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심리학은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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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턴가 서점가에 진화심리학과 관련된 책이 즐비하다. 진화심리학에 기댄 칼럼들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그런 글들을 읽고 있으면 그럴싸해 보인다. 답답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여성은, 남성은, 혹은 인간은 진화상 원래 그렇다’는 얘기를 들으면 왠지 모를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싸한 것과 정말 그런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경우 남성 중심적 사고나 체제 옹호적 사고를 용인할 수 있기에 더더욱 비판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 옹호자들도 내치는 조야한 예들은 차치하고, 우선 진화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이비드 버스
그는 성추행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여성과 일시적 성관계를 맺으려는
자연선택
물론 진화심리학자들이 늘 강조하듯이 모든 마음이 다 이런 적응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적응의 결과물이 많건 적건 간에, 이러한 주장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과학적으로 두 가지가 입증돼야 한다.
우선 마음
진화심리학을 받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는 “인간의 마음은, 오랜 수렵·채집기 동안 우리 조상들에게 끊임없이 부과됐던 적응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계산 기관들의 체계”라는 핑커
이렇게 진화의 결과물로 마음을 보게 되면 적어도 모듈에 담긴 우리의 마음은 현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모듈은 농업이 발명된 1만 년 전의 환경과도 상관이 없다. 1만 년은 진화가 이루어지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다시 말해, 인류 진화과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십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선택된 마음이 바로 현재의 인간이 보여 주는 본성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수십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과 그들이 마주친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거의 없다. 데이비드 벌러
그나마 진화심리학자들이 실증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현재 존재하는 수렵채취 집단을 통한 인류학적 고찰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인류학적 고찰들은 현대까지 존재하는 수렵채취인들의 관행 사이에서, 일반적 평등주의 외에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 주지 못한다. 관행의 다양성에 겸허해질 뿐 진화심리학자들이 설정한 모듈들을 지지해 줄 만한 공통성은 거의 없다.
변화
설령 진화심리학의 가정을 지지하는 관행이 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특정 집단에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다른 집단의 관행들과 비교해 어느 것이 유전적 조상들과 더 비슷한지 알 도리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인류학적 결과물들은 진화심리학자들이 현대의 고정관념들을 재활용해서 그것을 선사시대 사람에게 지나치게 투사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진화심리학의 추정은 현재까지 밝혀진 유전학과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진화심리학의 주장처럼 복잡한 모듈이 존재하고, 뇌 구조의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면, 그 복잡성을 감안해 인간 게놈
인간에게 본능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본질은 각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며, 실제로 그것은 사회관계의 총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