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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지금 당장 이 불황을 끝내라!》:
핵심을 비껴간, 신랄한 비판과 폭로

미국의 새케인스주의 경제학자인 폴 크루그먼은 이 책에서 이번 위기를 분석하며 케인스주의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크루그먼은 근 20년 가까이 신자유주의와 그 이데올로기적 기반인 우파 경제학을 날카롭게 비판해 온 학자다.

이 책에서도 그는 경제 위기를 제대로 설명하지도 못하면서 궤변만 늘어놓는 보수 경제학자들의 비상식성을 폭로한다.

폴 크루그먼 지음, 박세연 옮김, 엘도라도, 328쪽, 16,000원

예컨대, 보수 경제학자들 중 상당수는 경기침체가 모종의 ‘기술적 충격에 대한 합리적 대응’ 탓이며, 실업은 노동자가 내린 ‘자발적 결정’이라고 말한다.

또 시장은 항상 합리적이고, 소득은 지출되기 마련이므로 투자와 소비가 부족해지는 현상은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크루그먼은 그들의 주장과는 반대되는 ‘상식’적인 주장들을 방어한다. 또한 그는 보수주의 경제 이론은 지배계급을 위해 종사하는 하인 노릇을 한다는 점을 명백히 하고 있다.

현실 설명에 무능한 우파 경제 이론이 여전히 떵떵거리는 것은 바로 이 이론들이 자본가들의 입장을 대변해 주기 때문이라고 폭로한다. 더불어, 그는 긴축이 경제 위기를 해결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점을 잘 설명하고 있다. 이런 지당한 부분들을 읽을 때는 통쾌하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을 때 부족한 점과 문제가 되는 점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선 그는 소비와 투자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는 점을 가장 큰 문제로 보고, 부채의 누적과 자산가격의 폭락이 2008년 위기가 발발하는 데 결정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는 케인스와 그의 후예 경제학자인 민스키의 이론을 빌려 와서 위기를 설명한 것이다.

물론 겉보기에 틀린 이야기는 아니지만, 이는 문제의 근원을 짚지는 못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의 근원에는 자본축적으로 인한 이윤율 저하가 있다. 앤드루 클라이먼이나 로버트 브레너 등 여러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들의 통계는 바로 이 점을 증명하고 있다. 즉 이번 위기는 축적 그 자체에서 비롯된 것이기에, 크루그먼의 주장과는 달리, 케인스주의적 대안을 통해 쉽게 극복될 수 없다. ‘경제 엔진이 망가지지는 않았다’는 그의 주장은 이 점을 놓친 것이다.

위기의 책임

물론 이와 같은 문제점은 주류 케인스주의자들의 설명에서 쉽게 발견되는, 흔하디 흔한 오류다. 그러나 이 책에는 더 문제가 되는 점이 있다.

그리스 반긴축 투쟁 노동자 투쟁을 일관되게 옹호하는 관점에 서야 제대로 된 분석이 가능하다. ⓒ사진 출처 http://www.narnet.gr/

스페인 등 남유럽의 경제를 다루는 이 책의 후반부는 매우 잘못된 분석과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남유럽 국가에서 임금수준이 크게 올라 제조업 부문의 국제 경쟁력이 떨어지고, 그러다 보니 심각한 무역 불균형이 벌어졌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 점이 그 국가들의 위기 발발에 중요한 구실을 했다고 말한다.

또 그는 유로존 통합이 위기 극복을 어렵게 하고 있다면서도 유로존을 해체하는 것은 너무 큰 비용을 수반한다며 유로존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의 주장과 달리, 남유럽 국가들의 제조업이 빈약한 것은 아니다. 스페인의 경우, 국민경제의 17.4퍼센트를 제조업이 차지하는데, 이는 유럽 평균보다 조금 낮기는 하지만 영국과 비교해도 큰 차이는 없고 미국보다는 오히려 높다.

게다가 그의 주장은 이번 위기의 책임자인 자본가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다. 크루그먼은 우파 경제학자들이 자본가들을 방어하는 것을 비판하면서도, 자신은 정작 위기의 주범인 자본가들이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할지는 얘기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부도기업이나 은행을 지원해 ‘부자들을 위한 사회주의’를 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들에게 책임을 묻고, 국유화를 통한 고용보장 요구 등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리스의 혁명적 반자본주의 연합(안타르시아)의 주장처럼, 유로존 탈퇴를 불사하고 ‘아래로부터의 디폴트 선언’을 하는 것이 이 지역 노동자들의 삶을 개선하는 방안이다.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은 언젠가 다시 이윤율의 위기에 직면할 ‘더 나은 자본주의’를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전복하고 혁명적 대안을 제시하는 것을 궁극적 목표로 삼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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