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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열을 넘어설 진보정치 재편, 어떻게 할 것인가

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의 재건·재편 필요성을 느낀다. 새로 등장한 강성 우파 박근혜 정부는 십중팔구 계속되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계급에 떠넘기려는 공격을 할 것이고 이에 저항하기 위한 정치적 수단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노동계를 대표하는 정당은 사분오열해 있고, 정치적으로 분화하고 다원화하고 있다.

이런 상황으로 말미암아 진보진영과 좌파는 전보다 더 복잡하고 더 어려운 상황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실로 많은 노동자들이 정치적 안식처를 못 찾고, 정치적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난해 노동자 투쟁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고자 지난해 11월에 ‘노동정치연석회의’가 구성됐다. 여기에는 노동포럼,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자연대다함께, 혁신네트워크, 전태일노동대학, 노동자교육기관, 사회진보연대가 참여했다.

넉 달에 걸친 논의 끝에 노동포럼, 노동자정당추진회의, 노동자연대다함께, 혁신네트워크가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구체적 노력을 시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상이한 정치 배경을 갖고 있는 경향들이 연합해 새로운 노동자 정당을 만들려는 시도는 의미가 있다.

부르주아 제도 정치 무대에서 신자유주의와 긴축을 반대하는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의 등장은 환영할 만한 발전이다 지난해 대선에 출마한 프랑스 좌파전선 멜랑숑의 유세 현장. ⓒ사진 출처 Gregoire Lannoy (플리커)

부르주아적 기반과 성격 때문에 자본가와 노동자의 대결과 충돌에서 흔히 자본가의 이익을 주되게 고려하는 민주당의 왼쪽에 노동계급에 기반한 정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존 노동자 정당들의 분열·분화로 말미암아 조직 노동계급 내에서 정치적 공백이 생겨나고 있다. 노동계급의 여러 정치 경향들이 연합해 이 공백을 메우자는 것이 ‘노동정치연석회의’의 취지였다.

물론, 진보정치 세력의 정치적 분화 때문에 통합진보당·진보정의당·진보신당 등을 다 아울러 노동계를 대변하는 단일 정당을 만들기는 어렵다. 2008년 이전으로 돌아가기에는 정치 현실이 크게 바뀌었다.

그래서 민주노총의 정치 방침도 ‘진보 다원주의’에 입각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복수의 진보정당들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특정 정당을 배타적으로 지지하는 것은 도리어 노동조합을 심각하게 분열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기성 부르주아 정당이 아닌 진보정당들을 지지하는 진보 다원주의적 정치 방침을 채택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것과 구별해서 선거에 대해서는 단일한 대응을 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난해 총선에서 창원·울산 등에서 진보정치 세력들이 분열하면서 새누리당이 어부지리를 얻은 것을 보면, 노동조합이 정치적으로 분화하더라도 선거에서 단결할 필요성은 분명하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정치적 분화가 있더라도, 노동조합 조직 자체는 정치 세력별로 갈라져서는 안 된다. 정치 성향과 무관하게 노동자들은 누구나 사용자에게 착취와 해고를 당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따라서 정치적 입장과 관계없이 노동조합은 최대한 광범하게 단결해야 한다.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이라는 구상은 통합진보당 분당 이후 발생한 스탈린주의와 개혁주의의 분화에서 개혁주의의 정치 공간을 메우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부르주아 양당이 제도권 정치를 좌지우지하는 한국 정치 맥락에서 이런 프로젝트는 여전히 필요하다.(그렇더라도 통합진보당이 노동자 정당이므로 특정 쟁점을 놓고 사안별 연대를 해야 한다.)

효과적인 단결을 위해 필요한 것들

이때 부르주아 포퓰리스트 세력이 포함돼 있는 진보정의당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 이 당과의 관계 문제는 새롭게 건설할 노동자 진보정당의 목적에 비춰 판단해야 할 것이다.

즉, 박근혜 정부하에서 계속될 신자유주의 공세에 맞서 노동계급의 투쟁과 과제를 대변하고자 하는 새 정당의 목표에 진보정의당은 동의하는지 여부를 시험대에 올려야 한다. 그런 점에서 노회찬 대표가 얼마 전에 박근혜에게 제안한 ‘전략적 동맹’은 (되지도 않을 일이지만) 매우 위험하고 아주 부적절하다.

한편, 광범한 진보정당을 건설할 때 정치 원칙이나 강령이 상이한 세력들이 강령적 통일을 이루는 방식으로 연합을 시도하려 할 경우, 단결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포괄적인 정치 강령이나 대안 사회 비전을 중심으로 논의하기보다는 행동강령을 중심으로 논의하는 것이 단결에 도움이 될 것이다.

보편적 무상복지, 부자 증세,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철폐, 제주 해군기지 백지화, 핵발전 폐기 등 진보진영 공동의 행동강령적 투쟁 과제를 중심으로 연합을 구성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내부 운영 구조도 느슨한 연대체 형태가 협력을 강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통합진보당 사태에서 보듯이, 특정 세력의 민주주의 훼손과 패권주의를 방지하려면 당 조직 구조와 운영 방식은 가능한 한 느슨하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진보진영의 각 세력과 정파 들 사이에는 다양한 쟁점을 두고 정치적 이견이 존재한다. 따라서 정치와 조직 모두에서 매우 엄격한 동의 수준을 요구하는 당 모델보다는 각 정치 경향의 정치적·조직적 독자성을 보장하고, 이견에 대해서는 토론하면서도 단결을 추구할 수 있는 연대체적 방식이 필요하다.(그렇다고 새 정당을 공동전선으로 규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따라서 형식상으로는 당이라는 이름을 쓰더라도, 그 내부의 운영 구조는 느슨한 연대체 방식으로 하는 것이 정치 원칙이 다른 세력들이 한 구조물 안에서 공존하게 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당 건설 전망이 성공적으로 현실이 되려면, 박근혜 정부 하에서 노동자 운동이 공동전선을 잘 구축해 성공적인 저항을 전개할 수 있어야 한다. 구체적이고 제한된 쟁점들을 중심으로 하는 사안별 공동 투쟁을 통해 노동자 단결과 연대를 복원할 필요가 있다. 이런 투쟁들을 통해 노동자들의 연대 의식이 고양되는 것이 새 정당 건설에 이바지할 것이다.

사회주의자들의 과제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건설하고자 하는 새로운 노동 중심의 진보정당은 근본에서는 좌파적 개혁주의 버전의 정당일 것이다.

정치 단위가 국민적 수준의 무대이고 운동 발전 수준이나 좌파의 상태가 나라마다 달라 기계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사회주의자들은 지난해 국제적으로(특히 유럽에서) 부상한 좌파 개혁주의의 경험을 참조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주류 사회민주당이 아니라 민주당의 왼쪽에 개혁주의 정당을 재건하려 한다는 점은 차이가 있지만 말이다.

프랑스의 좌파전선, 그리스의 시리자는 그 나라의 주류 사회민주주의(프랑스 사회당, 그리스 범그리스사회주의당)가 신자유주의를 수용하는 등 우경화면서 생겨난 공백을 메우고 있다. 좌파전선의 멜랑숑이나 시리자의 알렉스 치프라스는 친숙한 개혁주의 언어로 대중의 불만을 표현해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 지지층을 흡수했다.

지배자들의 긴축을 반대하는 좌파적 개혁주의 정당이 제도 정치 무대에서 대안을 제공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발전이다.

개혁주의자들은 반드시 배신할 거라며 추상적이고 종파적으로 비난하는 자세는 틀렸을 뿐 아니라, 변화하는 노동계급의 의식과 운동에 전혀 개입할 수가 없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좌파적 개혁주의 운동과 그것의 성공적 활동을 지지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좌파적 개혁주의일지라도 개혁주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오히려 성공할수록 ‘현실적이 되라’는 압력을 크게 받는다. 그리스 시리자의 당수 치프라스는 “시리자는 오늘날 우리 나라에 경제적·사회적·정치적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정치 운동일 뿐이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시리자는 그리스 노동자 운동에서 핵심 문제인 디폴트와 유로존 탈퇴를 반대한다.

따라서 사회주의자들은 좌파적 개혁주의 건설 움직임에 뛰어들어야 하지만, 동시에 근본적 사회변혁 조직 건설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

노동자 운동과 자본의 결정적 대결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근본적 사회변혁 운동가들이 독립적으로 조직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