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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편지 지하철 기관사의 연이은 죽음:
땅속을 달리는 ‘세월호’를 막아야 한다

지난 9월 18일 서울의 지하철 7호선을 모는 한 기관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서울도시철도노조 조합원이었던 송우근 조합원의 죽음은 대공원 승무사업소에서 함께 일했던 동료 기관사 고(故) 정재규 조합원의 죽음 이후 열 달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래서 더욱 동료 기관사 노동자들의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참담하다. 장례식장을 찾은 동료들의 표정은 암담했다. 서울도시철도노조 승무본부 김태훈 본부장은 “올 것이 와서 그런지 이제 조합원들이 놀라지도 않는 것 같다. 언제 또 이렇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공포감 때문인 듯하다. 이렇게 조용한 것이 불길하다” 하고 말했다. 고(故) 송우근 조합원의 죽음은 과거 지하철 사고를 겪은 뒤 가진 외상후 스트레스 때문인 듯하다. 평소 수면장애, 우울증을 호소했다고 한다.

지하철 기관사들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갑자기 밀려드는 극심한 공포와 불안을 반복적으로 느끼다, 이어서 염려만으로도 일상 생활을 하지 못하게 되는 공황장애를 겪곤 한다. 또, 운행 중 겪은 사상 사고로 인해 얻게 된 외상 후 스트레스 등으로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곤 한다.

공황장애

그러나 이것이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까닭은 기관사들이 장시간 지하 노동이라는 조건에 충분한 휴식 없이 팽팽한 긴장 상태에서 오래 근무를 하는 데다 여기에 관리자들의 억압적인 업무 환경 등이 더해지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서울도시철도공사의 연이은 자살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된 서울시의 ‘지하철 최적근무위원회의 5개 분야 7개 권고안’에도 이 점이 명시되어 있다.

지하철 기관사 노동자들이 어떻게 일하는지를 조금만 봐도 이들이 얼마나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지 알 수 있다. 기관사들은 빛을 거의 보지 못한 채 땅 속에서 최소한 8~10시간을 일하면서 각각 짧게는 3~4시간, 길게는 5~6시간씩 두 번 차를 탄다. 중간 휴게시간은 밥 먹는 시간 정도이고 쉬는 시간이라고 하기엔 턱 없이 짧다. 막차를 정해진 역에 주박하거나 차량기지에 입고시켰다 첫차를 끌고 나오는 날에는 집에도 가지 못하고 퀴퀴한 침실에서 두어 시간 대충 자고 금새 나와야 한다.

이렇게 기관사들은 평소 상당히 지친 상태에 있다. 그런 상태에서 좁은 기관사 석에서 혼자 운전을 한다.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관제소의 무전을 듣고 통제에 따르며 앞 차와의 시간과 거리를 맞추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앞 차와의 간격은 짧게는 2~3분 길게는 4~5분 간격이다. 파워링과 제어장치를 번갈아 당기며 10여미터 간격으로 달린 회색 벽의 노란 조명등만이 앞을 밝히는 터널을 끝도 없이 달린다. 역에 들어가면 정해진 정지 위치 앞에 차를 댄 후 CCTV에 의존해 승객들의 안전을 점검하며 태우고 내리는 일을 반복한다.

피할 데 없는 지하 터널에서 피로와 외로움과 졸움과의 전쟁이 계속된다. 작은 생리 현상도 참고 견뎌야 하는 것은 예사다. 실제로 얼마 전 서울메트로의 한 기관사가 생리 현상을 못 참고 해결하려다 지하 터널로 떨어져 숨지는 일이 벌어졌다. 역 하나를 그냥 지나치기라도 하면 쏟아지는 민원과 처벌과 인사상 불이익도 각오해야 한다. 작은 실수는 대형 사고로 이어질 수 있고 실제로 원치 않게 크고 작은 인명 사고에 부딪혀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지만 차 시간을 맞춰야 하기 때문에 정신 없이 수습하고 다시 운전을 시작하기도 한다. 이런 일을 수년 동안 반복해야 하는 것이 지하철 기관사들의 일이다.

그래서 서울메트로의 한 4호선 노동자는 “전동차를 운전하며 수년씩 일하는 지하철 기관사들은 모두 어느 정도 공황장애나 정신질환을 갖고 있다” 하고 말했다. 특히 서울메트로를 제외한 지하철 작업장 대부분은 1인 승무를 실시하고 있어 상황이 더욱 나쁘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의 5~8호선은 몇 개를 제외한 대부분의 역이 매우 긴 지하 구간이어서 사태는 더욱 심각하다.

압박

하지만 이윤을 창출하기 위한 사측과 관리자들의 억압은 이런 사태를 더욱 악화시킨다. 특히 서울도시철도공사는 복수노조 상황을 이용해 좀 더 민주적이거나 전투적인 노동조합 소속 조합원들을 길들이려고 노동자들을 더 억압한다. 이에 대한 조합원들의 원성이 자자하다. 오죽했으면 서울시 감사의 지적사항이 되기도 했다. 평소 회사는 기관사들의 작은 실수도 근무평가, 승진 등의 인사에 반영하며 노동자들을 압박했다. 동시에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을 승진에서 대거 누락시키는 등 차별적인 대우를 해, 한 노조는 억압하고 다른 노조는 길들이면서 노동자들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금 우리가 보듯 노동자들의 죽음이다. 2012년 3월 왕십리역에서 투신해 자살한 고(故) 이재민 씨는 실적관리, 인사 및 휴가 통제 등의 스트레스를 받으며 불이익이 두려워 회사에 말도 못한 채 혼자 병원을 전전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6월에 자살한 한 기관사도 정지 위치를 어겼다고 징계를 받은 후 병이 악화해 죽음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들은 고(故) 송우근 씨처럼 민주노총 소속 조합원들이었다.

그런데 회사는 이런 죽음이 정신력이 약한 몇몇 사람들에게나 일어나는 일이라며 사태의 진실을 호도하려 한다. 그러나 기관사들의 생각은 다르다. 5호선을 운전하는 한 기관사는 “평소 아무리 괜찮아 보이는 사람이나, 수년간 베테랑 기관사였던 사람한테도 이런 일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날 수 있다. 몇 십 년을 운전하던 사람이 스크린도어에 승객의 가방 하나가 잘못 낀 뒤 불안에 시달리다 집 옥상에서 떨어져 죽었다.” 2013년 1월에 일어났던 일이다. 고(故) 송우근 조합원도 예방 검진에서는 전혀 증상이 드러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동료 기관사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큰 만큼 회사에 대한 분노도 크다. 이 죽음의 행렬을 막기 위해서는 이윤보다 안전과 생명을 우선해야 하고 그러려면 기관사를 더 채용하고 안전 중심의 작업장 조건을 만드는 데 더 많은 돈을 써야 하지만, 현실은 그 반대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회사의 수주를 받아 컨설팅을 실시했던 악명 높은 맥킨지의 용역 보고서에는 야간 퇴근, 무인 운전 실시 따위의 권고 사항이 적혀 있었다.

이대로 가다간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어 나갈지 모를 일이다. 노조 승무본부의 김태훈 본부장은 “1인 승무제와 억압적인 노무관리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또 다른 죽음을 보게 될 것이다. 땅 속을 달리는 ‘세월호’가 되지 않으려면 시급히 개선할 것이 많다. 2인 승무제를 실시하고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근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하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