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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주의로 세상 보기:
노동계급에겐 사회 변화의 잠재력이 있다

유럽 지배자들이 그리스 시리자 정부를 압박하는 과정에서 ‘민주주의’의 한계가 드러났다. “기관들”, 즉 유럽연합(EU),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중앙은행(ECB)을 운영하는 자들은 선출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이 그리스 노동자 계급과 서민들에게 내핍을 강요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진정한 권력은 의회가 아니라 선출되지 않은 지배계급(핵심적으로 억만장자와 국가관료)에게 있다.

그러나 그리스의 위기는 노동자들이 잠재력을 갖고 있음도 보여 줬다. 계급 사회를 끝장낼 수 있는 잠재력 말이다.

노동자들은 자본가와 그들의 국가에 도전할 수 있는 거대한 힘이 있다. 자본주의가 작동하는 방식 때문이다. 자본가들은 노동자들에게 의존해 이윤을 얻는다. 노동자들은 일할 능력(노동력)을 팔지만 자본가들이 지급하는 대가는 노동자들이 생산한 부(富)의 극히 일부이다. 이것이 칼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가 뜻하는 바이다. 착취당하는 덕분에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의 이윤 획득을 끊을 수 있는 독특한 힘이 있는 사회적 위치를 점하게 됐다.

사회주의자들은 자본주의에 맞선 저항과 자본가의 공격에 맞선 노동계급의 저항을 모두 지지한다. 집회·시위 등 직접행동은 저항의 중요한 일부이고, 다른 사람들에게 싸울 자신감을 준다. 그러나 조직 노동자들의 행동은 더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윤에 타격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2013년 말 철도노조가 철도 민영화 반대 파업을 벌였다. 이 파업이 3주째 접어들며 앞서 말한 노동자들의 힘을 힐끗 보여 줬다. 과거로 좀더 거슬러 올라가 1996~97년 노동법 개악 반대 파업 때도 우리는 그 힘을 힐끗 볼 수 있었다.

자본주의는 마르크스가 활동하던 때와 크게 달라졌다. 그러나 경쟁 때문에 자본가들은 더 새롭고 더 수익성 좋은 생산 방법을 찾아 경쟁자들을 물리쳐야 한다는 압박을 항상 받는다.

변화

이런 변화로 노동계급도 변한 듯하다. 영국에 남아 있던 석탄 광산 두 곳은 이제 폐광이 됐다. 오늘날에는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금융과 서비스 부문에서 일한다.

그러나 그 노동자들도 여전히 자본가들의 이윤 획득에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노동자들의 행동은 정부와 그 부자 친구들을 정치 위기로 몰아넣을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2013년 말 철도노조 파업은 박근혜 정부에 대한 대중의 정치적 분노가 표출되는 구심이 됐다.

물론 모든 노동자들이 서울의 운송망을 폐쇄하거나 한 제조업 부문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느 부문에서 일하든 노동자들의 행동은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노동자들은 진정한 개혁을 쟁취하고 지배자들의 공격을 물리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노동자들은 자본주의 체제에 근본적으로 도전할 수도 있다. 몇 년 전 이집트 혁명은 그런 가능성을 보여 줬다. 2011년 초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 점거 운동은 혁명의 중심이었다. 그러나 세력관계를 결정적으로 바꿔 혐오스런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를 몰아낸 것은 방직 공장과 수에즈운하 노동자들의 파업이었다.

이와 같은 대규모 투쟁은 노동자들이 사회의 운영 방식에 대한 더 큰 질문을 던지며 오랜 고정관념에 도전하게 만든다. 스스로 조직하기 시작하면, 노동자들은 자본가들 없이도 사회를 운영할 힘이 자신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부분적으로는 이 때문에 사회주의자들이 현장 조합원들에게 노동조합 관료에 의존할 것이 아니라 [이들이 서둘러 파업을 끝내지 못하도록] 스스로 파업을 다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2013년 6월 그리스 지배계급이 국영 방송사 ERT를 폐쇄했을 때 노동자들은 방송국을 점거하고 스스로 운영했다. 한 ERT 노동자는 5개월 뒤 이렇게 말했다. “ERT는 이제 투쟁을 지지하는 수단입니다. 파업과 시위를 모두 방송합니다. 정부는 감히 시위 진압 경찰을 보낼 생각을 못 합니다. 노동계급 연대 덕분입니다.”

투쟁은 노동자들의 관념을 변화시킬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동자들이 예전의 관념을 모두 버린다는 뜻은 아니다. 노동자들은 여전히 시스템을 타도할 생각보다는 개혁하려 애쓰거나, 구체제의 야당 인사가 새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1917년 2월 러시아 혁명은 증오스런 차르를 타도하고 임시정부를 세웠다. 많은 노동자들이 처음에는 주로 기업가들로 이뤄진 임시정부가 변화를 가져오길 기대했다.

국가 조직

그러나 기대했던 변화는 너무 더뎠고, 노동자들은 소비에트라는 그들 자신의 조직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있음을 알게 되면서 노동자들의 관념도 변했다.

투쟁이 혁명으로 나아가도록 하려면 혁명적 사회주의자들이 조직돼 있어야 한다. 러시아에서는 볼셰비키당이 노동자들의 권력 장악과 노동자 국가 건설에서 핵심적인 구실을 했다. 볼셰비키는 기존 자본주의 국가기구 인수가 대안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흔히 국가는 중립이라고들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국가는 자본가 계급의 이익을 지키는 자본주의 국가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국가를 “전체 부르주아지의 공동 관심사를 다루는 집행위원회일 뿐”이라고 묘사했다.

오늘날에도 이 묘사가 들어맞는다. 자본가들은 정치인들에게 로비해 기업에 득이 되는 정책을 통과시킨다. 의료·철도 민영화나, 부동산업 규제 폐지나, 법인세 감면 따위의 정책들 말이다.

정치인들이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만, 진정한 권력은 경제를 지배하는 대기업과 은행의 손에 있다. 이들이 무엇을 생산하고, 어디에 투자하고, 어떻게 자원을 배분할지를 결정한다. 이것이 현 지배 체제의 적나라한 현실이다. 그러나 이것은 선출된 정부를 기업들이 ‘지배’한다는 식의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다수 정치인과 국가 관료는 대기업 경영진과 배경이 비슷하다. 고위 정치인, 고위 공무원, 은행 임원, 기업 C-레벨(경영진) 사이에는 일종의 회전문이 있어 돌아가며 한 자리씩 차지한다. 그래서 좀더 좌파적인 정부를 세운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 것이다.

어떤 성향의 정부가 선출되더라도 지배자들의 부와 권력은 온전히 남는다. 정부가 아주 사소한 개혁이라도 하려 하면 자본가들은 정부를 협박한다. 경영진 보너스가 줄거나 기업 규제가 강화되면 자본가들은 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겠다고 협박한다. 정부가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하면 자본가들은 일자리를 줄이고 폐업을 하겠다고 위협한다. 그래서 지금까지 좌파 정부들이 결국에는 자본주의 체제를 관리하고 자본가들의 국가를 유지하는 데서 멈춘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문제는 자본주의의 구조에 있다. 국가 기구는 자본가들을 지원하기 위해 발전해 왔다. 자본주의는 “자유시장”이라고들 하지만, 사실 대기업들은 항상 국가와 긴밀한 관계를 맺었다.

확장

국가는 자본가들의 사업을 보호하고 체제 확장에 필요한 의료·교육·운송 같은 사회간접자본을 지원한다. 오늘날 국가나 국가들의 동맹은 ‘자국’ 자본가들의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한다. 그들은 계약을 체결하거나, 세금을 낮추거나, 저임금 유지를 위한 규제 완화를 놓고 경쟁한다.

노동자들의 처지가 개선되는 좀더 나은 자본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착취와 경쟁은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이다. 이 본질은 개혁될 수 없다. 기업은 이윤을 극대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받고, 이에 실패하면 망한다.

마르크스는 이런 경쟁 압력 때문에 지배자들이 “축적을 위한 축적”을 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본가들은 자신의 경제력을 이용해 체제를 유지하고 체제에 대한 도전을 분쇄한다. 그것이 좌파 정부의 도전이든 노동자들의 파업이든 말이다. 자본가들의 국가는 경찰·보안기관·군대·법원 같은 억압 기구를 이용해 저항을 진압한다.

지배자들은 우리가 자본가들은 전능하고 우리는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믿길 바란다. 또한 우리가 스스로 사회를 운영할 수 없고 사회주의는 재앙이라고 믿길 바란다.

그러나 현실에서 그들은 환경을 파괴하고 빈곤·전쟁·인종차별을 낳는 체제의 운영자들일 뿐이다.

자본가들은 끊임없는 상호 경쟁 때문에 노동자들을 계속 공격해야 하고, 바로 이 때문에 투쟁은 계속 일어난다. 혁명은 앞으로도 계속 분출할 것이다. 진정한 물음은 과연 혁명이 승리할 것이냐 아니냐이다. 노동자들은 자본가들을 타도할 잠재력이 있다. 그러나 그 잠재력을 발휘해 자본가들을 영원히 권좌에서 끌어내리려면 노동자들은 조직해야 한다.

* 이 글은 영국 반자본주의 주간지 〈소셜리스트 워커〉 2461호에 실린 토마시 텡글리-에번스, ‘Who has power in society?’를 번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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