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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심리학은 인간 본성을 과학적으로 설명하는가?

언제부턴가 서점가에 진화심리학과 관련된 책이 즐비하다. 진화심리학에 기댄 칼럼들도 심심치 않게 접하게 된다. 그런 글들을 읽고 있으면 그럴싸해 보인다. 답답한 사회생활과 인간관계 속에서 ‘여성은, 남성은, 혹은 인간은 진화상 원래 그렇다’는 얘기를 들으면 왠지 모를 위안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럴싸한 것과 정말 그런 것은 구분할 필요가 있다. 또한 그것이 마치 사실인 것처럼 받아들여질 경우 남성 중심적 사고나 체제 옹호적 사고를 용인할 수 있기에 더더욱 비판적으로 따져 볼 필요가 있다.

진화심리학 옹호자들도 내치는 조야한 예들은 차치하고, 우선 진화심리학의 창시자로 불리는 데이비드 버스(David M. Buss)의 제자, 전중환의 설명을 들어보자.

그는 성추행이 일어나는 원인에 대해 “여성과 일시적 성관계를 맺으려는 (남성의) 욕망이 여성의 의도를 잘못 해석”(한겨레, 2013)하기 때문이며, 이는 “수백만 년 전 여성의 성적 의도를 실제보다 과대평가했던 남성들이 우리의 조상이 되었”고, “이들이 여성의 성적 의도를 있는 그대로 추론했던 남성들보다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했기 때문”(동아일보, 2010)이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진화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오랜 진화의 역사를 거치면서 여러 유형의 ‘적응 문제들’에 직면했었고, 그런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설계된 마음을 가진 개체만이 진화적으로 성공했을 것이라고 믿는다.”(장대익, 2003)

자연선택

물론 진화심리학자들이 늘 강조하듯이 모든 마음이 다 이런 적응의 결과물이라고 주장하진 않는다. 그러나 적응의 결과물이 많건 적건 간에, 이러한 주장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과학적으로 두 가지가 입증돼야 한다.

우선 마음(혹은 본성)이 진화의 결과물이 되려면 마음이란 것이 생물학적으로 다음 세대에 전달돼야 한다. 때문에 진화심리학자들은 마음을 ‘정신기관’(mental organ)이라고 부르며 특수화된 입·출력 체계인 모듈(module) 구조로 돼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뇌에 구조화된 모듈이라는 장치가 있고 바로 여기에 유전적으로 프로그램된 무수한 본능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이러한 지점은 《이기적 유전자》에서 도킨스가 ‘밈’이라는 장치를 가정할 수밖에 없었던 맥락과 동일하다.) 진화심리학자 사이에서 모듈의 구조와 규모에 따라 의견이 나뉘긴 하지만 어떤 이름으로 불리건 간에 분명한 것은 이런 구조 혹은 장치들이 아직까지 과학적으로 입증된 바는 없다는 점이다.

진화심리학을 받치고 있는 또 하나의 중요한 이론적 토대는 “인간의 마음은, 오랜 수렵·채집기 동안 우리 조상들에게 끊임없이 부과됐던 적응 문제들에 대한 해결책으로서 자연선택에 의해 설계된 계산 기관들의 체계”라는 핑커(S. Pinker)의 말에 잘 나와 있다. 마음이 자연선택의 결과물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진화의 결과물로 마음을 보게 되면 적어도 모듈에 담긴 우리의 마음은 현대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심지어 진화심리학에서 말하는 기본적인 모듈은 농업이 발명된 1만 년 전의 환경과도 상관이 없다. 1만 년은 진화가 이루어지기에 너무 짧은 시간이다. 다시 말해, 인류 진화과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수십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이, 환경에 적응하며 자연선택된 마음이 바로 현재의 인간이 보여 주는 본성의 기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수십 수백만 년 전 인류의 조상과 그들이 마주친 문제들에 대해 우리가 아는 바는 거의 없다. 데이비드 벌러(David Buller)가 지적했듯이, 우리는 “사람 속(屬)에 있는 종(種)들이 영위한 생활 방식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고사하고, 그 종들의 숫자조차 알지 못한다.”

그나마 진화심리학자들이 실증적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현재 존재하는 수렵채취 집단을 통한 인류학적 고찰일 것이다. 하지만 많은 인류학적 고찰들은 현대까지 존재하는 수렵채취인들의 관행 사이에서, 일반적 평등주의 외에 공통적인 특성이라고 할 만한 것을 보여 주지 못한다. 관행의 다양성에 겸허해질 뿐 진화심리학자들이 설정한 모듈들을 지지해 줄 만한 공통성은 거의 없다.

변화

설령 진화심리학의 가정을 지지하는 관행이 인류학적 고찰을 통해 특정 집단에서 발견된다 하더라도 다른 집단의 관행들과 비교해 어느 것이 유전적 조상들과 더 비슷한지 알 도리가 없다. 오히려 다양한 인류학적 결과물들은 진화심리학자들이 현대의 고정관념들을 재활용해서 그것을 선사시대 사람에게 지나치게 투사한 것은 아닌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으로, 진화심리학의 추정은 현재까지 밝혀진 유전학과 인간의 뇌에 대한 이해와도 일치하지 않는다. 만일 진화심리학의 주장처럼 복잡한 모듈이 존재하고, 뇌 구조의 대부분이 유전적으로 결정된다면, 그 복잡성을 감안해 인간 게놈(genome)[유전체]은 인지적 발달이 덜한 동물의 그것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한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잘 알려져 있듯이 인간은 생쥐와 거의 같은 수의 게놈을 갖고 있다. 그나마 뇌의 구조에 관여하는 대부분의 유전자조차 진화심리학자들의 주장과는 달리 본능 모듈에 기여할 만한 고도의 인지 기능보다는 단순한 감각 기능을 만드는 데 관여한다.

인간에게 본능이라고 부를 만한 어떤 것도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인간의 본질은 각 개인에 내재하는 추상물이 아니며, 실제로 그것은 사회관계의 총체”(마르크스)라는 관점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싶다. 즉, 우리가 현 시점에서 생존을 위한 기본적 욕구를 넘어 가장 합리적으로 추론할 수 있는, 그리고 가장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인간의 본성이 있다면, 환경이 변함에 따라 함께 변하며 나아가 새롭고 다른 사회적 관계를 만들어 그것에 적응할 수 있는 특성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