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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 정의가 살아있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할 것입니다”

이 글은 노동자연대 최영준 운영위원이 9월 17일 재판에서 낭독한 모두진술 전문이다. 최영준 운영위원은 불법 집회 참가를 이유로 일반교통방해 혐의로 기소돼 서울중앙지법에서 재판을 받았다.

검찰은 저에게 세 건의 집회에 참가해 도로교통을 방해했다며 벌금 5백만 원을 청구했습니다. 제가 불법 행위를 저질렀다는 겁니다.

먼저 2012년 8월 31일 민주노총 총파업 결의대회 건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이날 집회는 정부와 사장들의 불법 만행을 규탄하는 자리였고,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의 파업 집회였습니다.

그해 7월 27일 에스제이엠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고 있는데 사측은 새벽 4시에 무장한 용역 깡패를 동원해 노동자 수십 명에게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당시 경찰은 용역깡패의 불법 폭력 행위를 묵인했고, 이들은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았습니다.

또, 8월 초부터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은 국정조사를 요구하며 노숙농성을 하고 있었지만 정부와 새누리당은 노동자들에게 불법 운운하며 탄압을 했습니다. 정리해고로 수많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고통 받고, 일부 노동자들은 목숨을 끊고 있었는데도 말입니다.

반면, 이명박 정부는 민간인 불법 사찰이 폭로되고, 이명박의 내곡동 사저 매입 비리, BBK 문제 재점화 등 진정한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었음이 드러나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정부는 생존권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을 무자비한 폭력과 구속 등으로 탄압했지만, (이명박 정부야말로) 진정한 불법과 비리의 주범이었던 것입니다.

이날 집회는 바로 이와 같은 이명박 정부를 규탄하는 자리였습니다. 불법을 저지른 자들은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는데 왜 처벌하지 않느냐고 외친 내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할 수 있습니까!

집에 도둑이 들어와 “도둑이야” 하고 외쳤더니 경찰과 검찰이 ‘고성방가’라며 집 주인을 처벌하려는 것과 무엇이 다릅니까!

또, 당일 집회와 행진은 합법적 신고를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진정으로 도로교통을 방해한 것은 집회 참가자들에게 과잉대응을 한 경찰이었습니다. 평화적 행진을 차벽으로 막고, 집회 참가자들을 위협한 것은 바로 경찰이었습니다.

또 다른 집회였던 2013년 2월 23일 전국노동자대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박근혜 당선 이후 연초부터 노동자 5명이 목숨을 끊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민주노총 소속 노동자들과 시민사회단체들은 많은 노동자들이 목숨을 끊는 비참한 삶을 개선하고자 이날 모였습니다.

또, 지난 몇 년 동안 줄기차게 요구해 온 5대 노동 현안 문제를 해결하라고 취임을 앞둔 박근혜에게 요구하는 자리였습니다.

불법파견이 확정됐음에도 현대차 회장 정몽구는 구속은커녕 아무런 법적 제재도 받지 않았고, 정리해고의 고통 속에 쌍용차 노동자 스물네 분이 죽었음에도 박근혜는 대선 후보 시절 했던 약속을 내팽개쳤습니다. 또, 정부는 여전히 용역깡패를 동원해 노동자들을 폭행하는 기업주들을 전혀 처벌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를 비롯한 집회 참가자들은 취임을 앞둔 박근혜에게 노동자들의 절박한 5대 노동 현안을 해결하라고 요구한 것입니다.

판사님! 한국 사회가 최소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오명 정도는 벗어나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마지막 한 건의 집회는 2013년 7월 6일 국정원 대선 개입 규탄 촛불문화제 참가 건입니다.

이날 집회는 박근혜 당선을 위해 이 나라 국가기구가 파렴치한 범죄와 불법을 저지른 것에 항의하는 자리였습니다.

정말이지 지난 대선은 더러운 악취와 오물로 가득 찬 불법의 도가니였습니다. 국정원이 선거에 개입했고, 서울경찰청장 김용판이 진실을 덮었고, 법무부장관 황교안이 원세훈을 감쌌습니다.

이번 원세훈 재판 결과를 보면 법원의 판결이 얼마나 황당한지 알 수 있습니다. 국정원의 정치 개입은 있었지만 선거개입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술 먹고 운전을 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라는 겁니다. 얼마나 황당한 판결이었으면 현직 부장판사가 ‘법치주의는 죽었다’고 했겠습니까!

이런 황당한 상황이 벌어지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에 당시 저를 비롯해 수많은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시청광장에 모인 것입니다. 따라서 저에게 죄가 있다고 주장하는 경찰과 검찰은 자신들이 진정 ‘법질서’를 주장할 자격이 있는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봐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경찰의 불법 사진 채증을 문제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경찰의 채증은 2010년 2천3백29건에서 2013년 5천3백66건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습니다. 정부를 비판하는 집회에서는 어김없이 채증 카메라가 대거 등장합니다.

인권단체들은 경찰의 채증 카메라를 ‘무법 카메라’라고 합니다. 관련 법률도 없고, 경찰 내 예규인 ‘채증 활동 규칙’만으로 무차별 채증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례는 경찰의 채증을 엄격히 규제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 판례를 어기며 무차별 채증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경찰의 불법 채증은 박근혜 정부의 집회, 시위 엄단 기조와 정권에 비판적 목소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협박하는 것과 같습니다. 게다가 당일 집회 때 발언자도 사회자도 아니었던 제가 그리고 수만 명이 참가한 집회 사진을 통해 어떻게 제 신원을 파악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따라서 저는 박근혜와 경찰, 검찰이 ‘법질서’ 운운하는 게 역겨울 따름입니다. 진정 ‘법질서’를 걱정한다면 국가기관을 이용한 불법적 대선 개입을 주도한 자들을 처벌해야 합니다. 또,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규명하고 책임자를 처벌해야 합니다.

하지만 박근헤 정부에게 이런 것들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최근 박근혜는 세월호 유가족과 약속한 특별법을 없었던 걸로 하고 유가족과 제대로 된 특별법을 요구하는 시민들을 범죄자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게다가 박근혜는 세월호 참사의 원인 가운데 하나였던 규제완화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규제완화 확대와 민영화 등을 추진하며 이윤을 위해 대다수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박근혜야말로 민주주의 파괴, 경제 위기 고통전가, 이윤을 위한 평범한 사람들의 생명에는 안중에도 없는 공공의 적입니다.

따라서 치졸하게 도로교통방해로 나에게 ‘가만히 있으라’고 하는 경찰과 검찰의 협박에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무죄입니다. 저의 행동은 전적으로 정당했기에 벌금형은 당장 철회돼야 합니다. 만약 이 법정에 일말의 정의가 살아있다면 무죄를 선고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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