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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북한 바로 알기”

신은미 씨는 2011년부터 수차례 북한을 여행했다. 이 경험을 글로 써서 〈오마이뉴스〉에 연재했고, 지난해 책도 출간했다.

신은미 씨가 전하는 메시지는 이렇다. “반공 세뇌 교육”을 받은 탓에, 북한 사람들은 모두 “도깨비 악당”인 줄 알고 살았다. 그런데 북한에 가서 그곳 사람들의 순박한 모습을 발견해, ‘여기에도 사람이 살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북한은 “아름다운 사람들이 사는 가난한 나라”다.

이번 토크콘서트의 주최 측은 신은미 씨가 북한을 다녀 온 ‘경험’이 있음을 내세웠다. 즉, “백문이 불여일견”이므로 북한을 직접 접해 본 경험을 통해 북한 사회의 실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 당국의 안내를 받는 여행만으로 북한을 얘기하는 것은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접근은 조야한 경험주의에 불과하다. 무엇보다 어떤 관점으로 접근하느냐에 따라 같은 경험에서 전혀 다른 점을 볼 수 있다.

북한 정권과 주민은 하나?

신은미 씨는 기행문에서 북한 여행 경험으로 그 사회에 대한 시각이 변했음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그 새로운 시각은 냉전적 시각을 거꾸로 세운 것일 뿐이다.

“간혹 사람들이 ‘우리는 북한 정권과 북한동포를 구별해야 한다. 우리가 싫어하는 것은 북한 정권이지 북한동포들이 아니다’ 하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한다. 그러나 내가 관찰한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은 별개가 아니었다. 그들은 하나였다.”(“‘북한 시민혁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유”, 〈오마이뉴스〉)

북한에 명백히 존재하는 계급 지배와 차별을 보지 않는 관점이다.

물론, 신은미 씨의 글에도 북한 내의 빈부격차를 느낄 수 있는 대목들이 나온다. 예컨대, 보통 사람들이 가기엔 너무 비싼 평양의 맥줏집, 목탄차를 타고 다니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벤츠 차를 타고 묘향산에 온 젊은이들 등. 신은미 씨 자신도 이런 모습을 보고 의문을 품는다. 그러나 거기서 멈춘다.

진정한 사회주의와 동떨어진 북한 북한 정권과 주민은 하나로 뭉쳐 있다는 생각은 북한의 실상과 거리가 멀다. ⓒ사진 출처 Kernbeisser (플리커)

미국의 대북 압박을 비판해 온 진보 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북한의 보통 사람들과 소수 특권층의 차이를 지적한 바 있다. 보통 사람들은 굶주리고 있을 때, 김정일의 아들은 수입 명품을 쓰면서 “스웨덴산 훈제 연어, 거위 간 요리, 일본의 스시와 사시미, 멜론을 곁들인 파르마 햄, 헝가리 소시지 등을 즐겼다.” 이를 두고 커밍스는 “주체의 땅에 자리잡은 포스트모던하고 코스모폴리탄한 가정”이라며 김정일 일가를 비꼬았다.(《김정일 코드》)

신은미 씨는 한 인터뷰에서 “[북한을 여행하면서] 인권 상황을 짐작할 만한 일을 목격하거나 들어본 적 없다”며 북한 인권에 대해 말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물론 인권 문제를 빌미 삼은 미국의 대북 압박을 분명하게 반대해야 한다. 친미 독재 국가들에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 이중 잣대이자 제국주의적 패권을 유지하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적 개입으로 결코 북한 인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그렇다고 북한 인권 문제가 없다거나 모르겠다는 식으로 대응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

이미 북한 정부가 인권 문제를 여러 차례 시인했다. 일본인 납치 문제도 인정했고, 1995년에는 국제앰네스티에 반국가사범 약 2백40명이 ‘형산교화소‘에 수용돼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올해 9월 북한 최고재판소의 원로참사 박수종은 북한에 공개처형 제도가 있다고 인정했다.

따라서 이런 문제를 두고 ‘북한 인권을 중시하면 먼저 북한에 식량과 의료 지원부터 해야 한다’며 얼버무려선 안 된다. 북한에 대한 식량·의료 지원은 당연히 필요하지만, 정치적·시민적 권리(예컨대, 독립 노조를 결성하고 파업할 권리 등)도 북한 노동자들이 먹고사는 문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것이다.

국가자본주의

신은미·황선의 ‘토크콘서트’는 ‘북한 바로 알기’를 강조하며 마련된 행사였다. 물론 자본주의가 심각한 위기에 처해 그 근본적 대안을 제시해야 하는 상황에서, 북한을 바로 아는 것은 중요하다. 그러나 이 ‘토크콘서트’가 내세우는 ‘경험주의’로는 북한을 바로 알기 어렵다.

북한 체제는 진정한 사회주의와 아무 관계 없고 오히려 남한처럼 착취적이고 억압적인 체제이다. 산업을 국가가 소유·통제하지만, 국가를 통제하는 건 노동자들이 아니라 한줌의 관료들이다.

북한 노동자 계급의 일부는 굶주림과 궁핍을 겪고 있다. 그러나 북한 국가는 자원의 상당 부분을 군비에 쏟고 핵무기를 개발한다. 마르크스가 자본주의를 묘사하며 말했던 ‘한편에 자본의 축적, 다른 한편에 빈곤의 축적’이 북한 사회에도 꼭 맞아떨어진다. 국제 경쟁, 특히 군사 경쟁의 압박을 받아 북한 체제도 여느 자본주의와 빼닮게 된 것이다. 이런 체제에 대한 가장 적합한 명칭은 국가자본주의이다.

신은미 씨의 생각과 달리, 북한 사회에는 남북 분단보다 더 선명한 계급 분단이 놓여 있다. 북한의 인권 문제도 자본주의 체제의 속성과 떼려야 뗄 수 없다.

그러므로 북한 노동자 계급이 관료 지배 계급에 맞서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위한 투쟁에 나서기를 바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