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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스 캘리니코스 논평:
“파멸의 고리”로 엮여 있는 유럽 정부와 은행권

유로존 위기의 심각성을 보여 주는 한 가지 징후는 매번의 “해결책”이 불러오는 안도감이 갈수록 짧아진다는 점이다.

최근에는 유로존이 스페인 정부에 은행 구조조정 비용으로 8백억 파운드를 빌려 주겠다고 약속하는 “구제” 조치도 있었다.

그러나 단 며칠 만에 스페인 국채 금리는 경제학자들이 지속불가능한 수준으로 여기는 7퍼센트 이상으로 치솟았다.

그러다가 그리스의 보수당인 신민주당이 6월 17일 총선에서 가까스로 승리하자 증시는 다시 상승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잠깐이었다.

그 다음으로 스페인 국채와 이탈리아 국채를 사들이려고 유로존이 구제금융 기금을 두 개(그중 하나는 아직 존재하지도 않는 것이지만) 조성한다는 계획이 한바탕 흥분과 기대를 자아냈다.

그런데 지난 주말이 되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의 수장들과 회의 자리에서 이 계획에 찬물을 끼얹었다.

현재 위기의 배후에는 어느 시장 분석가가 정부와 은행을 하나로 엮어 주는 “파멸의 고리”라고 부른 것이 있다.

유럽에서는 은행들이 2000년대 중반에 벌인 무분별한 대출이 이번 금융위기를 촉발했다.

예컨대 스페인에서는 “카하”(cajas)라고 하는 지방 저축은행들이 스페인 연안 지역을 콘크리트로 도배하다시피 한 부동산 버블에 돈을 댔다. 이런 일은 흔히 지역 정치인들과의 유착 하에서 진행됐다.

이런 버블들은 미국에서 진행되던 서브프라임 사기와 대체로 무관했다. 비록 독일의 지방 국유 은행들은 월가의 날강도 은행들로부터 쓰레기나 다름없는 신용 파생상품을 구매한 것으로 드러나기는 했지만 말이다.

2008년 공황이 닥쳐오자 유럽 정부들은 은행권에 자금을 퍼줬다. 그러나 은행들이 입은 손실의 대부분은 은폐됐다.

부분적으로는 정부의 구제금융 때문에, 그러나 주되게는 2008~2009년의 경제 침체가 정부 지출을 늘리고 세수를 축소시킨 탓에 공공부채가 급증했다.

위기

그러던 중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국가 부채 위기가 찾아왔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와 유럽중앙은행(ECB),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이 함께 “구제”에 나섰다.

이 구제 조치에 힘입어 애당초 위기에 빠진 나라들에 대출을 해 줬던 북부 유럽(독일, 프랑스 등)의 은행들은 빌려 준 돈을 계속 돌려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구제”의 조건으로 강요된 긴축 정책은 남부 유럽 국가들의 경제를 악순환의 도가니에 빠트렸다. 공식적으로 구제 금융을 받지 않았던 스페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스가 마침내 견디지 못하고 유로존을 탈퇴할 것이라는 우려는 취약한 경제들을 더욱 불안정에 빠트렸다. 이에 유럽중앙은행은 지난겨울 유럽 은행들에게 8천억 파운드 이상의 자금을 저금리로 대출해 주면서 사태 해결을 시도했다.

은행들은 이 돈의 많은 부분을 자국 국채를 사들이는 데 썼다. 이 덕분에 모두가 시간을 벌긴 했지만 결국 은행과 정부는 한쪽이 망하면 다른 쪽도 망할 수밖에 없는, 서로 더욱 긴밀히 엮인 운명 공동체가 됐다.

유로존의 다른 경제들도 여기에 함께 빨려 들어오고 있다. 이탈리아 국채 금리는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았고, 베를루스코니가 이탈리아를 유로존에서 빼내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정계에 복귀할 것이라는 소문도 들린다.

유럽 각국의 부채를 메우는 데 필요한 돈은 이제 어마어마해졌다. 경제학자인 개빈 데이비스의 계산에 따르면 스페인과 이탈리아가 재정적자를 메우고 만기가 도래하는 부채를 상환하려면 거의 4천9백억 파운드가 필요하다. 아마도 현존하는 구제금융 기금으로는 이만한 재원을 마련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단지 금융의 문제가 아니다. 대다수 유로존 경제들은 몇 개월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해 왔다. 오직 독일 경제의 호조세만이 유럽 경제를 지탱해 왔다. 그러나 최근의 구매관리자지수(PMI)를 보면 독일의 제조업 생산마저 급격히 수축될 전망이다.

지금과 같은 거대한 경제 위기는 그동안 숨겨져 있던 구조적 결함을 드러내 보여 주는 거대한 엑스레이 기능을 한다. 그러한 구조적 결함 가운데 가장 큰 축에 드는 것이 바로 유로존이다. 유로존은 독일 자본주의의 지배력을 공고화하는 데 이용된 신자유주의적 구성물이다. 이제 그 유로존이 산산조각 날 가능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0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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