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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북한에게 핵은 불가피한 선택일 수 있다고 본다

 이 독자 의견에는 다른 독자의 반론(“북한 지배계급의 핵무장을 ‘존중’해서는 안 된다”)이 있다. 

〈레프트21〉 100호에 실린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불가피한 선택인가?’ 기사 내용에 이견이 있다.

북한의 핵 개발이 북한에게 있어 불가피한 조처가 아니라는 서술은 앞선 〈레프트21〉의 북한 핵에 대한 규정과 모순된다. 앞서 〈레프트21〉은 북핵을 ‘미 제국주의가 낳은 괴물’로 규정했다. 하지만 북한 핵 개발이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면 북핵을 ‘미 제국주의가 낳은 괴물’이 아니라 ‘미 제국주의를 구실 삼아 북한 지배계급이 낳은 괴물’이라고 규정해야 한다.

물론 〈레프트21〉의 기사에 나온 대로 모든 피억압 약소국들이 핵을 개발한 건 아니다. 그러나 그 어떤 나라도 북한처럼 미국과 수 년간의 전면전을 치르고 반세기가 넘게 강력한 경제적, 군사적 고립을 당하지는 않았다.

북한의 민중들이 60년이 넘도록 병영 사회를 용인해 온 까닭이 여기 있다고 본다. 현재까지 북한에는 남한은 물론, 동유럽이나 중국에서와 같은 수준의 대규모 저항 운동이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리 강력한 억압 기구가 존재한다고 해도, 구성원들의 암묵적 동의 없이 한 나라가 60년 동안 독재를 유지한다는 건 세계사를 봐도 유례없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전쟁 방지책

기사에서 핵무기를 대신할 대안으로 제시된 것은 세계적 대중 운동과 ‘인민 저항’이다. 아닌 게 아니라 북한도 자신들이 지닌 재래식 군대의 힘을 과장하면서, 인민군과 전 인민의 ‘사상 무장’, ‘일체화’를 ‘미제와의 결전’에서 자신들이 승리할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요인이라 말한다. 하지만 북한에게는 베트남의 밀림이 없고, 냉전의 첨예한 긴장 관계도 없다.

만약 전쟁이 발발한다면 (북한의 호언과는 달리) 인민 저항과 게릴라전만으로 핵무기를 포함한 미국의 압도적인 군사력에 맞서 승리를 거두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게릴라전은 전쟁의 발발을 전제로 한다. 베트남 민중이 승리했다고는 하지만, 15년간 전국토가 전쟁으로 유린됐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죽고 다쳤다. 이미 3년간의 끔찍한 전쟁 참화와 상시적인 군사적 긴장을 겪어온 북한 민중 입장에서는 강력한 전쟁 방지책으로서의 핵무기에 이끌리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세계적 차원의 반제 대중운동을 건설하는 데서도 추상적 수준의 ‘모든 핵무기 반대’만을 외치는 게 아니라 궁핍한 나라를 핵무장으로 내모는 제국주의를 폭로하는 게 보다 정당하고도 이롭다. 〈레프트21〉의 기사들은 대부분 후자의 입장을 취하지만, 북한의 핵무장이 제국주의 압박의 불가피한 결과물이 아니라 북한 지배계급이 자신들을 위해 선택한 옵션이라는 입장을 강조하는 순간 기계적 양비론을 허용할 여지가 있다. 그리고 그 주장에는 자국의 핵무장을 용인한 북한의 민중이 소거돼 있다.

북한의 핵무기를 비난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핵 압박과 북한의 핵 개발 사이의 인과관계는 과소평가 하면서도, 북한의 핵 개발이 세계 노동계급의 분열, 미국과 동북아 국가들의 군사력 강화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적이라는 식의 뉘앙스가 담긴 주장을 한다. 이는 옳지 않다.

미국의 핵무기는 새삼스런 것이 아니라 이제껏 있어 왔다. 서방과 한국의 노동계급에게 미국의 핵무기는 상수이나, 북한의 핵무기는 이제 개발되기 시작한, 명백히 자신들을 겨냥하는 무기다. 북한의 핵이 미국 제국주의의 압박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물이 아니라 얼마든 다른 선택이 가능한 상황에서 북한 지배계급이 자신들을 위해 선택한 수단이라는 주장을 허용한다면, 서방과 한국 노동계급은 당장 가장 중요한 문제를 북핵 제거라고 여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우익의 논리다.) 이들에게, “북한 핵과 미국 핵은 똑같이 나쁘지만 미국 핵을 더 많이 비판해야 한다, 왜냐하면 미국 핵이 더 많기 때문이다.” 이렇게 말한다면 쌩뚱 맞게 받아들일 것이다. 설령 미국의 핵무기가 월등히 많아도 그건 이제껏 있어온 것일 뿐이고 자신들을 향한 것도 아니지만 북한의 핵무기는 존재하지 않다가 이제 막 생긴, 자신들을 향한 무기이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가 우익들의 선전 그대로 북한의 핵을 제국주의와 분리시키고 온전히 북한 지배계급만을 위한 수단으로 설정한다면 실제로 북한의 핵은 운동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기능할 것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 개발이 제국주의의 불합리하고도 파괴적인 압박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변한다면, 북한의 핵은 약소국을 향한 제국주의의 핵과 군사적 수단·경제적 압박이 세계를 평화롭게 하기는커녕 되레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는 가장 명백한 증거로 기능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설명이 역사적 진실에 부합한다. 속마음이야 어떠했든, 김일성의 유훈은 ‘한반도 비핵화’였다. 그보다 20여 년 후 죽은 김정일의 유훈은 반드시 핵을 보유하라는 것이었다. 그간의 국제 정세 변화와 심화되는 경제적·군사적 고립이 핵에 대한 북한의 태도를 변화시킨 것이다.

북한 민중의 선택

나는 북한의 체제가 국가자본주의라는 분석을 지지한다. 그러나 국가자본주의 국가라도 그 나라를 변화시키는 힘은 그 나라의 민중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북한 민중 스스로 국가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게 아니라 제국주의에 의해 체제가 붕괴하는 경우라면, 그건 그저 제국주의의 강화, 승리를 의미할 뿐이다.(소련의 붕괴는 제국주의 국가의 붕괴였다는 점에서 북한과 다르다.)

나는 지금 팔레스타인 민중이 원하는 나라가, 혹은 전쟁을 수행하던 베트남 인민들이 원하던 나라가 내가 원하는 노동자 국가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들을 지지한다. 북한 민중이 지금 의탁하고 있는 그들의 나라가 내가 이상적으로 여기는 사회와 일치하지 않더라도, 그들이 제국주의 국가가 아닌 피억압 국가의 일원인 이상 나는 그들의 선택을 존중한다. 북한 민중들의 상황, 그들이 처해 있는 조건을 소거하고 추상적 원칙을 주문하는 것은 다소 공상적으로 보인다.

북한은 경제적, 군사적으로만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도 세계로부터 고립된 상황일 뿐아니라,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노동자 국가도 아닌 국가자본주의 국가가 아래로부터의 세계적 대중 운동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미국의 핵과 최첨단 무기를 게릴라전만으로 극복하기도 힘들다. 평화협정과 동등한 지위 확보 없이 상시적인 군사적 긴장 속에서 소비재 위주의 경제 운용이나 개혁, 개방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서방이 원하는 식의 변화와 개방을 추진하는 일은 북한의 민중들에게 더 큰 재앙이며 제국주의의 승리일 뿐이다. 게다가 지금 북한 민중들이 자국 지배계급과 제국주의 모두를 겨누는 저항을 시작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다. 그들에게는 이데올로기도 조직도 없어 보인다. 나는 이런 상황애서 북한 민중이 자국의 핵무장을 용인한 것은, 자신들의 생존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평화협정

북한에 대한 제국주의의 압박과 이로 인한 핵 개발의 불가피성을 강조한다고 해서 이것이 곧 북한 정권과 핵무기에 대한 지지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국가로서의 북한은 세계 자본주의의 변혁을 추동할 세력이 아니다. 북한 지배계급의 목적은 세계 혁명이 아니라 미국과 서방으로부터 체제를 인정받는 것이다. 그들은 이미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와 상충되는 수령론을 영구적인 통치의 방법론으로, 핵과 핵무기를 영구적인 군사 수단으로 설정했다. 설령 북미 간 평화협정이 체결되고 북한이 세계 질서에 편입되는 상황이 와도 북한의 핵과 수령 통치 체제는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강력한 외부의 압력이 완화되면, 북한의 민중들이 이제껏 용인해 온 억압 체계의 본질에 대해 눈을 뜰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북미 간 평화협정의 체결과 한반도 평화 정착은 북한 지배자들의 구상과는 달리 되레 북한 사회 변혁의 디딤돌이 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은 동북아에서 제국주의의 패권이 약화된 결과물일 것이다. 북한의 핵 개발 국면에서 진보적 대중이 할 일은 추상적 수준에서의 원칙을 되풀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제국주의를 약화, 패퇴시키는 것, 이 과정과 결과 모두를 통해서 한반도와 전 세계 노동계급의 변혁적 대중운동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