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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베네수엘라:
차베스의 꿈은 ‘남미의 그리스’가 되고 있는가

2014년 7월 베네수엘라 대통령 니콜라스 마두로는 통합사회주의당(PSUV) 3차 전당대회에서 최근의 심각한 경제 상황을 언급하며 이렇게 말했다. “[차베스-마두로 집권] 15년 동안 불로소득에 기생하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바꾸지 못했다.” 이어서 그는 향후 5년의 가장 중요한 과제로 “생산적인 경제 기구 건설”을 꼽았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은 여러모로 우려스럽다. 2013년 물가상승률이 56.2퍼센트나 된다. 2013년 8월부터 2014년 8월까지 1년 동안 소비자 물가는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의 통계로도 63.4퍼센트가 올랐다. 생필품 부족률은 29.4퍼센트나 되며, 특히 식용유나 설탕, 분유, 옥수수가루 등 일부 상품은 부족률이 85퍼센트에 이른다. 대중의 생활수준이 크게 악화된 것이다. 최근에는 디폴트 우려마저 제기됐다.

범죄도 여전히 문제다. 유엔마약범죄사무소의 통계치로 베네수엘라의 2012년 살인율은 10만 명 당 53.7명에 달해 온두라스에 이어 세계 2위다.

베네수엘라 우익들은 경제와 사회의 이런 불안정을 이용해 지난 2월부터 거리 폭동을 일으켰다. 한 달 동안 41명이 사망하고 수백 명이 중상을 입었다.

궤적

오늘날의 위기를 이해하려면 차베스 집권 후 베네수엘라가 걸어온 궤적을 돌아봐야 한다.

1980년대 세계 경제 불황 이래로 베네수엘라를 포함한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에서 복지가 삭감되고, 노동자들의 생활수준이 대폭 하락하고, 도시 빈민이 크게 늘었다. IMF 구조조정과 물가 인상에 맞서 1989년에 베네수엘라 수도(카라카스)에서 일어난 빈민과 미조직 노동자들의 대중 반란 ‘카라카소’는 베네수엘라를 뒤흔들었다.

시위대 1천 5백여 명이 군경에 살해당하며 ‘카라카소’는 꺾이는 듯했다. 그러나 ‘카라카소’가 촉발한 대중의 급진화는 10년 후인 1999년 우고 차베스의 집권으로 나타났다.

베네수엘라 노동자와 빈민의 투쟁은 두 차례에 걸친 우익의 반(反)차베스 쿠데타를 물리쳤다. 정권을 안정시킨 차베스는 대규모 복지 프로젝트 ‘미션’을 추진했다. 덕분에 51퍼센트에 이르던 빈곤율이 절반 가까이 줄었으며, 건강과 복지 지표가 크게 개선됐다. 어용 노총에 맞서 현장노조연맹(UNT)이 건설됐고, 이들이 주도한 2005년 메이데이 집회에서 차베스는 “21세기 사회주의”를 향해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그러나 차베스의 개혁에는 모순이 있었다. 차베스 정부가 추진한 개혁 정책인 ‘볼리바르식 혁명’의 재원이 고유가로 말미암은 막대한 석유 수출 수익에 기대고 있었다는 점이다.

베네수엘라 경제의 석유 수출 의존도는 차베스-마두로 정권 동안 점점 높아져, 1998년 당시 전체 수출의 68.7퍼센트를 차지하던 석유 수출은 최근 몇 년 사이에 96퍼센트까지 올라갔다. 만약 석유 가격이 떨어지면 개혁이 크게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2008년 세계경제 위기로 그 우려가 현실이 됐다. 유가가 떨어지면서 경제가 큰 위기에 빠진 것이다. 석유 수출 수익에 의존해 조금씩 성장하던 생필품 제조업은 사실상 가동이 중단됐다. 물가 인상 때문에 노동계급의 생활수준이 악화됐다. 하락했던 빈곤율이 다시 41퍼센트까지 올라갔다.

외채도 크게 늘었다. 2008~13년의 5년 동안 외채 규모는 사실상 갑절로 늘었다. 이 중 중국에 진 외채만도 5백억 달러에 이른다. 같은 기간 외환보유액은 절반 가까이 줄었다. 외채를 현물(석유)로 상환하면서 석유 수출 수익이 더 줄어드는 악순환에 빠지기도 했다.

한계

차베스의 “21세기 사회주의”는 모호함과 일관성 결여 문제도 있었다. 차베스의 국유화는 무상 몰수가 아니라 폐업 위기에 처한 공장을 제값을 주고 국가가 사들이는 식이었다. 국유지는 소농들에게 분배됐지만, 여전히 대지주들은 광대한 사유지를 유지할 수 있었다.

베네수엘라에서 임금노동과 착취라는 자본주의 경제 운영 방식은 거의 도전받지 않았다. 흔히 과대 포장되는 노동자 협동조합과 노동자 통제는 석유 산업에서는 금지됐고, 끝내 영세 기업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차베스는 빈민에게는 호의적이었지만 노동자들에게는 다소 적대적이었다. 노동자들은 임금 삭감 압박에 계속 시달렸고, 파업은 ‘집단 이기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다. 때로 정부는 UNT의 임금 협상 제의도 거부했다.

그 대신 차베스-마두로 정부가 개혁의 정치적 동력으로 삼고자 했던 PSUV와 지역사회 단체들, 베네수엘라 국가 기구는 적절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단체들에는 급진적 운동가부터 기업주와 부패한 국가 관료까지 다양한 인물이 뒤섞여 있었다. 이 단체들의 활동은 대부분 정부의 지시를 하달하고 선거운동을 조직하는 것이었다. 최근 마두로가 발표한 ‘코뮌’ 계획도 재원이 부족해 사실상 위기에 빠진 지역 사회 단체들을 재건하는 수준에 그치고 있다.

반면 차베스 생전에도 종종 나타난 부패는 크게 늘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은 2012년 외환보유액 유출액의 절반 가까이가 유령회사로 흘러 들어갔다고 밝히기도 했다. 마두로는 부패 척결을 위해 개각을 단행했지만, 사실상 기존 인물들을 재편하는 수준에 그쳐 효과가 적을 것이라는 논평이 다수다.

베네수엘라 자본주의가 처한 위기는 ‘코뮌’이나 개각으로 우회할 수 없다. “불로소득에 기생하는 체제”를 없애기 위해서는 체제 전반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중대한 도전이 필요하다. 이미 불안정한 석유 수출 수익을 재분배하는 것만으로는 “21세기 사회주의”를 구현할 수 없다.

세계 경제의 불안정성 때문에 베네수엘라에 닥친 경제적 불안정은 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것은 심각한 정치적 불안을 야기할 수 있다. 그럴 때 베네수엘라 좌파는 중대한 시험대에 오르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