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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앞장서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저지하자

2015년 10월 17일에 발행된 〈벌떡교사들〉 특별호에 실린 글이다. 〈벌떡교사들〉은 현장 교사들이 직접 만드는 월간 신문이다.

국정 교과서는 교육부가 집필·편찬뿐 아니라 수정·개편 권한을 독점하는 교과서다. 그런 만큼 정권의 구미에 맞는 역사 해석을 가르치는 수단이 될 위험성이 다분하다. 정부·여당이 검정 교과서의 “좌편향성”을 지적하며 ‘교육의 중립성’을 입에 담는 게 가소롭다.

정부·여당은 검정 교과서가 주체사상에 무비판적이므로 “좌편향”적이란다. 새누리당은 “김일성 주체사상을 우리 아이들이 배우고 있다”는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박근혜와 새누리당은 과장, 딱지 붙이기, 선택적 정보 제시, 단순화, 미화 등을 동원해 진실을 왜곡한다.

그러나 검정 교과서가 “좌편향”적이라는 것은 억지스러운 과장이거나 거짓말이다. 검정 교과서 체제도 교육부가 집필 기준을 제시하므로 국가 검열은 여전하다. “교과서 집필자들이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검정에 통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검정 교과서의 “좌편향성” 운운은 교육부의 자기 부정 발언인 셈이다.

우파 결집

그런데도 박근혜 정부는 검정으로도 모자라 국가가 직접 한국사 교과서를 만들겠다고 한다.

박근혜 정부가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강행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겠지만, 현 정세적 맥락에서는 우파 결집을 통해 총선을 돌파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지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기성 정치권만의 문제가 결코 아니다. 노동계급의 문제다.

박근혜 정권은 국정 교과서를 통해 친일파와 독재를 미화해 박정희의 명예를 회복시키고 현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국정화의 또 다른 목적은 시장주의와 경제 성장 예찬 등 자본주의 체제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 교육을 강화해 기업에 필요한 노동자를 길러내는 것이다.

즉, 착취를 더한층 강화하려는 “노동개혁” 같은 노동자 공격을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겠다는 것이다. 새정치연합은 친일파·독재 미화는 분명히 반대하지만, 이 점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조직된 노동계급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반대 투쟁에 나서야 한다. 특히,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박근혜의 “노동개혁”에 맞선 투쟁에 더해 국정화 반대 투쟁에 적극 나서야 한다.

대중 행동과 함께 연가 투쟁이 필요하다

전교조와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는 그동안 국정화를 막기 위해 선언, 기자회견, 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들을 해 왔다. 교육부 장관 고시가 임박한 지금, 국정화를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활동은 대중 행동이다.

많은 사람들이 국정화를 “역사 쿠데타”에 비유한다. 기자회견, 토론회, 소송 같은 활동들은 그 나름으로 의미가 있지만, “쿠데타”를 막을 수 있는 결정적 활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중 행동을 통해 “쿠데타”를 저지해야 한다. 이 대중 행동은 조직된 노동계급이 가장 잘 발휘할 수 있는 힘이다. 전교조와 민주노총이 국정화 저지 투쟁의 중심에 서야 하는 이유다.

대중 행동이 10월 17일 범국민대회 한 번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10월 24일, 10월 31일에도 계속 대중 집회가 열려야 한다. 대중 행동이야말로 국정화 반대 여론의 초점을 형성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박근혜의 국정화를 반대하는 광범한 사람들이 새정치연합을 쳐다 보게 해서는 안 된다.

그와 더불어 전교조 지도부는 대중 집회 이상의 것을 제시해야 한다. 이미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는 참교육을 지키기 위해 연가 투쟁이 필요하다는 의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서울지부 집행위는 활동가 연가 투쟁을 당겨 고시 앞뒤(11월 초)로 진행하거나 최소한 전 조합원 조퇴 투쟁으로 진행하자는 안을 중집에 공식 요청하기로 결정했다.(국정화 저지를 위해 연가 투쟁을 하자는 것은 좋은 안이다. 다만, “노동개혁”에 맞선 연가 투쟁에 공백이 생길 수 있는 점은 보완돼야 한다.)

연가 투쟁의 현실적 어려움을 말하는 목소리가 있음도 사실이다. 1년에 두 번 연가 투쟁 하기에는 무리다, 12월에도 연가 투쟁이 예정돼 있다 등등.

그러나 지금 많은 눈이 전교조를 주시하고 있다. 새누리당은 검정 교과서를 전교조 교과서라고 몰아붙인다. 이 비난이 부담스러운 사람들은 전교조가 전면에 나서면 저들의 좌우 이념 대립 프레임에 빠지게 된다며 전교조의 투쟁을 탐탁지 않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주 많은 사람들이 국정 교과서를 끔찍이도 싫어하고 어떻게든 막고 싶어 한다. 그런데 누가 어떤 방식으로 박근혜의 “역사 쿠데타”를 막을 수 있는가? 어떤 사람들은 전교조가 연가 투쟁, 즉 노동계급의 집단적 힘을 행사하게 되면 다른 사회 세력이 이 운동에서 빠질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진실은 그 반대다. 2013년 철도 노동자들의 파업은 대학생 등을 포함해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 냈다. 민주노총이 가장 영향력 있는 사회 단체로 떠올랐던 것은 1996년 12월∼1997년 1월 노동법 개악 반대 대중 파업을 벌였을 때였다.

반대로, 2008년 촛불 항쟁 때 1백만 명이 거리로 나섰지만 광우병 쇠고기 수입을 막지 못했다. 실종된 고리는 노동자들의 대중 투쟁과 파업이었다. 당시 노동자들은 집단적이 아니라 개별화된 시민으로 촛불 항쟁에 참가했다.

물론, 전교조의 연가 투쟁이 이윤에 직접 타격을 주는 경제적 효과를 내지는 못한다. 그러나 파업이 법으로 금지돼 있는 교사들이 집단 행동을 통해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저항한다는 정치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이런 행동을 통해 더 넓은 노동자 연대와 사회적 연대가 구축될 가능성도 커질 것이다.

끝으로 국정화 문제가 전교조의 참교육을 정면으로 공격하는 매우 중요한 문제라면, 지도부는 그에 걸맞는 투쟁 수단을 사용하자고 호소해야 한다.

참교육을 기치로 내걸고 있는 전교조가 한두 차례 집회에 참가하는 것으로 그 소임을 다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국정화 저지 투쟁에서 전교조가 사회 세력들 중 하나에 그쳐서는 안 된다.

국정화 저지 투쟁이 효과를 내면 “노동개혁”에 맞선 투쟁에 상승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어떤 사람들은 국정 교과서 문제 때문에 “노동개혁” 쟁점이 묻힐까 봐 염려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전교조는 “노동개혁”보다 국정 교과서 문제 같은 “참교육”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는 이 둘을 분리시키지 않는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개혁”을 밀어붙여 착취를 더한층 강화하려는 한편, 기업주들의 배 불려 주기를 합리화하는 이데올로기도 유포하고 있다. 국정 교과서가 그런 수단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는 경제 위기의 책임을 노동계급에 떠넘기려는 지배자들의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투쟁의 일부다.

따라서 노동자 운동이 박근혜 정부의 신자유주의적 공세에 효과적으로 맞서려면 이 둘을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현재 전선은 국정 교과서를 둘러싸고 첨예하게 형성돼 있다. 사회 전체가 찬반 진영으로 반분되고 있다. 우파들도 결집하고 있지만, 반대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대학가에서 교수들과 학생들 중심으로 국정 교과서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전교조만 놓고 봐도, 10월 12일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행정예고가 발표되자 현장 교사들 사이에서 뭐라도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급속히 형성됐다.

행정예고가 발표된 12일, 조합원 4백여 명이 긴급 집회에 참가했다. 현장 교사들의 분위기가 예전과 다르다는 얘기도 많이 들린다.

이 말고도 교사들이 국정 교과서 문제를 매우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증거는 많다. 지난해 2월 대의원대회는 “국정 교과서화나 교육부의 편수 기능 강화 등이 구체화되면, 기존의 역사교과서 네트워크를 국정교과서 저지 투쟁본부로 전환해 연가 투쟁을 포함하는 강력한 투쟁[을 한다]”고 결정한 바 있다. 이 결정의 절차적 규정력을 따지기 전에 그만큼 전교조에게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예민한 문제로 인식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89년 전교조는 국정 교과서 등을 통한 독재정권의 교육 통제에 반대해 “참교육”을 선언하며 출범했다.

따라서 지도부는 국정 교과서 문제를 중심으로 생겨나는 투쟁 동력을 확고하게 응집시켜야 한다. 국정화 저지 투쟁이 효과를 내면 “노동개혁”에 맞선 투쟁에 상승적 효과를 낼 수 있다. 지금 동력이 있을 때 연가 투쟁에 들어가야 이후 “노동개혁”에 맞선 투쟁도 힘 받을 수 있다.

전교조가 주도적으로 나서 저지 운동을 확산하자

국정화 문제는 매우 중요한 정치 쟁점이다. 그만큼 많은 노동자와 억압받는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따라서 노동자들의 대중 행동에 바탕을 두고 연대를 확대해야 한다. 현재 한국사국정화저지네트워크가 연대체 구실을 하고 있다. 이를 통한 연대 확대 노력은 계속될 필요가 있다.

한편, 대학가에서 교수들의 집필 거부 선언에 이어(또는 그에 고무돼) 학생들 사이에서 국정화 반대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전교조는 그동안 예비 교사들과의 관계를 꾸준히 유지해 왔다. 이런 소중한 자산을 활용해 전교조 자신이 직접 예비 교사들에게 연대 투쟁을 제안하고 호소하며 연대 확산의 주체로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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