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퇴를 멈추고 총파업으로!

김하영

9월 17일 전국 단위사업장 대표자 대회에서 9·23 총파업이 결정됐다. 이 대회를 소집하면서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은 추석 전 파업에 돌입하자고 제안했다.

“총궐기, 총파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노사정 야합이라는 실제상황이 벌어진 지금, 때를 놓치지 말고 강력한 투쟁의 포문을 열어야 합니다. 그래야 조합원들도 우리를 믿고 투쟁을 준비하고 결의할 수 있습니다. 전국 곳곳에서 일시에 현장을 멈추고 서울로 쏟아져 나옵시다. 투쟁은 타이밍입니다. 단위사업장 대표자 동지들의 결단이 대반격의 시작입니다.”(전국 단위사업장 대표자 대회 자료집)

왜 추석 전 돌입이어야 하는가?

한상균 위원장의 지적처럼, 때를 놓치지 않고 투쟁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위 야합으로 여론몰이를 하며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속전속결로 추진하려 한다. 맘대로 해고와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을 곧 발표할 것이고, 16일 새누리당의 입법 발의에서 보듯이 법 개정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이런 때 타이밍을 놓치지 말고 즉각 총파업에 돌입해야만 박근혜의 ‘노동개혁’ 속도전에 다소라도 제동을 걸 수 있다.

투쟁의 때를 놓치고 결국 가이드라인이 제정되는 것을 방치하면,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기울었다는 생각과 무기력감에 이후 투쟁을 하기가 더 어려워질 수 있다.

일각에서는 아직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강행 시”가 아니라는 듯이, 투쟁을 미루자고 한다. 그러나 개악 법안 “국회 상정 시” 또는 “통과 시”처럼 이미 사태가 기운 다음에는 상황을 되돌리기가 더 어렵고, 그걸 뻔히 아는 노동자들이 투지를 발휘하기도 힘들다.

총파업은 노조 지도자들이 원할 때 마음대로 꺼내 쓸 수 있는 주머니 칼이 아니다. 조합원과 노동자들이 커다란 분노에 휩싸여 있는 지금이 바로 투쟁의 적기다.

어떤 사람들은 총파업 일정이 너무 촉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민주노총 지도부가 9월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강행 위험에 대비해 조합원들을 미리 준비시키지 못한 점은 돌아볼 만하다. 그러나 촉박하더라도 철든 한국인의 관심이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쏠려 있는 이 뜨거운 시기에 ‘촉박하게’ 총파업에 들어가는 게 결코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물론 하루 이틀 파업만으로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저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추석 전 총파업 돌입으로 추석 귀향 여론에 영향을 미쳐야 추석 후 좀 덜 불리한 조건에서 투쟁을 이어갈 수 있다. 노동자들이 투지 있고 더 자신 있게 되면 사용자들이 노동자들을 함부로 부리기가 좀 더 조심스러워진다.

공은 국회(논의)로 넘어갔나?

어차피 공은 국회로 넘어갔으니 국회 논의가 본격화할 때(11월 또는 일러야 10월) 싸우자는 주장은 위에서 든 이유들로 부적절하다.

우선, 그런 주장은 법 개정이 아니라 가이드라인으로 당장 추진될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 문제에는 속수무책인 입장이다. ‘가이드라인이 제정돼도 법 위반 소지가 있어 어차피 국회 논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은 사실상 가이드라인 제정은 보아 넘기자는 것이다.

또, 그런 주장은 국회 논의 대응에 중심을 두면서 투쟁은 압박용으로만 부차적으로 사용하려는 구상과 맞닿기 쉽다. 그러나 국회 논의에만 의존해서는 결코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저지할 수 없다.

설사 국회 논의기구가 만들어진다 해도, 그런 기구는 “일방적”이지 않은 모양새를 띨 뿐 경제 위기를 이유로 노동자들의 양보를 설득하는 구실을 한다.

국회 논의 대응에 중심을 두면 새정치민주연합과의 공조에 매달리게 되기 십상이라는 문제점도 있다. 새정연은 결코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일관되게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다. 노동개혁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풀자며 대기업·정규직 양보를 주장하는 한편, 노동개혁뿐 아니라 재벌개혁도 하자는 식이다.

이것은 김대중 정부 시절부터 그들이 노동자들의 양보를 얻어내려고 써 온 꼼수일 뿐이다. 1997~98년 이후에도 재벌의 경제 장악력이 여전히 점점 커지고, 빈곤이 점점 증대한 데서 알 수 있듯이, ‘재벌개혁’은 실효성이 전혀 없었던 반면 정리해고제·파견제 도입은 노동자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올해 공무원연금 개악에서도 새정연은 ‘대타협’의 이름으로 공무원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했다.

이처럼 난점이 거듭 드러난 방식을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 투쟁에서 되풀이해선 안 된다. 비정규직, 통상임금, 근로시간 등 법 개악에 맞서려면 새정연에 의존하지 말고 국회 투쟁, 특히 대중 투쟁에 확고한 중심을 둬야 한다.

총파업을 할 현장 동력이 없나?

즉각 총파업 돌입 호소에 대해,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과연 총파업을 할 현장 동력이 있느냐’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그러나 올해 기층 분위기는 근래 어느 때보다 괜찮았다. 심지어 한국노총에서도 지난 7월 18년 만에 압도적 지지로 총파업이 가결됐었다(89.8퍼센트의 찬성률). 총파업이 불발된 것은 한국노총 지도부가 조합원들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국회 앞 농성과 삭발로 시간을 끌다가 노사정위로 복귀했기 때문이지 현장 조합원들 탓은 아니었다.

민주노총의 기층 분위기로 말하면, 기반도 넓지 않았던 한상균 당시 위원장 후보가 총파업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 것이 한 징후였다.

4·24 파업 때까지 상승하던 분위기는 이후에는 탄력을 잃고 말았는데, 주로 이경훈 현대차 지부장의 4·24 파업 비난과 이충재 전 공무원노조 위원장의 공무원연금 개악 합의가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민주노총의 경우에도 현장 동력이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공무원연금을 둘러싼 투쟁 패배 후 급속히 총파업 불가론이 확산되고 사회적 대화(국회 논의기구)로 관심이 기울면서, 9월 노동시장 구조 개악 강행 위험에 대비한 투쟁 계획이 공백을 빚는 사태가 벌어졌다.

그럼에도 지금 현장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현장 조합원들은 스스로 투쟁에 나설 만큼 자신이 있지는 않아도 만일 지도부가 단호하게 파업을 명령하면 따를 태세가 돼 있다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현재의 노동자 투쟁이 대체로 보아 차질이 빚어지기 일쑤이지만, 그 이유를 제대로 짚어야지, 현장 조합원 탓을 해서는 안 된다.

상반기 투쟁의 약점을 반복해선 안 된다

여기서 상반기 투쟁을 상세히 돌아보기는 어렵다. (이 신문 150호에 실린 ‘하반기 투쟁을 위한 상반기 투쟁의 교훈’을 참고하시오.) 다만, 반복해서는 결코 안 될 점 두 가지만 언급하려 한다.

첫째, 민주노총은 9·23 총파업 이후 후속 투쟁 계획을 즉시 내놓아야 한다. 4·24 총파업 이후 후속 투쟁 계획이 신속하게 제시되지 않았던 것은 약점이었다. 하루파업으로는 박근혜의 공세를 저지할 수 없으므로, 4·24를 성사시킨 자신감을 발판으로 이후 투쟁을 확대해 가야 했듯이, 지금도 마찬가지다. 4·24 이후 투쟁 공백이 있었다는 약점이 추석 후에 되풀이돼서는 안 된다.

일회성 집회와 다름없는 ‘총파업’에 그치면 효과가 미미할 뿐 아니라 온건파들의 ‘파업 무용론’ 목소리를 키우는 데 이용되기도 한다.

둘째, 산하 노조들이 펼치는 투쟁 전선의 균열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가령 이충재 전 공무원노조 집행부는 4·24 총파업 전부터 국민대타협기구에 참가하며 공무원연금 개악 수용을 저울질하다가 결국 5월 2일 개악안에 합의해 이후 투쟁 전선에 악영향을 미쳤다.

현재 양대노총 공공부문노조 공투본에 속한 공공운수노조와 보건의료노조는 노사정위 야합이 있은 뒤에도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과 함께 ‘노정 실무협의’에 참여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 노조가 9·23 총파업으로 힘을 모으는 데 장애가 될 것이다.

공공운수노조 지도부가 9월은 어렵고 10월에나 총파업을 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던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 4·24 총파업 당시에도 공공운수노조는 투쟁을 6월로 미뤘는데, 이때도 한국노총 산하 노조들과 함께 기재부·노동부와의 실무협의 테이블에 참가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에 제대로 맞서려면 민주노총 산하 노조들은 노정 실무협의를 중단하고 총파업으로 힘을 모아야 한다.

민주노총과 계급 대표성

지금 민주노총이 총파업 투쟁에 나설 것인가를 결정하는 데서 각자의 조직 상태만을 앞세우는 것은 편협한 시각일 것이다.

우익이 아니라면 다 인정하듯이, 박근혜의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대다수 노동자들의 삶을 크게 악화시킬 것이다. 특히, 노조가 없거나, 있어도 있으나 마나 한 노동자들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더 쉽게 노출될 것이다.

그간 민주노총 안팎에서는 과연 민주노총이 계급 대표성을 갖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돼 왔다. 바로 지금 그 회의적 질문에 답변할 때다.

민주노총은 단지 조합원뿐 아니라 광범한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에도 반대해야 한다. 잘 조직된 사업장은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문제를 단협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위험에 직면한 다른 노동자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노동자는 하나의 계급이다. 우리는 운명 공동체다.

그동안 우경적 노조 지도자들은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 핑계를 대며 민주노총의 투쟁성을 잠식해 왔다. 그러나 계급 대표성을 위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을 대변하려면 오히려 투쟁성을 칭찬하고 고무해야 한다.

“범국민적” 투쟁을 말하기에 앞서 민주노총은 한국사회에서 가장 잘 조직된 부문으로서 제 위상을 과시해야 한다. 그러면 미조직·비정규 노동자들과, 민주노총에 회의적 눈길을 보냈던 청년들로부터 마치 2013년 연말에 받았던 것과 같은 광범하고 열정적인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총파업을 한다고 노동개악을 막을 수 있나?

승리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거듭됐던 양보와 후퇴를 멈춰야 한다. 이제 반격에 나서야 한다.

박근혜는 매우 단호하고 끈질기게 노동자들에 대한 공격을 추진하고 있다. 소나기 피해 보자며 하나의 개악을 다른 개악의 수용으로 돌려막기 하는 식으로는 우리의 조건을 지킬 수 없다. 일반해고와 성과연봉제라는 막다른 길에 다다른 우리의 투쟁을 전면 돌아봐야 한다.

총파업에 돌입한다 해서 노동시장 개악을 모두 막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저들의 속도전에 다소라도 제동을 걸면서, 좀 덜 불리한 조건에서 투쟁을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특히, 세월호 참사처럼 부패 정권의 위기와 맞물리면 중요한 전환점을 맞을 수도 있다.

미래는 예정돼 있지 않다. 그러나 노·자간 계급투쟁이 자본주의 하에서 지속되리라는 점은 예정돼 있다. 우리가 물러서지 않고 저항에 나선다면, 좀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노동자 연대> 157호 | 발행 2015-09-21 | 입력 2015-0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