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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생활보장제 개편안:
‘조삼모사’로 빈민 우롱하는 박근혜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 ⓒ이윤선

윤창중 성추행 사건으로 전국이 들썩이는 가운데 5월 14일 보건복지부와 관계 부처는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개별 급여 도입 방안과 실행에 대해 발표했다.

발표가 나오자마자 보수언론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도입한 지 14년 만에 가장 커다란 폭으로 기초생활보장제도를 손질했다며 이구동성으로 박근혜 정부를 치켜세웠다.

도대체 무엇이 변했는가? 우선 기존의 통합 급여 체계는 생계·의료·교육·주거·출산·자활·장례 7개 부문의 급여 항목을 수급자에게 일괄로 제공하는 방식이었다. 한번 지원 대상에 선정되면 7가지 급여를 모두 받지만,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면 모든 지원이 끊기는 구조였다. 그러나 개별 급여로 바뀌면 수급자에게 분야별로 수급비를 따로 책정해 지급한다. 한마디로 박근혜 정부의 ‘맞춤형 복지’에 부합한다고 볼 수 있다.

이밖에도 박근혜 정부는 차상위계층의 범주를 현행 최저생계비(4인 기준 월 1백86만 원)의 1백20퍼센트에서 중위소득(4인 기준 월 1백92만 원)의 50퍼센트로 확대하면, 대상자가 3백40만 명에서 4백38만 명으로 늘어난다고 주장한다. 언뜻 보기에는 이 과정에서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가 현재보다 80만 명이 증가해 2백20만 명가량이 된다. “이 거 참 괜찮네” 하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그러나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수급자 수는 외형적으로 늘지만 실질적 혜택은 감소한다. 한마디로 ‘바늘 만한 것을 몽둥이 만하다’고 우기는 것과 다름없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무엇보다 가난한 빈곤층에 대한 소득보장제도로서 실질적인 기능을 해야 한다. 따라서 낮은 보장 수준과 광범한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잘 알려져 있듯이 그동안 최저생계비는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다. 1999년에는 표준가구 평균소득 대비 40.7퍼센트고 중위소득 대비 45.5퍼센트였지만 2008년에는 각각 32.8퍼센트, 36.8퍼센트로 오히려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최저생계비*는 실질적으로 소득 분배 기능보다는 수급자 탈락 기준으로 기능했다. 비현실적인 최저생계비 기준선은 광범위한 사각지대와 더불어 불안정한 수급자의 삶을 만들어 왔다.

‘도덕적 해이’

이런 시점에 개별 급여를 도입하겠다는 것은, 빈곤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현재도 기초생활보장제 수급 대상자들은 실질적으로 소득에 따라 생계급여를 다르게 지급받고 있으며, 자가 가구나 무상임대거주자의 경우 낮은 주거급여를 보장받고 있다. 교육급여는 학교를 다니는 자녀가 있는 경우만 대상이 된다. 그리고 장례나 해산급여* 역시 사안이 발생했을 때만 지급한다. 의료급여 역시 건강보험 가입자와 마찬가지로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어야 할 때 이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현재 논의되는 양상을 보면 통합 급여 체계에서 수급자들이 마치 그동안 불필요한 급여를 받았다는 식으로 ‘도덕적 해이’로 몰아붙이고 있다.

이미 박근혜 정부는 대선 전 제시했던 복지 공약들을 당선 1백 일도 되기 전에 일찌감치 철회하지 않았던가? 진영 보건복지부 장관은 인사청문회에서 ‘4대 중증질환(암·심혈관·뇌혈관·희소난치성 질환) 진료비 1백 퍼센트 보장’ 등 복지 공약은 ‘선거 캠페인용 문구’였다고 밝혀 수많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실망감을 안겼다.

그리고 이번에 제출한 기초생활보장법 개정안은 기초생활보장법 사각지대에 놓인 가난한 사람 4백만 명의 운명을 직접적으로 좌우할 수도 있는데도, 충분한 사회적 검토 없이 추진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상식이 돼 버린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최저생계비 현실화 등의 조처는 논의조차 없이, 마치 ‘원숭이에게 아침에 세 개, 저녁에 네 개의 도토리를 주는 방식’의 술수를 이용해 국민들을 현혹하고 있다.

필자 최인기 빈민해방실천연대 집행위원장은 맑시즘 2013에서 빈곤을 주제로 연설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