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주의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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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원래 2005년, 당시 영국 SWP 당원 이언 버철이 쓴 것을 조금 줄이고, 우리가 잘 모르는 논쟁 상대자 이름(앤드류 코트) 대신에 프랑스 공화주의 전통을 지지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프랑스 공화주의자라고 번안했다. [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편집팀이 첨가한 것이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계몽주의 이해하기
포스트모더니즘의 공격으로부터 계몽주의 전통을 옹호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계몽주의는 반드시 역사적인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만 한다. 볼테르와 그의 동료들이 살아 있던 시절, 교회는 여러 면에서 주적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어떤 면에서는 계몽주의를 계승했지만, 계몽주의에 대한 변증법적 비판을 담고 있다. 마르크스는 혁명가의 주요 과제가 종교를 공격하는 것이라는 관념론을 거부했다. “대중의 아편”이라는 구절로 유명한 글에서 마르크스가 주장한 것은 종교는 사회 상황의 산물이므로, 오직 종교를 만든 사회 상황이 사라져야만 종교도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면 종교가 바로 사라질까? 시간이 걸릴 것이다.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의 잘못된 세속주의 정의
프랑스의 세속주의 전통은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모호하다. 1882년 프랑스에서 세속주의에 기반해 보편적 초등교육이 처음 도입됐다.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로, 이것은 부분적으로 경제가 근대화하면서 글을 읽고 쓸 줄 아는 노동력인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이유도 있었다. 프랑스는 크고, 대부분이 농촌인 나라였다. 대다수 농민들은 자신들이 프랑스 시민이라는 생각이 모호했다. 반면 모든 마을에는 사제가 있었다. 프랑스 공화국
전략은 성공했다.
프랑스 정계를 주의깊게 살펴본 사람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사회적 폐해에 맞서 싸울 태세가 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기꺼이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경멸적인 농담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세속주의를 변명거리로 삼았다. 프랑스 급진당의 역사 전체가 이를 증명한다.
“종교적 교리로부터 공공영역의 해방”이라는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의 세속주의 정의는 너무 모호해 아무짝에도 쓸모 없다.
세속주의가 교회와 국가의 완전한 분리를 뜻하는 것이라면 나도 동의한다. 영국성공회는 국교
그러나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국가 기관에서뿐 아니라 “공공영역”에서도 종교를 금지하고 싶어 한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신앙을 갖고 있고, 그들의 정치적 실천에 신앙이 불가피하게 영향을 끼친다. 무신론자들은 이를 개탄하지만, 무신론자이자 마르크스주의자인 우리는 개탄하기보다는 이에 대한 사회학적인 설명을 제시할 것이다. 하지만 종교의 이런 영향력 자체를 우리가 막지는 못한다.
“종교에 몰입하는 자들”이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나는 핵무기를 가진 펜타곤의 기독교 광신도들이 무슬림 광신도들보다 훨씬 더 걱정스럽다. 하지만 똑같이 종교에 몰입해도 그들과 다른 경우도 많다. 마틴 루서 킹과 말콤X도 종교적인 믿음에서 동기를 부여받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이 “공공영역”에서 배제돼야 하는 것일까? 나는 브루스 켄트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전통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은
“변하지 않는 원칙은 러시아 민족주의와 무슬림 민족주의를 다르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굽힘 없이 투쟁하고 단호히 반대해야 한다. 행정·통치 분야에서 드러나는 러시아 민족주의에 대해서는 특히 그래야 한다.
그렇다면 히잡
게다가 국가가 히잡을 금지하면 프랑스 공화주의자들이 원하는 것과 정반대 결과가 나올 것은 자명하다. 히잡이 금지되면 될수록 히잡은 저항의 상징이 될 것이고, 더 많은 청년들이 원리주의에 끌리게 될 것이다. 사회주의 단체가 히잡 착용하는 여성들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여성들과 동료들을 사회주의에 등을 돌리게 하는 짓이다.
1백년 남짓 전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드레퓌스를 지지하기를 거부했다. 신디컬리스트인 에밀 뿌제의 표현을 빌리자면, 드레퓌스가 “돈 많은 장교 중 하나인 알자스 출신 유대인 놈”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계급 정치”가 조야하고 기계적으로 적용된 결과다. 많은 유대인들이 사회주의에 완전히 환멸을 느꼈다. 그 결과는 시온주의 운동의 성장이었고, 이 문제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문제가 되고 있다.
히잡이 억압적인 것이 설사 맞다손 치더라도 국가의 히잡 착용 금지를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여전히 생생한 반전 시위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두 명의 젊은 아시아 여성이 생각난다. 그들은 나란히 행진하며, 확성기를 돌려 쓰며 반제국주의 구호를 외쳤다. 한 명은 히잡을 썼고, 다른 한 명은 쓰지 않았다. 어쩌면 사석에선 그들 사이에 격렬한 논쟁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만약 그들이 내 의견을 물어 봤다면, 나는 아마도 히잡을 쓰지 않은 여성의 편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억압받고 있는지 아닌지, 억압받는 것이라면 어떻게 스스로 해방될 것인지는 오로지 그들 자신이 결정해야 한다.
종교에 대한 마르크스주의 전통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독자는 다음 글도 함께 읽어 보시오.
최일붕, ‘박창신 신부와 정의구현사제단을 옹호하며 ─ 마르크스주의와 종교’, 〈레프트21〉 117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