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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의원 등 내란음모 무죄 — 드러난 ‘사상 재판’의 실체:
사상 탄압 중단하고 관련자들을 무죄 석방하라

8월 11일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 등의 “내란 음모” 사건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내란 음모 혐의는 무죄로, 내란 선동과 국가보안법상 이적 혐의는 유죄로 선고했다.

서울 고등법원 형사9부는 내란 음모의 주체라 할 “RO” 조직의 실체를 뒷받침할 객관적 증거가 없다고 판결했다. 음모의 주체가 없으니 구체적인 실행 계획이 증명될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8월 11일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판결에 울분을 토하는 가족과 지지자들 ⓒ출처 〈진보정치〉

검찰은 내란을 실제로 계획하고 준비했다는 증거를 재판에서 내놓지 못했다. 2013년 5월 12일 회합 ‘녹취록’은 이미 재판 과정에서 국가정보원이 총 8백여 곳을 위조한 것이 드러났다.

재판부의 판결은 박근혜 정부의 “내란 음모” 소동이 사실은 정치적 마녀사냥일 뿐이었다고 인정한 셈이다.

“내란 음모”로 잡혀갔는데 내란 음모의 증거가 없다면, 구속자들은 모두 무죄 석방되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피고인 측 변호인인 김칠준 변호사도 재판 후 바로 이 점을 지적했다.

“지하혁명조직 RO가 존재한다, 그리고 조직원들이 사전에 준비 행위를 했다, 폭동을 모의하기 위해 모였고, 내란을 합의했다는 것이 [내란 음모와 선동죄 기소의] 핵심적인 기둥이었는데요. 내란음모 무죄를 선고하면서 이 4개의 기둥에 대해서 [2심] 재판부는 인정할 증거가 없다면서 다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논리적으로 내란 선동도 무죄로 봐야 [합니다.](YTN 라디오 ‘강지원의 뉴스! 정면승부’)

그런데도 재판부는 내란 선동죄와 국가보안법은 유죄라고 판결한 것이다. 결국 구속자들은 2~9년의 중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 판결대로라면, 비공개 모임에서 토론했을 뿐인데 이것이 살인보다 중한 죄라는 것이다.

재판부는 “회합 참석자들이 이 의원과 상명하복 관계에 있고 발언에 적극 호응한 점 등을 보면 참석자들이 가까운 장래에 내란 범죄를 결의·실행할 개연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구체적 ‘행위’가 없어도 참석자의 ‘내심의 목적’을 추정해 처벌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이 재판이 개인의 정치 사상(내면의 양심)을 단죄하는 ‘사상 재판’이라는 것을 자인한 것이다. 선고 결과만 봐도, “RO”의 실체 여부는 진정한 쟁점이 아니었다.

박근혜와 이 나라 통치자들은 노동운동 일부의 친북사상을 마녀 사냥하고 처벌함으로써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고조될 아래로부터의 노동자 저항을 분열시키고 위축시키려 한 것이다.

우익의 압력에 순응한 사법부

내란 음모의 증거가 존재하지 않는다면서도, 굳이 형법상 내란 혐의에 유죄를 유지한 것은 재판부가 박근혜 정부와 우익의 압력을 판결에 반영했기 때문이다.

형법상 내란죄로 좌파를 단속하려는 행정부의 의도에 한편이 된 것은 사법부 역시 통치자들의 일원으로 체제를 수호하는 데서 한마음이라는 방증이다.

현재 한국의 우익과 지배자들은 세계 자본주의 위기에서 비롯한 경제와 안보 위기감 때문에 갈수록 신경질적이 되고 있다. 자본주의 계급지배 질서를 유지하려고 자유민주주의라는 외양이 일부 훼손되는 것도 감수하겠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재판부가 핵심 증거들을 기각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와 3권 분립을 내세운 통치기구의 일부로서 대중에게 존재(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RO”의 실체와 내란 음모 혐의는 검찰의 증거로는 도저히 입증됐다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짝퉁 박정희” 정권의 유신 흉내는 ‘유신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유신 스타일’일 뿐이라는 것이 이번 판결에서도 드러난 것이다. 이것은 노동운동이 마녀사냥에 그다지 위축되지 않고 민영화와 고통전가에 맞서 곳곳에서 싸워 온 덕분이기도 하다.

결국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재판부의 판결은 검찰의 기소가 무리했다는 것을 드러냈다. “RO” 조직을 전제로 논리를 세운 법무부의 통합진보당 해산청구도 정당성이 크게 훼손됐다. 이 판결대로라면, 정부는 순전히 진보당의 강령과 활동만을 놓고 위헌 정당임을 증명해야 한다. 정치 사상 탄압이라는 본질을 더 노골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노동운동은 세월호 참사, 의료 민영화 등 각종 개악과 고통전가 공세에 맞서 파업과 거리 투쟁 등 더 투쟁적 저항을 해야 할 때다.

내란 선동죄는 ‘형법 안의 국가보안법’

“국정원 ‘내란음모 정치공작’ 공안탄압규탄대책위원회”는 최근 ‘5월 12일 강연 녹취록’을 새롭게 정리해 공개했다. 이것을 보고 알 수 있는 것은, 참석자들 사이에 모종의 연락망이 있다는 것과 이석기 의원과 참석자들의 (과장되고 잘못된) 정세 인식과 정치 노선뿐이다.

그러므로 이를 근거로 중형을 선고한 것은 이 재판이 전형적인 사상 탄압 재판이라는 뜻이다.

국가보안법은 머릿속 생각을 처벌하는 희대의 악법이다. 박근혜가 김정일을 만난 것은 아무런 문제가 안 되고, 이석기 의원이 북한 체제에 대해 우호적으로 ‘말’한 것은 죄가 된다.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은 행위자의 ‘내심의 목적’을 재판부가 자의로 재단해 처벌하기 때문이다. 행위를 처벌하는 부르주아 사법 원리마저 부정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형법(1953년)보다도 국가보안법(1948년)이 먼저 제정된 나라다. 냉전적 반공주의와 친서방 자본주의 확립을 목표로 미군정이 수립한 이 국가는 냉전 격화 속에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제압하려고 국가보안법을 만들었다. 국가보안법은 처음부터 “내부의 적”에 맞선 한국 자본주의의 ‘체제수호법’이었던 것이다.

형법 제90조 내란의 ‘예비·음모·선동·선전’의 죄 항목은 형법을 만들 때 국가보안법을 없애는 대신 이 법의 기능을 형법으로 옮기려고 만든 ‘쌍둥이’ 조항이다. (거꾸로 말하면, 국가보안법이 우파의 말과 달리 ‘내부의 적’을 처벌하는 내란죄 처벌 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이승만과 그 후배 독재자들은 두 법을 모두 유지하며 저항 단속의 무기로 애용했다.

결국 ‘증거는 없지만 내란을 목적으로 모인 것은 분명하고 그래서 유죄’라는 자의적 판결은, 형법 제90조 자체가 내면의 양심을 처벌하는 ‘형법 안의 국가보안법’ 조항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법무장관 황교안은 지난해 국회에서 “내란 선동은 … 내란에 대해 고무적 자극을 주는 일체의 언동”이라며, 행위로 옮겨지지 않은 말과 생각까지 처벌하는 조항임을 분명히 했다. 내란죄의 “국헌 문란” 개념은 국가보안법의 “국가 변란” 개념보다 더 폭넓게 저항적 사상을 처벌할 수 있다.

그래서 내란 선동죄의 성립 조건을 엄격히 적용하라는 진보당 변호인들의 요구는 정당하다.

한편, 국가보안법을 형법으로 대체할 수 있다고 제안해 온 자유주의자들의 국가보안법 ‘개폐’론이 꾀죄죄하고 위선적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이다.

국가보안법만 썼을 때는 얻지 못할 또 다른 이점도 있었다. 현존 국가체제 안에서 개혁을 추구하는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이 ‘내란 음모’ 혐의자들을 방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경제·안보 위기 속에서 이미 운신의 폭이 좁아지고 있던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의 배신적 태도 때문에 노동운동은 진보당 방어 문제에서 분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