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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4월 9일 하루 총파업: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가 갈마들며 거대한 투쟁을 낳다

4월 9일, 그리스 전역에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노동자 수십만 명이 긴축에 반대해 하루 총파업을 벌였다. 이날 파업은 2009년 이후 그리스에서 벌어진 30번째 하루 총파업이다.

2013년 11월 이후 6개월 만에 처음으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노동자들이 동시에 벌인 파업이기도 한 이번 파업에는 독일 총리 메르켈의 (11일) 그리스 방문에 항의하는 의미도 있었다.

ⓒ사진 출처 NAP (플리커)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는 구제금융을 주는 대가로 그리스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요구한다. 〈가디언〉에 따르면, 트로이카가 바라는 수준으로 공공부문을 구조조정 하려면 공무원 및 지방자치단체 노동자 12만 명을 해고해야 한다.

4월 2일 그리스 의회는 기업을 돕기 위해 규제 완화 조처를 대거 통과시켰다. 예를 들어, 면허 있는 약사를 보유하지 않은 일반 슈퍼마켓도 의약품을 판매할 수 있게 됐고, 꽤 오래된 우유도 “신선한” 우유라고 판매할 수 있게 됐다. 의회는 공공 시설 몇 곳을 민간 기업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그리스 의회는 공공부문 노동자 4천 명 해고, 실업급여 삭감, 연금 삭감 등 노동자 공격 조처도 통과시켰다. 이미 실업률이 27.5퍼센트(청년 실업률은 57퍼센트)이고, 지난 몇 년 동안 노동자 임금이 30퍼센트 이상 삭감됐는데도 말이다. 게다가 의회는 올해 말까지 노동자들의 파업권을 트로이카가 정한 기준에 맞는 수준으로 크게 제약하기로 결의했다.

이런 공격에 대한 노동자들의 분노는 파업으로 이어졌다. 선원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인 범그리스선원연합(PNO) 소속 노동자들은 3월 31일부터 48시간 파업을 벌였다. 선원 노동자들의 파업 둘째 날인 4월 1일에는 이 파업에 연대한 여러 노동조합이 도심에서 큰 시위를 벌여, 유로존 금융 각료 회의를 지키기 위해 도심을 통제하던 시위 진압 경찰과 대규모 충돌을 빚었다.

노동자 6천여 명이 총파업 전날인 4월 8일부터 48시간 파업에 돌입했다. 3월 22~23일에 이어 두 번째로 48시간 파업을 벌인 언론·방송 노동자들은 “총파업 날[9일] 거리에 신문이 보이지 않게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런 흐름 속에서 이번 총파업이 결정되고 실행된 것이다.

4월 9일 새벽부터 병원·교사·공무원 노동자 등이 파업에 돌입했고, 그리스 전체가 멈춘 가운데 노동자들의 행진이 거리를 가득 메웠다.

불만

반파시즘 투쟁도 노동자들의 자신감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본지가 지난 호(123호)에 보도한 3월 22일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국제 공동 행동의 성공은 노동자들을 크게 고무했다.

얼마 전 그리스 총리 안토니스 사마라스의 보좌관 파나기오티스 발타코스가 신나치 정당인 황금새벽당의 대변인 일리아스 카시디아리스와 밀담을 나누는 장면이 폭로돼 결국 발타코스가 사임하는 일이 있었다. 반파시즘 운동의 압력에 힘입어 황금새벽당 지도부 일부와 의원단 일부가 감옥에 갇힌 지금, 정부 고위 관료가 파시스트와 내통하고 있다는 혐의는 노동자들의 분노를 사기에 충분했다.

이 스캔들이 터지기 전에도 그리스 정부는 심각한 지지율 하락에 처해 있었다. 신민주당과 사회당(PASOK)이 연립한 현 정부의 긴축 조처로 그리스는 십여 년 만에 처음으로 재정 흑자를 봐 다시 국채를 발행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그리스 경제는 여전히 위기다. 그리스는 아직도 구제금융이 3조 원 가까이 필요한 상태다. 그동안의 긴축 조처가 위기를 해결하는 데 별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긴축은 노동자들을 심각한 고통으로 몰아넣었다. 단적으로, 지난 3년 동안 1백만 명이 넘는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었다. 전체 인구가 약 1천만 명이고 경제활동인구가 약 5백만 명인 나라에서 말이다. 노동계급의 분노에 직면한 정부는 빈민들에게 일회성으로 푼돈을 나눠 주는 등의 ‘꼼수’ 복지로 지지율을 만회해 보려 했다. 그러나 경제 상황이 워낙 나빠 이마저도 효과가 없었다.

신민주당과 PASOK에 소속된 의원은 점점 줄어 이제는 전체 의석의 과반을 간신히 넘는 수준인 1백51명이다. 의원이 한 명만 더 탈당하면 정부가 붕괴되는 것이다.

무능한 정부는 노동계급의 분노에 직면해 있고, 황금새벽당은 거대한 반파시즘 운동의 힘으로 현재 위기에 처해 있다. 황금새벽당 의원 16명 중 절반이 면책특권을 잃고 범죄 혐의로 기소된 상태다.

현재 그리스에서 지지율이 가장 높은 좌파 개혁주의 정당인 시리자는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시리자의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5월 유럽의회 선거에 도전하면서 긴축이 아니라 “불안정”을 끝내겠다고 했다. 이는 투쟁하는 노동계급이 아니라, 그리스에 구제금융을 지원하는 트로이카에 보내는 메시지다.

노동계급 투쟁의 일부인 그리스 사회주의노동당(SEK) 등 극좌파들은 나치를 감옥으로 보내고 나치에 협조한 정부 인사를 모두 사임시키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런 주장과 함께 계속되는 투쟁은 황금새벽당을 쪼그라들게 할 뿐 아니라, 지배자들의 긴축 공세에 맞선 노동계급의 저항을 고무할 수도 있다.

경제적 위기와 정치적 위기가 서로 갈마들며 그리스는 혼란에 빠져 있고, 혼란 때문에 터지는 계급투쟁은 단호하게 투쟁을 건설하는 좌파들에게 기회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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