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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노동자들, 긴축과 내핍을 거부하다

1월 25일 총선에서 그리스 노동자 등 서민들은 긴축과 내핍에 대한 거부 의사를 분명히 했다. 좌파가 집권하면 그리스 경제가 거덜나서 마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처럼 될 것이라는 지배계급과 주류 언론의 협박이 이번에는 거의 통하지 않았다. 좌파 정당 시리자가 36퍼센트를 득표하며 압승을 거뒀다. 시리자는 전체 3백 석 중 1백49석을 차지했다.

직전 연립정부를 이끌었던 중도우파 신민당은 27.8퍼센트를 득표했다. 2012년에 견줘 1.85퍼센트포인트(약 10만 7천 표) 줄었다. 중도좌파 사회당은 겨우 4.68퍼센트밖에 얻지 못했다. 이로써 1974년 군부독재 타도 30년 만에 처음으로 신민당과 사회당이 아닌 정당이 집권하게 됐다.

시리자의 승리 소식에 고무된 한 해직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리스에 희망이 찾아왔습니다. 몇 년 동안 우리는 극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랐습니다.”

시리자의 승리는 그리스인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경제 위기 고통 전가와 긴축에 맞서 싸우는 사람들 모두에게 큰 힘을 주는 소식이다.

시리자는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나?

시리자의 승리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 경제 위기와 긴축 정책으로 대중의 삶이 피폐해졌다. 위기가 시작된 이래 1백20만 명이 일자리를 잃었고(그리스 인구가 1천1백만 명이 좀 못 되는 규모임을 감안하라), 월평균 임금은 20퍼센트가량 줄었다.

트로이카(유럽연합, 유럽중앙은행, IMF)는 ‘구제’ 금융 2천4백억 유로(약 2백93조 원)를 제공하면서 혹독한 긴축 정책을 조건으로 붙였다. 그리스 정부는 최저임금을 깎고 연금을 줄이고, 공공부문 인력을 감축했다. 2008~13년 기초 생필품도 없는 사람들의 수가 두 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구제’ 금융의 90퍼센트는 곧바로 그리스 채권을 보유한 유럽 은행들과 투기적 금융기관들로 갔다. 그리스 서민층은 손에 쥐어 보지도 못한 “빚”을 갚느라고 허리가 휘었다. 시리자 대표이자 그리스의 새 총리가 된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긴축 정책을 “재정적 물고문”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런 절망적 상황은 극우·인종차별 운동의 성장을 낳을 수도 있다. 그래서 시리자의 승리는 지난 몇 년 동안 강력하게 일어난 인종차별 반대 운동과 노동자 계급 투쟁을 빼놓고 얘기할 수 없다. 이것이 시리자 승리의 둘째 요인이다.

시리자를 등장케 한 대중운동 분출의 시작은 2008년 12월 경찰의 청소년 살해에 항의해 일어난 운동이었다. 그 뒤 광장 점거 운동과 학생운동 등이 일어났다. 특히 총파업이 32차례나 일어났다. 그보다 작은 규모의 파업은 셀 수도 없다. 그 결과 정부가 4년 새 네 번이나 붕괴됐다. 인종차별과 파시즘에 반대해 일어난 운동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러한 대중투쟁에 의한 급진화 속에서 2009년 4.6퍼센트였던 시리자의 지지율은 2012년 6월 26.89퍼센트로 치솟았다.

시리자 정부의 앞날은?

선거 결과 발표 직후 치프라스는 “긴축의 악순환”을 끝낼 것이라고 연설했다. 시리자의 승리로 양해각서는 “무효”가 됐다고도 했다. 양해각서는 그리스 정부가 IMF로부터 구제 금융을 받으며 긴축 정책을 추진하기로 합의한 문서를 말한다.

그런데 사실 시리자는 긴축과 양해각서의 완전 폐기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치프라스는 1월 28일 열린 첫 내각 회의에서 트로이카와 채무 조정 재협상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트로이카는 어쩌면 이 요구를 묵살해 버리기보다는, 2월 말로 예정된 긴축 정책 제출 시한을 연장해 주며 재협상에 나서는 제스처를 취할 수도 있다. 일각에서는 채무 상환 만기 연장이나 금리 할인 등의 방식으로 그리스 정부의 부담을 덜어 줄 수 있다는 예측도 나온다. 그 대가로 트로이카는 “책임” 있고 “분별력” 있는 정부의 모습을 요구할 것이다. 즉, 시리자 정부 스스로 긴축안을 제출하도록 순치시키는 것이다.

새 정부의 첫 내각 회의 이후 그리스 증시가 폭락하고 국채 금리가 올랐다.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 사태) 조짐이 보인다는 보도도 있다. 자본주의 체제 내 개혁에 한정하는 시리자에 이런 불안한 경제 전망은 우경화 압박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미 시리자는 불길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치프라스는 선거 결과 발표 뒤에 한 연설에서 “좌파”라는 말을 한 마디도 안 했고, 심지어 “시리자”라는 말도 안 했다. 그보다는 “국가”라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했다. 시리자의 주요 의원 한 명은 “국가의 연속성을 유지”하겠다며 군 장성들을 달랬다. 시리자에게는 국방비 감축 계획이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탈퇴 계획도 없다.

게다가 인종차별적 우파 민중주의 정당인 그리스독립당과 연정을 맺기로 했다.

그리스독립당은 어떤 정당인가?

시리자는, 긴축에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그리스독립당과 연정을 맺었다. 지지자들을 당혹스럽게 만든 무원칙한 합의였다. 시리자와 그리스독립당은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훨씬 더 많다. 이는 시리자의 한 의원도 시인한 바이다. “사회적 쟁점, 외교 정책, 시민권 등에서 우리는 너무나 다르다.”

그리스독립당은 2012년 신민당에서 오른쪽으로 분열해 나온 파노스 카메노스가 만든 정당이다. 그리스독립당은 당명에서 알 수 있듯이, 민족주의·민중주의 정당이다. 이민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다문화주의에 반대한다. 당대표 카메노스는 동성애 혐오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좋고, 인종차별적 언사를 핏대 세워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시리자가 그리스독립당과 연정을 하는 이유가 단지 의석이 과반에 못 미쳐서만은 아니다. 시리자 지도부는 전부터 긴축 반대론자라면 우파와도 협력하려 해 왔다. “국가”를 단결시킬 수 있을 것이라면서 말이다. 이는 정부를 “국익(국가 이익)”에 근거해 운영해야 한다는 시리자의 핵심 사상을 반영한다. 현실에 엄연히 존재하는 계급 간 투쟁을 호도하는 태도다.

그리스독립당과의 연립 같은 무원칙한 행보는 곧 시리자의 발목을 붙잡을 것이다.

그리스 노동자 운동은 시리자 정부와 독립적으로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전진시켜야 한다. 1월 25일 시리자 승리에 환호하는 지지자들 ⓒ사진 출처 〈소셜리스트 워커〉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유지·확대해야 한다

시리자 정부는 왼쪽으로부터, 또 아래로부터 압력을 받을 것이다. 시리자 후보로 출마해 당선한 한 그리스 국영방송(ERT)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선거에서 이겼다고 투쟁이 끝난 것은 아닙니다. 현장에서뿐 아니라 국회의사당에서도 싸워야 한다는 것을 뜻할 뿐입니다. … 사람들은 시리자에 자유재량권을 주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은 시리자가 무엇을 하는지 매일 옆에서 지켜볼 것입니다.”

ERT는 2013년 6월 폐쇄된 이후 노동자들이 일부 시설을 점거하고 자체 방송을 제작 송출하고 있다. 또 다른 ERT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드디어 좌파 정부가 들어서 참 기쁩니다. 그런데 새 정부가 ERT 운영을 재개하고 우리를 복직시키지 않는다면 좌파 정부라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줄타기

해고에 맞서 거의 2년 동안 투쟁하고 있는 재무부 청소 노동자는 이렇게 말했다. “치프라스는 우리를 복직시켜야 합니다. 그러지 않는다면 우리는 시리자 당사로 쳐들어갈 것입니다.”

시리자 정부는 오른쪽으로부터 지배계급과 연정 파트너 그리스독립당의 압박, 아래로부터 노동자·민중의 압박을 받으며 줄타기를 하고 오락가락할 공산이 크다.

그리스와 유럽의 지배계급들은 새 정부를 길들이려 애쓸 뿐 아니라, 여차하면 폭력적으로 대응할 수도 있다. 경제적 권력을 가진 자본가들의 사보타주와 자본 해외 유출, 또는 군부 쿠데타가 일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전자는 1981~83년 프랑스의 미테랑 사회당 정부가, 후자는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인민연합 정부가 처한 운명이었다. 그리스 자체로도 1967~74년 군부독재를 경험한 바 있다.)

그리스 노동자 운동이 시리자 정부에 기댄다면, 쉽사리 사기 저하돼 결정적인 순간 이런 공격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것이다. 시리자를 권좌로 올려 놓은 힘, 즉 총파업, 거리 시위, 점거 운동 등 아래로부터의 대중 투쟁이 필수적이다. 또, 이런 투쟁을 일으키고 더 전진시키는 데서 시리자로부터 독립적인 혁명적 좌파의 구실이 중요하다.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투쟁은 여전히 중요하다

나치 정당인 황금새벽당은 경제 위기가 낳은 절망 속에서 이민자들을 속죄양 삼으며 성장했다. 2012년 총선에서 성공을 거둔 뒤에는 지역과 거리에서 폭력 활동을 부쩍 늘렸다. 그 와중에 2013년 9월 유명 힙합 가수가 파시스트에 살해됐고, 즉각 대규모 항의 운동이 터져나왔다.

전체 인구가 1천1백만 명 조금 못 되는 그리스에서 아테네(인구 66만 5천 명)에서만 5만 명이 참가한 대규모 반파시즘 시위가 터져나왔다. 마침 예정돼 있던 공공부문 총파업과 반파시즘 운동이 결합되는 것을 걱정한 당시 신민당 정부는 황금새벽당의 중요 인물들을 범죄단체 결성 혐의로 공격할 수밖에 없었다. 반파시즘 운동이 이렇게 크게 성장하는 데는 그리스 사회주의노동자당 SEK가 가장 큰 구실을 했다.

2013년 1월 19일 아테네에서 열린 반파시즘 시위. ⓒ사진 출처 Athensantifa19jan

황금새벽당

황금새벽당의 지지율이 오르지 않고 소폭 떨어진 것은(2012년 42만 6천 표에서 2015년 38만 8천 표로 약 4만 표 감소) 이런 강력한 운동 덕분이었다.

그러나 당 대표 등 지도적 인물들이 수감돼 있는 등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도 선방한 것이다.

파시즘은 절망적 위기 상황에서는 언제든 부활할 수 있다.

따라서 반파시즘 운동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3월 21일로 예정된 ‘인종차별·파시즘 반대 국제 공동행동의 날’이 성공적으로 치러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의 성장

혁명적 반자본주의 좌파 연합 안타르시아는 0.64퍼센트(3만 9천여 표)를 득표해 2012년 6월의 두 배가량으로 성장했다.

워낙 수치가 작아 안타르시아의 존재감은 사실 없는 것 아니냐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안타르시아가 공공연히 혁명을 주장한다는 점, 투표가 신민당과 시리자로 양극화됐다는 점 등을 고려해야 한다. 또, 안타르시아의 진정한 영향력은 선거 득표로만 측정할 수 없다.

안타르시아는 투쟁적 노동자 운동에 만만찮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노조 선거 면에서는 약 10퍼센트 정도의 영향력이 있고, 투쟁 면에서는 더 크다. 안타르시아에 속해 있는 사회주의노동자당 SEK의 지도적 활동가인 파노스 가르가나스는 “전술적으로 시리자에 투표하지만 시리자보다 왼쪽에 있는 노동자들이 10만 명가량 된다”고 추산한다.

앞으로 더 첨예해질 그리스 정세에서 안타르시아와 SEK 같은 혁명적 좌파의 구실은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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