다. ⓒ이미진

이날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를 “세금 도둑”이라 비난한 새누리당 김재원을 정무수석으로 앉혔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거부한 셈이다. 진실 은폐 의지를 또 한 번 확인한 만큼, 새누리당도 20대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안에 대해 완강히 버틸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입법 청원 이후에도 국회 밖에서 강력한 압력을 형성하려는 노력이 이어져야 한다.

정부가 이윤 중심 체제의 야만을 드러낸 세월호 참사의 진실을 감추려는 동안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구의역 참사 등 이윤을 앞세우다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이윤을 생명보다 우선하는 사회를 멈춰야 한다는 광범한 바람과 맞닿아 있다. 4 · 16연대는 이런 염원과 지지를 모아 특별법 개정과 진실 규명 운동을 건설해 나가야 한다. 4 · 16연대는 특별법이 하루빨리 개정되도록 촉구하기 위해 6월 말까지 서명운동을 벌이고, 6월 25일에는 범국민대회를 열어 진실 규명 의지를 모아낼 계획이다. 범국민대회에서 진실 규명을 향한 강한 의지와 열망을 보여 주자.    

△입법청원을 위한 서명용지를 든 유가족들이 국회 본관 앞 계단에 모여 있다. 이 자리에서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은 "부끄럽지 않은 부모, 어른이 되기 위해 노력해 왔다"며 특별법 개정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호소했다. ⓒ이미진

△국회 본관 앞 계단에 모인 입법청원단. ⓒ이미진

더민주당과 정의당,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공동 발의

입법청원 이후에도 진실 규명 운동이 이어져야 

김지윤

6월 7일에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1호 법안으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같은 당 소속 의원 1백23명과 정의당 소속 의원 6명 전원이 공동으로 발의하고, 박주민 의원이 대표발의한 것이다.

이 법안은 ‘특조위 활동 시점을 2015년 8월로 하고, 세월호 선체 조사권을 특조위 권한으로 명시하며 선체 인양 후 최소 6개월에서 1년까지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7일 개정안 발의를 알리는 기자회견에서 4 · 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해 6월 본회의 전에 개정안이 상정돼 조속히 처리되도록 힘을 모을 것이라고 전하면서도

“이번 법안이 저희 가족들이 생각하는 안에 미치지 못한다 … 특조위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가족들이 주장하는 개정안의 내용 중에 하나지만, [이번] 법안에는 그런 내용이 빠졌다"고 아쉬움을 솔직하게 표하기도 했다.

앞으로 4 · 16연대는 국회가 특별법 개정에 나서라고 요구하면서 독립적 태도로 진실 규명 운동의 중요성을 알리려 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의 진실 은폐 시도를 낱낱이 폭로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별법 개정을 위한 국회 안에서의 합의를 우선하면 국회 정당 간 타협을 이뤄야 한다는 압력에 취약해 질 수밖에 없다. 4 · 16연대는 유가족들의 염원을 올곧게 반영하며 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고 지지를 넓혀나가려 애써야 한다. 이런 압력 속에 정당들이 개정안을 통과시키지 않을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입력 2016-06-0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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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농성장 침탈 규탄 집회

“노란 리본에 찍힌 발자국을 잊지 말자. 더 질기게 싸우자!”

양효영

세월호 유가족들은 6월 25일 밤부터 특조위 강제 종료 중단, 세월호 온전한 인양,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농성에 들어갔다. 그런데 농성 단 이틀 만인 6월 26일 오후 2시 30분쯤 경찰은 유가족들이 잠시 농성장을 비운 틈에 농성장을 기습 침탈했다.

경찰은 처음에는 나무에 매단 노란 리본을 철거하라며 트집을 잡더니 이내 병력을 동원해 노란 리본을 뗐다. 그러고는 폭염을 피하려고 설치한 천막과 햇빛 가림막을 빼앗아 갔다. 뜨거운 아스팔트 위에서 뙤약볕을 그대로 맞으라는 것이었다.

경찰은 심지어 항의하던 유가족들을 폭력을 쓰며 연행했다. 예은 아빠 유경근 씨, 웅기 엄마 윤옥희 씨, 지성 아빠 문종택 씨, 제훈 아빠 김기현 씨가 중랑서와 도봉서로 연행된 상태다.

경찰 폭력으로 일부 유가족이 다쳤다. 순범 엄마 최지영 씨는 경찰이 햇빛 가림막을 빼앗으려는 것에 저항하다 노끈이 다리에 묶여서 다리를 다쳤다. 재능 엄마 강춘향 씨는 경찰이 천막을 빼앗으려는 것에 항의하다 안경이 부러지고 눈 주변이 찢겨 세 바늘을 꿰맸다.

ⓒ출처 416연대

ⓒ출처 416연대

416연대와 유가족들은 경찰 폭력을 규탄하며 바로 농성장으로 와 연대해 달라고 호소했다. 천인공노할 경찰 폭력에 놀라고 분노한 학생과 시민들이 한달음에 달려 왔다.

저녁 7시에 시작된 집회에 2백여 명이 모였다. 박근혜 정부의 만행에 분노해 바로 뛰쳐나온 학생과 시민들을 보며 유가족들은 위축되기는커녕 오히려 힘을 얻은 모습이었다.

집회에서 재욱 엄마 홍영미 씨는 “잡초처럼 꿋꿋하게 1백 번 짓밟히더라도 한 번 이기는 그 날을 위해 싸우자”며 결의를 다졌다. 순범 엄마 최지영 씨도 “리본에 찍힌 발자국을 잊지 말자. 저들이 가릴 수록 우리는 더 질기게 강하게 싸우자”고 호소했다.

6월 28일 특조위 강제 종료 행정 절차를 논의하는 국무회의를 앞두고,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유가족들이 항의하는 것이 정부에게는 눈엣가시였을 것이다.

또한 유가족들이 농성을 시작한 날인 6월 25일, 세월호 8백 일을 맞아 열린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문화제에 1만 명 가량이 참가했고, 정부의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를 규탄하며 특별법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국회의원들의 발언은 큰 환호를 받았다. 정부는 기대감이 생길 수 있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으려 했을 것이다.

416연대 이태호 상임운영위원도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을 상대로 (침탈) ‘작전’을 짜는 게 민주주의 국가냐”며 규탄했다.

지구지역행동네트워크 나영 활동가는 “박근혜가 4대악 운운하지만 진정한 악은 박근혜 정부 … 감추려는 자가 범인이다” 하고 규탄했다. 경기도에서 온 시민과 한 기독교인도 규탄 발언을 했다.

416대학생연대 소속 대학생들은 율동 공연을 했다. 일부 대학생들은 농성 첫날부터 유가족들과 함께 농성장에서 노숙을 했다. 농성장 침탈 소식을 듣고 달려온 사람 중에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사람이 많았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연행된 유가족들을 면회하고 농성장을 방문했고, 더민주당 박주민 의원도 농성장을 찾았다. 경찰 침탈에 대한 공분이 빠르게 퍼져가는 분위기에서 더민주당 의원 송영길이 참석하기도 했다.

집회가 끝나고 참가자들은 경찰이 폭력적으로 뗀 노란 리본을 다시 나무에 달았다.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들의 의사를 완전히 무시하고 특조위를 강제 종료시키려 한다. 이를 저지하기 위한 농성과 기자회견, 집회는 계속된다. 6월 27일(월) 12시 청운동사무소 앞에서 ‘세월호 특조위 강제 해산 박근혜 정부 규탄 기자회견’이 열리고, 저녁 7시에는 ‘세월호 특조위 강제 해산 저지 국민촛불’이 열릴 예정이다.

416연대와 유가족들은 28일 국무회의 이후에도 항의 행동을 계속 이어나갈 계획이다. 6월 임시국회에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6월 28일 오후 1시 국회의사당 앞에서 열린다. 많이 참가해 힘을 모으자.

경찰은 연행자를 즉각 석방하고 농성장 침탈 행위를 중단하라. 박근혜 정부는 진실을 은폐하려는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를 중단하라.

입력 2016-06-2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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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특조위 강제종료 시도 반대!, 특별법 개정!

최영준

6월 8일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입법청원 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활동 개시 시점을 예산 배정일로 명확히 할 것, 세월호 인양 후 특조위가 선체 정밀 조사 권한을 갖고 인양 후 6개월에서 1년까지 활동을 보장할 것 등이다.

광범한 지지 세월호특별법 개정을 위한 입법청원에는 3주 만에 32만여 명이 서명했다. ⓒ이미진

피해구제와 지원 등을 위한 법률개정안도 함께 국회에 접수했다. 피해자의 범위를 민간인 잠수사, 희생된 소방공무원 등으로 확대하고 희생된 기간제 교원에 대한 순직 인정 등을 요구한 것이다.

이번 개정안 입법청원은 특조위 활동 기간 보장뿐 아니라 정부의 진실 은폐 시도에 맞서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또, 2014년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 미처 포함하지 못했던 부분, 즉 희생된 단원고 학생과 승객뿐 아니라 구조과정에서 발생한 피해에 대해서까지 책임·보상 범위를 확대한 것이다.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의 범위를 더 넓힌 것이라 볼 수 있을 듯하다.

이번 입법청원은 19대 국회가 종료된 시점부터 3주간 집중적으로 받아 32만 4천5백62명의 이름으로 접수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세월호, 이젠 지겹다’며 더는 국민적 지지가 없는 양 말했지만,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은 여전히 광범한 지지를 받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무엇보다 4·13 총선 결과가 이를 보여 줬다.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에 함께해 온 진보 · 좌파 후보들과 유가족의 법률 대리인인 박주민 변호사가 당선한 일, 당선인의 과반이 세월호 진실 규명 실천 약속에 참여한 일 등은 정부의 진실 규명 은폐 시도에 대한 분명한 반대 정서가 존재함을 보여 줬다.

하지만 유가족들과 4·16연대가 특별법 개정안을 입법청원한 6월 8일 박근혜는 특조위를 ‘세금도둑’이라고 비난한 새누리당 김재원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했다. 특조위 강제 종료 의사에 변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또, 4·13 총선 결과를 의식한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6월 이후 특조위에 선체 조사를 일부 보장할 수 있다고 협상 카드를 꺼내려는 움직임을 차단한 것이기도 하다.

같은 날 기획재정부는 활동 기한을 6월 30일로 종료하고 7월 1일부터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특조위에 공문을 보냈다. 정부가 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키기 위한 행정 절차에 들어간 것이다.

박근혜는 특조위를 강제 종료시켜 국회 내 논란을 잠재우고 세월호를 대중의 기억에서 멀어지게 하려고 반격에 나선 것이다.  

야당의 불길한 조짐

더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유가족과 4·16연대가 입법청원한 것과 별개로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더민주당 소속 의원 1백23명과 정의당 소속 의원 6명 전원이 공동 발의했다. 박주민 안은 유가족과 4·16연대가 입법청원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사법경찰의 권한’ 조항을 삭제했다. 특조위가 수사권을 갖도록 권한을 확대하는 조항이었다. 박주민 의원은 더민주당에서 더 많은 지지를 이끌어 낼 요량으로 타협한 듯하다.

유가족은 박주민 의원이 발의한 특별법 개정안을 지지하면서도 이렇게 아쉬움을 나타냈다. “이번 법안이 가족들이 생각하는 안에 미치지 못한다. 특조위의 독립성을 해치는 행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가족들이 주장하는 개정안의 내용 중 하나지만 법안에는 그런 내용이 빠졌다.”(유경근 집행위원장)

그런데 정작 더민주당은 부족한 개정안에서도 벌써부터 후퇴하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더민주당은 “강제 종료를 저지할 방안을 조속히 강구하겠다”(원내대변인 이재정)고 했지만 더민주당 대표 김종인은 박근혜의 김재원 발탁을 “원만하고 협치가 기대되는 인사”라고 치켜세웠다.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논의하는 농해수위의 위원장인 더민주당 김영춘은 특조위 조사기한 연장을 위해서라며 “청와대가 아주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대통령과 관련된 행적 조사 등을 배제”하겠다고 말했다. 심지어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원하지 않는 조사 쟁점은 과감하게 제외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박주민 의원이 대표 발의한 특별법 개정안이 더민주당 내에서 일주일 만에 폐기처분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최근 정부와 새누리당이 특조위 강제 종료를 밀어붙이자 국민의당은 세월호 인양 후 조사를 위해 “야3당이 우선적으로 특조위 활동 기간을 연장하는 법을 통과”시키자고 제안했다.

세월호 인양 후 특조위 조사만 강조하면 새누리당과 해수부의 꼼수인 ‘6월 특조위 종료 후 선체 조사 일부 허용’도 고려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는 특조위 종료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안이다.

따라서 국회 내 세력 관계를 중시해 ‘운동’의 초점을 여야 협상에 놓으면 이런 후퇴에 무기력해질 수 있다. 2014년 수사권 · 기소권 없는 특별법을 여야가 합의할 때처럼 말이다. 4·16연대는 더민주당, 국민의당과 독립적으로 진실 규명 운동을 건설해야 할 뿐 아니라 이들의 무원칙한 타협에 단호하게 반대해야 한다.

특조위는 가장 중요한 6월에 청문회 개최를 연기하고, ‘대통령 7시간’ 조사를 언급했다가 서울중앙지검이 거부하자 쉽게 포기하는 등 실망스러운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뒤늦긴 했지만 최근 특조위 전체회의가 새누리당이 추천한 황전원의 부위원장 선출을 거부한 것은 잘한 일이다. 특조위는 청와대 · 국정원 등에 대한 조사 계획을 세우고 7월 1일 이후에도 출근해 조사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줘, 특조위의 존재 이유를 널리 알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보탬이 돼야 한다. 특히 유가족추천위원들과 진실규명에 의지가 있는 특조위원들이 적극 나선다면, 강제 종료에 반대하는 초점을 이룰 수도 있을 것이다.

두 차례 인양 실패는 사실상 정부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위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우지 못했음을 보여 준 것이다. 유가족과 4 · 16연대는 6월 25일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대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이날 범국민대회는 세월호 참사에 대한 대중적 공분이 여전함을 보여 주는 자리가 될 것이다.

박근혜는 최근 국회 연설에서 노동자 구조조정과 노동개악 법안 통과를 주문했다. 이는 총선 결과를 뒤집겠다는 선언이다. 정부의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는 박근혜의 첫 과제인 것이다. 그러나 가습기 살균제 사건, 구의역 참사에 분노한 많은 사람들은 이 사건들을 세월호 참사와 연결시켰다. 이윤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이 우선돼야 한다는 광범한 열망이 존재한다. 이윤이 아니라 생명과 안전을 원하는 노동자들과 학생, 청년들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계속 지지해야 한다. 

입력 2016-06-1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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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4백 톤 적재

한국 정부가 미국 제국주의 지원하려다 빚은 참사

김지윤

6월 17일 <미디어오늘>이 세월호가 제주 해군기지 공사에 쓰일 철근 4백 톤을 실었다고 폭로했다. 화물업체와 청해진해운의 진술 등을 토대로 그간 철근 과적이 침몰의 큰 영향을 끼쳤을 것이란 제기는 있었지만 용도에 대한 구체적 의혹과 증거들이 제시된 것은 처음이다. 현재 특조위가 이에 대한 조사를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정부는 쏟아지는 의혹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저들의 침묵이 길어질수록 의혹은 더 커진다.

이 같은 폭로는 박근혜 정부가 그간 밝혀진 구조 방기와 규제 완화의 책임만이 아니라, 세월호를 침몰하게 만든 직접적 책임이 있을 수 있음을 뜻한다.

그동안 참사 당일 화물 과적은 이윤에 눈이 먼 청해진해운의 책임으로만 지적돼 왔다. 당시 청해진해운은 여객이 돈이 안 되자 화물로 이윤을 만회하려고 철근과 생수를 실어 날랐고, 선원들의 항의에도 과적을 밥 먹듯이 했다. 2014년 검찰 조사에서 선원들은 “'화물량이 너무 많아서 배가 위험하다. … 선수 쪽에는 철근을 조금만 적재해 달라'고 수차례 이야기했다”고 진술했다.

세월호는 여객선이 아니라 사실상 화물선으로 운영됐다. 2014년 당시 검경 합수부는 “승객 4백76명(42.8톤), 화물 2천1백42톤(이 중 철근 2백86톤, H빔 37톤), 평형수 7백61톤 연료유 1백50톤, 청수 2백59톤”이 실려 있었다고 발표했다. 그런데 이 수치로는 배가 급격히 기울면서 침몰한 상황을 설명하기 어렵다. <뉴스타파>는 지난 4월에 화물이 검찰 조사보다 5백여 톤 더 많은 2천6백49톤이 실렸다고 제기했다.

<미디어오늘>이 밝힌 철근 4백 톤이 더 실려 있었다면 이는 승객 5천 명 수준의 규모다. 더군다나 철근 중 1백30여 톤은 선수갑판(C데크)에 실려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부분에 화물이 많이 실릴수록 선박의 복원력을 약화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월호가 좌현으로 처음 기울 때 이 철근과 H빔들이 순식간에 쏟아져 내린 것이 세월호를 더 빠르게 기울도록 만든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런데 청해진해운 한 관계자는 당시 실린 철근의 용도에 대해 “당일(2014년 4월 15일 화물 적재 당시)은 1백 퍼센트 해군기지로 가는 것이었다”고 말했다.(<미디어오늘>) 게다가 제주 해군기지 공사는 원래 계획보다 14개월가량 늦어져 정부는 시공 업체에 공사비 2백75억 원을 추가로 지급했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제주 해군기지 공사기간을 맞추려다 안개로 인해 시야 확보가 힘들 정도였는데도 무리하게 세월호가 출항했을 개연성이 있다. 지난해 416가족협의회와 4 · 16연대는 82대 과제를 발표했는데, 4월 16일 당일의 무리한 출항을 진상규명 과제 중 하나로 꼽았다.

결국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위해 무리한 과적을 했고, 이것은 침몰의 직접적 원인 가운데 하나였을 개연성이 매우 크다.

제주 해군기지 ― 미국 해상MD 정책의 일환

박근혜 정부는 미국의 패권 정책을 지지하고 이에 복무하기 위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강행해 왔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MD)에서 해상 MD정책의 중간기지 구실을 할 것이다. 또, 미국의 해양 전략에 따라 이지스 탄도미사일 방어 함정, 핵잠수함, 핵항공모함의 기항지로 활용될 것이다. 현재 박근혜 정부는 MD의 핵심 무기인 사드(THAAD)의 한국 배치를 강행하고 있는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한국 정부가 철저히 미국의 패권 정책에 복무하는 것을 보여 주는 일 중 하나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급속히 잠재적 경쟁자로 떠오른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전략에 도움을 준다. 따라서 동아시아 불안정의 핵심 요인이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라는 점에서 제주 해군기지는 한반도 불안정의 불씨를 키울 것이 자명하다.

이런 위험천만한 정책을 위해 무리하게 철근을 실어 나르려다 무고한 학생들과 노동자들이 목숨을 잃은 것이다. 결국 자본주의 이윤 경쟁으로 빚어지는 국가 간 경쟁, 즉 제국주의가 세월호 참사와 연관돼 있는 셈이다. 한국 정부는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정책을 지원하려고 노동자와 그들의 자녀들을 위험으로 내몰고 결국에는 목숨까지 잃게 만든 책임이 있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들을 종합해 보면 세월호 참사는 이윤 경쟁을 위해 과적을 무릅쓰고 안전은 뒷전에 둔 기업과, 자본주의와 제국주의 질서를 철저히 옹호하는 국가가 빚은 비극이다.

진실 은폐의 이유

왜 이제서야 이런 사실들이 밝혀지는 것일까?

수사 당시 검찰은 화물 전수 수사를 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물류회사를 통해 화물을 맡긴 화주에 대한 조사는 물류회사 진술서에 의존한 것으로 나중에 밝혀졌다. 검찰은 침몰 원인으로 화물 과적과 허술한 고박을 꼽으면서도 꼼꼼히 수사하지 않았던 셈이다. 정부의 책임을 덮기 위해 검찰이 의도적으로 부실 수사를 한 것이라는 의심이 드는 이유다.

또한, 검찰이 침몰 원인으로 발표한 조타 미숙으로 인한 대각도 변침 주장도 2015년 대법원에서 인정받지 못했다. 세월호를 인양하고 참사 당시 상황을 철저히 조사해 침몰 원인을 밝혀야 한다. 뿐만 아니라 항간의 의혹처럼 국정원이 비자금 조성 등의 목적으로 세월호 운영에 깊숙이 개입했다면 수익을 쫓아 안전은 뒷전에 둔 것에 대한 책임이 있으므로 조사가 이뤄져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를 종료하고 진실은 은폐하는 데에 혈안인 이유가 계속해서 밝혀지고 있다. 정부의 철저한 방해 때문에 더디지만 계속해서 드러나는 진실은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인 책임자라는 것이다. “웬만한 진상은 다 밝혀졌다”는 새누리당의 주장은 가당치도 않다.

철저한 진상 조사로 정부의 책임을 낱낱이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와 제주 해군기지의 연관성은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도전해야 한다는 점도 보여 주고 있다.

드러나는 의혹에도 특조위 종료 강행하는 적반하장 박근혜

박근혜 정부가 구조 방기와 규제 완화만이 아니라 침몰에 대한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도 박근혜는 특조위를 종료시키려 한다.

6월 21일 해수부는 일방적으로 특조위 종료를 선언하는 공문을 발송했다. 그런데 일부 언론이 마치 이것이 특조위 활동 기간의 연장인 양 호도하고 있다. 해수부는 특조위 활동은 특조위 활동 종료 이후 7월 1일부터 9월 30일까지를 보고서 작성 기간으로 보고 이에 따른 인원 조정을 위한 계획안을 제출하라고 특조위에 압박을 넣었다. 해수부는 현재 특조위 인원의 80퍼센트 수준으로 인원을 줄이라고 통보했다. 그러면서 세월호 인양 후 육지에 선체가 거치되면 선체정리 작업에 특조위를 포함시킬 것이라고 알린 것뿐이다. 더군다나 진상 규명 조사 대상인 해수부가 진실 규명을 가로 막으려는 특조위 종료 명령을 내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조위 이석태 위원장은 22일 즉각 해수부의 일방적 종료 선언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더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는 새누리당이 청와대 조사를 배제하는 조건으로 특조위 활동 연장 거래를 제안해 왔다고 폭로했다. 더민주당 소속 농해수위 위원장 김영춘이 이미 이런 입장을 밝혔기 때문에 새누리당의 “일방적” 거래 시도라고 보기만은 힘들겠지만 새누리당이 어떻게든 박근혜 정부를 보호하려 안간힘을 쓴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은 분명하다.

이럴수록 정부의 진실 규명 은폐 시도에 맞선 분노를 모아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은 더욱 확대 강화돼야 한다. 

입력 2016-06-24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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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8백 일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 문화제

“진실 규명이라는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끝까지 함께 하자”

김지윤

6월 25일 6시 광화문 광장에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 촉구, 미수습자 수습과 진실 규명을 위한 세월호 인양 촉구 범국민 문화제’가 열렸다. 세월호 참사가 터진 지 8백2일이 된 날 치러진 이번 범국민 문화제에 1만 명가량이 참가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참가자들은 박근혜 정부가 6월 30일로 특별조사위원회를 강제 조기 종료하려는 시도에 분노했고, 문화제 내내 특조위 종료를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가득 묻어났다. 또 제주 해군기지 철근 과적 의혹 등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 중단하라!" 6월 25일 광화문에서 1만 명이 모인 세월호 진상 규명 범국민 문화제. ⓒ이미진

유가족들은 대학생, 전교조, 세월호 지역 모임 등 3백여 명과 함께 홍익대 정문에서부터 2시간 동안 행진한 후 문화제에 참석했다. 3시 노동자대회를 마치고 온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농민대회를 마친 농민들도 다수 참가했다. 범국민 문화제 1부는 ‘더 이상 죽이지 마라 연대의 문화제’로 치러졌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한광호 열사를 죽음으로 내몬 유성기업의 노조파괴를 규탄하고, 지난해 백남기 농민이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가 경찰의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사건에 대한 청문회 실시를 요구했다. 비정규직 철폐와 최저임금 1만 원 쟁취도 주요 요구였다.

특별법 개정 촉구 범국민 문화제가 시작되고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이 첫 발언에 나섰다. “지금 정부는 음해와 방해로 진상 규명을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만들고 있다. 추모대열에 함께한 백남기 농민과 유가족과 함께 한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까지 죽음으로 내몰고 있다. 반드시 20대 국회에서 특별법을 개정해 특조위 활동 보장을 해야 한다. 대통령은 사죄하고 모든 과오를 반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참사가 더는 없어야 한다.”

김우 4 · 16연대 상임위원은 “진실 앞에 성역은 없다”며 최근 새누리당이 청와대를 조사 대상에서 제외하면 특조위 활동을 좀 더 보장하겠다는 거래를 제안한 것을 비판했다.

20대 국회의원들이 연단에 올랐다. 국민의당 천정배 대표가 발언을 시작하자 대열 여기저기서 ‘똑바로 하라’는 호통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진상규명 약속 꼭 지켜 내겠다" 범국민 문화제 연단에 오른 국회의원들. ⓒ이미진

정의당 윤소하 의원이 발언을 시작하자 금세 환호성이 터지며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이정미, 김종대 의원도 함께 자리했다. “진상 규명을 하라는 것이 총선에서 국민의 명령이었다. 우리는 연장을 구걸하는 것이 것이 아니라 2월까지 보장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무엇을 조사했다고 백서를 발간하라는 것이냐? 정의당은 당장 원포인트 국회를 열어 법 개정을 하자고 요구하고 있다. 우리 모두가 희생된 아이들의 부모이기 때문에 연대하고 투쟁해 승리하자.”

참가자들은 울산에서 민주노총 전략 후보로 당선한 김종훈, 윤종오 의원도 환영했다. “2년 전 단체장을 하면서 빈소를 차렸는데 현대중공업 하청 노동자가 찾아 왔다. 자신을 단원고 출신이라 소개하더라. 한참을 울었다. 그런데 아직도 해결된 것이 없다. 유가족들 앞에서 진상 규명을 약속했다. 꼭 지키겠다.”(김종훈 의원)

더민주당 박주민 의원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과적 의혹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철근 4백 톤이 실렸다는 의혹이 새로이 제기됐다. 과적을 정부가 알았을 것이라는 수준이 아니다. 안개 때문에 힘든 조건에서 유일하게 출항한 배경이 이 4백 톤 아닌가? 밥 먹듯이 이뤄진 과적이 정부의 용인 하에 이뤄진 것 아닌지 의혹이 나오고 있다. 새로운 의혹이 나오는 상황에서 특조위 종료는 안 된다. 청와대 조사를 제외하자는 새누리당의 제안은 말도 안 된다. 성역을 만들려는 저들의 뜻대로 특조위를 종료시킬 수 없다.” 박주민 의원에게 아낌 없는 박수가 쏟아졌다.

△고(故) 김관홍 잠수사의 추모 영상이 상영되고 있다. ⓒ이미진

416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인 동수 아빠 정성욱 씨는 “정부 나홀로 인양은 안 된다”며 제대로 된 세월호 인양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최근 해수부는 세월호 선수 들기에 실패해 인양이 8월로 미뤄질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번 선수 들기 과정에서 선수가 4미터 가량 찢어진 것으로 알려져 미수습자 가족들과 유가족들은 불만과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

진실 규명 운동에 참가하고 있는 다양한 사람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고려대 총학생회장은 “세월호는 생명보다 이윤을 우선하고,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하는 사회임을 보여 주는 참사”라고 지적하며 “세월호 세대이기에 유가족들의 손을 놓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금속노조는 최근 울산 현대차 공장 안에서 서명 운동을 조직하는 등 특별법 개정에 힘을 보탠 바 있다. 함재규 금속노조 부위원장은 “특별법은 진상조사와 수사가 이뤄지고 안전한 사회가 될 때까지 항구적이어야 한다 15만 조합원과 함께 싸우겠다”고 투지를 밝혔다. 교육부의 집요한 공격 속에서도 계기 수업 등을 통해 진실 규명에 힘을 보태고 있는 전교조의 조합원과 광화문에서 서명을 받고 있는 활동가, 고등학생, 대구 시민도 함께 연단에 올랐다.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에 대한 폭넓고 단단한 지지가 한 눈에 느껴졌다.

이석태 특조위원장과 박종운, 권영빈, 김진, 장완익 특조위원들이 함께 무대에 올랐다. 이석태 위원장이 연설을 시작했다. “진상조사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데 밤 늦게까지 이렇게 모여 있게 해서 미안하다. 무엇을 해야 할지 더욱 자각하게 된다. 최근 기자회견에서 한 유가족이 이렇게 발언했다. ‘유가족과 국민들이 만든 위원회를 허락없이 문을 닫게 할 수 없다. 우리가 끝까지 도울 테니 계속 진상을 조사하라’ 특조위의 힘이 여기에 있구나를 느꼈다. 책임감과 든든함을 함께 느꼈다. 나는 특조위 선장이다. 세월호 선장은 배를 떠났지만 나는 배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격려와 지지의 박수가 우렁차게 터져 나왔다. 정부의 방해에 맞서 끝까지 싸우라는 의미일 것이다.

△"1천 번 지더라도 진실 규명이라는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힘을 모으자!"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이미진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발언이 참가자들의 마음을 울렸다. “진실을 낱낱이 밝히고, 처벌하고, 다시는 이런 억울한 죽음이 없도록 만들기 위해 끝끝내 살아내자. 1백 번이고 1천 번이고 지더라도 진실 규명이라는 단 한 번의 승리를 위해 다 이겨낼 수 있다. 우리가 만든 특조위를 책임지는 것이 우리의 의무다. 특조위를 지켜내자!”

문화제를 마친 유가족 70여 명은 길 건너 정부종합청사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특조위 강제 종료를 막기 위해 특별법 개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또 다시 농성을 시작한 것이다. 단식과 농성, 삭발 등 온갖 노력을 기울여 온 유가족들이 다시 차가운 길 바닥에서 잠을 청해야 한다는 사실에 농성을 지지하러 정부종합청사 앞으로 모인 사람들은 분노하고 안타까워 했다.

유가족들은 앞으로 농성을 이어가며 촛불 집회와 기자회견 등을 열 계획이다. 지지와 연대가 절실하다.  

ⓒ이미진

△6월 25일 밤 서울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특조위 강제 종료를 막기 위해 특별법 개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또 다시 농성을 시작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노란 리본을 만들고 있다. ⓒ이미진

입력 2016-06-2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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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특조위 강제해산 저지 국민촛불

"정말 기뻐해야 할 '그날'까지 함께 갑시다"

오선희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6월 27일 ‘세월호 특조위 강제 해산 저지 국민촛불’이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렸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특조위 강제종료 저지!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 진상규명 특별법 개정 촉구!'를 요구하며 농성을 시작한 지 3일 째 되는 날이다. 집회 참가자가 전날보다 2배가량 늘어 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 했지만 다들 개의치 않고 밝은 표정이었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열린 국민촛불 ⓒ출처 4 · 16연대

유가족으로 구성된 '416연대 합창단'의 공연과 발언으로 집회가 시작됐다. “여기 오신 분들 모두, 거짓이 판을 치는 세상, 정의가 사라지고, 이윤을 국민의 생명보다 앞세우는 이 정부를 뒤집어 엎자는 마음으로 모였다고 생각합니다. 함께 손잡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어갑시다.”

기독교 청년 노래패 소속 젊은 목사의 재치있는 공연 후, 전날 경찰에 연행됐다 풀려난 예은 아빠 유경근 씨의 발언이 이어졌다. 가슴 뭉클한 발언에 박수가 쏟아졌다.

"어제 유가족들이 연행됐다는 소식을 듣고 여기저기서 항의 전화를 해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찰서에서 나오자마자 이번 주에 예정했던 네 번째 선수들기 시도를 또 연기한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주 넘게 연기한다고 합니다. 세월호 인양 하겠다고 큰소리 뻥뻥 치고 있지만 실상 인양을 못 하고 있고, [인양을] 안 하려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 수밖에 없는 이 현실이 슬픕니다.

특별법에 따라 특조위가 만들어졌지만 조사권한도 제대로 발휘해보지도 못하고 강제로 종료 당할 상황에 처해있는 이 상황이 슬픕니다. 특별법 개정해야 한다고 짧은 시간 안에 또다시 국민들이 뜻을 모아서 함께 청원했고, 세 야당이 그 뜻을 모아서 개정안을 발의했음에도 개정안을 심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이 현실이 슬픕니다.

어제 경찰이 차양막을 걷어가는 것을 보며, 하도 당해서 화도 안 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차양막을 철거하며 세월호 엄마들이 정성껏 만들었던 리본들을 떼어내고 짓밟는 것을 보며 참을 수 없었습니다.

세월호가 인양되고, 미수습자 한 분, 한 분 찾아낼 때마다 함께 기뻐합시다. 세월호 선체를 조사하고, 왜 침몰했고,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진실을 밝히고,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 확정 짓고, 그것을 기반으로 더는 ‘어디서 죽거나 다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함께 만듭시다. 그날에 함께 기뻐합시다."

416 대학생 연대 소속 장은하 씨는 농성하며 느낀 바를 말했다.

"날씨가 많이 더워서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땀방울이 맺히는 날, 왜 여기 있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많이 이해받고 사회적 배려를 받아야 하는 참사의 피해자들이 이런 취급을 받으며 농성을 해야 한다는 것이 가장 이해가 안 갑니다.

처절하게 진상을 은폐하는 정부를 보며, '감추는 자 범인'이라는 진실에 닿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함께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진상규명 될 때까지 대학생도 함께 하겠습니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실렸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를 종료시키려는 것에 대한 분노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촛불집회에 참가한 대학생들. ⓒ양효영

이날 집회에는 6명의 야당 국회의원들 발언이 이어졌다. 박주민 의원이 인사할 때는 환호성이 터졌다. 집회 참가자들은 20대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을 반드시 해야 한다고 구호를 외쳤다. 유가족까지 연행한 경찰 폭력에 대해 사람들의 분노가 크기 때문에 야당 국회의원들도 압력을 받았을 것이다.

촛불집회 1부가 끝나고, 유가족 중 일부는 고(故)심장영 학생의 아버지 고(故)심명석 씨 장례식에 참석하러 안산으로 출발했다. 고인은 오랜 지병으로 고생하면서도 진실규명을 위해 함께했다.

전교조 416특위의 권혁이 선생님의 발언으로 철야 농성을 위한 촛불집회 2부가 시작됐다. “세월호 계기수업에서 학생들은 참사 당시로 돌아가면 '탈출하라고 방송 하겠다, 둘라에이스호로 구조하겠다'고 했습니다. 구조를 방기했고, 이토록 진실을 은폐하는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주범입니다. 아이들이 생명과 인권이 보장되는 사회에서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언제까지나 함께하겠습니다."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의 발언이 이어졌다.

“박근혜 정부는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이 노동개악을 막고 세월호 유가족들에 연대하는 싸움을 했다는 이유로 8년을 구형했습니다. 그것이 중대한 범죄입니까? 오히려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노동자들 다 죽이는 노동개악을 추진하고있는 정부야말로 중대한 범죄를 저지르고 있습니다. 민주노총은 노동개악과 전국민 비정규직화를 막기 위해,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백남기 농민 살인 폭력에 저항하기 위해 투쟁하겠습니다.”

참사 이후 8백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굳건하게 이어지고 있는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집회였다. 

입력 2016-06-2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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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 성명

세월호 유가족들의 농성은 정당하다! / 경찰의 적반하장격 농성장 침탈 즉각 중단하라!

박근혜 정부의 세월호 진상규명 방해를 저지하기 위해 세월호 유가족들이 정부서울청사앞에서 6월 25일 밤부터 다시 농성에 나섰다. 유가족들은 특조위 강제종료 저지/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진상규명 특별법 개정 촉구를 위해 농성에 나섰다고 밝혔다.
도대체 몇 번째 노숙이란 말인가. 유가족들은 내 가족이 왜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다. 살릴 수 있었던 사람들 조차 살리지 못한 이 무능한 정부는, 참사 직후 2년 동안 진실 은폐의 주범이었다. ‘쓰레기 시행령’으로 특별법을 무력화시킨 것도 모자라, 해수부는 보수단체에 사주해 유가족들을 고소하고, 특조위 내 여당 추천위원들에게 조사 방해를 사주했다.
유가족들이 목숨 건 단식을 하게 만들고 거리로 내몬 것, 유가족 곁에서 함께 싸운 고(故) 김관홍 민간 잠수사를 죽음으로 내몬 것은 바로 박근혜 정부다!
그런데 심지어 오늘 3시경 유가족들이 오늘 낮 잠시 농성장을 비운 사이에 경찰이 농성장을 침탈하고 노란리본과 햇빛을 가리기 위해 친 차양막을 강제로 철거했다! 적반하장도 이런 적반하장이 없다. 이에 항의하는 가족들을 둘러싸고 폭력적으로 예은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과 웅기엄마 윤옥희 씨를 연행해갔다. 지금도 경찰의 농성장 침탈이 계속되고 있다.
바다에서 무능하기 짝이 없었던 경찰은, 유가족들을 진압하는 데는 민첩하기 그지 없었다. 최근 제주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세월호의 과적과 무리한 출항의 직접적 원인일 수 있다는 기사가 폭로됐다. 박근혜 정부는 단지 구조 방기 책임만이 아니라 세월호 참사의 직접적 주범일 수 있는 것이다. 유가족들과 박근혜 중 도대체 누가 진정으로 잡혀가야 하는가!
참사의 유력한 용의자인 박근혜 정부는 자신에 대한 조사 기구도 강제로 종료시키고, 심지어 폭력으로 유가족들의 항의도 틀어막으려 하고 있다. “감추려는 자 범인이다”라는 구호가 이토록 잘 맞을 수가 없다.
유가족들의 농성은 정당하다. 아니, 유가족들은 지난 2년 동안 이런 천대를 받을 하등의 이유가 없었다.

경찰은 당장 농성장 침탈을 중단하라!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 강제 종료와 진실규명 방해 중단하라!

2016. 6. 26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입력 2016-06-2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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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조위의 확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과적

세월호 침몰, 한국 정부의 미국 제국주의 지원과 관계 있다

김지윤

6월 27일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실렸다는 내용을 공식 확인했다. 특조위는 전원위원회에서 ‘세월호 도입 후 침몰까지 모든 항해시 화물량 및 무게에 관한 조사의 건’을 상정해 채택했다. 세월호가 제주 해군기지 공사 자재 운반에 이용됐다는 것을 국가기관(독립) 최초로 공식 인정한 것이다. 같은 날 해수부는 제주 해군기지로 운반된 철근 물량이 2백78톤이라고 인정하는 자료를 국회에 제출했다.

<미디어오늘>이 의혹을 제기한 뒤에도 정부는 그동안 철저히 무시로 일관해 왔다. KBS, MBC, SBS 등 공중파 방송사는 관련 의혹을 보도하지 않아 왔다.

그럼에도 빅데이터 분석 결과 지난 주 트위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단어는 ‘제주 해군기지’였을 정도로 관심이 크다. 정부의 직접 책임 문제이기 때문이다. 당대표에 출마하려는 새누리당 의원 김용태는 “검찰에서 이런 사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한 게 나중에라도 드러난다면 정국에 큰 파국이 올 수 있다”며 불안감을 내비쳤다.

“해적기지” 박근혜 정부는 미국 제국주의의 아시아 패권 정책에 협조할 해군기지 공사를 위해 여객선을 위험으로 몰아 넣고도 이를 감춰 왔다. ⓒ사진 출처 해군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세월호에 과적됐다는 사실이 가리키는 것은 그간 지적된 무책임성과 진실 은폐, 규제 완화, 부패뿐 아니라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책임이 정부에 일부(어쩌면 대부분) 있다는 것이다. 정의당 윤소하 의원은 “특히 이들 철근 가운데 [선수갑판에 실린] 1백30톤가량은 … 세월호의 침몰과도 직접적인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조사 결과는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관계를 밝히는 실마리가 될 수도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한미 군사 동맹의 주요 프로젝트이므로 국정원이 세월호 운항에 깊숙이 개입했을 수 있다.

평형수 빼고 실은 철근

2014년 검찰 조사에서도 부실한 화물 고박과 과적이 침몰의 중요 원인으로 꼽혔다. 2014년 4월15일 세월호는 오후 1시경부터 화물과 차량 적재를 시작했다. 이날도 청해진해운은 화물 선적 의뢰를 출항 직전까지 받았다. 화물 적재의 계획은 없고 오로지 “좀 더 많은 화물을 적재”하는 데에만 초점을 맞췄다. 제대로 고박하면 짐을 더 실을 수 없으니 허술하게 고박이 이뤄졌던 것이다. 세월호의 정식 선장은 운항관리자에게 “규정대로 화물을 싣게 해달라고 말을 하였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검찰 조사에서 1등 항해사는 “그날은 철근과 H빔을 너무 많이 실었다”고 진술했다. 보통은 트럭 여덟 대 분량을 싣는데 4월 15일은 무려 열세 대 분량을 실었다는 것이다.

청해진해운 직원도 검찰 조사에서 비슷한 진술을 했다. “세월호 선수에 … 무거운 철근 같은 자재를 … 너무 많이 실어 밸런스[선체 균형]에 문제가 있다는 말이 있었다 … 하지만 회사의 수입 70~80퍼센트 정도를 담당하는 물류팀이 ‘누구 때문에 먹고 사는데’라며 무시했다고 한다.”

참사 직후부터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고 침몰한 원인이 배의 복원성이 크게 나빴던 탓이라는 지적이 잇달았다. 증·개축으로 무게중심이 올라갔는데도 화물을 싣느라 평형수를 뺀 것이 문제였다. 게다가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화물들이 급격히 한 쪽으로 쏠린 것도 한 요인으로 꼽혔다. 특히, 합동수사본부가 제출한 ‘여객선 세월호 전복사고 특별조사 보고서’를 보면 세월호가 침몰 초기 15~20도가량 기울었다고 한다. 횡경사 20도까지는 아직 세월호가 완전히 복원성을 잃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런데 배가 20도가량 기울어지자 선수 갑판에 2단으로 쌓여 있던 컨테이너가 옆으로 미끄러지면서 바다로 추락했다고 분석했다. 이렇게 한꺼번에 쏠린 화물들 탓에 배는 침수한계선을 넘길 정도로 기울어진 것이다.

실제로, 청해진해운은 사고 소식을 듣자마자 화물량 조작을 시작했다. 이는 화물 과적이 침몰의 직접적 원인일 수 있음을 직감해서였을 것이다.

이 위험한 운항의 배경에는 이윤 추구가 있었다. 무리한 증·개축으로 배의 복원성을 유지하려면 평형수를 더 넣어야 했지만 화물을 많이 싣는 것을 우선해 오히려 평형수를 뺐다. 그리고 그 화물에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과 H빔이 있었다.

이쯤 되면 정부는 과적을 방치한 수준이 아니라 지시했을 공산이 매우 크다. 더군다나 세월호가 국정원이 직접 보고받는 유일한 선박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 개연성은 더욱 커진다.

이토록 무리한 과적과 악천후 속에서도 운항을 강행한 데에는 촉박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 기한이 작용했을 듯하다. 이미 해군기지의 공사 기간은 1년 2개월가량 늦어진 상태였다. 심지어 이 때문에 정부는 건설사들에게 보상을 해 줘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더 많이, 더 빨리 건설용 자재를 운반하라는 압력이 있었을 것임을 짐작할 수 있다.

제주 해군기지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을 짓밟았을 뿐 아니라 대부분이 청소년인 무고한 3백4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이다.

구조 외면 그들은 아마 여객선 승객들보다 유실된 철근을 더 걱정했을 것이다. ⓒ사진 출처 해양경찰청

안보와 안전 ― 누구의 안보와 안전인가?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의 미사일방어체제 MD의 일환이다. 러시아가 MD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신형 미사일 개발·배치에 나서고, 이란과 중국도 MD에 맞설 미사일 능력 강화에 나서는 등 MD는 전 세계의 군사적 긴장과 불안정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 특히, 제주 해군기지가 대중국 견제 정책에 이용된다면 미중 갈등으로 불안정이 증폭되는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 중국 관영 언론인 <환구시보>가 2011년 공개적으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비난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주민들에 대한 물리적 폭력, 벌금 폭탄 등 온갖 수단을 동원해 가며 강행돼 왔다. 이로써 미국은 일본의 남부와 한국의 제주도에 전략적 기지를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오바마는 한미동맹을 “한국과 미국뿐 아니라 태평양 전체 안보의 린치핀”이라고까지 부르며 한미일 동맹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고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유지·강화하려 한다. 이런 이유로 올해 초 박근혜 정부는 일본과의 한일 ‘위안부’ 합의를 밀어붙이며 한미일 동맹 강화에 나섰던 것이다.

또한 미국은 한국의 전력이 더 커지길 원하고 이에 발맞춰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의 첨단 무기들을 사들이는 데에 막대한 돈을 쏟아붓고 있다. 최근 박근혜는 사드 배치를 서두르고 킬체인 등 위험한 무기들을 도입하고 있다.

이를 통해 단지 미국 지배계급만 이익을 보는 게 아니다. 한국 지배계급은 미국과의 동맹을 강화해 자신의 정치·경제·군사적 이득을 얻을 뿐 아니라, 세계 질서 속에서 자신들의 지위를 높이고 싶어 한다.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국가는 다른 국가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 더 유리한 자본 축적 조건을 조성하려 한다. 이를 위해 군사력이 동원되고 때때로 전쟁이 일어나기도 한다. 특조위 예산과 인양 예산은 아까워하는 박근혜가 킬체인 등 무기 구입에는 수조 원을 쓰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해마다 값비싼 무기를 사들이는 박근혜 정부는 수난구호법 개정을 통해 구조 업무를 민영화하고 구조에 쓰일 예산도 삭감했다. 안보 강화는 평범한 다수의 안전과는 하등 관계가 없다. 오히려 우리를 더 위험으로 내몰 뿐이다.

안전 사회 건설이라는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의 목표를 이루려면 제국주의에도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입력 2016-06-2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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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가족협의회 농성 보고 국민 촛불

특별법 개정을 위한 투쟁은 계속된다

양효영 (대학생,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7월 2일 정부서울청사에서 416가족협의회 농성 보고 국민 촛불 집회가 열렸다. 8일간의 농성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평일 저녁 촛불 집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유가족들은 농성 8일간의 활동을 보고하고, 특별법 개정을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을 결의했다. 전날 밤 폭우가 쏟아졌지만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농성장을 지켰다고 한다. 다행히 이날 집회는 비가 갠 후 청명한 날씨에서 진행됐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

△폭우가 쏟아질까 걱정했지만 다행히 청명한 날씨 속에 진행된 7월 2일 416가족협의회 농성보고 국민촛불. ⓒ김동욱

지난 8일간 농성장을 함께 지킨 연대 단체들이 발언을 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 석중완 학생은 “왜 침몰하였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왜 진실을 국가가 은폐하는지 세 가지의 핵심적 물음의 퍼즐이 점점 맞춰지고 있다”라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 때문에 지난 10년간 무고한 서민과 노동자들이 짓밟혔는데, 박근혜 정부가 결국 3백4명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박근혜 정부는 KBS 보도에 직접 개입해서 진실을 은폐하려 했다. 세월호 참사의 뿌리는 박근혜 정부다”고 주장했다. 이어서 “자기 아버지를 기념하는 사업에 세금을 수천억 원을 쏟아 붓는 박근혜 정부야말로 ‘세금 도둑’이라고 비난 받아야 한다”고 발언해 참가자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세월호 농성장과 같은 장소에서 성과연봉제·폐지공무원법 개악 저지를 위해 단식 농성 중인 공무원 노조 위원장과 농성장 식사 지원을 한 ‘밥차’ 단체 활동가의 발언도 큰 호응을 얻었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

△연대는 계속될 것 농성 8일 동안 지지와 연대가 끊이지 않았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인하인 모임 소속 석중완 씨가 발언하고 있다. ⓒ김동욱

416가족협의회 김종기 사무처장(2학년 1반 수진아빠)의 농성 활동 보고가 이어졌다. 일주일 남짓한 기간 동안에도 경찰과 정부는 유가족을 탄압하고 진실을 은폐하려 거듭 시도했다.

6월 26일엔 경찰이 들이닥쳐서 그늘막과 노란 리본을 강제로 철거하려 했고 이에 항의하는 유가족들을 연행했다. 6월 27일 경찰은 농성장 깔개로 쓰는 은박지 돗자리를 들고 도망치기까지 했다. 유가족들은 “우리 돈으로 산 은박지를 왜 훔쳐가나?” 하고 황당해 했다. 6월 28일 국회 앞 기자회견에서 경찰은 유가족들이 버스에서 내리기도 막아서고 팻말을 ‘불법 시위 용품’이라며 빼앗으려 했다. 이 과정에서 많은 유가족들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김종기 사무처장은 이런 탄압은 유가족들을 위축시킬 수 없다고 했다.

“이젠 싸우지 않으면 뭔가 허전하기 까지 하다. 싸워야 뭔가 조그만 거라도 얻어냈기 때문에 그러는 건지도 모른다. 정부가 알아서 진상 규명 하고, 안전사회로 가는 시스템 만들었으면 싸울 일도 농성할 일도 없다. 저희들은 평범한 엄마, 아빠다. 싸우는 것도 못한다. 너무 힘들지만 해야 하는 싸움이라면, 저들이 걸어오는 싸움이라면 피하지 않을 것이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평범한 부모였던 유가족들을 투사로 만든 것은 바로 박근혜 정부인 것이다.

4·16연대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은 청와대가 KBS 보도에 직접 개입한 확실한 물증이 드러났음에도 KBS와 종편이 오히려 ‘박주민 때리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KBS와 종편은 박주민 의원이 유가족 농성장을 철거하고, 팻말을 빼앗은 경찰서장들의 ‘개인정보’를 요구하는 ‘갑질’을 했다고 두들기고 있다. 그러나 박주민 의원이 요구한 자료는 경찰서장의 인사기록, 업무추진비 사용 현황 등 공개돼야 마땅하다. 게다가 KBS와 종편이 ‘개인정보’라면서 호들갑 떠는 4촌 이내 친인척 보직과 재산 현황도 공직자로서 당연히 공개돼야 할 정보다. 저들은 청와대 전 홍보수석 이정현과 KBS 전 보도국장 김시곤의 음성 파일이 폭로돼 파장이 커지가 세월호 운동을 흠집내고 사람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

박래군 상임운영위원이 ‘박주민 의원은 지금 보다 오히려 더 세게 나가야 한다’고 말하자 참가자들이 환호하기도 했다.

각 반 대표 부모님들은 농성 기간 동안 자신의 일처럼 매일 같이 연대해준 시민들에게 연거푸 감사함을 표했다. 한 유가족은 “여러분이 여기서 같이 싸워주시는 게 우리에게 보약이고 영양제다”며 연대해준 분들이 있기에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다고 발언했다.

2학년 5반 ‘민성아빠’ 김홍렬 씨는 경찰들이 “노란 옷을 욱일기, 나치 문양과 비교하며, 경복궁에 외국인이 많기 때문에 위화감을 줄 수 있다”는 이유를 대며 경복궁 출입마저 막았다고 폭로했다. 어처구니 없게도 경찰은 “유가족들을 잠재적 범죄자 취급”하고 있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 농성

△"연대는 우리에게 영양제고 보약입니다" 유가족들이 참가자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있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특별법 기한은 내년 2월까지다. 선심쓰듯이 12월까지 기한을 연장해 주겠다는 국회 논의에 속지 않을 것"이라며 특별법 개정을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 발언하기도 했다. ⓒ김동욱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농성을 하면서 서로에게 새로운 힘을 불어 넣어서 다시 한 번 달려가보자고 했는데 그 목적이 생각보다 더 강력하게 이뤄졌다”며 참가자들을 고무했다. 이어서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국회에서 “12월까지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면 어떻겠냐는 얘기가 들려 나오고 있다”며 “웃기지 말라”고 일갈했다.

“현재 특별법 상 특조위 종료 기한은 내년 2월 7일까지다. 침몰의 직접적인 원인, 구조하지 않은 이유를 밝혀내고, 책임자를 낱낱이 처벌하고, 근본적이고 지속적인 대책을 세워서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대한민국을 완전히 ‘개조’하는 것이 특별법과 특조위 설립의 목적이다. 그것을 완수할 때까지 특조위는 계속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여기서 하나라도 물러서거나 후퇴하거나, 지난 2014년 여름처럼 우리 가족들에게 선택을 강요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20대 국회는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무능한 국회로 낙인 찍힐 것이다”고 경고했다.

만약 여야가 또 다시 야합을 감행한다면 특별법 제정에 이어 개정에서도 유가족들의 뒤통수를 치는 것이다. 2014년 특별법 제정 당시 새누리당은 완강하게 유가족들의 뜻을 거부했고, 더민주당은 앞에선 유가족들의 의사를 대변하겠다고 해놓곤 뒤에선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따라서 특별법을 개정하려면 부르주아 여당과 야당에게 의존하지 않고 아래로부터 투쟁을 확대하고 저항을 조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들을 움직이려면 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압력을 조직해야 한다.

참가자들은 유가족들과 포옹하고 서로 손뼉을 치며 집회를 마무리 했다. 416연대는 앞으로도 특별법 개정과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을 위한 활동을 이어갈 계획이다. 지속적인 연대가 구축돼야 한다.

입력 2016-07-03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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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인양, 못 하는 것인가 안 하는 것인가

김승주 (대학생,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활동가)

지난 6월 16일, 세월호 인양 작업이 세 차례 실패 끝에 결국 중단됐다. 그 과정에서 선체는 갑판부 두 군데에 6~7미터가량의 상처를 입었다. 미수습자 아홉 명을 애타게 기다리며 “유가족이 되고 싶다”고 말하는 미수습자 가족들의 가슴에도 시커먼 멍이 들었다. 현재 정부는 선체의 최종 인양 시점을 8월 말 이후로 연기한 상태다.

2015년 초 정부와 몇몇 여당 정치인들은 예산 문제를 들먹이며 유가족들로 하여금 인양을 단념케 하려고 했다. 새누리당 김진태는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인양 포기를 종용했다. 박근혜도 최근에 세월호 특조위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고 했다.

그러나 이번 인양 과정을 보면 세금을 쓸데없이 낭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치밀한 계산과 시뮬레이션에 근거해야 할 부력제 삽입 방식이 인양 도중에 갑자기 변경되는 등, 과학 지식이 없는 일반인이 봐도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인양 회피 침몰 2년이 지나도록 인양을 ‘못’ 하고 세금 낭비론이나 유포해 유가족들이 포기하도록 압박하는 것은 비열한 짓이다. ⓒ사진 출처 해양수산부

지난 5월 말부터 정부는 세월호 선수를 살짝 들어 선체 아래 ‘리프팅 빔’(선체를 위로 올려주는 기계)을 삽입하는 공정을 진행했지만, 이 과정에서 선체에 장착할 부력제(푼톤)가 계속 분리되는 오류가 발생했다. 또한 정상적인 인양 계획에 따르면 세월호 선수는 5도에 해당하는 10미터가 들려야 하는데, 이번 인양 과정에서는 2도에 해당하는 4미터밖에 들리지 않았는데도 와이어가 끊어졌다.

핵심 증거물

현재 정부가 ‘실종자’로 분류하고 있는 아홉 명의 미수습자들은 ‘충분한 수색이 이뤄졌는데도 실종 상태인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세월호에는 아직 수색되지 않은 격실과 화물칸이 있기 때문이다. 미수습자의 시신이 이런 곳의 짐과 집기들 사이에 끼어 있을 수 있다. 현재로서는 세월호 선체 인양 외에는 미수습자를 완전히 수색할 방법이 없다.

또한 침몰한 선체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다. 검찰이 침몰 원인으로 밝힌 ‘대각도 조타에 의한 급변침’은 법원 판결에 의해서도 기각될 만큼 신뢰성을 잃었다. 게다가 최근에는 참사 당일 세월호에 수백 톤의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과 H빔이 제대로 고박되지 않은 채 과적됐고, 이것이 침몰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음이 밝혀졌다. 이외에도 침몰 원인에 대한 수많은 의혹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월호 선체를 최대한 온전하게 인양해서 정밀하게 조사해야 한다. 무리한 증·개축, 화물 고박의 실태, 평형수 관리, 각종 기록장치 등 진상 규명의 중요한 열쇠를 세월호 선체가 간직하고 있다.

시신 유실과 선체 부식을 막기 위해서는 배가 하루 빨리 인양돼야 한다. 그러나 해양수산부는 인양 작업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미온적이었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진행한 2차 청문회에서 해수부가 선체 조사 계획은 전혀 세우지 않은 반면 선체 처리 계획은 이미 검토하고 있음이 드러났다. 또, 인양 업체(상하이샐비지)와 해수부 사이에는 한글 계약서조차 없으며, 인양을 시작도 하기 전부터 인양 실패를 고려한 재보험 계약을 추진 중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상황이 이러니 유가족들이 정부를 불신하는 것은 당연하다. 해수부가 철저히 비밀리에 인양 작업을 진행하자 유가족들은 침몰 현장 주변에서 먹고 자면서 작업을 감시했고, 잠잠한 바다 위를 보며 애끓는 속만 부여잡아야 했다.

정부는 선수 들기 작업을 7월 11일에 재실시하겠다고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것이 다시 실패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다. 무엇보다, 정부는 배가 인양되기 전에 특조위를 강제 종료시키려 한다. 새누리당은 “이미 조사는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하지만 가당치도 않은 말이다.

세월호 선체의 조속하고 온전한 인양은 ‘실종자’와 피해자 가족들뿐 아니라 진상 규명을 바라는 사람 모두를 위해 필요하다.

입력 2016-06-2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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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조위 활동은 내년 2월까지다” / 세월호 특별법 개정, 진실 규명!

김지윤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 활동 강제 종료를 밀어붙이고 있다. 해수부는 특조위에 7월부터 백서 발간 활동을 하라는 공문을 여러 차례 보내고 있다. 이석태 특조위원장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덮어 버리는 내용의 보고서를 쓰라는 것”이라며 해수부의 요구를 거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진상 조사를 할 만큼 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최근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과적 의혹이 새롭게 제기된 상황에서 이런 주장은 억지일 뿐이다. 박근혜가 특조위 활동 종료에 그토록 혈안인 게 자신의 책임을 덮기 위해서라는 의심만 증폭시킬 뿐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해 활동 시작 시점을 예산 배정일로 못 박은 특별법 개정안 통과를 요구하며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농성 이튿날 경찰이 차양막도 치지 못하게 하는 등 방해하더니 급기야 유가족 네 명을 연행해 갔다. 유가족 농성이 박근혜의 세월호 참사 진실 덮기를 폭로하고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대중적으로 환기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년 동안 삭발, 단식, 노숙 농성 등 안 해 본 것이 없는 유가족들이 다시 차가운 바닥에 눕게 됐다. 그 사이에 구조 방기의 책임을 져야 할 해경 간부들은 줄줄이 승진을 거듭했다.

적반하장 특조위 활동를 끝내고 인양을 미루고, 유가족들의 운동마저 탄압하는 것은 진실을 덮으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사진 이미진

특조위 강제 종료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높아지자 박근혜 정부는 온갖 꼼수안을 내놓고 있다. 정부에 대한 조사를 제외하면 활동 기간을 연장해 주겠다며 새누리당이 거래를 제안한 사실이 폭로됐다. 이 폭로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과적 의혹과 맞물리며 더 큰 의심을 자아내고 있다.

해수부는 특조위 조사 활동은 종료하고 선체 조사를 보장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특조위가 조사해야 할 대상은 세월호 선체만이 아니라 한 명도 구하지 못한 책임, 규제 완화, 왜곡 보도의 책임 등 매우 방대하다. 지난 청문회를 통해 잠수사 투입 과장 보도, 항적도 조작 등 일부 사실을 들춰냈지만 여전히 진상 규명 과제는 산적해 있다. 특조위가 조사 개시를 지시한 사항만도 2백31개에 이른다. 따라서 선체 조사 일부 보장이라는 알량한 꼼수안을 수용할 수 없다.

이런 가운데 특조위는 ‘보도 참사’의 책임을 묻기 위해 새누리당 이정현과 전 KBS사장 길환영을 검찰에 고발하기로 의결했다. “특조위의 선장으로 배에서 내리지 않겠다”며 정부의 특조위 강제 종료 시도에 맞서겠다고 선언한 이석태 위원장과 특조위원들이 끝까지 싸워 주기를 바란다.

야3당

총선에서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패배한 뒤, 새누리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들이 특별법 개정을 주장하고 있다. 6월 7일 박주민 의원이 대표로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국회 일정과 새누리당의 거부로 언제 처리가 가능할지 불투명하다. 이런 가운데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6월 24일 “국회의장과 교섭단체 3당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위한 원포인트 국회 본회의를 다음 주 초에 반드시 열어 줄 것”을 공개적으로 요구했다. 6월 25일 범국민대회에서 윤소하 정의당 의원도 같은 주장을 해 참가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더민주당이 특별법 개정안 통과에 진지하다면 더민주당 소속인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새누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더민주당도 내부 이견이 있어 정의당의 적절한 제안이 받아들여질지 미지수다.

게다가 더민주당은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해 청와대를 조사 대상에서 뺄 수 있다’던 자당 소속 농해수위원장 김영춘에 대한 공개적인 비판도 않고, 당대표 김종인은 특별법 개정 지지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그러나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실려 있었고, 검찰이 이를 누락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상황에서 청와대를 조사 대상에서 빼선 안 된다. 그동안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이 요구했듯이, “성역 없는 진상 조사”가 필요하다.

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국회 밖 압력을 형성해야 한다. 6월 25일 특별법 개정을 위한 범국민문화제에 1만여 명이 모여 여전한 관심과 뜨거운 지지를 보여 줬다. 이 자리에서 유가족들은 “20대 국회에서 가장 먼저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돼야 한다” (전명선 416가족협의회 위원장), “우리가 만든 특조위를 지켜내자”(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고 호소했다. 감추려는 자의 공격을 막고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노동자, 학생들이 함께 싸워야 한다.

피해 지원 확대 법안이 상정되다

특별법 개정과 함께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피해지원법 개정안도 통과돼야 한다. 416가족협의회와 4·16연대는 6월 8일 개정 의견서를 국회에 제출했고, 더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정의당 윤소하 의원 등과 함께 6월 20일 피해지원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현재 세월호참사 피해 구제 및 지원 등을 위한 법률은 민간 잠수사, 자원봉사자, 단원고 재학생, 교직원 등을 희생자 혹은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참사 희생자와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진실 규명에 발벗고 나섰던 민간 잠수사 김관홍 씨의 죽음은 이 개정안 통과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보여 준다. 고인은 세월호 참사 현장에서 구조에 발 벗고 나섰고, 지난해 말 열린 특조위 청문회에도 참석해 해경의 무책임한 현장 대응을 증언한 바 있다. 꿈 속에서도 희생자들이 보인다던 그는 괴로움을 끝내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등졌다. 실제로 세월호 참사 구조 현장에 자발적으로 뛰어들었던 많은 민간 잠수사들이 정신적 트라우마 등으로 고통 받고 있지만 정부는 나 몰라라 해 왔다. 심지어 해경은 한 민간 잠수사의 죽음을 동료 잠수사 탓으로 돌리는 뻔뻔함까지 보였다.

정부는 학생들과 함께 희생된 단원고 기간제 교사의 순직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생전에 비정규직으로 받던 차별이 죽음 이후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개정안은 배상금 신청 기한을 6개월로 한정하던 조항을 삭제하고 치유를 위한 기한도 완치될 때까지로 확대했다. 따라서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간 생색내기에 그친 지원에서 벗어나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피해와 희생들을 적극적으로 밝히고 제대로 치료·보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입력 2016-06-28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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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조위 강제 조기 종료 반대 기자회견

"청와대는 더는 진실규명 방해말라"

김지윤

6월 30일 416가족협의회와 4 · 16연대가 '성역 없는 진상조사 특조위 보장 청와대 결단 촉구' 기자회견을 청운동 주민센터 앞에서 열었다. 유가족, 4· 16연대 회원, 대학생들 60여 명이 모여 항의의 뜻을 모았다. 기자회견 후에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세월호 인양을 요구하는 서명 등(70만 6천3백10명)을 청와대에 전달했다.

△6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보장 촉구 기자회견'. ⓒ사진 제공 최윤석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은 “우리와 같은 아픔을 겪는 국민들이 더는 없기를 바라는 우리의 마음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청와대는 더는 어떤 방해도 하지 말라”고 촉구했다.

4· 16연대 이태호 상임운영위원은 “오늘 이 서명은 6백50만 서명이 무력화되는 것에 분노하고 눈을 부릅뜬 사람들의 심정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서명 전달의 취지를 짚었다.

유가족들의 손을 잡은 각계 대표자들의 발언이 이어졌다.

한국진보연대 박석운 공동대표는 특조위 진상규명국장조차 아직 임명하지 않는 것을 지적하며 “성역 없는 진상 규명의 핵심은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라 주장했다. 한국청년연대 정종성 대표도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지 못했으면 응당 책임을 져야 하는데 하지 않는다면 청와대에 앉아 있을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전농 김영호 의장은 “박근혜 대통령이 이제까지 거짓말하고 유가족들에게 못질을 해 왔는데 뉘우치지 않으면 범죄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며 앞으로 저항이 계속될 것임을 강조했다.

민주노총 최종진 위원장 직무대행은 “세월호의 진상을 밝혀야 할 이유가 점점 더 드러나고 있다 인양의 진정성이 없다는 것과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을 싣는 등 국가 책임이 분명한 것도 드러나고 있다. 감추고 방해한 것에 대해 언젠가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특별법 개정 서명은 역사의 명령이자 국민의 명령”이라 주장했다.

노동자연대 활동가 자격으로 발언한 필자는 “한미동맹과 MD정책을 위해 무고한 3백4명이 목숨을 잃고 강정 마을 주민들의 삶이 파탄 난 것 아니겠냐”며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물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고 주장했다.

△6월 30일 청와대 앞에서 열린 '세월호 특조위 보장 촉구 기자회견'. ⓒ사진 제공 최윤석

기자회견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경찰 3개 중대가 기자회견 주변을 둘러쌌다. 최근 경찰은 노숙 농성을 이어 온 유가족들을 연행하고, 햇빛 가리개와 깔개조차 빼앗는 등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 신경질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경찰청장 강신명은 “불법적인 표현물을 갖고 들어오는 건 그 자체가 이미 공공안전을 심대히 침해하는 것"이라며 물리력 행사를 강변했다. 국회 앞 기자회견에 유가족들이 팻말을 들고 온 것을 “불법”이라고 생트집하는 것이다. 경찰의 이런 행태 뒤에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과적이 폭로된 후 고조되는 분노와 불만을 눌러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을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도 경찰은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칠 때마다 경고 방송을 하며 해산 명령을 했다. 반면 맞은편에서 특조위 해체를 외치며 시끄럽게 노래를 틀어대는 우익 단체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경찰의 몰염치한 행동에 야유가 터져 나왔다.

유가족들은 정부서울청사 앞 저녁 촛불집회를 마치고 해체 위기에 놓인 특조위로 찾아가 밤샘 농성을 벌였다. 특조위 조사위원들은 밤샘 토론회를 여는 등 정부의 특조위 종료에 항의하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실이 하나둘씩 드러나면서 박근혜가 특조위 종료에 안달 난 이유가 분명해지고 있다. 특별법을 개정하고 특조위 강제 종료를 막아야 한다.   

입력 2016-07-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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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현-김시곤 통화 녹취록 공개

청와대가 세월호 ‘보도 참사’ 배후임이 드러나다

김지윤

청와대가 세월호 참사 왜곡 축소 보도에 직접 개입했다는 증거가 폭로됐다. 언론노조 등 언론단체 7곳은 6월 30일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 홍보 수석 이정현과 KBS 전 보도국장 김시곤의 통화 녹취록을 공개했다. 이번에 공개된 것만으로도 이정현은 두 번(2014년 4월 21일, 4월 30일)이나 보도 통제를 시도했다.

녹취록을 보면 이정현은 김시곤에게 매우 흥분한 말투로 욕설까지 섞어가며 해경 비판 보도를 자제하라고 지시했다. “하필이면 또 세상에 [대통령이] KBS를 오늘 봤네”라는 이정현의 말에서 진실 은폐의 배후에 박근혜가 있음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언제든 찾아오라며, 가증스런 눈물 쇼를 벌이던 박근혜가 사실은 뒤에서 자신의 책임을 감추는 데에 혈안이 됐고, . “해경을 해체”하겠다더니 실은 보호하기에 급급했던 것이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KBS는 유가족들의 항의 목소리를 보도하지 않고 박근혜의 진도 방문 장면과 해경이 구조에 열심이라는 보도만 반복적으로 내보내며 “청영방송”(청와대를 위한 방송)이란 조롱까지 나왔다. 당시 KBS 두 노조가 최초 공동 파업을 벌일 만큼 KBS의 보도 통제는 극심한 수준이었다. KBS 사장 길환영은 “해경 비판하지 말라”, “대통령 관련 보도는 20분 내로 하라” 등의 지시를 했던 것이 폭로됐고 노조 공동 파업으로 결국 사장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당시 국무총리 정홍원이 국회에서 “사태가 위중한 만큼 수색에 전념할 수 있도록 사기를 올려 달라는 뜻으로 요청한 것으로 안다”며 사실상 보도 통제를 인정하기도 했다는데 이번 폭로가 분명한 증거를 제공한 것이다.

"청와대와 공영 방송은 한 몸"

이제껏 KBS는 세월호 참사와 관련한 보도를 철저히 축소해 왔고 얼마 전 제주 해군기지 철근이 세월호에 실렸다는 의혹이 처음 폭로됐을 때도 침묵했다. 당시 보도 통제가 청와대의 지시와 압박 속에 이뤄졌다는 정황이 분명해 졌으므로 박근혜 정부는 이에 대한 책임도 마땅히 져야 한다.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는 6월 27일 이정현과 길환영을 방송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특조위 강제 종료

진실 규명은 계속된다 6월 30일부터 특조위 사무실에서 밤샘 농성을 한 유가족들은 7월 1일 오전 특조위 강제 해산 중단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정부의 조사 활동 강제 종료를 거부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조사관들의 출근길을 유가족들의 지지와 응원으로 맞이 했다. 특조위 조사관들은 “국민과 함께 진실규명의 그날까지 활동하겠습니다”라고 쓴 배너를 들고 이에 화답했다. ⓒ이미진

 이번 폭로에 대해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우리를 이렇게 농락하고 기만했구나”라며 참담한 심경을 밝혔다. 또한 “이정현은 선원들이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지 해경이 무슨 책임이 있냐고 말하는데 참사 직후부터 정부가 했던 말이 철저히 거짓말이었는지 드러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며 국가를 개조를 해서라도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공식 발표했는데 속으로는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 있더라도 덮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 것”이라 지적했다. 이 정도 거짓말과 진실 은폐 시도면 박근혜는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

한편, 박근혜 공약 파기 보도를 막는 등 “솔직히 우리만큼 [정부를] 많이 도와준 데가 어디 있습니까?”라던 김시곤이 이번 녹취록을 제공한 것은 이들 사이에 균열이 커졌고, 박근혜 정부의 통제력 약화를 보여 주는 것이다. 아마도 김시곤은 정부가 꼬리 자르기로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은 것에 대한 불만이 있었던 듯하다.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이 2년 동안 굳건히 유지되고, 총선에서 참패한 상황에서 박근혜 정부의 직접적 책임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지배자들 내에서의 균열을 부추긴 측면도 있을 것이다.

성역 없는 진상 조사

지금까지는 KBS 한 곳만 드러났지만 다른 언론사들(특히 방송)에 대해서도 청와대가 통제를 시도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또 최근 특조위가 제주도 화물 과적 문제에서 기존 검찰 조사 결과를 뒤집으면서 검찰 부실 수사 의혹을 낳았는데 철근 과적 누락 수사에 대한 청와대 입김 가능성도 조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특조위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세월호에 과적됐다는 사실을 밝혀 박근혜 정부에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인 책임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세월호 침몰과 진실 은폐의 주범으로 진상 규명 대상인 박근혜 정부가 특조위의 진상 규명 활동을 종료시킨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오히려 박근혜 정부가 서둘러 특조위 활동을 종료시키려 한 진정한 의도가 사방에 뻗쳐있는 자신의 책임을 은폐하기 위한 것이었다는 것이 만천하에 드러난 만큼 특조위 활동을 보장하고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해수부와 새누리당은 ‘인양 후 선체 조사는 보장하겠다’는 꼼수를 내놓았다. 특조위 강제 종료를 정당화하려는 꼼수다. 그런데 최근 더민주당, 국민의당, 새누리당이 농해수위에 꾸리기로 합의한 세월호 특별소위원회가 사실상 이 꼼수안을 논의 대상으로 삼으려는 듯하다. 언론 보도 등을 통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이 소위는 특별법 개정이 아니라 해석에 대해 다룰 것이라고 한다. 게다가 이 특별소위의 간사는 국회 농성 중이던 유가족들을 두고 “노숙자”라고 모욕했던 새누리당 김태흠이다. 박주민 의원이 정세균 국회의장에게 법 개정을 위한 당 대표 논의 등을 주장했지만 묵묵부답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런 상황 속에서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2014년 특별법 제정 때 야당이 세 차례 유가족들을 배신한 일이 기억난다”며 경고했다.

유가족들은 굳건하게 특조위 강제 종료를 거부하며 조사 기간 보장과 선체 인양 후 적어도 6개월 이상 정밀 조사 보장, 성역 없는 조사 등을 위한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항의 행동을 이어가고 있다. 박근혜의 총선 참패 이후 아래로부터의 압력과 그에 따른 내부 균열의 징후가 계속 포착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자신감을 갖고 단호하게 성역 없는 진실 규명을 위해 나아가야 한다.

입력 2016-07-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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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정부의 미국 패권 지원에 책임 있다

최영준

박근혜 정부는 7월 1일 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켰다. 특조위 조사활동 예산 지원을 중단했고, 지난해 배정받은 예산 중 남은 예산을 손대지 말라는 협박 공문을 특조위에 보냈다.

이에 맞서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피해자 2백11명을 심층면접, 설문조사한 결과를 바탕으로 실태조사 결과 발표회를 7월 20일에 열고 8월 23~24일 3차 청문회를 개최하기로 했다. 민변도 “특조위 강제 해산은 위헌”이라며 특조위 사무실 앞에서 릴레이 단식농성을 하고 있다.

유가족과 4·16연대를 비롯한 세월호 운동이 지난 몇 달간 ‘특조위 강제 종료 중단, 특별법 개정, 세월호의 온전한 인양’을 요구하며 정부의 방해 공작에 맞서 싸우자, 특조위도 이에 호응해 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특히, 유가족들은 지난 6월 25일부터 8일간 노숙농성을 하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에 대한 대중의 이목을 끌어냈다.

배신 박근혜는 참사 직후 보인 알량한 동정의 표현들마저 거두고 진상을 파묻으려 한다. 야당은 또다시 이에 굴복해 후퇴하는 것은 배신이다. ⓒ이미진

또, 제주 해군기지 철근 과적, 청와대의 세월호 참사 보도 통제 등이 폭로돼 특조위의 ‘성역 없는 진상규명’ 활동이 지속돼야 하는 이유가 더더욱 분명해졌다. 박근혜 정부가 서둘러 특조위 활동을 종료시키려 한 진정한 의도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박근혜는 특조위를 강제 종료시켜 세월호 유가족들의 사기를 꺾고 국회 내 특별법 개정 논란을 잠재우려 했지만 상황은 뜻대로 되고 있지 않다.

야당의 특별법 개정 포기 움직임 ― 지금은 후퇴할 때가 전혀 아니다

6월 30일 정부가 특조위 강제 종료를 선언했지만 새누리당과 더민주당·국민의당은 특조위 조사기간 연장을 두고 협상을 시작했다. 해수부도 여야 합의를 따르겠다는 의견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여야는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농해수위) 내 특별소위원회를 구성해 특조위 조사 기간을 올해 12월까지 연장하는 안을 놓고 협상 중이다.

그러나 국회 농해수위는 특별법 개정 문제는 외면한 채 특조위 조사 기간 연장만 다루려 한다. 분명히 말하건대, 특조위 조사 기간은 법이 정한 대로 내년 2월까지다. 여야 간 협상을 통한 연장 문제가 아니다.

또, 세월호 인양 후 특조위에 선체 정밀 조사 권한을 줘야 하고 인양 후 6개월에서 1년까지 활동할 수 있게 보장해야 한다. 수십만 명이 입법 청원했던 특별법 개정의 핵심 내용들을 야당이 멋대로 칼질해서는 안 된다.

더민주당·국민의당은 특별법 개정 투쟁을 하기도 전에 새누리당이 특별법 개정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어 특조위 조사 기간만이라도 연장하는 게 상책인 양 본다. 그러나 만약 야당이 특별법 개정은 외면한 채 특조위 조사 기간 연장만 여당과 합의한다면, 이는 특조위 활동 연내 종료를 합의하는 꼴이 된다.

세월호 운동 내 일부 리더들도 야당의 생각에 동조한다. 그러나 2014년 특별법 제정 투쟁의 교훈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시 새누리당이 수사권·기소권 포함한 특별법을 거부하자 야당인 새정치연합은 거듭 후퇴했고, 세월호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은 야당을 추수했다. 결국 야당의 배신적 타협으로 유가족들은 사기저하됐고, 울며 겨자 먹기로 수사권·기소권 없는 반쪽짜리 특별법을 받아들여야 했다. 이 때문에 진실 규명 활동은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2014년 특별법 제정 때 야당이 세 차례 유가족들을 배신한 일이 기억난다”며 특별법 개정의 핵심 내용 중 어느 것 하나도 포기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선심 쓰듯이 12월까지 기한을 연장해 주겠다는 국회 논의에 속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가 옳다!

세월호 참사는 유가족의 문제일 뿐 아니라 이 땅을 살아가는 광범한 평범한 사람들의 문제다. 여야 협상 수준에 따라 진실 규명 활동이 제약돼서는 안 된다.

물론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은 국가 권력을 상대로 싸우는 것인 만큼, 지난한 과정을 거칠 것이고, 곡절도 많을 것이다. 그렇다고 특별법 개정 같은 진상규명을 위한 최소한의 필수 장치를 하나 둘 양보하다 보면 오히려 대중이 실망할 것이고 운동의 동력도 약해질 것이다.

따라서 국회 상황 논리를 앞세우는 더민주당·국민의당의 후퇴 시도를 분명하게 비판하며 이들과 독립적으로 진상 규명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더욱이 박근혜 정부는 특별법 개정에 대한 광범한 지지, 제주 해군기지 철근 과적과 청와대 보도 통제 폭로로 궁지에 몰려 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요구를 삭감해야 하는가? 지금은 자신감을 갖고 굳건하게 특별법 개정 투쟁을 이어갈 때다.

 
 

입력 2016-07-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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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원·이지혜 기간제 교사 순직 인정

그들도 제자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내던진 선생님이었다

김승주 (대학생,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됐지만 순직 인정을 받지 못한 단원고 기간제 교사 유가족이 순직 인정 요구 소송을 시작했다. 정부는 2014년 7월 순직 인정을 받은 정규직 희생 교사들과 달리 김초원·이지혜 교사가 기간제라는 이유로 순직 인정을 거부했다. 이 두 명의 선생님은 죽어서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고 있다.

공무원연금법 시행령에 따르면 정규 공무원 외의 직원이라 할지라도 수행 업무와 보수 지급 여부의 계속성을 고려해 인사혁신처장이 인정하면 공무원연금법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공무원연금법이 적용되면 순직 심사 또한 가능하다.

하지만 인사혁신처는 제대로 된 근거도 대지 않은 채 “기간제 교사는 공무원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뻔뻔하게 고수하고 있다. 경기도교육청이 의뢰한 법률자문단, 대한변호사협회, 공익인권법재단 ‘공감’, 심지어 국회입법조사처에서도 “공무원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의견을 제출했는데도 말이다.

국가는 이렇게 선생님을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비정하게 분리하지만, 참사 당시 세월호 안에서는 정규직과 기간제 가릴 것 없이 모든 단원고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위해 제 한 몸 돌보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구조 활동을 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 희생자 중 생존자 비율이 가장 낮은 집단이 교사들이다. 선생님들은 “애들 한 명이라도 더 내보내고 나가겠다”며 더 아래 층으로 내려가 자신의 구명조끼를 학생에게 입혔다.

“선생님, 생일 축하해요” 사고 전날, 학생들이 세월호 안에서 김초원 선생님의 생일 파티를 연 모습. ⓒ사진 출처 4·16가족협의회

학생들에게 친구처럼 친근했던 김초원 선생님은 4월 16일이 생일이었다. 김초원 선생님은 끝까지 배 안에 남아 있다가 결국 학생들이 생일 선물로 준 목걸이를 한 채 시신이 돼 올라왔다. 이지혜 선생님 또한 탈출이 가능했던 시점과 장소에 있었지만 죽음을 무릅쓰고 4층으로 내려가 아이들에게 자신의 구명조끼를 줬다.

어떻게 이 모든 고귀한 희생들에 차별을 둘 수 있는가?

계약직 교원 증대 정책

현재 인사혁신처가 두 명의 기간제 희생 교사를 공무원으로 결코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은 교육재정 감축과 계약직 교원 늘리기 정책과 관련 있을 것이다.

올해 초 교육부의 발표에 따르면 기간제 교사는 전체 교원의 10퍼센트를 웃돌고 있다. 이 수치는 2012년 이후 기간제 교사가 해마다 1천여 명 이상 증가한 결과다. 특히 고등학교에서 이 추세가 두드러진다.

또, 박근혜 정부는 학령 인구가 감소하는 추세이기 때문에 탄력적인 대응이 불가피하다면서 시간제 교사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혀 왔다. 시간제 교사 늘리기가 청년 실업의 대안이라고 호도하기도 했다.

전교조는 세월호 참사의 당사자이자 상주로서 세월호 교과서를 발행하고 계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교육과 사회를 바꾸기 위한 싸움에 동참하고 있다. 전국에서 4만 명이 넘는 기간제 교사들 또한 이런 싸움의 일부가 될 수 있다.

희생된 기간제 교사 유가족들의 순직 인정 투쟁이 승리할 수 있도록 지지와 관심을 보내자.

입력 2016-07-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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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과적된 철근이 향한 곳

제주 해군기지는 무엇을 위한 것인가?

김지윤

최근 <한겨레21>은 세월호 도입에 제주 해군기지가 일부분 영향을 줬다고 보도했다. 청해진해운의 ‘2010년 영업실적 보고’를 보면 제주 해군기지 공사는 중요한 영업 고려 요소였고, 실제로 청해진해운은 무리하게 세월호를 도입했다.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철민은 7월 13일에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주요 건설자재의 입항 화물량이 2012년 중순부터 급격히 상승해 2013년에는 이전에 견줘 갑절가량 폭증했다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가 구럼비 바위를 폭파하며 기지 건설에 박차를 가하던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지난 4월 국방부가 더민주당 김광진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서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2014년 한 해에만 제주 해군기지로 운송된 철근이 1만 8천 톤에 이른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는 철근 조달 경로 중 인천-제주 경로가 누락돼 있다. 국방부가 제주 해군기지와 세월호 참사의 관련성을 의도적으로 은폐한 것이다. 국방부는 최근까지도 제주항에 입항한 건설자재 중 제주 해군기지로 소요된 건설자재 내역과 조달 현황 관련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국방부 · 검찰 등이 청와대를 비호해 왔음을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는 대선 후보일 때 “제주도를 제2의 하와이로 만들자”며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찬성했다. 그런데 기지 건설이 원래 계획보다 늦어지자 과적도 용인했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의 진정한 책임자임이 분명해지고 있다.

미국의 “아시아 중시 정책”

김대중 정부 당시 계획되고 노무현 정부가 결정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은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면서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정부는 강정마을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무시하면서 공사를 강행했다. 이 과정에서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평화 활동가 수백 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법원에서 벌금형을 받아야 했다. 자연은 물론이고 주민들의 삶도 파괴됐다.

제주 해국ㄴ기지

△박근혜 정부는 동아시아 불안정을 심화시킬 제주 해군기지를 건설해 놓고는 제주도를 '평화의 섬'이라 우기고 있다. 뻔뻔한 해군은 강정마을 주민들에게 구상금 34억 원을 청구했다. 강정을 파괴한 제주 해군기지는 세월호 참사라는 비극의 배경이기도 했다. ⓒ이윤선

역대 정부들이 이토록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안달이 났던 이유는 이 기지가 미국의 동아시아 패권 전략과 긴밀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 지배자들은 미국의 전략에 협력해 해양에서의 군사적 입지를 다지고 싶어 했다. 노무현 정부가 주창한 “대양강국” 구호가 이를 보여 준다.

미국은 아시아 지역에서 최고의 해군력을 자랑한다. 미국은 ‘아시아로의 회귀’를 선포한 이래 이 지역에서 군사력을 계속 증강시키고 있다. 미군 기관지 <성조>가 공개한 미국 국방부 자료에 따르면 태평양사령부 예하 병력은 24만 4천 명에서 2만 2천 명이 더 늘었다. 올해 세계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미국의 항공모함은 4척으로 2012년 이후 4년 만에 수가 늘었다. 일본 요코스카 기지에 있던 로널드 레이건호가 출항했고, 태평양에는 스테니스호가 배치됐다. 이 항공모함은 남중국해에서 오랜 시간 머물렀는데 명백히 중국을 겨냥한 것이다.

특히 한미일 동맹은 미국의 중국 봉쇄 전략 강화에서 핵심적이다. 이명박 정부가 비밀리에 추진하려다 실패한 한일 군사 정보 협정도 이런 동맹 강화 구상 속에서 진행된 것이었다. 특히 2010년 미국 국무부의 프랭크 로즈 부차관보는 “아시아에서 일본과 한국은 이미 중요한 MD 파트너들”이라고 지적했다. 이명박 정부는 MD(미사일방어체계) 편입을 거듭 부인했지만 위키리크스가 폭로한 것을 보면 이명박 정부는 2008년 가을 미국과 MD기구 창설에 합의했다. 2013년에 한미일은 제주 동남쪽과 일본 규슈 사이 공해상에서 비공개 해상 합동 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국방부는 이 훈련이 인도적 목적의 수색 구조훈련(SAREX)라고 주장했는데, 정작 세월호 참사가 벌어졌을 때 이 훈련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었다. 2016년에도 한미일은 하와이 해상에서 해상 MD 훈련을 실시했다. 지금 박근혜는 기어코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전략적 요충지

제주 해군기지는 이런 그림 속에서 건설이 추진됐다. 미국은 아시아에 추가적인 기지와 시설, 기항지를 확보해 “미 해군의 접근 능력 및 신속성과 기동성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2011년 당시 미국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는 “앞으로 미군은 아시아에서 기항지를 늘리고 다수 국가와의 다국적 훈련도 확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주도는 남중국해, 서해, 일본을 연결하는 지정학적 요충지로서 중요성을 가진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제주도 인근 해역은 오키나와와 괌으로 날아가는 미사일의 요격을 시도할 수 있는 최적의 전략적 요충지”라고 지적한다. 평화 활동가이자 ‘글로벌 네트워크’ 사무총장인 브루스 개그넌은 “제주 해군기지는 사실상 '중국의 머리에 총을 겨냥하는 격'”이라고 비유한 바 있다. 당연하게도 중국 지배자들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불편한 심경을 드러내 왔다.

이런 반발을 의식해서 한국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가 미군의 군사 기지로 기능하지 않을 것이라 우겨댔다. 그러나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 장하나 의원은 외교·통일·안보 분야 대정부 질의에서 제주 해군기지 대상 선박은 한국군이 보유하지도 않은 핵추진항공모함(CVN-65급)을 전제로 설계됐고, 주한미해군사령관(CNFK)의 요구를 만족하는 수심으로 설계적용이 계획됐다고 폭로했다.

해군은 애써 제주 해군기지를 민군복합미항이라 이름 붙여 반감을 줄이려 하지만 15만 톤급 크루즈 선박은 전 세계에 7척에 불과하다(2012년). 심지어 크루즈 선박 외에 민간 선박은 입항할 수도 없다는 것이 2012년에 밝혀졌다. 그러니 민군복합항이라는 국방부의 주장은 거짓말이다.

또한 주한미군주둔군지위협정(SOFA)에 따라 미국은 얼마든지 한국 정부의 사전 동의 없이도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할 수 있다. 노무현 정부가 합의한 전략적 유연성 개념에 따라 제주 해군기지는 대만, 오키나와, 남중국해 등 미국의 필요에 따라 활동의 전초 기지가 될 수 있다.

2013년 미 해군 중령 데이비드 서치타의 ‘제주해군기지 동북아의 전략적 함의’는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제주 해군기지는 센카쿠 열도에서 일본과 중국의 무력 충돌 발생시 일본을 지원할 수 있다. 게다가 중국 동부 대륙붕의 약 70퍼센트는 서해와 동중국해에 있다. 대만해협에서 무력 충돌이 발생하면, 제주 해군기지를 이용하는 미국 함정과 잠수함, 그리고 항공모함은 남쪽으로 향하는 중국의 북해함대를 막을 수 있다. 또한 중국의 동해함대의 측면을 공격하는 데에도 효과적이다.” 주한 미 해군사령관이었던 리사 프란체티는 2015년에 “미 해군은 제주에 해군기지가 건설되는 즉시 항해와 훈련을 목적으로 함선들을 보내기를 원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정당화하려고 내세운 이어도 초계 활동도 이 지역에서 중국과의 마찰을 일으킬 수 있다. 중국은 2013년 이어도를 포함한 동중국해 방공식별지역을 선언했다. 이어도 상공에는 한중 양국이 선포한 방공식별구역이 중첩돼 있다. 배타적경제수역(EEZ) 경계선에 대한 합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진짜 “세금도둑”

패권 경쟁의 격화는 군비 증강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항공모함을 무력화하기 위해 탄도미사일 둥펑에 돈을 쏟아 붓고 있고 이에 대응하려고 미국이 만든 항공모함 제럴드 포드호는 건조 비용만 15조 원에 이른다. 동아시아를 불안정하게 만드는 무기를 만드는 데에만 천문학적 액수의 돈이 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한국은 이 지역 5위의 해군력을 보유하고 있고, 이를 위해 막대한 군비를 쓰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세월호 특조위가 세금 도둑이라며 강제 종료를 밀어붙이고는 군비에는 아낌 없이 세금을 퍼붓고 있는 것이다. 

제주 해군기지는 동아시아 평화를 위협하고 강정마을 주민들의 삶을 짓밟고 있다. 강정마을 주민들이 제주 해군기지를 “해적기지”라고 비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입력 2016-07-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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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기억교실은 원형 보존돼야 한다

김승주 (대학생,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세월호 참사로 죽은 단원고 학생 2백50여 명이 공부했던 2학년 교실, 우리는 이를 ‘기억교실’(교실 10개와 교무실 1개)이라고 부른다. 참사 이후 이 공간은 희생 학생들의 유품과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메시지로 가득 차 있다.

교실 존치는 참사의 아픔과 교훈을 기억하고 추모하기 위함이다. 무엇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도, 미수습자 수습도 안 된 상태에서 아이들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는 공간을 지울 수는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에게는 죽은 자식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류 언론들은 단원고 기억교실 존치 문제를 유가족 학부모와 재학생 학부모의 갈등으로 그리거나 유가족의 교실 존치 요구가 이기적인 요구라는 뉘앙스로 보도한다.

이기주의? 비극의 반복을 막으려면 때로 비통함도 기억돼야 한다. ⓒ이미진

그동안 세월호 유가족들은 신입생을 받고 재학생의 공부를 보장할 수 있는 여러 가지 대안을 제시해 왔다.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우리는 12개의 교실을 확충할 수 있는 교실 증축과 재학생들의 수업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기억 교실을 학교와 차단하는 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경기도 교육청은 우리의 안을 행정적인 이유로 거부했다. 만약 신입생을 못 받는 상황이 된다면 그게 정말 우리 유가족 탓인가?” 하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이 실제로 한 일은 유가족이 바라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단원고를 “혁신학교”로 지정한다거나, 희생 학생들의 명예 졸업식 선물로 유가족에게 금 한 돈을 하나씩 나눠주려고 했다. 따라서 재학생 학부모와 유가족 학부모 사이의 갈등으로 모는 것은 진정한 쟁점을 묻어버리는 것이다.

우리 모두를 위한

결국 온전한 진실을 다루지 않는 언론의 여론 몰이 때문에 유가족들은 피눈물을 흘리며 기억교실을 안산교육지원청으로 원형 그대로 이전하는 데 합의했다.

그런데 지난해 5월에 약속한 이 합의에 대해, 올해 재학생 학부모 측이 “등교 거부도 불사할 수 있다”며 약속을 깨뜨리는 일이 수차례 벌어졌다. 교실 이전 시기를 앞당기기 위해 유가족들이 “교실 원형 보존” 요구를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애초에 경기도 교육청과 함께 약속한 내용에는 “교실 재현”이 포함돼 있었다. 경기도 교육청은 이런 상황을 방관하고 있다.

그러나 기억교실은 원형 보존돼야 한다. 그토록 많은 생명이 무고하게 세상을 뜬 체제의 참극을 잊지 않고 세월호 이전과는 다른 이후를 만드는 활동들을 상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입력 2016-07-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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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중 416 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특조위원 인터뷰

“여야가 특조위 활동에 관해 어정쩡한 합의를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가 특조위 조사활동을 결국 강제 종료시켰습니다.

이호중 특조위원(유가족 추천 비상임위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이미진

파견 공무원들은 철수했지만 조사관들은 남아서 조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사명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예산을 지급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어려움도 있습니다. [월급은 고사하고] 조사관들이 지방에 내려가서 관계자들도 만나고 조사를 해야 하는데 이런 과정에서 소요되는 경비조차 알아서 해결해야 합니다.

현재 정부의 계획대로라면 9월 30일까지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이고 이후에는 기관 청산 기간입니다. 그렇게 되면 사무실을 정리하는 등 수순을 밟게 됩니다. 따라서 특조위 활동에서 9월 말이 분기점이 될 것이라 봅니다. 특조위는 7월부터 9월까지 최대한 조사관들의 역량을 집중해서 조사를 진행하고 대외적인 활동도 힘껏 하려고 합니다.

6월 말 특조위가 제주 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이 세월호에 과적됐던 것을 밝혀냈습니다. 이후 관련한 조사들은 어떻게 이뤄지고 있나요?

정부 기관들이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에 조사관들이 세월호에 실리는 화물들을 CCTV 영상으로 하나하나 살피면서 조사를 해야 했습니다. 이제까지 정부는 제주 해군기지로 가는 철근은 부산에서 제주도로 가는 항로만 있다고 했는데 조사를 통해 그것이 아님을 밝혀낸 것이죠. 제가 보기에는 정부가 이 사실을 숨겨 온 것이 큰 문제입니다.

특조위가 조사 보고서를 제출했지만 조사해야 할 쟁점들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청해진해운은 과거에는 해군기지 건설 자재들을 어떻게 운반했고 그 과정에서 해군과 국정원의 구실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조사가 추가적으로 필요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그날 세월호만 출항을 했는데 출항 결정을 하는 데에서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을 실은 것이 영향을 미쳤는지도 밝혀야 합니다. 특조위가 조사해야 할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동안 정부기관들의 비협조와 방해로 충분히 조사하지 못한 것들도 많습니다.

끝까지 함께 종료 선언에 굴하지 않고 출근하는 특조위원들을 유가족들이 격려하고 있다. ⓒ제공 최윤석

청와대의 KBS보도 개입도 폭로됐고 특조위는 이정현 전 청와대 홍보수석과 길환영 전 KBS 사장을 고발했습니다.

청와대가 보도 통제를 한 것은 매우 심각한 사안입니다. 특조위가 고발한 이후에도 계속해서 진상 조사는 이뤄지고 있습니다. 과연 이정현 전 홍보수석이 단독으로 한 일일까요? 그 배후는 없을까요? 조직적으로 한 것은 아닐까요? 과연 KBS에만 보도 개입을 한 것일까요? 밝혀야 할 일들이 여전히 매우 많습니다.

최근 특조위는 8월에 청문회를 열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종합 보고서 작성 기간이라고 우기지만, 특조위는 진상조사 활동을 계속해 나갈 것입니다. 그런데 정부는 자료나 출석 요청 등을 하면 특조위 조사관은 이제 공무원이 아니라며 협조할 수 없다는 식의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청문회에도 증인들이 불출석하는 등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특조위의 조사 권한이 매우 미약하다는 점이 그간 활동에서 어려움을 준 것이 사실입니다. 공문으로 자료를 요청하면 답변도 없다가 재촉하면 그제서야 별로 영양가 없는 자료를 보내는 일들이 많았죠. 그렇게 몇 달씩 걸리는 일들이 다반사였습니다. 물론 이런 과정들을 특조위가 좀 더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권한 자체가 워낙 약하다 보니 근본적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조사해야 할 쟁점은 여전히 많이 남아 있고, 조사활동의 연장에서 청문회 주제에 대해 여러가지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해경이 에어포켓을 시도하고 있다고 거짓으로 알린 일이나 참사 직후에 해경이 선원들을 경찰 조사 전에 따로 수사관 집에서 재운 일, 경찰이 진도 체육관을 사찰한 일 등 참사의 진상을 조작하고 은폐하려 한 것도 진상조사의 중요한 대목입니다. 관련해서 언론 통제 등에 대한 보다 철저한 조사도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해경과 청와대 등 책임 기관에 대한 실지 조사도 본격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청문회를 위한 조사를 하고 공개토론회도 하면서 특조위가 조사활동을 이어나가고 정부 기관이 특조위의 조사활동 종료로 권한이 없다고 하면서 방해하는 과정이 고스란히 드러나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정부의 조직적인 진실 은폐를 폭로하고 특조위 활동의 필요성 등이 널리 알려질 수 있도록 하는 게 중요할 것 같습니다.

최근 농해수위에서 더민주당, 국민의당, 새누리당이 특별소위를 꾸려 특별법 개정이 아닌 조사기간 연장 협상을 하고 있습니다. 왜 특별법을 개정해야 하나요?

특별법이 제정될 때 조사기간으로 적어도 1년 6개월은 필요하다는 것이 정치적 합의였습니다. 충분하고 실질적 조사가 가능하도록 기간을 보장해야 하는 것이죠. 그런데 특조위가 예산과 인력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할 수 있었던 때가 2015년 8월 중순이었습니다. 지금 1년도 되지 않은 것이죠. 1년 6개월도 턱없이 부족한 기간이긴 하지만 특별법의 정신을 살려서 적어도 1년 6개월의 조사기간은 확실하게 보장돼야 합니다.

이 기간을 보장할 것, 그리고 인양 후 최소한 6개월은 선체 조사를 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 이 두 가지 조건이 반드시 갖춰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여야의 어정쩡한 정치적 합의로 몇 개월 연장해주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합의가 나온다면 특별법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므로 도저히 인정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농해수위 세월호특별법소위에서 특별법 개정보다 법 해석을 통한 기간 연장에 중점을 두고 논의하는 것이 우려가 됩니다. 야당이 특별법 개정의 의미나 진상 규명의 필요성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 운동이] 여야가 특별법 개정이 아닌 조사 기간의 일부 연장 수준으로 함부로 합의하지 못하도록 압박하는 게 중요합니다.

인터뷰·정리 김지윤

 

입력 2016-07-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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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 농성에 돌입한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 인터뷰

"두 야당은 여소야대로 만들며 희망 건 국민들 배신 말아야"

인터뷰?정리 김지윤

 

유경근 집행위원장 단식

△8월 22일은 22년 만에 최고 폭염으로 기록된 날이었다. 무더위와 싸우는 것만 해도 힘든 여름날,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특별법 개정을 위해 다시 힘든 선택을 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이번 단식을 사생결'단식'이라고 불렀다. "말도 안 되는 여당의 주장만을 수용하는 무책임한 야합을 한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20대 국회를 여소야대를 만들어 준 국민들의 명령을 지체없이 이행할 때까지 사생결단을 내는 심정으로 단식을 하겠다는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조승진

세 번째 단식 농성입니다. 단식에 돌입하신 이유를 말씀해주세요.

27일째 특조위원들이 단식을 하고 있습니다. 특별법과 특조위는 가족들과 국민들이 만들었습니다. 끝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로 같이 단식을 하는 것이고요.

20대 국회가 시작된 후 여소야대 국면에서 희망을 갖고 있었습니다. 개원하고 나서 많은 국회의원들을 만났고 약속을 받았어요. 그런데 최근에 [이와는]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고 여당이 특조위를 무력화시키려 내놓은 ‘별도의 조사기구를 이용한 선체조사’를 야당이 그대로 받아들여 놓고는 “합의”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근본적인 잘못은 정부와 여당에 있지만 야당이 오히려 앞장서서 피해자들과 국민들의 바람을 꺾고, 희망의 싹을 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많은 사람들이 정권을 바꿔야 진실을 밝힐 수 있다고 말하는데 과연 이런 야당이 정권을 잡는다고 진실을 밝힐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심을 하게 되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국회를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여소야대로 만들어 주면서까지 희망을 걸고 싶어했던 국민들을 배신하지 말고 희망이 되어달라는 것을 촉구하기 위해서 단식을 시작했습니다.

총선 직후만 하더라도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개정안 발의를 말했고, 416연대는 국회의원들을 상대로 특별법 개정을 위한 ‘약속 운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최근 야당의 태도는 어떻게 변했습니까?

지금도 여전히 국회의원 개인적 차원에서는 의지를 표명하는 사람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법 문제는 개인의 의지나 지지를 넘어서 당 차원의 집단적인 시도와 전략적인 행동이 뒷받침돼야 합니다. 더민주당은 의원 전원이 특별법 개정 발의자로 참여했고, 국민의당 의원들도 대부분 발의에 참여했습니다. 특히 더민주당은 의원 전원이 개정안 발의자로 참여하면서 ‘[특별법 개정은] 당론이나 마찬가지’라는 표현도 해 놓고는 정작 집단적인 행동과 시도가 전무하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습니다.

특검은 당연히 직권상정을 해야 하는 거죠. 2년 전에 특별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족들과 국민들이 줄기차게 요구한 수사권 · 기소권을 두고 여야 모두 ‘그건 어려우니 대신해서 특검으로 하겠다’며 특검이 포함된 안을 받으라고 우리에게 요구했습니다. 특검이 한계가 많은 제도임을 알면서도 여야 둘 다 요구했기 때문에 결국 수사권과 기소권이 빠지고 특조위에는 조사권을 부여하고, 특검을 요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 특별법에 들어갔습니다.

특검 여부는 국회에서 논의할 문제가 아니라 특조위가 요구하면 의결해야 하는 겁니다. [2014년 특별법 제정 당시에] 특별검사 후보 추천 방식까지 합의해서 발표했어요. 그런데 막상 특검을 하려고 하니 ‘정치공세 말라’며 무시합니다. 그런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야당이 그것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있어요. 특검은 국회의장이 직권상정해서 만장일치로 의결해야 합니다.

9월 30일이면 특조위 보고서 작성 기간이라고 정부가 못박은 기간도 끝이 나고, 참사 9백 일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중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가요?

특별법 개정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또 온전한 인양을 할 수 있도록 싸우고 선체 조사를 특조위가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 싸움 하나밖에 없습니다. 유가족들과 지역 시민단체들이 국회의원들 개개인에게 직접 [개정 촉구 의견을] 전달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고 유가족들도 오늘부터 국회의원 전원에게 의견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전화도 하는 등 여러 방면으로 애쓰고 있습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 단식

△"응원이라는 효소가 필요합니다"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최근 "여러분의 응원으로 고픈 목을 축이고 싶다"고 말했다. 특별법 개정 요구를 외면하고 있는 정부와 여당 그리고 두 야당에 대한 비판과 항의가 커져야 한다. ⓒ조승진

세월호 인양이 예상보다 진척이 느리고 선체에 구멍을 뚫어서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 상황에 대해 어떻게 보고 계신지요?

인양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 솔직히 유가족들은 잘 모릅니다. 해수부가 우리한테 설명하거나 전달 · 통보하는 수준 이상으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다만 해수부가 일방적으로 통보 · 진행하는 것의 문제점에 대해서 얘기하고 개선을 요구하며 온전한 인양이 되도록 촉구할 때마다 돌아오는 반응은 ‘그러면 인양 못 한다’, ‘인양하라는 거냐 말라는 거냐?’, ‘미수습자 수습에 관심은 있냐?’입니다. 거꾸로 협박이 돌아오는 상황이죠.

정부와 해수부는 ‘미수습자 수습’이라는 누구나 바랄 수밖에 없는 목표를 앞세워서 진실을 절단 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마저도 정치적으로 판단하면서 인양할 시기, 작업할 시기까지 조율하고 있습니다. 말로는 해상 상황이나 날씨 등 불가항력적 요소 탓으로 돌리면서 말입니다. 과연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하고 행동을 해야 할지가 지난 2년 동안 고민했던 문제입니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조속하고 온전한 인양이 돼야 합니다.

지난주 '기억 교실'이 이전됐습니다. 씁쓸하고 비통하셨을 것 같습니다.

교실 이전은 분명 슬픈 일이고 아픈 일이고 분통터지는 일입니다. 그런데 부탁하고 싶은 것은 이전을 했지만 그 교실을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할 것인지 논의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이후에 진정한 의미에서 교실을 어떻게 보존, 활용할 것인지, 어떤 의미를 던질 것인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교실을 박물관으로 만들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점에 집중해서 ‘아프지만 힘내라’, ‘지키진 못했지만 교실을 더 의미 있게 만들어 가기 위한 일을 하자’ 이렇게 서로를 위로하면서 힘을 냈으면 좋겠습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최근 갑을오토텍 투쟁 현장을 방문하셨습니다. 백남기 농민 청문회 요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유가족들이 여러 투쟁에 함께해 온 것이 인상적입니다.

저희는 백남기 농민 문제[2015년 민중총궐기에 참가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의식불명 상태이다]가 세월호 참사와 별개의 사건이라고 보지 않아요. 한 명과 3백4명이라는 숫자의 차이만 있을 뿐 본질은 국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정부와 사회가 저지른 만행이고 범죄입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통해 국민의 생명과 인권이 존중받는 안전한 사회를 바라고 있어요.

갑을오토텍과 유성기업, 사드 배치 등도 있죠. 사드 배치도 본질은 같아요. 사드 배치로 받을 피해, 국민들의 생명에 대한 위협은 고려되지 않고 정치적인 이유로 진행되고 있어요. 이미 여러 곳에서 사드 배치가 우리 나라를 위한 것이 아니라 미국을 위한 것임이 드러났어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인데도 정부가 우리를 위한 것으로 거짓으로 포장하면서 결국 희생되는 것은 우리 국민입니다. 강정 해군기지 등 이런 사건은 다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습니다. 용산참사도 이미 지난 일로 치부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결국에는 정부와 사회가 국민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증명하는 일련의 사건들입니다. 관심을 안 가질 수가 없습니다.

[이런 관심과 참여에 대해] 한 쪽에서는 비판도 하고 처음에는 이런 비판 때문에 [참여를] 꺼리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지만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공권력에 의해 생명을 빼앗겼든 재산권을 침해 받든 어떤 경우든 기본권을 침해당한 사람들이 연대해서 목소리를 내야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민들이 연대하는 것을 차단하려고 정부는 늘 우리를 갈라놓고 갈등을 조장하려 합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연대하는 게 맞으니까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는 함께 목소리와 힘을 모아 함께 행동할 것입니다. 

입력 2016-08-2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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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시즘2016 이호중 세월호 특조위원 연설

세월호, 국가 폭력, 진실규명 운동

이호중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 조사위원)

제가 세월호 강연을 처음 시작한 것은 2014년 9월이었습니다. 그 강연도 노동자연대가 주최하는 강연이었는데 벌써 2년이 됐습니다. 그런데 그때 만든 자료를 지금 써도 아무 이상이 없을 정도로 변한 것이 없습니다. 강연할 때마다 조금씩 업데이트를 합니다만 업데이트할 내용이 별로 없어요. 2년 6개월 가까이 변한 게 없기 때문입니다. 답답합니다.

정부의 특조위 활동 방해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도 현재 제대로 활동을 못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6월 30일로 특조위의 활동이 종료됐다는 것이 정부의 주장이죠. 정부는 거기에 따라 행정 처리를 하고 있습니다. 조사관들이 6월 30일로 당연 면직이 됐습니다. 예산을 안 줘서 돈이 없어 조사도 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해경이나 정부 공무원을 조사하려고 출석요구서를 보내면 “당신들은 공무원이 아니다. 우리가 조사에 응할 이유가 없다”면서 출석하지도 않습니다. 조사관들이 월급도 받지 못하고 공무원 지위도 인정받지 못해서 활동이 매우 어렵습니다. 월급을 받지 못해도 열심히 활동해야 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의지만으로 쉽게 되는 문제는 아닙니다. 예를 들면 최근에 조사관 한 분이 대출을 받으려고 했는데 공무원이 아니라고 재직증명서를 떼지 못해서 대출을 받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자잘한 문제일 수 있지만 당사자들에겐 심각한 문제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때도 공무원이면 보조금을 조금 받을 수 있는데 이런 것도 전혀 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내부적으로 어려운 상황입니다. 조사도 어렵지만 특조위 자체가 얼마나 유지될 수 있을까 걱정이 됩니다. 난국이라 할 수 있죠.

이호중 특조위원(유가족 추천 비상임위원,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사진 이미진

법이 개정될 가망성은 안 보이죠?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도 핑계 대기 좋아요. 실제 [야당] 국회의원들이 ‘우리 선진화법 때문에 못 한다’고 얘기합니다. 공식적으로야 특별법 개정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아요. 특별법을 개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으로서는 직권상정밖에 없습니다. 직권상정은 국회의장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일인데 만약 그러면 정부와 완전히 대립각을 세우는 꼴이 되겠죠. 더민주당 입장에서는 20대 국회 초반부터 그러고 싶지 않은 거죠. 그런 여러 정치적 상황 때문에 법 개정이 쉽지 않은 상황이고, 지금 상태로 지속되다 보면 9월 말이 또 한번의 분기점이 될 것 같아요. 정부가 6월 30일로 특조위 활동이 종료됐다고 하는데, 이후 법으로 보장된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이 3개월이거든요. 9월 말이면 종합보고서 작성 기간이 끝나요. 9월 말이면 특조위가 끝나고 청산 절차로 들어가게 됩니다. 집기를 조달청으로 반납하고 사무실 문 닫는 거죠. 정말로 쫓겨나는 겁니다. 법이 개정되지 않고 지금 상태로 간다면 9월 말 긴장과 대립적인 상황이 될 겁니다.

특조위는 그때까지 어떻게든 조사를 하고 [요구를] 관철시킬까 고민하고 있는데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원래부터 [특조위의] 권한 자체가 약했기 때문입니다. [관련자들이] 출석에 응하지도 않고 자료 제출도 안 하기 일쑤입니다.

철근 문제 잘 아시죠? 특조위에서 처음 의결했습니다. 제주 해군기지 건설에 들어가는 철근이 2백70톤가량이 있었고, 전체 철근도 처음 수사할 때 검경 합동수사본부에서 발표했던 것보다 양이 많았습니다. 해수부는 이미 그 자료를 갖고 있었습니다. 화물업주들이 보상 신청을 하기 위해서는 해수부에 어떤 화물이 얼마나 실렸는지를 기록한 자료를 제출해야 합니다. 그래서 해수부는 그 자료를 다 갖고 있었습니다. 보상받으려는 업주들이 화물량을 줄일 이유가 없잖아요. 우리가 해수부에 그 자료를 달라고 할 때 해수부는 안 줬습니다. 그래서 조사관들이 세월호 선적할 때 항만에 설치된 부두의 CCTV를 일일이 다 분석했어요. 하나하나 체크하고, 청해진 기록을 받고, 화물업자 기록을 받고 일일이 확인했습니다. 시간이 엄청나게 걸렸죠. 그러니까 더딜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근본적으로 특조위 조사의 조건 자체가 열악합니다.

과거에도 진상 조사를 위한 위원회가 여럿 있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는 그 위원회들이 어느 정도 청와대의 뒷받침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그때조차 진상 규명이 쉽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군기무사, 국방부 등이 진짜 협조를 안 합니다.

허 일병 사건 아시죠?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관이 핵심 자료를 집에 보관하고 있다는 정보를 조사관들이 입수하고 그 수사관의 집을 불시에 방문합니다. 수사관이 집에 없었어요. 가족들과 얘기하고 자료를 갖고 나오는데, 수사관이 연락을 받고 급하게 달려왔고 집 앞에서 조사관들이 그 수사관과 마주쳤습니다. 그런데 그 수사관이 권총을 쐈어요. 물론 사람을 향해서 쏘지는 않았죠. 가져가면 죽여 버리겠다는 위협이었죠. 국가권력을 상대로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 사건을 통해서 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청와대 지원을 전폭 받아서 설립된 위원인데도 그랬어요. 그런데 세월호 특조위는 어떻습니까? 참사의 책임이 있는 조사 대상자들이 바로 박근혜 정부의 권력기관들입니다. 현재 살아 있는 권력기관을 조사하는 것이니 얼마나 힘들겠어요. 그만큼 진실 규명 운동 자체가 특히 국가 폭력과 연결돼 있을 때 더욱 어렵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 많은 연대와 노력이 지속돼야 합니다.

특조위가 언제 끝날지 잘 모르겠어요. 우리가 주장하는 조사 기간은 내년 2월까지입니다. 정부는 위원회가 구성된 날을 지난해 1월 1일로 보고, 그때부터 계산해 올해 6월 30일로 특조위 활동이 끝났다고 합니다. 우리는 시행령이 개정되고 나서 특조위에 예산과 인력이 갖춰진 때로부터 1년 6개월을 계산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 시점이 지난해 8월이었기 때문에 내년 2월까지가 조사 기간이 돼야 합니다. 사실 1년 6개월도 턱없이 부족합니다. 만약 그 기간을 다 보장해 주더라도 특조위가 얼마나 밝혀낼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정부가 워낙 협조를 하지 않고 자료를 주지 않기 때문이죠.

또, 우리 나라는 자료의 생산과 보존 시스템이 엉망입니다. 이명박이 퇴임할 때 자료를 다 폐기시켰다고 하잖아요. 실제 우리 나라 핵심 권력기관들인 국정원, 검찰, 경찰 등은 주요 자료를 메모해서 보고합니다. 근거를 남기지 않으려는 거죠. 사안이 중요할수록, 정치적일수록 기록을 남기지 않습니다. 파일을 안 남기고 쪽지로 보고하고 없애 버리는 거죠. 박근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역대 정부들 다 그랬고, 그래서 실제로 자료가 거의 없습니다. 물론 있는 것도 안 주는 경우도 많지만요. 특히 정부시스템이 자료를 생산하고 역사적 기록을 남기는 것에 있어 심각한 문제가 있죠. 미국 같은 경우 백악관의 전화 통화 내용이 모두 자동으로 녹음돼 기록 · 보존됩니다. 우리는 그런 시스템이 아예 없습니다. 경찰도 정보과에서는 기소를 위해서 필요한 것은 서면으로 남깁니다. 예를 들어 대규모 집회 같은 경우에는 수시로 상황 보고를 하죠. 몇 시에 몇 명이 모여 있고, 어디로 행진하고 등. 이런 식의 보고는 나중에 기소하려고 파일로 남깁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보고는 기록이 없습니다. 전부 쪽지로 보고하고, 보고 받은 사람은 보고받은 즉시 파쇄기에 넣어 없애 버립니다. 물론 그 보고가 청와대까지 올라가기도 하죠. 청와대까지 올라가는 보고는 정말 기록이 없습니다.

세월호 참사는 왜 일어났는가?

참사라고 부르는 이유가 있습니다. 참사는 단지 많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적폐’라는 표현을 쓰잖아요, [참사는] 우리 사회 구조적 모순이 다 담겨 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해경이 구조하지 않았잖아요. 선장과 선원만 구조했잖아요. 사실 저는 선장과 선원만 구조한 것에 ‘구조’라는 표현을 쓰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구조가 아니라 먼저 탈출시킨 거죠. 아무튼 왜 그랬을까? 해양 사고를 대비한 해경의 훈련 시스템이나 구조 시스템을 보면, 여기에 외주화 · 민영화 논리가 작용합니다. 실제로 해수부가 만든 ‘수난구호법’이 2012년에 개정되는데, 해양 사고가 발생했을 때 민간업체를 동원할 수 있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갖추는 것이 그 목적이었습니다. 아주 긴급한 구조, 예를 들면 육상에서 119구조대가 하는 정도의 업무는 해경이 하지만 그 이외 구조 · 구난 업무는 민간에 맡기겠다는 것이죠.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임창수라는 해경차장에게 “사고가 발생하면 인명 구조를 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적인 의무인데 이런 식의 시스템을 해 놓으면 어떡하느냐?”고 질문을 했더니, 그 사람이 “연간 계속 발생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장비를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그러니까 민간하고 네트워킹을 잘 하면 예산이 절감된다”고 말합니다. 전형적인 민영화 논리죠. 인명을 구조해야 하는 국가의 업무에도 민영화 논리가 들어가 버린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고 초기에만 해경을 투입하고 그 다음에는 민간업체를 부르는 시스템입니다. 세월호 참사 때도 실제로 뱃머리 부분만 남기고 다 가라앉은 12시가 조금 넘은 시점에 삼천 부암에서 해경 간부들이 회의를 하는데 그 자리에서 이미 언딘을 부르자는 것이 결정됐습니다. 바로 이 시스템 때문에 해경이 112구조대를 제외하고는 ― 얘네들도 제대로 출동하지 못했죠 ― 기본적으로 훈련 자체를 하지 않습니다. 물론 해상 훈련은 연간 대규모 단위로 1회, 청 단위로 몇 회, 서 단위로 몇 회 실시한다는 규정은 있습니다. 그런데 재난 사고 대비 훈련은 주로 바다에 빠진 사람 건져 내는 것만 합니다. 해경이 하는 훈련이 그게 전부에요. 해경이 그토록 무능한 이유입니다. 개인의 잘못을 넘어서서 재난에 대처할 때 해경의 역할이 어떻게 지워져 있고, 국가가 [재난에] 어떻게 대응하도록 설계돼 있는지 등 시스템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선박 안전 점검도 기업으로 넘겼습니다. 해운조합이 합니다. 해운조합이란 선주회사들이 돈을 내서 운영하는 법인입니다. 이사장이나 이사 등 해운조합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모두 선주회사 관련 인물이죠. 선주들의 회비로 운영하고, 거기서 운항관리자를 채용합니다. 이 운항관리자가 출항 때 안전 점검을 하는 사람입니다. 선주회사를 상대로 안전을 점검해야 하는데, 월급 주는 사람을 감독해야 하는 시스템이라 제대로 될 리 없죠. 원래 화물은 출항 20~30분 전에 다 실어야 합니다. 그러고 나서 안전 점검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배가 떠나기 직전까지 화물을 싣죠. 그러다 보면 안전 점검을 할 새도 없이 배는 떠납니다. 그러고 나서 선장이 전화로 ‘우리 승객이 몇 명 타고, 화물이 몇 톤 실렸어’ 하고 말하면 그거 받아 적는 것이 다입니다. 이것이 현실입니다. 안전 점검이 제대로 될 리가 없습니다. 세월호 때도 그랬습니다. 안전 점검이 국가의 의무인데 이것을 민간에게 맡겨버린 것입니다.

규제 완화도 문제가 많죠. 선령 제한에 대해 많이 말하는데, 이명박 정부 때 [선령 제한을] 20년에서 30년으로 늘렸다가 25년으로 다시 줄였습니다. 30년으로 늘리자고 로비한 주체가 바로 해운조합입니다. 해운조합은 2006년부터 로비를 해서 2009년에 결국 [선령 제한 완화를] 관철시킵니다. 그리고 나서 실제 20년 이상 된 선박의 비중이 엄청나게 증가합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30년에서 다시 25년으로 줄였어요.

30년 기준만 놓고 보면 외국과 그렇게 큰 차이가 있지 않습니다. 선진국 중에도 선령 제한을 30년으로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그런데 선령 제한만 완화하는 것이 아니라 규제 완화라는 명목으로 다른 안전 관련 사항도 같이 없어져 위험이 증폭되니까 문제입니다. 선령을 30년으로 한다면 거기에 맞춰 노후 선박일수록 규제를 강화하는 시스템이어야 하는데 거꾸로 가고 있습니다. 안전 점검도 규제 완화, 선령 제한도 규제 완화하는 것이 문제라는 거죠. 이 때문에 우리가 특조위를 만들자고 한 것입니다.

ⓒ이미진

세월호 참사는 왜 국가 폭력인가?

세월호 참사를 왜 국가 폭력으로 봐야 하는지 말씀 드리겠습니다.

국가 폭력은 폭력이 국가의 공식 정책이나 방침, 혹은 제도화된 이데올로기인 법에 기반해서 행해진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 나라의 국가 폭력은 한국전쟁 때 민간인 학살 사건, 군사 독재 시절 의문사 사건, 반정부 재야 인사와 학생운동 탄압, 광주 5 · 18 학살 등이 대표적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국가 폭력의 배경에는 반공주의 이데올로기, 즉 ‘전쟁 정치’가 있습니다. 김동춘 교수가 ‘전쟁 정치’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늘 적을 만들고, 아군과 적을 구별하고, 사회적 저항이나 사회주의 사상에 물리적 폭력을 동원했던 시스템이 국가 폭력의 기재들입니다.

국가 폭력은 물리적 폭력, 구조적 폭력, 상징 폭력 세 가지가 함께 작동합니다.

과거 민간인 학살 사건 같은 경우 전형적인 냉전 논리, 반공주의 이데올로기에 기반했습니다. 최근 통합진보당 해산 사태에서도 보았듯이 아직까지도 반공주의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힘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외에 다른 요소들도 존재하는데, 특히 신자유주의 하에서 자본의 폭력성이 엄청나게 증대했습니다.

IMF 이후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이 합법화되고, 이것이 오늘날 쌍용자동차를 비롯해서 수많은 노동자들을 자살과 죽음으로 내몰고 인간다운 삶을 파괴하고 있죠. 이것은 국가가 법적으로 폭력을 승인해 준 경우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본의 이해관계에 따라 폭력이 법으로 제도화되고 적법한 것이 돼 버린다면 거기에 대한 저항도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예컨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에 대한 2014년 대법원 판결 내용이 이렇습니다. ‘회사가 미래의 경영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없다. 회사 입장에서 미래를 전망하고 앞으로 더 어려워질 시장 상황에 따라 구조조정을 할 수밖에 없다. 회사가 이렇게 결단을 내렸다면 존중해 줘야 한다.’ 이런 식으로 하면 [기업주들이] 정리해고를 남용하는 것을 제어할 수 없게 됩니다. 정리해고는 법으로는 요건이 엄격해요. ‘경영상에 긴박한 필요’가 있는 경우에만 할 수 있습니다. 문구만 보면 외국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제 그것이 적용되는 것을 보면 ‘경영상의 긴박한 필요’이라는 것은 순전히 사용자의 입장에서 판단되고, 그것을 법이 승인해 줍니다.

이렇게 국가가 폭력을 승인해 주면 저항은 늘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이런 저항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국가의 폭력 장치들이 동원되기 시작합니다. 바로 경찰력이죠. 시민들의 저항은 노동자들의 파업과 집회인데 여기에 공권력이 동원하는 것입니다. 용산 참사 항의 운동, 희망버스, 제주 해군기지 반대 운동, 민중총궐기, 이제 사드 항의 행동에도 같은 사태가 반복될 것입니다. 어떻게 전개될지 눈에 보입니다.

여기에 상징 폭력이 결합됩니다. 항상 문화적인 면이 국가 폭력을 정당화하는 기재로 작동합니다. 이것은 저항의 근본 원인 가리기와 관련이 있습니다. 쌍차 사건은 정리해고의 문제, 세월호 참사는 안전이 기업의 이윤 논리에 종속돼 생겨난 문제입니다. 상징 폭력은 이런 사회문제의 근본 원인을 감춰 버리는 역할을 합니다. 민주주의의 공론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죠. 공론장 자체를 왜곡시키는 프레임이 작동합니다. 대표적인 것이 ‘종북 메카시즘’입니다. 사드의 경우에도 집회를 하니까 ‘외부세력’ 얘기가 나오잖아요. 집회에서 물리적 충돌이 생기면 ‘폭도다’, ‘외부세력이 개입됐다’ 하는 프레임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면 우리는 ‘평화적 시위였다’고 대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그 순간에 집회를 왜 했는지의 문제는 사라지고 ‘폭력 시위냐 평화 시위냐’ 하는 이슈만 부각됩니다. 민중총궐기 기사 검색 하면 왜 우리가 집회를 하려 했고, 거기에 모인 시민들이 무슨 주장을 하려고 했는지에 대해 주류 언론은 다루지 않습니다.

또, 법치주의를 강조하며 법을 잘 지켜야 한다고 얘기합니다. 이명박이 “떼법”이란 단어를 썼죠. 기본권인 집회를 그런 식으로 비하하며 법을 잘 지키라고만 하는 것이죠. 

원래 법치는 공권력 사용을 제한하는 논리입니다. 공권력이 법에 근거를 두고 최소한으로만 행사돼야 하는데, 오히려 시민한테 법을 잘 지키라는 것을 법치주의라고 얘기합니다. 시민들에게 저항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이데올로기가 작용하면서 저항하는 시민을 적으로 규정하는 개념들을 만드는 것입니다. 일베가 선두에서 그런 것들을 하죠. 일베는 사실상 국정원이 운영하는 것으로 봐도 됩니다.

이에 비춰 보면 세월호 참사는 자본의 탐욕, 그것을 지원하는 국가 시스템이 만들어 낸 국가 폭력입니다. 우선 구조적 폭력의 표출로서 폭력이 있습니다. 신자유주의 이후 산업 현장에서 안전을 위협하는 위험 요소가 엄청나게 증폭돼 왔습니다. 기업은 안전 업무를 비생산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안전인력을 감축했습니다. 외주화, 민영화, 규제 완화가 이를 뒷받침했습니다. 이처럼 비용 절감의 논리로 위험이 누적돼 왔습니다.

한편, 안전을 담보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가 왜곡됐습니다. 박근혜 정부는 안전을 가장 강조한 정부였잖아요? 출범할 때 취임 일성이 ‘안전’이었어요. 그러면서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이름을 바꿨어요. 세월호 참사 이후 국민안전처가 생기면서 다시 이름을 바꿨지만요.

물론 그때 그가 말한 ‘안전’은 법질서 유지와 공안적인 안전, 저항을 억압하는 폭력 시스템을 강조하는 안전이었습니다. 정부 정책에 반대해서 집회하는 시민들과 싸우는 노동자들이 ‘안전’을 위협하는 존재로 상정되고 있습니다. 그 사람들을 잘 억압하고 통제해야 우리 사회의 안전이 담보된다는 것인 양 말이죠. 치안, 공안 논리죠. 이게 박근혜 정부가 생각했던 안전이었어요.

국가와 자본의 폭력, 산업 현장에서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 속에 지금도 수많은 노동자들이 사망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구의역 사고도 있고, 셀 수 없이 많은 산업재해가 일어나고 있어요. 우리나라 산재사망율이 OECD국가 중 1등인데 1년에 약 2천5백 명 정도가 산업재해로 사망하죠. 이런 현실에서 안전을 감독해야 할 국가의 의무가 오히려 ‘자율 규제’라는 이름으로 축소돼 버린 것입니다. 아예 외주화되거나요.

안전 의무가 완전히 왜곡돼 버린 거죠. 대표적인 것이 안전 업무 외주화를 인정한 1993년 ‘기업활동규제완화에 관한 특별조치법’입니다. 원래는 법에 안전 업무 담당 인력을 [산업 현장에] 고용하게 돼 있었어요. 이 법은 바로 이것을 완화시켰습니다. 몇 명 이하 사업장의 경우에는 안전 업무 관리자를 의무적으로 고용하지 않아도 되거나 안전 업무를 외주화할 수 있도록 했죠. 그런데 원청과 하청은 갑을 관계잖아요. 을의 위치에 있는 외주업체가 원청을 대상으로 안전 점검을 해야 하는데 제대로 할 수가 없죠. 예를 들면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외주업체가 안전 점검 후 무언가를 교체해야 한다고 판단해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없죠. 그러면 잘리거든요. 기업이 비용을 절감하려고 안전 업무를 외주화시키고, 외주 업무를 하청받은 업체는 안전에 대해 제대로 얘기할 수 없는 구조. 그러면 증폭되는 위험은 누구에게 돌아가느냐? 결국 노동자와 시민에게 떠넘겨지는 거죠. 구조적 폭력의 문제입니다.

세월호 참사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월호는 일본에서 18년간 운항했던 배를 들여와 증개축을 해서 만든 배입니다. 2개 층을 증축했죠. 그러면 승객은 그만큼 많이 태울 수 있지만 화물은 싣지 못해요. 원래 일본에서 운항할 때 승인된 화물 적재중량이 2천 톤, 우리 나라에 와서 승인된 중량이 1천 톤입니다. 그런데 사고 당시 2천 톤을 실었습니다. 많은 사람의 증언에 의하면 3천 톤 가까이 실었다고도 합니다. 그런데 그 날만 그런 것이 아니라 2013년 3월부터 운항한 세월호는 1년 내내 그랬습니다. 검찰의 공소장에 1년 내내 과적했다고 나옵니다. 기업 입장에서 화물을 많이 싣는 것이 돈이 더 많이 남는데 왜 증축했을까요? 화물은 과적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한 것입니다. 시스템이 그렇게 돼 있으니 증축이 가능한 거죠.

또 한편 주목해야 될 것이 ‘전문가 정치’입니다. 규제 완화 정책을 펴면서 그것을 정당화 하는 것이 전문가 정치입니다. 전문가 정치는 안전의 문제를 단지 기술적인 문제로 만들어 버립니다. 안전한지 아닌지 기준을 전문가가 결정합니다. 안전 문제가 우리의 생명과 존엄성, 민주주의의 문제가 아니라 전문가들이 판단하는 기술 문제가 돼 버린 것입니다. 법에 보면 독성물질 사용 기준이 세세하게 규정돼 있습니다. 이런 것을 판단하는 것이 전문가들입니다. 0.1이 기준이라고 했을 때, 0.09는 괜찮고 0.11은 안 된다는 것이죠. 이 차이가 얼마나 합리적인 근거를 갖고 있는지, 이런 것이 민주주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컨대 원전의 안전 문제가 제기될 때 전문가라는 사람이 나와서 “이 정도 조치를 취하면 안전합니다” 하고 말하면 시민들은 그걸 반박할 수가 없습니다. 안전 문제가 전문가들이 독점하는 기술 문제가 돼 버렸습니다. 정부는 연구 지원이나 여러 방식으로 전문가들을 통제합니다. 정부가 전문가에게 발주하는 연구용역들은, 특히 이과 쪽은 거의 결론을 내놓고 발주합니다. 연구자들 특히 과학 기술 쪽 전공자들은 입장에서는 실험도 하고 연구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그 돈은 기업과 정부에서 나옵니다.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기업과 정부를 향해 쓴소리를 할 수 있겠어요? 굉장히 심각한 문제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민관유착도 단지 비리 · 유착의 문제일 뿐 아니라 자본의 이해관계를 보증하는 시스템의 문제인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저항운동이 나타나면서 저항운동에 대한 물리적 폭력이 등장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어떻게 국가 폭력으로 진화해 나가는지를 얘기하고 싶습니다.

2014년 5월 피해자들이 KBS보도 사태 등으로 청운동에 처음 갔을 때, 민경우 전 청와대 대변인이 “순수한 피해자”라는 단어를 씁니다. 진실 규명 운동과 저항을 정치적 이념 논쟁으로 끌어들이는 첫 단추가 “순수한 피해자”라는 이데올로기입니다. “순수한 피해자”란 마냥 슬퍼해야 되고, 누군가 위로해 주면 감사해야 되고, 정부가 보상해 주면 받아야 되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이 삿대질을 하면서 ‘누가 책임져야 한다. 우리 사회 개혁이 필요하다’ 이렇게 나가는 순간 ‘불순’한 것이 됩니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됐다며 낙인을 찍는 것이죠. 그러면서 이념 논쟁으로 가져가는 거죠. 결국은 국가 폭력의 피해자를 분열시키고 고립시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대부분 국가 폭력의 진실 규명 문제에서는 배·보상 문제가 먼저 나왔습니다. 다분히 의도된 것이죠. 원래 진실 규명이 먼저 되고 나서 배·보상 얘기가 나와야 하죠. 돈 문제로 가져가는 순간 피해자들을 분열시키고 고립시키기 굉장히 쉬워집니다. 거기에 저항하는 순간 ‘돈 더 받으려고 저런 짓 한다’고 매도되죠. 세월호 때도 돈 더 받으려고 거리에 나온다고 그랬죠. 배·보상 문제가 나오면 각자의 입장이 다르기 때문에 피해자들이 분열됩니다. 국가 폭력 피해자는 처음에는 위로의 대상이다가 조금 있으면 불순한 사람이 되고, 그 다음에는 시민들과 연대하면서 투사가 됩니다. 그리고 다시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죠. 이 과정이 계속 반복돼 왔습니다. 광주 때도 그랬고, 세월호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 밝혀져야 할 진실이 많다 ⓒ이미진

진실 규명의 의미

진실 규명이라는 것은 사회운동으로서의 진실 규명이 돼야 합니다. 그것은 참사에 영향을 미친 여러 가지 구조적 원인들을 종합적으로 밝히고 선언하는 작업이고, 이것은 우리 사회의 공유된 가치에서 진행돼야 합니다.

첫째, 진실 규명은 역사 앞에서 생명과 존엄 가치 위에 참사의 스토리를 쓰는 것입니다. 단순히 의혹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운동의 내적인 가치와 지향점을 명심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실 규명은 어떤 참사의 사회적 실체를 선언해 주는 공적인 작업이고, 역사적 작업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의 회복의 시작이고, 관점에 대한 투쟁, ‘인정 투쟁’의 맥락 속에 놓여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식해야 합니다.

둘째, 재난 사고 피해자의 고통을 사회적 네러티브로 구성해야 합니다. 저도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에 있고 법을 전공했지만 특조위에는 법률가 위원이 너무 많습니다. 사건을 바라보는 프레임이 법적으로 고정돼 있습니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이 참사로 어떤 고통을 겪고 있고 어떻게 치유될지 얘기할 때 전문가들의 법적인 언어로 얘기해서 안 됩니다. 그 고통의 실체를 피해자들의 언어로 사회적인 네러티브로 구성해 주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피해자를 복원시키는 장치입니다.

‘치유’는 개인에게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사회적 치유 과정이 돼야 합니다. 추모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추모 시설을 어디다 건립하고, 피해자에 대한 재정 지원을 어떻게 하느냐 등 피해자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가 세월호 참사에서 뭘 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은 안전이 삶에서 근본적인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이를 통해서 시민의 주체성을 확보하는 것이 돼야 합니다.

정리 발언

좋은 의견 많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조금만 더 보태 얘기하겠습니다. 심각한 문제가 많습니다. ‘작업중지권’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라인을 세울 수 있는 노동자들의 권리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다가 [사측으로부터] 엄청난 손해배상 청구가 들어오기 때문에 실제로 그렇게 하지 못합니다. [사측이] 손해를 라인을 멈춘 노동자에게 전가시키기 때문입니다. 이게 현실이고, 법이 악용되고 있습니다.

파업 한 번 하면 후폭풍이 엄청납니다. [사측은 파업 노동자들을] 업무방해죄로 고발하고 노조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데 이렇게 하는 곳은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일본에도 업무방해죄가 있지만 파업에는 적용하지 않습니다. 업무방해죄는 유럽에서 노동조합 파업을 처벌하려고 1800년대 처음 만들어졌다가 파업이 기본적인 노동권이 되면서 다 없어졌습니다. 그게 일본을 거쳐서 우리 나라에 들어오면서 탈색되고 규정이 추상화돼서 노조 탄압의 대표적 수단이 된 것입니다.

파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도 우리 나라밖에 없습니다. 파업 과정에서 기물을 파손하거나 누구를 다치게 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지만, 기업이 생산을 못 했다는 이유로 책임을 묻는 나라는 없죠.

한 분이 안전의 문제는 계급 문제이고 근본으로는 자본주의 문제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같은 생각입니다. 부의 양극화뿐만 아니라 안전의 양극화, 위험의 양극화를 생각해 봤으면 좋겠습니다.

저항의 담론을 만드는 작업이 필요합니다. 싸움의 과정을 보면 물리적으로는 우리가 게임이 되지 않습니다. 경찰은 고도의 장비를 갖추고 있고, 국가 폭력도 진화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항이 왜 정당한지를 담론화해야 합니다. ‘평화적 집회’를 얘기하지만 [우리에게는] 시민불복종으로 직접 행동의 권리가 있습니다. 집회는 저항을 행사하는 가장 기본적이고 초보적인 방식이고, 그것을 한 단계 넘어서는 것은 직접 행동입니다. 우리는 저항의 정당화 담론을 고민하고 이를 확대시켜야 합니다. 싸움은 여론의 힘을 얻는 것으로 결판이 날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피해자의 목소리를 많이 사회적으로 알려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월호 참사 운동이 기존의 국가 폭력[에 맞선 운동]에 비해 발전된 것이 피해자가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고 그것을 사회화시킨 것이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저항 운동을 한 단계 발전시킨 계기가 됐습니다. 고통의 당사자들의 언어를 드러내 주고 피해자들의 고통에 연대하는 힘을 만들어 내는 사회화 과정이 필요합니다. 피해자의 고통, 그 고통에 연대하는 사회화 과정, 민주적 공론을 통해 사회를 바꿔나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작업장에서 나의 안전을 위협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왜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가? 하는 근원적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녹취 장미순

입력 2016-08-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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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민주·국민의당, 세월호특별법 개정 여망을 저버리다

최영준

박근혜 정부는 7월 1일 4 · 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활동을 강제 종료시킨 이후 예산 지급 정지, 특조위원과 조사관들 급여 미지급 등 재정적 압박을 시작했다. 특조위원들은 조사를 위한 출장비도, 자료 제출을 위한 복사비도 사비를 털어 충당하고 있다. 정부기관들은 특조위 조사 활동을 방해 · 거부하고 있다. 최근 해수부는 특조위와 사전 협의는커녕, 결정한 사실도 알리지 않고 세월호 선체 인양 시 하중을 줄이기 위해 34개의 구멍을 뚫기로 했다. 구멍을 뚫기로 한 탱크, 기관실, 보조기실은 참사의 진상과 관련해 조사할 게 많은 곳이다. 증거물이 유실될 수 있는데도 어떠한 협의도 없었다. 또, 교육부는 특조위가 9월 초 3차 청문회 장소로 대관한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에 압력을 넣어 대관을 취소하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은 “특조위가 그동안 수백억 예산을 펑펑 써놓고 아무 것도 밝혀낸 것이 없다”며 특조위 무용론을 또 폈다. <조선일보>도 “특조위가 일을 크게 벌여 놓고 나서 수습이 제대로 안 되니 ‘활동 기간 연장’ 내지 ‘예산 지급 투쟁’ 등으로 책임을 정부에 돌리려는 것”이라며 특조위를 공격했다.

이에 맞서 특조위는 조사 활동 보장, 특별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7월 26일부터 광화문광장에서 단식 농성에 돌입했다. 특조위 농성을 지지하는 노동 · 사회 · 시민단체들의 동조 단식도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유가족들도 동조 단식에 동참한다.

유가족과 4.16연대는 “제주해군기지행 철근의 존재와 규모는 왜 이제까지 감추어져 왔나? 청해진과 특수관계인 국정원은 조사하지 않나? 청와대가 구조의 컨트롤타워가 아니라 언론보도를 통제하는 컨트롤타워였던 것 아닌가 등”(7월 28일자 ‘세월호 특조위를 일하게 하라’) 밝혀야 할 진실이 너무 많다며 특조위의 ‘성역 없는 진상 규명’ 활동이 방해받지 않고 지속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최근 발표한 ‘4.16 세월호 참사 피해자 지원 실태 조사 결과’는 진상 규명의 중요성을 다시 확인시켰다. 단원고 희생 학생 유가족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유병률이 56퍼센트(일반 국민은 0.6퍼센트다!)고 자살을 생각한 비율이 42퍼센트였다. 단원고 생존 학생들도 자신들만 살아 돌아왔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지내고 있다고 한다.

조사를 진행한 조선미 아주대 교수는 “재난의 원인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치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피해자들에 대한 물질적 지원보다 진상 규명이 먼저라고 말했다. 이것만으로도 ‘진상 규명’을 위한 특조위 활동이 지속돼야 할 이유는 충분하다.

△지난 세월호 8백일 집회에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약속했던 의원들. 더민주·국민의당은 그 약속을 저버렸다. ⓒ이미진

악어의 눈물

하지만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특별법 개정을 위한 싸움은커녕 특별법의 ‘특’자도 언급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더민주당은 특별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아직까지 당론도 정하지 않았다. 개정안은 발의해도 이를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겠다는 말이다.

결국 지난 8월 12일 국회의장과 새누리 · 더민주 · 국민의당이 추경을 합의하면서 ‘특별법’과 ‘특조위’는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의장 정세균과 더민주당 원내대표 우상호는 단식 농성중인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을 만나 안타까워하는 모양새를 취하며 특조위 활동 보장과 특별법 개정을 위해 힘을 기울이겠다고 해놓고 뒤통수를 친 것이다.

더민주당 · 국민의당은 특별법 개정을 완강히 거부하는 새누리당과 특조위 조사 기간만이라도 연장하자며 협상하다가 새누리당이 이조차도 거부하자 특조위 조사 활동 보장, 세월호 특검 등을 아예 협상 목록에서 제외해 버렸다.

유가족과 4.16연대는 “특조위가 수행해 왔던 진상규명 활동에 대한 것은 [이번] 합의에서 아예 배제된 것이 분명”하고 “국회의장과 여야3당은 특조위에게서 진상규명 활동을 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박탈하는 데 합의”한 것과 같다며 항의했다.

따라서 새누리당 핑계를 대며 거듭 후퇴하고 있는 더민주당 · 국민의당을 비판하며, 이들과 독립적으로 진상 규명 운동을 건설해 나가야 할 때다.

제주해군기지 철근 과적, 청와대 보도 통제 등이 사실로 밝혀진 뒤 특별법 개정에 대한 광범한 지지가 있다. 특조위는 정부의 온갖 방해에도 농성 시위를 하며 9월 초 3차 청문회 개최를 추진중이다. 게다가 박근혜 정부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의 굳건한 공장 사수 투쟁과 이화여대 학생들의 학교 점거 투쟁, 사드 배치 철회를 요구하는 성주 군민들의 강력한 반발과 저항 등으로 궁지에 몰려 있다. 후퇴하는 더민주당 · 국민의당과는 독립적으로, 자신감을 갖고 굳건하게 특별법 개정 투쟁을 이어가자. 

입력 2016-08-1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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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원고 기억교실 이전

“지금 비록 쫓겨나지만, 우린 다시 싸울 것이다”

이미진

“아이들 지켜주지 못한 것도 한이 되는데, 우리 아이들이 이제 교실에서도 쫓겨나야해. 이제 우리 아이들을 어디에서 만나야 하는가.”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기억에서조차 잊혀지면 어떡해.”

“이전을 한다는데 우리 아이들 꿈과 손길, 웃음 소리까지 다 담아갈 수 있는가. 살려달라고 할 때는 아무것도 안하고 수장시키더니, 지금은 뭐가 그리 급해서…”

여기저기 울분으로 가득 찬 통곡의 소리가 교실에 울려퍼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자식들이 사용하던 방석을 껴안고, 사진을 가슴에 품고 하나 둘 책상에 쓰러졌다. 한참 동안 눈물을 쏟아내고,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린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유품 정리를 시작했다. 이내 “이건 너무 잔인하다”며 통곡 소리가 이어졌다. 유가족들은 아이들의 사진 액자를 정성스레 닦고 입맞춤을 한 뒤 상자에 넣었다. “자리하나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아이에게 편지를 남겼다. 아이들의 손길이 묻은 유품을 하나하나 정성스레 정리하며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겨우겨우 정리를 끝내고도 상자를 껴안은 채 손을 떼지 못했다. 그렇게 2년이 넘도록 “2014년 4월 15일”에 머물러 있던 아이들의 흔적이 상자에 담겼다.  

ⓒ이미진

단원고 ‘기억교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된 아이들과 만나는 공간이었다. 기억과 추모의 공간이자 약속과 다짐의 공간이었다. ‘진실을 감추려는 자’에 맞서 ‘기억하려는 자’들의 약속의 공간이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교육과 다짐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단원고 기억교실을 온전하게 보존할 것을 요구해 왔다. 단원고 재학생들의 학업을 보장할 수 있는 방안까지 제시했었다.

그러나 교실 존치 문제를 교육청은 ‘당사자 간 합의하라’며 방관했다. 언론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단원고 재학생 학부모의 갈등으로 여론 몰이했다. 결국 세월호 유가족들은 피눈물을 머금고 교실 이전이라는 고통스러운 결정을 해야했다.

교실 이전 첫날, 유경근 4·16연대 집행위원장은 "(미수습된) 네 명의 학생들과 두 분의 선생님들이 돌아올 때까지만 교실을 지키고 싶다는 유가족들의 소망이 재학생들에 대한 해코지였고, 그저 욕심으로만 비쳤다는 것이 원망스럽다"며 "기억교실을 지키기 위해 2년 동안 교육청에 호소하고 무릎 꿇고 부탁을 해 봤지만 결국 쫓겨나게 됐다"고 울분을 토했다.

단원고 기억교실은 비록 이전하지만, 세월호 참사 진실 찾기를 위한 싸움은 계속된다.

유품 정리 마지막 날 단원고 2학년 7반 세월호 유가족들은 “지금 비록 우리는 쫒겨가지만, 교실을 이전한 후에도 다시 싸울 것”이라며,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아이들이 단체사진을 찍은 벚꽃나무 아래에서 단체사진을 찍기도 했다.

오는 20일 단원고 기억교실은 경기도 안산교육지원청으로 임시 이전된다. 이후 2018년 9월 ‘4.16안전교육시설(가칭)’ 영구 추모관이 준공되면 다시 옮겨져 복구될 예정이다. 이전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19일 단원고에서 ‘기억과 약속의 밤’ 임시이전 전야제, 20일 기억교실 임시이전 이송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이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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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진

“우리는 영원한 2학년 7반”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단원고 2학년 7반 희생 학생들이 단체 사진을 찍었던 교내 벚꽃 나무 아래에서 부모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이미진

입력 2016-08-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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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과 백남기농민대책위 더민주당 당사 점거 농성 돌입

더민주당?국민의당의 배신적 합의 규탄한다

오늘(8월 25일) 아침, 416가족협의회 가족 6명과 4 · 16연대, 백남기대책위 등 20여 명이 더불어민주당 여의도 당사에서 점거 농성에 들어갔다.

이들은 농성에 들어가자마자 더민주당 당사 외벽에 “백남기 청문회를 개최하라”, “세월호특별법을 개정하라”라는 현수막을 내걸었다. 이 둘 모두 여소야대가 된 20대 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야당들이 약속했던 사안들이었다. 그러나 지난 12일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추경예산에 합의하며 이 요구들을 포함시키지 않았다. 뒤통수를 친 셈이다. 

지난해 11월 14일 민중총궐기 때 경찰 폭력은 말 그대로 야만적이었다. 쓰러진 농민의 몸 위로, 부상자를 실어 나르는 구급차의 안까지 직사 물대포를 쏘아댔다. 경찰의 거짓말과 달리 그 물대포의 위력은 어마어마해 직접 맞아보겠다는 기자들에게 경찰은 실험을 취소했다. 직사 현장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도 거짓임이 드러났다. 야만적 폭력 진압의 진상을 밝혀내 처벌해야 하는데도 지난 9개월이 넘도록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은 이뤄지지 않았다. 살인적 폭력 진압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마땅한 경찰청장 강신명은 임기를 다 채우고 떠났고, 새 경찰청장은 여전히 불법 시위 운운하며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그런데도 기껏 청문회 하나도 추진 못하는 여소야대 국회에 분노가 아니면 무엇으로 답하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은 어떠한가? 지난해 3월에야 세월호참사 특조위원들 임명장을 나눠 준 박근혜가 ‘특조위의 임기는 지난 1월부터 계산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는 것은, 경찰 물대포가 귀신처럼 사람들의 머리통만 쫓아다닌 것이 우연이었다는 주장과 하나도 다를 바 없다.

무엇보다 특조위 조사를 통해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과적이 밝혀져 정부가 침몰에 막대한 책임을 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고, 현 새누리당 대표 이정현이 언론 통제에 직접 개입했다는 것도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러나 오직 특조위 해산에만 골몰하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앞에서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특별법 개정안 상정조차 꺼내지 않고 있다. 오죽하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사생결단”의 마음으로 무기한 단식에 나섰겠는가?

지난 4 · 13총선에서 수백만 대중은 거짓과 폭력의 정권에게 패배를 안겨줬다. 두 야당이 자아낸 그간의 실망과 환멸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정권을 향한 분노 때문에 여소야대가 될 수 있었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의원(더민주당)의 당선을 위해 두 발 벗고 나설 만큼,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을 포함해 진실 규명의 진전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그런데 의석이 부족해서 제대로 할 수 없다던 야당은 이제 여소야대가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뻔뻔하게 굴고 있다. 이쯤 되면 야당은, 특히 제1야당인 더민주당은 ‘표 도둑’이거나 ‘박근혜 정부의 숨겨진 공범’임을 자임하는 꼴이다. 아니면 둘 다거나. 절박하고 정당한 요구를 외면해 온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규탄받아야 마땅하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백남기대책위 소속 농민들의 더민주당 당사 점거 농성을 완전히 지지한다. 세월호 참사와 백남기 농민에 대한 살인적 진압의 진실이 밝혀지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2016년 8월 25일
노동자연대

입력 2016-08-2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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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특조위 3차 청문회 종료

특조위 활동 보장의 필요성이 분명해 지다

김지윤

특조위 청문회

△대관 취소 등의 우여곡절 속에 열린 3차 청문회. 이번에도 KBS, MBC, SBS는 청문회를 생중계하지 않았다. ⓒ조승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3차 청문회가 9월 1일, 2일로 끝났다. 특조위는 이번 청문회에서 침몰 원인, 구조를 비롯한 정부의 참사 대응, 언론 통제 등에 대해 다룰 것이라 밝혔는데 관련한 증거들이 일부 밝혀졌다.

그러나 이정현, 김기춘, 김석균 등 정부 쪽 핵심 증인들이 대거 불참했고 세월호 1등 항해사와 청해진해운 물류팀장 등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미 해수부는 이번 청문회에 대해 “불법” 운운하며 노골적으로 청문회를 방해했다.

박근혜 정부의 이 같은 철저한 비협조 속에서도 특조위원들은 고군분투해 몇 가지 새로운 증거들을 밝혀냈다. 충분한 기간과 권한이 보장됐다면 더 많은 진실을 들춰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번 청문회는 특조위가 다뤄야 할 자료와 사건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드러내며 특별법 개정을 통한 조사 활동 보장의 필요성을 확인시켰다.

청문회를 마치고 특조위는 ‘4, 5차 청문회도 필요하다’며 ‘청와대의 참사 대응’에 대해 본격적으로 밝힐 필요성을 지적했다. 또한 특조위원들은 정부가 9월 30일 이후 청산 과정에 돌입하더라도 출근을 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청문회에 참석한 박성호 학생의 누나 박보나 씨는 “이번 청문회가 마지막이 되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새로운 증거들

정부는 침몰 원인 규명에 대해서조차 철저히 비협조적이다. 침몰에 대한 정부의 책임이 매우 직접적이라는 점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특조위가 지난 6월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과적을 밝혀냈고, 최근에 특조위가 실시한 세월호 침몰 시뮬레이션은 “참사 당일 화물 적재 상황은 세월호의 복원성에 악영향을 미치는 수준”이었음을 확인시켜 줬다. 특조위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로 인한 입항 화물량 증가가 세월호 도입에 미친 영향이 상당하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이번 청문회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과 관련한 인물 중 누구도 나오지 않았다. 특조위는 제주 해군기지 공사일지 등을 해군에 요청했지만 해군은 어떤 답변도 내놓고 있지 않다.

또한 침몰 당시 상황을 알 수 있는 증거인 선내 CCRV 저장장치(DVR)가 편집됐을 의혹도 제기됐다. 해경은 참사 두 달 후에야 DVR을 수거해 놓고는 작업 사실을 유가족들에게 알리지도 않았고 인양 물품 목록에 기재하지도 않았다. 생존자들은 선체가 기울고 헬기가 도착할 때까지 CCTV 화면이 나왔다고 증언했지만 제출된 DVR에는 침몰 이전 기록만이 남아 있다.

해경도 생존자 구조보다 청와대 보고를 위한 “쇼”에 신경 썼다. 참사 당시 해경은 생존자가 많을 것으로 추정된 식당칸에 공기를 주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당시 해경의 교신 기록이 담긴 TRS(해경 주파수공용통신) 내용을 보니, 이 보고는 완전히 거짓이었다. 엉뚱한 곳에 공기 주입을 해 놓고는 식당칸에 공기를 주입했다고 대대적으로 발표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수색 업무에 성공했다던 수중탐사로봇도 실은 투입 후 유실됐다. 민간업체 ‘언딘’은 세월호 도면도 제대로 갖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현장에 투입된 잠수사들도 도면을 지급받지 못했다.

해경의 진실 은폐 시도는 여러 차례 드러나고 있다. 올해 5월에 해경은 TRS를 갖고 있지 않다고 숨기려다 들통이 났다. 특조위의 요구에도 “안보 기밀”을 내세우며 자료 제출을 거부했다. 현재 특조위는 1백만개 중 1만여 개만 분석한 상태다. 해경은 여전히 나머지 자료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조사가 확대되면 엉터리 구조와 거짓 보고의 실체가 더 드러날 공산이 크다.

청와대는 거짓 구조 보도로 책임을 면하고 분노를 가라 앉히는 데에 혈안이 돼 있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KBS 전 보도국장 김시곤은 당시 KBS 사장 길환영이 박근혜에 유리한 여론 조성을 위해 보도에 개입했다고 추가 폭로했다. 김시곤은 “사장님~ [박근혜 참사 현장 방문 기사를] 말씀하신대로 그 위치로 올렸습니다”라고 길환영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또 길환영이 시청자들의 주목도가 높은 때인 뉴스 시작 20분 내로 박근혜 관련 보도를 할 것을 주문했다고 증언했다. 이미 지난 6월에 특조위가 이정현, 길환영을 보도 간섭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 조사는 지지부진이다. 경찰이 유병언 수사 브리핑을 지나치게 많이 해 기자들조차 의아하게 여겼다는 증언도 있었다. 이러고도 박근혜는 해경 해체 쇼를 하며, 사기극을 벌였던 것이다.

대다수 사람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져 있을 때, 박근혜 정부의 관심사는 참사의 슬픔과 충격이 정부에 대한 분노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에 있었다. 이번 청문회에서 경찰 내부 보고서(‘세월호 가족 동향’ 등)가 처음으로 공개돼 당시 경찰이 유가족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성향 분석을 위한 뒷조사까지 벌였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특조위 3차 청문회

△김시곤 전 KBS 보도국장이 증인으로 출석해 길환영 전 KBS 사장과 주고 받은 문자 메시지를 공개했다. ⓒ조승진

굳건한 지지

청문회로 새롭게 밝혀진 사실들은 박근혜 정부의 책임을 분명히 가리키고 있다. 정부의 갖은 방해 속에서 드러난 게 이 정도다. 그러니 박근혜 정부가 억지를 써가며 특조위 활동을 한사코 종료하려는 이유도 자명하다.

세월호 참사 진실 은폐 세력에 대한 분노는 지난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패배와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의 당선으로 표현됐다. 그런데도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은 개원이 다가올수록 “여론”을 탓하며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은근슬쩍 뒤로 미루려했다.

결국 두 야당이 진실 은폐 세력 새누리당과 배신적 합의를 하자 두고 볼 수 없던 유가족들은 다시 무기한 단식에 나서게 됐다. 유가족들은 “사생결단”이라고 외쳤다. 새누리당과 두 야당의 외면이 진실을 밝히려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으로 내 몬 셈이다.

압력을 느낀 더민주당 신임 대표 추미애는 당사 내 단식농성장을 방문했지만 “의지” 이상의 구체적 안은 아직 나오지 않고 있다. 보름 넘게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국민의당대표 박지원에게도 유가족들을 그저 방문만 하지 말고 구체적 계획을 갖고 와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촉구했다. 그는 ‘특별법개정과 특검의결 등 진상규명을 위한 당TF 구성, 가족협의회와의 상시적 논의, 야3당 공조 협의체 구성, 9월 내 특별법 개정과 특검 의결’이 필요하다고 호소하고 있다. 야당들은 총선 당시의 약속을 지켜 특별법 개정 등을 실행해야 한다.

박근혜는 특별법 개정을 한사코 방해하면서 9월 30일을 끝으로 특조위를 청산하려 하지만 박근혜가 처한 상황이 유리하지만은 않다. 우병우 부패스캔들, 구조조정 등과 이와 맞물린 내부 분열이 좀처럼 봉합되지 않아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고, 지지율은 역대 최저치와 동률을 이뤘다. 언론의 철저한 외면에도 유가족들의 무기한 단식에 대한 동조 단식이 이어지며 굳건한 지지를 보여 주고 있다. 예고된 하반기 노동자 투쟁도 분위기 전환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에게는 여전히 특별법 개정과 온전한 선체 인양 등 요구를 쟁취할 기회가 있다.  

특조위 3차 청문회

△유가족뿐 아니라 진실 규명을 염원하는 많은 사람들이 청문회를 지켜봤다. ⓒ조승진

특조위 3차 청문회

△청문회에서 진실이 조금씩 드러날수록 비통함을 감출 길 없는 유가족. ⓒ조승진

입력 2016-09-05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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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조위의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활동 보장하라

김지윤

세월호 참사 특조위가 9월 1일과 2일에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국가의 조치와 책임’을 주제로 3차 청문회를 연다. 특조위는 특별법 개정을 유가족과 함께 요구하며 정부의 종료 선언에 불복종하고 있다.

특조위는 제주 해군기지 철근 조달 현황, 참사 당시 구조구난의 적절성, 참사 당시와 이후 정부의 재난 대응, 언론 통제와 참사 보도의 문제점, 유병언 보도 등으로 이슈를 전환한 경위, 참사 피해자들에 대한 경찰의 구실, 선체 인양과 미수습자 수습 등을 다루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당시의 대통령비서실장 김기춘, 대통령비서실 홍보수석비서관 이정현과 KBS 대표이사 길환영, 해양경찰청장 김석균, 서울지방경찰청장 강신명 등이 증인 명단에 올라 있다. 참사 당시 정부의 핵심 요직을 차지한 인물들이 증인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이들이 증인으로 출석할 것인가?

해수부는 공식적으로 “지난 6월 30일 조사활동기간이 종료되었으므로 청문회를 개최할 수 없다”고 주장하며 청문회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이는 핵심 인물들이 증인석에 앉지 않을 것임을 밝힌 것과 같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진실 규명의 과제를 다시금 짚어볼 수 있을 것이다.

‘4·16세월호참사에 대한 국가의 조치와 책임’ 올해 3월에 열린 세월호 2차 청문회 ⓒ이미진

침몰 원인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2심에서 재판부는 검찰의 침몰 원인 주장―대각도 조타에 따른 급변침―을 인정하지 않고 “세월호를 해저에서 인양하여 관련 부품들을 정밀히 조사한다면 사고 원인이나 기계 고장 여부 등이 밝혀질 수도 있다”고 판결했다. 대법원도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다. 2차 청문회에서 검찰이 엉터리 항적도로 조사를 한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난 6월 특조위는 세월호가 참사 당시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을 과적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은 정부가 침몰에도 직접적 책임이 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국방부가 철근 조달 관련 자료를 의도적으로 누락한 정황도 포착됐다.

청해진해운 직원은 검찰 조사에서 “제주 해군기지 공사 때문에 철근을 많이 실을 수밖에 없었다”고 진술했다. 당시 제주 해군기지 완공이 늦어져 해군과 정부는 애를 태우고 있었다.

제주 해군기지는 미국이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효과적 수단 중 하나다. 지금도 정부가 사드 배치 강행과 미국 패권 돕기에 혈안이 돼 있는 것에서 보듯 지배자들에게 평범한 사람들의 안전은 고려 사항이 아니다. 따라서 앞으로 조사를 통해 철근 과적 경위와 침몰에 미친 영향을 무엇인지를 소상하게 드러내 정부의 책임을 명백히 밝혀내야 한다.

인양

침몰 원인을 밝히려면 가장 중요한 증거인 세월호 선체의 온전한 인양이 이뤄져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해수부는 객실을 선박에서 분리하는 방식(객실 직립방식)을 채택하겠다고 유가족들에게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교활하게도 해수부는 이 같은 방법을 선정한 이유가 미수습자 수습의 시일을 앞당기기 위한 것이라 주장한다.

416가족협의회는 분리 과정에서 선체가 크게 훼손될 수 있다는 점과, 인양 전 준비를 한다면 수습 시일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임을 지적하며 해수부 방안에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특조위도 “세월호 참사 제1의 증거물인 선체를 훼손해 세월호 참사를 영구 미제로 남기겠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해수부는 이를 무시하고 강행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미 선체에서 해수를 빼낸다는 이유로 1백여 개 구멍을 뚫어서 선체 보존이 어려워진 상황이다. 선수들기 실패 과정에서 선체가 훼손됐고 닻과 불워크(갑판 부위에서 파도를 막아주는 울타리) 등도 제거됐다.

그런데도 또 세월호 하부에 천공 34곳을 뚫을 것이라는 해수부 계획에 대해 특조위는 “필수적 조사 대상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천공 작업으로 인양 시기가 늦춰지면서 올해 안에 인양이 이뤄질 수 있겠냐는 우려가 커져가고 있다. 증거를 훼손하면서 선체 인양이 진행되는 것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참사 대응과 진실 왜곡

참사 당일 박근혜의 행적은 여전히 안개 속에 싸여 있다. 해경은 최초 신고가 있은 지 한참 후에야 작은 경비정을 출동시켰을 뿐이고 대피명령조차 내리지 않았다.

구조 세력들은 깜깜이 출동을 했고, 해경이 계약을 맺은 민간 구조업체를 기다리느라 해군 등의 도움 요청도 거절한 듯하다. 책임을 회피하려고 해경이 교신 기록을 조작했다는 것도 나중에 드러났다. 1차 청문회에서는 잠수사 투입 인원과 횟수를 부풀려 언론에 알린 것도 밝혀졌다.

경찰은 바다에선 그토록 굼뜨고 무능하더니 육지에서의 탄압에는 능했다. 경찰은 유가족들을 미행하다가 덜미가 잡혔고, 진실 규명 시위에 폭력으로 대응하며 진실 은폐에 일조했다.

“보도통제”

6월에 다시 한 번 드러난 것은 보도 참사의 배후에도 청와대가 있었다는 것이다. 청와대 홍보수석 이정현이 KBS 보도국장 김시곤에게 정부 비판 내용을 줄이라고 노골적으로 압박한 통화 녹취록이 언론노조를 통해 폭로됐다.

“보도통제”의 실체가 드러난 순간이었다. 새누리당은 청와대 홍보수석의 통상적 업무라는 황당한 감싸기로 분노를 키웠다.

드러난 것은 KBS 보도 개입뿐이지만 과연 다른 언론사들에게는 청와대의 압박이 없었을까? 언론들이 일제히 유병언 수사 보도에 열을 올리도록 누가, 어떤 힘을 행사한 것일까? MBC가 유가족들을 비난한 책임도 물어야 할 것이다. 진실 왜곡으로 피해자들에 대한 고통을 가중시킨 책임도 밝혀야 할 과제다.

3차 청문회 주제에는 포함돼 있지 않지만 2차 청문회에서 드러난 국정원과 청해진해운의 관계도 진상 규명의 대상이다.

특조위 3차 청문회는 진상 규명을 위해 갈 길이 여전히 멀고, 따라서 특조위 종료 시도에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특별법이 개정돼야 한다

8월 25일부터 유가족들은 더민주당사에 들어가 단식 농성을 하며 특별법 개정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마련할 것을 강력히 호소하고 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은 새누리당과 추경예산안 처리를 합의하면서 세월호 특별법 개정과 백남기 청문회는 언급하지도 않았다. 동시에 특조위 활동 보장을 위한 개정안 상정조차 회피하면서, 별도 기구를 설치해 선체조사를 보장하도록 추후 논의한다는 새누리당의 안을 고스란히 받아들고는 “합의”라고 떠들었다.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얼마나 이 문제에 진지하지 않은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것이다.

더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유가족들이 무기한 단식 농성을 확대하자 당 대표가 된 추미애는 청문회 국회 개최 등을 약속했다.

하지만 특별법 개정과 특검 실시를 위한 구체적 계획 등은 약속하지 않았다. 9월 국회에서 더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또다시 뒤통수를 치지 못하도록 하려면 항의 운동이 확대돼야 한다.

9월 30일이면 정부가 못 박은 특조위 보고서 작성 기간이 끝난다. 박근혜 정부는 9월 30일 이후 특조위 청산 과정을 밟아 진실 규명 운동을 꺾으려 할 것이다. 그러나 총선 패배의 여파 속에서 박근혜 정부와 지배자들은 ‘우병우 블랙홀’에 빠져 분열과 위기를 겪고 있다. 유가족들의 무기한 단식 농성은 자발적인 동조 단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특별법 개정과 온전한 인양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높다. 우리 운동은 자신감을 갖고 세월호 진실 규명의 열망을 모아 저항을 조직해야 한다.

 

입력 2016-08-3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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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

정부에 맞서, 더민주 · 국민의당과 독립적으로 운동은 계속돼야

최영준

9월 6일 새누리당은 국회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더불어민주당 위성곤 의원이 제출한 특별법 개정안(이하 위성곤 안)을 안건조정위에 회부했다. 90일 동안 법안 논의를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다. 더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제출한 특별법 개정안(이하 박주민 안)은 아직 농해수위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지만 위성곤 안과 똑같은 처지가 되지 않으리라 안심하기 어렵다. 이미 새누리당 원내대표 정진석은 특조위 예산 낭비 운운하며 특별법 개정은 "검토할 가치조차 없다"고 일축했다. 

박근혜는 12일에  새누리 · 더민주 · 국민의당 대표와 만나서 “재정 상황, 사회적 부담 정도를 고려해서 [특별법 개정을] 국회에서 논의해 달라”고 했다. 사실상 특별법 개정을 하지 않겠다는 강한 의사 표현이다.

특조위는 수사권, 기소권이 없지만 성역 없는 진실 규명을 목표로 해 왔다. 당연히 청와대도 조사 대상이다. 새누리당이 길길이 날뛰며 특조위 해산 협박을 한 까닭이다. 박근혜 정부는 특조위가 부분적인 진실을 밝혀내 대중의 진실규명 열망을 고무할 것을 두려워한다. 그래서 이들은 시작부터 손발이 묶인 특조위마저 강제 해산하려 한다.

심지어 박근혜 정부는 유가족들이 특별법 개정을 요구하며 목숨을 걸고 무기한 단식 농성을 벌이는 와중에 세월호 집회에서 발생한 ‘소음’을 잘 관리한 경찰들에게 표창을 했다.

두 야당의 묵인 · 방조

그런데 더민주당과 국민의당도 세월호의 온전한 진실 규명에 전혀 진지하지 않다. 두 야당은 이 체제를 수호하는 부르주아 정당답게 세월호 진실 규명이 적당한 수준에서 여야 정치 협상으로 마무리되길 원한다. 진실 규명이 가져 올 정치적 파장과 체제의 문제점 등이 밝히 드러나는 것을 두 야당도 원치 않는다. 이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인 비정규직 확대, 외주화, 규제 완화 등을 정부 · 여당과 한통속으로 추진해 왔다.

두 야당, 특히 더민주당은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초점으로 떠오르면 적당히 발을 걸쳤다가 국회 안으로 쟁점을 끌고가 김을 빼는 식으로 운동을 단속해 왔다. 4월 총선 직후 세월호 참사가 대중적 관심사로 떠오르자 소속 의원들이 우르르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지만, 곧 여야 정치 협상 쟁점으로 만들어 소강시켰고, 9월 정기국회 개원이 임박할 무렵 두 당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유가족들이 더민주당사에 들어가 단식 농성을 하며 특별법 개정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요구했지만 더민주당은 ‘노력’하겠다는 답변만 했다. 국민의당은 단식 농성장을 찾아와 “[개정이] 사실상 어렵다고 본다”며 잔망스럽게 말했다. 지금도 이 자들은 국회선진화법을 핑계로 특별법 개정을 위한 실질적 행동을 하지 않는다.   

이들의 ‘노력’은 무엇이었나? 더민주당은 9월 6일 새누리당이 농해수위 전체회의에서 특별법 개정안을 안건조정위로 넘길 때 사실상 이를 방조했다. 농해수위 위원장인 더민주당 김영춘의 묵인 · 방조 없이 안건조정위로 넘기는 것은 불가능하다.

19대 국회에서 다수당이던 새누리당은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려고 국회의장의 직권상정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니 두 야당이 국회선진화법 때문이라거나 ‘여론’이 안 좋다는 식의 핑계를 대는 것이 9월 정기 국회에서 특별법 개정을 않겠다는 소리로 들릴밖에.

그런데 당 지도부의 책임 회피 앞에서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의원이 보이는 태도는 실망스럽다. 세월호 운동은 박주민 변호사를 국회로 보냈다. 박주민 의원은 유가족들과 진실 규명을 원하는 이들의 열망에 부응해 특별법 개정안을 제출했다. 하지만 박주민 의원이 소속돼 있는 더민주당은 이 핑계, 저 핑계 대며 빠져나가고, 이제 박주민 의원마저도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특별법 개정은 어렵다는 태도다. 그가 진실 규명을 위한 수단으로 더민주당을 택한 순간에 드리웠던 불길한 예감이 현실이 되는 상황이다.

△진실 규명의 열망을 모아야 한다 9월 13일 추석맞이 서울역 집중 홍보 활동 ⓒ출처 416연대

밀알

새누리당의 집요한 방해와 두 야당의 행보를 보면, 9월 안에 특별법이 개정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9월 30일 이후 운동의 향방에 답답해 한다.

특조위는 지난 7월 26일부터 조사 활동 보장, 특별법 개정 등을 요구하며 릴레이 단식 농성을 해 왔다. 9월 1~2일에는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3차 청문회를 개최해 침몰 원인, 구조를 비롯한 정부의 참사 대응, 언론 통제 등과 관련한 증거들을 일부 드러냈다. 해경이 생존자 구조보다 청와대 보고를 위한 "쇼"에 신경 썼고, 세월호에 공기를 주입하는 일과 수중탐사로봇이 성공했다는 게 거짓임이 밝혀졌다. 이번 청문회를 통해 박근혜 정부는 참사의 슬픔과 충격이 정부에 대한 분노로 번질 가능성을 차단하는 데 혈안이 돼 있었다는 것을 보여 주기도 했다. 3차 청문회는 특별법 개정을 통한 조사 활동 보장의 필요성을 다시금 확인해 줬다.

따라서 특조위는 박근혜 정부의 강제 해산을 거부하고 특조위의 진상조사 활동의 필요성을 재천명하는 게 맞다. 설령 특조위가 법적 권한이 없어 제대로 된 조사활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으로 정부의 부당함을 알려내면서 세월호 진실 규명 운동의 밀알이 돼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하게는 세월호 운동이 특조위 강제 해산으로 진실 규명을 종료시키려는 정부에 맞서, 그리고 더민주 · 국민의당과 독립적으로 진실 규명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성과퇴출제 저지! 공공성 강화! 생명-안전사회 건설! 범국민대회(가)

  • 일시 : 10월 1일 오후 3시
  • 장소 : 대학로
  • 주최 : 범국민대회 조직위원회
  • 주관 : 성과퇴출제 저지 공공부문 대책위원회

세월호 참사 9백 일 범국민 촛불문화제(가)

  • 일시 : 10월 1일 오후 6시
  • 장소 : 광화문 광장
  • 주최 : 416가족협의회, 4 · 16연대

입력 2016-09-20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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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 연이은 집회에

박근혜 정부를 향한 항의의 목소리가 모이다

오제하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해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총파업에 나서고, 고(故) 백남기 농민 부검 시도와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 강제 해산에 대한 분노가 쌓이는 상황에서 10월 1일 주말 세 집회가 연이어 열렸다.

10월 1일 3시 서울 대학로에서 ‘성과퇴출제 저지! 공공성 강화! 생명-안전사회 건설! 범국민대회’가 1부로 열렸다. 이 날 집회 참가자는 주최측 추산 3만 명에 달했다. 파업 중인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대열의 다수를 이뤘다.

박종선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쟁의대책위원장은 철도 공사의 회유와 협박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참으로 이상한 나라다. ‘물대포’로 쓰러지신 분을 병사라고 우긴다. 정권 비리를 숨기려고 당대표가 단식한다. 청년실업 책임을 귀족노동자 때문이라 우긴다. 공공부문을 돈벌이로 만드는 이상한 나라”라며 박근혜 정권의 악행을 꼬집었다.  

박경득 서울대병원 분회 분회장은 이번 파업의 의미를 이렇게 짚었다. “민중의 평범한 삶을 지키기 위해 하는 파업이다. 아침이면 일어나 안전한 철도를 이용하고, 아프면 저렴한 공공병원을 이용하고 나이 들면 건강보험과 연금을 받으면서 명절이면 가족들을 만나러 KTX를 타고 고향으로 가는, 그런 평범한 삶 말이다. 민중의 삶을 해하라고 하는 정부가 불법 아닌가?“ 또, 박경득 분회장은 최근 백남기 농민 사인 기재 문제로 따가운 비판을 받고 있는 서울대 병원 당국에 대해 “백남기 유가족들은 서울대 병원을 믿었을 텐데 병원은 돈과 권력을 먼저 생각했다” 하고 비판했다.

공공운수노조 조상수 위원장은 “보여 주기식 파업이 아니라 정부와 승부를 보는 파업하겠다. 10월 4일 철도만이 아니라 전체 공공노동자 파업임을 보여 주겠다” 하고 선언했다.

성과연봉제 폐지 범국민대회

△1일 오후 대학로에서 3만 여 명(주최측 추산)이 모여 ‘노동개악·성과연봉제 폐지 범국민대회’를 열고 있다. ⓒ이미진

공공부문 파업

△지난 9월 27일부터 파업에 돌입한 공공운수노조, 보건의료노조 등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참가하고 있다. ⓒ이미진

공공부문 파업 지지

△“박근혜가 불법이다”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하는 ‘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성과 ·퇴출제 저지 시민사회공동행동’이 무대에 올라 파업 노동자들을 응원하고 있다. ⓒ이미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살인 정권 물러나라”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지난해 민중총궐기에 참가했다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후 3백17일만에 숨진 백남기 농민을 추모하는 대열로 대학로가 가득 찼다. ⓒ이미진

같은 자리에서 2부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가 시작되자 대열은 더욱 불어났다. 많은 참가자들이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정권을 규탄하는 뜻으로 검은 띠를 가슴에 달고 자리를 지켰다. 

고(故) 백남기 농민의 딸 백민주화 씨는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릴 테지만 그것은 아버지의 자식으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라며 진실 규명을 향한 의지를 밝혔다. 또한 사인이 정말 확실하다면 왜 부검을 반대하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일갈했다. “사인의 증거가 넘쳐나는데 어느 자식이 아버지의 시신을 또다시 수술대에 올려 정치적인 손에 훼손시키고 싶겠는가? 절대로 아버지를 두 번 세 번 죽이지 못하게 할 것이다. 강신명[전 경찰청장]이 노래를 불렀던 ‘준법’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분명 있다. 생명이다.”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이자 백남기 농민의 아들”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유경근 집행위원장은 “세월호에서 희생당한 그 아이들의 아빠, 엄마들이 여기 계신 거 맞습니까? 백남기 어르신의 아들 딸들 맞습니까?”라고 물으며 우리가 한 뜻으로 함께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슬픔의 눈물을 분노의 행동으로, 연대의 행동으로 승화시켜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참가자들 “살인정권 물러나라”는 구호를 외쳤다. “강제 부검 절대 안 돼”라는 구호도 외쳤는데, 이것은 백남기 농민의 아내가 특별히 부탁한 것이라고 한다. 명백한 국가 폭력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박근혜 정권의 뻔뻔함에 대한 분노가 담긴 것이리라.

참가자들은 백남기 농민이 지난해 ‘물대포’를 맞고 쓰러진 종로 르미에르 건물을 향해 행진하기 시작했다. 전날 ‘백남기대책위’(생명과 평화의 일꾼 백남기 농민의 쾌유와 국가폭력 규탄 범국민대책위원회)가 르미에르 건물부터 경찰청까지 행진 신고를 냈지만 불허된 터라 행진 초반에는 잠시 긴장감이 흐르는 듯했다.

그러나 이내 기세있게 행진이 시작됐고, 대열에서는 “우병우 살리고 백남기 죽인 박근혜는 물러나라”, “부검 말고 특검하라” 등의 구호가 울려 퍼졌다. 거리에 있던 시민들이 행진 대열의 구호를 진지하게 듣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어찌나 많은 사람들이 행진에 참가했던지, 행진 뒤쪽 대오가 종로4가 부근을 지날 때 맨 앞 선두 대오는 이미 정리 집회를 시작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백남기 농민의 얼굴과 머리에 물대포를 직사 살수해서 결국 사망에 이르게 한 경찰은 뻔뻔하게도 추모행진 대열을 방해하고 차벽을 세웠다. 평생을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싸우고 농민 운동에 헌신한 백남기 농민에 대한 모욕이자 유가족들과 추모 대열에 대한 모욕으로 느껴졌다. “폭력경찰 물러가라”, “살인경찰 물러가라”라는 구호도 터져 나왔다. 경찰은 참가자들이 참사 현장에 헌화하는 것을 끝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아버지를 두번, 세번 죽이지 못하게 할 겁니다” 상복을 입은 고 백남기 농민의 둘째딸 백민주화 씨가 고인의 시신을 부검하려는 검경을 규탄하고 있다. ⓒ이미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우리가 세월호 아이들의 엄마·아빠이자 백남기 농민의 자식“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에 참가한 세월호 유가족이 눈물을 흘리고 있다. ⓒ이미진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은 끝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9백 일 촛불문화제도 큰 규모로 열렸다.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라는 사회자의 말 그대로 5천여 명이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다. 경찰에 막혀 늦게 도착한 대열이 속속 도착하며 시간이 갈수록 전체 대열은 점점 커졌다.

이 날은 세월호 특조위가 강제 해산된 다음 날이자 미수습자 허다윤 학생의 생일이기도 하다. “만약 세월호 참사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생일 케이크를 먹고 있었을 것”이라는 사회자의 말에 많은 참가자들은 침통함을 감출 수 없었다.

하지만 이 날 집회 내내 진실 은폐 세력 박근혜 정권에 대한 분노와 진실 규명을 멈추지 않겠다는 의지가 강력히 느껴졌다. 사회를 본 4 · 16연대 최영준 상임운영위원은 “아직 승리하지 못했지만 진실규명을 위한 의지는 꺾이지 않았기 때문에 패배하지 않았다”며 문화제를 시작했다. 이 날 연단에서는 세월호 희생자들에 이어 백남기 농민을 죽음에 이르게 한 박근혜 정권에 맞서 함께 싸우자는 메시지들이 연이어 나왔다. 또한, 특조위는 강제 해산됐지만 계속해서 진실 규명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발언마다 대열에서는 박수가  터져 나왔다. 

4 · 16연대 김우, 나승구 상임운영위원에 이어 특조위원들과 이석태 위원장이 무대에 올랐다. 이석태 위원장은 지난 기간 정부의 숱한 방해를 되짚으며 “[특조위라는] 형식적인 옷이 강제로 벗겨졌지만 앞으로도 진상규명을 위해 임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참가자들은 “특조위는 내년까지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특조위 강제 해산을 인정할 수 없음을 외쳤다.

전국농민회총연맹 김영호 의장은 박근혜 정부를 향해 이렇게 일침을 날렸다. “살인자가 부검을 하겠다고 합니다. 살인자는 감옥 가서 벌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백남기 농민이 아니라 살인마 박근혜 정권을 부검해야 합니다!”

416가족협의회 전명선 위원장은 진실 규명을 방해해 온 정부를 규탄하며 “우리 가족들이 죽을 때까지, 우리가 못하면 그 다음 세대라도 반드시 진상 규명하고 책임자 처벌하고 더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 것을 다짐해 왔다고 진상 규명의 의지를 꺾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또한 세월호 인양과 진상 규명을 위해 “끝까지 연대해 줄 것”을 호소했다. 전명선 위원장은 진상 규명을 제대로 할 수 있는 새로운 법안을 발의하고, 특조위 해산 이후에도 국민조사단을 꾸려 진상을 조사해 가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세월호 참사 9백일 문화제

△세월호 참사 9백 일 촛불문화제에 참가한 수천 명의 사람들이 끝까지 진실을 밝힐 것을 다짐하고 있다. ⓒ이미진

이 날 열린 집회 모두에서 박근혜 정권을 향해 켜켜이 쌓여 온 분노가 느껴졌다. 동시에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해 싸우는 노동자들과 백남기 농민 사망과 세월호 참사의 진실 규명을 위해 싸우는 이들이 박근혜 정권에 맞서 함께 싸우고 있다는 것을 흠뻑 느끼게 했다. 특히 최순실, 우병우 등 박근혜를 중심으로 한 추악한 부패와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내분과 위기를 겪고 있다는 점이 운동 참가자들에게 자신감을 주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지금의 위기를 활용해 노동개악에 맞선 노동자들의 투쟁이 지배자들 사이의 균열을 더욱 파고 든다면,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과 ‘백남기 농민 사망의 책임자 처벌’이라는 이 날의 요구도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백남기 추모대회 행진

△성주 현지 주민들도 한반도 사드 배치 반대 팻말을 들고 범국민대회에 참가했다. ⓒ이미진

성과연봉제 저지 파업

△“불편해도 괜찮아”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파업의 정당성을 알리며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이미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행진

△범국민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공공부문 파업 지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백남기 농민 사망 책임자 처벌 등 다양한 요구를 담은 팻말을 들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은 종로1가를 향해 가두행진을 하고 있다. ⓒ이미진

백남기 추모대회 행진

△경찰이 행진 대열을 가로막으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진

백남기 추모대회 행진

△경찰이 추모대회 참가자들의 행진을 가로막으면서 충돌이 일어나고 있다. ⓒ이미진

백남기 농민 추모대회 행진

△경찰이 추모대회 참가자들의 행진을 가로막으면서 충돌이 벌어졌다. ⓒ이미진

입력 2016-10-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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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수부, 세월호 인양 연기 전격 발표

세월호가 퇴진 운동 쪽으로 못 뜨게 하려는 술수

김지윤

11월 11일 해수부장관이 세월호 선체 연내 인양 불가를 공식 선언했다. 불과 열흘 전까지만 해도 인양 방식 변경을 얘기하더니 갑작스레 완전한 연기를 선언한 것이다. 그동안 해수부는 몇 번이나 인양 예상 시기를 미뤄가면서 유가족들의 애를 태웠다. 같은 날 정부는 특별조사위원회 사무실의 집기를 모두 철거하고 조사관 출입도 불가능하게 하는 등 사무실을 완전히 폐쇄했다.

해수부는 선체 밑 퇴적층 때문에 작업이 어렵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이미 지난해 5월 해수부의 선체 처리 기술 검토 보고서에서 지적됐다. 갑자기 알게 된 변수가 전혀 아니다. 인양 업체를 선정한 것이 그해 7월이었으니 이런 조건에서 인양이 가능한지가 당연히 고려됐어야 한다. 그런데 정부가 우선한 조건은 기술력이 아닌 비용이었다. 유가족들이 상하이 샐비지의 인양 방식에 꾸준히 의구심을 품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로 8월이면 끝난다던 뱃머리 들기도 번번이 실패했고 이 과정에서 선체 일부가 찢어지기도 했다. 유가족들의 우려가 커져 가는데도 해수부는 연내 인양이 가능하다고 호언장담해 왔다.

그런데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고 박근혜 퇴진 운동이 폭발하는 지금, 인양 연기를 선언한 것이 그저 우연일까? 2년 반을 검은 바다 아래에 있던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가 세월호 참사를 상기시키는 파장을 낼 것이다. 이는 박근혜 퇴진 운동을 더욱 고무하는 효과로 이어질 수 있다.

사실 박근혜는 처음부터 세월호를 바다 밑에 묻어버리고 싶어 했을 것이다. 다만 참사 1주기를 앞두고 쓰레기 시행령 항의 시위로 분노가 결집하자 부랴부랴 인양을 공식 결정했을 뿐이다. 인양 결정 이후에도 기술 검토를 핑계로 시일을 끌었다.

인양 과정은 유가족은 물론이고 특조위에게도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다. 선체에 1백30여 곳에 구멍을 뚫고, 닻 등 주요 부품들을 절단했다. 법원에서 침몰 원인을 밝히기 위해 조사해야 할 부품, 즉 주요 증거라고 지적했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지난 달 해수부는 인양 후 선체절단을 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결정했다. 유가족들은 미수습자들의 시신을 온전히 보존하고, 희생자들의 신체 일부를 선체에서 찾을 수 있도록, 그리고 증거를 온전히 보존하기 위해 이 방안에 반대했지만 해수부는 막무가내였다.

박근혜는 퇴진하고 진실은 인양돼야 박근혜는 최순실, 기업주들과 긴밀했지만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요구는 철저히 무시해 왔다. 11월 12일 거리 행진 중인 유가족들. ⓒ사진 이미진

세월호 참사는 규제 완화와 민영화, 이윤 중심 체제와 부패가 실타래처럼 엉키며 빚은 비극이다. 올해 6월에는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이 과적된 것이 밝혀지며 박근혜 정부의 미국 패권 돕기가 참사의 원인 중 하나였음이 드러났다. 세월호 참사의 배경과 원인, 구조 실패와 진실 은폐에 이르기까지 모든 핵심에는 박근혜 정부가 있다. 참사 당일 7시간의 진실도 밝혀야 한다.(관련기사 ‘까면 깔수록 커지는 박근혜의 부패’를 읽어보시오.)

세월호 참사의 진실 은폐 주범 박근혜는 처벌돼야 마땅하다. 2년 전 누더기 특별법 야합으로도 모자라 ‘공범’ 새누리당과 수사 대상도 불분명한 특검에 합의한 민주당도 도통 믿을 수 없는 세력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과 함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인양 운동도 계속돼야 한다.

입력 2016-11-1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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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권 끌어내리고 세월호 진실을 건져 올리자

김승주

세월호 참사 유가족 행진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11월 26일 박근혜 즉각 퇴진 5차 범국민행동에서 거리 행진에 나선 유가족들. ⓒ이미진

세월호 7시간 이슈와 함께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세월호 참사를 수사 대상으로 명시하지 않아 비판을 받았던 ‘최순실 특검’도 ‘세월호 7시간’을 수사하겠다고 늦게나마 밝혔다.

최근에는 2014년 10월, 세월호 인양과 관련해 “시신인양X”, “정부책임, 부담”이라고 적힌 김기춘의 수첩 메모가 폭로됐다.

또 참사 당일 청와대와 해경 본청의 핫라인 통화 기록이 자세히 보도되면서 언론 오보 때문에 상황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다는 청와대의 비루한 해명조차 거짓이었다는 것도 밝혀졌다. 청와대는 참사 당일에만 해경에 99통의 전화 통화를 하고 10통의 영상 통화를 했다. 문제는 통화말고는 제대로 한 일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세월호 7시간 동안만이 아니라 박근혜의 우선순위는 언제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닌 가진 자들의 배를 불리는 데 있었다. 수명을 훌쩍 넘긴 세월호가 수백 톤의 과적 화물을 싣고 운항할 수 있었던 것도 정부가 선박회사의 이윤을 위해 안전 규제를 풀어 줬기 때문이다. 민영화 등의 정부 정책이 이러한 부패 고리를 강화해 왔다. 또 침몰의 직접적 원인 중 하나인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수백 톤 과적은 정부가 미국의 패권을 도우려고 공사 기한을 무리하게 잡은 데 배경이 있었다.

다시 말해 세월호 참사는 사고 직후의 무책임·무능뿐 아니라 박근혜의 일관된 친기업·친제국주의 정책,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산물이었다. 그리고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런 이윤 중심·정경유착 메커니즘이 체육계와 문화계, 의료계에도 퍼져 있다는 것을 보여 줬다.

진실 규명, 책임자 처벌

세월호 참사의 주범 박근혜 정권이 위기에 처하고, 세월호 7시간이 쟁점으로 떠오르면서 세월호 유가족들은 제대로 진실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다시 기소권과 수사권을 가진 새로운 특별법 제정에 나서자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9월 30일 정부에 의해 강제 종료된 1기 특별조사위원회의 교훈이다. 11월 7일 세월호 가족협의회 ‘찬호 아빠’ 전명선 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이제 답은 분명합니다. 독립적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특조위를 당장 출범시켜야 합니다. 지금은 국가 비상 사태입니다. 국회는 직권상정은 물론이고 모든 방법을 총동원해 즉각 특별법 제정에 착수해야 합니다.”

유가족들은 박근혜 퇴진 운동이 엄청난 규모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이 세월호 참사의 진실에 다가갈 결정적 순간이라고 말한다. 백 번 옳다. 유가족의 뜻대로, 침몰 중인 박근혜 정권을 완전히 끝장내고 세월호 진실을 인양하는 싸움에 적극 나서자.

야당으로부터 독립적인 운동 건설이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활동을 강제로 종료시킨 뒤, 세월호 특조위는 지난 활동을 이렇게 평가했다. “그동안 조사 활동 과정에서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으며 우리가 얻은 결론은 세월호 특별법의 초기 입법 과정에서 쟁론의 대상이 된 수사권, 기소권 논의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특조위는 “눈앞에 자료를 두고도 확보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고, 조사 대상자들이 조사를 거부할 때 이를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이 없었다.”(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소위원장)

2014년 특별법 제정 운동을 시작할 때 세월호 유가족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보장된 독립적 진실 규명 기구를 요구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 요구를 지지하며 거리 시위에 동참했다. 그러나 정부의 악랄한 방해와 야당의 계속된 배신으로 암초에 부딪혔고,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이 이에 실용주의적으로 타협하면서 원래 요구가 지켜지지 못했다. 당시 세월호 참사 대책회의(현 4·16연대)의 온건파 리더들 다수는 ‘특검 추천 시 유가족 참여 보장’으로 요구 수준을 낮추자며 후퇴했고, 이런 입장을 정당화하려고 여야가 합의한 자료제출 요구권, 청문회권, 동행명령권 등을 매우 큰 성과라고 부풀렸다. (관련 기사: 세월호 참사 반년② 여야 합의안 재평가? 정직해야 한다)

주류 야당들의 기회주의와 배신은 ‘반쪽짜리’ 특별법 야합 이후로도 계속됐다. 더민주당은 올해 4월 총선에서 여소야대가 되면 많은 것이 바뀔 것이라 호언장담했지만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특조위의 활동 기간을 제멋대로 해석해 강제 종료시키려는 정부에 맞서 특별법을 개정하려는 운동이 벌어졌을 때 더민주당은 세월호 문제를 여야 간 정치 협상에서 쓸 카드 한 장쯤으로 여겼고, 결국 9월 정기국회에서 새누리당이 특별법 개정안을 농해수위 안건조정위로 넘겨, 정부의 강제 종료 시한 이전에 특별법을 개정할 수 없도록 한 것을 사실상 방조했다.

분노한 유가족들이 더민주당 당사에서 단식 농성을 벌이며 싸웠을 때도 더민주당은 ‘노력하겠다’ 둘러대기만 했고, 국민의당은 농성장을 찾아와서 “사실상 개정은 어렵다”고 변명했다.

이처럼 두 야당, 특히 더민주당은 세월호 참사가 정치적 초점으로 떠오르면 적당히 발을 걸쳤다가 국회 안으로 쟁점을 끌고 들어가 김을 빼는 식으로 운동을 단속해 왔다.

그 결과 하루하루를 그리움과 미안함으로 보내는 유가족들의 눈물 뒤로, 진실 규명 투쟁은 지난 2년 넘게 먼 길을 돌아와야 했던 것이다.

1기 특조위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단호하게 원칙을 지키면서, 야당에 종속되지 말고 독립적으로 싸워야 한다.

입력 2016-12-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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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인터뷰

“세월호 참사가 첫째 탄핵 사유입니다”

△11월 1일 박근혜 퇴진 촉구 시국선언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예은 아빠 유경근 씨. ⓒ조승진

12월 3일 박근혜 정권 퇴진 시위대가 청와대 1백 미터 앞까지 행진했습니다. 이 행진의 맨 앞에 세월호 유가족 수백 명이 있었는데 당시 심정이 어땠나요?

복잡한 심정이었어요. 촛불 운동의 힘을 느꼈고 시민들과 함께 행진할 때 정말 기뻤지만, 한편으론 청와대에 1백 미터 가까이 간 것만으로 이토록 감격해야 한다는 사실에 화가 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7시간’에 대한 관심이 아주 높습니다. ‘최순실 특검’도 ‘세월호 7시간’을 다루겠다고 밝혔는데요.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밝힌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최순실 특검’은 세월호 참사만 다루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유가족들)가 원하는 것을 전면적으로 수사하긴 어려울 겁니다. 하지만 특검이 강제력을 동원해서 진실의 단서들을 최대한 밝혀내길 바라고, 그것을 통해 책임자 처벌의 필요성을 많은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는 계기가 생겼으면 합니다.

유가족들이 정말 알고 싶은 것은 단순히 박근혜가 그 7시간 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7시간 동안 왜 해야 할 일을 안 했냐는 겁니다. 컨트롤 타워인 청와대부터 말단 해경까지 어느 누구도 세월호와 교신을 시도하지 않았고, 구조된 선원이나 승객들에게 내부 상황을 묻지 않았습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이것은 구조를 못 한 게 아니라 안 했다는 뜻입니다.

최근 폭로된 내용을 보면 박근혜는 7시간 동안 미용사를 두 번이나 불러 머리를 만졌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박근혜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밝혀낸 다음에는, 정작 해야 할 일을 뒷전에 제쳐 둔 그 이유를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박근혜의 7시간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새누리당과 보수 언론은 박근혜 탄핵소추안에 세월호 참사가 포함된 것을 비난합니다. 탄핵 사유에 세월호 참사가 꼭 포함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지금 탄핵 사유에 명시된 것들은 모두 심각한 범죄입니다. 그중에서도 세월호 참사는 특히 중대합니다. 수백 명의 생명을 직접 앗아간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두말할 것 없이 탄핵 사유일 뿐만 아니라 처벌 사유입니다.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에 관해 아무것도 안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 합니다. 그리고 살인죄와 다름없는 죗값을 치러야 합니다. 탄핵 사유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여당의 주장은 말도 안 됩니다.

세월호 특조위가 강제 종료된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새로운 특별법 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놓았는데요.

특조위는 국회에서 통과된 특별법에 따라 설치된 기구였지만 사실상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특조위가 제구실을 못하고 강제 해산된 데에는 진실 규명을 조직적으로 방해한 정부와 여당의 책임이 가장 큽니다. 하지만 그에 맞설 수단이 없었다는 것 또한 결정적 문제였습니다. 사실 특조위가 제대로 활동하려면 기소권과 수사권이 있어야 한다고 유가족들은 처음부터 주장했고, 여야 합의로 특별법이 통과되자마자 그것이 지닌 근본적 한계를 지적했습니다. 2기 특조위는 근본적으로 달라야 합니다. 제한적 조사권 강화로는 안 됩니다. 기소권과 수사권을 반드시 포함해야 합니다. 더는 양보할 수 없습니다.

새로운 특별법 제정을 위해 더민주당 등 야당들에게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봅니까?

더민주당은 “세월호를 얘기하면 선거에서 표가 안 된다”며 유가족들의 뜻을 끝내 거부하는 경우가 많았어요. 탄핵 사유나 특검의 과제에서 세월호 문제를 놓고 동요한 것도 같은 이유였습니다. 하지만 이번 촛불 운동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첫째 탄핵 사유가 바로 세월호 참사라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줬습니다. 이번 거대한 촛불 운동 때문에 야당들이 엄청난 압박을 받았어요. 유가족들도 더 자신감을 가지려고 합니다.

박근혜 탄핵이 가결되자 세월호 유가족들은 기쁨의 눈물을 터뜨렸다. ⓒ사진 제공 <노동과 세계>

김기춘의 세월호 인양 불가 지시가 폭로되면서 많은 사람들의 분노를 자아냈는데요. 현재 인양 상황은 어떤가요?

김기춘이 인양은 안 된다고 지시한 2014년 10월, 해수부는 수중 수색 지속을 원하던 미수습자 가족들에게 ‘수색을 중단하고 선체를 인양해 미수습자를 수습하자’고 설득했습니다. 아예 인양 시도조차 안 할 수는 없으니 시늉만 하면서 사실은 희생자 가족들을 속였던 거죠.

해수부는 오늘도 인양 공법을 바꿨습니다. 벌써 세 번째예요. 정부는 제대로 된 검토도, 계획도 없습니다. 유가족들은 해수부가 인양 공법을 발표할 때마다 허점을 지적하고 보완을 요청했지만 늘 묵살당했어요. 하지만 결국 유가족들이 제기한 문제들은 현실이 됐고, 지금까지 인양은 계속 실패했습니다. 정부는 내년 4월에는 인양이 될 거라고 하는데,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그 말을 믿고 싶으면서도, ‘이번에는 또 무슨 짓을 꾸미는 것일까’ 하고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세월호 운동은 어떻게 나아가야 한다고 보나요?

박근혜 퇴진 촛불 운동이 시작되면서 세월호 관련 언론 보도가 참사 초기에 맞먹을 정도로 많아졌습니다. 그만큼 사람들의 관심이 고양돼 있다는 게 정말 고무적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단편적인 사실 관계들만으로는 진실에 접근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하고 싶어요.

세월호 참사의 총체적인 진실을 밝히려면 ‘왜’를 물으면서 파고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어떤 처벌을 받아야 마땅한지 파헤쳐야 합니다. 앞으로 박근혜의 죗값을 묻는 과정에서 세월호 참사는 분명 가장 중요한 부분이 될 것입니다.

인터뷰 · 정리 김승주

입력 2016-12-09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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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00일, 박근혜 즉각퇴진! 황교안 사퇴! 적폐청산! 11차 범국민행동의 날

“세월호는 올라오고, 박근혜는 내려가라” 쌓여 온 분노가 청와대로 향하다

특별취재팀

1월 9일은 세월호 참사 1천 일이 되는 날이다. 304명의 생명을 태운 세월호가 가라앉는 걸 온 국민 속절없이 지켜 본 지 2년 9개월이 지난 것이다.

그 세월 동안 책임자 처벌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고, 진상 규명은 완료되지 않았으며, 희생자 9명이 아직 가족들에게 돌아오지 못했다. 책임자 중 세월호 선주인 유병언만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됐을 뿐이다.

그러나 수천만 민중에게 동병상련의 아픔을 남긴 그 참사는 유가족들이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용기 있게 나서면서 단지 충격과 슬픔의 일회성 사건에서 벗어났다. 온갖 탄압과 모욕 속에서도 유가족과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운동은 전국적·민중적 지지를 받으며 힘겹게 전진해 왔다.

이 운동이 한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앞장선 유가족들은 정권의 방해와 탄압, 냉대와 모욕을 겪어야 했다. 오죽하면, 오늘 본대회에서 세월호 생존 학생들이 “잘못한 것이 있다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말을 했겠는가. 정부의 구조가 아니라 스스로 살아나온 이 학생들에게 무슨 죄가 있다고!

“하나도 미안해 하지마!” 본대회 무대에 어렵게 용기내서 나온 단원고 생존 학생들을 (희생된 친구들의 엄마아빠이기도 한) 세월호 유가족들이 안아 주고 있다. ⓒ이미진

정권이 그렇게 나온 것은 박근혜의 개인적 치부를 가리려는 것뿐만은 아니었다. 세월호 참사가 이윤 우선주의 체제와 부패한 우익 정권이 쌓아 올린 적폐들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기 때문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드러난 이 체제의 적폐와 싸우는 일은 사람보다 이윤이 우선인 비정한 체제, 노동계급 사람들은 죽어도 대접 못 받는 원통함이 가득한 세상에 대한 항의이자 도전일 수밖에 없다. 그러한 체제의 수호자를 자처한 박근혜 정권과 정면 대결하는 일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세월호 운동은 마침내! 박근혜를 청와대로 유폐시킨 대중운동의 선두에 서 있다. 세월호 참사 1천 일을 맞아 세월호 쟁점을 거의 단독으로 부각시킨 집회에도 6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였다. 전국으로는 65만 명이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과 함께 울고 함께 분노의 함성을 질렀다. 서울에서는 수십만 명이 유가족을 따라 청와대로 행진했다.

오늘 특별히 광화문 행진의 방송차마다, 또 전국 곳곳의 집회에 발언자로 참가한 유가족들도 만감이 교차했을 것이다. 어쩌면 세월호가, 그 원혼들이, 박근혜 정권을 침몰시키고 있다는 것이 진실일 것 같다. 세월호 생존 학생들은 “나중에 친구들을 만났을 때 우리를 이렇게 멀리 떨어지게 만든 사람들을 모두 처벌하고 왔다고 얘기하고 싶다”고 했다.

그 바람대로 되는 것이 희생자, 생존자, 유가족만이 아니라 이 참사를 내 일처럼 미안해 하고, 함께 고통스러워하고, 함께 싸움을 벌여 온 노동계급 민중의 ‘정의’일 것이다.

ⓒ조승진

그러나 이 정의는 더 전진해야 한다. 오늘 광장에서는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이 특별법을 제정하려는 서명을 받았다. 이들은 바로 하루 전, 가해자들에게 턱없이 약한 처벌을 한 재판 때문에 통곡을 해야 했다. 국가보안법 피해자들인 이석기 전 의원이나 ‘노동자의 책’ 이진영 대표 등의 석방 촉구 서명 운동도 있었다.

세월호 참사가 3년 전인지도 기억 못하면서 ‘내가 더 억울하다’는 뻔뻔한 박근혜는 아직도 청와대에 버티고 있다. 그를 대신한 황교안은 친기업 정책을 지속하고 국가보안법 탄압을 하면서 정권의 적폐를 이어가려고 한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리에서 박근혜 대리인단은 촛불은 국민 민심이 아니고, 북한의 사주를 받은 것이라고 도발했다.

박근혜 일당의 이런 교활한 버티기는 사람들을 또 분노케 했다. 오늘 청와대 방향 행진은 세월호 유가족들이 앞장섰고 성난 군중들이 청운동 거리를 가득 채웠다. ‘분노가 하늘을 찌를 듯하다’는 식상한 표현이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박근혜를 구속하라”가 가장 많이 외쳐졌고, “세월호를 인양하라”, “헌재는 탄핵하라”도 주요 구호였다.

비통함을 이겨낸 정의는 힘이 세다. 그러나 그 정의는 결코 그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다. 오직 그것을 실현할 용기와 의지를 가진 사람들에 의해 구현될 뿐이다. 오늘 집회에 모인 60만 명, 오늘 집회에 오지 못했지만 마음으로 응원한 수천만 명이 그 주인공이 돼야 한다. 박근혜 정권과의 대결을 이끌어 온 조직 노동자들이 견인차가 돼야 한다.

박근혜·황교안 정권을 하루라도 빨리 끌어내려야 하고, 그들의 사악한 정책들을 중단시켜야 한다. 그 책임자들을 처벌로 응징하는 것도 빠져서는 안 된다. 망신의 아이콘이 된 박근혜만 꼬리 자르고 적폐의 체제를 이어가려는 기득권 집단과의 투쟁도 계속돼야 한다.

본대회에서 세월호 참사 이후 징계를 감수하고 가장 먼저 정권 퇴진 선언을 한 전교조 교사 노동자가 큰 지지 속에서 발언하고, 정리집회에서 국가보안법 구속자 이진영 씨의 부인인 최도은 가수와, 손배가압류에 맞선 하이디스 노동자들이 환대를 받은 것은 그래서 기쁜 일이다.

행진이 모두 끝난 후 연 대학생 정리집회에서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이 한 발언이 오늘 집회 참가자들의 마음일 것이다.

“지금까지의 1천 일은 힘들었지만, 앞으로의 1천 일은 전보다 희망적일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사전 행사들

오늘도 광화문광장에서는 일찍부터 다양한 부스와 행사가 열렸다. 세월호 9백98일을 맞아 전체적으로 엄숙한 분위기였지만, 일찍부터 삼삼오오 가족들과, 친구들과 나온 사람들의 표정이 어둡지는 않았다.

가장 주목받은 것은 광화문역 9번 출구에서 나오는 길에 놓인 세월호 참사 희생자를 상징하는 3백4개의 구명조끼였다. 그 앞에서 진행한 손펌프로 에어포켓에 공기를 채우는 행사에도 많이들 참가했다.

광화문광장 남단 세월호 광장에 자리 잡은 분향소에도 차례를 기다리는 줄이 끊기지 않았다. 그 옆 ‘기억하라 0416’ 전시관에도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광장 중간 세종대왕상 근처에는 미수습자 9명을 그린 걸개그림이 걸렸고, 자연스럽게 광장에 온 사람들의 포토존이 됐다.

본대회가 가까워지며 사람들이 광장을 채우자 그림을 준비한 '광화문미술행동' 측은 차도 쪽 경찰버스에 그림을 걸려 했지만 황교안의 경찰은 이를 가로막았다. 많은 사람들이 미수습자 그림 앞에 모여 애도를 표하고 그들을 잊지 않으려 사진을 찍는 것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결국 사람들은 바닥에 놓인 그림을 찍어야 했다.

민주노총과 희망연대노조에서도 "헬조선 헬직장"을 바꾸기 위해 엽서 쓰는 자리를 만들었다.

유성기업 한광호 열사 대책위는 20일에 사장 유시영에 대한 선고가 있다면서 구속 처벌을 촉구했다.

“가진 자들은 노조파괴로 사람을 죽여도 처벌받지 않는 나라를 바꾸자. 이번에는 집행유예나 벌금으로 끝나지 않도록 힘을 모아 달라.”

적극적인 연대 호소에 많은 사람들이 멈춰 서서 서명을 했다.

소위 내란음모로 구속된 진보당 양심수들의 가족이 직접 나와서 “그동안 광장에서 3만 명이나 석방요구 서명에 함께해 줬다”며 고마움을 표하고 계속되는 연대를 호소했다.

이틀 전 국가보안법위반 혐의로 구속된 '노동자의 책' 대표 이진영씨 석방을 요구하는 부스에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연극인들은 광장에 커다란 검은 천막을 설치하며 향후 2주 동안 공연하겠다는 계획과 블랙리스트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광장 북단에서는 국정교과서 철회 서명대가 가장 붐볐다. 오늘도 조희연 서울 교육감이 함께했다.

△광화문광장에 설치된 세월호 분향소에서 한 아이가 기도를 하고 있다. ⓒ이미진

△광화문광장 한쪽에 놓인 304개의 구명조끼를 보며 한 시민이 오열을 하고 있다. ⓒ이미진

416 세월호 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발족식

오후 5시 본무대에서는 사전 행사로 416 세월호 참사 국민조사위원회 발족식이 열렸다.

사회를 맡은 416연대 김혜진 상임운영위원이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고 싸우는 것의 중요성을 잘 지적했다.

“우리가 세월호를 잊는다면 우리 일상은 끊임없이 세월호가 될 것 … 특별법 만들어서 더 강력한 특조위를 만들겠지만, 그 전에라도 진실 규명을 멈출 수 없다.”

김혜진 상임운영위원은 오늘 집회 직전 종로3가역 근처 호텔 공사장에서 안전사고로 2명이 매몰됐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했다.

발족식이 진행되는 내내 참가자들은 숨죽이고 진지하게 발언을 경청했다. 416가족협의회 장훈 진상규명분과장(장준형의 아버지)은 국민조사위가 왜 필요한지 설명하고 지지와 국민조사위원 참여를 힘있게 호소했다.(발언을 모은 관련 기사 참조)

국민조사위원회 박영대 상임연구원은 관련 자료를 함께 읽고 검토할 자원 활동가나 시민연구원으로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나 연구자들이 자원해 달라고 호소했다.

마지막으로 국민조사위원회 발족 선언문을 무대 화면에 띄우고 참가자들이 모두 함께 낭독했다.

“세월호 특조위가 비록 강제 해산됐지만 우리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특별법을 다시 제정하여 더 강력한 특별조사위원회를 만들 것이다. 세월호참사국민조사위원회는 진상 규명을 중단없이 이어가고자 한다. 정부가 조사 권한을 인정하지 않더라도 그에 굴하지 않고 우리 모두의 열정과 노력으로 진실 규명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겠다”

ⓒ이미진

본대회

5시 반에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 주최의 본대회가 시작할 때는 대열이 광화문광장 북단부터 광화문사거리까지 메웠다. 주최측은 50만 명이 참가했다고 밝혔다. 집회가 진행되면서 참가자가 계속 불어나 광화문광장 일대도 꽉꽉 들어찼고, 뒤로는 광화문사거리를 지나 동화면세점과 청계천광장 앞 차도가 가득 찼다.

본대회에서는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미수습자 유가족, 생존한 학생들(단원고)이 발언했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물어 박근혜 정권 퇴진 시국선언을 해 징계 위협에 시달리는 전교조 교사도 발언했다. 이 발언들 모두 한 마디 한 마디가 폐부를 찔러 광장은 눈물 바다가 됐다. “7시간 밝혀내라”, “세월호를 인양하라”, “박근혜는 퇴진하라”, “황교안도 퇴진하라” 구호들이 평소보다 더 크게 들렸다.

본대회 사회를 맡은 최영준 퇴진행동 공동상황실장(이자 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은 황교안의 국민의례 규제 시도에 항의하며 세월호 참사 희생자 묵념으로 집회를 시작했다.

“대통령 행세를 하고 있는 황교안이 대통령 훈령을 개정해 세월호 희생자 추모를 국가 행사나 학교 행사에서 못 하게 막았다. 국론 분열을 막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거부한다. 우리는 5·18 광주를 추모할 수도 있고, 민주화를 위해 싸운 열사들을 추모할 수도 있고, 재벌과 자본에 맞선 노동 열사들을 추모할 수 있다. 무엇보다 국가가 구하지 않은 3백4명을 추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범국민대회는 억울한 죽음을 기리고 진실 규명을 다짐하며 박근혜 퇴진을 촉구하는 묵념으로 시작하고자 한다.”

오늘 퇴진행동 활동가들의 모금함을 향해 뻗는 손들이 이전보다 더 많아 보였다. 세월호 생존 학생이 친구들이 보고 싶다고 발언할 때는 모금하던 활동가도, 119대원도 멈춰 서서 듣고는 눈시울을 붉혔다.

무대에 오르는 미수습자 허다윤 양 아버님의 모습이 보이자 곳곳에서 안타까움의 탄식이 터져나왔다.

오늘은 세월호 유가족 합창단이 직접 노래를 불렀다. 네버엔딩스토리의 “그리워하면 언젠가 만나게 되는, 어느 영화와 같은 일들이 이뤄져 가기를” 노랫말처럼 희찬 아버지는 “앞으로도 기적을 만들어 가자”며, “오늘 너무 보고싶은 제 아이만큼이나, 이 자리까지 함께해 주신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했다.

무대에 생존 학생들이 오르자 응원의 박수가 평소보다 크고 길게 쏟아졌다. 

“3년간 이렇게 사람들 앞에 나서기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고 입을 뗀 장애진 학생은 발언 도중 보고 싶은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눈물을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눈물을 터트렸다.

이후 사회자가 “유가족들의 투쟁이 있었기에 박근혜 퇴진을 목전에 둔 오늘까지 올 수 있었다”고 말하자 여기저기서 “옳소!”하는 큰 호응이 나왔다.

 

ⓒ이미진

△광화문 광장 한켠에 놓인 행진 차량 위 세월호 모형이 밝게 빛나고 있다. ⓒ이미진

행진

본대회가 끝나자, 눈물의 바다가 분노의 파도로 변했다. 분노한 사람들의 열기가 대단했다. 최근 정치 상황과 세월호 문제 때문인지 참가자들은 압도적으로 청와대를 향했다. 수만 명이 청운동 길을 꽉 채워서 행진했다. 

세월호 유가족이 최선두에 섰고, 수만 명이 함께 행진했다. 박원순 서울시장과 정의당 심상정 의원도 유가족과 함께 행진했다.

청운동 약식 집회에서 박원순 서울시장과 416가족협의회 유경근 집행위원장도 발언했다. 박원순 시장은 정권의 광화문 세월호 광장 철거 시도에 방어막을 쳐 준 것에 대한 유가족들의 감사 인사 속에서 발언했고 그 때문에 박수를 많이 받았다.

유가족들은 또 1천 일 동안 유가족들과 함께해 주신 분들이라며 안산시장, 정의당 심상정, 윤소하 의원도 소개했다. 돌아가신 세월호 잠수사 고 김관홍 씨의 어머님이 소개됐을 때도 큰 박수가 나왔다.

헌법재판소 방향 행진은 종각에서 종로2가 사거리를 가득 메웠다. "박근혜를 감옥으로"를 사람들이 따라 불렀다.

낙원상가 인근에서는 오전 사고로 매몰된 노동자들을 구조하는 작업 중이었다. 행진하던 사람들은 무사 귀환을 기원하며 행진했다. 방송차는 하루에 9명이 산재로 목숨을 잃는 현실을 상기시켰다.

헌재 앞에서 경찰이 ‘소음 기준 허용치를 넘었다’고 주최측에게 전했다는 말을 사회자가 하자마자 사람들은 더 크게 함성을 지르고 호루라기를 불었다.

"국민들이 탄핵했다, 국회도 탄핵했다, 헌재는 즉각 탄핵하라" 라는 구호가 계속 울려퍼졌다. 국회가 탄핵소추안을 가결하게 만든 국민 다수의 의사를 헌재도 따르라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희생 학생들의 얼굴이 그려진 현수막을 들고 선두에서 행진을 이끌었다. ⓒ조승진


ⓒ이미진

△기발한 아이디어를 담은 소품을 직접 만들어 온 참가자들. ⓒ조승진

부산

1월 첫째 주, 부산에서도 2만 명이 모였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진상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박근혜는 내려가고 세월호는 올라오라”는 구호가 많이 외쳐졌다.

부산 집회에도 세월호 유가족들이 여러 명 참가해 발언도 했다. 다음과 같은 비장한 발언에 큰 박수가 쏟아졌고, 곳곳에서 눈물짓는 사람들이 보였다.

“부산 시민 여러분, 저희는 여러분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저희는 여러분들과 함께 갈 것입니다. 세월호뿐 아니라, 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모든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죽을 때 귀한 죽음으로 가자고 우리 부모들끼리 이야기합니다. 너희들 엄마, 아빠가 해냈다고, 세월호 이후는 분명히 바뀌었다고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부산풀뿌리 네트워크 이혜정 대표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 적폐 청산을 하자고 발언했다.

“저들은 세월호 아이들이 죽을 때 무엇을 했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거나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세월호 진상 규명을 해야 합니다. 저의 두 번째 꿈은 적폐 청산이 이뤄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 꿈은 끝까지 하는 것입니다. 박근혜, 정유라, 최순실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가 아니라 우리 청년, 노동자들의 꿈이 이뤄지는 나라를 만들고 싶습니다. 끝까지 함께 합시다."

본대회 후 시민들은 부산시청까지 행진하며 ‘박근혜 구속’을 외쳤다.

ⓒ조승진

ⓒ조승진

ⓒ조승진

입력 2017-01-0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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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월호를 온전히 인양해야 하는가

김승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이화여대 학생)

침몰한 세월호 선체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의 가장 중요한 증거물이다. 또한 어떤 화물이 어떻게 실리고 고정됐으며 얼마나 움직였는지 밝히려면, 선체를 온전하게 인양해서 화물칸도 철저하게 조사해야 한다.

선체를 온전하게 인양해야 하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아직 우리 곁에 돌아오지 못한 미수습자 아홉 명이 세월호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단원고의 조은화·허다윤·박영인·남현철 학생, 학생들에게 과자를 자주 사 주시던 양승진 선생님, 수영이 특기였던 체육 교사 고창석 선생님, 자기 구명조끼를 벗어서 네 살짜리 여동생에게 입힌 여섯 살 권혁규 어린이와 아버지 권재근 씨, 아들이 살고 있는 제주도로 이사 중이었던 이영숙 씨.

△조속한 인양이 필요하다고 호소하는 세월호 미수습자 가족들. ⓒ이미진

현재 정부가 ‘실종자’로 분류하고 있는 이 아홉 명의 미수습자들은 ‘충분한 수색이 이뤄졌는데도 실종 상태인 사람’이라고 보기 어렵다. 아직 수색되지 않은 격실과 화물칸들이 있기 때문이다. 미수습자의 시신은 이런 곳의 짐과 집기들 사이에 끼어 있을 수 있다.

2015년 초 정부와 몇몇 여당 정치인들은 예산 문제를 들먹이며 유가족들로 하여금 인양을 단념케 하려고 했다. 새누리당 김진태는 “아이들은 가슴에 묻는 것”이라며 인양 포기를 종용했다. 박근혜도 세월호 특조위에 들어가는 세금이 아깝다고 했다.

그러나 인양 과정을 보면 세금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바로 정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치밀한 계산과 시뮬레이션에 근거해야 할 부력제 삽입 방식이 인양 도중에 갑자기 변경되고, 부력제가 계속 분리되고, 10미터까지 들어 올리기로 돼 있던 선수가 4미터밖에 들리지 않았는데도 와이어가 끊어지는 등 공학 지식이 없는 사람들이 봐도 어이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해수부는 인양 시도와 실패 과정에서 선체의 앵커, 불워크, 크레인 포스트 등을 제거했다. 선체에는 벌써 1백40여 개의 구멍이 뚫렸고 그중 가장 큰 7개는 직경이 1미터 20센티미터에서 1미터 60센티미터에 이른다.

최근 해양수산부 장관 김영석이 “세월호 참사에 대해 심각하게 진상 규명을 추가로 해야 한다고 보는 부분은 없다”고 주장했다. 참사의 범인들 아니랄까봐, 미수습자 가족들의 심정에는 눈곱만큼도 공감하지 못 하는 것이다.

저들의 진심은 세월호가 온전하게 인양되고 조사가 진척돼서 세월호 참사가 다시금 주목받는 것이, 그래서 정부의 책임이 또다시 조명되는 것이 싫은 것이리라. 정말이지 “숨기는 자, 범인이다” 하는 구호가 딱 맞다.

△세월호를 올리고, 진실을 인양하자 ⓒ조승진

이탈리아에서는 9백여 일만에 인양된 콩코르디아호의 선체를 해체하던 중 마지막 실종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2년 반 만에 유해를 찾았다는 소식에 가족은 “아무 말도 못하겠다. 지금 심장은 너무 빨리 뛰고 온 몸이 떨린다. 유해를 찾을 수 있다고 끝까지 믿고 기도해 준 분들께 감사드린다” 하고 말했다.

2001년 북극해에서 침몰한 러시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도 중량 1만 8천 톤, 길이 1백54미터로 세월호와 비슷하고, 침몰한 곳의 수심이 1백8미터로 세월호 침몰 지점보다 깊었음에도, 4개월 만에 인양에 성공했다.

세월호도 조속하고 온전하게 인양할 수 있고, 인양해야 한다. 가족 품으로 돌아갈 미수습자의 마지막 모습에 존엄이 최대한 지켜질 수 있도록, 침몰의 원인이 낱낱이 밝혀질 수 있도록 반드시 그렇게 돼야 한다.

입력 2017-01-0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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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왜 침몰했나?

안전을 팔아먹는 이윤 체제와 그 부패

김승주 (노동자연대 학생그룹 회원, 이화여대 학생)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는 갑자기 오른쪽으로 휙 돌았다.

급선회 직후 갑판에 있던 컨테이너와 철근이 옆으로 미끄러지며 바다로 추락했다. 화물이 한쪽으로 쏠리자 걷잡을 수 없는 전복이 시작됐다.

배가 기울수록 물은 점점 더 많이 들어왔고, 물이 들어올수록 배는 더 빨리 기울었다. 결국 세월호는 기울어지기 시작한 지 불과 1백1분 만에 가라앉았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 12월 17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 놓인 3백4개의 구명조끼와, 희생자를 추모하는 아이 ⓒ사진 조승진

급격한 우회전의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법원은 기관장 경력이 30년인 정대진 씨의 증언이 일리 있다고 봤다. 정대진 씨는 조타기 관련 고장 가능성을 제기했다. 15~20년 이상 된 노후 선박에서는 조타기를 통해 방향을 조절하는 밸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은 엔진 이상 가능성도 제기하며 “다양한 [침몰]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선체를 인양한 뒤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제주 해군기지

지난해 6월 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참사 당일 세월호에 제주 해군기지 건설용 철근 수백 톤이 실렸음을 공식 확인했다.

철근은 당시 세월호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화물이었다. 화물 과적은 참사 원인 규명에서 중요한 쟁점이다. 게다가 철근은 규정을 어긴 채 대충 고박됐다.

화물을 과적하니 그만큼 평형수를 빼야 했다. 그런데 세월호는 증개축을 한 뒤 복원성이 크게 나빠져서, 실을 수 있는 화물량은 절반으로 줄고, 넣어야 하는 평형수는 네 배로 늘었다. 그런데 참사 당일에는 화물은 최대 적재량의 두 배 이상, 평형수는 최소 필요량의 절반 이하를 실었다!

특조위는 세월호가 애초부터 제주 해군기지 물동량을 노리고 들여 온 배일 가능성도 제기했다.

2010년부터 청해진해운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등으로 물동량이 증가할 것을 대비했다. 그리고 같은 해 세월호 도입을 결정했다. 실제로 기지 건설이 본격화되자, 2013년 제주항에서 건설 자재 입항 화물량이 2배 가까이 폭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군기지 공사에 차질이 생긴 정황도 있다. 이쯤 되면, 애초에 정부가 과적을 (방치한 정도가 아니라) 지시했을 공산도 크다. 세월호가 국정원이 직접 보고받는 유일한 선박이었음을 감안하면, 그 개연성은 더욱 커진다.

제주 해군기지행 철근 과적은, 박근혜 정부가 구조 방기와 규제 완화의 책임만이 아니라 세월호 침몰의 직접적 책임을 지고 있음을 뜻한다.

정부의 친제국주의 정책을 위해 청해진해운은 무리하게 철근을 실었고, 학생들은 과적된 화물에 얹혀 갔다. 이처럼 제주 해군기지는 강정마을 주민의 삶을 짓밟았고 3백4명의 목숨마저 앗아갔다.

이윤과 부패

증개축되면서, 세월호의 선수 우현은 좌현보다 30톤 더 가벼워졌다. 이것은 참사 이전에도 배가 자주 왼쪽으로 기운 이유기도 했다.

선원들은 세월호를 “대한민국에서 가장 위험한 배”라고 불렀다. 몇 차례의 사고 후 “구조 변경으로 안전 사고의 위험이 있다”는 보고서가 경영진에게 올라갔다. 하지만 조처는 없었다.

평소 회사는 물류팀을 “엄청 쪼았[다].” 물류팀이 회사 매출의 70퍼센트 이상을 맡고 있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 카페리 중에서 규정대로 싣는 배가 어디에 있느냐? 규정대로 실으면 장사 하나도 안 된다.”

참사 당시 세월호에 실린 60톤짜리 중장비 2대는 그 전날 오하마나호 선장이 “죽어도 더 못 싣는다”고 버텨 부두에 버리고 출항한 화물이었다.

그런데 2011년 해양수산부는 청해진해운을 종합우수선사로 선정했다. 2013년 세월호는 인천해경·항만청 등의 합동 특별점검 때 비상훈련 실시 분야에서 ‘양호’ 평가도 받았다. 경악스럽다.

청해진해운의 실소유주인 세모그룹은 국가와 유착해 온갖 부패를 저질렀고, 그 덕분에 청해진해운은 인천~제주 운항을 20년 동안 독점했다.

2013년 청해진해운은 접대비로 6천만 원을 쓰면서 안전 교육에는 겨우 54만 원을 지출했다. 2001~13년 접대비 명목으로 쓴 돈은 공식으로만 9억 4천만 원에 이른다. 실제로는 더 많았을 것이다.

청해진해운 직원들은 명절 때마다 인천해양경찰·항만청·한국선급 직원을 위해 백화점 상품권을 8백~9백만 원씩 준비했고, 선박 중간검사나 정기검사 때도 2백~3백만 원을 썼다.

이런 부패가 없었다면 세월호는 애초에 탄생할 수 없는 배였다.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가 마치 일부 해피아(‘해수부 마피아’)만의 문제인 양 몰아갔지만, 이 부패 카르텔의 배경에는 정부 정책이 있다.

박근혜는 ‘국토·해양·환경 분야의 규제 개혁이 중요하다’며 선박 과적과 화물 결박 현장 점검을 문서 제출로 대체하게 했고, 선장의 선박 안전 관리 보고와 내부 심사 의무를 없앴다.

그래 놓고는 여객선 업계의 업황도 걱정해, ‘해운업계의 어려운 사정을 도와 달라’는 해운항만청의 요청을 받고 교육청들이 단원고를 포함한 일선 학교에 여객선 이용 협조 공문을 보내도록 했다.

역대 정부는 안전 관리 업무를 해운조합, 한국선급 등 민간 단체에 넘겨 왔다. 내항여객선 안전 관리는 해운사들의 모임인 해운조합에게, 국내 화물선과 여객선 안전을 인증하는 일은 해운사들이 출자해서 만든 한국선급이 맡았다. 그리고 이 업무들의 국내 독점을 보장해 줬다. 그 대가로 퇴임한 정부 관료들과 선박회사 소유주들은 해운조합, 한국선급, 해양구조협회 등에서 돌아가며 높은 자리를 꿰찼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것이다.

입력 2017-01-0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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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1000일 ─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다

김문성

“작년인가, 재작년인가요, … ‘한 사람이라도 빨리빨리 필요하면 특공대도 보내고, 모든 것을 다 동원해 가지고 한 사람도 빠짐없이 구조하라’ 이렇게 해 가면서 보고 받으면서 이렇게 하루 종일 보냈어요. … 거기 119도 있고 다 있지 않겠습니까? 거기에서 제일 잘 알아서 하겠죠, 해경이. 그러나 대통령으로서는 … 제 할 것은 다 했다고 생각하는데.”

(박근혜, 2017.1.1.)

“[참사 당일 구조에 나섰던 어선의] 선주들이 나를 보자마자 하는 첫마디가 ‘해경 개새끼, 죽일 놈의 새끼들, 저 새끼들이 안 구했어’ 였어요. 나보다 성이 더 나가지고는 ‘살릴 수 있었는데 안 살렸다’고.”

“[당일] 저녁 7시쯤에 몇몇 부모들이 돈을 걷어서 어선을 빌렸어요. … 애 아빠가 다녀와서는 ‘구조를 전혀 안 해. 보트 같은 것만 주변을 돌고 있어’라고 …”

(유가족 증언)

정의 세월호 참사 항의는 큰 지지와 탄압과 모욕 등 굴곡을 겪었지만, 결국 참사 책임자 박근혜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사진 이미진

세월호 참사의 비극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1천 일이 다 돼서야 내놓은 박근혜의 변명을 들으며 울화통이 터졌을 것이다. 박근혜가 천진한 표정을 가장하며 3년 전 세월호 참사를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할 때는 특히 그랬다.

정말 날짜를 헷갈린 것이든, 그 날 자신에게는 기억날 만큼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암시를 주려 수작을 부린 것이든 둘 다 어처구니 없고 가증스런 언사다. 평범한 사람들의 목숨에 아무런 관심도 안타까움도 없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래도 ‘대통령’이라고 이런 작자에게 유가족들이 얘기 들어 달라고 애원한 시간이 억울할 뿐이다.

박근혜의 죄가 참사 당일에 희생자들을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만은 아니다.(물론 그것만으로도 ‘부작위에 의한 살인’을 의심할 정도로 큰 죄다.)

참사의 배경이 된 안전 규제 완화, 국가기관의 안전 예산 삭감, 안전 업무 일부 민영화에 앞장선 것이 박근혜 정부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는 이 친기업 행각에 윤활유 구실을 한 부패 구조의 꼭대기에도 박근혜 일당이 있었음을 드러냈다.

이윤 우선주의 친기업 정책들을 역대 정부들도 강화해 왔다고 해서 박근혜의 책임이 줄어드는 건 아니다. 박근혜는 그런 국가의 수장이었을 뿐 아니라, 둘째 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친기업 임무에 충실했기 때문이다.

박근혜는 메르스 사태 때도 기업주들의 이익을 위해 무책임과 은폐로 일관하다가 온 나라를 위험에 빠뜨렸다.

박근혜와 최순실의 사적 치부인 것을 알면서도 기업주들이 돈을 내놓은 것은 단지 협박이 아니라 감사와 청탁의 뜻도 있는 것이다.

팽목항 기다림의 시간은 분노가 자라 온 시간이다. ⓒ이윤선

직접 책임도 있다. 규제와의 전쟁을 선포해 첫 해에만 6백 개 넘는 규제를 없앤 것이 박근혜다. 선장의 선박 안전 관리 보고 의무를 없애고 과적과 화물 결박 점검을 서류로 대체 가능하도록 한 것도 박근혜다. 재난 관리 예산을 줄이고 해경의 수색구조계를 폐지한 것도 박근혜다.

해경의 구조 능력 약화는 관련 업무 민영화와 예산 직접 삭감은 물론이고, 예산 절감을 목표로 한 기관별 성과주의가 관료적 무책임과 상명하복 분위기를 조장한 대가일 것이다.

세월호 과적의 중요한 배경이 된 제주 해군기지 건설을 적극 찬성하고 공사를 서두른 것도 박근혜다. 그 배경인 미국의 군사 패권 정책에 앞장서 협력해 온 것도 박근혜다.

그런 호전적 정책이 우파 지지층을 달래고, 한국 기업주들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능력도 의사도 없는 박근혜가 기업주들이나 제국주의자들과는 죽이 척척 맞는 것은 독재자 박정희에게서 물려받은 계급본능일 것이다. 그러니 노동계급이 대부분인 희생자들의 목숨을 자기 어깨나 허리 잠깐 아픈 것보다도 하찮게 여긴 것이다.

심지어 박근혜는 아비에게서 배운 공작정치 등 통치 기술을 유가족들에게 써 먹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이 자신의 안정적 통치에 방해된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고, 세월호 유가족들은 그래도 되는 존재로 봤기 때문일 것이다.

진실이 드러나 이윤 우선주의와 친제국주의 정책에 대중적 문제제기가 일어나는 것도 싫었을 것이다. 혹시라도 자신의 무책임하고 비밀스런 사생활이 드러나 위신이 떨어지는 것도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결국 진상규명 특별법을 반쪽으로 만들었고 그마저 ‘쓰레기 시행령’으로 다시 반토막 내 버렸다. 청와대(김기춘)와 국정원은 유가족을 ‘돈벌레’로 모욕하고, 세월호참사진상규명특별조사위원회를 ‘세금 도둑’으로 몰았다.(김기춘이 감사원 세월호 보고서 내용 변경에, 황교안과 우병우가 세월호 검찰 수사에 각각 압력을 넣었다는 의혹들이 최근 제기됐다.)

가진 게 변변찮아 자식이 유일한 희망이고 미래인 사람들이 자식을 잃은 비통함을 하소연할 기회도, 죽은 이유라도 알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도 꺾어 버리려 한 것이다.

그 일에 혁혁한 공을 세운 조대환을 자신의 마지막 민정수석으로 임명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만행들에 책임질 자가 박근혜 본인이라는 자백으로 볼 수밖에 없다.

비극의 상징물인 세월호가 사람들의 눈앞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악몽처럼 여겼을 것이다. 책임론이 다시 대두돼 원망과 분노가 다시 자신을 향할 것을 예감했을 것이다. 그러니 거듭된 인양 결정 지연과 인양 실패는 ‘연출된 무능’으로 볼 수밖에 없다.

정리하면, 세월호 참사는 이윤 우선주의의 야만과 냉혹함, 노동계급 천대의 극치를 보여 줬다.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체제와 부패한 우익 정권의 합작품이다.

체제의 사악함과 정권의 적폐가 집약된 이 사건을 보면, 박근혜 정부의 존재 자체를 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의 존재 자체를 적폐라고 말할 수 있다.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박근혜는 진작 쫓겨나야 했고 열 번이라도 탄핵을 당해야 마땅했다.

따라서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치적·도덕적 항의는 이윤 우선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를 함축하는 것이고, 노동계급적 정의의 실현을 요구하는 것이다.

수천만 노동자·민중도 같은 마음이었다는 것은 연인원 1천만 명이 참가한 정권 퇴진 운동에서 가장 지지를 받는 요구가 세월호 참사 문제 해결인 것을 봐도 알 수 있다.

그래서 책임자 처벌도, 진상 규명도, 세월호 인양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결국 그런 악행들의 대가로 박근혜가 쫓겨나기 직전으로 몰렸다. 다만, 이는 최소한의 정의다.

지금이라도 유가족과 운동의 요구는 즉각 실현돼야 하고, 박근혜 정권은 당장 물러나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희생자들에게 정의가 실현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즉각적인 정권 퇴진과 적폐 청산 요구는 세월호 참사 해결과 한 몸이다.

멈춘 시간 어른이 되고 싶었는데, 별이 돼 버린 아이들. ⓒ이미진

입력 2017-01-0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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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1000일 박근혜 퇴진 집회에서 감동을 준

세월호 생존 학생, 유가족 등 발언 모음

특별취재팀

 

△단원고 생존 학생들이 연단에 올라 발언을 하고 있다. ⓒ이미진

생존 학생 발언 전문 (2학년 1반 장애진)

저희는 세월호 생존 단원고 학생들입니다. 저희가 이곳에 서서 시민 여러분 앞에서 온전히 저희 입장을 말씀드리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간 저희에게 용기를 주시고 챙겨 주시고 생각해 주신 많은 시민들에게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사실 저희는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지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나라가 감추는 것이 워낙 많기 때문에 진상 규명을 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 참사의 책임자가 누군지 찾을 수 없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시민 여러분 덕에 이렇게 다시 한 번 제대로 된 진상 규명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같아 매우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저희는 구조된 것이 아닙니다. 저희 스스로 탈출했다고 생각합니다. 배가 기울고 한순간에 물이 들어와 머리 끝까지 물에 잠겨 공포에 떨고, 많은 친구들이 안에 있다고 구조해 달라고 직접 요구하기도 했으나, 그들은 저희 요구를 무시하고 지나쳤습니다. 하지만 제 친구들과 저희는 가만히 있으라 해서 가만히 있었습니다. 구하러 온다 해서 구하러 올 줄 알았습니다. 헬기가 해경이 왔다기에 역시 별 일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사랑하는 친구들과 함께할 수 없게 됐고 앞으로 평생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게 됐습니다. 저희가 무엇을 잘못한 걸까요? 저희가 잘못한 것이 있다면 세월호에서 살아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꺼내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저희가 살아 나온 것이 유가족들에게 너무 죄송하고, 죄를 지은 것만 같습니다.

처음에는 유가족들을 뵙는 것조차 쉽지 않았습니다. 고개조차 들 수 없었고 죄송하다는 말만 되뇌며 어떤 원망도 다 받아들일 각오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 ‘너희는 잘못이 없다, 힘을 내야 한다’며 오히려 응원하고 걱정도 해 주고 챙겨 주시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더 죄송했고, 지금도 너무나 죄송합니다.

어찌 우리가 그 속을 다 헤아릴 수 있을까요? 안부도 여쭙고 싶고 찾아 뵙고도 싶지만 용기가 나지 않아서, 혹시나 저를 보면 친구가 생각나서 더 속상하실까 봐 그러지 못한 것도 죄송합니다. 저희도 이렇게나 친구들이 보고 싶은데, 부모님들은 오죽할까요?

3년이나 지난 지금 아마 많은 분들이 ‘지금쯤이라면 그래도 무뎌지지 않았을까, 이제는 괜찮지 않을까’ 싶으실 겁니다. 단호히 말씀 드리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직도 친구들 페이스북에는 그리워하는 글들이 잔뜩 올라옵니다. 답장이 오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고, 꺼져 있을 것을 알면서도 받지 않을 것을 알면서도 괜히 전화를 해 봅니다. 친구들이 너무 보고 싶어, 사진과 동영상을 보며 밤을 새기도 하고 꿈에 나와 달라고 간절히 빌며 잠들기도 합니다.

때로는 꿈에 나와 주지 않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는 먼 곳에 있는 친구가 원망스러울 때도 있지만, 그 물 속에서 나만 살아 나온 것이, 지금 친구와 같이 있어 줄 수 없는 것이, 미안하고 속상할 때가 많습니다.

참사 당일 대통령이 나타나지 않았던 그 7시간. ‘대통령의 사생활이다, 그것까지 다 알아야 하느냐’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하지만 저희는 대통령의 사생활을 알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나타나지 않았던 그 7시간 동안 제대로 보고받고 제대로 지시해 줬더라면, 가만히 있으라는 말 대신 당장 나오라는 말만 해 줬더라면, 지금처럼 많은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을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은 제대로 지시하지 못했고, 따라서 제대로 보고 받았는가에 대한 의문이 들었고, 그러면 그 7시간 동안 무엇을 했기에 이렇게 큰 사고가 생겼는데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하고 제대로 지시하지 못했을지 조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가는 계속해서 숨기고 감추기에 급급합니다. 국민 모두가 더 이상 속지 않을 텐데, 국민 모두가 이제는 진실을 알고 있는 데도 말입니다.

사실 그동안 우리는 당사자이지만 용기가 없어서, 지난 날들처럼 비난받을 것이 두려워 숨어 있기만 했습니다. 이제는 저희도 용기를 내 보려 합니다. 나중에 친구들을 다시 만났을 때, 너희 보기 부끄럽지 않게 잘 살아 왔다고, 우리와 너희를 멀리 떨어뜨려 놓았던 사람들 다 찾아서 책임 묻고 제대로 죗값을 치르게 하고 왔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와 뜻을 함께해 주시는 많은 시민들, 가족들, 유가족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드리며 조속히 진실이 밝혀지길 소망합니다.

먼저 간 친구들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를 절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을께. 우리가 나중에 너희를 만나는 날이 올 때 우리를 잊지 말고, 열여덟 살 그 시절의 모습을 기억해 줬으면 좋겠어.’

△전명선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과 세월호 유가족들. ⓒ이미진

416 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 “찬호 아빠” 전명선

저희가 1천 일이 다 되도록, 참사로 희생된 고귀한 영혼들을 위로하겠다고 이렇게 길에 서 있는, 모든 것을 내주신 촛불 국민들의 은혜에 감사드린다.

1월 1일 박근혜의 기자 간담회를 보면서 분노를 금할 수 없었다. 기자들을 모아 놓고 처음 말한 것이 세월호 참사가 몇 년도에 났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탄핵소추안에 세월호 7시간과 생명권이 들어간 것은 대한민국 역사에 길이 남을 사안이다. 박근혜 정권은 국민들의 안전과 생명권을 강탈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대통령이란 자가 아직까지도 본인이 왜 탄핵당해야 하는지, 저렇게 뻔뻔스럽게 부인하고 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대한민국 국민의 이름으로 대통령에게 권한을 부여했던 것이다. 그 첫 번째 권한이 국민의 안전과 생명권을 지키는 것이었다. 그 첫 번째 항목조차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 박근혜 정권의 부도덕함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아직 헌재에서 탄핵소추안이 인용되지 않았다. 우리 유가족들은, 박근혜 정권 내에서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이 어렵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2016년 촛불 국민의 힘으로 탄핵 정국을 만들어 낸 것이라면, 2017년이야말로 이 땅의 주인이 누구인지, 민주주의가 바로 서고,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안전한 사회에서 [삶을] 보장받고, 돈과 권력이 아닌 인간의 존엄성이 중시되고 바로 서는 올바른 민주주의가 탄생하는 2017년이 되리라 믿는다. 우리 유가족들은 진상을 규명하고 더는 참사를 겪을 일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 때까지 실천해 나갈 것이다.

정의는 반드시 승리한다. 올바른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그 날, 2017년 여기 광장에 계시는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서, 안전이 보장되는 나라, 이 나라의 주인이 국민임이 만천하에 알려진 그런 세상, 그리고 국민의 생명권을 내몰았던 박근혜가 반드시 심판 받는 그 날 함께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416 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 “예은 아빠” 유경근

지난 10번의 집회와 달리 오늘은 설레임을 가지고 집회에 나왔다.

9명의 아이들[이 무대에 올랐다]. 솔직히 말씀 드리면 왜 내 아이는 저 가운데 없을까 그런 생각 때문에 쳐다보기조차 힘든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바로 세월호에서 부모들이 보지 못했던 내 아이들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그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마지막 순간을 평생 죽을 때까지 안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이었기 때문에, 그 아이들이 용기를 내어 이 자리에 함께 선다고 했을 때 두려웠지만 기뻤고, 슬펐지만 새로운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어려운 결정하고 나와준 이 아이들에게, 예은이와 수많은 우리 아이들의 체온을 함께 지니고 있는 그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고맙고 사랑한다는 인사를 전한다.

뜨거운 시민들의 마음을 모아 국민조사위원회를 출범했다. 국민조사위원회는 몇몇 학자와 전문가들이 만들고 조사하는 단체가 아니다. 이 자리에 계신 분들 하나하나가 조사원이고 연구원이 돼 달라. 국민 여러분들이 각자 계신 곳에서 자신이 가진 능력을 세월호 진실을 밝히는 데 조금씩이라도 보태 주시면, 국민의 힘으로 박근혜를 몰아냈듯 우리의 힘으로 세월호의 진실을 밝혀낼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지난 1천 일 함께 고통 받으며 고생해 주셔서 감사하다. 이제 새로운 1천 일이다. 이제 새로운 시작이다. 그 동안 잠겨 있던 문틈 사이로 한 줄기 빛이 새어 나왔다. 좌고우면하지 않고 그 빛줄기 길을 따라 앞으로 새로운 1천 일은 전진하고 또 전진하자.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 “준형 아빠” 장훈

416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분과장 “준형 아빠” 장훈 님 ⓒ이미진

1000일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러나 나에게 1000일은 1000번의 4월 16일이다. 팽목항에서 내 아들 준영이를 떠나 보내온 그 이후로 우리의 시계는 멈추었고, 우리의 달력은 넘어가지 않았다. 그러니 나에게 1000일은 1000번의 4월 16일이다.

우리의 시계가 다시 가고 달력이 넘어가려면 무엇이 필요하겠는가? 진상규명이다. 나는 내 아들 준영이를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알고 싶다. 왜 우리 아이들은 배 안에 갇혀 구조되지 못하고 결국 죽어야만 했는지 꼭 알아야겠다.

1000일 동안 박근혜와 이 정부는 거짓말만 했다. 왜 그런 끔찍한 참사가 일어난 거냐고 왜 구하지 않았냐고 묻는 우리의 입을 틀어 막고 진실을 은폐하고 온갖 패악질을 해 댔다. 1000일이 되도록 9명의 미수습자가 바닷속에 있다.”

오늘 이 1000일은 우리가 세월호 진상규명을 하기 위해 정부와 맞서 싸우며 견뎌온 1000일 이다. 앞으로의 1000일은 우리가 직접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향해 가는 1000일이 될 것이다.

국민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의 방관자이거나 참고인이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의 직접 피해자이고 증인이고 당사자이다. 정부는 세월호에 갇힌 304명을 구하지 않았다. 죽였다. 이 정부는 304명의 선량한 국민을 살해한 살인자다. 우리는 정부의 살인에 대해 직접 조사하고 밝혀내서 처벌해야겠다.

정부는 655만 명이 넘는 국민 지지로 만들어진 특조위를 목졸라서 질식시키고 말려 죽였다. 하지만 특조위가 없어졌다고 진상규명이 끝난 것이 아니다. 새로운 특별법,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는 강력한 특조위가 만들어질 떄까지, 그 이후에도 우리는 멈춤없이 전진할 것이다.”

416 가족협의회 인양분과장 “동수 아빠” 정성욱 (요약)

해수부는 작년 말까지 세월호를 인양하겠다고 했지만 아직도 인양하지 않았다. 3백4명의 억울한 죽음을 낳은 박근혜는 아직도 청와대에 있다. 박근혜는 살인자다.

아이들이 억울하게 죽어가는 동안 박근혜가 관저에서 무엇을 했는지 아는 사람이 없다. 세월호를 반드시 인양해서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한다.

특조위가 강력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고 부활해야 한다.

정부와 해수부는 세월호가 올라오면 진상을 규명할 수 없도록 세월호를 절단하려 한다. 그러지 못 하도록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국민조사위가 발족했다. 활동하고 조사할 수 있도록 같이 힘 모아 달라

2학년 2반 허다윤(미수습자) 아버님 허흥환

△세월호 미수습자 다윤 학생의 아버지, 허흥환 님 ⓒ이미진

방금 전에 팽목항에서 달려온 다윤이 아빠 허흥환이다.

우리는 2014년 4월 16일, 3백4명이 무참히 바닷속으로 생매장되는 그런 사건을 봤다.

아직 팽목항에는 가족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이 있다. 가족을 찾아 달라고 울부짖고 있다. 아직 세월호에는 9명의 사람이, 생명이 있다. 조은아, 허다윤, 박영일, 남현철, 양승진 선생님, 고창석 선생님, 권혁규 아드님, 권재근 씨, 이영순 님. 아직 9명이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그들을 찾기 위해서는 세월호 인양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가 달려온 이유는 여러분들이 세월호 인양에 힘써 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왔다. 지금은 세월호에 딱히 어떤 일을 할 수 없지만, 다시 3월이 되어, 이제 새로이 선체 인양을 시작하는 데에 국민의 힘이 필요하다. 여러분들의 함성이 필요하다.

여러분, 도와 달라, 꼭 9명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 달라. 국민이 약속했던, 마지막 한 명까지 가족의 품으로 돌려주겠다는 그 약속, 반드시, 꼭 지켜 달라.

저는 다시 팽목으로 달려가야 합니다. 왜? 갈 수밖에 없습니다. 거기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이 잊지 않겠다, 기억하겠다 … 세월호 인양부터 해 주십시오. 그리고 기억하고 잊지 말아 주십시오.

저희들의 한 맺힌 가슴 풀어 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오늘도 승리합시다!

2학년 8반 지상준 어머님

‘반갑습니다’ 하는 인사가 처음이다. 늘 ‘감사하다’가 먼저 나왔다. 오늘도 반갑다고 인사 드렸지만 감사 드리고 또 감사 드린다.

세월호 7시간 진실 밝혀야 한다. 당연하다. 그러나 4월 17일, 18일 … 9백98일 동안 진상이 규명되지 못하도록 박근혜가 한 책임들도 다 밝혀야 한다. 아이들 3주기가 오기 전까지 밝혀낼 수 있도록 힘을 보태 달라.

2학년 9반 “세희 아빠” 임종호

박근혜 대통령, 최순실 비선실세의 악행들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함께해 주신 국민들 덕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에 앞서 먼저 간 아이들이 간절히 바랐기 때문에 이런 시국이 왔다고 생각한다. 이 자리 계신 여러분들이 진실이 밝혀질 때까지 함께해 주실 거라 믿는다.

아까 생존 학생들 보면서 눈물이 많이 나는데, 불러도 외쳐 봐도 돌아오지 않는 우리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났다. 밝혀야 할 목표가 있기 때문에 주저앉지 않겠다. 끝까지 나아가겠다. 이승에서 볼 수 없는 우리 아이들, 죽어서라도 ‘아빠 엄마가 너희들의 억울한 죽음을 이렇게 밝혔다’고 안아줄 그 날이 올 거라 의심치 않는다.

2학년 8반 희찬 아버님

여러분은 기적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가 함께 만든 기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이때까지 세월호 관련 서명에 참가해 준 국민들이 국민이 1천만 명이 넘고, 세월호 리본이 1천만 개가 넘게 배포됐다고 한다. 이 자리를 빌어 여러분께 감사 드린다. 그리고 이 광장에 촛불을 들고 힘을 보여 준 국민들이 지난해 연인원 1천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그 힘으로 민심도 바꾸고 정치도 바꾸고 탄핵도 이뤄낸 것 아닌가? 이것이 우리가 함께 이룬 기적이 아니고 무엇이겠나? 그러므로 기적이라는 것은 우연히 일어나는 것보다 우리 국민이 힘을 합쳐 함께 이룰 때 최고의 기적을 만들 수 있다고 본다. 알량한 저들은 국민에게 고통과 참사를 줬지만 우리 위대한 국민들은 힘을 모아 2017년에도 큰 기적을 만들어 갈 것이다.

올해에는 더욱 간절하게 여러분과 함께 또다른 기적을 만들어 가고 싶다.

우선 올바른 세월호 인양으로 미수습자 가족을 찾고 감춰 있는 진실을 완전히 드러내는 기적을 만들고 싶다.

또, 신속 처리 법안으로 상정돼 있는 특별법을 꼭 통과시켜 진상 규명을 위한 특조위를 꼭 출범시키자. 이것은 국민이 참사를 만든 국가를 상대로 진실을 밝혀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이며 안전 사회로 갈 수 있는 길이다. 또한 특조위가 출범할 때까지 오늘 출범하는 국민조사위가 연걸고리 구실을 잘 할 수 있도록 힘찬 응원과 뜨거운 관심과 참여와 부탁 드린다.

마지막으로, 생명을 경시한 박근혜와 부역자들, 부패한 기업들이 마땅한 처벌을 받고 하루라도 빨리 대통령을 우리 손으로 뽑는 기적을 2017년에 만들어 가자.

부산 집회에서 발언하신 세월호 유가족 "동혁 엄마" 김성실

자식을 잃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소리치며 외치고 다녔습니다. 세월호 그 큰 배가 수면 아래로 어떻게 가라앉을 수 있었을까? 복원력 상실, 과적, 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저희는 사고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왜 한 사람의 어른도, 왜 거기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하지 않았는지], 왜 구조하지 않[았는지], 빵 점짜리 어른이었는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의 자식을 왜 뺏어 갔는지 알려달라고 했는데, 우리에게 캡사이신을 쏘았습니다. [유가족들은] 그 경찰 병력 앞에서 울고불고 쓰러지고 했습니다.

우리가 쓰러졌을 때, 몇몇 진실을 알려는 언론사 외에는 우리 이야기를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죽은 자식 곱게 보내라, 돈 때문에 그러는 거지, 종북 좌파지, 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아닙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진실은 밝혀졌고, 나라는 썩어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부산 시민 여러분, 저희는 여러분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왜냐하면, 그 수많은 거절과 거부 속에서도 저희는 버텼으니까요. 이제 저희가 갈 일은 여러분들과 함께 갈 것입니다. 그리고 분명히, 세월호 뿐 아니라, 이 나라를 도탄에 빠뜨린 모든 이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탄핵 뿐 아니라, 이들이 감옥에 가는 것을 보고 싶고 이들이 처벌받는 것들도 보고 싶습니다.

절대 안 내려오면 끌어 내려야죠. 그것밖에 길이 없습니다. 국민의 힘으로, 우리들은 할 수 있는 데까지 할 겁니다. 우리 [유가족들은], 죽을 때 귀한 죽음으로 가자고 부모들끼리 이야기합니다. 우리 애들한테 이 말을 해주자. 너희들의 엄마 아빠가 해 냈다고. 그렇게 해서 해 냈다고. 세월호 이후는 분명히 바뀌었다고. 그렇게 이야기 할 수 있도록 많이 도와 주시기 바랍니다.

 

광장의 목소리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

이 나라에는 돈만 있으면 사람 목숨은 상관 없다는 통념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것을 거부하고 알아야겠다고, 침몰 현장에서 왜 국가는 사라지고 구조하지 않았는지 알아야겠다고 했을 때, 참사 비극을 겪은 유가족들을 국가는 지독하게 짓밟았다. 이제 정체가 하나하나 드러나고 있다. 안산에서 광화문, 동거차도 팽목항까지 진실을 위해 함께한 시민들이 있었다. 비가 오고 눈보라 몰아치는 날에도 쌍욕을 들어가며 노란 리본 만들고 나눠 주고 피켓 들던 사람들 있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 2009년 용산에서 국가가 사람들을 죽일 때 우리는 깃발에 ‘여기 사람이 있다’고 적었다. 쌍용차에서 노동자들이 옥쇄파업을 벌일 때 ‘함께 살자’고 적었다. 백남기 농민이 돌아가셨을 때 ‘사람의 길을 가자’고 적었다. 돈보다 더 소중한 생명 존중 인간 존엄의 깃발을 유가족과 함께 우리가 들었다.

우리의 행진으로 민주주의의 광장이 열리고 있다. 우리가 옳았고 우리가 이기고 있다. 우리가 세상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소수의 특권층만 배불리 먹는 세상이 아니라, 돈 몇 푼 던져주면 받아 먹는 개 돼지가 아니라, 스스로 존엄이 있는 국민으로 우뚝 서고 있다. 격려의 박수를 보내자.


국민조사위원회 상임연구위원 박영대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은 광범한 국민들의 참여가 있어야만 가능하며,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은 동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의 의무이기도 하다.

용산참사 후 8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진상이 규명되지 않았다. 오히려 피해자가 가해자라는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갔다. 법원에서 검찰에게 수사 기록 3천 페이지를 공개하라고 판결을 내렸는데도 검찰은 공개하지 않았다. 용산참사를 총지휘했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 김석기는 국회의원 배지를 달았다. 한국에서 진상 규명은 참 어렵다. 그러하기에 국민적 참여 관심 지지가 없으면 진상 규명은 불가능하다.


416대학생연대 대표 장은하

세월호 참사를 단순히 슬픔으로 묻을 수 있겠는가? 그럴 수 없다. 차가운 바닷속에 잠들어 있는 세월호의 진실을 인양해야 한다. 9명의 미수습자가 사랑하는 가족 품으로 돌아와야 한다. 강력한 특별법을 제정해 특조위를 재건하고 선체 조사와 인양, 진상 규명의 주체가 세월호 특조위가 되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과 안전한 사회 건설은 416 세대인 우리의 일이다. 세월호 진상이 규명되는 그날까지 학내에서, 또 거리에서 함께하겠다.


민주노총 김종인 수석 부위원장

박근혜는 국민이 행복한 나라를 만들겠다고 했지만 박근혜에게 국민은 최순실, 문고리 3인방, 김기춘, 우병우, 재벌 뿐이었다. 박근혜는 반성은커녕 여전히 권력을 유지하려 꼼수 부리고 있다.

박근혜뿐 아니라 "10적"을 처벌해야 한다. 고위공직자와 장차관, 새누리당, 재벌들, 일제 잔재, 미국놈들, 보수언론 들이다. 10적과 적폐를 청산하자.


전국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 지회장 이상목

노동자들이 살아가기 어려운 나라다. 노동자들이 알몸 수색당하고 강제 추방될 때도 가만히 있는 외교부, 노동자들이 살려달라고 하는데 ‘아직 해고되지 않았으니 다시 오라’ 하는 노동부 …

‘박근혜 정권 퇴진’ 조끼를 입은 지 1년이 지났다. 지금 전국이 박근혜 퇴진과 구속을 외치고 있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은 거기서 만족하면 안 된다 생각한다. 박근혜의 부역자들이 저기 저 정부청사에 넘쳐난다. 그들을 온전하게 처벌해야 민중과 노동자들이 잘 사는 나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때까지 촛불이 광장을 채워야 한다.

새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국민들이, 노동자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정치인, 관피아들을 모두 몰아내는 그 날이 올 때까지 함께 투쟁하면 좋겠다.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투쟁하겠다.


유성기업 노동자

현대차 정몽구 삼성 이재용은 자신의 부를 자기 자손들에게 영원히 물려줄 수 있도록 편법과 불법을 저질렀다. 비정규직 불법으로 부려먹고 여성노동자들이 백혈병으로 죽어가도 처벌받지 않았다. 이게 다 뇌물 준 대가 아니겠나. 이게 바로 한국사회의 적폐다.

우리는 서로를 지키기 위해 모였다. 누구도 나를 지켜주지 않기 때문에 세월호를 건져주지 않았기 때문에 현장에서 노조파괴로 죽어가는, 백혈병으로 쓰러져가는 사람들을 누구도 지켜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지키려고 이 자리에 모인 것이다.

노조 파괴에 맞서 싸우다 돌아가신 한광호 열사를 기억해 달라.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촛불의 힘을 믿고 제대로 된 싸움을 벌여 나갈 것이다.


최도은 (노동가수, 이진영 씨 부인)

12월 28일 새벽 6시에 보안수사대가 집에 찾아와 우리 남편을 잡아 가고, 집에 있는 것을 다 털어갔다. 탄핵 처리 후 다 이긴 줄 알았는데, 국가보안법을 휘두르는 황교안이 권력을 잡았다고 한다. 대체 누가 그 권력을 줬나? 우리 남편이 마르크스, 레닌, 트로츠키, 책 읽고 팔았다고 잡아갔는데 우리 남편이 무슨 해를 끼쳤나? 1천6백만 노동자들과 연금 내는 4천만 국민들이 모은 연금을 다 가져간 이재용이 우리 남편보다 더 해를 끼쳤다.

검사는 우리 남편이 가진 책이 국가보안법 위반 도서라 한다. 그런데 그 책들이 《자본론》과, 세계적 역사학자 E H 카가 쓴 《러시아혁명사》 같은 책들이다. 《러시아혁명사》는 지금 민주당 국회의원 하는 신계륜이 번역한 책인데, 그런 책을 이적[표현물]이라고 한다. 이적으로 치면 군대도 안 다녀온 황교안이 이적 아닌가?

남편이 구속되고 3일 밤을 샜다. 이렇게 해도 힘든데, 이 나라에는 노동자 권리를 위해 싸우다 5년형을 받은 민주노총 위원장 한상균도 있다. 아주 말이 안 된다. 끝까지 싸우자. 촛불의 힘으로 국가보안법 철폐하자.


이진영-최도은의 아들: 황교안 아저씨, 저희 아빠 잡아가지 말고 박근혜 잡아 가세요.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회장 김순애

한겨울인 지금 농촌은 다가오는 봄을 준비하며, 언 땅을 뚫고 솟아오를 좋은 씨앗을 고른다. 촛불도 꼭 그렇다. 얼어붙은 시대를 이기는 힘을 만들어 내고 있다. 꺼지지 않고 타오르는 촛불의 힘은 더욱 강해지고 더욱 뜨거워졌다. 도시와 농촌을 가리지 않고 전국 모든 국민들이 강하게 외친다.

박근혜는 대통령으로서 자격이 없고, 박근혜 정부는 국민을 죽이는 정부다. 박근혜는 백남기 농민을 향해 물대포를 쏴 죽였다. 그래 놓고 책임자 처벌은커녕 수사도 하지 않는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모든 문제의 정점에 박근혜가 있다.

우리는 박근혜뿐 아니라 모든 범법자를 처벌해야 한다. 권한대행 황교안은 대통령 행세를 하며 없어져야 할 나쁜 정책을 앞장서서 밀어붙이고 있다. 우리 촛불은 황교안이 당장 물러나라 명령한다.

천만의 촛불은 역사다. 새로운 사회를 향한 변화의 씨앗이다. 우리가 주인이다. 주인 행세를 하며 온갖 권력을 행사하던 자들은 커 보였지만 우리가 다수이다. 우리가 이길 것이다. 진실과 정의가 이긴다는 것을 꼭 보여 주자. 우리들의 요구가 실현될 때까지 우리가 원하는 세상이 만들어질 때까지 멈추지 말고 가자.


전교조 교사 조수진 (전문)

2014년 4월 16일은 우리 교사들에게 충격과 슬픔이었다. 매일같이 만나는 학생들 수백 명이 어느 봄날 수학여행 가는 길에 한꺼번에 바다 밑으로 수장됐다. 그리고 우리가 함께 수업을 준비하고 고민을 나누던 동료 교사들도 창백한 시신이 되어 돌아왔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은 1천 일 전 4월 16일 그 날을 차마 잊지 못한다.  바로 우리 자신의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근혜는 새해 벽두부터 뭐라고 했나? 세월호 참사가 작년인지 재작년인지조차 모르고, 그 많은 사람을 죽여 놓고도 제 할 일을 다 했다고 가증스런 말을 늘어놓았다.

선실 벽과 유리창을 할퀴고 두드리다 부러지고 피멍이 들고 부러진 아이들이 절규하던 시간에, 물이 차오던 배 안에서 3백4명이 죽음의 공포와 싸우고 있었을 때 박근혜 정부가 했던 일은 무엇이었나? 책임 회피, 언론 통제, 오보와 유언비어로 몰아 진실을 가로막기, 우리의 입과 귀와 눈을 틀어막기였다!

그래서 우리 교사들은 교실에서 학생들의 눈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었다. 진실과 정의를 가르치고 모범을 보여야 할 교사로서의 양심 때문이다. 2014년 5월 청와대 게시판에 오른 박근혜 정권 퇴진 교사 선언과 그 이후 전교조 시국선언은 그렇게 시작됐다. 몇 차례에 걸쳐 최대 1만 7천 명이 세월호 참사에 대한 정권의 책임을 물었다.

구조에 늑장 부렸던 정권은 국가공무원법을 위반했다며 교사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20여 명의 교사들에게 징역 8개월부터 1년 6개월까지, 도합 21년 6개월의 실형을 구형했다.

법원은 벌금형을 선고했다. 그런데 진실과 정의를 바란 교사들이 왜 7천4백만 원이나 하는 돈을 저 무능하고 무책임한 박근혜 정권에 갖다 바쳐야 하나?

지금까지 1천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한 이 정권 퇴진 운동에서 가장 지지받는 요구가 무엇인가? 바로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이다. 그래서 탄핵 사유 첫 번째로 들어 있다. 교사들의 행동은 자랑스럽고 완전히 정당하다. 그런데 다수가 동의하는 것을 몇 년 앞서 물었다는 이유로 교사들을 처벌하겠다고 한다. 심지어 검찰 수사와 벌금형을 확대하면서 더 많은 교사들을 탄압하려 한다.

그런데 진짜 처벌 받아야 할 사람은 누구인가? 법정에서 감옥에서 죗값을 똑똑히 치러야 할 진정한 범죄자는 누구인가? 애진작에, 수천 번 수만 번 당장에 탄핵돼야 마땅할 범죄자 박근혜, 당장 구속돼야 하는 것 아닌가!

법이 교사들의 행동을 부정하고 단죄하려 하지만, 또다시 그런 상황이 온다면 지금과 똑같이 진실과 정의를 위해 행동할 것이다. 우리 교사들은 정권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법정에서도 당당히 싸울 것이다. 우리에 대한 탄압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탄압이자, 박근혜 퇴진 운동에 대한 탄압이고, 여기 계신 촛불에 대한 탄압이기 때문이다!

징계, 탄압이 우리를 막을 수 없다. 박근혜와 한통속인 황교안을 끌어내리고 적폐를 청산하는 길에 끝까지 함께 하겠다. 진실을 침몰시키려는 자 우리가 반드시 침몰시키자!

“박근혜는 내려오고 세월호는 올라와라!”


노동자연대 회원, 이화여대 학생 김승주 (전문)

안산 합동분향소에 있는 한 어머니의 편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엄마는 모든 걸 잘못한 죄인이다. 몇 푼 더 벌어 보겠다고 일하느라 마지막 전화를 못 받아 미안해. 가진 게 없는 이 집에 너같이 예쁜 애를 태어나게 해서 미안해. 엄마가 지옥 갈게, 딸은 천국에 가.

희생된 단원고 학생들의 부모님들은 이렇게 대부분 평범한 노동자들이었습니다. 가진 재산이라고는, 의지할 데라고는 일평생 서로 아껴가며 단란하게 꾸려온 가족이 전부인, 그런 평범한 우리네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날을 어떻게 잊겠습니까 떠올릴 수록 새로워지기만 하는 그 날의 충격과 분노와 눈물이 어떻게 지겨울 수 있겠습니까

박근혜는 1월 1일 참사 당일 현장에서 119랑 해경이 다 알아서 어련히 잘하지 않았겠냐고 했습니다.

하지만 현장에서 해경이 한 일이 뭡니까? 7천 톤 급 세월호 침몰 사고에 13명이 타고 있던 작은 123정을 보냈고 123정이 세월호에 접촉했던 시간은 딱 9분밖에 안됐습니다

해경의 진정한 관심사는 생명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대국민 조작 은폐 쇼를 벌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가족들은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하루하루 피폐해 졌습니다

그런데 이런 핵심 책임자들 중 123정장 한 명 말고는 단 한 명도 처벌 안 받았고, 여전히 공직에 있고 줄줄이 승진을 거듭했습니다

목포해경서장 김문홍, '전원 구조’ 거짓말의 시초인 해경 본청 황영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었던 김장수 등 일일이 다 말할 수가 없습니다.

이 살인자들 다 누가 승진시켜 준 겁니까? 해경이 알아서 어련히 잘했겠냐는 박근혜가 승진시켜준 거 아닙니까?

청해진 해운으로부터 뇌물 받고 세월호 도입 허가해 준 인천항만청 과장은 징역 5년을 받았다가 대법원에서 무죄로 뒤집혔습니다.

이거 누가 뒤에 있었던 겁니까? 세월호 수사에 외압 넣고 자기 맘에 안 드는 재판 하면 다 좌천시켜 버린 당시 법무부 장관 황교안 아닙니까?

세월호 참사에는 박근혜 정권의 적폐가 다 집약돼 있습니다. 세월호 참사만으로도 박근혜는 이미 쫓겨나야 했고, 열 번이라도 탄핵을 당해야 했고, 살인죄나 다름없는 죗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어제는 가습기 살균제 참사 가해자 옥시 대표가 무죄를 받았습니다. 참사는 과거가 아닙니다. 박근혜, 그리고 황교안이 계속하고 있는 규제 완화, 민영화 등 친기업 정책을 멈춰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넉넉치 못해서 값싼 배를 태워야 했는데, 돈도 실력이니 능력 없으면 부모를 원망하라던 정유라가 뻔뻔하게 잘 살던 그런 더러운 사회를 멈춰야 합니다.

지난 천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후퇴 없이 포기 없이 싸워오신 유가족 분들이 계셨기에 우리는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지배자들은 탄압했지만 우리는 싸웠고 다시 싸우면서 그렇게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끝내 광화문 세월호 광장과 분향소가 촛불로 눈부시게 밝혀지는 날을 만나게 됐습니다

우리 지금처럼 앞으로 나아갑시다 세월호 304명, 그 뿐만 아니라 백남기 농민, 유성 한광호 열사, 가습기 살균제 희생자, 구의역 스크린도어 사고 희생자들 모두 앞에 부끄럽지 않도록, 끝을 볼 때까지 제대로 싸웁시다.

입력 2017-01-07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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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민의 ‘세월호법’, 개선됐지만 아쉬움도 있다

김지윤

지난해 11월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박근혜 퇴진 요구와 함께 기소권과 수사권이 보장된 진상 규명 기구를 다시 만들어 국회의장이 직권 상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세월호 인양이 빠르면 올해 4월에 이뤄질 수도 있는 만큼, 선체 조사를 할 권위 있는 기구도 필요하다. 특히 세월호 운동이 국가를 상대로 싸우는 만큼 강력한 권한을 가진 기구를 요구하는 것은 완전히 정당하다.

2015년에 출범한 특조위는 정부의 방해로 번번이 난관에 봉착했다.

2014년 11월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유가족들과 6백만 명의 서명을 무시하고 극히 제한적인 조사권만 부여된 특별조사위원회만 허용하는 반쪽짜리 특별법을 통과시켰다. 이어서 정부 통제를 강화하는 쓰레기 시행령과 예산 지급 볼모 작전으로 특조위에 굴복을 강요했다.

△수사권·기소권이 있어야 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다. ⓒ사진 이미진

특조위는 2015년 9월에야 예산과 인력 배정이 완료돼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조사도 녹록하지 않았다. 해수부는 특조위의 인양 현장 실지 조사를 거절했다. 해경이 자료 제출을 거부해 특조위원들이 농성을 벌이기도 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2015년 1월 1일을 특조위 활동 시작일이라고 우겨서 2016년 6월 30일로 조사 활동을 종료할 것을 일방적으로 선언했다.

유가족들이 활동 기한 보장을 위한 법 개정 서명 운동에 나섰지만 여소야대 상황에서도 새누리당의 완강한 반대와 민주당의 우물쭈물한 태도 속에 결국 개정안은 통과되지 않았다. 특조위가 국회에 특검 요청안을 제출했지만 본회의에서 다뤄지지조차 않았다.

1기 특조위의 뼈 아픈 경험은 운동의 원래 요구가 완전히 정당했을 보여 준다. 주로 제도 정치권(주로 민주당)이 수용할 것인가를 기준으로 ‘현실성’을 따져 운동의 요구를 삭감하는 실용주의가 옳지도 효과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 독립적인 원칙과 요구로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는 교훈도 남겼다.

아쉬움

지난해 12월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의원(더민주당)은 세월호 참사와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함께 다루는 ‘사회적 참사의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 법안’을 대표 발의하고, 국회 환노위는 이 법안은 신속처리법안으로 지정했다.

이 법안은 2014년 통과된 누더기 특별법의 문제점을 보완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위원장의 지위를 독립적 예산 배정이 가능한 중앙관서의 장으로 정했다. 시행령으로 조사 기구를 흔들지 못하도록 “조직 및 운영에 필요한 사항은 위원회의 규칙으로 정한다”는 조항을 신설했다. 상설특검법에 따라 특검 임명을 국회에 요청할 수 있고, 요청 횟수 제한 없이 국회가 반드시 이 요청을 다루도록 했다.

특조위에 특검 후보 추천권을 부여했다. 피의자·증인이나 참고인 조사에 한해 조사관이 사법경찰 권한을 갖도록 했다. 이는 기존 법에는 없던 내용이다. 조사 기간을 2년으로 늘리고 필요시 1년 연장이 가능하도록 한 것, 선체가 육지에 거치된 뒤에는 기존 조사 기간과 무관하게 8개월 동안 조사 활동을 보장하도록 한 것도 1기 특조위 때보다 나아진 내용이다.

그러나 이번 법안도 2014년 입법 청원된 법안의 요구에는 미치지 못한다.

2014년 변협의 협조 속에 만들어진 법안은 진상 규명 기구에 “독립적인 검사의 지위 및 권한”을 부여하는 등 독립적 진상 규명 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하는 것을 골자로 했다.

기소는 처벌과 연결되기 때문에 박근혜는 이를 한사코 거부했다. 박근혜는 당시 특별법이 “헌법의 근간을 흔든다”며 직접 나서서 공격했다. 그런데 민주당도 기소권은 방어하지 않고 수사권만을 요구했다.(이에 대해 운동 내 온건파 리더들이 침묵한 것은 부적절했다.)

그러나 조사위 조사관에게 공무원 신분을 보장하면서 수사권 등을 부여하는 것은 법체계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조사 단계에서 정부 기관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는 등 문제가 발생하면 특별기구가 강제 수사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번 법안은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검찰총장에게 수사를 요청하고 고발할 수 있도록 했다. 이는 결국 검찰이 영장 신청 등을 이유로 시간 끌기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

참사의 진상이 부패한 관료나 기업주들과 실타래처럼 얽혀 있으니, 수사 대상과 수사 기간을 제한한 특검은 특별조사위원회 자체가 검사 권한을 갖는 것보다 제약이 많을 것이다.

박근혜 정권 퇴진 운동 속에서 세월호 운동은 전폭적 지지를 받고 있다. 지난 운동의 경험을 발판 삼아 원칙 있게 싸운다면 진실 규명과 책임자 처벌 요구도 실현될 수 있다.

입력 2017-01-06 ⓒ노동자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