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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협 개악안 찬반투표를 앞둔 건강보험공단 두 노조:
정부의 ‘정상화’ 압박을 수용할 수 없다는 의미 있는 목소리

공공기관 ‘정상화’ 중간평가 결과 발표(10월 10일)를 앞두고 정부의 비열한 압박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사내복지를 대폭 삭감하고 구조조정에 대한 노동조합 동의권 등을 단협에서 삭제하지 않으면 내년 임금을 동결하고 성과급을 전액 삭감하겠다고 협박해 왔다.

공공기관노조 중에서도 규모가 큰 건강보험공단 두 노조(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와 한국노총 공공연맹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에 대한 압박도 거세다. 건강보험공단은 정부가 지정한 부채·방만 중점기관이 아닌데도 정부는 10개 ‘방만’ 항목에 대한 단협 개악을 수용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사측은 “조합원의 고용을 절대 보장한다”는 조항에서 “절대”를 삭제하라고 요구했다. 또, 전보에 대한 노동조합의 통제권도 약화시키려 한다. 각종 경조사 관련 휴가도 대폭 줄이고, 장기근속 휴가·중고등학생 자녀 학비 전액 지원·질병과 부상 사망 시 퇴직금 가산 지급 항목도 모두 폐지하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건강보험공단 노동자들은 ‘방만’하기는커녕 열악한 노동조건에 불만이 많다. 노동자들은 유사 공공기관보다 더 낮은 임금을 받아 왔기 때문에 임금 차별을 없애라고 요구하고 있다. 장기요양업무 등 업무량은 늘었는데 인원은 늘지 않아 인원 부족도 호소해 왔다. 공무원과 달리 58세인 정년을 60세로 연장하기도 바라고 있다.

얼마 전 건강보험공단 두 노조의 조합원들은 정부의 단협 개악 압박에 반대해 압도적 지지로 쟁의행위를 가결(평균 86퍼센트)시켰다. 지난 8월 27일에 열린 공공기관 정상화 반대 집회에서도 가장 큰 대열을 이뤘다. 민원이 몰리는 건강보험료 납부 마감일(9월 11일)에 하루 파업을 통해 업무를 마비시키고 싸울 준비도 하고 있었다.

특히, 두 노조의 노동자들은 같은 공단에서 일하면서도 두 노조로 나눠져 있다 보니 투쟁 효과가 떨어진다는 점을 깨닫고 10월 1일자로 노조를 통합하기로 결정했다. 통합에 따른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같은 사용자에 맞선 더 큰 단결을 통해 더 나은 노동조건을 쟁취하길 기대한 것이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에게 통합을 앞둔 이번 임단투는 각별한 의미가 있었다. 사회보험지부 현장간부 간담회에서 한 노동자는 ‘지사별로 양 노조가 같이 전진대회를 개최하다 보니 파업을 빨리 하고 싶어진다’는 조합원들의 기대감을 전하기도 했다.

단협 개악을 수용한 잠정 합의안

그런데 이런 조합원들의 높은 불만과 투쟁 결의에도 불구하고, 사회보험지부 집행부는 9월 11일 사측의 단협 개악 요구를 수용하는 합의를 했다. 사회보험지부는 18일에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잠정 합의안에 대한 찬반을 결정한다.(부결되면 합의안은 효력이 사라진다.)

잠정 합의안에 대한 조합원들의 비판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서울지회는 15일 운영위원회를 열어 분회장들과 조합원들의 의견을 수렴했고, 합의안에 반대하는 입장을 발표했다. 일부 현장 서클들도 부결 입장을 내고 있다.

우선 집행부가 노동조합 민주주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이다. “이번 노사합의 과정에서 조합원들의 의사를 묻고 이를 올바른 방향으로 담아내는 그 어떤 시도도 없이 일방적인 결정을 내린 집행부에 대한 조합원들의 많은 실망과 분노”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노동자들은 KT와 발전노조에서 사측이 전보를 휘두르며 노조를 심각하게 약화시킨 악몽을 떠올리며, 집행부가 고용 보장과 전보 조항 후퇴에 합의한 것을 특히 우려하고 있다. 현장간부 간담회에서 한 조합원은 ‘전보를 양보한다면 노동조합은 거의 무장해제 된다고 본다. 이런 중요한 문제를 여러 회의체에서 검토도 없이 양보한다는 것은 불쾌하다’고 말했다.

사회보험지부 집행부는 후퇴를 보전할 문구를 넣었다고 해명한다. 하지만 사측이 문구 수정을 요구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고 대체 문구로도 후퇴를 막을 수는 없다는 노동자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다.

특히, 지금 정부의 ‘정상화’ 계획에는 단지 복리후생 삭감만이 아니라, 고용·복지 공공기관 통폐합 계획이 포함돼 있다. 이 구조조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을 당사자가 바로 사회보험 노동자들이다. 그런데 이런 구조조정을 앞둔 사회보험지부가 고용안정 조항 개악에 합의한다면 향후 투쟁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사회보험지부 집행부는 단협 개악을 수용하지 않으면 통합노조가 무단협 상태로 출범할 수 있다며 개악 합의 불가피성을 설명한다. 그러나 여러 조합원들은 ‘이것이 통합의 정신인가’를 묻고 있다. ‘상향평준화를 위한 통합인데, 오히려 통합을 앞두고 중요한 노동조건을 후퇴시킨다면 통합은 왜 하는가’, ‘통합의 힘으로 오히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라고 요구해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목소리는 정당하다.

설사 단협 개악 대신 해고자 문제 해결에 대한 모종의 언급이 있었다 해도 단협 개악이 정당화될 순 없다. 철도노조가 이런 경우였다. 앞장서서 투쟁하다 해고된 동지들은 반드시 복직해야 하지만, 이것은 투쟁을 통해서 쟁취해야 할 문제다. 대부분이 투쟁적인 활동가들일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을 대가로 조합원 대중의 조건을 후퇴시킨다면 노동조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신뢰가 실추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 조합원들의 사기와 조직력이 약화된다면 향후 투쟁을 통해 복직할 가능성도 더 낮아질 것이다.

한편, 사회보험지부의 여러 조합원들은 사회보험지부가 ‘정상화’ 공격에 맞서야 할 뿐 아니라, 의료 민영화에 맞선 투쟁에서 더 적극적인 구실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의료 민영화의 종착역은 결국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이고, 이것은 공공성을 파괴할 뿐 아니라 건강보험공단의 기능을 크게 축소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철도 노동자들은 얼마 전 ‘정상화’ 노사 합의를 총투표에서 부결시킨 바 있다. 사회보험 노동자들이 이번 총투표에서 합의안을 부결시키고 투지를 보여 준다면, 정부의 ‘정상화’ 추진에 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이것은 정부가 공공기관 ‘정상화’ 2단계로 추진하려는 구조조정과 민영화에 반대하는 투쟁에도 큰 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