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삭감 공격에 나선 정부와 기업주들

박설

경제 위기가 심화하면서 정부와 기업주들의 임금 삭감 시도가 거세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1월 쉬운 해고와 임금 삭감을 위한 양대 지침을 발표하면서 그 길을 닦았다. 그리고 실제 노동 현장에 이를 적용하기 위해, 정부가 관할하는 공무원·공공기관·금융 등 공공부문에서 먼저 성과연봉제 도입·확대에 착수했다.

이 같은 공격에서 민간부문도 예외가 아니다. 한국경영자총협회(이하 경총)는 2월 2일 발표한 ‘2016년 경영계 임금조정 권고’안에서 임금 삭감을 위한 세 가지 기본 방침을 제시했다.

첫째, 올해 임금은 전년 수준에서 동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둘째, 대졸 정규직 초임(고정급)이 3천6백만 원 이상인 기업은 이를 삭감한다.

셋째, 임금체계를 직무·성과 중심으로 개편한다. 전면적 전환이 어려울 경우, 부분적·단계적으로 새로운 임금체계를 적용시켜 나간다.

경총은 특히 올해 사업의 초점을 임금체계 개편에 맞추고 대규모 예산을 편성할 계획이다. 경총 회장 박병원은 “임금피크제는 임시방편적 미봉책에 지나지 않고 직무급과 성과급으로 대표되는 임금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는 연공급제를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로 전환하는 것은 지배자들의 오랜 숙원 사업이었다. 특히 1997년 IMF 위기를 전후로 기업주들은 “임금을 다른 자본재와 마찬가지로 투자와 효율이라는 관점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대한상공회의소)고 요구했다. 이는 오늘날 세계경제 위기 심화 속에서 더 강화됐다.

연공급제는 한국 경제가 잘 나가던 시절에 기업주들이 젊은 노동자들을 싼 값에 유인하고 붙잡아 두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장기근속자·고령자가 늘어나면서 연공급제로 인한 인건비 부담이 커졌다. 특히 경기가 악화하는 상황에서 이런 부담은 더 큰 무게로 여겨졌다.

노동조합의 협상력도 지배자들에게 커다란 골칫거리다. 1987년 노동자대투쟁 이후 노조의 힘이 증대하고 인사고과가 유명무실해지면서 성과에 따른 승급·상여금 등이 고정적·일률적으로 지급되는 기업이 늘어났다. 노동자들은 해마다 집단적으로 임금 인상 투쟁을 벌여 기업주들을 압박했다.

물론 IMF 위기를 전후로 저임금층인 비정규직이 대거 늘어나고 임금 인상률이 점점 낮아지고 성과급 요소도 늘었지만, 기업의 이윤이 크게 압박 받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을 줄이고 임금체계의 효율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지배자들에게 중차대한 과제다.

이를 관철하기 위해 지배자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노동생산성에 비해 임금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출처 《한국의 노동 2016》, 김유선.

그러나 IMF 이후 한국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인상률은 노동생산성 증가율에 훨씬 못 미쳤다. 특히 2008년 세계경제 위기 이래로 생산성이 증가해도 임금은 상승하지 않는 ‘임금 없는 성장’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은 실질임금 인상률과 생산성 증가율 사이의 격차가 가장 큰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그림 참고)

지배계급과 노동자들 사이의 소득 불평등도 점점 확대됐다. 노동소득분배율은 1996년 62.4퍼센트에서 2002년 58.2퍼센트로 감소했다가 2014년에 62.6퍼센트로 IMF 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는데,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노동자들의 상대적 지위가 회복되어서가 아니라, 임금 노동자 증가에 따른 것”이라고 옳게 지적했다. “노동자들 머릿수는 절반 가까이 늘었는데, 가져가는 몫은 똑같은 것이다.”

임금 몫

그런데도 정부와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을 더 쥐어짜 임금 몫을 더 줄이려고 한다. 성과급제가 노동자들에게 얼마나 치명적인지는 앞서 이 제도가 도입된 사례들이 잘 보여 준다. 2010년 성과연봉제가 도입된 KT에서는 고과평가에서 하위·최하위 등급을 받은 노동자 20퍼센트가 해마다 임금이 동결되거나 삭감됐다. 2003년 독일 금속산업에서 직무·성과급제가 전보다 강화됐는데, 그 결과 노동자 60퍼센트 가까이가 임금이 삭감된 것으로 알려졌다.

성과 중심의 임금체계는 노동자들을 효과적으로 통제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노동자들은 평가 점수를 잘 받기 위해 관리자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이 과정에서 전환배치, 노동강도 강화 등 노동조건을 악화하려는 사측의 공격에 취약해질 수 있다. 끊임 없는 경쟁 압력 속에서 노동자들 사이에 단결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에, 효과적인 저항도 어려워질 것이다.

따라서 정부와 기업주들의 임금체계 개악 시도에 단호하게 맞서는 것은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을 방어하고 노동조건을 지키고 노동조합의 단결된 힘을 유지하는 데서 매우 중요하다.

일각의 오해와 달리, 임금 공격은 공공부문·대기업 정규직만 겨냥하는 것은 아니다. 정부는 지난해 공공기관에서 임금피크제를 관철한 데 이어, 올해 3백인 미만 민간기업으로 공격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직무급제는 ‘낮은 직무에 낮은 임금’이라는 논리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정당화하는 기제로도 작용해 왔다.

이처럼 정부와 기업주들이 일치단결해 노동시장 전반에 임금체계 개악을 시도하고 나선 만큼 민주노총 차원의 투쟁이 조직될 필요가 있다. 잘 조직된 노조들이 이 투쟁에 앞장서야 한다.

각 현장에서 사측의 공격에 맞서 투쟁하는 것도 중요한데, 이럴 때 공공부문·대기업 정규직의 임금 방어를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이들이 단호하게 싸워 공격을 막아 낸다면, 전체 투쟁 전선에 좋은 자극을 주고 많은 노동자들에게 싸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기업주들이 부분적·단계적 공격을 통해 임금체계 개악을 관철해 나가려는 시도에 단호히 반대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경총은 임금체계 개악 시 기존 노조의 저항을 피해 우선 신입사원들에게 먼저 이를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노동조합 운동은 한 부분에 대한 공격이 종국에 전체 노동자들의 조건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면서, 신입사원 이중임금제를 거부해야 한다.

ⓒ<노동자 연대> 167호 | 발행 2016-02-17 | 입력 2016-0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