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4·24 총파업을 돌아보며 내다봐야 할 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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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연말 민주노총에 좌파 지도부가 새로 등장했다. 10여 년 만이다. 경제 상태가 매우 안 좋을 때 좌파 지도자가 노동조합 운동의 좌파를 이끌게 된 것이다. 심각한 경기 침체를 예시하자면 첫째, 대기업들이 인적 구조조정(감원)을 하고 있었다.

둘째, 실업률이 매우 높다. 특히 청년 실업은 ‘IMF 공황’기였던 1999년 이래 최고 수준이다.

셋째, 복지가 축소되고 있다. 다시 말해, 우리 나라에서도 이미 긴축이 시작됐다. 그 한 표현이 바로 공무원연금 공격이다. 상하수도에 민간 자본을 도입해 사실상 민영화하려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것도 바로 긴축의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가 긴축의 명분으로 내세우는 ‘재정 불건전성’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특권’을 누려서가 아니라, 자본주의 경제 위기의 지속으로 기업들로부터 세금이 잘 걷히지 않기 때문이다. 3년 연속 세수 부족 사태가 진행돼 왔다. 지난해의 경우 조세 수입은 무려 10조 9천억 원이 부족했다.

이윤율 회복을 위한 정부와 기업주들의 노동자 공격이 줄기차게 계속되고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편이 대표적이다. 민주노총 4·24 총파업의 핵심 쟁점도 사실상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 구조 개편이었다.

이런 경제 상황과 공격은 노동계급에 상당히 위협적이고 노동계급을 위축시키는 효과를 낸다. 경제 위기 심화 전에 노동자 투쟁이 고양되고 잘 풀렸다면 이런 상황에서도 노동자들이 더 자신 있게 대처해 오히려 노동자 투쟁 수위가 올라갈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노동자들의 자신감 수준이 그다지 높지 않은 상황이다.(물론 자신감이 붕괴된 운동 침체기도 아니다.)

그래서 4·24 총파업에는 민주노총 조합원의 3분의 1 정도가 참가했다. 연가파업, 4시간짜리 파업, 또 소위 ‘간부파업’을 포함해서 말이다.(사실, 노조 ‘간부’는 상당수가 생산 현장에서 생산수단을 가동하지 않으므로 ‘간부파업’이라는 것은 사실상 형용모순이다. 이것은 노조 관료들의 용어다.)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어중간했던 4·24 민주노총 총파업 당시 서울광장에 모인 노동자들. ⓒ이미진

조합원의 3분의 1이 참가한 경고성 하루(또는 단시간) 파업은 사실 별것 아니다. 자본가들의 신문을 봐도 알 수 있었다. 어느 자본가 신문도 민주노총 파업 얘기를 간단하게 언급한 것 말고는 ‘야 이거 큰일났다. 우리 이윤 왕창 날아가게 생겼다’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 곳은 없었다. 그만큼 파업이 별로 위협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4·24 파업은 민주노총 안에서 은근한 보이콧과 비협조에 직면했다. 중앙파 관료들과 국민파 관료들이 대부분 거의 협조하지 않았다. 전국회의 계열(NL 계열)과 좌파 계열만이 다소 움직였다. 이런 상황에 비춰 보면 그래도 27만 명이 파업에 참가했으니 이럭저럭 성공이었다고도 할 수 있다.

요컨대 4·24 ‘총파업’은 어중간했던(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것이다. 현재 민주노총 내부의 정치적 조건에 비춰 보면 이럭저럭 선방했다고 할 수 있는 반면, 현재 지배자들의 공격에 맞서 요구되는 투쟁 수위와 진정으로 필요한 이윤 파괴력에 비하면 별것 아닌 형식적 파업이었다. 그래서 사용자들은 놀라지도 않았고, 파업이 끝나자마자 오히려 반격을 하고 있다.

게다가 노동자들은 공무원노조와 철도노조, 기아차노조 등의 지도자들이 노동자들에게 불리한 합의안을 만들어 와 조합원들에게 강요하는 사태를 목도했다.

경제 위기 지속에 동반하고 있는 정치 위기

1월 하순경 박근혜의 지지율은 29퍼센트로 취임 이후 최저를 기록했다. 박근혜 재임 2년 동안에 대한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물었을 때도 부정적 평가가 63퍼센트로 취임 후 최고 수준이었다.

게다가 성완종 게이트가 있었다. 박근혜 대선자금까지 문제 된 대형 부패 추문이었다. 전부터 <노동자 연대>는 이 정권이 군사독재 정권 시대부터, 아니 더 거슬러 올라가 일제시대 친일파로부터 비롯한 극도로 썩어빠진 자들이므로 부패 문제가 끊이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박근혜 임기 첫해에 국가기관 대선개입에 대한 항의 운동이 일어난 것에도,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것에도 주로 부패 문제가 연관돼 있었다.

그런데 성완종 게이트에는 새정치연합도 연루돼 있었다. 사람들은 1990년대부터 민주당의 부패 추문을 봐 왔는데, 더욱 노골적인 경우를 보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일을 보면, 이제 대중이 민주당(새정치연합)에 등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치 상황에서 또 하나 살펴볼 측면은 우려한 대로 동아시아 긴장이 계속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의 두드러진 특징은 미국이 노골적으로 일본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브루스 커밍스가 미국은 이미 제2차세계대전 종전 후부터 지금까지 지난 70년 동안 아시아에서 일본을 한국보다 중시해 왔다고 지적했는데, 이 점이 이번에 매우 두드러지게 드러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위선적으로 해 오던 미사여구마저 벗어던지고 이제는 일본의 과거사 왜곡까지 노골적으로 편들면서 중국과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 또, 이를 위해 한국한테 일본과 동맹을 하라고 등을 떠밀며 사드 배치를 밀어붙이고 있다.

그래서 남한의 지배계급은 매우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해 있다. 박근혜 정부는 매우 분명하게 미국의 조치들을 지지하지만, 지배계급은 중국과의 관계도 있기 때문에 그냥 단순히 친미 입장만 노골적으로 취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와 남한 지배계급의 입장이 언제나 일치하는 것은 아니다. 이 때문에 박근혜도 때때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인다.

지금까지 간단히 요약한 경제적·정치적 상황으로부터 새정치연합 왼편의 포퓰리스트들의 지지가 올라갈 법하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새정치연합은 중도 포퓰리즘이라고 할 수 있다.) 포퓰리즘이란 국민 가운데 반동적인 부분(독재 정권 잔당, 재벌, 공안 세력과 우익 등과 같은 집단들)을 제외한 나머지가 계급을 가로질러 연대(소위 말하는 ‘사회적 연대’의 의미)하자는 운동이다. 노동계급의 투쟁이 강력하지 못하니까 포퓰리즘이 지지를 많이 얻는 것이다.

새정치연합도 부패에 연루돼 있고 썩어빠졌기 때문에 정의당 같은 정당으로 대중의 관심이 옮겨갈 법한 상황이다. 물론 진보당도 대표적인 포퓰리즘 세력이다.(진보당은 강제로 해체됐지만 그 세력은 존재한다.)

이런 포퓰리즘 득세의 사례를 들어 보면 첫째, 최저임금 문제다. 당연히 <노동자 연대>는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지지한다. 좌파들도 모두 지지한다. 그런데 지지의 방식이 다르다. 적잖은 민주노총 좌파들이 최저임금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서 제기하는 것은 포퓰리즘적이다. 왜 그런가?

민주노총은 주로 정규직 노동자들로 이뤄진 조직이고, 비정규직 조합원들도 최저임금을 받을 만한 사람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이런 조건에서 민주노총의 파업 요구 중 최저임금을 가장 중요하게 내세운다면 파업이 잘 안 될 것이다.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맥도날드 같은 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현 정세에서 파업할 역량은 없는 듯하다. 자기 조합원들의 노동조건·생활조건보다 미조직 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등 더 열악한 처지를 배려한다면서 국민적 호평을 받고 그래서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민중적 또는 ‘대중적popular’) 지지를 받겠다는 것은 포퓰리즘적이다.

게다가 박근혜와 청와대, 새누리당이 모두 최저임금 인상을 언급했고 무엇보다 새정치연합이 의욕을 가지고 달려들었다. 지배계급의 일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한다는 것에 크게 영감을 받아 개혁주의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가장 중요한 요구로 제기했다. 이는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으로 단결하자는 것이다. 물론 재벌들의 반대에 가로막히긴 했다.

올해 초 민주노총의 일부 상근간부들은 “[민주노총이] 최저임금 1만 원을 부각시키자 순식간에 시민·사회단체 1백 몇십 곳이 지지하더라” 하고 뿌듯해 하며 말했다. 이것은 포퓰리즘적 사고이다. 민주노총이 자신의 투쟁을 전투적으로 벌이면서 다른 노동자 부문의 투쟁을 정치적으로 고무하는 것이 ‘민중의 호민관’ 구실을 하는 것이다. 2013년 12월의 철도 파업이 그런 단초를 제공하는 듯도 했지만, 철도노조와 민주노총 지도자들의 소심함 때문에 그냥 암시로 끝났을 뿐이다.

포퓰리즘의 둘째 사례는 국민연금·공무원연금 연계론이다. 공무원연금을 좀 깎아서 국민연금을 올리자는 것이다.(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공무원연금 개악 반대 투쟁에 나섰다. 이것이 바로 개혁주의의 모순이다. 이런 일을 보면 좀 황당하게 느껴질 것이다. ‘아니, 공무원연금 깎아서 국민연금 올리자는 사람들이 왜 공무원연금 깎는 것에 반대하는 운동에 나서? 무슨 속내일까?’ 하고 고민하게 된다. 이렇게 앞뒤가 안 맞고 모순된 게 바로 개혁주의다.) 이런 사람들의 정치적 지향은 ‘사회연대전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돼 있다. 이것도 계급을 초월해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한 ‘전략’이다.

셋째 사례는 민주노총이 ‘성완종 게이트’ 항의를 회피한 것이다. 과거에 민주당은 부패 추문에 크게 연루되지 않았으므로 민주노총 지도부도 민주당과 제휴해 정부·여당을 공격했었다. 그런데 민주당도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거치면서 국가 안에 똬리를 틀었고 그 안에서도 만만찮은 기반이 생기자 그들도 아주 썩어빠지게 됐다. 그래서 그들도 부패 사건이 터지면 영락없이 걸려든다. 민주노총 지도부 상당수가 성완종 게이트로 새정치연합과 제휴하는 것이 불가능하자 아예 성완종 게이트 부패 추문 문제로 정부·여당 공격하는 것을 피하자는 식의 생각을 했던 듯하다.

산업화가 비교적 늦게 시작된 신흥국들에서 노동운동은 노동자주의(전투적 노동조합주의) 성향과 포퓰리즘 성향의 상호 스며듦을 드러낸다. 이 상호침투의 효과는 위에서 언급된 사례들에서 보듯이 개혁주의의 발전이다. 계급을 초월해 국민적으로 단결하자는 포퓰리즘은 계급투쟁을 무디게 만들기 때문이다.

노동계급 정치조직들이 중심이 돼, 정치적 성격과 경제적 성격이 통일된 노동계급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정치투쟁과 경제투쟁의 통일을 향하여

정부가 사용자들의 공세를 총괄적으로 조율하는 경향이 빈번히 나타나는 장기 경제 불황 속에서는 노동조합 쟁점들이 더 넓은 사회적·정치적 쟁점들과 융합돼야 한다. 물론 이 방식은 즉각적이거나 직접적이지 않을 수 있다. 예컨대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과 민주노총 투쟁이 통일됐어야 했던 경우를 살펴보면, 노동자들의 의식 수준, 노동조합 지도자들의 형식적 접근, 노동조합 활동가들의 노동자주의나 포퓰리즘 성향 그리고 이 둘의 상호침투 때문에 쉽사리 맞물리지 않을 가능성이 컸다. 4·24파업의 요구들에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관련 요구가 포함돼 있었음에도 노동계급 운동이 세월호 참사 진실 규명 운동을 이끌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융합 노동조합 쟁점들은 더 넓은 사회적·정치적 쟁점과 융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조승진

물론 노동계급이 천대받는 다른 사회집단들을 이끄는 일(그람시는 이를 ‘헤게모니’라고 불렀다)에는 시간이 걸리므로 인내심을 가져야 한다. 1987년 6월항쟁은 처음에 학생과 청년이 앞장섰지만, 날이 갈수록 노동자들의 참가가 급속히 늘어, 1백50만 명가량이 시위에 참가해 정점을 이룬 6월 26일쯤에는 압도적으로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서울은 서비스·사무직 노동자들이 많았고, 안양·군포 등지는 6월 10일 첫날부터 공장 노동자들이 안양시청 앞에서 시위하면서 안양경찰서를 공격하기도 했다. 부산 같은 데서도 초기부터 사상공단과 사하공단 노동자들이 참가했다. 따라서 사회적 구성 면에서 보면, 즉 참가자로 보면 6월항쟁은 노동자 투쟁이었다. 6월항쟁이 6·29라는 양보를 얻어 내면서 사용자에게도 맞설 자신이 생긴 노동자들은 7·8·9월 중순까지 투쟁을 벌였다. 그때 정치적 구호가 나오지는 않았다. 1988년이나 1989년에도 이런 점에서 약간 굼뜬 면이 있었다.

그러나 노동운동이 강력해지면서 노동자 조직이 강화되고 이 노동자 조직들이 노동법 개정과 반민주악법 폐지, 부패 청산 등을 비롯한 다양한 정치적 요구들을 제출하고 싸웠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거쳐 1993년 김영삼 민선 민간정부가 들어설 때까지 군부가 정치 일선에서 밀려났다. 군부독재는 1987년 항쟁으로 즉각 타도된 게 아니었다. 몇 년에 걸친 투쟁 속에서 역전될 뻔한 위험도 있었다. 1990년에서 1991년 사이가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노동자 조직들이 정치적 민주주의에 기여했다. 이런 상황 전개는 1996년 12월 26일부터 이듬해 1월 12일까지 지속된 민주노총 총파업 때 정점에 도달했다.

마찬가지로, 세월호 참사 같은 정치 문제에서 노동자들이 즉각적으로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오히려 더 크다. 그래서 일부 초좌파 단체들이 지난해와 올해 세월호 항의 운동에서 그랬듯이 ‘박근혜 퇴진을 앞세우지 않는 투쟁[파업 포함]은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노동계급의 투쟁과 조직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메커니즘을 다소 피상적으로 이해한 결과다. 특히, 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자들의 의식과 조직을 고취시키고 노동자 조직들이 정치 세력으로 발전하는 데는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정치적 노동조합운동은 사고의 출발점 자체를 사회 전체, 나라 전체에 둬야 한다. 세계 경제 위기, 세계 제국주의 상황, 한반도(남북한 모두) 정치 상황 고려에서 출발해 그다음으로 자신이 처한 조건들을 고려해야 한다. ‘내가 우리 노동조합의 문제도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는데 나라는 무슨 나라고, 사회는 무슨 사회냐’ 하는 사고방식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평생 걸려도 시야를 확대할 수 없다. 처음부터 세계와 국가라는 시야를 확보하려는 습관을 들여야만 자기 문제로도 제대로 싸울 수 있다.

맺으며

한상균 지도부의 정치적 약점이 예상보다 일찍 나타나는 듯하다. 물론 그는 다른 지도자들에 의해 포위돼 있다. 그러므로 그를 포함한 노조 지도자층이 도대체 왜 이렇게 행동하는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한다. 주로 경제 위기가 심각해서 그렇다. 경제 위기가 심각하니까 사용자들도 양보를 안 하려 하고, 심지어는 자기들이 과거에 양보했던 것마저도 되찾아가려 한다. 예를 들면, 철도 근속승진제나 서울대병원 노조원 자녀학자금 같은 문제들이다. 한때 양보했던 개혁도 회수해 가는 판에 교섭으로 새로운 양보를 얻어 낸다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 이것을 교섭 전문가들(노조관료와 개혁주의 정당 정치인)도 잘 알기 때문에 몸을 많이 사리는 것이다.

그러면 또 이런 생각이 들 수 있다. ‘아니 좌파 지도부를 세워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올라가자마자 다른, 우파 지도자들과의 유대를 더 중시해 관료의 집단적 입장으로 용해되는데? 무엇 때문에 특별히 그들을 지지해야 하지?’

그러나 아래로부터의 힘이 강력하면 관료 내부에 균열이 생긴다. 지금은 아래로부터의 힘이 강력하지 못해 관료 내에 균열을 충분히 일으키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앞으로도 지속될 수 있으므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참을성을 갖고 운동을 건설해야 한다. 결코 조급해서는 안 된다. 초좌파에 대해 레닌이 비판한 핵심 주장은 자본주의적 의회, 자본주의적 선거, 개혁주의 정당, 보통의 노동조합이 비록 혁명가들에게는 폭로됐을지라도 광범한 수만·수십만 노동자들에게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성급하게 그들을 폭로하고 신경질적으로 매도하면 안 된다. 균형 있게, 개혁주의자들이 잘한 점은 잘했다고 말하고 날카로운 비판을 하되 입에 칼을 물고 웃으면서 그래야 한다. 대중에게 입증될 때까지 참을성 있게 그들과 공동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근본적 사회 변혁을 위한 활동을 해야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중심이 돼서 저항을 아래로부터 조직하지 않으면 결국 노조 지도자를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 공무원노조 내에서 마르크스주의자 몇 명이 잘 조직돼 있으니까 하다못해 이충재한테 압박을 가할 수 있었다. 철도노조 같은 곳에서는 삭감 반대 네트워크 같은 것이 만들어지지 못했다. 정치적으로 각성돼 있고 훈련받은 몇몇 반자본주의 투사들의 단단한 조직이 사업장에서 존재하지 않으면 비상한 상황이 닥쳤을 때 제대로 대응할 수 없다.

만약 그런 조직이 존재한다면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좌파 노조 지도자를 비판적으로 지지하며 기층에서 노동자들을 조직하고 특히 마르크스주의적 사상으로도 조직해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이런 미래를 위해 지금 투자할 가치가 있다.(▶ "남은 상반기 투쟁을 위한 4~5월 투쟁의 교훈"을 보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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