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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 석 달:
계속 드러나는 진실들 - 구조의 능력은 물론 의지도 없었다

〈노동자 연대〉가 거듭 지적했듯이, 세월호 참사는 자본주의 “이윤 경쟁 체제와 그 체제의 수혜자들이 저지른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다.

이런 실체적 진실이 너무 분명해서 우파와 이 체제의 통치자들조차 이 점을 완전히 부인하지는 못해 왔다.

그 살인의 대상이 노동계급 사람들과 그 자녀들이라는 점과, 기업주와 최고위 통치자들의 유착이라는 문제는 감추려 하지만 말이다.

감사원은 7월 8일 중간 발표에서 세월호 참사가 “‘안전’보다 ‘이익’을 우선한 … 복합된 인재”라고 규정했다. 김기춘조차 “탐욕에 젖은 기업과 국가공무원의 태만” 운운할 정도다. 총리 후보에서 낙마한 안대희조차 세월호 참사를 “자본주의의 탐욕” 탓이라고 규정했다.

물론 청해진해운 한 기업과 그 기업주(유병언)에게 모든 책임을 몰아 주고 불특정한 사람들의 관념을 탓하는 천박한 수준의 인식이긴 하지만 말이다.

새롭게 밝혀진 것들을 보면, 이윤 경쟁 체제의 문제점이 더욱 선명하다.

청해진해운은 선박 연령 규제 완화를 이용해 떼돈 벌 궁리에 서류를 조작해 가며 이 낡은 세월호를 싸게 들여왔다.

해운 당국은 위조된 서류를 근거로 선박 도입과 무리한 개조를 허가해 줬다.

당일 출항도 무리였다. 과적을 하고도 출항할 수 있었던 것은 박근혜 정부가 적재량 신고를 서류로 대체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기 때문이다.

이들 사이에 부패한 유착이 있었던 것은 물론이다.

구조 체계 - 안전은 안중에 없었다

해경과 해군, 항만청 등 어느 기관에도 인명 구조를 위한 필수 장비라 할 잠수지원선 같은 장비가 아예 없었다.

안전 관련 예산을 삭감한데다 그나마 있는 예산은 영토 경쟁을 위한 군사 장비와 고위 관료들을 위한 위락 시설에 집중 투자됐다.

사고 당시 세월호 구조를 위해 소형 연안경비정 한 척만 출동한 것도 그나마 중형 경비정이 모두 중국 어선 단속에 동원됐기 때문이다.

군사적 안보 경쟁이 국가를 매개로 한 ‘간접적인’ 이윤 경쟁이라는 점에 비춰 보면, ‘안전’보다 ‘이윤’과 ‘안보’라는 체제의 우선순위가 참사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 더욱 분명해진다.

김기춘은 국정조사에 나와서 청와대는 법적으로 구조 체계에서 컨트럴타워가 아니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참사 당일 해경과의 통화에서 한 청와대 관계자는 “VIP의 뜻”이라며 전원 구조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물론 배가 이미 가라앉은 뒤였다는 게 진짜 문제이지만 말이다.

4월 16일 박근혜는 오후 5시경까지 서면과 전화로만 보고를 받았다. 이는 그가 흔한 대책회의조차 소집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문제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이고, 국가의 구조 책임을 가장 앞장서 방기한 것이다.

그러니 박근혜는 사건 발생 8시간이 넘을 때까지 희생자들이 배에 갇혀 있다는 것도 몰랐던 것이다. 그래서 오후 5시에야 나타나 “구명조끼를 학생들은 입었다고 하던데 그렇게 발견하기가 힘듭니까?” 라는 엉뚱한 소리를 해댔던 것이다.

구조 과정 - 이것은 살인이 아닌가?

진도 관제센터는 아예 관제 업무를 하지 않고 있었고, 이를 은폐하려고 항적이나 CCTV 등 증거 조작을 한 듯하다.

뒤늦게 출동한 구조대들이 짐을 실을 차가 없다고 공기통을 빼고 가는 일도 벌어졌다.

심지어 구조의 골든타임이 끝나가는 9시 54분에는 상황을 묻는 청와대에 “아직 지켜보고 있는 단계”라고 보고한다.

이처럼 상황 파악도 못한 해경 본청은 배가 거의 가라앉던 오전 10시 17분경 “여객선 자체 부력이 있으니, 차분하게 구조”하라는 한가한 지시를 하고 있었다.

해경이 에어포켓이 사라지길 기다려 잠수사 투입을 했다는 것도 밝혀졌다. 정작 실종자 가족들의 압력에 떠밀려 공기를 주입할 때는 ‘소형’ 공업용 기계로 사기극을 벌였다. 수천 톤의 배에 자전거 바람 넣는 기계를 들이댄 격이다. 더구나 설령 에어포켓을 만든다 해도 이 기계가 배출하는 공기를 마시면 멀쩡한 사람도 위험해진다!

또한 해경은 물살이 센 것을 구조 작업이 힘든 이유로 댔는데, 물살이 잦아드는 정조를 못 맞추는 것을 넘어서 아예 가장 물살이 셀 때 잠수사들을 투입한 것도 밝혀졌다. 이것은 사실상 구조의 방기이자 이를 면피하려는 술책일 개연성이 있다.

갈수록 ‘준비된 무능’만이 아니라 애초에 구조의 의지가 없었다는 점이 드러나고 있다.

골든타임을 놓친 뒤, 고위 관료들은 어쩌면 생존자가 없기를 바랐을지도 모른다. 그래야 구조의 실패가 아니라 선박회사나 선원들의 탓으로 책임을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