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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네덜란드 모델의 실상:
사회적 대타협은 노동자 간 격차도 줄이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추진하면서 네덜란드·독일 등을 노사 타협의 모범 사례로 꼽고 있다. 노사 타협으로 정규직의 양보를 이끌어내 고용이 대폭 증가하는 “고용 기적”을 이뤘다는 것이다.

경제부총리 최경환은 “[대표적 노동 개혁인] ‘하르츠 개혁’을 한 독일을 비롯해 네덜란드·아일랜드·미국·영국 등 노동의 유연성이 있는 나라들은 다 잘나가고 … 일본은 노동시장 개혁을 잘 못해서 비정규직이 계속 늘어난다”고 했다.

정규직뿐 아니라 기간제·파견노동 확대 등으로 비정규직까지 공격하는 노동시장 ‘개혁’ 방안을 일방적으로 발표하고, 올해 3월까지 노사정위에서 합의해야 한다며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부가 ‘대타협’ 운운하는 것 자체가 가증스러운 일이다. 박근혜 정부는 노사정위를 들러리로만 이용할 것이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네덜란드의 ‘바세나르 협약’이나 독일의 ‘하르츠 개혁’이 노동자들에게 성공 사례이기는커녕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하고 동시에 저임금과 불안정만 늘린 신자유주의적 개악일 뿐이라는 점이다.

박근혜 정부는 독일이 2003년 하르츠 개혁으로 5년 만에 고용률(취업 인구 비율, 15세 이상 생산가능인구 중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70퍼센트 이상으로 높아지는 성과를 냈다고 홍보한다. 독일 고용률은 2003년 64.6퍼센트에서 2008년 70.2퍼센트로 급증했다.

그러나 독일에서 2003~08년 동안 증가한 일자리 중 대다수가 저임금 시간제 일자리였다. 이 때문에 독일은 시간제 노동자 비율이 2000년 16.6퍼센트에서 2012년 22.1퍼센트로 증가했다.

저임금 노동의 확대로 독일 노동자 7명 중 1명꼴인 5백30만 명이 시간당 8.5유로(1만 1천 원)도 받지 못해 왔다.(독일은 올해부터 최저임금제를 시행하는데, 시급 8.5유로의 최저임금으로 주당 40시간을 일해 봐야 빈곤선을 겨우 넘는다.) 그래서 1995~2006년 사이 독일 노동자 하위 25퍼센트의 시간당 실질 임금은 13.7퍼센트 하락했고 하위 25~50퍼센트의 실질임금은 3.2퍼센트 하락했다.

하르츠 개혁이 얼마나 악랄했던지 프랑스 등 주변 유럽 국가들은 독일이 “임금 덤핑”으로 수출을 늘렸다고 비난할 정도다.

한편, 네덜란드의 1982년 ‘바세나르 협약’은 노사정 대타협의 대표적인 모델로 언급된다.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 동결을 받아들이는 대신 기업주들은 주당 노동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늘렸다는 것이다.

“임금 덤핑”

1986년까지 주당 노동시간은 40시간에서 38시간으로 감축됐지만, 네덜란드 기업주들은 더 이상의 양보를 거부하고 노동시간을 더 줄이는 것에 극렬하게 반대했다.

오히려 네덜란드 기업주들은 노동유연성을 높여야 한다며 시간제 일자리를 늘리기 시작했다. 특히 1990년대 경기가 살아나자 시간제 일자리를 대거 늘렸다. 1990~95년 동안 늘어난 일자리 60만 개 중 50만 개가 시간제였다. 즉, 네덜란드에서 시간제 노동의 폭증은 바세나르 협약이 의도했던 것도 아니었다.

그 결과 네덜란드는 시간제 노동 비중(37.8퍼센트)이 세계에서 가장 높다. 여성 노동자 중 시간제는 60퍼센트가 넘는다.

네덜란드 모델 지지자들은 네덜란드 시간제 일자리가 양질이어서 여성들이 ‘자발적으로’ 시간제를 선택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여성들이 애초에 시간제 노동을 선호했던 것도 아니었다.

당시 네덜란드 여성들이 시간제를 받아들인 것은 공공 육아 시설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여전히 스웨덴 등의 북유럽 국가들보다 공공 보육 시설이 미흡한 것으로 유명하다. 스웨덴 여성 노동자 중 시간제 비율이 20퍼센트에 그치는 것을 봐도 네덜란드 여성들에게 시간제 일자리는 ‘강요된’ 선택이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게다가 네덜란드나 독일의 사례는 정규직의 양보가 노동자 사이의 격차를 줄이는 데도 효과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박근혜 정부는 정규직의 ‘과보호’를 줄이면 비정규직의 처우가 개선되는 것처럼 주장하지만 말이다.

박근혜 정부의 홍보와 달리 독일·네덜란드에서는 저임금 노동자가 급격히 증가했다.

그림에서 보듯 2009년 독일과 네덜란드의 저임금 노동(중간임금의 3분의 2 이하) 비율은 각각 20.2퍼센트와 17.6퍼센트로 OECD 국가 중 한국(25.7퍼센트), 미국(24.8퍼센트), 영국(20.6퍼센트) 등과 함께 높은 축에 속했다. 이 수치는 모두 2000년에 비해 크게 높아진 것이다.

한편, 네덜란드와 독일의 사례는 계급 협력 정치의 문제점도 고스란히 보여 준다. 네덜란드와 독일의 노동조합 지도자들은 정부와 기업주들의 과도함을 비판했지만, 근본에서 맞서지 않았다. 이들은 “일자리 안정” 또는 여성·청년의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서라며 정규직의 양보를 받아들이고 기업주나 정부와 협력하는 데 매달렸다.

그러나 기업주들은 정규직의 양보에 만족하지 않고 저임금 비정규 일자리를 늘리는 데 매진해 왔다. 그들은 노동자들이 구조조정을 순순히 받아들이도록 해야 할 때만 협상을 하고자 한다.

양질의 일자리는 노사 협조주의적인 합의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장의 투쟁을 발전시켜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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