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대통합당 안(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최일붕

4년 전 총선과 그 8개월 뒤 치러진 대선에서 적잖은 노동자들이 박근혜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물론 다수는 아마도 문재인에게 투표했을 것이다. 박근혜에게 투표한 노동자들은 경제 회복을 바라고 그랬을 것이다.

박근혜의 대선 승리는 노동자들의 사기를 다소 떨어뜨렸던 듯하다. 그리고 당시에 진보당이 민주통합당과의 연립정부를 염두에 두고 우경화했던 것도 거기에 다소 일조했을 것이다.

그람시는 지배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잡는 데서 정당이나 노동조합 등의 ‘시민사회’가 하는 구실을 지적했다. 혁명적 마르크스주의자이던 시절 알래스데어 매킨타이어도 “노동운동이 개혁주의 사상과 더 중요하게는 그 사상이 표현하는 체제 논리를 수용하면, 자본주의가 가하는 사회적 압력에 취약해진다”고 강조했다.

제러미 코빈 노동당 대표가 자꾸 양보하면 “좌파 전체를 약화시킨다”고 알렉스 캘리니코스가 경고한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지난해 11월 코빈은 파리 참사를 명분으로 한 서방의 시리아 공세나 개입을 유엔의 합법성 부여를 전제로 양해할 수 있다고 암시했다.

지속가능  단결해서 얻은 진보·좌파의 총선 성과는 의미있고 중요하다. 이 성과를 이어가려면, 지속가능한 방식이 필요하다. ⓒ사진 이미진

박근혜 정부 등장 후 노동자 운동 내 이데올로기 투쟁의 세력균형은 좌파에 현저하게 불리했다. 분절화와 부문주의로 노동자들은 단결할 수 없으므로 싸울 수 없다던가, 특히 정규직 노동자들은 그렇다던가, 진보정당이 재건되는 게 노동운동 재기의 선결 조건이라든가 하는 등의 주장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려 전진을 가로막고 있었다.

노동자연대는 소규모였어도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우리 몫을 하려 애썼다.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분석을 통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사상과 투쟁했다.

또, 노동자연대는 민주노총 안에서 상대적으로 가장 좌파적인 집행부가 등장케 하는 데 일조했다.

이 사상 투쟁과 정치 운동은 서로 결합돼 다소 효과가 있었던 듯하다. 적어도 민주노총 좌파가 대세에 영합하는 것을 어느 정도 견제했던 듯하다.

물론 대규모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더라면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떨어뜨리는 반동적 사상을 크게 밀어 내는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두세 차례의 민주노총 하루 파업과 여러 차례의 소규모 노동자 투쟁이 일어났고, 여기에 노동자연대의 기여도 일부 있었다.

한편 세월호 참사는 광범한 대중에게 큰 심리적 충격을 줬지만, 그에 대한 항의 운동이 노동운동 내에 미친 이데올로기적 효과는 반동적 사상을 밀어 낼 만큼 강력하고 급진적이지는 못했다. 박근혜 정부에 대한 반감은 증대시켰겠지만 말이다.

지속 가능성을 위한 조건들

그러므로 이번 총선에서 박근혜가 참패한 원인은 주로 경제를 못 살린 것에 대한 심판을 받은 것과, 부차적으로 노동자 저항들과 세월호 항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그러나 박근혜 참패보다 정말 더 중요한 점은 적잖은 노동자들이 박근혜 심판에서 더 나아가, 진보 측에 투표해 여덟 명을 당선케 한 것이다.

이는 주로 자본주의 야당들이 박근혜 정부에 너무 타협적이었던 것에 대한 불신을 표명한 것일 뿐 아니라, 진보·좌파 정치의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이 노동자들은 매우 중요하다.

이 진보 투표는 정의당과 부울경연합의 의회 진입으로 나타났다. 그러므로 정의당과 부울경연합이 모두 포함되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연합하는 정당을 설립한다는 생각은, 일단은 괜찮은 생각일 것이다.

그러나 그 정당은 지속 가능해야 한다. 정의당계와 자민통계는 과거에 두 차례나 분열한 경험이 있다(2008년 초와 2012년 여름). 노동자연대는 그 원인이 매우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지적했다. 제국주의 체제의 동아시아 내 갈등 문제와 북한 사회 성격 문제라는 근본적인 문제 말이다. 그리고 그 원인은 지금도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어졌으면 깊어졌지 말이다.

그러므로 지속 가능하려면 다음과 같은 강력한 조건이 붙어야 한다.

첫째, 정규적인 일상 활동을 공유하는 통상적인 정당이 아니라 선거연합 성격의 정당이어야 한다. 그런 정당이 어떤 모습일지는 이번 총선을 앞두고 민주노총 주도로 형성된 총선공투본을 정당 형태로 발전시킨 모습을 상상하면 이럭저럭 비슷할 것 같다. 명칭은 예컨대 ○○당(정의당), ○○당(진보연대), ○○당(**당) 하는 식이면 될 것이다.

둘째, 정의당과 자민통계 그리고 둘의 완충지대 격인 제3세력을 다 당 중앙에 포함해야 하지, 이 가운데 하나만 포함하는 연합이라면 불안정할 것이다.

(노동자연대 같은 사회주의자들은 스스로 그 제3세력에 포함되려 애쓰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정의당과 자민통계의 합법 전술용 정당은 집권해 개혁 입법으로 사회를 개혁할 목적으로 선거에서의 승리에 맞춰진 정치 조직이다. 유권자 영합주의의 압력이 있을 수밖에 없고, 이는 의원단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다. 게다가 의원단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당내 사회주의자들의 처지는 녹록하지 않다. 이때 의회 밖에서 벌어지는 운동만이 사회주의자들이 당내 우파의 압력을 버텨 내고 원칙을 고수할 힘을 줄 텐데, 이 점에서도 사회주의자들은 자신의 정견을 내놓으면서 독자적 조직으로서 활동하는 것이 훨씬 더 유리하다. 당직선거나 공직선거 등을 둘러싼 갈등에서 벗어나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셋째, 선거연합당은 대선을 앞두고 더민주당(물론 국민의당도) 같은 자본주의 정당과 연립 협약을 맺어서는 안 된다. 정의당 못지않게 자민통계도 부르주아 정당과 연립하기를 갈망한다. 선거연합당의 목적은 선거에 대처하는 것이다. 진보·좌파 측의 단일 후보를 선출 또는 선정해 그 후보가 선거 운동을 이용해 기존 체제를 비판하고 노동자 투쟁을 찬양·고무하게끔 해야 한다. 그러나 부르주아 정당과 협약을 맺는다면 그 정당은 기존 체제를 좌파적 견지에서 비판하지도 못하고, 또 노동자 투쟁을 확실하게 지지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런 정치 조직이라면 도대체 뭐에 쓸 것인가?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지금부터 독자 후보의 사퇴 불가를 분명히 못박자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주장이 두 가지 점에서 부적당하다고 본다. 첫째, 이 문제를 지금부터 확실히 하자고 강조하는 건 선거 전술에서 후보 거취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효과를 낸다. 좌파의 선거 참여는 후보 개인 중심의 활동이기보다는, 후보 주위에 결집한 선거 운동과 그 선거 운동을 지지하는 훨씬 더 폭넓은 대중 운동이 돼야 한다.

둘째, 아무리 대선이 1년반밖에 안 남았다고 해도 후보 거취 문제를 지금부터 확정해 두겠다는 건 새 연합체에 참여할 세력의 폭을 지나치게 제한하는 효과를 낸다. 계급 투쟁의 수위와 부르주아 야당 후보가 누구냐에 따라 나중에 투표 방침을 정하고자 하는 세력들이 참여를 주저하도록 만들 수 있다.)

투 트랙 전략 자민통계의 ‘상설연대체+진보대통합당’ 구상은 인민전선 전략의 양대 축이다. ⓒ사진 출처 참세상

더 중요한 게 있다

자민통계와 정의당, 그리고 다른 진보·좌파 단체들이 연합할 수 있는 더 중요한 틀은 제한된 구체적 이슈를 둘러싸고 형성되는 공동전선들이다. 이것이 선거연합당보다 더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에도 문제가 뒤따른다. 자민통계는 진정한 공동전선을 우회해 언제나 민중전선으로 몰고 가려는 경향을 보였다. 우리는 이를 민중총궐기 준비 단계에서 보았다. 물론 민중총궐기는 실제로는 압도적으로 민주노총 조합원 총궐기였고(전체 참가자 9만 명 가운데 7~8만 명), 노동자들의 거리 항의는 좋은 것이다.

그러나 민중총궐기를 제안하고 계획한 노조 지도자들과 노조 안팎의 민중주의자들은 노동자 운동을 중간계급들이나 심지어 자본주의 정당과 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끌려는 경향이 있다. 즉, 인민전선으로 연결시키려 한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민중주의자들, 특히 자민통계가 말하는 ‘상설연대체’는 그들이 추진하는 진보통합정당과 한 짝을 이루어 인민전선 전략에 이바지하도록 구상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보통합정당 대신에 사안별 공동전선을 대안으로 강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의 경제적·정치적 투쟁이 가장 중요하다는 걸 잊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 지도자들에게는 민주노총에 기반을 둔 정당이라는 아이디어가 솔깃할 것이다. 그러나 비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하지 않은 정당 설립을 추구하기보다는, 지금으로선 노동자들의 노동조건과 생활조건이 걸린 당면 투쟁을 더 신경써야 한다. 그래야 적절한 때 효과적이고 지속 가능한 결집체를 구축할 수 있다.

ⓒ<노동자 연대> 175호 | 발행 2016-06-01 | 입력 2016-06-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