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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시행령(안)은 고쳐 쓸 수 없다

박근혜 정부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을 가로막을 정부 시행령(안)을 문구만 슬쩍 손봐 통과시키려 한다. 박근혜는 5월 6일 국무회의에서 수정안을 최종 통과시킬 계획이다. 참사 1주기에 맞춘 해외 도피에서 돌아오자마자 반격을 하는 것이다. 박근혜야말로 진상 규명의 걸림돌임을 다시 한 번 보여 주는 셈이다.

박근혜는 3월 27일 입법예고 기한이 다 지나고도 시행령(안) 통과를 3번이나 연기해야 했다.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이 정세의 초점이 되면서 노동자 투쟁, 성완종 게이트와 맞물리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그러나 성완종 게이트의 초점을 노무현 정부 당시의 특별 사면에 맞추기로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동시에, 박근혜는 시행령 통과도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4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3석을 가져간 것도 자신감에 일정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쓰레기는 폐기해야 한다 4월 30일 시행령 수정안 반대 유가족 기자회견. ⓒ이미진

특별조사위원회(이하 특조위)의 독립성을 침해하는 점은 원안이나 수정안이나 다를 바 없다. 예컨대, 해양수산부 파견 공무원이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부터 피해자 지원에 이르기까지 중요 업무 전반을 “기획·조정”하도록 한 게 원안의 주요 문제로 지적돼 왔다. 그런데 수정안은 기획조정실장 이름을 행정지원실장으로 바꾸고 업무를 “협의·조정”하는 것으로 바꿨을 뿐이다. 해수부 파견 공무원을 타 부처 공무원으로 바꾼다고는 하지만, 조사 대상이 돼야 할 정부가 파견한 인물이 특조위 업무를 통제할 수 있다는 핵심 문제점은 그대로다.

더군다나 여당 추천 인사 조대환이 맡고 있는 사무처 산하에 문제의 행정조정실(기획조정실)을 둔 것은 그 의도가 빤히 보인다. “책임을 밝혀내야 할 대상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석태 위원장)이다. 애초에 특별법 야합시 여당 추천 인사가 사무처를 맡도록 한 것이 문제라는 지적이 옳았다.

유가족들과 이석태 위원장은 “해수부 시행령 수정안 수용 불가” 입장을 밝혔다. 설계부터 잘못된 정부 시행령은 조금 손봐서 쓸 수 없다. 즉각 전면 폐기해야 한다.

시행령 폐기 원칙을 지켜야 한다

그동안 박근혜 정부는 체계적으로 진실 규명을 방해했다. 6백만 명이 넘게 요구한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어 통과시키고(새정치연합이 일조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을 비난해 온 인물들을 조사위원으로 추천해 유가족들의 분노를 불렀다.

특조위를 “세금도둑”(새누리당 의원 김재원)으로 몰더니, 여당 추천 인사와 파견 공무원들은 조사 대상인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내부 자료까지 유출했다. 반대로, 3월 중순 특조위원들이 해양수산부·검찰·법원·감사원에 공식 자료 요청을 했지만, 제대로 협조한 기관은 한 곳도 없다.

반쪽짜리 특조위마저 무력화시키려는 일은 시행령(안)에만 머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오죽하면 이석태 위원장이 “사무실에 있는 거나 광화문에 있는 거나 다르지 않다”고 했을 정도다.

박근혜 정부는 이렇게 특조위를 무력화해 놓고 ‘진실 규명 노력을 했다’는 명분만 쌓으려는 것이다. 이미 특별법 제정 운동 당시 유가족들이 지적한 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독립 기구가 아니면 참사의 진실을 밝혀내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과거사위원회의 경험이 이를 잘 보여 준다.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도 정부의 방해에 맞서 싸우면서 진상 규명을 해야 하는데, 하물며 지금은 명시된 조사권마저 보장하지 않고 무력화하려 한다.

독립성

따라서 특조위의 독립성을 해치고 진상 규명을 제약하는 정부 시행령(안)은 수정 대상이 아니라 폐기 대상이다. 지금 온갖 독기를 내뿜고 있는 박근혜 정부와 협상이 될 리도 만무하다. 이런 현실을 폭로하고 정부 시행령(안) 저지를 위한 더 강력한 투쟁이 벌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박근혜가 일사천리로 정부 시행령(안)을 통과시키면 어떻게 될까? 아마 특조위를 조금이라도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과 특조위 자체가 무력화됐으므로 탈퇴하고 특조위 해체를 요구하며 싸우자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 향후 진실 규명을 위한 싸움을 지속되려면 후자의 입장이 현실적일 것이다. 실제로 특조위가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비현실적인 특조위 활용론에 매달린다면, 오히려 결국에 사기저하를 부를 수 있다. 완강히 버티는 국가 권력에 맞서 싸우다 보면 온갖 우여곡절을 겪을 수 있다. 지금 상황은 수사권과 기소권을 보장한 독립적 조사기구가 필요하다는 진실 규명 운동의 원래 요구가 옳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이 경험을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1989년 영국 힐스버러 참사는 정부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것이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경찰의 부적절한 대응으로 축구팬들이 한꺼번에 출구로 몰리며 축구팬 96명이 압사하자, 경찰 당국은 축구팬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했다. 그러나 2012년 힐스버러 독립 조사위원회가 새로운 증거들을 밝히며 ‘경찰들이 적절히 대응만 했더라도 더 많은 인원이 살 수 있었다’고 발표했다. 결국 보수당 소속 현 총리 캐머런이 공식 사과했다. 그리고 2014년에 청문회가 새로 시작되면서 지금도 경찰의 거짓말이 계속 폭로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