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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와의 관계 때문에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머뭇거리는 서방

우크라이나에서 파국은 미뤄진 듯하다. 3월 4일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은 기자회견을 열어 크림반도를 넘어 우크라이나 동부까지 장악할 생각은 없는 듯이 말했다.

그리고 서방의 대응이 별볼일 없으리라는 푸틴의 계산은 옳았다.

3월 6일 유럽연합(이하 EU)은 러시아 제재안에 합의했는데 매우 제한적이었다. 그나마도 크림자치공화국 의회가 [우크라이나로부터의] 독립을 묻는 주민투표를 3월 16일에 실시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다면 유럽의 제재는 훨씬 더 약했을 것이다.

이런 소심한 대응에는 유럽과 러시아의 밀접한 경제적 관계가 반영돼 있다. 그 관계는 러시아 올리가르히의 메이페어[런던 하이드파크 동쪽에 있는 고급 주택지] 대저택 소유 신화를 넘어서는 것이다. 물론 런던의 금융 중심가는 수상쩍은 거래에 관심 있는 자들을 끌어모으는 곳이지만 말이다.

소심

EU는 러시아의 최대 교역국이다. EU와 러시아의 무역 규모는 2012년에 2천8백억 파운드였고, 러시아로 유입된 해외직접투자(FDI) 중 75퍼센트가 EU 기업들의 것이다. 이에 견줘 미국과 러시아의 무역 규모는 2백40억 파운드밖에 안 돼, 네덜란드와 러시아의 무역 규모보다 작다.

그러니, 지난주에 있었던 회담에서 독일·이탈리아와 함께 네덜란드가 러시아 제재에 적극적으로 반대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2008년 8월 러시아가 그루지야(현재의 조지아)를 침공했을 때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났다.

물론 경제적 상호의존도가 높다고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914년에 영국은 독일의 최대 수출시장이었지만, 양쪽 모두 대립을 피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미국 의회의 공화당 의원들은 한 판 붙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그들이 오바마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것도 아니다. 3월 6일 헨리 키신저는 이 논의에 끼어들어 우크라이나를 “핀란드처럼 만들자”는 즈비그뉴 브레진스키(전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제안에 공감을 표했다. 다른 말로 해서 우크라이나를 EU 쪽으로 더 당기기는 하지만 지정학적으로 중립을 지키게 하고 나토에 편입시키지는 말자는 것이다.

현재의 위기는 나토를 러시아 국경 쪽으로 확장시켜 온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극명하게 드러낸다. 나토에 가입한 덕분에 옛 소련 소속이었던 발트해 연안국들[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은 러시아가 위협하면 미국에 군사적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3월 8일 오바마는 성명을 발표해 “우리 발트해 연안 동맹국들의 안전과 민주주의를 위해 항구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다시 확인했다.

푸틴이 우크라이나에 개입해 이 정책을 약화시키려 한다는 점에는 의심할 여지가 없다. 러시아 소재 한 싱크탱크의 소장 루슬란 푸코프는 3월 4일 〈뉴욕 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푸틴의 의도를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푸틴은 “크림반도를 우크라이나의 영토로 남겨놓으려 애쓸 것이다. 물론 우크라이나 정치에 영향을 끼칠 더 강력해진 수단으로서, 그리고 다른 지역의 친 러시아 세력에게 보내는 강력한 본보기로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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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코프는 푸틴이 우크라이나의 다음 대통령으로 율리아 티모셴코를 밀 것이라고도 예측했다. 비록 티모셴코가 지금은 러시아 반대파의 여걸이 돼 있지만, 그녀는 2010년 우크라이나 대선 후보 중 러시아가 가장 좋아한 후보였다. 푸코프는 다음과 같이 전망한다.

“또다시 반복된 우크라이나 혁명의 최종 결과로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사실상 통치하고, 우크라이나 정부는 상업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푸틴 씨에게 묶이게 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정치가 다시 격랑에 휘말리기 전까지, 더 약해지고 불안정해진 우크라이나는 계속해서 동쪽과 서쪽을 오락가락할 것이다.”

러시아 사회주의자 보리스 카갈리츠키는 훨씬 더 냉소적 어조로 말한다. “우크라이나의 당국자들도 만족해 한다. 그들은 ‘러시아의 위협’을 핑계로 들며 새 정권을 굳히고, [우크라이나의] 경제적 어려움을 외부 압박의 결과라고 해명하고, 과거까지 거슬러 올라가 우크라이나를 몰락시킨 자신들의 행위가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됐다. 따라서 ‘평화도 전쟁도 아닌’ 현재 상황은 러시아 정부와 우크라아나 정부에 모두 안성맞춤이다. 적어도 지금은 그렇다.”

여기서 누가 속죄양이 될지 추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2012년 1인당 연간 명목소득이 2천3백29파운드[약 4백13만 원]였다. 자메이카, 튀니지, 파라과이보다 더 작다.

우크라이나 새 정권은 올리가르히의 권력을 강화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리가르히들이 우크라이나 동부 주지사로 임명되고 있다. 티모셴코의 측근인 현재 총리 아르세니 야체뉴크는 이미 재정 지원의 대가로 IMF가 요구한 조건을 모두 수용했다. 그 조건에는 에너지 소비자가격을 대폭 인상하는 것 등이 있다. 전쟁이 일어나든 일어나지 않든, 지금 위기의 대가를 치르는 것은 우크라이나의 평범한 사람들일 것이다.

출처: 영국의 혁명적 좌파 신문 <소셜리스트 워커> 239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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