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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프랑스는 아이시스의 표적이 됐는가

2015년 1월 〈샤를리 에브도〉 공격 때와 마찬가지로, 11월에 끔찍한 파리 공격을 자행한 사람들이 모두 프랑스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이제는 분명하다. 따라서 이번 공격을 프랑스 사회와 결부시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서방 세계 전역에서, 특히 프랑스에서 [이 사건들에 대해] 역겹고 무슬림 혐오로 뒤범벅이 된 반발이 일어나리라는 것은 능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런 반발은 지난 수십 년 동안 프랑스의 무슬림들이 당한 정치적·사회경제적 차별을 심화시킬 것이다.

‘라이시테’(거칠게 번역해 ‘세속주의’라고도 불린다)에 헌신한다고 주장하는 프랑스 국가는 인종을 기준으로 하는 통계자료를 발표하거나 인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프랑스 사회에서 인종차별이 없는 것은 아니다.

프랑스 무슬림의 압도 다수는 아프리카(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뿐 아니라 북아프리카의 아랍 나라들까지 포함하는) 출신자들인데, 그들은 곳곳에서 차별을 당한다. 무슬림들의 실업률과 빈곤율은 국민 평균의 세 곱절이나 되고, 연간 소득도 국민 평균보다 30퍼센트 낮다.

게다가 무슬림은 프랑스 전체 인구의 8퍼센트를 차지하지만, 수감자 중에서는 50~70퍼센트를 차지한다.

이런 사회경제적 요소에는 지리적 분리도 포함된다. 프랑스 무슬림의 다수는 (출신 배경이 다른 이민자들과 마찬가지로) “우선구역”(ZUS)이라고 불리는 대도시 변두리에 거주한다.

이 지역들은 주민 중 이민자 비중이 전국 평균보다 높고, 실업률이 높고, 공공 임대 주택 거주 주민 비중이 높고, 빈곤율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2005년 11월 청년들이 소요를 일으킨 적이 있는데, 소요가 일어난 지역은 모두 ‘우선구역’으로 분류되는 곳이었다. 프랑스 대외안보총국(DGSE)이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그 소요에 참가한 청년들은 “인종적·지리적 배경도 비슷했을 뿐 아니라, 프랑스 사회로부터 배제당한다는 정서를 공유했다.”

무슬림 청년들이 일상적으로 받는 차별을 보면 파리 참사의 배경이 이해된다. 파리 한 모스크 앞에서 순찰하는 무장 군인. ⓒ사진 출처 Apaydin Alain(PA)

이런 물질적 배경에 더해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프랑스 국가와 우파의 이데올로기적 공격도 있었다. 2004년 공립학교에서 이슬람 전통 복장을 착용하지 못하도록 금지한 법[일명 ‘히잡 착용 금지법’]이 ‘라이시테’의 이름으로 제정된 일, 2007년 우파 대통령 니콜라 사르코지가 “이민·국가정체성·통합부”를 설치한 일 등 정치인과 대중매체가 저지르는 수많은 “일상적 인종차별”은 “결국 무슬림이 문제다”라는 이데올로기를 구축하려는 시도들이다.

정치인들과 대중매체는 이민을 ‘통합’의 관점으로 바라본다. 무슨 말인고 하니, 이슬람에는 본래부터 무슬림들이 프랑스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고 이른바 ‘공화주의적 가치’를 받아들이지 못하게 하는 요소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통합’의 관점은 지배계급에 맞서 싸우는 데서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보통 사람들 사이에 상호 적대감을 일으키고, 잘 만들어진 문화적 연막 뒤에 있는 사회경제적 현실을 가린다.

좌파와 무슬림

불행히도 프랑스 좌파들은 이 함정에 자주 빠진다. 프랑스 좌파 대다수가 히잡은 여성차별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며 ‘히잡 착용 금지법’을 찬성했다. 그 좌파들은 그 법 자체가 특정 여성들의 교육받을 권리를 제약하는 억압적 법이라는 사실을 무시했다.

심지어 오늘날에도 프랑스의 혁명적 좌파 조직들 사이에서는 이슬람 전통 복장을 한 여성을 당원으로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둘러싼 논쟁이 일어난다. ‘라이시테’의 이름을 앞세운 이런 태도는, 거만하고 잘난 권력자가 차별받는 사람들의 이해를 당사자들보다 더 잘 알아서 그들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들을 해방시킬 수 있다고 전제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은 ‘히잡 착용 금지법’뿐 아니라, 지난날의 식민지 건설과 최근의 제국주의적인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쓰여 왔다.

‘라이시테’가 흔히 보편적이고 초역사적인 가치를 표방한다고 여겨지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라이시테’는 프랑스 혁명 때 부르주아지가 절대왕정과 가톨릭 교회에 맞서 싸울 때 사용한 강력한 무기였다. 지배적 종교에 맞서는 투쟁은 절대주의적 봉건 질서를 타도하는 데서 필수적 요소였던 것이다.

19세기 말 ‘라이시테’는, 이제는 승자가 된 부르주아의 이데올로기적 지배력(특히 공교육에서의 지배력)을 떠받치는 주춧돌이 됐다. 그리고 오늘날에는 종교적 소수자들을 체계적으로 차별하는 교의로 쓰인다.

‘라이시테’와 마찬가지로 종교 사상과 실천을 이해할 때는 항상 그것의 역사적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프랑스의 젊은 여성들이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반항이자 해방의 의미인 경우가 흔하다.

앞에서 개략적으로 말한 맥락에서 많은 프랑스 무슬림들이 사회의 나머지로부터 소외당한다고 느끼는 것은 놀랄 만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 곤궁하고, 배제된 “빈민가”에 살고, 인종차별적 이데올로기의 십자포화를 맞는다. 게다가 프랑스 좌파는 [이 문제에서] 마비돼 있다. 그래서 프랑스 무슬림들은 정치 투쟁이라는 숨 쉴 공간이 작다.

여기에 더해 프랑스는 알제리를 식민지로 지배한 끔찍한 역사가 있고, 국제적으로는 서방 세계 전역에서 무슬림 혐오가 성장하고 있고, 무슬림이 많이 사는 나라에 대한 제국주의 전쟁이 벌어진다.

이슬람 문헌이나 실천에 내장된 그 무엇이 아니라, 바로 이런 역사적 배경과 프랑스 국내외의 맥락을 볼 때만 심리적으로 가장 취약한 일부 무슬림 청년들이 왜 ‘이라크 시리아 이슬람국가’(아이시스)에 이끌리고 자기 나라에서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파리 공격 이후 지배자들이 벌이는 캠페인에 맞선 저항이 자란다는 징후가 있다. 프랑스의 주요 극좌파 조직인 반자본주의신당(NPA)은 지배계급이 호소한 ‘국가적 단결’을 거부했고, “이른바 공화주의적 가치의 이름으로 국가가 저지르는 인종차별”을 강하게 비판했다.

게다가 파리 공격 이후 [프랑스 경찰은 집회를 금지했지만 이를 거슬러] 파리에서는 수백 명이 인종차별에 반대하고 난민들을 환영하는 시위를 벌였다. 마르세유에서는 수천 명이 무슬림 혐오와 전쟁 책동에 반대해 거리를 행진했다.

프랑스 국가의 군사적 대응은 모두 아이시스가 생겨난 단기적·장기적 조건을 재생산하기만 할 것이다. 프랑스에서 체계적 차별과 무슬림 혐오가 증가하는 것은 많은 프랑스인들의 주변화를 촉진하기만 할 것이다.

이런 모골이 송연한 전망에 맞선 유일한 희망은 대담한 좌파가 프랑스 지배계급이 자행하는 차별에 맞선 투쟁의 단결을 이룰 이데올로기와 실천을 제공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출처 영국 반자본주의 월간지 《소셜리스트 리뷰》 2015년 11월호 / 번역 차승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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