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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4·24 총파업을 돌아보며 내다봐야 할 점들

최일붕

지난해 연말 민주노총에 좌파 지도부가 새로 등장했다. 10여 년 만이다. 경제 상태가 매우 안 좋을 때 좌파 지도자가 노동조합 운동의 좌파를 이끌게 된 것이다. 심각한 경기 침체를 예시하자면 첫째, 대기업들이 인적 구조조정(감원)을 하고 있었다.

둘째, 실업률이 매우 높다. 특히 청년 실업은 ‘IMF 공황’기였던 1999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셋째, 복지가 축소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긴축이 시작됐다. 그 한 표현이 바로 공무원연금 공격이다. 상하수도에 민간 자본을 도입해 사실상 민영화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바로 긴축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가 긴축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재정 불건전성’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특권’을 누려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지속으로 기업들로부터 세금이 잘 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3년 연속 세수 부족 사태가 진행돼 왔다. 지난해의 경우 조세 수입은 무려 10조 9천억 원이 부족했다.

이윤율 회복을 위한 정부와 기업주들의 노동자 공격이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편이 대표적이다. 민주노총 4·24 총파업의 핵심 쟁점도 사실상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구조 개편이었다.

이런 경제 상황과 공격은 노동계급에 상당히 위협적이고 노동계급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낸다. 경제 위기 심화 전에 노동자 투쟁이 고양되고 잘 풀렸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이 더 자신 있게 대처해 오히려 노동자 투쟁 수위가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들의 자신감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이다.(물론 자신감이 붕괴된 운동 침체기도 아니다.)

그래서 4·24 총파업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3분의 1 정도가 참가했다. 연가파업, 4시간짜리 파업, 또 소위 ‘간부파업’을 포함해서 말이다.(사실, 노조 ‘간부’는 상당수가 생산 현장에서 생산수단을 가동하지 않으므로 ‘간부파업’이라는 것은 사실상 형용모순이다. 이것은 노조 관료들의 용어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어중간했던 4·24 민주노총 총파업 당시 서울광장에 모인 노동자들. ⓒ이미진

조합원의 3분의 1이 참가한 경고성 하루(또는 단시간) 파업은 사실 별것 아니다. 자본가들의 신문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느 자본가 신문도 민주노총 파업 얘기를 간단하게 언급한 것 말고는 ‘야 이거 큰일났다. 우리 이윤 왕창 날아가게 생겼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곳은 없었다. 그만큼 파업이 별로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4·24 파업은 민주노총 안에서 은근한 보이콧과 비협조에 직면했다. 중앙파 관료들과 국민파 관료들이 대부분 거의 협조하지 않았다. 전국회의 계열(NL 계열)과 좌파 계열만이 다소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보면 그래도 27만 명이 파업에 참가했으니 이럭저럭 성공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요컨대 4·24 ‘총파업’은 어중간했던(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내부의 정치적 조건에 비춰 보면 이럭저럭 선방했다고 할 수 있는 반면, 현재 지배자들의 공격에 맞서 요구되는 투쟁 수위와 진정으로 필요한 이윤 파괴력에 비하면 별것 아닌 형식적 파업이었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놀라지도 않았고, 파업이 끝나자마자 오히려 반격을 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공무원노조와 철도노조, 기아차노조 등의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합의안을 만들어 와 조합원들에게 강요하는 사태를 목도했다.

경제 위기 지속에 동반하고 있는 정치 위기

1월 하순경 박근혜의 지지율은 29퍼센트로 취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박근혜 재임 2년 동안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물었을 때도 부정적 평가가 63퍼센트로 취임 후 최고 수준이었다.

게다가 성완종 게이트가 있었다. 박근혜 대선자금까지 문제 된 대형 부패 추문이었다. 전부터 <노동자 연대>는 이 정권이 군사독재 정권 시대부터,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시대 친일파로부터 비롯한 극도로 썩어빠진 자들이므로 부패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임기 첫해에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한 항의 운동이 일어난 것에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에도 주로 부패 문제가 연관돼 있었다.

그런데 성완종 게이트에는 새정치연합도 연루돼 있었다. 사람들은 1990년대부터 민주당의 부패 추문을 봐 왔는데, 더욱 노골적인 경우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보면, 이제 대중이 민주당(새정치연합)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상황에서 또 하나 살펴볼 측면은 우려한 대로 동아시아 긴장이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의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가 미국은 이미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지금까지 지난 70년 동안 아시아에서 일본을 한국보다 중시해 왔다고 지적했는데, 이 점이 이번에 매우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위선적으로 해 오던 미사여구마저 벗어던지고 이제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까지 노골적으로 편들면서 중국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또, 이를 위해 한국한테 일본과 동맹을 하라고 등을 떠밀며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서 남한의 지배계급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박근혜 정부는 매우 분명하게 미국의 조치들을 지지하지만, 지배계급은 중국과의 관계도 있기 때문에 그냥 단순히 친미 입장만 노골적으로 취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와 남한 지배계급의 입장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박근혜도 때때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다.

지금까지 간단히 요약한 경제적·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새정치연합 왼편의 포퓰리스트들의 지지가 올라갈 법하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새정치연합은 중도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이란 국민 가운데 반동적인 부분(독재 정권 잔당, 재벌, 공안 세력과 우익 등과 같은 집단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계급을 가로질러 연대(소위 말하는 ‘사회적 연대’의 의미)하자는 운동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강력하지 못하니까 포퓰리즘이 지지를 많이 얻는 것이다.

새정치연합도 부패에 연루돼 있고 썩어빠졌기 때문에 정의당 같은 정당으로 대중의 관심이 옮겨갈 법한 상황이다. 물론 진보당도 대표적인 포퓰리즘 세력이다.(진보당은 강제로 해체됐지만 그 세력은 존재한다.)

이런 포퓰리즘 득세의 사례를 들어 보면 첫째, 최저임금 문제다. 당연히 <노동자 연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지지한다. 좌파들도 모두 지지한다. 그런데 지지의 방식이 다르다. 적잖은 민주노총 좌파들이 최저임금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서 제기하는 것은 포퓰리즘적이다. 왜 그런가?

민주노총은 주로 정규직 노동자들로 이뤄진 조직이고,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최저임금을 받을 만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파업 요구 중 최저임금을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다면 파업이 잘 안 될 것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현 정세에서 파업할 역량은 없는 듯하다. 자기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생활조건보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등 더 열악한 처지를 배려한다면서 국민적 호평을 받고 그래서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민중적 또는 ‘대중적popular’) 지지를 받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적이다.

게다가 박근혜와 청와대, 새누리당이 모두 최저임금 인상을 언급했고 무엇보다 새정치연합이 의욕을 가지고 달려들었다. 지배계급의 일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는 것에 크게 영감을 받아 개혁주의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 제기했다. 이는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으로 단결하자는 것이다. 물론 재벌들의 반대에 가로막히긴 했다.

올해 초 민주노총의 일부 상근간부들은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 원을 부각시키자 순식간에 시민·사회단체 1백 몇십 곳이 지지하더라” 하고 뿌듯해 하며 말했다. 이것은 포퓰리즘적 사고이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투쟁을 전투적으로 벌이면서 다른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고무하는 것이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하는 것이다. 2013년 12월의 철도 파업이 그런 단초를 제공하는 듯도 했지만,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그냥 암시로 끝났을 뿐이다.

포퓰리즘의 둘째 사례는 국민연금·공무원연금 연계론이다. 공무원연금을 좀 깎아서 국민연금을 올리자는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투쟁에 나섰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의 모순이다. 이런 일을 보면 좀 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니, 공무원연금 깎아서 국민연금 올리자는 사람들이 왜 공무원연금 깎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에 나서? 무슨 속내일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고 모순된 게 바로 개혁주의다.) 이런 사람들의 정치적 지향은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 이것도 계급을 초월해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전략’이다.

셋째 사례는 민주노총이 ‘성완종 게이트’ 항의를 회피한 것이다. 과거에 민주당은 부패 추문에 크게 연루되지 않았으므로 민주노총 지도부도 민주당과 제휴해 정부·여당을 공격했었다. 그런데 민주당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국가 안에 똬리를 틀었고 그 안에서도 만만찮은 기반이 생기자 그들도 아주 썩어빠지게 됐다. 그래서 그들도 부패 사건이 터지면 영락없이 걸려든다. 민주노총 지도부 상당수가 성완종 게이트로 새정치연합과 제휴하는 것이 불가능하자 아예 성완종 게이트 부패 추문 문제로 정부·여당 공격하는 것을 피하자는 식의 생각을 했던 듯하다.

산업화가 비교적 늦게 시작된 신흥국들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주의(전투적 노동조합주의) 성향과 포퓰리즘 성향의 상호 스며듦을 드러낸다. 이 상호침투의 효과는 위에서 언급된 사례들에서 보듯이 개혁주의의 발전이다.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으로 단결하자는 포퓰리즘은 계급투쟁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정치조직들이 중심이 돼, 정치적 성격과 경제적 성격이 통일된 노동계급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통일을 향하여

정부가 사용자들의 공세를 총괄적으로 조율하는 경향이 빈번히 나타나는 장기 경제 불황 속에서는 노동조합 쟁점들이 더 넓은 사회적·정치적 쟁점들과 융합돼야 한다. 물론 이 방식은 즉각적이거나 직접적이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과 민주노총 투쟁이 통일됐어야 했던 경우를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형식적 접근,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노동자주의나 포퓰리즘 성향 그리고 이 둘의 상호침투 때문에 쉽사리 맞물리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4·24파업의 요구들에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관련 요구가 포함돼 있었음에도 노동계급 운동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이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융합 노동조합 쟁점들은 더 넓은 사회적·정치적 쟁점과 융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조승진

물론 노동계급이 천대받는 다른 사회집단들을 이끄는 일(그람시는 이를 ‘헤게모니’라고 불렀다)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1987년 6월항쟁은 처음에 학생과 청년이 앞장섰지만, 날이 갈수록 노동자들의 참가가 급속히 늘어, 1백50만 명가량이 시위에 참가해 정점을 이룬 6월 26일쯤에는 압도적으로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서울은 서비스·사무직 노동자들이 많았고, 안양·군포 등지는 6월 10일 첫날부터 공장 노동자들이 안양시청 앞에서 시위하면서 안양경찰서를 공격하기도 했다. 부산 같은 데서도 초기부터 사상공단과 사하공단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따라서 사회적 구성 면에서 보면, 즉 참가자로 보면 6월항쟁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6월항쟁이 6·29라는 양보를 얻어 내면서 사용자에게도 맞설 자신이 생긴 노동자들은 7·8·9월 중순까지 투쟁을 벌였다. 그때 정치적 구호가 나오지는 않았다. 1988년이나 1989년에도 이런 점에서 약간 굼뜬 면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강력해지면서 노동자 조직이 강화되고 이 노동자 조직들이 노동법 개정과 반민주악법 폐지, 부패 청산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을 제출하고 싸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1993년 김영삼 민선 민간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군부가 정치 일선에서 밀려났다. 군부독재는 1987년 항쟁으로 즉각 타도된 게 아니었다. 몇 년에 걸친 투쟁 속에서 역전될 뻔한 위험도 있었다. 1990년에서 1991년 사이가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 조직들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여했다. 이런 상황 전개는 1996년 12월 26일부터 이듬해 1월 12일까지 지속된 민주노총 총파업 때 정점에 도달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같은 정치 문제에서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다. 그래서 일부 초좌파 단체들이 지난해와 올해 세월호 항의 운동에서 그랬듯이 ‘박근혜 퇴진을 앞세우지 않는 투쟁[파업 포함]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조직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메커니즘을 다소 피상적으로 이해한 결과다. 특히,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을 고취시키고 노동자 조직들이 정치 세력으로 발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은 사고의 출발점 자체를 사회 전체, 나라 전체에 둬야 한다. 세계 경제 위기, 세계 제국주의 상황, 한반도(남북한 모두) 정치 상황 고려에서 출발해 그다음으로 자신이 처한 조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우리 노동조합의 문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데 나라는 무슨 나라고, 사회는 무슨 사회냐’ 하는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 걸려도 시야를 확대할 수 없다. 처음부터 세계와 국가라는 시야를 확보하려는 습관을 들여야만 자기 문제로도 제대로 싸울 수 있다.

맺으며

한상균 지도부의 정치적 약점이 예상보다 일찍 나타나는 듯하다. 물론 그는 다른 지도자들에 의해 포위돼 있다. 그러므로 그를 포함한 노조 지도자층이 도대체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주로 경제 위기가 심각해서 그렇다. 경제 위기가 심각하니까 사용자들도 양보를 안 하려 하고, 심지어는 자기들이 과거에 양보했던 것마저도 되찾아가려 한다. 예를 들면, 철도 근속승진제나 서울대병원 노조원 자녀학자금 같은 문제들이다. 한때 양보했던 개혁도 회수해 가는 판에 교섭으로 새로운 양보를 얻어 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것을 교섭 전문가들(노조관료와 개혁주의 정당 정치인)도 잘 알기 때문에 몸을 많이 사리는 것이다.

그러면 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아니 좌파 지도부를 세워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올라가자마자 다른, 우파 지도자들과의 유대를 더 중시해 관료의 집단적 입장으로 용해되는데? 무엇 때문에 특별히 그들을 지지해야 하지?’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힘이 강력하면 관료 내부에 균열이 생긴다.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힘이 강력하지 못해 관료 내에 균열을 충분히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으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참을성을 갖고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결코 조급해서는 안 된다. 초좌파에 대해 레닌이 비판한 핵심 주장은 자본주의적 의회, 자본주의적 선거, 개혁주의 정당, 보통의 노동조합이 비록 혁명가들에게는 폭로됐을지라도 광범한 수만·수십만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그들을 폭로하고 신경질적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 균형 있게, 개혁주의자들이 잘한 점은 잘했다고 말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하되 입에 칼을 물고 웃으면서 그래야 한다. 대중에게 입증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그들과 공동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근본적 사회 변혁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심이 돼서 저항을 아래로부터 조직하지 않으면 결국 노조 지도자를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공무원노조 내에서 마르크스주의자 몇 명이 잘 조직돼 있으니까 하다못해 이충재한테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 철도노조 같은 곳에서는 삭감 반대 네트워크 같은 것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각성돼 있고 훈련받은 몇몇 반자본주의 투사들의 단단한 조직이 사업장에서 존재하지 않으면 비상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조직이 존재한다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좌파 노조 지도자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며 기층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으로도 조직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미래를 위해 지금 투자할 가치가 있다.(▶ "남은 상반기 투쟁을 위한 4~5월 투쟁의 교훈"을 보시오)

입력 2015-06-0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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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략적 야권연대의 바탕에 깔린 이데올로기

민중주의란 무엇인가?

최일붕

총선이 다가오자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전략적 야권연대는 ‘민중주의’를 바탕으로 한 점진적 집권 전략이다. 민중주의는 국민 가운데 한줌밖에 안 되는 반민주적·비애국적 무리를 제외한 나머지가 계급을 초월하여 단결해, 그 반동적 극소수를 권좌에서 몰아내자는 사상이자 운동이다. ‘반동적 극소수’로 지목되는 집단은 독재 잔당과 ‘공안세력’, 냉전주의자, 재벌 등이다. 민중주의자가 즐겨 내놓는 구호는 “각계각층이 단결”, “국민과 함께하는” 등이다.

민중주의는 ‘포퓰리즘’이라는 외래어의 순화어 중 하나다. 다른 순화어는 ‘대중영합주의’이다. 대중영합주의는 최상위 엘리트 계층의 정치인이 마치 자신은 엘리트층의 정치인이 아닌 양, 심지어 엘리트층에 반대하는 체하면서 대중에게 영합하는 꼼수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 글에서는 뉘앙스를 고려해 민중주의와 대중영합주의를 구별하기로 한다. 즉, 민중주의는 진보 성향이고, 대중영합주의는 보수 성향인 것이다.

유럽에서는 경제 위기와 긴축 재정을 틈타 우익 대중영합주의 정당이 등장해 활동하고 있다. 영국의 영국독립당(UKIP), 네덜란드의 자유당, 덴마크의 국민당 등이 그것이다. 이 당들의 핵심 정책은 이민자에 대한 인종차별로, 이 점에선 파시스트 정당과 유사하다. 그러나 우익 대중영합주의는 파시즘과 차이점이 있다. 그 차이점은 파시즘이 의회 민주주의와 모든 노동자 단체를 분쇄할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민중주의는 제3세계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 글의 관심사는 우익 포퓰리즘이 아니다. ‘진보’와 민족 자주를 표방하며 활동하는 종류의 포퓰리즘이 우리의 관심사다.(‘진보적’이라는 말 자체가 이제는 민중주의를 의미하는 말이 돼 버린 듯하다.)

민중주의는 외세의 지배와, 그와 결탁한 한줌의 부패한 기득권층의 지배를 경험한 신흥국의 노동운동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일제 식민지, 외세(미국과 소련)에 의한 민족 분단과 전쟁, 외세(미국)가 후원한 독재 정권과 재벌의 지배 등 한국 현대사의 특성들 때문에 한국 민중과 노동계급 대중의 정서 속에는 민중주의적 경향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민중주의는 흔히 진보적 민족주의 경향을 띤다. 진보적 민족주의의 핵심 강령은 남북한 화해 협력과 궁극적 통일이다.

2월 27일 민중총궐기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 파업 투쟁으로 발전하지는 못했지만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회복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이미진

민중주의의 순차적 물결

민중주의 운동의 성격과 형태, 생존 능력은 시기와 조건에 따라 매우 달랐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러시아와 미국에서 민중주의 운동은 아예 농민에 기반을 뒀다. 제정 러시아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나로드니키로 불렸고, 테러리즘 전략과 선거 전략을 결합해 추구했다.

미국의 민중주의 농민 운동은 경제 정책 ― 특히 곡물 가격 문제와 재벌(conglomerate, 거대복합기업) 개혁 문제, 은행 규제 문제를 놓고 수립되는 ― 에 영향을 미치려 애썼고, 민중당(이하 서양사학계에서 통용되는 인민당으로 표기)을 창립해 지역에 따라 민주당이나 공화당과 제휴했다. 1894년 철도 파업 이후, 인민당의 일부는 파업 투쟁으로 등장한 노동운동가들과 연계하고 나중엔 다른 사회주의자들과도 연계해 미국 사회당을 창당한다.

러시아와 미국의 민중주의는 제1차세계대전을 앞뒤로 해서 일어난 거대한 노동계급 투쟁, 특히 러시아 혁명과 서구 혁명에 밀려 완전히 주변화됐다.

1930년대 대불황기와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시기

민중주의의 두 번째 물결은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일었다. 유럽의 프랑스와 스페인에서 민중주의는 민중전선(인민전선)이라는 가장 완성된 형태로 등장했다.

민중전선은 스탈린주의자들의 전략이다. 이 전략은 드러내놓고 친자본주의적인 정당과 선거로 연립정부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하는 정책이다.

민중전선은 선거라는 면에서 보면 흔히 성공적인 방침일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정당과의 협력을 위협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않는 한은 노동자 운동을 고무하는 효과도 낸다.

하지만 노동자 투쟁의 수위가 자본가들의 우려를 자아낼 수준으로 상승할 것 같으면 민중전선은 노동자 운동을 억압하는 효과를 낸다. 2000년 6·15 남북공동선언 국면에서 일어난 사회보험노조와 롯데호텔 노조 파업이 NL계열의 싸늘한 냉대를 받은 것이라든지, 이듬해 단병호 위원장이 7월로 예정된 민주노총 파업을 취소한 것, 그리고 최근에 다수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총선을 의식해 새정치연합-더민주당 (일부) 의원들과 공조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바람에 현장조합원들은 동원 해제 상태에 있는 것 등을 들 수 있다.

라틴아메리카 민중주의는 제2차세계대전 종전 직후 아르헨티나 후안 페론의 집권 초기처럼 꽤 성공을 거둔 경우도 있다. 페론은 주요 기업을 국유화하고, 노동자에게 복지 혜택을 제공했다. 그러나 그는 강압적으로 노동조합을 국가에 통합시켰고, 히틀러와 무솔리니를 찬양하면서, 파시스트 전범들의 아르헨티나 이주를 환영하는 등 모순투성이 정책들을 펼쳤다.

한편, 멕시코의 라사로 카르데나스는 집권 중이던 1938년 멕시코혁명당을 설립해, 멕시코 혁명(1910~1920)의 유산을 이어받는 정당임을 표방했고, 집권당으로서 트로츠키의 망명을 허용하는 등 매우 좌파적인 자세를 취했다. 트로츠키의 망명은 스웨덴이나 노르웨이 같은 국가들도 거부하고 있었다.

라사로 카르데나스의 아들 콰우테목 카르데나스는 1988년 당(멕시코혁명당의 후신인 제도혁명당)을 탈당해 야당인 새로운 민중주의 정당 민주혁명당 PRD를 설립했는데, 이 당은 이후 멕시코판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됐다.

1949년부터 1979년까지

민중주의가 가장 성공적이던 시기는 민족 해방 혁명이 성공을 거두던 시기였다. 중국 혁명부터 쿠바 혁명과 베트남 혁명을 거쳐 니카라과 혁명과 이란 혁명에 이르는 1949년부터 1979년까지가 그랬다. (중국 혁명에 대해서는 이번 호에 실린 이정구의 ‘1949년 중국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었나?’를 보라.)

이 혁명들에서 노동계급이 어느 정도의 역할을 했던 건 이란 혁명밖에 없었다. 이란 혁명에서도 민중주의는 초기에 노동자 운동을 자극했지만, 노동자 운동이 ‘쇼라’라는 민주적 노동자 권력 기관을 창출하며 이슬람 성직자(물라)들의 주도권을 침해하는 듯하자, 물라들은 노동운동을 억제하기 시작했고, 마침내는 아예 분쇄하는 지경으로까지 나아갔다.

1994년부터 지금까지

1994년 치아파스 주에서 봉기한 사파티스타는 최근의 민중주의 물결의 효시를 나타낸다. 사파티스타는 혁명적인 민중주의 세력이었다. 같은 해 남아공에서 아프리카민족회의(이하 ANC)가 선거로 집권한 것도 민중주의의 쇄도를 알리는 사건이었다. 동시에, 지난 20여 년간의 ANC 집권은 혁명적인 종류의 민중주의조차 그 계급 협력주의로 인해 결국에는 개혁주의의 성격을 띠게 됨을 잘 보여 준다.

3년 전 작고한 베네수엘라 전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현 볼리비아 대통령 에보 모랄레스도 최근 민중주의 물결의 일부라 할 수 있고, 스페인 포데모스도 그렇다고 할 수 있다.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 포데모스의 주요 간부들은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의 포스트마르크스주의 이론에 근거한 민중주의를 지지한다.

오큐파이(점거하라) 운동도 민중주의의 최근 사례다. 오클랜드의 오큐파이는 달랐지만 말이다. 거기서는 부두 노동자 등 조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오큐파이 운동이 벌어졌다.

우고 차베스에 환호하는 베네수엘라 노동자와 청년들 ’21세기 사회주의’라는 말을 유행시켰지만 차베스 사후 심각한 위기를 겪고 있다. ⓒ 출처 Bernardo Londoy (플리커)


노동자 운동 안의 민중주의

한국 민중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자민통’ 계열(이하 자민통계), 참여연대 등 진보적 NGO들 그리고 정의당 등이다. 물론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기도 하다. 스탈린주의 운동인 자민통계는 좌파적 민족주의 경향의 일부 ― 핵심적 일부 ― 이지만, 좌파적 민족주의자가 모두 자민통계인 것은 아니다.(자민통계의 민중주의적 성격은 김인식의 글 ‘민중연합당 창당에 부쳐’를, 정의당의 민중주의적 성격은 장호종의 글 ‘정의당 총선 공약 분석: 노동자와 중소기업, 두 마리 토끼 좇기’를 보라.)

민주노총 내 국민파·전국회의·중앙파 등도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민중주의적 경향을 띤다.

노동운동 내의 민중주의는 남아공이나 브라질, 멕시코 등의 다른 신흥공업국에서처럼 중간계급과 ― 때로는 지배계급 일부와도 ― 계급 연합을 추구하는 경향을 말한다. 물론 노동계급은 중간계급의 일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간계급 가운데 특히 영세 소농이나 영세 노점상, 철거민, 빈민 등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흔히 노동자의 가족일 뿐 아니라, 그들의 일부는 얼마 전까지 노동자였다가 실직한 사람이거나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처지이기가 쉽다.

그러나 중간계급은 노동계급이 아니다. 전통적 중간계급의 전형은 소자영업자인데, 이들은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을 착취하는 자본가 구실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자기 자신에게서 임금을 받는 노동자 구실을 하는 이중적 처지에 있다. 스스로 자산을 소유하므로 자본가들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지만 스스로 일하므로 노동계급에게 동질성을 느낄 수도 있다. 이런 모순 때문에 구 중간계급은 양대 계급 사이에서 오락가락하며 유동적이다. 오락가락과 유동성이 중간계급의 핵심 특징이다.

중간계급에는 이른바 ‘신중간계급’이 포함된다. 이 집단은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등장했다. 자본주의 초기에는 자본가가 직접 사업장을 운영하고 노동자들을 통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기업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자본가는 자기 대신 사업장을 운영할 특별한 임금노동자들을 고용하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사업장 내에 경영직·관리직 등 관료층이 형성됐다.

이 관료층의 최상층은 자본가 계급과 뒤섞이게 된다. 반면 관료층의 최하층은 겉보기로는 노동계급과 거의 구분되지 않는다. 이 계층에는 매우 모순된 처지에 있는 각양각색의 인자들이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부를 창출하고 체제를 운영하는 데 도움이 되는 생산적 구실을 하기도 하고, 노동자들을 더 심하게 쥐어짜고 단속하는 구실을 하기도 한다.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이 집단도 양대 계급 중 어느 한쪽으로 이끌린다. 노동자 투쟁이 강력할수록 이 계층 하층의 일부 사람들은 노동자 편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엥겔스는 1848년 혁명 중에 프랑스 “중간계급이 견해가 엄청나게 자주 바뀐다”면서 이렇게 썼다:

“프티부르주아지는 중재자 구실을 하며 비참한 역할을 했다. … 그들과 임시정부는 몹시 갈팡질팡했다. 만사가 조용하면 할수록 정부와 프티부르주아지는 대 부르주아지 쪽으로 더욱 기울었다. 반면 상황이 격동하면 격동할수록 그들은 노동자 편을 들었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관계 문제가 진정한 쟁점이다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일자리도 불안정해지고 복지 혜택도 감축된다. 게다가 노동자의 이웃 주민으로서 그들의 환경도 파괴를 당한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일부도 자본주의의 일부 효과들에 적개심을 품게 될 수 있다.

그러나 중간계급 사람들은 개인주의적 해결책을 찾는 경향이 강하다: 승진, 창업, 귀농, 생존을 위한 무한 경쟁에서 그냥 뿔뿔이 낙오하기 등.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간계급은 반자본주의적 운동이 미칠 일부 영향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거나 우려한다. 왜냐하면 경제 위기 상황 속에서는 노동계급의 이익과 중간계급의 이익이 일부 상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임금이 상승한다거나, 노동조건 악화 없는 노동시간 단축이 이뤄진다거나 하는 개혁이 자영업 계층에는 불리한 조건이 된다. 그래서 중간계급은 보수적이기가 쉽다.

그러므로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의 더 많은 부분을 끌어당길 방안은 계급투쟁 역량과 능력을 십분 발휘하는 것밖에 없다. 그러려면 노동계급의 이해관계를 포기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계급 이해관계를 확고하게 추구해야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민중주의자와 사회주의자의 태도가 확연하게 준별되며 심지어 충돌한다. 민중주의자는 노동계급의 고유한 이해관계를 고집하지 말고 중간계급의 이해관계와 조율하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노동운동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지난해 봄 전면에 불거진 공무원연금 방어 문제를 회피하고 대신에 그 문제를 공적연금 강화 문제로 치환하려 했다.

결국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민중주의자는 계급투쟁과 노동계급 투쟁이 부각되고 노동계급이 운동을 주도하면 민중이 내적으로 분열될 것이고, 운동 쪽으로 포섭될 잠재력이 있는 다른 사회세력을 내치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러나 이런 우려는 기우일 뿐이다. 오히려 노동계급이 민중 운동에서 주도권을 발휘할수록 민중도 더 강력해질 수 있다. 중간계급으로서는 사회적 권력과 집단적 힘과 규율을 갖춘 동맹을 갖게 된 셈이니까 말이다.

오히려 민중주의적 방식이야말로 민중을 이루는 계급들의 상이한 이해관계 때문에 결국엔 민중을 단결시키지 못할 것이다. 민중주의자가 그리는 단결한 민중이라는 이미지는 이상화된 것일 뿐이다.

10면에 실린 김하영의 글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는 노조운동가들 민중주의의 이러한 약점을 잘 보여 준다.

민중주의냐, 노동자주의냐?

민중주의는 경제 위기에 직면해서도 민중 운동이 계급투쟁으로 분화되지 못한 낮은 단계를 나타낸다고 할 수 있다. 노동계급 측에서 말한다면, 노동계급 의식 발전의 초보적 국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로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파업 투쟁으로 자본주의 이윤 자체를 공격할 의지 수준으로는 상승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전자를 보지 못하고 후자만 본다면 노동운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얻을 것이다. 후자를 보지 못하고 전자만 본다면 민중주의(그리고 그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적 귀결인 개혁주의)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다.

사실, 한국의 노동운동가들은 노동조합 쟁점들을 다룰 땐 흔히 ‘노동자주의적으로’(즉, 전투적 노동조합주의의 전통에 따라) 사고하고, 사회적·국가적 쟁점들을 다룰 땐 민중주의적으로 사고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민중을 이루는 다른 사회계급들과 최소공배수적으로 계급 이해관계를 융합한다는 발상에 해당한다. 가령 공무원연금과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는 듯한 부문에서 활동하는 노동운동가들 가운데는 공적연금 강화라는 민중주의자들의 대안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았다.

민중주의적 노동운동가들은 또한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에 민주노총 총파업을 직결시키는 방안을 원천적으로 배제했다. 총파업은 노동자들에 의한 계급 고유의 투쟁 방법이다.

사실, 자민통계는 지난해 초부터 민중총궐기를 추진했지만, 상반기 내내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민주노총 지도부가 4월 말 선제 파업과 이후의 공무원연금 투쟁 때문에 그 안(案)에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무원연금 투쟁이 패배하고 7월 15일 민주노총 2차 파업이 존재감 없이 끝나자 민중총궐기안은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자들이] 계속 회피하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 민주노총의 부족한 동력과 사회적 고립을 볼 때 이 투쟁[민주노총 총파업]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총궐기로 “저들[지배자들]이 결코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저항운동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2차 민중총궐기를 위한 토론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살인 진압 규탄과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해 민주세력을 모아 내는 외연 확대를 기조로 범국민대회로 열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노동개혁’ 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며 민주노총에 기조 변경을 강력히(그러나 헛되이) 요구했다.

 

혁명적 오솔길

 

그런데 대다수 노동운동가들이 노조 쟁점들은 노동조합주의적으로 사고하고(때로 전투적일지라도), 더 폭넓은 정치 문제는 민중주의적으로 사고하는 식의 의식을 갖는 경향은 정치 투쟁과 경제투쟁의 역할 분담과 비슷하다.

그래서 이 과정에서 개혁주의 정당이 성장하기 쉽다. 개혁주의 정당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의 형식적 원리에 순응해, 노조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직접적 생활조건의 문제들을 다루고 개혁주의 정치인들은 개혁 입법 활동을 하는 식의 분업을 당연시한다.

이는 극히 이례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정치 운동에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특히 파업 투쟁으로부터 나오는)을 사용하는 것을 선택 사항에서 배제하는 것을 뜻한다. 이는 세월호 참사 항의 운동에 민주노총 파업이 동원되는 게 어불성설로 취급되는 분위기를 설명해 준다.

이런 정서가 보편화되면 범좌파 개혁정당이 대세가 된다. 그러나 경제 위기와 지정학적 위기라는 이중의 위기로 가느다랗게나마 급진적 조류가 노동계급과 청년·학생 속에 형성될 수 있다.

특히, 노동자들이 민중주의를 학습한 효과로서 계급 의식이 향상될 수 있음도 알아야 한다. 이 점은 엥겔스가 미국 인민당의 일부 투사들이 철도 파업 투사들과 만나며 사회주의 운동을 구축하기 시작하는 것을 흐뭇하게 보며 지적한 점이기도 하다.

민중주의의 진화 속에서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추구하는 사회주의적 조류에게도 기회가 있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신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중주의의 일정한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위에서 인용한 논평가처럼 기회주의적으로 그에 끌리지 말고 그보다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전망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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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민주노총 투쟁을 둘러싼 논쟁을 중심으로

김하영, 최일붕 지음 | 노동자연대

100페이지, 3000원

입력 2016-03-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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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민중주의 vs 계급정치

김하영

우리 나라 운동에서 전통적으로 강력한 민중주의는 “각계·각층”의 동맹을 중시하고, 노동자들이 계급 고유의 이해관계를 내세우는 것을 그런 동맹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자연히 노동계급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은 인정되지 않는다. 이런 사상은 노동계급이 약화됐고 따라서 예전 같은 방식으로 싸울 수 없다고 여기는, 매우 다양한 경향들과 잘 맞물린다. ‘민주노총은 조직률이 매우 낮아 계급 대표성이 없는 데다 대공장·공공부문 조합원이 다수이므로, 조합원들의 요구를 앞세웠다가는 지배자들의 귀족노조 고립 프레임에 말려든다’는 주장도 그중 하나다. 박근혜 정부를 “독재 회귀” 심지어 “파시즘”이라고 보는 것도 계급을 가로지르는 동맹을 정당화하는 근거다.

이런 민중주의가 2015년 투쟁에 미친 좋지 않은 영향을 잘 보여 준 대표적 사례가 공무원연금 개악에 대한 태도였다. 노동운동 안에는 공무원연금 방어를 꺼리는 견해가 광범하게 퍼져 있었다. ‘민주노총이 그런 걸 방어해서 지지받을 수 있겠느냐’는 것이었다. 노동자연대를 비롯한 일부 좌파들의 주장으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4·24 총파업의 주요 요구로 포함됐지만, 많은 단체와 활동가들은 그것을 ‘공적연금 강화’로 대체하거나, ‘최저임금 1만 원’ 같은 요구를 제기하는 데 강조점을 뒀다. 이것은 자기 조합원들의 조건보다 미조직 노동자들과 전국민의 조건을 더 배려함으로써 국민적(또는 민중의) 지지를 얻겠다는 민중주의적 발상이었다.

△ 2015년 9월 23일 민주노총 총파업 집회 실질적인 파업 투쟁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다. ⓒ사진 조승진

물론 ‘공적연금 강화’나 ‘최저임금 1만 원’은 중요한 요구다. 노동자연대는 이 요구들을 지지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노동자들에게 고통 전가하기’ 공격의 최전선으로 삼고 있었고, 이를 지렛대로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같은 더 광범한 공격을 추진하려는 상황에서, 공무원연금 개악 문제를 사실상 회피하는 태도는 2015년 노동자 투쟁에서 심각한 약점으로 작용했다. 결국 공무원노조 이충재 집행부와 연금행동 정용건 집행위원장 등의 ‘공적연금 강화’론은 공무원연금 개악을 사실상 용인하는 배신으로 나타났고, 이는 상반기 노동자 투쟁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당시에 그들은 공무원연금 삭감분을 국민연금 강화에 사용한다는 것은 의미 있는 합의라며 정당화했는데, 국민연금 강화는 공수표에 불과하다는 우리의 경고가 결국 옳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매일노동뉴스>는 “공무원연금 삭감분을 공적연금 강화에 사용하겠다는 전제로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을 얻어 낸 정부는 이후 모르쇠로 일관했다”며 정부의 태도를 “먹튀”라고 요약하고 2015년 노동뉴스 16위로 뽑았다.

민중주의의 논리는 공공부문 정상화나 노동시장 구조 개악 반대 운동에도 적용됐다. 공공부문 노동조합 운동 안에는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경제적 요구를 내세워서는 안 되고 ‘공공적’, 즉 국민적 요구에 헌신해야 한다는 주장이 널리 퍼져 있다. 이런 노선의 대표 주자 중 한 명인 철도노조 김영훈 위원장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라는 명분으로 사실상 임금피크제를 수용했다. 5월 말 공무원연금 개악 이후 상반기 노동자 투쟁의 상승세가 꺾였다면, 주요 공공기관들의 임금피크제 협상과 수용은 9~10월 공공부문 투쟁을 약화시키는 중요한 요인이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문제에서는 사실상 비정규직 관련 쟁점만 부각하고자 하는 경향이 두드러지고 있다. 노동운동의 다수 지도자들이 이 쟁점으로는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고 그래서 더민주당 등 주류 야당과도 협력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정규직·조직 노동자들에게 해당하는 쟁점은 지키고자 아등바등할수록 노동시장 이중구조화 또는 노동계급의 분절화를 악화시켜 노동운동에 부메랑으로 돌아올 뿐’이라는 생각도 널리 퍼져 있다. 가령, ‘쉬운 해고? 비정규직은 이미 손쉽게 해고되고 있다. 통상임금 정상화? 비정규직에겐 그림의 떡일 뿐이다’는 식의 주장들을 흔히 듣다 보면, 조건 악화에 맞선 싸움이 정당한지 헛갈릴 지경이다.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들이 쌓아 온 임금과 고용조건 지키기에 연연하는 ‘반대 투쟁, 저지 투쟁’을 할수록 고립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은 노동운동 우파부터 좌파까지 공유하고 있다.

민중의 호민관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민중의 호민관’, ‘조직 노동자만이 아닌 계급 전체를 위한 투쟁’이라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한다. 이런 정서는 십분 이해한다. 하지만 (선의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타나는 효과는 투쟁에 나설 잠재력이 있는 조직 노동자들의 동원을 회피하는 것임을 날카롭게 직시해야 한다.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투쟁을 전투적으로 벌이면서 다른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고무해야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민중주의자들은 조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 방어를 위해 나서는 것 자체를 해롭다고 보기 때문에, 사실상 민주노총의 총파업 성사에 큰 열의가 없었다. 그들은 그 대신에 ‘민주노총이 제대로 되지도 않는 총파업을 하기보다 전략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이는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과 이를 통한 의식과 조직의 성장 대신 ‘위로부터의’ 개혁을 제안하는 셈이다.

계급 정치를 일관되게 추구하지 않은 다른 대표적 사례는 총파업을 민중총궐기로 대체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민중총궐기가 중요한 전진이긴 했지만 그보다 더 나아갈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자민통 계열은 2015년 초부터 11월 민중대회를 적극 추진했고, 이를 세력 회복과 총선으로 가는 디딤돌로 자리매김하려 했다. 한상균 집행부도 7월 이후 민주노총 내에서 총파업 회의론이 강화되면서 점점 더 민중총궐기에 의지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2015년 초 민주노총 임원 선거 직후에는 한상균 위원장을 비롯한 신임 임원진이 ‘총파업 투쟁’을 가장 주되게 표방했기 때문에 조합원들의 지지를 얻고 당선했다는 점을 자타가 인정했다. 그래서 선거에서 ‘준비된 투쟁’을 주장했던 상대편(국민파-중앙파-전국회의 연합선본)도 초기 몇 달 동안은 총파업을 공공연히 반대하지 못했다. 그러다 공무원연금 개악 이후, 4·24 총파업을 전후해 상승하던 기세가 꺾이고 7·15 파업이 급조돼 미미한 수준에 그치자, 총파업이 효과 없고 소모적이라는 종래의 주장이 확산됐다.

총파업 할 역량이 안 된다거나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주장의 근저에는 총파업 같은 전통적 투쟁 방법이 이제 낡았다는 생각도 깔려 있었다. 가령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김태현 연구위원은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외쳤지만 위력적이지는 않았다며 이렇게 말했다. “[민주노총의 투쟁 형태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의 전투적 투쟁이 비정규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선도차 역할을 담당했던 … 그 시절의 향수에 기반하고 있다. … 그러나 시대는 바뀌었다. 자본이 초국적화되고 고용이 분절되며 파편화된 신자유주의 체제 하에서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전투적 투쟁이 쉽게 전면화되기는 어렵다.” 민주노총이 대기업 정규직 중심의 총파업 투쟁을 외치기보다 비정규직 조직화와 비정규직 투쟁의 근거지 구실을 전략적 과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직력 약화, 법제도적 제약, 비정규직 노조의 취약성 등으로 파업이 가능한 조직들이 제한돼 있다는 것도 총파업이 불가능한 이유로 언급되는 요인들이다.

사회적 연대

그러면서 흔히 대안으로 제시되는 것 하나는 범국민적 또는 ‘사회적 연대’ 투쟁이다. 1~2년 전부터 사용되는 “국민파업”이라는 용어도 비슷한 맥락에서 등장했다. 이런 투쟁은 ‘파업이 가능한 노동자+파업이 불가능한 비정규·미조직 노동자+농민+빈민+자영업자+학생+여성 등등’이 모두 광범하게 연대한다는 점에 의미를 두지만, 계급의 경계와 파업의 의미를 무색하게 만든다는 문제점도 동시에 안고 있다. 노동계급의 결정적 중요성은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인 공장, 병원, 학교, 교통·통신 체계 등을 멈출 수 있는 집단적 힘을 가졌다는 데 있다. 자영업자나 학생 몇만 명이 일을 안 하거나 수업에 안 들어간다고 해서 이런 효과를 내지는 못하며, 또한 노동자들 역시 집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는 이런 효과를 낼 수 없다.

많은 사람들은 이런 투쟁이 “정치” 투쟁(반박근혜 민주주의)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경제” 투쟁보다 우월하고, 노동자 일부가 아니라 전체, 더 나아가 민중까지 포괄하는 투쟁이므로 민주노총만의 총파업보다 우월하다고 여긴다. 지난해 있었던 세 차례의 총파업보다 11월 14일 총궐기가 훨씬 더 위력적이지 않았느냐면서 말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맞선 투쟁의 시동을 걸고, 노사정 야합에 항의한 9·23 총파업 같은 투쟁들이 있었기에 11월 14일까지 분위기가 뜨면서 총궐기가 비교적 성공적으로 조직됐던 것이다. 오히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총궐기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총파업으로 나아가겠다던 약속을 지키지 않고, 그 뒤에도 가두 시위에만 힘을 실은 결과 노동자 투쟁은 더 이룰 수도 있었던 전진을 하지 못했다. 그만큼 전진해야 박근혜의 ‘노동개혁’을 막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민중총궐기와 직결시켜 총파업을 조직했다면 어땠을까? 노동계급이 경제적·집단적인 힘을 사용해 실질적인 파업에 돌입했다면, 이윤을 위협하는 위력을 발휘하면서 박근혜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 추진에 확실한 제동을 걸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또, 박근혜를 한 방 먹이고 싶은 더 광범한 대중의 지지를 얻었을 수 있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노동자들 자신이 계급투쟁의 역량을 십분 발휘했을 때 연대도 확대되고 중간계급들의 지지도 확보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수준으로 노동자들이 투쟁 수위를 낮춰야 연대가 확대되는 게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2013년 철도 파업 당시 ‘필공’ 파업을 해 국민에게 불편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철도파업이 지지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는 전혀 사실이 아니다. 당시 철도 노동자들이 굳건히 장기간의 파업을 이어갔기 때문에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물론 필공이 아닌 전면 파업을 했더라면 승리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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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최일붕 지음 | 노동자연대

100페이지, 3000원

입력 2016-03-02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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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의 오해를 불식시키고자 함

최일붕

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한국학교수(이하 호칭과 존칭 생략)가 내가 며칠 전에 쓴 글(최일붕, ‘민중주의란 무엇인가?’, <노동자 연대> 168호, 2016.03.02)을 크게 오해한 논평을 그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이에 그의 SNS 친구들이 노동자연대의 입장을 심각하게 오해할까 봐, 해명을 해야겠다고 느껴 몇 쪽 적고자 한다.

박노자는 내가 자영업자 서민을 “부르주아”로 보고, 그들을 배제한 채 “‘완벽한 리론’으로 무장된 ‘완벽한 로동자’만이 ‘완벽한 혁명’을 일으키”는 것을 지지하는 것으로 오해하고 있다. 사료를 신중하게 다뤄야 하는 역사가라면 당대의 텍스트도 이렇게 터무니없이 해석하고 판단해선 안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물론 나는 나 자신을 포함해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단체 밖 다른 활동가들이나 저술가들의 주장을 언제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판단해서 설명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진실을 말하면, 그러지 못한 경우도 많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박노자도 A4용지 7쪽밖에 안 되는 글을 오독해 놓고는 버젓이 SNS 상에 그릇된 논평을 공개하는 일은 자제해야 할 것이다. 아래에서 오해를 지적하고자 한다.

우선, 나는 소자영업자들을 단 한 차례도 “부르주아”로 부른 적이 없다. 그래서 그들을 적대해선 안 된다고도 했다:

“물론 노동계급은 중간계급의 일부를 자기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중간계급 가운데 특히 영세 소농이나 영세 노점상, 철거민, 빈민 등은 노동계급의 적이 아니다. 그들은 흔히 노동자의 가족일 뿐 아니라, 그들의 일부는 얼마 전까지 노동자였다가 실직한 사람이거나 경기가 좋아지면 다시 일자리를 얻을 수 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가족들의 노동력을 이용해 작은 사업을 운영하는 처지이기가 쉽다.”

그리고 나도 소자영업자 등 서민층 중간계급 사람들이 노동계급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경제 위기로 고통을 받는다고 강조했다:

“지배계급이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대가를 노동계급에 떠넘기는 과정에서 중간계급의 일자리도 불안정해지고 복지 혜택도 감축된다. 게다가 노동자의 이웃 주민으로서 그들의 환경도 파괴를 당한다. 그래서 중간계급의 일부도 자본주의의 일부 효과들에 적개심을 품게 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내 글은 천대받는 계급들과 집단들(이하 민중)이 ‘연대·연합’ 하는 것을 거부한 것이 아니다. 나도 박노자처럼 “아주 광범위한 여러 피착취 계층들의 ‘련합’”과 “‘범민중적 행동’”이 “당연히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그 연합의 내부 역학관계, 특히 노동계급과 중간계급 사이의 동역학에 관심을 나타냈다. 레닌과 그람시가 말한 헤게모니 개념을 바탕으로 한 관심사인 것이다. “노동계급과 중간계급의 관계 문제가 진정한 쟁점이다”라는 소제목 하에 이 문제를 논의한 단락도 있지만, 한 구절만 인용하면 이렇다:

“계급투쟁이 일어나면 이 집단도[전통적 중간계급과 신중간계급 모두를 가리킴] 양대 계급 중 어느 한쪽으로 이끌린다. 노동자 투쟁이 강력할수록 이 계층 하층의 일부 사람들은 노동자 편으로 이끌릴 가능성이 커진다.”

미국의 오큐파이 운동의 이데올로기가 민중주의적이었음을 언급할 때도 나는 오클랜드의 오큐파이 운동은 “부두 노동자 등 조직 노동자들이 주도하는 오큐파이 운동”이었다고 특별히 덧붙였다.

이 자리에서 한마디 더 덧붙이자면 이렇다. 모든 진정한 혁명은 민중 혁명이다. 그러나 그 혁명을 이끈 게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와 영국 혁명이나 18세기 말 프랑스 혁명처럼 부르주아지인 경우에는 ‘부르주아 혁명’이었던 것이고, 1917년 러시아 혁명처럼 노동계급인 경우에는 ‘사회주의(지향) 혁명’인 것이다. 설마 21세기에도 부르주아지가 민중 혁명을 이끌리라고 믿는 사람은 없겠지만, 중간계급이 이끌리라고 믿는 사람은 다소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마도 대다수는 (개인의 자유를 무엇보다 중시하고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박노자처럼 어떤 계급이 행사하는 것이든 헤게모니 개념 자체를 거부할 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 발전의 동역학이 이윤 시스템이고, 이윤의 원천이 잉여가치이고, 21세기 자본주의가 취하는 잉여가치의 압도적인 부분이 노동계급에서 나온다는 이론적·경험적 연구 결과를 보면, 헤게모니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노자가 노동계급의 현재 의식이라는 주관적 문제들을 제기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박노자는 노동계급의 현재 주관적 조건에 대해 우리가 낙관적 평가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며 실증적·이론적 반론을 펴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는 그 대신에 노동자연대의 “도그마주의”(교리주의, 교조주의)라는 엉뚱한 비난을 제기했다.

도그마주의?

박노자는 나와 노동자연대를 “도그마주의”로 매도한다. 방법론 분야에서 도그마주의는 경험을 무시하고 교리(도그마)를 물신화하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다. 그러나 내 글은 우리 나라 노동운동가들이 적어도 한두 번쯤은 겪어 봤음직한 일이나 국제 노동계급/좌파/사회주의 운동의 역사적 사례를 들어 가며 내 논지를 경험적으로 뒷받침하려 애썼다. 다루는 주제인 민중주의가 제3세계와 우리 나라의 역사적 경험을 반영한다고 처음부터 전제하며 논의를 시작했다.

또한, 같은 호에 실린 김하영의 글은 지난해 민주노총 노조운동 과정에서 경험할 수 있었던 민중주의적 경향의 사고·행동의 사례들을 예리하게 들고 있다. 박노자가 우리를 “도그마주의”라고 비판하려면 이런 경험들에 반대되는 반증과 함께, 더 나아가 자신이 지지하는 종류의 전술들이 효과적임을 적극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이다. 저 멀리 노르웨이에서 그저 언론과 인터넷 검색만으로도 한국 노동운동의 실상에 대해 정확하고 자세하게 아는 양 착각하면서, 국내 노동운동의 내부에서, 그것도 그 기층에서 분투하며 고민하는 투사들의 실제 경험을 무시하고 도리어 그런 사람들을 도그마주의라고 비판하는 것이야말로 도그마주의적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도그마주의 비판에 합리적 핵심이 있으려면, 인식의 절대성과 불변성을 부정하고 의심의 타당성을 긍정해야 한다. 운동하는 투사들이 전술 문제에서 이런 방법론적 회의를 구현할 수 있는 주된 수단은 (집단적으로) 실천해 보고 그 실천을 (집단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음식 만들기, 자전거 타기, 자동차 운전 배우기, 바이올린 연주 등을 관련 도서 읽는 것만으로 배울 수 있나? 나폴레옹 말대로 “길고 짧은 것은 대어 보아야 안다.” 또한 《파우스트》에서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말한다: “친구여, 이론이란 무릇 회색일세. 하지만 소중한 생명나무는 늘 푸른색일세.”

그렇다고 해서 이 같은 인식론적 실용주의가 회의주의나 인식의 상대성을 지지하고 정치적 실용주의(기회주의)로까지 나아가지 않으려면, 어떤 한계를 스스로 설정해야 한다. 우리에게 그 ‘한계’는 국제 노동계급 운동의 역사적 경험이고(교리가 아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그 경험으로부터 ‘엑기스’(진액)를 추출한 것이다. 당연히 이 마르크스주의는 복수형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다원성’은 ‘다원주의’(상대주의를 함축하기 쉽다)와 구별돼야 한다. 박노자의 마르크스주의나 우리의 마르크스주의나 박노자가 자랐던 옛 소련의 국가 공식 이데올로기인 마르크스주의가 설사 다 똑같이 타당할지라도(내적 일관성이라는 면에서) 결코 다 똑같이 건전한 것은 아니다. 그 건전성이 입증되려면 여기서도 역사의 시험대 위에 놓여야 한다. 박노자가 오해하는 것과 달리 우리는 과거의 러시아 혁명이 그 최종 시험대였다고 믿지 않는다. 심지어 미래의 실험조차 최종적이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인정한다. 그러나 목적론을 거부한다 해서 목적이 없어도 되는 것은 아니며,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도 있어야 한다. 그 수단의 하나가 국제 노동계급의 역사적 경험을 집약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이지만, 현재의 경험도 수단에 포함된다.

사실, 방법 면에서 우리 단체 활동가들에게 언제나 문제가 되는 것은 교리(교조)나 신조이기는커녕 인상에 불과한 것에 근거하기, 즉 경험주의다. ‘이론’이라는 낱말도 부담스럽게 느껴지거늘 “완벽한 리론” 따위를 말하는 회원은 없다. 그런 스콜라주의적 문구는 너무 냉랭하고 무미건조해, 활기찬 젊은 회원들에게는 아예 체질에 맞지 않는 듯하다. 박노자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를 도그마주의로 재단하는 것은 역사가가 취해야 할 신중한 태도가 아니다.

특수성에 대한 오해

위에서 보았듯이 마르크스주의적 이론은 역사적 경험을 초월할 수 없는 데다 사회 관계들도 계속 변하는 것이므로, “완벽한 리론” 따위는 있을 수 없다. 분석과 실천에 (결과적으로) 도움이 되는 이론이냐 아니냐가 있을 뿐이다. 이하에서는 교리와 구별되는 그런 이론을 그냥 이론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박노자는 이론이 나라별로 달라야 한다고 믿는다. 물론 모든 이론은 상황화(맥락화)돼야 한다. 각국의 특수성 때문이다. 하지만 박노자는 특수성을 예외성으로 혼동하고 있다. 그는, 트로츠키가 스탈린을 비판하면서 한 말(독일어 판에 붙이는《연속 혁명》 서문)을 빌리자면 특수성을 “마치 얼굴에 난 사마귀처럼, ‘보편적 특징’들에 단순히 부수적으로 붙어 다니는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일국의 특수성들은 세계 경제의 운동 과정의 기본 특징들이 일국 내에서 독특하게 결합된 것을 의미한다. … 일국 자본주의는 오직 세계 경제의 일부로서 이해해야 한다.” 박노자가 “한반도의 남반부”라고 부른 곳을 포함한 신흥국의 자본주의는 이언 록스버러가 지적했듯이, 독자적으로 발전한 게 아니라 제국주의 체제의 확립과 선진 자본주의 산업국들의 세계적 자본축적의 맥락 속에서 발전한 것이다.(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an Roxborough, Theories of Underdevelopment, Palgrave, 1980.) 가령 한국의 경제성장(즉, 자본축적)은 미국이 소련을 견제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과 함께) 자본과 시장을 한국에 제공한 덕분이었다. 소위 ‘삼각무역’은 이 관계를 요약한 말이다. 재벌 문제나 영남 지역주의 문제도 이런 식의 경제 발전 양상에 뒤따르는 지역간 불균등 발전의 한 효과였던 것이다. 더 일반적으로 말해, 일국의 사회 형태의 특수성은 사회의 형성 과정이 지닌 불균등성의 구체적 표현인 것이다.

일국적 특수성이 세계적 보편성에 의해 규정된다는 점을 더 예시하면 이렇다. 분단 문제는 미·소 두 초강대국이 세계를 양분한 당시 제국주의 체제의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다. 한국전쟁도 두 초강대국 간의 제국주의간 충돌이 한반도에 국한돼 벌어진 사건(“국제전”)으로 봐야 한다. 마찬가지로, 통일 문제가 제대로 해결될 수 있는 방식도 단지 반미가 아닌 반제국주의·반자본주의라는 맥락 속에서 수행되는 것이다.

“베네수엘라에 맞는 혁명리론”, “로서아의 력사적 경험에 맞는 혁명리론”, “한반도 남반부[의] 고유한 상황에 맞는 리론”이 각각 따로따로 있는 게 아니라 하나의 통일된 이론이 베네수엘라와 러시아와 한국 등지의 특수 상황들을 설득력 있고 유용하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마르크스는 ‘원시공산제 → 노예제 → 봉건제 → 자본주의’라는 계기적 사회 발전이 서구에 한정되는 것임을 분명히 하며 도그마적 ‘마르크스주의자’들에게 반대했지만, 서구 바깥의 사회들이나 자본주의 이전 사회들을 자신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Marx and Engels, The Russian Menace to Europe, George Allen and Unwin, 1953, pp.277-280.) 1877~82년에 마르크스가 러시아에 관해 쓴 글들은 당시 러시아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형이상학적 역사철학과 나로드니키(러시아 민중주의자들)의 친슬라브적인 특수론 사이에서 변증법적 종합을 나타내는 논저들이었다. 트로츠키의 《러시아 혁명사》(풀무질, 2003~2004)의 제1장(‘러시아 사회 발전의 특이성’)은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비서구 세계에 적용한 훌륭한 사례이고, 크리스 하먼의 《민중의 세계사》(책갈피, 2004)는 시간적·공간적으로 역사유물론의 적용 범위를 넓혀 고대부터 현대까지 전 세계의 역사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설명했다.

박노자는 과거의 제3세계주의자들과 현재의 포스트식민주의자들처럼 일국의 특수성을 모든 자본주의 나라들의 ‘보편적 특징들’ 위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하나의 전체(totality)인 세계 경제를 초월하는 것으로 만들어 버렸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전의 어느 때보다 세계화된 시대에 말이다.

박노자가 이렇게 세계를 국민국가들의 단순한 총합으로 이해하는 바람에, 세계 자본주의와 분리된 실체로서 일국 자본주의가 박노자 머리 속에서 상정될 수 있게 됐다. 세계 자본주의와 분리된 일국 자본주의가 개념적으로 성립되니 일국 사회주의라는 퇴행적 공상도 개념적으로 성립할 수 있게 됐다. 그가 왜 각종 “우리식 사회주의”들을 실제의 사회주의 사회의 한 형태로 보는가가 설명된다.

1970~80년대 민중론의 발전적 계승?

일국적 특수성을 예외주의적으로 이해함에 따라 박노자는 우리에게 1970~80년대 민중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라고 주문한다. 물론 아무리 패러다임의 혁명을 이루며 등장한 이론이라 해도 이전 이론의 모든 측면을 전면 기각할 수는 없다. 레닌이 그의 저작 《러시아에 있어서 자본주의의 발전》(태백, 1988)에서 러시아 민중주의자들(나로드니키)의 러시아 농업 분석을 전면 기각한 것에 대해 후대의 경제학자들은 레닌이 러시아 농업의 자본주의화를 과대평가했다고 지적했다. 이는 나로드니키의 농업 분석에서도 일부 취할 바가 있었다는 뜻이다. 마찬가지로, 요즘의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도 민족경제론의 실증적 조사 결과나 민중사학의 역사 서술(historiography)로부터는 일부 배울 바가 있다.

하지만 계급투쟁 문제로 말하자면 소련 붕괴 전 각종 민중론들은 스탈린주의와 그 민중주의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 건질 것보다는 버릴 것이 훨씬 더 많다. 레닌은 나로드니키의 영웅적 투쟁정신과 극도로 세밀하고 효과적인 조직 기술은 계승하면서도 그들의 테러리즘 전략이나 그 밖의 많은 것들은 이어받지 않았다. 나는 요즘의 한국 마르크스주의자들도 과거 한국 민중주의자들의 영웅적 투쟁정신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생존한 옛 민중주의자의 대다수가 개혁주의자(좌파적 유형일지라도)가 돼 있는 건 우연이 아니고, 또 단지 나이 탓만도 아니다. 민중주의에 내포된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가 세월이 가면서 그 진면목을 점점 더 드러내고 있는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박노자는 갑오농민전쟁(그가 거부할 용어)의 성격이나 조선 후기 상인 자본의 성격 등 매우 다양한 이슈를 놓고 “민중사학의 도식적인 끼워 맞추기 식 해석”에 이의를 제기해 왔다(격주간 <다함께> 75호, 2006.03.08). 그런 그가 왜 우리더러는 민중론을 “발전적으로 계승”하라는 것인지 친절하게 설명해 줄 수는 없는 걸까? 페이스북에서 일축하듯이 단번에 내치지 말고 말이다.

2016년 3월 6일 최일붕

입력 2016-03-0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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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주의 논쟁(Ⅰ)

마르크스주의 핵심 원칙, 꿰어 맞추기와 절충으로 누더기가 되다

최일붕

지난호에서 나는 ‘민중주의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에서 이렇게 썼다: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은 이렇게 주장한다:

“‘공무원연금 개악 등을 거치면서 민주노총의 줄어든 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는 거듭 드러났다. ‘노조 지도부가 국회 일정에 매달리며 계속 파업을 미루면서 동력이 사라졌다’는 좌파의 전통적 비판도 한상균 지도부의 1, 2차 선제파업을 거치면서 근거가 희미해졌다. … 파업의 동력이 충분히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노조 지도자들이] 계속 회피하며 그것을 사그라들게 만들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 민주노총의 부족한 동력과 사회적 고립을 볼 때 이 투쟁[민주노총 총파업]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

“오히려 민중총궐기로 ‘저들[지배자들]이 결코 ‘진보당’으로 상징되는 저항운동의 뿌리를 제거하지 못했고, 여전히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2차 민중총궐기를 위한 토론에서도 민중주의자들은 ‘살인 진압 규탄과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해 민주세력을 모아 내는 외연 확대를 기조로 범국민대회로 열자’고 주장했다. 그들은 특히 ‘노동개혁’ 반대를 부각시키면 시민단체와 종교계 등의 참가가 어렵다며 민주노총에 기조 변경을 강력히(그러나 헛되이) 요구했다.

“[중략]

“<노동자 연대> 신문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민중주의의 일정한 진보성을 인정하면서도, 위에서 인용한 논평가처럼 기회주의적으로 그에 끌리지 말고 그보다 더 급진적이고 좌파적인 전망에 헌신해야 할 것이다.”

위 인용문에서 재인용된 논평가(이하 전지윤)가 필자와 노동자연대 단체 자체를 비판하는 글을 올렸다. 위 인용문을 쓰던 때 내가 그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은 이유는 한때 같은 단체에 있었던 사람들끼리 언쟁한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쓰라린 심정이 묻어나는 볼멘소리까지 하면서 실명 인용을 하지 않았다고 항변을 했으므로(링크) 실명 토론을 하지 않을 수 없겠다.

전지윤은 2년 전 우리 단체를 탈퇴하던 때부터 견지해 오던 정세 인식을 본질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논쟁 때 내가 그에게 제기했던 문제들도 고스란히 그대로다. 그 문제들은 전지윤이 과거와 현재의 한국 노동운동을 이렇게 대조할 때 잘 드러난다:

“이 나라 노동운동의 한 절정이었던 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은 사실 안기부법 개악 반대 파업이기도 했다. 당시 김영삼 정부는 노동법·안기부법 날치기를 통해서 노동계급의 눈귀를 막고 손발을 묶어서 밥그릇을 빼앗으려 했다. 당시 조직 노동운동은 전체 노동계급을 위해 이런 공격에 맞설 자신감과 투쟁력을 보여 줬다.

“하지만 지금 조직 노동운동은 노동개악 법안을 가까스로 막고 있는 처지이며, 테러방지법 통과는 막지 못한 상황이다. 굴복으로 마무리될 게 뻔한 민주당의 ‘무제한 토론’을 쳐다보는 우리의 가슴은 갑갑하기만 했다.

“조직 노동자들의 경제적 조건과 요구가 중요하고 우선이라는 협소한 관점을 넘어서야 한다. 이 체제가 만들어내는 모든 모순과 부조리, 불의에 맞서서 부문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이 ‘무제한 투쟁’을 벌이는 미래를 향한 우리의 꿈은 꺾일 수 없을 것이다.”

위 인용문과 관련해서만도 적어도 다섯 가지 쟁점이 제기될 수 있다. 첫째, 1996~97년 민주노총 전면파업에 참가한 노조 지도자들과 평조합원들이 정말로 진지하게 안기부법 개악도 반대했다면 내가 그때나 지금이나 민중주의 문제를 갖고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나라 노동자들은 머리 왼쪽으로는 전투적 노동조합 운동 사상을 갖고 있고, 머리 오른쪽으로는 민중주의 사상을 갖고 있다. 나는 이게 극복 불가능한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서구 노동자들도 머리 왼쪽은 먹고 사는 문제들에 관한 생각으로 차 있고, 오른쪽은 사회민주주의(요즘은 좌파적 사회민주주의) 정치인들의 사회개혁 이슈들로 차 있다. 내 생각에 정치와 경제의 분리로 불리는 이 현상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정치체제와 관련 있는 듯하다.

둘째, 한국 노동자들의 민중주의 정치가 서구 노동자들의 사회민주주의 정치보다 좀 더 좌파적이고 투쟁적이라는 점이다. 전지윤은 이 나라의 노동계급과 그 운동의 상황에 맞지도 않는 일부 신(新)마르크스주의 이론들을 절충해,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을 조직 노동계급으로 환원하는 문제점을 지녔다는 둥 노동계급을 생산 과정에 현재 포함된 부분만으로 보았다는 둥 하는 주장을 한다. 이 글은 그런 ‘최신’ 유행을 놓고 토론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지금 여기’의 경험들에 관해 내가 아래에서 논술하는 바만으로도 전지윤의 주장이 현실과 실천 모두에 부합하지 않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나는 위 인용문의 전지윤 주장과 달리 20년 전의 한국 노동자들에 비해 지금의 한국 노동자들이 약화됐다거나 “사회적 고립”에 직면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지윤의 관찰은 단순한 인상에 불과하다. 백보 양보해 이 인상이 정확한 것이라손 쳐도, 영국 전교조(NUT) 조합원이자 사회주의노동자당(이하 SWP) 중앙위원이었던 고(故) 던컨 핼러스가 종파주의를 경계하며 한 말이 적절한 충고일 것이다. “작업장 투쟁이 아주 침체된 퇴조기에조차 노동조합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수수방관하는 것은 종파적 태도이다. 투쟁이 가장 침체된 시점에서도 노동조합은 계급투쟁과 미약하나마 유기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 이 점에서 [개혁주의 정당들]은 그 상대도 안 된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노조 지도자들이 온건하다 못해 보수 수구적이라 할지라도 이것은 여전히 참말이다.

넷째, 나는 안기부법에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이고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것은 “경제적 조건과 요구”를 둘러싼 투쟁(경제투쟁 또는 산업투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개혁을 강요하는 것이 정부라는 점에서도, 또 노동자들이 싸워야 하는 대상이 정부와 집권 여당과 의회 기구들이라는 점에서도, 그리고 이 저항이 성공하려면 노동자들이 계급 전체적으로 싸워야 한다는 점에서도 노동개혁 반대 투쟁은 정치투쟁이다.

다섯째, 전지윤의 꿈인 “부문을 넘어선 전체 노동계급이 ‘무제한 투쟁’을 벌이는 미래”는 우리의 꿈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런 상황은 혁명적이거나 어느 정도 혁명적인 상황이다. 그런 상황이 시작되는 것은 노동계급의 일부분이나 다른 천대받는 사람들의 일부분에서다. 이를 건너뛰고 통속적 의미의 ‘정치적’ 요구와 ‘정치투쟁’을 물신화하는 것은 초좌파적 선전종파주의를 넘어설 수 없다.

한국 노동계급의 상태에 대한 오해와 잘못된 전망

이런 물음들을 염두에 두고 전지윤의 정세관을 살펴보자. 그에 따르면, 박근혜 정부의 ‘종북’ 마녀사냥과 진보당 탄압 때문에 노동계급은 자력으로는 전진할 수 없다. 특히 조직 노동자들은 “사회적 고립”을 면치 못하고 있다.(그는 “조직 노동운동[이] 사회적으로 고립돼 있다”고 여러 글에서 강조한다.) 그런데도 우리 단체는 “노동계급의 귀환”을 “10년 가까이”[i] 마치 메시아 기다리듯이 헛되이 학수고대해 왔다고 한다. 전지윤은 이 상황을 돌파하려면 서로 연계된 두 가지 운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나는 노동자뿐 아니라 광범한 민중이 대중적 민주주의 운동을 일으켜야 하고, 다른 하나는 민중연합당을 엄호해 진보정당을 재건해야 한다. 노동계급의 주도력(헤게모니)을 말하는 건 비현실적이다. 특히 이 지점에서 그가 “민중주의에 끌리”게 된다.

먼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와 근래 20년간의 사회운동 속에서 농민이 상당한 구실을 하는 것처럼 과장하는 것 자체가 우리로 하여금 실소를 금치 못하게 한다.(농민에 대한 자민통계의 민중주의적 개념은 그 조류 출신자인 민경우 씨가 날카롭게 비판한 바 있다.) 빈민도 한국 사회 계급 구조 속에서 소수이고, 그나마 그들의 적지 않은 부분은 노동계급에 속하거나 이와 뒤섞인다. 아무튼 지난호 기사에서 나는 노동계급이 중간계급을 적대해선 안 되지만, 계급간 구분을 흐려 버려서는 안 되고, 그들의 모호한 민중주의 정치에 이끌려서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전지윤은 지배계급의 일부와 동맹하는 것만 민중주의이지, 중간계급(들)과 동맹하는 건 민중주의가 아닌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민중주의의 핵심은 도시와 농촌의 중간계급(과의 동맹)이다.

노동계급은 실은 이미 귀환했다. 도대체 박근혜 취임 이래 지난 3년간 가장 치열하게 싸운 게 민중 가운데 누군가? 농민인가, 빈민인가? 물론 2013년 중엽에는 청 · 장년들도 국가기관의 대선 개입에 항의하며 싸웠고, 2014년과 2015년의 중엽에는 청년 · 학생들도 세월호 참사에 항의했다. 하지만 박근혜의 공격이 집중됐고, 가시적 성과 면에서는 방어에 실패했지만 줄곧 치열하게 저항한 건 노동계급, 특히 민주노총으로 조직된 노동자들이었다: 전교조, 철도, 케이블통신, 삼성전자서비스, 택배, 건설, 조선, 공무원, 공공, 보건, 홈플러스 등등.

무엇보다 민중총궐기는 본질적으로는 노동자 투쟁이었다. 여기서 잠깐 내 기사를 인용하고자 한다. 전지윤이 내가 민중주의와 민중총궐기를 평가절하한 것으로 오해하는 듯해서다. 아래 인용문에서 보듯이 나는 민중총궐기를 노동자들의 자신감이 부분 회복되는 징후로 보았다.

“[민중주의는] 노동계급 의식 발전의 초보적 국면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지난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로 볼 수 있다. 아직은 그 수준이 파업 투쟁으로 자본주의 이윤 자체를 공격할 의지 수준으로는 상승하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동시에,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마르크스주의자는 이 모순을 봐야 한다. 전자를 보지 못하고 후자만 본다면 노동운동이 침체하고 있다는 그릇된 인상을 얻을 것이다. 후자를 보지 못하고 전자만 본다면 민중주의(그리고 그 계급 협력주의의 논리적 귀결인 개혁주의)에 대해 무방비 상태에 놓일 것이다.”

민중총궐기의 압도적 주력부대가 노동자였다. 사회적 구성 면에서 민중총궐기는 노동자 운동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주노총이 조직했다. 매년 11월 13일 직전에 열리는 전국노동자대회를 민중총궐기 형식으로 치러 약간의 농민과 빈민이 좀 더 붙은 것이다. 청년 · 학생과 진보 · 좌파 단체 회원 등은 언제나 노동자 집회에 동참해 왔다. 2차, 3차, 4차 민중총궐기의 구성도 압도적으로 조직 노동자들이었고, 이 점에서 이 운동들도 사실상 노동조합이 동원한 것이다. 총궐기의 요구들을 보아도 대부분(전부는 아니다) 노동계급의 요구로, 이 점에서도 궐기는 노동계급적이었다.

민중총궐기들은 또한 노동자들의 앞선 활동과 무관하지 않았다. 산업 현장에서의 선동과 썩 흡족하지는 못했어도 크고 작은 여러 노조들의 파업들이 누적돼 온 결과가 노동자대회를 계기로 거리 항의로 나타났다고 봐야 한다. 노조 지도자들이 파업 소명에는 부담을 느꼈어도 거리 항의로 소명하는 데는 그래도 용기를 보였는데, 이에 조합원들도 파업보다는 좀 덜 부담감을 느끼며 응답한 것으로 봐야 한다.

마치 우리 단체가 이 일련의 민중총궐기들을 평가절하하기라도 한 양 오해한 채, 전지윤은 민중총궐기야말로 박근혜의 ‘노동개혁’ 공세를 막고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한다. 당연한 말이다. 기본적으로 ‘민중’이 아니라 노동자들(특히 조직된)의 운동이었던 덕분이다. 하지만 그랬기에 2차 궐기부터는 급속히 규모가 줄었다. 정부의 탄압도 한몫하긴 했지만, 그보다는 ‘노동개혁’ 법안들이 총선 전 국회에서 통과되기 어려울 것 같다는 관측 때문이었다. 그리고 총선을 의식한 여야 정치인들의 몸 사림도 고려해야 하고, 공천을 둘러싸고 육두문자가 오가는 집권당의 분열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한편, 전지윤이 자민통계가 다 조직한 것처럼 착각하는 총궐기 운동이 왜 테러방지법은 막지 못했을까? 특히 자민통계가 우려할 만한 쟁점인데도 말이다. 노동자들의 관심사가 노동개악에 집중됐기에 테러방지법은 안타깝게도 결국 통과됐던 것이다. 그리고 훨씬 더 폭넓고 대규모로 민중의 지지를 받았던 세월호 참사 항의가 당면 목표 성취에 미달하며 좌절을 겪어 온 이유도 비슷하다. 곧, 한국 같은 제3세계 출신 신흥국의 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 이슈가 아닌 경우에는 흔히 민중주의자들이 지도하도록 맡겨 놓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지난호 기사에서 이 점을 지적했는데, 이것이 내가 민중주의에 관해 그 기사를 쓴 이유다.

<파이낸셜 타임스>나 <뉴욕 타임스> 같은 세계 유수의 자본가 언론들의 보도를 보아도 시사적이다. 그들은 1차 민중총궐기가 크게 일어났을 때 “민주노총 노동자들의 시위”라며 우려하는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한편, 세월호 참사에 관해서는 항의 운동보다는 참사 자체와 정부의 구조 난맥상과 실책들에 초점을 맞추어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14일 1차 민중총궐기. ⓒ이미진

민중총궐기 얘기가 나온 김에 집회 준비 과정에서 전지윤이 보인 실천 자체를 살펴보기로 한다. 먼저, 사회주의자인 우리는 노동자들의 가두 항의 운동인 민중총궐기를 지지하면서 그것이 자본가들의 이윤에 타격을 가하는 파업이라는 투쟁 형태와 결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노렸던 것이다. 우리는 노동자들의 거리 항의를 당연히 지지하는 한편, 그것이 대중 파업과 결합되기를 염원했다. 이게 애써 반대 받을 일인가? 역사적으로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Street’(가두 시위)와 ‘Strike’(파업)를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설사 후자의 가능성이 크지 않은 상황에서도 혁명가라면 파업 찬반 논쟁에서 애써 반대론자들의 손을 들어 주지 않을진대, 당시는 노동개악 반대를 위해 파업할 태세가 돼 있다고 노조 지도자들이 각종 집회 연단에서 공언을 한 상황이었다.

‘변혁’주의자를 자처함에도 어처구니없게 전지윤은 노조 지도자들에게 파업 촉구하는 것을 아예 반대했다. 조직 노동운동이 “사회적 고립”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위 “[조직 노동자 운동의] 사회적 고립” 명제는 전지윤의 여러 글에서 되풀이되는 주제이지만, 그 자신이 참석한 총궐기 준비 회의에서 벌어진 논쟁 속에서, 특히 2차 총궐기 기조와 개최 방식을 두고 벌어졌던 논쟁 속에서 그 수동적 · 추수적(追隨: 꽁무니 좇기) 본질이 가장 잘 드러났다. 일부 자민통계 참석자들은 2차 총궐기의 명칭과 기조를 변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총궐기라는 명칭 대신에 범국민대회나 백남기 농민 살인진압으로 명칭을 바꿔 민주주의적 쟁점을 부각시키자는 것이었고, 그에 따라 대회 기조도 변경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이에 노동자연대 측은 집회 명칭을 변경해야 할 불가피성을 인정한다 해도 집회 기조에 노동개악 문제가 핵심적으로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핵심 주최 측인 민주노총이 12월 5일로 2차 민중총궐기를 잡은 것도 그때쯤 노동개악 법안의 국회 통과와 그에 반대한 파업을 염두에 둔 계획이므로 사회단체들은 그것을 지지하고 엄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반면 전지윤은 시민들이 폭넓게 참가할 수 있도록 집회의 명칭을 변경하고 노동 문제보다는 민주주의 문제를 부각시켜 집회 기조를 톤다운 시키자는 일부 자민통계의 주장에 동의했다. 노동자 요구와 투쟁을 앞세우는 것이 별 도움이 안 되고 어차피 민주노총 총파업은 가능하지도 않다고도 덧붙였다. 민주노총의 총파업이 계획돼 있고 노동개악이 본궤도에 오를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놓은 이런 제안이 민중주의적이 아니면 무엇인가?

민주노총 측은 노동개악 문제를 부차화하자는 일부 자민통계의 주장을 선뜻 지지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논쟁에 끼어들지도 않았다. 결국 논쟁이 이어지면서 결론이 나지 않자 추후 공동집행위원장 회의에서 다시 논의하자고 했다. 이후 열린 공동집행위원장 회의에서 자민통계는 대다수 참석자들에게 용인될 만한 타협안을 내놓았다. ‘1부 집회 총궐기대회, 2부 집회 범국민대회’라는 안이었다.

1차 민중총궐기 후인 2015년 11월 27일 전지윤은 그의 블로그에서 이렇게 논평했다:

“1차 총궐기는 오랜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 노동·농민·빈민 대중조직과 주요 사회운동단체들의 결집을 성공시켰고, 이를 바탕으로 외연 확장의 가능성까지 보여 줬다. 이것이 계속 확대·발전한다면 박근혜 정부에게 위협이 될 가능성은 분명하다. … 그래서 집요하게 ‘불법·폭력·종북’을 부각하며 시민사회 진영과 중간층이 민중진영과 거리를 두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이다. …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먼저 노동·농민·빈민 대중조직과 사회운동단체들의 결집이 단단히 유지되고 기층과 지역으로 더 깊숙이 뻗어나가는 것이다. … 민중운동 진영을 시민사회 진영, 중간층과 분리·고립시키려는 노림수를 잊지 말아야 한다. … 이런 방향[민중의 단결]을 가장 효과적으로 실현한다는 틀 속에서 ‘2차 총궐기의 기조로 평화집회를 내세울 것이냐 말 것이냐, 민중총궐기인가 시민대행진인가’가 고민돼야 한다.”

사회주의자들의 노동자 파업 촉구를 지지하기를 냉담하게 거절할 만큼 노동계급의 잠재력을 불신하는 전지윤의 정세 인식에서는 자연히 계급이 해체되고 계급 동맹인 ‘민중’이 매우 중요해진다. 특히, 민중총궐기 전후로 보여 준 그의 실천이 민중주의가 아니면 뭔가.

‘무슨 무슨 주의’라는 말을 남발하지 말라고 그가 내게 또 쏘아붙이겠지만 그에게 반문하고 싶다. 전지윤은 사람들이 그를 아무리 자주 ‘마르크스주의자’, ‘(개혁주의자가 아닌) 변혁주의자’라고 불러도 반발하지 않을 것이다. 또, 누가 문재인을 자유주의자라고 불러도 그에게 이의 제기를 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예는 무수히 많을 것이다. 즉, ‘무슨 무슨 주의’ 하지 말라고 할 때는 실은 라벨 붙이기 자체보다는 자기가 느끼기에 부정적 어감을 지닌 특정 라벨이 동의하기 어렵게 붙여지는 것에 반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의’라는 말 좀 하지 말라고 요구하기보다 그 용어가 특정 대상에게 정확하게 적용된 것인지를 따지는 게 토론에 도움이 된다. 가령 전지윤은 자기가 “결코 ‘공무원연금 개악을 수용하고, 민주노총 총파업에 반대하며, 민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 등 계급협력을 추진하자’는 입장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물론 그는 순도 백 퍼센트 민중주의자가 아니다. 그래서 위 인용문에서 보듯이, 나는 그를 조심스럽게 “이들[민주노총 내 민중주의자들]의 생각을 잘 대변한 한 민중주의적 논평”을 한 사람, 또 “기회주의적으로 그[민중주의]에 끌리”고 있는 사람으로 묘사했다. 특히 문맥과 맥락을 고려해 읽어 보면, 2차 민중총궐기를 앞두고 벌어진 민주노총 총파업 가능성/필요성 논쟁에서 그가 일부 자민통계(특히 민중연합당계)와 공조했던 사실을 가리킴을 알 수 있다.

진보정당들에 대한 차별화된 편견

전지윤은 우리가 정의당에는 우호적인 데 반해 민중연합당에는 별로 우호적이지 않다고 비판한다. 또한 내가 노동자 운동이 우리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투쟁 수위를 보여 주지 못하는 원인을 자민통계의 민중주의 탓으로 돌린다고 오해한다. 그러나 나는 자민통계만이 민중주의적이라고 하지 않았고, 자민통계만이 민주노총에 파업 촉구하기를 거절했다고 하지 않았다:

“한국 민중주의의 대표적 사례는 ‘자민통’ 계열(이하 자민통계), 참여연대 등 진보적 NGO들 그리고 정의당 등이다. … 민주노총 내 국민파·전국회의·중앙파 등도 민중주의적 경향이다. 하지만 이보다 훨씬 더 많은 노동운동가들이 민중주의적 경향을 띤다. … 자민통계뿐 아니라 국민파, 중앙파 간부들도 이제 ‘사회적 고립 자초할 총파업 얘기 그만하고 국민적 지지를 받을’ 싸움을 하자며 민중총궐기를 강력히 제안했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우리는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모두에 대해 (비판적) 지지를 제공하는 입장이다. 둘 다 개혁주의 전략을 추구하고 있지만, 노동조합 지도자들을 핵심 기반으로 삼는 진보 · 좌파 정당들이기 때문이다. 물론 둘은 사회적 기반이 조금 다르다. 정의당은 추가적으로 진보 · 좌파 지식인 기반도 있다.

한편 민중연합당은 장차 중소 자본가 계급 소수의 지지와 북한 관료의 (미온적) 지지를 얻게 될지도 모른다. 지금으로선 자민통계가 국가 탄압을 받고 있으므로 그 계파들은 대부분 중소 자본가 계급 일부의 지지를 얻기 어려울 것이다. 자민통계가 또한 지금 단일 정당을 건설하지 못했으므로, 민중연합당은 북한 관료의 확실한 지지를 얻지 못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북한 국가가 존속하고 자민통계의 역사적 전통이 폐기되지 않는 한, 자민통계가 북한 통치자들의 지지를 받길 원한다는 점과 남한 자본가 계급 일부와 동맹한다는 전략을 추구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전통은 그것이 확립된 역사적 조건이 크게 바뀌지 않는 한 쉽게 폐기되지 않는 것이다. 가톨릭 교회가 공공연한 동성애자에게 주교 서품을 주는 것으로 전통이 바뀌려면 아마 기존 사회의 전면 변혁이 요구될 것이다.

전지윤은 자민통계가 혹심한 탄압을 받고 있는데 무슨 계급 연합이냐고 반문한다. 하지만 인민전선(민중주의의 최고 형태)은 공산당이 ‘부르주아’(드러내놓고 자본주의를 수호하는) 정당과 전략적 동맹을 하는 것으로, 해당 부르주아 정당이 실제로 부르주아지에 기반을 뒀느냐는 하등의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 공산당이 정식으로 연립정부에 참여하느냐 여부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1936년 스페인 인민전선 정부의 등장 과정에서 공산당이 급진당(당명과 달리 자유주의적 친자본주의 정당이었다)과 동맹 맺은 것을 비판하면서 트로츠키는 급진당이 “스페인 부르주아지의 그림자”라고 표현했다. 스페인 부르주아지가 당시 스페인 사회에선 중간계급이었던 데다 매우 약체인 계급이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프랑스 공산당은 프랑스 인민전선 정부에 정식으로 참여하지는 않았어도 인민전선 정부와 그 구성 정당들에 의해 동참 세력으로 대우받았고, 자신도 그렇게 처신해야 했다.

트로츠키는 또한 러시아 혁명을 돌아보는 자리에서 설사 러시아에 부르주아지가 존재하지 않았었다 해도 멘셰비키는 부르주아지를 “창조해 냈을 것”이라고 재치 있게 멘셰비키의 계급 협력주의를 비꼰 적이 있다.

우리가 정의당과 민중연합당 또는 더 일반으로 자민통계를 차별한다는 전지윤의 비판은 근거 없는 주장이다. 우리 신문 기사 가운데는 정의당의 핵심 리더들인 노회찬 · 심상정과 그 당의 주요 정치인들인 김종대 씨와 조성주 씨에게 매우 비판적인 글들이 포함돼 있다. 물론 정의당에 입당한 양경규 전 공공연맹 위원장 등 노동정치연대 소속 친노동운동가들에게는 우리가 더 우호적인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좌파 노동단체가 정의당의 상이한 계파에 대해 이런 상대적 친화성(무비판적인 건 아니다)을 드러내는 게 무슨 문제인가?

물론 전지윤의 불만처럼, 우리가 민중연합당에 특별히 우호적이지는 않다. 자민통계가 민중연합당의 창건 문제를 놓고 의견이 첨예하게 대립했고, 따라서 민중연합당이 진보당의 후신이라고 할 수 없으므로 괜시리 나머지 자민통계 계파들에 오해나 반감을 주지 않겠다는 배려도 있다. 물론 전지윤의 관측대로 우리는 2012년 진보당 내 경선에서 당권파의 부정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전지윤은 여전히 당권파의 경선 부정은 없었다는 확증 편향을 갖고 있지만 이 문제로 그와 다시 논쟁하는 건 아무 독자에게도 도움이 될 성싶지 않다. 혹시 궁금한 사람이 있다면, 2013년 1월 초 노동변호사인 노동자연대 회원이 패널 자격으로 연단에 선 전(全) 회원 토론회에서 전지윤의 주장을 “믿음에 불과한 것”이라고 부르며 반증을 제기한 발제문을 이 신문 웹사이트에서 찾아 읽어 볼 수 있다(링크).

어쨌든 우리가 정의당보다 자민통계를 경원시한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참말이 아니다. 자민통계의 리더급 인사 J모 동지와 H모 원로는 우리가 소위 NL-PD 갈등과 정파간 갈등에 최대한 공정하려 애쓴다고 인정한 바 있다. 우리는 지난해 9월 이 신문을 통해 자민통계도 포함되는 일종의 선거용 진보 · 좌파 빅텐트를 공개 제안했고, 그 뒤 자민통계 리더급 인사들이 우리와의 면담을 요청해 우리측 담당자가 그들과 우호적인 만남을 가졌고, 그 직후 민주노총도 이와 비슷한 선거연합정당 안(案)을 진보 · 좌파 정치조직들에 제안했다.(아쉽게도 민주노총의 제안 시점은 다소 뒤늦은 편이어서, 이미 선거 준비에 들어간 주요 정당들이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울산 북구와 동구의 예비경선에서도 우리는 북구의 경우 자민통계 후보를, 동구의 경우에는 노동당 후보인 이갑용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응원했다.

오히려 우리가 보기에 전지윤이야말로 편견(편향)을 갖고 있다. 정의당에 대해서는 비판 일변도이고, 민중연합당에 대해서는 아첨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태도 말이다. 혹시 이런 편향된 시각에서 보면 우리 단체가 정의당에는 친화적인 반면 민중연합당에는 부정적이라고 인지될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편향은 위에서 다룬 그의 정세 인식(진보당 재건 안 되면 노동운동의 돌파구가 열리지 않는다는)에서 비롯하는 것이다.

이와 달리, 기본적으로 진보 · 좌파 성향 단체나 운동, 개인에 대한 우리의 판단은 다음과 같다. 첫째, 말보다는 실천이 우선 고려돼야 한다. 둘째, 사안에 따라 다르다(따라서 전술적이다). 우리를 포함해 어느 한 단체나 개인, 운동이 언제나 올바른 입장을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셋째, 이론이나 이데올로기를 앞세워 판단하지 말아야 한다. 종파주의를 피하기 위해서다.

공무원연금 투쟁에 대한 추상적 선전종파주의

전지윤은 공무원연금도 지켜야 했고 공적연금 강화도 지지했어야 한다고 절충적으로 주장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맥락 속에서 문제를 볼 줄 알아야 한다. 레닌이 좋아한 헤겔 말대로 “진리는 구체적이다.” 공적연금 강화가 집회 슬로건으로서 강요됐을 때 그에 불가피하게 타협해야 했지만, 전술은 슬로건과 다르다. 공적연금 강화로 나아가기 전에 먼저 박근혜 정부의 공무원연금 공격부터 좌절시켜야 했다. 당장에 공격이 들어오고 있는 판에 그것을 반대하고 막을 생각은 중요하지 않은 양 일축하고 둘 다 필요하고 중요하다는 식은 개혁주의 노조 지도자들로 하여금 곤경을 면하게 해 줄 뿐이다. 공무원연금 방어 문제가 이슈인 지난해 봄 상황에서 공적연금 운운한 것은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연막이었을 뿐이다. 어떻게 좌파적 공무원 조합원들이 이충재의 책략과 이충재 등 개혁주의 관료의 영향력에 도전할 수 있도록 돕느냐가 중요했다.

공무원노조원인 전지윤 그룹 회원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 투쟁 초기인 2014년에 쓴 두 기사에서 공무원연금 문제를 놓고 제대로 싸우기 위해서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문제와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상적으로는 옳은 주장이었을지 몰라도, 정부가 공무원연금 개악을 통해 공적연금과 공공부문에 대한 전반적 공격으로 나아가려 하고 있으므로 당면 전술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여야 했다. 글의 논조는 국민연금, 기초연금 문제를 결합시키지 않으면 공무원연금 투쟁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식이었다. 당면한 공무원연금 삭감 공격을 막아야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 전반에 대한 개선 논의도 훨씬 쉬워질 수 있었을 텐데도 말이다. 그는 노동자연대가 발의했던 ‘대타협기구 탈퇴와 민주노총 총파업 일정에 동참하기’ 연서명, ‘이충재 사퇴’ 연서명 등 여러 연서명에 참가하지도, 호응해 주지도 않았다. 공무원노조 좌파에 속한 활동가들은 대체로 이 연서명에 호응했던 것에 비춰 보면, 공무원노조원으로서 그 회원이 진지하게 연금 방어와 이충재 반대를 했다고 하기는 힘들 것 같다.

전지윤도 2014년 12월부터 2015년 5월까지, 특히 지난해 4월 24일 민주노총 파업부터 5월까지 투쟁이 한창이던 때 공무원연금 투쟁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이 시기는 전교조 연가 투쟁과 이충재 공무원노조 집행부의 배신이 교차한 결정적 시기였는데도 말이다. 겨우 하나 발견할 수 있는 글로 전지윤 자신이 쓴 짧은 기사가 있다. 거기서 그는 대타협기구 탈퇴 촉구가 부질없는 짓인 것처럼 묘사하고 있다. “노동운동 내 좌파들도 주로 ‘지도부는 협상테이블에서 나오라’는 비판에 주력했지, 다른 방향과 대안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6월 8일에 쓴 글은 투쟁을 돌아보는 논평 글인데, 거기서 전지윤은 “현장에서 잘 싸우기 위해서도 대안과 방향이 분명해야 하고 우호적 여론과 연대가 필요하다”면서, “한국의 공적연금 지출과 사회임금 비중을 대폭 늘리기 위한 투쟁이 건설되면서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그 투쟁의 일부가 됐다면.” 하고 아쉬워한다.

바로 이 대목에서 전지윤의 추상적 선전을 앞세운 종파주의가 잘 드러난다. 그가 다루는 상황은 진보 · 좌파 정당이나 급진좌파 연합이 각각 당 강령이나 행동강령 작성을 놓고 토론하는 것과 같은 상황이 아니다. 업종별이나 산업별로 조직되는 노동조합과 정치적 견해를 기초로 하는 정당은 질적으로 다르다. 노동조합, 그것도 그 한 부분이 자기에게 고유한 쟁점(공무원연금 삭감 위험)을 놓고 적들의 집중포화를 받는, 실로 눈앞에 닥친 상황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상적인 강령(공적연금과 사회임금 인상 요구와 결합되는)에 비추어 보자면 현 공무원노조 좌파 활동가들의 연금 삭감 반대는 “우호적 여론과 연대”를 얻기 어렵다’는 식의 회색주의자 같은 태도는 추상적 종파주의의 발로일 뿐이다. 종파주의자들은 “노동자들의 구체적인 투쟁에는 관여하지 — 그렇게 하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 않으면서, 이상론적이어서 추상적인 아이디어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데 여념이 없다.”(던컨 핼러스) 또, 트로츠키는 이렇게 지적했다. “마르크스주의 서클로 존재하는 동안 노동자 운동에 대해 추상적으로 접근하는 습성을 몸에 익히고, 체질화한 행동반경을 시간이 지나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어쩔 수 없는 종파주의자로 고착된다. 그들은 세계를 자기가 선생으로 있는 커다란 학교로 여긴다.”

전지윤이 다양한 반(反)SWP 이론을 갖다 쓰고 있으므로 나도 전지윤과 비슷한 입장을 취한 영국 종파주의자들의 사례를 하나 들어 보겠다. 2011년 11월 2백50만 명이 참가한 사상 최대의 공공부문 파업이 벌어졌다. 그 핵심 요구는 공공부문 노동자 연금 삭감 반대였다. 그때 일부 좌파는 그 투쟁이 ‘공공부문 노동자들만의 경제주의적 · 부문적 요구를 내놓아, 긴축재정 전체에 반대하는 투쟁으로 보기 어렵다’는 이유를 들어 파업 건설에 거리를 뒀다. 그들의 영향력은 전무했다. 전지윤 그룹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지난해 4월 말과 5월, 전지윤측 블로그의 글들은 공무원연금 방어 투쟁 대신에 세월호 참사 문제에 집중됐다. 물론 세월호 참사 항의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우리 단체 자체뿐 아니라 대다수 학생 회원들도 학업 등 만사를 제쳐 두고 그 운동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전지윤이 이 문제에 견줘 공무원 투쟁의 비중을 낮춰 잡은 건 그가 전술 문제에서 약점을 보이는 것뿐 아니라 조직 노동자 투쟁에는 큰 의욕을 보이지 않는 것의 반영인 듯하다. 심지어 패배가 뻔할 것 같은 투쟁이라고 해도 거기에 뛰어들어 동료들과 전투를 함께 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전략에 도움이 되는 경우가 꽤 있다.(전술과 전략의 관계는 기계적이지 않다.) 치열한 전투는 곁에 비켜서서 구경한 후, 나중에 논평이나 하는 태도는 수동성과 대중 추수의 표현일 뿐이다.

전지윤은 나 또는 우리 단체가 최저임금 문제를 무시한 것처럼 오해하고 있는데, 김하영 동지가 그의 글에서 분명히 밝힌 바대로 우리는 그 요구를 분명히 지지했(한)다. 이 경우에도 문제는 구체적 맥락이다. 지난해 내내 민주노총 내 민중주의자들은 ‘공무원연금 지키는 문제보다 최저임금 1만 원이 광범한 국민들의 지지를 받는다’, ‘최저임금 인상 문제로 연석회의를 여니 순식간에 시민사회단체 2백여 곳이 서명을 했다’, ‘노동개악 반대보다 비정규직 문제를 부각시켜야 “대중적” 지지를 얻는다’ 등등의 민중주의적 주장을 공공연히 펴고 있었다.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한 민주노총 좌파들도 이런 생각을 공유하거나 아니면 그에 타협하고 있었다. 그러나 민주노총의 압도적이고 주된 부문들이 공공과 민간의 대기업에 고용된 노동자들일진대, 이들이 당장 자신들을 겨눈 박근혜와 사용자들의 칼날에 저항해야, 이들보다 빈약하게 조직됐거나 아예 조직되지 못한 노동자들도 그 저항에 고무돼 싸울 수 있는 것이다. 이런 현 시기 계급 의식의 불균등성을 고려하지 않고 전지윤처럼 하나마나 한 소리, 곧 “단결 투쟁을 통해 정규직과 비정규직 모두의 조건을 개선하자”는 것은 비정규직 폐지 투쟁 또는 비정규직 차별 폐지 투쟁들의 전술 목표이지, 그 전술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은 아닌 것이다.

전지윤이 잘못된 양자택일을 피하려 하는 점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이 변증법에 못 미치면 중도(中道)를 걷는 것으로 끝나게 될 것이다. 개혁과 혁명이 둘 다 필요하다는 당연한 주장은 개혁주의자와 날카롭게 논쟁할 때엔 쓸모없는 공문구가 된다. 왜냐하면 개혁주의란 그 정의상 혁명의 가능성 그리고/또는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1890년대에 이런 사상의 유명한 대변자 베른슈타인과 논쟁한 로자 룩셈부르크는 ‘개혁이냐 혁명이냐’ 하고 첨예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이와 비슷하게도, 혁명적 상황에서 아래로부터 노동자 권력이 생성되고 있을 경우, 총선이나 새 의회 같은 개혁 조처들이 때로 혁명적 세력을 고립시키기 위한 지배자들의 책략으로 제안될 수도 있다. 이때 둘 다 의미 있다는 식은 중간주의적 두길보기일 뿐이다.

관조적 · 추수적 ‘분석과 예측’

전지윤은 지도부든 현장조합원이든, 어느 연맹 위원장이든 아무도 투쟁성을 발휘하지 않았는데, 왜 특히 자주파와 한상균 지도부 탓을 하냐고 우리에게 반문한다. 그러나 이는 오해다. 우리는 온건한 지도자들을 더 비판했고, 한상균 지도부에 대해 종종 다룬 것은 전지윤과 달리 우리가 한상균 지도부를 함께 배출한 다른 민주노총 좌파들과 토론했기 때문이다. 그들과 나눈 대화들이 신문 지면의 주요 소재였다. 왜 좌파들의 정치가 쟁점이었나? 대체로 민주노총 좌파들은 민중주의자들이 개혁주의적 노조 지도자들의 파업 회피를 비호하는 문제를 회피했다. 좀 더 급진적인 좌파들도 노조 지도자들을 압박하는 문제를 회피한 채(쓸데없는 일이라고 보아), ‘아래로부터의 총파업’ 촉발 시도에 매진하고 있었다. 그래서 안타깝게도 좌파는 정치적 경쟁자들의 핵심적 약점을 극복할 수 없었다. 경쟁자들이 민중주의적 논리를 앞세워 부담스런 파업 투쟁 방식을 극구 회피하는 것에 효과적으로 도전할 수 없었던 것이다.

마치 트로츠키가 1930년대 초 히틀러의 집권 위험이 넘실거리던 독일에서 사회민주당과 공산당 가운데 공산당에 호소해야 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는 나치의 등장을 막으려면 공산당이 초좌파적 종파주의 노선을 버리고 공동전선 정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럴 가망성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의 당시 글을 읽다 보면 그의 탄식 소리가 생생하게 들린다. 그럼에도 그는 설득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 당시 트로츠키가 독일 공산당에 개입하면서 했던 것처럼 정세 인식은 관조적인 자세로 해서는 안 된다. “이론은 회색이지만, 생명나무는 늘 푸른색”인 것이다.

혁명가들에게 낙관이란 난관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난관을 직시하면서도, 그 모든 난관에도 불구하고 한 가닥 가능성과 기회를 볼 줄 아는 것을 뜻한다. 아예 가능성과 기회가 없다면, 그람시가 무솔리니의 감옥에서 곱씹은 로맹 롤랑의 말, “지성의 비관론과 의지의 낙관론”이 우리에게도 좌우명이 돼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비관적 정세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왜 특별히 노동계급만 싸울 자신이 없어야 하는지 설명이 안 된다. 특히,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파업을 소명할 자신은 없어도 거리 항의를 소명할 자신은 있다.

그리고 자발성은 “기계적 자발성”이 아니다. 이 말을 한 그람시는 인간 행위주체가 작용(활동)함으로써 자발성이 작용한다는 뜻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정세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는 객관적 조건도 실제로는 어느 정도 인간적인 객관성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백보 양보해 조직 노동계급의 현재 사기와 투쟁할 자신이 설사 많지 않다고 해도 진정한 혁명가라면 그의 능동적 · 변혁적 세계관에 따라, 그저 조직 노동자 운동 바깥에서 단지 이데올로기 투쟁(선전 · 선동)만 할 게 아니라 그 운동 안에서 조직하고 논쟁해야 한다. 그리고 그 초기 결과를 객관적 조건들에 포함시켜 분석의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존 몰리뉴가 ‘마르크스주의는 결정론적인가?’라는 훌륭한 논문(《인터내셔널 소셜리즘》 68호, 1995년 가을)에서 말한 아래 구절 가운데 내가 굵은 글자체로 처리한 부분에 특별히 주목해야 한다: “어느 한도 안에서 개별 사회주의자 투사든 혁명적 당이든 계급투쟁의 수위를 주어진 것으로, 즉 그 개인이나 그 당의 의지와 관계없이 객관적으로 결정된 것으로 여겨야 한다.” 노동계급의 조직 상태와 의식 수준을 분석할 때 혁명적 사회주의자들과 그 조직의 역할을 처음에 고려하지 않고 시작하는 것은 어느 한도 안에서이다! 이 “어느 한도”는 매우 작은 부분으로, 실제로 해 봐야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노동운동의 상황을 비교적 정확하게 측정하려면 혁명가들의 일상적 운동 관여와 그 효과의 일상적 측정이 필수적이다. 실험과 실험 결과의 평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전지윤의 분석에는 이 실험이 빠져 있다. 물론 아예 가능성이 없는 일에 매달리려 한다면 그저 의지만 앞세운다는 비판을 받아도 쌀 것이다. 그러나 1차 민중총궐기 10개월 남짓 전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직선으로 한상균을 뽑은 것은 조합원 다수가 싸울 의지를 보여 준 것으로 두루 풀이되는 일이었다. 4월 말 파업이 예정대로 벌어진 직후 민주노총 좌파 활동가들은 그럭저럭 만족을 나타냈다. 첫술에 배부르랴 하는 현실감각을 모두 공유했던 평가였다. 7월 파업은 그 전에 공무원연금 방어에 실패하면서 동력이 없어 흐지부지됐다. 하지만 총궐기 두 달 전쯤 열린 민주노총 단위노조 대표자회의에서는 그 직전 이뤄진 노사정 합의에 반발한 대표자 다수가 즉각적인 파업안에 찬동할 태세였다. 결국 회의 끝 무렵 대표자들은 파업 일정을 확정했다. 그래서 실제로 9월 23일 파업이 벌어졌다. 이런 정서들이 투쟁 의지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떤 고차원의 기준에 비춰 우리의 ‘분석과 예측’이 너무 낙관적이었다는 것인가?

지난해 여름 우리는, 1996년 연말 파업을 상기시키며 노조 지도자들의 소명 없이도 극소수인 자기들만의 노력으로 현장에서 파업을 일으킬 수 있다고 주장하던 일부 좌파들의 계획이야말로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보았다. 하지만 우리는 관조적이지 않았다. 지나친 낙관론의 문제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지도자들에게 아래로부터 압박을 가할 필요성을 강조하며 그들과 토론했던 것이다.

레닌이 좋아한 나폴레옹 말처럼 “길고 짧은 건 대어 보아야 안다.” 분석과 예측 문제로 환원될 일이 아니라 가능성이라는 틈새를 보고 몸을 던져야 하는 문제였다. 미디어 논평가 · 평론가 · 분석가 등처럼 파업의 확률이나 따지면서 회색빛 ‘분석’과 ‘예측’이나 내놓고 있을 때가 아니다. 도박을 걸어야 한다. 때로는 확률론적 기대값이 낮은 일에도 기꺼이 뛰어들 수 있어야 한다. 실로 변혁적 따라서 능동적 세계관을 가진 사회주의 신문 편집자라면 작더라도 없지는 않은 파업 가능성을 앞두고 1면 헤드라인을 달 때, 관조적으로 ‘민주노총, 과연 파업할까?’ 하는 식으로 달지 않을 것이다. ‘민주노총은 파업에 돌입하라!’ 하고 달 것이다.

전지윤은 우리가 ‘다른 많은 노조 좌파들처럼 좌파적 노조 지도자들에게 기대를 걸었다가 좌절되자 한상균을 포함한 그들(과 자주파)에게 비난을 퍼부으며 부정직하게 자신의 그릇된 분석과 예측을 가리고 시선을 딴 데로 돌리려 한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기회주의자가 아닌 우리는 노조 관료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이론을 갖고 있다. 기회주의적으로 그들 탓을 하며 도마뱀 꼬리 자르기를 하는 게 아니다. 노조 지도자들도 자신의 조직을 지키고 지도자로서의 전망을 유지하려면 그들도 싸워야 한다는 객관적 필요성을 갖고 있다. 이 필요성 때문에 사회주의들이 좌파적 노조 지도자와 제휴할 수 있다. 전지윤은 시종일관 결과론적 논증을 펴며 우리의 분석과 예측이 잘못됐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가 분파주의적 분파 조직화 활동으로 단체의 개입 능력을 떨어뜨리던 때 일어난 철도 파업에 대해서도 당시에 이런 주장을 폈다. 한마디로 철도 파업은 우리의 기대대로 되고 있지 않다는 것이었다. 도대체 노동자 파업이 흔히 승승장구하면 무엇 때문에 룩셈부르크는 노동자 혁명이 계속되는 패배 끝에 마침내 찾아오는 최종 승리라는 지나치게 단순한 일반화를 했고, 또 무엇 때문에 그람시는 진지전을 제1차세계대전을 표상한 (피 말리는 인내를 요구하는) 참호전에 빗댔을까?

맺으며

전지윤은 “[최일붕의] 글쓰기 스타일에 대해서도 한마디 하고 싶다”며 이렇게 꼬집었다. “구체적 논거와 인용은 부족한 반면, 자신의 박학다식과 역사적 사례들을 과시적으로 나열하며 어려운 용어와 온갖 ‘~주의’를 남발하는 것이 읽기는 힘들면서 알찬 토론에는 별 도움 안 되는 것 같다.”

먼저, 나는 박학다식하지 않다. 따라서 내가 박학다식을 과시했다면 그것은 젠체하기에 불과한 것일 게다. 이 점에 유의하겠다. 충고 고맙다.

역사적 사례들 얘기는 조금 다른 얘기다. 전지윤이나 나나 마르크스주의에 찬동한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마르크스주의의 주요 방법인 역사유물론을 받아들인다는 뜻일 게다. 그렇다면 역사적 사례는 많이 알고 많이 들수록 좋다. 오히려 역사에 대해서도 나는 박학다식하지 못해 아쉽다. 트로츠키가 혁명적 당을 “노동계급의 기억”이라고 했거늘 거의 2백 년에 가까운 그 역사(게다가 전 세계적이다!)로부터 더 많이 배웠어야 했을 텐데 말이다. 회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다.

‘…주의’ 문제는 위에서 언급했지만, 여기서도 매우 간단히 언급할 게 있다. 아마 내가 전지윤의 분파 투쟁 때 진보당 당권파의 경선부정 사실을 부정한 그를 ‘확증편향’, ‘음모론’, ‘실증주의’ 등으로 비판한 게 마음에 많이 남은 것 같다. 이번에 그가 근래 쓴 글들을 보니 변한 게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ii]

전지윤은 왜 탈퇴했나? 그가 집단 탈퇴를 정당화할 때마다 그에게 반문하고 싶은 게 있다. 도대체 40여 명의 중앙 상근 · 시간제 활동가, 특히 그 가운데 전지윤 자신이 몇 년간 이끈 18명의 신문사 기자 · 사진기자 · 편집디자이너 · 프로그래머 가운데 왜 단 한 명도 전지윤을 지지하지 않았는가? 게다가 그를 따라 탈퇴한 사람들 대부분은 몇 개월 뒤 그와 또 결별했다. 아마도 그의 분파는 세계 최단명 조직이었을 것이다.

이에 전지윤은 맨날 하는 상투적인 변명밖에 늘어놓을 게 없다. “2014년에 내가 노동자연대에서 이탈하기 직전에 있었던 것은 토론으로 보기 힘들었다. 일방적으로 징계를 당한 상황에서, 예컨대 한 토론회에서 나를 비판하는 29명의 발언 속에 지지 발언 1명이 허용되는 식이었[다.]”

이런 식의 주장이 그의 특기다. 반쯤의 진실 말하기. 두 달 동안 그가 패널로 연단에서 발제를 할 수 있었던 전(全) 회원 토론회가 세 번이었고, 그때마다 그는 정확히 연단 전체 시간의 절반을 보장받았다. 또, 그와 그의 분파 성원들의 글은 여러 차례 발간된 토론용 자료집들에 무제한 실릴 수 있었다. 그가 결코 까먹지 않고 언급하는 “29 : 1”은 2백50명 가까운 회원들이 청중으로 참석한 가운데 그의 분파 성원들은 많아야 10여 명밖에 안 됐고, 그나마 기가 죽어 선착순 발언을 앞두고 우물쭈물했기 때문이다. 징계는 경고에 그쳐 징계와 비(非)징계 사이의 것이었는데, 함께 의논하고 협의해서 만든 규칙을 어겨 놓고 단체 내 민주주의를 말하는 것은 실은 무제한적 개인 자유를 주장하는 것으로, 그의 자기 중심주의를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가 중앙 간부들과 활동가들 가운데 단 한 명도 포섭하지 못한 건 분파 논쟁 때 충격적으로 드러난 그의 부정직과 기회주의 때문이었다. 이는 단체 탈퇴 후 그가 우리 단체를 ‘성폭력 가해 단체’로 낙인 찍으려고 끊임없이 모략과 음해를 해 온 데서도 드러나고 있다. 바로 이 때문에, 그를 체험한 회원들은 전지윤이 다음과 같이 말해도 단순한 위선으로 치부하는 것이다: “내가 노동자연대 동지들의 주장에서 여전히 많은 부분을 공감·지지하며, 언제든 협력할 생각이 있으며, 무엇보다 그 동지들의 투쟁과 연대에 대한 헌신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쪼록 내실있고 동지적인 토론을 통해서 이 나라 노동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민에 보탬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다.”

‘기회주의’로 말하자면, 특히 탈퇴 후 그가 전통이 다른 개인이나 그룹을 포섭하려 할 때 국가자본주의론도 재고할 태세인 것을 보면(북한 사회와 한 민족을 이루는 사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일관된 원칙 없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이로운 쪽으로 행동하는 것을 가리키는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이론은 흥정 대상이 아니다.


[i] 노동자 투쟁 동참에 대한 강조는 사실 2009년 초 다함께(노동자연대의 옛 이름) 대의원협의회에서 구체적 결정문으로 채택됐다. 하지만 이 글에서 자세히 다루기 어려운 몇 가지 단체 사정 때문에 2013년 여름쯤에야 실천으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 전지윤이 신노선에 반기를 들었다. 그의 분파 활동은 다함께의 진보당 탈당과 노동운동 개입 강화를 위한 독자적 활동 강화에 대한 반발의 산물로 볼 수 있다.

[ii] 여기에다 그 사이에 수집한 다양한 반SWP 이론들을 이리저리 조합하고 절충한 컬렉션을 추구했던 모양이다. 그 이론들은 단지 SWP만이 아닌 여러 마르크스주의자들에 의해 논박된 것들이다. 가령 굴리엘모 카르케디와 앤드류 클리먼, 마이클 로버츠 등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 법칙을 논증하고 실증하는 여러 논저들을 출간했다. 한편 이미 오래전에 리즈 보걸은 페데리치류(流)의 사회재생산 이론을, 헤스터 아이젠슈타인은 양성 분리론적(급진적) 여성주의를 논파했다. 레닌주의를 기괴하게 비틀어 놓은 것은, 게오르크 루카치의 헝가리인 제자인 타마쉬 크라우스가 몇 년 전에 쓴 저작이 1년여 전 영어로 번역됨으로써 간접적으로 논박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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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최일붕 지음 | 노동자연대

100페이지, 3000원

입력 2016-03-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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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노동자 투쟁] 우리의 예측이 어긋난 게 아니라 바램에 조금 못 미쳤을 뿐

올해도 투쟁은 계속된다

김하영

전지윤 씨는(이하 존칭 생략) 노동자연대를 비판하는 글을 써, 노동자연대가 지난해 노동자 투쟁이 자신들의 예측대로 되지 않자 “[누가 또는 무엇이] 투쟁을 망쳤다”는 식으로 “핑계거리와 희생양”을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지윤에게는 (그의 대전제를 무너뜨리는) 미안한 말이지만 우리는 지난해 노동자 투쟁이 결코 망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난해 노동자들은 박근혜에 맞서 꽤 저항을 했다. 연초부터 민주노총이 노동개악에 맞선 투쟁에 시동을 걸면서 몇 차례 하루 파업을 했고, 연말에 대규모 노동자대회 겸 민중총궐기를 했다.

전지윤은 마치 우리가 민중총궐기를 (그것이 총파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깎아내린 듯이 왜곡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 최일붕은 ‘민중주의란 무엇인가?’에서 “지난 몇 달 새 벌어진 민중총궐기는 박근혜 하에서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했다는 좋은 징조”라고 했다. 이와 함께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파업 투쟁의 대용품으로 가두 항의가 활용됐다는 한계도 지닌다”고 했다. 모순을 지적한 것이다.

이것은 민중총궐기의 성공만을 거의 일면적으로 강조하면서 민주노총 총파업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다”고 한 전지윤의 접근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다. (‘거의’라고 말한 이유는 “시민사회, 종교계의 동참[이] 외연 확대이면서 동시에 우리 편을 통제하는 양날의 칼이었다”는 등의 “아쉬움과 부족함”을 말하기 때문인데, 노동계급 고유의 투쟁 방법으로 자본가들의 이윤에 타격을 주지 못한 것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는다.) 전지윤은 노동자연대의 입장이 마치 자신의 일면적 평가의 거울 이미지인 것처럼 오해하면서, 심지어 “이것[총궐기]이 총파업을 회피하기 위한 방편이었다면 박근혜 정부는 그런 후퇴를 반겼어야 한다”는 억지 주장을 폈다. 그러나 “노동계급과 민중이 자신감 수준을 회복하기 시작”한 것을 반길 자본주의 정부가 어디 있겠는가. 전지윤이 모순의 한 측면에 의도적으로 눈 감고 있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다.(뒤에서 보겠지만, 전지윤은 일면적 사고 때문에 번번이 노동자연대의 주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총파업에 대한 공정한 평가

실제 지난해 노동자 투쟁이 전개된 양상을 봐도 민주노총 총파업이 마치 아무것도 아니었던 양 일축해 버리는 것은 터무니없다. 전지윤은 “민주노총 지도부는 세 차례가 넘는 총파업을 선언했지만 실질적인 파업은 잘 실행되지도 확대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 지도부가 파업을 호소했는데도 노동자들이 응하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진단이다. 그는 “민주노총의 줄어든 [투쟁]동력, 사회적 고립, 정파적 사분오열, 산업과 기업에 따른 부문주의” 등을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우선 지적할 것은, 4·24와 9·23 같은 파업이 결코 의미 없었던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가령 4·24 총파업에는 20만 조합원이 참가했고 파업 집회에는 전국적으로 6만 4천 명가량(민주노총 통계)이 참석했다. 당시 파업 집회 참가 인원은 11월 민중총궐기에 참가한 조합원 수(7만 명, 민주노총 통계)와 큰 차이가 없었다. 또, 9·23 총파업은 규모는 작았지만 노사정 야합에 맞서 즉각적인 항의를 표명했다는 정치적 의미가 있다. 이런 총파업 투쟁들이 없었다면 11월 민중총궐기가 대규모로 치러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더구나 민중총궐기 참가자의 압도 다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었다. 전지윤은 “민주노총의 줄어든 [투쟁] 동력”을 문제로 꼽았지만, 민중총궐기는 주로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투쟁 동력에 의존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우려했을 민중총궐기의 파장과 잠재력도 상당 부분 이로부터 나올 수 있었다.

지난해 4·24 파업 4·24와 9·23 같은 총파업 투쟁들이 없었다면 11월 민중총궐기가 대규모로 치러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사진 이미진

2월 27일 4차 민중총궐기 참가자의 압도 다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었다. ⓒ사진 이미진

물론 사회주의자들이 민주노총 총파업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민주노총 한상균 집행부도 ‘규모가 총파업이란 명명에 부합하는지’, ‘파업 이외의 단체행동 비중이 높았던 점’ 등을 돌아본 바 있다(2016년 정기대의원대회). 그러나 지도부는 “몇 차례나 총파업 지침을 내”리며 “불을 붙”였지만 “노동자들의 자신감과 파업 태세가 충분치 않”아 “불이 타오르지 않”았다는 전지윤의 평가는 매우 일면적이고, 동역학과 변화에 주목하지 않으며, 별 근거도 없다.

‘결과를 놓고 볼 때 어쨌든 노동자들이 파업에 나서지 않은 거 아니냐’는 식의 평가는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어떻게 해야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해 아무것도 말해 주지 않는다. 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정서는 2014년 말 ‘박근혜의 노동개악에 맞선 총파업’을 공약으로 내건 좌파이자 소수파인 한상균 후보조를 신임 임원진으로 선택한 것, 2015년 초 신임 위원장이 된 한상균이 호소한 총파업 찬반 투표에 높은 찬성률(84.4퍼센트)로 응답한 것을 통해 어느 정도 드러났다. 즉, 박근혜 정부 3년차를 맞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투쟁하는 지도부를 원했고, 지도부가 파업 지침을 내리면 응할 의사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어느 정도 좌절된 과정에서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구실을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전지윤은 “한상균 지도부가 지난해 몇 차례나 총파업 지침을 내린 것이 과연 총파업을 억누른 것인지, 그런 파업 호소에도 왜 실질적인 파업이 벌어지지 않은 것인지” 설명하라고 했다.

이에 관해 언급하기 전에 용어를 좀 명확하게 해 두고자 한다. 우리는 (전지윤과 달리) ‘민주노총 지도부’와 ‘한상균 집행부’가 지칭하는 바를 대개 구분해서 사용해 왔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중집 성원들(특히 주요 산별연맹 대표)이 포함된 것으로, ‘한상균 집행부’는 한상균 신임 임원진(위·수·사)과 사무총국을 가리키는 것으로 말이다.(사무총국 실장급 가운데도 위·수·사와 임기를 같이 하는 정무직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민주노총 지도부’가 총파업에 관해 단일한 입장이었다고 할 수 없다. 민주노총 지도부 안에는 총파업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가 상존했다. 한상균 신임 임원진이 총파업 건설에 가장 열의가 있었고 나머지 지도자들 사이에는 온도 차가 있었다. 이것은 단지 ‘정파’ 문제도 아니었다. ‘좌파’로 분류되는 전규석 금속노조 위원장과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도 총파업에 그다지 협조적이지 않거나 난색을 표명하는 입장이었다. 상당수 산별연맹 위원장들은 적어도 상반기에는 공공연히 총파업을 반대하지는 않았지만 은근히 보이코트했다. 민주노총 중집에서 총파업이 결정돼도 자신의 산별연맹으로 돌아가 그것을 축소 또는 좌절시켰다. 여느 산별연맹보다 규모가 크고 힘이 센 대규모 단위노조 위원장들도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민주노총이 몇 차례 총파업 지침을 내렸다 해서 민주노총 지도부 구성원들이 모두 총파업을 지지했고 그 지침에 따라 행동했다고 가정하는 것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얘기다.

이경훈 전 현대차 지부장은 매우 두드러진 사례로, 그는 파업 찬반투표에서 찬성을 밝힌 자신의 조합원들의 의사를 거슬러 4·24 총파업 불참을 선언했다. 그것이 “억지 파업”이라면서 말이다. 이것은 총파업에 초를 치는 행위였다. 이충재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은 ‘공무원연금 개악 저지’가 주요 요구 중 하나였던 4·24 총파업이 끝난 직후, 공무원연금 개악에 합의해 버림으로써 뒤통수를 쳤다.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지난해 투쟁을 돌아보며 이[이경훈, 이충재, 정의당 지도부 등]에 대한 비판을 강조했다면 이해할 만한 일이었을” 텐데 “의아스럽게도 비판의 화살은 주로 민주노총 지도부와 ‘자주파’를 향해 날아가고 있다”는 난데없는 주장을 했다. 그러나 지난해 투쟁을 돌아보는 노동자연대의 글들을 읽어 보거나 우리의 실천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십중팔구 이렇게 이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는 주된 것과 부차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기에, 투쟁에 찬물을 끼얹고 배신한 노조 지도자들과 그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한 노조 지도자들의 문제를 다루는 데서 경중을 매길 줄 안다.

우리가 안타깝게 여기며 비판했던 것은, 한상균 신임 임원진이 이경훈의 “억지 파업” 주장을 즉각 공개 반박하고 현대차 조합원들에게 민주노총의 지침을 따르라고 호소하기보다 그를 ‘보듬고’ 가려 했다는 점이다. 파업 지침 불이행을 단호히 비판하고 집단폭행 사태에 대한 강력한 징계를 추진함으로써 전열과 조합원 사기를 유지했어야 했는데 말이다. 한상균 집행부는 이충재의 배신에 대해서도 공적연금 강화 논리에 혼란을 겪으며 우왕좌왕했다.

전국회의로 말하자면, 중앙은 적어도 상반기에는 총파업을 지지하는 입장이었지만 그렇다고 전국회의 소속인 주요 단위노조 위원장들이 꼭 총파업에 적극적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또, 이경훈 징계 문제에서 중요한 키를 쥐고 있었던 울산지역의 전국회의 경향은 이경훈 징계를 반대했다. 이충재가 배신했을 때 공무원노조 내 전국회의 경향인 중집 성원들은 이충재를 사퇴시키고 새로운 투쟁 지도부 세우기를 꺼렸다. 7월 즈음 전국회의 중앙은 ‘준비되지 않은 총파업’에 대한 ‘피로 확산’ 같은 얘기를 꺼내고 있었고, 안타깝게도 한상균 신임 임원진도 하반기를 준비하며 총파업에 대한 자신감을 상당히 잃고 있었다. 주로 공무원연금 삭감에 대한 저항이 좌절된 것의 후유증이었다.

좌파 노조 지도부와의 제휴 전술에 대한 이해 부족

이런 주장에 대해 전지윤은 노동자연대가 “기층 노동자들은 자신감이 높[은데]” 지도부가 문제였다고 본다며 다시금 자신의 일면적 시각 속에 우리의 주장을 욱여넣을 것이다. 그러나 오히려 2014~15년 노동자연대의 노동조합 전술은 기층 노동자들이 불만은 많지만 스스로 파업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지는 않다는 데 기초하고 있었다. 대신 노동자들은 지도부가 투쟁을 잘 해주기를 바라며 의탁하려 했다. 이런 인식 속에서 우리는 민주노총 임원 선거에 참여해 좌파 지도부 세우기에 일조했다. 파업 지침을 내리도록 좌파 지도부에 촉구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은 전지윤이 오해하듯이 우리가 좌파 지도부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장 조합원들의 자신감이다. 우리는 민주노총 좌파 활동가들이 좌파 지도부가 총파업 지침을 내리도록 지지·압박하고 그 지침을 이용해 기층에서 투쟁을 실질적으로 조직함으로써 현장 조합원들의 자신감을 높이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현장 조합원들이 스스로 파업에 나설 만큼 자신감이 높지 않을 때 지도부의 파업 지침은 노동자들이 행동에 나설 유리한 조건을 제공할 수 있다. 일종의 우산인 셈이다. 그리고 파업에 나선 노동자들은 의식 변화를 경험하고 자신감을 높일 수 있다.

이에 전지윤은 이런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면 논리적으로 총연맹만이 아니라 산별, 연맹, 지부까지 모두 진정한 좌파 지도부로 교체되고, 그래서 파업 지침이 어디서도 막히지 않고 내려갈 때만 총파업이 가능해진다는 말이 된다.” 그의 일면적이고 기계적인 이해가 어디까지 계속될지 모르겠지만, 노동자연대의 전술은 관료체제가 단일해지는 상황은커녕 그 균열을 조건으로 하는 것이었다. 좌파 지도자의 등장은 관료체제에 균열을 가져오고 사회주의자들은 그에 따른 관료체제의 통제력 약화를 이용할 수 있다. 그래서 온건한 지도자들도 어쩔 수 없이 총파업을 지지하는 시늉을 하게 하거나 적어도 우파적 영향력을 관철하기 어렵게 만들 수 있다.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 ⓒ사진 이미진

지난해 민주노총 내 일부에서 일시적으로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민주노총 신임 임원진은 노동조합 관료 전체의 규범에 순응하는 쪽으로 기울었고,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과 한 배를 탔다는 생각 때문에 관료 기구 내에 풍파 일으키기를 꺼렸다. 그래서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총파업을 은근히 보이코트하거나 심지어 노골적으로 찬물을 끼얹었을 때도 그들을 공개적으로 비판하지 않았고, 현장 조합원들이 그들을 거슬러 행동하도록 독려하는 방법을 취하지도 않았다. 분명 한상균 위원장은 총파업 조직에 열의가 있었고 재수감을 마다 않을 크나큰 용기가 있었다. 하지만 총파업을 현실화시키려면 다른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둘러싸인 소수파 지도자라는 한계를 극복할 대안이 있어야 했다.

이런 난점은 민주노총 신임 임원진만의 것은 아니었다. 가장 안타깝게도 좌파들의 문제도 있었다. 노동자연대는 지난해 초에 “현재 기층의 활력이 충분하지 않고, 현장 활동가층이 두텁지 못한 데다 사기도 좋지 않아 어려움이 적잖다”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다음과 같은 과제를 제시한 바 있다. “좌파 지도부의 등장은 투쟁에 좋은 출발이 될 수 있지만, 그 자체로 승리를 보장하지는 않는다. 열쇠는 현장 조합원들에게 있다. 좌파 지도자는 매우 훌륭한 투사일지라도 노동조합 관료 전체의 규범에 순응하라는 엄청난 압력을 받는다는 점을 좌파 활동가들은 알아야 한다. 좌파 활동가들의 독립적인 네트워크가 있어야 노동조합 지도자들에게 압력을 가할 수 있고, 필요하다면 독자적인 투쟁도 해 나갈 수 있다. 좌파 활동가들은 근시안적이거나 조급한 마음을 버리고, 현장 노동자들의 활동과 조직을 발전시키는 것에 주안점을 두면서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그러나 좌파단체들이 협력해 ‘좌파 활동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으로 나아가지는 못했다. 일부 좌파들은 좌파 지도부가 세워졌는데 왜 좌파 활동가들이 이로부터 독립적인 네트워크를 만들어야 하냐며 이 점을 이해하지 못했다. ‘현장 강화’는 좌파들이 집행부를 잡지 못하는 시기에나 강조될 일이고, 좌파가 집행부를 잡았으니 그것을 떠받치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인식이 강한 듯했다. 사실, 좌파 활동가들이 (상대적) 우파 지도부 하에서 ‘현장 조직’을 구축하다가 그에 기반해 집행부를 잡고 나면 모두 ‘위’로 올라가는 바람에 현장에 공백이 빚어지는 현상을 그동안 대규모 단위노조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단결은 어떻게 가능한가?

위와 같은 평가를 하는 것은 누구를 희생양 삼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고 상황을 바꿀 수 있을까 이해하기 위해서다. 반면 전지윤은 민중총궐기를 통해 노동운동의 난점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고 보는 듯하다. 민주노총 총파업은 “처음부터 승산이 높지 않았”는데, “1, 2차 총궐기 등을 거치면서 상황[이] 약간 달라[졌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민중총궐기를 통해 “정파적 차이를 넘어서 단결”했다며 큰 의의를 부여한다. 그리고 이것은 ‘통진당 세력을 배제하지 않는 진보통합’에 대한 그의 고유의 관심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민주노총 지도부 내에서 총파업을 둘러싸고 입장 차이가 상존했던 것은 앞에서 살펴봤듯이 “정파적 사분오열”에 따른 것이 아니었다. 사실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민중총궐기에 관해서는 일치된 견해를 가졌다면, 그것은 ‘총파업은 못 한다’는 것을 둘러싼 ‘단결’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민중총궐기 이후 “민주노총 3차 파업”의 “규모와 위력이 커지는 변화를 보였다”는 전지윤의 주장은 현실을 잘 모르는 사람의 과장이다. 오히려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민중총궐기에서 얻은 자신감을 바탕으로 총파업을 하겠다’던 약속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고 보는 게 현실에 더 부합할 것이다. 민중총궐기 직후 민주노총과 산하 노조들에 대한 압수수색, 한상균 위원장 체포 위협 속에서도 민주노총 지도부는 총파업을 결정하지 않았다. 12월 16일 총파업은 완성차 3사가 참가하긴 했지만 주야2시간의 형식적 파업에 그쳤다. 1월 25일 정오를 기해 들어가기로 한 “무기한 총파업” 결정은 사실상 이행되지 않았다.

민중총궐기라는 형식이 일반으로 총파업에 비해 단결 강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노동자들이 이윤에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자기 고유의 힘을 발휘했을 때 노동계급 내부의 분열을 극복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중간계급과 청년·학생 그리고 미조직 노동자들로부터 지지도 받을 수 있다.

반면 전지윤은 “자기 조합원들의 조건과 경제적 요구에 따라서 칸막이화되고 각개 약진·격파 당하[는]” 것이 “[노동운동의] 현재의 문제”인데, 노동자연대가 “자기[민주노총] 조합원들의 조건”과 “경제적 요구”를 너무 강조하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한다. 이래 가지고는 현재 노동운동의 약점을 극복할 수 없다면서 말이다. 우선,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총파업이 세월호 참사 같은 전 사회적 쟁점을 다뤄야 한다고 항상 주장해 왔음을 환기하고자 한다. 공무원연금이나 노동법 같은 문제는 그 자체로 정권의 생사여탈을 좌우할 만한 정치적 이슈이기도 하다. 우리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미조직 노동자들에게 더 불이익을 줄 쟁점들에 맞서서도 자신들의 조직된 힘을 사용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이나 경제적 요구를 위해 싸우는 것이 곧 칸막이 위험을 가져오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히려 싸워서 자신의 조건을 지키지 못한 노동자들은 다른 노동자들의 문제에 연대하고 나설 자신감이 생길 수 없다. 자신의 투쟁을 전투적으로 벌이면서 다른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고무하고 연대해야 노동계급의 단결이 강화될 수 있다. 전지윤은 조직 노동자들 자신의 요구들을 양보하거나, 요구들 가운데 민중적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만 내세워야 “사회적 고립”을 극복할 수 있다는 노동운동 내 널리 퍼진 경향에 타협하고 있다. 그는 (다른 글에서) 특정 부문의 요구가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불러 올 요구들이 앞세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지윤은 모른 체하지만, 비정규직 2법 저지, 최저임금 대폭 인상, 공적연금 강화 등은 노동계가 더민주당이나 시민단체들도 지지해 줄 것이라고 믿는 요구들이다. 지난호 내 글에서 밝혔듯이, 물론 우리도 “이 요구들을 지지했다.” 문제는 이 요구들을 지지하는 것 자체가 아니라, 그 대신 잘 조직된 부위의 노동조건을 겨냥해 퍼붓는 정부의 공격들을 외면하는 것이다.

이처럼 조직 노동자들의 부문적 요구를 당당하게 밝히는 것을 부담스러워한다면, 박근혜의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 전술에 결코 단결로 맞설 수 없다. 계급동맹을 추구하는 개혁주의자들은 조직 노동자들이 ‘계급 이기주의적’ 요구나 투쟁을 자제해야 중간계급과 청년·학생 그리고 미조직·비정규직과의 “단결”을 강화할 수 있다고 여긴다. 그러나 혁명적 사회주의자라면 마땅히 다른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그것은 1917년 러시아 혁명 당시 노동자 계급이 농민과 맺은 관계에서 찾을 수 있는데, 당시 노동자 계급은 그 자신의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오직 노동자 권력(소비에트)만이 농민에게 평화와 빵을 보장해 줄 수 있음을 입증함으로써 농민을 자기 편으로 이끌 수 있었다.

전지윤은 노동운동을 진단하면서 민주노총의 동력 축소, 조직 노동자들의 사회적 고립, 정파 분열과 부문주의 비판 같은 이런저런 유행을 수용하고 있다. 이런 진단들은 흔히 고전 마르크스주의의 계급론이나 가치론에 대한 이견과 닿아 있고, 사회 변혁 주체로서 노동계급에 대한 회의로 연결된다. 전지윤의 핵심 문제의식 하나도 계급투쟁과 그 주체에 대한 인식을 “생산과정을 넘어서” 생활과 소비 영역으로, “노동자를 넘어서” 자본주의에서 갈취당하는 모든 사람들로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자들이 생산 지점에서 벌이는 투쟁의 결정적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이 편협한 인식이라도 되는 양 비판한다. 그러나 그에게 이런 질문들을 던져 보고 싶다.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누가 이윤의 원천인 잉여가치를 만드는가, 그것을 되찾을 힘은 누구에게 있는가?

마르크스가 왜 체제 변혁적 노동운동을 위해 《자본론》을 썼는지 이해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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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하영, 최일붕 지음 | 노동자연대

100페이지, 3000원

입력 2016-03-16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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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대통합당 안(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최일붕

4년 전 총선과 그 8개월 뒤 치러진 대선에서 적잖은 노동자들이 박근혜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물론 다수는 아마도 문재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박근혜에게 투표한 노동자들은 경제 회복을 바라고 그랬을 것이다.

박근혜의 대선 승리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다소 떨어뜨렸던 듯하다. 그리고 당시에 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의 연립정부를 염두에 두고 우경화했던 것도 거기에 다소 일조했을 것이다.

그람시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잡는 데서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의 ‘시민사회’가 하는 구실을 지적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이던 시절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도 “노동운동이 개혁주의 사상과 더 중요하게는 그 사상이 표현하는 체제 논리를 수용하면, 자본주의가 가하는 사회적 압력에 취약해진다”고 강조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자꾸 양보하면 “좌파 전체를 약화시킨다”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경고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11월 코빈은 파리 참사를 명분으로 한 서방의 시리아 공세나 개입을 유엔의 합법성 부여를 전제로 양해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지속가능  단결해서 얻은 진보·좌파의 총선 성과는 의미있고 중요하다. 이 성과를 이어가려면, 지속가능한 방식이 필요하다. ⓒ사진 이미진

박근혜 정부 등장 후 노동자 운동 내 이데올로기 투쟁의 세력균형은 좌파에 현저하게 불리했다. 분절화와 부문주의로 노동자들은 단결할 수 없으므로 싸울 수 없다던가,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다던가, 진보정당이 재건되는 게 노동운동 재기의 선결 조건이라든가 하는 등의 주장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려 전진을 가로막고 있었다.

노동자연대는 소규모였어도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우리 몫을 하려 애썼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사상과 투쟁했다.

또,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안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좌파적인 집행부가 등장케 하는 데 일조했다.

이 사상 투쟁과 정치 운동은 서로 결합돼 다소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적어도 민주노총 좌파가 대세에 영합하는 것을 어느 정도 견제했던 듯하다.

물론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더라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반동적 사상을 크게 밀어 내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두세 차례의 민주노총 하루 파업과 여러 차례의 소규모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고, 여기에 노동자연대의 기여도 일부 있었다.

한편 세월호 참사는 광범한 대중에게 큰 심리적 충격을 줬지만, 그에 대한 항의 운동이 노동운동 내에 미친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반동적 사상을 밀어 낼 만큼 강력하고 급진적이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은 증대시켰겠지만 말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조건들

그러므로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가 참패한 원인은 주로 경제를 못 살린 것에 대한 심판을 받은 것과, 부차적으로 노동자 저항들과 세월호 항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박근혜 참패보다 정말 더 중요한 점은 적잖은 노동자들이 박근혜 심판에서 더 나아가, 진보 측에 투표해 여덟 명을 당선케 한 것이다.

이는 주로 자본주의 야당들이 박근혜 정부에 너무 타협적이었던 것에 대한 불신을 표명한 것일 뿐 아니라, 진보·좌파 정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노동자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진보 투표는 정의당과 부울경연합의 의회 진입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정의당과 부울경연합이 모두 포함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합하는 정당을 설립한다는 생각은, 일단은 괜찮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당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정의당계와 자민통계는 과거에 두 차례나 분열한 경험이 있다(2008년 초와 2012년 여름). 노동자연대는 그 원인이 매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국주의 체제의 동아시아 내 갈등 문제와 북한 사회 성격 문제라는 근본적인 문제 말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으면 깊어졌지 말이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강력한 조건이 붙어야 한다.

첫째, 정규적인 일상 활동을 공유하는 통상적인 정당이 아니라 선거연합 성격의 정당이어야 한다. 그런 정당이 어떤 모습일지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주도로 형성된 총선공투본을 정당 형태로 발전시킨 모습을 상상하면 이럭저럭 비슷할 것 같다. 명칭은 예컨대 ○○당(정의당), ○○당(진보연대), ○○당(**당) 하는 식이면 될 것이다.

둘째, 정의당과 자민통계 그리고 둘의 완충지대 격인 제3세력을 다 당 중앙에 포함해야 하지, 이 가운데 하나만 포함하는 연합이라면 불안정할 것이다.

(노동자연대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 그 제3세력에 포함되려 애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정의당과 자민통계의 합법 전술용 정당은 집권해 개혁 입법으로 사회를 개혁할 목적으로 선거에서의 승리에 맞춰진 정치 조직이다. 유권자 영합주의의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의원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의원단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내 사회주의자들의 처지는 녹록하지 않다. 이때 의회 밖에서 벌어지는 운동만이 사회주의자들이 당내 우파의 압력을 버텨 내고 원칙을 고수할 힘을 줄 텐데, 이 점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정견을 내놓으면서 독자적 조직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당직선거나 공직선거 등을 둘러싼 갈등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선거연합당은 대선을 앞두고 더민주당(물론 국민의당도) 같은 자본주의 정당과 연립 협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 정의당 못지않게 자민통계도 부르주아 정당과 연립하기를 갈망한다. 선거연합당의 목적은 선거에 대처하는 것이다. 진보·좌파 측의 단일 후보를 선출 또는 선정해 그 후보가 선거 운동을 이용해 기존 체제를 비판하고 노동자 투쟁을 찬양·고무하게끔 해야 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과 협약을 맺는다면 그 정당은 기존 체제를 좌파적 견지에서 비판하지도 못하고, 또 노동자 투쟁을 확실하게 지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정치 조직이라면 도대체 뭐에 쓸 것인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부터 독자 후보의 사퇴 불가를 분명히 못박자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주장이 두 가지 점에서 부적당하다고 본다. 첫째, 이 문제를 지금부터 확실히 하자고 강조하는 건 선거 전술에서 후보 거취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좌파의 선거 참여는 후보 개인 중심의 활동이기보다는, 후보 주위에 결집한 선거 운동과 그 선거 운동을 지지하는 훨씬 더 폭넓은 대중 운동이 돼야 한다.

둘째, 아무리 대선이 1년반밖에 안 남았다고 해도 후보 거취 문제를 지금부터 확정해 두겠다는 건 새 연합체에 참여할 세력의 폭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효과를 낸다. 계급 투쟁의 수위와 부르주아 야당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나중에 투표 방침을 정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참여를 주저하도록 만들 수 있다.)

투 트랙 전략 자민통계의 ‘상설연대체+진보대통합당’ 구상은 인민전선 전략의 양대 축이다. ⓒ사진 출처 참세상

더 중요한 게 있다

자민통계와 정의당, 그리고 다른 진보·좌파 단체들이 연합할 수 있는 더 중요한 틀은 제한된 구체적 이슈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공동전선들이다. 이것이 선거연합당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뒤따른다. 자민통계는 진정한 공동전선을 우회해 언제나 민중전선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는 이를 민중총궐기 준비 단계에서 보았다. 물론 민중총궐기는 실제로는 압도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 총궐기였고(전체 참가자 9만 명 가운데 7~8만 명), 노동자들의 거리 항의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중총궐기를 제안하고 계획한 노조 지도자들과 노조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노동자 운동을 중간계급들이나 심지어 자본주의 정당과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는 경향이 있다. 즉, 인민전선으로 연결시키려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민중주의자들, 특히 자민통계가 말하는 ‘상설연대체’는 그들이 추진하는 진보통합정당과 한 짝을 이루어 인민전선 전략에 이바지하도록 구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보통합정당 대신에 사안별 공동전선을 대안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경제적·정치적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에게는 민주노총에 기반을 둔 정당이라는 아이디어가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비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당 설립을 추구하기보다는, 지금으로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이 걸린 당면 투쟁을 더 신경써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때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결집체를 구축할 수 있다.

입력 2016-06-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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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의 정치 방침과 진보대통합당 안에 대해

김인식

총선이 끝나자마자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 문제가 민주노총 상층 간부들의 제일가는 관심사가 됐다. 내년이 대선이기 때문에 이 논의는 곧 일선 활동가들로까지 확대될 것이다.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에서 주요 쟁점은 새 노동자 정당 건설 문제다. 부울경연합을 필두로 해 자민통계가 일제히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 안(案)을 주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울산에서 두 명의 노동자 국회의원이 탄생한 것에 크게 고무돼 ‘민주노총당’을 만들자고 촉구하고 있다.

우선순위 선거연합이나 진보대통합당 등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대중투쟁 건설에 도움이 되냐가 기준이 돼야 한다. ⓒ사진 이미진

그러므로 많은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게 진보대통합당 안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진보대통합당이 정계 진출의 통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2012년 여름 통합진보당이 분열한 뒤로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에게는 마땅한 정치적 표현체가 없었다. 일부 노동조합 간부들이 정의당으로 가긴 하지만, 이 당은 과거 민주노동당만큼 민주노총과 유기적 관계를 맺고 있지 못하다. 그래서 신승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전현직 민주노총 간부들 일부가 진보대통합당 건설 활동에 나서고 있다. 박유기 현대차 지부장도 최근 울산에서 열린 한 토론회에서 비슷한 생각을 말했다. “노동자가 후보 단일화의 여세를 몰아 진보정당 단일화도 밀고 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자민통계의 프로젝트

개혁주의적인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일부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진보대통합당 안은 본질적으로 자민통계의 프로젝트다.

진보대통합당과 상설연대체는 자민통계의 핵심 전략을 이룬다. 자민통계는 독자적으로 자신들의 정당을 건설하지 않고 진보대통합당이나 전선체 안에서 움직이는 것(또는 전선체로서 움직이는 것)을 선호하는 오랜 스탈린주의 전통이 있다. 이때 합법적 진보대통합당이 제도권 정치를 맡고, 상설연대체가 대중 투쟁을 담당한다. 이 프로젝트가 가리키는 전략적 방향은 인민전선이다.

인민전선 전략의 뼈대는 노동계급만으로는 신자유주의와 냉전 수구 반통일 세력에 맞설 수 없으므로 중간계급과 (심지어 부르주아지 일부와도)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서는 자본주의 야당과 “전략적 야권연대”를 체결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전략은 2010년 지방선거와 2012년 총선에서 각각 민주노동당과 진보당에게 상당한 선거적 실리를 안겨 줬다. 그러나 기본 이해관계가 정반대인 계급 간 동맹은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투쟁의 힘을 약화시킨다. 정치 동맹자들이 곧 서로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민중연합당은 자본주의 야당과 체계적으로 “전략적 야권연대”를 추진할 수 없었다. 더민주당 등 자본주의 야당이 선거적 실익이 없다는 계산에서 거부했기 때문이다.(그러나 일부 선거구들에서 민중연합당 후보가 자진 사퇴하는 방식으로 후보 단일화가 있었다.)

그렇다고 자민통계가 인민전선 전략을 폐기한 것은 결코 아니다. 인민전선은 자민통계의 역사적 전통이다. 전통은 물질적 토대가 변하지 않는 한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여기에 울산의 선거적 성공이 자민통계로 하여금 내년 대선에서 인민전선(연립 정부)을 재추진할 수 있다는 기대감을 갖게 한 것 같다.

진보대통합당은 인민전선을 실현하는 데서 매우 중요한 수단이다. 자민통계가 총선 직후 신속하게 ‘어게인 민주노동당’ 슬로건을 내건 이유다.(권오길 민주노총 울산본부장은 ‘민주노총당’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과거 민주노동당 창당 때와는 달라진 형편이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계급이 직면한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민주노총이 주도해 만들었다. 반면, 현재 민주노총은 진보대통합당 건설을 주도할 힘이 1990년대 후반 같지 못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다. 그래서 민주노총과 여타의 정치 세력들이 연합해 상시적인 정당을 만들자는 것이 진보대통합당의 발상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의 강력한 근거는 울산의 경험이다. ‘울산에서 처음으로 모든 정파가 총단결하고 노동조합이 앞장서서 선거 운동을 해 계급 투표의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울산 동구와 북구에서 노동자 후보들이 압도적으로 승리한 것은 분명 통쾌한 일이었다. 또, 계급과 정치 성향은 상관관계가 없다는 일부 좌파의 주장이 틀렸음도 보여 줬다.

그러나 울산의 경험을 곧장 전국화하는 것은 과잉 일반화의 오류에 해당한다. 울산의 경험을 이치에 맞지 않게 억지 해석해서는 안 된다. 울산의 승리를 “진보당의 정치적 복권”으로 해석하는 것이 그런 경우다. 물론 당선한 두 후보는 진보당 출신이다. 그러나 결정적 승인(勝因)은 그들이 노동자 후보이자 진보·좌파의 단일 후보로서 선거에 출마했다는 사실이다. 반면, 진보당의 계승 세력으로 여겨진 민중연합당의 전국 득표는 극히 저조했다. 진보대통합당 안 — 진보당도 진보대통합당을 표방했다 — 에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무리하게 갖다 붙이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과잉 일반화 울산의 승리를 "진보당의 복권"으로 해석하는 것은 오류다. ⓒ사진 출처 민중연합당

정의당의 기본 성장 전략

정의당은 지난해 말 민주노총의 선거연합당 제안조차 내키지 않아 한 바 있어, 진보대통합당을 건설하려고 하지 않을 것 같다.

정의당 지도부가 진보대통합당 안에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이번에 당선한 진보 국회의원 8명 중 6명이 정의당 소속이다. 원내에서 정의당이 다수인 것이다. 크게 아쉬울 것 없다고 생각할 법하다.

둘째,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진보대통합당보다는 더민주당과의 야권연대에 더 관심이 있는 듯하다.(물론 앞에서 지적했듯이 이 둘이 길항관계인 것은 전혀 아니다.) 이번 총선에서도 정의당 지도부는 야권연대를 적극 제안했지만, 더민주당이 우클릭 하면서 이 제안을 거부해 성사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정의당의] 지역구 의석은 최소화됐다.”(정의당 중앙당 20대 총선 평가기획팀이 제출한 ‘정의당 20대 총선 평가’에서)

여기서 정의당 지도부가 내린 결론은 “힘에 기초하지 않고서는 야권연대 전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는 것이다. 더민주당 등으로부터 선거구 양보를 이끌어 내려면 지역 조직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정의당의 수도권 지지율은 10퍼센트를 상회한다. 따라서 전략적 야권연대는 여전히 정의당의 핵심 성장 전략이다. 정의당의 주요 지도자들은 내년 대선에서도 더민주당 등과 연립 정부를 수립하고 싶어 한다.

셋째, 정의당 안에는 스탈린주의 세력과의 합당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존재한다. 동아시아에서의 제국주의 간 갈등과 북한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두 정치 세력의 날카로운 차이점이 드러났다. 북한의 핵실험, 단거리 미사일 발사, 서해 NLL 인근 해상사격훈련, DMZ 목함지뢰 폭발 등에 대해 정의당은 북한을 강경하게 비판하는 입장을 발표해 왔다.

마지막으로, 정의당 내 노동·좌파 계열도 진보대통합당 안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 것 같다. 그보다 내심으로는 부울경연합이 정의당에 입당해 그 당 안에서 노동·좌파의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을 선호하는 듯하다.

정의당은 노동자 정당이 아닌가?

자민통계가 ‘노동 중심 진보대통합당’을 주장하는 것은 그들이 정의당을 노동자 정당으로 보지 않고 있음을 함축한다.(일부 급진좌파도 이렇게 주장한다.)

자본주의적 노동자당 정의당은 정치와 경제의 분리를 바라는 것이지, 노동 기반을 거부하는 것이 아니다. ⓒ사진 조승진

정의당이 노동계급과 맺고 있는 조직적·전통적·이데올로기적 연계가 과거 민주노동당만큼 밀접하지 못하다. 그러나 그 당의 당원과 투표 기반은 주로 노동계급이다. 정의당 당원 3만 명 중 2만 명이 노동자다.(그중 민주노총 조합원이 1만 명이다.)

물론 지난해 11월 정의당에 합류한 노동계 리더 출신자 하나가 당의 비례 후보 경선에서 후순위에 배정돼 당선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를 두고 정의당이 ‘노동을 홀대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정작 비례 후보 경선 때는 노동계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반면, <노동자 연대>는 당시 노동계 후보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노총 소속 정의당 당원이 1만 명이라 해도 전체 민주노총 조합원의 1.25퍼센트밖에 안 된다. 즉, 정의당의 조직 노동자 기반은 아직 미약하다. 정의당이 성장하려면 조직 노동자 운동을 훨씬 더 중시해야 한다. 그 점에서 정의당의 비례 후보 결정은 문제가 많았다.

그러나 그렇다고 정의당이 노동자 정당이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심상정·노회찬·이정미 의원 등은 모두 노동운동 출신이다. 그러나 정의당의 지도부와 정책들이 자본주의 체제를 개혁해서 유지하고자 하기 때문에(“헌법 안의 진보”), 그 당은 레닌이 말한 “자본주의적 노동자당”이다.

정의당은 사회민주주의적 정경 분업 원칙 — 파업이나 임금 인상 등 경제적 쟁점들은 주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다루고, 주로 선거 문제로 여겨지는 정치적 쟁점들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소속 의원들이 다루자는 것 — 에 따라 민주노총과 역할 분담을 하고자 하는 것이지, 민주노총과의 단절을 원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이 심상정 의원이 오래 전부터 주장해 온 ‘민주노총당, 운동권 정당 극복’론이다. 그러나 이런 정경 분리는 정치 문제 해결을 위해 노동자들의 경제적 힘을 사용하는 것을 삼감으로써, 노동조합의 경제주의적·부문주의적 약점을 강화시킨다는 문제점이 있다.

반면, 자민통계는 민주노총을 지배하고 싶어 한다. 이것은 현실에서 민주노총의 배타적 지지 방침을 부활시켜 진보대통합당을 만들려는 것으로 나타난다. 당이 계급을 대표하고, 따라서 대중 운동은 정당의 전달 벨트일 뿐이라는 스탈린주의적 당 개념을 보여 준다.

이런 당 개념 때문에 자민통계는 자신들 밖에 있는 노동계급 조직과 운동에 흔히 종파적 태도를 취한다. 실제로 자민통계 활동가들은 ‘정의당에 민중성과 투쟁성이 부재하다’고 비판한다. 이 말을 선거 결과와 결부시키면 정의당의 득표는 정치적 의미가 없음을 함축한다. 뒤집어 말하면 울산의 결과만이 ‘민중적’이고 ‘투쟁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것은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정의당의 전진을 부정하는 것이자 무엇보다, 정의당에 투표한 노동자 대중을 무시하는 종파주의다. 이런 태도로는 사회민주주의를 지지하는 노동자들과 진지하게 공동 행동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에는 분열 요인들이 많다

물론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좌파의 단결을 바랄 것이다. 선거에서 노동자 정당들이 분열하는 바람에 자본주의 정당들이 표를 가져가는 것을 막고 노동자들의 정치 진출을 이루고자 하는 정서는 정당하다. 2012년 총선 때 경남 창원을에서 통합진보당과 진보신당 후보가 각각 따로 출마하는 바람에 새누리당 후보가 어부지리로 당선해 노동자들이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자 연대>는 지난해 말 민주노총이 선거연합당을 제안하기 전부터 이미 그런 대응의 필요성을 주장했다.(이번 호에 실린 최일붕의 ‘진보대통합당 안에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기사를 보시오.)

선거연합당처럼 선거에서의 공동 대응 수준을 넘어 진보대통합당 안은 상시적인 정당을 지향한다. 그러나 이는 단결 촉진이 아니라 많은 분열 요인들을 안고 있다. 노동자 운동 안에 중요한 정치적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진보대통합당 안은 이런 차이를 애써 간과하고 강령적 통일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민통계의 역사적 전통을 봐도 그들은 서로 동의하는 구체적 요구 중심으로 투쟁을 건설하는 게 아니라 주로 자신들의 강령을 채택하게 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의 문제점은 과거 민주노동당과 그 후신인 진보당의 분열이 보여 줬다. 갈등을 촉발시킨 날카로운 쟁점들 — 각각 일심회 당원 제명 기도와 경선 부정 문제 — 이면에는 원칙과 이데올로기의 차이가 깊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동안 이 차이가 좁혀졌다는 증거는 없다. 따라서 북한 문제, 계급투쟁 문제, 대선에서의 야권연대와 연립 정부 문제 등이 불거지면 진보대통합당은 또다시 쓰라린 분열을 겪을 수 있다.

자민통계는 주로 패권주의를 중심으로 지난 시기의 분열을 평가하는 듯하다.(2012년 진보당 경선부정과 중앙위 폭력 사태가 성찰 항목에서 빠져 있다!) 자민통계는 패권주의를 자신들이 운동의 다수파라는 ‘숙명’에서 비롯하는 문제로 사고하는 듯하다. 그래서 조직 운영 방식 문제에 골몰한다.(《진보정치, 미안하다고 해야 할 때》에서도 이런 기술적 사고를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기층 노동자 운동에서 자민통계는 다수파가 아니다.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수준에서는 근소하게 다수일지 몰라도, 일선 활동가와 현장조합원 수준에서는 결코 다수파가 아니다. 2014년 12월 민주노총 위원장 선거에서 좌파인 한상균 후보가 이긴 일이 이를 입증한다. 총선에서도 자민통이 노동계급 다수의 지지를 얻은 게 아니다. 정의당이 훨씬 더 많은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다.

따라서 자민통계의 다수성은 사실도 아니거니와 패권주의를 비판하는 좌파가 다수성 자체를 문제 삼는 것도 아니다. 패권주의가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세력이 동의하지 않고 반대하는 것을 자민통계가 자주 무리하게 추진하기 때문이다.

당장의 사례를 봐도, 민주노총에 특정 정당 지지 방침을 채택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불필요한 분란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물론 사회주의자들은 노동조합이 ‘정치적 중립성’을 내세워 정치적 쟁점을 회피하는 것이 좋다고 보지 않는다. 노동조합이 세월호 참사, 여성·성소수자 차별, 이주민 속죄양 삼기 등에 반대하고 행동을 조직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단결과 계급의식 향상에 크게 기여한다.

그러나 노동조합 안에는 정치적 차이들이 존재한다. 계급의식이 불균등하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주노총 안에 복수의 진보·좌파 정당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노동조합 쟁점으로 행동 통일을 이루되, 정치적으로는 먼저 다원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리고 특정 정치 쟁점을 둘러싸고 코드가 맞을 때 비로소 공동 행동을 하는 방식이어야지, 그러지 않고 ‘진보 정당 단일화’를 요구하는 것은 커다란 분열을 낳고 원한만 깊어지게 할 것이다. 그리 되면 조직 노동자 운동이 약화될 것이다.

그래서 민주노총이 진보대통합당에 참여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그보다는 선거연합정당이 선거 시기에 노동계급의 단결을 최대화할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리고 평소에는 진보·좌파 다원주의에 입각하면서도, 사안별로 괜찮은 입장을 취하는 정당을 지지하는 신축성을 발휘하는 것이 좋겠다. 어느 한 정당이나 개인, 운동이 언제나 올바른 입장을 취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상설연대체와 공동전선

사회주의자들은 자민통계의 또 다른 프로젝트인 상설연대체를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는 않는다. 대중 운동이 활성화돼 계급의식이 고양되는 특정 시기에는 포괄적 쟁점들을 아우르는 상설연대체가 그 기능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시기가 아니다.

게다가 자민통계의 상설연대체는 자본주의 정당과의 동맹을 지향한다. 이 때문에 2005∼06년에 격론이 벌어졌고, 민주노총이 최종 불참을 결정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것이 한국진보연대다.

자본주의 야당들과의 동맹 정책 때문이 아니어도 상설연대체에 좌파와 민주노총이 참여할 이유는 없다. 무엇보다 각 단체의 당면 전망과 중장기 전략, 강조점, 정치 문화 등이 다르기 때문이다. 자민통계가 아니라 민주노총이 주도한다고 해도 이 점은 별로 바뀌지 않을 것 같다. 2013년 민주노총이 발의한 ‘민중의힘’은 그 뒤 일어난 운동들에서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해 해산될 운명에 처해 있다.

따라서 실효성도 없는 상설연대체가 아니라 제한된 특정 쟁점들을 중심으로 공동 행동을 할 수 있는 사안별 연대체가 단결에 이롭다. 실제 투쟁 경험들을 봐도 어지간한 대중 행동은 — 2008년 촛불, 용산 참사, 세월호 등 — 사안별 연대체가 주도했다.

도시 노동계급 한국 사회 변혁의 운명은 도시에 달려 있다. ⓒ사진 이미진

노농빈 동맹이냐 노동계급의 헤게모니냐

자민통계가 말로라도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은(‘노동 중심 진보대통합’) 한국에서 계급투쟁 문제가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러나 자민통계는 노동계급을 중시한다고 하면서도 “각계각층”을 아우를 것을 강조한다. 중간계층들이 포함된 노농빈(노동자·농민·빈민) 동맹이다.

노농빈 동맹은 자민통계가 바라보는 한국 사회의 성격과 변혁 목표와 관련 있다. 자민통계가 보기에 사회주의는 먼 미래의 문제이고, 당면 과제는 각계각층을 결집해 박근혜 정권과 냉전 우파를 물리치고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정당과 연합정부를 구성해 “진보적 민주주의”를 이룩하는 것이다. 즉, 민족주의·민주주의 변혁이 당면 과제인 것이고 그 주체는 노농빈 동맹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노농빈 동맹은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에 들어맞지 않는 전략이다. 한국은 대규모 도시화와 프롤레타리아화를 겪었다. 경제활동인구 중 노동계급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경제활동인구 2천6백95만 5천 명 중 임금 노동자는 71.4퍼센트인 1천9백23만 3천 명이다.(2016년 3월 통계청 자료)

반면, 한국 자본주의의 발달로 농민 계층은 극도로 수축됐다. 2015년 12월 농민 인구는 2백60만 명으로, 경제활동인구의 10퍼센트도 안 된다.(2015 농림어업총조사) 특히 고령화가 심화됐다. 70대 이상이 17퍼센트로 가장 많고, 고령 인구(65세 이상)가 38.4퍼센트다.

빈민은 대부분 도시 노동계급의 일부이며 조직된 빈민은 정치적으로 좌파적이거나 정의당 친화적이다.

요컨대, 한국 사회 변혁의 운명은 농촌이 아니라 도시에 달려 있다. 그리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노총이 비할 데 없이 감수성 있게 대처해야 하는 차별 문제는 여성·성소수자·이주민 차별 문제다. 이들에 대한 차별이 지배계급의 분열 지배 전략에서도 핵심 기제로 작동한다.

입력 2016-06-01 ⓒ노동자 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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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포데모스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포스트마르크스주의의 민중주의에 이의를 제기해야 한다

김종환

스페인에서는 지난해 12월과 올해 6월 선거를 치렀지만 정부 구성에 거듭 실패했다. 이런 진통이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1977년 프랑코 독재 종식 이후 수십 년간 유지된 국민당(PP)과 사회당(PSOE)의 양당 체제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이런 양당 체제를 무너뜨린 주역은 바로 새로운 좌파 정당 포데모스다. 포데모스는 ‘78년 체제’(독재 종식 이후 1978년에 새 헌법이 발표됐다)를 ‘전복’할 새 정치가 필요하다며 2014년 창당했다. 총선 첫 무대인 지난해 12월 사회당과 근소한 차이로 제3당(21퍼센트 득표)이 되면서 양당 체제를 무너뜨렸고, 올해 6월 다시 치른 총선에서도 이런 추세는 유지됐다.

우파와 중도계 정당들만이 활개치는 한국에서 봤을 때, 좌파 정당인 포데모스가 빠르게 파고들면서 공식 정치의 판세를 바꾸고 있는 것은 실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 성장의 배경

포데모스가 이렇게 성장하는 데서 중요한 발판이 된 것은 2011년 터져나온 인디그나도스(‘분노한 사람들’이라는 뜻) 운동이다. 경제 위기 이후의 긴축 정책과 부패한 기성 정치권에 대한 반감을 표현한 이 광장 점거 운동은 독재 종식 이래 최대 규모의 항의 운동이었다. 거대한 운동의 부상은 대중의 급진화를 낳았다.

그러나 항의 운동과 함께 많은 총파업이 벌어진 그리스와 달리 스페인은 조직 노동자 운동이 인디그나도스 운동으로 대표된 거리 항의 운동만큼 강력하지 못했다. 더욱이 노조 지도자들이 사회당과의 협조 관계에 연연하며 저지른 배신적 타협 때문에 조직 노동자 운동에 대한 실망감도 자랐다.

포데모스의 지도자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출처 GUE/NGL(플리커)

기성 좌파도 무능했다. 스페인에는 공산당을 중심으로 한 좌파연합(IU)이 있었지만, 이들은 차악론을 내세우며 여러 차례 사회당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했고, 긴축을 자행하는 지방정부에 참여했고, 심지어 부패에도 연루돼 있었다. 이 때문에, 새로 급진화한 대중의 지지를 얻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포데모스는 인디그나도스 운동의 중요한 약점에 대한 나름의 대안을 제시하며 등장했다. 인디그나도스 운동은 ‘반(反)정치’를 표방하며 기성 정당뿐 아니라 좌파 정치단체가 참여하는 것까지 거부했다. 그러나 국가의 탄압 위협 앞에 운동이 점차 작아지자, 수많은 사람들은 운동의 놀라운 위세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성취한 것은 적다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다.

포데모스는 인디그나도스 운동의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그런 분노를 이제 운동이 아니라 정당의 형태로 벼려야 한다며 사람들을 결집시켰다. 그런데 이때 포데모스가 제공한 정치는 바로 민중주의(좌파적 포퓰리즘)였다.


2. 포데모스 민중주의의 구체적 형태

포데모스 지도부는 오늘날 스페인 정치가 사실상 과두제가 됐기 때문에, 소수의 ‘카스트’(기득권층을 전근대 신분제 사회의 상층 계급에 비유한 것)에 맞서 전 민중이 계급을 초월해서 단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단순한 구호 이상의 것으로, 나름의 정치철학과 분석에 기초한 것이다.

당 대표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와 주요 이론가이자 핵심 측근인 이니고 에레혼 등 포데모스 지도자들은 포스트마르크스주의자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샹탈 무프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초판 1985년, 재판 2014년)에서 제시한 좌파적 민중주의를 포데모스의 정치철학이라고 아주 빈번하게 강조한다.

라클라우와 무프는 사회 변화의 주체로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것을 “경제주의”라고 매도한다. 현대 노동계급에는 너무나도 이질적인 사람들이 속해 있기 때문에 계급적 이해관계를 중심으로 한 단결은 무망하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이런 현실을 부정하고 계속해서 노동계급에 천착하는 것은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노동계급이 저절로 단결할 것이라는 착각(“경제 결정론”)에 빠져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라클라우와 무프가 제시하는 대안은 언어와 이데올로기를 이용해서, 계급을 초월해서 최대한 많은 대중을 결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급의 기초인) 물질적 이해관계를 둘러싼 투쟁을 강조하는 것은 해롭고, 담론을 둘러싼 투쟁이 핵심이 된다는 것이다.

이들이 담론 전략으로도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 것은 자본주의적 민주주의 체제 안에서 주된 변화를 이룰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무프는 “우리[가] … 끝까지 싸울 수 있도록 허용할 민주적 제도들에 대해 신뢰해야 할 것”(《진보평론》 68호)이라고 강조한다.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 전통적인 사회주의적 전략을 “급진적 민주주의” 전략으로 재구성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바로 이런 개혁주의로 후퇴 때문이다.

민중주의

대학교수들인 포데모스 지도자들의 행보는 이런 이론에 따라 나름으로 정교하게 다듬어진 것이다. 단적인 사례로, 많은 좌파가 보기에 불편할 정도로 포데모스 지도부는 선거 승리를 노골적으로 강조하는데, 이는 몇몇 개인의 야심 때문이 아니라 “선거에서 이기는 정당”을 “기습공격 전략”으로 삼기 때문이라고 한다. TV 토크쇼와 같은 미디어와 카리스마를 갖춘 스타 지도자의 구실도 이런 전력(戰力)의 핵심 담론 수단으로 중시된다.

이글레시아스는 “노동계급을 강조하는 담론은 대중이 알아듣지 못하고, 그래서 투쟁을 패배로 이끌고, 결국 지배자들만 이롭게 한다”고 냉소한다. 세계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포데모스를 좌파 정당이라고 부르지만 정작 포데모스 지도부는 좌파라는 성격규정과 거리를 두며 “우리는 좌도 우도 아니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좌·우를 넘어”는 앤서니 기든스 류의 제3의 길 이론가들이 좋아한 말이었다.)


3. 포데모스의 약점들

2014년 창당 이후 포데모스가 선거 때마다 보여 준 결과는 분명 놀랍고 고무적인 것이다. 그럼에도 최근 총선 결과는 애초의 기대(사회당을 제친 제2당으로 등극)에 미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를 놓고서 당 내에서 많은 문제의식이 있다. 이글레시아스와 에레혼 사이에 노선을 둘러싼 갈등설까지 터져나오고 있다. 만일 연말에 한 번 더 총선을 실시하게 된다면 그런 논쟁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그럴수록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강점과 함께 약점을 잘 분석하고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현재 포데모스가 보이는 약점은 주로 선거를 의식하는 지도부의 민중주의 정치에서 비롯한다.

첫째 약점은 메시지가 다의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중의성(모호함)은 계급적 이해관계와 그 투쟁이 아니라 순전히 담론을 통해서 사람들을 결집시키려다 보니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라클라우나 에레혼은 되레 이런 모호함이 포데모스의 강점이라고 주장한다. 집권하려면 단지 좌파적 대중만이 아니라 “중원으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일종의 ‘전략적 모호함’인 것이다.

그래서 포데모스는 창당한 지 2년이 넘었지만 초창기의 불명료한 메시지가 점차 명료해지기보다는 오히려 갈수록 불명료해져 왔다. 그것도 지지율이 오를수록 창당 때의 급진적 강령을 눙치는 방향으로 말이다. 이 때문에 많은 지지자들이 실망하고 있다.

계급과 투쟁을 강조하기보다는 모호성에 기초한 담론 전략을 선택한 결과, 오히려 지지자들을 선거 정치 내의 풍향계에 내맡기는 결과를 초래했다. 실제로, 포데모스와 말만 비슷하고 계급적 성격은 더 우경적인 시민당(시우다다노스)이 부상하자 한동안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떨어지기도 했다. 지배적 상식에 타협하는 ‘담론’ 전략만으로는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영감을 불어넣기가 어려운 것이다.

둘째 약점은 평당원들이 스타 지도자들의 행보를 수동적으로 지지하는 것 이상을 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아래로부터의 투쟁 전략과 달리 담론 전략은 그것의 생산자가 압도적으로 지식인이라는 점에서 위로부터의 전략이고, 전문적이어서 대중을 상당히 수동화시키기 십상이다.

지도부는 모호함 덕분에 카멜레온처럼 색깔을 바꿀 수 있다. 예컨대, 창당 당시 나토 탈퇴까지 거론했지만 나토군 장성을 총선 후보로 세운 것, 사회당과 연정은 결코 하지 않는다고 한 지 한 달도 못 돼 연정의 조건(이글레시아스 부총리 임명)을 제시한 것 등이 그렇다. 이 과정에서 당내 민주적 의견 수렴은 생략됐다.

창당 당시에는 ‘서클’이라고 불리는 기층 모임 수백 개가 주목을 받았지만 지도부는 ‘선거 승리를 위해 필요하다’며 서클을 주변으로 밀어냈고, 이 과정에서 당내 좌파 활동가들과의 충돌도 불사했다.

셋째 약점이자 전략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본주의 국가 문제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에서 진정한 권력은 선출된 공직에 있지 않고 선출되지 않은 대기업, 언론, 군대 등에 있다. 그리스 부채 문제에 대한 시리자 정부의 무기력은 국가를 통한 개혁을 중심에 두는 개혁주의 전략의 근본적 취약성을 보여 준다.

집권 후에는 물론이고 집권에 가까워지기만 해도 포데모스는 그리스 시리자가 부딪혔던 것보다 결코 작지 않은 압력에 직면할 것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포데모스 지도부의 대답은 ‘스페인은 그리스보다 경제가 훨씬 더 크기 때문에 유럽연합이 그렇게까지 일방적일 수는 없을 것’이라거나 ‘시리자는 전통적 좌파에 가까운 반면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바로 그렇게 때문에 시리자 정부보다 더 어려운 처지에 놓일 수도 있다는 점은 언급되지 않는다.)


긴축 정책과 기성 정치권에 대한 분노를 모아 탄생한 포데모스 2014년 3월 긴축 반대 시위. ⓒ출처 Contrafoto21

4. 지도부의 약점을 극복할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가장 시급한 과제는 당이 지금처럼 “중원 장악”을 위해 갈지자 행보를 할 것이 아니라 좌파적 지향을 분명히 하고 운동을 건설하는 것에 매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지적했듯, 포데모스의 급부상은 2011년에 대중 운동이 크게 분출한 것에 빚지고 있다. 반면, 2015년의 지지율 하락은 같은 기간 거리 시위와 노동자 파업이 상대적으로 적었던 것과도 관련이 있다. 그럼에도 지도부는 ‘중요한 건 운동이 아니라 선거’라고 사실상 말해 왔다.

그러나 분명한 주장과 실천을 통한 검증, 당원들의 능동적 기여가 뒷받침될 때 지지층을 더 단단하게 하면서도 진정으로 외연을 확장할 수 있다. 그러려면 당내 민주주의를 회복해야 한다. 운동을 건설하려면 진지한 토론과 이를 바탕으로 한 일치된 노력이 필요한데, 지금처럼 며칠 만에 당의 입장이 뒤집히고 당원들이 언론을 통해 이를 확인하는 상황은 그런 노력을 약화시킬 것이다.

동시에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당원과 지지자들에게 지도부의 민중주의적 전략의 한계를 명확하게 지적하며 노동계급을 중심으로 하는 대안적 전략을 제시해야 한다.

자본주의 국가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므로 이데올로기 투쟁은 어느 순간에는 ‘물질적’ 투쟁으로 전환해야 한다. 단적으로 말해, 갖은 설득에도 불구하고 대자본이 (긴축 정책을 강요하는) 유럽연합을 계속 편든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민중주의자들은 흔히 (낭만적으로) ‘위대한 민중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든 창의적으로 극복할 것’이라며 이 문제를 회피한다. 그러나 ‘때가 되면 저절로 그에 상응하는 전략이 생겨날 것’이라는 생각은 사실상 요행에 명운을 걸겠다는 것이다.

칼 마르크스는 “사상도 투쟁하는 수많은 대중에게 채택되면 물질적 힘이 된다”고 했다. 그러려면, 그 무수한 대중에게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이해관계에 기반해야 한다. 자본주의를 타도할 수 있는 물질적 이해관계와 힘을 가진 노동계급의 자력해방을 목표로 하는 전략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민중을 이루는 상이한 계급들이 저마다 다른 이해관계를 좇아 각기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려고 하면 운동은 마비되기 십상이고 가장 강력한 무기(대중 파업)를 휘두를 수도 없다. 그래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은 노동계급이 양보가 아니라 자신의 힘을 보임으로써 빈민과 중간계급 등을 지도하며 투쟁을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포데모스 지도자들이 오해하거나 왜곡하는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의 정수가 이것이다.)

라클라우와 무프의 주장과 달리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노동계급을 중시하는 것은 경제 결정론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칼 마르크스 이래로 고전적 마르크스주의의 선구자들은 자본주의가 저절로 노동계급의 단결을 가져다 주지 않기 때문에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정치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결은 사회주의적 정치로 쟁취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이 점을 강조해 이론과 전략, 전술로 발전시킨 것은 레닌이었다. 노동계급의 선진 부분이 혁명적 조직으로 따로 결집해 오랜 기간에 걸쳐 대중과 사회주의적 정치로 융합하는 법을 배우며 단련되고 지도력을 인정받아야 한다.

포데모스는 체제에 대한 불만이 대중 운동으로 폭발하고 그 결과 대중이 급진화하면서 정치적 표현체를 찾는 과정에서 부상했다. 다른 나라의 좌파들이 포데모스의 높은 지지율만으로 그들을 무비판적으로 따라 하려고 하거나, 반대로 그 지도부의 개혁주의 정치만으로 평가절하하고 등을 돌리는 것은 실수가 될 것이다. 포데모스가 더 전진할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을 제안하면서 그 지지자들을 혁명적 사회주의 정치와 조직으로 끌어들이려고 해야 한다.

입력 2016-09-21 ⓒ노동자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