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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가족이라는 병》:
왜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은 현실에서 보기 힘든가

제목부터 흥미로운 책 《가족이라는 병》이 번역 출간됐다. 저자 시모주 아키코는 일본 NHK 아나운서 출신으로 이름난 작가이자 평론가이자 수필가이다.

제목만 봐도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에서 저자는 ‘단란하고 행복한 가족’이라는 세간의 환상에 도전한다. 저자는 그런 가족은 대중 매체에서나 존재할 뿐, 현실에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가족이라는 병》 (시모주 아키코, 김난주 옮김, 살림)

저자는 자신과 지인들의 여러 경험을 들어 현실의 가족 모습을 묘사하면서, 오히려 많은 불화와 다툼의 중심에 가족이 있음을 보여 준다.

저자가 보기에, 오늘날 가족은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먼 존재”다.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성원 한 명 한 명의 생각이나 차이는 인정되기 어려운 공간이 가족이다. 가족이므로 무조건 이해해야(또는 이해받아야) 한다는 생각도 흔하다.

이렇게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개인은 매몰”되고 “희생”된다는 게 저자의 가장 큰 문제의식이다. 그리고 가족 구성원 각각을 하나의 인격체로 인정하지 않는 이런 태도가 가족의 위기를 낳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저자는 가족 구성원도 함께 사는 “타인”이라고 생각하고, 부모와 자식 간에 또는 부부 간에 서로 기대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불평불만은 모두 “기대”에서 시작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자녀를 자신의 가치관과 방식대로 키우려는 부모들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이것은 자식의 인격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고, 오히려 아이가 개성 있게 성장하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 저자는 자녀를 ‘엘리트’로 성장시키려 갖은 애를 쓰는 부모들이, “한 번 두 번 실패를 겪어 봐야 타인을 배려할 줄 알고 시련에도 굴하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고도 지적한다. ”내 가족만 좋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가족 이기주의”도 비판한다.

가족을 찬양하며 여성에게 아이를 낳으라고 장려하지만, 정작 아이를 낳으면 일을 포기해야만 하는 사회 구조는 바꾸려 하지는 않는 국가도 저자의 비판 대상이다.

결국, 가족의 이상적 형태에 얽매이거나 가족 안에서 개인들에게 의무와 역할을 지우기보다 가족 구성원 개개인에 주목하고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이 필요하다는 게 저자가 전달하려는 핵심 메시지다. 저자는 가족 구성원들이 얼마나 마음이 맞고 서로 이해하고 존중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보면 핏줄로 연결된 부부와 자식이라는 형태의 가족만을 가족으로 규정하는 것도 ‘낡은’ 생각이다.

이 책은 가족의 실제 모습을 묘사함으로써, 가족에 대한 환상을 부추기고 가족 가치를 강조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반기를 든다. 저자는 일본인들의 경험을 예로 들고 있지만, 마치 이 나라의 얘기를 하는 것처럼 들린다는 점도 흥미롭다. 사실 한국은 전체 범죄에서 ‘존속 범죄’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나라 중 하나로 알려져 있다. 많은 이들이 가족이 삶의 안식처가 되기를 기대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기대는 너무 쉽게 좌절되곤 한다.

한편, 한국에서도 갈수록 이른바 ‘정상 가족’(남녀 부모와 몇몇 자녀를 둔 가정)은 줄어들고, 1인 가족이나 한 부모 가족, 동거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증가하는 추세다. 최근 몇 년간 성소수자들의 가족구성권도 쟁점이 돼 왔다. 누구든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살면 그게 가족이라는 아주 단순하고도 올바른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점도 이 책의 장점이다.

그러나 자전적 수필 형식의 이 책에서 오늘날 가족의 위기에 대한 체계적이고 깊이 있는 분석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저자는 대체로 오늘날 가족의 위기를 개인의 잘못된 태도에서 비롯한 문제로 바라본다. 그래서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내세우지 말고 각각의 ‘개인’을 존중하라거나 서로 많은 기대를 하지 말라거나 고독을 견뎌야 한다는 등의 조언을 한다.

물론 배우자나 연인, 자식을 독립적 인격체로 대하는 태도는 매우 중요하다. 그렇게 하지 않는 태도가 종종 가족이나 연인들 사이의 불화를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곤 한다. 그러나 저자는 더 나아가 사람들이 왜 가족에 기대를 걸고 의지하는지, 그리고 종종 집착까지 하는지를 묻지 않는다.

무한 경쟁을 강요하는 척박한 자본주의의 현실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가족이 “무정한 세계의 안식처”가 되기를 바란다. 지배자들은 현재와 미래의 노동력을 재생산하고 늙거나 병든 이들을 돌보는 책임을 개별 가정에 떠넘기려고 가족의 소중함을 찬양한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가족에 대한 기대를 잔뜩 불어넣으면서도 정작 가족에 대한 물질적 지원은 거의 하지 않는다. 이 나라 보수 언론은 쪽방촌 독거 노인들의 빈곤한 생활을 다루면서 부모를 버린 자식들의 ‘패륜’을 한탄할 줄만 알지, 정작 복지 확대를 위해 재원을 쓰는 것은 “복지병” 운운하며 반대한다. 노동계급 가족이 처한 이런 물질적 현실 때문에 가족에 대한 기대는 금세 실망으로 바뀌기 쉽고, 이런 배경에서 가족 구성원들 사이의 불화와 다툼(심지어는 범죄까지)도 벌어지는 것이다.

이처럼 노동계급 가정이 처한 물질적 현실은 거의 주목하고 있지 않다는 점은 이 책의 약점이다.

주제
차별
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