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진보정당과 국민참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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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가 인쇄로 넘어가기 직전인 9월 초까지도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추진은 여전히 안갯속이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의 통합 여부가 최종 판가름나게 돼 있던 양당의 임시당대회를 거치고도 마찬가지다. 9·4 진보신당 임시당대회에서 통합 합의안
진보신당 독자파가 국민참여당
한편, 그동안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 운동과 진보 선先통합파에 밀렸던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자들은 진보신당의 합의안 부결을 명분으로 참여당과의 통합 추진에 속도를 내려 한다. 더는 참여당과의 통합을 말릴 명분이 없을 것이라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상황이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앞서 지적했듯이 당 대 당 통합이 물 건너간 것은 분명하지만, 진보신당의 통합파가 통합진보정당에 합류할 의사를 밝히고 있기 때문이다. 노회찬-심상정-조승수는 “새통추
그러나 만약 민주노동당이 임시당대회에서든 당원 총투표를 통해서든 서둘러 참여당과의 통합 당론을 확정한다면, 진보신당 통합파가 통합진보정당에 합류할 수 있는 길을 차단하는 것까지는 아닐지 몰라도 상당히 좁혀놓는 셈이다. 적어도 현재까지 진보신당 통합파는 참여당과의 통합 반대를 표명해 왔는데, 독자파에 명분을 주는 일이 벌어지면 진보신당에서 진보통합 쪽으로의 이탈에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민주노동당이 당 밖 진보세력과의 통합 없이
요컨대 참여당 문제는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을 하는 데 여전히 가장 큰 걸림돌이다. 엎치락뒤치락 끝에 다행히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통합파 사이의 통합이 먼저 이뤄진다 해도 참여당 문제는 새로운 통합진보정당 창당 이후에도 다시 중요한 쟁점이 될 것이다. 도대체 참여당과의 통합은 왜 그토록 집요하게 시도되고 있고, 왜 문제인가?
NL 경향의 전략
지난 몇 년 동안 진보진영에서 ‘연합정치’라는 말이 대유행했다. ‘야권연대’는 기본이고 연립정부 구상마저 공공연히 회자되고 있다. 이것이 대전제로 여겨지다 보니 진보대통합도 야권 선거연합과 그에 따른 권력 분점에 유리한 조건을 위한 판짜기로 여겨지는 경항이 강하다. 말하자면, 제1 야당인 민주당과 협상하려면 진보 쪽도 몸집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이다. 통합진보정당에 참여당을 포함시키자는 사람들의 셈법도 사실상 이것이다.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에 7월 말경 오른 한 글은 이런 셈법을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이 글은 “대선 구도에서 진보진영의 독자적 영향력을 확대·강화”하려면 “원내교섭단체를 돌파”해야 하는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 간의 통합 시너지 효과만으로는” 이것이 어려우므로 국민참여당을 진보대통합에 합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진보진영이 세력을 키울 수 있다면 그것은 정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문제는 조급한 마음에 진보진영의 일부로 보기 어려운 세력까지 끌어들인다면 그것이 제대로 된 진보대통합이 될 수 있으며 진정으로 진보진영에 도움이 되겠느냐는 것이다. 애초 진보대연합은 집권 시절 진보 염원 대중에게 큰 실망을 안겨준 자유주의 세력의 왼쪽에서 진보진영이 진정한 대안을 제시해 강력한 구심점을 제공하자는 취지에서 제기된 것이었다. 노무현 정부 후반에 시작된 이 논의는 이명박 정부가 들어선 후 더욱 탄력을 받았는데, 이 역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불평등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진보진영이 분열해 있어서는 이에 잘 대응할 수 없으므로 단결하자는 것이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뿐 아니라 그 왼쪽의 좌파들까지 단결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요컨대 진보대연합은 노동계급
그런데 일부 세력들이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한 연대·연합 추진을 부르주아적 자유주의자들과의 단결과 뒤섞었다. “반MB”를 위해 모두 뭉치자는 것이 카드를 뒤섞은 논리였다. 2009년 한국사회포럼에서 박경순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은 “이명박 정권은 민간 파시즘 정권이며, 민주주의의 회복이 절대절명의 과제”라며 “각계각층, 대중단체와 정당들의 단결”을 강조했다. 그리고 “단결된 투쟁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민테른에서는 ‘반파쇼인민전선’을 전술단위가 아닌 중간 단계의 전략적 위치로 자리매김한다. 당시 유럽에 창궐하고 있는 파쇼세력들과 싸우기 위해서 자유주의, 사민주의 세력과 단합하는 문제를 투쟁 경험을 통해서 단순히 일시적인 전술 문제로 파악하지 않고 중간 단계의 전략 과제로 설정한 것이다. 분단된 나라에서 ‘반북반평화’와 ‘파쇼성향’을 내포하고 있는 한나라당과의 반대 전선 소위 ‘반MB연대’의 위상을 정립하는 데 참고가 되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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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컨대 ‘반MB연대’를 정권교체/집권과 연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정대연 전 한국진보연대 집행위원장도 ‘중간 단계의 전략 과제’를 “2012년 ‘진보적 민주연립정부’ 수립”이라고
사실, 인민전선은 민주노동당의 핵심 지도부를 이루고 있는 NL 경향이 오래 전부터 실행하길 원했던 전략이고, 그들의 변혁 단계론과 맞물려 있다. 민주노동당 새세상연구소가 발행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을 보면 이런 전략이 잘 드러난다. 즉, “탈자본주의적 변혁은 아직 시기상조”이므로 “종속적이며 기형적이며 전근대적인 특성으로부터 오는 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당면 주요 과제”라고 한다.
이미 2001년에 NL 경향은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한다는 전략 목표를 정한 바 있다.
이 정책 변화의 가장 두드러진 양상은 NL 경향의 다수가 민주노동당에 입당한 것이었다.
물론 이렇게 얘기한다고 해서 민주노동당이 NL의 프로젝트대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의미는 아니다. 민주노동당은 1980~90년대 분출한 민주노조운동에 힘입어 등장한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정치적 표현체다. 많은 사람들이 지적했듯이, 민주노동당이 그 전에 등장했던 ‘독자 정당’들과 달리 한두 번의 선거 실패로 사라지는 운명을 피할 수 있었던 것은 민주노총에 기반한 당이었기 때문이다. 2001년 NL 경향이 민주노동당으로 대거 입당했을 때는 물론 2008년 분당 이후에도 이 기반 자체가 흔들리지 않았다.
따라서 민주노동당 핵심 지도부가 NL 경향이라 해서 민주노동당을 단일한 NL 당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 노동조합 상근간부층의 이해관계가 있고
그래서 민주노동당 당권파 지도부는 민주노동당 옛 강령 폐기와 참여당과의 통합 문제에서 모두 민주노동당 대의원들의 만만치 않은 반대에 부딪혔던 것이다. 진보신당 독자파가 모든 결과가 뻔히 예정돼 있다며 싸워볼 생각도 하지 않고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에 반대한 것은
참여당의 전략
앞서 언급했듯이 민주노동당 핵심 지도부의 전략은 2012년 정권교체를 이루는 데서 주요 세력이 될 수 있도록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것이다. 참여당은 그 지도부가 노무현 정부의 고위 참모 출신이고 당원들은 주로 중간계급
그러다 보니 참여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민주노동당 지도자들은 참여당이 “좌클릭”했다거나 “자기 비판”하고 있다고 포장해 주기 바쁘다. 심지어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는 “우리들
우리들 간의 차이는 무엇일까? 큰 틀에서 생각해보면 ‘노무현 대통령이 다 털고 가셨다.’ 이게 제 판단입니다. 지금 상황의 엄중함을 몸을 던져서 말씀하셨고, 진보의 미래를 어떻게 해나가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고민하셨지요. 당신이 실제로 국정을 운영하면서 부족했다고 생각한 부분을 이미 평가하신 바 있다, 이렇게 생각합니다. 이렇게 큰 틀에서 공감한다면, 정책적인 부분에서 의견을 모으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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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노무현 사후에 창당한 참여당의 강령을 보더라도 민주노동당과의 정책 차이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참여당은 “대외개방형 통상국가”를 지향하고, “한미FTA 원안
참여당이 변한 것이 있다면, “그동안 국가권력의 사용에 있어 리버럴
그러나 유시민은 마르크스의 국가론이 틀렸다며 이런 근본적인 문제를 회피한다. 그는 “참여 정부가 직면했던 가장 큰 문제는 ‘역량의 부족’”이었는데 당시 진보는 이를 돕기는커녕 이념 공세를 펴 자유주의 정부를 더욱 허약하게 만들었다고 비판한다.
따라서 박경순 새세상연구소 부소장이 참여당의 통합진보정당 참여 문제를 두고 “원래 개혁정치세력이었던 정치집단이 자신들의 지금까지의 정책과 노선 정체성에 문제가 있었다고 스스로 자기 비판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계급적 정체성과 노선을 진보정당으로 선회하겠다고 할 경우 진보정당은 이를 어떻게 평가하고 어떻게 대할 것인가 하는 새로운 문제가 발생했다”고
이와 정반대로, 지금 유시민이 고개 숙이고 들어오는 것은 그만큼 명확한 목적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그가 주목하는 것은 이런 목적의식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오히려 진보가 변했다는 점이다. 첫째, 참여당은 “2012년 정권교체”를 바라는데 “작은 진보정당으로는 민주당과 연합하기도 어렵겠다고 생각”해 지방선거 직후 “진보대통합을 검토하기 시작”했다.
둘째, 유시민은 민주노동당 핵심 지도부가 기존 국가를 통해 체제 내적 개혁을 추구한다는 점에 안도한다. 6개월간 이정희 대표와 대담을 마친 뒤 유시민은 이렇게 썼다. “우리는 서로 통했던 것 같다. 무엇이었을까? 우리는 둘 모두 헌법을 중요하게 여겼다.”
셋째, 참여정부의 실패에 대한 이정희 대표의 평가와 교훈이 유시민의 것과 흡사하다는 것이다. 6개월간 유시민과 대담을 마친 뒤 이정희 대표는 이렇게 썼다. “참여정부가 시도한 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것은, 진보진영이 참여와 비판의 방법을 고루 활용하며 정부가 개혁과 진보의 길을 강력하게 밀고 가도록 해야 했으나 성공하지 못한 것과 마치 동전의 앞뒷면처럼 전체에서 잇닿아 있다. … 책임을 다하는 정치는 우리 편을 모으는 것부터 시작된다.”
유시민에게 자유주의와 진보세력 연합의 핵심적 유용성은 참여정부의 실패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진보운동의 발을 묶어두는 것이다. 특히, 유시민은 노동자 투쟁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 “집권 초기 화물연대 파업인가요, 거기서부터 분위기가 엉켰고, 전교조의 네이스 반대투쟁을 거쳐서 싸움이 끝이 없었지요. 돌이켜보면 악몽 같습니다.”
전망
앞에서 살펴봤듯이, 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참여하려는 것은 진보로의 전향轉向을 의미하지 않는다. 참여당은 참여정부 시절, 정권과 진보진영 사이 갈등의 핵이었던 쟁점들에 대해서조차 똑 부러진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가령 이런 식으로 회피한다. “한미자유무역협정이나 해외파병에 반대하면 진보, 찬성하면 보수라는 식으로 구분할 수 없다.”
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참여하려는 것은 실용주의적 선택이다. 야권연대를 통해 한나라당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고 보지만, 야권에서 가장 작은 정당이다 보니 협상에서 밀릴 게 뻔하다. 민주당에 들어가자니, 25년 경험을 돌아보건대 남는 게 없을 것 같다.
이런 목적을 가진 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합류한다면 자신의 왼쪽을 향해 우경화 압력을 가할 것이 분명하다. 우선, 참여당 지도자들은 당면한 선거적 성과를 위해 이른바 ‘수권 정당’다운 태도를 취하라고 촉구할 것이다. 그동안에도 유시민은 진보진영에게 “‘운동’을 강조하고 ‘
물론 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들어온다고 해서 통합진보정당의 성격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진보정당의 노동조합 상근간부층 기반이 유지되는 한 그것은 여전히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당의 지도 이데올로기가 사회적 자유주의까지 오른쪽으로 더 넓어지겠지만 말이다. 또, 당의 우경화가 필연인 것도 아니다. 여기에는 객관적 요인들과 주관적 요인들이 두루 작용할 것이다. 통합진보정당에 진보세력들이 얼마나 참가할지, 당내 좌파들이 당의 우경화 시도에 맞서 잘 싸울지, 경제 위기 상황과 계급세력 균형이 당내 투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등등.
통합진보정당이 일단 우경화로 접어든다 해도 그 길로 무한정 나아가기보다 우경화가 낳은 실패에 힘입어 당내 좌파가 부상할 수도 있다.
물론 당의 성격이 달라지거나 우경화가 예정돼 있는 게 아니라고 해서 참여당의 통합진보정당 참여가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결코 아니다. 민주노동당의 일부 지도자들처럼 ‘함께하자는 사람들을 속 좁게 내쳐서야 되겠느냐’거나 ‘그렇게 자신감이 없느냐’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참여당 문제에 대한 완전한 희화화다. 왜냐하면 참여당이 통합진보정당에 들어오는 순간, 야권선거연합에서 비롯한 압력
제대로 된 진보통합을 바라는 사람들은 참여당과의 통합에 반대해 계속 투쟁해야 한다. 그래서 민주노동당 핵심 지도부가 참여당과의 통합을 밀어붙여 진보가 사분오열하는 상황이 전개되지 않도록 애써야 한다. 불행히도 진보 통합 지지자들 내의 좌파가 벌이고 있는 참여당과의 합당 반대 운동이 일시 좌절을 겪어 설사 참여당과의 통합이 결정되더라도, 진보진영의 사분오열을 택하기보다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일부가 좌측으로 이탈하지 않는 한 통합진보정당 안에서 참을성 있게 우파 지도부에 맞서 투쟁하면서 지지를 확대하는 게 나을 것이다. 물론 주요 노조 지도자들의 일부가 참여당이 동참하는 진보 통합 과정에는 불참하기로 한다면, 상황이 매우 역동적으로 변할 수 있다.
정권이 교체된다면, 통합진보정당의 우파 지도부는 기업주의 눈치를 보며 노동자들의 자제를 호소하겠지만, 좌파는 개혁 정권 초기의 기대감을 활용해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에 나설 수 있도록 조직해야 한다. 이런 투쟁은 경제 위기 상황과 맞물려 폭발력을 가질 수 있다. 통합진보정당이 어떤 모양새가 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앞날을 예측하기는 어렵다. 중요한 것은 상당 부분 행위 주체들의 투쟁에 미래가 달려 있다는 것이다.
참고 문헌
국민참여당 강령.
‘국민참여당 관련 8문 8답’, 민주노동당 당원게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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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순 2011a,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새세상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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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연 2001, ‘‘9월테제’를 둘러싸고 제기되는 몇 가지 문제에 대하여’, 《민》 36호
정대연 2010, ‘2012년 진보운동의 대도약을 위한 다섯 가지 과제’, 한국진보연대진보포럼
진보교연 2011, ‘진보신당 당원 및 대의원들께 드리는 호소문’
참여정책연구원 2011, ‘정당 이론과 해외 사례’
최규엽 2011, ‘‘신자유주의 세계화’를 넘어 ‘21세기 진보 민주주의 사회’로!’, 《21세기 진보적 민주주의》, 새세상연구소.
한국사회포럼 2009 자료집 《진보의 또 다른 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