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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노조 규약시정과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

지난 8월 20일 이주노조는 서울지방노동청에서 노조 설립 필증을 발급받았다. 서울지방노동청은 대법원의 이주노조 합법화 판결 이후 ‘고용허가제 폐지, 단속·추방 반대,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같은 요구를 규약에서 빼라는 부당한 요구를 해 왔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이주노조가 정치 활동을 목적으로 한 경우에는 “설립 신고서를 반려”할 수 있다고 명시하며 뒷문을 열어 줬고 이를 배경으로 노동부는 이런 공격을 벌였다.

고용허가제 폐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를 위한 투쟁과 연대는 더욱 강화돼야 한다 8월 30일 이주노동자 행진. ⓒ사진 조승진

그러나 고용허가제 폐지나 미등록 이주노동자의 합법화는 이주노조 조합원들의 권리 향상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이는 온전한 노조 활동을 보장받기 위해서도 필요한 요구들이다. 이런 요구들은 이주노조의 기본 정신이자 이주노조가 계승해 온 피땀 어린 투쟁의 산물이다.

이주노조는 노동부 앞 농성까지 벌이며 노동부의 부당한 요구에 맞섰다. 이주노조의 정당한 항의가 시작되자 연대도 늘기 시작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주노조는 노동부의 요구를 수용해 규약에서 고용허가제 폐지, 단속·추방 반대,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요구를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지위향상”이라는 추상적 문구로 수정했다.

이주노조 간부들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또다시 기나긴 투쟁과 정부 탄압 속에서 조직이 약화될 상황에 처할 것’이라는 위기감을 크게 느낀 듯하다. 물론 2003년 명동성당 농성 때부터 지금까지 이주노조 동지들이 겪은 희생과 고통을 익히 알기 때문에, 우리는 이주노조 간부들의 고심과 위기감을 이해 못하는 바가 아니다.

그러나 이 결정이 옳았다거나 불가피했다고 볼 수는 없다. 근본적으로 정부의 규약 개정 강요는 법적으로 노조 설립 자체를 막기는 어려운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들의 저항과 조직화, 즉 운동 자체를 약화시키려는 것이 목적이었다.

정부는 앞으로 규약 개정을 근거로 이주노조 활동에 제약을 가하려 할 것이다. 이주노조 활동가들은 정부의 지속적인 압박과 제약 속에 이주노동자 권리 향상을 위한 활동과 조합원 확대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물론 이주노조에 연대해 온 여러 단체들도 이주노조의 규약시정을 대체로 수긍한다. 급진좌파라 할 수 있는 노동계급정당추진위나 사회진보연대도 기관지를 통해 규약시정이 큰 문제는 아니며 합법 상황을 활용해 조직화를 잘해 나가자는 기사를 냈다.

노동계급정당추진위의 〈변혁정치〉에는 “규약을 변경하고 안 하고가 핵심이 아니”라며 이번 규약 변경을 통한 합법화가 “노동조건 개선을 넘어 인종차별을 철폐하기 위한 싸움으로 나가기 위한 시금석”을 놓았다고 두둔하는 기사가 실렸다. 사회진보연대는 〈오늘보다〉에서 이번 결정이 “대중적인 조직화”를 위한 선택이라고 했다.

그동안 이주노조가 정부에 맞서 혹독한 시련에도 버티며 잘 싸워 왔으니, 이제는 각종 제약을 감수하고서라도 노조 합법화를 통해 조직을 확대해 갈 때가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의 이주노동자 정책 기조는 이주노동자 권리를 더 제약하고 규제를 강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려고 더 많은 이주노동자를 들여오면서도, 경제 침체 상황에서 이주노동자를 저임금, 유연 노동자로 활용하기 위해 규제는 더욱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들의 정주를 법률로 금지하고 출입국관리법을 개악해 규제와 통제를 강화하려 한다.

따라서 정부의 탄압이 계속될 상황에서 정부의 요구를 수용해 합법화한 뒤에 그 노조를 활용해 권리를 확보하겠다는 전략은 한계에 부딪히기 쉽다. 이주노조 내에서 온건화 압력도 커질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좌파들이 이주노조의 규약 시정을 두둔하는 것은 단견이다.

오히려 이주노조와 좌파 활동가들은 정부의 이주노조 ‘길들이기’에 맞서며 투쟁과 연대를 강화해야 이주노조의 실질적인 합법화를 쟁취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다행히 이주노조도 고용허가제 폐지,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등 정부에 맞선 투쟁을 지속해 나갈 것임을 밝히고 있다. 이를 위한 투쟁과 연대는 앞으로 더욱 강화돼야 한다.

상호 토론

그런데 한편에서는 한국의 연대단체가 이주노조의 입장을 비판하는 것을 불편해 한다. 이주노조의 활동에 한국 활동가들이 자신의 입장을 내고 설득·비판하려는 것이 이주노동자 운동의 ‘자율성’을 침해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주노동자 투쟁과 운동에서 당사자들의 의견과 리더십은 당연히 필요하고, 연대의 출발로서 이를 존중하는 동지적 자세로 임하는 것은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의 자기해방”을 강조했듯 노동자들은 스스로 투쟁하고 조직하는 경험을 통해 진정한 계급적 각성을 이루고 운동을 성장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 이주노동자 운동의 역사에서도 2000년대 초반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혜적 태도에 맞서 스스로 리더십을 형성하기 위한 운동 내 ‘투쟁’이 있었고, 좌파들이 이를 지지한 것은 옳았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시혜적 태도는 진정한 노동계급 연대와는 다르기 때문이다. 시혜적 태도가 아니라 동지적 연대의 관점을 취해야 이주노동자와 한국인들이 노동운동 안에서 단결할 수 있다.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은 한국인들보다 더 차별받고 천대받는 위치에 있다. 좌파들이 이런 점을 세심하게 고려하며 이주노동자 운동에 연대하는 것은 옳다. 레닌도 억압받는 민족의 민족자결권을 지지하면서 억압하는 민족의 노동계급과 억압받는 민족의 노동계급의 요구는 강조점에 차이가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이주노동자들을 존중한다는 이런 태도가 이주노동자 당사자들이 아니라면 이 운동과 투쟁에 주장과 의견을 내놔선 안 된다는 식이어서는 곤란하다.

이주노동자 운동은 한국 노동계급 운동의 중요한 일부로서 계급의 나머지 부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1995년의 명동성당 쇠사슬 농성과 2003~2004년 투쟁은 각각 김영삼 정부와 노무현 정부의 반 노동자성과 반 인권성을 폭로해 한국인 노동자들의 투지와 자신감을 높이기도 했다. 반대로 한국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주노동자들의 투쟁에 자극을 주기도 한다.

경제위기 시기에 한국 지배자들이 이주노동자들에게 경제 위기의 책임을 떠넘기며 전체 노동운동을 약화시키려는 상황에서 이주노동자 운동은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정부의 이간질에 맞서 이주노동자와 한국 노동자의 단결을 위한 좌파 활동가들의 노력도 더욱 강화돼야 한다.

따라서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 활동가들이 전체 계급투쟁을 전진시키려는 과제를 놓고 상호 토론을 강화하는 것은 운동의 발전과 승리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다. 이런 과정은 지배자들이 노동자들을 분열시키려는 것에 맞서 계급적인 단결을 강화하는 것이고, 운동의 민주주의를 강화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각각의 투쟁을 자율적인 영역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서로 영향을 미치는 전체의 일부로 생각하며 개입하려는 태도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