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교수와의 논쟁① 옛 소련과 현 북한 사회는 사회주의 사회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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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문제는 남한 좌파들이 결코 회피할 수 없는 가장 중요한 문제다. 북한 내부의 중요 사건이나 북·미 또는 남북 관계가 남한 노동계급의 투쟁과 의식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남한 우파들도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다. 장성택 처형 사실이나 현영철 처형설 등이 불거지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사회가 얼마나 비합리적인 사회인지, 서방 자본주의에 견줘 얼마나 후진적인 사회인지 선전하려 애쓴다.

이를 통해 또한 그들은 북한을 상대로 벌이는 군사적 압박을 정당화한다. 동아시아에서 미국·일본과 중국 간의 제국주의적 경쟁이 날로 심화하는 상황에서 이런 감정적 거짓 선동과 대북 압박 강화는 한반도 긴장을 증폭시킨다.

우파들의 ‘사회주의’ 북한 폭로는 다른 노림수도 있다. 바로 자본주의 체제가 아닌 대안은 없다는 체념을 퍼뜨리려는 것이다. 우파와 지배자들은 북한의 비참한 현실을 들먹이며 경제 위기 고통 전가에 맞선 급진적 요구와 운동이 무망한 일이라고 시사한다.

이렇게 북한을 둘러싼 문제는 대안 문제로 이어지고, 이는 옛 소련과 북한 사회의 진정한 성격이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제기한다. 따라서 남한 좌파들이 옛 소련과 북한 사회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는 것은 여전히 중요한 문제다.

“현실 사회주의”

그런 점에서 박노자 교수(이하 존칭 생략)가 최근에 옛 소련과 북한 사회의 성격에 관해 내놓는 주장은 주의 깊게 살펴볼 가치가 있다. 노동당 당원이자 불교 아나키스트이기도 한 박노자는 한국의 많은 좌파적 개인들과 서클들에 여전히 많은 영향을 끼치는 지식인이기 때문이다.

1956년 헝가리 혁명 당시 부다페스트 시민들이 쓰러뜨린 스탈린 동상 옛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은 노동자들의 거듭된 저항 끝에 붕괴했다.

지난해 12월 출간된 최근작 《비굴의 시대》(한겨레출판)에서 박노자는 “스탈린주의의 잔혹한 면을 부정할 수 없다”면서도 옛 소련 같은 “현실 사회주의”의 긍정적 측면도 함께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관된 주장을 더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현실 사회주의에서는 노동자의 지위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런 만큼 그들은 노동에서 소외되는 것도 훨씬 덜 느꼈다. … [노동자들이] 적어도 자본가의 사적 소유에서는 해방된 것이었다.” (341쪽)

“[관료 집단은] 경제적 특권이나 정치적 권력은 세습되지 못하게 함으로써 그래도 기본적 사회 정의는 관철시켰다. … 또한 다수의 이해관계를 고려하는 국가 운영도 어느 정도 가능했다.”(345~346쪽)

북한에 대한 태도도 비슷하다. 박노자는 오늘날 북한이 “아주 경직되고 훨씬 유교적이며 군사화된 사회”로 변질됐다고 비판하는 동시에 1960년대 초반 주체사상이 선포되기 전의 북한은 “동유럽형 현실 사회주의의 한 갈래에 속했다”고 옹호한다.

그래서 박노자는 옛 소련과 북한을 사회주의가 아니라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보는 ‘노동자연대’의 관점에 부정적이다. (사실 박노자는 몇 년 전만 해도 사뭇 다른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살펴보겠다.) 심지어 어처구니없게도, ‘노동자연대’의 관점이 미국의 막스 샤흐트만(‘샥트먼’이 올바른 발음이지만 이 글에서는 편의상 이렇게 표기하기로 한다)처럼 미국 제국주의에 투항하는 논리를 내포하는 듯 암시한다. 막스 샤흐트만은 1940년대 초 당시 소련을 ‘관료 집산제’라고 규정하고 서방 자본주의보다 후진적이라고 암암리에 여겨, 베트남전에서 미국 제국주의를 암암리에 지지하는 데까지 나아갔던 사람이다.

박노자의 이런 주장들을 보면, 그는 옛 소련이 비록 스탈린주의로 왜곡됐어도 본질적으로 서방보다 진보적인 탈(Post-)자본주의 사회였다고 보는 듯하다.

우선, 현재 박노자의 주장을 역사를 통해 검증해 보겠다.

먼저, 옛 소련 노동계급의 지위가 서방 노동계급보다 비교적 높았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옛 소련의 노동자들도 소외와 위로부터의 통제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생산수단과 생산과정을 전혀 통제하지 못했다. 먹고살기 위해 그들은 관료가 지배하는 국유 기업에 고용돼야만 했다. 1인 경영제, 노조 무력화, 파업권 부정, 단체협약 폐지, 스타하노프식 노동강도 높이기 등도 서방 자본주의 사회의 기업들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들이다.

알렉세이 스타하노프 스탈린은 높은 성과를 낸 광원 노동자 스타하노프를 앞세워 대대적인 생산 성 향상 운동을 벌였다. 이 때문에 소련 노동자들의 부담과 고통이 가중됐다.

소비재

노동자들을 위한 복지와 소비재 생산은 철저히 억제됐다. 예컨대 소련의 1988년 국민총생산에서 공중보건이 차지한 몫은 126개국 가운데 겨우 70위권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서방 노동자와 소련 노동자는 (구매력 수준이 높지 않아) 원하는 소비재를 충분히 구입하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처지가 같았다. 서방 노동자들은 질 좋은 소비재 가격이 너무 비싸서 구입하지 못했다면, 소련 노동자들은 소비재 공급이 너무 부족해서 구입하지 못했다는 (현상적) 차이만 있었을 뿐이다.

박노자는 생산수단에 대한 사적 소유가 없었다는 점을 소련이 ‘현실 사회주의’임을 뒷받침하는 중요한 근거로 보는 듯하다. 그러나 소유관계와 생산관계를 혼동하지 말아야 한다. 마르크스의 지적처럼, 소유관계는 생산관계의 “법률적 형식에 불과하다.” 그래서, 최초의 계급사회 형태인 ‘아시아적 생산양식’이든, 중세 서유럽 가톨릭 교회든, 근대 이전 아랍 국가봉건제든 그 지배자들은 사적 소유가 아니라 집단적·관료적 소유 형식으로 생산수단을 지배했다.

사실, 자본주의 체제가 등장한 이후 국가는 언제나 자본주의 체제의 핵심적 일부였는데다, 국가 주도 경제가 20세기 중엽 세계 자본주의의 주요 흐름이어서 서방의 많은 주요 산업체들도 국가 소유로 운영됐다. 이런 자본주의적 공기업들은 오늘날에도 미국과 영국 등을 포함한 시장 지향 경제의 3분의 1을 차지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 체제의 일부로서, 적대국들과 군사적 경쟁을 벌이며 생존해야 한다는 압력이 소련의 경제 ‘계획’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 그래서 급속한 중공업 건설이 필요했고, 서방의 무기·중공업 생산자들이 노동력 재생산 비용을 줄인 만큼 소련도 이를 가차없이 따라잡아야 했다.

일찍이 1920년대 말에 스탈린주의 관료들은 이 목표를 수행하기 위해 러시아 혁명의 잔재들을 모두 없애는 반혁명을 자행했다. 국가를 통해 축적 과정을 통제함으로써 스탈린주의 관료들은 서방의 자본가 계급이 하는 구실을 수행했다. 이처럼 옛 소련은 자본주의의 한 변형태인 관료적(전면적) 국가자본주의 사회였고, 본질적으로는 서방 자본주의와 다를 게 없는 사회였다.

만약 옛 소련이 조금이라도 ‘사회주의적’이었고 노동자들에 의해 운영되는 사회였다면, 1990년 9~12월과 1991년 8~9월 각각 동유럽과 소련의 노동자들은 어떻게든 체제의 붕괴를 막으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또한, 소련 붕괴가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로의 반동적 회귀였다면, 그 과정에서 사회 지도 세력이 급격히 바뀌었을 것이다. 그러나 옛 소련의 관료들은 대부분 소련 붕괴 후에도 자신의 특권적 지위를 보전했다. 획일적인 고급 공무원 복장이 아르마니 양복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물론 특권 집단의 명칭도 ‘노멘클라투라’에서 ‘올리가르히’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이것만 봐도, 옛 소련은 본질적으로 사회주의와는 조금도 닮지 않은 사회였음을 알 수 있다. 무늬(외형)조차 서방 사회와 흡사한 면이 훨씬 많다는 점이 아나똘리 리바꼬프나 보리스 삘냐끄 등등의 작품을 통해 1990년대에 폭넓게 들춰내졌다.

북한

북한도 옛 소련과 마찬가지로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다. 동유럽처럼 북한은 아래로부터의 노동계급 투쟁이 아니라 소련의 군대에 의해 건설된 사회다.

북한처럼 제2차세계대전 후 독립한 후발 국가들은 선진 경제를 따라잡으려고 국가가 자본 축적 과정을 주도하곤 했다.

북한 관료를 자본 축적에 열을 올리게 한 동력은 남한과의 군사적·경제적 경쟁 논리였다. 그 논리는 바로 자본주의의 본질적 특징인 경쟁으로 말미암은 ‘축적을 위한 축적’이었다. 북한 지배 관료들은 노동계급을 경쟁적 축적 시스템에 종속시키고 착취율을 높이려 애써 왔다.

그러나 자원이 부족하고 해외로부터의 자금 유입도 마땅치 않은 중간 규모 국가가 급속한 공업화를 추구하다 보니, 여러 문제들에 봉착하게 됐다. 세계 자본주의와 서방 제국주의의 압력 때문에 북한 관료들은 처음부터 무리한 목표를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심각한 대내외적 문제들에 부딪힐 때마다 북한 관료들은 ‘비정상적’ 해법(주체사상, 수령 개인 숭배, 권력 세습 등)에 이끌렸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 북한이 “아주 경직되고 훨씬 유교적이며 군사화된 사회”가 된 이유는 북한 사회의 자본주의적 성격과 세계 자본주의와 서방 제국주의의 압력에서 찾아야 한다.

옛 소련과 북한을 관료적 국가자본주의 사회로 규정하는 데는 그 사회들을 비판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정치적 함의도 있다. 국가자본주의론은 박노자의 오해와 달리 옛 소련과 서방 체제의 경제적 동학이 본질적으로 같다는 점을 포착해, 냉전의 틈바구니에서 양대 제국주의 모두에 반대하며 노동계급 자력해방(이하 아래로부터 사회주의)의 정신을 옹호하는 중요한 구실을 했다.

아래로부터 사회주의

앞서 삽입구로서 언급했듯이, 과거에 박노자는 다른 주장을 했다. 예컨대 2009년 출판된 책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소련의] 국유화한 공장과 은행들을 스탈린의 ‘노멘클라투라(특권적 관료)’가 그 집단의 사유재산인 양 관리하게 됐고, 노동자들은 여전히 ‘임금 노예’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왼쪽으로, 더 왼쪽으로》, 한겨레출판, 78쪽)

그보다 앞선 2006년 박노자는 소련과 북한을 “국가자본주의”라고 불렀다. “[김일성 일파가] 지배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던 데에는 소련, 즉 새로운 형태의 국가자본주의인 제국주의 세력의 도움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들이 북한이라는 국민국가, 국가자본주의적인 국민국가를 만드는 데서 ‘주체’에 대한 모든 데마고기와 무관하게 소련과 중국의 지원이 거의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 등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격주간 <다함께> 71호, 강조는 나의 것)

그러다가 2012년에는 “‘사회주의’는 아니더라도 비자본주의 사회”라고 했다가(<레디앙> 칼럼), 이제는 “현실 사회주의”라고 주장하기에 이른 것이다.

사회 성격에 대한 규정 문제는 마르크스가 《자본론》에서 보여 준 정치경제(학) 비판의 엄밀한 방법론과 개념에 근거할 일이지, 그저 그때그때의 인상을 따를 일은 아니다.

일부 국제 좌파들처럼, 박노자도 심각한 경제 위기에 대처하는 국제 노동계급의 투쟁 수준이 낮은 것에 실망하며 조급함을 느끼는 듯하다. 여기에 제국주의 간 갈등이 커지는 데 대한 우려도 있는 듯하다. 2013년 북한에서 장성택 처형 사건이 일어났을 때, 박노자는 “[수령 체제를 두둔하지는 않겠지만] 김정은이 망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한에서 민중 반란이 일어나면 시리아나 리비아처럼 미국 등 외세의 개입으로 “군웅할거와 지속적 살육의 지옥”이 펼쳐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다른 가능성(즉, 노동계급의 혁명과 권력 장악)은 염두에 두지 않는 듯했다.

이런 생각들이, 과거부터 존재했고 얼핏 현실적으로 가능한 듯해 보이는 스탈린주의 프로젝트에 그가 좀 더 호감을 갖도록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래서 미국 제국주의와 대립하는 제3세계 좌파 민중주의 정권이나 그리스 공산당에 좀 더 우호적인 태도를 취하게 됐을 것이다. 박노자는 과거 베트남·중국 같은 주변부의 반제국주의 투쟁에 스탈린주의가 안성맞춤이었다면서, “지금도 스탈린주의를 지향하는 세계의 수많은 주변부 세력과 평등하고 상호 존중하는 소통에 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비굴의 시대》, 324쪽)

그러나 그 ‘안성맞춤’이라던 스탈린주의가 왜 그 스스로 스탈린주의(일국사회주의론이 핵심이다)를 버리고 시장지향적 체제로 나아갔는지에 대한 박노자의 설명은 없다. 게다가 이런 논리를 일관되게 밀어붙이면, 일단의 ‘진보적인’ 국가들이 있고 미국 제국주의에 대한 ‘평형추’로서 그 국가들을 지지해야 한다는 진영 논리로 연결된다. 그러면 시리아 아사드 정권처럼 전혀 반제국주의적이지도 좌파적이지도 않은 세력도 옹호하게 된다. 박노자는 시리아 아사드 정권을 “마지막으로 남은 중동의 좌파민족주의 계통의 정권”으로 본다. ‘이슬람국가’(IS) 분쇄를 위해 아사드 정권이 미국의 시리아 내 IS 공습을 묵인하는 게 민족주의적인가? 그 정권의 대량학살 만행이 좌파적이지 않은 건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스탈린주의 관료가 조금이라도 진보적인 구실을 했다고 믿는다면, 아래로부터의 사회주의를 일관되게 견지하기도 어려워진다. 당연히 노동계급 투쟁에 꾸준히 인내심 있게 관여해 진정한 사회주의 정치로 노동자들과 청년·학생들을 조직하는 데도 전혀 도움이 안 된다.

스탈린주의 관료가 지배했던 옛 소련을 ‘사회주의’로 보면, 여전히 공산당이 지배하고 (얼토당토 않지만)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중국의 사회 성격에 대해서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 간의 제국주의 갈등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관점은 꽤 큰 약점을 드러낼 것이다.

박노자가 10대 후반까지 옛 소련에서 살았다는 것이 그가 그 사회에 대해 정확히 아는 것을 보장하지 않는다. 그와 비슷한 때 한국에서 태어나 군사독재의 종식을 목도한 사람이 다 한국 사회를 정확히 아는 건 아니다. 마르크스는 러시아어를 몰랐고 러시아에 가본 적이 없었어도 제1인터내셔널 러시아 지부를 맡았고, 동시대의 기라성 같은 러시아 포퓰리스트(나로드니키)보다 러시아 사회의 본질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움베르또 멜로띠Umberto Melotti의 Marx and The Third World[Macmillan, 1977]를 보라.)

박노자는 고대 한반도 남단의 가야 국가를 연구하는 등 거의 모든 한국인보다 한국 역사를 잘 알고, 다른 많은 문제들에도 해박하기 이를 데 없다. 우리는 그에게서 무수히 많은 역사적 사실들을 배울 수 있다. 하지만 그의 이론과 개념은 역사유물론의 그것이 아니고, 그의 정치 전략과 전술은 아나키즘의 도덕주의이지 혁명적 사회주의의 전략·전술이 아니다. 박노자가 이런 문제들에선 조금 겸손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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