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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반란의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도시에서 성인(聖人)이 되기는 어렵다

데이비드 하비는 현재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 중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 중 한 명으로 자리잡았다. 그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독 동영상 조회수는 수만 건을 넘었고, 그가 2011년 11월 아이작 도이처 추모 강연을 했을 때는 런던 중심부에 있는 퀘이커교 예배당이 가득 찼다.

하비는 특히 공간과 위치가 현대 자본주의 동역학 속에서 하는 구실에 초점을 맞추며 지리학 분야에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을 증진시키는 데에 크게 기여했다. 그럼으로써 그는 지리학은 물론이고 마르크스주의 자체의 지평을 확장하는 업적을 남겼다.

《반란의 도시: 도시에 대한 권리에서 점령운동까지》, 데이비드 하비 지음, 한상연 옮김, 에이도스, 300쪽, 18,000원

이 책은 수년간 하비가 발전시켜 온 주장, 즉 현대 도시와 그 변두리의 형성 과정인 ‘도시화’가 중요하다는 주장의 연장선에 있다.

이 책의 특징은 매우 간결하게 서술됐고, 이해하기 쉬우며, 많은 학술적 마르크스주의 저자들이 잘 사용하는 여러 전문용어들을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비는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것만큼이나 그것을 파괴하는 데에 관심이 있다. 그리고 그는 그 둘 모두를 위해서는 도시화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또는 전통적인 좌파가 대부분 도시화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도시화는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위기에 빠지는 데서 일정한 구실을 했고 지금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대규모 건설 투자로 형성된 대도시들은 자본주의가 창출한 잉여를 흡수하는 데서 결정적 구실을 했다. 동시에, 최근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가 명백하게 보여 주듯이, 주택시장은 위기를 빈번히 촉발한다.

하비는 자본주의에서 도시가 중심적 구실을 하므로 좌파가 도시에 초점을 둔 운동을 훨씬 더 만만찮게 벌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책 제목에서 언급된 “도시에 대한 권리”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자본주의에서 흔한 개념이자 많은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개인적이고 협소한 재산권이 아니다. 도시에 대한 권리는 “도시가 만들어지고 개조되는 도시화 과정에 대한 권력을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식으로 형성하자고 주장하는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현존 좌파가 소외 집단이나 전통적 노동계급에 집중함으로써 그러한 투쟁의 중요성을 무시했으며, 이러한 경향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공공 서비스와 공공 공간에 대한 접근권과 시민권 등을 요구하는 도시 운동과 도시 운동 조직이 자본주의를 전복하는 투쟁에서 중심이 돼야 한다는 것이다.

노동계급의 범주

하비가 내린 결론은 대부분 동의할 만하다. 그러나 그의 결론이 어느 정도는 모호해서 동의할 만한 것이므로 좋기만 한 것은 아니다. 물론 이런 모호함은 어느 정도는 그의 진솔함과 겸손을 반영하는 것이다. 하비는 자신이 모든 문제의 답을 안다거나 남들보다 많이 안다는 식으로 아는 척하지 않는다, 이는 그의 장점이다. 그러나 하비의 주장은 여전히 모호한 측면이 있고 그래서 만족스럽지 못하다. 뭔가 더 논쟁적이고 발본적인 것을 말하려다 멈춘 것 같은 느낌이 든다.

하비는 도시에서 도시로 이어지는 반자본주의 투쟁에 관해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특히, 그는 도시 혁명에 관한 여러 “테제”를 제시한다. 그중 하나는 “파업에서 공장 접수에 이르는, 노동계급을 기반으로 한 투쟁이 주변의 이웃과 지역사회에서 모인 대중의 지지를 강력하고 활력 있게 받는다면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아진다”는 것이다. 이는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누가 이를 부인할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다른 테제는 더 까다로운데, “노동의 개념은 노동의 산업적 형태에 고착된 협소한 규정에서 벗어나 점점 더 도시화되는 일상생활을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데 수반되는 것 일체로 그 범주를 훨씬 더 확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이 주장은 노동과 노동계급 개념을 그저 전통적인 공장 노동자로 국한하지 말고 생산하는 사람들 전부[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하자는 중요한 주장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주장은 중요한 차이점을 은폐하는 것처럼도 보인다. 하비가 노동계급의 범주에 누구를 포함시킬지를 언제나 분명히 밝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마르크스주의 전통의 관점에서 ‘가치’를 생산하는 사람들을 뜻하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도시 거주자를 거의 모두 포괄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후자의 한 가지 문제점은 하비의 용어로 도시 “재생산자”들이 모두 똑같이 강력하지는 않으며, 자본주의를 약화시키거나 그 기능을 정지시킬 능력을 모두 똑같이 갖지는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하비는 “배달 트럭 수천 대가 매일 뉴욕 거리에 꽉 차 있다. 그 노동자들이 조직된다면 도시의 신진대사를 가로막을 힘을 가질 것이다” 하고 말한다. 이 말은 특정 노동자 집단의 잠재력을 잘 포착한 중요한 통찰이지만, 도시 안의 사람들이 모두 그런 힘을 가진 것은 아니다.

하비가 언급하지 않은 비슷한 사례로 2011년 영국 전기 기사들의 투쟁이 있다. 이런 투쟁들은 도시 안에서 전투적으로 조직된 노동자 집단이 가진 힘을 보여 줬다. 그 노동자들이 하는 노동의 특성상 그들의 활동은 큰 효과를 냈고 결국 승리했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힘이 도시를 생산하고 재생산하는 사람들에게 모두 있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나는 그들을 일차적으로 도시를 생산하는 사람들로 보는 것이 전기 기사들이나 그들에게 연대를 보내는 사람들 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정확히 어떻게 바꾼다는 것인지 잘 모르겠다.

도시적인 것?

하비가 영국 사회주의노동자당(SWP)을 주된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은 아니지만 직접 언급한 부분도 있으므로 그에 응답해야 한다. 하비는 2011년 11월 《히스토리컬 머티리얼리즘》[역사유물론] 대회에서 했던 말을 [책에서도] 되풀이하며 SWP가 “1980년대에 대처의 주민세에 맞선 성공적인 투쟁을 이끌었다”고 했다. 이 말은 우리에게 과찬이고, 아마도 그때 있었던 사람들을 놀라게 할 것이다. 이 말 또한 하비 주장의 모호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 말은 “그것 봐” 하는 식으로 의도된 것이다. 그 속에 함축된 바는 “당신들은 공장과 노동자가 중요하다고 하지만 사실 당신들이 지금까지 가장 성공적으로 개입한 것은 시민권과 세금을 둘러싼 쟁점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비판은 오히려 하비 자신에게 해당된다. 우선, 정말로 도시적인 것이 무엇인지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내가 살던 지역의 동지들은 주민세 반대 투쟁은 대도시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고 거듭거듭 말했다. 또한 이런 문제에 있어서 하비보다 “전통적인 좌파”가 해당 쟁점의 계급적 성격을 더 잘 포착한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비가 만만찮은 문제들을 만만찮게 다루고 있다는 점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하비가 씨름하고 있는 문제 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마도 광범하고 다양한 노동계급을 어떻게 조직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특히, 이 문제는 작업장에서 투쟁을 조직하는 것에 큰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은 상황(아예 일자리가 없는 경우도 많다)에서 중요하다.

이 책에 제시된, 도시 차원에서 조직하기라는 생각은 확실히 호소력 있고, 이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또한 하비에게 미래를 위한 새로운 매니페스토[강령]나 지침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물론 그것은 과도하다.

그러나 나는 하비에게 더 많은 것을 바란다. 이 염원은 마지막 두 장을 읽으면서 더 커졌다. 나중에 덧붙여진 것으로 보이는(나는 그렇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두 장은 런던 소요 사태에 대한 짧은 논평과 월가의 점거하라 운동에 대한 찬사로 이뤄져 있다. 그 두 장에서 계급과 생산에 관한 구체적 논의들은 희미해지고, 그 대신 차별받고 착취받는 사람들을 모두 포괄하는 광범한 연합에 대한 논의가 다뤄진다. 이 부분은 책의 나머지 부분과 어울리지 않을뿐더러, 만일 이것이 하비가 자신의 흥미로운 분석의 결론으로 제시하는 것이라면 애석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