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랜스젠더 해방을 위한 투쟁

로라 마일즈

적지 않은 나라들에서 동성결혼이 합법화되는 등의 진보가 이뤄졌지만, 성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편견 그리고 적개심을 가진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한다. 미국 지배층은 올해 6월 올랜도 게이클럽에서 대학살이 벌어졌을 때 짐짓 분노하는 척했지만 정작 미국에는 성소수자 차별을 막기 위한 보호법이 없는 주가 30여 곳이 넘는다.

트랜스젠더의 경우에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여전히 혐오에 의한 차별과 폭력·살인에 너무나도 자주 시달린다. 1998년 트랜스 여성 리타 헤스터가 살해당한 후 해마다 11월 20일에는 활동가들이 트렌스젠더 추모의 날 행사를 조직해 왔다. 이 행사에서는 해마다 혐오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트랜스젠더의 이름을 낭독한다. 올해 11월 낭독될 이름 중에는 한데 카데르도 있다. 그는 터키의 트랜스 여성 활동가이자 ‘성 노동자’였는데, 올해 7월 강간을 당했고 강간범들은 그를 불태워 죽였다. 터키 경찰이 2년째 이스탄불 자긍심행진을 금지하고 공격한 직후에 벌어진 일이었다.

△혐오 폭력으로 목숨을 잃은 트랜스젠더를 추모하는 행사에서.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트랜스젠더 81명을 추모했는데, 이 수치는 실제 사망자보다 분명 적을 것이다. 미신고 살인도 많을 뿐더러 피해자의 젠더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은 경우도 많다. 일부 지역에서는 이 같은 살인이 트랜스젠더 혐오 범죄로 인정되지 않아 집계조차 되지 않는다. 2015년 미국에서는 트랜스 여성 20여 명이 살해당했다. 이는 역대 최고 기록으로, 2014년의 갑절에 가까운 수치다. 그 다음으로 피해가 많이 발생한 곳은 멕시코였다. 멕시코에서뿐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전역에서 끔찍할 정도로 많은 살해와 자살 사건, 트랜스젠더 혐오에 의한 폭력과 범죄가 발생했다.

여러 나라에서 동성애자와 양성애자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개선됐다. 특히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더 그렇다. 하지만 여러 연구 결과에서 볼 수 있듯이,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차별, 괴롭힘, 학대, 따돌림에 시달린다.

비극적

그래서 [영국 의회 산하] 여성·평등위원회의 <2016 트랜스젠더 평등 조사>는 “일상적으로 개인들이 경험하는 고강도의 트랜스젠더 혐오”를 해결하기 위한 30가지 방안을 제시한다. 그중에는 트랜스젠더들이 사법 체계 안에서 어떤 대우를 받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항목도 있다. 2015년 말 트랜스 여성이었던 비키 톰슨과 조앤 레이섬은 남성 교도소에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했다. 이 사건은 현재 교정시설에서의 트랜스젠더 혐오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분명히 보여 줬다.

<트랜스젠더의 정신 건강과 정서적 안녕에 대한 연구>라는 보고서를 보면, 트랜스젠더의 81퍼센트가 공중화장실이나 체육시설을 이용하는 등의 특정 상황을 매우 꺼린다. 두려움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한다. 90퍼센트는 트랜스젠더가 비정상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고 답했다. 38퍼센트는 성추행을 경험했고 6퍼센트는 강간 피해 경험이 있다. 37퍼센트는 물리적 위협을 받은 경험이 있고 19퍼센트는 실제로 물리적 공격을 당했다. 88퍼센트는 우울증을 겪었거나 겪고 있고, 53퍼센트는 자해 경험이 있으며, 35퍼센트는 적어도 한 번은 자살을 기도한 적이 있다.

자산이 많거나 부유한 소수 트랜스젠더는 커밍아웃에 따르는 곤경을 잘 이겨낼 수 있지만, 대다수 트렌스젠더는 심각한 스트레스와 트라우마를 겪는다. 계급도 중요한 요인이다. 권투 시합 기획자 켈리 몰로니처럼 언론에 나와 “임대료 수익으로 성전환 수술비 10만 파운드를 낼 수 있었어요”하고 으스댈 수 있는 트랜스젠더는 많지 않다.

일부 나라에서 상황이 악화하다

일부 나라에서는 최근 들어 오히려 상황이 악화했다. 지난 4월 영국의 방송 프로그램 <처음 만난 세계>는 말레이시아 트랜스젠더들이 겪는 심각한 차별과 괴롭힘·학대를 다뤘다. 말레이시아 당국은 트랜스젠더가 이슬람에 어긋난다고 공표했다. 또한 2014년 러시아 의회는 러시아정교회의 지지를 등에 업고 트랜스젠더는 운전할 수 없도록 했다. 트랜스젠더는 정신질환자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조처들은 편견에 찌든 폭력배와 파시스트들이 성소수자를 색출해 공격하는 것을 정당화하며 고무하는 결과를 낳는다.

대다수 아프리카 나라들에서 동성애는 불법이고 트랜스젠더는 멸시받으며 폭력적 억압에 시달린다. 최근에 우간다에서는 이들에게 중형을 선고할 수 있는 끔찍한 법안들이 제정됐다. 이런 법안 중 일부는 미국의 기독교 근본주의자들과 연결된 종교 단체들이 사주한 것이다. ‘동성애와 젠더 전환은 서방에서 건너온 기행이고 서방 제국주의가 들어오기 전까지 아프리카에는 없었다’는 거짓말도 흔히 동원된다. 동성애 혐오와 트랜스젠더 혐오가 반제국주의와 민족주의로 포장되는 것이다. 저술가이자 트랜스젠더 활동가인 레슬리 파인버그는 이와 같은 역사 왜곡을 통렬히 반박했다. 젠더 전환과 동성애는 서방의 침략 이전부터 이미 아프리카에 흔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세계적 상황이 이런 만큼, 다양한 피억압 집단과 노동조합과 좌파 조직 들을 아우르는 연대와 집단적 저항이 매우 절실하다. 그런 의미에서 올해 6월 [영국에서] 소규모의 분리주의적 페미니스트들이 의회 여성·평등위원회의 트랜스젠더 평등 조사 세션에서 시위를 벌인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들은 트랜스 여성이 여자 화장실과 탈의실을 사용하지 못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이러한 요구는, 트랜스 여성은 “진정한 여성”이 아니라고 보는 몇몇 재생산 권리 활동가들과 급진 페미니즘 내 주장을 반영한 것이다. 저명한 페미니스트 저메인 그리어와 줄리 빈델, 그리고 실라 제프리스가 이런 주장을 펼친 바 있다.

논쟁

최근에는 이와 같은 논쟁이 대체 “여성”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대한 논쟁으로 확대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캐스터 세메냐가 리우 올림픽의 800미터 달리기 종목에서 우승했을 때, 인종차별과 여성 혐오, 동성애 혐오, 인터섹스(간성)에 대한 반감을 뒤섞은 굉장히 역겨운 편견들이 난무했다. 2015년 캐사 폴릿이 미국 주간지 <더 네이션>에 기고한 기사 ‘낙태는 누가 하는가’는 용어와 정의를 둘러싼 격렬한 논쟁을 촉발했다. 이 논쟁은 정체성 정치의 이론들이 지닌 분열적 효과를 극명하게 보여 줬다. 정체성 정치는 자본주의 하에서 벌어지는 투쟁의 핵심적 측면이 계급이라는 것을 부정한다.

화장실에서 “먹잇감을 노리는 트랜스 여성”?

미국에서는 트랜스젠더의 공중화장실 사용이 커다란 화두가 됐다. 2015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는 트랜스젠더가 성별로 구분된 화장실을 사용하는 것이 금지됐다. 다른 주에서도 편견에 찌든 사람들이 비슷한 입법을 요구하고 있다.

트랜스젠더 혐오에 따른 이런 행동은 단지 편견이나 그릇된 생각에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 트랜스젠더 혐오는 정치적으로 주의깊게 조직된다. [미국] 앨런 시어즈의 자유수호동맹 같은 조직들은 성소수자 인권 보장에 반대해서 수임료가 비싼 변호사와 로비스트 들을 동원하고 있다. 그들은 주법이나 연방법의 허점을 샅샅이 찾아내 트랜스젠더·동성애자·양성애자를 차별하는 민간·공공 단체의 행태를 정당화하려고 애쓴다. 그들은 트랜스 여성들이 사실은 여장 남성이고 화장실에서 “진짜” 여성들에게 못된 짓을 하려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트랜스 여성의 여자 화장실 사용에 반대하는 핵심 논리다. 하지만 트랜스 여성이 여자 화장실에서 ‘시스젠더 여성’(생물학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여성)을 공격한 사례는 단 한 차례도 보고된 바가 없다.

일부 급진 페미니스트들의 트랜스젠더 혐오는 우파들에게 쉽사리 이용된다. 그 주장의 문제는 단지 현실의 트랜스젠더 혐오를 부인한다는 점에 그치지 않는다. 트랜스젠더들에게 절실한 연대를 거부하고, 차별에 맞선 집단적 저항을 건설할 잠재력을 갉아먹는다는 점에서도 해악적이다.

노스캐롤라이나에서는 화장실법을 둘러싸고 여성 비하와 트랜스젠더 혐오가 맞물리면서 기괴한 결과를 낳았다. 일부 시스젠더 여성들조차 충분히 “여성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경찰, 상점 경비원, 트랜스젠더 혐오세력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먹잇감을 노리는 트랜스 여성”을 억제한다는 명분 아래 시행된 법이, 남성처럼 보이는 시스젠더 여성들까지 비난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화장실법 탓에 트랜스 여성들은 여자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더 많은 스트레스와 위험을 겪게 됐다. 현실에서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그러한 모욕과 차별에 주되게 시달리는 피해자였지 가해자가 아니었다.

트랜스젠더가 공격에 맞서다

트랜스젠더들은 이러한 공격에 맞서기 위해 행동을 조직해 왔다. 하나의 사례를 들자면, 2012년 영국에서 [전투적 페미니스트임을 자처하는] 줄리 버칠이 트렌스젠더들을 공격하는 글을 <옵저버>에 기고했을 때 이를 규탄하는 공동행동이 벌어졌다. 그 칼럼은 우익적 트랜스젠더 혐오세력이 쓰는 말들을 담고 있었다. 버칠을 규탄하는 탄원서에는 2만 명이 서명했고, <옵저버> 사무실 앞에서 시위가 벌어져 결국 편집장이 사과할 수밖에 없었다. 버칠이 트랜스젠더 혐오 내용을 철회하기를 끝내 거부하자 결국 그 칼럼은 통째로 삭제됐다.

2014년 트랜스젠더 교사인 루시 메도우즈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보수 언론] <데일리 메일>이 루시를 조롱하는 칼럼을 실은 뒤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가 죽은 지 며칠 만에 수만 명이 해당 칼럼니스트를 파면하라고 요구하는 서명에 참가했다. 그는 파면되지 않았지만, 고인을 지지하는 결의안이 여러 노조에서 통과됐다. 고인이 속했던 전국교사노동조합(NUT)은 그의 고향에서 연대 집회를 조직했다.

트랜스젠더들은 언제나 성해방 투쟁의 일부였다. 1969년 스톤월 항쟁에서도, 1960~70년대 급진적 정치운동에서도 트랜스젠더들은 빠지지 않는 일원이었음에도 충분히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실비아 리베라나 레슬리 파인버그처럼 혁명가임을 밝히고 억압받는 자들의 연대를 호소한 투사들의 활약은 더욱 널리 알려져야 한다.

차별은 노동자 투쟁 잠재력 약화시킨다

바야흐로 정치적 양극화의 시기이며 그동안 운동으로 어렵게 성취해 낸 권리들을 자본가 계급이 후퇴시키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럴수록 우리는 과거 동성애자·양성애자들과 트랜스젠더들이 차별에 맞서 투쟁해 왔다는 것을 인식하고, 평등한 권리와 해방을 위한 투쟁을 건설해야 한다. 과거의 투쟁 중 적지 않은 투쟁은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개인이나 단체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동성애 혐오, 트랜스젠더 혐오, 여성 차별은 어디서 일어나는 것이든 노동자들이 사용자와 지배자들에 제대로 맞서 싸울 잠재력을 약화시킨다. 우리 편[노동계급]의 분열은 모든 이의 삶과 사랑을 뒤틀어 버리는 체제에 맞서는 투쟁을 약화시킨다. 다가올 시기에 사회주의자들이 전력투구해야 할 두 과제가 있다. 하나는 행동에서 단결을 도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정치적으로 트랜스젠더 혐오를 비롯한 다종다양한 억압들의 물질적 근원을 선명하게 제시하는 것이다.

ⓒ<노동자 연대> 182호 | 발행 2016-10-04 | 입력 2016-1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