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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전선은 무엇이고 왜 필요한가

지난호에서 우리는 초좌파주의를 살펴 봤다. 초좌파주의가 해악인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개혁주의적 지도자들을 여전히 신뢰하는 대다수 노동자들과의 공동활동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하의 글은 김종환 기자가 몇몇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주장을 바탕으로 개작한 것이다. 그 글들의 출처는 글의 끝에 명시했다.

사회주의자들이 최대강령[사회주의 사회 성취와 관련된 일련의 요구들]만을 주장해서는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최대강령만을 내세우는 태도는 왜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부분의 시기에 개혁주의적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처사다.

우리가 사는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사상을 전파하는 언론, 교육 등의 이데올로기 수단을 모두 지배계급이 지배하고 있다. 그래서 마르크스의 말처럼 지배적인 사상은 지배계급의 사상이다. 사람들이 그런 사상에서 벗어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만일 누군가가 부분적으로라도 지배적 사상을 거부하고 좌파 정당을 지지하거나, 사람들이 힘을 합쳐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면 그것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곧바로 혁명적 단체에 가입하지 않을지라도 말이다. 혁명가들은 그런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대체로 체제의 이러저러한 부분을 고치려고 애쓰는 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고 난 뒤에야 비로소 체제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깨닫는다. 예컨대, 제1차세계대전 종전 무렵 사람들은 자본주의 체제가 얼마나 피비린내 나는지를 목도했고 그런 상황에서 혁명적 단체들은 아주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각국 노동계급은 제1차세계대전 동안 대량 학살을 겪은 뒤 대규모 혁명적 투쟁에 나섰다. 공동전선 이론은 바로 이 시기 사회주의자들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겨났다. 당시에는 대중적 혁명 단체들이 대중적 개혁주의 단체들과 함께 활동했다.

공동전선의 목적은 특정한 방어적 요구(노동조합 이슈들이나 여성의 권리 옹호, 제국주의 전쟁 반대, 정치적 민주주의 옹호, 환경 파괴 저지 등)를 위해 최대한 많은 사람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 속에서 더 많은 사람들을 혁명적 정치와 혁명적 조직으로 이끌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레온 트로츠키

혁명적 단체가 개혁주의적 단체와 함께 대중운동을 효과적으로 건설하려면 공동전선 전술을 잘 이해해야 한다. 2014년 9월 27일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집회. ⓒ이윤선

공동전선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레온 트로츠키다. 제1차세계대전 직후 국제 혁명적 좌파의 경험과 레닌의 ‘좌파 공산주의’ 비판을 바탕으로 공동전선 이론을 고안한 것이 트로츠키였다. 그는 1922년 다음과 같이 썼다.

“지금의 시급한 과제는 노동계급이 자본주의에 맞서 싸울 때 공동전선을 구축할 수 있도록 하는 일이다. 이 과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당은 선전주의 단체일 뿐, 대중 행동을 도모하는 조직이라고 볼 수 없다.” [트로츠키 글의 전문은 ‘트로츠키의 공동전선 테제’(《마르크스21》 8호)에서 볼 수 있고, 이하의 그의 말 인용도 이 글로부터 따온 것이다.]

개혁주의자들보다 혁명가들의 세력이 작은 상황[대중 정당일지라도 상대적으로는 여전히 소수파인 경우를 포함]에서는 특정 요구를 놓고 개혁주의자들과 함께 행동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혁명가들은 특정 요구를 중심으로 대중 운동을 건설하려 하는데, 첫째 그것이 개혁을 성취하기에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고, 둘째 그 과정에서 사람들을 혁명적 정치 쪽으로 끌어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계급의 매우 중요한 일부가 개혁주의 조직에 속해 있거나 개혁주의 조직을 지지한다. 그런 노동자들은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개혁주의 조직을 떠나 우리[공산당]에게 가입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들이 대중 활동에 실제로 참가한 후에야 이런 관계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 공산주의자들은 그런 행동에 반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앞장서야 한다. 그것은 투쟁의 애초 구호가 아무리 보잘것없더라도, 더 많은 대중이 운동에 동참할수록 대중의 자신감이 높아지고, 대중의 자신감이 높을수록 운동은 더 단호하게 전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운동의 규모가 커지면 운동이 급진화하는 경향이 있고, 공산당의 구호, 투쟁 방법, 공산당의 지도력 일반에 훨씬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된다.”

그러나 이런 급진화 과정은 전혀 자동적이지 않으므로 혁명가들은 독립적으로 조직을 유지해야 한다.

“우리는 공동전선에 참여하지만 단 한 순간도 공동전선 속에 녹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공동전선 안에서 나머지와 구분되는 세력으로서 활동한다. 우리가 다른 자들보다 더 효과적으로 싸운다는 것, 우리가 다른 자들보다 더 명확히 사태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 우리가 더 대담하고 단호하다는 것을 바로 투쟁 안에서 광범한 대중이 몸소 느끼도록 해야 한다.”

공동전선 전술 정식화의 역사적 기원

1917년 러시아의 10월 혁명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때, 사회주의 혁명은 유럽 전역에서 현실적 전망이 됐다. 제1차세계대전의 동부 전선이 무너지면서, 러시아 혁명으로 고무 받은 혁명적 운동이 전 유럽에서 우후죽순 솟아났다. 여러 나라에서 공산당이 창당되고 엄청나게 성장했다.

노동자 평의회를 건설하고 기존 자본주의 국가를 분쇄하는 것이 당시에는 현실적인 목표였다. 볼셰비키의 성공도 그것을 핵심으로 했다. 국제주의적이었던 볼셰비키는 코민테른(제3인터내셔널)을 만들어서 다른 나라에서도 혁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갓 태어난 러시아 소비에트 국가를 방어하고 강화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확산돼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혁명은 헝가리, 이탈리아 그리고 결정적으로 1918~23년 독일에서 패배했고, 혁명 러시아는 고립됐다. 여러 면에서 봤을 때 1921년쯤 혁명의 파고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이런 세력균형 변화에 맞게 코민테른은 국제 혁명을 위한 전략을 조정해야 했다.

1921년 코민테른 3차대회에서 이 문제를 다뤘다. 여러 나라에서 노동자 정당과 노동조합의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배신한 바 있었다. 독일은 특히 두드러진 경우였는데, 세계 최초의 노동자 정당인 사회민주당 지도부의 명령으로 위대한 마르크스주의자 로자 룩셈부르크와 칼 립크네히트가 살해당한 것이다.

코민테른이 채택한 공동전선 전술은 각국에서 공산당을 창당하거나 기존 공산당을 더 크게 성장시켜야 하고 무엇보다 공산당이 “대중에게 다가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연장선 상에서 코민테른은 러시아 혁명의 경험을 바탕으로 분명히 “공동전선 전술을 채택해야 한다”고, 즉 공산당은 정치적 성향이 다른 노동자들과도 공동 활동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요하다면 심지어 파업을 파괴했던 개혁주의 지도자들, 룩셈부르크와 립크네히트를 살해한 자들과도 함께해야 할 태세를 갖춰야 한다고 말이다.

왜 그런 것일까? 코민테른 4차대회(1922년)가 채택한 테제는 다음과 같이 그 이유를 요약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공동전선 전술은 공산당이 다른 정당과 단체에 속했거나 아무런 소속이 없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노동계급이 아주 기본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을 부르주아지가 빼앗지 못하도록 함께 맞서 싸우자고 제안하는 것이다.”

이렇게 노동자들과 함께 투쟁하면서 마르크스주의의 영향력과 힘을 키우고, 또 사람들이 개혁주의 사상과 단절하기를 바란 것이다. 물론 그러려면 독자적 조직을 유지해야 했다. 트로츠키가 제안한 다음과 같은 공동전선 슬로건은 그래서 나온 것이었다: “따로 행진하지만 함께 [공동의 목표를 향해] 간다!”

독일의 참담한 교훈

△독일 사회민주당을 “사회 파시스트”라 규정하며 공동전선을 거부한 공산당의 전술은 히틀러의 집권이라는 비극을 낳았다.

트로츠키가 1933년 히틀러 집권 전까지 독일에 관해 쓴 글들은 공동전선을 탐구할 때 특히 유용하다. 물론 공동전선 전술은 그 전에도 제안된 적이 있었다. 공동전선 전술은 러시아 혁명 과정 내내, 그리고 국제적으로 사회주의 운동이 성장하는 데 중요하게 기여했었다. 그러나 공동전선 개념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 주는 것은 바로 트로츠키가 히틀러의 집권을 막기 위해 쓴 글들이다.

그 시기에 트로츠키는 공동전선의 모든 측면을 다뤘다. 또, 자신이 공동전선에 관한 주장을 “끝도 없이 되풀이해야 한다”고 불평했다. 코민테른(스탈린과 그 추종자들이 장악한)과 독일 공산당이 나치에 맞선 투쟁에서 다른 노동자 정당과 노동조합에 취한 초좌파적 종파주의 정책 때문이었다.

간단히 말해, 독일 공산당은 사민당을 비롯한 다른 세력과 협력해서 히틀러와 나치에 맞서기를 거부했다. 심지어 사민당을 “사회 파시스트”라는 이름을 지어 붙였는데 그 뜻은 사민당이 히틀러와 본질이 같고, 정책에서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라는 것이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1931년 이렇게 선언했다. “사민당을 먼저 물리치지 않고서 파시즘을 물리치기란 불가능하다”. 그에 따라 공산당은 자신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거리에서 나치와 충돌하는 것도 가로막았다.

이런 분열 때문에 노동계급은 마비됐고 운동은 단결하지 못했다. 그 덕분에 나치는 1933년, 히틀러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유리 한 장 깨지 않고” 집권할 수 있었다. 유럽에서 가장 강력했던 노동계급이 이렇게 패배하자 사회주의 운동은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이 사건으로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 코민테른을 더는 개혁할 수 없다고 결론 지었다.)

독일 공산당과 코민테른이 정치적 자살 행위와 다름 없는 이런 초좌파적 정책을 취한 것은 그들이 완전히 오판했기 때문이다. 독일 공산당은 자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고 생각했고(물론 수십만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은 것은 사실이었지만), 히틀러의 나치당은 아주 불안정하기 때문에 머지않아 자신들이 국가 권력을 장악할 것이라고 봤다. 심지어 히틀러가 집권한 뒤에도 한참 동안 이런 황당하게 비현실적인 정세 판단을 하고 있었다.

트로츠키는 히틀러에 맞선 투쟁에서 공동전선이 사활적으로 중요하다고 거듭거듭 주장했다. 심지어 히틀러가 갓 권력을 차지하고나서 몇 주가 지난 1933년 2월까지도 트로츠키는 독일 공산당에게 공동전선을 펼칠 것을 요구했다. 즉, 공산당과 산하단체들이, 여전히 수백만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사민당 및 그 계열의 노동조합과 함께 투쟁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었다. 각 세력은 독자적 조직을 유지하면서도 단결해 파시즘에 맞서 싸우고 격퇴시켜야 했다.

소련과 독일 공산당의 스탈린주의 지도부는 트로츠키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사민당 지도부가 부르주아지의 정치인들이고, 히틀러와 똑같은 경제 체제를 지향한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것은 노동계급 내 의식이 불균등하다는 것(특히 사민당을 지지하는 노동자들의 의식)을 무시하고 공산당의 이익만을 좇은 행태로, 1917년 볼셰비키가 했던 것과 정반대의 행동이었다.

독일 공산당은 적색 전선이라는 단체를 만들었지만 사민당과, 사민당 지도부에 대한 공산당의 초좌파적 태도를 지지하지 않는 단체·개인들은 배제했다. 이후 독일의 역사를 보면 그런 종파주의와 분열주의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낳았는지 알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독일의 비극은, 마르크스주의적 방법이 제대로 적용되면 러시아 혁명에서처럼 성공을 낳을 수 있지만 그 방법이 무시되면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입증한 것이기도 했다. “사민당 노동자들은 사민당 지도부 편에 그대로 남고, 공산당 노동자들은 자신과 지도부에 대한 신뢰를 잃었기”(트로츠키) 때문에 생긴 결과였다.

트로츠키는 스탈린주의자들과 격렬히 논쟁하면서 볼셰비키가 어떻게 소비에트 안에서 활동했는지 1917년의 경험과 사례를 들었다. 특히, 트로츠키는 당시와 비슷한 상황인 1917년 8월 말 꼬르닐로프 반란에 직면했을 때 볼셰비키가 어떻게 대응했는지 자세하게 설명했다.

꼬르닐로프 쿠데타

꼬르닐로프는 2월 혁명으로 차르가 내쫓기고 대신 들어선 임시 정부를 전복하고자 쿠데타를 일으킨 우익 러시아 장군이었다. 당시 임시정부는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 이끌고 있었고, 대표적 인물은 사회혁명당 대표 케렌스키였다.

볼셰비키는 당시 임시정부에 의해 혹독하게 탄압받고 있었다. 트로츠키를 포함해 볼셰비키 지도부의 많은 사람들은 수감됐고, 레닌 등은 숨어 지내야 했고, 볼셰비키의 간행물도 발행 금지됐다.

그러나 볼셰비키는 꼬르닐로프 쿠데타를 좌절시키기 위해 다른 정당들에 공동전선을 제안했다. 트로츠키는 후에, 자신이 감옥에서 풀려나자마자 멘셰비키·사회혁명당 지도부(7월에 트로츠키를 구속해 수감시켰던 자들!)와 함께 꼬르닐로프에 맞서 공동전선 회의를 진행했던 일의 진상을 종종 언급했다.

노동계급이 성공적으로 대응에 나서자 꼬르닐로프는 페트로그라드 장악에 실패했고 결국 쿠데타 기도는 실패했다. 이 과정에서 볼셰비키는 주도적 구실을 했기 때문에 러시아 노동자, 병사, 농민들에게서 큰 존경을 얻게 됐다. 이 반란과 그에 대한 볼셰비키의 전술은 10월에 러시아 혁명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이 사례는 현실에서 공동전선이 얼마나 효과적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또한 독일에서처럼 공동전선이 형성되지 못했을 때 운동이 얼마나 비효과적이고 심지어 소모적일 수 있는지 보여 준다.)

꼬르닐로프와 케렌스키가 둘 다 같은 체제를 지향했다는 점을 (독일 사민당·히틀러와의 공통점이라는 점에서) 짚고 넘어가야겠다. 트로츠키는 케렌스키를 “4분의 3 정도는 꼬르닐로프와 공범”이라고 불렀다. 그런데도 케린스키와의 공동 투쟁에 나서는 것을 꺼리지 않았다. 꼬르닐로프를 물리쳐야 한다는 시급한 과제를 앞두고 볼셰비키 지도부가 올바른 전술을 내놓자 두 달 뒤 케렌스키 정부는 무너졌던 것이다.

공동전선 운영의 원리

“공동전선은 방어적 전술이지만, 즉각적인 요구를 놓고 벌이는 투쟁을 승리로 이끌어 공세로 나아가고자 하는 전망 속에서 취하는 전술이다. … 따라서 공동전선은 결코 선전을 위한 기구가 아니고 오직 구체적인 목표를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구호가 추상적일수록(예컨대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한 좌파 정부 수립 같은) 중간주의자들과 개혁주의자들이 [지배자들과의] 대결을 회피할 구실을 찾기가 더 쉬워진다. 반면에 요구가 제한적이고 구체적이면(예컨대, 노동조합은 정부가 학교 급식에 비용을 부과하려는 것에 반대하라) 그런 자들이 [투쟁을] 회피하면서 좌파연하기가 더 어려워진다.” (1972년 영국 국제사회주의자단체 대의원협의회 결정문 중 ‘단결에 관해’)

경제 위기가 해소되기는커녕 오히려 더 악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 박근혜 정부와 사용자들의 집요한 공세, 새정치연합의 더한층 친자본주의화, 정의당의 우경화, 진보당 강제 해산,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더한층 소심해짐, 이에 대한 반발로 일부 급진좌파들의 인내심 부족과 초좌파적 경향성 등. 바로 이런 상황들 때문에 우파의 공세를 물리치기 위해 좌파가 단결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단결할 수 있을까? 어떤 정치적 원리 위에서, 어떤 쟁점을 중심으로?

여러 세력들이 — 새정연을 지지하는 셀프 개량주의, 정의당, 노동당, 노동·정치·연대, 급진좌파들 등 — 모두 하나의 조직으로 통합돼 유기적 단결을 이룬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통합을 기대하기엔 그들 사이에 목적과 수단, 목표와 전술, 계획과 전통의 차이가 너무 크고 그 뿌리가 너무 깊다.

그러나 공격에 맞서 싸우려는 노동자들이 이들의 단결을 갈망한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고 그런 바람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다. 무엇보다도 그런 바람은 아주 바람직한 것이기도 하다. 좌파는 일정 수준의 단결을 도모해 노동계급이 재앙 수준의 패배를 겪지 않도록 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사활적으로 중요한 것이 바로 공동전선 전술이다.

공동전선의 기초는, 여타의 쟁점에서는 막대한 정치적 이견이 있는 좌파들이 어느 정도 합의할 수 있는 한시적이고 제한적인 요구(예컨대 노동시장 구조 개악 반대, 최저임금 인상,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노동기본권 등)를 중심으로 노동자와 노동자 단체들을 단결시키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들이 전에 누렸지만 지금 도로 빼앗길 우려가 있는 것들을 중심으로 혁명가들과 개혁주의자들이 단결하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전술이 그렇듯, 공동전선 전술은 아주 까다로울 뿐 아니라 자칫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그러나 공동전선을 이루는 것은 어마어마하게 중요하다.

△공동전선 이론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러시아의 혁명가 레온 트로츠키

공동전선은 ~가 아니다

“코민테른은 프롤레타리아 독재와 소비에트를 지지하는 노동자들이 독자적인 정당을 건설해야 한다고 늘 요구해 왔다. 코민테른이 앞에서 한 말[공산주의자는 사민주의자·아나키스트·신디컬리스트 등과 차이를 뛰어넘어 함께 싸워야 한다는 것]과 공산주의자들이 독자적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는 말 사이에는 모순되는 부분이 단 한 구절도 없다. 독자적 정당을 만드는 것이 옳았다는 것이 나날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입증되고 있다. 그러나 코민테른은 온갖 차이에도 불구하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 공동의 목표라고 당신들이 모두 인정할 수 있는 것, 당신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을 걸고 싸우기 위해 소속 단체의 차이를 뛰어넘어라!

“어느 노동자도 자신의 임금이 더 깎이기를 원치 않는다. 공산주의자·사회민주주의자·신디컬리스트뿐 아니라 기독교 노동조합, 자유주의 노동조합에 속한 노동자도 마찬가지이다. 더 오래 일하기를 원하는 노동자는 아무도 없다. 따라서 모두 사용자들의 공세에 맞서 하나의 전선을 이뤄 싸워야 한다. … 모든 노동자는 폐기처분 되는 것을 두려워하므로 실업을 늘리는 것 일체에 맞서 함께 싸워야 한다.” (‘프롤레타리아 공동전선을 위하여!’, 1922년 1월 코민테른 집행부 성명)

공동전선은 혁명 정당을 대신하지 않는다. 공동전선 전술은 그 어떤 경우에도 혁명적 정치와 단체가 개혁주의 정치와 단체에 종속되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공동전선은 혁명가들이 독자적 세력으로 존재할 때만 가능한 것이고, 혁명가들의 세력이 크면 클수록 공동전선의 가능성도 더 커진다.

공동전선은 “서로의 차이일랑 깨끗이 잊고 무조건 대동단결하자”는 식의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모든 공동전선 전술에서는 개혁주의자·중간주의자들의 등을 떠미는 정치적 투쟁이 벌어지고 또 피할 수 없다 — 개혁주의자·중간주의자들이 떠벌린 만큼 행동에 나서도록, 그들이 자본가들과 맺고 있는 연계(직접적이든, 노동조합 관료를 통해 간접적이든)를 부분적으로 끊도록, 그리고 그들이 지지한다고 공언한 그런 목표를 위해 혁명가들과 함께 투쟁에 나서도록 말이다.

또한 공동전선은 혁명적 단체들의 연합체가 아니다. 공동전선의 취지 자체가, 즉각적인 요구는 지지하지만 혁명적 정치는 (적어도 지금은) 온전히 수용하지 않는 노동자와 노동자 단체를 끌어들이는 것이다. 이런 세력을 끌어들이지 않는 그런 ‘공동전선’은 완전한 엉터리다.

공동전선은 꼼수도 아니다. 위에서 공동전선은 제한된 요구(예컨대, 노동시장 유연화 반대)를 내건다고 했는데, 혁명가들은 진심으로 그 요구를 쟁취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공동전선은 단순히 선전을 위한 기구(일종의 잡담 장소)도 아니다. 공동전선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부분적이고 즉각적인 요구를 중심으로 공동의 행동을 조직하는 것이다. 그런 공동 행동이 노동계급의 자신감과 전투성을 북돋기 때문이다.

지금 공동전선이 필요한가?

혁명적 단체가 공동전선 전술을 구사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이 때때로 다른 단체들과 타협을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어느 영역에서 투쟁이 벌어지는지, 해당 투쟁에서 개혁주의·중간주의의 영향력과 그 단체들의 규모를 고려해야 한다. 또한 공동전선 전술은 실천을 통해서만 그 전술이 옳았는지 여부를 검증할 수 있다.

오늘날 실천에서 이렇게 공동전선을 검증해 봐야 하는 부문은 단연 노동시장 유연화와 관련된 문제들과 정치적 부패에 항의하는 문제이다.

따라서 혁명가들에게는 노동계급 운동 안에서 이런 문제들과 관련된 요구를 진지하게 제기하는 사람들 모두를 가장 광범하게 단결시킬 가능성이 열려 있고, 혁명가들은 그런 기회를 붙잡으려 해야 한다.

그렇다고 혁명가들이 다른 세력이 먼저 행동에 나서기를 기다려야 한다거나 그들과의 지루한 협상이 끝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전혀 아니다. 공동전선을 물신화해 독자적인 선제 행동을 미리 배제해서는 안 되며, 또한 초좌파 단체나 소종파가 괜찮은 주도력을 발휘해도 종파주의적으로 외면하지 말고 열의를 갖고 그 운동도 지지해야 할 것이다. 되도록 통합된 운동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지만 말이다.

노동조합 이슈나 정치적 부패에 대한 항의 말고도 오늘날 공동전선을 적용할 수 있는 분야는 더 있을 수 있다. 그러나 현 정세에서는 이와 관련된 요구가 핵심적이기 때문에 우리는 행동을 일으키고 또 단결시키기 위한 우리의 역량을 여기에 집중해야 한다.

공동전선 안에서 혁명적 정당을 건설하려 하면 종파적인가?

전통적으로 공동전선은 두 가지 구실을 해야 한다:

(1) 적절한 쟁점을 놓고 최대한 공동 행동을 도모한다.

(2) 혁명적 정치와 단체의 영향력을 키운다.

종파적 경향이 있는 단체들은 이 둘 중 어느 하나만을 강조하고 다른 하나는 외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아예 공동 행동에 참여하지 않거나, 공동 행동에 나서지만 다른 동맹 세력을 비난하는 데 더 치중해서 사실상 참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 효과를 낸다. 정반대로, 특정 운동에 녹아든 나머지 혁명가로서의 고유한 정치색을 잃기도 한다.

후자가 전자보다는 더 나은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오류이기는 매한가지이다. 혁명가들이 공동전선에서 정치색을 잃는 오류를 범하는 이유는 공동전선에 참여하면서 당을 건설하는 것을 ‘종파적’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동전선의 두 기능 사이에는 어떠한 모순도 없다. 오히려 그 둘은 서로 보완 관계이다. 왜냐하면 혁명가들이야말로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선명한 이데올로기와 응집력 있는 조직을 가졌기 때문에, 가장 효과적으로 광범한 운동을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엽 이라크 전쟁 반대 운동을 일으키는 데서 다함께(노동자연대의 전신)가 한 구실이 좋은 사례일 것이다.

혁명가들이 공동전선에서 중요한 구실을 한다는 것은 각기 다양한 운동들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공동전선 기구들이 원활히 운영되려면 그 나름의 민주적 절차를 갖춰 반드시 다양한 정치세력이 그 활동과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도록 해야 한다. 스탈린주의자들은 ‘전선’을 배후 조종하는 것으로 여기는데, 그런 방식은 오늘날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운동이 성장하는 시기에는 차라리 없느니만 못하다.

그러나 모든 운동은 이런저런 정치 강령들의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따라서 운동이 이데올로기적 자율성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은 틀렸다. 자본이 사회를 지배하는 여러 방식 가운데는 무엇보다도 자본의 세계관을 사회에 침투시키고 그에 대항할 세계관의 발달을 억제하는 것도 포함된다. 개혁주의는 자본의 세계관과 혁명적 세계관을 절충한 사상과 운동이다. 이 때문에 공동전선은 언제나 이데올로기 투쟁과 정치 투쟁의 장이기도 하다. 운동 안에 혁명적 세력이 강력한 한 축으로 존재하는 것은 그 안에서 자본의 이데올로기의 영향력을 물리치고 공동전선이 승리를 거둘 전략을 수립하는 데 필수적이다.

이렇듯 혁명적 단체를 건설하는 것과 광범한 운동을 건설하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모순도 없다. 오히려 적절한 방식으로 혁명 조직을 건설한다면 운동은 더 강해질 것이다. 운동을 건설하는 것과 그 운동 속에서 혁명적 마르크스주의 조직을 키우는 일을 제대로 결합하는 것은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과제이다.

참고문헌

Bobier, Faline. Peoples’ Social Forum and the united front’, http://www.socialist.ca/node/2450, 2014년 9월 6일.

Callinicos, Alex. ‘Unity in Diversity’, Socialist Review, April 2002.

Hallas, Duncan. ‘On the United Front Tactic – Some Preliminary Notes’, International Socialism, January 1976.

McKerrell, Nick. ‘The united front today’, International Socialism, Winter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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