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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파·독재 미화, 시장주의 예찬, 노동자 착취 은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저지하자

노동자연대가 2015년 10월 17일 발행한 리플릿에 실린 글이다.

박근혜 정부가 기어코 한국사 교과서 국정 전환을 공식 발표했다.(10월 12일 ‘중등학교 교과용도서의 국·검·인정 구분안’ 행정예고).

정부 계획에 따르면, 11월 초 고시를 하고, 2016년 1학기까지 국정 교과서의 현장 검토본 제작을 마쳐 2학기에 일부 학교에서 시범 활용한 뒤, 2017년 전국 중·고교에 국정교과서를 배포한다.

국정교과서는 집필과 편찬뿐 아니라 수정과 개편 권한이 모두 교육부에 있는 독점적 지위의 ‘교과용 도서’다. 그런 만큼 국정 교과서는 학생들에게 정권의 입맛에 맞는 역사 해석을 가르치는 데 이용될 것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국정화를 정당화하려고 교사들이 검정교과서들을 통해 “계급투쟁론에 근거한 민중사관”과 “김일성 주체사상”을 가르치는 등 기존 검정교과서가 “북한의 통일전선 전략에 이용되고 있다”고 비난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한마디로, 현행 검정교과서들이 “좌편향”이고 “종북” 성향이라는 것이다. 〈조선일보〉 등 우파 언론들이 박정희를 비판한 한홍구 교수의 강연을 왜곡해 마녀사냥을 벌이고, “막말” 운운하며 전교조 교사들을 비난하는 것도 이런 공격의 일부다.

그러나 국정화 시도에 대한 반발도 날이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저항이 번지고 있다

이미 많은 역사학자와 교수들, 현직·예비 역사 교사들이 국정화 시도에 반대 목소리를 높여 왔다. 고려대, 경희대, 부산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국어대, 성균관대, 서울시립대 등에서 교과서 집필 거부 교수 선언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국내 최대 역사 연구단체인 한국역사연구회도 16일 국정 교과서 제작과 관련된 어떤 과정에도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대학생들의 국정화 반대 성명도 줄을 잇고 있다. 청소년들도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오고 있고, 국정화 반대 서명 운동 동참이 확대되고 있다.

국정화 발표 이후 박근혜 지지율도 하락했다. “박근혜의 뜻”을 좌절시켜야 한다는 공감과 박근혜 정부를 향한 분노가 확대되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우익 인사들이 만드는 “올바른 교과서”?

〈조선일보〉는 한국 현대사 교과서들의 필진 36명 가운데 31명이 좌파 성향이라고 비난했다. 집필자들의 학맥과 가입 단체들 ─ 민족문제연구소, 전교조,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 의 진보 성향을 문제 삼은 것이다.

현행 교과서들이 “좌편향”이라는 공격도 계속 벌이고 있다.

그러나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제국주의와 시장주의를 예찬하는 이들을 역사 관련 기관의 책임자로 계속 앉혀 온 박근혜 정부가 ‘편향성’ 운운하며 교육의 ‘중립성’을 거론하는 것은 역겨운 일이다.

교과서 검토와 자문, 수정·보완 요구를 맡게 될 ‘교과용 도서 편찬 심의위원회’를 주도할 자들의 면면을 보면 편향을 바로잡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가 금방 드러난다.

새로 국사편찬위원장이 된 김정배는 1982년 고교 《국사》 국정교과서를 만드는 연구진의 일원이었다. 그 교과서는 전두환의 12·12 쿠데타와 광주 학살을 미화했다.

또, 식민지 근대화론으로 일본 식민 지배를 옹호하고, 이승만·박정희 정권과 그들을 후원한 미국 제국주의를 찬양한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옹호했다. 그는 “[교학사 한국사] 필자들의 역사관이 지난 10여년간 역사 교과서 집필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해 온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을 문제 삼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라며 이 뉴라이트 교과서를 감쌌다.

김정배는 고려대 총장 시절 등록금 인상과 구조조정을 밀어붙인 것은 물론이고, 학교가 학교 공금으로 총장 전기요금 등을 대납한 것이 폭로돼 불명예 퇴진을 했던 부패한 우익 인물이기도 하다.

박근혜 정부 하 첫 국편위원장이었던 유영익은 이승만을 ‘국부’라 예찬하고 뉴라이트 역사교과서의 전형이라 여겨지는 《대안교과서 한국근현대사》를 감수했다.

교육부 산하 연구기관인 한국학중앙연구원 원장 이배용은 2012년 대선 때 박근혜의 중앙선거대책위원회 의장이었고, 뉴라이트 성향 학자들이 만든 ‘바른역사국민연합’의 원로자문단 일원이었다.

마찬가지로 교육부 산하 연구기관인 동북아역사재단 이사장 김호섭은 8월 15일을 ‘건국절’이라고 주장했고,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옹호한 인물이다. 김호섭의 전임자 김학준은 뉴라이트 성향의 한국현대사학회 창립준비위원장이었다.

“분명 덮어야 할 사실들이 많은 정부가 아닌, 그런 것들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비판하고 또한 이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겪어 왔던 역사적 사실을 알려 주실 수 있는 분들이 만드신 교과서를 쓰고 싶다”는 한 고등학생의 바람이 지극히 정당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정 교과서에 담길 내용은 무엇일까?

박근혜 정부는 2013년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를 밀어 주며 ‘역사 전쟁’을 시도했다가 대중적 반감 속에 학교들의 채택율이 0퍼센트대로 머물며 참패했다. 그러자 이젠 아예 교과서를 국정화해 친일·독재를 미화하려 한다.

최근 박근혜가 박정희의 새마을운동을 자주 언급하는 것도 이와 관련 있는 듯하다. “새마을운동은 개도국 개발협력의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다.”(9월 28일 유엔총회 기조연설)[박근혜가 유엔의] 새마을운동 관련 행사에 주도적으로 참여를 함으로써 유엔의 개발 달성 노력에 기여를 했다.”(10월 5일 수석비서관회의)[1970년대 한국이] 새마을운동으로 최빈국에서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으로 올라선 발판을 마련했듯이 [지금도] 이런 구조개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10월 7일 제7차 국민경제자문회의)

그러나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하려는 데에는 박정희의 명예 회복이나 친일·독재 미화 이상의 목적도 있다.

박근혜 정부의 교육부가 9월 23일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을 함께 살펴보면, 그 목적은 다음과 같다.

첫째, 지배계급 입장에서 서술된 역사를 더 많이 가르치려 한다. 즉, 왕조·국가의 흥망성쇠, 국가 체제 정비 과정을 주로 다루는 제도사와 이민족(국가)과 치른 전쟁사 등의 비중이 커진다. 그래서 앞으로 학생들은 초중고교를 거치며 “지배층 중심의 정치사만 세 번 배우”게 된다.

반대로 일제 강점기 의병 투쟁 같은 저항 운동을 다루는 내용은 축소된다. 세계사 교육과정도 비슷한 방식으로 바뀐다.

친일·독재 미화 이상의 목적들

둘째, 시장주의와 경제 성장 예찬 등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더한층 강화하려 한다. 중학교와 고등학교 역사 교육과정의 경우, 기존의 ‘산업화의 빛과 그늘’이라는 식의 관점에서조차 더 후퇴해 경제 성장의 성과를 주로 강조하는 내용이 강화된다. 필수 과목으로 신설된 고등학교 《통합사회》는 “시장 경제에서는 각종 경제 문제가 기본적으로 가격기구에 의해 해결되고 있”고, “시장 경제에서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위해 금융 자산의 특징과 자산 관리의 원칙을 파악”하는 것을 학습 목표로 한다.

셋째, 학교 교육의 목표가 기업에 필요한 노동자 육성하기라는 점을 더욱 노골화하려 한다. ‘2015 개정 교육과정’은 “역량 중심” 교육과정임을 표방하며 학생들의 “핵심역량”을 길러 줘야 한다고 강조한다. ‘역량 중심’ 교육과정이나 ‘핵심역량’이라는 개념은 기업에 필요한 능력을 지닌 노동자를 길러 내는 데 목적이 있는 직업교육의 맥락에서 연구돼 온 개념이다. 즉, 졸업 후 노동시장에 진출했을 때 스스로 살아남을 수 있고 기업이 원하는 노동자가 되라고 학생들에게 가르치겠다는 것이다. 특히 과거 ‘실업계’라고 불리던 특성화고의 교육과정은 전문대학이나 직업훈련기관에 적용되던 국가직무능력표준(NCS)과의 연계를 강화해 기업에 필요한 노동자를 “표준”적으로 양성하는 데 강조를 뒀다.

전교조·민주노총 등 조직 노동계급의 대중 투쟁이 중요하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강행에는 우파를 결집시켜 총선을 돌파하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 10월 15일 새누리당 의원 총회에서는 국정화를 두고 “전쟁”, “제2의 건국”이라는 말들이 튀어나왔다. 김무성은 “민주주의가 완전무결한 것으로 주장되면 광화문광장에 넘치는 떼법의 기반이 될 수 있다”는 자유경제원 사무총장을 두고 “영웅”이라고 치켜세웠다.

색깔 논쟁은 박근혜와 새누리당이 보수층 결집을 위해 내놓는 단골 카드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가 기성 정치권의 문제인 것만은 결코 아니다. 노동계급의 문제이다. 국정화 시도는 친일파와 독재를 미화할 뿐 아니라 노동자 착취와 투쟁의 기억을 은폐하고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려는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일환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착취를 더한층 강화하려는 “노동개혁” 같은 노동자 공격을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유포하겠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국정화를 반대하지만, 이 점은 지적하지 않는다.

따라서 전교조와 민주노총 등 조직된 노동계급이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 마침 오늘 저녁 7시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민주노총 등이 참여하는 민중총궐기 투쟁본부가 주최하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막는 국민촛불”이 열린다. 도심 행진도 이어질 계획이다. 거리에 모인 시민들에게 국정화 반대 행동에 함께 하자고 호소하자.

이렇게 국정화 저지 투쟁이 잘 되면 “노동개혁”에 맞선 투쟁에도 힘이 실릴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역사 쿠데타”를 막으려면 그만큼 강력한 대중 투쟁이 필요하다. 날이 갈수록 번지고 있는 국정화 반대 여론을 강력한 대중 행동으로 한 데 모아 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려면, 대중 행동이 앞으로도 확대·강화돼야 한다. 10월 24일, 31일에도 계속 대중 집회를 열어야 한다. 대중 행동은 국정화 반대 여론을 결집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