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정책 대대의 쟁점들 - 재벌 개혁

노조 경영 참여는 노동자들을 분열시킨다

강동훈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6년 말까지 서울 메트로(1호선~4호선)와 서울 도시철도공사(5호선~8호선)를 통합하겠다고 발표하자, 서울지하철노조 지도부는 환영 입장을 냈다. 서울시가 ‘인위적 구조조정은 하지 않겠다’며 적극 설득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서울시의 통합 계획에는 인력 재배치 방안과 대중교통 요금 인상이 포함돼 있다. 그런데도 서울지하철노조 지도부는 서울시의 통합 계획에 찬성했다. 아마 박원순 시장이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를 도입해 노조의 ‘경영 참여’를 보장하겠다고 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 대표를 기업 이사회에 파견하는 제도이며, 경영협의회는 경영과 관련한 사안을 노조와 협의하는 기구이다.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는 노조 경영 참여의 한 방법으로 진보진영의 일부가 오랫동안 요구해 온 제도 중 하나다. 노조의 경영 참여를 통한 “투명 경영이 이 사회의 부정부패 척결과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지름길”이라는 것이다.

노조의 경영 참여는 실패한 사외이사제를 대신해 재벌 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위한 대안으로도 제시되고 있다. 최근 대한항공 조현아 사건이 벌어지자 정의당 심상정 원내대표는 재벌의 족벌경영에 대한 대안으로 “독일의 노동조합 경영 참여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다.

특히 이번 경제 위기를 겪으며 ‘독일 모델’에 관심이 높아지면서 독일식 경영 참여 방안에 대한 논의도 활발해졌다. <한겨레>는 독일 폭스바겐이 “1990년대 초반 국외 공장의 부진 등으로 구조조정의 위기에 몰렸지만, 노사가 고용 안정과 유연한 근무시간제 등을 교환해 위기를 탈출한 바 있다”며 독일식 경영 참여를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실제로 노동자 대표를 이사회에 참여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여야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상태다.

박원순 시장이 제안한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도 독일식 경영 참여의 주요 제도들이다. 물론 실제로 도입될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가 독일 수준의 참여를 보장할지는 두고 봐야 하지만 말이다.

독일식 경영 참여

일본이나 미국 기업들이 ‘노동자 경영 참여’라는 명목으로 제품 품질 관리, 노동자 제안, 작업장 개선, 적시 생산방식 등 생산성 향상을 위한 제도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은 노조의 경영 참여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유럽 나라 중에서도 노조의 경영 참여 수준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독일에서는 노동자가 5명 이상인 기업은 각 사업장 별로 노동자가 모두 참가하는 ‘사업장평의회’(서울시에서 논의되는 ‘경영협의회’와 비슷한 기구)를 구성할 수 있다. 노동자가 2천 명 이상인 기업은 노사가 참여하는 ‘감독이사회’를 구성해 ‘경영이사회’의 주요한 결정을 감독하도록 하는 ‘공동결정제’를 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수준 높은 경영 참여를 보장한다는 독일에서조차 노동자들은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전혀 갖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먼저, 사측은 사업장평의회와 경영 정보를 공유해야 하고, 신기술 도입 등 노동조건의 변화 사항에 대해 노조의 의견을 청취해야 한다. 그러나 사측은 노조와 협의를 할 뿐 합의를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시 말해 노조가 반대하더라도 결정을 번복할 필요가 없다.

다른 한편, 대기업의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의 결정을 승인하는 막강한 권한을 가졌고, 노사 양측이 각각 절반씩 차지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이 경영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감독이사회 의장은 사측 인물이 차지하도록 돼 있고, 노사 간에 동수로 맞설 때는 의장이 2표를 행사한다. 결국 감독이사회도 사측의 주요 결정을 거부할 수 없는 것이다. 

독일의 미니잡 노조의 경영 참가는 이런 저질 일자리 확대를 막지 못했다. ⓒ사진 출처 Sascha Kohlmann (플리커)

실제로 독일의 ‘공동결정제’는 2000년대에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조건이 대폭 악화되는 것을 전혀 막지 못했다. 오늘날 독일 일자리의 거의 4분의 1이 저임금 · 시간제 일자리인 ‘미니잡(Mini job)’이다.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이 전체 노동자의 22퍼센트로 급격히 늘었다.(더 자세한 내용은 본지 115호 기사 “정규직 일자리가 시간제 일자리로 바뀌었다”를 참고하시오.)

물론 독일 기업주의 상당수는 공동결정제조차 거추장스러워 한다. 노조와의 협의 과정이 ‘기업 의사결정을 늦춰 기업 구조조정을 방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꽤 많은 독일 기업주들은 공동결정제가 노조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점도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공동결정제가 “합의를 통한 구조조정, 고양된 기업 내 평화, 노사 간 협력 및 신뢰관계” 등을 통해 노동자들의 계급투쟁 정신을 해체했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실제로 독일에서 2008년 노동자 1천 명당 파업 일수는 5.2일이었다. 국제적으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2006~2008년 OECD 평균 34.7일)

이런 점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 경영 참여가 가진 약점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노동자들이 설사 기업 경영에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더라도 경영 참여는 계급 협력 정치를 강화해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기업이 아무리 ‘투명 경영’을 하더라도 시장 경쟁의 압력은 임금 삭감이나 노동강도 강화, 정리해고를 하도록 만든다. 이때 노동자 경영 참여는 일부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다른 노동자들이 승인하도록 하는 구실을 하게 된다.

이런 약점이 있는데도 진보진영의 일부가 경영 참여에 관심이 높은 것은 노조 지도자들의 개혁주의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독일에서도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자본가나 정부 같은 권력자들과의 협력에 매달렸다. 투쟁을 준비하지 않고 저임금 저질 일자리 확대와 외주화를 받아들였다. 기업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이었다.

이런 계급 협력 정치는 독일에서 노동조합 자체를 약화시켜 왔다. 독일의 노조 조직은 절대적으로나 상대적으로 약화됐다. 1991년에 노조원 수는 1천2백만 명에 육박했으나, 지속적으로 감소해 2012년 말 현재 약 6백15만 명밖에 되지 않는다.

독일식 노동이사제는 고용을 보장하고 임금과 노동조건을 향상시키는 대안이 될 수 없다. 특히나 노조 지도부가 기업주(정부)와의 협상에 매달리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투쟁력을 약화시킬 위험이 크다.

따라서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에 환상을 품지 말아야 한다. 현장의 조직력과 투쟁력을 끌어올리는 게 일자리와 노동조건을 지키는 최선의 방법이다.

ⓒ<노동자 연대> 140호 | 발행 2014-12-22 | 입력 2014-12-20

‘재벌 개혁’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를 전면에 내세워야

강동훈

민주노총 지도부는 올해 하반기 투쟁의 요구로 ‘사내유보금 환수 특별법 및 재벌 세습 금지법 제정’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을 검토 중이다. 그리고 11월 총파업의 핵심 요구로 ‘재벌 개혁’을 제안하려 하는 듯하다.

롯데 사주 일가의 경영권 분쟁과 삼성의 3대 세습 작업으로 재벌 개혁 여론이 확산된 것을 계기로 박근혜 정부의 ‘노동 개혁’ 프레임을 ‘재벌 개혁’ 프레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그래서 7백10조 원으로 추산되는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고, 순환출자제 금지 등으로 재벌 세습을 막고, 재벌 개혁으로 경제를 활성화하자는 주장을 ‘재벌 개혁과 노동자·서민 살리기 5대 요구’의 첫째로 내세우려 한다.

그러다 보니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는 ‘재벌 개혁’보다 후순위로 밀려난 듯하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전면에 내세워 공격하겠다고 나섰는데도 말이다.

물론 매년 수십조 원씩 사내유보금을 쌓고 있는 재벌의 금고를 열어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고 양질의 일자리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정당하다.

순환출자제

그러나 재벌 개혁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이런 목표 달성하는 데 도움이 안 된다. 우선, 순환출자제 금지 등 기업 소유 구조 개편에 집중하는 재벌 개혁은 자유주의적 문제의식의 발로로, 노동자들에게는 득이 될 게 없다. 단적으로 말해, 재벌 개혁은 성공하더라도 재벌 총수 일가 수백 명이 갖고 있는 권력을 금융 자산가 수만 명에게 확대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새누리당조차 롯데의 순환출자 구조를 문제 삼은 것을 봐도 노동계급에게는 재벌 개혁이 얼마나 부차적인 쟁점인지를 방증한다.

△ 자본의 소유 구조 개편이 아니라 대자본에 맞선 노동자 투쟁이 대안이다. ⓒ이윤선

둘째, 재벌 개혁 요구는 비(非)재벌 자본과의 연대라는 덫으로 노동자들을 이끌기 십상이다.(자본 전체와 맞서 싸울 요량이라면 재벌 개혁 요구를 내세울 이유가 없다.)

사실, 재벌 개혁론은 재벌 같은 독과점이 없다면 시장은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작동해 경제를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그릇된 전제를 갖고 있다. 그래서 흔히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과 함께 제시되곤 한다.(최근 ‘재벌 국유화’를 주장하고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제안하고 있는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 내에서도 이런 주장이 나온다.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의 이민수 씨는 재벌 국유화가 “중소기업 육성 정책”으로서 좋은 효과를 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재벌을 사회화(국유화)해야 하는 이유’, <변혁정치> 7호). 재벌 국유화가 자본주의 사회 내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점뿐 아니라 재벌을 국유화한 국가가 중소기업주들을 지원해야 할 것이라는 상상력이 놀랍기는 하다.)

그러나 당장, 민주노총이 하반기 주요 과제로 제시한 최저임금 1만 원,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전면 보장, 상시 업무 정규직화, 실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을 달성하려면 재벌뿐 아니라 중소기업과도 싸워야만 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면서 중소기업 노동자들한테 자신의 기업주에 맞서 싸우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이런 점에서 재벌 개혁 요구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일관되게 싸우기 어렵게 하는 논리를 담고 있다.

셋째, 비(非)재벌 자본과의 연대라는 발상은 실천적으로 기성 야당과의 연대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재벌의 세금을 대폭 늘리는 데서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저지하는 데서 새정치연합과의 연대는 전혀 믿을 게 못 된다. 새정치연합도 핵심 기반이 자본가 계급이기 때문이다.

바로 얼마 전에도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재정 감축 논리를 내세우며 공무원노조에 공무원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권유한 바 있다. 새정치연합은 속도와 방식 등에서 이견이 있을지언정 노동자들이 양보해야 한다는 점 자체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재벌에게 약간의 세금을 더 걷으려고는 하고 있지만, 총수 일가의 소유권 자체를 공격하거나 재벌 이윤 중 상당 부분을 회수할 생각도 능력도 없다.

새정치연합에 종속되지 않고 재벌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려면 아래로부터의 독립적 계급 행동이 필수적지만, 재벌 개혁 요구는 독립적 계급 행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넷째, 이 모든 요인들 때문에 현 시점에서 민주노총이 ‘재벌 개혁’ 요구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행동을 고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자기 조합원들과 대다수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생활조건이 공격받는데도 지금부터 단호하게 파업을 설득하지 않고, 재벌 개혁을 내세워 국민적 호평을 얻으려는 것은 계급을 초월한 포퓰리즘적 태도다. 민주노총이 ‘재벌 개혁’을 중심으로 국민투표를 제안하려는 것도 이런 발상의 일환이기도 하다.

포퓰리즘

게다가 재벌 개혁 요구를 앞세우다 보면, “재벌의 세금을 일부 올릴 테니 노동자들도 ‘노동 개혁’을 받아들이라” 식의 주장을 반박하기 힘들다. 청년 실업 등이 노동자 책임이 아니라 재벌을 비롯한 기업주와 정부 책임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노동시장 구조 개악 반대를 분명하게 앞에 내세워야 한다.

민주노총의 8~9월 주요 일정은 국정감사 대응, 주요 정당 설명회, 홍보전 등 재벌 개혁을 홍보하는 데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강행 시 즉각 총파업” 방침을 유지하기로 했지만, “강행 시점”을 언제로 볼지 모호할 뿐 아니라 총파업 조직을 위한 8~9월 계획도 구체적이지 않다.

최저임금 1만 원, 정규직 확대, 법인세 인상처럼 재벌의 이윤과 권력을 공격하는 다른 방법들이 있는데도, 온갖 함정으로 둘러싸인 재벌 개혁 요구를 전면에 내세울 이유가 없다.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 구조 개악으로 가장 큰 득을 보는 것도 재벌들이다.

사실 재벌의 이윤뿐 아니라 소유권까지 공격할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재벌에 고용된 정규직 노동자들이 갖고 있다. ‘임금피크제 반대는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일 뿐’이라며 이를 내세우는 것을 부끄러워하거나 뒤로 미뤄 놓아서는 이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설득하고 북돋을 수 없다.

따라서 민주노총은 재벌 개혁이 아니라 노동시장 구조 개악 반대를 전면에 내세우고, 지금부터 적극적으로 총파업을 설득해야 한다. 그것이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막는 것뿐 아니라 재벌의 이익을 환수하는 데서도 더 효과적이다.

재벌 개혁은 왜 공상적인가?

김대중 정부는 IMF 위기 이후 재벌의 소유·지배 구조 개혁에 훨씬 못 미치는 종류의 재벌 개혁을 추진했지만, 그 표피적인 ‘개혁’조차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오히려 지난 십여 년간 재벌의 경제력 집중은 더욱 강화됐다.

이처럼 소수 거대 자본의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 내재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이라고 《자본론》에서 설명한 바 있다.

여기서 집적은 개별 자본이 축적되고 그래서 더 크게 성장하는 것을 가리킨다. 소규모 기업은 대기업이 되고 대기업은 거대 기업이 된다.

“집중 운동”

마르크스는 집적의 심화는 자본 사이의 경쟁을 격화시켜 “집중 운동”을 낳는다고 봤다. 집중은 일부 자본이 제거돼서 살아남은 자본이 전체 체제의 더 큰 부분을 지배하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다시 말해 “현재 기능하고 있는 자본들의 배분을 변경”하는 것으로 “자본가에 의한 자본가의 수탈이며, 다수의 소자본을 소수의 대자본으로 전환시키는 것”이다.

이렇게 생성된 대자본은 더 많은 노동자를 자신의 지배 아래 두게 되는데, 이는 또한 “사회적으로 결합되고 과학적으로 편성된 생산과정의 창출”이기도 하다. 요컨대 자본의 집중은 생산 능력의 비약적 발전의 원동력인 것이다.

따라서 자본주의 내에서 자본의 집적과 집중을 반대하고 다수의 소자본으로 만들겠다는 계획은 공상적일 뿐 아니라 반동적이기도 하다.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자본의 소유구조는 진정한 관심사가 아니다. 대자본에 맞선 투쟁으로 노동조건을 향상시키고, 더 나아가 노동자 국가를 통해 집중된 생산수단을 노동자들이 통제해 대중의 삶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바로 마르크스주의적 대안이다.

ⓒ<노동자 연대> 154호 | 발행 2015-08-17 | 입력 2015-08-15

‘노동개혁’에 저항하는 것을 회피해서는 재벌 책임도 물을 수 없다

강동훈

최근 노동운동 일각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를 위해 투쟁할 게 아니라, ‘노동개혁’과 재벌 개혁을 함께하는 방식(실제로는 맞바꾸기)으로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연대’를 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에서 재벌 개혁과 노동개혁이 패키지로 합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재벌 개혁과 노동시장 개혁을 패키지로 다룰 새로운 노사정 논의 틀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재벌개혁이 아니라 재벌에 맞서 노동자 투쟁이 필요한다. ⓒ이미진

이와 비슷하게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연대임금정책’을 제안했다. 그 구체적 내용인즉, “기업은 사내유보금을 내놓고 고위 임원의 보수 상한제를 도입하고, 노조는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합리적 임금 조정을 수용하거나 정규직의 임금인상분 일부를 비정규직의 임금인상에 반영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발상들에는 노동자들이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를 내걸고 투쟁하면 고립돼 패배할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 있다. 그보다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의 양보로 명분을 얻고 국민적 인기를 얻는 ‘재벌 개혁’을 내세워 정부와 기업을 압박하는 게 조직 노동자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비정규직이나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서 더 낫다는 것이다.

김유선 선임연구원은 이런 타협안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노동계는 조합원의 요구를 중시하면서도 이를 넘어서서 전체 노동자와 사회 전체의 요구와 이해관계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한다.]”

노동자 투쟁은 가망 없다는 이런 주장들은 새정치연합과의 연대로 기울기 쉽고, 사실 그를 염두에 둔 것이다. 새정치연합 원내대표 이종걸은 이렇게 주장했다. “청년 일자리를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각계에 제안한다.” “대기업 노동자는 청년과 비정규직에게 시간을 양보하라.” 재벌도 돈을 내되 정규직 노동자들도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임금 삭감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절박

그러나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으로 임금을 삭감하면 정부와 기업도 양보해 양질의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는 생각은 공상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하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인들은 그럴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노사정위가 합의에 이르지 못해도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추진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행태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빨리 추진하라고 촉구한 경제5단체를 보면, 한국 지배자들이 얼마나 절박하게 ‘노동개혁’을 추진하는지 알 수 있다.

한국 지배자들은 중국발 경제 위기 가능성이 커지자, 이에 신속하게 ‘노동개혁’을 추진해 임금을 삭감하고 노동유연성을 높여 대응하려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 중 하나가 노동시간 연장을 위한 근로기준법 개악인 상황에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삭감을 받아들인다고 해서 기업주들이 노동시간을 줄이고 일자리를 늘릴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너무 순진하다.

물론 노사정위와 노정협상을 빨리 끝내기 위해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야당이 제기한 재벌 과세 요구를 일부 수용할 수도 있다. 사실 새정치연합의 이인영·은수미 의원 등이 재벌 사내유보금에 과세하겠다며 제출한 법안들이 시행돼도 세수가 2조~3조 원밖에 늘지 않는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이 정도로는 양질의 일자리 창출로 비정규직이나 청년 고용 문제를 해결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그리고 재벌들은 이윤을 여러 형태로 이전함으로써 이런 세금마저 최소화할 수 있다. 경제부총리 최경환이 도입한 ‘기업소득환류세제’는 약 1조 원 정도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실제로 늘어날 세금은 그 절반밖에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현대자동자가 지난해 9월 10조 원을 들여 사들인 서울 삼성동 한전 부지가 투자로 인정되면 환류세액이 대폭 줄어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런 대타협은 이전의 많은 개혁주의적 합의들과 마찬가지로 현금(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내주고 부도 어음(재벌 개혁)을 받는 게 되기 십상이다.

2007년 새누리당(당시 한나라당)은 국민연금을 삭감하는 대신 기초연금(소득대체율 10퍼센트)을 도입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 결과 국민연금은 2008년부터 즉각 삭감됐지만 기초연금은 수년간 도입을 미루다가 박근혜 정부 들어 완전히 누더기가 돼 시행됐다.

또, 청년고용촉진특별법에 따르면 각 공공기관과 지방공기업은 정원의 3퍼센트 이상씩 청년을 고용해야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이를 무시해 왔다.

마찬가지로, 현대자동차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불법파견’이므로 정규직화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도 무시하고 있다.

게다가 새정치연합이 해고 요건 완화나 취업규칙 변경 등에 절대 합의해 주지 않을 거라고 기대하기가 힘들다. 몇 달 전에도 새정치연합은 박근혜 정부와 마찬가지로 재정 감축 논리를 내세우며 공무원노조에 공무원연금 삭감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고 권유한 바 있다.

새정치연합은 사회적 합의를 누더기로 만드는 데 일조해 왔는데, 예를 들어 박근혜가 기초연금 공약을 누더기로 만드는 데 협조한 바 있다.

따라서 박근혜 정부가 마지못해서라도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는 정책을 시행하도록 하려면 기업주·부자들이 정부에 가하는 압력보다 훨씬 강력한 힘이 노동계급으로부터 위로 발출돼야 한다. 특히, 잘 조직돼 있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이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에 맞서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

그러나 재벌 개혁과 ‘노동개혁’을 병행하자(맞바꾸자)는 사회적 타협론으로는 투쟁을 진지하게 호소하기가 힘들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양보하는 데 열의를 보일 리 없을 뿐 아니라, 노사정위 논의나 새정치연합에 기댄 입법 논의에 집중하는 것은 노동자들을 수동적으로 만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잘 조직된 노동자들이 진정으로 “전체 노동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법은 불확실하기 이를 데 없는 정부의 약속을 기대하며 양보를 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이고 공세적인 투쟁으로 다른 노동자 집단들에게 입증해 보여, ‘뭉쳐서 싸우면 동지들도 더 좋은 조건을 성취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고무된 노동계급 내에서는 연대투쟁과 계급의식도 발전해, ‘노동계급 형성’도 가능할 것이다.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에 대해

최근 노동자계급정당추진위(이하 추진위)는 재벌 국유화(사회화)를 주장하며,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시작했다.

국가가 30대 재벌의 사내유보금 7백10조 원을 환수해, 최저임금 1만 원, 대기업 간접고용 노동자 정규직화, 청년실업 해소, 의료공공성 강화 등을 해결하자는 것이다.

사내유보금은 매년 기업이 거둬들이는 이윤 중 세금과 배당 등을 제외하고 축적한 자산을 뜻한다. 따라서 사내유보금 환수는 재벌의 자본의 상당 부분을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재벌의 지배 구조를 문제 삼는 재벌 개혁론은 말할 것도 없고, 법인세 인상이나 사내유보금 과세처럼 재벌 이윤에 대한 세금을 늘리자는 요구보다 훨씬 급진적이며 반자본주의적인 주장이다.

왜 재벌 몰수가 아니라 사내유보금 환수인지, 사내유보금 환수를 유상 몰수로 할 것인지 무상 몰수로 할 것인지, 사내유보금 환수 요구를 자본주의 내에서 가능한 개혁 강령으로 여기는지 아니면 사회주의 혁명으로 발전해 가도록 다리를 놓는 전환(“이행기”) 강령으로 여기는지 등은 논란이 되고 있다. 사실 추진위 내에서도 조금씩 다른 주장이 나오는 듯하고, 몇몇 사람은 두 주장을 모두 하거나 혹은 모든 주장에 대해 열어 두는 듯하다.

물론 이런 쟁점들은 노동계급의 투쟁이 고양되고, 운동이 훨씬 더 치열해질 때는 첨예한 문제가 될 것이다. 사내유보금 환수는 재벌 몰수와 그다지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유상 몰수로는 가능하지 않은 전환(“이행기”) 강령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현실화

그러나 현 시점에서 더 중요한 물음은 이렇다. 현 정세가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벌일 만큼 운동[특히 계급투쟁]이 고양되고 있는가?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현실화할 방법은 무엇인가?

추진위는 재벌에 대한 반감이 높은 지금이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을 해야 하는 때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벌에 대한 반감이 커지는 것과 재벌에 맞선 효과적인 투쟁이 벌어지는 것은 다르다. 추진위는 운동의 주요 방법으로 ‘1만 인 선언운동’, 거리 홍보전 등 사내유보금 환수를 선동하는 데 집중하고 있고, 대중 집회도 기획하고 있다.

물론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같은 급진적 요구를 내걸고 선동을 하거나 대중 집회를 여는 것은 지지받아야 한다. 추진위가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를 자기 단체의 변별적 표지로 삼아 자신들의 창당 계획 홍보에 이용하는 것이 광범한 대중 운동 건설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의 여지가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추진위는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엄청나게 쌓인 사내유보금을 거론하며) 사업장에서 자신의 고용주에 맞서 싸우는 방식은 배제하고 있는 듯하다. 노동현장에서 벌어지는 투쟁이 “대중적 공분을 모아 사내유보금의 사회적 환수를 논하는 것에 많이 미달”하고, “대기업 노동자와 중소기업 노동자 간의 분배격차를 늘려 불필요한 논란을 만들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송명관,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의 목표는 재벌 국유화’) 개혁주의자들이 갖고 있는 노동자 특유의 계급투쟁보다는 재벌을 제외한 나머지 대중이 계급을 가로질러 재벌 반대로 단결해야 한다는 포퓰리즘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이 실질적인 힘을 가지려면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을 핵심적으로 연루시켜야만 한다. 선언 운동이나 거리 집회 등과 달리 재벌의 이윤에 직접적 타격을 줄 수 있는 힘은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투쟁에서 재벌의 엄청난 사내유보금과 그 밖의 이윤을 비판하며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에 나서도록 설득한다면, 더 대중적이고 실질적인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도 가능할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보기에 가장 좋은 방법은 재벌과 여타(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모두) 대기업의 노동자들이 자신의 사용자(착취자)에 맞서 싸우는 것을 한편으로 하고, 노동자와 청년·학생, 여성, 기타 차별받는 모든 대중이 재벌과 부유층에 증세를 요구하며 거리로 나오는 것을 다른 한편으로 하는 경제적인 동시에 정치적인 투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156호 | 발행 2015-09-14 | 입력 2015-09-12

재벌 개혁인가, 아래로부터의 반(反)재벌 투쟁인가?

강동훈

최근 노동운동에서 재벌개혁을 주요 투쟁 의제로 제기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6월 14일에는 민주노총과 민주노총 소속 5개 산별연맹(금속노조, 보건의료산업노조, 서비스산업노조, 플랜트건설노조, 화학섬유노조)이 ‘재벌개혁 산별연맹 연석회의’를 구성하고 재벌 개혁 투쟁을 선포했다.

또, 민주노총 지도부는 8월 22~23일 열리는 정책 대의원대회 토론자료집에서 전략 투쟁 의제의 하나로 “재벌체제 극복”을 제안했다. 이 자료집은 재벌체제 때문에 한국 경제의 저성장과 양극화(불평등 심화)가 일어나고 있다고 규정했다. 즉, “기업 부분 간 양극화는 한국 경제가 재벌대기업(대자본) 중심으로 굳어진 결과이자, 경제 위기의 주된 원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우선, 경제 위기와 양극화 심화의 원인을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서 찾지 않고 자본의 특정 조직 형태나 소유 구조(특히 재벌)에서 찾는 것은 완전히 잘못된 진단이다. 세계 각국에는 미국식, 일본식, 독일식 등의 서로 다른 기업 소유 형태가 있다. 그러나 이 경제들 모두가 위기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고 불평등이 심화하고 있다.

재벌 개혁 요구는 비(非) 재벌 자본과의 연대라는 덫으로 노동자들을 이끌어 투쟁에 악영향을 준다. ⓒ사진 이미진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이 밝혔듯이, 최근의 경제 위기는 1970년대부터 분명해진 이윤율 하락 때문이다. 그리고 불평등 확대는 전 세계 지배자들이 이윤율 하락을 만회하기 위해 신자유주의 정책들로 노동계급을 대대적으로 공격해 온 결과이다. 다시 말해, 저성장과 불평등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모순 때문인 것이다.

물론 이 체제의 한 부분인 한국 경제의 정점에 재벌(대기업 집단)이 있다. 재벌 총수들은 소액주주들을 등쳐먹고, 중소기업에 대한 수탈을 강화하면서 자신들의 이익을 더욱 늘리려 노력했다. 그러나 한국 경제의 본질은 재벌이 국가 관료들은 물론 중소기업주들과도 합심해 노동자들을 쥐어짜고 더 많은 이윤을 얻으려 한다는 것에 있다.

소유 구조 개혁?

둘째, 이처럼 재벌의 소유 구조를 주된 문제로 보는 민주노총은 “재벌 개혁 정책 실현”을 주요 방향의 하나로 제시하고 있다. 재벌 세습 타파, 출자총액제 강화, 지주회사 규정 강화, 계열·기업 분할 명령제 도입, 재벌 규율을 위한 ‘기업집단법’ 제정 등은 이러한 방향을 향하는 각론적 과제들이다.

민주노총의 이런 요구들은 그동안 재벌개혁론을 주장해 온 NGO들의 요구를 그대로 따 온 것이다. 그러나 재벌의 총수 경영과 ‘문어발’ 사업 확장을 저지하고 개별 회사나 기업집단의 주주를 중심으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노동자들의 처지에서 더 ‘진보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예를 들어, 2000년대 초 재벌개혁론자들은 민영화된 KT를 모범적인 기업 소유 구조의 사례로 추켜세웠다. 그러나 KT는 주주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느라 노동자 수만 명을 해고했고, 살인적인 노동강도와 실적 압박으로 노동자들의 자살이 이어지게 만들었다. 재벌개혁론을 내세운 NGO들이 펼친 소액주주 운동(주주 행동주의)으로 가장 큰 혜택을 본 곳들도 사실상 주식시장의 큰손들과 외국계 펀드들이다.

기업 소유 구조 개혁을 추구하는 재벌개혁은 자유주의적 문제의식의 발로로, 노동자들에게는 득이 될 게 없다. 단적으로 말해, 재벌 개혁은 설사 성공하더라도 재벌 총수 일가 수백 명이 갖고 있는 권력을 금융 자산가 수만 명에게 확대하는 것으로 끝날 뿐이다.

△재벌을 공격할 가장 큰 힘은 재벌에 고용된 노동자들에게 있다.

셋째, 자유주의적 재벌개혁을 비판하는 사람들 가운데는 ‘이해당사자 자본주의’의 관점에서 노동자 경영 참여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개혁주의자들이 있다. 예를 들어, 강원대 이병천 교수는 자유주의적 재벌 개혁이 결국 “재벌과 외국자본의 교묘한 동맹이었다”고 비판하고, “소액주주, 채권자, 노동자, 하청 중소기업, 소비자, 지역 사회” 등의 권익이 보장되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본다. 경제민주화를 위해 재벌·대기업의 이사회에 이런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민주노총 지도부도 재벌 통제 수단으로 노동조합의 경영 참여를 제시하고 있다. 특히 독일식 모델이 경영 참여의 대표적인 형태로 자주 언급된다. 그러나 가장 수준 높은 경영 참여를 보장한다는 독일에서조차 노동자들은 기업 경영에 실질적인 결정권을 전혀 갖지 못한다. “독일의 경영이사회는 주주와 노조 측 추천 이사 10명씩으로 동등하게 구성된 듯 보이지만, 노조 대표 중 1명은 경영진 급이고, 주주가 선임하는 위원장은 2개의 투표권을 가진다. 독일도 정책 결정자들이 논의를 주도하는 폐쇄적인 구조를 갖고 있다.”(독일 환경단체 BUND의 교통정책과장 베르너 레)

실제로 노동자 경영 참여는 독일에서 ‘하르츠 개혁’으로 노동조건이 대폭 악화되는 것을 전혀 막지 못했다. 오늘날 독일 저임금 노동자의 비중은 전체 노동자의 22퍼센트로 급격히 늘었다.

설사 노조가 기업 경영에 일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하더라도 경영 참여는 계급 협력 정치를 강화해 노동자를 분열시킨다. 기업이 아무리 ‘투명 경영’을 하더라도 경쟁의 압력은 임금 삭감과 노동강도 강화, 정리해고를 하도록 만든다. 이때 노동자 경영 참여는 의도의 선함 여부와 관계없이 일부 노동자에 대한 구조조정을 다른 노동자들이 승인하도록 압박하는 구실을 한다.

넷째, 재벌 개혁 운동은 비(非)재벌 자본과의 연대라는 덫으로 노동자들을 이끌기 십상이다. 사실, 재벌개혁 요구는 재벌 같은 독과점이 없다면 시장은 효율적이고 공정하게 작동해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불평등을 완화할 것이라는 그릇된 전제를 갖고 있다. 그래서 흔히 중소기업 지원 요구와 함께 제시되곤 한다.

그러나 중소기업은 노동계급의 투쟁에 전혀 우호적이지 않다. 오히려 중소기업이 노동자에게 더 못되게 구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실제로 최저임금 결정을 코앞에 둔 지난 6월 23일, 중소기업중앙회장 박성택은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은 일자리 감소로 직결되는 만큼 기업의 지급능력을 고려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해야 한다며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반대했다. 뿐만 아니라, “대·중소기업 임금 격차 해소를 위해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을 5년간 동결해야 한다”고도 주장했다. 대기업주들뿐 아니라 중소기업주들도 모든 노동자들의 임금 삭감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노총이 주요 과제로 제시한 최저임금 1만 원, 모든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전면 보장 등을 달성하려면 재벌뿐 아니라 중소기업과도 싸워야만 한다. 중소기업을 지원하자면서 중소기업 노동자들한테 자신의 기업주에 맞서 싸우라고 하는 것은 모순이다.

마찬가지로, 금속노조가 올해 주요 요구로 채택한 “재벌의 원하청 초과이익공유제”도 위험하다. 물론 금속노조는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를 개선하려는 좋은 의도에서 재벌의 초과이익을 하청기업과 공유하자고 제안했을 것이다. 실제로 금속노조는 하청기업이 받는 이익의 50퍼센트 이상을 임금 인상과 복지에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그러나 하청기업주를 지원함으로써 하청 노동자들의 처우를 개선하자는 주장은 대기업 원청 노동자들과 하청 노동자들 사이의 분열만 낳을 우려가 있다.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리기 위해 중소기업에 더 많은 이익을 분배해 준다는 것은,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을 동결·삭감해야 한다는 논리 앞에서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이는 자칫 하청기업주와 하청 노동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하고, 대기업주와 대기업 노동자들의 이해관계가 같다는 논리로 미끌어질 수 있다.

기업주와 정부는 이런 약점을 파고들어 원하청 노동자들을 이간질할 것이다. 하청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줄 수 없는 것은 원청 노동자의 임금이 높기 때문이라거나, 아니면 하청 노동자들의 처지 개선을 위해 원청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 줄 수 없다면서 말이다.

따라서 대안은 중소기업주에 대한 지원이 아니라 원하청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해 원하청 노동자 모두의 임금을 올리는 것이다.

포퓰리즘

다섯째, 위에서 언급된 이 모든 요인들 때문에, 민주노총이 ‘재벌 개혁’ 요구를 내세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행동을 고무하기보다는 오히려 그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금속노조 김상구 위원장은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여론전에서 대재벌을 이기기 힘들다. 눈앞의 임금보다 장기 전망과 방안을 세우고 조합원을 설득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현대차 노조 박유기 지부장도 한 토론회에서 임금 인상을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 동의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현대차그룹사 공동교섭에서] 우리 임금을 앞세웠다가는 교섭은 시작도 못 해 보고 끝날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과 사측의 임금 동결 요구로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생활조건이 공격받는데도 단호하게 파업을 지시하지 않고, 재벌 개혁을 내세워 국민적 호평을 얻으려는 것은 계급을 초월한 포퓰리즘(민중주의; 인민주의)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이나 중소상인, NGO(그리고 더민주당 개혁파)의 지지를 얻는 데 집중하느라 노동자들의 당면 요구들을 당당히 제출하는 것을 주저하는 초(탈)계급적 민중 운동은 재벌을 약화시키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재벌의 이윤뿐 아니라 장차 소유권까지 공격해야 한다. 그럴 수 있는 가장 큰 힘은 재벌과 그 하청기업에 고용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갖고 있다. 현실에서 이것이 뜻하는 바는 임금 삭감을 위해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부와 기업주에 맞서 부문을 가리지 말고 노동자들이 투쟁과 연대에 나서도록 고무하는 것을 뜻한다.

특히, 잘 조직돼 있는 대기업·정규직 노동자들의 투쟁은 재벌의 양보를 이끌어 내는 데 가장 큰 힘을 발휘할 뿐 아니라, 하청·비정규직 노동자들이 그에 고무받아 자신들의 처우 개선과 투쟁에 나서는 데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노동자 연대> 177호 | 발행 2016-06-29 | 입력 2016-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