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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PP, 미국의 패권을 위한 자유무역협정

지난 10월 6일 미국, 일본 등 아시아·태평양 12개국이 참여한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 타결됐다. TPP는 경제적 중요성이 갈수록 증대하고 있는 아시아에서 경제적 이익을 확대하고 영향력을 증대하기 위해 미국이 주도해 추진해 온 자유무역협정이다. TPP가 발효되면, 전 세계 GDP(국내총생산)의 약 40퍼센트, 세계 교역 규모의 25퍼센트를 아우르는 거대한 경제 블록이 탄생한다. TPP가 최종 발효하기까지 아직까지 갈 길이 멀긴 하지만 말이다.

사실 TPP 협상은 비민주적으로 밀실에서 진행돼 왔다. 이는 협상이 타결된 지금도 마찬가지다. 한미FTA 때처럼 각국 정부가 협정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들은 TPP의 내용을 제대로 알 수도 없는 반면, 대기업과 다국적기업들은 협상 과정에 자문단으로 개입해 자신들의 요구를 마음껏 전달할 수 있었다. 이토록 비민주적이고 불투명한 협상 과정만 봐도 TPP가 누구를 위한 협정인지 분명하다.

미국이 TPP를 추진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에는 2008년 위기 이후 여전히 회복되지 않고 있는 미국 경제를 다시 회복시키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 오바마는 2010년 미국의 수출을 지금의 갑절로 늘리겠다는 구상을 내놓은 바 있는데, 이 구상을 달성하기 위해 역동적으로 경제가 성장해 온 아시아에서 시장을 개척하고 미국 기업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경제·통상 협력 체제를 구축하려 한다.

따라서 TPP는 한미FTA처럼 공기업을 민영화하고 시장 규제를 완화하라는 압력을 가입국들에 가할 것이다. 지적재산권, 서비스 규제 등은 모두 대기업과 다국적기업들에게 이전보다 더 유리하게 정해질 것이다. 공공정책과 복지정책도 시장 원칙에 따라야 한다는 압력도 커진다.

협정문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TPP는 한미FTA의 온갖 독소조항들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네거티브 방식의 서비스 시장 개방(개방 예외 목록 외에 모두 개방), 래칫 조항 적용*, 미래의 최혜국 대우*, 그리고 무엇보다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도 포함돼 있다(정태인, 〈프레시안〉 2015년 10월 13일).

한미FTA 플러스

또한 미국은 한미FTA를 협상의 본보기로 삼아 아시아·태평양 국가들과 그보다 더 강력한 자유무역협정을 맺길 원했다. 그래서 지금까지 폭로된 내용을 보면, TPP에는 한미FTA보다 더 나쁜 조항들이 포함돼 있다. 한미FTA 플러스라 부를 만하다.

예컨대 TPP의 투자에 관한 규정은 한미FTA보다 여러모로 기업에게 유리하게 강화됐다. 한미FTA에는 투자자가 ‘기대하는’ 이익에 정부 규제가 손해를 끼치면 정부가 투자자에게 보상하는 간접수용 규정이 있다. 다만 이 조항이 공공성을 위협한다는 비판이 컸기 때문에, 한미FTA는 간접수용 규정의 적용에 대해 어느 정도 제한을 뒀다. 그런데 TPP는 이 제한마저 없애 버렸다(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삶과 죽음의 문제, 보석보다 비싼 의약품: TPP는 어떻게 의약품 가격을 폭등시키는가?》). 정부의 공공정책이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에 휘말리고 급기야 패소할 가능성이 한미FTA보다 더 커지는 것이다.

보건 분야에도 한미FTA보다 더 심각한 조항들이 들어가 있다. 예컨대 ‘치료방법 특허’가 도입돼, 새로운 치료 방법이나 수술·진단 방법을 사용하려면 의료기기나 도구뿐 아니라 특허 사용료까지 내야 한다. 이로 인해 의료비가 크게 인상될 수 있다. 바이오신약에 대한 자료독점권도 일반적인 자료독점권의 5년 기한보다 훨씬 더 긴 12년 동안 보장될 것이다. 비교적 값싼 제네릭(복제 약) 생산이 더 제한돼, 의약품 가격이 인상될 것이다(연구공동체 건강과 대안, 같은 책).

따라서 TPP는 미국과 여타 가입국들의 기업주와 부자들만을 위한 협정이다. 그리고 TPP가 발효되면, 이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노동자와 서민의 삶을 더한층 악화시킬 것이다.

TPP는 부자들, 기업주들만 배불릴 협정이다. ⓒ일러스트 조승진

미국의 패권을 지키기 위한 협정

지난 4월 미국 국방장관 애슈턴 카터는 한 연설에서 향후 10년간 미국의 안보와 번영에 아시아·태평양 지역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다고 밝히며,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에서 TPP가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카터는 이렇게 말했다. “내게 TPP는 새로운 항공모함을 갖는 것만큼 중요하다.”

이렇게 미국 지배자들은 TPP가 단지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자신들의 지정학적 목표를 달성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마르크스주의 석학인 알렉스 캘리니코스는 TPP를 순전한 경제 협정으로만 여겨서는 ‘아시아에서 자유무역협정을 맺겠다면서 정작 경제 규모가 가장 큰 중국은 배제하는 의도를 설명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즉, 최근 미국이 TPP 타결을 서두른 것은 중국과 벌이는 제국주의간 경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서였다.

지난 30년 동안 중국은 경제적 위상이 매우 높아졌다. 특히, 중국이 광대한 수출 시장을 제공하면서 역내 무역과 생산의 구심이 되자 동아시아 경제들 간에 상호의존도는 매우 높아졌다.

중국의 경제적 지위가 높아짐에 따라 지정학적 파장도 일어났다.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이 증대하면서 미국 헤게모니 아래에 있던 기존 국제질서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예컨대 아시아·아프리카·중남미 나라들에 중국이 해외직접투자(FDI)와 공적개발원조를 확대하고 있는데, 이 돈이 남반구 전역으로 유입되면서 이들 나라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커졌다. 그만큼 이 지역 나라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예전만큼 못하게 된 것이다.

중국의 정치적 영향력 증대는 특히 아시아 국가들 사이에서 잘 드러났다. 아시아 국가들이 중국과의 경제적 관계가 긴밀해지면서 이전보다는 중국과의 관계를 더 의식하게 됐다. 이 때문에 미국이 아시아 국가들을 다루기가 전처럼 쉽지 않게 됐다.

물론 중국은 아시아에서조차 미국 헤게모니를 쉽게 대체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는 경제적·군사적·외교적 역량 등 여러 면에서 미국과의 격차가 여전히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국은 당장은 미국의 헤게모니에 도전하지 않고, 필요하다면 미국이 주도하는 기성질서에 편승하곤 한다.

그러나 중국은 경제성장을 지속하고 국가 통합을 유지할 자신의 경제적·지정학적 핵심 이익에 관해서 만큼은 적극 대응하고 있다. 특히, 동아시아에서 말이다. 예컨대 동·남중국해의 해상 교통로에서 유사시 미국의 접근을 저지하려고 중국은 적극적으로 군사력을 키우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 건설하고 있는 인공섬과 그 위의 군사기지들은 역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지키려는 중국의 적극적인 대응을 잘 보여 준다.

남중국해

또한 중국 정부는 주변 경제들이 중국에 더욱 의존하게 하고, 이를 통해 미국의 영향력이 중국 주변에서 더는 확대되지 않도록 차단하려 노력해 왔다. 중국은 아시아 국가들과 긴밀해진 경제적 관계를 바탕으로 아시아 지역주의를 강화하고 이를 제도화하려 노력했다. 그래서 한때 중국은 ASEAN+3*를 통해 동아시아자유무역협정(EAFTA)까지 추진하려고 했다.

오바마가 집권 초에 아시아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내놓은 것은, 바로 이처럼 동아시아에서 증대하는 중국의 영향력을 견제하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오바마 정부는 중국의 부상이 낳는 모순을 이용했다. 중국의 부상을 통해 아시아 주변국들은 경제적 기회를 얻은 한편, 중국의 군사력과 지정학적 영향력이 커지는 데 불안감도 느꼈다. 미국은 이 점을 파고들어,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를 확대·강화해 나갔다.

오바마 정부는 아세안지역포럼(ARF)이나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지역안보기구에 적극 참여해, 동아시아 지역구도가 중국 주도로 흘러가는 것을 방지하고 자국의 주도권을 지키려고 애썼다. 미국은 2011년 처음으로 EAS에 참가했고, 여기서 중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남중국해 영토 분쟁에 대한 다자간 토론을 주도했다.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었다.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첨단 군사력을 우선 배치하면서 중국에 대해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려 했다. 그 일환으로 오마바 정부는 동맹국들로 중국을 포위하는 전략의 중추로 미일 동맹을 중시해,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지지하며 일본의 지역적 위상을 높이기를 바랐다.

이런 점에서 TPP는 오바마 정부의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뒷받침해 줄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미국은 자칫 자국이 배제될 수 있는 아시아 지역주의를 견제하고 TPP를 추진해, 다자간 자유무역협정 같은 동아시아 경제의 통합 문제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것이다. 또한 미국과 일본은 TPP를 통해 중국을 견제할 미·일 안보·경제 블록을 강화하고자 한다. 일본 총리 아베가 지난 4월 미국 상·하원 합동 연설에서 TPP는 “단지 경제적 이익을 넘어 미·일 양국의 안보에 관한 협정”이라고 강조한 까닭이다.

TPP가 타결되자 오바마는 이를 환영하며 중국을 겨냥한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95퍼센트의 잠재적 고객이 우리 국경 밖에 살고 있는데 우리는 중국과 같은 나라가 세계경제의 규칙을 쓰게 내버려 둘 수 없다.”

일대일로

미국의 포위 전략에 대응해 중국도 아시아에서 자신이 주도하는 새로운 경제·안보적 제도를 구축하려 고심해 왔다. 이런 구상은 지난해 5월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에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한 연설에서도 드러났다. “안보를 비롯한 아시아의 문제는 아시아인들이 직접 처리해야 한다. 능력과 지혜가 있는 아시아인들이 협력을 강화해 아시아의 평화와 안정을 실현할 수 있다.”

미국의 개입으로 ASEAN+3가 희석되고 자국을 배제한 채 TPP가 추진되자, 중국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라는 새로운 역내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대응했다.

그리고 최근 중국 시진핑 정부는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일대일로 계획은 중국 주변 지역을 육상(‘일대’)과 해상(‘일로’) 인프라를 통해 통합한다는 구상이며, 교통·통신·산업기반 시설을 구축할 뿐만 아니라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들 사이에 경제·산업 벨트를 형성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시진핑 정부는 중국의 경기 둔화와 과잉생산 우려를 일대일로 계획 같은 대규모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로 어느 정도 해결하려 한다. 이런 구상에는 주변국들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 확대를 차단하려는 의도도 있다.

올해 중국은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도 창설했다. 일대일로 계획에 자금을 조달하고 국제 금융시장에서 위안화의 지위를 높이기 위해서였다. 여기에는 영국, 프랑스, 한국 등 미국의 기존 우방들도 가입했다. 중국, 러시아, 인도, 브라질 등이 참여한 브릭스개발은행(NDB)도 지난 7월에 공식 출범했다.

물론 AIIB, NDB 등 중국이 주도해 만든 새로운 국제 기구들이 미국의 기존 헤게모니를 대체할 정도는 못 된다. 그러나 이런 기구들은 모두 미국이 주도하는 기존 제도의 바깥에 형성돼 있고, 그리고 중국이 (특히 동아시아에서) 미국의 견제에 대응해 지정학적으로 기동의 여지를 넓히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처럼 지금 동아시아에서는 미국·일본과 중국 간에 지정학적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그래서 이 지역에서 주요 국가들은 군비를 경쟁적으로 늘리고 있다. 여기에 경제적 경쟁과 갈등도 끊임없이 중첩되고 있다. 중국의 일대일로나 미국이 주도한 TPP 모두 동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 간 경쟁의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TPP 타결은 무역의 확대를 통한 평화와 번영을 약속하는 게 아니라, 동아시아에 새로운 경쟁과 갈등을 키우는 불씨 구실을 할 개연성이 크다.

한국의 TPP 가입 반대한다

TPP가 타결되자, 박근혜 정부도 TPP 가입을 서두르고 있다. 10월 16일 미국에서 오바마를 만난 박근혜는 “이미 높은 수준의 FTA를 체결한 한국과 미국은 TPP에서도 자연스러운 파트너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히며 TPP 가입 신청을 받아들여 달라고 요청했다.

한편, 한국 지배자들 내에서 일부는 TPP 가입에 대해 신중론을 제기한다. TPP 가입은 일본과 FTA를 맺는 것과 다를 바 없는데, 그러면 일부 산업에서 일본 기업들에 밀려 한국 기업들이 손해를 볼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박근혜 정부는 TPP에 가입하겠다고 선포했고, 주요 보수 언론들은 이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세계에서 가장 큰 경제 블록에서 배제돼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크게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또, “장기적으로는 미국과 일본, 베트남 등 TPP 참여 국가들이 글로벌 분업구조 재편 경쟁에서 더 유리한 입지를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LG경제연구원)”고 보는 듯하다. 점차 성장이 둔화하는 중국 경제를 염려하며, 중국 경제에 대한 의존도를 새로운 자유무역협정으로 줄여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 지배계급 내 다수는 “TPP는 미국과 일본이 손을 잡고 중국의 영향력 확대에 대항한다는 정치적·지정학적인 의미”(〈조선일보〉 사설)가 크기 때문에 여기서 빠져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미FTA 등이 있는 상태에서 한국이 TPP도 가입한다면, 그만큼 한국의 노동계급과 서민은 또 다른 타격을 입을 것이다.

예컨대 한국은 한미FTA에 가입한 이후, 여러 차례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에 따른 국제 분쟁에 휘말리고 있다. 앞서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한국 정부의 과세에 반발해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ISDS)’에 따른 중재를 제기했고, 올해 5월 아랍에미리트의 국제석유투자공사(IPIC) 등도 ISDS를 제기했다. 한국이 TPP에 가입한다면, 더 많은 ISDS 분쟁이 제기될 것이다. 그리고 한미FTA에는 없는 독소조항들도 받아들여야 한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이 TPP에 가입하기에 앞서 한미FTA 완전 이행 등 선결 조건부터 받아들이라고 요구하고 있다. 정의당 김제남 의원에 따르면, 이미 박근혜 정부는 예비 협의를 통해 일부 조건을 받아들였다. 여기에는 “미국산 농축산물, 자동차 등 원산지 검증 완화”, “개인정보가 포함된 금융정보 해외 이전 범위 확대”, “미국산 가공식품의 유기농 표시제 완화”, “온실가스·연비 기준 예외 적용 완화” 등 환경, 위생 등 노동자와 서민의 삶과 직결된 것들이 포함돼 있다. 게다가 미국은 다른 선결 조건들도 제시할 것이다. 여기에는 “다국적 제약사의 약가 보장”, “자동차 관련 환경·안전·세제 이슈 등 신규 제도 도입 중단” 등이 포함될 수 있다고 알려졌다. TPP에 가입하기 전에, 약값 인상을 받아들이고 환경과 안전에 관한 규제도 더 포기하라는 것이다.

지난 10월 16일 박근혜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미동맹이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와 안정의 핵심 축”이라면서 “한반도 전역으로 [한미동맹의] 기적의 역사를 확대”하자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근혜는 자신이 확고하게 한미동맹을 우선시한다는 점을 보여 줬고, 따라서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전략에 좀 더 협력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TPP 가입은 박근혜가 추진하는 친미 정책을 뒷받침해 줄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TPP는 노동계급과 서민의 삶을 위협하고 한반도의 불안정성을 자극할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TPP 가입을 중단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