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연대〉 성명:
교황 프란치스코와 순교자 본회퍼
〈노동자 연대〉 구독
교황 프란치스코가
하지만 교황의 위로에 알맹이가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무엇보다 세월호 유가족에게 준 메시지에 “진실과 책임 규명”이라는 추상적 문구조차 없었다.
쌍용차 해고자들에게 “복직”이라는 말이 빠진 위로의 말도 마찬가지다.
밀양 사제들과 수도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위로의 말은 무엇인가? 단연 “송전탑 건설 중단하라”는 요구를 대변해 주는 일일 것이다.
사실, 강정마을 사제들과 수도자들을 위해서도 “해군기지 건설 중단하라”는 요구를 대변해 줘야 온전한 위안이었을 것이다.
방한 중 교황의 언행은
1998년 호르헤 마리오 베르골료
우리가 보기에 교황 프란치스코는 이번 방한 중에도 “자유와 인권을 해친 사람들에게 너무 너그러웠다.” 이번에도 그런 자들에게 항의할 “책임 있는 이들”에 그가 포함돼 있는데도 말이다.
그러나 예수는 예언자
물론 가톨릭 교회의 한국 조직 지도자들
하지만 전 세계 12억 가톨릭 교회 신자들의 절대 다수가 교황이 빈번히 언급하는 “가난한 이들”이고, 세월호 유가족, 쌍용차 해고자, 밀양 송전탑 주변 주민, 강정마을 주민 등도 모두 “가난한 이들”이다. 교황이 말하는 대로 “가난한 이들의 교회”가 되려면 그들에게 반쪽짜리 위안을 주는 것으로 될까?
술 취한 운전자
디트리히 본회퍼라는 개신교 순교자는 심지어 위로로는 불충분하다고 생각해, 히틀러 암살 음모
“술 취한 운전자
더 익숙한 비유를 들어 보자. 6살짜리 소녀에게 누가 성폭력을 자행했을 때 우리는 그저 그 아동과 그의 부모에게 연민과 위로의 말만 하고 있을 것인가? 아니면, 범인을 찾아내어 그가 처벌을 받게 되도록 애쓸 것인가? 세월호 유가족 등 위에서 언급된 사람들은 더 분명한 위안을 받을 자격이 있다.
물론 본회퍼가 가담한 테러 전술이 과연 나치 치하에서조차 효과적인 저항 수단인지는 노동자 계급 정치의 관점에서 접근하면 토론의 여지가 있다. 이 자리에서 다루기에는 적절하지 않은 듯하다.
그리고 교황 프란치스코가 위로의 말 건네는 것을 넘어 행동을 해야 한다고 우리가 주장하는 게 아님도 물론이다. 교황의 위치로 보아 말 자체가 행동의 일부이리라.
그러나 교황 프란치스코의 위로의 말 자체가 알맹이가 없었다. 바로 이 점이 너무도 아쉽다.
교황 프란치스코가 바티칸으로 돌아가서라도 세월호 유족과 쌍용차 해고자 등 그가 만난 천대받는 한국인들을 더 분명한 말로 옹호하는 방한 소감 메시지를 발표했으면 좋겠다.
2014년 8월 1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