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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자본주의의 취약함을 보여 주는 신흥국 위기

신흥국 경제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998년 신흥국 위기 이후 처음으로 브릭스(브라질·러시아·중국·남아프리카공화국)라고 불리는 경제들이 모두 위기에 처해 있다. 브릭스보다 규모가 작은 신흥국인 인도네시아·타이·터키·아르헨티나·베네수엘라 등의 사정도 마찬가지이다.

지난 13개월 동안 19개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1조 달러에 이른다. 2008~09년 공황 때의 갑절에 이르는 규모다.

중국 증시 폭락 중국 증시가 8년 만에 가장 큰 폭으로 떨어지며 세계경제에 충격을 줬다. ⓒJessie Wang (플리커)

그래서 달러 대비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올해 브라질 헤알화는 23퍼센트나 폭락했고, 러시아 루블화와 남아공 랜드화는 각각 10퍼센트 이상 하락했다. 카자흐스탄 텡게화는 25퍼센트 넘게 폭락했고, 터키 리라화도 19.9퍼센트나 떨어졌다.(연초 대비, 8월 20일 기준)

신흥국들의 통화 가치 하락을 신흥국판 “환율 전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물론 그런 측면이 있는 것은 부분적으로 사실이다. 중국이 자국의 수출 경쟁력 향상을 위해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리는 상황에서, 수출시장에서 중국과 경쟁하는 국가들도 환율을 높여 자국 상품의 가격을 낮추려 한다. 한국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최근의 위기는 실물 경제의 장기적인 위기(신흥국 정부들이 원치 않은)를 배경으로 한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실물 경제

신흥국 중 많은 나라가 석유나 금속 등 원료나 농산물 등을 수출해 왔다. 석유 등 원료의 가격이 높을 때 이 나라들은 많은 수입(收入)을 거둘 수 있었다. 당시 선진국의 자금이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신흥국으로 유입됐다.

그러나 높은 원료 가격 수준은 지속되지 못했다. 세계적으로 원료 가격이 떨어져 금이나 석유 등의 상품가격지수는 2002년 이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2011년 이후로 40퍼센트가량이나 떨어졌다. 특히, 한때 배럴당 1백 달러를 넘었던 석유 가격은 최근 40달러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상황은 러시아와 베네수엘라 등 원유 수출이 재정 수입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국가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

이런 원료 가격 하락은 세계경제의 장기 침체와 디플레이션 경향을 보여 주는 신호이다. 세계경제의 회복세가 약하고 생산이 증가하지 않아서, 원료에 대한 수요가 감소했다. 특히, 최근 중국 경제의 성장률 둔화는 더욱 직접적으로 원료 가격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7월 중국이 소비한 원유량은 하루 평균 1천12만 배럴로 지난해 같은 달에 견줘 4.2퍼센트 줄었다. 중국이 세계 원유 수요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수요 감소는 석유 가격 하락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작용한다.

원료 수출국들의 수입(收入)이 떨어지자, 투기 열풍을 일으켰던 선진국 자금도 빠져나가고 있다. 특히,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려는 낌새를 보이자 자금 유출은 더욱 빨라지고 있다.

이런 상황은 신흥국들의 부채 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 JP모건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신흥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기업·가계 부채 비율이 2007년 73퍼센트에서 2014년 말 1백6퍼센트로 33퍼센트포인트 증가했다. 2007년 이후 해마다 GDP의 5퍼센트씩 부채가 늘었는데, 상당히 빠른 속도이다. IMF는 부채 증가 속도가 GDP 대비 5퍼센트 이상이면 우발적 금융 위기가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한 바 있다.

이런 부채 증가는 2008년 공황을 낳았던 요인들이 더 큰 규모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세계 자본주의는 1970년대부터 그 전 시기보다 낮아진 이윤율 때문에 장기적 위기를 겪어 왔다. 낮은 이윤율 때문에 기업들의 생산적 투자가 부족해진 상황에서 자본가들은 비생산적 지출과 투기를 통해 생산적 투자의 부족분을 메우려 해 왔다. 또, 노동자와 대다수 사람들의 소득이 낮은 상황에서 민간대출로 소비를 지탱하는 것에 의존해 생산 활동을 늘리려 해 왔다. 이런 과정에서 투기 거품 증대와 부채 위기가 반복돼 왔다.

부채

2008년 경제 공황 이후에도 각국 정부는 부채로 경기를 부양하려는 정책을 유지했다. 박근혜 정부가 부동산 경기를 부양하려고 가계 부채를 늘리는 정책을 채택하고, 기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재정적자를 감수했던 것과 같은 식의 정책이 세계 곳곳에서 시행된 것이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이 낮아지면서 실물 경제가 침체하고,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다가오며 세계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는 상황에서 이런 부채는 더 큰 부담이 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신흥국의 외환보유액이 과거 어느 때보다 많아 급속한 침체에 빠질 가능성은 작다고 예상한다. 그러나 신흥국의 부채 규모가 크고 외환보유액이 지난 20년간 가장 빠른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을 주의해서 봐야 한다.

그러나 노동계급에 전가되는 고통도 이미 커지고 있다는 점을 봐야 한다. JP모건에 따르면 신흥국의 실업률은 2008년 공황 이후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올해 1월에 5.2퍼센트였던 신흥국들의 공식 실업률은 최근 5.7퍼센트로 상승했다.

최근 신용평가사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우리는 새 신용 주기의 [하향] 변곡점에 도달해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경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정확히 예측하는 것은 언제나 힘든 일이다. 지난 몇 년간 반복돼 왔듯이, 최근의 신흥국 위기도 국가 개입 덕분에 이럭저럭 파국은 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낮은 이윤율, 낮은 투자와 수요, 증가하는 부채는 여전하고 이 문제들은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다. 또, 지배계급이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강화해 손실을 만회하려 한다는 것도 명백하다. 한국도 이 추세의 일부라는 것은 두말하면 잔소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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