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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직 노동자들의 양보가 청년 실업 문제의 대안일까?

한국노총의 노사정위원회 복귀 이후 ‘사회연대전략’이 청년 실업의 대안이라는 목소리가 노골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한겨레〉 9월 6일자 “청년 일자리 위해 노사정이 공정하게 책임 비용 분담해야”라는 기사 제목만 봐도 그렇다.

이는 주요 청년단체 중 하나인 청년유니온의 주장이기도 하다. 청년유니온은 “한국노총이 청년 고용을 위해 제안한 ‘일자리연대협약’의 구상을 환영한다”며 “청년 실업을 두고 경제사회주체들이 공정하게 책임 분담” 하기를 촉구했다.

하지만 이미 2004년에도 한국노총은 노사정위에 참가해 “일자리만들기사회협약”에 합의했었다.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지금 청년 실업 문제는 더욱 심각해졌다. 한국노총의 노사정위 복귀는 청년 일자리를 위해 노동계가 양보해야 한다는 정부의 얄팍한 이간질을 합리화해 줄 뿐이다.

노사정위는 본질적으로 공정한 협상 자리가 될 수 없다. 국가는 태생적으로 자본 편이다. 노사정위는 정부가 대화 시늉을 하면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을 밀어붙이는 수단일 뿐이다. 노사정위는 1998년 발족 이후 17년 동안 정리해고 요건 완화, 비정규직 확산 등 오로지 노동자들의 양보만을 강요해 왔다.

청년유니온의 〈정부 청년고용 종합대책 진단〉을 보면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의 인과관계는 대단히 취약하고, 대기업 비용 절감의 낙수효과는 없다” 하고 옳게 비판한다. 그런데 청년유니온은 중소기업과 같은 “주변부”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려면 대기업·공공부문의 “중심부” 노동자들의 양보가 필요하다고 한다. “중심부” 노동자들이 청년들의 숙련 형성과 실업안전망 확대를 위해 임금인상분을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임금피크제와 청년 고용은 인과관계가 없다면서, “중심부”의 양보가 대안이라는 분석은 모순이다. 이런 모순은 낙수효과가 없는 이유를 잘못 설명하는 데서 비롯한다. 정부가 공격하는 대기업·유노조·정규직은 “상위 10퍼센트 일자리”이고 청년들은 “하위 90퍼센트 일자리”에 취직할 수 밖에 없으므로, 상위 일자리에 대한 공격은 청년들의 이해관계와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즉, “중심부”와 “주변부”의 “극단적 분절”로 정규직 노동자와 청년들의 이익이 사실상 다르다는 것이다. 그래서 중소기업과 같은 열악한 “주변부” 노동조건을 끌어올리는 것을 핵심 대안으로 제시한다.

물론 “주변부” 노동조건 개선은 청년 실업 문제 해결을 위해 필요하다. 그러나 그것을 위한 “중심부” 양보론은 노동계급 전체의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주장이다.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해고는 쉽게, 비정규직은 많이, 임금은 낮게’ 하는 것이다. 만약, 정부의 뜻대로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들부터 노동조건이 개악되면, 양질의 일자리는 더욱 줄어들고 당연히 그런 일자리를 창출할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게 된다. 정부가 앞장서 그나마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일자리도 공격하는 마당에 양질의 일자리를 알아서 제공해줄 리 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지키는 것과 양질의 일자리 창출 역시 연결돼 있다.

또한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순순히 양보한다면, 노조도 없는 영세 사업장 같은 상대적으로 싸울 힘이 적은 노동자들의 조건은 더욱 쉽게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정부의 공격은 모든 노동자들을 겨냥한다. 청년층 일자리 3분의 1이 비정규직이고, 27퍼센트가 중위임금의 3분의 2도 되지 않는다. 정부는 지난해 5인 미만 사업장의 청년인턴 채용을 허용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 구조 개악은 청년들의 노동조건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의 공격이 “상위 10퍼센트에게만” 해당한다고 봐서는 안 된다.

청년 실업은 자본주의 고유의 산업예비군 창출 경향만이 아니라, 이윤을 늘리려고 신규 채용은 가급적 하지 않은 채 기존의 노동자들을 혹사시켜 온 정부와 기업주 때문이다.

그러므로 청년유니온이 주장하는 “노동운동으로부터의 사회연대전략”은 청년 실업 문제의 책임이 정규직 노동자들에게 있다는 정부의 주장에 힘을 실어줄 뿐이다.

청년유니온은 “중심부”의 양보가 노동계의 협상력을 높여 노사정위를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양보의 혜택이 모두에게 돌아갈 수 있다는 사회연대전략은 비현실적이다. 한국노총이 제시한 ‘일자리연대협약’의 핵심 내용은 고액노동자의 소득과 대기업 사내유보금에 세금을 매겨 청년고용개선기금을 조성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선의로 돈을 분담한들, 그 돈이 우리에게 돌아오리란 보장은 결코 없다.

이를 실행하는 주체는 국가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청년들에게 이롭게 돈을 쓸 생각이 전혀 없다. 정부는 복지를 축소하고 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떠넘겨 왔다. 비정규직 확대, 임금 등 노동조건 악화로 기업주들의 이윤을 보장해 줬을 뿐이다. 무엇보다 정부의 청년고용대책은 저질 일자리 양산 대책이다. 정부는 청년 실업을 해결할 의지가 없다. 오히려 청년들에게 “눈높이를 낮추라”고 강요해 왔다.(최근 대학 구조조정은 강제로 눈높이를 낮추게 하는 조처라 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의 공격을 저지하고, 정책의 방향을 새롭게 바꾸지 않는 이상 정부가 더 많은 노동자나 청년 실업자들에게 이로운 정책을 할 리는 없다.

노사정 타협이 윈윈으로 가능하다는 생각에는 국가가 공정한 협상이 가능한 중립지대라는 잘못된 전제가 깔려 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서 국가가 복지를 실행하는 것은 결코 중립적이어서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중요한 개혁은 강력한 계급투쟁이 있었을 때에야 가능했다. 심각한 경제위기 시대에는 더욱 그렇다. 박근혜 정부가 청년 일자리 해결 운운하며 정규직 노동자들을 때리는 것은 결코 청년 실업자들을 진심으로 아껴서가 아니다. 잘 조직된 부문의 노동자들을 다른 사회세력으로부터 고립시켜, 노동자들의 고유한 힘을 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해선 국가가 나서서 국가부문의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한국은 공공서비스가 매우 열악하다. 최근 서울시 지하철 2호선 안전점검요원이 인력 부족으로 사망한 사건에도 알 수 있듯이, 공공부문의 인력난은 심각하다. 따라서 정부가 나서서 공공부문에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경제위기 고통전가에 혈안이 된 정부에게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강제하려면, 강력한 노동자 투쟁으로 밀어붙여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의 노동조건을 지키는 투쟁에서 출발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단결할수록 투쟁은 더 폭넓고 강력해져서 전반적인 노동유연화를 꾀하는 정부에 맞설 수 있다. 이러한 노동조건의 전반적 향상 위에서 노조도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요구하고 나설 자신감을 얻는다. 실제로 신규 채용 확대는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의 오랜 요구이기도 하다.

그런데 청년유니온이 주장하는 사회연대전략은 노동계급의 단결을 저해한다. 이들의 주장은 “중소기업의 안정적인 성장을 촉진”해야 하므로 중소기업과의 상생을 위해 대기업 노동자가 양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 화해할 수 없는 자본가와 노동계급의 협력을 위해, 일부 노동자들에게 양보를 강요하는 전형적인 ‘사회연대전략’의 한계를 보여 준다.

청년 실업 해결을 위해서 청년들이 스스로 투쟁의 주체로 나서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럴 때조차 진정한 요구 성취를 위해서는 조직 노동운동과의 연대가 중요하다. 따라서 청년들도 노동시장 구조 개악 저지를 위한 노동자 투쟁을 지지하며, 노동계급의 단결을 위해 노동운동과 연대해야 한다. 청년 실업 해결을 요구하는 광범한 투쟁은 청년과 노동자들이 단결할 때 가장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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