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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 운동과 초좌파주의

오늘날 노동운동 안에는 좌파적 언사를 발하지만 실천으로는 조직노동자 운동의 당면 과제에 관여하려는 노력을 폄훼하는 종파주의자들이 있다.

현재 민주노총이 조직하고 있는 4·24 총파업에 대해서도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나 고용·임금·노동시간 유연화 반대로는 ‘총’파업을 할 수 없다면서 대뜸 “총파업의 단 한가지 목표는 ‘박근혜 퇴진’”이라고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거나, 한 달 넘게 “전망은 밝지 못하다”, “불투명한 상황이다”, “설사 총파업이 잘 된다 해도 비정규직노동자들의 반란은 꿈도 꾸기 어려울 것”이라며 사실상 파업 조직에 재를 뿌리는 주장만 하는 초좌파들이 그들이다.

이처럼 좌파연하지만 노동자 대중 운동을 깎아내리며 현실 운동과 준별되는 자신만의 변별적 표지를 내세우는 것에 골몰하는 종파주의적 행태는 사실 국제 노동운동사에서 되풀이돼 왔다. 러시아 혁명의 승리에 공헌한 레닌(사진)도, 노동조합이 수구적이라고 비난하며 참여하기를 꺼린 독일·네덜란드·이탈리아·영국 등지의 초좌파들과 논쟁해야 했다.

이 글은 미국의 혁명적 사회주의자 패럴 돕스(1907~83)의 책 《혁명의 연속성 — 공산당 운동의 탄생 1918~22년》(미번역 도서)에서 발췌한 것으로, 초좌파들에 대한 레닌의 비판을 소개하고 있다. 패럴 돕스는 대공황 직후인 1934년 팀스터스 파업을 이끌었고, 1953~72년 미국 사회주의노동자당의 사무총장이었다. [ ]안의 말은 독자의 이해를 돕고자 〈노동자 연대〉 신문 편집자가 첨가한 말이다. 원문 번역은 김종환 기자가 했다.

볼셰비키는 기회주의에 맞서 비타협적으로 투쟁하는 동시에 공산주의 운동 내의 초좌파주의 문제와도 씨름해야 했다. 볼셰비키는 기회주의와 싸울 때에는, 비교적 특권적 지위를 누리며 부패한 관료적이고 출세지향적인 개인들과 단호하게 단절했다. 그러나 초좌파주의를 대하는 태도는 달랐다. 볼셰비키는 그들이 초좌파주의라는 병에서 치료돼 혁명적 노동자 운동에 기여하게 되기를 바랐다.

이 자칭 “좌파”들은 신디컬리스트들의 실천이 강하게 묻어나는 정책들을 내놓았다. 초좌파들의 관점에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중대한 약점이 있었다. 노동자 운동의 역사에 대한 지식 부족, 마르크스주의 강령을 적용해 본 경험의 일천함, 개혁주의에 반대하려다 너무 지나쳐서 그만 종파주의로 빠지기, 전환적[‘이행기적’] 강령이나 방법에 대한 개념 없음, 동맹의 필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기, 대중이 혁명적 의식에 도달하기까지 거쳐야 하는 선행 과정들을 건너뛰려 하기.

볼셰비키는 초좌파주의가 전위를 노동계급 선진부위와 더 긴밀하게 결합시켜 주기는커녕 고립시킬 뿐이라고 인내심을 갖고 설명했다. 공산주의자들은 이제 막 정치적으로 각성하기 시작한 수많은 노동자들 사이에서 어떻게 활동해야 하는지를 배워야 했다. 공산주의자들의 목표는 그 노동자들이 혁명적 전망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이끌고 돕는 것이어야 했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혁명적 전망으로 나아갈 수 있으려면 몸소 정치적 경험을 해야 한다. 공산당원들은 함께 그 경험을 해야 하고, 오직 그럼으로써만 노동자들이 투쟁 속에서 교훈을 이끌어내는 것을 도울 수 있는 입지에 오를 수 있다. 오직 이 방법으로만 노동운동 내 개혁주의자·중간주의자들의 배신적 구실을 만천하에 체계적으로 드러낼 수 있고, 혁명가들이 프롤레타리아 대중 조직에서 리더십을 인정받는 길을 터줄 수 있다.

레닌

레닌은 당시 유럽 전역에서 만연한 혁명적 상황에서 공산주의자들이 익혀야 할 전략과 전술을 자세히 설명했다. 레닌의 견해는 그의 책 《”좌파” 공산주의 — 유치증》에 개진돼 있다. 이 책은 1920년 6월 출간됐고, 그 다음달 코민테른 제2차대회에 참석한 각국 대표단에게 판매됐다. 이 책은 주로 독일·네덜란드·영국 초좌파들을 다뤘다.

레닌은 다음과 같이 썼다.

“진정으로 혁명적인 투쟁이 즉각적이고, 공개적이고, 진정으로 대중적인 수준에서는 아직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혁명가가 되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매우 가치 있는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혁명가들은] 혁명적이지 않고 꽤나 흔하게는 반동적이기까지 한 기구들 속에서, 혁명적 실천 방법을 당장에는 받아들일 태세가 안 된 대중 속에서 선전·선동·조직 활동을 하며 혁명을 옹호해야 한다.

“대중을 진정한 투쟁, 결정적 투쟁, 마침내 혁명적 투쟁으로 이끌 구체적 경로 및 사태 변화를 찾아내고, 포착하고, 옳게 지목하는 것 — 이것이 바로 오늘날 서유럽과 미국 공산주의자들의 주된 과제다.”

제1차세계대전 이후 급진화하는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으로 대거 유입되는 것을 보며 레닌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런 현상은] 프롤레타리아 대중, 기층 노동자들, 후진적 노동자들 사이에서 계급의식과 조직화 염원이 커지고 있음을 분명히 보여 준다. 영국·프랑스·독일의 수많은 노동자는 그 어떤 조직도 갖지 못했던 단계에서 벗어나 난생 처음 가장 기초적이고, 수준이 낮고, 단순하지만 자신들이 가장 납득하기 쉬운 조직, 즉 노동조합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처럼 급변하는 상황에서, 선진 자본주의 나라들의 노동조합 관료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노동자들에 대한 자신들의 관료적 통제력을 유지해 계급 협조적 정책을 이어가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 그들은 주로 이런 일들에 몰두했다. 노동조합이 자본주의의 한계를 벗어나는 경제적·사회적 개선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제약하기, 정치적 쟁점들에서 공식적으로 “중립” 입장을 고수함으로써 지배계급의 정책을 사실상 뒷받침하기, 노동조합의 행동이 부르주아 정치권력에 도전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도록 만들기.

공산주의자들이 노동조합 내에서 이런 계급 협조적 관점에 맞서며 노동자들을 혁명적 사상으로 끌어당길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커지고 있었지만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이 기회를 잘 포착하지 못했다. “좌파” 공산주의자들은 기존 노동조합에는 무조건 반대하며 새 혁명적 노동조합을 만들자고만 주장했다.

기존 노동조합 속에서 활동하기

레닌은 독일의 “좌파 공산주의자들”이 발행한 소책자에서 그들의 다음 말을 인용했다.

“혁명가들은 모두 공장 조직에 기초를 둔 노동자연합(Workers’ Union)으로 결집해야 한다. … 노동자 연합은 다음과 같은 구호에 동의하는 노동자들을 모두 결속시켜야 한다. ‘노동조합을 떠나자!’ 전투적 프롤레타리아트는 바로 노동자 연합으로 기층 노동자들을 결집시켜야 한다. 계급 투쟁, 평의회 체제, [노동자] 독재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노동자 연합의 가입 조건이다.”

이처럼 노동자 대중에게 최후통첩을 하는 행동 지침은 재앙으로 이끌 뿐이라고 레닌은 지적했다.

“이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멍청한 실수다. … 이것은 공산주의자가 부르주아지에게 헌납할 수 있는 최상의 서비스나 다름 없다. …

“반동적인 노동조합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것은 의식이 충분히 성장하지 못했거나 의식 발전이 더딘 노동자 대중을 반동적 지도자들, 부르주아지의 앞잡이들, 노동귀족들의 손에 내맡기는 셈이다.”

레닌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했다. 나라를 막론하고 노동조합 관료들은 “독일의 ‘원칙적 반대파’나(신이여, 이따위 원칙에서 우리를 지켜 주소서!), 반동적 노동조합에서 탈퇴하라고 주장하며 그런 노조 안에서 활동하기를 거부하는 미국 세계산업노동자동맹(IWW) 내 일부 혁명가들 같은 ‘좌파’ 혁명가들에게 크게 감사하고 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레닌은 “좌파” 공산주의자들에 반대해 이렇게 주장했다. “공산주의자의 과제는 의식 발전이 더딘 인자들을 설득하고 그들과 함께 활동하는 것이지, 부자연스럽고 유치한 ‘좌파적’ 구호로 그들과 자신들 사이에 장벽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이 과제를 효과적으로 수행하려면 공산당은 당 간부들이 기존 노동조합에 관여하는 것을 정책으로 삼아야 한다. 그럴 때에만 공산당원들은 노동자들 자신의 투쟁과 경험 속에서 노동자들과 몸소 협력할 수 있고, 그 긴밀한 관계를 활용해 노동자들이 혁명적 전망을 받아들이도록 이끌 수 있다.

출처: 《혁명의 연속성 ― 공산당 운동의 탄생 1918~2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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