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편지
‘자본주의와 인종차별’ 기사의 '시초 축적' 개념에 대한 나의 의견
〈노동자 연대〉 구독
그러나 이정원 동지가 이런 과정을 '시초 축적'이라는 이론틀을 통해서 설명하는 것에는 선뜻 동의가 가지 않는다. 해당 기사에서 '시초 축적' 개념은 다음과 같이 사용된다.
"노예 무역은 자본가들이 산업화 자금을 마련하는 데서 중요한 구실을 했다. 노예로부터 추출한 이윤의 상당 부분은 운하·철도·선박 같은 산업 생산에 투자됐다. 마르크스는 이 과정을 '자본의 시초 축적'이라고 불렀다."
내가 정확히 읽은 것이라면, 여기에서는 단순히 '노예로부터 축출한 이윤'이 자본가들이 부를 쌓는데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시초 축적'이라는 용어가 쓰인 것 같다.
"... 하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본주의가 그 자신의 ‘외부’를 만들어내고 다시 그것을 자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까지도 시초 축적의 범위 안에 집어넣는다. 바로 이것이 그가 ‘강탈에 의한 축적’
그러나 시초 축적은 단순히 '강탈'에 의한 폭력적인 축적 과정을 설명하는 개념이 아니다. "시초 축적에서 중요한 것은 ... 노동조건은 특정한 소수의 손에 집중돼 자본으로서 또 토지로부터 쫓겨난 농민들은 임노동자로서 재편"되는 것을 이야기 한다. 그런데 하비는 시초 축적의 "폭력성"만을 강조하고, 그것이 곧 시초 축적의 핵심이라고 말함으로써 마르크스의 개념을 잘못 적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국제사회주의 경향의 중요한 이론가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도 《마르크스21》에 실린 ‘금융화와 오늘의 세계경제’에서 하비의 '탈취에 의한 축적'이론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고 이야기한 바 있다.
17~18세기에 자본주의가 확장하는 데 노예 무역에서 수취한 잉여가 큰 역할을 한 것은 사실이고, 이것이 인종차별의 진정한 뿌리라는 것은 전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설명이다. 그리고 이정원 동지가 이야기 했듯이 '인종차별을 완전히 제거하기 위해서는 그것의 뿌리인 자본주의 체제 자체에도 도전'해야 하는 것은 여지 없는 진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설명을 위한 개념들이 좀 더 엄밀하게 사용된다면 이와 같은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의 주장이 더 설득력을 얻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중요한 포인트는 아니었을지라도 약간의 '태클'이 필요했다고 생각해 이렇게 독자편지를 보낸다.
이 글을 보고 ‘시초 축적’ 개념에 대한 김종현 동지의 독자편지를 보고를 읽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