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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 연금 개악 저지 공무원‍·‍교원 총궐기:
12만 명이 모여 공무원연금 공격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보여 주다

11월 1일 ‘공적 연금 개악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본부(공투본)’가 주최한 ‘공적 연금 개악 저지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대회’(이하 총궐기)가 성공적으로 개최됐다.

전국에서 올라온 공무원과 교원, 우체국 노동자 12만여 명이 여의도문화마당을 발 디딜 틈 없이 메웠다. 여의도문화마당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 옆 4차선 도로와 인도까지 가득 찼다. 이날 총궐기대회는 “정부 수립 이후 최대 규모의 공무원‍·‍교원집회”로 기록됐다.

11월 1일 오후 ‘공적 연금 개악 저지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대회’ 가 열리고 있는 여의도문화마당이 12만여 명의 참가자로 가득차있다. ⓒ이미진

한 노동자는 “공무원노조 가입 후 참가한 3번의 대규모 집회 중 오늘이 가장 많이 왔다. 이렇게 많이 온 건 본 적이 없다. 그만큼 박근혜의 개악안은 역대 최악이다” 하고 말했다.

공무원연금을 대폭 삭감해 노동자들의 노후를 빼앗으려는 박근혜 정부에 대한 분노 때문에 애초 노조가 예상한 규모를 뛰어넘는 수의 노동자들이 동참했다.

“연금을 연금답게, 공적 연금 강화하자”, “정부가 책임져라,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한다”는 구호가 여의도를 뒤덮었다.

많은 노동자들이 “공무원연금 지켜야 한다”가 1면 헤드라인인 〈노동자 연대〉 신문에도 큰 관심을 보였다. 몇몇 노동자는 동료들과 함께 읽겠다며 신문 여러 부를 사 가기도 했다. 집회장 곳곳에 차려진 〈노동자 연대〉 신문 판매대에서 노동자연대 회원들이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투쟁의 정당성을 옹호하는 연설을 하자, 노동자들이 환호와 박수를 보내고 음료수를 사다 주기도 했다. 이날 새로 나온 소책자 《경제 위기, 연금 개악, 그리고 저항》도 수백 부가 팔려 나갔다.

수만 부가 반포된 노동자연대의 리플릿도 버려지는 것이 거의 없었고, 많은 노동자들이 꼼꼼하게 읽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세금 도둑 아니다!

공무원‍·‍교사 노동자들은 임금과 수당에서 불이익을 받으면서도 공공서비스를 위해 헌신해 온 자신들을 “세금 도둑”,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 언론에 분노했다.

“분필 가루 마시고 박봉을 견디며 30년 가까이 일해 왔는데, 우리 때문에 재정이 파탄 난다며 도둑 취급을 하니 억울해서 미칠 것 같다.”(교사 노동자)

“우리는 산불 나면 가장 먼저 동원되지만 시간 외 수당 안 준다고 집에 갈 수도 없는 처지다. 구제역이 터지면 예방 조처도 제대로 못 받고 투입된다. 이런 우리가 왜 세금 도둑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공무원노조 제천 조합원)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들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세월호 골든타임 때 아이들을 살리지 못한 정부가 연금 개악에서 골든타임 운운하고 있다.”(공무원노조 법원본부 조합원)

11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문화마당에서 열린 ‘공적 연금 개악 저지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대회’ 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미진
11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문화마당에서 열린 ‘공적 연금 개악 저지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대회’ 에서 참가자들이 "노후 보장 국가가 책임져라", "정부가 말아먹고 공무원이 책임지냐" 등이 적힌 현수막을 몸에 두르고 있다. ⓒ이미진
11월 1일 오후 서울 여의도문화마당에서 열린 ‘공적 연금 개악 저지 100만 공무원·교원 총궐기대회’ 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미진

소방 공무원도 자신들의 열악한 처지를 호소했다.

“소방 공무원의 40퍼센트가 우울증 속에서 일한다. 그런데도 정부는 겨우 월 5만 원의 위험수당만 지급할 뿐이다. 정부는 소방 공무원의 국가직화 요구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공무원연금은 이런 열악한 조건에서 그나마 마지막 남은 보루다. 우리는 노조 가입 권리조차 없지만, 연금 개악을 막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할 것이다.”

집회 참가자들은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운운하며 공무원연금 개악을 정당화하려는 정부와 새누리당을 비판했다.

“정부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위해 개혁한다고 하지만 형평성이 문제라면 국민연금을 개선해야 한다. 정부가 말하는 형평성은 모든 노동자를 못살게 만드는 하향평준화다.”

“정부는 공무원연금을 개악한 다음에 사학연금과 군인연금도 개악하고, 결국 국민연금까지 개악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우리의 노후는 소외와 가난, 불안정 때문에 고통받을 것이다.”

이날 총궐기는 공무원연금 공격에 대한 엄청난 분노를 보여줬다. ⓒ이미진

한 공무원 노동자는 “지금 조합원들은 노후 걱정이 크다. [공무원연금이 삭감되면] 사적 연금을 따로 들어서라도 노후를 대비해야 하지만, 따로 저축할 만큼 월급이 넉넉하지 않다”고 말했다.

집회 참가자들은 수십 년 후의 공무원연금 적자 예측치를 들이밀며 “재정 파탄” 운운하는 정부를 반박했다.

“우리 나라 정부가 공무원연금에 지원하는 돈이 GDP 대비 0.3퍼센트다. 다른 선진국들은 우리 나라보다 2배에서 5배까지 정부가 더 지출하고 있는데도 다 잘살고 있다.”

“새누리당은 수십 년간 수백조 원의 재정 지원을 해야 한다며 공무원연금 공격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수십 년 후에는 우리 나라의 재정이나 경제 규모도 늘어난다. 지금 정부는 GDP의 0.3퍼센트를 지원하지만 2080년에도 지원금은 0.7퍼센트 정도로밖에 늘지 않는다.”

“부자 감세로 수십조 원씩 세금을 깎아 주는 박근혜 정부가 공무원 노동자들에게는 2조 원 지원하는 것도 아깝다고 하니 이런 악질 고용주가 어디 있나?”

공무원연금 개악은 공공부문 공격의 일부

공무원연금 개악이 공적 연금 개악과 전체 공공부문 공격의 일부라는 주장도 있었다.

전교조 김정훈 위원장은 “박근혜 정권은 지금 교육재정마저 파탄 내고 있고, 새누리당 대표 김무성은 무상급식을 없애 아이들의 밥상마저 뺏자고 하더니, 이제 [연금을 개악해] 늙으면 그냥 죽으라고 한다” 하고 비판했다.

정원석 전교조 수원중등지회장은 “박근혜 정부는 공기업 민영화와 공공부문 구조조정을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공무원연금을 개악하려고 한다”며 “공무원연금을 개악하면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공무원연금을 방어하는 투쟁은 공공서비스를 지키는 투쟁이기도 하다” 하고 지적했다.

국제공공노련은 연대사를 통해 박근혜 정부의 민영화, 교사‍·‍공무원 노조권리 박탈 등 공공부문 공격의 맥락에서 공무원연금 공격을 규탄했다. 또, “양질의 연금에 대한 권리는 모든 문명화된 국가에서 노동자들의 누려야 할 기본적 권리”라고 말했다.

이날 집회에서는 2007년 국민연금 개악 당시 공무원 노동자들이 개악 저지 투쟁에 나서지 않았던 것을 “참회”하며 공적 연금 강화를 요구하는 팻말과 배너도 여러 곳에서 보였다.

이날 집회에 공무원 노동자들 자신은 많이 모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연대를 강화해야 할 과제는 남아 있다. 정부는 ‘공무원 철밥통 이기주의’ 이간질로 공무원 노동자들과 다른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연금 방어 운동은 공공서비스 방어에도 적극 나서야 하고 정부의 전반적인 공공부문 공격에도 관심을 가지고 연대를 확대하려 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투쟁이 고립되지 않고 공공서비스를 지키고자 하는 폭넓는 사람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총궐기 이후

노동자들은 역대 최대 규모의 집회를 성사시키며 첫 항의를 성공적으로 시작했지만, 불도저처럼 밀어붙이는 정부에 맞서려면 집회 이상의 행동이 필요하다고도 봤다.

여러 노동자들이 “모이기만 해서 되겠는가. 뭔가 더 행동을 보여 줘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가 연말까지 개악하려고 한다면 파업이라도 하자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평일에 이렇게 총궐기를 하면 그게 파업 아닌가” 하고 말했다.

올해 초 공무원노조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노동조합이 파업을 하면 참가하겠다는 노동자들이 60퍼센트나 됐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올해 7월 공무원노조 대의원대회에서는 “정부의 일방적인 공무원연금 개악 추진 시” 전 지부 총회를 개최해 “총파업 및 총력투쟁”을 논의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전국공무원노조 이충재 위원장은 정부의 개악 추진이 확실시되고 12만 명이나 모여 투지를 보여 준 자리에서 향후 투쟁 계획을 언급하지 않았다.

공투본은 결의문에서 “복지국가를 위한 범국민 대책기구 구성 및 ‘복지국가 아젠다’ 마련”과 “공적 연금 전반에 대한 논의기구로서 ‘사회적 협의체’ 구성 촉구” 등을 향후 방침으로 제시했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을 비롯한 참가 단체들이 깃발을 들고 무대로 향하고 있다. ⓒ이미진

박근혜 정부가 일방적으로 연금 개악을 밀어붙이려는 것을 규탄하고, 노동자들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총궐기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노후가 걸려 있는 중대한 문제를 당사자들과 논의 없이 “군사작전 하듯” 속전속결로 밀어붙이는 정부에 대해 크게 분노했다.

그러나 대화와 협상은 투쟁의 결과물일 때 우리 편에 유리할 수 있다. 특히 박근혜 정부처럼 불통이 특기인 상대일 때는 더욱 그렇다. 따라서 개악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의 의지를 단호한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 중요한 때다.

‘사회적 협의체’에 들어올 새정치민주연합이 공무원연금 삭감에 대해 분명히 반대하지 않고 어정쩡한 자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이 때문에 총궐기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새정치민주연합에 대해서는 반신반의했다. 이날 집회에서도 새정치민주연합 정청래는 “세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공무원연금을 개혁해야 한다면 … 대타협위원회를 구성해 합리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총궐기는 공무원연금 개악 시도에 대한 노동자들의 엄청난 분노와 투지를 보여 줬다. 거대한 규모의 대열을 보며 공무원 노동자들은 서로의 사기를 북돋을 수 있었다. 총궐기를 좋은 출발점으로 삼아, 앞으로 정부의 공세를 저지하기 위한 투쟁이 전진해야 한다.

총궐기를 마친 후 참가자들이 팻말을 하늘로 던지고 있다. ⓒ이미진
총궐기를 마친 후 전국공무원노조법원본부 조합원들이 박근혜와 새누리당을 규탄하는 내용이 적힌 현수막을 찢고 있다. ⓒ이미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