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복지국가와 사회민주주의 ①:
스웨덴 복지국가는 건재한가?
〈노동자 연대〉 구독
[편집자 주] 총선을 반년 앞두고 진보진영과 노동운동 안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과 복지국가 모델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2000년대 이후 진보진영 내에서는 ‘스웨덴 모델’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왔는데 〈노동자 연대〉는 앞으로 다섯 차례에 걸쳐 스웨덴 모델의 역사와 현재를 살펴보는 기사를 연재할 예정이다. 이번 연재가 오늘날 한국 노동계급에게 필요한 교훈을 이끌어내는 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① 스웨덴 복지국가는 건재한가?
② 스웨덴 모델 1- 살쮀바덴 협약과 계급타협 전략(1)
③ 스웨덴 모델 1- 살쮀바덴 협약과 계급타협 전략(2)
④ 스웨덴 모델 2 – 연대임금정책과 렌-마이드너 모델 : 누가 이익을 얻었나?
⑤ 스웨덴 모델 3 – 임노동자기금 : 살아있는 호랑이의 발톱을 하나씩 뽑을 수 있을까?
⑥ 스웨덴 사민당 – 누구의 정당인가?
넉넉한 노령연금, 보육비 지원과 별도로 지급되는 아동수당, 최장 3백 일 동안 임금의 80퍼센트를 지급하는 실업수당
오늘날 한국 사회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처럼 관대한 스웨덴의 복지 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스웨덴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진보진영 내에서 ‘스웨덴 모델’이 주목받는 핵심 이유다.
1990년대에 스웨덴이 심각한 경제 위기를 겪으며 복지가 대폭 삭감되자, 특히 주요 선진국 정부들은 ‘복지병’이 스웨덴 경제 위기를 낳았다며 자국에서 시행하는 복지 삭감과 신자유주의 정책을 정당화했다. 그러나 여전히 스웨덴이 세계 최고 수준의 복지 제도를 유지하면서도 높은 경제 성장율을 기록한다는 점은 복지와 성장이 반비례 관계가 아님을 보여 주는 반증 사례가 되고 있다. 일부 개혁주의 지식인들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분배를 통한 성장론’ 혹은 ‘소득 주도 성장론’ 등을 경제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성장과 분배
스웨덴은 심지어 2008년 이후 세계경제 위기 속에도 높은 경제 성장율을 유지하고 1990년대에 삭감된 복지 혜택을 일부 회복시켰다. 그러자 스웨덴은 다른 선진국들과 달리 ‘성장과 분배’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붙잡은 모델로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그런데 국내 일부 개혁주의 지식인들은 스웨덴 복지 제도를 소개하고 운동의 요구로 제시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스웨덴 사민당의 정책 일반을 오늘날 한국의 진보진영이 따라야 할 ‘모델’로 삼자고 제안한다. 복지 제도가 한 나라의 재정 정책이나 조세 제도, 노동 정책 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에 단순히 복지 제도만 따라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특히 계급투쟁보다는 개혁주의 정당의 집권을 사회 개혁의 주요 동력으로 여기는 온건 개혁주의 지도자들은 1970년대와 1990년대 스웨덴에서 시행된 대대적인 복지 삭감에 대해 비판을 아낀다. “당시 정치, 경제, 인구 등의 상황에서 불가피한 조치
그러다 보니, 스웨덴에서 우파가 집권해 시행한 복지 ‘개혁’도 비판하기 어려워 한다. 일부 지식인들은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각종 제도의 ‘경로 의존성’ 때문에 우파 정부라도 이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고 주장한다. “
물론 스웨덴 복지국가의 후퇴를 ‘근본적 후퇴’라 말하기는 어렵다. 다른 선진국들에 견줘도 여전히 높은 수준의 복지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물론이고, 애당초 스웨덴 복지국가가 여타의 자본주의 국가와 근본에서 다른 사회였던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스웨덴 복지국가의 전성기인 전후 20년은 영국 등 다른 유럽 복지국가들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심지어 당시에는 미국에서조차 복지 지출이 늘었다. 이 시기에 대부분의 국가들은 국가가 경제에 깊숙이 개입하는 국가자본주의적 성장 전략을 추구했고 복지 지출을 늘리면서도 꾸준히 성장을 이어갔다.
또 개혁주의 정치인들이나 국가 관료의 입장이 아니라 평범한 노동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변화는 거의 없었다”는 평가는 지나치게 관대하다. 1960~70년대 스웨덴 노동자들의 처지와 1990~2010년대 스웨덴 노동자들의 처지는 상당히 다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전후 스웨덴 모델의 입안자로 평가되는 루돌프 마이드너조차 1998년에 한 인터뷰에서 “오늘날 스웨덴 모델은 그 목표나 응용 모두에서 작동하고 있지 않다”고 비판한 바 있다.
일부 개혁주의 지식인들은 스웨덴 정부의 복지 지출 규모가 크게 줄지 않았다는 점을 주요 논거로 삼아 스웨덴 복지국가가 건재하다고 평가한다.
그러나 똑같은 돈을 쓰면서도 얼마나 복지를 엉망으로 만들 수 있는지는 미국의 의료 체계가 잘 보여 주고 있다. 게다가 스웨덴은 지난 20년 사이에 복지 지출 규모가 줄어든 몇 안 되는 나라들 중 하나다. 스웨덴 정부의 복지 지출 규모는 1990년대 세계 1위에서 현재 5위로 떨어졌다.
노르웨이 노동운동가인 아스비예른 발은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현실에 대해 이렇게 지적한다. “우리가 유람선의 꼭대기층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문제는 지금 그 유람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OECD는 2014년에 발표한 보고서에서 스웨덴을 세계에서 소득불평등이 가장 빠르게 커지는 나라라고 지목했다.
스웨덴의 복지 제도가 실제로 후퇴했다고 지적하는 것은 단지 “개량주의”라는 낙인을 찍기 위한 트집 잡기가 아니다. 오건호나 신광영 류의 관점이 노동자들이 자신의 조건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데에서 실질적 해악을 끼칠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복지 축소에 맞선 스웨덴 노동자들의 저항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비록 지금은 그 저항이 주로 선거를 통해 수동적으로 표현되는 수준이지만 말이다.
스웨덴 사민당은 1980년대에 추진한 민영화와 규제완화 정책에 대한 반감으로 1991년 선거에서 패배했고 2006년과 2010년 선거에서도 패배했다. 2014년 선거에서 재집권에 성공했지만 득표는 역대 최악의 참패를 기록한 2010년에 비해 고작 0.3퍼센트
△2013년 스톡홀름에서 벌어진 이민자 소요 사태는 복지의 낙원으로 알려진 스웨덴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출처 Telefonkiosk/위키피디아
이런 상황에서 사민당은 물론이고 우파 정당들의 복지 삭감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것은 스웨덴의 노동자들에게는 저항하지 말라고 하는 것밖에 안 된다.
또 다른 해악은 결국 경제 위기 상황에서 복지와 노동조건 후퇴는 “불가피한 조처”라는 국내 지배자들의 공격에 문을 열어 주는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노동자들이 스스로 투쟁을 통해 조건을 개선하는 것이 아니라 개혁주의 정당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노동자들을 수동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사실 이 점이야말로 스웨덴 노동자들 뿐 아니라 유럽의 노동자들이 반세기 가까이 겪은 커다란 난점이었다.
주류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자신의 지지 기반인 조직 노동자들을 공격하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당연히 곳곳에서 저항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주류 개혁주의 정당과 상호 의존관계에 있는 노동조합 지도자들이 투쟁을 배신하거나 자기제한적 전술로 패배를 자초하면서 노동자 투쟁은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런 상황에서는 새로운 정치적 대안 건설도 힘을 얻기 어렵다.
반면, 지난 10년 사이에 계급투쟁 수준이 가장 높았던 그리스에서는 시리자라는 좌파 개혁주의 정당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그리스 노동자들은 그 시리자조차 배신하는 것을 보며 또 다른 선택의 기로에 섰지만 말이다.
다음 호에서는 한때 세계 최고 수준의 전투성을 자랑하던 스웨덴의 노동조합이 왜 이처럼 무기력해졌는지 살펴볼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스웨덴의 복지 후퇴
공공서비스 민영화
1988년 세계 최초의 철도 수직분할
연금개악
소득비례연금은 전액 고용주가 부담하던 것을 노동자들도 보험료로 임금의 9.25퍼센트를 내도록 했다. 기초연금도 전액 고용주 부담이던 것을 조세로 부담하기로 했다. 사적연금 활성화 정책으로 1980년 말에는 10퍼센트 정도이던 민간 연금 보험 가입 비율이 최근 20퍼센트 정도로 늘었다.
실업수당
사민당이 실업수당의 임금 대체율을 85퍼센트에서 75퍼센트로 낮춘 데 이어 2007년 보수연정은 이를 65퍼센트 수준으로 낮췄다. 실업급여를 받기 위한 대기기간을 5일에서 7일로 늘렸고, 2005년 13.5퍼센트였던 노동자들의 실업보험 부담 비율을 30퍼센트로 인상했다. 물가상승율에 연동해서 지급하던 자녀수당과 실업수당은 물가상승율보다 낮게 증가하도록 책정됐다. 2006년 이후 병가수당의 자격요건이 대폭 강화돼 외상이나 암 등 ‘검증 가능한’ 환자만 질병수당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노인 간병
노인 간병은 스웨덴 공공부문의 중심적인 영역이었지만 1992년 보수당 정부는 외부 민간 기관에게 외주화하거나 민간 기관이 직접 담당하도록 했다. 또 의료재정 부담을 줄인다며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간병인들이 담당하는 사회서비스로 바꿨다. 그 결과 병상은 크게 줄어 1988년에 인구 1천 명당 병상이 12개였던 것이 1998년에는 4개로 줄어들었다. 사설기관의 전체 간병인력은 꾸준히 줄고 있다.
의료
1984년에 사적 의료보험이 도입돼 2014년 현재 전체 의료비 중에서 사적으로 부담하는 의료비는 19퍼센트를 차지한다. 1985년에서 2005년 사이에 스웨덴의 의료비 중 공공기금 의존율은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낮아졌다. 1971년 전면 국유화된 약국은 2006년에 다시 민영화됐다. 보수당은 1991년 사립병원 설립을 허용해 현재 1차 의료기관의 25퍼센트가량이 민간의료기관이다. 사민당이 1994년에 이를 금지했지만 이 사립병원들은 남아 있다. 1994년의 의료기관 통폐합 등 구조조정과 정리해고로 의사의 30퍼센트 이상이 줄어들었다. 2008년 이후 다시 고용을 늘리려 했지만 인력 양성 기간이 길어 현재 환자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교육
1988년 사민당이 사립학교 설립을 허용한 데 이어 보수연정은 학교 재정의 15퍼센트를 등록금으로 걷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조세
1991년과 1994년 조세 개혁으로 노동소득에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고 자본소득에는 비례세율을 적용했다. 간접세를 대폭 인상했다
최연혁 외, 《주요국의 사회보장제도 – 스웨덴》,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2
양재진 외, 《복지국가의 조세와 정치》, 집문당, 2015
신광영,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한울 아카데미, 2015
신정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 사평 아카데미, 2012
아스비예른 발, 《지금 복지국가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부글북스, 2012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