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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이주노조 규약 개정 강요에 맞서 굳건하게 싸워 나가며 연대를 확대하자

지난 6월 25일 대법원은 한국 정부의 이주노조 설립 불허 근거들이 타당하지 않다고 판결했다. 즉, 미등록 이주노동자도 노조 결성·가입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대법원은 여기에 몇 가지 단서를 달았다. 그 내용은 첫째, 이 판결이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체류와 취업 합법화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고, 둘째, 이주노조가 “정치 운동”을 한다면 노조를 불인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점을 보건대, 대법원 판결은 마냥 환영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박근혜 정부가 대법원의 판결에 기대 이주노조를 또 다시 불인정할 근거를 마련해 준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한 대로, 노동부는 대법원 판결의 단서 내용을 근거로 이주노조에게 설립 필증을 내주지 않고 있다. 그러면서 이주노조 규약에 고용허가제 폐지, 단속추방 반대,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쟁취를 명시한 것이 “정치 운동”에 해당한다며, 노조의 합법성을 인정받으려면 해당 조항을 삭제하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동안 이주노조가 고수해 온 투쟁 정신과 핵심 요구를 포기해야 노조 설립증을 내주겠다며 이주노조를 우롱하는 것이다. 정부의 규약 개정 강요는 이주노조에 대한 탄압이자 노조의 핵심적 요소인 자주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지난 10여년 동안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굳건하게 싸움을 이어왔다. ⓒ이미진

지금 정부가 문제 삼는 조항은 이주노동자들의 투쟁 속에서 만들어진 중요한 요구들이다.

예컨대 이주노조 건설에 초석을 놓은 이주노동자 활동가들은 고용허가제 도입 때부터 일관되게 이를 반대했다. 이 제도가 이주노동자의 노동권을 전혀 보장해 주지 않을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고용허가제가 시행된 지난 11년의 역사는 이런 입장이 옳았음을 보여줬다.

고용허가제 하에서 이주노동자들이 가장 고통 받는 문제 중 하나는 직장 이동을 사실상 금지한 것이다. 이주노동자들이 작업장에서 겪는 여러 불이익과 권리 침해를 개선하려면 사업주에게 속박당하지 않을 수 있게 직장 변경의 자유를 쟁취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단속추방 반대와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요구도 중요하다. 단속추방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의 생존 자체를 위협한다. 게다가 지금처럼 사업주 전화 한 통이면 언제든 비자를 박탈당할 수 있을 만큼 고용허가제 노동자들의 처지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단속추방 정책은 미등록 이주노동자는 말할 것도 없고 이주노동자 전체를 위축시키는 효과를 낸다.

이주노조 역대 간부들과 활동가들이 지난 10년 동안 표적 단속과 추방, 구금 등을 당하면서 이런 요구를 내걸고 투쟁했다. 이 투쟁은 이주노조를 지키기 위한 투쟁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비록 이와 같은 요구를 쟁취하지는 못했지만, 이런 저항 때문에 이주노조에 대한 지지와 연대를 광범하게 건설할 수 있었다.

요컨대, 정부의 규약 개정 강요는 그 동안 단속 추방 반대, 고용허가제 폐지 운동을 주도해온 이주노조를 ‘온건’하게 만들어 이주노동자들의 저항과 조직화, 즉 운동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것이 목적이다.

규약 개정 강요는 이주노조 길들이기

정부는 이주노조가 규약을 한 차례 개정해 제출했는데도, 성에 차지 않는다며 완전한 굴복을 강요하고 있다. 이주노조는 노동부의 추가 요구 직후 ‘더 이상 이런 부당한 강요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용감하게도 거부 입장을 결정했다.

그래서 여름 휴가 기간에 이주노조 농성이 시작됐음에도 여러 노조들, 노동운동 단체들, 진보적인 종교 단체들, 그리고 학생들의 지지와 연대가 신속하게 모이기 시작했다. 지지와 연대는 대구경북, 경기, 충청, 부산 등 여러 지역으로도 확대되고 있다.

이런 연대를 발판으로 이주노조가 투쟁을 지속해 간다면 이주노조와 이주노동자 권리에 대한 광범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건설해 나갈 수 있고, 이는 정부를 압박하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런데 최근 이주노조 지도부는 다시 한 번 규약 수정안을 8월 16일 노조 총회 안건으로 상정할 방침을 세웠다. 아직 수정안의 구체적 내용이 나오진 않았지만, 고용허가제 폐지 등 이주노조의 핵심 요구들을 삭제하고 이를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문구로 대체할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대폭 개정을 하지 않으면, 노동부는 또 다시 설립신고를 반려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주노조 간부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 다시 기나긴 투쟁과 정부 탄압 속에서 조직이 약화될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크게 느끼는 듯하다. 2003년 명동성당 농성 때부터 지금까지 투쟁에 연대하며 이주노조 동지들이 겪은 희생과 고통을 익히 아는 입장에서, 이주노조 간부들의 고심과 위기감을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냉철히 말해, 규약을 개정한다고 이런 어려움이 해결되거나 조직화의 길이 열릴 것이라 기대하긴 어렵다.

이주노조가 노동부의 설립신고 반려를 피하기 위해 규약을 개정하면, 정부는 이를 근거로 이주노조 활동에 제약을 가할 것이 뻔한다. 그리 되면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정부의 지속적인 압박과 제약 속에 이주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활동과 조합원 확대를 하는 데 어려움에 처할 것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정부가 한사코 규약 개정을 요구하며 이주노조를 길들이려 하는 것이다. 따라서 힘겹더라도 지금 이주노조 규약 개정 강요에 맞서야 소수일지라도 조직된 이주노동자들의 투지와 사기를 유지할 수 있고, 조직화 확대의 단초도 마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이주노조에 가장 적극적으로 연대하는 대구성서공단 노조가 포함된 ‘이주노동자 인권노동권 실현을 위한 대구경북 연대회의’가 “이주노조 합법화는 투쟁의 결과이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규약 개정 후퇴를 하지 말라고 간곡하게 촉구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모든 노동자는 하나"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의 확대를 위해서라도 이주노조는 굳건하게 싸워야한다. ⓒ이미진

연대 확대를 위해서도 후퇴하지 말아야

이주노조가 굳건하게 버텨야 노동운동의 연대도 더 강화해 갈 수 있다.

사실 이 점에서 민주노총이 산하 노조들에게 이 투쟁에 대한 지지와 연대에 적극 나서도록 촉구하기보다 이주노조의 규약 개정 추진을 “존중”한다는 입장에 머무는 것은 매우 아쉽다. 민주노총이 적극 나서 이주노조를 지지·엄호해야 이주노조도 버티고 싸울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의 강력한 지원으로 이주노조가 합법화를 쟁취한다면 민주노총의 이주노동자 전략 조직화 사업도 큰 성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아쉬움이 있지만,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의 연대를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이주노조가 굳건하게 저항하며 연대를 호소해야 한다. 그동안 이주노조, 성서공단노조 등 조직된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이 노동운동의 연대를 이끌어 냈듯이 말이다.

이주노동자 투쟁의 역사를 봐도, 그 악랄한 산업연수제를 폐지시킨 핵심 동력은 이주노동자들 자신의 저항이었다. 이들의 저항이 없었다면 산업연수제 폐지에 영향을 미친 광범한 사회적 지지와 연대를 이끌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한편, 일각에서는 노동부가 최종 이주노조 설립 신고를 반려해 다시 법률 소송을 해야 할 상황을 대비해 이주노조가 규약을 개정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이주노조 대법원 판결이 보여주듯, 법원은 법리적으로 명백한 판결을 내리는데 10년을 끌었다. 그러고도 정부가 재차 이주노조를 탄압할 명분까지 제공하는 유감스러운 내용을 포함했다.

결국 이주노조 합법화는 소송에 의존하기보다 투쟁과 연대를 강화해 쟁취해야 할 과제다.

그러려면 어려워도 이번 정부의 부당한 압박에 맞서 이주노조가 굳건하게 저항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주노조를 지키기 위해 한국의 노동운동이 적극 연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