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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무지개 속 적색 ─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체제에 맞선 급진적 성소수자 해방 운동을 위한 제언

《무지개 속 적색 ─ 성소수자 해방과 사회변혁》, 해나 디 지음, 이나라 옮김, 책갈피, 256쪽, 12,000원 ⓒ도서출판 책갈피

영화 〈인셉션〉으로 유명한 배우 엘렌 페이지가 얼마 전 커밍아웃을 했다. 그는 “숨는 것에 지쳤고, 말하지 않음으로써 거짓말을 하는 것에도 지쳤다”며 용기 있게 자신을 드러냈다.

자본주의는 매일 성소수자들에게 거짓말하고 숨어 있으라 한다. 그들은 ‘비정상’이니까.

그러나 “동성 간 사랑 욕망 관계와 젠더 다양성은 인류 자체만큼이나 오래됐다 … 우리가 오늘날 그런 것들을 지칭하는 용어나 생각하는 방식은 고작 1백 년 남짓 된 것이다.”

자본가들은 19세기부터 노동력을 안정적으로 공급받기 위해 이성애 관계를 기본으로 한 ‘정상가족’을 재구축했다. ‘정상가족’의 탄생은, 자칫 그런 가족 체계를 흔들 수 있는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의 탄생으로 이어졌다.

자본주의가 체계적인 성소수자 차별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해방을 위해선 자본주의에 맞서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그래서 이 책은 ‘무지개 속 적색’에 주목한다.

“성소수자 투쟁과 더 넓은 사회적 반란을 연결하려는 이런 노력은 마치 무지개 속 적색처럼 성 해방 투쟁의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져 왔다. 사회주의자와 노동계급 운동은 그 역사의 중심에 있었다.”

성소수자들의 전투적인 반란이었던 1969년 스톤월 항쟁은 1968년 노동자 파업과 흑인 공민권 운동, 베트남전 반대 운동 등 일렁이는 투쟁 물결의 일부였다. “1960년대와 1970년대 동성애자 해방운동은 체제에 맞선 더 큰 반란의 일부였기에 그토록 많은 것을 쟁취할 수 있었다.”

전 세계에서 최초로 헌법에 동성애자의 인권을 명시한 곳은 유럽의 어느 국가가 아닌 남아프리카공화국이다. 아파르트헤이트에 맞선 노동자들의 거대한 파업 속에서 성소수자 활동가들은 자신의 투쟁과 노동자 투쟁을 연결하려 노력했다.

뿌리 뽑기

한국의 성소수자 운동도 1997년 노동자대투쟁의 여파 속에서 고무받고 성장했다. 당시 성소수자 운동 내 급진적 세력들은 노동자 투쟁에 연대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모든 억압은 이런 식으로 자본주의와 연결되어 있다. 동성애 해방에 진지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억압에 맞선 싸움이 결국 착취에 맞선 싸움임을 이해해야 한다.”

동성애를 “부르주아적 일탈” 따위로 보는 스탈린주의 때문에 마르크스주의는 성 해방에 무관심하고 심지어 반동적인 것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독일과 러시아의 혁명에서 볼 수 있듯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성 해방 투쟁에 헌신해 왔다.

독일 사회민주당은 세계 최초의 동성애자 운동이 성장하는 데 핵심 구실을 했다.

특히 러시아 혁명은 “성 해방을 위한 투쟁에서 전례 없는 진보를 가능케 한 사건”이었다. 볼셰비키는 자본주의적 착취를 폐지하며 그에 동반되는 차별과 억압도 함께 뿌리뽑으려 했다. “혁명 전에 남몰래 결혼한 두 여성은 결혼을 인정받았는데, 영국에서 ‘시민 동반자 제도’가 도입되기 88년 전이었다.”

러시아 혁명이 힐끗 보여 준 가능성들은 여전히 우리 마음 속에 해방의 영감을 깃들게 한다.

세계 성소수자 운동은 많은 성과를 쟁취해 왔다. 유럽에선 커밍아웃한 정치인들이 당선하고, 최근 영국과 프랑스에 이어 룩셈부르크도 동성결혼을 합법화했다. 올해 한국의 성소수자 자긍심 행진은 역대 최대 규모인 1만여 명이 모였다. 서대문구청이 행사 승인을 취소했음에도 수많은 단체들이 자긍심 행진을 함께 방어하고 참가했다.

그러나 동시에 여전히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길거리에서 폭행당하고 심지어 살해당하는 일도 벌어진다. “2008년 영국 동성애 혐오 범죄 조사를 보면, 동성애 혐오 범죄 신고 건수의 고작 1퍼센트만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런 상황이 뜻하는 바는 “우리가 과거에 뿌리를 둔 한물간 편견을 극복하기 위한 전투만 치르면 되는 필연적 진보의 궤도에 올라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이 체제는 하루하루 새롭게 우리를 억압할 뿐 아니라 우리가 쟁취한 것들이 무위로 돌아갈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 낸다.”

한국에서도 성소수자 운동이 성장하면서 우익들의 훼방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에 맞서 ‘어떻게 싸울 것인가’ 하는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이 책이 천대에 저항하는 이들에게 많은 영감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무거운 흙덩이를 갈아엎으려면 쟁기질을 깊게 해야 한다”는 트로츠키의 말처럼 사회 전반에 뿌리 박힌 편견과 천대를 없애려면 더 근본적인 것을 건드려야 한다. “무지개 속 적색을 다시 발견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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