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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임원 직선제 - 허영구 후보 조:
민주노총 혁신 과제의 문제점

기호3번 허영구 후보 조는 좌파노동자회가 낸 팀이다. 좌파노동자회는 이번 임원 직선제에 대한 좌파 공동 대응 논의에 참가했다가 중도 하차했다. 독자 후보를 내서 좌파노동자회 고유의 주장을 선전하는 데 더 큰 의의를 뒀기 때문인 듯하다.

그 고유의 주장은 “5대 혁신과제”로, 목표·주체·투쟁·조직·노동자정치라는 5대 영역에서 민주노총을 혁신하자는 것이다. 좌파노동자회가 이 제안의 핵심이라고 스스로 밝히는 과제는 불안정비정규 노동자 조직화를 위한 “조직체계와 재정체계의 개편”이다.

또 다른 좌파 후보인 기호2번 한상균 후보 조가 투쟁을 강조하는 반면, 허영구 후보 조가 조직 혁신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 꽤 선명한 대조를 이룬다. “투쟁해야 혁신도 있다” vs “[혁신 없이 ─ 인용자] 투쟁을 강조한다고 투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것은 그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이 아니다. 좌파노동자회가 조직 혁신을 강조하는 것은 그 단체의 더 깊은 문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이런 점에서, 선거운동이 시작된 뒤 허영구 후보가 한상균 후보 측의 비판을 의식한 듯이 “투쟁과 혁신은 함께 해야 한다”고 말을 바꾼 것은 아쉽다. 물타기보다는 문제의식을 선명히 드러내는 게 독자 출마의 목적을 성취하는 데도 도움이 될 텐데 말이다.) 이하에서 그 문제의식을 살펴보자.

혁신의 주체는 누구인가?

좌파노동자회는 민주노총이 “자본에 포섭”됐고, “어용의 길로 돌아섰[고]”, “수명을 다해가고” 있다고 본다. 그들이 겨누는 비판의 대상은 상층의 개혁주의적 지도자들만이 아니다. 민주노총의 주요 구성원인 정규직 노동자도 그들의 표적이다.

허영구 씨에 따르면, 정규직 노동자들은 “이중구조화된 노동계급의 상층”에 위치하고 있고, “자본이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통해 착취한 잉여분의 일부를 … 떡고물”로 받는다. 그래서 옆의 노동자가 죽고 다쳐도 “자신의 임금과 일자리만 지키면 그만”이다. 민주노총은 이런 정규직 노동자들의 우산 구실을 한다.

민주노총과 그 주요 구성원을 이렇게 보면 그들에게 투쟁을 기대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좌파노동자회는 비정규불안정 노동자를 대거 조직해 그들이 민주노총의 중심이 돼야 비로소 신자유주의에 맞서 투쟁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고, 조직 혁신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처럼 혁신 우선론에는 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불신이 근저에 깔려 있다.

그러므로 좌파노동자회가 주장하는 “민주노총 혁신”에서 민주노총 조합원은 주인공이 아니다. 혁신의 주체는 조직 개편을 단행하는 집행부, 권한이 강화된 지역본부, 집행부가 고용한 1천 명의 전략조직가가 될 것이다. 조합원들에게 요구되는 것은 비정규불안정 노동자 조직화에 들어가는 돈을 대는 것뿐이다.

그러나 지난 10년간의 비정규직 투쟁 경험은 이와는 다른 것을 알려 준다. 비정규직 노동자 조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규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과 그 투쟁을 방어하는 정규직의 실질적인 연대라는 것이다.

진정한 좌파라면 정규직 노동자들이 같은 직장과 산업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연대하도록 설득하고 조직해야 한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노동자들이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분할”되고 “이중구조화”돼 서로 연대할 수 없다며 정규직 노동자들을 향해 선을 긋는 것은 사용자 측의 이간질을 통한 각개격파에 말려들어 노동자 투쟁을 약화시킬 뿐이다.

신자유주의와 대안 전략

좌파노동자회는 노동운동과 민주노총 위기의 원인을 신자유주의에서 찾는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불안정노동의 확산이 보편적 현상이고, 노동조합 운동이 필연적으로 퇴조한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공격으로 노동자들의 조건이 열악해지고 노동조합 활동에 제약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거의 모든 노동자들이 언제든 폐기 처분될 수 있는 일회용처럼 된다고 보는 것은 과장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조합이 수세적이고 방어적인 위치로 내몰린다는 것도 불가피한 일은 아니다. 가령 1998년 정리해고와 파견제가 도입되면서 고용 불안이 증대한 것은 민주노총 지도자들이 경제 위기 속에서 자본과 국가를 도와야 한다는 압력에 부응했기 때문이지 불가항력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 뒤 여러 차례 반복된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파업 철회와 투쟁 회피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허영구 후보 조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개혁주의라는 문제에 주목하기보다 노동조합 조직 구조에서 해결책을 찾으려 한다. 그래서 산별노조는 산업 자본주의에나 걸맞은 노동자 조직 전략이라며 민주노총의 골간을 지역본부로 개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는 별 근거가 없다. 임시적이고 불안정한 노동자는 자본주의에서 언제나 있었고, 기존 노동조합으로 조직돼 왔다. 오히려 단위노조와 산별연맹 지도부가 비정규직 투쟁과 조직화에 적극 나서지 않은 것이 문제이지, 조직 형식 자체가 문제인 것은 아니다.

허영구 후보 조의 주장은 노동조합 관료주의 문제를 애써 회피하면서 조직 구조 개편이라는 엉뚱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으로, 진정한 본질적인 문제를 흐리는 변명일 수 있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노동조합 운동이 필연적으로 퇴조한다는 좌파노동자회의 견해는 더 근본적으로 고용노동자 중심의 전략에 대한 회의로도 연결된다.

물론 이 회의는 허영구 후보 조의 선거 공약 전반에서는 분명하게 감지되지 않는다. 그러나 노동시간단축과 기본소득 도입 공약의 제출 배경을 살펴보면 이 회의를 분명히 감지할 수 있다. 즉, 허영구 후보 조는 신자유주의 시대를 “고용축소” 시대로 보고(이는 한국의 현실과 맞지 않는 주장이다), 무망한 고용보장 또는 정규직화 요구가 아니라 고용 여부와 무관하게 생계소득이 보장되는 기본소득을 요구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허영구 후보 조가 투쟁 공약으로 ‘점거하라’ 운동을 본딴 계획을 내놓은 것도 이런 회의와 무관하지 않다. 국제적으로 벌어진 광장 점거 운동은 그 의의에도 불구하고 (오클랜드를 제외하면) 조직 노동자의 결정적 힘을 가동시키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다.

여기서도 좌파노동자회는 고용 노동자들이 이윤체제를 가장 효과적으로 공략할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보지 못함으로써, 효과적 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