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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마르크스와 세계경제》 (정성진 지음, 도서출판 책갈피, 16,000원):
마르크스주의 세계경제론에 관한 대안적 논의

국내에서 몇 안 되는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인 정성진 교수가 새 책을 발간했다. 그 제목이 말해주듯이, 이 책은 정 교수가 오랫동안 마르크스주의 세계경제론에 대해 탐구한 성과와 그것을 구체적 사례(세계적 양극화, 미국 제국주의 그리고 유로존 위기)에 적용한 결과물이다.

신자유주의 세계화 과정이 “경제위기와 전쟁, 불평등과 양극화, 생태 위기”를 심화시켰고, 이에 대한 대중적 저항이 1999년 시애틀 투쟁 이후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주류 세계화 담론을 비판하고 오늘날의 세계 자본주의 체제를 설명하면서 대안을 모색하는 다양한 비판적 세계경제론 논의들이 등장했다. 정 교수의 새 책도 이런 대안적 세계경제론 모색 과정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정 교수 스스로 자신의 책이 “마르크스의 국제가치론과 세계시장공황론을 중심으로 한 마르크스의 경제학 비판 플랜 후반체계의 구체화 작업을 통해 21세기 마르크스주의 세계경제론의 르네상스에 기여하려는 시도”(11쪽)라고 말했다.

△《마르크스와 세계경제》 (정성진 지음, 도서출판 책갈피, 16,000원)

세계 자본주의가 2007년부터 시작된 대불황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마르크스가 구상한 세계시장과 세계시장공황 등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정 교수의 연구 성과들은 꼭 한 번 읽어 봐야 할 필요가 있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론자인 토머스 프리드먼은 세계화로 인해 “세계는 평평해졌다” 하고 말했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인해 일국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적 차원에서도 불평등도가 높아졌다. 그런데 정 교수는 “전후 장기호황 기간, 즉 케인스주의 황금시대 동안 국가 간 소득분배가 결코 평등해지지 않았고 도리어 더 불평등해졌음을 확인”(107쪽)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런 현상을 “세계화가 자본축적의 일반적·절대적 법칙으로서 부익부 빈익빈 경향의 전 지구적 관철”로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그는 세계적 양극화 경향이 자본축적이라는 체제의 운동법칙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케인스주의적 국가 개입이나 자유시장에 대한 사회적 규제 또는 민족경제론 등은 대안이 될 수 없고, 세계적 양극화를 종식시키는 일은 오로지 체제의 “혁명적 전복, 세계시장에서 가치법칙의 작용 그 자체의 지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137쪽)고 역설한다.

유로존 위기

유로존 위기의 원인을 마르크스의 세계시장공황론의 관점에서 추적한 것도 정 교수의 새로운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는 유럽연합과 유럽 화폐 통합이 신자유주의 세계화와 유럽 제국주의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추진됐지만 그 내적 모순을 갖고 있음을 잘 설명하고 있다. 특히 이 책의 5장 ‘세계화의 모순과 유로존 위기’에서 유로존 위기의 원인으로 제시되는 쌍둥이 적자, 경쟁력 약화, 금융화, 불평등 심화, 제도적 부정합 등의 주장을 비판하고, 진정한 원인은 이윤율 저하 때문이라고 주장한 점이 돋보인다. 그는 “유로존 위기는 기본적으로 유로존 경제의 생산영역에서 진행된 자본의 과잉축적 위기이며 이윤율 저하의 맥락에서 파악해야 한다”(206쪽) 하고 주장하고 있다.

이 책의 7장인 ‘대안세계화운동의 이념과 마르크스주의’에서 정 교수는 대안세계화운동의 주요 이념들을 유형별로 정리하고, 그 특징과 한계들을 논의하고 있다. 그런데 이 장은 다양한 논의들을 한 논문에서 압축적으로 요약한 장점은 있지만 일부 독자들에게는 생소하거나 어려울 수도 있을 듯하다. 이 장의 내용에 관심 있는 독자라면, 이 장에서 다루고 있는 정치적 경향들을 정치적 맥락과 연결시켜 더 풍부하게 설명하고 있는 알렉스 캘리니코스의 《제국주의와 국제 정치경제》(책갈피)도 함께 읽어 보기를 권한다.

마르크스의 세계시장공황론

사실 정 교수의 새 책에서 가장 돋보이는 내용은 제1장인 ‘마르크스의 세계시장공황론’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체제가 일국적 체제가 아니라 세계적 체제이기 때문에 그가 살던 시기의 공황을 세계시장공황이라고 생각했다. 그 때문에 마르크스는 자본, 토지소유, 임노동, 국가, 외국무역, 세계시장과 공황의 여섯 가지 주제를 연구할 계획(소위 ‘플랜’)을 세웠다. 마르크스 사후에 마르크스가 이 계획을 고수했는지 아니면 수정했는지, 그리고 그 계획을 완수했는지 아니면 일부만 완수했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정 교수는 이런 논쟁에 다시 뛰어들기보다는 세계적 규모에서 작동하는 이윤율 저하와 자본축적, 생산과 소비의 모순, 현실자본과 화폐자본의 축적 모순 등을 파악할 수 있는 분석틀을 제시하고, 2007년부터 시작된 세계경제 위기와 유로존 위기를 이런 분석틀로 설명하려 했다. 추상 수준이 높아 초심자들은 약간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이 분석틀을 도입할 때 마르크스가 설명하고자 했던 자본주의 체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마르크스의 세계시장공황론 체계에 기초해 보면, 화폐의 기능에서 발생하는 화폐공황이나 유통수단의 모순에서 발생하는 과잉생산 공황 등은 공황이 발생할 가능성이지 공황의 필연성을 나타내는 요소는 아니다. 이윤율 저하를 포함해 주기적 산업순환, 현실자본과 화폐자본 사이의 모순에서 비롯한 금융화, 국제적 수준의 노동자 착취, 국가의 개입 등 다양한 요소들이 어떤 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작용해 공황을 필연으로 만드는지 이해하는 데 세계시장공황론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정 교수 스스로 자신이 “재구성한 마르크스의 세계시장공황론은 아직 가설 수준이며, 이를 더욱 체계화하고, 세계시장공황론의 역사와 현실의 경험적 분석에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것”(76쪽)이 향후의 과제라고 밝히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이런 시도는 세계체제로서의 자본주의를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할 뿐 아니라, 세계적 위기를 마르크스주의적으로 더 풍부하게 분석할 수 있도록 기여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약점

하지만 이 책의 내용에서 몇 가지 약점도 존재한다.

첫째는 정 교수가 마르크스의 가치론에 기초해 외국무역과 세계시장공황을 분석하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자본주의 체제가 중심부 자본주의와 주변부 자본주의로 나뉘어 있고, 이들 사이에 불평등교환이 발생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는 점이다.

마르크스의 가치론에 따르면, 가치 이전은 동일 산업 내에서 개별 생산자와 평균 생산자의 차이에 따른 산업 내 이전과 상이한 산업에서 평균 생산자의 유기적 구성의 차이에 의존하는 산업 간 이전에 의해 결정된다.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자 안와르 샤이크는 “자본의 어떤 개별집합에 대해서도 ··· 잉여가치의 순이전은 이런 두 가지 효과의 합일 것”(91쪽)이라고 지적했다. 샤이크는 이런 두 가지 효과는 “중심부와 주변부 간에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종합적 가치 이전의 방향을 확정할 수 없다”고 보았지만, 정 교수는 “두 가지 효과가 모두 주변부에서 중심부로 가치를 이전시키는 방향으로 작용한다”(291쪽) 하고 주장했다. 정 교수의 이런 주장은 마르크스주의와 종속이론을 결합시키려는 시도는 아닌지 하는 의구심이 들게 만든다.

제국주의

둘째는 제국주의에 관한 문제다. 레닌의 제국주의론이 여러 문제점이 있긴 하지만,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와 스탈린주의에 고질적인 독점자본주의 단계론으로 왜곡·변질될 소지를 제공”(142쪽)했다거나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리적 접합 및 정치군사적 지배관계로 정의”(143쪽)했다는 정 교수의 비판은 레닌에 대한 너무 인색한 평가라 할 수 있다. 레닌 자신이 차르의 검열을 의식해 쓴 것이라고 한 《제국주의론》에서 제2인터내셔널 마르크스주의의 대표자였던 카우츠키를 가차 없이 비판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정 교수는 “자본주의적 생산양식과 비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의 지리적 접합”이라며 레닌을 비판하고 있는데, 이런 비판은 정 교수가 높이 평가해야 한다고 본 로자 룩셈부르크의 제국주의론에 더 적합한 듯하다.

정 교수는 “오늘의 세계는 미국 제국주의가 지배하는 자본주의로서, 또 이른바 세계화는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지배의 확장 과정으로서 이해될 수 있다”(149쪽) 하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21세기 미국 제국주의의 세계적 헤게모니의 재구성에 관한 논의(154~170쪽)를 강조하다 보니 정작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서의 제국주의와 미국 제국주의가 그 체제 내에서 처한 상황 그리고 브릭스(BRICs)의 부상과 제국주의 국가들 간의 경쟁 재현이라는 현실을 간과하거나 과소평가한 듯한 느낌을 준다.

혁명적 패전주의 전술

셋째는 전략과 전술의 문제다.

정 교수는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가 틀렸고 레닌도 이 입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238쪽). 먼저 레닌이 혁명적 패전주의 입장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레닌은 1919년 9월 ‘부르주아지는 배신자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라는 글에서 “내전에 대한 그[카우츠키]의 고함과 불평과 슬퍼함과 히스테리는 이론가로서 완전히 실패한 것을 가리는 데 이용된다. 왜냐하면 볼셰비키가 완전히 옳다는 것이 입증됐기 때문이다. 1914년 가을에 볼셰비키는 전 세계에 제국주의 전쟁은 내전으로 전환돼야 한다고 외쳤다” 하고 적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더 중요한 쟁점은 혁명적 패전주의가 러시아에서 혁명을 재촉할 수도 있겠지만 러시아의 패배는 독일의 승리를 전제하기 때문에 이는 유럽 프롤레타리아에게 커다란 재앙을 초래한다(233쪽)는 트로츠키의 주장이다. 제1차세계대전 당시 레닌은 자국 러시아의 패배가 차악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국제주의를 견지하는 혁명가들과 자국의 전쟁 노력을 지지하는 사회 애국주의자들을 분명하게 구분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해 토니 클리프는 이렇게 지적했다. “트로츠키의 주장은 합리주의적이긴 하지만 변증법적 유물론인 것은 아니다. 경제적 합리주의 측면에서 보면, 혁명과 내전은 순전히 부정적이다. 이것들은 사회의 생산력을 파괴하는 직접적 충격을 가한다. 하지만 경제적 혼돈이라는 조건은 프롤레타리아 혁명의 전제이기도 하다.” 1917년과 1918년 군사적 패배가 러시아와 독일에서 벌어진 혁명에 미친 영향을 보면, 트로츠키의 입장이 추상적이고 모호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또 레닌의 혁명적 패전주의를 출발점과 목표로 구분하고는, 조국 방위를 고려하지 않고 자국 정부에 대한 계급투쟁을 수행한다는 출발점은 지지하고 자국 정부의 패배는 받아들이지 않는 니시지마(西島)의 입장(232쪽)도 추상적이고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레닌은 제국주의 국가들 사이의 협상이나 개혁을 통해 평화가 가능하다는 카우츠키의 평화 강령을 비판하면서 제국주의 전쟁의 시기에 진정한 평화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더 나아가 제국주의 전쟁을 끝장내려면 이 전쟁을 내전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분명하게 주장했다. 그 당시 레닌은 사회애국주의와 혁명적 입장 사이에서 평화주의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모호함을 비판하고, 이들을 혁명적 입장 편으로 견인하고자 했다. 이 당시 사태는 국제주의자와 조국 방어주의자를 점점 더 갈라놓게 만들었고, 레닌이 입장이 올바르다는 것이 분명해지고 있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트로츠키는 레닌의 입장으로 기울다 결국 1917년에 볼셰비크가 됐다.

유럽합중국

다른 하나의 문제는 유럽합중국이다. 정 교수는 트로츠키의 유럽합중국 슬로건이 1914년 제기됐을 때도 맞았고, 심지어 오늘날 유로존 위기 상황에서도 적용할 수 있는 이행기 강령(218~220쪽)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이어서 그는 레닌이 유럽합중국 슬로건을 반대했는데, 이는 사실상 일국사회주의론 관점을 함축하고 있었다고 제기한다(307쪽). 심지어 일국사회주의론은 스탈린이 발명한 것이 아니라 1915~17년 레닌에 의해 이미 정식화됐다는 에릭 반 리(E. van Ree)의 주장을 무비판적으로 인용하고 있다.

일국사회주의론은 1923년에 독일혁명이 패배하고 자본주의가 상대적 안정기에 접어들자 세계혁명에 관심이 없던 스탈린과 그를 지지하던 관료집단이 선택한 패배주의적 대안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경제적·정치적 발전의 불균등성은 자본주의의 무조건적 법칙이다. 이것으로부터 사회주의의 승리는 처음에는 몇몇 자본주의 나라에서, 혹은 심지어 단 하나의 자본주의 나라에서도 가능하다는 결론이 나온다”(244쪽)는 레닌의 말을 일국사회주의의 가능성을 보여 준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완전한 논리적 비약이다.

유럽합중국에 레닌이 반대한 논거는 간단했다. 레닌은 공산주의의 완전한 승리에 기초한 세계합중국은 지지했지만, 자본 수출과 세계 분할에 기초한 제국주의 시대에 하나의 국민국가를 의미하는 유럽합중국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 국가가 다른 국가를 완전히 복속시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반동적이라고 봤다. 또한 열강의 일시적 협정도 가능하겠지만, 이 협정은 사회주의를 억압하고 다른 제국주의 열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기에 슬로건으로서 유럽합중국 또는 세계합중국은 전혀 옳지 않다고 생각했다.

이런 레닌의 입장은 오늘날 유로존이나 유럽연합에 대한 사회주의자들의 태도를 결정하는 데 적용할 수 있다. 특히 현재 그리스의 사회주의자들이 무엇을 주장해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서도 유용하다. 그리스의 대안 논의에서 두 가지 견해가 대립된다. 유로존과 유럽연합에서 탈퇴하고 은행을 국유화하며 그리스 내에 있는 자본가들의 모든 부를 통제해야 한다는 입장과, 유로존 탈퇴는 민족주의에 굴복하는 것이라며 반대하고 사회적 유럽을 주장하는 입장이 그것이다. 후자의 입장이 의미하는 바는 유럽합중국이라는 공상적이거나 반동적인 슬로건에 이끌려 현실에서 노동자들에게 고통을 감내하라고 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환강령

다른 한편 정 교수는 “트로츠키는 제1차세계대전 시기뿐만 아니라 그 이후 스탈린에 살해당할 때까지 유럽합중국 슬로건을 자신의 이행기강령의 주요 부분으로 주장했다”(247쪽)고 지적한다. 그런데 이 말은 이행기강령(전환강령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적절하다)에 대한 오해를 나타낸다. 언제 어느 때에나 제기할 수 있는 슬로건이라면 이행기강령이 아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몇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어 볼 만하다. 자본주의 세계체제와 세계화 그리고 세계공황을 이해하고 이를 현실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과 근거 그리고 이 과정에서 진지하게 고려해 볼 이론적 쟁점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